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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Andong 하회탈은 오리나무로 깎은 조선의 얼굴이다. 그 꾸민 데 없이 수수한 표정은 이 땅에 살다간 사람들의 내면의 표상이다. 하회탈과 추로 지향(鄒魯之鄕)으로 알려진 안동에선 한국인의 얼굴과 정신문화의 뿌리를 발견하게 된다. 하회마을, 도산서원, 탈 박물관 등 안동을 대 표하는 명소를 돌아보면 지난 세월 선인들이 남긴 자존의 기상과 발자취가 생생하게 되살아옴을 느낄 수 있다. 사진 김주형 기자·글 장성배 기자 에 새겨진 한국 얼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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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한국 얼굴 마음 - img.yonhapnews.co.krimg.yonhapnews.co.kr/basic/svc/06_images/travel_andong200908.pdf · 관)에선 중국의 나희가면과 벽사가면, 일본의

Oct 3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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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ravel Andong

    하회탈은 오리나무로 깎은 조선의 얼굴이다. 그 꾸민 데 없이 수수한 표정은 이 땅에 살다간 사람들의 내면의 표상이다. 하회탈과 추로

    지향(鄒魯之鄕)으로 알려진 안동에선 한국인의 얼굴과 정신문화의 뿌리를 발견하게 된다. 하회마을, 도산서원, 탈 박물관 등 안동을 대

    표하는 명소를 돌아보면 지난 세월 선인들이 남긴 자존의 기상과 발자취가 생생하게 되살아옴을 느낄 수 있다.

    사진 김주형 기자·글 장성배 기자

    안동에 새겨진 한국의 얼굴과 마음

  • 200908 155154 200908

    지난7월 중순 찾아간 하회마을은 며칠새 내린 폭우로 인해 낙동강 물이 꽤 불어나 있었다. 물론, 강물이 봉긋한 지형의 마을을 넘볼 정도는 아니었다. 탁류가 흐르는 낙동강과 달리 마을 초입 연못에는 백련이 만개해 싱그러움을 안겨주었다.

    하회마을은 안동 풍천면에 자리한다. 낙동강이 크게 휘돌아 나가는 자리다. 조선 초기 전서

    공 류종혜가 터를 닦은 이후 풍산류씨(豊山柳氏)가 대대로 살아온 전형적인 동성(同姓)마

    을이다. 조선 중기 유학자인 겸암 류운룡, 임진왜란 기간에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 형

    제가 이곳에서 태어났다. 겸암이 살던 집으로 풍산류씨 대종가인 양진당(養眞堂), 서애의

    종택인 충효당(忠孝堂) 등 수백 년 세월이 깃든 기와집과 초가가 보존돼 마을을 이룬다.

    하회마을은 조선 중기 이후 한양의 축소판으로 불릴 정도로 번성한 대촌(大村)이었다. 반

    세기 전만 해도 마을의 초등학교 학생 수가 650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하지만 1960~70

    년대 이농 현상으로 인해 마을 인구는 대폭 줄어든 상태다. 낙동강 건너편 절벽인 부용대에

    서 내려다보면 집이 헐린 자리가 많이 눈에 들어온다. 마을 북쪽에 있던 풍남초등학교도 이

    미 오래 전 문을 닫았다.

    초가와 기와집이 어우러진 하회마을은 큰길을 중심으로 북촌과 남촌으로 나뉜다. 동쪽에

    자리한 화산(花山) 줄기가 강에 둘러싸인 마을로 뻗어내리며 아주 낮은 구릉을 이룬다. 마

    을의 가옥들이 모두 화산 구릉을 중심으로 저지대를 향해 조성되다보니 집의 좌향(坐向)이

    일정치 않다. 일반적인 남향이 아닌 사방팔방으로 대문이 나 있다. 가옥이 서로 마주보지

    않게끔 배치한 마을 구조는 사적 공간의 보호, 즉 공존의 의미를 구현한 것이라고 한다.

    한국 유교문화의 본향 하회마을이 조선의 얼굴을 표방한다면 도산서원은

    조선의 정신이 깃든 곳이라 할 수 있다. 조선 중기 영남학파의 정점인 퇴계(退溪) 이황(李

    滉, 1501~70)이 거처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에 세워진 사액(賜額)서원이다. 선조 8년

    (1575) 한석봉이 쓴 현판을 하사받아 영남 유학의 총본산이 되었다.

    도산서원은 퇴계가 지은 도산서당과 농운정사를 모태로 삼아 퇴계 사후인 1574년 세워졌

    하회마을은 낙동강이 마을을 휘감은 지형이 마치 연꽃이 물 위에 떠 있는 형국이라고 한다. 마을 내 길은 수령 600여 년

    의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뻗어나간다. 수백 년 전 길이지만 차량이 지나다닐 만큼 폭이 넓다.

