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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14 08일터

Apr 0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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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a Ch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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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가 지나니 바람이 제법 서늘해졌습니다. 올 여름 휴가 성수기에

태풍 때문에 비도 많이 왔는데, 다들 여름휴가 잘 다녀오셨습니까? 즐

거우셨습니까? 당신에게 여름휴가는 어떤 의미입니까? 당신이 바라는

휴가는 어떤 모습입니까?

이번 일터에서는 여름 휴가철을 맞아 한국 사회 휴가의 현실을 돌아

보았습니다. 당신과 나의 ‘쉬는 시간’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우리

는 잘 쉬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우리

작업장의 시계를 온전히 지배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쉬는 시간’과

‘작업장 이외의 삶’도 뒤틀리고 제한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따져보고

싶었습니다.

저에게 휴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쉬고 싶을 때 쉬는 것’입니다.

회사 사정에 맞춰, 물량 사정에 맞춰, 남들 다 쉴 때 똑같이 쉬는 것

말고, 내 사정에 맞춰, 내가 아프거나 휴식이 필요할 때, 출산이나 육

아와 같은 나의 생애 주기에 맞춰 내가 쉬고 싶은 만큼 쉬고 다시 일

할 수 있는 권리. 그러고 보면 ‘보편적으로 보장된’ 법정 휴가마저 낯

설게 느껴지는 우리 생활이 특집감이 아닌가 싶습니다. 일터

독 자 에 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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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특집

1. 여름휴가, 잘 다녀오셨습니까?

2. 3인 3색 휴가이야기

(1) 휴가, 내가 가고 싶을 때 가고 싶다

(2) 카페주인의 여름은 월급쟁이보다 핫(hot)하다

(3) 휴가는 꿈도 못 꾸는 환상의 나라?

한국 사회 ‘휴가’를 짚어본다. 한국의 휴가 역사, 휴가 정치를 들여다보고 다양한 노동자들의 휴가 현

실을 만나보았다.

03 뉴스 속초의료원, 제2의 진주의료원 되나 外 l 장영우

06 지금 지역에서는 삶을 바꾸기 위해 투쟁한다 l 부산지하철노동조합 선전부장 이영호

08 A-Z까지 다양한 노동 이야기 고3이 안 쉬면 학원 알바도 못 쉬죠 l 정하나

12 현장의 목소리 더 이상 사장이 원하는 아줌마는 되고 싶지 않아요 l 재현

16 연구소 리포트어느 완성차 생산 공장의 교대제 변화 후 삶과 건강의 변화

l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김형렬, 최민

21 사진으로 보는 세상 바쁜 일상으로부터 잠시, 로그아웃 l 김세은

32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 이야기

건강하게 일할 권리, 이제부터 시작이다 l 이진우

34 작업중지권 기획악천후에 편지 배달, 미담이 아니다

l 중대재해 예방과 작업중지권 실현을 위한 ‘당장멈춰’팀

37 노동시간센터(준) 기획일과 일상생활의 불균형/성별 불평등은 어떻게 지속되는가?

l 노동시간센터(준) 김경근

40 문화읽기 함께 키우는 즐거움, Shall We? l 송윤희

42 유노무사의 상담일기 ‘직장 내 괴롭힘’, 먼 얘기가 아니다 l 노무법인 필 유상철

44 일터 다시보기 일하다 다치면 병원, 약국, 근로복지공단을 함께 가세요 l 후원회원 안태은

46 이러쿵저러쿵 병원의 안과 밖, 이윤의 전쟁터 l 장영우

48 퀴즈 가로세로 퀴즈로 본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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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속초의료원, 제2의 진주의료원 되나

강원도 속초의료원 노동조합이 의료 공공성

보장과 노동조건 개선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자 사용자 측인 속초의료원이 직장폐쇄와

휴업 결정으로 맞서 ‘과잉 대응’ 논란을 빚고

있다. 속초의료원 노동조합은 노사 합의 파기

철회, 최저임금 수준에 못 미치는 임금 개선,

체불 임금 해결, 인력 충원, 비정규직 정규직

화, 단체협약 이행, 공공적 발전 대안 마련 등

을 요구하였으나, 지난 7/21 춘천지방노동위원

회에서 열린 지방 노사정위원회에서 의료원 측

과 조정이 결렬됨에 따라 지난 22일부터 30일

까지 9일간 시한부 파업을 벌인 바 있다.

열악한 근무 여건을 버텨온 속초의료원 노동자들

속초의료원은 2009년 이후 올해까지 임금이

동결이었고, 저임금에 체불임금이 쌓이면서 간

호사 등 의료 인력이 계속 빠져나갔었다. 반면

강원도는 속초의료원을 포함한 5개 의료원에

고강도 경영수지 개선을 요구하면서 외래진료

환자 수는 오히려 늘어 의료 인력들의 업무 강

도는 높아졌다고 한다. 그래서 노동조합은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의료인력 충원과 임금

현실화를 주장하며 파업에 돌입하게 되었다.

문제의 본질 흐리는 속초의료원 이사회

한편 노동조합은 파업을 끝내고 7/31일 오전

7시부로 현장으로 복귀하고, 8/11일까지 집중

교섭과 면담을 통해 해결책 마련을 위한 시간

을 갖고자 했다. 하지만 속초의료원은 지난

7/24일 긴급이사회를 열고 ‘직장폐쇄 및 휴업’

안건을 상정해 통과시키더니, 30일 오전 9시를

기해 31병동 전체, 51병동 전체, 51병동 일부,

물리치료실 전체를 대상으로 직장폐쇄를 단행

했다. 노동조합은 애초 파업을 시작하면서 이

번 파업을 9일간의 경고성 시한부 파업으로 결

정했고, 파업기간 중 속초의료원과 타결되지

않더라도 파업을 종료하고, 7/31일 업무에 복

귀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었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속초의료원 이사회는 예고된 업무복귀

하루 전날 전격적으로 직장폐쇄를 단행한 것이

다. 이는 속초의료원 이사회가 노동조합과의

교섭과 의료원 정상화보다, 오로지 파업을 빌

미로 노동조합을 파괴하겠다는 속셈을 드러낸

것이다. 현재 보건의료노조 강원지역본부는 속

초의료원 정상화와 지역 의료원 발전방안 마련

을 촉구하며 릴레이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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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민중의 소리

2014년 최악의 살인기업

현대제철과 대우건설

노동단체들이 2014년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현대제철과 대우건설을 선정했다. 민주노총, 한

국노총, 노동건강연대 등으로 구성된 '산재사망

대책마련을 위한 공동캠페인단'은 지난 7/9 청

계광장에서 열린 '2014 살인기업 선정식'을 개

최했다. 살인기업 선정 기준은 고용노동부가

새정치민주연합 은수미, 정의당 심상정 의원실

에 제출한 '2013년 중대재해 발생현황 보고 자

료'를 토대로 원청이 있는 사업장에서 발생한

산재 사망자 수를 근거로 순위를 매겼다.

살인기업으로 선정 되도 눈 깜짝 안하는 기업들

자료 분석 결과 현대제철과 대우건설은 산재

사망자수 각각 10명으로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선정되었다. 현대제철에서 지난해 발생한 중대

재해를 보면 추락사망 3명, 질식사망 5명, 감

김이나 끼임으로 인한 사망 1명, 유해물질로

인한 사망이 1명이었다. 그중 특히, 질식사고

사망자 수가 많은 것은 지난해 5월 당진공장

내 발전소에서 발생한 아르곤가스 누출 사고

때문이다. 이 사고로 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이

있었는데 그 결과 1,123건에 달하는 산업안전

보건법을 위반한 것이 밝혀져 사회적으로 논란

을 빚었다. 한편 그럼에도 현대제철은 지난해

산재 보험료를 27억 원 이상 할인 받았었다.

산재보험으로 인한 급여 지출이 적을 경우 보

험료를 깎아주는 ‘개별실적 요율’을 적용 받은

덕분이다. 2011년에 이어 2관왕을 차지한 대우

건설은 추락 6명, 날아오는 물체에 얻어맞음으

로 인한 사망 2명, 감김이나 끼임으로 인한 사

망이 2명이었다.

누구를 위한 규제완화인가

현재 한국의 산재사망률은 10만 명당 7.3명

으로 통계가 보고된 OECD 국가 중 1위다.

OECD 평균(2.6명)의 3배에 가깝다. 또한 일반

적으로 1인당 국민소득(GDP)이 높아지면 산재

사고 사망률을 줄어드는 양상을 보이는데 한국

은 GDP가 3만 달러에 가깝지만 비슷한 수준

의 이스라엘(2명), 스페인(1.9명)보다 산재사고

사망률이 3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

원인 중 하나가 정부의 규제완화정책이 큰 몫

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산재사망대책마련을

위한 공동캠페인단은 이번 살인기업선정식을

통해 현재 규제완화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대통

령과 대통령 직속의 규제개혁위원회의 문제를

폭로하며 특별상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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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의료민영화 반대 서명

150만 명 돌파해

병원이 자회사를 세워 수익사업을 할 수 있

도록 허용하는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병원 노동자의 파업이 이틀째

이어졌고, 의료 민영화에 반대하는 서명이

온·오프라인에 걸쳐 150만 명을 넘어섰다. 보

건의료노조는 지난 7/22 ~ 26일까지 의료 민

영화 저지 총파업을 진행했다. 23일에는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출정식을 하고 새누

리당에 영리 자회사 설립 반대 의견서를 전달

한 뒤, 보건복지부와 기획재정부가 있는 세종

시로 이동해 규탄 집회를 벌였다.

박근혜 정부는 의료 민영화 중단하라는

국민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편 보건의료노조는 “총파업 투쟁을 시작한

22일 하루에만 의료 민영화 반대 서명 운동에

60만 명의 국민이 동참해, 지난 1월 서명 운동

시작 이래 지금까지 모두 150만 명을 넘었다고

밝히며, 박근혜 정부는 즉각 의료 민영화를 중

단하라고 목소리 높였다. 아울러 인도주의실천

의사협의회, 무상의료운동본부 등 의료인 단체

들도 성명을 통해 정부는 이제라도 환자와 의

사 모두가 불행해질 의료 민영화 정책을 당장

중단하라는 입장을 밝혔다. 일터

정리 : 장영우 선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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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바꾸기 위해 투쟁한다

이영호 부산지하철노동조합 선전부장

부산지하철노동조합은 2014년 단체교섭투쟁을 진행 중이다. 지난 7월 3일 상견례를

겸한 첫 교섭 이후 다섯 차례 교섭을 진행했다. 그러나 공사 사장이 7월 13일 경질되는

바람에 교섭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올해 부산지하철노동조합은 ‘삶을 바꾸자!’를 슬로건으로 공세적인 투쟁전술을 세우고

100여개의 요구안을 공사에 제시했다. 이 중 핵심 요구안은 ▲총 정원 확대 ▲노후 전

동차 교체 ▲노동 조건 개선 ▲왜곡 적용되고 있는 통상임금 정상화 ▲청소업무 직영화

등이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사안들이다. 현재 공사는 노동조합의 요구에 대해 박

근혜 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 지침을 충실히 이행하겠다는 미명하에 임금체계와 후생복

지제도 개악 안을 내놓았다. 또한, 교섭석상에서 올해 원만한 교섭타결이 어려울 것 같

다며 설레발을 칠 정도로 공사와 정부의 압박이 만만찮다. 이처럼 녹록찮은 조건에서

‘삶을 바꾸자!’는 슬로건은 어려울수록 정면 돌파가 답이라는 단순한 원칙 아래 수세적

방어가 아닌 능동적이고 공세적인 전술의 압축된 표현이다.

안전한 지하철을 만들기 위해 규제완화 폐기, 2인 승무제 실현되어야

현재 노동조합은 투쟁전술에 따라 시 전역에 퍼져 있는 역사를 홍보 공간으로 적극

활용해 연초부터 지하철 안전과 청년실업을 주제로 포스터 부착과 홍보물 배포 등을 꾸

준히 진행하면서 부산시와 공사를 압박하고 있다. 8월부터는 안전한 지하철 만들기 15

만인 서명 공동행동을 진행하고 있는데, 하루에 약 5,000명의 서명을 받을 정도로 시민

들의 호응이 좋다. 올해 1호선에서 네 차례나 발생한 차량 화재사고를 경험한 부산 시

민들의 의사가 서명 숫자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1호선 전동차는 1985년 개통 때 도입되어 30년이 된 차량(84량, 23%)을 비롯해 전체

차량 360량 중 300량(83%)이 20년이 지난 노후전동차다. 이미 언론에도 보도가 됐듯 지

하철 전동차 내구연한(수명)은 애초 25년 이었으나,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40년으로

연장됐다. 이 또한 올해 3월 19일부터 내구연한 조항 자체가 삭제되어 이론적으로는 무

한정 사용이 가능하다. 이 모두가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의 규제완화정책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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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전동차 교체 요구와 함께 2인

승무 환원을 비롯한 안전인력 충원도

주요 요구이다. 부산지하철은 지난

1999년 2호선 개통을 시점으로 1인 승

무제가 시행되고 있다. 2호선 개통 소

용인력을 충당하기 위한 구조조정의

일환이었다. 당시 노동조합은 파업투쟁

까지 벌이며 싸웠지만 막지 못했다. 1

인 승무는 적게는 수백 명, 많게는 1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태우고 다니는 지하철에서 사고가 났을 경우 승객의 안전을 책

임지지 못한다. 2003년 200명 가까운 생명을 앗아간 대구참사 때 2인 승무였다면 이렇

게 많은 인명이 죽지 않았으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이처럼 지하철 안전 확보

를 위해서는 노후 전동차 및 설비 교체와 함께 안전인력 충원도 매우 중요하다.

