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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esian Bulletin of Korea www.ibosco.net 연중기획 Cover Story 돈 보스코,다시 시작! - 돈 보스코 탄생 200주년 경축을 종합하며 돈 보스코의 성지 V 2015 / 7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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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salesio.hs.kr/data_files/doc/sf_133.pdf · 2017-06-28 · Cover Story 6살레시오가족 우리 땅을 찾아오신 아버지: 돈 보스코의 유해 순례 2009년 7월,

Jun 2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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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Cover Story돈 보스코,다시 시작!

- 돈 보스코 탄생 200주년 경축을 종합하며

돈 보스코의 성지V

2015 /7 1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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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esian Bulletin of Korea

여는 글

2 살레시오가족

뜻깊은 돈 보스코 탄생 200주년 대축제

살레시오 가족 여러분, 돈 보스코를 사랑하는 살

레시오가족지 애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5

월, 살레시오회 서울 신길동 관구관 대강당과 광주

신안동 수도원 성당에서는 참으로 뜻깊고 은혜로운

행사가 있었습니다. 돈 보스코 탄생 200주년 기념의

해를 마무리 짓는 한국 관구의 폐막 대축제가 있었습

니다. 참으로 많은 분들이 함께해 주셔서 자리가 빛

났습니다. 풍성하고 아름다운 축제를 위해 많은 분들

이 수고해 주셨습니다. 지면을 통해서나마 깊이 감사

의 인사를 드립니다.

대축제를 진행하는 수도자들의 얼굴에서나 행사

장을 가득히 메워 주신 참가자들의 얼굴에는 시종일

관 행복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참가자 모두는

풍성하고 알차게 꾸며진 축제 프로그램에 몰입해 마

치 작은 천국 체험이라도 하는 듯했습니다. 천상에

계신 돈 보스코께서 흐뭇한 미소를 짓고 계심을 확신

할 수 있었습니다. 돈 보스코란 분이 얼마나 크신 분

이신지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토록 위대

한 성인을 창립자로 모시고 있음에 큰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던 축제의 날이었습니다.

탄생 200주년을 기리며 해 온 그간의 일들

살레시오 가족들의 대희년인 돈 보스코 탄생 200

주년을 성대하게 마무리 짓게 됨을 하느님께 감사드

리며 지난 발자취를 돌아봤습니다. 여러 형제들의 수

고와 많은 분들의 참여로 여러 가지 의미 있는 결실

들이 생겨났습니다. 탄생 200주년의 본격적인 행사

가 있기에 앞서 은혜롭게도 돈 보스코의 유해가 한국

을 순례했습니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돈 보스코 유해를 찾아왔는지 모릅니

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임시로 마련한 고해소 안

에서 하느님을 되찾았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많은 사

람들이 돈 보스코의 전구를 통해 하느님의 풍성한 은

혜를 입었는지 모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제3세계 청소년들과 선교사들

을 돕기 위한 살레시오 선교국이 설립되었습니다. 도

움이 필요한 청소년들을 위한 돈 보스코 장학회가 발

족되었습니다. 돈 보스코 생가 및 사목활동 장소 등

을 순례하는 돈 보스코 성지 순례가 네 차례에 걸쳐

새로운 축제의 시작- 돈 보스코 탄생 200주년을 마무리하며

수년간 준비해 온 돈 보스코 탄생 200주년. 그 축제의 장을 마무리하며

각자의 일상 안에서 사랑의 축제, 영성의 축제를 이어 가자.

양승국 신부 살레시오회 관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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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어졌습니다.  『돈 보스코: 역사와 정신』 전집(전

7권) 등 여러 돈 보스코 관련 서적이 번역 · 출간되어

돈 보스코를 더 잘 아는 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영성과 양성 분야에서의 노력도 컸습니다. 돈 보

스코 영성과 관련된 수많은 강좌가 다양한 곳에서 이

루어졌습니다. 특히 서울 신길동 살레시오회 관구관

에서는 3년간에 걸쳐 매주 월요일 ‘열린 영성강좌’를

개최하여 신자들의 영성 생활 증진을 위해 노력했습

니다. 또한, 서울과 광주 그리고 대전에 살레시오협

력자회 양성학교가 개교되어 협력자들의 체계적인

교육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였습니다. 아울러 살레시

오회 한국 관구 역사관을 개관하였습니다. 그리고 마

침내 돈 보스코 탄생 200주년 기념 폐막 대축제까지

성황리에 개최되었습니다. 돈 보스코 탄생 200주년

을 맞이하며 개최된 다양한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

해 주신 모든 분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

를 드립니다.

돈 보스코께서 우리에게 건네주는 작은 과제

이제 한국 관구에서 준비한 돈 보스코 축제는 끝

나 갑니다. 돈 보스코 축제를 끝낸 우리 각자에게 성

인聖人께서는 한 가지 작은 과제 하나를 건네주고 계

신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제는 일상 안에서 삶의 축

제를 계속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 축제는 먹고 마시

고 즐기는 축제라기보다 사랑의 축제, 영적인 축제여

야겠습니다. 돈 보스코께서 지니셨던 가난한 청소년

들을 향한 그 따뜻한 마음, 측은지심이 가득한 눈길,

영혼 구원을 위한 뜨거운 열정을 우리 가슴에 담고 각

자 삶의 자리로 돌아가야겠습니다. 또 다른 돈 보스

코로 청소년들에게 다가서야겠습니다.

얼마나 많은 이 땅의 청소년들이 힘겨워하고 있습

니까? 얼마나 많은 이 땅의 청년들이 고통 속에 살아

가고 있습니까? 이제 우리가 더욱 적극적으로 움직

일 때입니다.

그토록 아름다운 돈 보스코의 마음, 돈 보스코의

정신, 돈 보스코의 영성으로 세상의 변두리로 나아가

야겠습니다. 이토록 아름답고 성스러운 영성의 길,

돈 보스코 영성의 큰 물줄기에 함께 참여해 주신 모

든 분께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리며 돈 보스코의

마음으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돈 보스코께서 지니셨던 가난한 청소년들을 향한 그 따뜻한 마음,

측은지심이 가득한 눈길, 영혼 구원을 위한 뜨거운 열정을 우리 가슴에 담고

각자 삶의 자리로 돌아가야겠습니다.

또 다른 돈 보스코로 청소년들에게 다가서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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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여는 글

새로운 축제의 시작 양승국 신부

04 Cover Story돈 보스코, 다시 시작! 편집부

10 살레시안 뉴스

살레시오 가족 소식 편집자문위원

12 연중 기획·돈 보스코 성지 ⑤

돈 보스코의 토리노: 초기 오라토리오 편집부

17 정직한 시민 좋은 신자

의사 · 시민운동가에서 시정 책임자로: 윤장현 동문 편집부

20 부모세대 VS자녀세대

나잇값 좀 해라! 편집부

22 살레시오 선교

볼리비아 산타크루스 – 십자가로 하나된 다문화 공동체 김영숙 수녀

25 세계 살레시안 뉴스

세계 살레시오 가족의 이모저모 편집부

28 독자편지

독자들의 독후감 편집부

29 퀴즈

독자 퀴즈 및 후원자 명단 편집부

30 생명을 주는 가족 39

“왜 나에게는 나쁜 일만 일어날까?” 박은미

32 돈 보스코의 마음으로 교육합시다

주미와 가희 자매 이야기 김건중 신부

35 닫는 글

밀타 몬딘 수녀님을 그리며 황경숙

Contents2015년 7월 통권 133호

Salesian Bulletin of Korea

Cover Story

돈 보스코,다시 시작!

- 돈 보스코 탄생 200주년 경축을 종합하며

오는 8월 16일은 살레시오 가족이 수년간 준비해 온

돈 보스코 성인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날이다.

2009년부터 시작된 돈 보스코 탄생 200주년 기념

준비 과정을 결산하고 돈 보스코 성인의 영성이 이 땅에 깊이

뿌리내려 확장되기 위한 살레시오 가족의 소명을 되새겨 본다.

편집부

돈 보스코 대축제에서 상연된 살레시오회 신안동 공동체 신학생들의 뮤지컬 중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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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esian Bulletin of Korea 5

“돈 보스코께서 오늘 살아 계신다면무슨 일을 하실까?”라는 질문에 정답을 마련

하기 위한 깊은 고민을 지난 몇 년 동안 우리 살레시

오 가족 전체가 했다. 이 질문은 1888년 1월 31일 돈

보스코가 선종하신 이후 오늘까지 그분을 따르는 아

들들에 의해서 끊임없이 제기됐고, 매 순간 현실 상

황에 대한 판단과 선택의 기준을 마련하는 데 중심이

되었다. 특히 2014년 8월부터 2015년 8월 15일까지

1년 동안 돈 보스코 탄생 200주년을 맞아 다양하고

의미 있는 행사와 기획들을 마련하고 시행하며 그분

의 자녀로서 살레시오 가족의 행복을 마음껏 누리는

가운데, 존재 전체로써 이 본질적인 물음을 더 깊이

파고들었다.

우리는 이 질문의 정답을 모른다. 그러나 그분이

하셨던 일을 알며, 사셨던 방식과 가치에 대해 말할

수 있고, 그분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당부의 말씀

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있다. 알기에 모방이 가능하

다. 오늘 우리가 그분을 닮아 그분처럼 행동하기 위

해서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

200주년의 시작: 2009년, 살레시오회 창립 150주년

“내가 살아난 것은 여러분 덕택입니다. 그러니 이

제부터는 내 생명을 완전히 여러분을 위

해 바칠 것을 약속합니다.” 1846년, 돈

보스코가 서른 살을 꽉 채웠을 때 일어

난 감동적인 장면을 떠올린다. 중병에

걸려 여드레 동안 사경을 헤맬 때 오라

토리오의 아이들이 온 정성을 기울여 돈

보스코를 낫게 해 달라고 성모님께 매달

렸고, 아버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소

년들의 간절함이 큰 은총의 선물을 얻어

냈다(돈보스코미디어, 돈 보스코 287쪽

참조). 이 순간 감동에 북받친 돈 보스코

는 틀림없이 성령에 감화되어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맹세를 한 것이다. 젊은

이들에게 자신의 목숨을 내주겠다는, 삶

의 매 순간을 젊은이들을 위해서만 살겠다는 장엄한

선언이다. 아이들로부터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사

랑을 받는다고 느끼는 자만이 할 수 있는 다짐이고 장

담이다.

그는 자신의 ‘성대 서원’을 그대로 실천했다. 가난

하고 보잘것없는 아이들을 보살피고 돕는 그를 향해

마치 자력에 이끌리듯 수많은 아이들이 모여들었고,

그들에게 바치는 돈 보스코의 삶을 섭취하면서 아이

들은 ‘정직한 시민과 착한 신자’로 성장

했다. 그들 가운데서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젊은이들 17명과 함께 살레시오

회를 시작한 것이 1859년의 일이다. 그

래서 그로부터 150년이 되는 2009년이

돈 보스코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여정의 출발선으로 그어진 것이다.

2008년 살레시오회 제26차 총회를 마

치면서 총장 차베스 신부는 2015년은

살레시오 가족에게 희년이 될 것이라

고 선포했고 이를 위해 2009년부터 다

양한 노력을 기울여 돈 보스코 탄생

200주년을 준비하고 거행할 것을 천명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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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esian Bulletin of Korea

Cover Story

6 살레시오가족

우리 땅을 찾아오신 아버지: 돈 보스코의 유해 순례

2009년 7월, 살레시오회의 본산 토리노 발독코에

서 세상 곳곳을 찾아 나서는 돈 보스코의 유해 순례

가 시작됐다. 당신이 가장 먼저 선교사를 파견했던

땅, 아메리카를 우선 들르고 바로 한국을 찾아오신

돈 보스코의 유해는 2010년 11월 1일부터 17일 태국

으로 떠나기까지 18일 동안 서울과 광주 지역에서 살

레시오 가족들이 활동하는 곳곳을 방문하셨다.

“돈 보스코의 유해 순례는 살레시오회원이나 살

레시오 가족들만의 축제가 아니었다. 5만 명 이상의

순례객들이 돈 보스코를 찾아오셨다. 특히 여러 주교

님과 사제들, 수도자들도 순례 행렬에 기쁘게 동참해

주셨다. 수많은 고백소 앞에는 언제나 긴 줄이 늘어

서 있었다.

오랫동안 교회를 떠나 있었던 쉬는 신자들이 돈

보스코 앞에서 회개의 눈물을 흘렸다. 순례객 중에는

유난히 교사들이 많았는데, 그분들은 돈 보스코의 예

방교육과 관련된 특강을 들으면서 교육자로서 새로

운 각오들을 다졌다.

돈 보스코의 유해 순례는 하느님께서 한국 교회에

주신 선물이었고 일종의 영성 쇄신

운동이었다.”(『돈 보스코 이 땅에』,

168쪽)

돈 보스코를 만나기 위해 수많

은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이 모

여드는 것은 150년 전 발독코에

서나 오늘날 한국에서나 마찬가

(왼쪽) 한국에 오신 돈 보스코. (오른쪽) 유해순례 때 성인의 전구로 아들을 얻은 김혜경(가브리엘라) 자매와 아들 보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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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였다. 그만큼 젊은이들로부터 사랑받는 성인이심

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당신의 아들들을

대표해서 미켈레 루아 신부에게 “아이들로부터 사랑

받도록 노력하세요.”라고 선종 직전에 하신 마지막

말씀의 뜻을 되새기게 한다.

