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홉스(Thomas Hobbes)의 국제정치관에 관한 연구 김영호 (성신여자대학교) 서 론 홉스(Thomas Hobbes)는 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상가이다. 홉스의 저서 『리바이어던』(Leviathan)의 “인간은 그들 모두를 경외심에 떨게 할 수 있는 공통의 권력자 없이 살 때 전쟁이라고 부르는 상태에 처하게 되는데, 그 상태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상태이다” 1) 라는 구절은 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가들에 의해 국제정치현실의 본질을 가장 잘 설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국제정치현실을 전쟁상태로 규정하는 홉스의 주장은 현실주의자라고 자처하는 대부분의 국제정치이론가 들에 의해 공유되고 있다. 2) 또한 불(Hedley Bull)은 고전적 현실주의(classical realism)를 대표하는 모겐 소(Hans J. Morgenthau)의 국제정치이론을 “홉스의 저작들에 내포된 국제정치관을 재해석하려는 시도” 로 규정짓고 있다. 3) 나아가 무정부적 구조를 중심으로 국제정치현실을 설명하려는 신현실주의 (neorealism)도 홉스의 국제정치관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고 있다. 4) 현실주의와는 달리 국가들은 무정부상태에 처해 있으면서도 상호이해관계의 일치에 기초한 공유된 규 범을 발전시킴으로써 일종의 무정부적 사회(anarchical society)를 형성한다는 불의 국제사회론과 무정부 상태는 그 성숙도에 따라서 스펙트럼 상에 여러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는 영국학파의 주장들 모두가 홉 스의 국제정치관에 대한 비판적 해석에 기초하고 있다. 5) 또한 신현실주의의 물질적 구조 개념을 비판하 고 구조의 사회적 측면을 강조하는 구성주의(constructivism)도 홉스의 자연상태에 대한 재해석을 통하여 새로운 이론 발전의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 6) 이처럼 현실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이론적 경향들도 홉스의 국제정치관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홉스 이후의 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가들에 의해 이론 정립을 위해 당연시되고 있는 중요한 이론적 가 정들(assumptions)을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정교하고 일관된 논리로서 설명해주고 있다. 홉스는 인 간 본성에 대한 분석에서 출발하여, 국가 성립의 과정을 설명하고, 나아가 다수의 국가들이 상호작용하 여 만들어내는 대외적 자연상태, 즉 무정부상태의 창출 과정을 일관되게 설명해 주고 있다. 따라서 기존 1) Thomas Hobbes, Leviathan, C. B. Macpherson, ed. (Harmondsworth: Penguin, 1968), ch. 13, p. 185. 2) Michael J. Smith, Realist Thought from Weber to Kissinger (Baton Rouge: Louisiana State University Press, 1986), p. 13. 3) Hedley Bull, "Hobbes and the International Anarchy," Social Research, 48-4 (Winter 1981), p. 717. 애쉴 리는 미국에서 1970년대말 월츠의 신현실주의와 모겐소에 의해 대표되는 기존의 현실주의를 구별하기 위 해 후자를 고전적 현실주의라고 부르고 있다. 이 점에 관해서는 Richard Ashley, "The Poverty of Neorealism," in Robert O. Keohnae (ed.), Neorealism and its Critics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86), p. 257을 참조. 4) Kenneth N. Waltz, Theory of International Politics (New York: McGraw-Hill, 1979), pp. 102-128. 5) Hedley Bull, The Anarchical Society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77), p. 24; Barry Buzan, "The English School Meets American Theories," International Organization, 47-3 (Summer 1993), pp. 327-352; Barry Buzan, People, States, & Fear, 2nd ed. (Boulder: Lynne Reinner, 1991), pp. 174-181. 6) Alexander Wendt, "Anarchy is What States Makes of it: the Social Construction of Power Politics," International Organization, 46-2 (Spring 1992), pp. 391-425; Alexander Wendt, Social Theory of International Politic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9), pp. 246-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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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홉스(Thomas Hobbes)의 국제정치관에 관한 연구