부산지하철노동자 투쟁은 공공성 강화로 이어진다

지하철 안전 요구와 함께 노동조건 개선 요구도 올해 노동조합의 핵심 요구안이다.

노동조건 개선 요구는 올해 슬로건인 ‘삶을 바꾸자!’와 직접 연관된다. 노동조건 개선 요

구는 야간교대근무 개선과 휴일 확대 즉, 노동시간 단축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는 추

가 인력이 필요하다. 결국 노동조건 개선 요구는 인원충원(총정원 확대) 요구로 이어진

다. 또 노동시간 단축은 왜곡된 통상임금의 정상화 요구와도 무관하지 않다. 청소업무

직영화 요구는 2009년 정규직노조와 통합한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과 함께하는 요구다.

인천지하철은 2013년 청소업무를 직영화했고,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도 자회사

방식으로 사실상 직접 운영 중이다. 이들 지하철은 단지 직영화만으로 청소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시키고도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직영화를 통해 중간착취의 고리를 끊었기

때문이다.

부산지하철노동조합의 올해 요구안은 1차적으로 조합원들의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만

들어 졌지만, 그 요구는 지하철 및 사회 공공성 강화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부산지하철노동조합의 투쟁 결과가 곧 바로 사회 진보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결국 부산

지하철노동조합은 올해 좁게는 3,500 조합원의 삶을 바꾸고, 넓게는 지하철 안전과 사회

공공성 강화를 위해 힘찬 투쟁을 결의하고 있다.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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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한 번째 이야기

고3이 안 쉬면 학원 알바도 못 쉬죠

수험생처럼 쉴 틈 없는 일 년을 보내는 논술첨삭 선생님

정하나 선전위원

직장인에게 7, 8월은 휴가철이지만 학생들에게는 방학이다. 오늘 소개하는 박다현(28세)

씨의 여름방학은 대입 논술고사를 준비하는 고3 학생들을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로 바쁘다. 다

현 씨는 서울의 유명 학원가에 있는 논술학원에서 첨삭지도 아르바이트 중이다.

사교육계의 하청, 논술 첨삭 알바

올해 대학원 입학 전, 사회단체 활동을 하던 다현 씨. 벌써 4년 차에 접어든 이 논술 첨

삭지도 알바는 단체에서 지급되는 활동비가 너무 적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주말에만 하면 되고, 시간당 임금이 높은 편이라 좋았다고 했다. 그럼 다현 씨는 말로만 듣

던 연봉이 몇 억씩 된다는 ‘○○동 스타강사’인가? 알고 보니 논술학원 구조상 첨삭지도 선

생님은 그런 위치가 아니다.

“아시다시피 학원의 고용구조는 기본적으로 특수고용 형태예요. 원장과 강사 간의 계약도

다 일대일로 하되, 강사가 얼마나 잘 나가느냐에 따라 애들 내는 학원비 나눠 갖는 비율을

정하죠. 논술강사들 역시 이렇게 계약을 해요. 이 논술강사들이 자기 반에 한 타임 당 한

20명, 많으면 30명까지 학생들을 받는데, 앉혀놓고 강의하는 것 외에 애들이 써온 1천 몇 백

자 글에 빨간 펜으로 줄긋고 별표치고 첨삭해서 학생 한사람씩 불러서 대면지도를 해줘야

한단 말이지요. ‘네 글의 포인트는 ~~~인 것 같은데, 여기에 있는 문장은 적절치 않다/적절

하다’는 식의 코멘트를 해줘야 하는 거죠. 근데 수업 시간상 수강생이 혼자 다 커버가 안 되

니까 ‘첨삭 지도’만 하는 선생들을 따로 섭외(고용)하는 거예요. 자기 밑으로 한 서너 명씩.

학생 1명당 15~20분 정도 소요되니, 클래스의 수강인원에 따라 필요한 첨삭지도 선생 숫자

가 나오겠죠. 일종의 하청, 하도급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제 위치가 바로 여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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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계의 하청노동자라고 할 수 있는 논술 첨삭 선생님의 급여는 자기를 섭외해서 데리

고 있는 논술강사가 알아서 개별적으로 결정한다. 즉, 원장과 나눈 논술강사 수입 중에서 논

술강사 본인이 너무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그래서 첨삭 선생들의 임금이

천차만별이라고 했다.

“저희 선생님은 첨삭 원고 한 장당 10,000 원씩 쳐 줬어요. 거기에 일한 지 1년이 지나면

장당 1,000 원을 올려주는 정책을 썼는데, 저는 4년 차니까 장당 14,000 원이 되었죠. 이게

별거 아닌 거 같아도 10장으로 치면 40,000 원 차이 나는 거니 크죠. 그리고 대학원 들어가

기 전, 그러니까 재작년부터 작년까지는 첨삭 선생님들 중에서도 ‘관리’하는 직책이었거든요.

그러면 첨삭비 외에 수강학생 1명당 10,000 원씩 더 얹어주었죠. 대신 수업이 있는 모든 날

관리 차 학원에 나가야 해서 주말 이틀 모두 출근하고 평일 중 하루나 이틀 더 출근했어야

했어요. 그때 그렇게 해서 200만 원 넘게 벌었죠.”

주말특수 논술학원, “주말까지 일하니 죽을 것 같아”

처음에는 월급 금액만 듣고 “어휴~ 그래도 아르바이트치고는 돈 많이 벌었네요.”라고 대꾸

했다. 하지만 아뿔싸! 놓친 게 있었다. 다현 씨는 애초에 논술학원 주말알바만 하는 것이 아

니었다. 평일에는 사회단체 상근자로 근무하고 있었기에, 최근 몇 년 동안 일주일 내내 쉬는

날 없이 정말 일만 해 왔을 터였다.

“주중에 하루도 못 쉬는 생활을 한 2년 하니까 정말 죽을 거 같더라고요. 수업이 9시부터

시작인데 저는 8시 반까지 가서 첨삭 준비 먼저 좀 해놓고 그랬거든요. 그러면 집에서 7시

반에 나와야 하는 거죠. 9시부터 두 시간 학생 5~6명 만난 후, 강사가 강의하는 두 시간은

좀 쉬고 다음 첨삭 준비하며 대기해요. 또 오후 2시부터 두 시간 첨삭지도 후 대기, 6시부터

두 시간 첨삭지도 후 대기. 이렇게 하루에 3타임 수업, 학생 한 15~20명 정도 만나서 떠드

는 걸 하는 거예요. 마지막 클래스가 6시에 시작해서 8시에 딱 끝나면 좋은데 좀 말이 길어

져서 늦게 끝나면 강사 강의가 종료되는 밤 10시까지 학생을 기다렸다가 첨삭지도를 해주어

야 합니다. 그러고 집에 가면 11시 반 정도가 돼요.”

물론 학원도 쉬는 주기가 있긴 했다. 학생들이 1학기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치르는 몇 주

는 논술학원은 잠시 방학이다. 논술학원은 내신 성적과는 관계가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대

신 그 시기 동안 논술 첨삭 알바비가 끊긴다. 몸은 좀 편안해졌지만, 생활비는 끊기는 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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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KBS 화면 캡쳐

되는 것이다. 그래도 올해부터는 첨삭관리일도 그만두고, 일요일에만 나가기로 했다. “죽을

것 같다”는 몸과 정신의 신호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자신만의 공부시간과 여유를 확보하기

로 했다.

“남들 쉴 때 쉬고 싶은 욕망이 아주 커요. 논술 학원은 방학 때라도 수업을 주말에 잡아

요. 평일에는 주요과목인 국․영․수 학원 가고 논술은 주말에 하루 오거든. 예전에는 친구들이

랑 약속 잡을 때 너무 힘들었어요. 그리고 학원은 남들 쉴 때 더 바쁘거든요. 예를 들면 요

즘 같은 여름방학에는 여름방학 특강이 개설되고, 아. 특히 추석! 추석특강반이 개설되면 앞

서 설명한 하루 4시간씩 3타임(오전 9시~오후 10시)을 연휴 내내 진행하는 거죠. 그래서 추

석 연휴 길면 정말 죽음이죠. 요즘엔 토요일 하루라도 쉬잖아요. 토요일은 이제 안 나간다고

마음먹고 무조건 비웠는데, 생각보다 더 좋은 것 같아요. 첨삭 관리할 때는 온종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는데 그러지 않아도 되니 또 좋고.”

수험생과 같이, 1년 내내 긴장된 노동

학원을 기준으로 돌아가는 다현 씨의 주간·연간 알바 일정을 듣고 있노라니 한국 사교육

현장을 깊숙이 알아버린 느낌이다. 방학 따위 꿈도 꿀 수 없는 대한민국 고3과 그 부모들이

제일 가까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겠지만, 사교육 시장의 시간표도 그에 못지않게 종종걸음

치며 발맞춰 돌아가고 있었다. 학원가 노동자들의 생활 시간표가 수험생의 그것에 맞춰지게

되는 것이다.

“예비 고3들의 출정시기인

겨울방학을 기점으로 중간고

사·기말고사 기간 지나서

7월 중순부터 여름방학 특

강, 추석특강, 그리고 제일

중요한 ‘파이널(final)’ 시기

가 있어요. 파이널은 수능

직후 2주간을 부르는 말인

데, 이때 각 학교 논술고사

가 집중되어 있죠. 이때는

추석특강보다 더 죽음의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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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에요. 혹시 ‘농활’ 가보셨나요? 저도 안 가봤는데, 다들 농활 온 것 같다고 말하더라고

요.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2주간 매일 김밥 먹고 말하고 김밥 먹고 말하고. 이렇게 쉼

없이 일하면 사람이 혼이 나간다고 해야 하나, 찌들어 버린다고 해야 하나?”

‘파이널’은 논술학원의 존재 이유라고 할 수 있는 시기. 수능시험을 마치고 학생들이 모든

에너지를 논술고사에 쏟는 만큼 학원도 총력을 쏟는다. 수업 시간, 학생, 할 일이 모두 많아

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대입 당락이 결정되는 워낙 긴장도가 높은 시기라서 학생과 학부모

관리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학원가에 떠도는 전설이 있어요. 파이널 때 어떤 선생님이 원고지를 한 장 분실했는데,

학부모가 달려와서 학원을 다 뒤집어놨다고. 실제로 분실한 적은 없었지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무조건 복사를 해서 한 부는 학원에 보관하고 한 부는 가지고 다녀

요. 빈틈없이 하려는 거죠. 문제 생길 거리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요. 사실 이 시기에 애들이

예민해져 있는 게 이해는 가요. 강의 듣고 첨삭 받은 대로 잘 쓰고 싶은데, 자기 생각만큼

실력은 좋아진 것 같지 않고 입시는 코앞이니 얼마나 불안하겠어요. 그래서 정말 글을 잘

써서 ‘잘 썼다’고 칭찬해줘도 곧이 안 듣고 대충 시간 때우려 한다고 오해해요. 그래서 첨삭

지도 할 때는 칭찬 반, 비판 반 섞어주는 기술이 필요해요. 칭찬하면 오히려 애 표정이 굳는

게 보이거든요. 그러면 여지없이 클레임이 들어와요. ‘선생님 바꿔주세요’라고.”

폭풍과 같은 파이널, 대단원의 막이 내리는 날에는 같이 첨삭지도를 하는 동료와 함께 어

떻게든 일을 일찍 끝내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늦어도 9시에는 무조건 일을 정리하고 다현

씨와 동료들은 택시를 타고 와인이 무제한으로 나오는 뷔페 레스토랑을 향해 달린다. 그리고

레스토랑 마감시간 까지 남은 1시간, 뒤풀이로 딱 1시간을 신나게 즐기는 것이다. 대면 첨삭

알바 선생님들끼리의 파이널 뒤풀이면서 조촐한 위로회이고, 그 해 다현 씨의 송년회이기도

했으리라.

대학원 공부 마칠 때까지는 논술첨삭 알바를 계속 할 거라는 다현 씨. 공부를 마치고 “4

대 보험도 적용되고”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곳에 적을 두기 전까지는 또 몇 고비

의 대입 파이널을 고3들과 함께 치러야 할 것이다. 그래도 돌아오는 추석 연휴, 아니 추석특

강일이 짧아서 참 다행이다.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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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사장이 원하는 아줌마는

되고 싶지 않아요

재현 선전위원

견출지, 라벨지 시장 매출 1위, 300만 불 수출을 기록한 레이테크코리아. 이 회사에서

온갖 반여성적, 반인권적 노동탄압을 견디며 일하다 이제 인간답게 일하는 일터와 일상을

되찾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레이테크코리아 지회 조복남, 김선희, 정해선 조합원을 만났다.

