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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00102 결혼 그리고 한약사 결혼, 따뜻한 방에서 잠이라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내와 가족이 생겼다. 그리고 첫 딸 미경 탄생 너무도 순한 둘째딸 유경, 애기들 서이나 있고 좋았지. 아내의 권유로 시작한 한약업사 공부, 한약사의 꿈을 이루다. 김초당 한약방, 드디어 개업 인생 제2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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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제2막 결혼 결혼, 따뜻한방에서잠이라도잘수있을것같았다 ... · 2018-01-19 · 10200102 결혼 그리고 한약사 결혼,...

Jun 2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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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00102

결혼

그리고

한약사

결혼, 따뜻한 방에서 잠이라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내와 가족이 생겼다. 그리고 첫 딸 미경 탄생

너무도 순한 둘째딸 유경, 애기들 서이나 있고 좋았지.

아내의 권유로 시작한 한약업사 공부, 한약사의 꿈을 이루다.

김초당 한약방, 드디어 개업

인생 제2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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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따뜻한 방에서 잠이라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반드시 취업을 해보겠다는 목적으로 떠난 무전여행은 아니었으나 장성에서 구까

지의 짧지만 긴 여정의 무전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고향은 달라진 게 하나도 없었다. 큰집

에서 살아보고자 갔더니 한 몸 누일 방도 없는 상황이라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어려운 형

편에 아무도 결혼에 해 신경써줄 여력이 없는 상황에서 집안의 어른이 박래욱을 가엽게

생각하여 결혼을 주선해 주었다. 무남독녀 외동딸이라고 했다. 그 집으로 장가를 가면 동

생 래엽과 따뜻한 방에서 잠이라도 잘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따뜻한 밥이라도 먹을 수 있

을 것만 같았다.

●●

도로 와서 시골 큰 집이가 살라고 했는디 가난하지 집도 없지 방도 없지. 집은 있어

도 변소간에다가 방 들여서 큰 집이서 어렵게 사니까 그냥 동생이고 큰집 동생이고 부들부들

하니 마치 강아지들맨치 사는 것처럼 사는 것이 아녀. 또 나는 누가 좋아라고 하는 사람이 없

지 않겄어. 할머니라도 살아계셨으믄 할거인지 할머니알라 돌아가시고 인자 큰 아버지 큰 엄

처가妻家에서

시작한신접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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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누가 거시기를 하겄어. 또 가난한디. 아 그러다가 나 전남제사로 취직시켜 줄라고 한 박

연구 씨라고 면장하신 분이여. 애기엄마가 거그서 편물을 짰어. 거가 면소재지니까 점방하나

얻어가지고 편물을 짜고 있는데 그 양반이 봤을 때 내가 부모도 없이 짠하니까 어떻게 장개를

보내야 쓰겄다 그 양반만 가져 큰 아버지는 생각도 없고. 큰 집도 생각도 없고. 그 양반이 가지

면서 인자 우리 집사람보다가 살살 이야기 하는 것이여. 이야기를 하다가 나중에 인자 장인장

모한테도 말을 한디 나는 장개를 가야겄어. 결혼을 왜? 잠잘디라도 우선 마련하기 위해서. 근

게 무남독녀 외동딸이라고 한게 그집 가믄 잠이라도 잘 수 있겄다. 내 동생하고 같이 살 수 있

지 않겄냐. 그래서 내가 그리 결혼을 해야겄다. 나 있고 없는거 배우고 안배우고도 상관없이

어떻게든 그 집 가서 살아야 겄다. 잠을 자야겄다. 따숩게 밥이라도 먹어야겄다. 그런 생각 때

문에 그리 결혼할라고 작정을 했지.

●●

처갓집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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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9월 3일 화요일 맑음

아침 첫 버스로 진원면 평촌 집에 들 다. 간단히 도구를 챙기고는 덕천

연구 아제집에 들 다. 또 혼사 이야기가 나왔다. 홍양의 외삼촌인 강씨

(광주 서사)가 연구아제에게 오셔서 그 혼사가 되도록 부탁해 놓고 하

루저녁 자고 가셨다고 한다. 키티는 장성 경유 광주로 왔다. 전남중학교

에서 래엽을 조퇴 시켜서 외숙과 같이 방림동 은자집을 물어서 찾아갔

다. 외숙은 가시고 키티는 유동서 이삿짐을 옮겼다. (밤에) 유동 큰방 아

주머니 말이 전남제사 임종숙과 학동 4/8+2 1/9모가 수 차례 왔고 임종

숙 남편도 왔다고 한다. 은자집으로 이삿짐을 옮겨놓고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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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10월 22일 화요일 맑음

인간에게는 괴로움은 지나치게 노는 시간이 허용될 때이다. 혼삿날을 받

아놓고는 괴로운 심사를 이루 말할 수 없는 순간이다. 모든 것을 잊고 새

로운 희망을 가져 보려고 애를 써 보아도 염세증에 걸린 낡아빠진 내 인

생에는 또 다음과 같은 비감에 젖었다. 인간에게는 어버이가 계신다. 그

리고 모든 동물, 식물에게도 어버이가 계신다. 그들은 어버이를 항구적으

로 모신다. 그 중에서도 인간의 어버이는 아들딸의 혼사때는 제2의 인생

의 교량적인 역할을 해 줄 부모님이시다. 그러나 키티에게는 그 역을 도

맡으실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다. 부모님을 신할 친척이라면 키티는 백

부님이 한 분 계신다. 그러나 키티의 백부는 그런 성의도 없다. 재벌이 없

다손치더라도 여자들의 규모로 짜내어 놓은 한복, 신 한 켤레 조끼 한 감

도 마련해 놓지 않았다. 또 서러운 비애는 전신을 싸늘하게 한다. 눈물이

복 받쳐 흐른다. 왜 울어야 하나? 서러운 혼사 속에 내일도 모레도 얼마나

큰 충격으로 마음을 요동시킬까 생각하니 더욱더 서럽다. 그래도 키티는

인간의 사인 혼사는 경사로 인정한다. 울고불고 눈물 속에서 세월을 보

내느니 보다는 웃고 지내려 했으나 임박한 혼사일을 결정해놓고는 크나

큰 고역이 아닐 수 없다. 한복은 빌려 입고 결혼을 해. 신은 헌 구두를 신

고 결혼하겠어. 생각하면 할수록 내 인생의 백열함도 아닌데 이다지도 허

무한 혼사에 비할까

------------------------------- * -------------------------------

그러기에 오후에는 잡념을 버리고저 작업에 임했다. 낡아빠진 아궁이를

헐고 초벽을 하기 시작했다. 연이나 토수 질은 키티가 한다. 애송이 토수

라도 작업은 착착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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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가족이 생겼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사랑이 무르익을 무렵, 어쩌다 보니 속도위반을 하고 말았

다. 장인장모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아무래도 고아라는 사실과 가진 재산이 없다는 사실

이 마음에 걸렸겠지만 사람 됨됨이를 믿고 승낙을 해주셨다. 그런 와중에 동생 래엽도 함

께 가야한다는 사실을 말 드렸는데 장인장모님은 식구가 늘어나는 것을 오히려 반가워

해 주셨다. 심지어 결혼 후에는 어린 동생을 두 분께서 매일 데리고 주무시기까지 하 다.

박래욱은 이제 아내를 비롯해서 부모님을 얻은 셈이었다. 동생에 한 걱정도 덜고 세상

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했다.

●●

나중에 인자 말이 어느 정도 무르익어갔을 때 이 사람을 그저 내가 지금 아쉬운 입

장이여. 이 사람이 싫어하믄 어쩔꼬. 근게 아무래도 속도위반이 되지. 속도위반이 되야 가지

고 인자 그쪽에서는 어느 정도 마음을 줘 불고 내한테. 그래놓고는 장모님한테 거리가 멀지

않으니까 나 살아서 컸든 고향하고 처갓집하고 들 넘언게 다 알아 소식을. 내용은 전부 아는

데 우리 장모님이 봤을 때 사람 생김새나 듬직하니 모든 것이 우리 사윗감으로는 충분한데 부

모가 안계시지 재산도 없지 직장도 없지. 근게 누가 딸을 줄라고 하겄어 달갑지 않게. 그런판

에 장모님한테 하는 말이 나 여그서 살아야겄습니다. 그런디 누가 좀 그러제 그런디 우선 우

리 장모님은 우선 짠한 마음으로 부모도 없이 그런게. 반승락 하시기로 한단 말이여. 그란디

모습을 본 게 참담한 모습이여. 이렇게 해서 딸을 줘야 하냐 말아야 하냐 그 계산속이여. 반승

락이라도 받고 어 나간 것이제 내가. 나중에 며칠이나 있다가 결혼날짜라도 받아가지고 동

생한테 처갓집도 가서 동생하고 같이 와야겄소. 이왕 딸이 이렇게 되었응게 마지못해서 받아

준 거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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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수 준비는 친척들의 도움을 받았다

결혼 소식도 전하고 결혼 준비에 한 도움도 청할 겸해서 외가 식구들을 찾았다. 이

모님은 이모의 아들을 결혼시킬 때 쓰려고 준비해둔 두루마기를 내주셨다. 아들이 골수암

에 걸려 곧 죽을 것 같으니 그 옷은 어차피 사용하지 못할 것이라며 박래욱의 결혼식 때

입으라고 내 주셨다. 옷을 내주는 이모님의 마음은 오죽 아프셨겠는가……. 외숙모 두 분

도 여름 한복과 겨울 한복을 챙겨 주셨다. 고모님도 옷 한 벌 챙겨주셨으나 큰집에서는 어

려운 형편 때문이었을까 아무 것도 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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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할라고 할 때 옷이 한 벌 있어 누가 나를 양말을 사주기를 하겄어. 그 목은

외갓집 편에 보면 따로 해 놓은 게 있어. 날을 받아놓고 한복이 있어 뭐 신발이 있어 그런게 이

모집으로 쫓아갔제. 쫓아갔더니 이모님보다 나 장개 갈라고 합니다. 어떻게 그 전에는 논마지

기라도 있을 때 결혼을 해서 니 살림이라도 챙겨야 한다. 외갓집에서는 그렇고 할 판인디. 내

가 장개 간다고 하니까 깜짝 반가워하면서 좋아라 하시더라고. 이모가 나 입고 갈 두루매기

한복을 해줄란다고. 이모가 막 울어. 너 같은 귀동이가 아부지 어머니 계실 때는 부잣집 귀동

인디 이러코 천덕꾸러기가 되었냐 그 말이여. 그란디 나보다 두 살 더 먹은 형이 있는디 골다

공증으로 아퍼. 골수암으로. 아파서 드러눠서 니 형 앞으로 마련해 놨는디 느 형은 죽을 것 같

고 근게 너나 해 입고 가라고 그놈을 내주더라고 한복 두루매기를. 그란디 작은 이모가 그 마

을에 산디 바느질을 잘해. 작은 이모가 오셨제. 바느질은 작은 이모가 하고. 고모집도 외갓집

엘 가. 거그서 장성서 외갓집을 죽 간디.

산소를 가서 막 울어 내가. 며칟날 장개갑니다. 아버지 어머니 보살펴 주십시오. 거그서 외갓

집을 가. 거그서 외갓집을 가는 길이니까. 외숙모보다가 큰외숙모 작은외숙모 다 거그서 사

셔. 이만저만해서 나 결혼합니다. 결혼하니까 함에다 넣을 한복 한 벌 썩만 사주시오. 누가 여

름 한복, 겨울 한복을 나눠서 사주란 얘기여. 내가 뻔뻔하지 내가 다 갚을랍니다. 근게 그 사람

들은 뭐 받을라고 한 것이 아니라 짠하니까 부모 없이 사니까. 그래가지고는 한 벌씩 해준다

고 해. 그래가지고 고모집을 갔어. 고모집 가서 나 한 벌만 주시오. 인자 함에다 넣을 것은

충 마련을 했지. 그래가지고 큰집을 갔지. 큰아버지는 뭐라해. 나 장개 간다고. 큰아버지가 왜

뭐라 하냐믄 큰집서는 암껏도 해줄 것도 없지. 또 내가 그 밑에다가 논을 어떻게 마련해놓은

것이 동네 앞에가 천이백 평이 있었어. 그것을 내가 가지고 가믄 큰집이가 암껏도 거시기하

고. 그래서 인자 큰집이서 마다한거여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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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10월 26일 토요일 구름

아침 일찍 장성군 서삼면 해평에 갔다. 혼사일이 결정되었다고 이모에게

말하고 한복 걱정을 했더니 작은 이모가 한복 한 벌. 큰 이모가 두루마기

안배를 담당하겠다고 손수 작은 이모님이 바느질까지 해준다고 하신다.

이모님 계셔서 의복 걱정이 해결되었다. 헌수 형은 지금도 아파서 자리

에 꼼짝 못하고 누워 있다.

----------------------------- * --------------------------------

작은 이모님이 며칠 학동 집에 갔더니 어머니가 돈을 받고자 시골 키티

백부 집에 가련다고 안 왔드냐고 묻는다. 채무는 갚고 결혼하라고 한다.

