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 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 1) 朴 恩 正 ** * 이 논문은 서울대학교 법학발전재단 출연 법학연구소 기금의 2014학년도 학술연구비(공동 연구) 지원을 받았음.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법학대학원 교수. 요 약 이 글에서 필자는 오늘날 여러 이유에서 ‘오로지 법률에만 구속되는 법관상’, ‘독립 적인 법관상’, ‘양심적인 법관상’이 구현되기 어려워져 가는 상황을 염두에 두면서, 우리 헌법 제103조가 정하고 있는 법관의 독립과 양심문제를 법해석방법의 맥락에서 논하고자 한다. 우선 법관의 독립원칙을 실정화 내지 제도화한 배경, 헌법 제103조에서의 양심에 대한 통상적인 설명방식의 문제점,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의 완화 경향에 대해 살펴본 다음, 법관의 해석활동의 특성을 주로 가치판단 문제와 관련지어 규명해 보겠다. 그 작업은 법해석방법론의 문제점과 한계를 지적하는 동시에, 헌법 제103조에 담겨있 는 긴장, 즉 법관의 법준수의무와 주관적 내면적 태도 사이에서 오는 긴장의 성격을 논하기 위한 것이다. ‘일반적 정의’의 요구와 ‘개별적 정의’의 요구의 충돌로 재현되 는 이 긴장국면은 특히 하드케이스에서의 법해석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며, 해 석활동의 본질적인 어려움은 이와 연관되어 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이 글에서 필자는 해석과정에 동반되는 이 긴장을 포착한 해석이론들을 점검하면서 이 긴장의 해소가능성을 타진해 본다. 필자는 이들 이론에 의해 헌법 제103조에 담긴 긴장이 해명될 수는 있지만 해소될 수는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렇다면 해석방법론상의 한계에서 오는 문제는, 법관의 판결이 시민들에게 미치는 엄청난 영향의 측면에서 볼 때, 사법의 도덕성의 문제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해석이 궁극적으로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사법적 도덕성 요청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 점을 염두에 두면서 마지막으 로 필자는, 올바른 판단과 결정을 위한 법관의 방법상의 추구는 궁극적으로 법관의 자기이해라는 성찰적 과제로 이어진다는 점을 지적하고, 헌법 제103조의 의의를 방 법론을 덕목론에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주제어: 법관의 독립, 법관의 양심, 법해석방법, 가치판단, 사법적 덕목 서울대학교 法學제57권 제2호 2016년 6월 63∼103면 Seoul Law Journal Vol. 57 No. 2 June 2016. pp. 63∼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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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논문gt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1)
朴 恩 正
이 논문은 서울대학교 법학발전재단 출연 법학연구소 기금의 2014학년도 학술연구비(공동
연구) 지원을 받았음 서울대학교 법과대학법학대학원 교수
요 약
이 글에서 필자는 오늘날 여러 이유에서 lsquo오로지 법률에만 구속되는 법관상rsquo lsquo독립
적인 법관상rsquo lsquo양심적인 법관상rsquo이 구현되기 어려워져 가는 상황을 염두에 두면서
이성의 활동rdquo ldquo인격의 자기인식rdquo ldquo본래적인 자기 자신으로 불러 세우는 염려의
소리rdquo ldquo너와 내가 함께 잘못을 감시하고 경계하는 공동의 눈초리rdquo ldquo근원적인 자
기의 요구rdquo 등등22) 이런 다양한 견해들은 양심 개념을 형식적인 측면에서 접근하
는지 아니면 내용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지 양심 판단에서 개인의 주관적 요소를
강조하는지 아니면 보편성 내지 소통가능성을 더 중요시하는지 양심의 권위를 내
부에서 찾는지 아니면 외부의 권위를 사회화 내지 내면화한 결과로 보는지 양심
에 따른 결단을 감정의 작용으로 보는지 아니면 이성도 같이 작용하는 것으로 보
는지 등에 따라 여러 갈래를 이룬다
칸트의 근대 주체철학의 영향을 받은 이래 오늘날 양심논의에서는 대체로 양심
의 개인적 주관적 요소가 강조되는 가운데 양심을 개인에게 도덕적 행위 동기를
유발하고 자기반성을 가능하게 하고 개인의 판단과 자기결정에서 최종심급의 역
할을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대표적으로 칸트는 양심을 각 주체로서의 개인의
ldquo내면에 자리 잡은 자율적 심판관rdquo으로 일컬으면서 행위주체가 자기 안에 내재하
21) 이덕연 앞의 글 361면22) 진교훈 외 19인 양심 고 로부터 에 이르기까지의 양심의 의미 서울대학교출판
문화원(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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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도덕법칙에 스스로의 행동을 적용시키는 것이 양심이라고 말한다23) 이때 양심
은 스스로 도덕법칙을 정립할 수 있는 선의지를 가진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지니는 일종의 의무의식으로 여겨지며 자신이 자신을 평가하는 것이 양심이기 때
문에 이 주관적 확신을 평가하는 외부의 기준은 없는 셈이다24) 이렇게 양심을 주
관성의 형식으로 가져갈 때는 주관적으로는 옳은 양심에 따른 확신이라 하더라도
인식주체가 가진 한계 등으로 인해 내용상 오류가 가능하다는 문제를 안게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칸트와 달리 양심문제를 개인의 주관적 도덕의식 이상의 차원에
서 다루고자 하는 철학자들은 간주관성의 차원에서 보편성을 지니는 양심개념을
추구한다 이런 방향에서 파악한 양심 개념에 대해 lsquo객관적rsquo 양심이라는 표현을 쓸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양심과 관련하여 lsquo객관적rsquo이라는 표현은 인식
주체 밖에 뭔가가 존재한다는 인식론적 존재론적 가정을 상정한다는 점에서 문제
가 있다 인식 주체 밖에 객관적인 그 무엇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양심이 아니라
윤리규범일 것이다 법관의 양심을 lsquo객관적rsquo lsquo법조적rsquo 양심으로 표현하는 것도 이런
의미에서 부적절하다25)
그런데 철학전통 안에는 양심을 주관성의 형식으로 끌어들여 절대화하는 시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서양에서 근대 이전의 철학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개인의 주
관적 도덕의식을 넘어서는 차원에서 양심을 논하는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우선 어
원상으로도 con-scientia syn-deresis의 con과 syn에서 알 수 있듯이 양심은 우리
내면의 법정에서도 공공성 내지 공동체성 즉 ldquo함께 안다rdquo라는 요소를 지니고 있
었다 이 어원은 양심의 규제적 기능에는 우리가 올바르게 행했는지 혹은 그릇되
게 행했는지를 지켜보는 ldquo공동의 인식rdquo이 있다는 자각이 포함됨을 암시한다 자기
안에서 lsquo보편적인 자기rsquo를 확신하는 과정을 상호인정과정과 연결시키고자 하는 양
심관은 공동의 윤리로서의 인륜성(Sittlichkeit)의 입장에서만 ldquo진정한 양심rdquo이 가능
하다고 보는 헤겔(G W F Hegel)의 양심론26) 타자윤리학에 근거한 레비나스
23) Immanuel Kant 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 (윤리형이상학 정 백종현 역 아카넷(2005) 134면 이하) 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Philosophische Bibliothek A 175 (2003) 215면 이하
24) 김관영 ldquo칸트에 있어서 양심의 문제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144면25) 예컨대 성낙인 교수는 법관의 양심을 ldquo법관이 적용하는 법 중에서 객관적으로 존재하
는 정신을 가리킨다rdquo고 설명한다 앞의 책 713면 이 객관적 정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26) Hegel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sect137 헤겔의 양심론에 대해서는 최신한
ldquo헤겔 야코비 양심의 변증법rdquo 헤겔연구 제23호(한국헤겔학회 2008) 86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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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manuel Levinas)의 양심론27) 그리고 행위주체들의 담론적 소통과 사회적 행위
에 대한 책임에서 출발하는 아펠(Karl Otto Apel)의 양심론28)에도 엿보인다 동양의
양심을 ldquo세상 사람을 향해 움직이는 마음rdquo으로 묘사하면서 양심이 있어서 책임있
는 인식의 기능에 주목한 사상가도 있다30)
서양에서 근대를 전후로 양심의 주관화 경향이 강하게 대두된 데에는 종교분쟁
등의 영향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은 가치상대주의라는 시대정신의 영향 하에
양심은 도덕적 판단과 인격을 근거지우는 현상으로 파악되면서도 내용적 측면보다
는 형식적 측면에서 고찰되고 간주관적 논의가능성이 배제된 채 그 논의의 폭이
좁아져 거의 개인의 자기결정권 영역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우리 헌법 제19조의
양심의 의미도 이런 자기결정에서의 최종심급 역할이라는 맥락에서 읽히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살펴봤듯이 주관화의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기 이전의 사유전통에
서는 양심의 자기결정 능력보다는 스스로에게 도덕적 의문을 품는 능력 ldquo함께
안다rdquo라는 책임성 쪽에 더 비중이 놓여 있었다 이런 사유배경에 비추어 본다면
헌법 제19조의 양심은 근대 주관화의 영향의 산물로 이해할 수 있고 이에 비해
헌법 제103조에서 법관과 관련하여 언급된 양심은 근대 이전의 ldquo함께 안다rdquo의 사
유전통의 흔적을 지닌 개념으로 볼 수 있다
Ⅳ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의 완화 경향
앞에서 살펴봤듯이 역사적으로 법관의 독립이념은 법관은 오로지 법률에만 구속
된다는 것을 전제로 탄생했다 그리고 이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은 법률의 총합으로
27) 레비나스에 대해서는 김연숙 ldquo레비나스의 양심론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제3부 제3장 참조28) Karl Otto Apel From a Transcendental Semiotic Point of View Manchester University
Press (1998) 52면 259면 양심이 지니는 공적 관찰이나 감시기능 부분에 주목한
Apel에 대해서는 백춘현 ldquo아펠의 양심론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344면 이하29) 맹자의 양심론에 대해서는 장승희 ldquo맹자의 양심론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제1부 제1장
참조30) 왕수인은 양심과 양지(良知)라는 표현을 함께 썼다고 한다 ldquo남의 아픔을 느끼기 위해
서는 예민하게 lsquo생각rsquo해야 한다rdquo 여기서는 이혜경 ldquo왕수인의 양심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79면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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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 법질서는 통일적이고 자기충족적인 시스템을 이룬다는 가정에 기초하고 있
었다 그러나 이 가정은 그 자체로 애초 한계를 지닌 것이기도 하지만 법의 생태
적 기반이 변하면서 이 법률구속원칙은 점차 상대화 내지 약화되는 방향으로 나아
가게 되었다 입법자를 기다릴 수 없는 빠른 사회변화 자유법운동 입법양의 폭발
적인 증대 일반조항 도입 등 입법스타일의 변화 복지국가 대두 사회정의의 요구
헌법재판 활성화 등의 흐름은 법관의 법률구속메커니즘이 작동하기 어려운 여건을
만들어 가게 된 것이다 이른바 lsquo법관법rsquo의 대세 흐름이 나타난 것이다 특히 지난
수십 년간 확대된 입법영역은 형법과 같은 규제입법과 달리 사회복지생활보호
건강 증진남녀평등청소년보호장애인보호적극적 평등조처 등처럼 정치적 비전과
목적을 담은 한마디로 정책촉진적 성격을 지닌 법률들이었다 이와 같은 야심찬
입법스타일은 법적용단계에서 법관이 바람직한 제도 및 정책 내용에 대해 고려케
함으로써 목적적 법논증으로 기울게 하고 구체적 이익을 비교형량하는 심사방식
을 확대시키는 등 좁은 의미의 실정법률 해석보다는 법형성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 것이다31) 특히 이 흐름은 20세기말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법실증주의에
제동이 걸리는 분위기와 겹치면서32) 법철학에서도 전통적인 포섭논리나 삼단논법
은 실제로 법관들에게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지적과 함께 법관의 법률구속원
칙에 회의적인 성향의 논의들이 강세를 보이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법발견 과정에
대한 심화된 통찰을 통해 lsquo선이해rsquo의 문제를 재평가하게 만든 철학적 해석학과 문
언의 의미론적 구속력에 회의를 제기케 한 언어이론은 법철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들 이론에 입각하여 이제 법의 흠결 시와 같은 예외적인 상황에서 법관
의 법형성이 불가피하다는 수준의 주장을 넘어 법률텍스트를 통한 구속가능성 자
체를 의문시하는 주장까지 나오게 되었다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의 실현에 대한 기대가 점점 약화되고 그래서 누구의 표현
대로 법률이 해석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해석이 법률을 지배한다고 말할 정도가
31) 사회변화에 따른 법관의 역할 변화에 대해서는 박은정 왜 법의 지배인가 돌베개(2010) 제6장을 참조할 것
32) 울프리드 노이만(Ulfrid Neumann)은 지난 2015년 10월 1일 고려대학교 초청강연에서
ldquo실증주의 이후 시대의 법률과 판결rdquo이라는 주제로 발표하면서 법학적 사고가 ldquo법실
증주의 이후의 시대rdquo로 넘어갔다고 진단하고 그 배경으로 세계화 등의 흐름으로 국제
상거래관습법(lex mercatoria)처럼 입법당국에 의한 제정이 아닌 사회적 실천에 의거한
법제정 사례 법원리의 중요성 대두 인권사상 증대 등을 들고 있다 그러면서 법실증
주의로부터 멀어지는 만큼 법관의 법률구속원칙도 상대적으로 완화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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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면 다시 제기될 수밖에 없는 물음이 바로 입법기관과 법적용기관 사이의 권력
균형 문제다 이 권력 균형은 특히 법 이라는 개인에 의해 매개된다는 점에서 문
제가 된다 오늘날 ldquo사법국가rdquo ldquo법관공화국rdquo ldquo사법엘리트rdquo ldquo사법의 정치화rdquo 등을
지적하는 소리는 입헌민주주의 기획의 초기단계에서 일찍이 해결했다고 여겼던
문제들이 다시 등장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법관의 법률구속의 전제 및 그 가능성
법원의 중립성 법관의 민주적 정당성 사법관료주의 등의 문제가 그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물음이 떠오른다 해석자의 자유를 제
한하고 법관의 법률구속을 보장할 확고한 법해석방법론은 가능한가 법관의 법률
구속에 관한 기술적 제도적 보장책은 가능한가 필자는 이 물음들에 대체로 회의
적인 전망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물론 법해석방법의 무용론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법률에 구속되는 법관상이 약화되고 앞으로도 점점 더 약화될
것이라는 전망 하에 어느 때보다도 더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될 법관의 독립 문제
를 염두에 두면서 법해석방법론의 문제를 재검토하고자 한다
Ⅴ 법해석방법론의 문제점과 한계
법이 있는 곳에 해석이 있다 법학의 강점도 해석학적 잠재력에 있다 법관의 임
무는 법률을 적용하기 위해 법문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법해석방법론은 법
해석과정에서 법관의 자유에 일정한 제약을 가하고 법관의 법률구속이념을 실현하
기 위해 고안되고 발전된 것이다 해석에서는 무엇이 최선의 해석인지를 둘러싸고
언제나 논쟁과 불일치가 생기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해석작업은 인간의 판단과 행
위의 영향 하에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법관이 따라야 하는 법률 자체에는 이미 법적용자를 법률에 대해 어느 정도 독
립적이게 만드는 여러 표현방식들이 들어 있다 예컨대 lsquo야간rsquo lsquo소음rsquo lsquo위험한 물건rsquo
lsquo적절한 조치rsquo 등 개념의 내포와 외연이 확정적이지 않은 법개념들이 대표적이다
이런 불확정적 개념들은 법명제의 구성요건 단계에만 들어 있는 게 아니라 법률효
과에서도 등장한다 이른바 lsquo규범적 개념rsquo들도 그런 표현방식에 속한다 lsquo음란한rsquo
lsquo건전한rsquo lsquo불명예스러운rsquo 등의 개념들은 기본적으로 지각가능한 대상을 서술하는
개념과 대비하여 의미내용이 가치판단에 근거할 때만 파악된다는 점에서 규범적
이다 이때 가치판단은 반드시 주관적 개인적 평가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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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의 평가도 포함할 것이지만 어쨌든 이 판단과 관련한 어느 정도의 불확정성은
감수해야 한다 법관의 법률 구속 의무를 느슨하게 만드는 이런 개념군에는 재량
도 포함된다 오늘날 재량개념은 ldquo법적으로 구속되는rdquo 재량으로 이해되지만 이때
판단의 여지 안에 들어오는 여러 대안들 가운데서 최종 혹은 최선의 대안을 확정
하는 데 있어서 결정자의 개인적 확신을 허용할 수밖에 없다 일반조항도 표현 그
대로 높은 일반성을 띰으로써 법적용자로 하여금 자기 앞에 놓인 사례를 광범위한
사례집단들에 적응시켜가면서 법률효과를 귀속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33)
위에서 언급한 불확정 법개념이나 규범적 개념 등을 적용하는 데는 가치판단
요소가 수반된다 이런 개념들을 적용할 때 법관은 일정한 범위 안에서 입법자를
대신하여 가치판단 내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것이다 또 법관
은 법의 lsquo흠결rsquo을 보충하거나 법질서 안에서 이따끔 발견되는 lsquo오류rsquo를 수정해야
할 부득이한 상황에도 처하게 된다 이때는 법관은 스스로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찾아 나서야 한다 lsquo법의 일반원칙rsquo lsquo법의 정신rsquo lsquo평균인의 척도rsquo lsquo비례성원칙 lsquo이익
형량rsquo 등은 이때 법관이 의존하는 사유 장치들이며 이것들을 원용하는 데도 가치
판단적 요소가 개입한다 이때 판단자는 무엇이 사실상 효력을 갖고 있는 윤리적
견해인지 확인해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사실로서의 합의가 올바른 법적 결론에
도달하게 하는지에 대해서도 숙고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법적용자는 때로는 평
균인 테스트 같은 객관적인 척도에 의지하지만 또 때로는 개인적 견해를 더 많이
펼칠 수 있는 일정한 판단의 여지를 가지게 된다
이렇게 해석과정에서 불가피한 lsquo판단의 여지rsquo 즉 해석과정에 불가피하게 개입되
는 가치판단 요소 때문에 ldquo해석의 건전성rdquo을 둘러싸고 논란이 생기고 해석의 정당
화와 관련하여 회의가 생긴다 가치판단과 관련된 부분이 불가피하게 주관적 요소
를 끌어들이게 되고 이로 인해 법규범의 효력이 상대적이고 불확실한 영역으로 떨
어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단자는 자신의 결론이 불확실성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자신의 해석에 대한 정당화를 포기할 수 없다 법을
해석한다는 것은 ldquo그 법률을 특정 사안에 적용하는 것을 정당화한다는rdquo34)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확정적인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사례에서도 요구되는
33) 불확정적 개념 규범적 개념 재량 일반조항과 관련한 자세한 설명은 칼 엥기쉬 법학
방법론 안법영윤재왕 옮김 세창출판사(2011) 182면 이하에 잘 정리되어 있으며 필
자도 이 부분을 참조했음을 밝힌다 34) 닐 맥코믹 로버트 서머즈 ldquo해석과 정당화(上)rdquo 박정훈 역 법철학연구 제5권 제2호
(2002) 18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79
개인적인 단은 도덕적 상대주의자들이 말하는 개인적인 취향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해석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올바른 해석기준을 수립하고자 법률가들은 각
기 지금까지 다양한 해석방법에 의존해 왔다 올바른 해석을 위한 확고한 기준을
수립할 수 있다는 것은 찬성하는 혹은 반대하는 해석논거들 사이의 상대적 비중을
결정하는 명확한 규칙을 수립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즉 어느 한 해석
논거가 다른 해석논거에 의해 배제되는 조건이나 선택된 해석을 정당화하는 데
필수적인 한 논거가 다른 논거보다 우월하기 위한 조건 한 논거에 누적을 통한
비중이 부과되는 조건 등을 제시해줄 일관된 정보와 지침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
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여러 해석방법들 사이에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다는 것
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시도는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했다 동일한 유형의 논거일지
라도 각각의 정당화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비중을 갖게 될 뿐더러 언어적 해석
방법 체계적 해석방법 목적적 해석방법 등으로 제시되는 여러 해석방법들이 한
줄로 세우기에는 한마디로 너무 이질적이다35) 물론 이들 해석논거들의 상호작용
을 검토하면서 잠정적인 서열을 제시하는 것은 가능할 수도 있다36) 그러나 이 서
열은 기껏해야 ldquo해석을 위한 노력의 경제성 원리rdquo 정도를 말해 줄 뿐이기 때문에
쉽게 바뀔 수 있다37)
드워킨이 옳게 지적한 대로 기본적으로 가치판단과 관련된 해석방법들은 위계
적일 수 없고 ldquo상호지지적rdquo인 관계에 놓일 뿐이다38) 이 때문에 방법론적 규칙을
세우려는 시도는 언제나 무망해지는 것이다 또한 법해석에 있어서 언어란 단어의
의미를 식별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 행위의 의미를 식별
하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론 풀러(Lon Fuller)가 지적한 대로 ldquo언어
를 통한 의사 전달은 어느 한 사람으로부터 다른 사람에게로 의미가 든 상자를 발송
하는 식rdquo39)은 아닌 것이다
35) 울프리드 노이만 ldquo실증주의 이후 시대의 법률과 판결rdquo 강연문(주 32) 노이만에 따르
면 예컨대 체계적 해석 방법에 따른 논거도 그것이 논리적 일관성 획득의 맥락에서
인지 아니면 가치평가의 일관성 보장이라는 맥락인지에 따라 전혀 다른 비중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36) 대체로 언어적-체계적-역사적-목적론적 해석방법의 순서로 언급되는 데 대해서는 심헌섭
분석과 비 의 법철학 법문사(2001) 217-218면37) 맥코믹과 서머즈는 비교법적 연구결과를 통해 올바른 해석을 위한 지침 수립은 어느
국가의 법체계에서도 지금까지 성공적이지 못함을 밝힌다(앞의 글 210면)38) 로널드 드워킨 정의론 박경신 옮김 민음사(2015) 309면
80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결론적으로 해석방법론으로부터 법관은 불확실성을 떨쳐 낼 수 있는 확실한 정
보제공을 기대하기 어렵다 해석논거를 위한 결정적인 기준을 제공하는 해석방법
에 대해 불안정한 형태로나마 이론적 합의를 찾기 어렵다면 엥기쉬의 지적대로
해석방법론은 공중에 떠있는 상태다40) 법학에서 방법론의 융성은 역설적으로 법
학이 이 부분에 취약하다는 암시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해석자로서의 법관을
최종적으로 인도하는 전략은 무엇일까 다음과 같은 고민을 들어보면 적어도 그것
은 방법론상의 합의에 대한 기대 같은 것은 아닌 것 같다 ldquo우리들은 일정한 결론을
내리고도 그 결론이 가장 적절sdot타당한 것이라고 보증받을 수 없다 그 결론을 낸
시점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들은 자기의 결론이 그러한 불확실성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그것을 자기의 전인격적 책임 아래 끝을 내고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비판과 평가에 맡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rdquo41)
해석방법론이 공중에 떠있는 상태라면 법관을 법률에 구속시키기 위한 방법론
적 보장책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런 가운데 ldquo자기의 전인격적 책임 아래rdquo ldquo사려
깊고 균형잡힌 총체적 관념rdquo ldquo인생 그 자체로부터 지식rdquo 등에 대한 호소를 듣는다
이것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법발견으로 불리든 법인식 혹은 법형성으
로 불리든 법적으로 올바른 결정을 이끌어낸다는 것은 순순히 lsquo앎rsquo의 문제만은 아
니라는 것이다 실천철학의 전통 용어를 빌어서 말한다면 그것은 이론지 이상의
실천지를 요구하는 활동이다 즉 법관의 해석활동은 이론지와 실천지를 결합하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이 주제로 다가가는 한 우회로로서 우선 지적 활동으로서의
법관의 해석활동의 특성에 대해 살펴보자
39) 론 풀러 법의 도덕성 박은정 옮김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2015) 314면 40) ldquo그러나 해석론 전체에 대한 확고한 이론적 토대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서열관계에
관한 모든 이론들은 여전히 공중에 떠 있다rdquo 엥기쉬 앞의 책 137면41) 사법연수원 법조윤리론(2014) 31면 그밖에 Benjamin N Cardozo The Nature of
Judicial Process Yale University Press (1921) ldquo언제 하나의 이익이 다른 이익을 능가
하는지를 묻는다면 hellip 경험과 연구와 성찰로부터 요컨대 인생 그 자체로부터 그 지식
을 얻지 않으면 안된다고 답할 수 있을 뿐이다rdquo(여기서는 법조윤리론에서 재인용) 또한 맥코믹서머즈 ldquo해석과 정당화(下)rdquo 박정훈 역 법철학연구 제6권 제1호(2003) 348면 ldquo해석은 간주관적으로 승인된 모든 법적 가치들에 대하여 사려깊고 균형잡힌
총체적 관념을 획득하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제대로 행해질
수 있다rdquo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1
Ⅵ 법관의 해석활동 실증주의의 대척점
앞에서 언급한 대로 해석에서는 무엇이 최선의 해석인가를 둘러싸고 언제나
논쟁과 불일치가 따른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누군가가 텍스트를 해석한다고
말하는 순간 그는 실증주의의 대척점에 서게 된다 실증주의과학의 의미에서는 논
쟁의 여지가 있는 것은 원칙적으로 과학일 수 없기 때문이다 법실증주의사고에서
해석 문제가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법을 근본규범에 입각
한 자기준거적인 구조로 보는 한스 켈젠(Hans Kelsen)의 순수법학이나 법적용과정
을 규칙에 의해 지도되는 과정으로 보는 하트(H L A Hart)의 분석법학에서 해석과
관련한 어려움은 다루고 있지 않다42)
켈젠은 순수법이론(Reine Rechtslehre)에서 정당한 해석만이 허용된다는 주장
은 허구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면서 해석의 건전성 문제나 정당화 문제를 법이론
안에서 다루기를 거부한다 법을 자기준거적인 것으로 보는 관점은 한마디로 해석
(행위)주체의 입장을 부정하는 것이다 켈젠은 법단계설을 바탕으로 법적용을 상위
규범의 수권에 의해 하위규범이 구체화되는 과정으로 보고 여기에 헌법의 수권을
받아 법률을 제정하는 입법자도 포함시킨다43) 이에 따라 법적용도 입법의 한 형
태로 설명된다 법관에 의한 법형성의 동기는 이를테면 입법부가 유독 다른 법률
이 아닌 이 법률을 통과시키는 동기와 같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켈젠은 판단활동
에서 인지적 요소와 의지적 요소를 엄격하게 구별하면서 법관의 판단활동을 순전
한 의지활동으로 보고 이 법관의 활동에 대해서만 (유권)해석이라는 표현을 사용
하고자 한다 그리고 법학적 해석에 대해서는 법규범의 가능한 의미들을 밝히는
것으로서 법률에 따른 결정의 범위를 제한하는 정도의 의미를 부여한다
법단계설에 따르면 상위규범이 정한 일정한 범위 안에서의 수권에 따라 하위규
범이 작용한다 이때 상위규범의 수권은 모든 세부적인 내용들에 대해서까지 정해
42) 켈젠은 순수법이론(Reine Rechtslehre) 제1판(1934) 제6장에서 해석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부분과 거의 같은 논문 ldquoZur Theorie der Interpretationrdquo이 심헌섭 젠법이론선집 법문사(1990) 97면 이하에 실려 있다 윤재왕 교수는 Reine Rechtslehre 제1판과 제2판
(1960)을 비교하면서 해석방법으로부터 오는 규범적 구속력을 일체 거부하는 켈젠의
입장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윤재왕 ldquo한스 켈젠의 법해석이론rdquo 고려법학 제74호(고려
대학교법학연구원 2014) 525면 이하 하트의 대표적인 저서 법의 개념의 색인 항목에는
lsquo해석rsquo이 빠져있다 43) Hans Kelsen Allgemeine Staatslehre (Berlin 1925) 231면 이하
8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그래서 ldquo상위단계의 법생성으로부터 하위단계의 법생
산으로의 전환은 단지 상위단계가 정해 놓은 범위를 채우는rdquo 활동으로서 이때
ldquo언제나 상위단계에는 없는 내용적 요소가 하위단계에 추가되어야만rdquo 한다44) 이
내용을 채우는 부분과 관련하여 상대적 불확실성이 생기는데 켈젠은 이 문제를
ldquo자유재량rdquo의 문제로 다룬다45) 이는 하트가 규칙의 체계로서의 법체계를 완결된
구조가 아닌 열린 구조로 봄으로써 상대적 불확실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법관의
재량사항으로 보는 것과 같다 하트의 경우 중심부와 주변부라는 극히 단순화된
이분법을 끌어들여 이 불확실성 문제를 처리하고자 했다면 켈젠의 경우는 인식작
용과 의지작용의 이분법을 끌어들임으로써 이 문제를 처리하고자 한 것이다
판결을 법관의 의지활동으로만 이해하는 입장을 취하게 되면 법관에게 결정에
대한 근거 제시 요청을 할 수 없게 된다 마치 신의 심판에 대해 근거 제시를 요구
할 수 없듯이 말이다 결국 켈젠의 법이론상으로는 해석은 법학의 문제가 아니며
그러므로 분석적 법실증주의와도 무관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46) 이런 이유에서 그
는 정당한 해석만이 허용된다는 주장이나 해석방법만으로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에
이를 수 있다는 주장을 거부하면서 심지어는 상위규범에 제시된 범위를 넘어서는
해석의 효력조차 적극적으로 인정함으로써 어느 의미에서는 해석이론의 존재기반
자체를 무너뜨린다47)
켈젠이나 하트가 법이론에서 해석의 의미를 축소한 이면에는 이분법이라는 과도
한 사유의 단순화가 놓여 있다 그러나 켈젠이 생각하는 것처럼 판단에서 인식적
요소와 의지적 요소의 확고한 경계가 유지되는지는 의문이다 또 중심부와 주변
부에 대한 하트의 주장도 지나친 단순화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어쨌거나
켈젠이 합리적인 해석방법을 추구하는 법이론의 효용가치를 한껏 떨어뜨렸다고
해서 이제 어차피 정답은 없으니 법대에 앉은 법관은 자기 임의로 무엇이든 해도
된다고 켈젠이 주장했을 리는 물론 없을 것이다 법이론의 과도한 정당성 주장을
거부하는 데서 오히려 순수법학의 비판적 잠재력을 찾을 수 있다고 보는 학자들은
여기서 켈젠이 강조한 순수화 즉 탈정치화는 법학에 관한 것이지 법 자체에 관한
44) Kelsen Allgemeine Staatslehre 243면 여기서 번역은 윤재왕 앞의 글 535-536면에서
재인용45) Kelsen 앞의 책 243면 이하46) 켈젠에 있어서 법해석은 이론상으로는 법학보다는 정치학이나 사회학에 속하는 문제
에 더 가깝다고 지적한 견해에 대해서는 론 풀러 앞의 책 312면 47) 이에 대해서는 윤재왕 앞의 글 553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3
주장이 아니었음을 상기시킨다48) 즉 법 자체는 결코 정치와 분리될 수 없다는
점에서 법실무에 대한 학문이론의 무가치성을 주장하는 순수법학은 실무의 법
적용자로 하여금 자신의 활동이 정치적 활동임을 깨닫고 책임을 느끼게 하는 계기
를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윤재왕 교수도 ldquo켈젠 해석이론의 배후rdquo로 들어가 방법
이론으로부터의 어떤 구속력도 거부되는 데서 생기는 공백을 켈젠이 법관 자신의
자기이해와 책임성 문제로 채운다고 지적한다 ldquo법관의 판결은 결코 순수한 것일
수 없으며 그런데도 자신의 판결이 순수한 인식의 소산이라고 강조한다면 이는
정치적 책임의 회피이고 동시에 이데올로기적이라는 혐의에 노출되지 않을 수
없다rdquo49) 이 문구가 켈젠 자신으로부터 나왔다면 아주 좋았을 것이다 자신의 직
무의 중요성과 책임에 대한 실천적 깨달음은 해석의 정당화를 목표로 하는 인식적
노력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켈젠의 순수법이론의 기획은 서로
붙어 있는 양면을 떼어 놓으면서 이것을 다시 붙일 수 있음을 보여주려 한 것일까
Ⅶ 법관의 해석활동 가치판단과 lsquo정답테제rsquo 문제
켈젠처럼 실증주의적 사고에 따르든 아니면 비실증주의적 사고에 따르든 가치
판단 문제에서 해석방법만으로는 하나의 정당한 결정을 도출할 수 없다고 생각한
다면 이는 해석의 차원에서 가치에 대한 이해 시도는 진리 추구와는 무관하다는
주장으로 귀결되는가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해석대상의 의미에 대한
관심과 최선의 이해에 대한 관심은 아무래도 진리 추구라는 목표를 향한다고 봐야
한다 법적 결정은 물론 법관의 권한에 속하지만 그것을 정당화해주는 원천은 법
관이라는 lsquo지위rsquo가 지니는 형식적 권한이 아니라 판결이 정당하다는 근거 제시에
있다 법판단을 정당화해주는 모델은 울프리드 노이만(Ulfrid Neumann)이 지적한
대로 권위를 통한 정당화모델보다는 진리를 통한 정당화모델에 더 가깝다50)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재판활동은 엄연히 사법권이라는 공권력의 작용이라는 점에서
독립적인 법관의 재판활동을 그 ldquo계획적이고 진지한 진리 탐구 활동rdquo적 측면 때문
48) 법학의 탈정치화를 ldquo정치적 허무주의rdquo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데 대해서는 켈젠 ldquo순수법학이란 무엇인가rdquo 젠법이론선집 280-282면
49) 윤재왕 앞의 글 559면50) 울프리드 노이만 ldquo법 진리 권위rdquo 2013 4 6 한국법철학회 강연문 참조
8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에 학문의 자유의 한 표현으로까지 보려는 것은 무리다51)
오늘날 가치상대주의 분위기는 실천적 물음에서 진리 도달가능성에 대한 회의를
과장한다 그러나 진리가 뭐냐는 빌라도의 물음에 비록 확신에 찬 대답을 못한다
하더라도 법에서 진리 내지 정당성 추구의 포기는 파국을 의미한다 국가권력
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도 진리라는 규제이념이 전제되기 때문
이다 독립된 사법부가 심급구조와 집단적 의사결정의 형태로 스스로의 시정 기구
를 가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물론 진리에 대한 주장은 잠정적이고 수정가능하다
lsquo참이냐 거짓이냐rsquo는 오로지 서술적 명제에만 한정하여 검증될 뿐이라는 협소한
학문관을 따른다면 법학은 학문 안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법
학이 그런 협소한 학문관을 받아들여야 할 필연성은 없다 법해석자는 자신의 해
석적 판단이 진리라는 주장을 무한정 내세우지는 못하면서도 진리 추구를 피할
수 없다52) 론 풀러(Lon Fuller)의 지적대로 ldquo법이론이 최고의 법적 권위를 엄격하
게 정의하는 일에 큰 비중을 두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이 점이 모호해지면 필경
전체로서의 법체계가 와해될 수 있다rdquo53)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법을 민주
주의의 언어로 설명하는 오늘날 의회와 행정처럼 다수결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기
관도 아닌 사법의 소수 전문 엘리트의 지배를 권위모델만으로 정당화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법을 준수하는 시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시민들은 자신에게 유죄
판결을 선고한 세속의 법관에게 그 유죄판결의 근거를 알고 싶다고 요구할 수 있
으며 물론 당연히 요구한다
법관은 판결에서 논증을 통해 최상의 근거 제시가 이루어진 결정을 해야 한다54)
51) ldquo일부 사람들 중에는 이러한 법원의 권력기관적 성질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
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helliphellip 가끔 법관의 일을 조용한 방에서 소송서
류를 꼼꼼하게 읽어 파악한 사실에다가 법을 논리적으로 적용하는 단순히 지적(知的)인 작업이라는 시각에서만 말씀하시는 분을 만나면 그 분에게 재판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법대에 앉아 있는 법관이 어떻게 보이는지 물어보고 싶어집니다rdquo 양창수 ldquo바람직한 법관상 - 기예와 지혜 사이rdquo lt근대사법 및 한성재판소 설립 120주년 기념
1895sim2015 소통컨퍼런스 역사에 비춰 본 바람직한 법관상gt 자료집(서울중앙지방법원 2015 5 11) 15면 ldquo계획적이고 진지한 진리 탐구 활동rdquo이라는 표현은 라드브루흐에서
나온다 구스타브 라드브루흐 법철학 최종고 옮김 삼영사(2011) 238면 52) 드워킨 앞의 책 208면 53) 론 풀러 앞의 책 211면 풀러의 문장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ldquo하지만 이 경우도
위로부터의 지시 또한 목적의식에서 비롯되는 지적 활동을 완전히 생략할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rdquo54) 물론 진리 요청과 관련하여 개별 법관의 관점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며 민주국가에서
포기될 수 없는 진리 요청은 법학을 포함한 법체계 전체로 하여금 진리 요청에 어떻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5
이때 정당한 근거 제시가 이루어진 결정과 관련하여 그것이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
이라는 주장을 펼 수 있는가 앞에서 검토한 대로 켈젠의 순수법이론은 그런 주장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이에 비해 드워킨은 법적 판단에 있어서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이 원칙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ldquo정답테제rdquo로 불리는 이 주장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학자들이 지적한 대로 존재사실에 대한 주장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하나의 ldquo규제이념rdquo으로 받아들이는 게 맞는 것 같다 즉 드워킨의 정답테제
는 ldquo유일하게 정당한 결정rdquo이 존재한다는 데 대한 이론적 탐구라기보다는 실무에
서의 법관의 주관적 태도에 부합하는 이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법관은 자신의 판결활동과 관련하여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모든 사건
