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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2013.1.28(월) 160차 월례포럼, 제3시대그리스도연구소 & 우리신학연구소, 한백교회 종교와 개발 강인철(한신대 종교문화학과) 1. 종교와 개발: 문제의식, 혹은 문제의 소재 지방자치제가 부활된 1990년대 초부터 온갖 유형의 개발 사업들을 둘러싼 분쟁이 빈발했다. 개 발 압력의 최전선에서 수년간 시달리던 불교계는 견디다 못해 1996년 11월에 ‘사찰환경 보존과 민 족문화 수호를 위한 전국 본·말사 주지 결의대회’를 열어 사찰 주변의 개발 사업들과 맞서 싸웠다. 급기야 환경부까지 직접 조사를 벌여 1997년 9월 현재 전국의 55개 사찰에서 각종 개발 프로젝트 들에 의한 수행환경자연경관 훼손 사태가 발생했음을 인정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역으로 사랑의교 회와 명동성당 등에서 정치권력을 등에 업고 종교계가 난개발이나 특혜 개발 시비를 일으키는, 말 하자면 “종교계의 권력형 개발” 시비가 벌어지고 있기도 하다.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된 수도권 5대 신도시 개발 등 각종 신도시 건설 및 대규모 도심재개발 사업은 해당 지역의 종교경관을 불과 4∼5년 사이에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세계적 유례를 찾기 어 려울 정도로 전국 곳곳에서 종교지형의 격변이 일어났다. 신도시에 배정된 종교부지 대부분을 부유 한 그리스도교 교회교단들이 독차지함에 따라 분당을 비롯한 신도시들에서 그리스도교인구가 급증 했다. 수도권 2기 신도시와 뉴타운 사업으로 수많은 임대영세 교회들이 퇴출 위기에 몰리자, 2008 년경부터 개신교를 중심으로 정부 주도의 신도시/재개발에 대한 격렬한 저항이 시작되었다. ‘종교와 개발’은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주제이다. 개발은 이미 종교현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익숙한 주제이고, 그럼에도 본격적인 학문적 담론이 거의 형성되지 못한 상태라는 점에서는 낯선 주제이다. 개발과 종교의 관계나 상호적인 영향 문제는 관련 당사자들이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쟁점들임에도 불구하고 학자들의 주의를 거의 끌지 못했 다. ‘개발과 종교’라는 흥미로운 쟁점이 안타깝게도 학문적 불모지 중 하나로 남아 있는 것이다. 국가나 기업 주도의 개발 사업에 대한 종교의 반발에 관심을 갖는 경우를 드물게나마 발견할 수 있는데, 이때 역시 종교 측의 개발 반대를 ‘종교 환경운동’의 일환으로 간략히 취급하는 것이 고작 이었다. 개발을 둘러싼 종교-국가 갈등과 전략적 상호작용을 환경운동의 좁은 범위 안에만 묶어두 는 것은 지나치게 안이한 접근이거나, 주어진 문제상황을 과도하게 단순화한 것이다. 때때로 문제 의 본질이 왜곡될 수도 있는데, 종교 스스로 개발 주체로 나서 환경파괴 논란을 초래하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된다. 개발-종교의 복합적인 관계는 확실히 환경운동을 뛰어넘는, 특정 종교나 교단의 ‘중대한 제도적 이익’과 관련된다. 개발 사업들은 (특히 그 규모가 클수록) 특정 종교의 생존에 중대한 위협을 가하거나, 특정 종교 에 비약적 발전의 계기가 되거나, 종교지형종교경관에 급격한 변화를 초래하여 종교시장의 경쟁력 구도에 심대한 변화를 초래하고 관련된 종교들의 운명을 완전히 뒤바꿔놓기도 한다. 예컨대 재개발 과 신도시 개발은 개별 종교들에, 그리고 국지적전국적 종교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종교지 도자들 입장에서는 대단히 중요하고도 절박한 이 질문들을 종교연구자들은 거의 던지지 않았다. 필 자는 현재의 학문적 직무유기 같은 상황 자체가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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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th forum

Mar 2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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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ungtae 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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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8(월)� 160차 월례포럼,� 제3시대그리스도연구소 &�우리신학연구소,� 한백교회

종교와 개발

강인철(한신대 종교문화학과)

1. 종교와 개발: 문제의식, 혹은 문제의 소재

지방자치제가 부활된 1990년대 초부터 온갖 유형의 개발 사업들을 둘러싼 분쟁이 빈발했다. 개

발 압력의 최전선에서 수년간 시달리던 불교계는 견디다 못해 1996년 11월에 ‘사찰환경 보존과 민

족문화 수호를 위한 전국 본·말사 주지 결의대회’를 열어 사찰 주변의 개발 사업들과 맞서 싸웠다.

급기야 환경부까지 직접 조사를 벌여 1997년 9월 현재 전국의 55개 사찰에서 각종 개발 프로젝트

들에 의한 수행환경․자연경관 훼손 사태가 발생했음을 인정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역으로 사랑의교

회와 명동성당 등에서 정치권력을 등에 업고 종교계가 난개발이나 특혜 개발 시비를 일으키는, 말

하자면 “종교계의 권력형 개발” 시비가 벌어지고 있기도 하다.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된 수도권 5대 신도시 개발 등 각종 신도시 건설 및 대규모 도심재개발

사업은 해당 지역의 종교경관을 불과 4∼5년 사이에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세계적 유례를 찾기 어

려울 정도로 전국 곳곳에서 종교지형의 격변이 일어났다. 신도시에 배정된 종교부지 대부분을 부유

한 그리스도교 교회․교단들이 독차지함에 따라 분당을 비롯한 신도시들에서 그리스도교인구가 급증

했다. 수도권 2기 신도시와 뉴타운 사업으로 수많은 임대․영세 교회들이 퇴출 위기에 몰리자, 2008

년경부터 개신교를 중심으로 정부 주도의 신도시/재개발에 대한 격렬한 저항이 시작되었다.

‘종교와 개발’은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주제이다. 개발은 이미 종교현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익숙한 주제이고, 그럼에도 본격적인 학문적 담론이 거의 형성되지 못한

상태라는 점에서는 낯선 주제이다. 개발과 종교의 관계나 상호적인 영향 문제는 관련 당사자들이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쟁점들임에도 불구하고 학자들의 주의를 거의 끌지 못했

다. ‘개발과 종교’라는 흥미로운 쟁점이 안타깝게도 학문적 불모지 중 하나로 남아 있는 것이다.

국가나 기업 주도의 개발 사업에 대한 종교의 반발에 관심을 갖는 경우를 드물게나마 발견할 수

있는데, 이때 역시 종교 측의 개발 반대를 ‘종교 환경운동’의 일환으로 간략히 취급하는 것이 고작

이었다. 개발을 둘러싼 종교-국가 갈등과 전략적 상호작용을 환경운동의 좁은 범위 안에만 묶어두

는 것은 지나치게 안이한 접근이거나, 주어진 문제상황을 과도하게 단순화한 것이다. 때때로 문제

의 본질이 왜곡될 수도 있는데, 종교 스스로 개발 주체로 나서 환경파괴 논란을 초래하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된다. 개발-종교의 복합적인 관계는 확실히 환경운동을 뛰어넘는, 특정 종교나 교단의

‘중대한 제도적 이익’과 관련된다.