운명아 비켜라. 네가 간다. 이것은 삶의 넘쳐흐르는 의욕이지만, 아픔 앞

에는 그럴 용기도 박력도 없는가 보다. 흰 누에 같은 몸둥이를 궁 궁

누워있는 헌수 형의 모습이란 본인은 죽어야지 말이었으나 아직도 28세

청춘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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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10월 30일 수요일 맑음

아침에 일찍 집에 왔다.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식구들을 깨웠다. 집이

무서워서 백부님이 어려워서 뱅뱅 돌았으나 추근추근 말 하시는 백부

님 말 과 덕천서 27일에 백부님이 말 한 것과는 터무니없게 차이가

있다. 고로 키티는 백부님을 의심한다. 키티의 결혼을 무척 못마땅하게

생각하지 않나. 고로 그런 말을 하는 거 아니여. 그리고 키티의 심정이

괴로운 것을 더 좋아라고 생각치 않나. 오히려 키티가 집에 없는 것을 좋

아라고 생각할꺼야~!

이렇게 생각이 드니 백부님이 무척 밉다. 식후는 바쁜 추수기 모경기라

작업에 임했다. 백부님은 덕천 연구아재 입에서 혼사의 결정을 타협하

고, 덕촌 박만기 씨에게 사성을 보내줬다. 저녁을 먹을 무렵 택일까지

가져 왔다.

行 가 음 9月 28日 午時

入 納 時 음 9月 30日 午時

로 결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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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반지 한 돈이 유일한 패물

혼수 준비는 친척들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마련했다손 치더라도 예물로 신부에게 줄

금반지 하나라도 마련을 해야 했다. 급하게 논에 가서 동생하고 둘이서 나락을 마련하여

돈으로 팔고 금 한 돈값을 준비했다. 그것이 유일한 패물이었다.

●●

그래서 인제 큰 집이가 논이 한 이백 평 짜리가 욱에치를 날받아놓고 동생하고 둘

이 가서 타작을 해 홀태. 기계홀태도 아니고 요러케해서 홀태한디. 하루내 하니까 나락 석 섬

여섯 가마니 홀타서 그 동네 인자 한동네 사람 강세원이라고 한디 그 사람이 나락장사를 혀.

나락을 팔아다가 정미소에서 도정을 해서 팔고 팔고. 나하고 동창이여. 국민학교. 석 섬 줄 것

인게 두 섬 값만 더 보내주라고. 근디 그때 나락 한 섬 값이 금 한 돈 값이 돼. 그래서 금반지

닷 돈을 해가지고 요것은 현금이나 똑같거든 그래서 신부 우리 집사람 가락지 끼어줄 것을...

그러고서 결혼을...두 섬 값은 외상으로 하고 석 섬으로. 총 자본은 그것이여 그거 가지고 결혼

식을 했제. 큰아버지는 염치가

없어서 그러신지 어쩌신지 장개

가도 상객이 요객이라고 따라가

잖애. 근디 따라가지도 못하셔.

근게 당숙하고 우리 외갓집이

외숙하고 연구 씨라고 중매하신

양반. 아이 큰집에서 장개 가믄

하다못해 콩나물하고 막걸리라

도 있어야 한디 아무것도 없고

준비도 안하고 큰집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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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11월 6일 수요일 비

비아에 갔다. 백부님과 같이. 정미소에서 쌀을 싣고 場으로 갔다. 키티는

되쟁이를 같은 마을에 거주한 강재원에게 하려했으나, 비아에 거주한 되

쟁이가 정미소에서부터 쌀을 가져왔기에 재원 군에게는 부득불 안 되었

다. 쌀은 쉽게 매도되었다. 5 는 당 2200\円 남은 21되 945円으로

합계금은 11945円이 다. 촌놈에게는 많은 돈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매수해 간 쌀장수가 500円권의 지폐를 주었기에 포켓이 툭 불거지질 않

았다. 쌀을 매도하고 조금 있느라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키티. 다행스

러웠지? 우리는 광주로 왔다. 올가을 풍년들어 장가 갈려했던 마음 참

민요곡의 한줄기. 키티가 다가온 9월 28일. 결혼에 비키 위해 풍년든

금년에 쌀을 팔아 혼수감도 금반지도 구두도 샀다. 참으로 민요곡과는

어울리는 행사 다. 혼수감을 고르면서 이 옷감이면 신부가 맘에 들까?

반미소를 짖게. 앙등하는 물가고. 그러나 값싸게 매수했다. 이번 통령

선거 후 공공요금 외에 딴 물가는 7할이 껑충 뛰어 백부님에게 혼수감을

보내 놓고, 키티 팔배감 조끼감을 들고 통모리(水完里) 고모님 으로

왔다. 백부님이 보내주어서. 말해놓았든 두루마기 배를 보았다. 당목

warp에 무명 wert을 제직, 굽다란 배다 저런 것으로 두루마기 양단 팔배

조끼는 단추가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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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11월 13일, 박래욱 결혼하다

1963년 11월 13일, 결혼식을 올렸다. 부모님이 안 계신 결혼식이라 비록 초라하기는

하 을지라도 구색은 갖췄다. 신부 집에서 보내온 이바지 음식을 가지고 신부 집에서 온

손님들을 접했다. 큰집에서는 음식을 준비하지 않았다. 남들은 결혼식을 올리면 신행도

가고 한다지만 동생에게 책가방을 들게 하고 집에 있는 얼마 안 되는 짐을 꾸려 처갓집으

로 바로 떠났다. 박래욱은 그렇게 결혼을 했다.

●●

그래가지고 결혼을 했어. 1963년 11월 13일 거여. 해서 결혼

식을 딱 해서 한디 인자 거그서 이틀간 하고 신행이라고 하지 근행이라

고. 한디 명색이 처갓집이서는 석짝도 장만하고 인사옷도 장만해 가지고

는 구거리라고 큰집에 가서 인사드리고 뭐한디. 그저 그 사람 처갓집이서

오는 요객들을 그 석짝 가져온 거 그거 펴가지고 그 양반들 접을 하고

여그서 장만한 것이 없으니까 그런 식으로 해서 결혼을 해서 하고는 그

날 바로 그 즉시 바로 들만 건너믄 된 게 걸어서 도로 동생하고 뭐다 아야

책가방 들어라 책가방 들고 동생하고 싸 짊어지고 처갓집으로 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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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11월 12일 화요일 구름

어제 먹었던 보드라운 토란국이 생각난다. 고모님도 키티 식성을 알았는

지 오늘 아침도 사발에 수북이 두 그릇에 이 밥을 상에 올려놓았기에 거

뜬히 먹었다. 참으로 잘 먹어온 보드라운 토란국. 잊혀지질 않을 것 같군

요? 그리고 광주로 나왔다. 먼저 목욕을 했다. 금반지. 5돈 중 미수금,

500원을 주고 찾았다. 금값이 10일부터 1돈 중에 1300원이라나 키티는 6

일에 했기에 1000원으로 참 잘했지? 다행이야. 집으로 나오면서 김기현

군에게 ( 흥이발관) 이발을 했다. 김군도 내일 키티 결혼식인줄 알았는

지 장시간 정성스럽게 머리에 손질을 해놓아서 핸섬 Boy로 만들어 놓았

다. 그리고 집으로 와보았다. 백모는 배추를 씻고 백부는 윗방 도배를 하

고 경숙이가 와서 일하고 샘알떡이 서둘러 주고 있으며 아직 고모, 이모,

래숙, 희 등 아무도 딴 식구(친척)는 와있지 않다. 키티는 야래 논으로

가보았다. 나락을 중뱀이 1/3 가량 묶어서 가져가 버렸다. 알고 본즉 백

무님의 소행인줄 안다마는 어떤 방법은 없고 내일이 결혼식이고 본 즉,

이러쿵저러쿵 하고 싶지는 않기에 속만 썩고 있었다. 아무튼 결혼식이나

해 놓고는 쉽게 타조 해 버릴 작정이었다. 해가 뉘엿뉘엿할 무렵 고모님

과 래숙 송매형이 왔다. 밤중에 기다리시던 한복을 장만하시고 작은 이

모님이 오셨다. 한복을 입어본 즉, 몸에 잘 맞는다. 내 인생 처음으로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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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본 한복, 상하복에 다후다 안배는 융으로 양단 조끼에 은단추 5개가

유난히 반짝이고, 양단 팔배 가느다란 무명배에 안배는 하얀 명주배, 손

수 작은 이모님의 길쌈으로 지어 놓은 한복이 마음에 들었다. 청년들 평

촌 장정들이 키티를 초청키에 가보았다. 그것은 물어볼 것 없이 한잔 먹

자는 심산. 그것이 곧 댕기풀이 술을 내라는 것이다. 이 말이 나오기 전

에 자청 키티가 청년들을 자청하고 접하려 했더니 늦은 감을 미안스럽

게 생각하고 소주 1되에 토끼 한 마리를 잡아서 평촌 류용선 신혼방에서

이 집의 식구들에게 피해를 끼쳐가면서 10명 모인 청년들과 간소히 갈렸

다. 밤에는 12시가 넘었지만 졸음이 오지 않는다. 이것이 결혼 전의 동요

된 심정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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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11월 13일 수요일 맑음

새벽부터 잠이 깨어서 잠이 오질 않는다. 오늘을 어떻게 얼떨떨하는 심

정과 불안 속에 사로잡힌다. 동이 터온다. 유난히도 맑은 날씨와 하늘과

해에게 무척 감사함을 느낀다. 첫 버스로 한재 외숙께서 오실 줄 믿고 무

척 기다리고 있는 판이나 기다리는 시간은 어찌 혼탁하고 흐르지 않는지

모르겠다. 백부님은 장성으로 택시를 데리고 오겠다고 가셨다. 조금 있

느라니 기다리든 외숙이 오셨다. 큰 외숙모도 오셨다. 혼서지를 가지고

오셨다. 큰 외가에서는 교직 양단 저고리감과 작은 외가에서는 스위스

갑사 (여름직) 상하직을 떠왔다. 조금 있느라니 택시가 왔다. 덕천부락

연구 아제와 그의 부인 그리고 양면장이 오셨다. 고로 우리는 출발했다.

상객은 황산아재와 작은 외숙이 가셨다. 하인은 외갓집 하인 뇌성 씨다.

차속에서 멀미가 나오려 했으나 무난히 월곡에 도착했다. 상객 인접과

신랑 인접이 나왔다. 신랑 인접이라고 해야 보나마나 하는 격으로 가소

롭게 생각이 든다. 조금 있으니 남면 죽분리 강원선 군이 왔다. 군은 아

는 처지라 우리가 늦게 도착한 탓으로 상(음식)도 안 나올 줄 알았더니

상이 나왔다. 술을 제외하고는 잘 먹었다. 131/7+÷10에서 5/2+8이 1/2

8/5 2/9+2 1/1+1이 느낀다. 키티는 이것을 제일 큰 문제로 삼았다. 고로

소변도 나오질 않지만 인접을 청해 변소에 갔다. 버스 변소 문전까지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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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이 따라오는 것에 해서는 무척 불안감을 느낀다. 그래도 키티는 얼

굴을 붉혀 가면서 2/5+8을 7/5+2 7/7 1/3+2으로 3+3/1+1 3/8-내었다.

참으로 1/14+2 7/7+5이 나올 지경이다. 오늘 날씨가 맑은데다가 두껍게

옷을 입어놓아서 몸에 체온과 열이 많은 탓인가 보다. 시간을 엄수하라

는 태길사의 말이라 속히 행례를 수행했다. 사모관 를 쓰고 잡화 같은

신발을 신고 조심스럽게 걸어가는 팔자야. 좀 얼떨떨한 감을 느낀다. 문

전에 들어선 즉, 웃는 신랑이 온즉, 첫딸 낳겠다나. 흔히 이런 말은 행례

때 있는 말이라 생각된다. 물론 여기에 모인 아낙네들은 신랑 이쁘다는

소리를 한다. 오락가락 행례를 치루고 사진 촬 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가서 그 거추장스러운 사모관 를 벗었다. 1/7÷10에서 이상

한 예감이 들어 애기 5/7+2 1+1/7 1/4+1을 넣어보았더니 1/7÷10문전에

2/5+8이 1/2와 8/10+7+7 1/3 얼마나 3/8+4 1/7+4이 화끈했는지 모를 일

이다. 만약 7/10+2 1/4+8을 보는 아낙네들 (사람들)이 이 꼴을 보았으면

얼마나 6/10 8/7 1/1 1/7+8 했겠는가? 방으로 들어왔다. 인접과 강원선 군

이 들어왔다. 다상례를 내라나? 흥 이것들이 법수는 아는구나? 상객이 떠

나기 전에 볼 작정인가보다. 수증을 쓰라나. 그래서 키티는

� 收 證

一金 8/10+4 圓整

右金額을 正히 �收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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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11월 13일

그러나 아무도 그 숫자를 풀지 못한다. 고로 우리들 사이는 실갱이를 해

가면서 육박전에 임박했으나 2인을 내가 어떻게 당해 냈는지 멋있게 당

해 내었다. 조금 있다가 상객들이 떠나셨다. 흐지부지한 장난꾼들이 밤

에는 몇 명 모 다. 수효가 여러 명 불고 보기 당해 낼 수가 있어야지요.

동상례 금으로 500원을 주었다. 이로써 실갱이는 끝났다. 죽분리 강재선

군이 왔다. 놀아난 경험의 선구자라, 사회로 유행되는 놀이가 마음에 들

었다. 밤늦게까지 놀다가 갈렸다. 첫날밤에는 문구멍을 뚫고 엿듣는다고

하지만 웬일인지. 조용하다. 백모님을 청해 술을 드리고 상에 차려 놓은

음식을 먹었다. 배고픈 김이라 거뜬거뜬 먹어치웠다. 그리고 특수단 이

부자리에 들어갔다. 키티는 이부자리에 깃 이것은 수를 놓았다. 이것이

좀 이채로웠다.