에서 오직 하나의 결정만이 정당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 정답에 가까이 가기 위
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55)
드워킨의 말대로 가치판단이 참일 때는 그냥 참일 수가 없으며 그것이 참인
이유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즉 충분한 논거가 존재할 때 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라면 이러한 논거지움의 과정은 자명한 공리적
토대나 그런 토대 위에서 확립된 규칙이나 원리적 서열에 따라 명확하게 밝힐 수
없다 이런 불확실한 가운데도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논거지움은 포기될 수
없다 이 끝없는 정당화 부담 때문에 켈젠은 규범의 효력 근거에 관한 논의를 가
치에 관한 논의와 절연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물론 성공하지
못했다56)
가치판단을 해야 하는 부분이 법문화에서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요소로 작용할지
아니면 그 반대로 작용할지는 판단자로서의 법관의 역량과 연관하여 논해야 할 것
이다 필자는 가치판단적 요소가 법문화에서 당연히 긍정적 요소로 작용해야 하며
게 부응하는지 묻게 한다 따라서 사법부 외부에서 행하는 사법비판의 길이 열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대해서는 노이만 앞의 강연문 참조55) 노이만 앞의 강연문56) 규범의 효력을 불명확하고 상대적인 가치가 아닌 규범에 근거짓기 위해 켈젠이 고안
한 근본규범은 사유상으로만 전제된 규범일 뿐이었다 켈젠은 가치판단을 ldquo현실의 행
위가 객관적으로 효력 있는 규범에 맞게 존재해야 하는 대로 존재한다는 판단rdquo이라고
정의함으로써 가치판단이라는 용어 자체를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Reine Rechtslehre 2 Aufl (1960) 16면 이하 또한 켈젠은 규범이 인간의 의지에 의해
제정되는 한 그 규범에 의해 형성된 가치는 어차피 자의적일 뿐이라고 주장한다(18면) 규범과 가치의 관계에 대한 켈젠의 주장에 대해서는 오세혁 ldquo켈젠의 법이론에 있어서
규범과 가치 - 규범과 가치의 상관관계를 중심으로rdquo 법철학연구 제18권 제3호(2015) 97면 이하 참조
8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또한 그렇게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57) 그런 방향에서 이제 해석의 문제를 법
관의 자기이해 문제와 연관시켜 보기로 한다
Ⅷ 해석과 법관의 자기이해
법관은 추상적인 일반규칙을 가지고 공중의 이목을 끄는 개별적인 사건을 처리
하는 사람이다 법관의 의식활동에 의해 일반규칙과 일회적인 사건 사이의 심연이
메워진다 하지만 일반성과 개별성을 결합하는 이 의식과정에 동반하는 고유한 법
학적 방법에 대해서는 앞에서 지적한 대로 확실한 합의는 없다 ldquo리걸 마인드rdquo라
는 말이 풍기는 신비스러운 분위기에는 사법적 결정이 본질적으로 투명한 것이 되기
어렵다는 암시가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다 논리적인 형태만 부여하기로 한다면
한 사건에서 서로 상반된 결론에 이른 두 개의 판결문을 작성하는 것도 불가능
하지 않다58) 방법이 논리에 기초하는 것이라면 이때 논리는 형식논리를 넘어 엥기
쉬가 표현한 대로 ldquo실질에 부합하는rdquo 논리여야 할 것이다 참된 올바른 받아들
일 수 있는 결정에 이르는 실질논리 이 실질에 도달하기까지는 결코 논리적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지적 감행과 어떤 매개가 작용한다
일반규칙을 개별사례에 적용할 때 요구되는 판단자의 능력과 관련하여 가다머
(Hans-Georg Gadamer)는 이런 견해를 밝힌 적이 있다 판단자는 자신이 이미 가
57) 이와는 달리 가치의 ldquo통약불가능성rdquo 때문에 사법은 좋음이나 옳음의 이슈에 대해 실
질적 입장을 취하는 일에 대해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가치의 통약
불가능성에 대해서는 Cass R Sunstein ldquoImcommensurability and Valuation in Lawrdquo Michigan Law Review Vol 92 No 4 (1994) 779면 이하 조홍식 교수는 ldquo가치의 통약
불가능성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이 권리인가의 문제보다 무엇이 공익인가의 문제에서
더 크다rdquo고 지적하면서 기본적으로 가치판단과 관련한 사법통치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사법통치의 정당성과 한계 제2판 박영사(2010) 240면 가치의 통약불가능성에 대한 주장은 가치판단과 관련한 해석기준의 서열화는 불가능
하다는 주장과 같은 노선에 속한다 여기서 통약불가능성 문제를 자세히 다룰 수는
없다 다만 가치의 통약불가능성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통약불가능이 비교불가능을 의미
하지는 않는다는 점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체적인 맥락이 주어지는 경우 무엇이 옳은
지 혹은 그른지에 대해 심사숙고하며 이에 따라 선택하고 그 선택 결과를 받아들인
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정도만 지적하기로 한다 58) 실제로 판사가 판결문을 두 개 써왔다고 주장한 사건에 대한 보도가 있었다 ldquo판결문을
두 개 써왔다rdquo 조선일보 2013 11 21자 기사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7
지고 있어서 적용하기만 하면 된다는 그런 의미의 규범적 실천적 ldquo지식을 소유한
사람rdquo이라기보다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 ldquo지식을 탄생시키는 상황에 직면하는
사람rdquo이라는 것이다59) 일반범주를 개별사례에 적용할 때 요구되는 이 판단력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래서 칸트(Kant)도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ldquo지성은 규칙들
을 통해 배우고 보강할 수 있는 것이지만 판단력은 특수한 재능으로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전혀 아니고 단지 숙련될 수 있을 뿐이다rdquo60)
우리는 올바른 규칙이나 원리를 알고 있지만 막상 이것을 어떤 상황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예컨대 비례성원칙이나 과잉금지원칙에 대한 지식
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은 적정해야 하고 그 수단은 목적달
성을 위해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원칙을 특수한
상황에 lsquo적용rsquo한다고 할 때에 이 원칙이 그 어떤 판단도 배제할 정도로 자족적인
지침 구실을 한다고 느끼기는 어렵다 특정 상황에서 그 수단이 과연 어느 정도일
때가 목적달성에 적정한지는 판단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실천이성의 역
할이다
단의 자리는 이론 경험 양심이 혼재된 실천의 영역이다 판단을 통한 결정이
라는 그 lsquo종국성rsquo으로 인한 실천적 성격은 법학이 다른 어떤 학문분야와도 공유
하지 않는 법학 고유의 특징이다 그래서 법학은 lsquolegal sciencersquo로 불리기보다는
실천지- prudentia-를 함의하는 lsquojurisprudencersquo로 더 자주 불리어 왔을 것이다
해석의 차원에서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도 추상적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
으로는 행위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성과 개별성을 결합하는 해석적
지식은 추상적 이론적 지식들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일반규칙이나 원리
에 근거한 이론적 패턴의 지식과 특정한 상황 내지 맥락을 고려하는 실천적 패턴
의 지식의 이중주를 이룬다 법관이 지니는 통찰력의 특성은 이론과 태도가 함께
간다는 데 있다 그래서 사법적 판단에서는 규칙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 못지않게
사람 즉 법관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사법적 통찰력의 특성은
뭐니뭐니해도 개별 사례를 다룬다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개별적인 것들은 개별적
인 방식으로만 체험되고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들은 무엇
보다도 lsquo지각rsquo과 관계된다61) 즉 그것들은 일반적 체계적 지식의 대상이라기보다
59) Hans-Georg Gadamer Wahrheit und Methode Grundzuumlge einer philosophischen Hermeneutik 3 Aufl J C B MOHR (1972) 300면
60)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 1 백종현 옮김 아카넷(2009) 374면
8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는 우선 지각의 대상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도 사법적 통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쪽은 규칙보다는 오히려 사람 즉 법관 쪽인 것이다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사건에서 법적으로 중요한 사실이 무엇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규칙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어떤 규칙이 중요한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실이 중요한지 알
아야 한다 이 인식과정에서 법관은 불확실한 가운데서 무수한 선택을 감행한다
어떤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 배척하고 어떤 사실은 인정하거나 무게를 부
여하고 신청된 증거조사의 어떤 것은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거부하고helliphellip 사실
에 대한 이 취사선택-자유심증주의-의 결과로 새로운 것이 태어난다 그리고
이것에 의해 법원을 찾아온 사람들의 운명이 갈리는 것이다
법관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필자 생각에
독일의 법철학자 아르투어 카우프만(Arthur Kaufmann)의 해석학적 방법론은 법
관의 자기이해 문제를 해석학적 지평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법관의 해석작업의
본질을 잘 설명해주는 것 같다 가다머 계통의 철학적 해석학(philosophische
Hermeneutik)의 입장을 받아들이면서62) 카우프만은 법해석행위를 통해 포괄적인
의미에서 법관 자신의 인격 중의 어떤 것이 판결에 혼입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
61)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4면 그리고 1심에서
유죄였다가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강력범죄 540건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판단자
의 감지능력 차이가 법판단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힌 김상준 무죄
결과 법 의 사실인정 경인문화사(2013) 62) 텍스트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이해에 관한 연구분야인 해석학(hermeneutics Hermeneutik)
의 어원은 신들의 전령(傳令)인 Hermes라는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설명된다 이때 신의
의도를 인간에게 전하는 과정에서 언어의 제약성 시공간적 간격 전령의 역할 등과 관
련하여 해석의 문제가 생긴다고 본다 ldquoHermeneuticsrdquo Dictionary of Biblical Interpretation Nashville (1999) 497면 독일어의 Auslegung이 해석주체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대상
으로서의 텍스트에 대한 해석을 의미한다면(객관주의) 철학적 해석학에서의 해석
(Interpretation)은 해석주체의 주관성 내지 역사성이 대상에 투사된다는 의미가 강하다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에 따르면 역사적 존재인 인간에게 있어 모든 해석과 이해는 과
거와 현재가 lsquo작용사적으로(wirkungsgeschichtlich)rsquo 중재되는 사건으로서 lsquo선이해rsquo 내지
lsquo선판단rsquo 없이는 불가능하다 가다머는 선입견으로 폄하된 선이해를 재평가하고 이를
통해 근대 이래 lsquo방법rsquo을 통한 진리발견이 주체에 의한 객체의 대상화 내지 도구화를 가져
왔다고 비판하면서 인간경험에 있어서 진리에 이르는 길은 사물의 존재가 스스로 드러
나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해석과 이해는 전승된 존재방식으로서
의 텍스트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며 이는 텍스트 자체가 지닌 역사적 지평과 해석
자의 지평이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만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해석학적 순환 이해의 전제로서의 선이해 작용사 등에 대해서는 Gadamer 앞의 책 II Grundzuumlge einer Theorie der Hermeneutischen Erfahrung 참조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9
로 법관의 결정이 올바른가의 물음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가의 물음과 직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63)
우선 카우프만은 통상적으로 회자되는 독립적인 법관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즉 법 앞에 선 법관이 일체의 정치적 사회적 개인적 영향이나 선입견들로부터 차
단된 채 순수한 객관적 인식에 따라 그 이전에는 자신이 알 수 없었던 사실관계
를 판단하고 그런 다음에 법적 판단을 한다는 식으로 이해하기를 거부한다64)
그런 법관상은 법령집은 일체 해석의 필요가 없이 거의 모든 가능한 법률문제에
대한 대답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상정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법관은 의지가
없는 존재이며 사법권력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여기는 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법에 대한 인식은 단순히 사례를 법률에 포섭시킨다는 의미의 수
동적 행위가 아니고 해석자가 해석대상에 관여하면서 함께 lsquo형성rsquo하는 것이라고
본다 카우프만은 법관의 법형성력에 대한 자신의 견해가 주관주의의 의미로 받아
들여지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는데 왜냐하면 해석자는 텍스트를 지탱하는 모든
전통과 함께 이해의 지평으로 들어간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은 서류의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ldquo아 이런 사건이구나rdquo라고 감을 잡게 되
는데 카우프만에 따르면 이는 법관 자신이 사건 경과를 관찰해서 인지했다거나
언론 등을 통해 사건에 대한 상세한 지식을 얻었다는 뜻이 아니라 유사한 사건들
을 알며 그래서 ldquo선이해(Vorurteil Vorverstaumlndnis)rdquo65)를 가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
해의 전제로서 이런 선이해가 없다면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것이 무엇에 관한 사
건인지 알 수 없고 다른 사례와 비교할 수도 없기 때문에 올바른 판단에 이른다
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66) 이 선이해에 의해 해석은 언제나 해석주체의 자기
이해 즉 자신이 lsquo잠정적rsquo 결과로서 이미 예상했던 것을 논증적으로 근거짓는 활동
이라는 의미에서 ldquo해석학적 순환rdquo 내지 ldquo해석학적 나선구조rdquo 하에 이루어진다
63)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Festschrift fuumlr Karl Peters Mohr Siebeck (1974) 144면 법관의 독립과 양심 주제와 관련한 또 다른
글로는 Kaufmann ldquoGesetz und Rechtrdquo Existenz und Ordnung Festschrift fuumlr Erik Wolf (1962) 357면 이하
64)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4면 65) 해석학적 의미에서의 lsquo선이해rsquo는 일상 언어 관용에서는 lsquo선입견rsquo이나 lsquo편견rsquo 같은 부정
적 함의를 더 많이 지니기 때문에 카우프만은 lsquoVorurteilrsquo 대신에 Vorverstaumlndnis라는 용
어를 쓰기를 권장한다(앞의 글 148면) 카우프만 외에도 이 용어의 선택은 Josef Esser Vorverstaumlndnis und Methodenwahl in der Rechtsfindung 2 Aufl (Frankfurt aM 1972)
66)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7면
90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텍스트를 이해하려는 사람은 말하자면 언제나 초벌 그림을 그리며 특정 의미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텍스트를 읽기 때문에 ldquo텍스트에서 첫 번째 의미가 지시되자
마자 전체의 의미를 lsquo예비투사한다(vorauswirft)rsquordquo67) 그리고 선이해와 관련된 이 예
비투사는-해석학적 lsquo순환rsquo에 의해-원칙적으로 끝없이 검열과정을 거친다는 것
이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도 실제 판단과정에서는 분리
되지 않는다68)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은 시간적으로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단절 관계가 아니라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정제하고 상응하는
관계에 놓인다 즉 사실에 대한 인식 없이 규범적 인식은 불가능하며 또한 규범적
관점 없이 사실만을 통한 사실 확정도 불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법률도 법관의
해석을 만나기 전에는 ldquo잠재적인 가능태로서 주어진 법률rdquo일 뿐 해석학적 순환을
통한 정제 혹은 상응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ldquo진정한 실정법rdquo이 생성된다69) 이렇
게 특정사건을 통해 구체화된 규범(구성요건)과 이 규범을 통해 정해진 사실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법관에게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들과 함께 제3의 요소로서 법관
자신의 선이해 내지 이해 포괄적으로 말하면 그의 인격적 존재가 판단에 혼입
된다
lsquo선이해rsquo는 판단자가 자신의 선이해를 의식하지 못할 때 부정적 요소를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ldquo자신의 판단은 오로지 lsquo있는 그대로다rsquo라고 말하는 즉 lsquo오로지 법
률에만 구속된다rsquo라고 말하는 법관이야말로 실은 종속된 법관이다 왜냐하면 그는
성찰되지 않은 자신의 선이해와 거리를 둘 수 없기 때문이다rdquo70) 즉 법관은 자신
67)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68) 실제 판단과정에서 사실인정과 법률적용이 따로 떨어질 수 없다는 점은 굳이 카우프
만의 이론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실무상으로는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ldquo법률
의 적용과 사실의 인정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법률문제와 결부되어 인정된다 사실의 인정이 진행됨에 따라서 재판관의 머리
속에서는 어떠한 법규를 적용할 것인가 그 법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는 전망이
점차로 서게 되며 당사자 측도 경우에 따라서는 민사인 경우 청구의 취지를 변경할
것인가를 고려하게 되고 형사인 경우 공소사실을 변경하는 경우도 생긴다 요컨대 사실
문제와 법률문제는 실제과정에서 불가분으로 결부되어 있다 helliphellip 양쪽이 불가분으로
재판관의 직관 혹은 재판관의 전인격적인 작용에 의하여 사실의 인정과 법의 적용이
행하여지고 판결 삼단논법은 실제의 심판 과정에서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rdquo(사법
연수원 법조윤리론 35면) 69) ldquo법관의 해석 작업 이전에는 어느 의미에서 진정 법도 진정한 사실도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원자재들(Rohmaterialien)로만 이것들이 존재할 뿐이다rdquo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1
의 선이해를 의식하고 자신을 이데올로기 혐의 앞에 세울 줄 알 때 올바른 판결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ldquo법관이 자신의 선이해와 종속을 의식할수록 그래서 간주
관적 합의에 노력할수록 그는 더 객관적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rdquo71) 그러므로
법관의 주관주의의 위험은 카우프만식으로 말하면 가치판단 같은 성찰적 고려와
관련된 주관적 요소를 방법상의 근거 제시의 맥락에 끌어들이는 법관의 경우보다는
오히려 모든 것이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판결의 주관적
요소를 은폐하는 법관에게서 나타나는 위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학적 순환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법관은 ldquo법률의 입rdquo이 아니라 ldquo인격
으로서 판결을 떠받친다rdquo72) 판결은 법률과 법관의 인격의 혼성물이다 그러므로
법률은 판결을 위한 필요조건이기는 하나 충분조건은 아니라고도 말할 수 있다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순환이론은 법관의 독립과 양심의 문제 차원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법결정의 올바름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
는 정도에 달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자신을 올바르
게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자신의 판단력 경험 능력 인간에 대한 태도 감
수성 명예욕 등등
카우프만의 법해석학적 순환이론이 법관의 독립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이라
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독립은 법관 스스로 관철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론적으로 카우프만의 법해석이론의 의의는 법관이 자신의 선입견을
의식하는 것이야말로 법관의 독립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설득력있게 지적
해주며 그런 방향에서 법관의 법해석 작업을 재평가했다는 데 있다고 말할 수 있
겠다
70)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71) Arthur Kaufmann ldquoDer BGH und die Sitzblockaderdquo NJW (1988) 2581면 이하72) 이 표현은 Karl Peters의 Strafprozess - Ein Lehrbuch (1966) 99면에 나오며 여기서는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9면에서 재
인용했다 이덕연 교수도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에 입각하여 ldquo법관의 법해석작
업은 단순한 lsquo인식작업rsquo이나 lsquo언어분석작업rsquo이 아니라 ldquo구체적인 반성과 자기극복의
노력 속에서 온 인격을 걸고 진행하는 lsquo이해와 실천의 수행작업rsquordquo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앞의 글 35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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Ⅸ 법관은 lsquo하는 사람rsquo인가 lsquo보는 사람rsquo인가
법관의 판단작업을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의 관점에서 주목했던 또 다른
철학자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다 그녀는 ldquo아이히만 재판rdquo을 계기로 판단의
특수한 경우로서의 판단력 문제를 연구했다73) 아렌트는 하드케이스와 연관시켜
법관의 판단력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74) 법관은 우선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을 반추하면서 판단에 임하는데 이때 판단자로서 그는 한 면으
로는 규칙에 따라 판단하라는 lsquo일반적 정의rsquo의 요구에 그리고 동시에 다른 한 면
으로는 정황에 맞게 판단하라는 lsquo개별적 정의rsquo의 요구에 처한다 이러한 상황은
아렌트에 따르면 하드케이스에서 특히 발생한다 이 이중적이고 모순적 요구 상황
을 아렌트는 법관의 판단에 적용되는 특수한 해석학 및 그 조건을 설명하는 출발
점으로 삼는다75) 하드케이스가 아닌 통상적인 사건에서는 이른바 포섭 여부를 판
단하는 것으로도 족하다 일반규칙에의 포섭 여부가 중심이 되는 이 단계에서의
판단력- lsquo규정하는 판단력(bestimmende Urteilskraft)rsquo-은 사실관계에서의 원인
이나 형식적 정의를 따지므로 일방적이고 간주관적 전제 없이도 가능하다 그래서
흔히 법관은 여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법을 해석해야 한다고 말할 때 이는
법적용을 이러한 지배적인 포섭모델에 입각하여 이해한 결과라 할 것이다 그런데
규칙으로부터 오는 어떤 어려움들 때문에 규정하는 판단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즉 포섭이 어렵거나 법흠결 시 또는 가치형량이 요구되는 하드케
이스에서는 법관은 어쩔 수 없이 앞에서 말한 모순문제를 다루어야만 한다 이때
아렌트는 법관이 사유의 확장을 통해 방법상으로 lsquo규정적 판단력rsquo을 스스로 교정
할 수 있는 lsquo성찰적 판단력rsquo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고 이 판단유형의 전환과정을
73) 법적 판단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 삼은 저술은 Hannah Arendt Eichmann in Jerusalem Ein Bericht von der Banalitaumlt des Boumlsen Erw Aufl (Muumlnchen 2001) 그리고 Hannah Arendt Das Urteilen Texte zu Kants Politischer Philosophie Hrsg v R Beiner Uumlbers v U Ludz (Muumlnchen 1998)
74) 아렌트가 염두에 둔 하드케이스는 라드브루흐가 이른바 ldquo법률적 불법rdquo 상태로 규정한
나치의 불법국가 상황으로서 이렇게 극히 예외적인 케이스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하드
케이스에 적용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별적 정의 요구에 부응함
으로써 예컨대 소급효를 금지하는 일반법률에 위배되는 상황과 유사한 갈등상황은 반
드시 극단적 상황에서만 생긴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75)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2 Bde Hrsg v U Ludz amp I Nordmann
따라서 그 척도는 전달가능성이며 거기에 딱 맞는 것은 공통감각(상식)이다rdquo77) 오
늘날 공통감각은 아렌트도 지적했듯이 더 이상 그것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얻고자 노력해야 하는 그 무엇이 되어버린 듯하다 그러나 공통감
각이 무너진 시대를 겪었던 아렌트는 사유의 전환 내지 확대를 위한 진정한 발판
을 다시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에서 구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78)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실천철학의 전통에서는 세계와의 관계 그리고 자기와의 관
계를 공통감각을 척도로 설정해가는 판단자가 lsquo하는 사람rsquo인지 아니면 lsquo보는 사람rsquo
인지 즉 lsquo행위자rsquo인지 아니면 lsquo관찰자rsquo인지를 둘러싸고 의견이 대립되어 왔다 lsquo하
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자가 lsquo정치가rsquo 쪽에 더 가깝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
자는 lsquo철학자rsquo 쪽에 더 가깝다 lsquo하는 사람rsquo은 주로 사회의 일반적 상식 건전한 인
간이해 세론(doxa)을 판단의 척도로 삼는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적 경험은 전체주
의 하에서는 건전한 인간이해도 집단화된 대중감정에 따른 오도된 인간이해 앞에
무너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판단에서 사실로서의 상식이나 합의 또는
법해석공동체 내부의 지배적 제도적 관점이라는 판단 척도만으로는 일반규칙으로
부터 오는 모순을 다루기 어렵다 여기서 판단자는 ldquo확대된 사유방식rdquo을 추구해야
하는데 아렌트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을 lsquo보는 사람rsquo의 판단과 결합시킴으로써 법
관을 위한 사유의 확대를 시도한다79) lsquo하는 사람rsquo이 사실로서의 일반적 상식이나
인간이해 차원에 비추어 판단한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ldquo이
상적 규범적 상식rdquo80)을 추구하고자 한다 판단을 거쳐 법적 효과를 결정하는 법관
76)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을 해석학적 순환이론을 적용하여 분석하면서 칸트의 판단력 비
판에 의거하여 아렌트가 판단력의 특수한 경우로서 법관의 ldquo성찰적 판단력rdquo이라는 새
로운 판단유형을 제시했다고 지적한 연구서로는 Stefanie Rosenmuumlller Der Ort des Rechts Gemeinsinn und richterliches Urteilen nach Hannah Arendt Nomos (2013) 참조
77) Hannah Arendt Das Urteilen 92-93면78) 아렌트가 판단의 차원을 심화시키는 발판으로 삼는 상식은 sensus communis로서
communis opinio와는 다르다는 데 대해서는 Marieke Borren ldquolsquoA Sense of the Worldrsquo Hannah Arendtrsquos Hermeneutic Phenomenology of Common Senserdquo International Journal of Philosophical Studies Vol 21 No 2 (2013) 225-255
79) Hannah Arendt Das Urteilen 76면80) Rosenmuumlller 앞의 책 234면 이하 여기서 아렌트는 상식개념을 이중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에서는 경험적 개념으로 보다 성찰적 판단
단계에서는 규범적 개념으로 사용한다
9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은 관찰자로서 판단하면서 동시에 행위자로서 판단에서 법적 결과를 결정하는
사람이다 관찰자인 동시에 행위자라는 이중적인 역할을 하면서 법관은 자신의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 반추한다81) 이 반추과정에서 법관은 한편으로는 포섭
하는 판단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고려해야 할 관점들을 끌어들이면서
자신의 직책을 마지막까지 수행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통제하면서 자신의 앞서의
(포섭) 판단을 정정해나간다 그래서 법관 자신이 lsquo보는 사람rsquo과 lsquo하는 사람rsquo의 만
남의 장소가 되는 것과도 같다 ldquo이 보는 사람은 모든 하는 사람 안에 자리 잡고
있다helliphellip이 비판적 판단능력이 없이는 행위자 혹은 해결자는 보는 사람으로부터
풀려나 종내는 지각되지조차 못하게 될 것이다rdquo82)
사람들은 자신 일에 있어서는 비당파적일 수는 없다 따라서 ldquo자신의 일에 대한
판단에서는 내면의 심판자 혹은 내면의 법정을 가질 수 없다rdquo83) 그러나 다른 사
람의 일을 반추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필히 비당파적이어야 하며 또 비당파적이 될
수 있다 이때 그는 비로소 내면의 심판자를 가지게 된다 즉 양심의 문제에 처하
게 되는 것이다 판단에 있어서 양심이라는 것 즉 양심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남
의 일에서 ldquo증인rdquo 혹은 ldquo비판적 친구rdquo로서 관찰하고 행위하는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이다84)
아렌트의 성찰적 판단모델은 나치 불법국가 경험의 산물이다 통상의 규칙이 파
괴된 상황 통상의 범죄유형에 포섭되지 않는 극히 예외적인 범죄적 상황에서 법
원은 기존의 판단척도를 해석학적 출발로 삼아서는 안 되고 이때에는 질적으로
동의가능한 합의형식을 찾기 위해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으로 돌아가
진정으로 사유 즉 철학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렌트가 판단을 일반화해주는
거점이자 해석학적 출발점으로 삼은 공통감각(상식) 개념은 칸트철학에서 ldquo비사교
적 사교성rdquo 개념의 위상과 비슷하다85) 이 지상에서 인간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다른 것을 원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모여 살아야만 하는 존재다 이 비사회성 요
청과 사회성 요청의 동시성 때문에 인간에게는 제도적인 안착이 더없이 중요하며
법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실존과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만든다 판단의 기
81) Leora Y Bilsky When Actor and Spectator Meet in the Courtroom Hannah Arendt and Eichmann in Jerusalem G N Arad Hg (Bloomington 1996) 137면
82) Hannah Arendt 앞의 책 85면83) Hannah Arendt 앞의 책 76면 84)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657면85) Rosenmuumlller 앞의 책 1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5
초를 보편적 인간경험에 둔다는 점에서 아렌트가 말하는 판단력은 드워킨의 헤라
클레스와 같은 초인적 천재성을 발휘하는 능력과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86) 아
렌트가 상정하는 이상적인 법관은 철학적이지만 철학자는 아니고 정치적이지만 정
치가는 아닌 사람이다
아렌트는 헌법국가의 권위도 상식개념에 기반을 두고 설명한다 그리고 민주적
정당성의 관점에서 입법의 우위를 인정하는 까닭에 성찰적 판단에 입각한 법관의
검증에는 한계가 있다는 태도를 견지한다87)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렌트가 제시한
법관의 성찰적 판단 유형에 대해서는 다양한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우선 이것이
예외 상황에서 적용되는 판단모델로 상정된 것이며 무엇보다도 ldquo규범적 상식rdquo에
대한 단일한 이해기반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법관 개인의 주관적 정치적 신념
이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길을 피할 수 없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성찰적
판단력은 결국 레토릭에 불과한 것인가 아렌트는 그러나 무엇이 ldquo특정 상황에 맞
는 공통감각(situierte Gemeinsinn)rdquo인지에 대한 공동의 인식은 가능하며 또 법관의
lsquo하는rsquo 판단에 들어있는 정치적 함의를 성찰적 판단력으로 검증하는 것도 가능하
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아렌트가 마지막 검증심급으로 원용하는 것이 바로 판
단에서의 양심의 심급이다 그것이 과연 동의할 수 있는 합의형태로서 충분한지를
스스로 검증하는 이 심급에서 판단자는 명령조로 자기에게 전해지는 소리를 듣게
된다 ldquo멈춰 나는 그것은 할 수 없어rdquo88) 판단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 멈추는 것
이 가능한 이 성찰적 심급에서는 칸트와 달리 할 수 없는 이유로써 결과도 고려
된다 lsquo보는 사람rsquo이 자기 안에서 지켜보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상황은 토마스 아퀴
나스의 양심론에 비추어 다음과 같이 묘사될 수도 있겠다 지적 본성을 가진 인간
존재가 보편법칙에 관한 지식을 개별 행위에 적용하기 위해 판단하고 선택할 때
행위자는 갈등 상황- ldquo그렇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rdquo는
상황-에 처하여 멈칫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데 이때 그는 단지 갈등하고
선택하는 역할만 하지 않고 갈등하고 선택하는 이 과정을 ldquo관찰하고 목격하는 증인rdquo
의 역할도 한다는 것89)
86) 드워킨에 의하면 해석적 탐구는 ldquo어떠한 증명도 허용치 않고 어떠한 수렴도 약속치
않는 탐구rdquo이다(드워킨 정의론 203면)87) Rosenmuumlller 앞의 책 30면88) Hannah Arendt Uumlber das Boumlse Eine Vorlesung zu Fragen der Ethik Hrsg v J Kohn
(Muumlnchen 2003) 52면89) 지적 행위자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자신의 내면의 갈등과 선택과정을 바라보는
9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Ⅹ 방법에서 덕목으로
헌법 제103조는 한 면으로는 헌법과 법률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 면으로 해석자에게 여하한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lsquo제약
의 차원rsquo과 lsquo자유의 차원rsquo을 동시에 담고 있다 법관은 자유로울 때에라도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며 법에 구속될 때에라도 전적으로 구속되지는 않는다는 뜻이
기도 하다 이 lsquo자유와 구속의 변증법rsquo에 비추어 지금까지 논한 주제에 대해 몇 가
지 입장을 정리해 보자 첫째 법관에게 있어서 독립은 확정된 원칙이나 그것자체
로서 달성해야 할 최종목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법관의 독립은 완성형이 아니라
끊임없는 진행형의 과제로서 그 직무수행에 대한 신뢰와 병행하여 점진적으로 이
루어지는 것이다 둘째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에 있어서 구속은 법률에 무조건 복종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판결에 대한 윤리 (내 ) 확신과 함께 법률에 복종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법관이 실정법률에 반하는 결정을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법
관은 객관성을 빌미로 법률 뒤에 숨는 익명적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
미하는 것이다 셋째 독립적인 법관의 양심은 lsquo법과 상충한다rsquo기보다는 lsquo법을 실
한다rsquo는 의미를 지닌다 넷째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서 반추하면서 lsquo하는
사람rsquo인 동시에 lsquo보는 사람rsquo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성찰 인 인물상으