    고택에서 마시는 차 한잔의 여유 하회마을은 조선시대를 재현한 민속촌이 아니다. 옛 모습이 그대로 보존된 실제 주거지이다. 양진당과 충효당 등 문화재를 비롯해가옥들은 모두 개인 주택이다. 민박과 식당, 찻집으로 개방된 곳이 아니면 함부로 들어가선 안 된다. 아무 집이나 불쑥 들어가 둘러보고 사진을 촬영했다가는 꾸지람을 들을 수도 있다.

  • 200908 157156 200908

    안동에서 맞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지례예술촌은 안

    동의 수많은 종택 체험지 중 으뜸으로 꼽힌다. 건물의 역사와 규모, 체

    험 프로그램 면에서 가장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선 현종 4년

    (1663) 건립된 의성김씨(義城金氏) 지촌 김방걸(芝村 金邦杰)의 종택

    과 지촌제청, 지산서당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례예술촌은 안동 시내에서 약 32㎞ 떨어진 첩첩산중에 자리해 음풍

    농월을 즐기기에 알맞다. 예술촌의 중심인 지촌 종택은 안동 지역 상

    류계층 가옥의 여러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다.

    현재 지촌 종택 안채에는 주인장인 김원길(67) 촌장 내외가 산다. 김

    촌장은 1971년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시인으로 1980년대 임하

    댐 건설로 고향 마을이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문중 소유의 종택과 서

    당 등을 마을 뒷산으로 옮겨 예술촌을 조성했다. 이후 전통 한옥의 활

    용 및 보존에 관한 강연과 집필 활동을 활발하게 펼쳐오고 있다.

    김 촌장이 예술촌 운영에 가장 역점을 두는 부분은 예술인의 창작 활

    동 지원과 일반 관광객의 전통문화 체험이다. 시인 구상, 도올 김용옥,

    현대무용가 홍신자, 피아니스트 임동창 등 분야를 막론하고 그동안 이

    곳을 다녀간 예술인들이 즐비하다. 일반 관광객은 연간 약 5천 명이 다

    녀가는데, 외국인이 10% 이상을 차지한다. 외국인 관광객 대부분이 이

    곳에서 ‘고요한 아침의 나라’의 진면목을 발견하고 큰 감흥을 얻어간

    다고 한다.

    지례예술촌의 체험 프로그램은 20여 개에 달한다. 다도 및 예절 교육,

    탈춤과 국악기 배우기, 한복 입어보기, 메뚜기 잡기, 물놀이, 식물채집,

    서예와 탁본, 시 낭송회 등이 계절별로 다양하게 진행된다.

    물론, 아무런 체험 없이 하루를 보내는 것도 의미가 있다. 대청마루나 사랑방에 앉아 사색

    과 독서를 하며 더없이 고요한 평화에 젖어들 수 있다. 강물 소리, 풀벌레 소리, 별이 지는

    소리를 들으면 안동의 정신과 아름다움이 온몸으로 스며드는 느낌이다.

    다. 치장을 피한 단순 구조와 양식이 퇴계의 담박한 성품을 드

    러낸다. 퇴계는 몸소 거처하던 서당 옆 기슭에 매화와 국화,

    대나무와 소나무를 심어 ‘절우사(節友社)’라 이름 붙이고 소

    요했다고 전해진다. 34세에 문과 급제해 성균관 대사성을 지

    내고 낙향한 후 70여 차례나 벼슬을 사양하며 오직 학문과 가

    르침에 힘써 조선 성리학의 큰 줄기를 이루었다.

    도산서원에는 퇴계와 관련된 일화가 무수히 전해진다. 제자인

    김성일(金誠一)이 엮은 ‘퇴계선생실기’를 보면 간결하고 소

    박한 성품에 말이 적으며 명리에는 마음이 없었다고 한다. 찬

    (饌)은 끼니마다 두서너 가지에 불과했고, 음식을 먹을 때 수

    저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퇴계는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도 남달랐다고 한다. 지체가 낮

    고 나이가 어리다해도 예절을 차려 공경함을 다하였다. 대화

    를 나눌 때도 자신을 낮추고 결코 희노(喜怒)의 기미를 나타내

    지 않았다. 매우 관대해 큰 잘못이 아니면 사귐을 끊지 않았

    다. ‘치우침 없이 상대의 좋은 점은 따르고 그른 점은 고칠 일

    이다’라는 게 퇴계의 일관된 가치관이었다.