개발 사업들은 (특히 그 규모가 클수록) 특정 종교의 생존에 중대한 위협을 가하거나, 특정 종교

에 비약적 발전의 계기가 되거나, 종교지형․종교경관에 급격한 변화를 초래하여 종교시장의 경쟁력

구도에 심대한 변화를 초래하고 관련된 종교들의 운명을 완전히 뒤바꿔놓기도 한다. 예컨대 재개발

과 신도시 개발은 개별 종교들에, 그리고 국지적․전국적 종교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종교지

도자들 입장에서는 대단히 중요하고도 절박한 이 질문들을 종교연구자들은 거의 던지지 않았다. 필

자는 현재의 학문적 직무유기 같은 상황 자체가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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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주체 개발행위 쟁점

국가 혹은

토건연합

위락시설이나

SOC� 건설

①�수행환경 훼손

②�성지 훼손

③�소유권 침해

④�종립학교의 학습권 침해

신도시 개발 혹은

도시정비사업

①�상가 임대교회의 축출 문제

②�사업 기간 동안 종교공동체의 해체

③� 종교지형의 인위적-단기적-전면적 재편,� 그로 인한 규제 및

차별 효과 문제

종교종교시설의 신증축,�

개발-재개발

①� 문화재로 지정된 종교시설의 재개발로 인한 문화재 가치 및

경관 훼손

②�종교시설 신증축을 둘러싼 주민과의 마찰

③�도심 납골시설 건축을 둘러싼 주민과의 갈등

④�그린벨트를 훼손하는 기도원이나 수양관 건축

⑤�산사들의 산림훼손이나 수질오염 행위들

⑥�종교 측의 수익사업(골프장,� 골프연습장 등)을 둘러싼 갈등

⑦�개발을 매개로 한 정교유착과 특혜

‘개발과 종교’라고 할 때, 개발이 종교에 미치는 영향, 반대로 종교에 의한 개발이 지역 주민의

삶이나 환경, 문화재 경관 등에 미치는 영향, 이와 관련된 다양한 갈등과 분쟁 등이 일차적인 관심

사로 떠오른다. 이 경우 국가, 기업, 혹은 양자의 결합 등 ‘종교 외부세력’에 의한 개발, 그리고 ‘종

교 자신’이 개발 주체로 나서는 경우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때 국가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모두 포함한다. 국가가 직접 기획․발주하거나 민간자본의 참여를 적극 유도하여 진행하는 개발 프

로젝트(이 경우 국가는 개발의 ‘일차적 주체’)는 말할 것도 없고, 기업이 개발 주체인 경우에도 국

가가 인허가권․감독권 행사, 법률․제도적 지원, 개발로 인한 분쟁 등을 통해 개입하기 때문에(이 경

우 국가는 ‘이차적 주체’), 편의상 필자는 ‘종교 외부세력에 의한 개발’을 ‘국가가 주도하는 개발’과

사실상의 동의어처럼 사용할 것이다. 이렇게 하면, 우리가 다룰 대상은 ‘국가가 주도하는 개발’(국

가 주도 개발)과 ‘종교가 주도하는 개발’(종교 주도 개발)의 두 가지로 단순화된다. 결국 이번 월례

포럼에서는 개발과 종교의 양면적인 관계, 즉 (1) ‘국가가 주도하는 개발’(국가 주도 개발)과 (2)

‘종교가 주도하는 개발’(종교 주도 개발) 등 두 가지 측면을 중심으로 논의하게 될 것이다.

이 가운데 ‘국가 주도 개발’은 신도시 개발 및 도시 재개발, 그리고 (도로․철도 건설 등을 포함

한) 그 밖의 대규모 토건사업으로 나눠 살펴보려 한다. 따라서 여기서 분석의 초점은 모두 세 가지

가 된다. ① 국가가 일차적/이차적 주체로 나서는, 다양한 사업 영역을 포괄하는 전국 혹은 지역

단위의 토건-개발 프로젝트들로 인한 종교와의 갈등, ② 역시 국가 주도의 신도시 개발이나 대규

모 재개발 사업으로 인한 여러 문제들, ③ 종교 측의 개발행위로 인한 갈등이 그것이다. <표 1>에

서 보듯이 개발의 주체는 국가(중앙/지방정부)․토건연합(개발동맹)․종교 등 다양할 수 있고, 그에 따

른 갈등의 쟁점도 달라질 수 있다.

� <표 1>� 종교와 관련된 ‘개발 분쟁’의 유형과 쟁점

마지막으로, 이 글의 이론적인 문제의식을 정리해보자. 규범적인—또 어느 정도는 당위적인—관

점에서 볼 때, 한국에서 정치적 민주화는 종교엘리트와 정치엘리트 각각에 대해 이전의 태도나 행

동방식을 대대적으로 수정하도록 구조적 압력을 가할 가능성이 크다. 민주화를 미리 거쳐 간 선진

사회들의 경험에 비추어, 그리고 민주화의 일반적인 과정들을 고려하면, 구조적 압력의 방향을 어

느 정도 예측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 개요를 <표 2>처럼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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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범적으로 기대되는 변화

국가

l 시민사회의 ‘윤리교사’� 역할을 떠맡으려는 시도 감소

� � 국가의 전반적인 탈성화

l 종교 영역에 대한 개입주의와 규제 축소

l 종교적 차별의 전반적 완화

종교

l 종교 전반의 탈정치화와 사사화

l 종교지도자들의 과잉정치화 약화

� � 종교적 정책 결정에서 국가 변수의 중요성 감소

<표 2>� 국가와 종교 측에 가해질 가능성이 높은,� 민주화로 인한 변화의 압력

그런데 개발로 인해 탈규제(규제 완화), 평등화(차별 완화), 탈정치화라는 규범적․당위적 기대를

배반하는, 그런 기대와 상반되는 규제, 차별, 정치화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개발과의 전쟁’이

라고 부를 만큼 심각한 종교-국가 갈등은 정치화의 대표적 사례일 것이다. 이 밖에도 개발로 인한

차별 심화, 의도치 않은 규제 효과 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 토건사회와 ‘개발과의 전쟁’

한국에서 국가는 1960년대 이래 ‘개발주의 국가’의 성격을 강하게 띠었고, 국가의 이런 성격은

민주화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기서는 ‘토건국가’(construction state)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개발주의 국가의 문제들을 천착해온 홍성태의 논의를 따라가 보자. 그에 의하면 모든 ‘근대국가’는

어김없이 ‘개발국가’(developmental state)이다. 개발국가는 “끊임없이 대규모 개발 사업을 벌여 경제성

장을 추구하는 국가”인데, 성장주의와 개발주의가 개발국가의 핵심적 특징을 형성한다. 그런데 근

대국가 중에서도 유독 “타락한 개발국가”가 바로 ‘토건국가’이다. “토건국가는 ‘개발국가의 가장 타

락한 형태’로서 ‘정치권과 토건업이 유착하여 세금을 탕진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국가’이다. 토건국

가는 혈세의 낭비, 국토의 파괴, 부패의 만연이 국책사업으로 펼쳐지는 대규모 토건사업을 매개로

구조화된 ‘기형 국가’이다.”1)

홍성태는 한국에서 토건국가는 ‘개발독재’ 혹은 ‘박정희 체계’의 구조적 산물 내지 유산으로 형성

되었다고 주장한다. 한국에서는 1960년대 초의 경제개발계획을 계기로 개발주의가 급속히 확산되

고 뿌리를 내렸다. 1990년대 이후 환경의식의 제고 및 환경운동의 발전에 따라 환경 파괴적인 개

발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볼 때 민주화 이

후에도 토건국가는 결코 약화되거나 해체되지 않았다. “불행하게도 토건국가는 민주화 이후에 오히

려 더욱 강화되었다.”2) 민주화 이후 토건국가의 존속 및 강화 현상을 정당화하고 뒷받침하는 것은

“새로운 형태의 개발주의”, 즉 ‘신개발주의’이다. 신개발주의를 덧씌움으로써, 초록색 ‘새마을 모자’

로 상징되는 이전의 개발주의에 비해 토건국가의 외양은 더욱 세련되어졌다.

우리가 종교-국가 사이의 개발 분쟁에 초점을 맞추면, 1991∼1995년에 걸쳐 부활한 지방자치제 이

후의 ‘지방정부들’에도 ‘중앙정부’에 못지않은 관심을 쏟아야만 한다. 특히 30년 만에 이루어진 지방자

치제도의 부활이 ‘난개발의 판도라상자’를 활짝 열어버린 측면에 대해서 말이다. “정부와 지자체 그리

1) 홍성태, 토건국가를 개혁하라, 한울, 2011, 24-25, 35쪽.