일은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나요?

조복남 : 친구 소개로 왔어요. 집하고 멀지 않아서 출·퇴근도 편하고 그래서 다니게 되었

죠. 근데 막상 와서 일을 해보니까 이렇게 일하는 곳도 있나 싶었어요. 아침에 출근해서 자리

에 앉으면 점심때까지 고개 한번 들기 힘들었어요. 화장실도 못 가요. 요즘에도 이렇게 일하는

데가 있나 싶었어요. 계속 다녀야 하나 갈등도 많이 했어요.

김선희 : 저도 전철 한 번에 오는 거리라 오게 됐어요. 만약 공장이 안성에 내려가는 줄 알

았으면 다니지 않았을 거예요. 처음에 한 마디도 없었거든요. 나중에 공장 이전을 반대하니까,

회사는 6년 전부터 내려갈 계획이었다고 주장하는데 그게 사실이면 미리 얘기해야 하는 것 아

닌가요?

정해선 : 제가 늦둥이가 있어서, 집에서 가깝고 주 5일 9시 출근해서 6시 퇴근하고 잔업이

없는 데라고 해서 일했어요. 저는 여기서 일하면서 결혼하고 나오는 주부들은 다 이렇게 일하

는 줄 알았어요.

구체적인 노동조건은 어땠나요?

정해선 : 당시 대표가 회사 전체에 CCTV를 설치하고 감시가 굉장했어요. 주로 대표가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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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구안 쟁취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 레이테크코리아 조합원 동지들

도에 있는데 핸드폰에 CCTV

를 연결해서 감시하면서, 물

건 때문에 화면이 가려지면

직원을 불러다가 그 앞에 물

건치우고 그랬어요.

조복남 : 누가 물 마시는

지, 화장실 많이 가는지 감시

하고. 한 사원은 체격이 컸

는데 답답하다고 다른 부서

로 내려 보낸 적도 있어요.

당시 대표가 항상 카메라를 주시하면서 지적을 해서 직원들이 매번 고개를 푹 숙이고 일했어

요. 처음 근무 할 때 화장실 가는 사람도 없고, 물 마시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옆에

동료한테 “여기 화장실 가면 안 되느냐?” 물어봤는데 “눈치껏 가면 돼요” 그러더라고요. 그때

바로 알았죠. 가면 안 되는구나. 그래서 대개 점심시간까지 참다가 종이 땡 울리면 화장실 가

려고 다들 뛰어가요. 점심에도 식당이 없어서 도시락 싸와서 일하던 바닥에 돗자리 펴고 먹어

요. 월급에 밥값 10만 원 포함해서 나오는데 그나마 그 돈으로 최저임금 딱 맞춰 주는 거예요.

그러니 그 돈으로 점심 사 먹으면 남는 것도 없어요.

정해선 : 대표 신년사도 가관이었어요. “여러분들은 원더우먼이십니다. 존경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더 좋은 곳이 있다면 언제든지 주저하지 말고 가십시오.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안 잡습니다.” 아줌마들은 얼마든지 있다 그거죠.

조복남 : 처음 3개월은 수습기간인데, 회사 마음에 안 들거나 못마땅하면 수습 때 바로 자르

고 새로 사람 뽑고 그랬어요. 만약 3개월 수습이 지난 정규직 사원을 그만두게 하고 싶을 때

는 부서를 마구 돌리면서 사람 자존심에 상처를 내고 스스로 그만두게 했어요.

노동조합을 만들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뭐였나요?

조복남 : 전 직원에게 비정규직 전환 계약서, 시간제 알바 계약을 강요한 게 결정적이었어

요. 그때를 계기로 작년 6월 4일 조합을 만들었는데, 회사는 곧바로 권한 없는 바지사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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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일주일 후에는 8월 말에 공장을 안성으로 이전하겠다고 했어

요. 조합은 꾸준히 공장 이전에 맞서 항의했는데 결국 힘에 밀려서 예정대로 진행됐어요. 회사

는 공장이 안성으로 가면 아무래도 출·퇴근에 제약을 받으니 조합원들이 회사를 그만둘 거라

고 생각한 거죠. 그래도 안성 내려가서 피나는 노력 끝에 9월에 단협 체결하고, 출·퇴근 버스

제공 합의도 이끌어 냈어요.

정해선 : 처음엔 70명 정도 조합에 가입했는데 안성으로 공장 이전하고 작년 연말에 회사

그만두는 조건으로 위로금 100만 원을 준다고 했을 때랑 실업급여기간 끝났을 때, 결정적으로

그렇게 두 차례 조합원이 줄면서 현재 25명이 남아있어요.

안성공장에서도 CCTV는 계속 있었나요?

조복남 : 회사에서는 CCTV를 설치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막상 가보니 조합원들이 주로

있는 포장부랑 생산부 그리고 휴게실이자 탈의실인 컨테이너에 CCTV가 있더라고요. 나중에 사

회적으로 이 문제가 알려지니까 올해 3월에 폐쇄했어요. 이번 대표는 자기는 전 대표 같은 일

은 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는데 하나도 다르지 않았어요.

정해선 : CCTV뿐만이 아니에요. 작년 12월 31일, 퇴근 30분 전에 회사에서 통근버스를 없앤

다고 했어요. 다들 일을 그만둘 줄 알았는데 생각대로 안 되니까 통근버스를 없앤다고 한 거

죠. 그래서 두 달 동안 조합원들이 버스를 렌트해서 다니면서 노동부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

하고 회사와 교섭을 해서 작년 2월, 4월 19일 부로 안성에서 서울 공장으로 이전한다는 합의

를 했어요. 그때부터 렌트 취소하고 임시로 회사에서 제공하는 차를 탔어요. 그런데 폐차 일보

직전의 봉고차 2대가 오는 거예요. 하루는 비가 엄청나게 많이 왔는데, 와이퍼 하나가 날아가

서 도로에 차 세우고 주워가지고 끈으로 엮어서 겨우 내려간 적도 있어요.

김선희 : 조합원 대부분이 5시 반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해서 집에 가 빨래하고

그러면 자정 넘어 자니까, 출·퇴근 시간 버스에서 눈 붙이는 게 다인데 봉고차는 앞 유리도

테이프로 붙여놓고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직원이 운전도 하다 보니 졸음운전도 하고. 우리는

고속도로에 목숨 내놓고 일했어요.

김선희 : 노동조합 만들고 투쟁하니까 전 대표가 “내 건물에 노동조합은 절대들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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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해서, 교섭에서 합의한 지금 대표가 본인도 어쩔 수 없다면서 약속을 어기고 있어요. 또,

단협에서 재직 중인 직원은 정년까지 고용을 보장한다고 되어있는데 작년 2월 4일 비정규직

계약으로 한 김OO 조합원을 5월 1일 부로 해고했어요. 이것도 명백한 단협 위반사항이죠.

조복남 : 지회에서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하고, 항의 농성하러 고용노동부 서울지방청에 자주

갔었는데, 우리가 생각할 때 노동부라고 하면 근로자 편일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근로자편이 아

닌 게 너무 화가 나고 서글펐어요.

지금까지 이 투쟁을 버틸 수 있었던 큰 힘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조복남 : 힘은 들지만, 조합원이 몇 명 없는데 제가 그만두면 다른 사람들도 얼마나 맥이 풀

리겠어요. 세상 저 혼자 살아가는 것도 아니고 더불어 사는 건데, 내가 그만두면 다른 동료들

이 더 힘들어하니까 그래서 지금도 싸우고 있어요.

김선희 : 엄마가 권리를 찾기 위해 싸우다 중간에 그만두면, 우리 애들도 노동자로 살아갈

텐데 애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지금 현실이 애들의 미래일 텐데 이런 끔찍한 현실을 똑같

이 물려주고 싶지 않아요.

정해선 : 초등학교 1학년 막내가 “엄마, 내가 엄마 일할 수 있는데 알아봐 줄게 그만해” 그

래요. 그런데 아무 결론 난 게 없는 상황에서 그럴 수 없죠. 또 지금 포기하면 대표가 원하는,

힘들면 그만둬버리는 그런 아줌마가 돼버리는 거잖아요. 아줌마들도 잘못된 현실을 바꿀 수 있

다는 걸 꼭 보여주고 싶어요.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1년 여, 지금까지 오면서 어찌 흔들리지 않았을까. 가족과 동료를 위해

버티고 있다고 말하는 레이테크코리아 지회 조합원들 모두 무수한 흔들림과 시련 속에서 누구

의 엄마, 아내가 아니라 노동조합의 한 주체로서 새로운 꽃잎을 피우고 있었다. 투쟁 승리하는

그날까지, 건투를 빈다!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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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완성차 생산 공장의

교대제 변화 후 삶과 건강의 변화

김형렬, 최민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1. 연구 배경 : 주간연속 2교대제, 정말 몸과 생활이 나아졌을까?

한국 완성차 생산 공장 노동자들은 노동귀족이라고 손가락질 받지만, 실상은 장시간

노동과 그 대가에 따른 임금을 받아가는 ‘생계형 장시간 노동자’다. 사업체 노동력 조사

에 따르면 자동차 및 트레일러 제조업은 전체 제조업 평균 근로시간을 훌쩍 뛰어넘는 장

시간 노동을 해 왔다.

본 연구 대상 사업장 역시 10시간씩 주야 맞교대로 근무하고, 주말에는 특근을 밥 먹

듯 하는 전형적인 장시간 노동 사업장이었다. 연구에 참여한 7명의 노동자 중 2013년 12

월 주·야 맞교대 시절, 2주 근무 중 4일 쉰 사람은 2명뿐이었다.

이러던 회사에서 올해 1월부터 주간연속 2교대를 시작하게 되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 10시간씩 하던 맞교대가 전반조 8시간(오전 7

시~오후 3시 40분), 후반조 9시간 20분(잔업 1시간 20분 포함, 오후 3시 40분~새벽 1시

50분)으로 노동시간이 줄었다.

주간연속 2교대가 전격 도입되고 3개월 후, 노동시간이 줄어든 만큼 노동강도가 증가

하지는 않을까? 임금이 줄어들지는 않았을까? 노동자들의 몸과 삶은 정말 나아졌을까?

이런 것들을 확인하기 위해 노동조합과 함께 본 연구를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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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객관적 지표를 활용한 연구 과정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 후 삶과 수면의 질이 좋아졌음은 이미 몇 개 회사에서 대규모

설문조사를 통해 확인한 바 있다. 그래서 본 연구에서는 소규모라 하더라도 교대제 변화

의 영향을 ‘객관적 지표’를 활용하여 확인해보기로 하였다. 이를 위해 매일 생활일지를

직접 적어보기로 했고, 24시간 측정하는 혈압계와 신체활동 측정기기를 활용하여 교대제

변화에 따른 차이를 비교해 보았다.

측정은 주야 맞교대와 주간연속 2교대 시기 각각 2주간 진행하였다. 먼저 주야맞교대

를 하던 2013년 12월, 주간 근무 한 주, 야간 근무 한 주 동안 혈압과 신체활동도를 측

정하고 생활일지를 작성했다. 그리고 주간연속 2교대를 3개월가량 겪은 뒤인 2014년 3

월, 전반조 한 주, 후반조 한 주 동안 다시 측정을 실시했다. 가장 규모가 큰 조립부서에

서 근무하는 7명의 노동자가 연구에 최종 참여하였다.

3. 주요 연구 결과

1) 다시 찾은 여유와 가족생활

주간연속 2교대로의 변화 이후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가장 증가하였고, 이를 가장 긍

정적인 변화로 꼽는 조합원이 많았다.

“저는 훨씬 좋아요. 저 뿐 아니라 사람들도 아무래도 일찍 끝나니까 술도 덜 먹는 것

같고요. 같이 축구하는데 사람들 표정이 밝아진 것 같아요.”

“4시 반에 집에 갈 때 어린이집 끝날 시간이니까 둘째 데리고 집으로 가고... 밥을 일

찍 먹고 저녁에 애들이랑 놀거나 공부 가르치거나 하는 시간이 늘었죠.”

하지만 새로 취미생활을 시작하는 등의 적극적 여가 활동은 아직 많지 않아, 새로운

노동자 여가 문화의 형성을 과제로 삼을 필요가 있어 보였다.

한편, 연구에 참여한 조합원들 대부분은 임금이 감소했지만, 이에 대한 불만은 상대적

으로 적었다.

“저는 매달 30만 원 정도 월급이 줄었는데, 이 정도면 바꿀만한 거 같아요. 몸이나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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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대조에 따른 주관적 노동강도 (12점; 약간 힘듦)

활이 훨씬 좋아요.”

하지만, 임금 감소가 3~4개월 이상 지속되자 슬슬 특근 등 장시간 노동으로 이를 만회

하려는 움직임이 보여 안정적인 임금체계 도입이 장시간 노동 문제 해결에 중요한 지점

임을 알 수 있었다.

2) 피로는 감소, 수면 질은 향상

주간연속 2교대 도입 이후 노동시간 감소에 따른 피로 감소, 체감하는 노동강도의 저

하는 뚜렷하게 나타났다. 후반조 근무는 이전 야간조에 비해 노동시간이 40분 줄어들었

고, 여전히 야간 노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노동시간 감소 효과가 적을 거라고 예상했는

데, 여러 조합원들은 그 40분 감소의 차이가 확연하다고 진술했다.