    도산서원 내 옥진각(玉振閣)에는 퇴계의 유품과 사상세계가

    전시돼 있다. 입구에 1751년 강세황이 그린 ‘도산서원도’의

    복사본이 걸려 있는데, 서원의 구조 및 주변 풍경이 지금과 별

    반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유품 중에선 빗자루인 장추, 침

    을 뱉을 때 사용하던 그릇인 백자타호 등이 눈길을 끈다.

    도산서원에서 더 이상 논어와 맹자를 읽는 소리는 들리

    지 않는다. 서릿발처럼 강성했던 사림의 기상과 맹렬했

    던 도학에의 추구는 이미 오래 전 물러나 자취를 감추었

    다. 이곳에서 무르익은, 인간의 길을 밝히는 선현의 가

    르침은 이미 한국인의 원형질 속으로 스며들어갔다.

    세상에 드리워진 선현의 가르침

  • 200908 159158 200908

    가족 여행객을 위한 보물찾기안동에서 종갓집 다음으로 많은 게 박물관ㆍ전시관이다. 총 21개가 운영된다. 이는 안동 지역의 풍부한 역사 문화적 배경 덕분이

    다. 가족 여행객이라면 보물찾기를 하는 기분으로 안동의 박물관ㆍ전시관을 골라 둘러볼 수 있다. 하회동 탈 박물관, 안동소주ㆍ전

    통음식박물관, 안동민속박물관, 안동공예문화전시관은 빼놓지 말고 들러야 한다.

    하회동탈 박물관(www.mask.kr)은 안동의 얼굴인 하회탈을 모두 만날 수있는 곳이다. 하회별신굿 탈놀이에 등장하는 양반, 선비, 초랭이, 이매, 각시, 부네, 할미, 중, 백정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 현재 국보로 지정돼 국립중앙박물관

    에 소장된 9개의 하회 탈을 구회(九回) 김동표 관장이 원형에 가깝게 재현시켰다.

    탈 박물관 제1전시실에는 하회탈을 비롯해 전국의 탈놀이에 등장하는 200여 점의 한국 탈

    이 전시돼 있다. 황해도의 봉산탈과 강령탈, 부산의 야류탈, 경남 고성의 오광대탈, 강릉

    관노가면극탈을 볼 수 있다. 저마다 풍자와 해학을 담은 표정들이다. 제2전시실(아시아

    관)에선 중국의 나희가면과 벽사가면, 일본의 노(能)가면, 태국의 콘가면, 인도의 쵸우가

    면 등을 볼 수 있다. 또 제3전시실(세계관)에선 아프리카 부족들의 주술용 탈, 베네치아의

    카니발 가면, 멕시코의 축제탈,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전통탈을 감상할 수 있다.

    안동소주ㆍ전통음식박물관(www.andongsoju.com)은 안동의 먹을거리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경북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조옥화 여사가 재현한 안동소주와 안동 향토음식이

    주인공이다.

    안동소주는 알코올 도수 45%의 증류주로 고려시대 원나라에 의해 전래됐다고 알려져 있

    다. 안동의 명망가에서 비법으로 전수되던 것이 1980년대 상품화되면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박물관에선 안동소주의 유래와 제조 과정, 전국 민속주의 종류, 시대별 술병과 술

    잔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애주가들을 위해 시음장과 판매장도 운영된다.

    전통음식 전시실에선 건진국수, 헛제사밥, 안동식혜 등 안동 향토 별미를 만날 수 있다.

    향토 별미와 함께 돌상, 혼례상, 회갑상, 제사상, 다과상, 수라상 등 한국 전통 상차림도 재

    현돼 전시된다. 특히, 1999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안동 방문 시 선보인 생일상이 눈길

    을 끈다. 정성껏 차려진 생일상 앞에서 웃고 있는 여왕의 표정이 더 없이 행복해 보인다.

    안동민속박물관(www.adfm.or.kr)은 안동 시내에서 안동댐 방면으로 가다가 월영교(月映

    橋)를 건너면 이정표가 보인다. 안동 지역의 민속문화를 체계적으로 조사, 연구, 보존할

    목적으로 마련됐다. 실내 박물관에는 안동지방 문화의 특징인 유교문화, 특히 관혼상제의

    풍습이 중점 전시된다. 아울러 안동의 민속놀이, 서당과 서원 등 교육기관, 주거형태 등을

    볼 수 있다. 야외박물관에는 보물 제305호로 지정된 석빙고를 비롯해 안동댐 건설 시 수몰

    지역에 산재하던 전통 가옥 등이 이건(移建)돼 전시 중이다.