--------------------------- * ---------------------------

결혼. 이것으로써 키티의 인생의 숙제가 끝났다. 그러나 결혼답지를 못

한 생의 인륜 사이며, 이성지합, 만복지원 너무나도 싱겁다. 키티는 그

사실에 부딪치는 이런 정도 이상으로 생각해 냈다. 키티야. 네 운명은 왜

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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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11월 16일 토요일 구름

키티 결혼일은 하늘이 축복 해주는 일인가 보다. 웬일인지 며칠간 날씨

가 좋아서 안전하게 행례우귀를 끝마치는 것이 다행으로 여겨진다. 양

혼가는 완전히 일을 끝마치고 오늘점심은 성남군 집에서 즉 14/5+8

8/2+8 큰 집에서 한다고 한다. 큰 집으로 해서 큰집까지 못 뵈 온 분들을

찾아서 인사를 드리고 점심 시간이 되었다. 신객이 왔다고 해서 너절히

장만 해놓은 점심밥을 속성으로 먹어치운 키티. 하여튼 밥은 맛이 있게

잘 먹거든. 그러나 성근 군은 밥을 몇 술 뜨다가 수저를 놓아버린다. 군

이 바로 신랑인 키티 인접이었다. 그러나 그 후로 바로 몸치로 아파서 드

러 누었다가 이제사 일어나 나오는 판이었다. 인간에게는 건강이 유일한

행복인줄 아오. 저녁에는 성근, 인표, 이 군, 14/5+8 2/8+8, 모, 자종제,

키티, 결국 키티가 60원을 전 었다. 닭 1 마리에 술까지 받아 와서 잘 먹

고 쉽게 갈렸다.

--------------------------- * ---------------------------

금슬 이것은 부부간에만 있을 수 있는 사랑의 복금인 것이다. 그 많은 중

에서도 우리 부부 간의 금슬은 forever( 원히) 행복하며 long(긴) 시

간이 연장될 것을 맹세한다. - 키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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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가살이, 그리고 첫 딸 미경 탄생

결혼과 동시에 시작된 처가살이 다. 박래욱에게는 따뜻한 가족애를 느낄 수 있어

행복한 시간들이었지만 남들은 처갓집 재산을 탐낸 사위아니냐라고 수군거렸다. 그런 것

이 아니라는 걸 아시는 장인장모님의 속만 탈 뿐이었다. 그래서 취직을 할까하는 생각에

서울로 상경했다. 그러나 만만하지 않은 세상은 결국 다시 박래욱을 고향으로 돌려보냈

다. 고향에 돌아가보니 첫 딸이 기다리고 있었다.

●●

처갓집으로 간 게 우선 따땃한 디서 잠자니까 젤로 거시가 하더라고 그래서 그렇게

생활이 됐어. 그란디 그 처가살이에서 형제판이 거그서 산디 처가 수가들 이 사람들이 인자

처가도 가난한데 그놈 다 먹어불라고 사우가 저러고 왔다 미워라 그래. 근게 우리 장모님이

분통이 터지고 속이 상하지. 실은 재산이 따져놓고 보믄 내가 땅 천이백 평이라도 있응게 내

가 더 부잔디. 해서 그렇게 해서 살았어. 살아서 그 이듬해 여름까지 지내니까 도저히 못살겄

드라고 처가살이. 그래서 서울로 올라왔제 취직이라도 해볼라고. 혼자서. 동생하고 집사람하

고 두고 그때는 어떻게 취직하기가 어려웠어. 안 되여. 몇날며칠을 누구 신세를 졌냐므는 집

사람의 큰집 오빠. 그 사람이 삼십 넘었는디 그 사람도 가난하게 살아 종암동에 살았는디. 지

금은 잘 살지마는 리아까 가지고 청소부 거. 지금은 미화원이라고 해서 한디 그때는 뭐 그것

도 아니고 험하게 살아. 거그다 붙여서 거시그 하니 내가 좋을 리가 있겄어. 거시기 한디 취직

이 안되야 그래서 도로 내려갔지. 보니까 우리 큰 딸이 낳아졌드라고 내려가서 보니까. 결혼

해가지고 1년 만에 낳았으니까 64년 8월달에. 우선 우리 장모는 좋아서 무남독녀 외동딸에서

딸을 낳은 게 그냥 좋아서 금지옥엽이야 하고 거시기를 해. 서로 농사를 짓고 한게 신곡도 나

오니까. 있다가 그 이듬해 봄에 광주로 나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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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딸 미경 백일기념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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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10월 1일 목요일 맑음

몹시 피곤하여 우리 미경 양과 방구석에 누워있었다. 방이 뜨근뜨근 하

여 누워 있기에 안성맞춤이로구나. 딸의 이름은 박미경 양이라고 했어.

출생일은 서기 1964년 9월 24일 10시 양력, 8월 19일 사시 음력이라오.

음력 8월 19일 작년 이 날 키티가 월곡으로 관선을 보러 오는 날인데 아

마 8월 19일이 무슨 인연의 날인가 싶다. H여사는 심한 하혈로 복통할

지경이었으나 지금은 조금 나은 편인데 보혈 주사라도 주어야 할 형편이

지만 돈이 문제로구나. 나락도 충분히 홅아서 서리쌀로 장만하여 이 밥

을 맛좋게 먹고.

1964년 10월 14일 수요일 맑음

오늘이 중구일이다. 그리고 미경양 3.7일을 세는 마지막날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태생 21일이지요. 그리고 미경양 100일(백일)은 양력 1965년 1

월 1일이다. 참으로 그럴듯한 일이 미경의 태생일과 연관이로구나. 광주

에 갔다. 수원시 평동 4번지 선경직물과 서울 성북구 월곡동 태양직물로

편지도 발송했다. 전남일보 편집실을 찾아갔다. 내고장 인물과 유물 자

랑을 보여주었더니 원고지 31매로 너무나 길다고 하기에 9매로 줄여 제

출했다. 과연 지상에 보도 되려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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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찻길 옆 오막살이, 처음으로 마련한 집

미경을 낳고도 마땅한 벌이가 없이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던 박래욱은 장사를

하기로 마음 먹고 광주로 이사를 하 다. 그때는 오두막이라도 좋으니 집만 있으면 좋겠

다는 생각이 들었다. 셋방을 전전하다가 우연히 친구의 허름한 집을 싼 값에 사게 되었다.

비록 기찻길 옆 오막살이 지만 처음으로 마련한 집이었다.

●●

그때당시 내가 아모레를 할 판이었어. 큰딸을 날 때는 내가 벌이가 없었고. 그때 시

골에가 논 몇 마지기가 있었지. 그래서 그거로서 연명을 하는 정도 단 말이여. 근디 광주로

와가지고 명색이 인자 내가 장사를 하니까 돈을 버는 상태여. 고 시골은 논도 그래도 있고,

나두고 했으니까. 근디 그때 유일하게 집 한나 오두막집이라도 샀으믄 좋겄다. 내 집이었으믄

좋겄다. 셋방만 산 게. 그때 광주를 막 나왔을 때 단칸 셋방을 신안동 거가 먼 교회냐. 구 옛날

철도 옆에. 옛날 철로가 있었거든. 옛날 저불이라고도 하고 그 근방인데 거가 신안동이라고

그래. 성모병원 있는데 성모병원에서 욱으로 올라가 즉 말하자믄 전 쪽으로 좀 가자믄 그때

옛날 구 철로가 있었어. 단칸 셋방인디 삼만 원짜리여. 그때 처갓집에서 쌀 몇 박이 주고 멋

해서 솥단지 주고 처음으로 우리 생활이여. 애기엄씨는 내가 광주 가서 돈 번다 인자 그거 때

문에 서방이 남편이 처가살이 한 게 그 사람도 눈치도 보고 업신여겨 봤다가 한 푼이라도 번

것이 자신감을 느껴가지고. 그때 보므는 이만 원은 어떻게어떻게 해서 모아둔 것이고. 만원인

가는 빚 얻어서 돈 얻어서 얻었는디. 그러면서 거그서 아모레 화장품을 광주에서는 명색이 거

그서 고등학교 까지 나와서 아는 사람 만날까 챙피해서 송정리로 자전거 타고 장사를 해. 송

정리는 아는 사람이 덜하고 또 군인가족들이 많기 때문에 거가 더 이가 더 젊은 여자들이

군인 부인들이 그런 것이 있기 때문에 그 쪽에 가서 하는 판인데. 그때 내가 우리 거 그래도 우

리 초등학교 동창들이 한 20명 이상이 모임이 있었어. 동창회 모임이. 내가 학교 닐 때부터

우리 진원초등학교 동창회장을 했거든. 그러다 보니까 동창생들 간에는 말을 믿어준 판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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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동창이 그 근방에서 부로크 공장을 해. 부로크 공장을 한디 광주가 거 체육 회를 하면서

도시가 거 80년 환기 되고 그런 상태거든. 무등경기장을 지을라고 할 때 그 무렵인디. 동창

한나를 부로크 공장을 한 사람인디 그 옆에다가 철도가세다 다섯 평 반짜 거그를 자기가 환지

를 받았다고. 비가 온디 거그를 가드라고. 그러더니 길에서 만났어. 거그다 집 지었는디 비샌

다고 한 게 거그를 가본다고 그래서 가서 보니까 바로 철로변에다가 뭐 집은 어떻게 막집을

해가지고 방 한 칸하고 부엌하고 들여놨더라고. 아 이걸 팔아부러야 한디 귀찮다고 그 애가

말하는디 그래 그 동창이 하는 말이. 나는 가만히 듣고만 있는 판이여 지금 팔면 얼매 받을라

냐고 했더니 내가 살고 있는 삼 만원 보다 얼매 안 보태믄 살 수 있는 거여. 그러믄 나주라 내

가 사 불란다. 그래서 그것도 인자 지가 지었으니까 그것 사서 내가 방한나를 들 어. 근게 얼

매 안보태믄 그집을 샀어. 그래서 사가지고 거그서 산디. 기차가 뽀짝 옆으로 다니니까. 기적

소리가 그때는 광주 인자 역을 신역이 그때는 인동가 있었잖애. 거리 지나면서 인동이 가

까운게 거그서부터 기적소리를 내. 근게 자다가 놀래기도 하고. 그래서 그집을 팔고는 북성중

학교 담장쪽에 방이 하나 있더라고 윤채호 씨 집이라고 그래서 그리 얻어갔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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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1월 25일 일요일 맑음

간헌과 H여사는 요즈음 My Home에 들떠있다. 광주 유동 새로 지은 한

옥. 사칸 점집. 노릿한 니스칠로 말끔히 단장된 주택에 말이다. 화단도

곱게곱게 가꾸어 꽃이랑 나무랑 심어놓고 20여 종류의 큼직한 선인장을

화분에 심어 놓아두고 평촌서 가져올 능수화랑 장미랑 이 꽃나무들은 간

헌이 어렸을 때 평촌 정원에다 손수 가꾼 화초들이다. 말끔히 티 하나 없

이 깨끗이 청소하고 때가 묻을 세라 닦고 문질러 두고 일년에 한번씩 간

헌방에는 도배질도 해서 새로운 멋과 이미지를 풍기게 하고 간헌 부모님

의 모를 잘 그려서 모로 기일을 모시면서 간헌은 집을 산 첫 기일에

간헌 생전처음으로 흐느껴 울기도!!

서정적이고 사랑과 낭만이 항상 깃든 우리집. 언제나 오손도손, 복잡다

난하게 살지 말며 꾸준한 노력의 가로 허례허식 말고 김치 간장에 식

사를 할망정 나는 당신과 원히 이 로 살고 싶어요. 그리고 우리네 아

이들에게는 훌륭한 어버이가 되어 후일에 불미한 부모라는 낙인이 붙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살고 싶다는 말이다. H여사 역시 요즈음 부쩍 집 단

장에 꿈이 크다. 시골집도 만일 바꾼다면 브로크 담으로 돌려 짜고 지붕

도 슬래트로 개량하고 아궁이도 그리고 방문 앞에 화단도 만들작정이라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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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순한 둘째딸 유경

미경을 낳고 이사도 하고 제법 장사도 잘 되어서 자리가 잡혀갈 무렵 둘째딸 유경을

낳았다. 외가 쪽에서는 첫딸 낳고 둘째도 딸을 낳아 서운해 했다. 둘째를 딸로 낳고 아들

을 낳기가 매우 어렵다는 속신 때문이었다. 특히 외가 쪽은 손이 귀하기 때문에 더욱 아들

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둘째딸 유경은 태어나면서부터 너무 예뻤고 하는 짓도 어찌나 예

쁘고 순한지 하루 종일 조용히 누워만 있었다. 그렇게 어여쁘고 순한 둘째딸 유경을 낳았

던 것이다.

●●

그때 당시 애기엄마가 배가 부른 판이여. 그때 정월 며칟날인디 산기가 있다고 그

래. 이사한지 며칠 안 되야서 산기가 있다고 근데. 그때 거 애기엄마의 친정에 재종간 된 오라

버니가 거그서 살아. 옆에. 그리 연락했더니 지금 거시기 하니까 산기 있으니까 나보다 어디

가지 말라고 처남의 덕이 그래서 조금 있으니까 유경이가 나왔어. 둘째딸이여. 그러고 그때

당시는 셋 애기를 상현이까지 낳았어도 병원에 간 적 없고 집에서 났어. 건강해가꼬.

