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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디자인論
1. 서문
사실 오랫동안 게임 디자인에 대한 101 도큐먼트를 쓰면서 ‘론(論)’이라는
거창한 제목을 쓰기에 자신이 없었다. 그 자신은 아직도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처음 쓰려고 생각을 했던 때보다는 많이 나아졌다는 생각이 들어 ‘게임
디자인論’이라는 거창한 제목으로 글을 쓰기로 했다.
내용은 아직 뚜렷하게 정설이라고 주장할 수 없으며, 개인적인 경험으로 게임
디자인에 대한 깊숙한 곳부터 표면적인 것들을 살펴보고자 하므로, 이견이 있는
분이라면 메일 혹은 본 사이트의 게시판에 의견을 올려주시기를 바란다.
2. 게임 디자인 101
1) 게임 디자인의 정의
게임 디자인이란 게임을 디자인(design, 설계)하는 작업을 말한다. 컴퓨터
게임의 보급이 게임의 다른 부분들보다 먼저 국내에 보급된 까닭에 대개 게임
디자인이라고 하면 의례껏 ‘컴퓨터 게임 디자인’을 통칭하나, 실상 게임
디자인은 컴퓨터 게임뿐아니라 바둑, 장기와 같은 보드 게임이나 카드 게임,
최근에 보급되고 있는 주사위와 말판 등을 이용한 아날로그 보드 게임 등을
설계하는 작업을 말한다. (그러나 이 문서에서는 컴퓨터 게임만을 특별히
취급해서 이야기하도록 한다) 그래서 게임 디자인은 게임에 사용하는 토큰의
수나 종류, 주사위 굴림이나 수식의 계산 등을 설정하기도 하고 전체적인 게임의
분위기(theme, 테마)나 내용을 결정하는 작업을 부른다.
하지만 컴퓨터 게임을 오래 경험하고 오래 개발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게임에
사용할 토큰을 설정하고 수식을 만들며, 분위기를 잡는 작업을 쉽게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에는 큰 이견이 없다. 그리고 이것은 게임 디자인이라는 작업이 다른
게임 개발 파트에 비해서 좀 더 접근이 쉽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이 토큰을 설정하고 수식을 만들며 분위기를 잡는 것이 게임 디자인의 전부라면
사실상 게임 디자이너는 게임 매니아나 지망생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게임 디자이너를 좀 더 엄격하게 채용하고 인정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있기 때문에 취직이나 채용이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러면 게임 디자이너에게 요구하는 것들을 하나 하나 추려서 이야기를 해보자.
- 좋은 아이디어를 내는 역할
아이디어라는 것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떠올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살면서 불편한 것을 어떻게 개선하느냐를 고민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발명가가 되고, 게임을 하면서 뭐가 재미 있을까를 고민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게임 디자이너가 된다고 할 수 있는가. 발명가라는 직업이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사람을 부르는 것이 아니듯이 게임 디자이너도 아이디어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다.
좋은 아이디어는 좋은 아이템으로 될 수 있지만 그 아이템을 만드는 것이 바로
발명가와 게임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라면 이해하기 쉽겠다. 이것은 똑 같은
아이디어를 가지고도 다른 발명품이 나오듯이 똑 같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해도
전혀 다른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것과 같다. 아이디어는 게임을 개발하기 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게임이 반드시 아이디어로 만들어진다고 볼 수는 없다.
정리하면 좋은 아이디어 100 개를 합쳐서 만든 게임이 반드시 좋은 게임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아이디어를 전혀 내지 않은 게임 디자이너가 개발 중도에 참여해서 개발을
진행하기도 하므로 아이디어는 게임 디자이너에게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라고는
할 수 없다.
- 원만한 팀웍을 만드는 역할
개발팀에서 팀웍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고 이것은 많은
개발팀이 개발을 완료하지 못하고 해산하는 주요한 원인이 되기도 하며 좋은
개발자들이 회사를 떠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게임 디자이너가 이런 상황에서
팀웍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중요한 역할을 해야하는 것도 물론
사실이다. 그러나 이 역할은 굳이 게임 디자이너가 하지 않아도 되며 원만한
성격이면 좋겠지만 아닌 사람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직업이다.
