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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속의 韓民族史 探訪 후기 -삼국의 일본, 통신사의 일본, 현재의 일본- 화북중학교 김태훈 Ⅰ. 시작하기 전에 2014년 12월 24일 한민족사 탐방에 신청하다. 선정될 거란 생각이 없어서 그런지 교원자 격증 스캔이며 교장선생님 확인서 받는 것도 약간을 귀찮은 일이라는 마음으로 홈피에 신청 을 하며 며칠을 기다렸다. 12월 29일 저녁 7시 13분 선정되었다는 문자를 받다. 저녁에 문자를 받고는 ‘기쁜 마음 과 함께 참가비를 내야할까? 교장선생님에게 다시 이야기해야 하네’. 뭐 그런 마음을 가지 고 다음날. 참가비 내고 교장선생님에게 말씀드리고 방학 중 복무정리를 하고 있다. 1월 17일 여행 가이드로부터 몇 통의 문자를 받고 짐을 꾸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일본 이 대구보다 얼마나 더 추운지 더 따뜻한지’ 알 수 없는 나로서는 그저 이것저것 캐리어에 옷을 구겨 넣을 수 밖에 없다. 밤이 되니 가기 싫다는 마음이 막 올라왔지만 신청비와 기차 표, 버스값이 아깝다는 생각에 잠이 들었다. 1월 18일 아침 KTX에 몸을 실고 ‘6일동안 어떻게 지내나’? 보통의 연수처럼 강의듣고 설명듣고 쉬는 시간에는 어색하니 앉아 있다가 식사시간에 아는 사람 하나 없이 밥 먹는 그 림이 그려지니 가슴이 답답해진다. 오후 강의는 제대로 들을 수나 있을까? 배타고 어떻게 일본가나? 뭐 그런 것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Ⅱ. 탐방이 시작되다. 1. 부산에서 롯데백화점 1층을 찾고 또 찾는다. 분명 지하1층에서 올라왔는데 1층엔 아무도 없다. 정 문 1층을 찾아나선다. 탐방이 시작된 것이다. 빙글빙글 돌다 밖으로 나오니 어깨띠를 두른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분명 저 사람들이다. 찾아가니 다시 어디론가 가라고 하고 다시 가니 지하로 내려가라 해서 내려가니 내가 찾던 사람들이 나타났다. 아! 앞으로 일본에서도 계속 이럴꺼야. 어색한 마음으로 10층에서 시끄러운 가운데 이야기 듣고 명찰 목에 걸고 앉아 있으니 어! 아는 얼굴이 보인다. 임용시험 동기 여자 선생님이다. 기쁜 마음을 감추고 한참 대화하며 답사기간이 아주 어색하지는 않겠다는 작은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정대로 세분의 교수님들의 강의가 시작되었다. 내가 이전에 느꼈던 것보다는 귀에 잘 들어오기 시작했다. 백제와 일본, 조선통신사와 일본, 탐방할 일본 유적지와 우리나라에 대 한 말씀이 조금씩 머릿속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조금 더 희망이 커지기 시작했다. 교수님들 의 강의는 이전에 받았던 세권의 책의 주요내용을 다시 정리면서 사진과 함께 구조화된 말 씀이었다. 이 강의가 앞으로의 5일간의 답사방향이기에 그대로 따라가리라 믿었다. 강의가 끝나고 또 다시 탐방이 시작되었다. 식사장소를 찾는 것과 국제터미널을 찾는 것 은 어려운 탐방이 되었다. 컴컴해진 부산의 저녁은 보이지 않는 국제터미널을 찾기 어렵게 만들었다. 터미널을 찾는 길에 대학원에서 같이 수업 받았던 대구 선생님을 만나게 해주었 다. 어! 아는 사람이 두명이 된 것이다. 점점 기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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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 0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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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속의 韓民族史 探訪 후기

-삼국의 일본, 통신사의 일본, 현재의 일본-

화북중학교 김태훈

Ⅰ. 시작하기 전에

2014년 12월 24일 한민족사 탐방에 신청하다. 선정될 거란 생각이 없어서 그런지 교원자

격증 스캔이며 교장선생님 확인서 받는 것도 약간을 귀찮은 일이라는 마음으로 홈피에 신청

을 하며 며칠을 기다렸다.