그때까지도 별로 거시기 안했는데 인자 어디 쪽에서 했냐믄 우리 친척 쪽에서 큰집이라든가

외갓집 쪽에서 아이고 아들이 있어야 할 것인디 둘째딸 낳아놓고 아들 낳을라믄 정승을 들이

기보다 더 어렵단다. 외갓집이가 거그도 손이 없는 판이라 특히나 그런 것을 거 아깝게 생각

해. 손하나 아들낳았으믄 좋겄다. 외갓집은 특히나. 나는 큰집은 나는 그때 결혼을 할때도 거

시기 하고 그런게 큰집은 멀어졌어. 자연히 외갓집 쪽에 이모 쪽에가 그런 말 을 하 . 나는

그런 생각이 없었어. 또 유경이가 태어나면서 얼매나 순했던지 얼굴도 그때 이뻤고. 이 애가

잠을 잤는지 어쨌다냐. 숨이나 거시기 한가 여하튼 그랬어. 방은 좁은 방이라도 그네 있지 거

그다 뉘여 놓으며는 하루종일 잠자고 그렇게 순했다고. 그렇게 이뻤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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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3월 4일 토요일 구름

H여사는 아침 식사가 솥에서 되기 전에 심한 복통 때문에 방에 누워있어

야 할 형편 뻔히 사정을 아는터라. 간헌도 어리벙벙 우선 한약방에 가서

순산을 하기 위한 약 두 첩을 가져오고 끓여서 주었다.

그리고 처 올케들 2명이 와서 서둘러주는 바람에 드디어 바라던 순산을

했다. 고되게 배출하는 핏기 없는 산모를 간헌이 붙들어 잡고 볼 때에 아

들이고 딸이고 가릴 맘이 나질 않는다. 당장 순산하는 것이 복이라 여

겼다. H여사가 그렇게 장담했던 아들과는 정 반 로 간헌 차녀 딸이 출

생했다.

丁未年 壹月 貳�四日 午時(12시 20분)에 세상에 나와 첫울음소리를

내었다

우리 차녀는 朴美京(長女) 京字을 따서 朴裕(넉넉할 유)京이라고 作名

할 작정이다.

年 月 日 時

박미경 사주는 천간성 천수성 천문성 천수성

박유경 사주는 천역성 천역성 천복성 천귀성

위와 같이 된다면야 무엇을 걱정하겠냐마는 두고 볼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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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6월 2일 금요일 맑음

간헌에게 벌써 딸이 둘이나 딸렸다. 물론 먹여야 하고 입혀야 하는 큰 문

제가 딸린 중 시점이 있다지만 우선 간헌이 말하고 싶은 것은 이 두 딸

들을 비교해 본다. 박미경 양과 박유경 양. 장녀는 어렸을 때부터 깜찍했

지만 약하다. 그러나 차녀는 두툼하고 환하고 강한 편이다. 장녀는 제법

이나 워낙 약한 탓으로 비틀비틀. 그런데다가 회충이 이만 저만 뱃속에

든 탓으로 입맛이 없어 식사를 전혀 못한 게 건강에 큰 탈이다. 그러나

유경은 이제 제법이다. 사람을 알아보느라고 벙긋벙긋 담뿍 웃음을 담은

그 모습. 이제는 고개를 끄떡없이 이겨내니 장한지고. 그런데다가 언니

인 미경보다 더 건강한 것이 이 부모치고 기쁠 것이며 왜 그렇게도 유순

한지 젖만 먹여 놓으면 잠자고 그리고 후닥후닥 노는 꼴이 더 정이 들게

유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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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들 서이나 있고 좋았지

광주에서 송정리까지 출퇴근하기가 힘들어서 송정리에 방이 딸린 점포를 구하 다.

외무사원도 몇 사람 두고 점점 장사는 잘되어 갔다. 그때쯤 아내는 셋째를 임신하 다. 출

산할 무렵 친정으로 갔는데 동생 래엽이 아들을 낳았다고 전해주었다. 일이 끝나고 아내

와 두 딸, 그리고 갓난 아들이 있는 곳으로 먹을 것을 사가지고 갔다. 아들을 낳았다고 처

갓집 식구들도 기뻐해 주었다. 두 딸이 있고 또 아들까지 있으니 너무도 기분이 좋았다.

●●

내가 광주서 왔다갔다 하기가 화장품은 좀 힘들더라고 광주에서 거그 갈라믄 12킬

로 되거든. 자전거로 왔다갔다 하고 차비 아끼기 위해서 그럼 위험도 더 있고. 그때 내가 장사

가 조금 불어난 셈이제. 송정리 송정극장 옆에서 점포를 하나 얻었어. 점포를 하나 얻었어. 그

안에도 내가 외무사원들을 몇 사람 두었어. 두어가지고 내가 물건을 주고 그렇게 해서 거그

서 수금도 하고. 인자는 자리를 잡아야겄다 하고 송정리 송정극장 옆에 거그가 명동극장인데

거그다 점포를 하나 방이 딸린 점포를 한나 거그서 조그만 진열장 하나 두고 외무사원도 두고

팔기도 하고. 그래서 거가서 살고 있는데 애기엄마가 거그서 못 살겄다 더라고. 그 안에 선

암에서 살았구나 선암 시골집에서 살았는디. 거그서 못 살겄다 그 말이여 점포도 있고 그러니

까. 그래서 송정리 거그서 살아 송정극장 옆에서 거그서 산디 애기엄마가 임신이 되야가지고

산기가 돈 게 월곡 친정으로 갔어. 어머니 계신 디로 그래야 또 접도 받게 생겼고. 거그서 낳

어 상현이를. 며칠 있은 게 아들 낳았다 하더라고. 아 동생이 왔더라고 형수 아들 낳았어요

더라고. 동생도 좋아서. 근게 거그서 컸지. 나도 뭐 쫌 사가지고 먹을 거 사가지고 자전거타고

남면까지 송정리서 고리 갔더니 역시 아들 낳았다고 동네 사람들이. 아들 낳았다고 처갓집 사

람들이 기분 좋았지. 두 딸 낳고 아들 낳고 그리고 거그 간 게 애기들 서이나 있고 큰딸 작을

딸 있고 좋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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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12월 3일 수요일 맑음

우리집에 경사가 났네. H여사가 구역질을 하고 음식 탈을 잡는 게 예사

롭지 않거니 했더니 임신 3개월이라고. 물론 전월부터 알아왔지만 확증

은 금월에 접어서 부터이다. 유경이가 만 3세 퍽이나 H여사의 태아를 기

다린 사람은 많기도 하다.

H여사 어머님은 학수고 를 하고 백부님은 간헌 너도 아들이 늦다 말이

다라는 말 을 몇 번하셨다. 뱃속의 태아는 꼭 아들이어야 한다. 여아가

둘이나 되고 보니 남아를 바라는 마음은 전가족의 동심이려니와 누구에

게서 들은 말인가 모르겠지만 3세 짜리 유경 양 한다는 소리가 미경언니

는 큰누나 나는 작은 누나라고 조잘 는 게 귀엽기도 하고 H여사 뱃속에

는 남아일거라고 믿어보는데 과연 누구일까. 그러지 않아도 약방에서 아

들 낳을 약까지 복용했는데 말이다. 만일 쓸만한 남아라면 간헌가에 다

시없는 경사가 아닐 수 없다. 내년에 광주다가 집도 사지 아들도 낳지 큰

경사가 아닌가배. 신이여 굽어 살펴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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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5월 28일 목요일 맑음

오늘이 음력 4월 24일. H여사의 배는 갑자기 불러 오른다. 요즈음에 와

서 배가 부른 것이 아니라 산월이 다가와서 불러온 것이다. 음력 5월 중

순경 아니면 말경에 산일로 예정하고 있는 터이나 요즈음의 뱃속의 증상

과 내려 않으려는 통증으로 보아서는 며칠 내에 산일이 될 것 같다는 H

여사의 말이고 보면 우리집에는 바쁘지 않을 수 없고 준비할 것도 이만

저만. 미역도 받아야지 간난아 의복도 식량도 1 쯤 팔아 놓아야지 그런

데다가 산후 수발에는 꼭 긴히 요하는 장모님이 오는데 하필이면 산일

무렵에는 모내기 이종기라 눈코뜰새 없이 시골이 바쁜터라 어찌하오리

까. 임신 중 고생한 보람으로 아들이나(옥동자) 태생하면 오죽 좋으리.

모두들 H여사의 거동을 보고 십중팔구는 아들이라고 점을 치고 있으나

과연 남아일까 여아일까. 하기야 간헌 나이로 보아하니 아들이 늦지 않은

가. 특히나 기다려 온 사람은 장모님 큰집 백부님이 더더구나 몸을 달고

계시니 선친의 보답으로 행여 바라옵니다. 신이여 굽어 살펴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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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7월 12일 일요일 맑음

어제 저녁부터 철제평상 조립에 들어갔다. 그러나 연장도 없지요 부족한

것도 많군. 모든 일이 순조롭지 않다는 것은 인간의 행사. 그래서 인간은

고민이 따른다는 것. 연장은 이웃에서 가까스로 빌리고 모자란 것은 구입

하고 만들고 하여 조립을 마쳤다. 이제는 덮는 것 판자. 4자 8자 5분 베니

아는 1,800원이라고 엄청난 목재류 특히나 판자는 말이다 그래서 시원한

것 그리고 그 로 은근한 맛과 고전미의 정취가 담긴 나무 발로 엮기로

마음먹고 중보부락 남기 어머니께 갔으나 선암 부락 박판길 씨께 가보라

고 그래서 중보남기平床이라고 말한즉 가격도 저렴하려니와 전부 잘라 쪼

개서 완전히 엮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참으로 남기 어머니를 판 게

간헌께는 큰 덕을 본 셈이었다. 집으로 싣고 온 즉 시골갔던 동생이 왔다.

동생의 첫마디는 아짐 아! 태생했어! 남아출산이라는 희소식. 그러니까

어제 오후 밥할 무렵이라오. 음력 6월 8일 5시경 간헌은 득남을 한셈. 외

숙모님께서 간헌께 두 딸을 보시고 딸 둘 낳고 아들 낳기란 정승하기보다

어렵단다 하셨다. 그러나 간헌은 딸 둘 낳고 아들을 얻었다. 바로 H여사

가 출산했다 말이야. 동생의 소식을 듣고 의심이나 한 듯이 잘못이나 들

은 듯이 재차 묻고. 간헌 안심시켜려고 실망하지 않게 딸 낳아놓고 아들

낳았다고 하는 것이 아니냐고 되묻기도 했다. 동생의 갑작스러운 휴가에

또 아들까지 낳았으니 귀래가 안고 온 것이로군 하고 흐뭇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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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7월 29일 목요일 맑음

우리 아들 상현 만 1년 돌이다. 귀한 집 돌잔치는 거들막한 상에 요란하

겠지마는 돈 못 번 아빠 탓으로 외할머니가 어제부터 오셔서 H여사가 장

만한 시루떡에 미역에 닭고기 국물 이정도도 족하구나. 둘째딸이 5살 큰

딸이 8살 수창초등학교 1학년 새끼들이 먹을 것 있고 외할머니 계시고

그래서 인지 좋기만 하는 가보다. 이런 경사스러운 좋은 날에는 안 좋은

꼴이 있어도 성화도 내질 않으니 새끼들은 더 더구나 좋은 일인지요.

오는 8월 1일은 역사적인 내 인생에 전환기인 내 원한 직업으로 바뀌

어져 개업을 하는 날이요. 어제는 생각지도 않은 한약장이 들어왔고요.

오늘은 우리아들 돌잔치이구요. 경사났네 경사났어. 부디 건강하게 토실

토실 자라주옵소서.

느지막이 송정을 갔다 수금을 하며는 꽤나 되는데 수금이 안 된다. 사고

처리자가 많을 것 같고 오랫동안 이들에게 벌어 먹 으니 포기할 수밖에

없을 상 싶다. 어렵게 4600원을 수금해가지고 왔다. 더 주문도 있지마는

이제는 끝내야지 내 명함이 바뀌어집니다.

감초당 한약방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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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으로서의 책임감에 외판원부터 시작

장성에서 시작된 신접살이를 접고 광주로 이사를 하 다. 처음 외판원을 시작했을

때는 동창이나 선후배들에게 부끄러워 광주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송정리에서 행상을 시

작하 다. 화장품, 시계, 라디오 등 여러 가지 행상을 하면서 차비를 아끼기 위해 자전거

를 타고 다녔다. 그 덕분에 건강한 몸을 가지게 되어 오히려 감사할 뿐이다.