    안동공예문화전시관(www.acehall.co.kr)은 월영교를 사이에 두고 안동민속박물관과 마

    주하고 있다. 도자기, 염색, 금속, 칼라믹스, 한지 등 부문별 공예 작가들의 작업실과 작품

    전시장이 운영된다. 공예별로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되며 비용은 5천~1만2천 원이다.

    안동은 이 땅에 살다간 이들의 생활상을 꼼꼼하게 살펴볼 수 있는

    여행지이다. 21개에 달하는 박물관ㆍ전시관이 타임머신이자 길잡

    이 역할을 한다. 역사의 향기와 전통의 숨결이 살아 있어 ‘한국 정

    신문화의 수도’로 불린다.

    하회탈은 극사실주의에 입각한 조형미로 정평이 나 있다. 저마다 하회별신굿 탈놀이에서의 역할이 투영된 생김새다. 아래 사진은 안동소주ㆍ전통음식박물관의 모습이다.

  • 200908 161160 200908

    축제는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요소

    를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안동 탈춤축제에

    서는 보고 즐기는 차원에서 한 걸음 더 나아

    가 감동과 가르침을 얻어갈 수 있습니다.”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을 주관하는 안동축제관광조직위원회 이동

    수 이사장은 탈춤축제의 매력으로 ‘즐거움’과 ‘교훈’을 꼽았다. 다

    양한 프로그램의 탈춤축제에 즐겁게 동참하고, 안동의 유구한 전통

    문화를 두루 체험하면서 선현의 가르침을 배워갈 수 있다는 것이다.

    “안동의 문화 콘텐츠는 탈놀이 이외에도 무궁무진합니다. 안동에

    오신다면 고택 체험과 서원 탐방을 꼭 한번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퇴계 이황의 15대손인 이 이사장은 탈춤축제 방문 전 미리 안동 자

    료를 찾아보고 일정을 짜면 훨씬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고 강조했

    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인간의 길을 밝히는 ‘경(敬)’에 대해 알려주

    기에 안동만한 곳이 없다고 했다.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은 한국을 대표하는 축제로 통한다. 매년 가을열흘간 열리는 축제 기간에 국내외에서 약 100만 명의 관광객이찾아온다. 안동이 세계 속의 관광지로 자리 잡는데 기여한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13회째인 올해는 ‘하나의 세계, 신명의 탈춤’을 주제로 9월 25일부터 10월 4일까

    지 개최된다.

    탈춤축제는 안동 시내 탈춤공원, 하회마을 등지에서 펼쳐진다. 중요무형문화재

    로 지정된 전국의 탈춤을 비롯해 국내외 20여 개 공연단이 참가한다. 탈을 쓰고

    덩실거리는 탈춤꾼과 공연장에 빙 둘러앉은 관객이 너나없이 하나로 어우러져

    신명의 한마당을 펼친다. 특히, 올해 축제에선 일반 관객이 참여하는 탈춤 퍼레

    이드가 활성화될 예정이다. 하회별신굿 탈놀이의 다섯 가지 동작을 중심으로 한

    퍼레이드 춤을 선보이는데, 참여 관객에게는 무료로 탈을 나눠줄 계획이다.

    아이들을 위한 인형극도 마련된다. 이를 위해 볼리비아에서 인형극 전문 극단이

    방한한다. ‘몽실언니’,‘강아지똥’으로 잘 알려진 권정생 선생의 작품을 극화한

    인형극도 눈길을 끌 전망이다. 2007~8년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대한민국 대표축

    제답게 다채롭고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

    054-840-6398, www.maskdance.com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2009

    탈(가면)은 인류의 보편적인 문화에 속한다. 대부분의 문명에 탈 문화가 깃들어 있다.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이 나라와 인종을 초월해 세계적인 축제로 자리매김한 이유도 여기에 바탕을 둔다.

    안동축제관광조직위원회 이동수 이사장

    I n f o r m A T I o n

    안동에 가서 자랑하지 말아야 할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족보 자랑이요, 둘째는

    고등어 맛이다. 안동 지역에 종갓집만 300곳이 넘는다 하니 족보 얘기야 더할 필

    요가 없다. 또 하나의 명물인 안동 간고등어는 안동이 백두대간 준령으로 둘러쳐

    진 내륙인 탓에 탄생했다. 옛날 안동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인 영덕으로부터 고등

    어를 달구지에 싣고 오면서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운송 도중 고등어에 소금을