2) 위의 책,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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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건설업으로 구성되는 토건공화국의 삼각편대”라는 김일현의 재치 있는 표현대로,3) 1990년대 이후

중앙정부, 지방정부, (대부분 건설사들인) 사기업이 토건국가라는 삼두마차를 이끌고 있다. “개발주의

는 여전히 중앙정부가 주도하고 있지만, 1994년의 본격적 지자제 실시에 따라 지자체도 독자적 주체

로 확립되었으며, 또한 신자유주의의 강화 속에서 사기업도 SOC 개발사업의 주체로 확립되었다.”4)

토건국가, 토건사회를 이끌어가는 핵심주체는 ‘토건연합’ 혹은 ‘개발동맹’이다. 홍성태에 의하면

토건연합/개발동맹은 ‘정(政)․관(官)․재(財) 연합’, 혹은 언론과 학계까지 가세하여 이것이 더욱 확대된

‘정․관․재․언(言)․학(學) 연합’으로 구체화된다.5) 홍성태는 “토건연합은 ‘공익’을 내걸고 불필요한 개발

사업을 추진해서 국토를 파괴하고 혈세를 탕진해서 ‘사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흔히 ‘마피아’에 비유

되곤 한다”면서, 따라서 이를 “토건 마피아”라 칭하기도 한다.6) 토건연합이나 개발동맹의 강고함을

감안하면, 이들을 상대로 한 종교 쪽의 대결은 대부분 매우 힘든 싸움이 되기 십상이다. 다수의 보

통 사람들마저 ‘개발주의’ 가치에 물들어 “개인적 성공과 자산 증식을 추구하는 ‘욕망의 시민사회’”

에 합류하게 될 때, 종교인들은 사실상 고립무원의 처지에서 싸움에 나서야 한다.

이처럼 민주화 이후(1990년대 이후)에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개발 드라이브는 계속되었다. 개

발 가능한 토지가 점점 고갈되는 가운데, 토건세력은 종전까지 개발에 대한 규제가 까다로웠던 곳

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그린벨트를 포함한 산지와 산림, 하천 주변, 문화재

주변, 군부대 주변 등이 개발 탐욕과 열풍의 새로운 희생 제물들로 떠올랐다. 이중삼중인 규제의

틈새를 뚫고 이전부터 행해져왔던 댐, 송전탑, 기상청 레이더기지, 군사시설 건설에 더해, 이제는

골프장, 스키장, 케이블카, 아파트단지, 콘도 등이 합법적으로 밀고 들어왔다. 부동산 투기로 인한

지가(地價) 상승 압력, 민주화 이후 더욱 거세진 지역주민들의 민원을 피해서, 도로나 철도도 용지

가격이 저렴하고 주민 민원이 적은 산지나 하천 쪽으로 이동해갔다. 특히 고속철도는 말할 것도 없

고 새로 건설되는 고속도로들도 직선화의 필요성 때문에, 또한 비용 절감과 민원 회피를 위해 산과

계곡을 관통하는 터널․교량들로 점철되는 경우가 잦아졌다. 따라서 우리는 민주화 이후 개발 열풍

의 특징 중 하나를 개발에 대한 ‘규제 완화’와 ‘금기(禁忌) 해체’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골프장 사업승인 허가권의 지방정부 이양, 지방자치단체장이 골프장을 ‘도시기반시설’로 지정하여

필요한 토지를 강제 수용할 수 있게 한 국토계획법 개정, 준농림지 제도 도입, 폐광지역특별법 제정,

그린벨트 해제, 수변구역을 무력화하는 친수법 제정, ‘케이블카 난립 허가법’과 다름없는 자연공원법

개정 등은 모두 민주화 이후 산림과 하천 주변 지역의 난개발을 촉진했다. 또 지방문화재 보호구역

주변의 고도제한 규제 완화, 문화재 주변 경관심의 폐지는 문화재 소재지의 난개발을 촉진했다.

결국 걷잡을 수 없는 ‘개발의 마수(魔手)’가 종교 영역과 시설까지 침투하는 것은 실상 시간문제

가 되었다. 신성한 공간을 향한 ‘속세의 침입’, ‘세속의 습격’이라고나 부를 만한 형국이었다. 당연

한 얘기지만, 문화재 주변 지역에 대한 개발 규제 완화 조치들은 문화재를 다수 소장한 전통 종교

들과의 분쟁 가능성을 높일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문화재를 다수 보유한 종교들, 수도(修道)나 수행

(修行) 전통이 강한 종교들, 세속사회와의 일정한 공간적 격리․단절까지 포함하는 수도 시설들, 어떤

이유로든 도심(都心)보다는 산림이나 하천 주변에 자리 잡은 종교시설들이 개발 위협에 정면으로 노

출될 것이다.

그런데 ‘산중불교’(山中佛敎)의 전통이 강한, 그리고 방대한 국가지정 문화재들을 보유한 불교는

이런 조건들을 두루 갖춘 종교이다. 사찰을 대부분 ‘산사’(山寺)라고 부르는 관행이나 ‘명산대찰’(名山大刹)과 같은 표현, 절이나 절의 바깥문을 뜻하는 ‘산문’(山門)이라는 용어 등도 산중불교 전통을 잘

3) 김일현, “‘토건족’이 차지한 베네치아 한국관”, 「한겨레」, 2012.7.19.

4) 홍성태, 토건국가를 개혁하라, 79쪽.

5) 위의 책, 30, 69쪽.

6) 위의 책, 30-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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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낸다. 이런 전통과 특성은 1990년대 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종교들 가운데 왜 불교

가 ‘개발과의 전쟁’에서 최전선에 위치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해준다.

홍광표는 우리나라 사찰들이 본격적으로 산지에 터를 잡게 되는 시기가 “나말여초(羅末麗初) 이

후”였으며, 이는 수행 장소를 중시하면서 복잡한 도심보다는 조용한 산간을 선호하는 선불교(禪佛敎)가 이 무렵에 한반도에 왕성하게 자리 잡는 역사적 사실과 관련이 깊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사찰 입지 선정에 풍수도참 개념이 작용한 것, 중국 선종사찰 입지 선정방식의 영향 등도 산중불교

전통이 자리 잡는 데 기여한 요인들이라고 덧붙였다. 나아가 이후 조선시대의 ‘억불숭유(抑佛崇儒)

정책’이 사찰을 산지에 묶어두는 추가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한다.7) 또 한국의 전통적인 사찰

형식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산지중정형’(山地中庭型)으로 정착된다. 여기서 ‘산지중정형’

이란 “사찰의 입지가 산중에 정해지고, 대웅전과 같은 본전(本殿)을 중심으로 누(樓)와 승방(僧房), 강

당, 요사 등이 중정(中庭)을 형성하며 일정한 질서를 갖추고 배치되어 있는 형식”을 가리킨다.8) 정

병조의 조사에 의하면, 1988년 현재 조계종 소속인 1,536개 사찰의 소재지는 대도시 255개소, 중

소도시 221개소, 산중(山中) 1,060개소로 나타났다. 도시에 위치한 사찰이 476개소로 전체의

31.0%(대도시 16.6%, 중소도시 14.4%)에 불과했고, 나머지 69.0%가 산중 사찰이었던 것이다.9)

이런 수치들을 통해 오늘날까지도 산중불교의 전통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3대 종교 중에서는 천주교가 불교와 좀 더 가까운 면모를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다. 필자가 보

기에는 ① 100여 년의 박해시기에 형성된, ‘교우촌’(敎友村)이라고 불리는 산중(山中) 종교공동체들과

순교성지들, 그리고 ② ‘수도회’들이 ‘교구’와 함께 교회조직의 양대 축을 형성할 만큼 강력한 수도

전통 등 두 측면에서 그러하다. 개신교는 불교나 천주교에 비해 수도-수행의 전통은 약한 편이다.

그러나 한국 개신교는 대부분 산속에 위치한 ‘기도원’ 그리고 일부 교회들이 운영하는 ‘수양관’이라

는 독특한 역사적 전통을 갖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3대 종교만 놓고 보면 민주화 이후 시대에 개

발 분쟁의 가능성은 불교가 가장 크고, 그 다음이 천주교, 개신교의 순서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위락시설이나 SOC 건설 사업의 경우 ① 수행환경 훼손, ② 성지

훼손, ③ 종교 측의 소유권 침해, ④ 종립학교의 학습권 침해 등이 갈등의 쟁점이 된다.

실제로 분쟁의 발생 빈도 면에서 종교계와 관련된 개발 분쟁은 “압도적으로 불교적인 현상”이었

다. 불교가 연루된 개발 분쟁은 민주화 이후인 199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1991년부터 반대운동이

벌어진, 합천 해인사 인근 ‘해인골프장’ 건설 사업이 사실상 첫 번째 충돌 사건이었다. 그러나 불교

계 개발 분쟁이 격화된 것은 지방자치제가 부활한 1995년 이후의 일이었다. 해인골프장에 대한 불

교계의 반대운동이 지속성을 갖고 조직적으로 벌어지기 시작한 것도 1995년 5∼6월부터였다.