●●

광주로 나가서 할 일이 없으니까 행상, 내가 행상을 다니믄서 행상을 다닌디 광주서

는 못하겄드라고 왜냐믄 아는 동창하고 선후배들이 있으니까 그 사람들 눈이 무서워서 눈을 피

하니라고 거그서 12키로를 걸어서 송정리까지 가서 한디. 그때부터서 뭐냐믄 차비가 아까우니

까 자전거타고 그때부터 내가 단련된 체구 던 가비여. 그때 첨에는 화장품, 아모레, 아모레 외

무사원 외판원. 처음에는 시계를 하다가 시계, 라디오를 첨에는 했제. 그 회사가 부도가 나부

어. 쉽게 말하믄 뭐냐믄 유령회사여 근게. 보증금 걸어놓고 딱 망해불고 시계하고 라디오만 몇

내 본전만치 가져와가지고는 그놈 팔고 안되겄다 해가지고 아모레 태평양으로 갔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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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외판원으로

생계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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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4월 7일 수요일 맑음

출근이랍시고 9시까지 회사에 나오라 했지만 버스 때문에 10분 동안 지

각된 것을 불안케 생각한다. 오늘 아침 와서 처음으로 회사직원께 인사

드리고 업과 수금원이란 직을 받았다. 그러나 할일이 있어야지요. 회

사를 이전하고 상품을 갖다놓으며 그때부터 할일이 많다고 하지만 막

상 할일이 없어 궁금하던 차에 수금원 천씨께 략 말을 들은 결과 형

편없구나. 우선 말하고 싶은 것은 사내중역인 보다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 정치의 부패성 성과 경제에 좀먹고 들어가 선량한 세민에게

울고 있는 것이 더욱더 분통이 터질 노릇이다. 우선 빵을 해결하기 위

하여 그런 비굴한 수법을 쓰는 사람이 현 사회에 얼마나 많으냐 말이

다. 그리고 그들에 속고 있는 사람은 또 첫째 간헌께 탓하고 싶다. 위험

한 함정에 간헌이 들어가기를 원했으니까 아니야 실은 뒤에서 미는 위

력이 더 컸어. 취업을 목마르게 기다린 H여사의 소원을 풀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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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6월 19일 토요일 맑음

비가 올 듯이 여전히 찌그린 날씨는 농민들의 심정을 덧없이 감질 날

정도로 해준다. 아무튼 하늘은 어쩌자고 이렇게 농민을 울상으로 만들

고 계신지요. 묻고 싶습니다. 간헌은 기우제라도 지내서 비가 내릴 것

같으면 하느님이여 시간과 장소만 선물해 주십시오. 어제의 실업자 낙

인을 오늘부터는 벗어야 하겠다. 간헌은 무엇이라도 해야 하겠어. 육신

이 평평한 놈이 밤낮 놀고만 있으니 그것 되겠습니까. 안됩니다. 일하

고 밥 먹어야 밥의 가를 지불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다가 간헌 놀

고먹을 형편이나 됩니까. 어림도 없는 소릴 말아요. 차일피일 이 판국

으로 가다가는 큰일 납니다. 아무튼 잘 생각해서 부지런히 해야 할 줄

압니다.

판매사원이라고 창피하다구요. 뭐 창피가 어디있어. 창피가 밥 먹여 주

나요. 아무튼 무엇이든지 해야 합니다. 이봐. 일하니까 당장 돈이 생기

지 않아요. 오늘 당장 2,650원어치를 팔았지 않나. 이 정도면 처음으로

한사람치고 성적이 괜찮지 않아. 누구든 아무 소리 말라. 내 뼈가 부서

지도록 해볼 작정이니까. 돈벌어야해. 돈 없으면 죽어요. 돈이 있어야

사람노릇 하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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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12월 13일 월요일 맑음

내 Amore 화장품 외판한 지도 꽤 되었다. 송정을 택한 이유가 있다.

그놈의 위신과 자존심 때문이다. 광주는 아무래도 고등학교를 다녔고

전남제사주식회사를 다녔던 곳이다. 화장품 가방 들고 다닐 때의 그

자존심 때문이다. 송정은 지역적으로 광주와 가까우면서도 그걸 피할

수가 있고, 송정비행장을 중심으로 인근 상무 군부 가 많아서 부

녀자들이 사치를 많이 한곳이라. 화장 옷사치를 많이 하고 10일 월급

날이면 돈줄이 빠르다. 그런데 요놈의 돈이란 놈이 귀신이 붙었는가

수금해 오며는 집에서 쓰는 돈이 많아서 회사에 입금할 돈이 적으니

지점장 김상수 씨 내외간 부인은 남편의 눈치 보기이다. 또 구색을 맞

추려하니 화장품은 또 빼와야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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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권유로 시작한 한약업사 공부

성실하게 살아간 덕분인지 행상도 잘 되어 그럭저럭 먹고 살 수 있을 만큼은 되었는

데 어느 날 아내가 갑자기 한약업사 공부를 하면 어떻겠냐고 권유하 다. 주변에 무허가로

한약방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꽤 잘 되는 듯 하 다. 그때부터 가까운 한약업사에게 가

서 어깨너머로 배우기 시작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한약 공부를 하며 주경야독이 시작

되었다. 그것이 박래욱의 인생의 전환점이 되리라고는 그때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

런 것을 운명이라고 하는가보다.

●●

태평양 화학을 다니다가 거그서 부지런히 니다 본 게 어느 정도 기반이 쪼깨슨

거시여. 스다가 집사람이 그래. 당신은 이것이 할 일이 아니다고. 당신은 효심이라고 그래. 효

심이 아빠는 무허가로 한약방을 하는디 꽤나 잘하드라 그말이여. 우리보다 나이가 좀 어린데.

그런디 효심이 엄마하고 애기 엄마하고 친허니 어찌고 되여가지고는 인자 사귀게 되 어 객

지에서. 그러고 저러고 하니까 그 집가서 등너머서라도 배워보시오. 그래서 한 달간 침구 배

운다고 돈 줘가면서 그 사람한테 배운 것이제. 무허간디. 근 디 그 사람이 누집이 살았냐. 애기

엄마 친정에 한 마을 사는 사람 집이여. 그 부인이 근디 지서장을 해 파출소장 남자는 파출소

장을 한디 그 부인이 애기엄마하고는 한 친정마을이기 때문에 거시기를 해. 거그서도 하니까

보드랍지. 그래서 거그서 했어. 한 달쯤 하니께 어느 정도 주경야독이라더니 늘 동의보감 사

다놓고 자동으로 하는 거여. 근게 그 장사를 몇 년이나 했냐믄 65년부터 70여 년까지 한 게

5~6년을 했제. 5~6년을 하면서 어느 정도 기반도 싸지면서 인자 행상을 열심히 한통에. 한 일

년 남짓을 그 공부를 했제. 한약공부를 동의보감 사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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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10월 16일 금요일 맑음

간헌이 화장품 판매만 해야 할 것인가. 시간이 많은 이 장사 그 공허한

시간을 무엇으로 메꾸느냐. 그래서 6시 30분에 일어나 체육관에 나가 수

련을 하고 10시부터 화장품 장사를 하고 밤 10시 이전까지 시간을 이용

하여 일인 일기의 소유가 되게 하련다. 그래서 생각한 끝에 한의기술을

터득해 보려고 노력중이며 H여사와 타협했다. 학원이라도 특강이라도

받아서 71년 말까지만 화장품 장사하고 71년 말까지 밤의 시간을 이용해

한의 강습 수료 후 72년 초부터는 유명한 한약방에서 종업원 생활을 하

면서 종업원 생활 몇 년 후 면허증 시험이나 응시를 하여 합격 후 40세

후나 기반 잡혀나가면 개업이나 해 본다는 것이다. 왜 한의를 택하느냐

하면 간헌의 체격, 묵직한 태도, 차분한 성격, 깨끗이 정돈하는 마음가짐

깊이 연구하는 마음 잊어버리지 않은 기억력으로 미루어 적격한 직종이

아닐까. 구수한 고담 사극을 좋아하고 말이다. 그리고 현재하고 있는 이

직업은 몇 년 후는 나이로 보아서 할 수 없으며 한의는 늙어 사망하기 전

까지는 만년 직업이 아니겠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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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허가로 한약업사 시작

외판원을 하면서 무허가로 한약업사일을 시작했다. 외판원을 하다보니 많은 사람들

을 알게 되었는데 한약업사를 한다고 하니 외판원을 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이 약을 부탁

하게 되었다. 책에서 보고 배운 데로 침도 놔주고 약도 지어주었더니 수입이 꽤 늘었다.

하지만 경험이 없는 터라 약을 팔고 나면 환자가 그 약을 먹었을 즈음에 자전거를 타고 동

네를 한 바퀴 도는 버릇이 생겼다. 혹시 약으로 인해 안 좋은 일이 생기지는 않았을까 하

는 걱정 때문이었다.

●●

한디 71년도 한 일월쯤이나 이월쯤이나 되 을 것이여. 그래가지고 한 달 남짓 되

는데 어느 정도 돌아 님서 사람 많이 아니까 외판하니께 사람을 많이 알자네. 돌아다님서

어디 아프다고 하믄 침 놔주고 또 약 지어주고 또 그 수입이 짭짤하드라고 무허가로 한디 나

도. 요새 같으믄 의료법 위반으로 번 거시기 할 거인디 그때만 해도 세상이 거시기 한 판이

라. 근게 약장도 없이 집에다가 약봉다리 사다놓고 방하나 얻어놓은디서 거그다 요러코 해서

팔고 팔고 해 주문을 받아서. 모르믄 약 경험 있는 사람들한테 침 가르쳐준 사람한테 이런데

는 뭔 약 써야하냐고 물어감서 그러고 약을 지어주고는 그 이튿날 약 먹었을만하믄 그 환자가

먹었을만하믄 자전거 타고 뱅뱅 돌아봐. 사람이 죽었는가 안 죽었는가 약 먹고. 조심성이 있

어서. 그래도 별 탈 없이 거시기 하더라고. 약이 효과를 봤는지 안 봤는지 그런디 인자. 많이

팔아 논 게 뭔 사람은 약 먹고 나섰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뭔 사람들도 있는디 나섰다고 한

사람이 있어서 약이 이어지더라고 그래서 그런 식으로 해서 약을 팔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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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을 싸는 종이를 자르던 가위

처음으로 사용한 약저울

자극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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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1월 21일 목요일 구름

오늘이 가장 춥다는 한일이다. 12월의 태양의 황선이 300도에 달할 때

동장군의 맹위가 여전하며 북서 동절풍이 살을 엔다. 한약공부를 요즈음

하니 계절 절서도 책이 읽어지는구나.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참으로 놀

랍구나. 과학적인 기구도 없는데도. 어떻게 알아 내셔서 먼 후세에까지

이 이치가 정확한지. 그리고 한약재의 약성질도 분석을 해놓았는지 이

땅에 자생하는 그 수많은 식물들 또 동물들 광물들 갖가지 약이 아닌 것

이 없다. 그 수많은 갖가지 약들을 신농씨 입으로 씹어서 그 약성을 문헌

화 체계화해서 내놓고 우리 한약을 위해서 이조 선조시 허준 선생이 이

를 정리한 것이 방약합편이요. 더 구체화한 책이 동의보감이다. 나는 동

의보감 신판 해설판을 서점에서 구입해 와 읽어본다. 원문은 한문 실력

이 없는 터라 엄두도 못 내고 해설문만 읽어서 이해를 얻는 것이다. 오늘

도 약이 나간다. 묘한 이치로구나. 그리고 화장품도 꽤나 수금이 되었다.

설이 닥쳐오니 선물하고 몸단장하기 위해서 인가보다.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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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2월 9일 화요일 구름

오늘은 수금도 꽤 되었지만 약값으로도 4,300원이 들어왔다. 이래서 간

헌 약을 판 금이 간헌 식구 약을 먹고도 15,000원 정도 판셈이 된다.

침 배운 지 삼 개월 여 만에. 벌써 약을 이와 같이 팔았으니 이 무슨 징조

일까. 아무튼 오늘밤. 약을 30첩을 지어놓아야만 한다.

우선 약 20첩을 주문받은 서울아줌마(의복천 장사) 침을 놓아주고.위장

에서 온 하증용약 10첩을 처방 지어주었으니. 과연 그 효과는 다소나

마 그 효과를 보아야 할 것인데 말이다. 또 중보 미 오빠 약도 전부 지

어 놓았으니. 시간은 꽤 오래되었군요. 오늘 같은 약매가 된다면 약방을

해도 호경기일 것 같다마는 앞으로는 어쩌나. 정월 16일 산으로 올라가

서 마음에든 위치 정좌하고. 功(수도)을 드리고 오라는데. 문제로군 정

성이 문제란 말이다. 무등산으로 올라가라는거요. 동파 옆 까치점성가가

말이다. 우선 경문책도 빌려놓았는데 말이다. 動(실천)이 문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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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3월 8일 화요일 구름

간헌이 요즈음 약을 조제한다. 공부의 순서가 뒤바뀐 것 같다. 먼저 약성

가를 완독한 후 약을 처방 조제해야 하는 것인데 약을 무조건 주문 받고

는 병에 해 어느 정도 문의하고 바로 임군에게 가서 처방을 얻어오는

실정. 그래서 간헌 그 처방 로 약을 조제하는 것이다. 그러니 약은 조제

하고 약에 한 성분을 모르고 있으니 수박 겉핥기식이 아닌가. 그래서

필히 약성가를 외우기에 전심을 하려하나 약 처방 조제하는데 시간이 쫓

기다보니, 피곤함에 지쳐 나자빠져 버리는 현상이로다. 앞으로는 쉬운

방법을 택해 약성가를 외우는데 전심을 들일 작정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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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3월 16일 화요일 구름

약을 거의 복용하겠다 싶어서 월산동 홍규 형님 에 가보았다. 그런데

그 형수씨 왈 약에 감초가 들어있지 않은 것에 탓. 약에 해 설명코 그

약은 감초가 들어가지 않은 약이라고 했지만. 인정이 가지 않은 눈치. 게

다가 한다는 말이 감초가 없어서 안 넣어 놓고는? 아무튼 기분이 잡치는

판. 이것이 바로 약방초년생이 느끼는 고충이요. 제바닥에서는. 못해먹

는다는 것이로군. 그러나 저러나 모르면 가만히 있어야 하는 법인데. 그

것 또 병이로군. 그 형수 말입니다. 효과가 있다기에 (즉, 아랫배의 통증

이 적다는 것이다) 또, 다섯 첩을 조제하여 전해주고는, 시간도 있고 해

서 비아면 수완리 고모님 에 가보았다. 고숙왈 약을 조제해 달라는 요

청. 20첩에 3,000원 첩당가는 150원이란다. 그리고 이 마을에 거주하는

당 70세의 노인이 15년간의 장기 신경병 환자에게 침을 놓아주었다. 하

체신경병이란 말이다. 슬관절 부분에 골고루 침을 놓아주었고 중요부위

에 구도 해주었으나 과연 효과가 의문이요. 좀처럼 효과가 없을 성싶다.