    잔뜩 뿌려준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병산서원 서애 류성룡과 그의 셋

    째 아들 류진을 배향하는 사액서

    원이다. 서애가 1572년 풍산현에

    있던 풍악서당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서애가 타계하자 후학들

    이 그의 업적과 학덕을 추모해 위

    패를 봉안하고 병산서원으로 개칭

    했다. 하회마을에서 화산을 넘어

    낙동강이 감도는 바위 벼랑을 마주보고 서 있어 경치가 빼어나다. 영남 유림의 전

    형적인 건축양식을 간직한 곳으로 1868년 흥선대원군이 서원 철폐령을 내렸을

    때도 살아남았다. 역사적, 미술사적으로 뛰어난 건축물이다. 서애 문집을 비롯해

    각종 문헌 3천여 점이 소장돼 있다. 054-858-5929, www.byeongsan.net

    한국국학진흥원 민간에 흩어져 멸실 위기에 직면

    한 기록문화유산의 수집, 보존, 보급을 위해 설립된

    연구기관이다. 기능에 따라 유교문화박물관, 국학

    문화회관, 홍익의집, 장판각 등 4개 건물군으로 나

    뉜다. 그중 첨단 수장고 시설을 갖춘 장판각(藏板閣)

    은 10만 장의 유교 관련 목판 보관을 목적으로 건립

    됐다. 도산서원에서 400여 년간 관리해온 퇴계문집

    목판, 서애의 징비록 목판, 안동을 비롯한 전국 각

    지의 문중 및 개인이 기탁한 목판들이 체계적으로

    분류돼 관리되고 있다. 안동 시내에서 도산서원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054-851-0700, www.koreastudy.or.kr

    간고등어 정식 안동 시내에는 간고등어 정식 메뉴를

    내건 식당이 즐비하다. 간고등어는 배를 갈라 내장과

    핏물을 빼고 천일염을 뿌려 염장(鹽藏)을 지른 고등어

    로 구이, 찜, 찌개로 조리해 먹는다. 안동 토박이들에

    따르면 간고등어의 참맛을 느끼려면 구이가 좋다고

    한다. 따로 간을 안하기 때문에 담백하다는 얘기다.

    예전 안동에선 가마솥에 밥을 지을 때, 쌀 위에 간고

    등어를 담은 놋그릇을 얹어놓고 장작불을 지폈다고

    한다.

    관광 문의

    하회마을 관리사무소 054-854-3669, www.hahoe.or.kr

    도산서원 관리사무소 054-856-1073, www.dosanseowon.com

    지례예술촌 054-822-2590, www.jirye.com

    안동관광정보센터 054-856-3013, www.tourandong.com

    농암종택 안동 영천이씨의 문호를 연 농암

    이현보(聾巖 李賢輔)의 종택으로 낙동강 상

    류 청량산 자락인 도산면 가송리에 자리한

    다. 농암의 후손들이 종택의 일부를 숙박과

    체험시설로 개방해 강호지락(江湖之樂)과

    강호지미(江湖之美)의 풍류를 제공한다. 종

    택 앞에는 단애와 은빛 모래사장의 강변이

    펼쳐져 있어 퇴계가 지은 ‘도산 9곡’의 비

    경을 선사한다. 청량산 트레킹, 어부가와 도산12곡의 탁본, 다도 등의 체험이 가능

    하다. 054-843-1202, www.nongam.com

    봉정사 신라 문무왕 12년(672) 의상대

    사의 제자인 능인대사가 창건한 사찰

    이다. 능인대사가 도력으로 종이 봉황

    을 접어서 날렸는데 현재의 봉정사 자

    리에 머물렀다 하여 봉황새 봉(鳳)자에

    머무를 정(停)자를 묶어 봉정사라 명명

    했다고 전해진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

    된 목조건물인 극락전(국보 제15호)을

    비롯해 조선 초기 다포계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는 대웅전(국보 제311호), 보물 제

    448호인 화엄강당, 보물 제449호인 고금당 등이 자리해 있다.

    054-853-4181, www.bongjeongsa.org

    시사단(試士壇) 조선 정조 16년(1792) 별시(別試)인 도산별

    과(陶山別科)가 개최된 장소이다. 정조는 평소 흠모하던 퇴

    계의 학덕과 유업을 기리고 안동 지방 선비들의 학문 의지

    를 높여주기 위해 어명으로 도산별과를 열었다고 한다. 당

    시 총 응시자는 7천228명이었고 급제자는 11명이었다. 도

    산서원 앞 분천강(汾川江) 강변에 자리하며 본래는 주위에

    송백림이 울창했다고 한다. 경북 유형문화제 제33호로 지

    정돼 있다. Interview

    〉〉가볼 만한 곳

    〉〉먹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