로서만 설정될 수 있다
해석적 탐구는 우리의 이해를 넓히기 위해서 필요하지만 이해에서의 우리의 피
할 수 없는 한계를 깨닫기 위해서도 필요했는지 모른다 엥기쉬는 법해석방법론에
대한 저술의 마지막 부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ldquo방법론에 천착하다 보면
애초의 문제였던 법률로부터 훨씬 더 먼 곳으로 이끌려 간다rdquo 지금까지 필자는
법관의 법해석과 관련하여 방법론의 의의와 한계를 논하고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과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에 비추어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이 법해석론
의 불가결한 부분으로 들어가게 되는 이유도 밝혔다 그리고 해석적 차원에서의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는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행위를 목표로 하는
탐구라는 것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필자는 이 모든 논의들을 매개로 방법론이 우리를 더 멀리 덕
목론으로 데려가는 과정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드워킨의
상황에 대한 이 묘사 부분은 이경재 ldquo토마스 아퀴나스의 양심 개념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375면을 참조했다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7
헤라클레스를 잠시 불러올 필요가 있다 해석문제를 누구보다도 더 진지하게 다룬
드워킨은 마지막에 헤라클레스를 내세운다 주어진 사건에서 무엇이 법인지에
대해 도덕적 의식을 가지고 법실무 전체를 원리정합적으로 정당화하라는 요청에
부응하여 자신의 신념에 기초한 결정을 내리는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의 구성적
해석에서 법관의 양심이 기능하는 국면은 어디일까 송민경 판사는 드워킨의 구성
적 해석론에 입각하여 양심을 구체적 법논증과정의 일부로 포함시키면서 이때 양
심이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라는 지침으로 기능한다고 설명한다90)
그런데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는 지침으로 기능하는 것을 양심이라
고 보게 되면 양심의 문제는 논증적 합리성의 차원 즉 논증의 성공으로 종결짓게
된다 그러나 법적 결정의 정당성 문제는 법관의 입장에서는 논증의 성공 문제로
다루어지지만 법관의 성공적인 논증에 따른 판결의 결과로부터 영향을 받는 시민
의 입장에서 보면 성공적인 논증만으로는 해석이 정당화된다고 볼 수는 없다
성공적인 논증은 법적 결정의 정당화에 필수적이기는 하나 충분한 조건은 되지 못
한다 해석이 궁극적으로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사법적 도덕성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 사법적 도덕성은 헤라클레스가 지침으로 삼는 원리적 도덕성의 실현과는 다른
것이다 만약 패소한 시민이 다른 헤라클레스에게 갔더라면 즉 다른 법원리에 기
초한 신념을 토대로 다른 결정을 내린 다른 법관에게 갔다면 그는 승리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왜 헤라클레스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하
는지에 대한 답이 필요한 것이다91) 헤라클레스가 실무에 대한 최상의 정당화를
도모하는 법적 이상주의자라면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법원 문을 두드린 시민도
어느 의미에서 ldquo법이상주의자rdquo92)이다
법해석 작업의 주관의존성이라는 불가피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재판이라는 특수
한 공적 활동이 법관이라는 특수공직자에 의해 운영되고 유지된다는 것은 시민들
-소송에서 패한 시민들을 포함하여-편에서 보면 법을 해석하는 법관에 대한
신뢰가 전제된다는 것이다 법관의 독립적 활동은 법관의 특권 행사가 아니라 사
90) 송민경 앞의 글 38면 20면91) 사법적 덕목과 연관하여 이 부분을 다룬 글로는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5면 이하
92) 법원 문을 두드리는 시민에 대한 이 표현은 심헌섭 ldquo법조윤리의 좌표 거시적 관점에서 본 전문윤리로서의 법조윤리rdquo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편 法律家의 倫理와 責任 박영사
(2003)에 나온다
9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법과정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응당한 몫이 돌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존중하는 바탕에는 일종의 상호성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 그 또한
시민이기도 한 법관이 동료시민들에 대해 가지는 배려와 존중의 원칙이 그것이다
여기서 사법적 덕목에 대해 자세히 논할 수는 없다93) 예의 성실 신중 절제
용기 공정 겸손 의사소통 능력 형평 시민에 대한 배려와 존중 등등 이것들은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바탕을 이루는 양심의 덕목들일
것이다 양심이라는 단어가 그렇듯이 덕목이라는 단어도 오늘날 진부해진 표현
이며 거의 사라져가는 단어다 윤리적 태도로서의 덕목은 관찰하기도 배우기도
어렵다 그러나 올바른 판단과 결정이 법관이라는 개인을 거치지 않고 법령집
자체로부터 반사적으로 튀어나오지 않는 한 이 덕목들을 내면화하고 지향하려는
태도 없이는 lsquo종국적인rsquo 판단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써 필자는 헌법 제103조를 통해 법해석에서의 방법론의 문제가 덕목론이라
는 다음 과제로 이어진다는 점을 밝혔다고 생각한다
투고일 2016 4 6 심사완료일 2016 5 18 게재확정일 2016 5 20
93) 법관의 개별적인 덕목들과 이것들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는 박은정 강태경 김현섭 바람
직한 법관상의 정립과 실천 방안에 관한 연구 법원행정처(2015) 제5장 참조할 것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9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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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과 비 의 법철학 법문사(2001)
양창수 ldquo바람직한 법관상-기예와 지혜 사이rdquo lt근대사법 및 한성재판소 설립
이성의 활동rdquo ldquo인격의 자기인식rdquo ldquo본래적인 자기 자신으로 불러 세우는 염려의
소리rdquo ldquo너와 내가 함께 잘못을 감시하고 경계하는 공동의 눈초리rdquo ldquo근원적인 자
기의 요구rdquo 등등22) 이런 다양한 견해들은 양심 개념을 형식적인 측면에서 접근하
는지 아니면 내용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지 양심 판단에서 개인의 주관적 요소를
강조하는지 아니면 보편성 내지 소통가능성을 더 중요시하는지 양심의 권위를 내
부에서 찾는지 아니면 외부의 권위를 사회화 내지 내면화한 결과로 보는지 양심
에 따른 결단을 감정의 작용으로 보는지 아니면 이성도 같이 작용하는 것으로 보
는지 등에 따라 여러 갈래를 이룬다
칸트의 근대 주체철학의 영향을 받은 이래 오늘날 양심논의에서는 대체로 양심
의 개인적 주관적 요소가 강조되는 가운데 양심을 개인에게 도덕적 행위 동기를
유발하고 자기반성을 가능하게 하고 개인의 판단과 자기결정에서 최종심급의 역
할을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대표적으로 칸트는 양심을 각 주체로서의 개인의
ldquo내면에 자리 잡은 자율적 심판관rdquo으로 일컬으면서 행위주체가 자기 안에 내재하
21) 이덕연 앞의 글 361면22) 진교훈 외 19인 양심 고 로부터 에 이르기까지의 양심의 의미 서울대학교출판
문화원(2012)
7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는 도덕법칙에 스스로의 행동을 적용시키는 것이 양심이라고 말한다23) 이때 양심
은 스스로 도덕법칙을 정립할 수 있는 선의지를 가진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지니는 일종의 의무의식으로 여겨지며 자신이 자신을 평가하는 것이 양심이기 때
문에 이 주관적 확신을 평가하는 외부의 기준은 없는 셈이다24) 이렇게 양심을 주
관성의 형식으로 가져갈 때는 주관적으로는 옳은 양심에 따른 확신이라 하더라도
인식주체가 가진 한계 등으로 인해 내용상 오류가 가능하다는 문제를 안게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칸트와 달리 양심문제를 개인의 주관적 도덕의식 이상의 차원에
서 다루고자 하는 철학자들은 간주관성의 차원에서 보편성을 지니는 양심개념을
추구한다 이런 방향에서 파악한 양심 개념에 대해 lsquo객관적rsquo 양심이라는 표현을 쓸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양심과 관련하여 lsquo객관적rsquo이라는 표현은 인식
주체 밖에 뭔가가 존재한다는 인식론적 존재론적 가정을 상정한다는 점에서 문제
가 있다 인식 주체 밖에 객관적인 그 무엇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양심이 아니라
윤리규범일 것이다 법관의 양심을 lsquo객관적rsquo lsquo법조적rsquo 양심으로 표현하는 것도 이런
의미에서 부적절하다25)
그런데 철학전통 안에는 양심을 주관성의 형식으로 끌어들여 절대화하는 시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서양에서 근대 이전의 철학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개인의 주
관적 도덕의식을 넘어서는 차원에서 양심을 논하는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우선 어
원상으로도 con-scientia syn-deresis의 con과 syn에서 알 수 있듯이 양심은 우리
내면의 법정에서도 공공성 내지 공동체성 즉 ldquo함께 안다rdquo라는 요소를 지니고 있
었다 이 어원은 양심의 규제적 기능에는 우리가 올바르게 행했는지 혹은 그릇되
게 행했는지를 지켜보는 ldquo공동의 인식rdquo이 있다는 자각이 포함됨을 암시한다 자기
안에서 lsquo보편적인 자기rsquo를 확신하는 과정을 상호인정과정과 연결시키고자 하는 양
심관은 공동의 윤리로서의 인륜성(Sittlichkeit)의 입장에서만 ldquo진정한 양심rdquo이 가능
하다고 보는 헤겔(G W F Hegel)의 양심론26) 타자윤리학에 근거한 레비나스
23) Immanuel Kant 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 (윤리형이상학 정 백종현 역 아카넷(2005) 134면 이하) 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Philosophische Bibliothek A 175 (2003) 215면 이하
24) 김관영 ldquo칸트에 있어서 양심의 문제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144면25) 예컨대 성낙인 교수는 법관의 양심을 ldquo법관이 적용하는 법 중에서 객관적으로 존재하
는 정신을 가리킨다rdquo고 설명한다 앞의 책 713면 이 객관적 정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26) Hegel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sect137 헤겔의 양심론에 대해서는 최신한
ldquo헤겔 야코비 양심의 변증법rdquo 헤겔연구 제23호(한국헤겔학회 2008) 86면 이하 참조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75
(Emmanuel Levinas)의 양심론27) 그리고 행위주체들의 담론적 소통과 사회적 행위
에 대한 책임에서 출발하는 아펠(Karl Otto Apel)의 양심론28)에도 엿보인다 동양의
양심을 ldquo세상 사람을 향해 움직이는 마음rdquo으로 묘사하면서 양심이 있어서 책임있
는 인식의 기능에 주목한 사상가도 있다30)
서양에서 근대를 전후로 양심의 주관화 경향이 강하게 대두된 데에는 종교분쟁
등의 영향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은 가치상대주의라는 시대정신의 영향 하에
양심은 도덕적 판단과 인격을 근거지우는 현상으로 파악되면서도 내용적 측면보다
는 형식적 측면에서 고찰되고 간주관적 논의가능성이 배제된 채 그 논의의 폭이
좁아져 거의 개인의 자기결정권 영역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우리 헌법 제19조의
양심의 의미도 이런 자기결정에서의 최종심급 역할이라는 맥락에서 읽히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살펴봤듯이 주관화의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기 이전의 사유전통에
서는 양심의 자기결정 능력보다는 스스로에게 도덕적 의문을 품는 능력 ldquo함께
안다rdquo라는 책임성 쪽에 더 비중이 놓여 있었다 이런 사유배경에 비추어 본다면
헌법 제19조의 양심은 근대 주관화의 영향의 산물로 이해할 수 있고 이에 비해
헌법 제103조에서 법관과 관련하여 언급된 양심은 근대 이전의 ldquo함께 안다rdquo의 사
유전통의 흔적을 지닌 개념으로 볼 수 있다
Ⅳ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의 완화 경향
앞에서 살펴봤듯이 역사적으로 법관의 독립이념은 법관은 오로지 법률에만 구속
된다는 것을 전제로 탄생했다 그리고 이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은 법률의 총합으로
27) 레비나스에 대해서는 김연숙 ldquo레비나스의 양심론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제3부 제3장 참조28) Karl Otto Apel From a Transcendental Semiotic Point of View Manchester University
Press (1998) 52면 259면 양심이 지니는 공적 관찰이나 감시기능 부분에 주목한
Apel에 대해서는 백춘현 ldquo아펠의 양심론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344면 이하29) 맹자의 양심론에 대해서는 장승희 ldquo맹자의 양심론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제1부 제1장
참조30) 왕수인은 양심과 양지(良知)라는 표현을 함께 썼다고 한다 ldquo남의 아픔을 느끼기 위해
서는 예민하게 lsquo생각rsquo해야 한다rdquo 여기서는 이혜경 ldquo왕수인의 양심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79면에서 재인용
7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서의 법질서는 통일적이고 자기충족적인 시스템을 이룬다는 가정에 기초하고 있
었다 그러나 이 가정은 그 자체로 애초 한계를 지닌 것이기도 하지만 법의 생태
적 기반이 변하면서 이 법률구속원칙은 점차 상대화 내지 약화되는 방향으로 나아
가게 되었다 입법자를 기다릴 수 없는 빠른 사회변화 자유법운동 입법양의 폭발
적인 증대 일반조항 도입 등 입법스타일의 변화 복지국가 대두 사회정의의 요구
헌법재판 활성화 등의 흐름은 법관의 법률구속메커니즘이 작동하기 어려운 여건을
만들어 가게 된 것이다 이른바 lsquo법관법rsquo의 대세 흐름이 나타난 것이다 특히 지난
수십 년간 확대된 입법영역은 형법과 같은 규제입법과 달리 사회복지생활보호
건강 증진남녀평등청소년보호장애인보호적극적 평등조처 등처럼 정치적 비전과
목적을 담은 한마디로 정책촉진적 성격을 지닌 법률들이었다 이와 같은 야심찬
입법스타일은 법적용단계에서 법관이 바람직한 제도 및 정책 내용에 대해 고려케
함으로써 목적적 법논증으로 기울게 하고 구체적 이익을 비교형량하는 심사방식
을 확대시키는 등 좁은 의미의 실정법률 해석보다는 법형성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 것이다31) 특히 이 흐름은 20세기말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법실증주의에
제동이 걸리는 분위기와 겹치면서32) 법철학에서도 전통적인 포섭논리나 삼단논법
은 실제로 법관들에게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지적과 함께 법관의 법률구속원
칙에 회의적인 성향의 논의들이 강세를 보이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법발견 과정에
대한 심화된 통찰을 통해 lsquo선이해rsquo의 문제를 재평가하게 만든 철학적 해석학과 문
언의 의미론적 구속력에 회의를 제기케 한 언어이론은 법철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들 이론에 입각하여 이제 법의 흠결 시와 같은 예외적인 상황에서 법관
의 법형성이 불가피하다는 수준의 주장을 넘어 법률텍스트를 통한 구속가능성 자
체를 의문시하는 주장까지 나오게 되었다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의 실현에 대한 기대가 점점 약화되고 그래서 누구의 표현
대로 법률이 해석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해석이 법률을 지배한다고 말할 정도가
31) 사회변화에 따른 법관의 역할 변화에 대해서는 박은정 왜 법의 지배인가 돌베개(2010) 제6장을 참조할 것
32) 울프리드 노이만(Ulfrid Neumann)은 지난 2015년 10월 1일 고려대학교 초청강연에서
ldquo실증주의 이후 시대의 법률과 판결rdquo이라는 주제로 발표하면서 법학적 사고가 ldquo법실
증주의 이후의 시대rdquo로 넘어갔다고 진단하고 그 배경으로 세계화 등의 흐름으로 국제
상거래관습법(lex mercatoria)처럼 입법당국에 의한 제정이 아닌 사회적 실천에 의거한
법제정 사례 법원리의 중요성 대두 인권사상 증대 등을 들고 있다 그러면서 법실증
주의로부터 멀어지는 만큼 법관의 법률구속원칙도 상대적으로 완화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77
되면 다시 제기될 수밖에 없는 물음이 바로 입법기관과 법적용기관 사이의 권력
균형 문제다 이 권력 균형은 특히 법 이라는 개인에 의해 매개된다는 점에서 문
제가 된다 오늘날 ldquo사법국가rdquo ldquo법관공화국rdquo ldquo사법엘리트rdquo ldquo사법의 정치화rdquo 등을
지적하는 소리는 입헌민주주의 기획의 초기단계에서 일찍이 해결했다고 여겼던
문제들이 다시 등장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법관의 법률구속의 전제 및 그 가능성
법원의 중립성 법관의 민주적 정당성 사법관료주의 등의 문제가 그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물음이 떠오른다 해석자의 자유를 제
한하고 법관의 법률구속을 보장할 확고한 법해석방법론은 가능한가 법관의 법률
구속에 관한 기술적 제도적 보장책은 가능한가 필자는 이 물음들에 대체로 회의
적인 전망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물론 법해석방법의 무용론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법률에 구속되는 법관상이 약화되고 앞으로도 점점 더 약화될
것이라는 전망 하에 어느 때보다도 더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될 법관의 독립 문제
를 염두에 두면서 법해석방법론의 문제를 재검토하고자 한다
Ⅴ 법해석방법론의 문제점과 한계
법이 있는 곳에 해석이 있다 법학의 강점도 해석학적 잠재력에 있다 법관의 임
무는 법률을 적용하기 위해 법문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법해석방법론은 법
해석과정에서 법관의 자유에 일정한 제약을 가하고 법관의 법률구속이념을 실현하
기 위해 고안되고 발전된 것이다 해석에서는 무엇이 최선의 해석인지를 둘러싸고
언제나 논쟁과 불일치가 생기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해석작업은 인간의 판단과 행
위의 영향 하에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법관이 따라야 하는 법률 자체에는 이미 법적용자를 법률에 대해 어느 정도 독
립적이게 만드는 여러 표현방식들이 들어 있다 예컨대 lsquo야간rsquo lsquo소음rsquo lsquo위험한 물건rsquo
lsquo적절한 조치rsquo 등 개념의 내포와 외연이 확정적이지 않은 법개념들이 대표적이다
이런 불확정적 개념들은 법명제의 구성요건 단계에만 들어 있는 게 아니라 법률효
과에서도 등장한다 이른바 lsquo규범적 개념rsquo들도 그런 표현방식에 속한다 lsquo음란한rsquo
lsquo건전한rsquo lsquo불명예스러운rsquo 등의 개념들은 기본적으로 지각가능한 대상을 서술하는
개념과 대비하여 의미내용이 가치판단에 근거할 때만 파악된다는 점에서 규범적
이다 이때 가치판단은 반드시 주관적 개인적 평가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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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의 평가도 포함할 것이지만 어쨌든 이 판단과 관련한 어느 정도의 불확정성은
감수해야 한다 법관의 법률 구속 의무를 느슨하게 만드는 이런 개념군에는 재량
도 포함된다 오늘날 재량개념은 ldquo법적으로 구속되는rdquo 재량으로 이해되지만 이때
판단의 여지 안에 들어오는 여러 대안들 가운데서 최종 혹은 최선의 대안을 확정
하는 데 있어서 결정자의 개인적 확신을 허용할 수밖에 없다 일반조항도 표현 그
대로 높은 일반성을 띰으로써 법적용자로 하여금 자기 앞에 놓인 사례를 광범위한
사례집단들에 적응시켜가면서 법률효과를 귀속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33)
위에서 언급한 불확정 법개념이나 규범적 개념 등을 적용하는 데는 가치판단
요소가 수반된다 이런 개념들을 적용할 때 법관은 일정한 범위 안에서 입법자를
대신하여 가치판단 내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것이다 또 법관
은 법의 lsquo흠결rsquo을 보충하거나 법질서 안에서 이따끔 발견되는 lsquo오류rsquo를 수정해야
할 부득이한 상황에도 처하게 된다 이때는 법관은 스스로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찾아 나서야 한다 lsquo법의 일반원칙rsquo lsquo법의 정신rsquo lsquo평균인의 척도rsquo lsquo비례성원칙 lsquo이익
형량rsquo 등은 이때 법관이 의존하는 사유 장치들이며 이것들을 원용하는 데도 가치
판단적 요소가 개입한다 이때 판단자는 무엇이 사실상 효력을 갖고 있는 윤리적
견해인지 확인해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사실로서의 합의가 올바른 법적 결론에
도달하게 하는지에 대해서도 숙고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법적용자는 때로는 평
균인 테스트 같은 객관적인 척도에 의지하지만 또 때로는 개인적 견해를 더 많이
펼칠 수 있는 일정한 판단의 여지를 가지게 된다
이렇게 해석과정에서 불가피한 lsquo판단의 여지rsquo 즉 해석과정에 불가피하게 개입되
는 가치판단 요소 때문에 ldquo해석의 건전성rdquo을 둘러싸고 논란이 생기고 해석의 정당
화와 관련하여 회의가 생긴다 가치판단과 관련된 부분이 불가피하게 주관적 요소
를 끌어들이게 되고 이로 인해 법규범의 효력이 상대적이고 불확실한 영역으로 떨
어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단자는 자신의 결론이 불확실성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자신의 해석에 대한 정당화를 포기할 수 없다 법을
해석한다는 것은 ldquo그 법률을 특정 사안에 적용하는 것을 정당화한다는rdquo34)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확정적인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사례에서도 요구되는
33) 불확정적 개념 규범적 개념 재량 일반조항과 관련한 자세한 설명은 칼 엥기쉬 법학
방법론 안법영윤재왕 옮김 세창출판사(2011) 182면 이하에 잘 정리되어 있으며 필
자도 이 부분을 참조했음을 밝힌다 34) 닐 맥코믹 로버트 서머즈 ldquo해석과 정당화(上)rdquo 박정훈 역 법철학연구 제5권 제2호
(2002) 18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79
개인적인 단은 도덕적 상대주의자들이 말하는 개인적인 취향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해석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올바른 해석기준을 수립하고자 법률가들은 각
기 지금까지 다양한 해석방법에 의존해 왔다 올바른 해석을 위한 확고한 기준을
수립할 수 있다는 것은 찬성하는 혹은 반대하는 해석논거들 사이의 상대적 비중을
결정하는 명확한 규칙을 수립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즉 어느 한 해석
논거가 다른 해석논거에 의해 배제되는 조건이나 선택된 해석을 정당화하는 데
필수적인 한 논거가 다른 논거보다 우월하기 위한 조건 한 논거에 누적을 통한
비중이 부과되는 조건 등을 제시해줄 일관된 정보와 지침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
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여러 해석방법들 사이에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다는 것
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시도는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했다 동일한 유형의 논거일지
라도 각각의 정당화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비중을 갖게 될 뿐더러 언어적 해석
방법 체계적 해석방법 목적적 해석방법 등으로 제시되는 여러 해석방법들이 한
줄로 세우기에는 한마디로 너무 이질적이다35) 물론 이들 해석논거들의 상호작용
을 검토하면서 잠정적인 서열을 제시하는 것은 가능할 수도 있다36) 그러나 이 서
열은 기껏해야 ldquo해석을 위한 노력의 경제성 원리rdquo 정도를 말해 줄 뿐이기 때문에
쉽게 바뀔 수 있다37)
드워킨이 옳게 지적한 대로 기본적으로 가치판단과 관련된 해석방법들은 위계
적일 수 없고 ldquo상호지지적rdquo인 관계에 놓일 뿐이다38) 이 때문에 방법론적 규칙을
세우려는 시도는 언제나 무망해지는 것이다 또한 법해석에 있어서 언어란 단어의
의미를 식별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 행위의 의미를 식별
하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론 풀러(Lon Fuller)가 지적한 대로 ldquo언어
를 통한 의사 전달은 어느 한 사람으로부터 다른 사람에게로 의미가 든 상자를 발송
하는 식rdquo39)은 아닌 것이다
35) 울프리드 노이만 ldquo실증주의 이후 시대의 법률과 판결rdquo 강연문(주 32) 노이만에 따르
면 예컨대 체계적 해석 방법에 따른 논거도 그것이 논리적 일관성 획득의 맥락에서
인지 아니면 가치평가의 일관성 보장이라는 맥락인지에 따라 전혀 다른 비중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36) 대체로 언어적-체계적-역사적-목적론적 해석방법의 순서로 언급되는 데 대해서는 심헌섭
분석과 비 의 법철학 법문사(2001) 217-218면37) 맥코믹과 서머즈는 비교법적 연구결과를 통해 올바른 해석을 위한 지침 수립은 어느
국가의 법체계에서도 지금까지 성공적이지 못함을 밝힌다(앞의 글 210면)38) 로널드 드워킨 정의론 박경신 옮김 민음사(2015) 309면
80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결론적으로 해석방법론으로부터 법관은 불확실성을 떨쳐 낼 수 있는 확실한 정
보제공을 기대하기 어렵다 해석논거를 위한 결정적인 기준을 제공하는 해석방법
에 대해 불안정한 형태로나마 이론적 합의를 찾기 어렵다면 엥기쉬의 지적대로
해석방법론은 공중에 떠있는 상태다40) 법학에서 방법론의 융성은 역설적으로 법
학이 이 부분에 취약하다는 암시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해석자로서의 법관을
최종적으로 인도하는 전략은 무엇일까 다음과 같은 고민을 들어보면 적어도 그것
은 방법론상의 합의에 대한 기대 같은 것은 아닌 것 같다 ldquo우리들은 일정한 결론을
내리고도 그 결론이 가장 적절sdot타당한 것이라고 보증받을 수 없다 그 결론을 낸
시점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들은 자기의 결론이 그러한 불확실성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그것을 자기의 전인격적 책임 아래 끝을 내고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비판과 평가에 맡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rdquo41)
해석방법론이 공중에 떠있는 상태라면 법관을 법률에 구속시키기 위한 방법론
적 보장책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런 가운데 ldquo자기의 전인격적 책임 아래rdquo ldquo사려
깊고 균형잡힌 총체적 관념rdquo ldquo인생 그 자체로부터 지식rdquo 등에 대한 호소를 듣는다
이것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법발견으로 불리든 법인식 혹은 법형성으
로 불리든 법적으로 올바른 결정을 이끌어낸다는 것은 순순히 lsquo앎rsquo의 문제만은 아
니라는 것이다 실천철학의 전통 용어를 빌어서 말한다면 그것은 이론지 이상의
실천지를 요구하는 활동이다 즉 법관의 해석활동은 이론지와 실천지를 결합하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이 주제로 다가가는 한 우회로로서 우선 지적 활동으로서의
법관의 해석활동의 특성에 대해 살펴보자
39) 론 풀러 법의 도덕성 박은정 옮김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2015) 314면 40) ldquo그러나 해석론 전체에 대한 확고한 이론적 토대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서열관계에
관한 모든 이론들은 여전히 공중에 떠 있다rdquo 엥기쉬 앞의 책 137면41) 사법연수원 법조윤리론(2014) 31면 그밖에 Benjamin N Cardozo The Nature of
Judicial Process Yale University Press (1921) ldquo언제 하나의 이익이 다른 이익을 능가
하는지를 묻는다면 hellip 경험과 연구와 성찰로부터 요컨대 인생 그 자체로부터 그 지식
을 얻지 않으면 안된다고 답할 수 있을 뿐이다rdquo(여기서는 법조윤리론에서 재인용) 또한 맥코믹서머즈 ldquo해석과 정당화(下)rdquo 박정훈 역 법철학연구 제6권 제1호(2003) 348면 ldquo해석은 간주관적으로 승인된 모든 법적 가치들에 대하여 사려깊고 균형잡힌
총체적 관념을 획득하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제대로 행해질
수 있다rdquo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1
Ⅵ 법관의 해석활동 실증주의의 대척점
앞에서 언급한 대로 해석에서는 무엇이 최선의 해석인가를 둘러싸고 언제나
논쟁과 불일치가 따른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누군가가 텍스트를 해석한다고
말하는 순간 그는 실증주의의 대척점에 서게 된다 실증주의과학의 의미에서는 논
쟁의 여지가 있는 것은 원칙적으로 과학일 수 없기 때문이다 법실증주의사고에서
해석 문제가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법을 근본규범에 입각
한 자기준거적인 구조로 보는 한스 켈젠(Hans Kelsen)의 순수법학이나 법적용과정
을 규칙에 의해 지도되는 과정으로 보는 하트(H L A Hart)의 분석법학에서 해석과
관련한 어려움은 다루고 있지 않다42)
켈젠은 순수법이론(Reine Rechtslehre)에서 정당한 해석만이 허용된다는 주장
은 허구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면서 해석의 건전성 문제나 정당화 문제를 법이론
안에서 다루기를 거부한다 법을 자기준거적인 것으로 보는 관점은 한마디로 해석
(행위)주체의 입장을 부정하는 것이다 켈젠은 법단계설을 바탕으로 법적용을 상위
규범의 수권에 의해 하위규범이 구체화되는 과정으로 보고 여기에 헌법의 수권을
받아 법률을 제정하는 입법자도 포함시킨다43) 이에 따라 법적용도 입법의 한 형
태로 설명된다 법관에 의한 법형성의 동기는 이를테면 입법부가 유독 다른 법률
이 아닌 이 법률을 통과시키는 동기와 같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켈젠은 판단활동
에서 인지적 요소와 의지적 요소를 엄격하게 구별하면서 법관의 판단활동을 순전
한 의지활동으로 보고 이 법관의 활동에 대해서만 (유권)해석이라는 표현을 사용
하고자 한다 그리고 법학적 해석에 대해서는 법규범의 가능한 의미들을 밝히는
것으로서 법률에 따른 결정의 범위를 제한하는 정도의 의미를 부여한다
법단계설에 따르면 상위규범이 정한 일정한 범위 안에서의 수권에 따라 하위규
범이 작용한다 이때 상위규범의 수권은 모든 세부적인 내용들에 대해서까지 정해
42) 켈젠은 순수법이론(Reine Rechtslehre) 제1판(1934) 제6장에서 해석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부분과 거의 같은 논문 ldquoZur Theorie der Interpretationrdquo이 심헌섭 젠법이론선집 법문사(1990) 97면 이하에 실려 있다 윤재왕 교수는 Reine Rechtslehre 제1판과 제2판
(1960)을 비교하면서 해석방법으로부터 오는 규범적 구속력을 일체 거부하는 켈젠의
입장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윤재왕 ldquo한스 켈젠의 법해석이론rdquo 고려법학 제74호(고려
대학교법학연구원 2014) 525면 이하 하트의 대표적인 저서 법의 개념의 색인 항목에는
lsquo해석rsquo이 빠져있다 43) Hans Kelsen Allgemeine Staatslehre (Berlin 1925) 231면 이하
8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그래서 ldquo상위단계의 법생성으로부터 하위단계의 법생
산으로의 전환은 단지 상위단계가 정해 놓은 범위를 채우는rdquo 활동으로서 이때
ldquo언제나 상위단계에는 없는 내용적 요소가 하위단계에 추가되어야만rdquo 한다44) 이
내용을 채우는 부분과 관련하여 상대적 불확실성이 생기는데 켈젠은 이 문제를
ldquo자유재량rdquo의 문제로 다룬다45) 이는 하트가 규칙의 체계로서의 법체계를 완결된
구조가 아닌 열린 구조로 봄으로써 상대적 불확실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법관의
재량사항으로 보는 것과 같다 하트의 경우 중심부와 주변부라는 극히 단순화된
이분법을 끌어들여 이 불확실성 문제를 처리하고자 했다면 켈젠의 경우는 인식작
용과 의지작용의 이분법을 끌어들임으로써 이 문제를 처리하고자 한 것이다
판결을 법관의 의지활동으로만 이해하는 입장을 취하게 되면 법관에게 결정에
대한 근거 제시 요청을 할 수 없게 된다 마치 신의 심판에 대해 근거 제시를 요구
할 수 없듯이 말이다 결국 켈젠의 법이론상으로는 해석은 법학의 문제가 아니며
그러므로 분석적 법실증주의와도 무관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46) 이런 이유에서 그
는 정당한 해석만이 허용된다는 주장이나 해석방법만으로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에
이를 수 있다는 주장을 거부하면서 심지어는 상위규범에 제시된 범위를 넘어서는
해석의 효력조차 적극적으로 인정함으로써 어느 의미에서는 해석이론의 존재기반
자체를 무너뜨린다47)
켈젠이나 하트가 법이론에서 해석의 의미를 축소한 이면에는 이분법이라는 과도
한 사유의 단순화가 놓여 있다 그러나 켈젠이 생각하는 것처럼 판단에서 인식적
요소와 의지적 요소의 확고한 경계가 유지되는지는 의문이다 또 중심부와 주변
부에 대한 하트의 주장도 지나친 단순화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어쨌거나
켈젠이 합리적인 해석방법을 추구하는 법이론의 효용가치를 한껏 떨어뜨렸다고
해서 이제 어차피 정답은 없으니 법대에 앉은 법관은 자기 임의로 무엇이든 해도
된다고 켈젠이 주장했을 리는 물론 없을 것이다 법이론의 과도한 정당성 주장을
거부하는 데서 오히려 순수법학의 비판적 잠재력을 찾을 수 있다고 보는 학자들은
여기서 켈젠이 강조한 순수화 즉 탈정치화는 법학에 관한 것이지 법 자체에 관한
44) Kelsen Allgemeine Staatslehre 243면 여기서 번역은 윤재왕 앞의 글 535-536면에서
재인용45) Kelsen 앞의 책 243면 이하46) 켈젠에 있어서 법해석은 이론상으로는 법학보다는 정치학이나 사회학에 속하는 문제
에 더 가깝다고 지적한 견해에 대해서는 론 풀러 앞의 책 312면 47) 이에 대해서는 윤재왕 앞의 글 553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3
주장이 아니었음을 상기시킨다48) 즉 법 자체는 결코 정치와 분리될 수 없다는
점에서 법실무에 대한 학문이론의 무가치성을 주장하는 순수법학은 실무의 법
적용자로 하여금 자신의 활동이 정치적 활동임을 깨닫고 책임을 느끼게 하는 계기
를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윤재왕 교수도 ldquo켈젠 해석이론의 배후rdquo로 들어가 방법
이론으로부터의 어떤 구속력도 거부되는 데서 생기는 공백을 켈젠이 법관 자신의
자기이해와 책임성 문제로 채운다고 지적한다 ldquo법관의 판결은 결코 순수한 것일
수 없으며 그런데도 자신의 판결이 순수한 인식의 소산이라고 강조한다면 이는
정치적 책임의 회피이고 동시에 이데올로기적이라는 혐의에 노출되지 않을 수
없다rdquo49) 이 문구가 켈젠 자신으로부터 나왔다면 아주 좋았을 것이다 자신의 직
무의 중요성과 책임에 대한 실천적 깨달음은 해석의 정당화를 목표로 하는 인식적
노력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켈젠의 순수법이론의 기획은 서로
붙어 있는 양면을 떼어 놓으면서 이것을 다시 붙일 수 있음을 보여주려 한 것일까
Ⅶ 법관의 해석활동 가치판단과 lsquo정답테제rsquo 문제
켈젠처럼 실증주의적 사고에 따르든 아니면 비실증주의적 사고에 따르든 가치
판단 문제에서 해석방법만으로는 하나의 정당한 결정을 도출할 수 없다고 생각한
다면 이는 해석의 차원에서 가치에 대한 이해 시도는 진리 추구와는 무관하다는
주장으로 귀결되는가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해석대상의 의미에 대한
관심과 최선의 이해에 대한 관심은 아무래도 진리 추구라는 목표를 향한다고 봐야
한다 법적 결정은 물론 법관의 권한에 속하지만 그것을 정당화해주는 원천은 법
관이라는 lsquo지위rsquo가 지니는 형식적 권한이 아니라 판결이 정당하다는 근거 제시에
있다 법판단을 정당화해주는 모델은 울프리드 노이만(Ulfrid Neumann)이 지적한
대로 권위를 통한 정당화모델보다는 진리를 통한 정당화모델에 더 가깝다50)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재판활동은 엄연히 사법권이라는 공권력의 작용이라는 점에서
독립적인 법관의 재판활동을 그 ldquo계획적이고 진지한 진리 탐구 활동rdquo적 측면 때문
48) 법학의 탈정치화를 ldquo정치적 허무주의rdquo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데 대해서는 켈젠 ldquo순수법학이란 무엇인가rdquo 젠법이론선집 280-282면
49) 윤재왕 앞의 글 559면50) 울프리드 노이만 ldquo법 진리 권위rdquo 2013 4 6 한국법철학회 강연문 참조
8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에 학문의 자유의 한 표현으로까지 보려는 것은 무리다51)
오늘날 가치상대주의 분위기는 실천적 물음에서 진리 도달가능성에 대한 회의를
과장한다 그러나 진리가 뭐냐는 빌라도의 물음에 비록 확신에 찬 대답을 못한다
하더라도 법에서 진리 내지 정당성 추구의 포기는 파국을 의미한다 국가권력
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도 진리라는 규제이념이 전제되기 때문
이다 독립된 사법부가 심급구조와 집단적 의사결정의 형태로 스스로의 시정 기구
를 가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물론 진리에 대한 주장은 잠정적이고 수정가능하다
lsquo참이냐 거짓이냐rsquo는 오로지 서술적 명제에만 한정하여 검증될 뿐이라는 협소한
학문관을 따른다면 법학은 학문 안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법
학이 그런 협소한 학문관을 받아들여야 할 필연성은 없다 법해석자는 자신의 해
석적 판단이 진리라는 주장을 무한정 내세우지는 못하면서도 진리 추구를 피할
수 없다52) 론 풀러(Lon Fuller)의 지적대로 ldquo법이론이 최고의 법적 권위를 엄격하
게 정의하는 일에 큰 비중을 두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이 점이 모호해지면 필경
전체로서의 법체계가 와해될 수 있다rdquo53)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법을 민주
주의의 언어로 설명하는 오늘날 의회와 행정처럼 다수결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기
관도 아닌 사법의 소수 전문 엘리트의 지배를 권위모델만으로 정당화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법을 준수하는 시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시민들은 자신에게 유죄
판결을 선고한 세속의 법관에게 그 유죄판결의 근거를 알고 싶다고 요구할 수 있
으며 물론 당연히 요구한다
법관은 판결에서 논증을 통해 최상의 근거 제시가 이루어진 결정을 해야 한다54)
51) ldquo일부 사람들 중에는 이러한 법원의 권력기관적 성질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
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helliphellip 가끔 법관의 일을 조용한 방에서 소송서