게임 디자이너의 많은 역할 중에는 문서를 작성하고 전달하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개발 멤버와 친해지고 의사 교환을 쉽게 하기 위해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인간적인 관계가 굳이 없다고 하더라도
개발은 진행되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면 이것이 게임 디자이너의 주요한
역할이라고 볼 수는 없다.
- 게임 디자인 문서(document, 도큐먼트)를 만드는 역할
게임 디자이너 중에는 문서를 예쁘게 꾸미거나 엄청난 양의 문서를 만드는
기획자도 있는 반면 문서를 한 장도 만들지 않아도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게임 디자인 문서는 게임 개발 조직이 커지면서 게임 디자이너의
의사를 다른 멤버에게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한다면 1970년대 게임
업계 초기의 1 인 개발이 진행될 때는 디자인 도큐먼트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게임 디자이너의 의사를 프로그래머와 그래픽 아티스트에게 완벽하게 전달할 수
있다면, 게임 디자인 도큐먼트의 기능은 의사의 전달이 아니라 기록의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이렇게 본다면 게임 디자인 도큐먼트를 예쁘게 만들거나 많이
만드는 것이 반드시 게임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 게임 개발의 비전(vision)을 제시하는 역할
게임 디자이너 중에는 개발하려는 게임 혹은 개발중인 게임의 방향을 뚜렷하게
설정하고, 이런 설정에 앞서 시장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다. 이런 디자이너들은 대부분 마케팅이나 사업 기획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게임 디자이너를 거쳐서 프로듀서를 지향하기도
한다. 게임 디자이너에게 개발의 비전을 제시하고 다른 개발팀원이 지치지
않도록 하는 역할도 매우 중요하며, 경영자에게 프로젝트의 중요성과 현재
상황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것도 매우 중요한 역할이다. 이런 것들을 통해서
개발팀의 유지만이 아니라 프로젝트의 유지, 더 나아가 회사의 안정적인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 가능하므로 매우 중요한 역할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른 방향에서 본다면 게임 디자이너가 이 역할을 하지 않거나 이 역할을
경영자가 하기도 하거나 개발팀의 팀장이 하기도 하는 것을 본다면 이것도 게임
디자이너의 필수 덕목이라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 개발 팀장으로써의 역할
많은 개발자를 보면 게임 디자인 파트는 게임의 방향을 설정하고 게임의 내용을
결정하는 파트이므로 개발팀의 팀장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이야기한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바람직한 것과 반드시 해야하는 것과의
차이는 매우 엄격하다. 게임 디자이너가 팀장인 경우 개발중인 게임의 전체적인
방향 설정과 수정, 팀의 자원(resource, 리소스)이나 일정(schedule, 스케줄)
등을 쉽게 조절하는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이런 것들을 관찰자의 입장에서 좀 더
용이하게 파악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프로그래머가 팀장인 경우나 그래픽 아티스트가 팀장의 역할을 하는
경우도 많이 있으며, 이런 경우에도 나름대로 각각의 장점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또한 앞에서 예를 든 팀장의 역할은 실무자를 벗어난
관리자의 위치에서 하는 경우도 쉽게 찾을 수 있으므로 이 역할을 반드시
기획자가 해야하는 것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 디자이너는 개발팀에서 제품의 사양(spec., 스펙)을
설정하는 것이나 방향성을 설정하는데서 발생하는 분쟁 등을 조정하고 중재하는
역할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 개발 멤버의 보조 역할
게임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농담처럼 하는 이야기로 ‘커피 타주고 청소하고 담배
심부름하는 역할’이 이에 해당하는 것인데,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보면 나이가 어린 게임 디자이너가 적지 않아서 팀의 막내로
이런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그러나 게임 디자이너는 개발의 중요한
파트를 차지하는 직업이며 이런 중요한 인력을 채용해서 보조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다.