“야간 때보다 지금 후반조 근무는 실제로는 40분만 줄어들었거든요. 근데 부담감이 훨

씬 적고, 몸이 달라요. 다리 아프고 그런 게 훨씬 덜 하고요.”

이런 변화는 생활일지에 표시한 주관적 노동강도 점수에서도 나타났다. 6점(아주 편함)

에서 20점(최대로 힘듦)까지 본인이 느끼는 노동강도 점수를 표시하도록 했고, 주간조에

비해 전반조가, 야간조에 비해 후반조가 노동강도가 낮다고 응답해 우려했던 노동강도

증가는 발생하지 않았고 피로도 감소했음을 알 수 있었다.

또, 수면의 질은 전반적으로 향상되었다. 이런 결과는 두원정공이나 기아자동차 등 주

간연속 2교대 변화 이후 수면의 질을 조사한 다른 사업장 연구 결과와도 일치하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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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대조에 따른 평균 수면의 질 점수 (낮을수록 좋음)

다. 다만 전반조 근무 시작 시각이 이전 주간근무 때보다 한 시간 앞당겨지면서 아침 근

무 시간에 피로와 졸림 증상을 호소하여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할 것으로 보였다.

3) 더 활동적으로 변한 여가시간

주간연속 2교대 변화 후 신체활동량이 늘었다. 그런데 근무시간 중 활동량은 감소한

반면, 여가시간 활동량은 증가해서 총 신체활동량이 늘었다. 시간당 칼로리 소모량은 근

무 시간과 여가시간에 모두 증가했다.

주간연속 2교대 이후 근무 시간 중 시간당 칼로리 소모가 많아진 것은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 감소, 실질적인 노동강도 강화 등이 원인이 될 수 있어 이에 대한 심층적인 분

석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더 중요한 것은 여가시간의 시간당 활동량이 크게 증가한 것이다. 예전에는 주로 누워

서 TV를 보내며 휴식을 취했다면, 이제는 아이들과 놀아주거나, 가사 일을 하거나, 운동

이나 등산을 하는 등 더 활동적인 여가를 보내게 된 것이다.

“취미생활로 헬스장 다니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애들하고 놀고 공부 가르치고, 부인

이랑 마트 같이 다니는 정도였는데, 최근에 좀 멀리 이사하면서 차라리 집에 일찍 가버

리거든요. 그러면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여가 시 신체활동의 증가는 심혈관질환, 암 예방에 중요한 기여를 한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인 효과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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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대조에 따른 시간당 칼로리 소모량

4. 지속적인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숙제

주간연속 2교대제의 도입이 노동자의 삶과 건강에 매우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음을

확인했던 선행 연구들에 비교하여, 본 연구에서는 객관적 지표를 통해 신체활동의 증가,

수면의 질 향상, 피로도 감소 등의 건강의 긍정적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자유시

간의 증가, 적극적 여가활동의 증가, 가족과 보내는 시간의 증가 등 삶의 변화도 매우 긍

정적이었다.

그러나 변화의 한계도 여실히 볼 수 있었다. 여전히 후반조 근무가 새벽까지 이어져

야간 노동시간 감소 효과가 제한적이었다. 후반조 근무를 마치고 귀가하면 새벽 3시경

취침하는 조합원이 많았다. 반대로 전반조 아침 출근 시간은 너무 빨라서 전반조 근무

때 수면시간이 줄어드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건강 영향 중 수면의 양이나 질, 신체활동량은 상당히 개선되었으나 혈압 감소 효과는

기대했던 것만큼 뚜렷하지 않았다. 앞으로 대상자 수를 늘려 지속적인 변화를 확인할 필

요가 있다.

또한, 지속 가능한 노동시간 단축을 위하여, 임금감소를 벌충하기 위해 또다시 잔업과

특근으로 회귀하는 것을 막기 위해 현 임금체계의 개편이 필요하다. 본 연구 사업장인

대기업도 그럴진대, 중소기업이나 하청업체의 사정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전반적인 노

동조건 개선과 노동시간 단축을 함께 하는 활동이 필요하다.

사업장 차원의 과제로는 조합원들이 새로 생긴 여가시간을 잘 보내기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를 지원하는 활동이 필요하다. 노동시간 단축과 함께 새로운 노동자 문화를

형성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하겠다.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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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1] 여름휴가, 잘 다녀오셨습니까?

대담 : 김영선 국학중앙연구원 연구원, 송홍석 노동시간센터(준)

정리 : 선전위원회

바캉스의 계절, 대기업들의 집단 휴가철인 8월이다. <잃어버린 10일, 경영 담

론으로 본 한국의 휴가정치>의 저자 김영선 교수와 한국의 휴가 양태와 그 속에

숨겨진 휴가 역사와 정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화려한 휴가 ?

송홍석(이하 송)) 먼저, ‘휴가’ 하면 떠오르는 생각은 무엇인가?

김영선(이하 김)) 누군가에게는 ‘쉰다’는 게 영원히 불가능한 꿈일지도 모르겠다. 제대로

쉰다는 게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송) 최근 대기업들이 2주간의 집중 휴가제다, 연중 자율휴가제다, 휴테크다 뭐다 시행하

는 걸 보면 많은 노동자들이 점점 더 휴가다운 휴가를 누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매

체에서 보여주는 휴가의 모습이 노동자들 다수의 휴가 모습은 아닌 것 같다. 어떻게 보

는가?

김) 그렇다. 이맘때쯤이면 안식, 배낭, 아이디어 휴가 등 다양한 휴가 관련 기사들이 쏟아

져 나오는데, 통칭하면 리프레쉬 휴가라고 한다. 겉으로 보면 리프레쉬 휴가가 화려하고,

흔해 보인다. 언론에서는 이런 형태의 휴가를 유독 많이 부각한다. 대신 보편적으로 보장

된 법정휴가의 문제는 잘 건드리지 않는다. 재충전, 자기 성찰, 싱크 위크 등 재미있어

보이는 내용이 많지만, 거기에는 사실 생산성, 아이디어, 경쟁력, 자기계발 등 기업의 경

쟁력을 전제하는 언어들이 깔려있다.

역사적으로 국가와 기업들은 휴가를 언급하지 않고 무조건 통제하고 막아왔다. 그런데

90년대 중반 들어 기업들이 휴가를 ‘관리’하기 시작했다. 휴가란 노동으로부터 면제된 자

유시간이고 노동자가 알아서 쓰면 되는 시간인데, 그 시간마저 자기계발, 생산성, 아이디

어를 위한 업무 활동의 연장선상으로 만들어 버렸다. 리프레쉬 휴가를 다녀오면 간단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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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도 보고서를 써야 하는데, 여기에는 마케팅, 아이템, 혁신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내

야 한다. 이런 것들이 리프레쉬 휴가 이면에 있는 진실이다.

송) 특별휴가니까 누구나 갈 것 같지는 않다.

김) 특별형태 휴가가 누구에게 부과되는지 봐야 한다. 특별 휴가는 직장에서 특별히 실적

이 높은 핵심 인재만을 대상으로 한다. 이런 휴가를 받은 사람들은 회사로부터 인정을

받고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는 징표이고, 반대로 이런 휴가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회

사로부터 배제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런 특별 형태의 휴가나 휴가 담론은 기업

들이 전방위적으로 끌어가고 있다.

휴가, 안 가는 건가! 못 가는 건가!

송) 특별 휴가는 차치하고 보편적 휴가인 연차 휴가마저 맘대로 갈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유럽 국가들과 비교해서 법정 휴가 일수는 비슷하다고 하더라도 실제 사용하는 휴가 일

수는 많은 차이를 보일 것 같다(1년 8할 이상 출근 시 15일의 유급연차휴가가 발생하고

최대 25일까지 유급휴가를 법적으로 보장받고 있다). 그런데 자본가들은 이렇게 된 원인

을 근로자들이 임금 보전을 위해 휴가를 모두 쓰지 않는다며 단순히 노동자 선택의 문제

로 돌리고 있다.

김) 자세히 확인해봐야겠지만 실 휴가 사용률(소진율)은 50%를 맴돈다. OECD 국가 평균

이 70~80%인 것에 비해 상당히 떨어진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한국은 4~5일의 여름휴가가

고작인 데 많은 국가는 2주 연속 휴가를 강력하게 보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단속적인 짧은 휴가는 노동자의 시간 권리가 완전히 박탈되었다는 징표다. 휴가를 사용하

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 소득 보전이

이야기되는데 사실은 업무과다, 여유

없는 인력의 부족이라고 본다. 이제는

돈을 적게 받아도 되니까 가족들과 쉬

고 싶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물론, 중소기업 노동자들이나, 임금과

시간이 직접 연계되는 제조업 사업장에

서는 소득 보존 경향이 높다. 그러나

직장에서 ‘소득보전’보다 훨씬 자주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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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되는 언어는 ‘상사/동료의 눈치’다. 업무량과 눈치는 하나다. “이 바쁜 와중에 출산 휴가

3개월을 다 써? 아줌마 다 되셨네!!”라는 팀장의 발언은 휴가권리를 철저히 봉쇄할뿐더러

‘아줌마’라는 낙인까지 찍는다.

‘상사/동료의 눈치’는 ‘팀제’라는 경쟁적 노동패턴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한 사람에게

3~6개월짜리, 1년짜리 장단기 과제들을 여러 팀에 걸쳐 배치하는 경쟁적 상황에서는 당

연히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휴가요? 남들 이야기입니다~

송) 단 얼마간의 연차도 쓰기 힘든, 일주일 휴가도 배부른 이야기라 할 노동자들도 있다.

경제의 양극화만큼이나 휴가의 양극화도 심화하는 것 같다.

김) 기업의 규모 차이는 휴가 기간과 휴가비의 차이로 연결된다. 길게 휴가를 갈 수 있다

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다. 기간을 보장받는 만큼 휴가비의 여유가 있다는 것이니까. 대기

업 노동자들은 여름휴가 전후로 연차를 더 붙여서 일주일을 쉴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불

가능한 게 현실이다.

더 심각한 양극화는 고용 조건에서 비롯한다. 연차 휴가를 쓴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은 정규직이다. 실제 비정규직이 쓸 수 있는 유급의 연차 휴가는 없다. 1년 미만의 계약

기간을 가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한 작업장에서 10년을 일해도 연차 휴가가 발생하지

않는다. 임금, 복지, 작업복, 신분증 차이만큼이나 휴가의 차이도 크다.

그래서 휴가 부여 기준을 낮춰야 한다. 프랑스는 1936년부터 6개월 근무 시 연차휴가

1주일을 부여했다. 자유시간, 여가, 휴가를 시민의 권리로 여기는 의식이 깔려 있기 때문

이다. 일본도 1993년 연차 휴가 부여 기준을 1년에서 6개월로 줄였다. 비정규직이 절반을

넘어선 한국 사회에서 1년을 근무해야만 휴가가 발생하는 기준은 자본 편의적이다. 노동

자 중심적인 휴가 부여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송) 지금은 누구나 입에 오르내리는 언어가 되었지만, 한국에서 ‘휴가의 역사’는 그리 오

래되지 않았다. 임금노동자인 나를 고용하고 있는 고용주가 필요한 만큼만 부여하고, 그

의미를 각인시켜 왔던 것 같다.

김) 주말 노동이 평일 노동과 그렇게 다르지 않았던 80년대 말까지 주말이란 관념은 그

리 크지 않았다. 현재와 같은 주말이란 인식은 90년대 이후의 것이다. 마찬가지로 80년대

말까지 휴가는 그야말로 사치였다. 휴가를 도덕의 언어로 강력하게 통제한 것이다. 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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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휴가가 하나의 권리로 등장하는 듯했지만 당시에도 ‘너희가 지금 먹고 놀자는 얘기

냐’, ‘베짱이가 되려나 보다’, ‘과소비’, ‘낭비’ 등의 도덕 프레임으로 휴가권리를 억제했다.

노동자들의 휴가 되찾기

송) 상품 소비적 휴가 문화도 문제인 것 같다. 직장 생활에 지친 이들에겐 고민할 필요

없는 손쉬운 방법이긴 한데, 뭔가 아쉽다. 다른 건강한 휴식, 휴가는 없을까?

김) 상품의존주의 경향이 높은 것은 소비자본주의 사회의 보편적인 특징이다. 게다가 예

측 불가능한 짧은 휴가를 보내는 한국 사회에서는 상품 소비적인 경향이 강하다. 휴가가

길면 여러 가지 선택지가 가능하지만 휴가가 짧으니 선택의 폭이 좁다. 짧은 시간에 좋

은 곳에 가서 좋은 거 먹고 좋은 거 보는 상품 집약적인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휴가가 짧은 시간에 내가 아버지다움, 남편다움이라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

적지 않은 기회라는 점이다. 가족으로부터 인정도 받고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 이런 기

회인 휴가를 망치고 싶지 않으면 위험도가 낮고 만족도가 높은 상품들을 투입해야 한다.