류를 꼼꼼하게 읽어 파악한 사실에다가 법을 논리적으로 적용하는 단순히 지적(知的)인 작업이라는 시각에서만 말씀하시는 분을 만나면 그 분에게 재판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법대에 앉아 있는 법관이 어떻게 보이는지 물어보고 싶어집니다rdquo 양창수 ldquo바람직한 법관상 - 기예와 지혜 사이rdquo lt근대사법 및 한성재판소 설립 120주년 기념
1895sim2015 소통컨퍼런스 역사에 비춰 본 바람직한 법관상gt 자료집(서울중앙지방법원 2015 5 11) 15면 ldquo계획적이고 진지한 진리 탐구 활동rdquo이라는 표현은 라드브루흐에서
나온다 구스타브 라드브루흐 법철학 최종고 옮김 삼영사(2011) 238면 52) 드워킨 앞의 책 208면 53) 론 풀러 앞의 책 211면 풀러의 문장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ldquo하지만 이 경우도
위로부터의 지시 또한 목적의식에서 비롯되는 지적 활동을 완전히 생략할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rdquo54) 물론 진리 요청과 관련하여 개별 법관의 관점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며 민주국가에서
포기될 수 없는 진리 요청은 법학을 포함한 법체계 전체로 하여금 진리 요청에 어떻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5
이때 정당한 근거 제시가 이루어진 결정과 관련하여 그것이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
이라는 주장을 펼 수 있는가 앞에서 검토한 대로 켈젠의 순수법이론은 그런 주장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이에 비해 드워킨은 법적 판단에 있어서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이 원칙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ldquo정답테제rdquo로 불리는 이 주장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학자들이 지적한 대로 존재사실에 대한 주장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하나의 ldquo규제이념rdquo으로 받아들이는 게 맞는 것 같다 즉 드워킨의 정답테제
는 ldquo유일하게 정당한 결정rdquo이 존재한다는 데 대한 이론적 탐구라기보다는 실무에
서의 법관의 주관적 태도에 부합하는 이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법관은 자신의 판결활동과 관련하여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모든 사건
에서 오직 하나의 결정만이 정당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 정답에 가까이 가기 위
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55)
드워킨의 말대로 가치판단이 참일 때는 그냥 참일 수가 없으며 그것이 참인
이유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즉 충분한 논거가 존재할 때 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라면 이러한 논거지움의 과정은 자명한 공리적
토대나 그런 토대 위에서 확립된 규칙이나 원리적 서열에 따라 명확하게 밝힐 수
없다 이런 불확실한 가운데도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논거지움은 포기될 수
없다 이 끝없는 정당화 부담 때문에 켈젠은 규범의 효력 근거에 관한 논의를 가
치에 관한 논의와 절연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물론 성공하지
못했다56)
가치판단을 해야 하는 부분이 법문화에서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요소로 작용할지
아니면 그 반대로 작용할지는 판단자로서의 법관의 역량과 연관하여 논해야 할 것
이다 필자는 가치판단적 요소가 법문화에서 당연히 긍정적 요소로 작용해야 하며
게 부응하는지 묻게 한다 따라서 사법부 외부에서 행하는 사법비판의 길이 열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대해서는 노이만 앞의 강연문 참조55) 노이만 앞의 강연문56) 규범의 효력을 불명확하고 상대적인 가치가 아닌 규범에 근거짓기 위해 켈젠이 고안
한 근본규범은 사유상으로만 전제된 규범일 뿐이었다 켈젠은 가치판단을 ldquo현실의 행
위가 객관적으로 효력 있는 규범에 맞게 존재해야 하는 대로 존재한다는 판단rdquo이라고
정의함으로써 가치판단이라는 용어 자체를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Reine Rechtslehre 2 Aufl (1960) 16면 이하 또한 켈젠은 규범이 인간의 의지에 의해
제정되는 한 그 규범에 의해 형성된 가치는 어차피 자의적일 뿐이라고 주장한다(18면) 규범과 가치의 관계에 대한 켈젠의 주장에 대해서는 오세혁 ldquo켈젠의 법이론에 있어서
규범과 가치 - 규범과 가치의 상관관계를 중심으로rdquo 법철학연구 제18권 제3호(2015) 97면 이하 참조
8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또한 그렇게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57) 그런 방향에서 이제 해석의 문제를 법
관의 자기이해 문제와 연관시켜 보기로 한다
Ⅷ 해석과 법관의 자기이해
법관은 추상적인 일반규칙을 가지고 공중의 이목을 끄는 개별적인 사건을 처리
하는 사람이다 법관의 의식활동에 의해 일반규칙과 일회적인 사건 사이의 심연이
메워진다 하지만 일반성과 개별성을 결합하는 이 의식과정에 동반하는 고유한 법
학적 방법에 대해서는 앞에서 지적한 대로 확실한 합의는 없다 ldquo리걸 마인드rdquo라
는 말이 풍기는 신비스러운 분위기에는 사법적 결정이 본질적으로 투명한 것이 되기
어렵다는 암시가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다 논리적인 형태만 부여하기로 한다면
한 사건에서 서로 상반된 결론에 이른 두 개의 판결문을 작성하는 것도 불가능
하지 않다58) 방법이 논리에 기초하는 것이라면 이때 논리는 형식논리를 넘어 엥기
쉬가 표현한 대로 ldquo실질에 부합하는rdquo 논리여야 할 것이다 참된 올바른 받아들
일 수 있는 결정에 이르는 실질논리 이 실질에 도달하기까지는 결코 논리적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지적 감행과 어떤 매개가 작용한다
일반규칙을 개별사례에 적용할 때 요구되는 판단자의 능력과 관련하여 가다머
(Hans-Georg Gadamer)는 이런 견해를 밝힌 적이 있다 판단자는 자신이 이미 가
57) 이와는 달리 가치의 ldquo통약불가능성rdquo 때문에 사법은 좋음이나 옳음의 이슈에 대해 실
질적 입장을 취하는 일에 대해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가치의 통약
불가능성에 대해서는 Cass R Sunstein ldquoImcommensurability and Valuation in Lawrdquo Michigan Law Review Vol 92 No 4 (1994) 779면 이하 조홍식 교수는 ldquo가치의 통약
불가능성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이 권리인가의 문제보다 무엇이 공익인가의 문제에서
더 크다rdquo고 지적하면서 기본적으로 가치판단과 관련한 사법통치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사법통치의 정당성과 한계 제2판 박영사(2010) 240면 가치의 통약불가능성에 대한 주장은 가치판단과 관련한 해석기준의 서열화는 불가능
하다는 주장과 같은 노선에 속한다 여기서 통약불가능성 문제를 자세히 다룰 수는
없다 다만 가치의 통약불가능성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통약불가능이 비교불가능을 의미
하지는 않는다는 점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체적인 맥락이 주어지는 경우 무엇이 옳은
지 혹은 그른지에 대해 심사숙고하며 이에 따라 선택하고 그 선택 결과를 받아들인
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정도만 지적하기로 한다 58) 실제로 판사가 판결문을 두 개 써왔다고 주장한 사건에 대한 보도가 있었다 ldquo판결문을
두 개 써왔다rdquo 조선일보 2013 11 21자 기사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7
지고 있어서 적용하기만 하면 된다는 그런 의미의 규범적 실천적 ldquo지식을 소유한
사람rdquo이라기보다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 ldquo지식을 탄생시키는 상황에 직면하는
사람rdquo이라는 것이다59) 일반범주를 개별사례에 적용할 때 요구되는 이 판단력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래서 칸트(Kant)도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ldquo지성은 규칙들
을 통해 배우고 보강할 수 있는 것이지만 판단력은 특수한 재능으로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전혀 아니고 단지 숙련될 수 있을 뿐이다rdquo60)
우리는 올바른 규칙이나 원리를 알고 있지만 막상 이것을 어떤 상황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예컨대 비례성원칙이나 과잉금지원칙에 대한 지식
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은 적정해야 하고 그 수단은 목적달
성을 위해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원칙을 특수한
상황에 lsquo적용rsquo한다고 할 때에 이 원칙이 그 어떤 판단도 배제할 정도로 자족적인
지침 구실을 한다고 느끼기는 어렵다 특정 상황에서 그 수단이 과연 어느 정도일
때가 목적달성에 적정한지는 판단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실천이성의 역
할이다
단의 자리는 이론 경험 양심이 혼재된 실천의 영역이다 판단을 통한 결정이
라는 그 lsquo종국성rsquo으로 인한 실천적 성격은 법학이 다른 어떤 학문분야와도 공유
하지 않는 법학 고유의 특징이다 그래서 법학은 lsquolegal sciencersquo로 불리기보다는
실천지- prudentia-를 함의하는 lsquojurisprudencersquo로 더 자주 불리어 왔을 것이다
해석의 차원에서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도 추상적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
으로는 행위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성과 개별성을 결합하는 해석적
지식은 추상적 이론적 지식들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일반규칙이나 원리
에 근거한 이론적 패턴의 지식과 특정한 상황 내지 맥락을 고려하는 실천적 패턴
의 지식의 이중주를 이룬다 법관이 지니는 통찰력의 특성은 이론과 태도가 함께
간다는 데 있다 그래서 사법적 판단에서는 규칙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 못지않게
사람 즉 법관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사법적 통찰력의 특성은
뭐니뭐니해도 개별 사례를 다룬다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개별적인 것들은 개별적
인 방식으로만 체험되고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들은 무엇
보다도 lsquo지각rsquo과 관계된다61) 즉 그것들은 일반적 체계적 지식의 대상이라기보다
59) Hans-Georg Gadamer Wahrheit und Methode Grundzuumlge einer philosophischen Hermeneutik 3 Aufl J C B MOHR (1972) 300면
60)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 1 백종현 옮김 아카넷(2009) 374면
8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는 우선 지각의 대상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도 사법적 통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쪽은 규칙보다는 오히려 사람 즉 법관 쪽인 것이다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사건에서 법적으로 중요한 사실이 무엇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규칙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어떤 규칙이 중요한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실이 중요한지 알
아야 한다 이 인식과정에서 법관은 불확실한 가운데서 무수한 선택을 감행한다
어떤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 배척하고 어떤 사실은 인정하거나 무게를 부
여하고 신청된 증거조사의 어떤 것은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거부하고helliphellip 사실
에 대한 이 취사선택-자유심증주의-의 결과로 새로운 것이 태어난다 그리고
이것에 의해 법원을 찾아온 사람들의 운명이 갈리는 것이다
법관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필자 생각에
독일의 법철학자 아르투어 카우프만(Arthur Kaufmann)의 해석학적 방법론은 법
관의 자기이해 문제를 해석학적 지평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법관의 해석작업의
본질을 잘 설명해주는 것 같다 가다머 계통의 철학적 해석학(philosophische
Hermeneutik)의 입장을 받아들이면서62) 카우프만은 법해석행위를 통해 포괄적인
의미에서 법관 자신의 인격 중의 어떤 것이 판결에 혼입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
61)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4면 그리고 1심에서
유죄였다가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강력범죄 540건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판단자
의 감지능력 차이가 법판단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힌 김상준 무죄
결과 법 의 사실인정 경인문화사(2013) 62) 텍스트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이해에 관한 연구분야인 해석학(hermeneutics Hermeneutik)
의 어원은 신들의 전령(傳令)인 Hermes라는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설명된다 이때 신의
의도를 인간에게 전하는 과정에서 언어의 제약성 시공간적 간격 전령의 역할 등과 관
련하여 해석의 문제가 생긴다고 본다 ldquoHermeneuticsrdquo Dictionary of Biblical Interpretation Nashville (1999) 497면 독일어의 Auslegung이 해석주체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대상
으로서의 텍스트에 대한 해석을 의미한다면(객관주의) 철학적 해석학에서의 해석
(Interpretation)은 해석주체의 주관성 내지 역사성이 대상에 투사된다는 의미가 강하다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에 따르면 역사적 존재인 인간에게 있어 모든 해석과 이해는 과
거와 현재가 lsquo작용사적으로(wirkungsgeschichtlich)rsquo 중재되는 사건으로서 lsquo선이해rsquo 내지
lsquo선판단rsquo 없이는 불가능하다 가다머는 선입견으로 폄하된 선이해를 재평가하고 이를
통해 근대 이래 lsquo방법rsquo을 통한 진리발견이 주체에 의한 객체의 대상화 내지 도구화를 가져
왔다고 비판하면서 인간경험에 있어서 진리에 이르는 길은 사물의 존재가 스스로 드러
나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해석과 이해는 전승된 존재방식으로서
의 텍스트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며 이는 텍스트 자체가 지닌 역사적 지평과 해석
자의 지평이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만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해석학적 순환 이해의 전제로서의 선이해 작용사 등에 대해서는 Gadamer 앞의 책 II Grundzuumlge einer Theorie der Hermeneutischen Erfahrung 참조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9
로 법관의 결정이 올바른가의 물음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가의 물음과 직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63)
우선 카우프만은 통상적으로 회자되는 독립적인 법관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즉 법 앞에 선 법관이 일체의 정치적 사회적 개인적 영향이나 선입견들로부터 차
단된 채 순수한 객관적 인식에 따라 그 이전에는 자신이 알 수 없었던 사실관계
를 판단하고 그런 다음에 법적 판단을 한다는 식으로 이해하기를 거부한다64)
그런 법관상은 법령집은 일체 해석의 필요가 없이 거의 모든 가능한 법률문제에
대한 대답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상정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법관은 의지가
없는 존재이며 사법권력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여기는 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법에 대한 인식은 단순히 사례를 법률에 포섭시킨다는 의미의 수
동적 행위가 아니고 해석자가 해석대상에 관여하면서 함께 lsquo형성rsquo하는 것이라고
본다 카우프만은 법관의 법형성력에 대한 자신의 견해가 주관주의의 의미로 받아
들여지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는데 왜냐하면 해석자는 텍스트를 지탱하는 모든
전통과 함께 이해의 지평으로 들어간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은 서류의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ldquo아 이런 사건이구나rdquo라고 감을 잡게 되
는데 카우프만에 따르면 이는 법관 자신이 사건 경과를 관찰해서 인지했다거나
언론 등을 통해 사건에 대한 상세한 지식을 얻었다는 뜻이 아니라 유사한 사건들
을 알며 그래서 ldquo선이해(Vorurteil Vorverstaumlndnis)rdquo65)를 가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
해의 전제로서 이런 선이해가 없다면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것이 무엇에 관한 사
건인지 알 수 없고 다른 사례와 비교할 수도 없기 때문에 올바른 판단에 이른다
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66) 이 선이해에 의해 해석은 언제나 해석주체의 자기
이해 즉 자신이 lsquo잠정적rsquo 결과로서 이미 예상했던 것을 논증적으로 근거짓는 활동
이라는 의미에서 ldquo해석학적 순환rdquo 내지 ldquo해석학적 나선구조rdquo 하에 이루어진다
63)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Festschrift fuumlr Karl Peters Mohr Siebeck (1974) 144면 법관의 독립과 양심 주제와 관련한 또 다른
글로는 Kaufmann ldquoGesetz und Rechtrdquo Existenz und Ordnung Festschrift fuumlr Erik Wolf (1962) 357면 이하
64)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4면 65) 해석학적 의미에서의 lsquo선이해rsquo는 일상 언어 관용에서는 lsquo선입견rsquo이나 lsquo편견rsquo 같은 부정
적 함의를 더 많이 지니기 때문에 카우프만은 lsquoVorurteilrsquo 대신에 Vorverstaumlndnis라는 용
어를 쓰기를 권장한다(앞의 글 148면) 카우프만 외에도 이 용어의 선택은 Josef Esser Vorverstaumlndnis und Methodenwahl in der Rechtsfindung 2 Aufl (Frankfurt aM 1972)
66)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7면
90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텍스트를 이해하려는 사람은 말하자면 언제나 초벌 그림을 그리며 특정 의미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텍스트를 읽기 때문에 ldquo텍스트에서 첫 번째 의미가 지시되자
마자 전체의 의미를 lsquo예비투사한다(vorauswirft)rsquordquo67) 그리고 선이해와 관련된 이 예
비투사는-해석학적 lsquo순환rsquo에 의해-원칙적으로 끝없이 검열과정을 거친다는 것
이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도 실제 판단과정에서는 분리
되지 않는다68)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은 시간적으로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단절 관계가 아니라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정제하고 상응하는
관계에 놓인다 즉 사실에 대한 인식 없이 규범적 인식은 불가능하며 또한 규범적
관점 없이 사실만을 통한 사실 확정도 불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법률도 법관의
해석을 만나기 전에는 ldquo잠재적인 가능태로서 주어진 법률rdquo일 뿐 해석학적 순환을
통한 정제 혹은 상응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ldquo진정한 실정법rdquo이 생성된다69) 이렇
게 특정사건을 통해 구체화된 규범(구성요건)과 이 규범을 통해 정해진 사실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법관에게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들과 함께 제3의 요소로서 법관
자신의 선이해 내지 이해 포괄적으로 말하면 그의 인격적 존재가 판단에 혼입
된다
lsquo선이해rsquo는 판단자가 자신의 선이해를 의식하지 못할 때 부정적 요소를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ldquo자신의 판단은 오로지 lsquo있는 그대로다rsquo라고 말하는 즉 lsquo오로지 법
률에만 구속된다rsquo라고 말하는 법관이야말로 실은 종속된 법관이다 왜냐하면 그는
성찰되지 않은 자신의 선이해와 거리를 둘 수 없기 때문이다rdquo70) 즉 법관은 자신
67)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68) 실제 판단과정에서 사실인정과 법률적용이 따로 떨어질 수 없다는 점은 굳이 카우프
만의 이론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실무상으로는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ldquo법률
의 적용과 사실의 인정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법률문제와 결부되어 인정된다 사실의 인정이 진행됨에 따라서 재판관의 머리
속에서는 어떠한 법규를 적용할 것인가 그 법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는 전망이
점차로 서게 되며 당사자 측도 경우에 따라서는 민사인 경우 청구의 취지를 변경할
것인가를 고려하게 되고 형사인 경우 공소사실을 변경하는 경우도 생긴다 요컨대 사실
문제와 법률문제는 실제과정에서 불가분으로 결부되어 있다 helliphellip 양쪽이 불가분으로
재판관의 직관 혹은 재판관의 전인격적인 작용에 의하여 사실의 인정과 법의 적용이
행하여지고 판결 삼단논법은 실제의 심판 과정에서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rdquo(사법
연수원 법조윤리론 35면) 69) ldquo법관의 해석 작업 이전에는 어느 의미에서 진정 법도 진정한 사실도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원자재들(Rohmaterialien)로만 이것들이 존재할 뿐이다rdquo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1
의 선이해를 의식하고 자신을 이데올로기 혐의 앞에 세울 줄 알 때 올바른 판결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ldquo법관이 자신의 선이해와 종속을 의식할수록 그래서 간주
관적 합의에 노력할수록 그는 더 객관적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rdquo71) 그러므로
법관의 주관주의의 위험은 카우프만식으로 말하면 가치판단 같은 성찰적 고려와
관련된 주관적 요소를 방법상의 근거 제시의 맥락에 끌어들이는 법관의 경우보다는
오히려 모든 것이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판결의 주관적
요소를 은폐하는 법관에게서 나타나는 위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학적 순환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법관은 ldquo법률의 입rdquo이 아니라 ldquo인격
으로서 판결을 떠받친다rdquo72) 판결은 법률과 법관의 인격의 혼성물이다 그러므로
법률은 판결을 위한 필요조건이기는 하나 충분조건은 아니라고도 말할 수 있다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순환이론은 법관의 독립과 양심의 문제 차원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법결정의 올바름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
는 정도에 달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자신을 올바르
게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자신의 판단력 경험 능력 인간에 대한 태도 감
수성 명예욕 등등
카우프만의 법해석학적 순환이론이 법관의 독립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이라
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독립은 법관 스스로 관철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론적으로 카우프만의 법해석이론의 의의는 법관이 자신의 선입견을
의식하는 것이야말로 법관의 독립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설득력있게 지적
해주며 그런 방향에서 법관의 법해석 작업을 재평가했다는 데 있다고 말할 수 있
겠다
70)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71) Arthur Kaufmann ldquoDer BGH und die Sitzblockaderdquo NJW (1988) 2581면 이하72) 이 표현은 Karl Peters의 Strafprozess - Ein Lehrbuch (1966) 99면에 나오며 여기서는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9면에서 재
인용했다 이덕연 교수도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에 입각하여 ldquo법관의 법해석작
업은 단순한 lsquo인식작업rsquo이나 lsquo언어분석작업rsquo이 아니라 ldquo구체적인 반성과 자기극복의
노력 속에서 온 인격을 걸고 진행하는 lsquo이해와 실천의 수행작업rsquordquo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앞의 글 352면)
9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Ⅸ 법관은 lsquo하는 사람rsquo인가 lsquo보는 사람rsquo인가
법관의 판단작업을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의 관점에서 주목했던 또 다른
철학자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다 그녀는 ldquo아이히만 재판rdquo을 계기로 판단의
특수한 경우로서의 판단력 문제를 연구했다73) 아렌트는 하드케이스와 연관시켜
법관의 판단력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74) 법관은 우선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을 반추하면서 판단에 임하는데 이때 판단자로서 그는 한 면으
로는 규칙에 따라 판단하라는 lsquo일반적 정의rsquo의 요구에 그리고 동시에 다른 한 면
으로는 정황에 맞게 판단하라는 lsquo개별적 정의rsquo의 요구에 처한다 이러한 상황은
아렌트에 따르면 하드케이스에서 특히 발생한다 이 이중적이고 모순적 요구 상황
을 아렌트는 법관의 판단에 적용되는 특수한 해석학 및 그 조건을 설명하는 출발
점으로 삼는다75) 하드케이스가 아닌 통상적인 사건에서는 이른바 포섭 여부를 판
단하는 것으로도 족하다 일반규칙에의 포섭 여부가 중심이 되는 이 단계에서의
판단력- lsquo규정하는 판단력(bestimmende Urteilskraft)rsquo-은 사실관계에서의 원인
이나 형식적 정의를 따지므로 일방적이고 간주관적 전제 없이도 가능하다 그래서
흔히 법관은 여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법을 해석해야 한다고 말할 때 이는
법적용을 이러한 지배적인 포섭모델에 입각하여 이해한 결과라 할 것이다 그런데
규칙으로부터 오는 어떤 어려움들 때문에 규정하는 판단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즉 포섭이 어렵거나 법흠결 시 또는 가치형량이 요구되는 하드케
이스에서는 법관은 어쩔 수 없이 앞에서 말한 모순문제를 다루어야만 한다 이때
아렌트는 법관이 사유의 확장을 통해 방법상으로 lsquo규정적 판단력rsquo을 스스로 교정
할 수 있는 lsquo성찰적 판단력rsquo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고 이 판단유형의 전환과정을
73) 법적 판단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 삼은 저술은 Hannah Arendt Eichmann in Jerusalem Ein Bericht von der Banalitaumlt des Boumlsen Erw Aufl (Muumlnchen 2001) 그리고 Hannah Arendt Das Urteilen Texte zu Kants Politischer Philosophie Hrsg v R Beiner Uumlbers v U Ludz (Muumlnchen 1998)
74) 아렌트가 염두에 둔 하드케이스는 라드브루흐가 이른바 ldquo법률적 불법rdquo 상태로 규정한
나치의 불법국가 상황으로서 이렇게 극히 예외적인 케이스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하드
케이스에 적용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별적 정의 요구에 부응함
으로써 예컨대 소급효를 금지하는 일반법률에 위배되는 상황과 유사한 갈등상황은 반
드시 극단적 상황에서만 생긴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75)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2 Bde Hrsg v U Ludz amp I Nordmann
따라서 그 척도는 전달가능성이며 거기에 딱 맞는 것은 공통감각(상식)이다rdquo77) 오
늘날 공통감각은 아렌트도 지적했듯이 더 이상 그것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얻고자 노력해야 하는 그 무엇이 되어버린 듯하다 그러나 공통감
각이 무너진 시대를 겪었던 아렌트는 사유의 전환 내지 확대를 위한 진정한 발판
을 다시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에서 구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78)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실천철학의 전통에서는 세계와의 관계 그리고 자기와의 관
계를 공통감각을 척도로 설정해가는 판단자가 lsquo하는 사람rsquo인지 아니면 lsquo보는 사람rsquo
인지 즉 lsquo행위자rsquo인지 아니면 lsquo관찰자rsquo인지를 둘러싸고 의견이 대립되어 왔다 lsquo하
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자가 lsquo정치가rsquo 쪽에 더 가깝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
자는 lsquo철학자rsquo 쪽에 더 가깝다 lsquo하는 사람rsquo은 주로 사회의 일반적 상식 건전한 인
간이해 세론(doxa)을 판단의 척도로 삼는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적 경험은 전체주
의 하에서는 건전한 인간이해도 집단화된 대중감정에 따른 오도된 인간이해 앞에
무너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판단에서 사실로서의 상식이나 합의 또는
법해석공동체 내부의 지배적 제도적 관점이라는 판단 척도만으로는 일반규칙으로
부터 오는 모순을 다루기 어렵다 여기서 판단자는 ldquo확대된 사유방식rdquo을 추구해야
하는데 아렌트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을 lsquo보는 사람rsquo의 판단과 결합시킴으로써 법
관을 위한 사유의 확대를 시도한다79) lsquo하는 사람rsquo이 사실로서의 일반적 상식이나
인간이해 차원에 비추어 판단한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ldquo이
상적 규범적 상식rdquo80)을 추구하고자 한다 판단을 거쳐 법적 효과를 결정하는 법관
76)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을 해석학적 순환이론을 적용하여 분석하면서 칸트의 판단력 비
판에 의거하여 아렌트가 판단력의 특수한 경우로서 법관의 ldquo성찰적 판단력rdquo이라는 새
로운 판단유형을 제시했다고 지적한 연구서로는 Stefanie Rosenmuumlller Der Ort des Rechts Gemeinsinn und richterliches Urteilen nach Hannah Arendt Nomos (2013) 참조
77) Hannah Arendt Das Urteilen 92-93면78) 아렌트가 판단의 차원을 심화시키는 발판으로 삼는 상식은 sensus communis로서
communis opinio와는 다르다는 데 대해서는 Marieke Borren ldquolsquoA Sense of the Worldrsquo Hannah Arendtrsquos Hermeneutic Phenomenology of Common Senserdquo International Journal of Philosophical Studies Vol 21 No 2 (2013) 225-255
79) Hannah Arendt Das Urteilen 76면80) Rosenmuumlller 앞의 책 234면 이하 여기서 아렌트는 상식개념을 이중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에서는 경험적 개념으로 보다 성찰적 판단
단계에서는 규범적 개념으로 사용한다
9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은 관찰자로서 판단하면서 동시에 행위자로서 판단에서 법적 결과를 결정하는
사람이다 관찰자인 동시에 행위자라는 이중적인 역할을 하면서 법관은 자신의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 반추한다81) 이 반추과정에서 법관은 한편으로는 포섭
하는 판단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고려해야 할 관점들을 끌어들이면서
자신의 직책을 마지막까지 수행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통제하면서 자신의 앞서의
(포섭) 판단을 정정해나간다 그래서 법관 자신이 lsquo보는 사람rsquo과 lsquo하는 사람rsquo의 만
남의 장소가 되는 것과도 같다 ldquo이 보는 사람은 모든 하는 사람 안에 자리 잡고
있다helliphellip이 비판적 판단능력이 없이는 행위자 혹은 해결자는 보는 사람으로부터
풀려나 종내는 지각되지조차 못하게 될 것이다rdquo82)
사람들은 자신 일에 있어서는 비당파적일 수는 없다 따라서 ldquo자신의 일에 대한
판단에서는 내면의 심판자 혹은 내면의 법정을 가질 수 없다rdquo83) 그러나 다른 사
람의 일을 반추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필히 비당파적이어야 하며 또 비당파적이 될
수 있다 이때 그는 비로소 내면의 심판자를 가지게 된다 즉 양심의 문제에 처하
게 되는 것이다 판단에 있어서 양심이라는 것 즉 양심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남
의 일에서 ldquo증인rdquo 혹은 ldquo비판적 친구rdquo로서 관찰하고 행위하는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이다84)
아렌트의 성찰적 판단모델은 나치 불법국가 경험의 산물이다 통상의 규칙이 파
괴된 상황 통상의 범죄유형에 포섭되지 않는 극히 예외적인 범죄적 상황에서 법
원은 기존의 판단척도를 해석학적 출발로 삼아서는 안 되고 이때에는 질적으로
동의가능한 합의형식을 찾기 위해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으로 돌아가
진정으로 사유 즉 철학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렌트가 판단을 일반화해주는
거점이자 해석학적 출발점으로 삼은 공통감각(상식) 개념은 칸트철학에서 ldquo비사교
적 사교성rdquo 개념의 위상과 비슷하다85) 이 지상에서 인간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다른 것을 원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모여 살아야만 하는 존재다 이 비사회성 요
청과 사회성 요청의 동시성 때문에 인간에게는 제도적인 안착이 더없이 중요하며
법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실존과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만든다 판단의 기
81) Leora Y Bilsky When Actor and Spectator Meet in the Courtroom Hannah Arendt and Eichmann in Jerusalem G N Arad Hg (Bloomington 1996) 137면
82) Hannah Arendt 앞의 책 85면83) Hannah Arendt 앞의 책 76면 84)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657면85) Rosenmuumlller 앞의 책 1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5
초를 보편적 인간경험에 둔다는 점에서 아렌트가 말하는 판단력은 드워킨의 헤라
클레스와 같은 초인적 천재성을 발휘하는 능력과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86) 아
렌트가 상정하는 이상적인 법관은 철학적이지만 철학자는 아니고 정치적이지만 정
치가는 아닌 사람이다
아렌트는 헌법국가의 권위도 상식개념에 기반을 두고 설명한다 그리고 민주적
정당성의 관점에서 입법의 우위를 인정하는 까닭에 성찰적 판단에 입각한 법관의
검증에는 한계가 있다는 태도를 견지한다87)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렌트가 제시한
법관의 성찰적 판단 유형에 대해서는 다양한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우선 이것이
예외 상황에서 적용되는 판단모델로 상정된 것이며 무엇보다도 ldquo규범적 상식rdquo에
대한 단일한 이해기반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법관 개인의 주관적 정치적 신념
이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길을 피할 수 없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성찰적
판단력은 결국 레토릭에 불과한 것인가 아렌트는 그러나 무엇이 ldquo특정 상황에 맞
는 공통감각(situierte Gemeinsinn)rdquo인지에 대한 공동의 인식은 가능하며 또 법관의
lsquo하는rsquo 판단에 들어있는 정치적 함의를 성찰적 판단력으로 검증하는 것도 가능하
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아렌트가 마지막 검증심급으로 원용하는 것이 바로 판
단에서의 양심의 심급이다 그것이 과연 동의할 수 있는 합의형태로서 충분한지를
스스로 검증하는 이 심급에서 판단자는 명령조로 자기에게 전해지는 소리를 듣게
된다 ldquo멈춰 나는 그것은 할 수 없어rdquo88) 판단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 멈추는 것
이 가능한 이 성찰적 심급에서는 칸트와 달리 할 수 없는 이유로써 결과도 고려
된다 lsquo보는 사람rsquo이 자기 안에서 지켜보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상황은 토마스 아퀴
나스의 양심론에 비추어 다음과 같이 묘사될 수도 있겠다 지적 본성을 가진 인간
존재가 보편법칙에 관한 지식을 개별 행위에 적용하기 위해 판단하고 선택할 때
행위자는 갈등 상황- ldquo그렇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rdquo는
상황-에 처하여 멈칫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데 이때 그는 단지 갈등하고
선택하는 역할만 하지 않고 갈등하고 선택하는 이 과정을 ldquo관찰하고 목격하는 증인rdquo
의 역할도 한다는 것89)
86) 드워킨에 의하면 해석적 탐구는 ldquo어떠한 증명도 허용치 않고 어떠한 수렴도 약속치
