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식민지 이후: 해방, 건국과 전쟁 장지연 (1864-1921) ▶ 1905 을사늑약(乙巳勒約): 러일전쟁 이후 일본은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하면서 동아 시아의 강자로 부상 → 일본, 통감부를 설치하여 조선의 외교권 박탈, 이토 히로부미(伊藤 博文)의 집요한 노력과 을사5적(이완용, 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권중현)의 매국행위 ▶ 국권 상실과 국민들의 분노: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 황성신문)”, 전국 적인 소요와 의병활동 가속화 ▶ 1907. 6 헤이그 평화회의 밀사 파견: 고종, 국권찬탈의 위기에서 헤이그 평화회의에 밀사 파견 → 이상설, 이준, 이위종, 조선을 독립국으로 인정하지 않는 주최국 네덜란드의 거부 로 회의 참석을 거부당함 ▶ 망국의 길: 헤이그사건으로 말미암아 이토 히로부미와 송병준, 이완용 등은 고종을 비난하 면서 왕위 포기 압박 → 고종 퇴위 이상설 (1871-1917) 안중근 (1879-1910): 1909 이토 히로부미 저격 ▶ 구한말 정치세력 동학(東學): 사회적 평등과 기독교적 요소를 가미한 종교운동에서 시작, 정부에 대한 하층민의 불만을 대변, 개혁 요구 → 최초의 대중 조직화와 정치적 동원 → 동학혁명 이후 동학당, 일본 지지, 1919 이후 독립운동에 주력 ▶ 구한말 정치세력 독립협회: 1895 지식인 중심의 정치개혁집단 으로 창립, 서재필(徐載弼) 등 주도 → 최초의 정당운동, 다양한 파벌로 인해 정치세력화에 실패, 정부에 의해 해산 당함 ▶ 구한말 정치세력 일진회(一進會): 1904 친일파 송병준(宋秉畯) 주도, 손병희와 이용구 참여 → 을사늑약 지지, 고종 퇴위 주장, 일본의 조선 병합 지지 → 한국 최초의 정당으로서 일본과의 채 널 역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