12월 29일 저녁 7시 13분 선정되었다는 문자를 받다. 저녁에 문자를 받고는 ‘기쁜 마음

과 함께 참가비를 내야할까? 교장선생님에게 다시 이야기해야 하네’. 뭐 그런 마음을 가지

고 다음날. 참가비 내고 교장선생님에게 말씀드리고 방학 중 복무정리를 하고 있다.

1월 17일 여행 가이드로부터 몇 통의 문자를 받고 짐을 꾸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일본

이 대구보다 얼마나 더 추운지 더 따뜻한지’ 알 수 없는 나로서는 그저 이것저것 캐리어에

옷을 구겨 넣을 수 밖에 없다. 밤이 되니 가기 싫다는 마음이 막 올라왔지만 신청비와 기차

표, 버스값이 아깝다는 생각에 잠이 들었다.

1월 18일 아침 KTX에 몸을 실고 ‘6일동안 어떻게 지내나’? 보통의 연수처럼 강의듣고

설명듣고 쉬는 시간에는 어색하니 앉아 있다가 식사시간에 아는 사람 하나 없이 밥 먹는 그

림이 그려지니 가슴이 답답해진다. 오후 강의는 제대로 들을 수나 있을까? 배타고 어떻게

일본가나? 뭐 그런 것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Ⅱ. 탐방이 시작되다.

1. 부산에서

롯데백화점 1층을 찾고 또 찾는다. 분명 지하1층에서 올라왔는데 1층엔 아무도 없다. 정

문 1층을 찾아나선다. 탐방이 시작된 것이다. 빙글빙글 돌다 밖으로 나오니 어깨띠를 두른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분명 저 사람들이다. 찾아가니 다시 어디론가 가라고 하고 다시

가니 지하로 내려가라 해서 내려가니 내가 찾던 사람들이 나타났다. 아! 앞으로 일본에서도

계속 이럴꺼야.

어색한 마음으로 10층에서 시끄러운 가운데 이야기 듣고 명찰 목에 걸고 앉아 있으니 어!

아는 얼굴이 보인다. 임용시험 동기 여자 선생님이다. 기쁜 마음을 감추고 한참 대화하며

답사기간이 아주 어색하지는 않겠다는 작은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정대로 세분의 교수님들의 강의가 시작되었다. 내가 이전에 느꼈던 것보다는 귀에 잘

들어오기 시작했다. 백제와 일본, 조선통신사와 일본, 탐방할 일본 유적지와 우리나라에 대

한 말씀이 조금씩 머릿속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조금 더 희망이 커지기 시작했다. 교수님들

의 강의는 이전에 받았던 세권의 책의 주요내용을 다시 정리면서 사진과 함께 구조화된 말

씀이었다. 이 강의가 앞으로의 5일간의 답사방향이기에 그대로 따라가리라 믿었다.

강의가 끝나고 또 다시 탐방이 시작되었다. 식사장소를 찾는 것과 국제터미널을 찾는 것

은 어려운 탐방이 되었다. 컴컴해진 부산의 저녁은 보이지 않는 국제터미널을 찾기 어렵게

만들었다. 터미널을 찾는 길에 대학원에서 같이 수업 받았던 대구 선생님을 만나게 해주었

다. 어! 아는 사람이 두명이 된 것이다. 점점 기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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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산과 일본사이