않는 탐구rdquo이다(드워킨 정의론 203면)87) Rosenmuumlller 앞의 책 30면88) Hannah Arendt Uumlber das Boumlse Eine Vorlesung zu Fragen der Ethik Hrsg v J Kohn
(Muumlnchen 2003) 52면89) 지적 행위자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자신의 내면의 갈등과 선택과정을 바라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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Ⅹ 방법에서 덕목으로
헌법 제103조는 한 면으로는 헌법과 법률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 면으로 해석자에게 여하한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lsquo제약
의 차원rsquo과 lsquo자유의 차원rsquo을 동시에 담고 있다 법관은 자유로울 때에라도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며 법에 구속될 때에라도 전적으로 구속되지는 않는다는 뜻이
기도 하다 이 lsquo자유와 구속의 변증법rsquo에 비추어 지금까지 논한 주제에 대해 몇 가
지 입장을 정리해 보자 첫째 법관에게 있어서 독립은 확정된 원칙이나 그것자체
로서 달성해야 할 최종목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법관의 독립은 완성형이 아니라
끊임없는 진행형의 과제로서 그 직무수행에 대한 신뢰와 병행하여 점진적으로 이
루어지는 것이다 둘째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에 있어서 구속은 법률에 무조건 복종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판결에 대한 윤리 (내 ) 확신과 함께 법률에 복종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법관이 실정법률에 반하는 결정을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법
관은 객관성을 빌미로 법률 뒤에 숨는 익명적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
미하는 것이다 셋째 독립적인 법관의 양심은 lsquo법과 상충한다rsquo기보다는 lsquo법을 실
한다rsquo는 의미를 지닌다 넷째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서 반추하면서 lsquo하는
사람rsquo인 동시에 lsquo보는 사람rsquo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성찰 인 인물상으
로서만 설정될 수 있다
해석적 탐구는 우리의 이해를 넓히기 위해서 필요하지만 이해에서의 우리의 피
할 수 없는 한계를 깨닫기 위해서도 필요했는지 모른다 엥기쉬는 법해석방법론에
대한 저술의 마지막 부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ldquo방법론에 천착하다 보면
애초의 문제였던 법률로부터 훨씬 더 먼 곳으로 이끌려 간다rdquo 지금까지 필자는
법관의 법해석과 관련하여 방법론의 의의와 한계를 논하고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과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에 비추어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이 법해석론
의 불가결한 부분으로 들어가게 되는 이유도 밝혔다 그리고 해석적 차원에서의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는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행위를 목표로 하는
탐구라는 것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필자는 이 모든 논의들을 매개로 방법론이 우리를 더 멀리 덕
목론으로 데려가는 과정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드워킨의
상황에 대한 이 묘사 부분은 이경재 ldquo토마스 아퀴나스의 양심 개념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375면을 참조했다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7
헤라클레스를 잠시 불러올 필요가 있다 해석문제를 누구보다도 더 진지하게 다룬
드워킨은 마지막에 헤라클레스를 내세운다 주어진 사건에서 무엇이 법인지에
대해 도덕적 의식을 가지고 법실무 전체를 원리정합적으로 정당화하라는 요청에
부응하여 자신의 신념에 기초한 결정을 내리는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의 구성적
해석에서 법관의 양심이 기능하는 국면은 어디일까 송민경 판사는 드워킨의 구성
적 해석론에 입각하여 양심을 구체적 법논증과정의 일부로 포함시키면서 이때 양
심이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라는 지침으로 기능한다고 설명한다90)
그런데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는 지침으로 기능하는 것을 양심이라
고 보게 되면 양심의 문제는 논증적 합리성의 차원 즉 논증의 성공으로 종결짓게
된다 그러나 법적 결정의 정당성 문제는 법관의 입장에서는 논증의 성공 문제로
다루어지지만 법관의 성공적인 논증에 따른 판결의 결과로부터 영향을 받는 시민
의 입장에서 보면 성공적인 논증만으로는 해석이 정당화된다고 볼 수는 없다
성공적인 논증은 법적 결정의 정당화에 필수적이기는 하나 충분한 조건은 되지 못
한다 해석이 궁극적으로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사법적 도덕성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 사법적 도덕성은 헤라클레스가 지침으로 삼는 원리적 도덕성의 실현과는 다른
것이다 만약 패소한 시민이 다른 헤라클레스에게 갔더라면 즉 다른 법원리에 기
초한 신념을 토대로 다른 결정을 내린 다른 법관에게 갔다면 그는 승리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왜 헤라클레스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하
는지에 대한 답이 필요한 것이다91) 헤라클레스가 실무에 대한 최상의 정당화를
도모하는 법적 이상주의자라면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법원 문을 두드린 시민도
어느 의미에서 ldquo법이상주의자rdquo92)이다
법해석 작업의 주관의존성이라는 불가피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재판이라는 특수
한 공적 활동이 법관이라는 특수공직자에 의해 운영되고 유지된다는 것은 시민들
-소송에서 패한 시민들을 포함하여-편에서 보면 법을 해석하는 법관에 대한
신뢰가 전제된다는 것이다 법관의 독립적 활동은 법관의 특권 행사가 아니라 사
90) 송민경 앞의 글 38면 20면91) 사법적 덕목과 연관하여 이 부분을 다룬 글로는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5면 이하
92) 법원 문을 두드리는 시민에 대한 이 표현은 심헌섭 ldquo법조윤리의 좌표 거시적 관점에서 본 전문윤리로서의 법조윤리rdquo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편 法律家의 倫理와 責任 박영사
(2003)에 나온다
9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법과정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응당한 몫이 돌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존중하는 바탕에는 일종의 상호성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 그 또한
시민이기도 한 법관이 동료시민들에 대해 가지는 배려와 존중의 원칙이 그것이다
여기서 사법적 덕목에 대해 자세히 논할 수는 없다93) 예의 성실 신중 절제
용기 공정 겸손 의사소통 능력 형평 시민에 대한 배려와 존중 등등 이것들은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바탕을 이루는 양심의 덕목들일
것이다 양심이라는 단어가 그렇듯이 덕목이라는 단어도 오늘날 진부해진 표현
이며 거의 사라져가는 단어다 윤리적 태도로서의 덕목은 관찰하기도 배우기도
어렵다 그러나 올바른 판단과 결정이 법관이라는 개인을 거치지 않고 법령집
자체로부터 반사적으로 튀어나오지 않는 한 이 덕목들을 내면화하고 지향하려는
태도 없이는 lsquo종국적인rsquo 판단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써 필자는 헌법 제103조를 통해 법해석에서의 방법론의 문제가 덕목론이라
는 다음 과제로 이어진다는 점을 밝혔다고 생각한다
투고일 2016 4 6 심사완료일 2016 5 18 게재확정일 2016 5 20
93) 법관의 개별적인 덕목들과 이것들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는 박은정 강태경 김현섭 바람
직한 법관상의 정립과 실천 방안에 관한 연구 법원행정처(2015) 제5장 참조할 것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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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수 ldquo바람직한 법관상-기예와 지혜 사이rdquo lt근대사법 및 한성재판소 설립
이성의 활동rdquo ldquo인격의 자기인식rdquo ldquo본래적인 자기 자신으로 불러 세우는 염려의
소리rdquo ldquo너와 내가 함께 잘못을 감시하고 경계하는 공동의 눈초리rdquo ldquo근원적인 자
기의 요구rdquo 등등22) 이런 다양한 견해들은 양심 개념을 형식적인 측면에서 접근하
는지 아니면 내용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지 양심 판단에서 개인의 주관적 요소를
강조하는지 아니면 보편성 내지 소통가능성을 더 중요시하는지 양심의 권위를 내
부에서 찾는지 아니면 외부의 권위를 사회화 내지 내면화한 결과로 보는지 양심
에 따른 결단을 감정의 작용으로 보는지 아니면 이성도 같이 작용하는 것으로 보
는지 등에 따라 여러 갈래를 이룬다
칸트의 근대 주체철학의 영향을 받은 이래 오늘날 양심논의에서는 대체로 양심
의 개인적 주관적 요소가 강조되는 가운데 양심을 개인에게 도덕적 행위 동기를
유발하고 자기반성을 가능하게 하고 개인의 판단과 자기결정에서 최종심급의 역
할을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대표적으로 칸트는 양심을 각 주체로서의 개인의
ldquo내면에 자리 잡은 자율적 심판관rdquo으로 일컬으면서 행위주체가 자기 안에 내재하
21) 이덕연 앞의 글 361면22) 진교훈 외 19인 양심 고 로부터 에 이르기까지의 양심의 의미 서울대학교출판
문화원(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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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도덕법칙에 스스로의 행동을 적용시키는 것이 양심이라고 말한다23) 이때 양심
은 스스로 도덕법칙을 정립할 수 있는 선의지를 가진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지니는 일종의 의무의식으로 여겨지며 자신이 자신을 평가하는 것이 양심이기 때
문에 이 주관적 확신을 평가하는 외부의 기준은 없는 셈이다24) 이렇게 양심을 주
관성의 형식으로 가져갈 때는 주관적으로는 옳은 양심에 따른 확신이라 하더라도
인식주체가 가진 한계 등으로 인해 내용상 오류가 가능하다는 문제를 안게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칸트와 달리 양심문제를 개인의 주관적 도덕의식 이상의 차원에
서 다루고자 하는 철학자들은 간주관성의 차원에서 보편성을 지니는 양심개념을
추구한다 이런 방향에서 파악한 양심 개념에 대해 lsquo객관적rsquo 양심이라는 표현을 쓸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양심과 관련하여 lsquo객관적rsquo이라는 표현은 인식
주체 밖에 뭔가가 존재한다는 인식론적 존재론적 가정을 상정한다는 점에서 문제
가 있다 인식 주체 밖에 객관적인 그 무엇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양심이 아니라
윤리규범일 것이다 법관의 양심을 lsquo객관적rsquo lsquo법조적rsquo 양심으로 표현하는 것도 이런
의미에서 부적절하다25)
그런데 철학전통 안에는 양심을 주관성의 형식으로 끌어들여 절대화하는 시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서양에서 근대 이전의 철학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개인의 주
관적 도덕의식을 넘어서는 차원에서 양심을 논하는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우선 어
원상으로도 con-scientia syn-deresis의 con과 syn에서 알 수 있듯이 양심은 우리
내면의 법정에서도 공공성 내지 공동체성 즉 ldquo함께 안다rdquo라는 요소를 지니고 있
었다 이 어원은 양심의 규제적 기능에는 우리가 올바르게 행했는지 혹은 그릇되
게 행했는지를 지켜보는 ldquo공동의 인식rdquo이 있다는 자각이 포함됨을 암시한다 자기
안에서 lsquo보편적인 자기rsquo를 확신하는 과정을 상호인정과정과 연결시키고자 하는 양
심관은 공동의 윤리로서의 인륜성(Sittlichkeit)의 입장에서만 ldquo진정한 양심rdquo이 가능
하다고 보는 헤겔(G W F Hegel)의 양심론26) 타자윤리학에 근거한 레비나스
23) Immanuel Kant 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 (윤리형이상학 정 백종현 역 아카넷(2005) 134면 이하) 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Philosophische Bibliothek A 175 (2003) 215면 이하
24) 김관영 ldquo칸트에 있어서 양심의 문제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144면25) 예컨대 성낙인 교수는 법관의 양심을 ldquo법관이 적용하는 법 중에서 객관적으로 존재하
는 정신을 가리킨다rdquo고 설명한다 앞의 책 713면 이 객관적 정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26) Hegel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sect137 헤겔의 양심론에 대해서는 최신한
ldquo헤겔 야코비 양심의 변증법rdquo 헤겔연구 제23호(한국헤겔학회 2008) 86면 이하 참조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75
(Emmanuel Levinas)의 양심론27) 그리고 행위주체들의 담론적 소통과 사회적 행위
에 대한 책임에서 출발하는 아펠(Karl Otto Apel)의 양심론28)에도 엿보인다 동양의
양심을 ldquo세상 사람을 향해 움직이는 마음rdquo으로 묘사하면서 양심이 있어서 책임있
는 인식의 기능에 주목한 사상가도 있다30)
서양에서 근대를 전후로 양심의 주관화 경향이 강하게 대두된 데에는 종교분쟁
등의 영향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은 가치상대주의라는 시대정신의 영향 하에
양심은 도덕적 판단과 인격을 근거지우는 현상으로 파악되면서도 내용적 측면보다
는 형식적 측면에서 고찰되고 간주관적 논의가능성이 배제된 채 그 논의의 폭이
좁아져 거의 개인의 자기결정권 영역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우리 헌법 제19조의
양심의 의미도 이런 자기결정에서의 최종심급 역할이라는 맥락에서 읽히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살펴봤듯이 주관화의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기 이전의 사유전통에
서는 양심의 자기결정 능력보다는 스스로에게 도덕적 의문을 품는 능력 ldquo함께
안다rdquo라는 책임성 쪽에 더 비중이 놓여 있었다 이런 사유배경에 비추어 본다면
헌법 제19조의 양심은 근대 주관화의 영향의 산물로 이해할 수 있고 이에 비해
헌법 제103조에서 법관과 관련하여 언급된 양심은 근대 이전의 ldquo함께 안다rdquo의 사
유전통의 흔적을 지닌 개념으로 볼 수 있다
Ⅳ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의 완화 경향
앞에서 살펴봤듯이 역사적으로 법관의 독립이념은 법관은 오로지 법률에만 구속
된다는 것을 전제로 탄생했다 그리고 이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은 법률의 총합으로
27) 레비나스에 대해서는 김연숙 ldquo레비나스의 양심론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제3부 제3장 참조28) Karl Otto Apel From a Transcendental Semiotic Point of View Manchester University
Press (1998) 52면 259면 양심이 지니는 공적 관찰이나 감시기능 부분에 주목한
Apel에 대해서는 백춘현 ldquo아펠의 양심론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344면 이하29) 맹자의 양심론에 대해서는 장승희 ldquo맹자의 양심론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제1부 제1장
참조30) 왕수인은 양심과 양지(良知)라는 표현을 함께 썼다고 한다 ldquo남의 아픔을 느끼기 위해
서는 예민하게 lsquo생각rsquo해야 한다rdquo 여기서는 이혜경 ldquo왕수인의 양심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79면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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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 법질서는 통일적이고 자기충족적인 시스템을 이룬다는 가정에 기초하고 있
었다 그러나 이 가정은 그 자체로 애초 한계를 지닌 것이기도 하지만 법의 생태
적 기반이 변하면서 이 법률구속원칙은 점차 상대화 내지 약화되는 방향으로 나아
가게 되었다 입법자를 기다릴 수 없는 빠른 사회변화 자유법운동 입법양의 폭발
적인 증대 일반조항 도입 등 입법스타일의 변화 복지국가 대두 사회정의의 요구
헌법재판 활성화 등의 흐름은 법관의 법률구속메커니즘이 작동하기 어려운 여건을
만들어 가게 된 것이다 이른바 lsquo법관법rsquo의 대세 흐름이 나타난 것이다 특히 지난
수십 년간 확대된 입법영역은 형법과 같은 규제입법과 달리 사회복지생활보호
건강 증진남녀평등청소년보호장애인보호적극적 평등조처 등처럼 정치적 비전과
목적을 담은 한마디로 정책촉진적 성격을 지닌 법률들이었다 이와 같은 야심찬
입법스타일은 법적용단계에서 법관이 바람직한 제도 및 정책 내용에 대해 고려케
함으로써 목적적 법논증으로 기울게 하고 구체적 이익을 비교형량하는 심사방식
을 확대시키는 등 좁은 의미의 실정법률 해석보다는 법형성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 것이다31) 특히 이 흐름은 20세기말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법실증주의에
제동이 걸리는 분위기와 겹치면서32) 법철학에서도 전통적인 포섭논리나 삼단논법
은 실제로 법관들에게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지적과 함께 법관의 법률구속원
칙에 회의적인 성향의 논의들이 강세를 보이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법발견 과정에
대한 심화된 통찰을 통해 lsquo선이해rsquo의 문제를 재평가하게 만든 철학적 해석학과 문
언의 의미론적 구속력에 회의를 제기케 한 언어이론은 법철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들 이론에 입각하여 이제 법의 흠결 시와 같은 예외적인 상황에서 법관
의 법형성이 불가피하다는 수준의 주장을 넘어 법률텍스트를 통한 구속가능성 자
체를 의문시하는 주장까지 나오게 되었다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의 실현에 대한 기대가 점점 약화되고 그래서 누구의 표현
대로 법률이 해석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해석이 법률을 지배한다고 말할 정도가
31) 사회변화에 따른 법관의 역할 변화에 대해서는 박은정 왜 법의 지배인가 돌베개(2010) 제6장을 참조할 것
32) 울프리드 노이만(Ulfrid Neumann)은 지난 2015년 10월 1일 고려대학교 초청강연에서
ldquo실증주의 이후 시대의 법률과 판결rdquo이라는 주제로 발표하면서 법학적 사고가 ldquo법실
증주의 이후의 시대rdquo로 넘어갔다고 진단하고 그 배경으로 세계화 등의 흐름으로 국제
상거래관습법(lex mercatoria)처럼 입법당국에 의한 제정이 아닌 사회적 실천에 의거한
법제정 사례 법원리의 중요성 대두 인권사상 증대 등을 들고 있다 그러면서 법실증
주의로부터 멀어지는 만큼 법관의 법률구속원칙도 상대적으로 완화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77
되면 다시 제기될 수밖에 없는 물음이 바로 입법기관과 법적용기관 사이의 권력
균형 문제다 이 권력 균형은 특히 법 이라는 개인에 의해 매개된다는 점에서 문
제가 된다 오늘날 ldquo사법국가rdquo ldquo법관공화국rdquo ldquo사법엘리트rdquo ldquo사법의 정치화rdquo 등을
지적하는 소리는 입헌민주주의 기획의 초기단계에서 일찍이 해결했다고 여겼던
문제들이 다시 등장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법관의 법률구속의 전제 및 그 가능성
법원의 중립성 법관의 민주적 정당성 사법관료주의 등의 문제가 그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물음이 떠오른다 해석자의 자유를 제
한하고 법관의 법률구속을 보장할 확고한 법해석방법론은 가능한가 법관의 법률
구속에 관한 기술적 제도적 보장책은 가능한가 필자는 이 물음들에 대체로 회의
적인 전망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물론 법해석방법의 무용론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법률에 구속되는 법관상이 약화되고 앞으로도 점점 더 약화될
것이라는 전망 하에 어느 때보다도 더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될 법관의 독립 문제
를 염두에 두면서 법해석방법론의 문제를 재검토하고자 한다
Ⅴ 법해석방법론의 문제점과 한계
법이 있는 곳에 해석이 있다 법학의 강점도 해석학적 잠재력에 있다 법관의 임
무는 법률을 적용하기 위해 법문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법해석방법론은 법
해석과정에서 법관의 자유에 일정한 제약을 가하고 법관의 법률구속이념을 실현하
기 위해 고안되고 발전된 것이다 해석에서는 무엇이 최선의 해석인지를 둘러싸고
언제나 논쟁과 불일치가 생기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해석작업은 인간의 판단과 행
위의 영향 하에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법관이 따라야 하는 법률 자체에는 이미 법적용자를 법률에 대해 어느 정도 독
립적이게 만드는 여러 표현방식들이 들어 있다 예컨대 lsquo야간rsquo lsquo소음rsquo lsquo위험한 물건rsquo
lsquo적절한 조치rsquo 등 개념의 내포와 외연이 확정적이지 않은 법개념들이 대표적이다
이런 불확정적 개념들은 법명제의 구성요건 단계에만 들어 있는 게 아니라 법률효
과에서도 등장한다 이른바 lsquo규범적 개념rsquo들도 그런 표현방식에 속한다 lsquo음란한rsquo
lsquo건전한rsquo lsquo불명예스러운rsquo 등의 개념들은 기본적으로 지각가능한 대상을 서술하는
개념과 대비하여 의미내용이 가치판단에 근거할 때만 파악된다는 점에서 규범적
이다 이때 가치판단은 반드시 주관적 개인적 평가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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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의 평가도 포함할 것이지만 어쨌든 이 판단과 관련한 어느 정도의 불확정성은
감수해야 한다 법관의 법률 구속 의무를 느슨하게 만드는 이런 개념군에는 재량
도 포함된다 오늘날 재량개념은 ldquo법적으로 구속되는rdquo 재량으로 이해되지만 이때
판단의 여지 안에 들어오는 여러 대안들 가운데서 최종 혹은 최선의 대안을 확정
하는 데 있어서 결정자의 개인적 확신을 허용할 수밖에 없다 일반조항도 표현 그
대로 높은 일반성을 띰으로써 법적용자로 하여금 자기 앞에 놓인 사례를 광범위한
사례집단들에 적응시켜가면서 법률효과를 귀속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33)
위에서 언급한 불확정 법개념이나 규범적 개념 등을 적용하는 데는 가치판단
요소가 수반된다 이런 개념들을 적용할 때 법관은 일정한 범위 안에서 입법자를
대신하여 가치판단 내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것이다 또 법관
은 법의 lsquo흠결rsquo을 보충하거나 법질서 안에서 이따끔 발견되는 lsquo오류rsquo를 수정해야
할 부득이한 상황에도 처하게 된다 이때는 법관은 스스로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찾아 나서야 한다 lsquo법의 일반원칙rsquo lsquo법의 정신rsquo lsquo평균인의 척도rsquo lsquo비례성원칙 lsquo이익
형량rsquo 등은 이때 법관이 의존하는 사유 장치들이며 이것들을 원용하는 데도 가치
판단적 요소가 개입한다 이때 판단자는 무엇이 사실상 효력을 갖고 있는 윤리적
견해인지 확인해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사실로서의 합의가 올바른 법적 결론에
도달하게 하는지에 대해서도 숙고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법적용자는 때로는 평
균인 테스트 같은 객관적인 척도에 의지하지만 또 때로는 개인적 견해를 더 많이
펼칠 수 있는 일정한 판단의 여지를 가지게 된다
이렇게 해석과정에서 불가피한 lsquo판단의 여지rsquo 즉 해석과정에 불가피하게 개입되
는 가치판단 요소 때문에 ldquo해석의 건전성rdquo을 둘러싸고 논란이 생기고 해석의 정당
화와 관련하여 회의가 생긴다 가치판단과 관련된 부분이 불가피하게 주관적 요소
를 끌어들이게 되고 이로 인해 법규범의 효력이 상대적이고 불확실한 영역으로 떨
어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단자는 자신의 결론이 불확실성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자신의 해석에 대한 정당화를 포기할 수 없다 법을
해석한다는 것은 ldquo그 법률을 특정 사안에 적용하는 것을 정당화한다는rdquo34)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확정적인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사례에서도 요구되는
33) 불확정적 개념 규범적 개념 재량 일반조항과 관련한 자세한 설명은 칼 엥기쉬 법학
방법론 안법영윤재왕 옮김 세창출판사(2011) 182면 이하에 잘 정리되어 있으며 필
자도 이 부분을 참조했음을 밝힌다 34) 닐 맥코믹 로버트 서머즈 ldquo해석과 정당화(上)rdquo 박정훈 역 법철학연구 제5권 제2호
(2002) 18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79
개인적인 단은 도덕적 상대주의자들이 말하는 개인적인 취향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해석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올바른 해석기준을 수립하고자 법률가들은 각
기 지금까지 다양한 해석방법에 의존해 왔다 올바른 해석을 위한 확고한 기준을
수립할 수 있다는 것은 찬성하는 혹은 반대하는 해석논거들 사이의 상대적 비중을
결정하는 명확한 규칙을 수립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즉 어느 한 해석
논거가 다른 해석논거에 의해 배제되는 조건이나 선택된 해석을 정당화하는 데
필수적인 한 논거가 다른 논거보다 우월하기 위한 조건 한 논거에 누적을 통한
비중이 부과되는 조건 등을 제시해줄 일관된 정보와 지침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
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여러 해석방법들 사이에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다는 것
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시도는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했다 동일한 유형의 논거일지
라도 각각의 정당화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비중을 갖게 될 뿐더러 언어적 해석
방법 체계적 해석방법 목적적 해석방법 등으로 제시되는 여러 해석방법들이 한
줄로 세우기에는 한마디로 너무 이질적이다35) 물론 이들 해석논거들의 상호작용
을 검토하면서 잠정적인 서열을 제시하는 것은 가능할 수도 있다36) 그러나 이 서
열은 기껏해야 ldquo해석을 위한 노력의 경제성 원리rdquo 정도를 말해 줄 뿐이기 때문에
쉽게 바뀔 수 있다37)
드워킨이 옳게 지적한 대로 기본적으로 가치판단과 관련된 해석방법들은 위계
적일 수 없고 ldquo상호지지적rdquo인 관계에 놓일 뿐이다38) 이 때문에 방법론적 규칙을
세우려는 시도는 언제나 무망해지는 것이다 또한 법해석에 있어서 언어란 단어의
의미를 식별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 행위의 의미를 식별
하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론 풀러(Lon Fuller)가 지적한 대로 ldquo언어
를 통한 의사 전달은 어느 한 사람으로부터 다른 사람에게로 의미가 든 상자를 발송
하는 식rdquo39)은 아닌 것이다
35) 울프리드 노이만 ldquo실증주의 이후 시대의 법률과 판결rdquo 강연문(주 32) 노이만에 따르
면 예컨대 체계적 해석 방법에 따른 논거도 그것이 논리적 일관성 획득의 맥락에서
인지 아니면 가치평가의 일관성 보장이라는 맥락인지에 따라 전혀 다른 비중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36) 대체로 언어적-체계적-역사적-목적론적 해석방법의 순서로 언급되는 데 대해서는 심헌섭
분석과 비 의 법철학 법문사(2001) 217-218면37) 맥코믹과 서머즈는 비교법적 연구결과를 통해 올바른 해석을 위한 지침 수립은 어느
국가의 법체계에서도 지금까지 성공적이지 못함을 밝힌다(앞의 글 210면)38) 로널드 드워킨 정의론 박경신 옮김 민음사(2015) 309면
80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결론적으로 해석방법론으로부터 법관은 불확실성을 떨쳐 낼 수 있는 확실한 정
보제공을 기대하기 어렵다 해석논거를 위한 결정적인 기준을 제공하는 해석방법
에 대해 불안정한 형태로나마 이론적 합의를 찾기 어렵다면 엥기쉬의 지적대로
해석방법론은 공중에 떠있는 상태다40) 법학에서 방법론의 융성은 역설적으로 법
학이 이 부분에 취약하다는 암시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해석자로서의 법관을
최종적으로 인도하는 전략은 무엇일까 다음과 같은 고민을 들어보면 적어도 그것
은 방법론상의 합의에 대한 기대 같은 것은 아닌 것 같다 ldquo우리들은 일정한 결론을
내리고도 그 결론이 가장 적절sdot타당한 것이라고 보증받을 수 없다 그 결론을 낸
시점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들은 자기의 결론이 그러한 불확실성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그것을 자기의 전인격적 책임 아래 끝을 내고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비판과 평가에 맡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rdquo41)
해석방법론이 공중에 떠있는 상태라면 법관을 법률에 구속시키기 위한 방법론
적 보장책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런 가운데 ldquo자기의 전인격적 책임 아래rdquo ldquo사려
깊고 균형잡힌 총체적 관념rdquo ldquo인생 그 자체로부터 지식rdquo 등에 대한 호소를 듣는다
이것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법발견으로 불리든 법인식 혹은 법형성으
로 불리든 법적으로 올바른 결정을 이끌어낸다는 것은 순순히 lsquo앎rsquo의 문제만은 아
니라는 것이다 실천철학의 전통 용어를 빌어서 말한다면 그것은 이론지 이상의
실천지를 요구하는 활동이다 즉 법관의 해석활동은 이론지와 실천지를 결합하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이 주제로 다가가는 한 우회로로서 우선 지적 활동으로서의
법관의 해석활동의 특성에 대해 살펴보자
39) 론 풀러 법의 도덕성 박은정 옮김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2015) 314면 40) ldquo그러나 해석론 전체에 대한 확고한 이론적 토대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서열관계에
관한 모든 이론들은 여전히 공중에 떠 있다rdquo 엥기쉬 앞의 책 137면41) 사법연수원 법조윤리론(2014) 31면 그밖에 Benjamin N Cardozo The Nature of
Judicial Process Yale University Press (1921) ldquo언제 하나의 이익이 다른 이익을 능가
하는지를 묻는다면 hellip 경험과 연구와 성찰로부터 요컨대 인생 그 자체로부터 그 지식
을 얻지 않으면 안된다고 답할 수 있을 뿐이다rdquo(여기서는 법조윤리론에서 재인용) 또한 맥코믹서머즈 ldquo해석과 정당화(下)rdquo 박정훈 역 법철학연구 제6권 제1호(2003) 348면 ldquo해석은 간주관적으로 승인된 모든 법적 가치들에 대하여 사려깊고 균형잡힌
총체적 관념을 획득하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제대로 행해질
수 있다rdquo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1
Ⅵ 법관의 해석활동 실증주의의 대척점
앞에서 언급한 대로 해석에서는 무엇이 최선의 해석인가를 둘러싸고 언제나
논쟁과 불일치가 따른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누군가가 텍스트를 해석한다고
말하는 순간 그는 실증주의의 대척점에 서게 된다 실증주의과학의 의미에서는 논
쟁의 여지가 있는 것은 원칙적으로 과학일 수 없기 때문이다 법실증주의사고에서
해석 문제가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법을 근본규범에 입각
한 자기준거적인 구조로 보는 한스 켈젠(Hans Kelsen)의 순수법학이나 법적용과정
을 규칙에 의해 지도되는 과정으로 보는 하트(H L A Hart)의 분석법학에서 해석과
관련한 어려움은 다루고 있지 않다42)
켈젠은 순수법이론(Reine Rechtslehre)에서 정당한 해석만이 허용된다는 주장
은 허구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면서 해석의 건전성 문제나 정당화 문제를 법이론
안에서 다루기를 거부한다 법을 자기준거적인 것으로 보는 관점은 한마디로 해석
(행위)주체의 입장을 부정하는 것이다 켈젠은 법단계설을 바탕으로 법적용을 상위
규범의 수권에 의해 하위규범이 구체화되는 과정으로 보고 여기에 헌법의 수권을
받아 법률을 제정하는 입법자도 포함시킨다43) 이에 따라 법적용도 입법의 한 형
태로 설명된다 법관에 의한 법형성의 동기는 이를테면 입법부가 유독 다른 법률
이 아닌 이 법률을 통과시키는 동기와 같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켈젠은 판단활동
에서 인지적 요소와 의지적 요소를 엄격하게 구별하면서 법관의 판단활동을 순전
한 의지활동으로 보고 이 법관의 활동에 대해서만 (유권)해석이라는 표현을 사용
하고자 한다 그리고 법학적 해석에 대해서는 법규범의 가능한 의미들을 밝히는
것으로서 법률에 따른 결정의 범위를 제한하는 정도의 의미를 부여한다
법단계설에 따르면 상위규범이 정한 일정한 범위 안에서의 수권에 따라 하위규
범이 작용한다 이때 상위규범의 수권은 모든 세부적인 내용들에 대해서까지 정해
42) 켈젠은 순수법이론(Reine Rechtslehre) 제1판(1934) 제6장에서 해석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부분과 거의 같은 논문 ldquoZur Theorie der Interpretationrdquo이 심헌섭 젠법이론선집 법문사(1990) 97면 이하에 실려 있다 윤재왕 교수는 Reine Rechtslehre 제1판과 제2판
(1960)을 비교하면서 해석방법으로부터 오는 규범적 구속력을 일체 거부하는 켈젠의
입장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윤재왕 ldquo한스 켈젠의 법해석이론rdquo 고려법학 제74호(고려
대학교법학연구원 2014) 525면 이하 하트의 대표적인 저서 법의 개념의 색인 항목에는
lsquo해석rsquo이 빠져있다 43) Hans Kelsen Allgemeine Staatslehre (Berlin 1925) 231면 이하
8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그래서 ldquo상위단계의 법생성으로부터 하위단계의 법생
산으로의 전환은 단지 상위단계가 정해 놓은 범위를 채우는rdquo 활동으로서 이때
ldquo언제나 상위단계에는 없는 내용적 요소가 하위단계에 추가되어야만rdquo 한다44) 이
내용을 채우는 부분과 관련하여 상대적 불확실성이 생기는데 켈젠은 이 문제를
ldquo자유재량rdquo의 문제로 다룬다45) 이는 하트가 규칙의 체계로서의 법체계를 완결된
구조가 아닌 열린 구조로 봄으로써 상대적 불확실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법관의
재량사항으로 보는 것과 같다 하트의 경우 중심부와 주변부라는 극히 단순화된
이분법을 끌어들여 이 불확실성 문제를 처리하고자 했다면 켈젠의 경우는 인식작
용과 의지작용의 이분법을 끌어들임으로써 이 문제를 처리하고자 한 것이다
판결을 법관의 의지활동으로만 이해하는 입장을 취하게 되면 법관에게 결정에
대한 근거 제시 요청을 할 수 없게 된다 마치 신의 심판에 대해 근거 제시를 요구
할 수 없듯이 말이다 결국 켈젠의 법이론상으로는 해석은 법학의 문제가 아니며
그러므로 분석적 법실증주의와도 무관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46) 이런 이유에서 그
는 정당한 해석만이 허용된다는 주장이나 해석방법만으로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에
이를 수 있다는 주장을 거부하면서 심지어는 상위규범에 제시된 범위를 넘어서는
해석의 효력조차 적극적으로 인정함으로써 어느 의미에서는 해석이론의 존재기반
자체를 무너뜨린다47)
켈젠이나 하트가 법이론에서 해석의 의미를 축소한 이면에는 이분법이라는 과도
한 사유의 단순화가 놓여 있다 그러나 켈젠이 생각하는 것처럼 판단에서 인식적
요소와 의지적 요소의 확고한 경계가 유지되는지는 의문이다 또 중심부와 주변
부에 대한 하트의 주장도 지나친 단순화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어쨌거나
켈젠이 합리적인 해석방법을 추구하는 법이론의 효용가치를 한껏 떨어뜨렸다고
해서 이제 어차피 정답은 없으니 법대에 앉은 법관은 자기 임의로 무엇이든 해도
된다고 켈젠이 주장했을 리는 물론 없을 것이다 법이론의 과도한 정당성 주장을
거부하는 데서 오히려 순수법학의 비판적 잠재력을 찾을 수 있다고 보는 학자들은
여기서 켈젠이 강조한 순수화 즉 탈정치화는 법학에 관한 것이지 법 자체에 관한
44) Kelsen Allgemeine Staatslehre 243면 여기서 번역은 윤재왕 앞의 글 535-536면에서
재인용45) Kelsen 앞의 책 243면 이하46) 켈젠에 있어서 법해석은 이론상으로는 법학보다는 정치학이나 사회학에 속하는 문제
에 더 가깝다고 지적한 견해에 대해서는 론 풀러 앞의 책 312면 47) 이에 대해서는 윤재왕 앞의 글 553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3
주장이 아니었음을 상기시킨다48) 즉 법 자체는 결코 정치와 분리될 수 없다는
점에서 법실무에 대한 학문이론의 무가치성을 주장하는 순수법학은 실무의 법
적용자로 하여금 자신의 활동이 정치적 활동임을 깨닫고 책임을 느끼게 하는 계기
를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윤재왕 교수도 ldquo켈젠 해석이론의 배후rdquo로 들어가 방법
이론으로부터의 어떤 구속력도 거부되는 데서 생기는 공백을 켈젠이 법관 자신의
자기이해와 책임성 문제로 채운다고 지적한다 ldquo법관의 판결은 결코 순수한 것일
수 없으며 그런데도 자신의 판결이 순수한 인식의 소산이라고 강조한다면 이는
정치적 책임의 회피이고 동시에 이데올로기적이라는 혐의에 노출되지 않을 수
없다rdquo49) 이 문구가 켈젠 자신으로부터 나왔다면 아주 좋았을 것이다 자신의 직
무의 중요성과 책임에 대한 실천적 깨달음은 해석의 정당화를 목표로 하는 인식적
노력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켈젠의 순수법이론의 기획은 서로
붙어 있는 양면을 떼어 놓으면서 이것을 다시 붙일 수 있음을 보여주려 한 것일까
Ⅶ 법관의 해석활동 가치판단과 lsquo정답테제rsquo 문제
켈젠처럼 실증주의적 사고에 따르든 아니면 비실증주의적 사고에 따르든 가치
판단 문제에서 해석방법만으로는 하나의 정당한 결정을 도출할 수 없다고 생각한
다면 이는 해석의 차원에서 가치에 대한 이해 시도는 진리 추구와는 무관하다는
주장으로 귀결되는가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해석대상의 의미에 대한
관심과 최선의 이해에 대한 관심은 아무래도 진리 추구라는 목표를 향한다고 봐야
한다 법적 결정은 물론 법관의 권한에 속하지만 그것을 정당화해주는 원천은 법
관이라는 lsquo지위rsquo가 지니는 형식적 권한이 아니라 판결이 정당하다는 근거 제시에
있다 법판단을 정당화해주는 모델은 울프리드 노이만(Ulfrid Neumann)이 지적한
대로 권위를 통한 정당화모델보다는 진리를 통한 정당화모델에 더 가깝다50)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재판활동은 엄연히 사법권이라는 공권력의 작용이라는 점에서
독립적인 법관의 재판활동을 그 ldquo계획적이고 진지한 진리 탐구 활동rdquo적 측면 때문