돈 보스코의 삶은 살아서든 죽어서든 아이들로부

터 사랑을 받는 삶이고, 그분으로부터 다시 시작한다

함은 다름 아니라 아이들의 사랑을 받는 일을 한다는

뜻이다.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라: 선교 활동의 강화

1875년 11월 11일, 아르헨티나로 첫 선교사를 파

견한 이후 해외 선교는 살레시오회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다. 한국 살레시오 가족도 1954년 출범 이후 지

속적으로 외국의 선교사와 물질적인 지원을 받아 성

장하더니, 1990년대에 들면서부터 외국으로 선교사

를 파견하고 지원하는 일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돈 보스코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 있는 일

중 하나가 선교의 체계적인 지원 시스템을 마련한 것

이다. 이미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그리고 동북아시

아의 가난한 청소년들을 찾아가 돈 보스코의 예방교

육을 실천하는 것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우리 선교사들이 여럿 파견되어 있다. 또한, 수도자

들과 신자들 사이에 선교를 향한 열정이 피어나는 현

상을 체험한다. 이렇게 이미 선교지에서 열정을 불사

르고 있는 선교사들이나 선교의 뜻을 품고 있는 사람

들을 지원하고 또 발굴하는 활동을 담당하기 위한 선

교국이 2012년 2월에 마련되었다.

선교지의 필요를 파악하고, 국내의 신자들에게 그

리스도의 사랑이 담긴 나눔을 호소하며, 이 두 지점

을 연결하여 영적 선물과 물적 자원이 교류하게 하는

혈관과도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특히 젊은이들 가운

데서 일고 있는 나눔의 구체적인 체험 열망을 고무하

고 실현의 방도를 제공하는 일에 좋은 성과를 보고 있

다. 우리 선교사들이 파견되어 있는 선교지를 중심으

로 이미 14명의 청년 평신도 선교사(자원봉사자)들을

1년 이상 장기간 파견했고, 준비 과정 중에 있는 장차

파견될 사람들도 줄을 잇고 있다.

이들은 선교지에서 수도자들을 도와 교육활동에

참여함으로써 큰 기여를 할 뿐 아니라, 구체적인 삶

의 나눔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인간적 성숙과 세계시

민으로서 사해동포적인 안목을 기르는 등 개인의 성

장에도 큰 도움을 받는다.

돈 보스코를 알기 위한 노력: 많은 서적 출판

앞에서, 알기에 닮을 수 있다고 했다. 돈 보스코

200의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로 그분을 알 수 있도록

해 주는 많은 자료들이 새롭게 선보였다는 것을 꼽을

수 있겠다.

우선 아서 렌티 신부의 『돈 보스코: 역사와 정신』

일곱 권 전체가 번역 출판되었다. 돈 보스코의 일생

을 유럽과 이탈리아 근대사의 종합적인 맥락에서 서

선교국을 통한 평신도 선교사 파견 대축제 때 돈 보스코 관련 서적을 홍보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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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esian Bulletin of Korea

Cover Story

8 살레시오가족

술하고 있기에 학술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닌 동시에

돈 보스코의 삶을 분석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

라봄으로써 균형을 갖춘 전집이라고 평가된다. 신화

적인 입장이 아니라 사실적인 관점에서 돈 보스코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더없이 좋은 자료가 아닐 수

없다.

대중적 돈 보스코 전기의 결정판이라고 일컫는 테

레시오 보스코 신부의 『돈 보스코』도 완역으로 새롭

게 출판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권이 보급된

실적이 말해 주듯이 이 책은 돈 보스코의 삶을 아주

쉽고 흥미진진한 이야기체로 풀어내는 동시에 그 삶

의 영성적 차원까지도 깊게 탐구하는 장점을 지닌 책

으로서 많은 독자들의 심금을 자아내고 있다.

이것들과 더불어 이안 머독 신부가 지은 『돈 보스

코로부터 다시 시작하기』도 번역 출판되어 돈 보스코

를 알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돈 보스코의 영성을 전파하는 노력

가난한 청소년들을 향한 자신의 활동에 많은 사람

이 참여할 수 있도록 돈 보스코 자신도 다양한 방식

으로 사람들을 모았다. 수도회와 수녀회를 만든 이유

도 그렇고, 평신도가 주축이 되는 협력자회를 만든

것도 다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사랑의 사업을 지속하

려는 목적이었다. 도움이신마리아회 역시 성모님 신

심의 전파를 주목적으로 삼고 만들었지만, 그 배경에

는 가난한 청소년을 위한 활동에 도움을 받으려는 의

지를 담고 있다.

교회와 사회 안에서, 가난한 청소년에 대한 관심

과 사랑이 자라고 그들을 보살피는 실제적인 노력이

증가하는 것과 돈 보스코의 영성이 전파되는 것은 우

리 살레시오 가족들에게 있어서 같은 의미로 여겨진

다. 그렇기에 살레시오 가족의 수적 증가나 다양성의

확장은 돈 보스코 200을 기념하는 일로 더없이 좋은

성과라 하겠다.

특히 사회 안에서 돈 보스코의 영성을 실천하는

협력자 성소가 매월 서울과 광주에서 시행되는 양성

학교 등을 통해 굳건하게 질적 토대를 마련한 것이라

든지, 해마다 30~40명의 새 서약자가 생기는 수적

증가는 괄목할 만한 업적이다. 그에 덧붙여 살레시오

1 매주 월요일 개최된‘열린 영성강좌’2, 3 돈 보스코 대축제 파견미사(2는 서울, 3은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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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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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esian Bulletin of Korea 9

청소년운동이 네 차례에 걸쳐 전국 모임을 갖는 등 탄

력을 받고 있으며, 도움이신마리아회(ADMA)가 새롭

게 시작함으로써 살레시오 가족 단체의 스펙트럼이

한층 넓어졌다. 살레시오회 신길동 관구관에서 매주

월요일에 개방된 형태로 진행되는 돈 보스코 영성강

좌도 돈 보스코 200을 거행하기 위해 기울인 큰 노력

중의 하나다. 200여 명의 청중들이 90차례에 이르는

강의마다 성황을 이뤄 돈 보스코의 청소년 사목 영성

을 즐겨 배웠으며, 일상에서 수행되는 신앙생활의 맛

을 한 차원 높게 음미하고 있다.

또한 장학기금을 마련하여 가장 가난한 학생들의

학업을 돕는다든지, 살레시오의 지난 흔적들을 잘 보

관하고 오늘과 내일의 삶의 지표를 추구하는 데 있어

도움받을 수 있도록 ‘살레시오 역사관’을 마련한 것

등도 우리가 거행한 200주년의 또다른 성과이다.

돈 보스코라면 무엇을 하셨을까!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돈 보스코는 오

라토리오를 세워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받아들였고, 다

양한 유형의 학교를 세웠으며, 신문과 잡지를 발간했

고, 기술학교와 직업학교, 인쇄소와 출판사, 청소년

을 위한 수도 · 문화 · 신앙 · 사회 단체들을 설립했

다. 성당을 지었고 만민 선교와 이주민 지원활동을

펼쳤다. 단 한 가지 목적,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청소년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서 구현한 이 모든 것들

은 오늘날도 다 유효하고 또 사회와 교회 안에서 절

실하게 요구되는 활동들로서 전 세계 살레시오 환경

속에서 실제로 수행되고 있다.

우리가 여러 노력을 기울여 준비하고 거행한 돈

보스코 200은 그분으로부터 다시 출발하기 위한 결

심이고, 오늘의 현실에서 ‘그분이었다면 어떻게 대응

하실까?’라는 통찰을 얻고자 하는 우리의 기도이고

축제이다. 1846년 감동의 현장에서 돈 보스코가 했던

맹세를 우리의 목소리로 다시 하고자 하는 다짐이다.

살레시오 가족으로서 우리 사회의 수많은 젊은이들,

특히 희망을 잃고 고난과 실의에 차 있는 가난한 젊

은이들 곁으로 다가가 그들의 손을 맞잡고 말하자.

“내 생명을 완전히 여러분을 위해 바칠 것을 약속

합니다.”

돈 보스코 대축제에서 총장신부의 영상 메시지를 보는 참가자들 협력자 서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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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살레시오가족

살레시오고: ‘2015 자랑스런 살레시안상’ 수상자2015년 5월 24일 살레시오고 교정에서 성대하게 거행된 ‘벗들의 큰 모임 행사’에서 윤장현 광주광역시장(고 6회, 사진 왼쪽)과 이승규 정우21C 대표(고 18회, 사진가운데), 김재국 전남대 공과대 교수(고 24회)가 ‘자랑스런 살레시안상’을 받았다.윤 시장은 민선 6기 시민시장에 당선돼 살레시오 정신을 바탕으로 ‘광주공동체’라는 시정을 이끌어 가는 공로로, 이 대표는 내전으로 기근과 궁핍에 시달리고 있는아프리카 남수단을 돕기 위해 살레시오 선교국을 통해 1억 원을 지원하는 등 나눔의 살레시오 정신을 드높였다는 평가로, 김 교수는 차세대 전극물질인 바나듐계양극 물질을 입자형상으로 합성하는 데 성공해 신소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모교를 빛낸 점이 인정돼 각각 ‘자랑스런 살레시안상’을 받았다.

살레시오회: 돈 보스코 탄생 200주년 기념 ‘돈보스코대축제’ 거행돈 보스코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돈보스코대축제’가 5월 23일과 30일, 각각서울과 광주에서 개최되었다. 살레시오회 관구장 양승국 신부의 개회 선언과 함께시작된 이 행사에서는 살레시오 가족 수도자들의 밴드 공연, 나눔의집 청소년들의춤, 협력자들과 참가자들이 함께 하는 라인 댄스, 살레시오회 신안동 공동체 신학생들이 열연한 뮤지컬 등이 선을 보였다. 이어 벌어진 ‘살레시오 골든벨 퀴즈’에서는 돈 보스코의 생애를 재미있는 퀴즈로 풀어 보는 시간을 가졌다. 파견미사로 대축제의 장을 마감한 후 참가자들은 식사를 나누며 하루 동안의 기쁨을 떠올리고돈 보스코 탄생의 의미를 나누는 기회를 가졌다. 대축제는 서울에 800여 명, 광주에 500여 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살레시오수녀회: 서정애 수녀 선종2015년 5월 9일, 한국의 첫 살레시오 수녀인 서정애 안나 수녀가 선종했다(향년 78세). 그는 한국 살레시오수녀회의 첫 성소자로서 1957년 입회, 1964년 이탈리아카사노바에서 첫서원, 2014년 서원 50주년을 맞이하기까지 청소년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 다양한 소임을 수행했다. 또한 고인은 2000년부터 시작된 암 투병 중에도마지막까지 일상생활에 충실한 수도자의 모습을 증언해 왔고, 마지막 순간에도 평온하고 기꺼운 모습으로하느님의 부르심을 따랐다. 담양 살레시오수녀회 묘지에 안치됐다.

예수의까리따스수녀회: 까리따스 데이Caritas Day5월 24일 주일(성령강림대축일), 예수의까리따스수녀회 세 관구 회원들이 서울관구 본원에 모여 까리따스데이 행사를 가졌다. 행사 중에는 올해 서원 50주년을맞은 2명의 수녀(소피아, 스콜라스티카 수녀)와 서원 25주년을 맞은 17명의 수녀들을 위한 감사미사가 봉헌되었다. 긴 세월 봉헌의 삶을 한결같이 걸어온 수녀들과더불어 세 관구의 자매들은 풍요로운 친교의 시간으로기쁨을 나눴다.

Salesian News살레시오 가족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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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수녀회: 젊은이 연피정2015년 5월 29일~31일 매월동 피정의 집에서 “나 너와 함께 있으니!”(이사 43,5)라는 주제로 젊은이들을 위한 연피정이 있었다. 흙 체험과 말씀, 그리고 찬양이 어우러지는 자리로 자연 속에서 하느님과 깊이 만나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예수의까리따스수녀회: 총원장 아폴리나리스 시무라 유리코 추모미사 봉헌지난 5월 30일, 브라질 준관구 방문 중에 쓰러져 갑자기 선종한 총원장 고故 아폴리나리스 시무라 유리코 수녀의 추모미사가 브라질 현지 장례 일정에 맞춰, 6월 4일 오전 10시에 서울관구 본원 성당에서 봉헌되었다.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와총 13명의 사제단이 이 미사를 집전했다. 고인의 생전 모습대로 추모미사도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고인은 도쿄 가톨릭 묘지에 안장된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온 마음으로 함께 기도해 준 살레시오 가족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살레시오협력자회: 양성학교 1학기 종강살레시오협력자회 양성학교가 6월 27일 광주, 28일 서울에서 ‘돈 보스코와 맘마마르게리타’를 주제로 한 강의와 파견미사를 끝으로 1학기를 마감했다. 2학기 강의는 9월에 시작하며, 2학기부터는 대전에서도 양성학교가 열린다. 양성학교에는서약 전의 초기양성자뿐 아니라 이미 서약한 협력자들도 재교육 차원에서 참여하고 있다.

살레시오수녀회: 양성 세미나 전달 강의“평생양성과 초기양성의 이정里程수립작업을 위한 세미나”에 대한 전달 강의가 서울, 광주피정의 집에서 6월14, 15, 21, 22일 네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다. 관구 현실에 맞는 양성을 고민하며 통합적인 양성의 개념과 오늘날 이 시대에 각자가 지녀야 할 양성 스타일을 찾고, 평생양성을 위해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깨닫는 시간이었다.

살레시오협력자회: 청년 성소자 첫 모임5월 30일 살레시오회 관구관 7층 홀에서 여덟 명의 청년이 참석한 가운데 협력자회 청년 성소자 첫 모임을가졌다. 이는 협력자 자녀들을 중심으로 협력자 관구산하에 구성된 모임으로, 그 취지는 협력자 성소를 길러 주기 위함이기도 하며 살레시오회의 보스코니안과도 연계하여 살레시오청년운동(SYM)에 적극 동참하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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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살레시오가족

Salesian Bulletin of Korea

연중기획

사제학교 3년(1841~1844) 동안 돈 보

스코는 도시를 떠도는 아이들을 모아

오라토리오를 시작했다. 사제학교 이

후 발독코에 정착하기까지 여러 곳을

전전하며 버림받고 가난한 아이들을

보살폈다. 이번 호에서는 그 흔적들을

따라가 본다. 편집부

돈 보스코 성지 ⑤

돈 보스코의 토리노 : 초기 오라토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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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롤로 저택 2 성 프란치스코 성당 3 리푸조4 산타 필로메나 소병원 5 처형자들의 공동묘지6 몰라시 7 모렛타의 집 8 필립비 형제의 풀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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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esian Bulletin of Korea 13

바롤로 저택 (Via delle Orfane)초짜 신부 돈 보스코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한

특출한 여인이 살던 곳이 바로 이 집이다. 벡키 출신

의 가난한 사제 돈 보스코는 바로크 형식의 이 으리

으리한 저택의 아트리움(넓은 앞마당)을 지나 복식

계단을 올라가 화려하게 치장된 후작 부인의 집무실

과 접견실을 드나들었다.