배를 통해 이동하는 첫 번째 시간이 왔다. 이번 배는 다인실이라고 소개를 들었는데 몇인

실인지 몇 명이 사용하는지는 정확하게는 듣지 못했다. 어색하게 다인실에 들어가보니 두명

의 선생님이 계셨다. 그리고 한분의 선생님이 더 들어오셨다. 한참동안 아무도 들어오지 않

아서 네 명이라는 생각하는 순간 세 분이 더 들어오시고 인사라도 해야하냐하는 순간 두 분

이 들어오셨다. 다인실이 꽉차기 시작했다. 인사하고 이야기할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나중

에 알게 된 것이지만 모든 선생님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대화없이 책을 읽거나 밖에

나가 사진을 찍거나 다른 방에 있는 선생님들을 만나기 시작하며 안에 앉아 있으면 어색하

고 막상 나가면 할 일없는 그런 시간이 시작되었다. 아직 저녁 7시인데. 잘 시간은 한참 남

았는데,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방법은 독서뿐이다. 조선일보에서 미리 보내준 세권의

책중에서 “백제는 일본의 기원인가”는 1부만 읽어본 상태라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한참을

읽다보니 잠오기 시작한다. 지금 잠들면 안 그래도 어색한데 더 어색할 것이라는 생각에 갑

판으로 나가 사진을 몇 장 찍고 돌아와서 다시 나가서 사진찍고 돌아와서 다시 나가기를 몇

번이나 반복한다. 5박 6일중에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다. 점점 정신이 없어져간다. 잠들었나

보다.

Ⅲ. 삼국의 일본

1. 다자이후

2일차 첫 번째 답사지. 그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다자이후. 과거에는 한반도로 진출하

거나 한반도에서 넘어올 경우 첫발을 내딛어야 하는 곳이기에 넓은 관청이 있었다던데. 지

금은 관청이었음을 알려주는 돌 그리고 비석들만이 남아있다.

이곳이 나․당이 일본을 침입에 대비하면서 조선통신사의 첫 번째 방문지라고 느끼기에는

주변이 보이지 않았다. 주변이 잘 보인다면 좀 더 그 느낌을 살릴 수 있을 거란 마음을 가

지고 그 곳을 돌아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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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후나야마 고분

3일차 첫 번째 답사지. 고등학생들의 동아시아사 교과서에서 강조하던 전방후원분의 모습

을 가지고 있는 후나야마 고분. 그곳에서의 서정석 선생님의 설명을 통해서 그동안 내가 알

고 있던 일본과 삼국간의 관계가 약간은 무너졌다. 고대의 일본이 만들었던 것들이라고 하

면 대부분 백제 혹은 고구려 또는 신라가 전해준 것이다. 그래서 고대일본문화 유적은 백제

의 것이라고 생각하며 아이들에게도 이야기 해왔다. 하지만 이 고분은 달랐다. 물론 백제와

의 연결고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삼국시대 문화와는 다른 것이었다. 어쩌면 순수

한 일본 것이었다. 내 머릿속의 “삼국의 일본”이 아니라 “일본의 일본문화”인 것이다.

짧은 지식은 얇은 상상과 생각만을 가지게 한다. 깊은 지식은 풍부한 상상과 다양한 생각을

만들어낼 수 있다. 후나야마 고분은 일본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가지게 한 계기가 되었다.

고맙다. 후나야마 고분!

3. 규슈 국립박물관

3일차 두 번째 답사지. 일본에서 국립박물관을 만날 수 있다. 그것도 칠지도와 함께. 이

제는 친해진 3호차 선생님들의 공통된 의견은 우리가 칠지도의 원본을 만난다는 사실은 우

리의 일본 탐방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 될 것이다. 칠지도를 만나는 것은 탐방 전에는 몰

랐던 사실이다. 1월 18일 오후 설명에서 알게 된 것이라서 더욱 기대를 가지게 된다. 아마

도 “삼국의 일본”이라는 말과 어울리는 유물이 아닐 까 한다. 국립박물관에서 모두의 마

음은 칠지도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특별전시관 이전에 일반전시관을 먼저 둘러보니 점점

집중력이 떨어진다. 마치 우리의 국립박물관에서의 모습처럼 절반이 미치기 전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다. 지적 호기심의 부족을 자책하면서 칠지도로 향한다. 어떤 유물 주변으로 사

람들이 둘러싸고 있다. 칠지도이다. 가까이 가서 보았다. 근데 이건 뭐지? 사진으로 보았던

칠지도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생각보다 길었고 생각만큼 우와!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

지적호기심과 역사적 상상력이 아직 부족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고맙다. 칠지도!