문제는 여기에 대체재가 별로 없다는 거다. 서구 사회에서는 상품 소비적인 휴가 패턴

이 있는가 하면 시민사회, 노동진영에서도 ‘다른’ 휴가 방식을 만들어 제공하고 있다. 마

을 공동체 프로그램과 가족휴가를 연계하거나 생태 운동, 먹거리 운동 등과 휴가를 연계

하는 프로그램을 한국에서는 아직 찾기 어렵다. 휴가를 어떻게 쓰느냐는 어떻게 건강한

시민을 만들고 주체적인 삶을 기획할 것이냐는 문제와 맞닿아 있다.

송) 책 <잃어버린 10일>에서 노동자의 휴가 권리 찾기로 ‘쉼 없는 2주 연속 휴가의 실현’

을 주장했는데, 그 의미는 무엇이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김) 한국에서 2주 연속 휴가를 쓰려면 머리에 총 맞은 사람 취급을 받는다. 한국사회 휴

가의 특징은 ‘비예측적이고 불연속적인 최소’ 휴가다. 기업의 생산성, 업무 흐름에 방해

받지 않은 최소한의 휴가만이 주어진다. 2주 연속 휴가는 휴가의 본래 의미를 강조한

ILO의 권고 사항이다. 그래야 건강, 가족, 자유, 민주주의를 챙길 수 있고 이것은 시민다

움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두려움 없이 쉼 없는 2주 연속 휴가’를 위해서는 시간권리를 합

리적 선택으로 유도할 수 있는 장치들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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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2] 3인 3색 휴가이야기

(1) 휴가, 내가 가고 싶을 때 가고 싶다

-하청노동자의 작지만 큰 바람

김재광 선전위원

오랜만에 허리가 아플 정도로 자고 일어났다. 하계휴가가 시작됐다. 같은 뜻이기

는 한데 내게는 어쩐지 ‘여름휴가’라기보다는 ‘하계휴가’가 입에 착 달라붙는다. 여름

휴가라고 하면 여름을 맞이해 쉬기도 하고 여름을 즐기는 느낌이라면, 하계휴가는

쉬고 즐긴다기보다는 불가피한 생산중지의 느낌이다. 원청 공장이 쉬기 때문에 그

생산계획에 맞춰 내가 다니는 하청공장이 생산을 중지할 수밖에 없다. 원청 공장의

생산과 연동된 적기생산을 하는 우리 공장은 ‘짤 없이’ 원청이 쉬는 7월 말 8월 초에

쉬는 것이다. 올해는 8월 첫째 주다. 보통 아이들 학원도 이때쯤에 맞추어서 쉬는데,

올해는 어찌 된 일인지 한주 먼저 쉬게 되어 오랜만에 함께 놀러 가서 점수 따보려

는 나의 셈도 어긋났다. 대한민국 전체가 7월 말 8월 초에 대부분 휴가를 가는 이유

는 한창 더울 때이기도 하지만, 학원과 대기업이 쉬기 때문이 아닐까? 학원이 쉬니

까 학부모가 쉬어야 했던 것인지, 학부모가 쉬니까 학원이 쉬어야 했던 것인지 뭐가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원청 공장은 여력이 있는 건지, 노동조합 덕분인지 하계휴가가 별도인 모양인데,

하청인 우리 공장은 1년 연차에서 의무적으로 하계휴가 일수를 제외한다. 이런 거

생각하면 입맛이 쓰지만 이조차도 못 찾아 먹는 주위 사람들은 생각하면 괜스레 미

안한 마음도 든다. 당장 내 아내는 휴가가 따로 없다. 작은 마트에 나가는 아내는

여름휴가라고 따로 내보지도 못하고 있다. 고등학교 다니는 아들 녀석은 방학이어도

학원가서 없고, 아내는 일 나가고 휑한 집 방안에서 연신 TV 리모컨만 돌려대니 은

근히 부아가 난다. 원청이 쉬니 어쩔 수 없이 우리 공장도 쉰다고 치면, 이때 말고

내가 가족들과 일정 맞추고, 내 사정에 따라 휴가를 쓰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

휴가라기보다는 강제 휴업이나 다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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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아들 녀석과 휴가가 안 맞는 것이 다행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머리가 굵어져

나와 같이 있으려고 하지도 않고, 나도 휴가철 피서지에서 그야말로 물 반 사람 반

에 치여 지치는 것도 지겹기도 하다. 평소에는 유명한 피서지에 가지 말자고 작정하

지만 정작 휴가 때가 되면 계획을 규모 있게 짤 시간도 경비도 없어 그냥 하던 대

로 하게 된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공장 동료들도 오십 보 백 보다. 뭐 차

이 나는 거라면 캠핑용품인데, 이거 가격이 천차만별이고, 비싼 것은 입이 딱 벌어

지는 수준이다. 장비 가격에 밀리면 기도 못 펴는지라 가뭄에 콩 나듯 가는 캠핑도

심드렁하다. 이거 뭐 놀아본 놈이 놀아본다고 휴가라고 달랑 여름 한철 반짝이니 사

실 어떻게 쉬고 놀아야 할지 잘 모르겠다. 휴가가 안 맞아 이렇게 혼자 집에 있는

것이 편한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늦은 아침을 먹으려 한가롭게 집안을 살피니 평소에 보이지 않았던 화장실 검은

곰팡이가 보인다. 노는 김에 이놈을 손봐볼까? 어차피 아이와 아내는 늦은 저녁에

올 것이니 이놈으로 하루 보내야겠다. 마음이 왔다 갔다 해도 아내와 아이와 한 이

틀 정도는 콧바람을 쐬고 싶은데 올해는 이것도 어려우니 아쉽기는 하다. 늦은 밤에

귀가할 아내는 곰팡이 없는 깨끗한 화장실을 보고 칭찬은 해주려나? 아니면 너무 피

곤해서 깨끗해진 것 눈치도 못 채려나?

* 이 글은 남성 하청 노동자의 여름휴가를 가상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일터

(2) 카페주인의 여름은 월급쟁이보다 핫(hot)하다

정하나 선전위원

서울역 뒤 즐비한 빌딩숲을 지나 재개발이 아직 들어가지 않은 구역으로 접어들면

은미 씨(가명.35세)가 운영하는 예쁜 카페가 나온다. 여의도의 외국계 회사에 다니다

가 부모님이 하시던 그릇가게 자리에 카페를 차린 지도 어느덧 6년째. 그 전엔 월급

쟁이 생활로 6년을 꼭 채웠다. 대학 졸업 후 사회생활 중 절반은 누가 시켜서 일하

고 따박따박 월급 받는 생활을, 나머지 반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벌리는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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큼 갖는 삶을 지내왔다.

카페를 하는 이들에게 여름은 최대의 성수기라고 하지만 현실은

카페를 하는 이들에게 여름은 성수기다. 추워서 사람들이 잘 돌아다니지 않는 겨

울은 소비가 위축된다. 따뜻한 봄이 오고 슬슬 밖으로 거동할 만한 날씨가 되면 거

리에 돈이 풀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날씨가 무더운 여름으로 다가 갈수록 시원쌉싸

름한 아이스커피, 제철을 맞은 과일주스, 그리고 팥빙수까지. 카페 메뉴들은 호황을

맞는다.

은미 씨 가게가 위치한 서울역 근처는 최근 몇 년간 재개발이 되어 새로운 빌딩

2~3개가 들어섰다. 12시 땡! 점심시간이 시작되면 직장인들이 쏟아져 나온다. 요즘

처럼 더운 날씨면 식사 후 디저트로 시원한 음료 한잔씩 들고 사무실 올라가는 게

코스가 되었다. 지역 전체가 대공장 휴가일에 맞춰 한꺼번에 쉬는 공단지구라면 모

를까, 노동인구 대부분이 사무직인 서울 중심부에서 여름휴가철은 카페 주인장에게

한몫 단단히 챙겨야 할 성수기다. 하지만 자영업자 은미 씨의 지난 6년은 성수기라

는 말이 무색했다. 겨우 근근이 버텨온 수준이다. 가게를 내면 3년이 고비라던데 이

를 넘겼으니 이 정도도 수지맞았다고 해야 하나?

휴가? 그런 거 없다

TV에서 말하는 경기침체, 구조조정, 물가상승은 은미 씨 카페의 매출과 바로 연결

되었다. 경제상황에 따라 주 고객인 월급쟁이의 방문 숫자가 달라지고, 그들의 월급

이 인상되는지 동결되는지는 가게의 존망과 직접 연결되었다. 그 와중 주변엔 10개

가 넘는 커피숍이 생겨나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회사에서 일찍 밀려난 사람들

이 퇴직금 털어 가게를 열고 있다는 걸, 그리고 그들만의 리그에서 많은 이가 2~3년

안에 도태된다는 걸 이 골목에서 은미 씨는 직접 보고 겪었다. 돈 버는 재미에 무더

위도 잊고 신명나게 일한다? 아니다. 이때라도 꼬박꼬박 가게 문을 열고 음료를 팔

아야 한 해를 버틸 수 있다.

그래서 은미 씨에게 ‘여름’ 휴가는 없다. 그나마 ‘휴가’와 같은 시간은 1년에 두 번

카페 한 켠에서 판매하고 있는 인테리어 소품 및 잡화를 구입하러 떠나는 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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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미 씨가 하루 종일 일본에서 발품을 팔면서 직접 공수한 아이템들

차원의 일본행이 유일하다.

초봄과 늦가을 손님들이 많

아지는 시기를 피하고, 평

일이 아닌 주말을 이용해

다녀온다. 이런 일본행은

카페들의 과다 경쟁 속에서

활로를 모색하다 작년에 시

작했다. 구역 내 10개가 넘

는 카페 간의 경쟁에서 살

아남기 위해, 카페와 공방

·잡화 판매점을 결합한 이

색공간을 생각해 낸 것이다.

처음엔 1년에 두 번이나 가게를 비울 때 나름대로 결단이 필요했다. 카페를 여닫

는 시간에 대해 일반적인 기대치가 있는데 임시휴업이 잦으면 손님들이 떨어져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인건비 부담을 무릅쓰고 잠깐 쓸 알바를 구할 수도 없

었다. 그래서 은미 씨는 힘들게 낸 시간인 만큼 한 번 일본에 가면 카페를 주로 찾

는 단골 여성손님들이 만족할 물건을 찾기 위해 하루 중 자는 시간 빼고는 발이 부

르트도록 돌아다닌다.

물론 일본에서 틈틈이 특색 있는 카페나 가게에 들러 마음껏 구경도 하고, 맛집도

찾아다니지만, 이것도 여유를 누리기 위해서라기보단 메뉴를 개발하고 상품 보는 안

목을 높이려는 목적이 강하다. 그래도 은미 씨는 월급쟁이 시절 일이 많고, 상사 눈

치가 보여서 휴가 쓰는 게 자유롭지 못하던 때랑 비교해보면 지금은 외지에 나와 콧

바람 쐬니 숨통도 트이고, 스스로 계획한 일이니 재미가 있단다. 하지만 이것도 가

게가 재개발에 들어가면 끝이다.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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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휴가는 꿈도 못 꾸는 환상의 나라?

재현 선전위원

저는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국내 최대 종합 테마파크 E랜드에 있는 식당에서 조

리장으로 일하고 있는 박원우입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우연한 기회에 지인을 통해

서울 장충동에 있는 00 호텔에서 3년 정도 일을 했습니다. 그때 경력으로 1999년 E

랜드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처음 입사했을 때에는 비정규직이었는데 몇 년 후 정

규직으로 전환되고 줄곧 주방장으로 일했어요. 그런데 2011년 조리장으로 직책이 바

뀌었지요. 무노조 경영방침을 고수하는 S 회사에서 운영하고 있는, E 랜드에 노동조

합을 만들었다는 게 이유입니다.

휴가는커녕 정시 퇴근도 힘들어

E 랜드 식당의 하루는 이렇습니다. 아침 9시에 출근하면 식자재 검수작업을 하고,

직원 미팅을 해요. 그리고 나면 오픈준비를 위해 음식을 하고, 그다음부터는 퇴근할

때까지 계속 음식 만들고 팔고를 반복해요. 퇴근은 원래 6시인데 정시 퇴근하는 사

람은 아무도 없어요, 기본 10시 넘어야 퇴근하는 것이 일상이죠. 하지만 저는 6시에

퇴근해요. 회사가 인력충원을 안 해서 매번 늦게까지 남아서 일해야 하는 현실이 아

무리 생각해도 불합리하기 때문이죠. 지금은 저 혼자지만, 하루빨리 모두가 정시 퇴

근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도록 제가 더 뛰어야겠지요.

여기는 테마파크라는 특성상 공휴일, 주말엔 일이 더 많고, 주로 평일이 휴일이에

요. 그러다 보니 주말을 가족과 함께 보내는 건 꿈같은 일이죠. 더 안타까운 건 이

마저도 제대로 못 쉬고 있다는 겁니다. 현장엔 늘 사람이 부족하니 회사는 비정규직

직원은 주 2회 휴무 중 하루는 특근하고 남은 하루만 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요.