김영호 (성신여자대학교)
서 론
홉스(Thomas Hobbes)는 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상가이다. 홉스의 저서
『리바이어던』(Leviathan)의 “인간은 그들 모두를 경외심에 떨게 할 수 있는 공통의 권력자 없이 살 때
전쟁이라고 부르는 상태에 처하게 되는데, 그 상태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상태이다”1)라는 구절은
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가들에 의해 국제정치현실의 본질을 가장 잘 설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국제정치현실을 전쟁상태로 규정하는 홉스의 주장은 현실주의자라고 자처하는 대부분의 국제정치이론가
들에 의해 공유되고 있다.2) 또한 불(Hedley Bull)은 고전적 현실주의(classical realism)를 대표하는 모겐
소(Hans J. Morgenthau)의 국제정치이론을 “홉스의 저작들에 내포된 국제정치관을 재해석하려는 시도”
로 규정짓고 있다.3) 나아가 무정부적 구조를 중심으로 국제정치현실을 설명하려는 신현실주의
(neorealism)도 홉스의 국제정치관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고 있다.4)
현실주의와는 달리 국가들은 무정부상태에 처해 있으면서도 상호이해관계의 일치에 기초한 공유된 규
범을 발전시킴으로써 일종의 무정부적 사회(anarchical society)를 형성한다는 불의 국제사회론과 무정부
상태는 그 성숙도에 따라서 스펙트럼 상에 여러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는 영국학파의 주장들 모두가 홉
스의 국제정치관에 대한 비판적 해석에 기초하고 있다.5) 또한 신현실주의의 물질적 구조 개념을 비판하
고 구조의 사회적 측면을 강조하는 구성주의(constructivism)도 홉스의 자연상태에 대한 재해석을 통하여
새로운 이론 발전의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6) 이처럼 현실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이론적 경향들도 홉스의
국제정치관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홉스 이후의 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가들에 의해 이론 정립을 위해 당연시되고 있는 중요한 이론적 가
정들(assumptions)을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정교하고 일관된 논리로서 설명해주고 있다. 홉스는 인
간 본성에 대한 분석에서 출발하여, 국가 성립의 과정을 설명하고, 나아가 다수의 국가들이 상호작용하
여 만들어내는 대외적 자연상태, 즉 무정부상태의 창출 과정을 일관되게 설명해 주고 있다. 따라서 기존
1) Thomas Hobbes, Leviathan, C. B. Macpherson, ed. (Harmondsworth: Penguin, 1968), ch. 13, p. 185.
2) Michael J. Smith, Realist Thought from Weber to Kissinger (Baton Rouge: Louisiana State University
Press, 1986), p. 13.
3) Hedley Bull, "Hobbes and the International Anarchy," Social Research, 48-4 (Winter 1981), p. 717. 애쉴
리는 미국에서 1970년대말 월츠의 신현실주의와 모겐소에 의해 대표되는 기존의 현실주의를 구별하기 위
해 후자를 고전적 현실주의라고 부르고 있다. 이 점에 관해서는 Richard Ashley, "The Poverty of
Neorealism," in Robert O. Keohnae (ed.), Neorealism and its Critics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86), p. 257을 참조.
4) Kenneth N. Waltz, Theory of International Politics (New York: McGraw-Hill, 1979), pp. 102-128.
5) Hedley Bull, The Anarchical Society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77), p. 24; Barry Buzan,
"The English School Meets American Theories," International Organization, 47-3 (Summer 1993), pp.
327-352; Barry Buzan, People, States, & Fear, 2nd ed. (Boulder: Lynne Reinner, 1991), pp. 174-181.
