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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7ll 국·어 정보지
DI DI 타 로
한글판/1、:..,7" 硏坂 *123 호 2017 년 4 월
시가현국제협회 볼룬티어그룹 「미미타로J 오츠시 니 오노하마 1- 1- 20 피 아자오미 2F Tel/ Fax : 077—523- 5646 E-mai l : mimi taro@s- i - a.or. jp URL : http:/ / www.s - i -a .or .j p I] : https : // www . f acebook . com/s i abi wako
짜램순무궁夕 이번에 미미타로는 오미하치만시 시청에서 수화통역을 하고 계신 이 우자(류오쵸 거 주) 씨의 재일동포로서의 삶에 대해 들어보았습니다.
저는 재일동포 2 세반. 아버지는 어
렸을 때 일본에 오셨고 어머니는 여
기 일본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자이니
치(재일동포)」 는 1910 년부터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35 년간 일본에 합병
된 한반도 동에서 일본에 올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과 그 자손들을 말합니다. 식민지 출신이
라는 것 때문에 일본사회에서 직업이나 결흔, 거주지
등 모든 방면에서 차별을 받으면서도 필사적으로 살아
왔습니다. 시대는 변했지만 지금도 민족차별은 그 형태
를 바꿔가면서 뿌리깊게 남아 있지요. 작년말에는 헤이
트스피치의 피해를 당하고 있는 민족학교 학생들의 영
상을 보고 옛날 생각이 밀물처럼 떠올라 눈물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우리들 「자이니치(재일동포)」 는 외견상 일본인과 다
르지 않기 때문에 많은 자이니치가 차별을 피하기 위해
본명을 숨기고 일본이름으로 생활하고 있지만 한국인인
것이 밝혀지는 것이 두려워 학교라는 장소는 긴장을 풀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식 때 본명으로
블리워 「역시 너는 조선인이었잖아」 라고 친구가 제 졸
업증명서를 찢어버린 일도 있었지요. 너무나 괴로워서
「나를 한국에서 낳지 그랬어! 왜 일본에서 낳은거야!」
라고 부모님과 부딪힌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 제가 본
명을 밝히게 된 것에는 긴 세월과 사실을 받아들일 용
기가 필요했고 대학생이 되어서야 그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모국의 언어와 역사를 다시 공부하고 조
국의 문화를 알아가면서 정체성이 확립되었습니다.
그후 결흔하고 아이가 학교에 다니게 되자 아이들이
학교에서 한국인으로서 존중받고 있는지가 신경이 쓰여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학교나 교육위원회에 의견을 말
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본명으로 생활하는 우리들이 지
역사회에 융화되어 조금이라도 주변의 이해를 받을 수
있도록 저 자신도 학교에서 자신의 민족에 대해 어린이
들에게 이야기하거나 지역이나 학교의 임원을 맡거나
하면서 20 여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수화를 시작한 것
은 우연히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의 한구석에서 눈에 띠
지 않게 수화롤 하고 있는 보호자를 본 것이 계기가 되
었습니다. 청각장해가 있다는 것도 외견상 구별하기 힘
든 저희 재일코리아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고 느껴졌습
니다. 수화써클로 시작하여 지금은 시청의 장해복지과
에서 수화통역을 하고 있습니다. 청각장해자의 상담을
들으면서 한정된 정보밖에 알 수 없다, 학습의 기회도
층분하지 않았다, 존재조차도 숨겨졌다 동의 충격적인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소리가 행정
을 움직였고 시의 수화언어조례가 정해졌습니다. 수화
는 언어이며 문화라고 기술된 조례로서 이해도가 넓어
져 시청각장해자가 자존감을 가지고 생동감 있게 생활
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렇게 장해자나 외국인 등 소수자는 스스로 자기주
장을 하지 않으면 사회가 알아주지 않고 신분도 층분히
보장되지 않는 일이 다수 있습니다. 약자가 자기주장을
하면 「뻔뻔하다」 고 할 수도 있습니다만 「지금까지 몰
랐다. 그렇구나. 그건 좀 아니지.」 라고 다가오는 사람
들도 많이 만날 수 있어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뉴카마들은 우리들처럼 멀리 돌아가지 않아도 「이건 우
리의 문화입니다」 라고 말할 수 있지요. 자신의 문화를
소중히 하고 아이들이 확실한 정체성을 가질 수 있도록
가정에서는 꼭 모국어로 대화했으면 합니다.
「이 선생님, 언제나 분발하시네요」 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만 무리하게 분발하지 않아도 평범하게
생활할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지요. 그런 당연한 행복
을 위해 이상한 것은 이상하다고 말할 수 있고 조금이
라도 전진할 수 있도록 한번 더 분발하려고 합니다. 역 , ·-·-·- ·- ·- ·- ·-·-·- ·- ·- ·-·-·- ·- ·- ·-·-·- ·- ·- ·-시 싸우는 엄 ! 마음의 딱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