휴일이라도 마음 편히 쉬고 싶은데, 상사가 짜는 근무표에 이의제기하기란 쉽지 않

죠. 무엇보다 동료한테 미안해서 더 못 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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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금속노조 삼성지회 박원우 지회장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재구성한 글입

니다. 현재 소수의 조합원으로 힘도 많이 부족하고 열악한 상황이지만, 동료들과

함께 인간다운 삶을 꿈꾸며 애쓰고 있는 박원우 지회장을 비롯하여 삼성지회 동지

들의 건투를 기원합니다.

보통 젊은 사람들이 비정규직으로

일을 많이 하고 있는데 S기업이 운

영하는 회사라서 무노조 경영에 대

해 직원 의식화 교육을 계속 받습니

다. 그러다 보니 노동조합은 나쁘다

는 회사의 말을 당연하게 받아들이

고, 현장에서 벌어지는 이런 불합리

한 일을 바꾸려고 선뜻 나서지 못하

게 돼요.

여름휴가는 다른 세상 이야기...

우린 꿈도 못 꿔

저는 보통 휴일에 가족들이랑 근

교에 나가서 바람도 쐬고, 등산도 다

니고 그랬는데, 노동조합 활동하면서부터는 한 달에 적게는 2~3차례 많게는 7~8차례

재판이 있어서 거기 다녀오면 휴일도 끝이에요. 그러다 보니 제 필요로 휴일을 사용

하기보다, 재판에 참석하려고 휴일을 쓰게 되었어요.

이쯤 되면 예상하시겠지만, 여름휴가는 아예 없어요. 만약 휴가를 가려면 E랜드

특성상 1년 내내 바쁘지만, 그중 최고로 바쁜 시기인 5~8월은 피해서 개인 연차를

쓰는 게 전부예요. 회사에서 말로는 작년부터 여름휴가를 가라고 권고하기는 하는데,

사무직이나 가능하지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꿈도 못 꿔요.

이렇다 보니 남들은 여름휴가 때 교통체증도 심하고 사람도 많고, 바가지요금으로

휴가가 더 힘들다 앓는 소리 하는데, 단 한 번이라도 들로 바다로 산으로 남들 가는

여름휴가 한번 가는 게 희망 사항이에요. 조금 더 욕심내자면 더 많은 조합원과 가

족들이 함께 아무 걱정 안 하고, 마음 편히 힐링할 수 있는 그런 곳에서 휴가를 마

음껏 즐기고 싶네요.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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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게 일할 권리,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진우 운영집행위원

지난 3월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한 활동가에게서 다급하게 연락이 왔다. 사측에서 갑자기

‘보건관리대행’이라는 것을 하겠다며, 노동자들에게 정보공개 동의서에 서명을 받으려 안달이라

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건강과는 담쌓고 지내던 바지사장들이 보건관리를 하겠다고 나서니, 황

당하기도 하고 뭔가 꼼수가 숨어 있을 것 같아 연락을 취해 온 것이다.

삼성전자서비스 AS기사 노동자들은 삼성 역사상 처음으로 대규모의 노동조합을 만들고

2013년 7월 민주노총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를 출범시켰다. 이들은 삼성의 직접 지휘

감독을 받는 한편, 노동조건, 임금까지 삼성의 관리를 받았다. 또한, 근로기준법에 위배되는

건당 수수료 임금체계로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며 비인간적인 삶을 살아왔다. 이를 개

선해달라는 노동자들의 요구에 협력업체 사장들은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삼성 측에서는 하청

업체 소관이라는 이유로 모두 책임을 회피했다. 부조리한 현실을 딛고 인간다운 삶을 살고자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고 투쟁해왔다.

이러한 투쟁 과정에서 삼성전자서비스의 문제점들이 언론에 오르내리게 되었고, 사측은 산

업안전보건법에 규정된 보건관리대행을 구색 맞추기 차원에서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

자서비스에는 소비자들이 센터에 직접 방문하여 만나게 되는 내근직 AS기사 노동자들뿐만 아

니라, 에어컨 등의 대형가전을 수리하러 다니는 외근직도 포함된다. 따라서 센터에 따라 차이

는 있겠지만, 보통은 보건관리대행을 반드시 해야만 하는 50인 이상 사업장이 대부분이다. 삼

성이라는 국내 굴지의 기업에서 지난 20여 년간 산업안전보건법 따위는 무시하다가 이제야 사

업주의 의무를 시작한 것이다.

마침 필자가 일하는 기관에서도 지난 3월 말부터 삼성서비스센터 한 지점의 보건관리대행을

맡게 되었다. 오후 3시경 방문했는데, 외근직 AS기사 노동자들은 모두 외근 중이라 상담이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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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했고, 내근직 노동자들과의 상담도 여의치 않았다. 센터 관리자는 삼성 측의 지시로 보건

관리대행을 시작하긴 했지만, 어떤 제도인지, 시행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본인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대행팀을 맞았다. 센터 관리자는 내근직과 외근직 둘이었

으나, 생소한 일이라 업무 맡는 것을 서로 꺼리는 것처럼 보였다. 결국, 외근자들은 모두 외근

중이라는 이유로 내근직 관리자가 보건관리대행 업무를 맡기로 결정되었다. 그런데, 우리를 창

고방으로 안내하던 관리자는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내근 AS기사 노동자들이 너무 바

빠서 상담을 올 수가 없다는 것이다. 쉬는 시간이 언제인지 묻자, 그런 건 없다는 대답뿐이

었다. 나는 상담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으니, 한 사람 당 3분이라도 시간을 내달라 요청

했다.

결국, 대행팀이 도착한 지 30분이 지나서야 AS 기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첫 방문이라 기존

의 검진자료 등은 제공받을 수 없었고, 과거력, 가족력, 현 상태에 대한 간단한 문진과 혈압,

맥박만 체크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이상한 공통점이 발견되었다. 특별한 질환도 없는

20~30대의 젊은 노동자들 다수의 맥박이 100회 전후로 높은 편이었던 것이다. 어떤 노동자의

경우 맥박이 너무 높아 추가 문진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노동환경에 대해 더 질문하려고 붙잡

자, 계속 시계를 쳐다보았다. 너무 바빠서 당장 나가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 뒤에 상담한 노동

자들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었다. 20~30대의 젊은 노동자들의 맥박이 높은 원인은 쉴 틈 없

는 노동강도 때문으로 판단되었다. 조합원 중 다수는 관리자의 감시에 비교적 자유로운 외근

직 노동자들이고, 내근직은 아직 많지 않은 것도 그 이유였을 것으로 보인다. 짧은 상담 시간

이 끝나고 관리자에게 이 같은 사실에 관해 얘기하긴 했지만 무슨 소용인가 싶다.

사측이 형식적으로나마 보건관리대행을 시작한 것은 분명 노동조합의 힘 때문일 것이다.

지난 3월 방문 이후 노동조합은 큰 변화가 있었다. 염호석 분회장이 자결하고, 800여 명의 조

합원이 45일간 삼성 본사 앞 노숙농성투쟁을 벌였다. 6월 28일에는 76년 무노조 삼성에서 민

주노조의 첫 단체협약이 만들어졌다. 조합원이든, 비조합원이든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 사이

에서는 ‘인간다운 삶’을 살겠다는 당연한 요구가 더욱 거세졌을 것이다. 노동자의 건강을 지키

기 위한 보건관리제도가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힘이 중요하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의 건강권을 쟁취하기 위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다가올 8월 방문에는 센터의 분

위기가 달라졌길 기대해 본다.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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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중지권 기획]

악천후에 편지 배달, 미담이 아니다

중대재해 예방과 작업중지권 실현을 위한 ‘당장멈춰’ 팀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또는 중대재해가 발생하였을 때’

작업을 중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권리는 법조문에 존재하는 규

정일 뿐 실제 노동자가 행사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닌 것이 현실이다.

지난 기사에서는 ‘모두의 안전을 위해 작업을 중지할 권리’와 관련한 내용을 항공기 조종사 사

례를 통해 살펴봤다. 이번 호에서는 ‘공공의 복리’라는 명목으로 작업중지권을 억압당하는 사례를

살펴보려고 한다.

우편물과 택배를 배달하는 집배원노동자들의 현실은 우리 상상 이상으로 열악하다. 업무량에 비

해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까닭에 연간 노동시간이 3,000시간을 넘고, 심한 경우 주당 노동시

간이 86시간에 이르는 살인적인 노동조건이다. 게다가 시간에 맞춰 배달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

에 악천후나 사고 등 작업이 힘든 때에도 참고 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악천후

속에서 우편물을 배달하다 돌아가신 집배원의 사례는 미담으로 포장되지만, 이는 미담이 아니라

권리를 짓밟힌 노동자의 비극적인 이야기다.

본 기사에서는 집배 현장의 사례를 통해 작업중지권이 억압받는 현실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정

노조 시흥지부 최승묵 지부장이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배달 업무를 하면서 ‘작업을 더는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느껴지는 때는 어떤 경우가 있나?

가장 대표적으로 폭설·폭우가 내릴 때가 위험한 순간이다. 그런데 이건 예측이 되는 상황이다.

이렇게 드러나는 위험보다 더 큰 위험은 다른 곳에 있다.

집배업무지침에서 보면 통상우편물은 D+4 배송(4 일 이내 배송), 등기우편물이나 택배는 D+2

배송(2 일 이내 배송)이 원칙인데, 이로 인한 업무 수행 중압감이 상당하다. 자연재해가 발생하거

나 기상 문제가 있더라도 이런 업무지침 원칙이 바뀌지 않는다. 따라서 이런 중압감 때문에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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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집배원 장시간 중노동 없애기 운동본부

한 상황인데도 업무를 멈추지 못하

거나 업무를 빠르게 처리해야 한다

는 부담으로 판단력이 흐려지는,

그런 순간이 가장 위험하다.

재해업무지침이 있고, 이에 따르

면 ‘선조치 후보고’ 체계로 개인이

나 현장 책임자(팀장이나 집배실장)

가 일단 작업을 중지하고, 총괄국

장에게 나중에 보고하게 되어 있

다. 개개인이 스스로 판단해서 위

험한 순간이면 작업을 멈추라는 것

이다. 그런데도 집배업무지침으로

인한 중압감으로 배달을 계속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구조 자체가 너무 위험하다.

재해업무지침에는 개인이 판단해서 작업을 중지할 수는 있게 되어 있단 말인가?

그렇다. 개별 집배원이 요구해서 중지할 수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중지권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회사 측에서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기도 하지만, 매일같이 감당할 수

없는 배달물량이 쏟아지기 때문에 중지권은 먼 나라 얘기다. 만약 오늘 폭우나 폭설이 내려서 배

달을 중지하면, 결국 내일 오늘 물량과 내일 물량을 같이 배달해야 하는 꼴이기 때문에...

실제로 악천후 등 작업하기 힘든 상황에서 작업이 멈춰지는 경우가 있긴 한가? 얼마나

자주 있나?

1~2년 전 굉장히 심한 태풍이 불었을 때 작업 중지를 했다. 태풍 경보가 발령 나는 경우 종종

중앙에서 작업 중지 명령이 내려온다. 각 지부에서도 배달 못할 정도로 폭우가 내리면 작업을 중

지한다. 혹은 밤사이 눈이 굉장히 많이 내린 상황이면, 오토바이 대신 차량이 가거나 배달을 중지

하는 조처를 한다. 내가 속한 지부 같은 경우는 최대한 신경을 써서 차량이 가든지, 배달을 못 하

게끔 한다. 그러나 이것도 지부마다 차이가 다소 있는 것 같다. 다른 지부는 아닌 경우가 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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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집배원 장시간 중노동 없애기 운동본부

집배원이 직접 작업을 멈추

는 것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나?

개인이 시도했을 때 지부에서

못하게 하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총괄국에서 무관심해서 배달이

어려운 환경인데도 개별적으로

배달하러 나가는 경우가 있다. 무

관심해서 통제 자체를 안 하면서

집배원보고 개별적으로 판단하라

고 하면, 업무량 압박 때문에 한

두 사람이 나가기 시작하면 다들

나가게 된다.

근본적인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며, 해결책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

집배 현장의 경우 ‘작업중지권’은 책임자가 필요할 때 발동을 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상황을

예민하게 살피다가 위험한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고 하면 서슴없이 작업을 중지시켜야 한다.

집배원 업무는 어디 한 작업장에 모여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기 구역을 광범위하게 맡

아서 책임지는 형식이다. 배달 물량 역시 각자 맡고 있다. 그래서 위험 상황이 예상되거나 닥치더

라도 작업을 멈추는 등 적절한 대처를 하기가 힘들다. 각자 자기 물량 배달하고 자기가 책임지는

상황이기 때문에 업무 부담이 크고,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서 개인이 알아서 판단해야 하기 때문

이다. 그래서 노동조합 지부장 혹은 총괄국장 등 책임 있는 사람이 작업 중지권을 적절하게 발동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게 할 수 있기 위해서는 과도한 물량과 부족한 인력이라는 문제가

우선 해결이 되어야 하겠다.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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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센터(준)은 노동시간 문제에 대해 꾸준히 고민해온 진보적 학자 세분을 모시고 “한

국 장시간 노동의 원인과 해법 – 세 가지 이야기”라는 연속 강연회를 진행하고 있다. “노동시

간과 젠더 : 일과 일상생활의 불균형/성별 불평등은 어떻게 지속되는가?”라 주제로 지난 7월

25일에 있었던 신경아 교수의 강연 내용을 소개한다.