고모님 에서 저녁까지 먹고는 밤차로 광주로 왔으니. 이것이 바로 현

문명의 교통발달이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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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업사 시험 준비, 멀고도 험한 길

무허가로 한약업사를 계속 하던 중

한약업사 시험이 있다는 정보를 접했다. 5

월 5일 시험이란다. 그런데 한약업사 시험

을 보기 위해서는 몇 가지 자격이 있어야

했다. 주변의 아는 사람들을 총 동원하여

한약방 근무 증명이라든지 관공서 확인

증명 등을 받을 수 있었다. 외판원을 하면

서 알고 지낸 사람들 덕분이었다. 할 수 없

을 것 같았고 하지 못할 것 같았던 한약업

사 시험 준비가 끝나고 시험일이 다가왔다.

●●

팔다가 2월부터 3월까지 3~4개월 했는디 5월 5일날 시험이 있다고 더라고. 한

약업사 시험이. 71년에. 한약업사 시험이 있는디 그때 내가 송정리서 태권도를 배웠는디 태권

도장을 다닌데. 련한다고 하냐 련한 사람이 같이 운동한 사람이 이모 씨라고 보건소 이학

계장이여. 그 사람하고 늘 얼굴이 익혀져. 익혀져 가지고 알아. 그래가지고 시험이 있다고 그

래. 나도 한 번 응시를 해볼란다고. 그랬더니 5년이상 한약업사 실무증이 있어야 한다고 5년

이상 한약방이나 한의원에서 근무하는 실무종사 확인증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여. 거그서 증

명을 해줘야 한다 이것이여. 나는 한번도 있어본 적이 없었거든 한약방에 하루도 있어본 적이

없어. 그래서 인자 그 송정리서 약 한 6~7키로 삼도면이라고 있어 광경계. 근디 거그로 화

장품 장사를 다닌데 거그거 큰 집이 누나가 청백당 있는디 거그 누나가 그리 결혼을 했는데

부잣집으로 했어. 부잣집으로 했는디 옛날 주조장을 했어. 지금은 주조장이 암껏도 아녀. 집

터가 굉장히 넓어. 도로변에 죽 있는디 가서 보니까 한약방 감이 있더라고. 그래서 그리 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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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종상시험 신문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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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무조건. 누나하고 매형이 어째왔냐 그래. 화장품 팔러 늘 다녔기 때문에 안디. 매형 나 이

번에 한약방 시험 좀 볼랍니다. 찬찬히 보더니 자네가 어찌고보냐 그 말이여 그 어려운 것을.

자네가 합격할 거 같으면 손가락에 불 지르고 하늘로 올라가겄다 그 말이여 지금. 그래서 그

말을 하길래 매형 내가 시험 봐서 합격하믄 어쩔라요 그랬더니 내가 합격만 하믄 뭐든지 다해

준다 시골에 돈도 있고 뭐하믄 하잖애. 점방 한약방 있소. 그 사람보다가 나 여그 5년간 누님

집이서 있었다고 여그 삼서 5년간 한약방에 있었다고 증명 하나만 써서 도장 하나 찍어달라

고. 그런거 문제도 아니다 이것이여. 감을 오라고 하더니 주인이 오라한 게 오지. 오 감 내

처남인게 그 감도 나를 한번씩 봤어. 내 처남인데 이번에 시험본다고 한다고 근게 여가 있

었다고 우리집이가 있음서 한약방에 녔다고 그거 증명하나 써달라고. 주인이 말한 게 말을

못해서 그때는 펜에다가 잉크로 써가지고 나무도장 뭐 양식도 있는 것이 아니고 언제부터 언

제까지. 이 양반이 써 줬는디 여그 면장보다가 뭘 하나 해줘야 한다고 그런게. 면장한테 가서

여그 내 처남인디 우리집 살았다고 뭐하나 써줘 근게. 해주더라고 그러고. 증명 딱 갖춘 것이

여. 갖춰가지고는 인자 이학계장이라는 사람이 나를 알제 인자. 화장품장사를 한디 뭔 한약방

에 있었냐 그말이여. 그래도 여그 광산군 한약협회 회장한테 도장 하나 더 받아오라고 그러드

만. 근게 자기도 빠져나가기 위해서 그래. 한약협회 회장집을 신모씨 집인디 내가 늘 닌디

아주머니도 내가 잘 알고 그 사람도 내가 잘 알아. 잘은 알들 못해도 화장품 장시 그러고만 알

아. 그란디 우리 큰집 형이 그 근방에 산디 거그가 친구여. 형님한테 가서 상무 서 근무하다

제 해가지고 점방해. 내가 이만저만해서 시험볼란디 말좀 해주시오. 내가 가서 말해줌세

러라고. 그래서 그리 갔더니 뻔하니 알아도 도장을 찍어줘. 그래가지고 도에다가 제출을 했

어. 근게 한약방 시험 볼 무렵에 광주로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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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3月 20일 토요일 맑음

주문받은 약을 갖다 주고 또 주문받았다. 오늘의 주문액이 3,500원 정도

된다. 이 정도의 약이 판매된다면 화장품 도매보다는 훨씬 이익도 좋고.

바쁘지 않은 한가한 직업이 되겠다. 오늘 중보 임만서 제수씨에게 갔다.

삼일 전에 부자 팔물탕 약 20첩을 주었다. 삼일 전부터 복용했다고 한다.

혹시나 부자가 약첩 마다 1돈이 처방 주제되었기에 걱정이 태산같았다.

오늘 환자를 직접 보아하니 아무렇지도 않고 오히려 얼굴이 좋은 편. 퍽

이나 다행이구나. 침구는 내일로 미루고 나왔다. 오늘 건재약방에서 알

았지만 공고문을 보았다. 오는 5월 5일 한약종상 시험이 있다는 것. 오

는 4월 20일까지 원서 접수마감. 이력서 원서 사진“명함판 2매”학력증

명서. 한약방에 5년 이상 근무실적 확인증 등의 서류를 구해야 한다. 학

교는 고등학교 이상 졸업자에 한해서 말이다. 워낙 날짜가 없구나. 공부

를 했어야 말이지요. 그러나 저러나 경험상 응시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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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4월 12일 월요일 맑음

요즈음 날만 새면 한약 공부이다. 화장품은 별로 신경을 쓰질 않는다. 실

인즉 약 즉 약판 수입이 화장품보다는 더 낫더군요. 접받아가면서도

말이다. 오늘도 보라 화장품은 1,920원인데 약 3,600원이다. 그리고

약은 현금으로 줄줄 안다. 임선규 군에게도 개인 수강료 1,500원을 주었

다. 임은 체구가 작은데 리하게 생겼다. 현재 무허가로 업을 하고 있

는데 관상사주까지 곁들여서 하고 그 태도도 진지하다. 이번에 처음 시

험을 응시할 수 없다. 즉 고등학교 졸업증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응시

자격이 고등학교 졸업생으로써 한약 종상 5년 이상의 실무경력자가 시험

볼 자격이다. 물로 실무경력은 충분하는데 제일 문제가 학력이다. 또 임

군은 한약사 시험을 몇 번이나 응시한 적이 있어서 그 경험이 많다. 그래

서 시험출제 요령을 잘 아는 터라 날더러 충분히 합격할 수 있다고 한다.

또 나또한 이번이 내 인생 전환기의 직업으로 알고 공부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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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업사 시험 전날 꿈에서 본 시험문제

5월 5일 한약업사 자격시험을 앞두고 긴장된 마음으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꿈인

지 생시인지 꿈에서 보이는 시험문제지. 문득 잠이 깨고 보니 꿈이었다. 한약업사 시험이

이제 마지막이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더구나 지역별로 결원

인 곳에서만 한약업사를 뽑았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 경쟁률도 달랐다. 과감하게 고향마을

인 장성군 남면으로 지원을 했다. 드디어 한약업사 자격시험을 보는 날, 반신반의하는 마

음으로 문제지를 받아 든 순간 깜짝 놀랐다. 꿈에서 본 그 시험지 그 로 다. 시험을 채

점하는 과정에서의 부정만 없다면 합격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

그래가지고 시험을 딱 본디. 시험을 어렵게 공부를 못해. 왜냐믄 시간이 없으니까

3월경에 4월경에 한디 한달도 안 남았는디 어떻고 하겄어. 그때는 택일식 문답식 시험제도가

아니었어. 전에는 근디 그 시험방법이 되는 것이 택일하는 것이여. 그런디 임선규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디 그 사람도 무허가로 한디 머리가 좋아. 그런게 공부를 이렇게 하셔야제 언제

박선생님 나보다 나이가 어려도 못헙니다. 그 사람하고 이러고 앉아서 공부를 헌 게 쉽게 머

릿속에 들어가더라고. 근데 5월 4일날 잠을 자고 5월 5일날 새벽에 꿈을 꾼디 꿈에서 엉겁결

에 시험이 네 가지를 봐. 약물학, 처방학, 일반상식, 법제학 네 가지를 보는데 네 가지 각 30문

제씩 120문제가 나온데. 꿈을 꾼데 꿈에서 이러코 문제지가 싹 떠올라. 그러니까 문중의 할아

버지들이 나를 돌봐줬던가봐. 문제지가 쭉 나와. 일어나가지고는 전기불 요러고 킨 판이라.

단칸방에서 애기들하고 그러고 산데. 상현이까지 낳아가지고. 시험문제지가 그러고 나오기래

임선규라는 사람한테 쫓아갔어. 이러이러 한다했더니 틀림없이 합격하겄소.

근디 그때 수가 무지허니 어. 왜냐믄 앞으로 한약업사 시험이 없어진다 하기 때문에 전국

적으로 시험을 본 것이 아니라 전라남도 결원 56명만 갖고 무약면만 56군데를 갖고 본디 전

국적으로 다 와. 전국적으로 약사한 사람, 공부한 사람, 무허가 한 사람 등등 인자 자리에가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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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디는 100:1이상 되여. 광주도청 소재지를 중심으로 해서 가까운 디는 광주시내는 없고 군

소재지도 없고 전부 하의도나 신안이나 섬 지방에만 빈 디. 나는 무조건 장성 남면 좋은디로

고향이니까. 한약방 한 사람들은 자네 저 섬으로 하라고 더라고 난 떨어지면 떨어지고 별로

실감을 안 느꼈어. 그 시험이 그러고 어려운가 그렇게 안 해 봤으니까 한번. 거를 쫓아가서 시

험을 10시부터나 본디 일찌감치 7시나 서로 문답을 한다고. 아조 도청 전라남도 도청 앞에

YWCA에서 시험을 본디 5월 5일날 그때 평균차수가 몇 십 일이더라. 시험을 땅땅 침서 이

러코 본디 시험문제가 그러고 쉬워. 고 꿈에서 봤던 그런 타이틀로 시험문제가 나왔더라고.

쳐서 낸디 내 생각 로 하믄 평균 90점 가까이 되겄다 생각이 들어. 근디 그때는 부정이 하도

거시기한 판이라서. 시험점수만 제 로 맞으믄 내가 합격을 하겄는디 요판이 70년 60년

후반이라 그것이 어치고 될까 그것이 질로 걱정이더라고.

인자 시험을 무사히 보고는 며칠 있다가 우리가 광주서 살고 있는 옆방에서 노무자가 하나 살

아. 근디 그 사람이 상당히 거시기 했던가 뭐라 하겄어 내가 시험본다고 한 게 큰방이고 머시

고 주인들이 저 사람 싹수가 있다 날보고 하는 판이여 지금. 비록 화장품 장시 하고 뭐 약도 팔

고 한디 싹수가 있다. 나이 드신 분들이 참 나를 좋게 봐. 근디 노무자가 그 옆에서 산디 우리

집 애기하고 늘 싸워싸. 아줌마가 성질이 괴팍해. 이래뵈도 말여 나 시험 본 계장인가 과장이

즈그 친척이 된다고 하든가 뭐라든가 도에 의학과에 인자 그런 식으로 특성이 나온 것이여.

가서 사정해서 누구요....우리가 고개 숙이고 사정한 게 오승환이라고 더라고. 돈 없응게 빵

만원아치를 사갖고 그 집에 찾아 간 것이여. 어쩐 일이냐고 초면이지. 그 사람이 또 나를 보고

어디를 가든 관상을 보믄 나를 그렇게 탁 안 짜르더라고. 반갑게는 안해도 모른 체는 안하더

라고 사람도 좋더라고 그 사람이. 이번에 이러고 시험을 봤다고 점수만 제 로 매겨주면 쓰겄

다고. 수험번호가 몇 번이냐고 물어보더라고 딱 써주니까 한 이틀 있다가 오라고 그더라고.