1996년 9∼10월 조계종 총무원이 약 한 달 동안 전국 1,600여 사찰들을 대상으로 ‘사찰 주변

개발 및 환경파괴 현황’을 조사한 바에 의하면, 해인사․통도사․송광사․법주사․금산사․봉은사․정암사 등

50여 곳의 사찰들이 개발로 인한 갈등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조계종 총무원은 이 분

쟁들의 원인을 ① 위락시설 조성, ② 대형 건물 건설, ③ 폐기물 처리장 등 공공시설공사, ④ 산림

산업 개발, ⑤ 채석 및 온천 개발, 도로공사 등 다섯 유형으로 구분하고 있었다.10) 조계종 총무원

사회부는 1990∼2000년 사이의 10년 동안 발생한 개발 분쟁을 조사하여 2001년 1월 말에 사찰

환경침해 사례집을 간행했다.11) 여기에는 모두 93건의 분쟁 사례가 수록되었다. <표 3>에 분쟁

유형별 빈도와 비율이 정리되어 있다.

7) 홍광표, “한국의 사찰조경”, 한국전통조경학회지, 제22권 제4호, 2004, 123쪽; 홍광표, “아름다운 사찰 만들기의 기본적

요건”, 사찰조경연구, 제10집, 2005, 1쪽.

8) 홍광표․심경구․하재호, “전통사찰의 보존에 대한 문제와 대책”, 한국정원학회지, 제34집, 2000, 83쪽.

9) 정병조, “불교의 성찰과 전망”, 한국종교사회연구소 편, 1945년 이후 한국종교의 성찰과 전망, 민족문화사, 1989, 75-76쪽 참조.

10) 서울신문, 1996.11.17.

11)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사회부, 사찰환경침해 사례집,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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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 유형 빈도(건) 비율(%)

위락시설 건립 분쟁 33 35.5

공공시설 건설 분쟁 22 23.7

고층건물 건립 분쟁 9 9.7

기타 분쟁 29 31.2

합계 93 100.0

해당 기관(소재지) 분쟁 본격화 시기 분쟁 원인

새남터성지(서울시) 1990년대 초 고층아파트(대림아파트)� 건립 문제

절두산성지(서울시) 1997 고층아파트 건립 문제

당고개성지(서울시) 1999성지를 포함하는 용산구 뉴타운 개발(신계동재개발 사업)로

인한 성지 훼손 문제

미리내성지(안성시) 2002 미산골프장 건립 문제

미리내성지(안성시) 2000 고압송전탑 설치 문제

불광동성당(서울시) 2010구청이 성당 부지를 도로(인도)로 포장해 25년간 무단 점유

한 문제(부당이득금 반환청구소송 제기)

부엉골신학교 터(여주시) 1997 쓰레기매립장 건설 문제

가르멜수녀원(서울시) 1995 4층 빌라 건립으로 인한 수도 환경 침해 문제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수녀원(창원시)2007

수정만 매립지에 STX� 조선기자재공장 건립으로 인한 소음

및 공해,� 수도 환경 침해 문제

중림동성당(서울시) 2004 골프연습장 건립 문제

고척동성당(서울시) 1996 능골산 입구에 테니스장 건립 문제

불광동성당(서울시) 2008재개발(불광제7구역 주택재개발사업)� 공사로 인한 성당 건물

피해 문제

가좌동성당(서울시) 2009 뉴타운(가재울뉴타운 4구역)�개발로 인한 성당 철거,�이전 문제

<표 3>� 1990∼2000년 사이 불교계 개발 분쟁의 유형과 빈도

<표 3>에서 보듯이 ‘위락시설 건립 분쟁’, 즉 골프장이나 청소년야영장, 온천 등 위락시설의 건

립으로 인한 사찰 환경 침해 및 분쟁 사례가 33건(35.5%)으로 가장 많았다. 도로, 도시개발 등 정

부나 공기업이 추진하는 공공시설 공사로 인한 ‘공공시설 건설 분쟁’이 22건(23.6%)으로 그 뒤를

이었고, ‘고층건물 건립 분쟁’ 유형에 속하는 사례가 9건(9.7%)이었다. 이 밖에 석산 발파 작업이

나 폐기물처리장 건립 등 ‘기타 분쟁’ 유형이 29건(31.2%)이었다.

여러 차례 강조했듯이 종교와 관련된 개발 분쟁의 압도적 다수는 불교 분쟁이었다. 그러다 보니

분쟁의 해결 방식도 (전통사찰보존법 개정 조치처럼) 불교에 한정된 해법이 대부분이었다. 불교 다음

으로 자주, 그리고 비교적 다양한 유형의 개발 분쟁을 겪은 종교는 천주교였던 것으로 보인다. <표

4>는 결코 완전한 목록이 아니지만, 천주교와 관련된 개발 분쟁의 윤곽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 <표 4>� 천주교계 개발 분쟁의 주요 사례들

‘성지’(聖地)나 ‘사적지’(史蹟地)와 관련된 개발 분쟁이 많다는 점은 천주교에 독특한 특징이다. 천

주교 성지나 사적지 중 은둔한 초기 신자공동체나 순교자 묘지 등 상당수는 산지에 자리 잡고 있

지만, 초기 신자들의 처형장소가 대부분인 ‘순교성지’(殉敎聖地)들은 대부분 도시에 위치해 있다. 새

남터, 절두산, 당고개 등이 그런 예들이다.

수도회들과 관련된 개발 분쟁이 많다는 것도 천주교의 특징 중 하나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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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기관(소재지) 분쟁본격화시기 분쟁 원인

상계동 초대교회(서울시) 1993 고속화도로 부지에 편입된 교회건물의 강제철거 문제

한신대 신학대학원,� 송암교회(서

울시)1996

도로 확장 및 터널공사로 인한 학교,� 교회 부지 강제

수용 문제

동대문감리교회(서울시) 2008 성곽역사공원 조성을 위한 교회 철거 문제

총신대 신학대학원(용인시) 2008 고압송전탑 설치 문제

영생고등학교(수원시) 2005 고압송전탑 설치 문제

은혜와 진리교회 수련원(화성시) 2009건달산 채석장의 무분별한 채석으로 인한 산림훼손

및 붕괴 위험 문제

수도-수행 전통을 고수하는 불교와 유사한 측면이다. <표 4>에 소개된 서울 가르멜수녀원과 마산

(창원)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수녀원은 모두 세속사회와의 접촉을 최소화하고 공간적인 분리를 비

교적 철저하게 유지하는 이른바 ‘봉쇄수도원들’이다. 많은 수도회들은 불교의 수행공간인 산사(山寺)

처럼 일반인들의 주거공간과 분리되어 있지만, 도시나 마을 내부 혹은 가까이에 위치한 수도회들도

적지 않다. 서울 가르멜수도원이나 마산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수녀원이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된

다. 이런 상황에서는 비교적 소규모의 개발행위조차 수도 환경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개신교, 원불교, 천부교 등도 개발 분쟁을 겪었다. 먼저 <표 5>에서 보듯이 1990년대 이후 개신

교회나 수련원, 학교들이 도로공사, 공원조성공사, 송전탑 설치, 무분별한 채석 허가 및 활동 등으

로 인해 피해를 당했고, 정부 당국 및 건설업자와 갈등을 일으켰다.

� <표 5>� 개신교계 개발 분쟁의 주요 사례들

원불교 역시 ‘발상지이자 성지’인 전라남도 영광의 핵폐기물처리장 설치 및 원자력발전소 추가

건설 문제를 둘러싸고 1990년대 초부터 갈등을 겪었다. 이 갈등은 2003년까지 거의 10년 동안이

나 계속되었다. 천부교 신자들이 대규모 집단거주지를 형성하고 있는 기장군 기장읍 소재 신앙촌에

서도 1990년대 말 이후 두 차례 개발 분쟁이 발생했다. 부산시가 천부교 소유 부지 혹은 그 인근

에 하수처리장과 배구경기장을 건설하려 했던 것이다. 기장신앙촌은 그 규모가 무려 130만 평이나

되고, 1971년 말부터 수십 년 동안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었다.12) 그런데 그린벨트 규제

가 느슨해진 1990년대 말 이후 개발 바람이 신앙촌으로 거세게 몰아닥쳤던 것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종교와 관련된 개발 분쟁은 ① 시기적으로는 지방자치제 부활 이후에 집중되

고, ② 압도적으로 불교적인 현상이며, ③ 분쟁의 원인과 유형이 매우 다채로우며, ④ 분쟁 주체의

다양성․중복성으로 인한 갈등의 복합성이 강하고, ⑤ 장기화 경향이 강하고, ⑥ 전국적이고 동시다

발적인 현상이라는 특징들을 보여준다. ⑦ 토건자본과 결탁한 지방 및 중앙 정부의 개발 드라이브

가 갈등의 핵심 원인 중 하나라는 것도 종교가 연루된 개발 분쟁의 중요한 특징이었다. ⑧ 특히

불교의 개발 분쟁과 관련하여, 필자는 개발에 대한 규제와 규제 완화 조치를 번갈아 내놓는 국가의

이중적이고 편의주의적인 처신도 강조했다.