이곳에 줄리아 콜베르 바롤로 부인(1786~1864)

과 카를로 발렛키 바롤로 후작이 살고 있었다. 이 부

부는 사보이아에서 제일가는 굉장한 부자였고 토리

노 귀족의 대표격이었다. 이 저택의 살롱은 귀족, 정

치가, 외교인사, 관료나 예술가 등 당시 토리노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들로 늘 붐볐다.

신앙심이 깊은 이 부부는 자식이 없었기에 자신들

에게 속한 모든 재산을 사회사업과 자선활동을 위해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바롤로 부인은 지난 5월 6

일, 프란치스코 교황님에 의해 가경자로 선포됐다.)

이런 목적으로 이 건물에 아직도 본부를 두고 있는

‘바롤로 신심 사업’을 설립했다. 1832년부터 바롤로

후작 부인은 남편과 함께 이 저택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해 무상으로 음식을 제공하고 공부를 가르쳤다. 하

루에 250명에게 따뜻한 죽을 제공했으며, 주일에는

고기와 채소가 담긴 접시를 보태 줬다. 월요일마다

12명의 극빈자들을 후작 부인의 식탁으로 초대하여

그들과 함께 음식을 나눴고, 겨울철이 되면 이들에게

일주일 동안 풍족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장작을 나눠 줬

다. 이렇게 자비심 많고 품위를 갖춘 여인은 또 개인

적으로 마치 간호사처럼 주변의 가난한 가정을 방문

하고 환자들을 돌보며 그들에게 약품을 제공했다. 그

런 활동이 발전하여 여자들을 위한 소병원을 개설하

였는데, 이곳에서 사제학교를 졸업한 돈 보스코가 첫

활동을 했다.

성 프란치스코 성당 (Via San Francesco d’Assisi)돈 보스코는 그가 첫미사를 드린 성 프란치스코

아시시 성당에서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축일(아

직 교회의 공식적인 축일로 선포되기 전이다)에 바르

톨로메오 가렐리 소년을 만났다. 이 첫 만남을 기점

으로 주일마다 성 프란치스코 아시시 성당에 부속되

어 있는 사제학교의 마당은 아이들 차지가 되었고 모

여드는 숫자는 계속 증가했다. 이듬해 2월 이미 20

명, 3월에는 30명, 벽돌공들의 주보인 성 안나 축일

(7월 26일)에는 백 명을 넘어섰다.

새롭게 태동하는 오라토리오에 참가하는 아이들

은 대부분 인근 시골에서 올라온 아이들로 1년 중 농

한기에 해당하는 일정한 시기에만 토리노에 머물렀

다(대략 11월 말부터 6월 초까지). 이 계절적 떠돌이

아이들은 성 프란치스코 성당의 제의방이나 안뜰에

모여 교리 수업을 들었고 즐거운 놀이를 하며 주일이

나 축일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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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치스코 아시시 성당 골목 성 프란치스코 성당 제의방과 사제학교 안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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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esian Bulletin of Korea

연중기획

14 살레시오가족

리푸조 (Via Cottolengo)1821년 바롤로 후작 부인은 발독코에 리푸조를 세

우게 했다. 이곳에서는 곤란에 처한 250명의 여자아

이들을 받아들여 사회로 명예롭게 다시 돌아갈 수 있

도록 공부를 시키고 일을 가르치며 신앙심을 길러 주

는 일을 했다. 카팟소 신부는 이곳의 지도 신부인 보

렐에게 돈 보스코가 이곳에서 첫 사목을 할 수 있도

록 바롤로 후작 부인에게 추천할 것을 권했다. 후작

부인은 이 제안을 받아들여 돈 보스코에게 공간을 마

련해 주고 오라토리오를 열 수 있도록 허락했다. 이

렇게 해서 돈 보스코는 리푸조의 지도신부로 후작 부

인에게 고용되었다.

사제학교 안마당에 모이던 아이들은 시내를 벗어

나 이곳으로 자리를 옮기는 불편에 대해 투덜거렸으

나 그도 잠시, 리푸조의 한쪽 공간은 오라토리오의

아이들로 북적댔다. 방도, 복도도, 계단도 온통 소년

들로 꽉 찼다. 가난한 오라토리오인 동시에 시끌벅적

한 오라토리오였다.

산타 필로메나 소병원 (Via Cottolengo)후작 부인은 오라토리오가 번잡해져 리푸조의 여

자아이들을 위한 활동에 지장을 초래하자 인근에 신

축 중인 건물로 거의 완공 단계에 접어든 산타 필로

메나 병원의 일부분을 내줬다. 3층에 있는 작은 사무

실로 바롤로 신앙 사업에 관여하는 사제들의 모임을

위한 공간으로 생각해 뒀던 곳이다.

1844년 12월 8일, 좁은 공간이지만 아이들이 가

득 모인 돈 보스코의 오라토리오는 이곳에서 ‘성 프란

치스코 살레시오 오라토리오’라는 이름으로 봉헌되

었다. “바로 이곳이 주님께서 지정해 주신 오라토리

오의 첫 성당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오라토리오를 두

가지 이유에서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의 오라토리

오라고 불렀다. 첫째, 바롤로 후작 부인은 이 성인의

이름으로 사제들의 수도회를 설립할 뜻을 지니고 있

었으며, 그런 의도에서 우리의 오라토리오가 사용하

는 장소의 입구에 성인의 초상화를 걸어 놓게 했다.

둘째, 우리의 사도직은 많은 침착성과 온유함을 요구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탁월한 온유함과 사도직

의 열매를 본받을 수 있는 은혜를 하느님께 전구해 주

도록 그분을 주보성인으로 택한 것이다.”(『돈 보스코

의 회상』 214쪽)

이렇게 7개월을 보낸 오라토리오는 병원이 완공

되어 본래 기능을 수행하게 되자 천국 같은 이곳을 떠

나야 했다. 하지만 어디로?

처형자들의 공동묘지 (Via San Pietro in Vincoli)떠돌이 오라토리오가 시작된 것이다. 정착하지 못

하고 수시로 옮겨 다녀야 하는 오라토리오는 여간 성

가신 일이 아니지만, 누구 하나 불평하는 아이가 없

었다. 오히려 조잘대며 즐거워했고 다퉈 익살과 코미

정헬레나: 친정어머니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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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esian Bulletin of Korea 15

디로 웃음을 만들어 내려 했다. 아이들과 돈 보스코

는 자신들의 처지나 자신들을 쫓아내는 사람들을 놓

고 타령 반, 풍자 반으로 웃음을 만들었다. 이런 방식

으로 실제로 겪는 일들을 즉흥적인 역할극 형태의 새

로운 놀이를 만들어내는 아이들 특유의 창의성을 발

휘했고, 이는 오라토리오의 전통 속에서 생활극이라

는 장르로 발전하였다.

돈 보스코와 그의 ‘악당’들은 지난 시절 처형당한

이들을 묻었던 공동묘지였기에 처형자들의 공동묘지

라고 불리는 곳의 부속 성당인 성 베드로 쇠사슬 성

당에서 모임을 가졌다. 이곳과 인접한 곳에 얼마 전

주셉페 콧톨렌고 신부가 극빈자들을 보살피는 시설

을 지었던 참이다. 아직도 남아 있는 이 시설에 6월

22일 돈 보스코 탄생 200주년을 맞아 토리노를 방문

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발독코에서 젊은이들을

만난 후 잠시 들르셨다. 당시 성 베드로 쇠사슬 성당

의 주임은 테시오라는 신부였는데 그는 돈 보스코의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란을 탐탁지 않게 여겨 시청

에 진정서를 넣었고, 이로 인해 돈 보스코와 아이들

은 다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몰라시 (Via Andrea Pisano)콧톨렌고 시설의 남쪽에 시 소유의 ‘몰리니 도라’

라는 방앗간 지대가 있었는데 사람들은 편하게 ‘몰라

시’라 불렀다. 당시 토리노 시장인 미켈레 카보우르

후작은 돈 보스코의 아이들이 방앗간의 활동을 방해

하지 않고 그곳 사람들의 미사를 방해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정오부터 오후 세 시까지 그곳의 성 마르티

노 성당을 사용하게 허락해 줬다. 이전의 장소에서

험하게 쫓겨났고, 새로운 장소의 사람들로부터도 반

감이 느껴졌기에 돈 보스코와 아이들의 마음은 무거

웠다. 보렐 신부가 이런 무거운 분위기를 유머로 전

환해 유명한 양배추의 강론을 했다. “양배추는 옮겨

심어야만 속이 꽉 차게 됩니다.”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돈 보스코는 큰 아이들과 함께 저녁에 성당

마당, 광대 역할을 맡은 아이의 흰소리에 허리가 끊

어지는 아이들 앞에서 연극을 공연했다.

1845년 9월 몰리니에서 돈 보스코는 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만남을 갖는다. 아이들은 성모님 메달을

나눠 주는 돈 보스코 앞에 서로 밀치며 줄을 섰다. 그

런데 저만큼 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창백한 한 아이

가 있었다. 두 달 전에 아빠를 잃고 그 표시로 왼팔에

검정 띠를 두르고 있었다. 소년은 다른 아이들처럼

먼저 선물을 받겠다고 뛰어들지 않고 멀찍이 서서 관

망만 하고 있었다. 달려든 아이들에게 나눠 주다 보

니 메달이 다 떨어진 돈 보스코는 그 아이에게 다가

가 미소 띤 얼굴로 말을 붙였다. “미켈리노, 받아라.”

뭘 받으라는 말인가? 오늘 처음 만난 신부는 아무것

도 주지 않으면서 단지 왼 손바닥을 오른손으로 자르

는 시늉을 하고 있으니 어리둥절할 수밖에. 그러자

돈 보스코는 아이에게 말했다. “우리 둘이 모든 것을

절반씩 나눌 것이다.” 이 순간 돈 보스코는 뭘 봤던

것일까? 이에 대해 결코 말을 하지 않았으나, 그 소

년은 장차 돈 보스코의 오른팔과 후계자로 살레시오

회의 2대 총장이 된다.

모렛타의 집 (Piazza Maria Ausiliatrice)몰라시에서도 그리 오래 있지 못하고 주민들의 성

화에 못 이겨 다시 쫓겨난 오라토리오는 결국 300여

명의 아이들과 함께 거리로 나앉았다. 이리저리 소풍

박찬형: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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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16 살레시오가족

형태를 취하던 아이들의 오라토리오 모임은 다행히

동료 신부 모렛타의 집에 방 세 칸의 세를 얻을 수 있

어서 다시 고정적으로 모일 장소를 마련했다. “그해

겨울에 우리는 야간학교도 개설했다. 우리가 사는 지

역에서 이런 시도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떠들썩했다.

좋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반대인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1846년 3월까지 겨우 넉 달을

지낼 수 있었다. 모렛타의 집에 세를 들어 살고 있는

다른 세입자들이 아이들의 소음과 들락날락거림에

참을성을 잃고 돈 보스코의 아이들을 내보내지 않으

면 대신 자신들이 나가겠다고 주인에게 엄포를 놓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돈 보스코는 다시 거리로 나설 수

밖에 없었다.

이 당시에 주민들뿐 아니라 토리노 본당의 신부들

도 돈 보스코가 아이들을 모으는 것을 불편해했다. 그

들은 회의를 열고 대표를 파견하여 돈 보스코에게 주

일에 아이들을 모으지 말고, 각자의 본당으로 가게

하라고 요구했다. “저에게 오는 소년들은 거의 대부

분 본당에 소속된 신자들이 아닙니다. 모두가 타지방

의 아이들로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나온 거주지가 불

확실한 젊은이들입니다.”

풀밭(Via Cigna, Via Maria Ausiliatrice)의 끝자락

돈 보스코는 모렛타의 집에서 50보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풀밭을 필립비 형제들로부터 세냈다. 그

풀밭 위로 주일이면 300명이 넘는 아이들이 몰려들

었고, 한쪽 구석에서 돈 보스코는 아이들에게 고해성

사를 줬다. 그렇지만 이 풀밭도 잠시뿐이었다. 필립

비 형제 역시 돈 보스코에게 다른 곳으로 가 줄 것을

요청했다. “신부님의 아이들은 우리 풀밭을 뿌리째

망쳐 놓고 있어요. 밀린 세를 면제해 드릴 테니 15일

내로 이 풀밭을 떠나 주세요.” 하지만 이제 어디로 간

단 말인가? 돈 보스코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는 동료

신부들은 헛된 일이니 오라토리오를 해산하라고 충

고했으며, 바롤로 후작 부인 같은 영향력 있는 사람

의 제안을 마다하고 늘상 꾀죄죄한 소년들 가운데 둘

러싸여 있는 것을 보고 그가 미쳤는지도 모른다는 생

각을 품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친구 신부 두 명을 파견하여 돈 보스

코를 정신병원으로 데려가 치료받게 하려는 계책을

꾸몄다. 그들은 마차를 가리키면서 함께 소풍을 가자

고 돈 보스코를 꾀었다. 그들의 숨은 의도를 간파한

돈 보스코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면서 그들이 먼저

마차에 오르도록 양보했고 그들이 마차에 오르자마

자 재빨리 문을 닫은 후 마부에게 말했다. “빨리 정신

병원으로 가세요. 그곳에서 이 두 사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문 라파엘라: 기도를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합니다. 또한 경제적·영적·심리적으로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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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원. 현재 국립유치원으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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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esian Bulletin of Korea 17

군의관 생활 2년을 제외하고는 한평생 광주를 떠

난 적이 없다는 윤장현 동문(66, 마르코, 살레시오고

6회)을 만나러 서울에서 광주로 내려가는 세 시간 반

동안의 여정 내내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이 하신 “그

리스도인은 정치에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

인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공동선을 추구하는 데 있

어 ‘가장 뛰어난 형태의 자선’을 실천하는 것이다.”라

는 말씀이 귓가를 맴돌았다. 의사이자 사회운동가에

서 시정 책임자로 정치 세계에 첫발을 내디딘 윤 동

문의 삶이, 이 말씀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리라는 기

대감 때문이었을까?