4. 도다이지

4일차 아침. 첫 번째 보다 훨씬 좋은 선박에서 잠을 자고 나온 우리가 향한 답사지. 그것

은 도다이지이다. 원래 일정에는 없던 곳인데 운영진과 교수님의 결정으로 그곳으로 가게

되었단다. 첫날 배에서 어색함을 건디기 위해 읽었던 김현구 선생님의 책에서 봤던 그곳이

다. 도다이지는 “삼국의 일본”과 “일본의 일본”이 함께 있는 곳이었다. 불국사 설계를

통해 건설하였지만 단일 목조건물로는 세계최대이며 삼국의 불상의 영향을 받았지만 세계최

대의 실내불상을 모시고 있다. 건물과 사람을 함께 사진으로 담기가 어려워서 한번 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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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를 느낄 수 있다. 그곳엔 불상, 건물이외에 사슴이 있었다. 반갑다! 사슴.

5. 아스카테라, 이시부타이, 호류지, 후지노키 고분, 고류지

4일차 오후 답사지. 5일차 오전 답사지 1월 21일(수) 점심식사 이후는 “삼국의 일본”의

연속이었다. 왕흥사를 모델로 지은 사찰, 백제계 소가노우마코의 무덤, 삼국시대 문화의 종

합 사찰, 한반도 유물과 유사한 부장품이 나온 고분들까지. 돌아다니다 보면 일본 간판과

일본말을 듣지 않는다면 자칫 우리의 고대유적지에 온 듯한 착각이 잠시 들기도 한다. 특히

유물을 보고 있으면 더욱더 그런 생각을 들게 만든다. 하지만 그런 착각을 금세 깨뜨리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유적지를 관리하는 일본인의 자세이다. 그 말투와 행동을 보고 유

물과 유적을 보면 우리와 다른 그들의 문화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Ⅳ. 통신사의 일본

1. 이삼평 도예지

답사의 안내자이신 손승철 선생님은 통신사를 설명하시면서 임진왜란을 일본과 조선이 불

구대천의 원수가 된 시기로 분류하셨다. 공존이 파괴된 그 시기. 그 시절에 일본과 한국과

는 어떤 모습일까? 그 답은 2일차 두 번째 답사지에서 나타난다.

임진왜란이 우리에게 주고 있는 두 번째 이미지인 도자기이다. 그 도자기를 만들어낸 도

공들. 그 도공의 후손들이 일본에 살고 있다. 도조 이삼평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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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은 일본의 침입, 살육, 파괴, 수탈, 유린이란 단어만 떠올리게 하는 침략이다.

그 수탈중에서 그 중심에 서있는 도자기. 일본의 도자기 발전의 시작점이 바로 임진왜란이

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일종의 분노가 나타난다. ‘왜 일본은 남의 것을 빼앗아 가서

저렇게 잘 살아가는 것이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아 저 일본은?’. 뭐, 그런 불만과 분

노가 있었다. 하지만 이삼평의 후손을 보고 나서는 조금은 그런 마음이 줄어들었다. 일본의

규슈지역에서 조선인의 후손들이 살아가고 있으며 그의 조상이 하던 일을 지속시켜 도자기

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빼앗아간 도공들이 일본 도자기를 발전시켰

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일본은 노력해왔다는 것이다. 조선은 그런 도공들을 그 이전부터 훨

씬 더 많이 보유하고 있었지만 일본정부처럼 도공들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도

자기를 발전시키기 어려운 일본의 선택. 도자기를 발전시키기 쉬운 조선의 조건. 결과는 일

본도자기 발전이 눈부시다는 것이다. 일본 도자기의 원조가 조선의 도공이라는 것을 자랑하

면서 일본의 수탈을 비난만 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감사합니다! 이삼평의 후손들.