종교가 항상 개발주의의 무력하고 연약한 피해자인 것만은 아니다. 종교 측의 반대로 인해 수많

은 국가 혹은 민간 주도의 개발 프로젝트들이 지연되거나 무산된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골프장,

핵폐기장, 고속철도 및 고속도로 터널, 아파트단지 건설 사업 등이 종교계의 반대로 장기간 지연되

거나 계획이 변경되거나 아예 좌절되었다. 때때로 종교인들은 개발주의의 주체로 직접 나서기도 한

다. 불교계와 관련된 일부 개발 분쟁에서는 정부로부터 금전적 혹은 다른 혜택을 제공받는 대가로

개발 반대운동을 중단했다는 비난이 안팎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또 그로 인해 오로지 환경보전과

12) 천부교 홈페이지(www.chunbukyo.or.kr) 중 ‘신앙촌’ 및 ‘역사관’ 부분 참조(2011.10.30 출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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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공동선을 위해 온몸을 던져 개발주의와 맞서 싸웠던 승려와 불교 신자들의 명예가 더럽혀지

기도 했다. 그러나 종교와 관련된 개발 분쟁 사례들의 압도적 다수는 토건국가 혹은 개발동맹이 촉

발한 것들이었다. 교단의 제도적 이익이 심각하게 위협받는 상황에서 종교지도자들은 어쩔 수 없이

갈등에 연루되었다. 분쟁이 장기화될 경우 여기에 매달리느라 종교 본연의 활동마저 위축되는 일들

이 빈발했다. 분쟁이 격렬해지는 경우 성직자들이 목숨마저 내걸고 저항에 나서기도 했다.

국가 주도 개발에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나 분석적으로는 구분 가능한 두 차원이 존재한다. ①

종교에 대한 ‘규제/통제’의 차원, 그리고 ② 규제로 인한 종교-국가 ‘갈등’의 차원이 그것이다. 국

가의 개발행위가 종교에 대해 규제적 효과를 내는 사례들이 1990년대 이후 급격히 늘어났고, 그로

인한 종교-국가 갈등이 빈번해졌다. 갈등의 빈도나 강도 면에서 불교-국가 갈등이 가장 심각했는

데, 불교 입장에서는 ‘개발과의 전쟁’이라고 불러도 하등 이상할 게 없을 지경이었다. 천주교, 개신

교, 원불교 등도 간헐적으로 갈등의 주체로 떠올랐다.

민주화 이후 종교 영역에 대한 ‘탈규제’ 경향이 규범적으로 기대됨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형태의

규제가 출현하는 등 규제가 오히려 강화되는 측면들 또한 나타난다. 민주화 이후의 새로운 규제 형

태들은 보조금이나 세금 등 주로 돈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또 하나의 새로운

규제 형태, 즉 국가가 직간접으로 연루된 개발 프로젝트들로 인해 발생하는 ‘규제 효과’(regulatory

effect)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국가가 주도하거나 연루된 특정 개발 프로젝트나 행위가 종교에 대해 ‘결과적으로’ 규제 효

과를 낼 경우에조차도, 그 효과가 ‘처음부터’ 국가에 의해 의도되었던 적은 거의 없다. 국가의 개발행

위로 인한 종교적 규제 효과는 대부분 ‘사후에야’ 비로소 발생하는 ‘의도하지 않은 효과’(unintended

effect)라는 얘기이다. 따라서 개발과 관련된 종교-국가 갈등 역시 거의 대부분 ‘예기치 못한’ 것들이

기 쉽다. 개발로 인해 갈등 관계에 돌입한 종교와 국가는 모두 예측하지 못했던 사태 앞에서 허둥대

면서 수많은—어쩌면 상당 부분 불필요했을—시행착오를 거쳐야만 했다. 문제는 규제 의도의 부재에

도 불구하고 개발행위의 실제적인 종교적 규제 효과가 강렬한 경우가 적지 않았고, 그 때문에 갈등

의 강도 역시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는 경우가 잦았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이런 갈등은 그것이 거듭될

수록 이해당사자들에게 일종의 학습 효과를 일으키게 마련이다. 따라서 개발을 둘러싼 종교-국가 갈

등이 처음 촉발되는 시점은 점점 프로젝트의 초기 단계 쪽으로 앞당겨지는 경향이 생겨난다.

필자는 개발을 계기로 한 비의도적 규제와 종교-국가 분쟁이 모두 ‘민주화 이후’ 빈번해지고 강

렬해진 현상임을, 요컨대 ‘새로운’ 현상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민주화 이후에도 중앙정부들의 대규

모 토목․건설 사업들은 결코 감소하지 않았다. 감소하기는커녕 더 늘어났다고 하는 쪽이 정확할 것

이다. 특히 지방자치제의 부활은 지방정부가 주도하는 ‘개발 열풍’을 초래했다.

개발 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정부가 ‘토건국가’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개발 분쟁은 앞으

로도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지방정부들의 토건 지향성은 외려 중앙정부보다 더욱 심한 게 현실이기도

하다. 건설업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한국적 특수성으로 인해 ‘토건연합’ 혹은 ‘개발동맹’도 계속 위력

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 불교의 산사들, 그리고 천주교의 수도원과 성지들, 그리고 다른 종교들이 성

지로 간주하는 장소나 시설들은 앞으로도 ‘개발과의 전쟁’이 발발할 잠재력이 가장 높은 곳들이다.

3. 신도시, 재개발, 종교경관

여기서는 ‘기존 도시의 재개발’ 및 ‘새 도시의 개발’에 초점을 맞춰 개발 분쟁 문제에 접근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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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 앞 절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종교가 개발의 ‘대상’ 혹은 ‘피해자’가 되는 측면에 우선

주목할 것이다. 신도시 개발이나 도시 재개발 사업으로 인한 종교-국가 갈등, 그리고 신도시 개발

이나 도시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발생하는, 예기치 못했던 종교적 규제 및 차별화 효과들이 일차적

인 관심사로 떠오른다.

여기서 필자가 관심을 집중하고 분석의 초점을 맞출 주제는 “재개발/개발이라는 국가권력의 개

입과 작용에 의해 발생하는(그러나 대부분 의도하지 않았던) 종교적 결과들”이라고 간단히 요약할

수 있다. 그런 결과들의 요체는 재개발이나 신도시 건설로 인해 5년 안팎의 극히 짧은 기간 내에

종교지형의 인위적이고도 전면적인 재편이 진행된다는 것, 그로 인해 상전벽해(桑田碧海)에 버금가는

혁명적인 종교경관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아울러 종교지형/종교경관의 이런 변화는 국가에 의

한 ‘종교 규제’ 및 ‘종교차별’ 효과를 뚜렷하게 동반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대규모의 도시 재개발이나 신도시 개발 사업은 ‘토건국가’나 ‘개발주의’의 표현인 경우

가 많다. 그러나 앞 절에서 살펴본 일반적인 개발․토건 프로젝트들이 ‘수행환경, 문화재, 성지의 훼

손’ 문제와 주로 관련되는 것과는 달리, 이 절에서 살펴볼 재개발/신도시 개발은 “종교적 강자들에

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종교지형의 급격하고 인위적․전면적인 재편”, 그리고 “종교적 약자인 군소

종교들이나 소규모 종교조직들의 추방 내지 궤멸”이라는 효과를 낸다. 대규모 재개발이나 신도시

개발만큼 경제력에 따른 종교적 양극화를 극심하게 만드는 기제는 또 없을 것이다. 재개발/신도시

는 경제력이 뛰어난 교단이나 종교조직에게는 ‘축복’인 반면, 경제력이 열세인 교단․종교조직에게는

‘재앙’이다. 따라서 재개발/신도시 건설의 과정은 존망(存亡)의 위기에 처한 가난한 교단이나 종교

조직들이 토건연합․개발동맹 세력과 힘겨운 사투를 벌이는 갈등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재개발에는 공공부문이 주도하는 방식, 민간부문이 주도하는 방식, ‘합동재개발사업’처럼 양자의

협력에 의해 진행되는 경우 등 비교적 다양한 사업방식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신도시 건설은 거의

예외 없이 국가 주도로 진행된다.13) 따라서 개발을 둘러싼 분쟁의 구도 역시 신도시 개발에서는

비교적 단순한 대립구도가 형성되는 데 반해, 재개발의 경우에는 종교와 국가, 종교와 기업 혹은

재개발조합, (국가-기업-조합이 결합된) 토건연합과 종교 간의 갈등 등 상당히 복합적인 양상을

보이기 쉽다. 그러나 신도시와도 맞먹을 정도로 재개발의 규모가 커지는 경우 개발 사업에서 국가

주도성이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 1970∼1980년대 서울의 여의도․강남․목동․상계동․개포동 재개발,

2000년대의 수도권 뉴타운 건설 등이 그런 예가 될 것이다.