48) 법학의 탈정치화를 ldquo정치적 허무주의rdquo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데 대해서는 켈젠 ldquo순수법학이란 무엇인가rdquo 젠법이론선집 280-282면
49) 윤재왕 앞의 글 559면50) 울프리드 노이만 ldquo법 진리 권위rdquo 2013 4 6 한국법철학회 강연문 참조
8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에 학문의 자유의 한 표현으로까지 보려는 것은 무리다51)
오늘날 가치상대주의 분위기는 실천적 물음에서 진리 도달가능성에 대한 회의를
과장한다 그러나 진리가 뭐냐는 빌라도의 물음에 비록 확신에 찬 대답을 못한다
하더라도 법에서 진리 내지 정당성 추구의 포기는 파국을 의미한다 국가권력
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도 진리라는 규제이념이 전제되기 때문
이다 독립된 사법부가 심급구조와 집단적 의사결정의 형태로 스스로의 시정 기구
를 가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물론 진리에 대한 주장은 잠정적이고 수정가능하다
lsquo참이냐 거짓이냐rsquo는 오로지 서술적 명제에만 한정하여 검증될 뿐이라는 협소한
학문관을 따른다면 법학은 학문 안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법
학이 그런 협소한 학문관을 받아들여야 할 필연성은 없다 법해석자는 자신의 해
석적 판단이 진리라는 주장을 무한정 내세우지는 못하면서도 진리 추구를 피할
수 없다52) 론 풀러(Lon Fuller)의 지적대로 ldquo법이론이 최고의 법적 권위를 엄격하
게 정의하는 일에 큰 비중을 두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이 점이 모호해지면 필경
전체로서의 법체계가 와해될 수 있다rdquo53)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법을 민주
주의의 언어로 설명하는 오늘날 의회와 행정처럼 다수결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기
관도 아닌 사법의 소수 전문 엘리트의 지배를 권위모델만으로 정당화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법을 준수하는 시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시민들은 자신에게 유죄
판결을 선고한 세속의 법관에게 그 유죄판결의 근거를 알고 싶다고 요구할 수 있
으며 물론 당연히 요구한다
법관은 판결에서 논증을 통해 최상의 근거 제시가 이루어진 결정을 해야 한다54)
51) ldquo일부 사람들 중에는 이러한 법원의 권력기관적 성질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
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helliphellip 가끔 법관의 일을 조용한 방에서 소송서
류를 꼼꼼하게 읽어 파악한 사실에다가 법을 논리적으로 적용하는 단순히 지적(知的)인 작업이라는 시각에서만 말씀하시는 분을 만나면 그 분에게 재판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법대에 앉아 있는 법관이 어떻게 보이는지 물어보고 싶어집니다rdquo 양창수 ldquo바람직한 법관상 - 기예와 지혜 사이rdquo lt근대사법 및 한성재판소 설립 120주년 기념
1895sim2015 소통컨퍼런스 역사에 비춰 본 바람직한 법관상gt 자료집(서울중앙지방법원 2015 5 11) 15면 ldquo계획적이고 진지한 진리 탐구 활동rdquo이라는 표현은 라드브루흐에서
나온다 구스타브 라드브루흐 법철학 최종고 옮김 삼영사(2011) 238면 52) 드워킨 앞의 책 208면 53) 론 풀러 앞의 책 211면 풀러의 문장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ldquo하지만 이 경우도
위로부터의 지시 또한 목적의식에서 비롯되는 지적 활동을 완전히 생략할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rdquo54) 물론 진리 요청과 관련하여 개별 법관의 관점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며 민주국가에서
포기될 수 없는 진리 요청은 법학을 포함한 법체계 전체로 하여금 진리 요청에 어떻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5
이때 정당한 근거 제시가 이루어진 결정과 관련하여 그것이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
이라는 주장을 펼 수 있는가 앞에서 검토한 대로 켈젠의 순수법이론은 그런 주장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이에 비해 드워킨은 법적 판단에 있어서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이 원칙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ldquo정답테제rdquo로 불리는 이 주장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학자들이 지적한 대로 존재사실에 대한 주장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하나의 ldquo규제이념rdquo으로 받아들이는 게 맞는 것 같다 즉 드워킨의 정답테제
는 ldquo유일하게 정당한 결정rdquo이 존재한다는 데 대한 이론적 탐구라기보다는 실무에
서의 법관의 주관적 태도에 부합하는 이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법관은 자신의 판결활동과 관련하여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모든 사건
에서 오직 하나의 결정만이 정당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 정답에 가까이 가기 위
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55)
드워킨의 말대로 가치판단이 참일 때는 그냥 참일 수가 없으며 그것이 참인
이유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즉 충분한 논거가 존재할 때 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라면 이러한 논거지움의 과정은 자명한 공리적
토대나 그런 토대 위에서 확립된 규칙이나 원리적 서열에 따라 명확하게 밝힐 수
없다 이런 불확실한 가운데도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논거지움은 포기될 수
없다 이 끝없는 정당화 부담 때문에 켈젠은 규범의 효력 근거에 관한 논의를 가
치에 관한 논의와 절연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물론 성공하지
못했다56)
가치판단을 해야 하는 부분이 법문화에서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요소로 작용할지
아니면 그 반대로 작용할지는 판단자로서의 법관의 역량과 연관하여 논해야 할 것
이다 필자는 가치판단적 요소가 법문화에서 당연히 긍정적 요소로 작용해야 하며
게 부응하는지 묻게 한다 따라서 사법부 외부에서 행하는 사법비판의 길이 열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대해서는 노이만 앞의 강연문 참조55) 노이만 앞의 강연문56) 규범의 효력을 불명확하고 상대적인 가치가 아닌 규범에 근거짓기 위해 켈젠이 고안
한 근본규범은 사유상으로만 전제된 규범일 뿐이었다 켈젠은 가치판단을 ldquo현실의 행
위가 객관적으로 효력 있는 규범에 맞게 존재해야 하는 대로 존재한다는 판단rdquo이라고
정의함으로써 가치판단이라는 용어 자체를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Reine Rechtslehre 2 Aufl (1960) 16면 이하 또한 켈젠은 규범이 인간의 의지에 의해
제정되는 한 그 규범에 의해 형성된 가치는 어차피 자의적일 뿐이라고 주장한다(18면) 규범과 가치의 관계에 대한 켈젠의 주장에 대해서는 오세혁 ldquo켈젠의 법이론에 있어서
규범과 가치 - 규범과 가치의 상관관계를 중심으로rdquo 법철학연구 제18권 제3호(2015) 97면 이하 참조
8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또한 그렇게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57) 그런 방향에서 이제 해석의 문제를 법
관의 자기이해 문제와 연관시켜 보기로 한다
Ⅷ 해석과 법관의 자기이해
법관은 추상적인 일반규칙을 가지고 공중의 이목을 끄는 개별적인 사건을 처리
하는 사람이다 법관의 의식활동에 의해 일반규칙과 일회적인 사건 사이의 심연이
메워진다 하지만 일반성과 개별성을 결합하는 이 의식과정에 동반하는 고유한 법
학적 방법에 대해서는 앞에서 지적한 대로 확실한 합의는 없다 ldquo리걸 마인드rdquo라
는 말이 풍기는 신비스러운 분위기에는 사법적 결정이 본질적으로 투명한 것이 되기
어렵다는 암시가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다 논리적인 형태만 부여하기로 한다면
한 사건에서 서로 상반된 결론에 이른 두 개의 판결문을 작성하는 것도 불가능
하지 않다58) 방법이 논리에 기초하는 것이라면 이때 논리는 형식논리를 넘어 엥기
쉬가 표현한 대로 ldquo실질에 부합하는rdquo 논리여야 할 것이다 참된 올바른 받아들
일 수 있는 결정에 이르는 실질논리 이 실질에 도달하기까지는 결코 논리적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지적 감행과 어떤 매개가 작용한다
일반규칙을 개별사례에 적용할 때 요구되는 판단자의 능력과 관련하여 가다머
(Hans-Georg Gadamer)는 이런 견해를 밝힌 적이 있다 판단자는 자신이 이미 가
57) 이와는 달리 가치의 ldquo통약불가능성rdquo 때문에 사법은 좋음이나 옳음의 이슈에 대해 실
질적 입장을 취하는 일에 대해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가치의 통약
불가능성에 대해서는 Cass R Sunstein ldquoImcommensurability and Valuation in Lawrdquo Michigan Law Review Vol 92 No 4 (1994) 779면 이하 조홍식 교수는 ldquo가치의 통약
불가능성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이 권리인가의 문제보다 무엇이 공익인가의 문제에서
더 크다rdquo고 지적하면서 기본적으로 가치판단과 관련한 사법통치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사법통치의 정당성과 한계 제2판 박영사(2010) 240면 가치의 통약불가능성에 대한 주장은 가치판단과 관련한 해석기준의 서열화는 불가능
하다는 주장과 같은 노선에 속한다 여기서 통약불가능성 문제를 자세히 다룰 수는
없다 다만 가치의 통약불가능성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통약불가능이 비교불가능을 의미
하지는 않는다는 점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체적인 맥락이 주어지는 경우 무엇이 옳은
지 혹은 그른지에 대해 심사숙고하며 이에 따라 선택하고 그 선택 결과를 받아들인
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정도만 지적하기로 한다 58) 실제로 판사가 판결문을 두 개 써왔다고 주장한 사건에 대한 보도가 있었다 ldquo판결문을
두 개 써왔다rdquo 조선일보 2013 11 21자 기사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7
지고 있어서 적용하기만 하면 된다는 그런 의미의 규범적 실천적 ldquo지식을 소유한
사람rdquo이라기보다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 ldquo지식을 탄생시키는 상황에 직면하는
사람rdquo이라는 것이다59) 일반범주를 개별사례에 적용할 때 요구되는 이 판단력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래서 칸트(Kant)도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ldquo지성은 규칙들
을 통해 배우고 보강할 수 있는 것이지만 판단력은 특수한 재능으로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전혀 아니고 단지 숙련될 수 있을 뿐이다rdquo60)
우리는 올바른 규칙이나 원리를 알고 있지만 막상 이것을 어떤 상황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예컨대 비례성원칙이나 과잉금지원칙에 대한 지식
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은 적정해야 하고 그 수단은 목적달
성을 위해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원칙을 특수한
상황에 lsquo적용rsquo한다고 할 때에 이 원칙이 그 어떤 판단도 배제할 정도로 자족적인
지침 구실을 한다고 느끼기는 어렵다 특정 상황에서 그 수단이 과연 어느 정도일
때가 목적달성에 적정한지는 판단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실천이성의 역
할이다
단의 자리는 이론 경험 양심이 혼재된 실천의 영역이다 판단을 통한 결정이
라는 그 lsquo종국성rsquo으로 인한 실천적 성격은 법학이 다른 어떤 학문분야와도 공유
하지 않는 법학 고유의 특징이다 그래서 법학은 lsquolegal sciencersquo로 불리기보다는
실천지- prudentia-를 함의하는 lsquojurisprudencersquo로 더 자주 불리어 왔을 것이다
해석의 차원에서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도 추상적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
으로는 행위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성과 개별성을 결합하는 해석적
지식은 추상적 이론적 지식들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일반규칙이나 원리
에 근거한 이론적 패턴의 지식과 특정한 상황 내지 맥락을 고려하는 실천적 패턴
의 지식의 이중주를 이룬다 법관이 지니는 통찰력의 특성은 이론과 태도가 함께
간다는 데 있다 그래서 사법적 판단에서는 규칙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 못지않게
사람 즉 법관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사법적 통찰력의 특성은
뭐니뭐니해도 개별 사례를 다룬다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개별적인 것들은 개별적
인 방식으로만 체험되고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들은 무엇
보다도 lsquo지각rsquo과 관계된다61) 즉 그것들은 일반적 체계적 지식의 대상이라기보다
59) Hans-Georg Gadamer Wahrheit und Methode Grundzuumlge einer philosophischen Hermeneutik 3 Aufl J C B MOHR (1972) 300면
60)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 1 백종현 옮김 아카넷(2009) 374면
8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는 우선 지각의 대상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도 사법적 통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쪽은 규칙보다는 오히려 사람 즉 법관 쪽인 것이다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사건에서 법적으로 중요한 사실이 무엇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규칙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어떤 규칙이 중요한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실이 중요한지 알
아야 한다 이 인식과정에서 법관은 불확실한 가운데서 무수한 선택을 감행한다
어떤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 배척하고 어떤 사실은 인정하거나 무게를 부
여하고 신청된 증거조사의 어떤 것은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거부하고helliphellip 사실
에 대한 이 취사선택-자유심증주의-의 결과로 새로운 것이 태어난다 그리고
이것에 의해 법원을 찾아온 사람들의 운명이 갈리는 것이다
법관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필자 생각에
독일의 법철학자 아르투어 카우프만(Arthur Kaufmann)의 해석학적 방법론은 법
관의 자기이해 문제를 해석학적 지평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법관의 해석작업의
본질을 잘 설명해주는 것 같다 가다머 계통의 철학적 해석학(philosophische
Hermeneutik)의 입장을 받아들이면서62) 카우프만은 법해석행위를 통해 포괄적인
의미에서 법관 자신의 인격 중의 어떤 것이 판결에 혼입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
61)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4면 그리고 1심에서
유죄였다가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강력범죄 540건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판단자
의 감지능력 차이가 법판단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힌 김상준 무죄
결과 법 의 사실인정 경인문화사(2013) 62) 텍스트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이해에 관한 연구분야인 해석학(hermeneutics Hermeneutik)
의 어원은 신들의 전령(傳令)인 Hermes라는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설명된다 이때 신의
의도를 인간에게 전하는 과정에서 언어의 제약성 시공간적 간격 전령의 역할 등과 관
련하여 해석의 문제가 생긴다고 본다 ldquoHermeneuticsrdquo Dictionary of Biblical Interpretation Nashville (1999) 497면 독일어의 Auslegung이 해석주체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대상
으로서의 텍스트에 대한 해석을 의미한다면(객관주의) 철학적 해석학에서의 해석
(Interpretation)은 해석주체의 주관성 내지 역사성이 대상에 투사된다는 의미가 강하다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에 따르면 역사적 존재인 인간에게 있어 모든 해석과 이해는 과
거와 현재가 lsquo작용사적으로(wirkungsgeschichtlich)rsquo 중재되는 사건으로서 lsquo선이해rsquo 내지
lsquo선판단rsquo 없이는 불가능하다 가다머는 선입견으로 폄하된 선이해를 재평가하고 이를
통해 근대 이래 lsquo방법rsquo을 통한 진리발견이 주체에 의한 객체의 대상화 내지 도구화를 가져
왔다고 비판하면서 인간경험에 있어서 진리에 이르는 길은 사물의 존재가 스스로 드러
나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해석과 이해는 전승된 존재방식으로서
의 텍스트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며 이는 텍스트 자체가 지닌 역사적 지평과 해석
자의 지평이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만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해석학적 순환 이해의 전제로서의 선이해 작용사 등에 대해서는 Gadamer 앞의 책 II Grundzuumlge einer Theorie der Hermeneutischen Erfahrung 참조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9
로 법관의 결정이 올바른가의 물음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가의 물음과 직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63)
우선 카우프만은 통상적으로 회자되는 독립적인 법관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즉 법 앞에 선 법관이 일체의 정치적 사회적 개인적 영향이나 선입견들로부터 차
단된 채 순수한 객관적 인식에 따라 그 이전에는 자신이 알 수 없었던 사실관계
를 판단하고 그런 다음에 법적 판단을 한다는 식으로 이해하기를 거부한다64)
그런 법관상은 법령집은 일체 해석의 필요가 없이 거의 모든 가능한 법률문제에
대한 대답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상정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법관은 의지가
없는 존재이며 사법권력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여기는 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법에 대한 인식은 단순히 사례를 법률에 포섭시킨다는 의미의 수
동적 행위가 아니고 해석자가 해석대상에 관여하면서 함께 lsquo형성rsquo하는 것이라고
본다 카우프만은 법관의 법형성력에 대한 자신의 견해가 주관주의의 의미로 받아
들여지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는데 왜냐하면 해석자는 텍스트를 지탱하는 모든
전통과 함께 이해의 지평으로 들어간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은 서류의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ldquo아 이런 사건이구나rdquo라고 감을 잡게 되
는데 카우프만에 따르면 이는 법관 자신이 사건 경과를 관찰해서 인지했다거나
언론 등을 통해 사건에 대한 상세한 지식을 얻었다는 뜻이 아니라 유사한 사건들
을 알며 그래서 ldquo선이해(Vorurteil Vorverstaumlndnis)rdquo65)를 가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
해의 전제로서 이런 선이해가 없다면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것이 무엇에 관한 사
건인지 알 수 없고 다른 사례와 비교할 수도 없기 때문에 올바른 판단에 이른다
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66) 이 선이해에 의해 해석은 언제나 해석주체의 자기
이해 즉 자신이 lsquo잠정적rsquo 결과로서 이미 예상했던 것을 논증적으로 근거짓는 활동
이라는 의미에서 ldquo해석학적 순환rdquo 내지 ldquo해석학적 나선구조rdquo 하에 이루어진다
63)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Festschrift fuumlr Karl Peters Mohr Siebeck (1974) 144면 법관의 독립과 양심 주제와 관련한 또 다른
글로는 Kaufmann ldquoGesetz und Rechtrdquo Existenz und Ordnung Festschrift fuumlr Erik Wolf (1962) 357면 이하
64)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4면 65) 해석학적 의미에서의 lsquo선이해rsquo는 일상 언어 관용에서는 lsquo선입견rsquo이나 lsquo편견rsquo 같은 부정
적 함의를 더 많이 지니기 때문에 카우프만은 lsquoVorurteilrsquo 대신에 Vorverstaumlndnis라는 용
어를 쓰기를 권장한다(앞의 글 148면) 카우프만 외에도 이 용어의 선택은 Josef Esser Vorverstaumlndnis und Methodenwahl in der Rechtsfindung 2 Aufl (Frankfurt aM 1972)
66)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7면
90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텍스트를 이해하려는 사람은 말하자면 언제나 초벌 그림을 그리며 특정 의미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텍스트를 읽기 때문에 ldquo텍스트에서 첫 번째 의미가 지시되자
마자 전체의 의미를 lsquo예비투사한다(vorauswirft)rsquordquo67) 그리고 선이해와 관련된 이 예
비투사는-해석학적 lsquo순환rsquo에 의해-원칙적으로 끝없이 검열과정을 거친다는 것
이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도 실제 판단과정에서는 분리
되지 않는다68)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은 시간적으로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단절 관계가 아니라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정제하고 상응하는
관계에 놓인다 즉 사실에 대한 인식 없이 규범적 인식은 불가능하며 또한 규범적
관점 없이 사실만을 통한 사실 확정도 불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법률도 법관의
해석을 만나기 전에는 ldquo잠재적인 가능태로서 주어진 법률rdquo일 뿐 해석학적 순환을
통한 정제 혹은 상응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ldquo진정한 실정법rdquo이 생성된다69) 이렇
게 특정사건을 통해 구체화된 규범(구성요건)과 이 규범을 통해 정해진 사실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법관에게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들과 함께 제3의 요소로서 법관
자신의 선이해 내지 이해 포괄적으로 말하면 그의 인격적 존재가 판단에 혼입
된다
lsquo선이해rsquo는 판단자가 자신의 선이해를 의식하지 못할 때 부정적 요소를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ldquo자신의 판단은 오로지 lsquo있는 그대로다rsquo라고 말하는 즉 lsquo오로지 법
률에만 구속된다rsquo라고 말하는 법관이야말로 실은 종속된 법관이다 왜냐하면 그는
성찰되지 않은 자신의 선이해와 거리를 둘 수 없기 때문이다rdquo70) 즉 법관은 자신
67)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68) 실제 판단과정에서 사실인정과 법률적용이 따로 떨어질 수 없다는 점은 굳이 카우프
만의 이론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실무상으로는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ldquo법률
의 적용과 사실의 인정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법률문제와 결부되어 인정된다 사실의 인정이 진행됨에 따라서 재판관의 머리
속에서는 어떠한 법규를 적용할 것인가 그 법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는 전망이
점차로 서게 되며 당사자 측도 경우에 따라서는 민사인 경우 청구의 취지를 변경할
것인가를 고려하게 되고 형사인 경우 공소사실을 변경하는 경우도 생긴다 요컨대 사실
문제와 법률문제는 실제과정에서 불가분으로 결부되어 있다 helliphellip 양쪽이 불가분으로
재판관의 직관 혹은 재판관의 전인격적인 작용에 의하여 사실의 인정과 법의 적용이
행하여지고 판결 삼단논법은 실제의 심판 과정에서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rdquo(사법
연수원 법조윤리론 35면) 69) ldquo법관의 해석 작업 이전에는 어느 의미에서 진정 법도 진정한 사실도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원자재들(Rohmaterialien)로만 이것들이 존재할 뿐이다rdquo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1
의 선이해를 의식하고 자신을 이데올로기 혐의 앞에 세울 줄 알 때 올바른 판결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ldquo법관이 자신의 선이해와 종속을 의식할수록 그래서 간주
관적 합의에 노력할수록 그는 더 객관적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rdquo71) 그러므로
법관의 주관주의의 위험은 카우프만식으로 말하면 가치판단 같은 성찰적 고려와
관련된 주관적 요소를 방법상의 근거 제시의 맥락에 끌어들이는 법관의 경우보다는
오히려 모든 것이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판결의 주관적
요소를 은폐하는 법관에게서 나타나는 위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학적 순환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법관은 ldquo법률의 입rdquo이 아니라 ldquo인격
으로서 판결을 떠받친다rdquo72) 판결은 법률과 법관의 인격의 혼성물이다 그러므로
법률은 판결을 위한 필요조건이기는 하나 충분조건은 아니라고도 말할 수 있다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순환이론은 법관의 독립과 양심의 문제 차원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법결정의 올바름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
는 정도에 달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자신을 올바르
게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자신의 판단력 경험 능력 인간에 대한 태도 감
수성 명예욕 등등
카우프만의 법해석학적 순환이론이 법관의 독립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이라
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독립은 법관 스스로 관철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론적으로 카우프만의 법해석이론의 의의는 법관이 자신의 선입견을
의식하는 것이야말로 법관의 독립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설득력있게 지적
해주며 그런 방향에서 법관의 법해석 작업을 재평가했다는 데 있다고 말할 수 있
겠다
70)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71) Arthur Kaufmann ldquoDer BGH und die Sitzblockaderdquo NJW (1988) 2581면 이하72) 이 표현은 Karl Peters의 Strafprozess - Ein Lehrbuch (1966) 99면에 나오며 여기서는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9면에서 재
인용했다 이덕연 교수도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에 입각하여 ldquo법관의 법해석작
업은 단순한 lsquo인식작업rsquo이나 lsquo언어분석작업rsquo이 아니라 ldquo구체적인 반성과 자기극복의
노력 속에서 온 인격을 걸고 진행하는 lsquo이해와 실천의 수행작업rsquordquo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앞의 글 35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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Ⅸ 법관은 lsquo하는 사람rsquo인가 lsquo보는 사람rsquo인가
법관의 판단작업을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의 관점에서 주목했던 또 다른
철학자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다 그녀는 ldquo아이히만 재판rdquo을 계기로 판단의
특수한 경우로서의 판단력 문제를 연구했다73) 아렌트는 하드케이스와 연관시켜
법관의 판단력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74) 법관은 우선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을 반추하면서 판단에 임하는데 이때 판단자로서 그는 한 면으
로는 규칙에 따라 판단하라는 lsquo일반적 정의rsquo의 요구에 그리고 동시에 다른 한 면
으로는 정황에 맞게 판단하라는 lsquo개별적 정의rsquo의 요구에 처한다 이러한 상황은
아렌트에 따르면 하드케이스에서 특히 발생한다 이 이중적이고 모순적 요구 상황
을 아렌트는 법관의 판단에 적용되는 특수한 해석학 및 그 조건을 설명하는 출발
점으로 삼는다75) 하드케이스가 아닌 통상적인 사건에서는 이른바 포섭 여부를 판
단하는 것으로도 족하다 일반규칙에의 포섭 여부가 중심이 되는 이 단계에서의
판단력- lsquo규정하는 판단력(bestimmende Urteilskraft)rsquo-은 사실관계에서의 원인
이나 형식적 정의를 따지므로 일방적이고 간주관적 전제 없이도 가능하다 그래서
흔히 법관은 여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법을 해석해야 한다고 말할 때 이는
법적용을 이러한 지배적인 포섭모델에 입각하여 이해한 결과라 할 것이다 그런데
규칙으로부터 오는 어떤 어려움들 때문에 규정하는 판단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즉 포섭이 어렵거나 법흠결 시 또는 가치형량이 요구되는 하드케
이스에서는 법관은 어쩔 수 없이 앞에서 말한 모순문제를 다루어야만 한다 이때
아렌트는 법관이 사유의 확장을 통해 방법상으로 lsquo규정적 판단력rsquo을 스스로 교정
할 수 있는 lsquo성찰적 판단력rsquo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고 이 판단유형의 전환과정을
73) 법적 판단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 삼은 저술은 Hannah Arendt Eichmann in Jerusalem Ein Bericht von der Banalitaumlt des Boumlsen Erw Aufl (Muumlnchen 2001) 그리고 Hannah Arendt Das Urteilen Texte zu Kants Politischer Philosophie Hrsg v R Beiner Uumlbers v U Ludz (Muumlnchen 1998)
74) 아렌트가 염두에 둔 하드케이스는 라드브루흐가 이른바 ldquo법률적 불법rdquo 상태로 규정한
나치의 불법국가 상황으로서 이렇게 극히 예외적인 케이스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하드
케이스에 적용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별적 정의 요구에 부응함
으로써 예컨대 소급효를 금지하는 일반법률에 위배되는 상황과 유사한 갈등상황은 반
드시 극단적 상황에서만 생긴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75)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2 Bde Hrsg v U Ludz amp I Nordmann
따라서 그 척도는 전달가능성이며 거기에 딱 맞는 것은 공통감각(상식)이다rdquo77) 오
늘날 공통감각은 아렌트도 지적했듯이 더 이상 그것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얻고자 노력해야 하는 그 무엇이 되어버린 듯하다 그러나 공통감
각이 무너진 시대를 겪었던 아렌트는 사유의 전환 내지 확대를 위한 진정한 발판
을 다시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에서 구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78)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실천철학의 전통에서는 세계와의 관계 그리고 자기와의 관
계를 공통감각을 척도로 설정해가는 판단자가 lsquo하는 사람rsquo인지 아니면 lsquo보는 사람rsquo
인지 즉 lsquo행위자rsquo인지 아니면 lsquo관찰자rsquo인지를 둘러싸고 의견이 대립되어 왔다 lsquo하
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자가 lsquo정치가rsquo 쪽에 더 가깝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
자는 lsquo철학자rsquo 쪽에 더 가깝다 lsquo하는 사람rsquo은 주로 사회의 일반적 상식 건전한 인
간이해 세론(doxa)을 판단의 척도로 삼는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적 경험은 전체주
의 하에서는 건전한 인간이해도 집단화된 대중감정에 따른 오도된 인간이해 앞에
무너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판단에서 사실로서의 상식이나 합의 또는
법해석공동체 내부의 지배적 제도적 관점이라는 판단 척도만으로는 일반규칙으로
부터 오는 모순을 다루기 어렵다 여기서 판단자는 ldquo확대된 사유방식rdquo을 추구해야
하는데 아렌트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을 lsquo보는 사람rsquo의 판단과 결합시킴으로써 법
관을 위한 사유의 확대를 시도한다79) lsquo하는 사람rsquo이 사실로서의 일반적 상식이나
인간이해 차원에 비추어 판단한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ldquo이
상적 규범적 상식rdquo80)을 추구하고자 한다 판단을 거쳐 법적 효과를 결정하는 법관
76)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을 해석학적 순환이론을 적용하여 분석하면서 칸트의 판단력 비
판에 의거하여 아렌트가 판단력의 특수한 경우로서 법관의 ldquo성찰적 판단력rdquo이라는 새
로운 판단유형을 제시했다고 지적한 연구서로는 Stefanie Rosenmuumlller Der Ort des Rechts Gemeinsinn und richterliches Urteilen nach Hannah Arendt Nomos (2013) 참조
77) Hannah Arendt Das Urteilen 92-93면78) 아렌트가 판단의 차원을 심화시키는 발판으로 삼는 상식은 sensus communis로서
communis opinio와는 다르다는 데 대해서는 Marieke Borren ldquolsquoA Sense of the Worldrsquo Hannah Arendtrsquos Hermeneutic Phenomenology of Common Senserdquo International Journal of Philosophical Studies Vol 21 No 2 (2013) 225-255
79) Hannah Arendt Das Urteilen 76면80) Rosenmuumlller 앞의 책 234면 이하 여기서 아렌트는 상식개념을 이중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에서는 경험적 개념으로 보다 성찰적 판단
단계에서는 규범적 개념으로 사용한다
9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은 관찰자로서 판단하면서 동시에 행위자로서 판단에서 법적 결과를 결정하는
사람이다 관찰자인 동시에 행위자라는 이중적인 역할을 하면서 법관은 자신의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 반추한다81) 이 반추과정에서 법관은 한편으로는 포섭
하는 판단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고려해야 할 관점들을 끌어들이면서
자신의 직책을 마지막까지 수행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통제하면서 자신의 앞서의
(포섭) 판단을 정정해나간다 그래서 법관 자신이 lsquo보는 사람rsquo과 lsquo하는 사람rsquo의 만
남의 장소가 되는 것과도 같다 ldquo이 보는 사람은 모든 하는 사람 안에 자리 잡고
있다helliphellip이 비판적 판단능력이 없이는 행위자 혹은 해결자는 보는 사람으로부터
풀려나 종내는 지각되지조차 못하게 될 것이다rdquo82)
사람들은 자신 일에 있어서는 비당파적일 수는 없다 따라서 ldquo자신의 일에 대한
판단에서는 내면의 심판자 혹은 내면의 법정을 가질 수 없다rdquo83) 그러나 다른 사
람의 일을 반추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필히 비당파적이어야 하며 또 비당파적이 될
수 있다 이때 그는 비로소 내면의 심판자를 가지게 된다 즉 양심의 문제에 처하
게 되는 것이다 판단에 있어서 양심이라는 것 즉 양심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남
의 일에서 ldquo증인rdquo 혹은 ldquo비판적 친구rdquo로서 관찰하고 행위하는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이다84)
아렌트의 성찰적 판단모델은 나치 불법국가 경험의 산물이다 통상의 규칙이 파
괴된 상황 통상의 범죄유형에 포섭되지 않는 극히 예외적인 범죄적 상황에서 법
원은 기존의 판단척도를 해석학적 출발로 삼아서는 안 되고 이때에는 질적으로
동의가능한 합의형식을 찾기 위해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으로 돌아가
진정으로 사유 즉 철학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렌트가 판단을 일반화해주는
거점이자 해석학적 출발점으로 삼은 공통감각(상식) 개념은 칸트철학에서 ldquo비사교
적 사교성rdquo 개념의 위상과 비슷하다85) 이 지상에서 인간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다른 것을 원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모여 살아야만 하는 존재다 이 비사회성 요
청과 사회성 요청의 동시성 때문에 인간에게는 제도적인 안착이 더없이 중요하며
법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실존과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만든다 판단의 기
81) Leora Y Bilsky When Actor and Spectator Meet in the Courtroom Hannah Arendt and Eichmann in Jerusalem G N Arad Hg (Bloomington 1996) 137면
82) Hannah Arendt 앞의 책 85면83) Hannah Arendt 앞의 책 76면 84)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657면85) Rosenmuumlller 앞의 책 1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5
초를 보편적 인간경험에 둔다는 점에서 아렌트가 말하는 판단력은 드워킨의 헤라