2. 규슈의 나고야 성터와 박물관

이삼평 도예지 견학이후 찾은 곳이 나고야 성터이다. 규슈의 나고야 성터는 임진왜란을

일으키기 위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만든 대조선 전진기지이다. 히데요시는 섬나라에서 벗

어나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한 자신의 희망(?)을 담아 이 성을 만들었을 것이다. 일본의 혼

슈지방과 시코쿠 지방에서 넘어올 수 있고 조선으로 건너가기 쉬운 곳. 그곳에서 성을 만들

었다. 하지만 지금 그곳에는 과거의 나고야 성이 있었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만

남아 있다. 전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지 못한 히데요시처럼 도쿠가와 막부시기 무너지고

말았다. 정당성을 갖추지 못한 전쟁과 그 정권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린다. 비록 현재의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 히데요시라고 하더라도 그 전쟁의 정당성은 갖추고 있지 못

하다는 걸 이 나고야 성터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과 일본 모두 삐뚤어지지 않는 역사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 마음을 담아서 만들어진 곳이 나고야 성터의 박물관이었다.

그곳에는 한일교류를 위한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히데요시가 침략을 목적으로 만든

자리위에 한일교류의 유물들을 임진왜란과 함께 전시한 박물관. 아마도 그곳이 한일관계를

다시 세우는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올바른 한일관계 역사 수립을 위해 고맙습

니다! 나고야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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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청일강화기념관

3일차 마지막 답사지. “통신사의 일본”이 끝나는 곳이다. 이 답사지에 보이는 유적에서

는 더 이상 정상적인 한일관계를 기대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일본은 통신사라는 소통의 역사

를 끝내고 제국주의적 침략의 역사를 시작한다. 그것을 위해 일어난 청․일전쟁. 그 전쟁을

승리한 일본이 이곳 시모노세키에서 조약을 체결한다. 청국 대표와 일본대표는 조선땅에서

일어난 전쟁의 결과를 두고 자신들의 조약을 맺고 말았다. 조선을 식민지하려는 일본역사가

첫 번째 장애물을 뛰어넘는 순간이다. 조선의 생각과 의지와 상관없이 말이다. 일본은 조선

인에게 슬픈 역사지역이 많다. 그 중 이 시모노세키의 청일강화기념관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슬픔을 가져다 준 곳이다. 슬프다! 시모노세키.

4. 이조성과 오사카성

5일차 오후와 마지막날 오전 답사지. 답사가 끝날 무력 만날 수 있었던 일본의 두 개의

성. 이조성과 오사카성이다. 우리가 서울에 있는 궁궐을 보다보면 궁궐이 다 똑같은 궁궐로

보이기도한다. 조선의 궁궐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라면 그렇게 생각되기 쉽다. 그래

서 일본의 성에 대한 지식이 없던 나로서는 두 개의 성이 비슷비슷할거란 생각으로 다가갔

다. 하지만 두 개의 성은 일본의 성이라는 것 외는 공통점을 쉽게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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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려 차이점을 찾아내는 것이 훨씬 수월했다. 우선 성을 건축한 주체들의 조선에 대한 생각

이 달랐다. 이조성의 도쿠가와는 조선과 통신을 원했던 인물, 오사카성의 도요토미는 침략

을 원했던 인물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조성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마음을 전달받고 싶었

다. 다음으로 현재 두 성의 상태이다. 이조성은 예전의 모습을 많이 담아내고 있었다. 신발

을 벗고 줄서서 관람해야 했고 주변의 정원이 아름답게 만들어져 있다. 조선과 通하길 원했

던 도쿠가와 막부시대. 그 시대와 조금이라도 通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난다. 이에