그서 이틀 있가가 갔제. 갔더니 시험 잘 봤다고 그 말만해 합격했다고 어쩌고 안하고 그 말만

해. 반신반의하제 안 되믄 장사 또 하지 그 식으로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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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5월 5일 수요일 맑음

아침 5시에 일어났다. 걱정을 하지 않으려 해도 걱정이 안 될 수 없는 게

바로 인간인가보다. 8시 이전에 식사를 했다. 물론 일어난 후 약사법을

한 번 읽어 보고 말이다. 여기서 간단히 묻고 답하고는 9시가 거의되어

서 시험장으로 가보았다. 의기가 만만한 수험생들이 모 다. 사실 간헌

이 시험이라고 pen을 잡는 것이 고등학교 재학시하고는 처음 일이다. 10

시 경부터 시험에 시작. 2시간 이상에 걸쳐 네 과목 각 30문제씩 총 120

문제. 약물학 30문제, 처방학 30문제, 약사법 30문제, 기타 일반상식 30

문제 비교적 기초적이고 쉬운 문제가 출제되어 어렵지 않게 척척 적어

문제를 거의 다 풀었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간헌 평생을 통해 이토록 시험을 자신 있게 본 적은 처음일 것이다. 그러

나 시험 끝난 후 합격 여부는 개별 통지라는 보도가 있자, 또 문제로구나

부정이 내포되었지 않나 싶으나, 또 세상을 탄하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

간헌 옆방에 거주한 이은형 씨의 한 고향 사람이 도약무계장이라는 것.

그래서 이름 오성환이라는 말을 듣고 내일 찾아가기로. 그런데 오 계장

을 만나려면 이씨의 사종형님 이옥형 씨를 찾아가보라는 것이다. 자동차

승무원양성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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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어머니 한약에 한 지혜를 주시고

환자들에게 손해나지 않게 약 지을 수 있도록 해 주세요

편지가 왔다. 문 앞에 우체부가 편지 한 통을 놓고 갔다. 합격통지서 다. 한약업

사 합격통지서. 제일 먼저 아버지와 어머니 산소에 찾아갔다. 합격통지서를 펴놓고 빌었

다. “아버지, 어머니 제가 한약에 해서 감초도 모르니까 지혜를 주고 환자들한테 손해

만 안 나도록 약을 짓도록 해주십시오.”가장 먼저 알

려야 할 사람이 있었다. 한의사협회 회장이기도 하면

서 공한의원 원장님이시며 아버지 친구 분인 소평 박

남순 씨를 찾아갔다. 합격 소식에 너무나 기뻐하시면

서 돈 이천 원을 쥐어 주셨다. 개업하는데 보태라시면

서……. 지금은 얼마 안 되는 이천 원이지만 그 당시

의 이천 원은 너무도 큰 돈이었다. 돈의 액수가 문제

가 아니라 그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한약사의

꿈을이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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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더니 합격통지서가 내 앞에 떨어지더라고 문 앞에 우체부가……. 그래서 그

합격통지서를 갖고 젤 아버지, 어머니 산소에 갔지. 거그서 딱 펴놓고 아버지, 어머니 제가 한

약에 해서 감초도 모르니까 지혜를 주고 환자들한테 손해만 안 나도록 약 지으도록 해주십

시오. 엎드려 그러고는 정혜공 할아버지 산소에 가서. 그러더니 당장에 개업을 하라고 하네

인자. 군에서 의약계에서 8월 1일날. 그 양반이 한의사 회장이여 그 양반이. 그러고 박씨 종친

회 회장도 기고 전라남도. 그리고 아버지하고 친구기도 하고. 그런게 31일날 쫓아간 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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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냐믄 이 양반한테 가믄 경험이라도 내가 얻으겄다. 아침에 일찌감치 낮에는 환자보고

바쁘실 것 같애서 식전에 일찍 갔제. 갔더니 그때 박인천 씨 금호그룹 회장 집 옆에서 그 양반

이 한의원을 하신 판이여. 쫓아갔더니 어쩐 일이냐고 나를 친조카처럼 참 이뻐라 했어. 이번

한약사 시험에 합격했다고 한게 말을 잘 못하셔. 근게 니가 어떻게 한약사 시험에 합격할거냐

그것이여 장사하고 뭣헌지 안디. 내 동생도 내야 자식놈도 학교 나와 가지고 내 밑에서 공

부를 하고 그랬는디 나중에 알고 보니까 거그서 다 떨어졌는디 니까짓 것이 합격해야 그 말이

여 고등학교뿐이 안 나왔는디 그 뜻이여. 합격통지서를 보여줬더니 오메 그 자식 천재나왔네

그러면서 딱 보듬더니 큰방으로 나를 딜꼬가. 부인은 시골에서 산디 장성에서 산디. 어쩌코

합격했냐 저는 자독했습니다. 뭐야 자독해가지고 합격혀? 니가 임마 내 자식 되 으믄 얼매

나 좋겄냐. 근디 당신 아들놈은 둘이 있어. 그 양반 딸하고 내하고 국민학교 동창이여. 아버지

하고 친구인 게 잘 알아 같은 면에서 반공운동을 하신 양반들이라. 당신 아들 상철이 그 자식

은 버려부따. 당신은 업을 이을 자식 하나 있었으믄 아버지는 다 그것이 바램이지. 그러니

까 나중에 알고 본게 당신 동생도 떨어져 부제. 아들도 떨어져 부제. 근디 뜬금없는 내가 같은

면내에 산 사람 내가 합격해 분게 돈 이천원 쥐어줌서 요놈가지고 낼 개업하믄. 아 그자 광주

시 회장을 부르더라고 한약방 회장을 얼른 와보라고. 박문규 씨라고 그 양반이 오시더라고.

아 이번에 합격했단 말이요. 아 천재다 그 말이요. 그 양반도 나를 보고 우리 집으로 갑시다 그

러더라고. 가더니 부인보다 겨자상에다 걸게 차려놓고는 접 잘 받고는 약장을 하나 줘. 당

신 쓰던 헌 약장 줌서 거다 약 딱 채워줌서 싣고 가서 장사하라고. 그래서 인자 7월 31일날 그

일이 있어가지고 8월 1일날 시골에 뭐 있어 집이 초가집이다 조그만 점방 하나 얻어가지고 개

업을 한데. 인자 고향사람이 뭐라고 왔냐믄 저그는 빽이 좋아가지고 합격을 했지 지가 어찌고

합격을 해야 그 말이여 모다 인자 고향사람이 다 고향은 고향 복판에다가 한디. 진원면하고

남면하고 중간이다 도로가 중간에다. 아 그래도 간판 하고 고향사람들 아는 사람들한테 전부

편지를 했제. 나 이번에 이만해서 한약사 시험봐가지고 중앙동에다 개업을 한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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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5월 17일 월요일 맑음

식후에 시간도 있고 해서 추기당에 들 다. 마침 임군이 재중. 손을 붙들

어 잡으면서 축하 세례. 웬일이냐 했더니 한약약사 합격 축하란다. 알게

된 연유는 같이 응시한 무안군 무안면 매주리 오구 김질용 씨와 간헌이

담소중 (5월 5일 응시 후) 추기당에 들러 인사를 나누고는 갈렸다.(당시

주소도 교환하고) 김군이 합격 여부가 궁금하여 상광. 그래서 추기당에

들 더니 임군이 간헌 양동임군 모임 최두진 3인의 수험표를 적어주면

서 같이 알아보라 일 더니 도청에 들려 열람해본즉 김군도 합격 그다음

간헌도 합격 그리고 양동 임군과 최두진 군은 못 보았다는 것이다. 간헌

이 다그쳐 재차 물었더니 역시 yes란다.

그래서 15일 간헌이 도청에 들려 오계장과의 담소를 말한즉. 가슴 시원

한 표정이오나 간헌은 그래서 합격 통지를 받아보아야만 안심할일이지

그러기 전에는 마음이 놓이질 않는다.

특히 오늘 중으로 합격통지서가 각 가정에 배달된다고 도에서 말하더라

는 것. 그렇다면 내일 모레쯤은 속 시원히 알 것 아닌가 하고 마음 조이

고 간헌 기다리지만 과연 신은 어떻게 점지하고 계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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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5월 20일 목요일 맑음

간헌 합격통지를 받아들고 먼저 부모님께 성묘를 드렸다. 꾸벅꾸벅 두

번 인사드리옵고 경건히 꿇어앉아서 아버지 어머니 음덕으로 이렇게 합

격되었습니다. 그러나 감초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제가 인술을 어떻게 치

할 것인지가 큰 숙제입니다. 앞으로도 간헌께 험을 내려주시옵소서 빌

었다.

그리고는 묘봉에 죽죽 커나 온 풀을 간헌의 손으로 (아무 연장이 없는 터

라) 뜯어 드렸다. 마치 부모님의 머리를 만지는 듯한 정성으로 말이다.

이런 마음의 차분함과 또 정성된 마음 이 순간이 바로 부모님과 함께 같

이 자리를 하는 듯한 느낌이다. 평촌 큰집에 들렸더니 백부님 부재중이

고 백모님도 서울행이란다. 식량이 없어 생활고로 허덕인 갈급한 가난

때문에 또 가족과 어린 아들의 울부짖음을 흐느끼면서 서울행 발길을 옮

기는 백모의 심정이나 늙으신 백부의 보내는 (처) 심정 또한 얼마나 가

슴쓰리겠는가 말이다. 어쩌라고 큰집이 이 지경이 되어버렸는지 불과하

면 10년 사이에 말이다. 전답 다 팔아치우고 심지어는 조카 (우리네것

도) 이 꼴이니 어린 종제들은 5남매 6남매나 뒹굴고 있으니 이 배고픈

설움이 오죽하겠는가. 백부임의 무능을 탓하기보다는 종제들이 불쌍하

기만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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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7월 28일 수요일 맑음

걸어서걸어서 시내로 나왔다. 알려야 할 분이 계신다. 그분이라야 기뻐

해 주실 것이다. 그리고 내게 도움이 되질 않겠는가. 한약업에 이름이 걸

렸으니 앞으로의 나의 입지를 알려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금남로까

지 공한의원에 들어갔다. 낮에는 번다할 것 같아 아침이 좋을 듯싶다.

소평장 박남순 씨에게 인사드리옵고 이번 한약종상 시험에 합격되었노

라고 말 드렸더니 잘못 들었다는 듯이 뭣이 뭐 한약……. 합격통지서

를 보여 드렸더니 나를 꼭 안아주신다. 아~ 아니 한약방에 한번도 있어

본적이 없는 내가 자독을 했습니다에 더 놀래어 버리더군요. 이 광경을

옆에서 보고 계신 분이 있어서 인사소개를 범박씨종친회 전남도 부회장

이시라는 것. 소평장의 소개를 듣고는 따라가자고 하시더군. 화당 한

약방 박문규 씨 아침까지 자택에서 접받고 한약방에 있는 한약장을 주

시질 않은가 약서랍에 약까지 채워서 말이다. 잘해보라는 격려까지 리어

카에 실어주어 가지고 나왔지요. 이렇게 감사할 수가 있는가. 종씨여서

일까? 한약인이 되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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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초당 한약방, 드디어 개업

한약업사 시험에 합격하자마자 해당 지역에 개업을 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1971년 8

월 1일, 고향마을인 장성군 남면 중앙동에 개업을 하 다. 큰아버지께서는 남면이기 때문

에 남성당으로 하라고 하 다. 그러나 모든 한약에 빠지지 않는 한약의 명사인 감초를

넣어서 이름을 짓고 싶었다. 그래서 감초당 한약방이라는 이름으로 드디어 개업을 하 고

한약업사로서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

상호도 첨에 한 게 거가 남면이거든 큰아버지는 남성당이라고 하라고 하드만. 거가

남면인게 남녘 남자하고 별 성자하고 남성당이라고 하라고. 나는 그것이 아니여 쉽게 알게 하

기 위해서 감초는 한약의 명사이기 때문에 그것이 쉽게 안 잊어불겄다 해서 감초당으로 할

랍니다. 그래서 감초당으로 간판을 딱. 아 그래논게 약 한 첩을 팔고는 그 이튿날은 새벽에 식

전에 그리 돌아. 자전거타고 초상났는가 안났는가 항상 그것이 조심스러워. 그러고 그때 내가

화장품 장시서 어찌고 어찌고 한 것이 논을 7~8마지기 근 10여 마지기를 샀어. 처가동네에다

가 남면이 처가동네여. 십여 마지기 가까이 딱 사논게 뭔 생각이 드냐믄 5급 공무원 그때는 9

급까지 없었어 5급 공무원까지 있었어. 5급 공무원이 말단 면서긴데 그때 5급 공무원의 월급

이 이만 원이었어. 이만 원을 받아도 농사 두 서너 마지기를 큰 집이서 띠어 와도 그 놈 가지고

도 깨끗하니 잘 살드라고 공무원들은 또 깨끗허니 잘 살았자네. 그래서 내가 논이 한 이천 평

되니까 요놈 짓고 애기들 큰애기도 없고 하니까 이만 원 수입만 한달에 된다므는 니기들보다

잘 살겄다 그 계산이 나와. 그래가지고는 제일로 한약방이 안 될 때 8월 1일날 개업을 했어. 7

월 31일날 거기 갔다 와서. 8월 1일날 딱 개업을 했는디 8월 1일부터 8월 31일이 젤로 폭염에

한약이 그때는 지푸라기 이러고 해가지고 끓여서 먹는 판인디 누가 한약을 지어 가겄어. 아

그런디 한달 수입이 4만원이드라고. 아이고 내가 면장보다 낫다 인자 자신감이 딱 생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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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장성군 남면 중앙동에 처음으로 개업한 감초당한약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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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8월 2일 월요일 맑음

개업일 음식도 있었고 기름기가 든 튀김이며 잡채 따위 등이 있었는데도

월곡 양지 양만이 안와서 별 일이로군 생각했더니 어제는 몰랐고 오늘

아침에서 알고는 부랴부랴 달려온 모양. 그 사람이야 성냥 사올 생각도

없을 것이고 우선 술 생각 때문에 찾아온 것이다. 들어서자마자 술이다.