시민운동가로서 공동선을 위해 순수하고 치열하

게 살아온 그가 정치에 뛰어든다고 했을 때 반신반의

하던 상당수의 시선이 있었다. 그런 그가 민의를 등

에 업고 광주 시장에 당선돼 시정 책임자의 역할을 맡

은 지 어느 덧 1년. 입장이 천차만별인 노 · 사 · 민 ·

관의 첨예한 갈등 구조 속에서 보편 복지, 청소년 인

권, 청년 실업의 해소를 위한 정책 추진 등 시정 책임

자로 그가 보여 준 아동-청소년 교육과 젊은이의 미

래에 중심 가치를 둔 행보는, 돈 보스코를 따르는 살

레시오 가족에게는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섬김’의 가치를 가르쳐 준 은사들

현실 정치에서 당연히 느꼈을 한계와 답답함을

‘시민을 섬기는 공복’이라는 낮은 자세로 하나하나 헤

쳐 나가고 있는 윤 동문. 시장이 된 직후 광주광역시

청 로비를 개방해 시민이 전시회장으로 쓸 수 있도록

했다. 올해부터는 59개 공공기관의 주차장과 회의실

도 시민과 나눠 쓰고 있다. 눈높이를 시민과 맞추고

시민을 섬겨야겠다는 생각을 실천에 옮긴 배경은 시

민운동가로서 살아온 그의 이력을 살펴보는 것만으

로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그는 이런

행동철학의 뿌리에 고교 시절 두 분의 은사가 큰 영

향을 미쳤다고 고백한다.

익명: 권 미카엘라, 홍 유스티나, 홍 펠릭스, 신 마리아, 사랑하는 우리 가족이 언제 어디서나 평화롭기를 기원합니다.

Salesian Bulletin of Korea

정직한 시민 좋은 신자

의사 · 시민운동가에서 시정 책임자로

-윤장현동문‘광주’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정치에 입문한 후

공동선 구현을 위해 애쓰고 있는 윤장현 동문의

순수하고 치열한 삶의 이야기

편집부

사진 제공: 광주광역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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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esian Bulletin of Korea

정직한 시민 좋은 신자

18 살레시오가족

“광주 중흥동 살레시오고등학교를 가려면 논길을

2km 정도 걸어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학교 가는 길

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어요. 누군가가 늘 그 자리에

서 나를 반갑게 맞이해 줄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습니

다. 교문 앞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손

잡아 주던 원선오 신부님이 계셨지요. 또 한 분, 늘

넉넉한 미소로 제자들을 품어 주시면서도 막힌 수세

식 화장실을 손수 손을 넣어 고칠 정도로 솔선수범하

신 마 신부님이 계셨어요. 교장이셨는데 그런 일을

서슴없이 하셨지요. 신부님들을 통해 개별적인 존재

로서 존중받는 느낌이 뭔지를 알게 된 것이지요. 지

금 생각해 보면 그분들은 학생을 단순한 교육 대상이

아니라, ‘섬김’의 대상으로 보신 겁니다.”

역사의 격랑 속에서 성장한 시민의식

그가 고등학교 시절 받은 이 같은 특별한 사랑은

역사의 격랑 속에서 굴곡을 겪으며 깊이 체화된다. 고

등학교를 졸업하고 의대에 진학한 후 군의관을 거쳐

조선대병원 안과 전문의로 근무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맞이한 1980년 5월. 서른한 살 청년 윤장현은 시

민군 환자들을 돌보면서 “이 상황을 알려야 한다.”고

다짐했다. 1979년 손화정(헬레나, 살레시오협력자:

광주 맘마 말가리타 지회 소속) 여사와 결혼한 윤 동

문에게 광주 민주항쟁의 체험, 그해 5월을 도청이 아

니라 병원에서 보냈다는 자책감은 이후 그의 삶을 무

겁게 누르며 어떤 결단을 요구했다.

그 출발은 가정의 화목과 일치를 더욱 다지는 것

이었다. “대학교 시절부터 민청학련 등 반독재 투쟁

을 해 온 터라, 청소년기-청년기 사진이 없어요. 행

여 사진 때문에 친구들에게 누를 끼칠까 봐 모두 버

렸지요. 이런 상황에서 저 때문에 마음고생한 아내가

늘 마음에 걸렸습니다. 시집 온 지 얼마 안 돼 저에게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5월 항쟁이 일어났으니까요.”

이때 윤 동문이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한 일이 성

당에 함께 나가 기도하는 일이었다. “우리 집안이 대

대로 독실한 개신교 집안이었어요. 아버님께 성당에

나갈 뜻을 넌지시 비추자 아버님은 ‘하느님의 뜻대로

선하게 살다 하늘나라에서 함께 만나면 되지.’ 하며

흔쾌히 수락하셨습니다.”

1983년 가톨릭으로 옮겨온 후 그는 천주교 광주

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으면서 시민운

동에 뛰어들었다. 환경운동연합, 5.18기념재단 창립

에 참여했고, 광주시민연대대표, 아시아인권위원회

이사직을 맡으면서 광주 시민운동의 핵심으로 떠올

랐다. “광주에서 나고 자란 것이 축복”이요 지금까지

어느 한순간도 ‘광주’를 놓아 본 적이 없는 그이기에

서슴없이 선택한 길이었다. 그러나 그는 “나는 의사

로서 누릴 거 누리면서 남은 시간에 여러 일을 해 왔

지만, 박봉에 순수한 열정 하나만으로 일하는 운동가

들을 보는 게 마음 아팠다.”고 말한다.

정치에 입문한 계기

시민운동가로서 경제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낀

사건이 일어났다. 외환 위기 직전, 광주 경제의 절대

조문호: 폐암 투병 중인 강 토마스 형제님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교문 앞에서 학생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는 원선오 신부 모교 설립자인 마(Martelli) 신부 흉상 앞에서(1970년대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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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esian Bulletin of Korea 19

부분을 차지하는 기아자동차가 넘어진 것. 시민운동

을 아무리 해 봤자 광주가 무너지면 아무 소용이 없

음을, 지역 경제와 경영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감한

사건이었다. 그는 시민운동가로서 지역 경제의 활성

화를 위해 노사 간의 가교 역할을 하는 등 동분서주

하며 현실감각을 익혀 나갔다. 주변에서는 꾸준히 정

치 입문을 권유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프리카로 의료 봉사를 다녀온

후 후일담을 나누는 자리에서 사회 지도층 어머니들

이 “우리 아이들 미래를 위해 본적을 다른 곳으로 옮

겨야 하는 것 아니냐?” 하는 얘기를 꺼냈다. 순간 ‘이

러다간 진짜 광주가 무너지겠구나.’ 할 정도로 큰 충

격을 받았다는 윤 동문. 시민운동 차원에서 하는 문

제 제기만으로는 분명 한계가 있고 새로운 정치적 변

화가 필요하다는 주변 사람들의 얘기가 그 어느 때보

다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그는 친구 김남주 시인의

묘 앞에서 세 시간을 숙고하다가 결국 출마를 결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미래의 광주: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며

“국록을 받는 사람으로서 책임을 절감합니다. 특

히 청년실업문제는 구조적으로 가정도 담보 못하는

문제가 되었지요. 개인화되고 파편화된 이 의제를 해

결하고자 청년 전담 부서를 만들었습니다.” 미래의

준비를 위해 청년이 중심의제가 될 수밖에 없다고 강

조하는 윤 동문은 취임 후 출퇴근용 관용차를 고급 승

용차에서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생산하는 4인승

소형 전기차 쏘울로 바꾸었다. “친환경 자동차 밸리

를 조성해 우리 아들딸들의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 경

제를 업그레이드하겠다.”는 자동차 밸리 조성사업은

그의 최대 공약사업이기도 하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

을 만들기 위해 근로자 임금을 절반 정도로 낮추는

‘광주형 일자리 창출 사업’도 추진 중이다. 노사정 대

타협이 필요한 난제이기에 윤 시장은 여 · 야 모두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 중이다. 그러나 그는 경제 문제

해결과 더불어, 광주가 지니고 있는 역사와 정신적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5월 정신을 현대

적으로 재해석해서 담아야 합니다. 이는 소수자와 약

자에게, 어렵고 그늘진 곳에 먼저 손 내미는 일을 하

는 것이지요. 광주부터 가난한 이웃, 새터민, 이주노

동자, 조손가정 아이들을 보듬고 다독다독 살아가는

공동체, 나아가 북한과 제3세계도 기억하는 삶의 자

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는 최근 네팔 지진 현장에 구조대(1, 2, 3진)를

보냈다. 단일 도시로서는 유례없는 일이다. 윤 동문

스스로가 시장이 되기 전, 제3세계에서 의료 봉사를

해 왔기에 가능한 일이겠다.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고용 문제와 공동선 추구라는

지고의 가치를 두 어깨에 짊어지고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그. 인터뷰가 끝날 무렵, “위험에 처해 있으면서

도 도움 받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우선해 돌보고 있

는 한국의 살레시오 가족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가난

한 이웃과 청소년 문제 해결에 좀 더 많은 지지와 관

심을 보여 줄 것을 당부했다.

김 안나: 딸들의 안녕과 건강을 위해 기도합니다.

시장으로서 민생 현장을 돌아보고 있는 윤 동문(광주 양동시장) 틈날 때마다 제3세계 의료봉사를 해 온 윤 동문(캄보디아)

사진 제공: 광주 시청 사진 제공: 광주 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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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esian Bulletin of Korea

부모세대 VS 자녀세대

20 살레시오가족

자녀

나잇값좀해라!어려웠던 시절에도 도전하며 많은 것을 이루어 냈다는 부모와

그 시절보다 모든 것이 힘들어졌다는 자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해결 방안은?

편집부

눈치 보는 취준생 끝내고 싶어요

졸업 학기는 이미 지났지만 아직 취업을 하지

못해 졸업 유예를 하고 학생 신분을 유지하고

있어요. 주변 친구들은 이미 본인의 앞길을 찾

아 나가는데 저만 뒤쳐진 것 같아 불안해요.

저도 친구들 못지않게 나름대로 스펙을 쌓았는

데 이력서를 내면 서류전형부터 떨어집니다. 인

터넷 취업카페에 들어가 보면 저보다 스펙 좋은

사람들도 서류전형에서 줄줄이 낙방하더라고

요. 그런데 주변에서 보면 저보다 스펙이 그저

그랬던 친구가 취업에 성공하기도 해요. 대체

기업들은 어떤 사람을 뽑는 걸까요?

진짜 저도 취업하고 싶어

요. 취업해서 부모님 용돈도 드리고 싶고, 제 학

자금 대출도 갚아야 합니다. 부모님도 취업 못

하는 제가 많이 답답하신 듯 왜 취업을 ‘안’ 하느

냐고 물으시는데 저는 ‘못’ 하는 거라고 말씀드

려도 이해하지 못하세요.

“취직도 못하고… 쯧쯧”,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집에 있어도 눈치 보이고, 답답한 마음

에 밖으로 나가면 그것도 서글프고요. 요즘엔

그냥 우울하고 답답하기만 합니다.

유재연(대학생)

나잇값도 못하는 유약한 아이가 답답합니다

아이를 보면 솔직히 많이 답답하고 안쓰럽죠.

뭐가 부족해서 저렇게 취업이 안 될까 싶기도

하고요.

사실 대학 졸업하면 우리 때처럼 당연히 취업

이 되는 줄 알았고, 우리 아이 정도면 대기업에

서 모셔갈 줄 알았어요. 학점도 좋고 영어 성적

도 좋고 스펙을 쌓아야 한다면서 여기저기 다

니며 활동도 하고요.

아무리 경제가 어렵고 취업이 힘들다 해도 남

들 다 하는 게 취업인데 왜 우리 아이만 이렇게

힘들어하는지 모르겠네요. 여기저기서 자녀들

이 어디에 취업했다고, 댁의 자녀는 잘 지내냐

는 질문에 웃기만 하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나, 집

에 와서 아이에게 어서 취업하라고 혼을 내고

는 후회하기도 합니다.

아이가 나잇값도 못하고 징징대기만 하는 것 같

아 종종 벌컥 화를 내기도 합니다. 우리 때처럼

먹고살기 힘들고 아무것도 없던 시대라 바닥부

터 시작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힘들까 봐 뭐든

지 다 해 주는 것에 버릇이 들어 그런지 유약하

게 자란 것 같아 갑갑합니다.

윤경진(취업준비생 부모)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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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esian Bulletin of Korea 21

중 · 고등학교 시절 공부를 썩 잘해 부모

의 자랑이던 자녀가 정작 대학을 마치면서

부모의 우환덩어리로 변하는 경우가 많습

니다. 나름대로 스펙을 쌓아 여러 회사에 지

원해도 자꾸만 탈락하는 본인에게 실망하

고 답답해하는 자녀를 보며, 모든 측면에서

부모 시절에 비해 넉넉한 상황에서 자란 자

녀에게 행여 절박함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걱정되는 게 부모의 마음입니다.

어려웠던 시절,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

이 있겠냐는 마음가짐으로 살아왔던 부모

는 부족한 것 없이 자라 ‘도전 정신’과 ‘악바

리 정신’이 없는 자녀가 안타깝기만 합니다.