[노동시간센터(준) 기획]

노동시간과 젠더 : 일과 일상생활의 불균형 및

성별 불평등은 어떻게 지속되는가?한국 장시간 노동의 원인과 해법 - 노동시간센터(준) 강연회 (1)

김경근 노동시간센터(준)

한국사회 장시간 노동, 왜 중요한가

신 교수는 장시간 노동이 왜 중요한 문제인지에

대한 설명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첫째, 성별 불평

등을 지속시킨다. 가사와 육아로 인해 남성들만큼

장시간 노동을 할 수 없는 여성들은 어쩔 수 없이

비정규직 일자리와 낮은 임금을 받아들여야만 한

다. 둘째, 일-삶 불균형을 지속시킨다. 남성과 여성

모두 일 때문에 자신의 삶을 돌볼 수 없다. 셋째.

돌봄의 위기를 불러온다. 2011년 한국에서, 부모의

육아 없이 스스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아이가 30%

에 달한다. 부모의 장시간 노동으로 방치되는 아이

들은 안전과 교육에서 취약해진다.

정부 역시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이에 대한

대책으로 ‘일-가족 양립’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하

지만 현재의 정책은 여성의 이중 부담을 지속시킬

뿐만 아니라 기업의 노동 유연화의 수단으로 기능

하고 있다. 노동시간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도한 노동시간을 규제하고 가족생활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하는 것으로 정책이 변화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장시간 노동 문제가 심각한데 왜 노동

시간 단축에 대한 요구가 활발하지 않은 것일까?

서울 시민에게 노동시간에 대해 설문을 했더니, 야

근을 적게 하는 사람이 사회적 교제시간이 더 부족

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또한 고용이 안정된 사람은

노동시간이 상대적으로 짧더라도 개인 여가시간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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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을 더 크게 느낀다. 이처럼 휴식과 여가를 원하

는 사람은 오히려 노동시간이 더 적은 사람이다.

이러한 역설적 결과는 시간 여유의 경험이 있어야

시간에 대한 욕구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일-가족 양립 대신 일-돌봄-친밀성의 균형

강연에 이어서 진행된 토론에서는 세 가지 주제

가 논의되었다. 첫 번째 토론은 ‘일-삶 균형’이라는

용어에 대한 것이었다. 신 교수는 ‘일-가족 양립’이

라는 용어를 ‘일-삶 균형’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

장한다. 일과 가족을 넘어 자아(개인적 삶)를 위한

시간을 포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삶 균

형’은 일이 삶의 일부임에도 삶과 분리된 것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일-생활 균형’으로 바꿔야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 신경아 교수는 최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며 ‘일-가족-자아’ 혹은 ‘일-

돌봄-친밀성’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이 토론은 노동시간 단축의 지향점에 관한 것이

라는 의미를 지닌다. ‘일-삶 균형’은 일터라는 공적

영역은 포기한 채 가정이라는 사적 영역으로만 관

심을 국한시킬 위험이 있다. 노동시간 문제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모두 관통하는 문제다. 한편

한국에서는 특정 형태의 가족이 누구나 따라야할

정상적 규범이라는 점에서 가족의 보수성이 더 커

질 위험이 있다. 그러한 위험은 자아 개념을 통해

서 극복 가능할 수도 있지만 한국에서는 여가시간

에 공동체적이고 연대적인 활동의 조건이 주어져있

지 않아 자아가 공적 영역과 연결되지 못한 채 개

인의 내면으로 국한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돌봄

과 친밀성이라는 새로운 개념은 충분히 주목할 만

하다.

노동시간, 어떻게 단축할까

두 번째 토론은 현실 변화의 방법에 관한 것이

다. 신 교수는 사람들이 노동시간 길이 같은 객관

적 조건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노동시

간이 중요한 문제임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드는

사회적 담론을 만드는데 주력해야 한다. 이에 대해,

담론을 통한 의식 변화보다 법·제도를 통한 노동

시간 단축 그 자체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의견

이 제시되었다. 일단 노동시간의 감소를 경험하게

되면 사람들은 더욱 시간 부족을 느끼게 되고 시간

에 대한 욕구를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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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주제는 노동자 내부의 계급 양극화에

관한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과 일-삶 균형이 노동

자 전반에게 공통의 지향점이라는 주장에 대해 계

급 양극화가 심각한 한국 현실에서 노동시간 단축

이 오히려 비정규직이나 하청 노동자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현대자

동차의 경우 주간연속2교대제로 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시간이 줄어들었지만 그 비용이 하청 노동자에

게 전가된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현실적으로 그러

한 가능성이 있지만, 변화를 위한 노력을 중단할

수는 없다고 답한다. 현실을 변화시키되 의도치 않

은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신경아 교수는 노동자 전

반을 아우르는 복지정책의 확충을 강조한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먹는다

VS 첫 단추가 중요하다

두 번째 주제와 세 번째 주제는 좀 더 일반적인

논쟁으로 연결된다. 사람들의 인식과 욕구는 어떻

게 생겨나는가? 사람들이 변화의 주체가 되기 위해

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먼저 “고기도 먹어 본 사람

이 먹는다”는 입장이 있다. 만약 노동자들이 단축

된 노동시간을 경험한다면 그들의 인식과 욕구는

자연스럽게 달라질 것이다. 경험과 욕구와 변화의

선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반대로 “첫 단추가 중

요하다”는 입장이 있다. 잘못된 출발은 노동자들의

선호를 퇴색하게 만들어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노동

시간 단축의 추동력을 상실하게 만들 수 있다. 또

한 경험하지 못해서 욕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알

고 있음에도 현실적 조건 때문에 포기하는 것일 수

있다. 그래서 단순히 개인의 인식과 욕구의 변화가

아니라, 현실적 조건을 변화시킬 수 있는 집합적

힘이 필요하다.

이러한 토론은 현실 문제와 바로 연결된다. 현대

자동차의 주간연속 2교대제는 담을 넘어 다른 노동

자 집단으로 번져나갈 소중한 불씨일까? 아니면 문

제를 더욱 더 왜곡시키는 장애물이 될까? 그런데

언뜻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는 위의 두 입장 모두

현실을 변화하는데 있어 주체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체 형성의 선후

과정에서 다소간 차이가 있을 뿐, 노동시간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당사자들의 변

화와 실천이라는 점이다. 이처럼 현실 변화의 역동

성을 강조하는 관점은 현대자동차 사례를 노사 간

의 ‘담합’으로 규정하는 식으로 노동자의 의식과 실

천을 선험적으로 재단하지도 않으며, 시간제 노동

같은 특정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한다

는 식으로 노동자의 역할을 제거하지도 않는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사무직이든 생산직이든, 남성

이든 여성이든,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모두 장

시간 노동과 시간의 유연화 정책으로 고통 받고 있

다. 현실 변화의 가능성은 무엇보다 바로 이러한

보편성에서 주어진다. 보편성으로부터 집합적 힘을

만들어내는 것이 과제다.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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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키우는 즐거움, Shall We?

송윤희 회원

육아 프로그램이 대세다.

제일 먼저 시작한 <아빠, 어디가!>가 히트를 하자 그 다음 <슈퍼맨이 돌아왔다> <오 마이 베

이비> <엄마의 탄생>까지 새로운 변주를 가하며 각 방송국마다 경쟁적으로 생겨나고 있다. 이

제 더 새로워질 프로그램이 없을 것 같은데, 이러다간 아마도 조부모의 육아나 재혼가정의 육

아, 그리고 임신한 여자 스타들의 출산 준비기 등 뽑아낼 수 있는 모든 소재들을 다룰 것 같다.

유럽과 같이 개방적이었다면 게이나 레즈비언 커플의 육아 이야기도 나올 수도 있겠다 싶다. 지

나치게 쇼의 소재로 뭔가 재탕 삼탕되는 현상에 조금 미간이 찌푸려질 뿐이지, 사실 스타 남녀

가 아이를 키우는 모습이 TV에 자주 나오는 것은 아이를 키우는 여성으로서 무척 반가운 일이

다.

나 역시 TV를 켰을

때 아이가 나오면 리

모컨이 저절로 멈추는

것을 발견한다. 특히

<슈퍼맨>에서 이휘재

의 이야기가 시작되면

더더욱 그렇다. 그 쌍

둥이들이 내 아이와

거의 비등한 개월 수

이기 때문이다.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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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번 TV 화면에 나오는 그 아이들의 발달 상태와 언어 구사력, 표현력을 우리 아이와 비교

하곤 했다. 심지어 저 방송이 촬영 된 건 적어도 2-3주 많게는 한 달 전이니까, 그러면 우리아

이보다 몇 주 더 늦은 쌍둥이들의 한 달 전.. 그럼.. 음... 머리를 굴리며 TV 화면 속 아이들의

정확한 개월 수를 알아내고자 했다. 그리고 항상 그래도 우리 아이가 더 낫겠지? 라고 자위하곤

했다. 아마도 수많은 육아프로그램들이 다양한 연령층으로 생겨나는 것은 이런 시청자들의 심리

가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육아가 이렇게 세상살이의 중심이 된 적이 있었을까. 아주 잠깐 이런 현상의 원인을 생각해본

다면, 그만큼, 요새 육아를 전담해서 조용히 당연하게 아이를 도맡아 키우는 여성들이 줄어들었

기 때문일 것이다. 육아가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연변 아주머니 등등 다양한 사람들에게 퍼진

것이 이유일 것이다. 가장 고무적이고 반가운 현상은 아빠의 육아 참여라 하겠다. 실제로 아이

를 키우면서 느끼는 것은, 아이 둘 셋을 아무 도움 없이 살림 도맡아 하며 키운 우리 엄마가

정말 대단해 보인다는 것. 또, 아이 예닐곱을 역시나 아무 도움 없이 살림 도맡아 하며 키운 우

리 할머니들이 정말 위대해 보인다는 것이다. 그 때는 아버지와 할아버지들이 모두 분유, 기저

귀 값만 벌어다주고 육아는 모르쇠로 일관하였을 테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상상이 간다. 육아는

육체적, 물리적 도움뿐만 아니라 심리적 도움도 필요한 것 같다. 특히 배우자가 옆에서 챙겨주

고, 힘든 마음을 공유하고, 같이 이 작은 인간을 사랑해주는 것은 아이가 있는 가정에 꼭 필요

한 기본요소라고 생각된다.

위대했던 전 세대 여성들에 비해 편해진 육아지만, 여전히 아이를 키워낸다는 것은 힘겨운 일

이다. 그러면서도 정말 귀여운 이 “어린 인간”들 때문에 웃게 되는 것 같다. 나만 그렇지 않기

에 육아 프로그램들이 TV에서도 성행하는 것일 테다. 비록 쇼 프로그램의 촬영으로 어쩔 수 없

어서라 하더라도, 이휘재나 송일국 같은 “남자 같은 남자”들이 나와서 아이들과 뒹굴고 애쓰며

보살피는 풍경은 그저 훈훈한 주말의 TV 쇼라고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비로소 나

도, 우리 시어머니에게 이휘재 이야기를 하며 자연스럽게 남편은 어떻다는 둥 이야기를 꺼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가부장적인 시아버님도 이휘재와 쌍둥이를 이야기하며 자연스럽게 남자

의 육아 참여를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TV 육아 프로그램의 전성기라는 건 우리 사회가 조

금 더 나아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애 키우는 남자들, 이휘재, 내 남편, 모두 파이팅이다.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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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괴롭힘’, 먼 얘기가 아니다

유 상 철 노무법인 필 노무사

[email protected]

K출판사에서 편집업무를 주관하던 노동자가 있었다. 사업주와 출판물 편집에 이

견이 있었고, 이에 사업주는 정당한 지시를 거부하였다는 이유로 노동자를 해고하

였다. 징계사유로 삼을 수 없는 사안으로 해고한 것이다.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제기하자 사업주는 복직 명령을 하였다. 그러나 이미 편집업무는 다른 사람이 담당

하고 있었고, 출판사에 복귀한 노동자에게는 시장조사 업무를 줬다. 하루 동안 수

원, 일산, 인천 지역 주요 서점에 대한 시장조사를 마치고, 다음날 보고서를 제출하

라는 것이었다. 최소한 컴퓨터는 있어야 한다고 지원을 요청하자 ‘PC방에 가든지

알아서 해’라는 싸늘한 대답만 돌아왔다. 이런 일이 반복되었고, 얼마 후 이 노동자

는 출판사를 그만두었다.

A회사는 경영사정과 인사적체 해소를 이유로 대규모 희망퇴직을 시행하였다. 노

동자들 사이에서는 ‘○○년생은 이번에 모두 나간다’는 소문이 돌았다. ○○년생 노

동자 중 1명은 희망퇴직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이 노동자는 곧바로 보직에서

해임되고, 일반 팀원으로 강등되었다. 구체적인 업무지시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팀장의 입을 통해 은연중 ‘○○○하고는 점심도 먹지 말라’는 말이 오갔고, 동료들

은 이 노동자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해당 노동자 스스로 무기력, 자괴감, 모멸

감에 빠지도록 한 것이다.