술이라야 막걸리 1되 쯤이면 벼락이라도 씌울 정도지만 술 먹은 뒤에 콩

창콩창하는 놈의 버릇 때문에 꼴불견이다. 빈정이 콱 돌 정도로군요.

아무튼 그 사람으로 해서는 어제 개업일을 모르게 큰 손해가 아닐 수 없

다. 옆주조장에서 막걸리 한 되 받아서 맡겨놓고는 간헌과 H여사는 실내

정리에 주력한다. 그 사람이야 하든 말든 말이다. 점포입구에서 오늘은

한 쪽으로 몰아 붙여 놓고 넓게 사용해 보자는 것이다. 옮겨 놓고 본즉 H

여사의 의견이 옳은 일이었군요. 다행이라 하지만 객지다운 맛 때문인지

밖을 나가고 싶지가 않더군요. 오늘 오후에는 비아면 수완리 고숙이 오

셨고 또 일명의 동행자가 내방했더군요. 고숙은 견비통병이요. 또 한 명

의 슬관절환자이다. 모두 침을 놓고 환약을 주었더니 돈까지 주는 걸 그

냥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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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성 독감 치료 후 유명해진 한약방

어느 해 겨울에 독감이 굉장히 유행했을 때가 있었다. 『동의보감』에 나오는 로 아

주 강하게 약을 썼더니 독감이 많이들 나았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명의

(名醫)라는 소리를 들으며 앉아서 밥 먹을 새도 없이 바쁜 나날들이 계속되었고, 어지간한

공무원들보다도 한 달 수입이 많았으며, 마을 사람들조차도 지역 유지를 하듯이 하

다. 안되는 일이 없었다. 심지어는 동생 래엽의 혼사자리도 잘 나오고 취직자리도 쉽게 구

해졌다. 돈이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것인가, 인생이 돈을 불러오는 것인가.

●●

그러더니 그때 독감이 겨울에 독감이 굉장했어. 지금도 안 잊어분디 향소탕, 식신

탕, 패독산을 한디 동의보감 로 만들어서 독한 것을 그냥 강하게 써 부 어. 강하게 써 붓는

디 고놈이 어떻게 들어가 먹은 사람들이 명의 났다고 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근게 손님들이

겨울에 온디 그 겨울에 서서 앉아서 밥 묵을 새가 없이 손님들이 왔어. 근게 인자 그럴 정도로

팔았응게 상상해 보믄 알제 어느 정도 팔았는가. 한 이년 있응게 광주다 집 한 채 살 수 있었

어. 우리집 거가 150평인가 그 앞에 한 40평짜리 살 수 있을 정도로 한 삼년 해가지고. 그래서

거그서 참 잘했제. 잘했는데 80년까지 유지 말 듣고 진원면에다가 참 그런 것이 뭐 공무원이

고 지랄이고 돈 있고 빠딱빠딱하니 다니면 공무원이고 다들 이런 정도드라고 우리한테. 근게

지서장도 우리한테 와서 굽신굽신함서 새마을 한 게 스피커 확성기 해주시오. 학교에서는 급

수시설좀 해주시오. 교장이. 인자 내 돈 들어간 것이 아니라 내가 동창회장을 수십 년 씩 오랫

동안 해논 게 동창회장 모금해가지고 어찌고 해서 맨들고 그런게 유명인사가 된 것이여 지금.

밸 것이단 말여. 어르신도 할아버지도 누가 한약방도 해본 사람도 없고 저러고 한약방 시험

봐서 합격한 거 보면 별놈이다 그 말이여. 그자 인자 소문이 늘 남서 그것이 아니라 저 사람 기

록하는 것은 한민국에서 어쩌고 요로고 말이 나갈 거 아녀? 그 말을 은근히 나도 자랑삼아

서 해야 하고 그것이 피알되니까. 그러고 하니까 참 별 것이다고 인자 부러워할 정도로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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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광주다 또 집샀다. 몇 년 있응게. 또 시골에다가 논도 있을만치 식량할만치 된다. 그러고 인

자 우리 장인장모도 모신다 광주다가. 그런게 부러울 것이 없제. 우리 장인장모도 그때는 그

설움 받다가 달라져불지. 그래서 동생도 거그서 여우고. 나중에 광주서 집 해가지고 딱 여우

고 헌게. 아 동생도 혼인발이 쉽게 나오드라고 근게 요놈의 것이 혼사하고 부귀는 다 따르는

것이다하드라고 형이 이러코 하고 동생도 삼강산업 취직을 시켜주고. 그래서 80년까지 왔어.

여가 있으믄 안되겄드라고 광주로 가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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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8월 10일 화요일 비

오늘도 비가 58mm가 쏟아지고 있다. 이곳 죽분에는 140~150 한때는 200

호쯤 살고 있는 큰 마을이다. 이곳 죽분에는 강씨들이 살고 계신데 장모님

의 증조께서 광 불갑에서 낙남하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현

직에 잘되신 분이 강창록 씨 현재 보성에서 농산물검사소장으로 근무하시

고 이곳에는 많은 농장을 소유하고 계신다. 또 동생 강세록 씨는 현재 광

주 서석동에 살고 계시는데 수리조합 간부로 근무하고 계신다. 이쪽은 장

모님의 작은 아버지 아드님이시고 장모님의 남매간들이 강정연 씨는 행정

서사를 하고 계신다. 오늘은 강창록 씨의 이녀 화선 처제가 내방이다.

강씨인데 23세요 결혼 전에 임신이 되어 낙태약을 원한다. 한약 처방전

1971년 8월 11일 수요일 비

계속되는 장맛비이다. 오늘도 50mm까지 쏟아져 내렸다. 비가 오면 손님

이 덜 온다. 감기약 5첩을 조약하고 나서요. 나는 환자가 오질 않으면 또

약을 조제 해주고는 바로 책을 동의보감을 떠들어 보고 또 읽어 보고 또

읽어 보면서 독성 약은 절 로 쓰질 않고 순한 약으로 조제해 주고 될 수

있으면 첩수를 적게 지어주는 방법으로 한다. 특히나 치료제는 말이다.

책을 보고 있으니 산수동에 살고 있는 임선규 군이 10여 일 만에 내방하

다. 아무렴 해도 안심이 안 되어서 인지 왔다는 고마운 말이다. 오늘날

까지 판 처방전을 보여주었더니 그 로 연구하면 되겠다면서 임산부 낙

태약은 지어주질 말라는 것이다. 나중에 말썽이 생길 경우에 좋질 않은

결과가 올 수 있다는 말이다. 한약 처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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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8월 15일 일요일 구름

요즘에 유아들부터 어린 아들이 설사병으로 약을 원하는 사람들이 내방

이다. 더운 날씨에 상한 음식에서 탈이 난 것 같다. 죽분에서 3세 어린아

이가 두드러기가 내방하여 승상만근탕 3첩을 450원에 조약해 두었다.

또 2살된 유아 설사병 가육일산 3첩에 500원. 또 8살 아 죽분 이질 설사

가전시백출산 5첩. 그자는 오늘 매약으로도 감기약 6첩에 900원 조제해

주었다. 한약처방전

1971년 8월 17일 목요일 맑음

34살 내 생일이다. 34살에 내 인생의 큰 변혁을 맞는 날이다. 34살 5월

5일에 한약종상시험 보아서 합격하여 8월 1일 이곳 남면 중앙동에서 감

초당 한약방 개업하여 17일째이다. 매월 20,000원 월급쟁이(5급 말단 공

무원)면 만족으로 알고 그런 정도 수입을 원한 나 다. 오늘은 H여사가

내 생일이라고 시장보아 찬거리 음식상도 먹음직스러웠고 내 새끼들도

잔칫집 우리집 음식 먹으니까 좋은가보다. 약방으로 나왔다. 월곡에서

내방했다. 정씨가 소(우)가 더위로 설사하는 것이다. 나는 한번도 조약

을 안 한 처방이라 마음속으로는 당황할 수밖에. 그런데 정씨는 소 먹는

처방을 외우고 있더군. 내 아는 척하고 처방전을 펼치려하니 방풍통성산

을 요하더군요. 아는 척하고 2첩에 300원 조약해 주고는 이렇게 또 한

처방 알아냈구나하고 처방전에 표시를 송강초등학교 정교석 선생님 사

모님이 내방하여 가오적탕 10첩으로 1,500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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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로 한약방 이전

고향에서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게 되자 광주로 옮기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장성에

서 가까운 광주의 연제동으로 이전을 했다. 1980년 5월 1일, 그때 당시 30만원만 내면 광

주로 전입이 가능했다. 운명의 신이 함께 이전을 한 것일까. 연제동은 연초제초장이 있는

곳이다. 마침 연초제초장에 공업고등학교 동창을 비롯해서 후배들이 많이 근무하고 있었

다. 그 덕분에 한약방 손님의 부분은 동창들과 후배들이 되어 주었고, 그들이 다시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와주는 덕분에 매일매일 바쁜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

●●

그래서 광주로 이전을 했어. 연제동으로 나온디 5월 1일날 개업했구나. 3월달에 이

전을 다 해놨지. 그때 광주가 체육 회 하면서 체육기금을 마련하는디 돈 30만원씩 냈나. 올

사람 광주로 전입할 사람 30만원 내믄 그 돈 내 가지고 광주로 전입을 했어. 이전을 한디 연제

동에가 적당한 점방이 없어. 그래서 쉽게 말하면 넘의 집 안방 상하방 쪽에 터 가지고 담 터가

지고. 주인이 성질이 고약하더라고 연초제초장에 다닌디. 그런제 연제동에서 연초제초장에

우리 동문생 공고 동문생이 백 명 이상이 다녀. 그러고 그 옆에 로케트 건전지에도 백 명 이상

이 다녀. 그러고 거가 또 나 큰집 매형이 터줏 감이고 또 외갓집 매형이 양반들 터줏 감이

고 그런게 그로 와도 하나 객지 안타고 공고 동문생들이 그렇게 아 우리 동문생이 한약방 하

신다. 그러고 일부러 내가 다 알렸지 다. 소문이 급소문이 나불드라고 그래가지고 거그서 장

사를 잘해가지고 7월달에 두 달 있다가 건축을 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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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 북구 연제동에 개업한 감초당한약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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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1일 목요일 맑음

아침 6시경에 임효진 용달차가 광주 태봉동 집으로 왔다. 한약방으로 옮

겨질 책상, 한약장 등이 실려 있어 한 차가 가득 되었다. 광주시 북구 연

제동 478-207번지 감초당한약방에 가구들을 정리하는데 한약방에 소요

되는 가구는 생각 로 정돈이 되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는 그 차로 남

면으로 갔다. 모두 실어 올렸을 때 주민들이 나왔고 외상 약 금이 들어

왔다. 그동안 10년간 살아 한약방 했던 곳을 떠나려니 섭섭하기도 하지

만 더 좋은 곳으로 간다는 안도감으로 한약재를 실은 차는 고속도로를

달렸다. 감초당한약방에 와서 한약장을 정리 정돈하는 시간이 오래 걸린

다. 남면에서 온 한약을 채우고 깨끗이 썰어 새로운 한약장에 넣는다. 새

로운 한약장에는 한약 되박이 전과 달라 바꾸어 졌으니 찾는 시간이 걸

린다. 우선 익혀지기까지는 한약장에 습관을 들여야 하겠군. 손님들이

개업이라고 내방했다. 새로 집을 건축하지 못한 약방에서 점방도 없이

개업이라고 한다. 웃음이 나지 않는다. 밤늦게까지 이 곳에서 서둘러 정

리하다가 늦게 잠을 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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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4월 10일 목요일 비

연제동 감초당 한약방으로 왔다. 이곳에서 이사를 하려하니 섭섭도 하

다. 80년 5월 1일 장성군 남면 중앙동에서 이곳으로 이사 와서 20일 모

자란 만 6년간을 성업했던 것이다. 다행히도 송두진 매형의 고향터요.

또 양지에서는 치 외종매씨의 터반이라 외롭지 않게 지냈고 특히나 연

초제초장, 로케트전지Co에는 광주 기계 공업고등학교 동문생들이 많아

서 더욱더 좋았던 곳이다. 신협으로 들려서 또 일진계원들 에도 그 외

어른들에게 인사도 드리고 전화도 해주고는 오후에는 감초당 한약방 이

삿짐을 꾸렸다. H여사는 와서 서둘러 주었고 약방은 우선 양산공단에 크

라운 제과점에 다니는 직원이 이곳으로 발령되어서 임 를 하기로. 우리

가 이사나가면 바로 들어오기로 하 다. 한약방에는 약보따리가 많아서

이것저것 챙기는데도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오늘밤 나는 안집으로 들어

가질 않고 H여사만 보냈다. 이곳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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