아마도 팀 안에서 ‘원만한 팀웍을 만드는 역할’을 하면서 다른 개발 멤버가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하도록 하여 전체적인 개발의 진행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에서 와전되어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를 종합한다면 게임 디자이너의 역할은 게임을 설계하는
것으로 한정할 수 있고, 이외의 역할들은 개발의 진행에 따라서 일시적으로 게임
디자이너가 하기도 하지만 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 된다.
- 게임을 설계하는 역할
이것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게임 디자이너의 중심 작업이다. 그러나,
글의 첫 부분에서 이야기를 하였듯이 ‘게임의 캐릭터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스토리로 어떤 아이템을 사용해서 어떤 몬스터를 어떻게 잡는다’라는 것만을
설정하는 것이라면 결코 어렵지 않다. 오히려 환타지 배경의 RPG 라면 환타지
소설을 많이 읽은 사람이나 중세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오히려 더 쉽게 할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진정 이것이 게임 디자이너의 중심 작업이라면
게임 디자이너는 소설 책이나 설정 자료집만 끼고 살아도 충분히 할 수 있으며
해박한 지식으로 다른 개발 멤버들을 깔아 뭉개면서 개발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이런 해박한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게임 디자이너들이 업계에 수도
없지만 언제나 서로의 지식만 뽐내고 상대를 짓누르는 것에만 힘을 기울이는
모양새도 그렇거니와 그들이 만든 게임은 결정적으로 인기가 없을 때도 많고,
게임 개발 조차 끝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문제점은 대부분의 게임 디자이너가 이런 게임의 시스템이나 룰, 설정에만
신경을 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손쉬운 예로 ‘게임의 재미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게임 디자이너는
제각각의 답을 쏟아내고 어느 누구도 합치되는 뚜렷한 ‘재미’라는 단어를
이야기하지 못한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게임 디자이너는 게임의 ‘재미’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2) 재미의 정의
게임 디자인이 재미를 만드는 작업이고, 게임 디자이너는 그 게임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사람이라고 앞의 단락에서 이야기 하였다. 그러나
재미라는 단어는 매우 다양한 모양을 가지고 있는 백면 주사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두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고,
A 라는 사람은 공포 영화의 심오한 맛을 아는 사람이고,
B 라는 사람은 농담과 장난이 난무하는 짐캐리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하자.
A 와 B 는 함께 공포 영화를 보러 갔고 영화 제목은 제이슨이 나오는 13 일의
금요일이었다.
A 는 전 시리즈에 걸친 제이슨의 변화나 스토리의 변형(variation, 바리에이션)
을 보고 특수 효과들에 감탄하고 나오면서 ‘재미있는 영화였다’고 평한다.
하지만 B 에게는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B 는 자신의 취향대로 A 를 데리고 짐캐리의 ‘라이어 라이어’라는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으로 가서 표를 끊었다.
물론 B 는 짐캐리와 ‘하루만 거짓말을 하지 않게 해주세요’라는 아들의 기도를
보며 박장대소를 했고, ‘재밌는 영화다’고 평했다. 하지만 A 는 싸구려 영화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두 사람은 각각 공포 영화와 코메디 영화를 보면서 ‘재미있다’는 평을 했다.
하지만, A 와 B 가 오늘 본 두 영화에는 전혀 공통점이 없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제 재미라는 단어를 살펴보자.
재미(←滋味)[명사]
1. 아기자기하게 즐거운 맛이나 기분. ¶ 살아가는 재미를 알다. / 소설의 재미에 취하다. 2. (돈벌이 따위의) 좋은 성과나 보람. ¶ 재미가 괜찮은 사업. 3. (안부를 물을 때의) 생활의 형편.
¶ 요즘 재미가 어떤가?
기본적인 단어의 뜻은 ‘즐거운 맛이나 기분’이다.