비해 오사카성은 외부는 일본예전의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외부역시 예전 것들을 유지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내부로 들어가면 히데요시 시대의 흔적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굳이 찾아낸다면 층층이 전시된 유물과 그림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박물관에서 찾아내

야 하는 것이지 성안에서 발견하는 것이 그리 좋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규슈의 나고야 성터

처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만든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조선과 通하는 것을 원치 않

았던 히데요시의 마음처럼 그의 시대와 通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소통이 끊어진 그 주인

처럼 우리도 소통하기 힘들었다.

Ⅴ. 현재의 일본

1. 금강학원

이번 탐방을 마지막 코스는 현재의 일본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현재 재일교포 학생들이

생활하고 있는 학교. 바로 금강학원이다. 내게 재일교포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차

별이다. 또 차별받고 있기에 약간은 슬프기도 하고 안되었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마음을 다른 선생님들도 많이 가지고 있는 듯 했다. 그래서 그런지 금강학

원을 방문하기 전에 차별받는 것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도록 이야기 들었다. 이유는 그 아

이들이 그런 질문으로 상처를 받는 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우리는 궁금하기도 하고 불쌍하

기도 한 마음에 그런 질문을 하지만 정작 더 중요한 것은 그 아이들의 마음이었다. 어린 학

생들이 상처받을 수 있다는 생각보단 내 궁금함과 감정을 앞세웠던 것이다. 또한 질문을 하

는 교사들을 한국사회에서 살고 있는 기성세대이며 질문을 받는 학생들은 일본에서 교육받

고 있는 어린 청소년들이다. 그런 질문 이전에 그런 사회를 만들지 않게 하는 것이 기성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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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 몫인데도 불구하고 상처받을 수 있는 질문과 궁금점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그 학생들

은 일본사회에서 일본문화속에서 한국문화를 조금씩 배우고 있는 개별주체라는 생각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재일교포문제 이전에 학생 개개인을 존중하는 모습을 먼저 갖추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일본을 바라볼 때도 같은 관점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2. 오사카

대구에서 탐방일정을 보고 가장 걱정했던 곳. 오사카 시내 자유여행이다. 도대체 무엇 때

문에 이런 일정이 들어있을까? ‘아저씨들을 괴롭히기 위함인가. 아니면 선물을 고르지 못

하는 사람들에게 선물 살 기회를 주는 것일까? 아니면 쇼핑과 관광을 좋아하시는 선생님들

의 요청때문일까?’ 온갖 불평과 불만을 가지고 있던 그 시간이 다가왔다. 오사카 성을 보

고 난 후 버스는 우리를 큰 카메라 건물앞에 내려두었다. 물론 버스안에서 3호차 가이드의

친절한 설명이 있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직 숙소로 돌아갈 버스시간표만 확인할

뿐이다. 근데 무려 3시간 이상 지난후에 숙소에 들어가는 버스가 온다는 것이다.‘어떻하

지, 어떻하지’. 방법은 3호차 남자 선생님들을 따라 다닐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실제로

그렇게 했다. 오사카에서 유명한 거리를 돌아다니는데 보이는 건 오직 “일본속의 한민족사

탐방” 선생님들 뿐이었다. 특히 내 눈에는 더욱 더 그러했다. 아니, 그 선생님들만 바라봐

야 했다. 다들 들어가는 면세점에 들어가 물건을 사고 나니 더욱 할 일이 없어졌다. 초조해

졌다. 비는 오고, 할 일은 없고. 사진도 다 찍은 것 같은데, 밥은 먹어야 하고. 아무도 식

당에 쉽게 들어가지 않고. 점점 더 초조해졌다. 줄기차게 선생님들을 따라다니고 저녁도 어

떻게 어떻게 해결하고 나니 그 유명하다는 거리의 간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본사람들도