클레스와 같은 초인적 천재성을 발휘하는 능력과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86) 아
렌트가 상정하는 이상적인 법관은 철학적이지만 철학자는 아니고 정치적이지만 정
치가는 아닌 사람이다
아렌트는 헌법국가의 권위도 상식개념에 기반을 두고 설명한다 그리고 민주적
정당성의 관점에서 입법의 우위를 인정하는 까닭에 성찰적 판단에 입각한 법관의
검증에는 한계가 있다는 태도를 견지한다87)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렌트가 제시한
법관의 성찰적 판단 유형에 대해서는 다양한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우선 이것이
예외 상황에서 적용되는 판단모델로 상정된 것이며 무엇보다도 ldquo규범적 상식rdquo에
대한 단일한 이해기반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법관 개인의 주관적 정치적 신념
이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길을 피할 수 없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성찰적
판단력은 결국 레토릭에 불과한 것인가 아렌트는 그러나 무엇이 ldquo특정 상황에 맞
는 공통감각(situierte Gemeinsinn)rdquo인지에 대한 공동의 인식은 가능하며 또 법관의
lsquo하는rsquo 판단에 들어있는 정치적 함의를 성찰적 판단력으로 검증하는 것도 가능하
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아렌트가 마지막 검증심급으로 원용하는 것이 바로 판
단에서의 양심의 심급이다 그것이 과연 동의할 수 있는 합의형태로서 충분한지를
스스로 검증하는 이 심급에서 판단자는 명령조로 자기에게 전해지는 소리를 듣게
된다 ldquo멈춰 나는 그것은 할 수 없어rdquo88) 판단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 멈추는 것
이 가능한 이 성찰적 심급에서는 칸트와 달리 할 수 없는 이유로써 결과도 고려
된다 lsquo보는 사람rsquo이 자기 안에서 지켜보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상황은 토마스 아퀴
나스의 양심론에 비추어 다음과 같이 묘사될 수도 있겠다 지적 본성을 가진 인간
존재가 보편법칙에 관한 지식을 개별 행위에 적용하기 위해 판단하고 선택할 때
행위자는 갈등 상황- ldquo그렇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rdquo는
상황-에 처하여 멈칫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데 이때 그는 단지 갈등하고
선택하는 역할만 하지 않고 갈등하고 선택하는 이 과정을 ldquo관찰하고 목격하는 증인rdquo
의 역할도 한다는 것89)
86) 드워킨에 의하면 해석적 탐구는 ldquo어떠한 증명도 허용치 않고 어떠한 수렴도 약속치
않는 탐구rdquo이다(드워킨 정의론 203면)87) Rosenmuumlller 앞의 책 30면88) Hannah Arendt Uumlber das Boumlse Eine Vorlesung zu Fragen der Ethik Hrsg v J Kohn
(Muumlnchen 2003) 52면89) 지적 행위자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자신의 내면의 갈등과 선택과정을 바라보는
9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Ⅹ 방법에서 덕목으로
헌법 제103조는 한 면으로는 헌법과 법률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 면으로 해석자에게 여하한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lsquo제약
의 차원rsquo과 lsquo자유의 차원rsquo을 동시에 담고 있다 법관은 자유로울 때에라도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며 법에 구속될 때에라도 전적으로 구속되지는 않는다는 뜻이
기도 하다 이 lsquo자유와 구속의 변증법rsquo에 비추어 지금까지 논한 주제에 대해 몇 가
지 입장을 정리해 보자 첫째 법관에게 있어서 독립은 확정된 원칙이나 그것자체
로서 달성해야 할 최종목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법관의 독립은 완성형이 아니라
끊임없는 진행형의 과제로서 그 직무수행에 대한 신뢰와 병행하여 점진적으로 이
루어지는 것이다 둘째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에 있어서 구속은 법률에 무조건 복종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판결에 대한 윤리 (내 ) 확신과 함께 법률에 복종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법관이 실정법률에 반하는 결정을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법
관은 객관성을 빌미로 법률 뒤에 숨는 익명적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
미하는 것이다 셋째 독립적인 법관의 양심은 lsquo법과 상충한다rsquo기보다는 lsquo법을 실
한다rsquo는 의미를 지닌다 넷째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서 반추하면서 lsquo하는
사람rsquo인 동시에 lsquo보는 사람rsquo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성찰 인 인물상으
로서만 설정될 수 있다
해석적 탐구는 우리의 이해를 넓히기 위해서 필요하지만 이해에서의 우리의 피
할 수 없는 한계를 깨닫기 위해서도 필요했는지 모른다 엥기쉬는 법해석방법론에
대한 저술의 마지막 부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ldquo방법론에 천착하다 보면
애초의 문제였던 법률로부터 훨씬 더 먼 곳으로 이끌려 간다rdquo 지금까지 필자는
법관의 법해석과 관련하여 방법론의 의의와 한계를 논하고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과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에 비추어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이 법해석론
의 불가결한 부분으로 들어가게 되는 이유도 밝혔다 그리고 해석적 차원에서의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는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행위를 목표로 하는
탐구라는 것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필자는 이 모든 논의들을 매개로 방법론이 우리를 더 멀리 덕
목론으로 데려가는 과정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드워킨의
상황에 대한 이 묘사 부분은 이경재 ldquo토마스 아퀴나스의 양심 개념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375면을 참조했다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7
헤라클레스를 잠시 불러올 필요가 있다 해석문제를 누구보다도 더 진지하게 다룬
드워킨은 마지막에 헤라클레스를 내세운다 주어진 사건에서 무엇이 법인지에
대해 도덕적 의식을 가지고 법실무 전체를 원리정합적으로 정당화하라는 요청에
부응하여 자신의 신념에 기초한 결정을 내리는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의 구성적
해석에서 법관의 양심이 기능하는 국면은 어디일까 송민경 판사는 드워킨의 구성
적 해석론에 입각하여 양심을 구체적 법논증과정의 일부로 포함시키면서 이때 양
심이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라는 지침으로 기능한다고 설명한다90)
그런데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는 지침으로 기능하는 것을 양심이라
고 보게 되면 양심의 문제는 논증적 합리성의 차원 즉 논증의 성공으로 종결짓게
된다 그러나 법적 결정의 정당성 문제는 법관의 입장에서는 논증의 성공 문제로
다루어지지만 법관의 성공적인 논증에 따른 판결의 결과로부터 영향을 받는 시민
의 입장에서 보면 성공적인 논증만으로는 해석이 정당화된다고 볼 수는 없다
성공적인 논증은 법적 결정의 정당화에 필수적이기는 하나 충분한 조건은 되지 못
한다 해석이 궁극적으로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사법적 도덕성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 사법적 도덕성은 헤라클레스가 지침으로 삼는 원리적 도덕성의 실현과는 다른
것이다 만약 패소한 시민이 다른 헤라클레스에게 갔더라면 즉 다른 법원리에 기
초한 신념을 토대로 다른 결정을 내린 다른 법관에게 갔다면 그는 승리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왜 헤라클레스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하
는지에 대한 답이 필요한 것이다91) 헤라클레스가 실무에 대한 최상의 정당화를
도모하는 법적 이상주의자라면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법원 문을 두드린 시민도
어느 의미에서 ldquo법이상주의자rdquo92)이다
법해석 작업의 주관의존성이라는 불가피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재판이라는 특수
한 공적 활동이 법관이라는 특수공직자에 의해 운영되고 유지된다는 것은 시민들
-소송에서 패한 시민들을 포함하여-편에서 보면 법을 해석하는 법관에 대한
신뢰가 전제된다는 것이다 법관의 독립적 활동은 법관의 특권 행사가 아니라 사
90) 송민경 앞의 글 38면 20면91) 사법적 덕목과 연관하여 이 부분을 다룬 글로는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5면 이하
92) 법원 문을 두드리는 시민에 대한 이 표현은 심헌섭 ldquo법조윤리의 좌표 거시적 관점에서 본 전문윤리로서의 법조윤리rdquo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편 法律家의 倫理와 責任 박영사
(2003)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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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정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응당한 몫이 돌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존중하는 바탕에는 일종의 상호성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 그 또한
시민이기도 한 법관이 동료시민들에 대해 가지는 배려와 존중의 원칙이 그것이다
여기서 사법적 덕목에 대해 자세히 논할 수는 없다93) 예의 성실 신중 절제
용기 공정 겸손 의사소통 능력 형평 시민에 대한 배려와 존중 등등 이것들은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바탕을 이루는 양심의 덕목들일
것이다 양심이라는 단어가 그렇듯이 덕목이라는 단어도 오늘날 진부해진 표현
이며 거의 사라져가는 단어다 윤리적 태도로서의 덕목은 관찰하기도 배우기도
어렵다 그러나 올바른 판단과 결정이 법관이라는 개인을 거치지 않고 법령집
자체로부터 반사적으로 튀어나오지 않는 한 이 덕목들을 내면화하고 지향하려는
태도 없이는 lsquo종국적인rsquo 판단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써 필자는 헌법 제103조를 통해 법해석에서의 방법론의 문제가 덕목론이라
는 다음 과제로 이어진다는 점을 밝혔다고 생각한다
투고일 2016 4 6 심사완료일 2016 5 18 게재확정일 2016 5 20
93) 법관의 개별적인 덕목들과 이것들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는 박은정 강태경 김현섭 바람
직한 법관상의 정립과 실천 방안에 관한 연구 법원행정처(2015) 제5장 참조할 것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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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수 ldquo바람직한 법관상-기예와 지혜 사이rdquo lt근대사법 및 한성재판소 설립
이성의 활동rdquo ldquo인격의 자기인식rdquo ldquo본래적인 자기 자신으로 불러 세우는 염려의
소리rdquo ldquo너와 내가 함께 잘못을 감시하고 경계하는 공동의 눈초리rdquo ldquo근원적인 자
기의 요구rdquo 등등22) 이런 다양한 견해들은 양심 개념을 형식적인 측면에서 접근하
는지 아니면 내용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지 양심 판단에서 개인의 주관적 요소를
강조하는지 아니면 보편성 내지 소통가능성을 더 중요시하는지 양심의 권위를 내
부에서 찾는지 아니면 외부의 권위를 사회화 내지 내면화한 결과로 보는지 양심
에 따른 결단을 감정의 작용으로 보는지 아니면 이성도 같이 작용하는 것으로 보
는지 등에 따라 여러 갈래를 이룬다
칸트의 근대 주체철학의 영향을 받은 이래 오늘날 양심논의에서는 대체로 양심
의 개인적 주관적 요소가 강조되는 가운데 양심을 개인에게 도덕적 행위 동기를
유발하고 자기반성을 가능하게 하고 개인의 판단과 자기결정에서 최종심급의 역
할을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대표적으로 칸트는 양심을 각 주체로서의 개인의
ldquo내면에 자리 잡은 자율적 심판관rdquo으로 일컬으면서 행위주체가 자기 안에 내재하
21) 이덕연 앞의 글 361면22) 진교훈 외 19인 양심 고 로부터 에 이르기까지의 양심의 의미 서울대학교출판
문화원(2012)
7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는 도덕법칙에 스스로의 행동을 적용시키는 것이 양심이라고 말한다23) 이때 양심
은 스스로 도덕법칙을 정립할 수 있는 선의지를 가진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지니는 일종의 의무의식으로 여겨지며 자신이 자신을 평가하는 것이 양심이기 때
문에 이 주관적 확신을 평가하는 외부의 기준은 없는 셈이다24) 이렇게 양심을 주
관성의 형식으로 가져갈 때는 주관적으로는 옳은 양심에 따른 확신이라 하더라도
인식주체가 가진 한계 등으로 인해 내용상 오류가 가능하다는 문제를 안게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칸트와 달리 양심문제를 개인의 주관적 도덕의식 이상의 차원에
서 다루고자 하는 철학자들은 간주관성의 차원에서 보편성을 지니는 양심개념을
추구한다 이런 방향에서 파악한 양심 개념에 대해 lsquo객관적rsquo 양심이라는 표현을 쓸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양심과 관련하여 lsquo객관적rsquo이라는 표현은 인식
주체 밖에 뭔가가 존재한다는 인식론적 존재론적 가정을 상정한다는 점에서 문제
가 있다 인식 주체 밖에 객관적인 그 무엇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양심이 아니라
윤리규범일 것이다 법관의 양심을 lsquo객관적rsquo lsquo법조적rsquo 양심으로 표현하는 것도 이런
의미에서 부적절하다25)
그런데 철학전통 안에는 양심을 주관성의 형식으로 끌어들여 절대화하는 시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서양에서 근대 이전의 철학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개인의 주
관적 도덕의식을 넘어서는 차원에서 양심을 논하는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우선 어
원상으로도 con-scientia syn-deresis의 con과 syn에서 알 수 있듯이 양심은 우리
내면의 법정에서도 공공성 내지 공동체성 즉 ldquo함께 안다rdquo라는 요소를 지니고 있
었다 이 어원은 양심의 규제적 기능에는 우리가 올바르게 행했는지 혹은 그릇되
게 행했는지를 지켜보는 ldquo공동의 인식rdquo이 있다는 자각이 포함됨을 암시한다 자기
안에서 lsquo보편적인 자기rsquo를 확신하는 과정을 상호인정과정과 연결시키고자 하는 양
심관은 공동의 윤리로서의 인륜성(Sittlichkeit)의 입장에서만 ldquo진정한 양심rdquo이 가능
하다고 보는 헤겔(G W F Hegel)의 양심론26) 타자윤리학에 근거한 레비나스
23) Immanuel Kant 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 (윤리형이상학 정 백종현 역 아카넷(2005) 134면 이하) 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Philosophische Bibliothek A 175 (2003) 215면 이하
24) 김관영 ldquo칸트에 있어서 양심의 문제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144면25) 예컨대 성낙인 교수는 법관의 양심을 ldquo법관이 적용하는 법 중에서 객관적으로 존재하
는 정신을 가리킨다rdquo고 설명한다 앞의 책 713면 이 객관적 정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26) Hegel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sect137 헤겔의 양심론에 대해서는 최신한
ldquo헤겔 야코비 양심의 변증법rdquo 헤겔연구 제23호(한국헤겔학회 2008) 86면 이하 참조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75
(Emmanuel Levinas)의 양심론27) 그리고 행위주체들의 담론적 소통과 사회적 행위
에 대한 책임에서 출발하는 아펠(Karl Otto Apel)의 양심론28)에도 엿보인다 동양의
양심을 ldquo세상 사람을 향해 움직이는 마음rdquo으로 묘사하면서 양심이 있어서 책임있
는 인식의 기능에 주목한 사상가도 있다30)
서양에서 근대를 전후로 양심의 주관화 경향이 강하게 대두된 데에는 종교분쟁
등의 영향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은 가치상대주의라는 시대정신의 영향 하에
양심은 도덕적 판단과 인격을 근거지우는 현상으로 파악되면서도 내용적 측면보다
는 형식적 측면에서 고찰되고 간주관적 논의가능성이 배제된 채 그 논의의 폭이
좁아져 거의 개인의 자기결정권 영역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우리 헌법 제19조의
양심의 의미도 이런 자기결정에서의 최종심급 역할이라는 맥락에서 읽히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살펴봤듯이 주관화의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기 이전의 사유전통에
서는 양심의 자기결정 능력보다는 스스로에게 도덕적 의문을 품는 능력 ldquo함께
안다rdquo라는 책임성 쪽에 더 비중이 놓여 있었다 이런 사유배경에 비추어 본다면
헌법 제19조의 양심은 근대 주관화의 영향의 산물로 이해할 수 있고 이에 비해
헌법 제103조에서 법관과 관련하여 언급된 양심은 근대 이전의 ldquo함께 안다rdquo의 사
유전통의 흔적을 지닌 개념으로 볼 수 있다
Ⅳ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의 완화 경향
앞에서 살펴봤듯이 역사적으로 법관의 독립이념은 법관은 오로지 법률에만 구속
된다는 것을 전제로 탄생했다 그리고 이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은 법률의 총합으로
27) 레비나스에 대해서는 김연숙 ldquo레비나스의 양심론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제3부 제3장 참조28) Karl Otto Apel From a Transcendental Semiotic Point of View Manchester University
Press (1998) 52면 259면 양심이 지니는 공적 관찰이나 감시기능 부분에 주목한
Apel에 대해서는 백춘현 ldquo아펠의 양심론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344면 이하29) 맹자의 양심론에 대해서는 장승희 ldquo맹자의 양심론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제1부 제1장
참조30) 왕수인은 양심과 양지(良知)라는 표현을 함께 썼다고 한다 ldquo남의 아픔을 느끼기 위해
서는 예민하게 lsquo생각rsquo해야 한다rdquo 여기서는 이혜경 ldquo왕수인의 양심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79면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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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 법질서는 통일적이고 자기충족적인 시스템을 이룬다는 가정에 기초하고 있
었다 그러나 이 가정은 그 자체로 애초 한계를 지닌 것이기도 하지만 법의 생태
적 기반이 변하면서 이 법률구속원칙은 점차 상대화 내지 약화되는 방향으로 나아
가게 되었다 입법자를 기다릴 수 없는 빠른 사회변화 자유법운동 입법양의 폭발
적인 증대 일반조항 도입 등 입법스타일의 변화 복지국가 대두 사회정의의 요구
헌법재판 활성화 등의 흐름은 법관의 법률구속메커니즘이 작동하기 어려운 여건을
만들어 가게 된 것이다 이른바 lsquo법관법rsquo의 대세 흐름이 나타난 것이다 특히 지난
수십 년간 확대된 입법영역은 형법과 같은 규제입법과 달리 사회복지생활보호
건강 증진남녀평등청소년보호장애인보호적극적 평등조처 등처럼 정치적 비전과
목적을 담은 한마디로 정책촉진적 성격을 지닌 법률들이었다 이와 같은 야심찬
입법스타일은 법적용단계에서 법관이 바람직한 제도 및 정책 내용에 대해 고려케
함으로써 목적적 법논증으로 기울게 하고 구체적 이익을 비교형량하는 심사방식
을 확대시키는 등 좁은 의미의 실정법률 해석보다는 법형성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 것이다31) 특히 이 흐름은 20세기말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법실증주의에
제동이 걸리는 분위기와 겹치면서32) 법철학에서도 전통적인 포섭논리나 삼단논법
은 실제로 법관들에게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지적과 함께 법관의 법률구속원
칙에 회의적인 성향의 논의들이 강세를 보이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법발견 과정에
대한 심화된 통찰을 통해 lsquo선이해rsquo의 문제를 재평가하게 만든 철학적 해석학과 문
언의 의미론적 구속력에 회의를 제기케 한 언어이론은 법철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들 이론에 입각하여 이제 법의 흠결 시와 같은 예외적인 상황에서 법관
의 법형성이 불가피하다는 수준의 주장을 넘어 법률텍스트를 통한 구속가능성 자
체를 의문시하는 주장까지 나오게 되었다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의 실현에 대한 기대가 점점 약화되고 그래서 누구의 표현
대로 법률이 해석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해석이 법률을 지배한다고 말할 정도가
31) 사회변화에 따른 법관의 역할 변화에 대해서는 박은정 왜 법의 지배인가 돌베개(2010) 제6장을 참조할 것
32) 울프리드 노이만(Ulfrid Neumann)은 지난 2015년 10월 1일 고려대학교 초청강연에서
ldquo실증주의 이후 시대의 법률과 판결rdquo이라는 주제로 발표하면서 법학적 사고가 ldquo법실
증주의 이후의 시대rdquo로 넘어갔다고 진단하고 그 배경으로 세계화 등의 흐름으로 국제
상거래관습법(lex mercatoria)처럼 입법당국에 의한 제정이 아닌 사회적 실천에 의거한
법제정 사례 법원리의 중요성 대두 인권사상 증대 등을 들고 있다 그러면서 법실증
주의로부터 멀어지는 만큼 법관의 법률구속원칙도 상대적으로 완화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77
되면 다시 제기될 수밖에 없는 물음이 바로 입법기관과 법적용기관 사이의 권력
균형 문제다 이 권력 균형은 특히 법 이라는 개인에 의해 매개된다는 점에서 문
제가 된다 오늘날 ldquo사법국가rdquo ldquo법관공화국rdquo ldquo사법엘리트rdquo ldquo사법의 정치화rdquo 등을
지적하는 소리는 입헌민주주의 기획의 초기단계에서 일찍이 해결했다고 여겼던
문제들이 다시 등장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법관의 법률구속의 전제 및 그 가능성
법원의 중립성 법관의 민주적 정당성 사법관료주의 등의 문제가 그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물음이 떠오른다 해석자의 자유를 제
한하고 법관의 법률구속을 보장할 확고한 법해석방법론은 가능한가 법관의 법률
구속에 관한 기술적 제도적 보장책은 가능한가 필자는 이 물음들에 대체로 회의
적인 전망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물론 법해석방법의 무용론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법률에 구속되는 법관상이 약화되고 앞으로도 점점 더 약화될
것이라는 전망 하에 어느 때보다도 더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될 법관의 독립 문제
를 염두에 두면서 법해석방법론의 문제를 재검토하고자 한다
Ⅴ 법해석방법론의 문제점과 한계
법이 있는 곳에 해석이 있다 법학의 강점도 해석학적 잠재력에 있다 법관의 임
무는 법률을 적용하기 위해 법문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법해석방법론은 법
해석과정에서 법관의 자유에 일정한 제약을 가하고 법관의 법률구속이념을 실현하
기 위해 고안되고 발전된 것이다 해석에서는 무엇이 최선의 해석인지를 둘러싸고
언제나 논쟁과 불일치가 생기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해석작업은 인간의 판단과 행
위의 영향 하에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법관이 따라야 하는 법률 자체에는 이미 법적용자를 법률에 대해 어느 정도 독
립적이게 만드는 여러 표현방식들이 들어 있다 예컨대 lsquo야간rsquo lsquo소음rsquo lsquo위험한 물건rsquo
lsquo적절한 조치rsquo 등 개념의 내포와 외연이 확정적이지 않은 법개념들이 대표적이다
이런 불확정적 개념들은 법명제의 구성요건 단계에만 들어 있는 게 아니라 법률효
과에서도 등장한다 이른바 lsquo규범적 개념rsquo들도 그런 표현방식에 속한다 lsquo음란한rsquo
lsquo건전한rsquo lsquo불명예스러운rsquo 등의 개념들은 기본적으로 지각가능한 대상을 서술하는
개념과 대비하여 의미내용이 가치판단에 근거할 때만 파악된다는 점에서 규범적
이다 이때 가치판단은 반드시 주관적 개인적 평가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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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의 평가도 포함할 것이지만 어쨌든 이 판단과 관련한 어느 정도의 불확정성은
감수해야 한다 법관의 법률 구속 의무를 느슨하게 만드는 이런 개념군에는 재량
도 포함된다 오늘날 재량개념은 ldquo법적으로 구속되는rdquo 재량으로 이해되지만 이때
판단의 여지 안에 들어오는 여러 대안들 가운데서 최종 혹은 최선의 대안을 확정
하는 데 있어서 결정자의 개인적 확신을 허용할 수밖에 없다 일반조항도 표현 그
대로 높은 일반성을 띰으로써 법적용자로 하여금 자기 앞에 놓인 사례를 광범위한
사례집단들에 적응시켜가면서 법률효과를 귀속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33)
위에서 언급한 불확정 법개념이나 규범적 개념 등을 적용하는 데는 가치판단
요소가 수반된다 이런 개념들을 적용할 때 법관은 일정한 범위 안에서 입법자를
대신하여 가치판단 내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것이다 또 법관
은 법의 lsquo흠결rsquo을 보충하거나 법질서 안에서 이따끔 발견되는 lsquo오류rsquo를 수정해야
할 부득이한 상황에도 처하게 된다 이때는 법관은 스스로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찾아 나서야 한다 lsquo법의 일반원칙rsquo lsquo법의 정신rsquo lsquo평균인의 척도rsquo lsquo비례성원칙 lsquo이익
형량rsquo 등은 이때 법관이 의존하는 사유 장치들이며 이것들을 원용하는 데도 가치
판단적 요소가 개입한다 이때 판단자는 무엇이 사실상 효력을 갖고 있는 윤리적
견해인지 확인해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사실로서의 합의가 올바른 법적 결론에
도달하게 하는지에 대해서도 숙고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법적용자는 때로는 평
균인 테스트 같은 객관적인 척도에 의지하지만 또 때로는 개인적 견해를 더 많이
펼칠 수 있는 일정한 판단의 여지를 가지게 된다
이렇게 해석과정에서 불가피한 lsquo판단의 여지rsquo 즉 해석과정에 불가피하게 개입되
는 가치판단 요소 때문에 ldquo해석의 건전성rdquo을 둘러싸고 논란이 생기고 해석의 정당
화와 관련하여 회의가 생긴다 가치판단과 관련된 부분이 불가피하게 주관적 요소
를 끌어들이게 되고 이로 인해 법규범의 효력이 상대적이고 불확실한 영역으로 떨
어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단자는 자신의 결론이 불확실성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자신의 해석에 대한 정당화를 포기할 수 없다 법을
해석한다는 것은 ldquo그 법률을 특정 사안에 적용하는 것을 정당화한다는rdquo34)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확정적인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사례에서도 요구되는
33) 불확정적 개념 규범적 개념 재량 일반조항과 관련한 자세한 설명은 칼 엥기쉬 법학
방법론 안법영윤재왕 옮김 세창출판사(2011) 182면 이하에 잘 정리되어 있으며 필
자도 이 부분을 참조했음을 밝힌다 34) 닐 맥코믹 로버트 서머즈 ldquo해석과 정당화(上)rdquo 박정훈 역 법철학연구 제5권 제2호
(2002) 18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79
개인적인 단은 도덕적 상대주의자들이 말하는 개인적인 취향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해석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올바른 해석기준을 수립하고자 법률가들은 각
기 지금까지 다양한 해석방법에 의존해 왔다 올바른 해석을 위한 확고한 기준을
수립할 수 있다는 것은 찬성하는 혹은 반대하는 해석논거들 사이의 상대적 비중을
결정하는 명확한 규칙을 수립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즉 어느 한 해석
논거가 다른 해석논거에 의해 배제되는 조건이나 선택된 해석을 정당화하는 데
필수적인 한 논거가 다른 논거보다 우월하기 위한 조건 한 논거에 누적을 통한
비중이 부과되는 조건 등을 제시해줄 일관된 정보와 지침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
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여러 해석방법들 사이에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다는 것
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시도는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했다 동일한 유형의 논거일지
라도 각각의 정당화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비중을 갖게 될 뿐더러 언어적 해석
방법 체계적 해석방법 목적적 해석방법 등으로 제시되는 여러 해석방법들이 한
줄로 세우기에는 한마디로 너무 이질적이다35) 물론 이들 해석논거들의 상호작용
을 검토하면서 잠정적인 서열을 제시하는 것은 가능할 수도 있다36) 그러나 이 서
열은 기껏해야 ldquo해석을 위한 노력의 경제성 원리rdquo 정도를 말해 줄 뿐이기 때문에
쉽게 바뀔 수 있다37)
드워킨이 옳게 지적한 대로 기본적으로 가치판단과 관련된 해석방법들은 위계
적일 수 없고 ldquo상호지지적rdquo인 관계에 놓일 뿐이다38) 이 때문에 방법론적 규칙을
세우려는 시도는 언제나 무망해지는 것이다 또한 법해석에 있어서 언어란 단어의
의미를 식별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 행위의 의미를 식별
하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론 풀러(Lon Fuller)가 지적한 대로 ldquo언어
를 통한 의사 전달은 어느 한 사람으로부터 다른 사람에게로 의미가 든 상자를 발송
하는 식rdquo39)은 아닌 것이다
35) 울프리드 노이만 ldquo실증주의 이후 시대의 법률과 판결rdquo 강연문(주 32) 노이만에 따르
면 예컨대 체계적 해석 방법에 따른 논거도 그것이 논리적 일관성 획득의 맥락에서
인지 아니면 가치평가의 일관성 보장이라는 맥락인지에 따라 전혀 다른 비중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36) 대체로 언어적-체계적-역사적-목적론적 해석방법의 순서로 언급되는 데 대해서는 심헌섭
분석과 비 의 법철학 법문사(2001) 217-218면37) 맥코믹과 서머즈는 비교법적 연구결과를 통해 올바른 해석을 위한 지침 수립은 어느
국가의 법체계에서도 지금까지 성공적이지 못함을 밝힌다(앞의 글 210면)38) 로널드 드워킨 정의론 박경신 옮김 민음사(2015) 309면
80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결론적으로 해석방법론으로부터 법관은 불확실성을 떨쳐 낼 수 있는 확실한 정
보제공을 기대하기 어렵다 해석논거를 위한 결정적인 기준을 제공하는 해석방법
에 대해 불안정한 형태로나마 이론적 합의를 찾기 어렵다면 엥기쉬의 지적대로
해석방법론은 공중에 떠있는 상태다40) 법학에서 방법론의 융성은 역설적으로 법
학이 이 부분에 취약하다는 암시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해석자로서의 법관을
최종적으로 인도하는 전략은 무엇일까 다음과 같은 고민을 들어보면 적어도 그것
은 방법론상의 합의에 대한 기대 같은 것은 아닌 것 같다 ldquo우리들은 일정한 결론을
내리고도 그 결론이 가장 적절sdot타당한 것이라고 보증받을 수 없다 그 결론을 낸
시점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들은 자기의 결론이 그러한 불확실성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그것을 자기의 전인격적 책임 아래 끝을 내고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비판과 평가에 맡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rdquo41)
해석방법론이 공중에 떠있는 상태라면 법관을 법률에 구속시키기 위한 방법론
적 보장책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런 가운데 ldquo자기의 전인격적 책임 아래rdquo ldquo사려
깊고 균형잡힌 총체적 관념rdquo ldquo인생 그 자체로부터 지식rdquo 등에 대한 호소를 듣는다
이것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법발견으로 불리든 법인식 혹은 법형성으
로 불리든 법적으로 올바른 결정을 이끌어낸다는 것은 순순히 lsquo앎rsquo의 문제만은 아
니라는 것이다 실천철학의 전통 용어를 빌어서 말한다면 그것은 이론지 이상의
실천지를 요구하는 활동이다 즉 법관의 해석활동은 이론지와 실천지를 결합하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이 주제로 다가가는 한 우회로로서 우선 지적 활동으로서의
법관의 해석활동의 특성에 대해 살펴보자
39) 론 풀러 법의 도덕성 박은정 옮김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2015) 314면 40) ldquo그러나 해석론 전체에 대한 확고한 이론적 토대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서열관계에
관한 모든 이론들은 여전히 공중에 떠 있다rdquo 엥기쉬 앞의 책 137면41) 사법연수원 법조윤리론(2014) 31면 그밖에 Benjamin N Cardozo The Nature of
Judicial Process Yale University Press (1921) ldquo언제 하나의 이익이 다른 이익을 능가
하는지를 묻는다면 hellip 경험과 연구와 성찰로부터 요컨대 인생 그 자체로부터 그 지식
을 얻지 않으면 안된다고 답할 수 있을 뿐이다rdquo(여기서는 법조윤리론에서 재인용) 또한 맥코믹서머즈 ldquo해석과 정당화(下)rdquo 박정훈 역 법철학연구 제6권 제1호(2003) 348면 ldquo해석은 간주관적으로 승인된 모든 법적 가치들에 대하여 사려깊고 균형잡힌
총체적 관념을 획득하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제대로 행해질
수 있다rdquo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1
Ⅵ 법관의 해석활동 실증주의의 대척점
앞에서 언급한 대로 해석에서는 무엇이 최선의 해석인가를 둘러싸고 언제나
논쟁과 불일치가 따른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누군가가 텍스트를 해석한다고
말하는 순간 그는 실증주의의 대척점에 서게 된다 실증주의과학의 의미에서는 논
쟁의 여지가 있는 것은 원칙적으로 과학일 수 없기 때문이다 법실증주의사고에서
해석 문제가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법을 근본규범에 입각
한 자기준거적인 구조로 보는 한스 켈젠(Hans Kelsen)의 순수법학이나 법적용과정
을 규칙에 의해 지도되는 과정으로 보는 하트(H L A Hart)의 분석법학에서 해석과
관련한 어려움은 다루고 있지 않다42)
켈젠은 순수법이론(Reine Rechtslehre)에서 정당한 해석만이 허용된다는 주장
은 허구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면서 해석의 건전성 문제나 정당화 문제를 법이론
안에서 다루기를 거부한다 법을 자기준거적인 것으로 보는 관점은 한마디로 해석
(행위)주체의 입장을 부정하는 것이다 켈젠은 법단계설을 바탕으로 법적용을 상위
규범의 수권에 의해 하위규범이 구체화되는 과정으로 보고 여기에 헌법의 수권을
받아 법률을 제정하는 입법자도 포함시킨다43) 이에 따라 법적용도 입법의 한 형
태로 설명된다 법관에 의한 법형성의 동기는 이를테면 입법부가 유독 다른 법률
이 아닌 이 법률을 통과시키는 동기와 같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켈젠은 판단활동
에서 인지적 요소와 의지적 요소를 엄격하게 구별하면서 법관의 판단활동을 순전
한 의지활동으로 보고 이 법관의 활동에 대해서만 (유권)해석이라는 표현을 사용
하고자 한다 그리고 법학적 해석에 대해서는 법규범의 가능한 의미들을 밝히는
것으로서 법률에 따른 결정의 범위를 제한하는 정도의 의미를 부여한다
법단계설에 따르면 상위규범이 정한 일정한 범위 안에서의 수권에 따라 하위규
범이 작용한다 이때 상위규범의 수권은 모든 세부적인 내용들에 대해서까지 정해
42) 켈젠은 순수법이론(Reine Rechtslehre) 제1판(1934) 제6장에서 해석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부분과 거의 같은 논문 ldquoZur Theorie der Interpretationrdquo이 심헌섭 젠법이론선집 법문사(1990) 97면 이하에 실려 있다 윤재왕 교수는 Reine Rechtslehre 제1판과 제2판
(1960)을 비교하면서 해석방법으로부터 오는 규범적 구속력을 일체 거부하는 켈젠의
입장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윤재왕 ldquo한스 켈젠의 법해석이론rdquo 고려법학 제74호(고려
대학교법학연구원 2014) 525면 이하 하트의 대표적인 저서 법의 개념의 색인 항목에는
lsquo해석rsquo이 빠져있다 43) Hans Kelsen Allgemeine Staatslehre (Berlin 1925) 231면 이하
8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그래서 ldquo상위단계의 법생성으로부터 하위단계의 법생
산으로의 전환은 단지 상위단계가 정해 놓은 범위를 채우는rdquo 활동으로서 이때
ldquo언제나 상위단계에는 없는 내용적 요소가 하위단계에 추가되어야만rdquo 한다44) 이
내용을 채우는 부분과 관련하여 상대적 불확실성이 생기는데 켈젠은 이 문제를
ldquo자유재량rdquo의 문제로 다룬다45) 이는 하트가 규칙의 체계로서의 법체계를 완결된
구조가 아닌 열린 구조로 봄으로써 상대적 불확실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법관의
재량사항으로 보는 것과 같다 하트의 경우 중심부와 주변부라는 극히 단순화된
이분법을 끌어들여 이 불확실성 문제를 처리하고자 했다면 켈젠의 경우는 인식작
용과 의지작용의 이분법을 끌어들임으로써 이 문제를 처리하고자 한 것이다
판결을 법관의 의지활동으로만 이해하는 입장을 취하게 되면 법관에게 결정에
대한 근거 제시 요청을 할 수 없게 된다 마치 신의 심판에 대해 근거 제시를 요구
할 수 없듯이 말이다 결국 켈젠의 법이론상으로는 해석은 법학의 문제가 아니며
그러므로 분석적 법실증주의와도 무관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46) 이런 이유에서 그
는 정당한 해석만이 허용된다는 주장이나 해석방법만으로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에
이를 수 있다는 주장을 거부하면서 심지어는 상위규범에 제시된 범위를 넘어서는
해석의 효력조차 적극적으로 인정함으로써 어느 의미에서는 해석이론의 존재기반
자체를 무너뜨린다47)
켈젠이나 하트가 법이론에서 해석의 의미를 축소한 이면에는 이분법이라는 과도
한 사유의 단순화가 놓여 있다 그러나 켈젠이 생각하는 것처럼 판단에서 인식적
요소와 의지적 요소의 확고한 경계가 유지되는지는 의문이다 또 중심부와 주변
부에 대한 하트의 주장도 지나친 단순화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어쨌거나
켈젠이 합리적인 해석방법을 추구하는 법이론의 효용가치를 한껏 떨어뜨렸다고
해서 이제 어차피 정답은 없으니 법대에 앉은 법관은 자기 임의로 무엇이든 해도
된다고 켈젠이 주장했을 리는 물론 없을 것이다 법이론의 과도한 정당성 주장을
거부하는 데서 오히려 순수법학의 비판적 잠재력을 찾을 수 있다고 보는 학자들은
여기서 켈젠이 강조한 순수화 즉 탈정치화는 법학에 관한 것이지 법 자체에 관한