한국에서 재개발 사업과 신도시 건설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전개되어 왔으며, 이 과정에서 개발

구역 내의 기존 종교시설에 대한 처리 문제, 그리고 개발계획에서 종교부지/종교용지를 어떻게 반

영해왔는가? 1950년대의 전후복구는 ‘비계획적인’ 것이 특징이었다. ‘계획적인’ 도시개발은 1960년

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① 경제개발계획의 일환으로 전개된 공업도시 내지 공

업단지 건설, 그리고 ② 1960년대에 급격히 증가한 대도시 내의 무허가 불량촌의 재개발이 두 축

을 이루고 있었다.

1980년대 이전의 신도시 건설이나 재개발 과정에서는 종교시설을 위한 고려가 계획 단계에서 아

예 빠져 있었다. 서울의 여의도나 강남처럼 새로 개발되는 곳들이 한국사회의 부와 권력이 집중되

는 곳들이었으므로 종교들의 진입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경쟁은 종교시설의 입지와 관

련된 아무 규칙이나 조정장치도 없는, 그야말로 ‘정글 속의 경쟁’이었다. 경쟁의 승자인 개신교와

천주교는 여의도와 강남에 ‘그리스도교적 종교경관’을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여의도와 강남에 그리

스도교적 종교경관이 형성되자, 개신교와 천주교는 곧 ‘부와 권력의 종교’가 되었다.

13) 2004년에 충주, 원주, 태안, 무주, 무안, 영암․해남 등 6곳의 민간기업 주도 신도시들이 ‘기업도시’라는 이름으로 선정되었지

만, 2012년 7월에 도시기반시설공사를 마무리한 충주를 제외하면 진척 속도가 매우 더딘 형편이다. 경향신문, 2012.7.10;

서울경제, 2012.7.10; 프라임경제, 2012.7.1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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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의 단계 쟁점,� 효과

1단계:�

계획,� 이주,� 보상 단계

①�종교계 내부의 이해관계 분화

②�종교적 약자들의 갈등적 퇴출

③�종교공동체의 해체

2단계:�

종교부지(종교용지)� 할당 및 건축

①�종교부지 획득 경쟁

②�종교지형의 급격한 재편

3단계:�

건축 완료,� 입주 및 이후

①�개미들의 쇄도(소규모 종교시설의 급증 내지 쇄도)

②� 이중종교시장의 형성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에 걸쳐 진행된 반월, 과천, 창원 등의 신도시 건설 과정에서, 그리고

공영개발 방식으로 진행된 목동 재개발 과정에서 처음으로 ‘종교부지’를 계획적으로 반영하는 정책

이 등장했다. 여의도와 강남에 이어, 종교부지를 둘러싼 반월․과천․창원 신도시와 목동 신시가지의

경쟁에서도 승자는 여전히 그리스도교였다. 종교부지 정책은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된 수도권 1기

신도시들, 그리고 2000년대 들어 추진된 수도권 2기 신도시들과 보금자리 지구들에서 더욱 확대되

고 제도화된 형태도 유지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 도시 재개발 사업으로 수도권에서 등장한 ‘뉴타

운들’에서도 적게나마 종교부지가 할당되었다.

수도권 1․2기 신도시들에서 종교부지를 둘러싼 경쟁도 흥미롭지만, 확대된 형태의 도시 재개발

정책인 ‘뉴타운’ 현장에서는 종교와 개발업자, 종교와 국가(특히 지방정부) 사이에 치열한 갈등이

벌어졌다. 뉴타운 사업은 1980년대에 등장한 합동재개발의 ‘2000년대 버전’이라고 할 만하지만, 종

교적인 측면에서 볼 때 1980년대와는 판이한 상황에서 진행되었다. 1980년대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임대(세입자) 종교시설, 자체의 건물 혹은/그리고 부지를 소유했지만 종교부지를 성공적으

로 분양받기에는 재정능력이 모자란 영세 종교시설이 20년 사이에 엄청나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1980년대의 합동재개발과 전면철거의 현장에서 종교지도자들은 기득권을 지닌 가옥주와 유사한 처

지여서 사실상 수수방관하거나, 정반대로 ‘빈민선교’나 ‘빈민사목’ 차원에서 세입자들의 권익을 위

해 함께 싸우곤 했다. 그러나 2000년대에는 상당수의 종교지도자들 스스로가 ‘억울한 약자’ 입장으

로 몰리게 되었던 것이다.

신도시 개발 혹은 도시정비사업에서는 ① 영세한 상가 임대교회의 축출 문제, ② 사업 기간 동

안 종교공동체가 해체되는 문제, ③ 종교지형의 인위적․단기적․전면적 재편, 그로 인한 종교 규제

및 종교차별 효과 문제 등이 제기된다. 여기서는 도시 재개발과 신도시 개발을 하나로 묶어 서술하

되, 서술의 순서는 개발/재개발의 시간적 추이를 따를 것이다. 필자가 이런 서술방식을 택한 이유

는 사업의 진행단계에 따라 개발/재개발과 관련된 핵심 쟁점, 효과, 이해당사자들이 뚜렷하게 달라

지는 탓이다. 구체적으로, ① 계획․보상․이주가 이루어지는 1단계, ② 종교부지(종교용지)의 할당

및 분양, 건물 신축이 이루어지는 2단계, ③ 건축 완료, 입주 및 이후의 변화들로 특징지어지는 3

단계의 순서에 따라 논의가 진행된다.

� <표 6>� 신도시 개발,� 도시 재개발의 사업단계에 따른 쟁점,� 효과,� 이해당사자의 변화

① 계획, 보상 및 이주 단계, ② 종교부지 할당․분양 및 건축 단계, ③ 입주 및 그 이후의 단계로

이어지는 개발/재개발 사업의 진행단계에 따라, ‘종교지형의 혁명적 재편’, 그리고 ‘종교경관의 상

전벽해(桑田碧海)’가 이루어진다. 세 단계 모두를 지배하고 관통하는 논리는 ‘약육강식’이고, 이 논리

가 작용한 결과는 ‘재정능력에 따른 종교적 양극화’라고 말할 수 있다. 간략히 요약해보자.

첫째, ‘계획 및 보상․이주 단계’에서는 신도시 개발 및 재개발 대상인 지역의 종교단체, 종교인들

사이에서도 이해관계 분화가 발생한다. 크게 세 그룹의 종교적 이해당사자 유형들이 생겨날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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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① 소유권 있는 자기 건물을 갖지 못하고 전세나 월세로 기존 건물에 세 들어 종교 활동을 하

는 ‘임대형’ 혹은 ‘세입자형’, ② 자체 소유의 토지 혹은/그리고 건물에서 종교 활동을 하는 ‘소유

형’ 혹은 ‘자가(自家)형’, ③ 현재 개발/재개발 대상지 바깥에서 종교 활동을 하고 있으나, 개발/재개

발 대상지의 종교부지를 매입 혹은 전매(轉買)하여 새로 진출할 의사와 재정동원 능력을 지닌 ‘외부

재력가형’ 등이 그것이다.