하지만 자녀는 취업을 위해 본인이 얼마나

치열하게 사는지 모르고 하시는 말씀 같아

답답하기만 합니다. 기업에서 구직자들에

게 요구하는 스펙이 많아지고, 선발 방식이

다양해짐에 따라 경쟁은 더욱 심화되어 자

녀가 느끼는 스트레스는 상당합니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갈등을 해소

하는 데 부모 역할이 큰 것처럼, 특히 취업

에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 부모의 역할은 더

욱 중요합니다. 예전과 달리 사이트에 이력

서와 자기소개서를 저장해 두고 손쉽게 지

원을 할 수 있는 만큼, 자녀가 겪어야 할 탈

락의 경험도 많아집니다. 또한, 비슷한 상

황에 있는 주변 사람들이 취업에 성공하고

진로를 잡아 가는 모습을 보며 느끼는 박탈

감은 상당합니다. 자녀가 느끼는 불안한 감

정과 상대적 박탈감을 충분히 공감해 주고,

자녀 그대로의 모습을 지지해 주는 것만으

로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이에 ‘함께하기’를 제안하고자 합니다.

꼭 일정한 날, 정해진 시간에 할 필요 없이

간단한 일상 나누기를 통해 함께하는 시간

을 보내며 소통하는 것입니다. 함께 영화를

보거나 카페에서 차를 같이 마시는 등 일상

에서 주는 안정감과 그 속에서 나누는 이야

기가 자녀에게는 힘이 되고 의지가 될 것입

니다. 자녀의 이야기가 가끔은 나이에 어울

리지 않는 투정 같아 보이고, 세상물정 모

르는 것처럼 비쳐져도 그 자체를 들어줌으

로써 자녀는 부모와 소통하고 있다는 감정

을 느끼게 됩니다.

많은 말보다 “그렇게 힘든 것은 네 탓이

아니야.”라는 작은 공감의 말 한마디가 자

녀에게는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자녀 또한 이런 가정적 지지를 통해 자

신이 어려움 없이 성장하며 누린 많은 것들

이 부모가 맨손으로 이룩한 성취이고 땀의

축복임을 재발견하고, 자세를 여미며 다시

용기를 내게 될 것입니다.

고 요셉피나(상담사)

일상의 소통을 통한 감정의 공유가 필요합니다

Adv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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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평화!!! 안녕하세요? 살레시오 가족

지를 통해 인사드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예수의까리따스수녀회의 수원관구 소속으

로 볼리비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영숙 아멜리아 수

녀입니다. 볼리비아는 ‘살라드 우유니’, ‘띠따까까’ 등

의 관광지로 유명한 나라입니다. 독자 여러분도 이러

한 지명을 대중 매체를 통해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것

이라 믿습니다.

다민족-다언어 국가, 볼리비아

볼리비아의 정식 국가명은 볼리비아 다민족 국가

입니다. 우리나라가 단일민족인 것에 비해 볼리비아

는 다양한 민족과 다양한 언어로 구성된 나라입니다.

볼리비아는 공식 언어만 33개를 가지고 있는 흥미진

진한 나라입니다. 지리적으로는 ‘남미의 심장’이라고

볼리비아 사람들이 말하는 것같이 남미의 한가운데

위치하기 때문에 바다를 접하지 않습니다. 서쪽으로

는 설원의 안데스산맥의 줄기들이 남북으로 지나가

고 있기에 총 아홉 개의 주 가운데 세 개의 주가 해발

3000~4000미터나 되는 고원에 있습니다. 그리고 두

개의 주는 해발 2000~3000미터의 고원에 있고, 제

가 살고 있는 산타크루스 주를 포함한 동쪽의 몇 개

의 주는 낮은 평지입니다.

서쪽의 고원지대와 동쪽의 평지에 사는 사람들의

Salesian Bulletin of Korea

살레시오 선교

22 살레시오가족

백영미: 백 제노베파가 쉬지 않는 교우가 되도록 기도합니다.

볼리비아 산타크루스- 십자가로 하나된 다문화 공동체

공식 언어만 33개에 이르는 다민족 국가이자 ‘남미의 심장’이라 불리는 볼리비아.

볼리비아의 산타크루스에서 공소 마을을 돌며 현지 주민과 십자가로 일치하며

기쁘게 복음을 전하는 한 선교사 수녀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나눈다.

김영숙 수녀 예수의까리따스수녀회

BOLIV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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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 풍습 · 기후 · 인종은 모두 확연히 다릅니다.

서쪽 고산지대는 잉카족의 영향으로 잉카의 언어인

케추아어와 볼리비아의 공용어인 스페인어를 함께

사용하고 있으며, 잉카족 이전의 언어인 아이마라어

또한 고산지대 사람들이 언어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동쪽 지역, 특히 산타크루스 지역은

과라니족의 영향을 많이 받은 곳으로 언어도 과라니

어가 있습니다. 동쪽의 부족들도 각 부족 나름대로

언어와 풍습이 모두 다릅니다. 동쪽 지역은 많은 분

들이 알고 계신 영화 ‘미션’의 촬영지가 되었던 지역

으로 영화에 나왔던 원주민들이 바로 과라니족이고

영화 마지막 부분의 성당도 ‘콘셉시온’이라는 지역의

예수회 선교사들이 남미 대륙 발견 후 볼리비아에 도

착하여 그 지역의 과라니족들에게 선교를 하며 건축

한 성당입니다. 성당은 오늘날까지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볼리비아는 이처럼 다양한 언어와 원주민,

풍습과 문화가 어우러져 있습니다.

산타크루스 오카나와 12개 공소 마을에서 활동

제가 살고 있는 동쪽 산타크루스는 파라과이, 브

라질과 국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곳은 아열대 기후

로 1년 내내 더운 곳이며 저는 산타크루스의 ‘오키나

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볼리비아 원주민

들 지역이었지만 2차 세계대전 후 일본 오키나와 섬

사람들이 이주하여 밀림지역을 밭으로 개간하였으

며, 지금은 볼리비아 농경산업의 주요한 부분을 차지

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1년 이모작이 가능하여 콩 ·

옥수수 · 사탕수수 · 밀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볼리비

아 원주민들은 이곳 농장에서 대부분 노동자로 일하

고 있습니다.

우리 수녀원 주변에는 12개의 공소 마을이 있습니

다. 공소를 방문하며 병자들과 어르신들을 돌보고 각

가정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교육합니다. 그리고 마

을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필요한 교리 교육과 전례 활

동을 하며 주민들이 신앙생활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도

와줍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들에게는 장학

금 지원을 연결하고 가정생활을 지원하며 다방면으

로 그들을 돕고 있습니다. 우리 공동체 수녀님들은

청소년들의 상황과 환경을 그들의 입장과 눈높이에

서 함께 느끼고 나누고자 매일 한 걸음씩 노력하며 걸

어가고 있습니다. 때로 저는 저 자신에게 “선교란 과

Salesian Bulletin of Korea 23

이혜경: 갈 곳이 없어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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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esian Bulletin of Korea

살레시오 선교

24 살레시오가족

연 무엇일까?” 하고 묻곤 합니다. 저 자신에게 늘 되

새기는 선교에 대한 제 좌우명이 있다면, 그것은 선

교지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상황과 위치에서 같은 입

장으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들의 신발을 신어 보지 않고서는 그들의 삶을 이해

할 수 없지요.

성금요일 십자가의 길을 하며 느낀 감동

어느 해 성금요일이었습니다. 그날은 바람이 몹

시 불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모든 지역이 흙길이어서

흙먼지 바람으로 앞을 내다볼 수 없었습니다. 저는

수녀원의 공소에서 성금요일 전례를 마치고 다른 공

소로 이동하여 늦은 밤에 성금요일 십자가의 길을 해

야 했습니다. 볼리비아는 성금요일이 공휴일로 모든

지역이 성금요일 십자가의 길을 성대하게 준비합니

다. 두 곳의 공소가 함께 모여 다른 공소로 이동하는

십자가 행렬이 시작되었습니다. 때는 불빛 한 줄기

없는 볼리비아 시골의 어두운 밤이었습니다. 십자가

의 주님을 경배하는 순수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긴

행렬을 이어 갔습니다. 진흙먼지는 지나가는 사람들

의 발목을 덮었습니다. 운동화를 구입하지 못하는 시

골 형편이어서 사람들은 대부분 얇은 샌들을 신고 있

었습니다. 걸을 때마다 공중에 뿌옇게 그림을 그리는

흙먼지 때문에 호흡이 곤란할 정도였지요. 모든 사람

이 허연 물감을 뿌려 놓은 듯 흙먼지로 범벅이 되었

습니다. 그러나 1시간 30분 동안의 십자가 행렬은 모

든 참석자들의 뜨거운 열정과 주님을 향한 참회의 마

음으로 어느 때보다 감명 깊었습니다. 그 순간 사람

들과 깊은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기쁘고 감동적이었던 것은 모든 예절을

마치고 출발한 공소로 다시 걸어가기 위해 제가 공소

밖으로 나올 때까지 어린아이에서부터 어르신들까지

공소의 모든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와 동

행하기 위해, 배웅하기 위해, 함께 걸어가기 위해 기

다리고 있었던 사람들의 진심 어린 순수한 마음이 전

해져 코끝이 찡해 왔습니다.

아!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저들과

똑같은 처지에 놓이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부활팔일축제 시기에 다시 공

소를 방문하였을 때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다가와

“수녀님, 흙먼지 속 십자가의 길 끝난 후 아프지 않으

셨어요?”라고 걱정하며, 너도나도 안부를 건네 왔습

니다. 아! 내가 드디어 이 사람들의 마음 안으로 들어

가게 되었구나! 저는 하느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렸습

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사랑

을, 하느님께서 인도하신 곳에서 그들과 함께 찬미하

며 영광을 드릴 수 있다는 것은 진정 은총입니다. 나

약하지만 무한한 은총으로 거듭 힘을 주시는 하느님

의 사랑 덕분에 매일 한 걸음 한 걸음 주님의 사랑을

향해 걸어갈 수 있는 섭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주님은 찬미받으소서. 아멘!

김 크리스티나: 입대한 손자 로베르토, 라르미노를 위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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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esian Bulletin of Korea 25

김 스테파노: 건강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가장 먼 곳에 있는 형제들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살레시오회 총장 앙헬 아르티메 페르난데스 신부는 지난 4월 29일부터 5월 17일까지 19일간 오세아니아 지역 나라들을 방문했다. 파푸아뉴기니를시작으로 솔로몬 제도 · 피지 · 사모아 · 뉴질랜드 그리고 호주를 차례로 방문하였는데, 앞의 두 나라는 필리핀 북관구에 속한 지부이고 나머지 4개나라는 모두 호주 관구에 속한 나라들이다.

지난 해 3월 말에 살레시오회 제27차 총회에서 총장으로 선출된 후 1년 동안 이미 25개 나라를 방문하여 2600여 명의 회원들을 만났을 정도로 큰활동력을 지닌 총장은 이번 순방을 통해 수많은 살레시오 가족들과 교회지도자 및 정부 관료들을 만나며 오세아니아 지역에서 돈 보스코의 정신에 따라 사는 사람들의 삶을 보살폈고, 아이들에게 기쁨을 줬다. 가는 곳마다 청소년들에게 둘러싸여 환영을 받는 가운데 돈 보스코의 대리자로서 그 사랑을 전하는 데 여념이 없었는데, 특히 솔로몬 제도에서는 살레시오회가 사목활동하고 있는 소년원을 방문하여 격의 없는 친화력으로모든 아이들뿐 아니라 간수와 교정 관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앙헬 총장의 오세아니아 여러 나라 방문이 남긴 가장 큰 결실은 살레시오의 가족 정신을 향해 보다 집중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각성시킨 것이라하겠습니다.” 총장의 순방 기간 중 늘 가까이서 동행했던 동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담당 총평의원인 현명한 신부의 진단이다. 실제로 앙헬 신부는 현지의 살레시오회원들을 만나 고무하는 것만큼 살레시오 가족 단체의 구성원들을 만나는 데 열성을 보였다. 각별히 사명 수행의 파트너인 평신도, 그중에서도 협력자의 상황을 살펴보는 데 순방의 최우선권을 뒀다.그래서 가는 곳마다 협력자회의 개정된 ‘사도생활 규칙서’를 전해 주면서평신도 성소를 더 많이 확장할 것을 독려했다.

앙헬 아르티메 페르난데스 총장신부오세아니아 순방

살레시오 가족의 본산인 이탈리아 토리노 발독코에서 지난 5월 21~25일 살레시오회 출신 주교 90명의 모임이 있었다. 5년마다 모임을 갖는살레시오 주교들은 지난 2010년 5월에도 발독코에서 모임을 가졌다. 돈 보스코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이번에 다시 모인 살레시오 주교들은 제27차 총회의 정신인 복음적 근본성을 지역교회에서 어떻게 실현할 수 있겠는지 하는 것과봉헌생활의 해를 지내며 각 지역교회에서 봉헌생활자들의 삶을 증진하는 방안, 사제 양성 그리고 교회 안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리더십에대해 심도 있게 연구하고 나눔을 가졌다.

주교들은 발독코와 콜레돈보스코 등 돈 보스코의 삶이 자리하고 있는 의미 있는 장소들을 방문하였고, 22일에는 돈 보스코 탄생 200주년을기해 토리노대성당에서 현시되고 있는 토리노의 성수의 신도네를 참배했다. 24일 도움이신마리아 대축일을 맞아 도움이신 마리아 성당에서 열리는 성대한 축제와 저녁시간에 진행된 인근 지역을 한 시간가량 도는 성모 행렬에 참가하면서 돈 보스코의 정신과 그 밑바탕이 되는도움이신 마리아의 사랑을 되새겼다.

살레시오회의 첫 주교 조반니 칼리에로가 1884년 주교품을 받은 이후 현재까지 257명의 주교가 탄생했는데, 루아 총장 시절에 3명, 알베라 9명, 리날디 13명, 리칼도네 34명, 지조티 27명,리체리 28명, 비가노 62명, 베키 27명, 차베스47명 그리고 앙헬 재임기에 접어들어 현재까지3명이 주교에 임명되었다. 교황 재임기를 본다면 레오 13세 3명, 비오 10세 3명, 베네딕토 15세6명, 비오 11세 24명, 비오 12세 35명, 요한 23세14명, 바오로 6세 30명, 요한 바오로 2세 102명,베네딕토 16세 34명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이현재까지 6명의 살레시오 주교를 임명했다. 현재 살레시오 출신 주교는 모두 123명이다.