조금씩은 보이기 시작했다. 한글도 보이기 시작하고 면세점도 보이기 시작하고 가계에서 일

하는 한국사람들도 보이고 우리탐방단이 아닌 다른 한국관광객도 보이기 시작했다. 이 거리

는 한국사람들이 많이 방문하기 때문에 초조하지 않게 관광할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저녁

식사후에 알게 되었다. 나의 불평불만과 초조함은 필요없던 것이다. 버스타는 곳까지 찾아

갈 능력만 갖추고 있으면 쉽게 “현재의 일본”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나의 작은 마

음씨가 한참이다 후회가 되고 있다. 지금의 일본을 많이 담을 수 있는 기회였는데 지나가

버린 것이다. 아쉽다! 오사카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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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유적지에서

유적지에서 만날 수 있는 일본은 좀 유별나다. 규슈 국립박물관에서 칠지도 촬영은 금지

되어있다. 우리나라 박물관에서도 사진은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립박물관은 일

본처럼 감시(?)하지 않는다. 두 명이 국보급 유물 주변을 떠나지 않는다. 그 두 분이 하는

일은 사진촬영여부를 지켜보는 것이다. 답답하고 짜증난다. 꼭 이렇게 해야 하는걸까? 박물

관을 나올 때 까지 난 다른 사진도 찍지 않았다. 왜? 짜증나서. 버스에서 난 또 이런 생각

을 했다. 유별나다. 꼭 이렇게 해야 하는걸까? 유별나다. 꼭 이렇게 해야 하는걸까? 그런데

이렇게 할 수도 있겠다. 이렇게 할 수도 있겠다. 아! 일본은 이렇구나. 규슈박물관만 그런

게 아니었다. 국보수준으로 지정해 놓은 곳은 다 그렇게 감시(?)하고 있었으니까. 그들의

생각이나 마음을 조금이라고 이해해보고자 한다.

국보급 유적지는 정면에서 촬영이 금지되어 있고 유적지 안에 일체의 전기를 사용하지도

Page 10: 日本속의 韓民族史 探訪 후기 - 한민족사탐방tour.chosun.com/review/201501-kth.pdf日本속의 韓民族史 探訪 후기-삼국의 일본, 통신사의 일본, 현재의

않고 있다.‘이건 뭘까? 왜 그러지’ 하다가 든 생각. 아, 이것이 이들이 유적지를 관리하

는 기본자세이며 소중하다고 생각되는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인 것이다. ‘에이 뭐 그 사진

찍는다고 뭐가 변하나 혹은 전기를 써서 환하게 유물을 보여주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가

아니라 소중한 것은 소중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그들의 마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소중한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있는 우리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한다.

중요한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중요하게 다루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이 문화재가 존재하

는 이유는 외국인들에게 혹은 내국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켜서 온전히 그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는 아닐까 한다. 짜증내지 말고 배우

자!

Ⅵ. 간사이공항을 나오며

모든 일정을 다 마쳤다. 출국을 위해 간사이 공항으로 향한다. 반드시 지나가야하는 공항

면세점. 거기서 마지막으로 긴 줄 행렬에 동참할 수 밖에 없었다. 면세점을 통과하면 정말

일본과도 이별이며 정들었던 3호차 선생님들과도 이별이다. 이별하면 슬퍼할 줄 알았는데

막상 내 앞에 놓인 것은 대구로 돌아가는 일이다. 인천에 내리면 저녁8시쯤일 것이고 예약

한 버스를 타고 대구에 도착하면 새벽1시는 되는데. 내 앞에 놓인 일이 행복하고 신기하고

반성했던 일본을 잊어버리게 만든다. 3시간 반 넘게 졸다 도착한 대구. 대구가 이토록 반가

운 걸 보면 도착하면서 일본을 잊어버렸다. 미치도록 미안하다! 일본탐방. 그래도 반갑다!

대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