6) Alexander Wendt, "Anarchy is What States Makes of it: the Social Construction of Power Politics,"
International Organization, 46-2 (Spring 1992), pp. 391-425; Alexander Wendt, Social Theory of
International Politic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9), pp. 246-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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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국제정치이론들을 이해하고 새로운 이론의 발전을 모색하기 위해서 홉스의 국제정치관에 대한 재조
명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고전적 현실주의자들의 중요한 가정인 인간본성의 특징의 하나인 권
력욕, 신현실주의자들의 중요한 가정들인 국가중심주의와 무정부상태 등은 모두 홉스에 의해 이론적 가
정으로 환원되지 않고 잘 설명되고 있다.7) 이 글의 중요한 목적의 하나는 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의 중
요한 이론적 가정들을 홉스가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를 그의 국제정치관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저서 『리바이어던』을 중심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이 글의 또 다른 목적은 홉스 이후 등장한 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들과 비교해 봄으로써 홉스의 국제정
치관이 갖는 현대적 의미를 재조명하려는 데 있다. 또한 이러한 분석은 기존의 국제정치이론들이 홉스
의 국제정치관보다 국제정치현실을 이해하는 데 어느 정도 발전된 이론틀을 제시하고 있는지를 평가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부여하게 될 것이다. 홉스는 인간 본성과 무정부성 등과 같이 인간이나 개별 국가에
의해 극복될 수 없는 구조적 요인들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전적 현실주의와 신현실주의를 동시에
포괄하는 구조주의적 현실주의로 분류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글은 홉스의 국제정치관과 기존의 이론들
에 대한 비교 분석을 통하여 보여주게 될 것이다.
우선 이 글은 홉스의 국제정치관을 그의 저서 『리바이어던』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여기에서는 홉스
가 인간 본성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국제정치현실을 설명하는 데 중요한 자연권과 자연상태라는 개념들
을 도출해 내는 과정을 분석하고, 대내적 자연상태와 대외적 자연상태의 차이점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
는지를 살펴본다.8) 이 차이점에 대한 홉스의 설명은 홉스의 국제정치관의 핵심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국제정치이론가들에 의해 이론적 가정들로 환원되고 있는 주장들이 홉스에 의해 어
떻게 이론적으로 설명되고 있는지를 검토하고, 홉스의 국제정치관의 핵심적 내용을 밝히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홉스의 국제정치관에 내재되어 있는 이론적 쟁점들을 지적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쟁점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홉스 이후 등장한 현대 국제정치이론들과 홉스의 국제정치관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홉
스의 주장을 현대적 의미에서 재조명하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글은 홉스의 국제정치관에 대한 연
구가 향후 국제정치이론 연구를 위해 어떠한 시사점들을 던지고 있는지를 설명하게 될 것이다.
홉스의 국제정치관
홉스의 생애 중 그의 국제정치관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중요한 두가지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1629년 홉스는 현대 국제정치의 이론과 실천을 대표하는 현실주의 이론의 원조(元祖) 격인
투키디데스(Thucydides)의 『펠로폰네소스전쟁사』를 영어로 번역했는데, 이것이 그가 첫번째로 출판한
책이라는 점이다.9) 이 영역본 서문에서 홉스는 투키디데스가 명확하게 이론적 체계화를 시도하지 않고
7) 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이 가진 가정들을 제시하려는 시도들로는 다음을 참조할 것. Michael W. Doyle,
"Thucydidean Realism," Review of International Studies, 16-3 (July 1990), pp. 223-237; Robert O.
Keohane, "Neorealism and World Politics," in Neorealism and its Critics, p. 7; John J. Mearsheimer,
"The False Promise of International Institutions," International Security, 19-3 (Winter 1994/95), pp.
9-11; Alexander Wendt, "Constructing International Politics," International Security, 20-1 (Summer
1995), p. 72.