학교에서의 왕따, 집단 따돌림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지만, 조직이나 불특정

다수인 또는 개인이 특정인을 집중적으로 괴롭히는 현상은 청소년기 아이들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집단 또는 개인에 의한 괴롭힘의 문제는 전 사회적으로 심

각한 문제가 되고 있고 직장도 예외가 아니다.

직장 내에서 타인에 대한 괴롭힘은 단순한 악의나 비호감의 표출인 경우도 있지

만, 다분히 의도적이고 집요하게 특정 노동자를 괴롭히는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한

다.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노동자들은 자신의 삶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는 장소에

서 소외와 좌절을 경험하게 되어, 육체적․정신적 질병, 나아가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직장 내 괴롭힘은 공격성, 폭력성이 표면적으로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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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괴롭힘, 정신 건강권 침해 위험수위” (2014. 2. 11, 경향신문)

“공익인권변호사모임인 희망을만드는법(희망법)은 지난 8일 ‘새로운 시선-

작업장 내 괴롭힘’이라는 주제로 강좌를 열었다. 직장 내 괴롭힘을 단순히

노동자 개인이 감내해야 할 문제로 여길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정신 건강권

침해로 바라보는 관점과 법·제도적 규제가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직장 내 괴롭힘에는 왕따, 성희롱 외에도 상사의 ‘타당성 없는 비난’ ‘소리를

지르거나 창피를 주는 일’ ‘과도한 업무 모니터링’ 등이 포함된다. 희망법 김

동현 변호사(34)는 “노동자들은 괴롭힘 원인을 자신의 능력이나 자질의 문제

로 여기고 개인이 극복할 과제로 인식하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입법화돼 형

벌로 규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벨기에 등 유럽연합 내 여러 국가들

은 1990년대 초반부터 직장 내 괴롭힘을 법적으로 정의해 규제해 왔다. 프

랑스는 2002년 직장에서 정신적 침해를 금지하는 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근로자의 권리와 존엄을 훼손하고 직업 장래를 위협하는 반복적인 정신적

괴롭힘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괴롭힘 가해자에 사업주뿐

아니라 다른 노동자도 포함하고, 무의식으로 끼친 피해 행위까지 규제해 1

년 이하 금고 또는 벌금에 처하고 있다.”

드러나지 않고, 앞의 사례처럼 ‘정당한 업무관계나 지휘명령의 권한행사’와 잘 구별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위법성을 곧바로 가려내어 책임을 묻기가 쉽지 않다.

기사에서처럼 직장 내 괴롭힘은 ▲따돌림, ▲부당한 비판, ▲타당성 없는 비난,

▲다른 동료들과 차별적 대우, ▲욕하기, ▲소리를 지르거나 창피를 주는 일(인격적

모멸감), ▲과도한 업무 모니터링 등 신체·물리적 폭력보다는 언어·심리적 폭력

형태로 나타난다. 이런 직장 내 괴롭힘은 직업성 정신질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

지만,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의한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직장 내 괴롭힘에 따른 후속적 조치나 법률적 기준을 마련하는 것보다

시급한 것은 직장 내 괴롭힘을 방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조직문화, 조직관계에

대해 분석하고, 관계 개선을 위한 조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오로지 생산성

향상, 매출 증대, 경영이익 증대만을 외치는 조직은 이러한 직장 내 괴롭힘을 더욱

조장하거나 방조하는 환경인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전 사회적인 문제로 확대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과 고민이 병행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것에서 함께 출발하자.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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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다 다치면 병원, 약국, 근로복지공단을 함께 가세요

안태은 후원회원

최근 산재바닥(?)에서 많이 이야기되는 주제들은 과로, 스트레스, 암과 같은 질병의 산재인

정 여부입니다. 이런 주제들은 사실 노무사인 저도 산재를 전문적으로 하지 않는 이상 쉽게

접근하여 판단하기 어려운 주제들입니다. 내공이 많이 부족한 관계로 의학용어와 법률용어가

콜라보되는 난해한 설명을 들으면 정신이 혼미해집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냥 제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고성 재해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산재에 대해서 상담을 좀 하려고요.” 가끔 사무실로 이렇게 상담을 요청하는 전화가 옵니

다. 그러면 저는 먼저 이것부터 확인합니다. “일하다가 다치신 건가요? 아니면 병에 걸리셨

나요?”

“일하다가 기계에 손을 다쳤습니다.”, “일하다가 높은 곳에서 떨어졌습니다.”, “일하다가 미

끄러져서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이렇게 사고와 관련된 것이라면 저의 대답은 70% 이상 “제

가 도와드릴 것은 없네요.”입니다. 그런 후 “가까운 근로복지공단을 찾아가셔서 지금 저한테

설명하시고자 한 내용 그대로 설명하시고, 필요한 서류를 물어보시고, 절차를 물어보시고 그

대로 신청하시면 됩니다.”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7월호에서 나온 것처럼 사고성

재해는 질병성 재해와 달리 특별

한 이유가 없으면 대부분 산재로

인정을 받습니다. 그런데 병원, 근

로복지공단 같은 위엄(?)이 있어

보이는 기관을 상대해야 하니 재

해자들이 지레짐작으로 ‘나는 못하

겠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또 괜히 혼자 진행

하다가 중요한 것들을 빠트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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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일터l ․ 45

않을까, 전문가를 통하면 보상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하면 장해등급이 낮게

나오지 않을까. 등등의 고민을 하시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근데 이러한 것들은 정말 괜한 고민이고 노무사가 한다고 해서 사실 결과가 크게 달라지

는 것은 없습니다. 그냥 병원 가면서 가까운 공단에 찾아가서 물어보세요. 당당하게 물어보

세요. 요즘 공단직원들은 대부분 서비스정신이 투철합니다. 잘 알려줍니다. 그러니 네이버

지식인 검색하면서 이게 맞는 건가 긴가민가 고민하지 마시고, 멀리 있는 노무사 찾아가서

상담료 주고 물어보고 할 시간에 직접 근로복지공단 가서 물어보고 진행하세요. 산재 신청하

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돈과 시간은 소중합니다.

물론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은 단순 사고성 재해에 관한 것입니다. 여전히 질병성 재해는

승인율이 낮고 전문가의 도움 없이는 진행하기가 어렵습니다. 또한, 산재보험이 적용되지 않

는 근로자 군도 많습니다. 나날이 과로와 스트레스는 심해지는데 이에 따른 재해들은 입증하

기가 어렵게 만들어져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지금처럼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고 바꾸어야

할 과제들입니다. 산재보험이 가야 할 길은 아직 멉니다.

하지만 이미 이만큼 걸어온 길은 충분히 누려야겠죠. 일하면서 월급 받고 건강하게 직장

생활을 마무리하는 것이 목표이겠지만, 불의의 사고로 내 몸이 상했다면 어렵게 생각하지 마

시고 산재신청 하세요. 사업주가 안 해준다고 해도 그냥 무시하시고 물어보고 신청하세요.

근로자의 권리입니다. 권리는 누리는 것입니다.

이 기사를 접한 독자들은 “산재신청 쉽구나. 나도 일하다 다친 적 있는데 산재신청 해야

겠다.”, “산재승인을 받으면 병원비랑 월급 받을 수 있겠구나.”, “근로복지공단이 존재하는 이

유가 있었네.” 등의 반응을 보였......

으면 좋겠습니다.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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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 통권 127 2014.8

병원의 안과 밖,

이윤의 전쟁터

장영우 선전위원

선전위원 장영우입니다. 이번 달에 제가 이러쿵저러쿵 쓸 기회가 주어졌네요. 기회

를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러쿵저러쿵은 부담 없는 마음으로 쓰는 코너지요.

하지만 평소 제 이야기를 잘 안 하기도 하거니와 참고자료 없이 글 쓴지 참 오래된

것 같아 모니터 한글화면의 흰 여백이 넓게만 느껴집니다. 무슨 수로 이 여백을 채워

야 하나 2~3주 전부터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결국 마감일이 임박해서야 키보드를 두

드리네요.

지금도 손가락이 잘려 오는 노동자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내과의사입니다. 작년에 전문의면허를 취득하고 대학

병원에서 전임의로 있다가 올해 강호(로컬)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구직활동으로 수개

월을 보내고 현재 인천 모병원에서 봉직의로 일하고 있습니다. 제가 일하는 병원은

정형외과 환자가 많고 특히 손가락절단 환자가 많습니다. 이곳에 와서 놀란 건 요즘

에도 일하다가 손가락이 절단되는 환자가 많다는 겁니다. 물론 큰 병원에서 수술하려

니 대기시간이 길어 이 병원으로 환자가 몰리는 이유도 있겠지만요.

날카로운 기계에 손가락이 잘리면 접합할 수 있지만 프레스에 다치면 으스러져 절

단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도 종종 봤고 절단된 손가락을 접합하고 퇴원했는데 작업 도

중 다시 그 손가락이 잘려서 오는 안타까운 경우도 봤습니다. 기계에 안전장치가 없

는 건지, 아니면 안전장치가 있는데도 생산성 때문에 안전장치를 끄고 작업하는 건

지. 아직도 이런 후진국형 산재가 많은 걸 보니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산재사망

률 1위라는 오명을 체감할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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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일터l ․ 47

▲ Runkilsh와 함께한 2014년 6월 1일 여의도 새벽강변 국제마라톤대회

병원은 하얀 정글

또 병원에 일하면서 느낀 점은 다들 수익에 매몰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지금까지 수련했

던 병원에서도 ‘수익’이라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지금 일하는 중소병원에서는 노골적으로 수익증

가, 수익 창출을 이야기하지요. 병원에서 의사들에게 각 과의 외래, 입원 환자가 몇 명인지를 매

일 카카오톡으로 보냅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과잉진단과 과잉진료는 필연적입니다. 검사나 처치,

수술을 많이 할수록 병원 수익에 더 도움이 되니까요.

요즘 젊은 사람은 민간의료보험에 하나씩은 가입해 있지요(나이가 들고 병이 있으면 가입이

잘 안 돼요). 건강보험에서 보장하지 않는 비보험 진료가 많으니까요. 이런 환자들에게는 더욱

불필요한 검사와 입원을 권합니다. 환자들도 본인 지갑에서 돈이 나가는 게 아니니까 검사나 입

원을 원하는 경향이 있고요. 반면 질병이 의심되는 환자나 노인들에게 검사나 입원을 권하면 거

부할 때가 많습니다. 병원비 때문이지요. 이런 아이러니한 의료현실에 직면하면 환자에게 적절한

진료가 어떠해야 하는지 매 순간 고민하게 됩니다. 현실에 타협하는 경우도 많지만요.

병원에서 같이 일하는 선생님들과 대화하면 수익이야기 많이 하지요. 하지만 문제의식을 나누

기보다 수익창출 쪽으로 대화가 기울지요. ‘밥값’을 해야 하니까요. ‘하얀 정글’이 내가 일하는 병

원이기도 합니다. 이런 수익창출의 현실을 보니 의료민영화는 더더욱 막아야겠다 싶네요. 그래서

제가 일터뉴스에 의료민영화기사를 자주 넣지요. ㅎㅎ 병원에서 이런 얘기를 한 적도 없는데 저

의 고민을 귀신같이 아셨는지 2일 전 병원 측에서 ‘계약해지’를 통보해버렸습니다. 강호는 냉정한

곳이군요.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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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 통권 127 2014.8

1) 2) 6)

3) 7)

9)

5) 8)

4)

☞ 가로열쇠1) 직장에서 조직이나 불특정 다수 또는 개인이 특정인을

집중적으로 괴롭히는 현상. ◯◯◯ 괴롭힘 p.42

3) 한국 사교육의 메카로 알려져 있는 강남의 한 동네

p.8

4) 무노조 경영방침을 고수하고 있는 삼성그룹에서 운영

하고 있는 테마파크 p.30

7) 작년 한해에만 10명의 노동자가 숨지면서 2014 최악

의 살인기업으로 선정된 기업. ◯◯제철 p.4

8) 아내 없이 아이들을 돌보는 연예인 아빠들의 육아 도

전기를 다룬 KBS 주말 예능프로그램. ◯◯◯◯ 돌아

왔다 p.40

☟ 세로열쇠2) 장시간 노동에 기대 고임금을 받아가는 생계형 ◯◯

◯ ◯◯◯ p.16

5) 한국의 노동 현실과 휴가 문화를 역사적·논리적으로

분석한 책. ◯◯◯◯ 10일 p.22

6) 산업안전보건법상 보건관리에 대한 사업주의 의무사항

으로, 중·소규모 사업장에서 산업보건사업 전문기관

이 사업장 보건관리 업무를 지도·지원해 주는 제도

p.32

9) 반여성적, 반인권적 노동탄압으로 사회적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기업. ◯◯◯◯코리아 p.12

지난 호 정답자는

00931**@daum.net

님입니다.

정답을 이름, 연락처와 함께

연구소 메일 [email protected]이나

문자 010-3782-1871로

보내주세요.

정답자 중 추첨을 통해 소정의

선물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