이것은 영어의 재미(fun, 펀)라는 단어의 해석과 크게 다르지 않다.
fun [fn] n. 1 장난, 놀이, 재미, 희롱(merri- ment), 농담; 즐거움, 낙2 [보통 be 의 보어로] 재미있는 사물[사람]3 큰 소동, 격론
이런 목표의 부여 과정은 처음 그렉 코스티키얀(Greg Costikyan)이 ‘I have no
word & I must design’이라는 글을 쓰던 1994년에는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코스티키얀은 이미 이런 목표가 완구를 가지고 노는 아이들이
자의적으로 부여하는 목표에서 그 답을 찾은 바 있다.
'심시티'에는 목표가 없다. 그렇다면 이것은 게임이 아닌 것일까. 물론이다. 디자이너 자신이
말하듯이 이것은 게임이 아닌 완구이다. '심시티'를 오랫동안 즐기기 위해서는 스스로 목표를
정해서 이것을 게임화해야만 한다. 그 목표가 가능한 한 최대의 메가로폴리스를 만드는 것이든, 시민의 지지율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것이든, 운수업만으로 이루어진 도시를 만드는 것이건
간에, 하여간 목표를 정할 때 비로소 '심시티'는 게임으로 변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목표나 결과가 없다고 생각했던 MMORPG 는 이미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유저는 게임에 접속하면서 자신의 목표를 설정하거나 게임의
플레이를 통해서 계속적인 목표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기존의 많은 게임 디자이너들이 게임의 궁극적인 목표를 만들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유저들은 이미 다양한 방향으로 접근해서 해결하기
시작했고, 이런 것들은 결국 목표가 없는 게임에서 목표를 만드는 것으로
정리된다.
목표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심시티'는 금새 질려버린다. 이와 대조적으로 시드 마이어(Sid Meier)와 브루스 셜리(Bruce Shelly)의 '시빌라이제이션(Civilization)'은 분명히 심시티에서
파생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목표가 있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심시티'보다 훨씬 열중할 수
있고, 빠져들게 된다.
게임에 있어서 목표가 중요하다고 한다면 RPG 는 어떤가. RPG 에 승리조건 따위는 없지
않은가'라는 반론이 나올지도 모른다.
사실 RPG 에는 승리조건이 없다. 그러나 RPG 에도 틀림없이 목표가 있다. 어디서나 등장하는
'경험치 벌기'라든지, 친절한 게임마스터가 강제로 밀어붙여준 퀘스트를 달성한다든지, 제국을
재건해서 항성간 문명의 붕괴를 막는다든지,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든지, 뭐, 그런 것이다. 만일 무언가의 사정으로 목표가 없었다고 쳐도, PC 는 금새 적당한 목표를 찾아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PC 는 술집에서 "이 얼마나 재미없는 게임이냐"하고 투덜투덜 거리며 불평을
해대는 것 정도 말고는 할 일이 없어진다. 그렇게 되면 게임 마스터도 화가 나서, 갑자기
술집에다 오크의 대군을 투입해서 그 PC 를 두들겨 패주려고 할 것이 틀림없다.
오, 좋다. 이제 목표가 생겼다. 어쨌든 살아 남는다는 건 훌륭한 목표다. 최대의 목표라고 해도
좋다. 하여간 목표가 없으면 의사결정은 무의미해진다. A 도 B 도 같은 것. 아무거나 하나
찍어라. 뭘 걱정하나?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어느 쪽을 선택하는가가 차이를 갖기 위해서는, 즉 게임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무언가
성취하기 위해 노력할 대상, 목표가 필요한 것이다. 게임을 분석할 경우 '이 게임의 목표는
무엇인가. 목표는 단일한가. 복수의 목표가 있다면, 각 플레이어가 그 중에서 자신의 목표를
선택하고, 목표 성취를 위해 매진하도록 만드는 장치는 무엇인가'라는 것을 생각해야만 한다.