8) 이 에서는 홉스의 자연상태를 두가지로 분류한다. 사회계약을 통한 대내적 자연상태의 극복과 동시에 형
성되는 국가들 사이의 국제정치적 무정부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대외적 자연상태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9) Laurie M. Johnson, Thucydides, Hobbes, and the Interpretation of Realism (DeKalb: Northern Illinois
University Press, 1993),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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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본성, 이해관계의 충돌, 국제정치에서의 도덕성의 문제가 투키디데스의 대화체
서술방식을 통하여 이 전쟁사의 전편에 흐르고 있어서, 역사의 연구를 통하여 오늘을 살아가는 데 교훈
을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역사 연구서의 하나라고 이 책을 평가하고 있다.10) 또한 투키디데스는 전쟁의
원인으로서 안보, 명예, 이해관계의 세가지를 들고 있는데, 이러한 그의 주장은 『리바이어던』의 유명
한 제13장에서 홉스가 국가와 사회를 형성하기 이전의 자연상태에서 인간들 사이의 분쟁의 원인을 분석
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11)
또 다른 중요한 사건은 1642년부터 1649년까지 2차에 걸쳐 일어난 영국 내전이다. 이 내전에서 당시
국왕 찰스(Charles) 1세가 “머리에 왕관을 쓴 채로 목이 잘리는 사태”가 발생함으로써 영국은 걷잡을 수
없는 비극적인 내전에 휩싸이게 되었다.12) 내전의 기운이 감돌게 되자 홉스는 신변의 안전에 위협을 느
끼고 1640년 파리로 망명했다. 파리에서 그는 2차에 걸친 피비린내 나는 영국 내전을 목격하고 그 시대
의 긴급한 요구에 부응하여 영국 사회가 처한 위기의 극복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리바이어던』을 저
술했다. 그러나 홉스는 긴급한 현실적 요구에 매몰되지 않고 당시의 상황이 발생하게 된 이론적 배경을
인간이 처한 보편적 곤경에 비추어 설명함으로써 신적인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 인간들 사이의 자유로운
사회계약을 통한 대내적 정치질서의 가능성을 이론적으로 모색했다.13) 이 과정에서 홉스는 사회계약의
이전 단계에 인간이 처한 조건으로서 자연상태라는 개념을 발전시키고 전쟁상태인 자연상태가 대외적으
로 재생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함으로써 국제정치현실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14)
홉스의 국제정치관은 인간 본성에 대한 분석에 기초한 개인 차원의 분석에서 출발하여 개인이 처하게
되는 외적 조건으로서 자연상태의 개념을 도출한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상태인 자연상태를 벗어나
는 사회계약의 성립 과정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홉스는 국가의 성립 과정을 보여준다. 이렇게 성립된
국가들은 자연상태 하의 개인과 마찬가지로 중앙정부가 존재하지 않는 무정부상태, 즉 대외적 자연상태
에 처하게 된다. 이처럼 홉스는 인간 본성과 국가의 형성 과정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무정부적 국제정
치현실의 등장 과정과 그 특징을 설명하면서 자신의 국제정치관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홉스의 국제정치관에 대한 설명은 홉스의 인간 본성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홉스는 『리바이어던』의 서문에서 인간은 서로 본성상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과 욕망을 관찰하고 그것에 기초하여 인간 본성에 관한 일반론을 발전시킬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
도 똑 같은 방법을 동원하여 자신의 이론을 검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15) 『리바이어던』은 모
두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제1부의 전체가 인간 본성의 연구에 바쳐지고 있다. 그는 인간 본성
중에서도 특히 인간이 가진 강력한 욕망(passion)을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
10) William Molesworth, ed., The English Works of Thomas Hobbes, Vol. VIII (London: John Bohn,
1839-1845), p. viii.
11) Thucydides, History of the Peloponnesian War, M. I. Finley, trans and ed. (Harmondsworth:
Penguin, 1972), p. 80; Hobbes, Leviathan, ch. 13, p. 185.
12) C. V. Wedgwood, "The Trial of Charles I," The English Civil War and After, 1642-1658, R. H. Perry,
ed.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70), p. 41.