살레시오 주교들의 만남

Salesian World News세계 살레시오 소식

파푸아뉴기니 솔로몬 제도

피지

사모아

뉴질랜드

호주

총장신부 오세아니아 순방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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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살레시오가족

신선자: 김 마리아의 영원한 안식을 빕니다.

Salesian World News 세계 살레시오 소식

예수의까리따스수녀회의 총원장인 아폴리나리스 수녀가 5월 30일, 수녀회의 브라질 선교지를 방문하는 도중 갑자기 선종했다. 환한 미소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로예수의까리따스수녀회가 탄생한 일본은물론이고 수녀들의 수가 가장 많은 한국에서도 각별한 사랑과 존경을 받던 총원장 수녀의 급서는 살레시오 가족 모두에게 큰 충격이고 슬픔이다.

우리 가족지가 지난 2011년 7월호에서 아폴리나리스 총원장 수녀를 인터뷰해서 커버스토리로 실었는데, 이 기사에서 아폴리나리스 수녀는 살레시오 가족의 일원으로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성심을 전하고 돈 보스코의 청소년 사랑을 전파하고자 하는 열성이 담긴 마음을 잘 드러내줬다. 특히 이 인터뷰를 번역하고 보강한기사가 아폴리나리스 수녀 선종 직전인 지난 5월호 이탈리아판 살레시오 가족지에실려 전 세계 살레시오 가족들에게 소개되었고 깊은 인상을 줬다.

예수의까리따스수녀회는 1937년 일본 미야자키에서 살레시오회원들에 의해 창립

됐고, 1986년 열 번째로 살레시오 가족 단체의 구성원이 되었다. 1998년 교황청립수도회로 승격된 예수의까리따스수녀회는 현재 15개 나라(한국, 일본, 볼리비아,브라질, 페루, 아르헨티나, 필리핀, 파푸아뉴기니, 중국, 베트남, 호주, 미국, 독일, 이탈리아, 남수단 등)에서 1100명의 수녀들이 활동하고 있다. 2010년 수도회의 이름을 미야자끼 까리따스수녀회에서 예수의까리따스수녀회로 변경했고, 총원을 일본도쿄에서 로마(살레시오회 피사나 본부에서 15분 거리)로 이전했다.

아폴리나리스 수녀의 장례미사는 지난 6월 4일 브라질 상파울로에서 거행되었고,같은 날 한국의 서울관구에서도 연미사가드려졌다.

아폴리나리스 수녀가 생전에 애쓴 노력들에 감사드리며, 천상 돈 보스코의 정원에서 수녀회의 창립자들과 평화의 영복을 누리시길 기도드린다. 또한 창졸간에 어머니를 잃은 예수의까리따스수녀회의 모든 수녀들에게도 하느님의 위로가 있기를 기도한다.

아폴리나리스 시무라 유리코 수녀 선종

1 장례미사 후 고별식, 집전자는 살레시오회 상파울로 관구장 신부

2 서울관구의 연미사 3 아폴리나리스 수녀의 생전 마지막 사진, 쓰러지기 약 20분 전 주임신부와 저녁식사를 하던 모습

1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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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esian Bulletin of Korea 27

황지연: 황 사무엘의 성소를 위해 기도합니다.

저희 예수의까리따스수녀회 총원장이셨던 아폴리나

리스 시무라 유리코 수녀님께서 브라질 준관구 방문 중

주아제이로 두 노르테Juazeiro do Norte에서 2015년 5월

30일 오전 11시(현지 시간)에 영면하셨습니다.

수녀님께서는 브라질 준관구의 새 관구장 임명에 필

요한 자문을 위해 5월 20일, 평소와

다름없는 환한 모습으로 총원 공동체

자매들에게 기도를 청하시며 로마를

출발하셨습니다. 브라질에 도착하여

상파울로 지역의 일정을 마치고 5월

25일부터 상파울로에서 비행기로 3시

간 거리의 북쪽에 있는 주아제이로 두

노르테 공동체를 방문하시던 중에 너

무도 갑작스러운 하늘 아버지의 부르

심을 받으셨습니다.

방문 이틀째인 26일 저녁에 그 지역

젊은이들과 만남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저녁식사를 마

치고 2층 방으로 올라가신 수녀님께서 좀처럼 내려오

시지 않자 한 수녀가 올라가 보았는데 이미 의식을 잃

고 쓰러져 계셨답니다. 즉시 병원으로 옮겨 응급조치

를 받고 인공호흡기를 부착했으나 4일 후, 결국 의식을

되찾지 못하시고 하늘 아버지의 부름에 응답하여 67세

를 일기로 하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당신을 만났던 모든 이에게 겸손과 온유, 부드러운

미소를 나누어 주셨던 아폴리나리스 시무라 유리코 수

녀님은 1948년 2월 19일, 일본 야마나시현 코후시에

서 6남매의 장녀로 태어나 열두 살에 예수의까리따스

수녀회 수학지원자로 입회하여 1969년에 첫서원,

1975년에 종신서원을 하셨습니다.

1998년의 제11차 총회에서 부총장으로 선출되어

수도회의 영적 · 구조적 쇄신을 위해 제일선에서 일하

셨으며, 2004년 제12차 총회에서 총원장으로 선출되

셨습니다. 당시 수도회는 일치를 회복해야 할 커다란

어려움을 안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수녀님께서는 깊은

사랑과 강한 믿음으로 오직 수도회의 선善을 위해 하느

님만이 아실 아픔과 고통의 시간들을 묵묵히 감내하시

면서 자신에게 맡겨진 봉사를 계속하셨으며, 2010년

총원장에 재선출되셨을 때에도 수도회를 위한 하느님

의 뜻으로 받아들이시고 지금까지 수

도회 내외적 쇄신과 일치를 위해 혼신

의 노력을 다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딸들에게 남긴 마지막 말

씀이 되어 버린, 6월 12일의 예수 성

심 대축일을 기해 회원들에게 보낸 글

에서 “지난 한 해 … 특별히 용기를 갖

고 복음의 빛이 필요한 변방으로 가도

록 우리는 교황님의 격려를 받았고,

모든 이, 특히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

들에게 예수님의 자비 깊은 사랑을 전

하는 사명을 수행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우

리 수도 공동체와 사도직 안에서 ‘주님을 만난 기쁨’을

전하는 사도가 되는 것,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고

통 받는 사람들의 이웃이 되어 하느님의 자비 깊은 사

랑, ‘까리따스’를 증거하는 것이야말로 … ‘세상을 일깨

우는’ 우리 수도 가족의 힘입니다.”라고 하신 말씀이 마

음을 맴돌고 있습니다.

관구를 방문하실 때, 특별히 선교지로 파견되는 수

녀들에게 살레시오 가족 신원헌장을 가르치면서 살레

시오 가족으로서의 신원에 충실한 삶을 당부하셨던 저

희의 어머니, 아폴리나리스 수녀님을 위해 바쳐 주신

살레시오 가족들의 기도와 사랑의 유대에 감사드립니

다. 수녀님께서 바라고 희망하셨던 대로 저희 예수의

까리따스수녀회가 주님의 자비 깊은 사랑 안에 일치하

며, 용기 있게 변방으로 나아가 선교에 힘쓰고, 돈 보

스코의 충실한 아들이신 설립자들의 발자취를 따라 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박정심 수녀 예수의까리따스수녀회 선교 담당 총평의원

일치를 위해 헌신하신 어머니!

Salesian World News세계 살레시오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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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살레시오가족

김지선: 박 스콜라스티카, 박채은이 건강히 자라길 기도합니다.

독자편지

살레시오가족지에 바라는 점

‘돈보스코여자재속회’의 활동상과 회원들의 체험 사례를 접하고 싶네요! 최근 야구장에서 지체장애인들을 관찰하고 대화를 나누면서고통을 나누고 있습니다만, 신앙의 힘이 절실히 필요합니다.인내심의 한계를 느낍니다. 그리고 신앙이 갖는 매력이 상당하지만 한편으로 갈등이 심한 건 타 종교인들과의 논쟁입니다. 이단으로 알려진 종교, 신흥종교를 믿는 지인들이 있는데 그들을 이해하기 힘듭니다. 올바른 성경 해석, 실생활에서 그들을 대하고 선도하는 능력을 배우고 싶습니다.

김혜선 / 광주광역시 북구 천변우로

한국살레시오청년대회 결산 기사를 읽고

5월호 살레시오가족지를 잘 읽었습니다. 특히 한국 살레시오 청년대회 결산을 다룬 커버스토리를 읽으며 하느님을 체험하는 참여와 연대의 축제를 통해 성장해 가는 젊은이들의모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매년 모임을 준비하느라 수고하신 살레시오 가족들과 참여한 젊은이들에게다시 한 번 감사와 축하를 드립니다.

채정희 / 광주광역시 서구 매월동

2015년 제4회 살레시오청년대회를 마치면서 살레시오회 청소년 사목 대리인 신현문 신부가 청소년의 욕구를 다음과 같이 요약해 말씀해 주신 게 가슴에 남습니다. “청소년들은 주체적이고 싶어 하고, 영적인 체험을 갈구하며, 체험을 나누기를 갈구한다.” 좋은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안광춘 / 서울시 강서구 가로공원로

작은 다짐을 하게 한 가족지 글

‘돈 보스코 성지 순례’란을 통해 유서 깊은 성당 소개로 성지의 견문을 넓히게 해 주신 데 감사드립니다. 또한, 부모세대와 자녀세대의 갈등을 다루는 ‘저도 가족이 맞나요?’ 편을 읽으며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인 자녀를 제 소유인양 대하며 아이들과 소통하지 못한 점에 대해 반성하였습니다. 매월 한 번이라도 가족회의를 하고, 매일 가정기도를 하리라 다짐해 봅니다.

김덕곤 / 경상남도 창원시 반송로

가족 모두가 각자 바쁜 일상 가운데에서도 한 달에 한 번은 대소사를 공유하며 관심과 배려로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오경희 / 대구광역시 수성구 수성로

총장님의 성모님에 관한 글

앙헬 페르난데스 총장 신부님의 성모 마리아에 대한 묵상 글이 참 좋았습니다.

백영미 / 경기도 남양주시 경춘로

돈 보스코 성지를 읽고

토리노를 한눈에 순례하는 듯 볼 수 있어 좋습니다. 이혜경 / 서울시 영등포구 신길로

총장 신부가 선교지에서 하신 잊을 수 없는 말씀 한마디

가난한 이들, 우리의 구원자. 우리를 구원할 사람들은 바로가난한 이들이라며 그들에게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하신총장 신부의 말씀이 가슴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마태오 복음25장을 다시 읽어 보며 잊었던 것들을 다시 되새겨 보았습니다. 살레시오가족지를 통해 까만 얼굴에 친근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해외에서 고생하는 선교사제와 수도자들을 위해 도움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박순자 / 전라남도 나주시 송월동

우리 지구촌에 사는 모든 사람이 주님의 뜻에 따라 어려운 이웃을 서로 도와 하루 빨리 고통 받는 이들이 없는 세상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류재언 / 강원도 춘천시 스포츠타운길

정말 중요한 가족의 ‘삼시세끼’

식탁에서 함께 식사를 해야 사람이 돈독해진다는 말씀이 깊게 와 닿습니다. 그리하기가 쉽고도 어려운 일이지요. ‘나노가족’이 되어 가는 이 시기에 그 사랑과 풍요는 교회 안에서나 가능할까 무척 걱정이 됩니다.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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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esian Bulletin of Korea 29

김혜진: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Quiz

응모 방법

가족지 기사 안에서 제시된 문제의 답을 찾아 아래쪽 표에서 지워 주세요.그러고 나서 남은 글자를 조합해 하나의 단어를 만들면 정답이 됩니다. 이렇게 완성된 정답을 부착된 독자엽서나 이메일([email protected])을 통해 보내 주시면 됩니다. 정답과 함께 성함과 주소도 잊지 말고 보내 주세요. 당첨되신 분께는 선물을 보내 드리며당첨 결과는 다음 호 가족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퀴즈 마감 7월 20일

문제

① ‘남미의 심장’이라 불리며 공식 언어만 33개에 이르는다민족 국가는 ◯◯◯◯

② 최근 교황님은 “그리스도인은 ◯◯에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셨지요(정직한 시민 좋은 신자 중).

③ 지난 5월 9일 선종한 서 안나 수녀님이 첫서원한 장소는 이탈리아의 카◯◯◯라고 합니다(살레시안 뉴스 중). 수녀님의 영원한 안식을 빕니다.

④ 돈 보스코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지난 5월 가경자로 선포된 이는 ◯◯◯ 후작 부인.

⑤ 돈 보스코 탄생 200주년인 올해는 살레시오 가족의 대◯◯.

비 로 정 노 롤 백

바 년 희 리 바 치

이 사 볼 년 주 아

132호 당첨자 김혜선, 김덕곤, 오경희지난 호 정답 : 마리아

가족지를 꼼꼼히 읽고, 퀴즈에 참여하시어 선물도 받아 가세요.