- 그렉 코스티키얀, I have no word & I must design, 1994
이 문단의 끝은 본인의 생각과 같은 방향으로 마감하고 있다. 유저는 목표를
임의로 설정을 하고 그 목표를 게임상의 목표로 정하거나 게임의 목표와
동일시한다. 그리고 이런 목표는 게임이 부여하지 않아도 유저가 스스로 만들기
시작한다.
MMORPG 의 중독성은 유저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6) 접근 방향
그러면 이제 중요한 생각을 해야한다. 유저가 게임에서 재미를 느끼는 과정들을
나름대로 분석했고 그 방법들에 대해서도 충분히 설정할 수 있는 토대가 되어
있다.
이제 어느 방향에서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가 게임 디자이너의 선택이다.
한 게임 디자이너는 이런 질문을 했다.
‘게임을 처음 만들기 위해서 방향을 어떻게 설정하는가’
앞에서 간단하게 언급 하였지만, 재미는 사회성을 가지고 있다. 즉 옆 사람이
재미있게 하는 게임은 자신도 재미있게 하려는 경향이다. 이미 여성
프로게이머의 예를 보았듯이 주변의 친한 사람이 재밌어 하는 게임은 개인적인
취향에 맞지 않더라도 시도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한다.
그리고 이런 재미의 사회적인 특징은 광범위하게 퍼져서 연령층 전체의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하는데 우리는 이런 예를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는
모습이나 유행하는 얼짱 등의 특정 집단의 또래 문화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쉬운 예로 처음 20 대 초중반을 휩쓴 ‘카운터 스트라이크’는 점차 저 연령층으로
그 게이머가 전이되었고 점차 해당 연령층의 공감대를 형성해서 ‘카운터
스트라이크’ 반대항 대회나 ‘모르면 바보’가 되는 문화로도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이 있다.
이런 사회적인 공감대는 최근 유행하는 MMORPG 의 붐에서도 찾을 수 있다.
전체적인 유저들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플레이를 하지만 그 수요가 점차
줄어들면 가속화하는 경향도 같은 이유에서다.
게임의 방향을 설정하는 과정은 이런 집단적이고 사회적인 특성을 가지는 것을
이용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이미 우리는 마케팅이라는 방법으로 이 것들을 해
왔다고 생각한다. 처음 개발을 하면서 설정하는 방향은 크게 둘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얇고 넓은 층인지 아니면 두텁고 좁은 층인지인데 때때로 이것은 전자를
라이트 유저로 후자를 매니아 또는 헤비 유저로 부르기도 하고, 20 대 초반
전체의 유저와 10 대에서 30 대의 여자로 설정하기도 한다.
이런 마케팅적인 접근은 게임의 개발과 완성, 판매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데 개발하려고 하는 게임이 어떤 것에 초점을 맞추는가에 따라서 집중과
포기가 필요한 부분이다.
일반적인 경험 적은 게임 디자이너의 경우는
‘10 대 초반 ~ 20 대 후반의 게이머’ 라고 설정한다.
이 층은 상호간에 특성도 없고 공통점도 없으며 취향도 불분명한 타게팅이다.
개발하려고 하는 게임이 FPS 이고 밀리터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면 타겟은
분명하게 정해야 한다.