13) 홉스 이론의 패러다임적(paradigmatic) 성격에 관해서는 Dante Germino, "The Contemporary Relevance
of the Classics of Political Philosophy," in Fred I. Greenstein and Nelson W. Polsby (eds.), Handbook
of Political Science, Vol. I (Reading, M.A.: Addison-Wesley, 1975), p. 246을 참조.
14) Hobbes, Leviathan, ch. 13, pp. 187-188.
15) Ibid., pp. 8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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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무엇인가를 바라고 그것을 추구하는 동물이다. 인간이 바라는 대상들이 서로 다르고 변한다고 할지
라도, 인간이 가진 이러한 강력한 욕망 자체는 인간 모두에게 동일하고 불변의 것이라고 가정함으로써
홉스는 자신의 이론 전개의 근거를 발견한다.16)
홉스는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는 절대적 기준의 존재를 부정한다.17) 선과 악의 구분은 인간이 원하거
나 피하고자 하는 욕망의 대상들과 조건들에 부여된 명목적인 것일 뿐이다. 이처럼 인간은 이성의 소유
자이면서도 동시에 동물적인 욕망의 결정체이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이 추구하는 다양한 욕망의 대상을
충족시킴으로써 지복(至福, felicity)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18) 이처럼 인간의 삶은 죽을 때까지 끊임없는
욕망의 추구와 욕망 실현의 끝을 의미하는 죽음에 대한 공포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이러한 홉스의 인간의 욕망에 대한 분석에서 국제정치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는 바로
그의 끊임없는 인간의 권력욕에 대한 분석이다. 인간의 행복은 만족된 정신의 정지(靜止)된 상태를 결코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은 과거 도덕주의자들이 말하는 지선(至善, summum bonum)에 안주하
면서 만족하고 살 수 없기 때문이다.19) 따라서 인간은 영속적이고 끊임없는 권력욕을 갖고 있고, 그러한
욕구는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고 홉스는 주장한다.20) 이러한 권력욕은 인간 자신이 현재 즐기고 있는 것
보다 더 큰 즐거움을 향유하고자 하는 데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지만, 그보다 더욱 근본적인 이유는
지금보다 더 많은 권력을 보유하지 않고서는 그가 현재 갖고 있는 것을 지킬 수 없다는 두려움 때문이
다. 그러한 이유로 인해서 “국왕들은 대내적으로는 법으로서 대외적으로는 전쟁을 통해서 자신의 권력을
확고히 하기 위해 그들의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21) 이러한 권력욕이 충족되고 나면 국가는 정복을 통
한 명예욕과 감각적 쾌락 등과 같은 또 다른 새로운 욕구의 충족을 위해 더 많은 권력을 추구하게 된
다.
인간의 권력욕에 대한 홉스의 분석과 관련하여 여기서 지적해두어야 할 것은 홉스는 이러한 권력욕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인간을 본질적으로 사악하다고 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22) 오히려 문제는 그러한 욕
망이 제대로 통제되지 못함으로써 생겨나는 사악한 결과이다. 인간본성의 일부를 이루는 권력욕을 제거
할 수 없다고 한다면, 욕망의 무절제한 추구의 결과로 인간이 처하게 될 곤경을 이해하고, 그러한 욕망
의 분출을 적절히 통제할 수 있는 이론적, 제도적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홉스는 보았
다. 이 점에서 홉스는 인간 본성의 사악함을 강조하고, 그 사악함에서 전쟁 등과 같은 국제정치적 현상
을 설명하고자 한 고전적 현실주의자인 모겐소와는 명백히 구분된다.23)
홉스는 인간이 정신적, 신체적으로 평등하다는 것을 강조한다.24) 이러한 인간의 평등성은 인간이 어떤
것을 얻고자 하는 욕망의 동일성을 낳는다. 그런데 만약 인간이 서로 동시에 추구하는 어떤 것을 같이
16) Ibid., p. 83.
17) Ibid., ch. 6, p. 120.
18) Ibid., ch. 6, pp. 129-130.