강연중 40,000 강인진 10,000 강찬희 20,000공정효 3,000 권빛나 10,000 기세경 10,000기영우 20,000 김경조 20,000 김교순 10,000김기석 20,000 김도형 5,000 김문식 5,000김미영 10,000 김방진 100,000 김선옥 10,000 김선희 20,000 김성훈한의원20,000 김 숙 40,000 김숙자 10,000 김억래 40,000 김연정 40,000김영전 10,000 김옥남 9,000 김용태내과 30,000김은희 5,000 김의철 15,000 김정규 120,000김정수 40,000 김정애 10,000 김정원 10,000김종범 20,000 김준익 10,000 김지선 10,000김찬용 10,000 김천옥 20,000 김춘자 15,000 김태환 20,000 김현숙 100,000 김현우 30,000 김혜진 10,000 김호순 100,000 나경환 100,000 나용술 20,000 나혜진 20,000 노숙희 20,000 노옥희 10,000 노일철 10,000 노정현 10,000류숙현 10,000 류재언 60,000 문순자 100,000 박경신 90,000 박상진 60,000 박수경 20,000박순향 50,000 박승례 40,000 박영배 70,000 박재준 10,000 박진웅 10,000 박해임 20,000 박 홍 10,000 방준혁 10,000 백동숙 10,000서수진 5,000 서순현 20,000 서진옥 40,000 성무경 50,000 손화정 20,000 송우영 20,000 신선자 5,000 신순일 20,000 안계윤 20,000안명옥 10,000 양귀남 10,000 양대동 20,000양창현 30,000 양필수 10,000 양화자 5,000 염정옥 20,000 오영순 20,000 유순애 10,000 유우주 10,000 유한주 10,000 윤옥자 2,000 윤주연 5,000 이계준 30,000 이금숙 5,000이금순 5,000 이복순 20,000 이상정 20,000 이선일 5,000 이영자 20,000 이은재 10,000이종수 10,000 이종순 10,000 이창권 50,000이태희 5,000 임정숙 10,000 장경자 10,000 장기운 20,000 장쌍례 30,000 장영자 10,000장은숙 10,000 장은주 3,000 정복연 50,000정유선 50,000 정현숙 20,000 조설자 10,000 조윤선 10,000 최강섭 20,000 최경섭 20,000 최옥색 10,000 추연일 20,000 한미경 20,000 현기곤 5,000 홍승완 55,000 황영희 40,000황지연 20,000 황홍동 20,000 익명(12명) 356,000

작은 정성이 큰 사랑을 이룹니다.많은 분이 가족지를 도와주셨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15. 4. 1. ~ 2015. 5. 31.) 

돈 보스코의 정신을 보다 많은 이들에게 알리기 위해 여러분의 도움을 기다립니다.

(후원계좌국민은행 758-01-0018-441, 예금주살레시오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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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esian Bulletin of Korea

생명을 주는 가족 ◯

30 살레시오가족

본당 사목을 하고 계신 한 신부님의 전화를 받았

습니다. 어떤 자매님이 면담을 청해 와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상담이 필요한 분 같아 저에게 연계하겠다

는 말씀이었습니다. 대강의 이야기를 듣고 형편도 넉

넉지 않은 듯한데 유료 상담이 가능하겠느냐고 여쭈

니, 신부님은 비싼 변호사 비용을 들이며 소송도 시

작한 마당에, 상담료가 문제겠냐며 잘 살펴 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내담자 마르타 자매님의 사연은 다

음과 같았습니다.

지난 몇 년간 겪은 생활을 재평가하도록 돕는 저

의 질문에 대답하기보다, 어머니는 지난 4-5년 동안

유진이 주변에 일어난 일과 그 일이 가정에 미친 안

좋은 영향만을 하소연하기에 급급했습니다. 고통을

당한 딸을 위해 소송에 이르기까지 어머니가 선택한

행동들이 딸에게나 엄마에게나 정말 도움이 되었을

까요. 유진 어머니가 자신의 삶을 인식하는 방식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 나에게는 좋지 않은 일만 연이어 발생했다.

● 자신과 가족에게 일어난 일은 대부분 다른 사람

들의 잘못 때문이다.

● 상대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일깨워 주지 않으면

안 된다.

● 불행을 일으킨 사람들에게 법적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 소송에 이겨 상대를 처벌해야 불행했던 지난 시

간을 보상받을 수 있다.

유진 어머니는 아마 저로부터 그간의 역경에 대해

흠뻑 공감도 받고, 소송이 올바른 선택이라는 지지를

받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문제’라고 생

각되는 요소가 내담자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

지 파악하도록 하고, 그 문제에 앞으로 어떻게 대처

할지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니 공감만 해 주기에

는 또 내담자에게 소송하라고 권한다는 건, 상담자로

김 소화데레사: 베드로와 바오로의 가정을 위해 기도합니다.

39

“왜나에게는나쁜 일만일어날까?”인생에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일어난다.

내가 특별히 기여한 바도 없는데 좋은 일이 일어나면 다행한 일이지만,

내 잘못도 아닌데 나쁜 일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까?

한 모녀와의 대화를 통해 그 해답을 찾아본다.

박은미 품 심리상담센터 원장

둘째 딸(김유진, 가명)이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왕따와 괴롭

힘을 당하기 시작했습니다. 중3 1학기를 겨우 마치고 전학

을 시키려고 의논하니 선생님들이 학교 이미지에 지장을

준다며 전학을 시켜 주지 않아 애를 먹었어요. 선생님들이

모든 사태가 우리 아이 때문이라며 비난해서 더 힘들었지

요. 전학이 원활하지 않자,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려고 절

차를 밟았는데, 학교 선생님들은 증명서 떼는 일도 잘 도

와주지 않더라고요. 게다가 유학원 담당자도 문제를 일으

켜 결국 미국으로는 가지 못하고, 딸애를 언니와 함께 영

국으로 유학 보냈습니다. 영국에서는 아는 사람 소개로 홈

스테이하게 되었는데, 집주인들이 이상해서 두 딸이 8개월

만에 한국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귀국해서 중3 시절을

다시 보냈는데 잘 적응하지 못해 학교를 두 번이나 바꾸었

습니다. 지금은 고등학교 1학년생으로 그럭저럭 잘 지냅니

다. 힘들게 지내면서 허송한 세월을 생각하면 진짜…. 이

모든 게 중학교 3학년 때 교사들 탓이라 싶어 소송을 시작

했습니다. 정말 너무 괴롭습니다. (이 마르타, 4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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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esian Bulletin of Korea 31

서 해야 할 역할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막막한 기

분마저 들었습니다. “이번 상담을 통해 어머니는 어

떤 도움을 받고 싶으신지”, 다시 여쭈었습니다. 저의

질문에 ‘뭔가 잘못됐구나’ 싶으셨는지, “뭘 도움받아

야 할지 저도 잘 모르겠네요.”라며 한걸음 물러섰습

니다.

어린 나이에 힘겨운 학교생활을 감당해야 했던 유

진이에게 심리적인 공감과 지지가 더 많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하소연 속에 친구들로부

터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한 당사자이고, 유학과 전학

생활을 거듭하면서 내면의 고통이 심했을 유진이에

대한 이해는 많이 담겨 있지 않았습니다. 제 질문을

받고서야 어머니는 초등학교 때만 해도 활달하고 유

쾌하게 지내던 유진이가 왕따를 당하면서 매

우 소심해져 친구도 못 사귀고 힘들어했지

만, 새로 전학한 학교에서는 나름 잘 지낸다

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를 설득해서 두 번째 회기에는 유

진이를 만났습니다. 중학교 시절부터 겪은

친구들의 괴롭힘 사건, 유학 준비과정과 귀

국 후의 학교생활, 어머니와의 관계, 그리고

어머니가 시작한 소송 등에 대해 유진이의 생각과 느

낌을 들었습니다. 어머니가 생각하고 계신 것보다,

또 어머니의 말씀을 통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유진

이는 새로운 생활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상담자: 지난 몇 년간의 역경을 헤쳐 오느라 몸 고생, 마음고생이 심

했겠구나. 그래도 어머니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그 힘든 시간

을 잘 헤쳐 나왔네.

유진이: (눈물을 터뜨리며) 네….

상담자: 유진이가 겪은 고통스러운 시간은 이미 일어난 일들이고, 누

구를 탓한들 되돌릴 수는 없는 일이지. 근데 만약에 말이야,

딱 한순간만 되돌릴 수 있다면 너는 어느 부분을 바꾸고 싶니?

유진이: 중1 때요. 제가 초등학교 때는 아주 활달하고 외향적이어서

친구들도 많았어요. 중학교에 들어가서 친구들에게 너무 까

불고 제멋대로 굴었던 것 같아요. 그때 친구들에게 좀 더 잘해

주었으면 그런 일도 안 일어났을 것 같아요.

상담자: 힘든 경험을 하면서 친구 관계에서 배운 게 많았다는 거네. 멋

진 성찰이다. 새로 전학했다는 지금의 학교 친구들에게는 어

떻게 해야 할 것 같니?

유진이: 제가 겪은 일도 있고 해서 친구들 눈치를 많이 봐요. 튀지 않으

려고….

상담자: 친구들하고 잘 지내고 싶은 거로구나? 친구들과 잘 지내는 너

만의 방법은 뭐야?

유진이: 친구들 이야기 잘 들어주고, 도움이 필요한 친구 도와주고….

상담자: 혹시 최근에 친구를 도와준 일이 있다면 하나만 말해 볼래?

유진이: 모둠 활동으로 같이 춤 연습을 해야 했는데, 저희 모둠의 어떤

아이가 참여에 소극적이었어요. 다른 아이들은 그 친구에게

연습하자는 말도 안 거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그 애한테 같이

연습하자고 해서, 둘이 남아 연습하면서 조금 친해졌어요.

상담자: 와우, 멋지다. 누구 아이디어야? 엄마가 그렇게 하

라고 알려 주셨니?

유진이: 아뇨. 제 아이디어죠. 아, 그러니까 뭐든 제가 선택

해서 할 수 있다는 말씀이네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머니가 유진이

를 돕기 위해 취한 행동이 유진이 스스로 선

택해야 할 부분까지 침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고, 유진이도 어머니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새로운 자각을 했습니다. 유진이는 어머니가 시

작한 소송이 이미 말릴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

었지만, 이제 어머니가 자기 자신을 위해 생활하면

좋겠다고 털어놓으며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눠 보겠

다고 했습니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에 대해 어머니

와 의논은 하겠지만, 선택은 스스로 하겠다는 다짐도

새롭게 했습니다.

인생에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일어납니다. 특별

히 내가 이바지한 것도 없는데, 좋은 일이 일어난다

면 감사할 일이지요. 나쁜 일이 일어난다면 “왜 나에

게 이런 일이”라는 질문에 머물러 있기보다, 설령 그

일이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일어난 일이라 할지라도,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고민하면서 그 일과 연관

된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행동을 선택하면 될 일

입니다.

기영우: 결혼이 이뤄지기를 기도합니다.

품 심리상담센터 02) 845-2080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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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esian Bulletin of Korea

돈 보스코의 마음으로 교육합시다

주미(가명)는 지금 열아홉 살이다. 한 살 아래 가

희(가명)가 동생이다. 가락동 시장에서 채소를 파는

할머니를 도와 엄마가 매일 새벽 집을 나서야만 했

고, 자매만 남아 대충 아침을 해결하고 학교에 다녀

야 하는 중학교 시절을 보냈다. 당연히 학교에 소홀

해지고 자주 접한 인스턴트 식품 때문에 살은 살대로

불어났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

러가던 중에 친구들과 다툼이 많아지기 시작했으며,

어느 날 아빠마저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 엄마와도

무척 사이가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가까스로 중학교

를 졸업하고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했으나 교재비

를 충실히 내지 못하게 되면서 결국 1학년 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자퇴 처리가 되고 말았다. 그 사이 동생

가희도 중학교를 마치긴 했다. 별로 고등학교에 진학

할 의미를 찾지 못하던 가희와 더불어 집에 처박혀 지

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렇게 시간이 갔다. 서로 말

은 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가는 것이 내심 두렵기만

했다.

마냥 시간이 흘러가던 중에 그래도 동생은 뭔가

하고 싶었던 게 있었나 보다. 도무지

싫기만 한 ‘학교’라는 곳을 떠나서

도 공부할 방법은 없을까를 검

색하다가 우연히 서울시립 기

관인 드림센터라는 곳에서 무

상으로 운영한다는 ‘이룸학교’

를 알게 되었다. “현재 학교에

다니고 있지 않으며, 함께

즐기며 행복하게 살고 싶은 청소년, 이룸학교는 자신

의 의지로 참여하고자 하는 청소년을 기다립니다.”라

고 설명하는 이룸학교는 조건도, 그렇다고 돈이 필요

한 곳도 아니라고 했다. 가희는 언니라도 공부를 계

속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언니에게 이룸학교를 소

개하였다. 언니를 데리고 언니의 면접을 위해 이룸학

교에 함께 면접을 갔다가 결국 둘 다 이룸학교의 학

생이 되었다.

주미는 면접과 생활 과정에서 특별히 ‘역사’에 많

은 관심을 보였다. 가희는 진학에 관심을 보여 진학

을 준비하기로 하였다. 역사에 관심을 보인 주미를

위해서 선생님들은 함께 토론하며 역사 관련 일을 하

는 기관을 찾아내야 했다. 다행히 올해가 광복 70주

년이라서인지 청량리에 있는 한 기관을 찾아냈다. 그

리고 서울시의 보조를 받아 우선 3개월짜리 인턴십

을 신청했다. 매달 30만 원의 보조를 받으면서 한 달

에 60시간 이상의 근무를 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주로 하는 일은 문서 정리나 워크숍 등을 위한 활동

보조이다. 역사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기관에 출근하

는 것만으로도 주미는 점점 주변으로부터 존중을 받

게 되고 스스로 성숙해 가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이

제는 뭔가 공부할 거리를 찾은 것 같기도 하고 대

략 어떤 일을 하며 살아야 할지도 알아 갈 것

같다고 한다. 선뜻, “약자들을 위한 독재자

가 되고 싶다.”는 말도 할 줄 알게 된 주미는

모든 것이 너무 순탄한 것만

같고, 엄마가 예전과 달리

주미와 가희 자매 이야기가난하고 절박한 현실에 처한 한 자매.

공교육이라는 울타리는 그들을 품기에는 벽이 높고 다소 경직되어 보인다.

이와 같은 청소년을 품기 위해 행해지는 대안교육을

돈 보스코의 예방교육의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김건중 신부 살레시오회

32 살레시오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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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esian Bulletin of Korea 33

너무 잘해 주는 요즈음이 오히려 불안스러워진다고

도 말한다. 주미와 가희는 자신들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그렇게 어려운 처지에 놓였었고, 그럼에도

이제는 자기 길을 찾아가기에 여념이 없다.