1단계에서는 상가교회와 같은 임대형 종교시설의 추방과 이출(移出), 자체 건물을 소유한 소규모

의 소유형 종교시설의 퇴출(1차) 및 기존 종교공동체의 해체 현상이 주로 나타난다. 따라서 이 단

계에서는 영세한 종교시설에 대한 (사실상의 그러나 의도한 것은 아닌) ‘국가의 종교규제 효과’가

집중적으로 발생한다. 재정능력이 열악한 임대형 및 소유형 종교시설에게 개발/재개발은 생존 자체

를 위협하는 ‘매우 나쁜 소식’이었다. 특히 이 단계에서는 재개발/개발 주체(국가, 건설사, 조합)와

세입자(貰入者) 처지인 영세 종교시설 사이에 격심한 갈등이 발생하기 쉽다.

둘째, ‘종교부지 할당․분양 및 건축 단계’에서는 남아 있던 토박이 소형 종교시설의 추가적인 퇴

출(2차), 그리고 외부로부터 종교적 강자들의 유입 현상이 두드러진다. 조직화되지 못한 전통종교나

민간신앙 등 확산종교들은 이 단계에서 전멸하며, 그나마 비교적 지가가 싼 지역들이어서 종교시설

을 유지할 수 있었던 군소 종교들도 거의 모두 축출된다.

셋째, ‘입주 및 입주 이후의 단계’에서는 상가 임대 종교시설의 혼란스럽고 무정부적인 이입(移入), 그들 사이의 과당경쟁(‘개미들의 전쟁’), 종교부지를 차지한 종교적 강자들 간의 경쟁(‘별들의

전쟁’), 이를 통한 이중적 종교시장의 고착화, 신규 입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종교공동체의

형성 현상이 현저해진다. 정부는 종교부지 정책을 통해 신도시 내 종교시설 난립을 미연에 방지하

고자 했으나, 입주 단계에서 (더 이상 종교시설용 부지를 기대할 수 없는) 소규모 임대형 종교시설

이 기존 상가들로 격렬하게 유입됨으로써 오히려 소규모 종교시설의 난립을 조장한 꼴이 되었다.

결국 신도시의 종교시장은 철저히 이원화 내지 분단(分斷)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하나는

퇴출 위험이 거의 없는 ‘메이저 시장’(major religious-market) 혹은 ‘빅 마켓’(big market)이다. 다른 하

나는 실제로 수많은 사상자(死傷者)들이 발생하는, 거의 ‘전쟁’과도 유사한 경쟁이 벌어지는 ‘마이

너 시장’(minor religious-market) 혹은 ‘스몰 마켓’(small market)이다. 이중종교시장, 즉 이중적 구조를

지닌 종교시장이 신도시에서 뚜렷하게 형성되는 것이다. 메이저 시장에서의 경쟁이 ‘별들의 전쟁’이

나 ‘거인들의 전쟁’이라면, 마이너 시장에서의 경쟁은 ‘개미들의 전쟁’이라고 부를 만하다. 두 그룹

은 사실상 별개의 영역에서 경쟁하며, 마이너 시장과 메이저 시장 사이에는 두텁고도 공고한 진입

장벽이 존재한다. 따라서 진정한 정글 경쟁은 상가 지역을 무대로 소형 종교시설 사이에서 전개되

는 생존투쟁이다.

첫 번째 단계에서 종교적 약자들에 대한 ‘규제’ 효과가 지배적이었던 데 비해, 두 번째와 세 번

째 단계에서는 사후적인 ‘차별화’ 효과가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겉으로는 자유로운 경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크게 달랐으며, 종교 사이 그리고 종교 내부의 현저한 재정능력 차이로 인해 결국

‘경쟁에 의한 종교차별 심화’ 효과만 두드러졌다. 특히 1970년대 말부터 등장한 ‘종교부지 할당’ 정

책은 자본을 갖춘 대형 종교 및 단체에는 매우 유리하나, 소형 종교 및 단체에는 매우 불리하게

작용했다. 국가가 특정한 종교를 이롭게 혹은 불리하게 만들 의도를 갖고 개발/재개발을 추진한 것

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1단계의 규제 효과든, 2∼3단계의 차별화 효과든 그 모두는 ‘의도치 않은’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이런 규제와 차별화를 통해 종교 간에 그리고 종교 내부에

서 양극화를 촉진하는 동시에, 종교경관의 급격한 인위적 재편을 촉진했다. 국가는 대규모 개발/재

개발 프로젝트를 통해 개신교 등 대형 종교시설의 네트워크 구축 및 영향력 확장의 기회를 제공함

으로써 이들 종교시설의 ‘초대형화’에 간접적으로 기여했다. 종교부지 분양권 전매 현상에서 나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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듯이, 개발/재개발은 일부 종교인들 사이에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는 측면도 있었다.

국가가 주도하는 대규모 개발/재개발 프로젝트는 “재정능력에 따라 종교 사이/내부의 양극화를

촉진시키는 기제로서, 국지적 종교지형의 급격하고 인위적이고, 어느 정도는 강제적인 변형 및 재구

성을 추진하는 프로젝트”이기도 했다는 것이 필자의 핵심적인 주장이다. 대부분의 경우 신도시 개발

과 도시 재개발은 기존의 서민층을 쫓아내고 중간층과 상류층을 유입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개신교

와 천주교에 매우 유리한 효과를 낳았다. 그 결과 ‘부와 권력의 벨트’라고 부를 만한, 그리고 ‘그리

스도교적 아우라를 풍기는’ 신도시/신시가지들이 지난 30∼40년에 걸쳐 수도권 곳곳에 생겨났다.

도시계획 단계에서부터 종교부지를 체계적으로 반영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종교가 도시주민의 일

상적 삶의 필수적인 일부임을, 그리고 종교시설이 도시경관을 구성하는 중심요소 중 하나임을 국가

가 인정했음을 뜻한다. 그러나 국가는 ① 종교부지의 단위를 비교적 넓게 가져감으로써 종교시설의

대형화를 유도함과 동시에, ② 종교부지 외의 부지에 종교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함

으로써 소형 종교시설의 난립 사태를 배제하려 했다. 붉은 색 십자가로 뒤덮인 한국 도시들의 야경

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이는 무계획적으로 들어선 중소형 종교시설들이 도시경관을 훼손하는

요인 중 하나임을 국가가 비로소 인정했음을 뜻하기도 한다. 1980∼1990년대에는 이미 “종교경관

의 개선 없이는 도시경관의 개선도 불가능한”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국가의 의도는 절반만 달성되었다. 신도시/신시가지 개발은 (도시미관을 해친

다고 지적받아온) 수십 혹은 수백 개의 소형 종교시설들을 개발 대상지역에서 강제로 추방하는 데

는 확실한 효과를 냈고, 이를 종교부지를 차지한 비교적 소수의 대형 종교시설들로 대체하는 데서

도 확실한 효과를 냈다. 수백∼수천 평의 종교부지에 들어선 몇몇 대형 종교시설들은 신도시의 랜

드마크로 인정받을 만큼 탁월한 건축설계를 자랑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종교경관을 개선함으로

써 도시경관을 전반적으로 개선한다는 목표가 어느 정도 달성되는 듯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종교부지 정책은 소형 종교시설들의 ‘사후적인’ 난립을 방지하는 데는 철저히 무기력했

다. 무엇보다도 신도시의 종교부지는 종교들이 재력을 과시하고 총동원하는 각축장이 되었다. 결과

적으로 국가는 신도시를 재력 있는 소수 종교들의 전리품으로 제공한 꼴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종

교지형의 인위적․강제적이고 급격하고 편파적인 재편을 촉진하는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다.

4. 개발 주체로서의 종교

마지막 절에서는 종교가 개발 바람에 편승하는 사례들, 즉 종교가 개발의 주체, 나아가 때로는 가

해자 역할을 하는 사례들에 대해 다룰 것이다. ‘개발과 종교’ 문제를 다룬 앞 절들에서 종교는 개발

주의의 종속변수처럼 다뤄졌다. 이 절에서는 시선을 반대편으로 돌려, 종교 측의 개발행위로 인한

논란 혹은 갈등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이 장들에서는 ‘개발 주체’인 종교에 초점이 맞춰지는 만큼,

종교가 독립변수로 취급되는 셈이다. 종교시설의 신․증축, 개발․재개발과 관련해서는 ① 문화재로 지

정된 종교시설의 재개발로 인한 문화재 가치 및 경관의 훼손, ② 종교시설 신․증축을 둘러싼 주민과

의 마찰, ③ 도심 납골시설 건축을 둘러싼 주민과의 갈등, ④ 그린벨트를 훼손하는 기도원이나 수양

관 건축, ⑤ 산사들의 산림훼손이나 수질오염 행위들, ⑥ 종교 측의 수익사업(골프장, 골프연습장

등)을 둘러싼 갈등, ⑦ 개발을 매개로 한 정교유착과 특혜 등이 갈등의 주요 쟁점으로 떠오른다.