19) Ibid., ch. 11, p. 160.
20) Ibid., ch. 11, p. 161.
21) Ibid.
22) Leo Strauss, The Political Philosophy of Hobbes, Elsa M. Sinclair, trans.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52), p. 13.
23) 모겐소의 인간 본성에 관한 입장에 관해서는 Hans J. Morgenthau, Scientific Man versus Power
Politics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4), p. 14; Hans J. Morgenthau, Politics Among
Nations, 6th ed. Kenneth W. Thompson, ed. and rev. (New York: Knopf, 1985), p. 3을 참조.
24) Hobbes, Leviathan, ch. 13, p. 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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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거나 소유할 수 없게 되면, 인간은 상대방을 죽임으로써 그것을 취하고자 한다. 따라서 홉스에 따르
면 이러한 인간관계를 규제하고 조정할 수 있는 국가나 사회가 존재하지 않는 자연상태에서 인간관계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 결과 이 자연상태에서 인간의 삶은 "고독하고, 보잘
것이 없고, 추잡하고, 난폭하고, 그리고 단명이 된다."25)
홉스의 자연상태 하에서의 인간은 아무런 인위적인 것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옷, 집, 무기 같
은 것을 갖고 있다.26) 결국 자연상태에서 없는 것은 인간의 사회적 결사체인 제도(institution)이다. 인간
의 욕망을 규제할 수 있는 제도가 없는 상태 하에서는 인간들 사이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상태"가
계속되어서 인간이 가공물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정상적인 생산행위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
기 때문에 인간은 제대로 된 가공물들을 갖기가 어렵다. 또한 이러한 상태 하에서 인간의 생산기술 수
준이 높은 단계에 이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욕망의 결정체인 평등한 개인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형성되는 자연상태는 개인들의 행위에 영향을 미치
는 외적 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자연상태 하에서 개인들은 자신의 생존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육체와 정신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할 수 있게 되는데, 홉스는 그러한 자연상태 하에
서 개인이 갖고 있는 권리를 자연권(right of nature)이라고 부른다.27)
홉스는 자연상태 하에서 자연권을 보유한 개인들 사이에 발생하는 투쟁의 가장 중요한 원인들로서 경
쟁(competition), 명예욕(glory), 상호불신(diffidence) 등 세 가지를 제시한다.28) 이 원인들을 구체적 예를
들어서 살펴보면,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가축을 얻고 인간을 서로 노예로 만들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과
정에서 서로 투쟁한다. 또한 인간은 남이 자신을 경멸하거나 과소평가할 경우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
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명예가 훼손되었다고 판단될 때에는 서로 싸우게 된다.
마지막으로 또 다른 분쟁의 원인은 인간 상호 간의 불신이다.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서로에 대한 공포
심 때문에 어느 누구도 자신의 생존과 안전에 대해서 안심할 수 없다. 따라서 방어적으로 속수무책으로
앉아 있다가는 인간은 자신의 생존마저도 지킬 수 없다. 만약 누군가가 자신의 방어를 위하여 갑옷과
칼로 무장하고 먼 길을 나섰을 때, 다른 사람은 이 사람이 단순히 자기 방어를 위하여 무장했다고 믿지
않을 것이라고 홉스는 주장한다. 결국 자신의 방어 의도에서 이루어진 무장이 상대방에게는 공격적으로
비추어져서, 이러한 행위는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똑 같이 무장을 하게끔 유도하여 인간관계는 자연상
태에서 이러한 불신의 늪에서 헤어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불신에서 생겨나는 딜레마는 국제정치에서 안보딜레머(security dilemma)라는 개념으로 발전된
다. 만약 어떤 국가가 방어적인 목적으로 군비를 증강한다고 하면, 이 국가가 이 무기를 방어용이라고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상대 국가는 그 무기가 방어적인 목적을 갖는 것으로 확신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무기란 언제든지 공격용 무기로 변하여 상대 국가의 안전을 위협하는 데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
다. 따라서 한 국가의 무기 증강에 대처하여 다른 국가도 군비를 증강함으로써 두 국가 사이에 군비경
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여기서 안보딜레머는 한 국가의 안보를 증가시키기 위해 취해지는 군비의 증강
25) Ibid., ch. 13, p. 187.