교육을 염려하는 많은 이들은 우리 사회가 ‘학교’

라는 거대한 이데올로기에 갇혀서 끊임없이 아이들

을 뺑뺑이 돌리면서 두려움과 경쟁을 야기하고, 몇몇

소수만을 위해 대다수 아이들을 깔때기로 걸러내고

채로 쳐내는 식으로 비칠 때가 많다고 한다. 교육을

대안교육이니 제도교육이니 나누어 얘기하는 것 자

체가 자가당착이고 모순일 수 있다며 이제는 ‘대안’이

라는 접두어를 떼어내고 ‘교육’ 자체를 이야기해야 한

다는 사람들은 다수의 불량품을 양산하면서 극소수

의 우량품만을 획일화된 틀거리에 맞춰 찍어내듯 생

산하는 ‘공장식’ 학교는 아이들에게 자기 고유성과 존

엄성의 희생을 요구하는 감옥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외친다. 교육이 바로 우리의 미래이기에 이래서는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은, — 그나마 지금은 다행스럽게

도 교육부로 남았지만 교육부가 ‘인적자원부’가 되던

시절마저 겪은 — 우리나라의 교육이 자본주의의 자

원 관리와 생산 체제 안에 함몰된다 하고, 사회계층

의 고착화를 위해 충실히 기여하는 과정을 거쳐 어찌

할 바를 모르는 혼돈의 과정을 답습하고 있는 듯하다

고 말한다.

우치다 타츠루 선생이 비유한 대로 고장 난 자동

차에 올라 주행하면서 고장을 수리해야 하는 것이 우

리 교육의 현실이 아니냐는 것이다. 학교를 이렇게

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철저하게 아이들의 관심으로

부터 출발하고 각자의 배움 속도에 따라 학습하는 것

이 감히 학교 교육이나 제도교육이 흉내를 내지 못하

는 영역이 된 지 오래다. 세상의 모든 아이를 다 구할

수는 없으니 아이들 하나하나를 그 모습 그대로 인정

하고 그만의 특성에 따라 교육과정을 마련하는 것도

다수라는 집합의 경쟁 체제에서는 어쩔 수 없이 감수

해야 하는 희생이라고 여기게 된 것도 옛날이다. 그

래서 많은 사람들은 소위 대안교육을 이야기하고 다

양한 교육적 삶을 위해 몰두한다.

교육 사상가나 철학

자, 이론가가 아닌 교육자

요 청소년의 아버지요 스

승이며 친구이신 돈 보스

코는 가희나 주미의 상황

을 어떻게 보시고 어찌 행동

하셨을까? 살레시오회원들

은 아이들과의 만남을 시작

할 때에 모두 한 번씩은 이렇게

자문해 보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

다. 아마도, 돈 보스코께서 맨 먼저

하신 일은 가정방문이 아니었을까.

오라토리오에 아이들의 직업교육을 위해 여러 작업

장이나 공방들을 마련하면서 구두 수선방도 차려야

했던 돈 보스코는 아이들의 일터나 집을 찾아다니기

에 결코 쉼이 없으셨기에 자신의 신발도 무던히 다시

꿰매고 수선해야만 했을 것이 분명하다.(*“살레시오

회원은 무엇보다도 운동장에서 자기 제자들과 함께

할 시간을 내야만 한다. 리날디 신부는 이와 관계하

여 다음과 같은 일화를 남겼다. 오락 활동에 참여하

던 한 젊은 살레시오회원은 소년들과 함께 뛰논 나머

지 그의 신발이 너무 빨리 닳아져 경리의 불평을 사

게 되었다. 리날디 신부는 이 이야기를 듣고 그 젊은

사제를 불러 ‘계속 그렇게 하게. 소년들 속에서 계속

자네 신발을 닳도록 하게. 만일 자네 원장이 새 신발

을 사 주지 않거들랑 내가 사 줌세.’라고 말했다.” 참

조 : 돈보스코미디어, 『예방교육영성』, 206-208쪽)

돈 보스코는 ‘가난하고 버림받고 위험’에 처한 어린

자매의 처지를 무척 안타까워하시면서 주미나 가희

를 만나고, 또 그들의 어머니나 아버지를 만나셨을

것이 분명하다. 아이들이 처한 딱한 구조 안에서 자

매들을 어찌 구할 수가 있는지를 기도하며 방법을 찾

으셨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함께 지내고(집), 뛰어놀

며(운동장), 배움을 이어 가고(학교), 하느님을 찬미

할 수 있는 곳(교회)을 찾으셨을 것이다.(*돈 보스코

는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오라토리오가 이런 모습이

기를 바라셨다.) 뿐만 아니라, 하느님께서 이 자매들

하나하나에게 마련하신 고유한 삶의 계획이 무엇인

류재언: 우리 모두가 하느님 사랑을 실천하면서 사는 사회가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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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esian Bulletin of Korea

돈 보스코의 마음으로 교육합시다

34 살레시오가족

지를 발견하고 알아보기 위해 깊이 대화하시고 기도하셨을 것이다. 혹시

라도 이 자매들에게 닥쳐올 수도 있을 여러 가지 사회적인 악한 유혹들에

이 자매가 넘어가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을 바

탕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여러 후원자를 물색하고, 필요하면 문서로라도

약속을 받아 아이들을 안심하게 하셨을 것이다. 실제로 돈 보스코는 수많

은 아이의 일터를 방문하고 아이와 돈 보스코, 그리고 아이가 일하는 사업

체의 대표가 각각 서명한 문서를 만들기도 하셨다.(이는 요즈음 미국의 메

트 스쿨을 비롯해 많은 대안학교가 ‘인턴십’이라고 부르며 활용하는 배움

의 방법과 구조에 해당이 된다. 참조: 돈보스코미디어, 『돈 보스코』, 411-

414쪽)

살레시오회원들은 살레시오 교육 현장에서 어려운 처지의 아이들

을 만나면 우선 마음이 아프면서도 바쁘다. 우선적으로 아이들의 딱한 처

지에서 구체적인 의식주의 해결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

들의 마음을 얻으려 한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으로 족하지 않고 그들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 살레시오 교육은 “교육이란 마음의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느님만이 마음의 주인이십니다. 그 주인이신 하느

님께서 우리에게 마음의 예술을 가르쳐 주시지 않고 그 마음의 열쇠를 건

네주지 않으시면 우리는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습니다.”(참조 : 영어판 『돈

보스코 전기』 16권, 376쪽-1883년에 쓴 벌에 관한 편지에서)라는 돈 보스

코의 말씀을 잊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대안적인 교육과정을 만들어내는

것보다도 대안적인 교육 문화와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고 믿으면서 이를 위해 공동체가 함께 기도하고 함께 노력한다. 눈에 보이

는 과정보다도 눈에 보이지 않는 아이들의 성숙을 함께 모색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 교육은 어떤 교육자 한 사람이 하는 것

이 아니고 공동체로서만 가능한 것이며, 아이들의 마음을 얻어 그 아이들

마음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인도하심에 따라 스스로 자발적인 성취동기

를 마련하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관건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살레시오회의 교육은 살레시오회의 집에 세상 모든 것들이 다 있지는

않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세상의 여러 사람들과 협력하면서 살레시오

집 안팎을 넘나들며 도움을 구하고, 직업을 찾도록 도와주는 교육이나 기

술을 가르치는 것뿐이 아니라, 일과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를 성숙시켜 가

도록 돕는 교육 환경을 조성

하기 위해 분투한다. 그리고

마침내 최선을 다한 우리의

노력에 부족한 부분은 은

총이 채워 주시기를 기

도한다.

설립자 성 요한 보스코(1815~1888)발행처 살레시오회 한국관구발행인 양승국발행일 2015년 7월 1일(격월간)발행부수 12,800부편집처 돈보스코미디어편집인 서정관편 집 이준석, 신태흥, 고은하디자인 이홍편집자문위원

신현문, 전미숙, 윤진영, 최인순주 소 우)150-860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방로 65전 화 (02)828-3535FAX (02)828-3538E-mail [email protected]홈페이지 ibosco.net등록일자 1997. 8. 13등록번호 서울 마02669

The Salesian Bulletin of Korea

살레시오 가족이란살레시오회,�살레시오수녀회,�예수의�까리따스�수녀회,�돈보스코재속회�등�돈보스코의�청소년�교육�사명을�수행하는수도·봉헌생활�단체들과�살레시오협력자회,�남·여�동문회�등�평신도�단체�그리고�이런�단체에�소속되지는�않았어도청소년을�사랑하며�돈�보스코와�같은교육적인�마음을�갖고�있는�사람들과돈�보스코가�시작한�일을�돕는�모든�사람들을�일컫는�말입니다.

살레시오가족지는▶�살레시오�가족을�하나로�묶는�일치의끈으로,�우리�시대의�종교·문화·사회적인�주제들을�돈�보스코의�교육적인�마음으로�다루고�있습니다.

▶�원하는�사람�누구에게나�무상으로�주어지는�돈�보스코의�선물로�세계�56개�나라에서�29개�언어로�연간�1000만�부�이상�발행합니다.

▶�돈�보스코의�정신을�보다�많은�이들에게�알리기�위해�여러분의�도움을기다립니다.

후원계좌국민은행 758-01-0018-441예금주 살레시오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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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esian Bulletin of Korea 35

한겨울에도 주름치마를

입는 학교! 만화에서만 보던 세

라복을 입고 다닐 수 있는 학교!

두건을 쓰고 십자가 목걸이를 한

수녀님을 실제로 보고 살 수 있

는 학교! ‘사레지오여중’은 그런

학교였습니다. 시골 초등학교에

다니던 저에게 앞에서 열거한 그

매력 덩어리는 당시 광주 전남여중을 가라는 부모님과

선생님의 간곡한 애원을 뿌리치고 선택할 만큼 참으로

멋진 학교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1968년부터 살레시오

와의 인연은 시작되었고 살레시오초등학교에 재직하면

서 35년간 모교의 교문을 드나들었습니다. 지금도 동문

회 일로 여전히 학교 교문을 드나들고 있으니 교문을 가

장 많이 애용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살레시오 가족 여러분~! 보스코 성인

처럼 청소년들 사이에서 ‘하느님 사랑의 기억’이 되도록

부름 받은 가족 한 분 한 분께 다정한 인사를 올립니다.

저는 오늘 돈 보스코와 함께 도움이신 마리아님의 손을

잡고 매일 아이들을 사랑하는 가운데 하느님을 만나는

은혜를 얻고 싶은 유일한 소망을 제 마음에 심어 준 학

창 시절의 그리운 수녀님을 떠올립니다.

중학교 입학식 날 신기하기만 했던 코 크고 키 큰

외국인 교장 수녀님~! 그분의 애국조회 훈화는 언제나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아가페적

인 사랑만이 가장 큰 사랑이라고 믿고 있던 저는 수녀님

의 그 멘트가 상투적인 표현일 뿐이라는 생각도 했습니

다. 그런데 어느덧 정년을 코앞에 둔 저 역시 학생들에

게 훈화할 때나 글을 쓸 때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으로

시작합니다. 그런 저 자신에게 피식 웃어 주며 그분의

마음을 헤아리게 됩니다. 발랄하고 선명한 학창 시절,

나와 친구들을 보실 때 기뻐해 주셨던 교장 수녀님은 우

리 가운데 계시는 하느님의 다정한 눈길이셨습니다.

그분은 “소녀는 마치 이슬과 같아서 풀 위에 있을

때는 보석처럼 빛나지만, 땅으로 떨어지면 흙이 되고 맙

니다."라는 참으로 귀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저는 항

상 그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살았습니다. 풀잎 위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이슬로 존재하려면 나 스스로 나의 자

존감을 지키고 만들어 가야 했습니다. 참으로 정성껏 나

자신을 사랑하며 가꾸는 매일의 노력이었습니다. 이는

저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졸업생의 삶 속에 녹아 있는

삶의 지표 중 하나일 거라고 감히 믿고 있습니다. 그래

서 동문회에서는 그분의 가르침을 잊지 않기 위해 그분

의 어록을 발간하였고, ‘소녀는 마치 이슬과 같아서….’

라는 구절을 돌에 새겨 교문 입구에 세워 두고 학생들이

등 · 하굣길에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언어도 잘 통하지 않는 낯선 이국땅에서 자신의

열정을 다 쏟아부으며 우리나라의 여성교육에 헌신하

셨던 그분을 생각해 봅니다. 그분의 어떤 점이 그를 아

는 모든 사람(교사, 졸업생 등)으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게 하는 것일까? 그것은 진정성 있는 사랑을 몸소 실

천해 보여 주셨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보스코 성인

의 말씀처럼 학생들 각자가 자신이 가장 사랑받고 있다

고 느끼게 대해 주었던 것입니다. 저 역시 그렇게 착각

하고 살 정도로요. 이 글을 쓰면서 다시금 저를 곧추 세

워 봅니다. 그분의 모습을 닮아 가기 위해서 노력하겠

습니다. 사랑하는 밀타 몬딘 수녀님!!! 당신을 그립니

다.

Salesian Bulletin of Korea

닫는 글

밀타 몬딘 수녀님을 그리며황경숙 살레시오여자중·고등학교 총동문회장

작가 황경숙 크기 6m×3m 표현재료 및 기법 화강석, 석면 부조제작연도 2013년 소장처 살레시오초등학교(광주 매월동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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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네에 새겨진 상처 입은 얼굴은 전쟁이나 폭력으로 고통당하는 가장 약한 사람들,존엄성을 훼손당한 사람들의 얼굴과 비슷합니다.

침묵 속에 들려오는 그리스도의 수난, 인간의 수난 이야기이며,“하느님께서 세상을 너무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신.”(요한 3,16)

그분의 자비를 말해 주는 침묵의 증언입니다.

자비의 얼굴 신도네토리노 예수님 수의 이야기

가에타노 콤푸리 저 | 박민숙 역 | 117쪽 | 양장 | 13,000원돈보스코미디어 (02)828-3535, [email protected]

저자 가에타노 콤푸리역자 박민숙

65년간 신도네를 연구하고 전한 하느님 자비의 선교사 가에타노 콤프리 신부의 총정리 결정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