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njamin Agamben

1 신의 폭력과 지상의 행복 : 발터 벤야민의 탈-정치신학 1. 벤야민 르네상스와 숨겨진 비사(秘史) 1941년, 게르숌 숄렘은 뉴욕에서 출판된 그의 처녀작 유태 신비주의의 주요 흐름 Major Trends in Jewish Mysticism에서 “발터 벤야민(1892-1940)에게. 형이상학적 통찰, 비평의 해석적 힘, 그리고 학자의 해박함이 천재성 안에서 하나가 되었던 이 생애의 친구를 기억하며.” 1) 라는 헌사를 보냈다. 이 책이 출판된 당시, 뉴욕에 발터 벤야민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망명한지 얼마 안 되는 한나 아렌트를 비롯하여 네 다섯 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2) 그로부터 60여년이 지난 지금, 발터 벤야민의 이름은 뉴욕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인문학 전공자만이 아니라 대중문화 종사자들에게도 익숙한 것이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벤야민 르네상스’ 라고 지칭되는데,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이 ‘비평가’에게 이 사후의 명성이 과연 영광된 것인지 허망한 것 인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벤야민에 대한 관심과 참조가 이제 ‘벤야민 르네상스’가 아니라 ‘벤야민 열병 (fever)’이라고 할 정도로 인문사회과학과 비평계를 사로잡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열병으로까지 번진 벤야민에 대한 관심은 1960년대에 아렌트나 마르쿠제를 비롯한 하이데거의 ‘아이들’ 3) 이 미국 사상계에 스타로 등장한 것과 궤를 같이 하며, 같은 맥락에서 아도르노를 비롯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작업들이 영미권에 소개되면서 등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하이데거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이 론이 1960년대에 영미권에서 각광을 받은 이유는 정통 마르크스주의적 자본주의 비판을 대신할 가능성 때 문이었다. 물론 이미 사르트르를 위시한 실존철학이 꾸준히 자본주의 비판의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했지만, 하이데거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과학기술 및 도구적 이성 비판은 자본주의 및 근대정치 전체를 되물을 수 있는 관점과 태도를 제공했던 것이다. 위에서 말한 벤야민 르네상스 또한 이 맥락 속에서 등장한 현상이며, 특히 그의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은 이른바 1970-80년대 ‘문화연구 Cultural Studies’ 계열의 비판적 미디어 연구와 영화 연구에서 반드시 참조해야 할 문헌으로 열거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1990년대에 이르면 수없이 쏟아져 나온 ‘근대성 modernity’과 ‘대도시 metropolice’ 연구에서 벤야민의 ‘파사쥬론’이 ‘정전 canon’의 위치에 올라, 드디어 벤야민 르네상스는 열병으로 번지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4) 그러나 이것이 벤야민 르네상스의 ‘정사(正史)’라고 한다면 그 이면에는 ‘비사(秘史)’가 있다. 1980년대 이후 몇몇의 연구자들이 이 비사를 들추어내려 노력했고, 그 중 대표적인 이가 바로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이라 할 수 있다. 5) 이 비사란 발터 벤야민과 칼 슈미트(Carl Schmitt) 사이의 숨겨진 대화에서 연 1) "To the memory of Walter Benjamin(1892-1940), the friend of a lifetime whose genius united the insight of Metaphysician, the interpretive power of the Critic and the erudition of the Scholar.” (Gershom Scholem, Major trends in Jewish mysticism[1941], Schocken Books, 1995) 2) Jacob Taubes, Dana Hollander trans., The Political Theology of Paul[1987], Stanford UP., 2004, p.7. 야콥 타 우베스(1923-1987)는 츄리히 대학에서 서양 종말론의 역사와 체계에 관하여 Studien zur Geschichte und System der abendländischen Eschatologie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1947) 미국과 이스라엘에서 공부했다. 벤야민의 맹우 게 르숌 숄렘의 지도 하에 예루살렘 헤브라이 대학에서 연구조교로 근무했고, 컬럼비아 대학 및 베를린 자유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베를린 대학에서 유태학(Judaistik)과 해석학 강좌의 겸임 교수였다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유태 신비주의/ 기독교 신학과 근대 철학의 관계에 대한 독창적 해석으로 명성을 떨쳤다. 벤야민이 속해 있던 세대의 정신적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차대전을 전후한 독일의 부르주아 교양문화의 쇠퇴’와 ‘독일 고전파/낭만파/관념론에 내포된 신 학적 논쟁’ 사이의 관계 양상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는데, 야콥 타우베스의 이 책은 이를 위한 가장 적합한 정보를 담고 있다. 아래에서의 논의는 이 책으로부터 시사 받은 바가 크다는 사실을 밝혀 둔다. 3) Richard Wolin, Heidegger's Children : Hannah Arendt, Karl Löwith, Hans Jonas, and Herbert Marcuse, Princeton UP, 2001. 4) 이와 관련된 문헌 중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긍정성과 정통성을 강조한 고전적 논의로는, 마틴 제이, 황재우 외 옮김, 변증법적 상상력 :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역사와 이론[1973], 돌베개, 1979를 참조할 수 있으며, 영미권 문화연구와 프랑크푸르트 학파 사이의 관계를 재검토하면서 마틴 제이 비판을 전개한 문헌으로는, Douglas Kellner, “The Frankfurt School”와 “The Frankfurt School and British Cultural Studies: The Missed Articulation”( http://gseis.ucla.edu/faculty/kellner/essays)을 참조할 수 있다. 또한 도시 연구에서 벤야민 열병을 잘 보여주는 문 헌으로는, 글램 질로크, 노명우 옮김, 발터 벤야민과 메트로폴리스, 효형 출판사, 2005를 들 수 있다. 5) 아감벤의 본격적인 논의 이전에 이 비사를 다루려 한 문헌을 예시해보면 다음과 같다. Jacob Taubes, op.cit.;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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