26) Francois Tricaud, "Hobbes's Conception of the State of Nature," in G. A. J. Rogers and Alan Ryan
(eds.), Perspectives on Thomas Hobbes (Oxford: Clarendon Press, 1988), p. 108.
27) Hobbes, Leviathan, ch. 14, p. 189.
28) Ibid., ch. 13, p. 185.
6
이 상대 국가의 군비 증강을 자극함으로써 자신의 안보를 오히려 위태롭게 만드는 상황이 유발되는 데
에서 오는 딜레머를 설명하기 위해 발전된 개념이다. 이 개념 역시 홉스의 자연상태 하에서 인간 사이
에 발생하는 상호불신에서 그 단초를 발견하고 있다.
이러한 상호불신, 경쟁, 명예욕으로 인하여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전개되는 홉스의 자연상태는
바로 전쟁상태이다. 그러나 이 자연상태는 인간이 매일 쉬지 않고 싸운다는 의미에서의 전쟁상태는 아
니다. 자연상태 하에서는 인간이 서로 싸우지 않겠다는 확신을 가질 수 없고, 전쟁을 막을 수 있는 어떠
한 외적 조건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언젠가는 전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에서 자연상태는 전
쟁상태와 같은 것이다. 이러한 전쟁상태 하에서 인간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과 자신의 창의력이 제공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하여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상황
이 계속된다면 인간은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신변의 안전을 확보하는 데 모두 다 써버려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를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은 산업, 문화,
주택, 예술 등 자신의 생활에 유용한 어느 것도 발전시킬 수 없다.
그런데 이러한 전쟁상태 하에서 인간이 무엇보다도 견딜 수 없는 것은 인간이 갑작스럽게 비명횡사할
수 있는 위험에 끊임없이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홉스에 따르면 인간은 과거의 도덕주의자들이 말한
지선(至善, summum bonum)에 따라서 행동하지 않는다. 인간의 삶이 이러한 지선(至善)에 의해 질서를
부여받지 못하면, 결국 최고의 악(至惡, summum malum)을 피하고자 하는 데에서 그 해결책이 찾아져
야 한다.29)
최고의 선의 존재를 부정하는 홉스는 인간 본성의 가장 중요한 측면을 인간이 추구하는 욕망에서 발견
하고, 이러한 인간에게 있어서 행복은 어떤 욕구를 일시적으로 충족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욕구를 계속해서 충족시킬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있다고 본다.30) 예를 들어 인간은 동물과 달리 순간의
배고픔만을 충족시키는 데 만족하지 않고 미래의 배고픔에 대해서도 우려한다.31) 미래의 또 다른 목적
을 위해 단식투쟁을 수단으로 이용하는 동물은 인간뿐이다. 인간의 죽음은 이러한 욕망 추구의 끝을 의
미할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최고의 악인 갑작스러운 죽음을 피하기 위하여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악을 피하기 위하여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조치의 하나는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인간은 자신이 자유롭게 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겠지만, 다른 모든 사람을 죽이지 않는 한,
또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위협이 됨으로써 이러한 방법은 문제의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결국 서로를
죽이는 것이 죽음의 공포를 제거하기 위한 적절한 해결책이 못된다는 사실을 인간의 이성은 깨우치게
된다.
자연권과 달리 인간의 이성에 의해 포착될 수 있는 자연법(law of nature)의 존재를 홉스는 인정하고
있다. 자연법은 인간이 스스로의 생명을 파괴하고 생명 유지를 위한 수단을 방기하는 것을 막도록 하는
이성을 가진 인간이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원리이다.32) 또한 자연법은 인간이 평화를 유지할 수 있
29) Eric Voegelin, The New Science of Politics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52),
p. 182.