‘10 대 초반 ~ 20 대 후반의 FPS 와 밀리터리 매니아’
그리고 이런 설정은 마케팅의 중심이 되고 FPS 매니아를 타겟으로 하는 대회를
개최하거나 랜파티를 하는 방법, 그리고 밀리터리 잡지나 밀리터리 용품을
사은품으로 거는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 폭은 물론 너무 좁다. 그래서 일반적인 마케팅의 원론에서는 1차, 2차, 3
차에 걸쳐서 그 마케팅의 대상을 확대하도록 한다. 첫째로 밀리터리 매니아를
어느 정도 공략했다면 단지 FPS 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밀리터리
매니아나 또는 밀리터리 매니아는 아니더라도 FPS 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확대를
하고, 이것을 성공적으로 실현했다면 3차 타겟으로 20 대 초 중반의 게이머로
확대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이런 타게팅을 게임 개발 전에 뚜렷하게 형성했다면 게임의 개발에서도
선택과 집중, 포기의 과정이 필요하다. 타겟 유저의 취향은 피가 많이 튀는
것인지 아니면 서바이벌 게임처럼 다운되는 것인지 아니면 피는 적더라도
멋지게 쓰러지는 장면을 연출한다던지 하는 것들을 나열하고, 이 타겟의 취향에
따라서 선택하고 선택하지 않은 것은 과감하게 포기하는 용단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선택과 집중, 포기가 없으면 게임은 애초에 표현하려고 하는 색깔이
사라지게 되는데, 우리는 이런 예를 주변에서 너무나 쉽게 찾을 수 있어서
오히려 슬프다.
게임의 개발 과정에서 ‘지나가는 대표 이사의 한마디’가 만든 파장으로 게임의
전체적인 방향이 뒤집어 엎어지거나 아무 개념없이 이것 저것 넣다보니 게임은
완성했는데 이도 저도 아닌 게임이 되는 것은 모두 선택과 집중, 포기의 과정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포기한 것에 대한 제안은 물리쳐야하며, 선택한 것에 대한 제안은 좀 더
집중할 여지를 가질 수 있다. 그리고 미처 생각하지 않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선택할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 집중을 해야할 지에 대한 결정을 하는
것이 기획자의 몫이다.
7) 진입 장벽
이렇게 게임 개발의 방향을 설정했으면 게임 디자이너는 진입 장벽을 고려해야
한다. 분명하게도 게임 매니아가 요구하는 기대 자극은 매우 크고 일반 유저나
캐주얼 유저가 요구하는 기대 자극은 그에 미치지 않는다.
수치화를 하기는 어려운 것이지만 설명을 위해서 수치화를 해보자.
게임 매니아는 9 의 자극에 익숙해있는 유저라고 가정하고, 일반 유저와 캐주얼
유저는 각각 5 와 4 에 익숙해 있다고 설정하겠다.
게임 매니아에게 먹히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어도 9 이상의 자극을
제공해야 한다. 즉,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매니아을 대상하는 게임이라면 ‘
카운터 스트라이크’보다 더 많은 자극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즉, 이미
9 라는 자극에 익숙한 유저는 9 의 자극이 일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다르게 생각을 해보자.
1.5V 건전지의 남아있는 량을 보기 위해서 혀를 대어본 적이 있는가.
그 전기가 흐르는 짜르르한 느낌은 처음에는 굉장히 불쾌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것일 것이다. 그런데 그 감각을 참고 10~20초를 대고 있으면 점차 그 감각이
익숙해지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이런 짓을 여러 번 하면 건전지 남은 량을
측정하기를 재미로 하게된다.
나중에 되어서는 4.5V 건전지를 대고도 그런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된다. 만약,
4.5V 에 익숙하게 된 상태에서라면 1.5V 의 건전지를 혀에 대는 것이 그리 큰
느낌으로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이런 예는 폭력에서도 나타난다. 자식을 구타하는 부모가 한 아이를
키우고 있고, 이 아이는 폭력에 익숙해져서 맞는 것에 대한 고통이 처음 맞는
것에 비해서 덜한 경우가 실제로 있고, 가학적 피학적 변태 성욕도 이런 과정에
의해서 ‘익숙해지다가 즐기게 되는’ 일련의 상황들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또 다른 예로, 상처의 딱지를 떼는 습관이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를 볼 수 있다.
처음에는 딱지를 떼는 고통이 굉장히 아프지만 나중에는 피가 나고 따끔거려도
그 딱지를 떼는 것을 즐기기 시작한다고 한다.
이 이야기들을 종합해서 결론을 지어보자.
4.5V 에 익숙한 사람에게 1.5V 는 별 감흥이 없다. 하지만 보통 사람은 1.5V 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