종교는 종교시설의 신축 및 증개축, 성지(聖地)의 개발, 혹은 수익사업의 일환으로 다양한 개발

사업을 전개할 수 있다. 많은 기업들을 거느리고 방대한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1995년부터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송산리 일대 800만 평에 ‘청심타운’을 건설하는 한편, 여의도에서도 1만 4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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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46,465㎡) 부지에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통일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례

일 것이다. 자금동원력이 있는 다른 교단이나 교구, 개별 대형 교회나 사찰들도 신학교 등 각급 학

교나 병원 설립, 대규모 교당 건축 등 개발 사업에 뛰어들 수 있다. 천주교, 개신교, 천도교, 원불

교, 대순진리회 등은 ‘성지 개발’에도 적극적이다. 개신교를 필두로 한국의 종교들은 매년 천문학적

인 자금을 각종 건축이나 개발 사업에 쏟아 붓고 있는 중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종교가 개발 주체로 나서는 경우를 모두 ‘난개발’이나 ‘과잉개발’로 의심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대부분의 종교 측 개발행위는 지극히 합법적이고, 별다른 갈등을 불러일으

키지도 않는다. 일부 종교적 난개발로 지탄받는 일들에 대한 종교계 내부의 자정(自淨) 움직임이 곳

곳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그러나 종교 측의 개발행위가 사회적 물의를 빚거나 갈등을 일으키는 사

례들도 꽤나 폭넓게 또 빈번하게 발견된다.

종교 측의 개발행위로 인한 갈등에는 몇 가지 유형들이 존재한다. 그 중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

는 네 가지를 추리면, ① 종교 측의 불법 혹은 편법 개발행위로 인해 종교-국가 갈등이 발생하는

경우, ② 국가가 종교 측의 난개발을 사실상 조장함으로써 주로 종교-사회(주민) 갈등을 유발하는

경우, ③ 종교 측의 개발행위가 타종교와의 갈등을 유발하는 경우, 다시 말해 특정 종교의 개발행

위가 다른 종교의 반발을 불러 종교-종교 갈등이 발생하는 경우, ④ 종교 측의 개발행위로 인해

종교-지역주민 사이에 국지적인 갈등이 빚어지는 경우 등을 들 수 있다.

더 자세히 관찰해보면, 첫 번째 유형, 즉 종교 측의 불법․편법 개발행위로 인한 종교-국가 갈등

유형 안에는 다음 세 가지 하위 유형들이 포함되어 있다: ①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자연녹지, 상

수원보호구역, 국공립공원 등 개발이 엄격히 제한되거나 금지된 지역에 존재하는 무허가 종교시설,

이 지역들에서 이루어지는 불법 건축행위(신축 및 증개축), 불법 용도변경 행위, 불법 형질변경 행

위, ② 도로나 주차장 마련을 위한 산사(山寺)의 산림훼손, 환경파괴 행위들, ③ 종교 계통 문화재들

의 가치나 경관을 훼손하는 종교 측의 개발행위.

시기적으로 볼 때 민주화 이전에는 ‘종교-국가 갈등’이 지배적이었다면, 민주화 이후에는 ‘종교-

사회(주민) 갈등’이 더욱 빈번해졌다. 다시 말해 민주화 이전 시기에는 종교계의 불법 혹은 편법적

인 건축․개발 행위에 대한 정부의 단속과 통제, 그리고 이를 계기로 한 종교-국가 갈등이 주를 이

뤘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에는 종교계의 불법/편법 개발행위 그리고 그로 인한 정부의 단속과 통제

자체는 계속되지만 그로 인한 갈등의 비중 및 중요성은 전반적으로 감소한 것처럼 보인다.

반면에 민주화 시대에는 ‘권력형 개발’이나 ‘법률을 통한 난개발 조장’ 등 국가가 종교 측의 난개

발을 사실상 조장함으로써 종교-사회, 종교-주민 갈등의 비중과 빈도가 모두 증가했다. 넓은 의미

의 ‘권력형 개발’ 즉 “권력화된 종교에 의한, 정치권력을 등에 업은 개발” 사례가 더욱 빈번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최근의 사랑의교회 건축이나 명동성당 재개발 사업이 ‘권력형 개발’ 시비를 초래

한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뿐만 아니라 민주화 시기에는 방대한 부를 축적한 종교세력이 점점 대형

화되는 건축이나 개발 사업에 나섬으로써 특정 지역의 주민들과 마찰을 빚는 사례도 급증하고 있

다. 결국 민주화를 계기로 갈등의 구도가 이전의 ‘종교 대 국가’ 구도에서 ‘종교 대 사회’ 구도로

변했고, 그에 따라 종교의 일차적인 갈등 상대가 ‘국가’에서 ‘사회(주민)’로 변한 것이다.

‘종교-종교 갈등’ 유형은 ‘종교-국가 갈등’ 및 ‘종교-사회 갈등’(즉 시민사회 내부의 갈등)의 성

격을 동시에 갖는 경우가 많다. 힘 있는 특정 종교세력의 개발행위가 중앙 혹은 지방 정부의 후원

에 의한 것일 때, 따라서 특혜 시비가 일어나기 쉬울 때, 종교-국가 갈등, 종교-종교 갈등, 종교-

사회 갈등의 중첩성이 두드러지는 경향이 있다. 물론 여기서 ‘종교-국가 갈등’의 주체는 불이익을

당했다고 느끼는 종교가 될 것이다.

이처럼 ‘권력형 개발’로 인한 갈등은 언제든 ‘종교차별의 정치’로 비화될 강한 휘발성을 내장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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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동시에 권력형 개발은 특정 종교가 막대한 개발이익을 취하는 대가로 정치권력에 대한 지지

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은밀한 ‘정교유착’ 혹은 ‘정교야합’을 부추길 수도 있다. 집권세력이 종교계

의 환심을 사기 위해 각종 건축규제를 완화하거나 종교를 규제의 예외지대로 취급하는 것 자체가,

개발을 매개로 한 정교유착의 분위기를 숙성시킨다. 그리고 그럴수록 종교-종교 갈등과 종교-주민

갈등의 폭발성은 더욱더 커지게 된다.

1990∼1994년에 걸쳐 정부와 정치인들이 주로 개신교의 압력에 밀려 상가 종교시설의 용도변경

이나 주거지역에서의 종교시설 건축에 대한 규제를 풀어준 결과, 1990년대 중반 이후 상가 종교시

설 입주 그리고 주거지역의 종교시설 건축과 관련된 종교-주민 갈등이 급증하는 부작용이 나타났

다. 종교시설 건축행위를 향해 빗발치는 주민들의 민원에 대응하여 노무현 정부가 내놓은 해법이

바로 ‘건축협정제도’였다. 그러나 개신교를 중심으로 한 종교계는 정부와 여당을 압박하여 건축협정

제 적용 대상에서 종교시설을 제외하도록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종교계의 건축행위에 대한

규제 장치들을 대부분 무력화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그리고 바로 그 성공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종

교계는 이제 종교시설 건축에 반대하는 지역주민들과의 적나라한 물리적․심리적 대결에 속수무책으

로 노출되었다. 지역주민들과의 대립이 속출하고, 또 대부분 장기화되면서, 대형 혹은 중형 건축을

주도하는 개신교에 대한 시중의 여론이 급속히 나빠졌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열흘 전인 2011년 10월 16일에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장충체육관에

서 열린 ‘108 산사 순례기도회’에서 정교유착의 냄새가 진동하는 축사를 한 바 있다. “불교의 상징

인 보리수나무가 조계사에 없었는데 최근에 심은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원내대표였을 때 조계사

길 막는 35억 원짜리 건물 사고 보리수나무 심을 수 있게 예산을 다 드렸다. 한나라당이 자연공원

이나 국립공원에 사찰을 건축할 수 있게 법도 바꿔 드렸다. 우리 문화유적 대부분이 불교계에 있기

에 전통문화보조금도 신설해 불교를 지원하는 데 종교 간 차별을 없게 했다.”14) 마치 권력-돈-개

발 사이에 화학적 융합이 이루어지는 듯한 현장이었다.

14) 뉴스1, 2011.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