30) Hobbes, Leviathan, ch. 11, p. 161.
31) Strauss(1952), p. 9.
32) Ibid., ch. 14, p.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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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가능성이 있는 한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인간에게 가르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자연권을 행
사해서 자신의 생명을 지킬 것을 강조한다.33) 이처럼 자연법의 존재는 자연상태 하에서 발생하는 인간
들 사이의 투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완전한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34) 자연상태 하에서 개별 인간들이 생
존에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 대한 인식은 안전한 질서에 대한 각자의 입장에 따라서 다를 수밖에 없고,
또한 이미 지적한 바대로 인간들 사이에 존재하는 정신적, 육체적 평등성으로 인하여 어떠한 개인도 자
연법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다른 사람에게 강제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
에 자연법의 존재 그 자체가 자연상태를 극복할 수 있는 사회계약으로 인간들을 유도할 수 없다.35)
결국 전쟁상태의 극복은 자연상태 하의 인간 모두를 경외심에 떨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최고의 권력
이 형성되어, 이것이 공정한 심판관으로서 인간관계를 규제하고 조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자
신의 안전을 보호해줄 수 있는 최고의 권력을 창출하기 위하여 인간은 다른 사람 모두 똑 같이 한다는
전제 하에서 인간의 이성에 의해 포착되는 자연법(law of nature)의 도움을 받아, 자연상태 하에서 생명
의 보호를 위해 모든 수단의 동원이 허용되는 자연권(right of nature)의 일부를 포기하고, 죽음의 공포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 사회계약을 체결한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서 안되는 것은 홉스는 이 계약이 단순
히 계약서인 종이조각을 교환함으로써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 모두가 이 전쟁상태를 벗어나야
한다는 절박성에서 정서(情緖)상의 일대전환을 이룰 때 비로소 가능하다고 본다.36)
이렇게 성립된 국가는 대내외적 안전에 대한 적절한 판단력을 보유할 뿐만 아니라 자연상태 하에서 개
인들 사이의 분쟁의 원인이 되었던 명예욕과 종교적 교의에 대한 해석의 차이점들을 해소할 수 있는 권
한을 보유하게 된다.37) 이처럼 홉스의 국가는 국가 내부의 다원성을 인정하지 않는 일원적 모습을 띠게
된다. 이러한 국가의 모습은 나름대로의 국가이익을 독자적으로 정의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현실주의 국
제정치이론에서 제시되고 있는 국가의 모습과 일치한다.38)
그런데 홉스는 전쟁상태인 대내적 자연상태는 개인들 사이의 계약을 통하여 극복됨에도 불구하고, 이
러한 국가들 사이에는 전쟁상태가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한다.39) 바꾸어 말하면 계약을 통한 대내적 자
연상태의 극복이 대외적 자연상태를 재생산하는 역설을 낳는다. 이러한 대외적 자연상태인 무정부상태
하에서 국가들은 끊임없이 시기하고 항상 스파이를 통하여 서로를 감시하고 검투사처럼 무장한 상태로
언제든지 싸울 준비가 되어 있으며, 국경선에 무장한 병력을 배치함으로써 계속되는 전쟁상태에 있다고
홉스는 주장한다.
그러나 홉스는 국가들이 만들어내는 대외적 자연상태는 전쟁상태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 상태가
대내적 자연상태처럼 개인들에게 비참하지 않다고 주장한다.40) 왜냐하면 국가들은 검투사와 같이 무장
하여 군사력을 갖춤으로써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주민을 보호하고, 대내적으로 질서를 유지함으로써 주
민들로 하여금 이 국가의 영토 내에서 경제와 예술 활동 등과 같은 그들의 삶에 유용한 분야에 에너지
33) Ibid., ch. 14, p. 190.
34) Richard Tuck, Hobbes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89), p. 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