44) Kelsen Allgemeine Staatslehre 243면 여기서 번역은 윤재왕 앞의 글 535-536면에서
재인용45) Kelsen 앞의 책 243면 이하46) 켈젠에 있어서 법해석은 이론상으로는 법학보다는 정치학이나 사회학에 속하는 문제
에 더 가깝다고 지적한 견해에 대해서는 론 풀러 앞의 책 312면 47) 이에 대해서는 윤재왕 앞의 글 553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3
주장이 아니었음을 상기시킨다48) 즉 법 자체는 결코 정치와 분리될 수 없다는
점에서 법실무에 대한 학문이론의 무가치성을 주장하는 순수법학은 실무의 법
적용자로 하여금 자신의 활동이 정치적 활동임을 깨닫고 책임을 느끼게 하는 계기
를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윤재왕 교수도 ldquo켈젠 해석이론의 배후rdquo로 들어가 방법
이론으로부터의 어떤 구속력도 거부되는 데서 생기는 공백을 켈젠이 법관 자신의
자기이해와 책임성 문제로 채운다고 지적한다 ldquo법관의 판결은 결코 순수한 것일
수 없으며 그런데도 자신의 판결이 순수한 인식의 소산이라고 강조한다면 이는
정치적 책임의 회피이고 동시에 이데올로기적이라는 혐의에 노출되지 않을 수
없다rdquo49) 이 문구가 켈젠 자신으로부터 나왔다면 아주 좋았을 것이다 자신의 직
무의 중요성과 책임에 대한 실천적 깨달음은 해석의 정당화를 목표로 하는 인식적
노력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켈젠의 순수법이론의 기획은 서로
붙어 있는 양면을 떼어 놓으면서 이것을 다시 붙일 수 있음을 보여주려 한 것일까
Ⅶ 법관의 해석활동 가치판단과 lsquo정답테제rsquo 문제
켈젠처럼 실증주의적 사고에 따르든 아니면 비실증주의적 사고에 따르든 가치
판단 문제에서 해석방법만으로는 하나의 정당한 결정을 도출할 수 없다고 생각한
다면 이는 해석의 차원에서 가치에 대한 이해 시도는 진리 추구와는 무관하다는
주장으로 귀결되는가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해석대상의 의미에 대한
관심과 최선의 이해에 대한 관심은 아무래도 진리 추구라는 목표를 향한다고 봐야
한다 법적 결정은 물론 법관의 권한에 속하지만 그것을 정당화해주는 원천은 법
관이라는 lsquo지위rsquo가 지니는 형식적 권한이 아니라 판결이 정당하다는 근거 제시에
있다 법판단을 정당화해주는 모델은 울프리드 노이만(Ulfrid Neumann)이 지적한
대로 권위를 통한 정당화모델보다는 진리를 통한 정당화모델에 더 가깝다50)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재판활동은 엄연히 사법권이라는 공권력의 작용이라는 점에서
독립적인 법관의 재판활동을 그 ldquo계획적이고 진지한 진리 탐구 활동rdquo적 측면 때문
48) 법학의 탈정치화를 ldquo정치적 허무주의rdquo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데 대해서는 켈젠 ldquo순수법학이란 무엇인가rdquo 젠법이론선집 280-282면
49) 윤재왕 앞의 글 559면50) 울프리드 노이만 ldquo법 진리 권위rdquo 2013 4 6 한국법철학회 강연문 참조
8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에 학문의 자유의 한 표현으로까지 보려는 것은 무리다51)
오늘날 가치상대주의 분위기는 실천적 물음에서 진리 도달가능성에 대한 회의를
과장한다 그러나 진리가 뭐냐는 빌라도의 물음에 비록 확신에 찬 대답을 못한다
하더라도 법에서 진리 내지 정당성 추구의 포기는 파국을 의미한다 국가권력
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도 진리라는 규제이념이 전제되기 때문
이다 독립된 사법부가 심급구조와 집단적 의사결정의 형태로 스스로의 시정 기구
를 가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물론 진리에 대한 주장은 잠정적이고 수정가능하다
lsquo참이냐 거짓이냐rsquo는 오로지 서술적 명제에만 한정하여 검증될 뿐이라는 협소한
학문관을 따른다면 법학은 학문 안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법
학이 그런 협소한 학문관을 받아들여야 할 필연성은 없다 법해석자는 자신의 해
석적 판단이 진리라는 주장을 무한정 내세우지는 못하면서도 진리 추구를 피할
수 없다52) 론 풀러(Lon Fuller)의 지적대로 ldquo법이론이 최고의 법적 권위를 엄격하
게 정의하는 일에 큰 비중을 두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이 점이 모호해지면 필경
전체로서의 법체계가 와해될 수 있다rdquo53)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법을 민주
주의의 언어로 설명하는 오늘날 의회와 행정처럼 다수결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기
관도 아닌 사법의 소수 전문 엘리트의 지배를 권위모델만으로 정당화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법을 준수하는 시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시민들은 자신에게 유죄
판결을 선고한 세속의 법관에게 그 유죄판결의 근거를 알고 싶다고 요구할 수 있
으며 물론 당연히 요구한다
법관은 판결에서 논증을 통해 최상의 근거 제시가 이루어진 결정을 해야 한다54)
51) ldquo일부 사람들 중에는 이러한 법원의 권력기관적 성질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
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helliphellip 가끔 법관의 일을 조용한 방에서 소송서
류를 꼼꼼하게 읽어 파악한 사실에다가 법을 논리적으로 적용하는 단순히 지적(知的)인 작업이라는 시각에서만 말씀하시는 분을 만나면 그 분에게 재판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법대에 앉아 있는 법관이 어떻게 보이는지 물어보고 싶어집니다rdquo 양창수 ldquo바람직한 법관상 - 기예와 지혜 사이rdquo lt근대사법 및 한성재판소 설립 120주년 기념
1895sim2015 소통컨퍼런스 역사에 비춰 본 바람직한 법관상gt 자료집(서울중앙지방법원 2015 5 11) 15면 ldquo계획적이고 진지한 진리 탐구 활동rdquo이라는 표현은 라드브루흐에서
나온다 구스타브 라드브루흐 법철학 최종고 옮김 삼영사(2011) 238면 52) 드워킨 앞의 책 208면 53) 론 풀러 앞의 책 211면 풀러의 문장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ldquo하지만 이 경우도
위로부터의 지시 또한 목적의식에서 비롯되는 지적 활동을 완전히 생략할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rdquo54) 물론 진리 요청과 관련하여 개별 법관의 관점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며 민주국가에서
포기될 수 없는 진리 요청은 법학을 포함한 법체계 전체로 하여금 진리 요청에 어떻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5
이때 정당한 근거 제시가 이루어진 결정과 관련하여 그것이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
이라는 주장을 펼 수 있는가 앞에서 검토한 대로 켈젠의 순수법이론은 그런 주장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이에 비해 드워킨은 법적 판단에 있어서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이 원칙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ldquo정답테제rdquo로 불리는 이 주장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학자들이 지적한 대로 존재사실에 대한 주장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하나의 ldquo규제이념rdquo으로 받아들이는 게 맞는 것 같다 즉 드워킨의 정답테제
는 ldquo유일하게 정당한 결정rdquo이 존재한다는 데 대한 이론적 탐구라기보다는 실무에
서의 법관의 주관적 태도에 부합하는 이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법관은 자신의 판결활동과 관련하여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모든 사건
에서 오직 하나의 결정만이 정당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 정답에 가까이 가기 위
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55)
드워킨의 말대로 가치판단이 참일 때는 그냥 참일 수가 없으며 그것이 참인
이유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즉 충분한 논거가 존재할 때 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라면 이러한 논거지움의 과정은 자명한 공리적
토대나 그런 토대 위에서 확립된 규칙이나 원리적 서열에 따라 명확하게 밝힐 수
없다 이런 불확실한 가운데도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논거지움은 포기될 수
없다 이 끝없는 정당화 부담 때문에 켈젠은 규범의 효력 근거에 관한 논의를 가
치에 관한 논의와 절연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물론 성공하지
못했다56)
가치판단을 해야 하는 부분이 법문화에서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요소로 작용할지
아니면 그 반대로 작용할지는 판단자로서의 법관의 역량과 연관하여 논해야 할 것
이다 필자는 가치판단적 요소가 법문화에서 당연히 긍정적 요소로 작용해야 하며
게 부응하는지 묻게 한다 따라서 사법부 외부에서 행하는 사법비판의 길이 열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대해서는 노이만 앞의 강연문 참조55) 노이만 앞의 강연문56) 규범의 효력을 불명확하고 상대적인 가치가 아닌 규범에 근거짓기 위해 켈젠이 고안
한 근본규범은 사유상으로만 전제된 규범일 뿐이었다 켈젠은 가치판단을 ldquo현실의 행
위가 객관적으로 효력 있는 규범에 맞게 존재해야 하는 대로 존재한다는 판단rdquo이라고
정의함으로써 가치판단이라는 용어 자체를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Reine Rechtslehre 2 Aufl (1960) 16면 이하 또한 켈젠은 규범이 인간의 의지에 의해
제정되는 한 그 규범에 의해 형성된 가치는 어차피 자의적일 뿐이라고 주장한다(18면) 규범과 가치의 관계에 대한 켈젠의 주장에 대해서는 오세혁 ldquo켈젠의 법이론에 있어서
규범과 가치 - 규범과 가치의 상관관계를 중심으로rdquo 법철학연구 제18권 제3호(2015) 97면 이하 참조
8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또한 그렇게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57) 그런 방향에서 이제 해석의 문제를 법
관의 자기이해 문제와 연관시켜 보기로 한다
Ⅷ 해석과 법관의 자기이해
법관은 추상적인 일반규칙을 가지고 공중의 이목을 끄는 개별적인 사건을 처리
하는 사람이다 법관의 의식활동에 의해 일반규칙과 일회적인 사건 사이의 심연이
메워진다 하지만 일반성과 개별성을 결합하는 이 의식과정에 동반하는 고유한 법
학적 방법에 대해서는 앞에서 지적한 대로 확실한 합의는 없다 ldquo리걸 마인드rdquo라
는 말이 풍기는 신비스러운 분위기에는 사법적 결정이 본질적으로 투명한 것이 되기
어렵다는 암시가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다 논리적인 형태만 부여하기로 한다면
한 사건에서 서로 상반된 결론에 이른 두 개의 판결문을 작성하는 것도 불가능
하지 않다58) 방법이 논리에 기초하는 것이라면 이때 논리는 형식논리를 넘어 엥기
쉬가 표현한 대로 ldquo실질에 부합하는rdquo 논리여야 할 것이다 참된 올바른 받아들
일 수 있는 결정에 이르는 실질논리 이 실질에 도달하기까지는 결코 논리적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지적 감행과 어떤 매개가 작용한다
일반규칙을 개별사례에 적용할 때 요구되는 판단자의 능력과 관련하여 가다머
(Hans-Georg Gadamer)는 이런 견해를 밝힌 적이 있다 판단자는 자신이 이미 가
57) 이와는 달리 가치의 ldquo통약불가능성rdquo 때문에 사법은 좋음이나 옳음의 이슈에 대해 실
질적 입장을 취하는 일에 대해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가치의 통약
불가능성에 대해서는 Cass R Sunstein ldquoImcommensurability and Valuation in Lawrdquo Michigan Law Review Vol 92 No 4 (1994) 779면 이하 조홍식 교수는 ldquo가치의 통약
불가능성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이 권리인가의 문제보다 무엇이 공익인가의 문제에서
더 크다rdquo고 지적하면서 기본적으로 가치판단과 관련한 사법통치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사법통치의 정당성과 한계 제2판 박영사(2010) 240면 가치의 통약불가능성에 대한 주장은 가치판단과 관련한 해석기준의 서열화는 불가능
하다는 주장과 같은 노선에 속한다 여기서 통약불가능성 문제를 자세히 다룰 수는
없다 다만 가치의 통약불가능성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통약불가능이 비교불가능을 의미
하지는 않는다는 점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체적인 맥락이 주어지는 경우 무엇이 옳은
지 혹은 그른지에 대해 심사숙고하며 이에 따라 선택하고 그 선택 결과를 받아들인
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정도만 지적하기로 한다 58) 실제로 판사가 판결문을 두 개 써왔다고 주장한 사건에 대한 보도가 있었다 ldquo판결문을
두 개 써왔다rdquo 조선일보 2013 11 21자 기사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7
지고 있어서 적용하기만 하면 된다는 그런 의미의 규범적 실천적 ldquo지식을 소유한
사람rdquo이라기보다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 ldquo지식을 탄생시키는 상황에 직면하는
사람rdquo이라는 것이다59) 일반범주를 개별사례에 적용할 때 요구되는 이 판단력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래서 칸트(Kant)도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ldquo지성은 규칙들
을 통해 배우고 보강할 수 있는 것이지만 판단력은 특수한 재능으로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전혀 아니고 단지 숙련될 수 있을 뿐이다rdquo60)
우리는 올바른 규칙이나 원리를 알고 있지만 막상 이것을 어떤 상황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예컨대 비례성원칙이나 과잉금지원칙에 대한 지식
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은 적정해야 하고 그 수단은 목적달
성을 위해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원칙을 특수한
상황에 lsquo적용rsquo한다고 할 때에 이 원칙이 그 어떤 판단도 배제할 정도로 자족적인
지침 구실을 한다고 느끼기는 어렵다 특정 상황에서 그 수단이 과연 어느 정도일
때가 목적달성에 적정한지는 판단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실천이성의 역
할이다
단의 자리는 이론 경험 양심이 혼재된 실천의 영역이다 판단을 통한 결정이
라는 그 lsquo종국성rsquo으로 인한 실천적 성격은 법학이 다른 어떤 학문분야와도 공유
하지 않는 법학 고유의 특징이다 그래서 법학은 lsquolegal sciencersquo로 불리기보다는
실천지- prudentia-를 함의하는 lsquojurisprudencersquo로 더 자주 불리어 왔을 것이다
해석의 차원에서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도 추상적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
으로는 행위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성과 개별성을 결합하는 해석적
지식은 추상적 이론적 지식들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일반규칙이나 원리
에 근거한 이론적 패턴의 지식과 특정한 상황 내지 맥락을 고려하는 실천적 패턴
의 지식의 이중주를 이룬다 법관이 지니는 통찰력의 특성은 이론과 태도가 함께
간다는 데 있다 그래서 사법적 판단에서는 규칙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 못지않게
사람 즉 법관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사법적 통찰력의 특성은
뭐니뭐니해도 개별 사례를 다룬다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개별적인 것들은 개별적
인 방식으로만 체험되고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들은 무엇
보다도 lsquo지각rsquo과 관계된다61) 즉 그것들은 일반적 체계적 지식의 대상이라기보다
59) Hans-Georg Gadamer Wahrheit und Methode Grundzuumlge einer philosophischen Hermeneutik 3 Aufl J C B MOHR (1972) 300면
60)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 1 백종현 옮김 아카넷(2009) 374면
8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는 우선 지각의 대상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도 사법적 통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쪽은 규칙보다는 오히려 사람 즉 법관 쪽인 것이다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사건에서 법적으로 중요한 사실이 무엇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규칙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어떤 규칙이 중요한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실이 중요한지 알
아야 한다 이 인식과정에서 법관은 불확실한 가운데서 무수한 선택을 감행한다
어떤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 배척하고 어떤 사실은 인정하거나 무게를 부
여하고 신청된 증거조사의 어떤 것은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거부하고helliphellip 사실
에 대한 이 취사선택-자유심증주의-의 결과로 새로운 것이 태어난다 그리고
이것에 의해 법원을 찾아온 사람들의 운명이 갈리는 것이다
법관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필자 생각에
독일의 법철학자 아르투어 카우프만(Arthur Kaufmann)의 해석학적 방법론은 법
관의 자기이해 문제를 해석학적 지평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법관의 해석작업의
본질을 잘 설명해주는 것 같다 가다머 계통의 철학적 해석학(philosophische
Hermeneutik)의 입장을 받아들이면서62) 카우프만은 법해석행위를 통해 포괄적인
의미에서 법관 자신의 인격 중의 어떤 것이 판결에 혼입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
61)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4면 그리고 1심에서
유죄였다가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강력범죄 540건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판단자
의 감지능력 차이가 법판단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힌 김상준 무죄
결과 법 의 사실인정 경인문화사(2013) 62) 텍스트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이해에 관한 연구분야인 해석학(hermeneutics Hermeneutik)
의 어원은 신들의 전령(傳令)인 Hermes라는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설명된다 이때 신의
의도를 인간에게 전하는 과정에서 언어의 제약성 시공간적 간격 전령의 역할 등과 관
련하여 해석의 문제가 생긴다고 본다 ldquoHermeneuticsrdquo Dictionary of Biblical Interpretation Nashville (1999) 497면 독일어의 Auslegung이 해석주체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대상
으로서의 텍스트에 대한 해석을 의미한다면(객관주의) 철학적 해석학에서의 해석
(Interpretation)은 해석주체의 주관성 내지 역사성이 대상에 투사된다는 의미가 강하다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에 따르면 역사적 존재인 인간에게 있어 모든 해석과 이해는 과
거와 현재가 lsquo작용사적으로(wirkungsgeschichtlich)rsquo 중재되는 사건으로서 lsquo선이해rsquo 내지
lsquo선판단rsquo 없이는 불가능하다 가다머는 선입견으로 폄하된 선이해를 재평가하고 이를
통해 근대 이래 lsquo방법rsquo을 통한 진리발견이 주체에 의한 객체의 대상화 내지 도구화를 가져
왔다고 비판하면서 인간경험에 있어서 진리에 이르는 길은 사물의 존재가 스스로 드러
나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해석과 이해는 전승된 존재방식으로서
의 텍스트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며 이는 텍스트 자체가 지닌 역사적 지평과 해석
자의 지평이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만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해석학적 순환 이해의 전제로서의 선이해 작용사 등에 대해서는 Gadamer 앞의 책 II Grundzuumlge einer Theorie der Hermeneutischen Erfahrung 참조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9
로 법관의 결정이 올바른가의 물음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가의 물음과 직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63)
우선 카우프만은 통상적으로 회자되는 독립적인 법관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즉 법 앞에 선 법관이 일체의 정치적 사회적 개인적 영향이나 선입견들로부터 차
단된 채 순수한 객관적 인식에 따라 그 이전에는 자신이 알 수 없었던 사실관계
를 판단하고 그런 다음에 법적 판단을 한다는 식으로 이해하기를 거부한다64)
그런 법관상은 법령집은 일체 해석의 필요가 없이 거의 모든 가능한 법률문제에
대한 대답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상정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법관은 의지가
없는 존재이며 사법권력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여기는 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법에 대한 인식은 단순히 사례를 법률에 포섭시킨다는 의미의 수
동적 행위가 아니고 해석자가 해석대상에 관여하면서 함께 lsquo형성rsquo하는 것이라고
본다 카우프만은 법관의 법형성력에 대한 자신의 견해가 주관주의의 의미로 받아
들여지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는데 왜냐하면 해석자는 텍스트를 지탱하는 모든
전통과 함께 이해의 지평으로 들어간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은 서류의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ldquo아 이런 사건이구나rdquo라고 감을 잡게 되
는데 카우프만에 따르면 이는 법관 자신이 사건 경과를 관찰해서 인지했다거나
언론 등을 통해 사건에 대한 상세한 지식을 얻었다는 뜻이 아니라 유사한 사건들
을 알며 그래서 ldquo선이해(Vorurteil Vorverstaumlndnis)rdquo65)를 가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
해의 전제로서 이런 선이해가 없다면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것이 무엇에 관한 사
건인지 알 수 없고 다른 사례와 비교할 수도 없기 때문에 올바른 판단에 이른다
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66) 이 선이해에 의해 해석은 언제나 해석주체의 자기
이해 즉 자신이 lsquo잠정적rsquo 결과로서 이미 예상했던 것을 논증적으로 근거짓는 활동
이라는 의미에서 ldquo해석학적 순환rdquo 내지 ldquo해석학적 나선구조rdquo 하에 이루어진다
63)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Festschrift fuumlr Karl Peters Mohr Siebeck (1974) 144면 법관의 독립과 양심 주제와 관련한 또 다른
글로는 Kaufmann ldquoGesetz und Rechtrdquo Existenz und Ordnung Festschrift fuumlr Erik Wolf (1962) 357면 이하
64)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4면 65) 해석학적 의미에서의 lsquo선이해rsquo는 일상 언어 관용에서는 lsquo선입견rsquo이나 lsquo편견rsquo 같은 부정
적 함의를 더 많이 지니기 때문에 카우프만은 lsquoVorurteilrsquo 대신에 Vorverstaumlndnis라는 용
어를 쓰기를 권장한다(앞의 글 148면) 카우프만 외에도 이 용어의 선택은 Josef Esser Vorverstaumlndnis und Methodenwahl in der Rechtsfindung 2 Aufl (Frankfurt aM 1972)
66)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7면
90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텍스트를 이해하려는 사람은 말하자면 언제나 초벌 그림을 그리며 특정 의미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텍스트를 읽기 때문에 ldquo텍스트에서 첫 번째 의미가 지시되자
마자 전체의 의미를 lsquo예비투사한다(vorauswirft)rsquordquo67) 그리고 선이해와 관련된 이 예
비투사는-해석학적 lsquo순환rsquo에 의해-원칙적으로 끝없이 검열과정을 거친다는 것
이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도 실제 판단과정에서는 분리
되지 않는다68)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은 시간적으로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단절 관계가 아니라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정제하고 상응하는
관계에 놓인다 즉 사실에 대한 인식 없이 규범적 인식은 불가능하며 또한 규범적
관점 없이 사실만을 통한 사실 확정도 불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법률도 법관의
해석을 만나기 전에는 ldquo잠재적인 가능태로서 주어진 법률rdquo일 뿐 해석학적 순환을
통한 정제 혹은 상응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ldquo진정한 실정법rdquo이 생성된다69) 이렇
게 특정사건을 통해 구체화된 규범(구성요건)과 이 규범을 통해 정해진 사실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법관에게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들과 함께 제3의 요소로서 법관
자신의 선이해 내지 이해 포괄적으로 말하면 그의 인격적 존재가 판단에 혼입
된다
lsquo선이해rsquo는 판단자가 자신의 선이해를 의식하지 못할 때 부정적 요소를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ldquo자신의 판단은 오로지 lsquo있는 그대로다rsquo라고 말하는 즉 lsquo오로지 법
률에만 구속된다rsquo라고 말하는 법관이야말로 실은 종속된 법관이다 왜냐하면 그는
성찰되지 않은 자신의 선이해와 거리를 둘 수 없기 때문이다rdquo70) 즉 법관은 자신
67)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68) 실제 판단과정에서 사실인정과 법률적용이 따로 떨어질 수 없다는 점은 굳이 카우프
만의 이론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실무상으로는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ldquo법률
의 적용과 사실의 인정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법률문제와 결부되어 인정된다 사실의 인정이 진행됨에 따라서 재판관의 머리
속에서는 어떠한 법규를 적용할 것인가 그 법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는 전망이
점차로 서게 되며 당사자 측도 경우에 따라서는 민사인 경우 청구의 취지를 변경할
것인가를 고려하게 되고 형사인 경우 공소사실을 변경하는 경우도 생긴다 요컨대 사실
문제와 법률문제는 실제과정에서 불가분으로 결부되어 있다 helliphellip 양쪽이 불가분으로
재판관의 직관 혹은 재판관의 전인격적인 작용에 의하여 사실의 인정과 법의 적용이
행하여지고 판결 삼단논법은 실제의 심판 과정에서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rdquo(사법
연수원 법조윤리론 35면) 69) ldquo법관의 해석 작업 이전에는 어느 의미에서 진정 법도 진정한 사실도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원자재들(Rohmaterialien)로만 이것들이 존재할 뿐이다rdquo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1
의 선이해를 의식하고 자신을 이데올로기 혐의 앞에 세울 줄 알 때 올바른 판결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ldquo법관이 자신의 선이해와 종속을 의식할수록 그래서 간주
관적 합의에 노력할수록 그는 더 객관적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rdquo71) 그러므로
법관의 주관주의의 위험은 카우프만식으로 말하면 가치판단 같은 성찰적 고려와
관련된 주관적 요소를 방법상의 근거 제시의 맥락에 끌어들이는 법관의 경우보다는
오히려 모든 것이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판결의 주관적
요소를 은폐하는 법관에게서 나타나는 위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학적 순환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법관은 ldquo법률의 입rdquo이 아니라 ldquo인격
으로서 판결을 떠받친다rdquo72) 판결은 법률과 법관의 인격의 혼성물이다 그러므로
법률은 판결을 위한 필요조건이기는 하나 충분조건은 아니라고도 말할 수 있다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순환이론은 법관의 독립과 양심의 문제 차원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법결정의 올바름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
는 정도에 달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자신을 올바르
게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자신의 판단력 경험 능력 인간에 대한 태도 감
수성 명예욕 등등
카우프만의 법해석학적 순환이론이 법관의 독립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이라
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독립은 법관 스스로 관철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론적으로 카우프만의 법해석이론의 의의는 법관이 자신의 선입견을
의식하는 것이야말로 법관의 독립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설득력있게 지적
해주며 그런 방향에서 법관의 법해석 작업을 재평가했다는 데 있다고 말할 수 있
겠다
70)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71) Arthur Kaufmann ldquoDer BGH und die Sitzblockaderdquo NJW (1988) 2581면 이하72) 이 표현은 Karl Peters의 Strafprozess - Ein Lehrbuch (1966) 99면에 나오며 여기서는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9면에서 재
인용했다 이덕연 교수도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에 입각하여 ldquo법관의 법해석작
업은 단순한 lsquo인식작업rsquo이나 lsquo언어분석작업rsquo이 아니라 ldquo구체적인 반성과 자기극복의
노력 속에서 온 인격을 걸고 진행하는 lsquo이해와 실천의 수행작업rsquordquo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앞의 글 35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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Ⅸ 법관은 lsquo하는 사람rsquo인가 lsquo보는 사람rsquo인가
법관의 판단작업을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의 관점에서 주목했던 또 다른
철학자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다 그녀는 ldquo아이히만 재판rdquo을 계기로 판단의
특수한 경우로서의 판단력 문제를 연구했다73) 아렌트는 하드케이스와 연관시켜
법관의 판단력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74) 법관은 우선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을 반추하면서 판단에 임하는데 이때 판단자로서 그는 한 면으
로는 규칙에 따라 판단하라는 lsquo일반적 정의rsquo의 요구에 그리고 동시에 다른 한 면
으로는 정황에 맞게 판단하라는 lsquo개별적 정의rsquo의 요구에 처한다 이러한 상황은
아렌트에 따르면 하드케이스에서 특히 발생한다 이 이중적이고 모순적 요구 상황
을 아렌트는 법관의 판단에 적용되는 특수한 해석학 및 그 조건을 설명하는 출발
점으로 삼는다75) 하드케이스가 아닌 통상적인 사건에서는 이른바 포섭 여부를 판
단하는 것으로도 족하다 일반규칙에의 포섭 여부가 중심이 되는 이 단계에서의
판단력- lsquo규정하는 판단력(bestimmende Urteilskraft)rsquo-은 사실관계에서의 원인
이나 형식적 정의를 따지므로 일방적이고 간주관적 전제 없이도 가능하다 그래서
흔히 법관은 여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법을 해석해야 한다고 말할 때 이는
법적용을 이러한 지배적인 포섭모델에 입각하여 이해한 결과라 할 것이다 그런데
규칙으로부터 오는 어떤 어려움들 때문에 규정하는 판단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즉 포섭이 어렵거나 법흠결 시 또는 가치형량이 요구되는 하드케
이스에서는 법관은 어쩔 수 없이 앞에서 말한 모순문제를 다루어야만 한다 이때
아렌트는 법관이 사유의 확장을 통해 방법상으로 lsquo규정적 판단력rsquo을 스스로 교정
할 수 있는 lsquo성찰적 판단력rsquo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고 이 판단유형의 전환과정을
73) 법적 판단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 삼은 저술은 Hannah Arendt Eichmann in Jerusalem Ein Bericht von der Banalitaumlt des Boumlsen Erw Aufl (Muumlnchen 2001) 그리고 Hannah Arendt Das Urteilen Texte zu Kants Politischer Philosophie Hrsg v R Beiner Uumlbers v U Ludz (Muumlnchen 1998)
74) 아렌트가 염두에 둔 하드케이스는 라드브루흐가 이른바 ldquo법률적 불법rdquo 상태로 규정한
나치의 불법국가 상황으로서 이렇게 극히 예외적인 케이스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하드
케이스에 적용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별적 정의 요구에 부응함
으로써 예컨대 소급효를 금지하는 일반법률에 위배되는 상황과 유사한 갈등상황은 반
드시 극단적 상황에서만 생긴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75)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2 Bde Hrsg v U Ludz amp I Nordmann
따라서 그 척도는 전달가능성이며 거기에 딱 맞는 것은 공통감각(상식)이다rdquo77) 오
늘날 공통감각은 아렌트도 지적했듯이 더 이상 그것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얻고자 노력해야 하는 그 무엇이 되어버린 듯하다 그러나 공통감
각이 무너진 시대를 겪었던 아렌트는 사유의 전환 내지 확대를 위한 진정한 발판
을 다시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에서 구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78)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실천철학의 전통에서는 세계와의 관계 그리고 자기와의 관
계를 공통감각을 척도로 설정해가는 판단자가 lsquo하는 사람rsquo인지 아니면 lsquo보는 사람rsquo
인지 즉 lsquo행위자rsquo인지 아니면 lsquo관찰자rsquo인지를 둘러싸고 의견이 대립되어 왔다 lsquo하
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자가 lsquo정치가rsquo 쪽에 더 가깝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
자는 lsquo철학자rsquo 쪽에 더 가깝다 lsquo하는 사람rsquo은 주로 사회의 일반적 상식 건전한 인
간이해 세론(doxa)을 판단의 척도로 삼는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적 경험은 전체주
의 하에서는 건전한 인간이해도 집단화된 대중감정에 따른 오도된 인간이해 앞에
무너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판단에서 사실로서의 상식이나 합의 또는
법해석공동체 내부의 지배적 제도적 관점이라는 판단 척도만으로는 일반규칙으로
부터 오는 모순을 다루기 어렵다 여기서 판단자는 ldquo확대된 사유방식rdquo을 추구해야
하는데 아렌트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을 lsquo보는 사람rsquo의 판단과 결합시킴으로써 법
관을 위한 사유의 확대를 시도한다79) lsquo하는 사람rsquo이 사실로서의 일반적 상식이나
인간이해 차원에 비추어 판단한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ldquo이
상적 규범적 상식rdquo80)을 추구하고자 한다 판단을 거쳐 법적 효과를 결정하는 법관
76)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을 해석학적 순환이론을 적용하여 분석하면서 칸트의 판단력 비
판에 의거하여 아렌트가 판단력의 특수한 경우로서 법관의 ldquo성찰적 판단력rdquo이라는 새
로운 판단유형을 제시했다고 지적한 연구서로는 Stefanie Rosenmuumlller Der Ort des Rechts Gemeinsinn und richterliches Urteilen nach Hannah Arendt Nomos (2013) 참조
77) Hannah Arendt Das Urteilen 92-93면78) 아렌트가 판단의 차원을 심화시키는 발판으로 삼는 상식은 sensus communis로서
communis opinio와는 다르다는 데 대해서는 Marieke Borren ldquolsquoA Sense of the Worldrsquo Hannah Arendtrsquos Hermeneutic Phenomenology of Common Senserdquo International Journal of Philosophical Studies Vol 21 No 2 (2013) 225-255
79) Hannah Arendt Das Urteilen 76면80) Rosenmuumlller 앞의 책 234면 이하 여기서 아렌트는 상식개념을 이중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에서는 경험적 개념으로 보다 성찰적 판단
단계에서는 규범적 개념으로 사용한다
9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은 관찰자로서 판단하면서 동시에 행위자로서 판단에서 법적 결과를 결정하는
사람이다 관찰자인 동시에 행위자라는 이중적인 역할을 하면서 법관은 자신의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 반추한다81) 이 반추과정에서 법관은 한편으로는 포섭
하는 판단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고려해야 할 관점들을 끌어들이면서
자신의 직책을 마지막까지 수행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통제하면서 자신의 앞서의
(포섭) 판단을 정정해나간다 그래서 법관 자신이 lsquo보는 사람rsquo과 lsquo하는 사람rsquo의 만
남의 장소가 되는 것과도 같다 ldquo이 보는 사람은 모든 하는 사람 안에 자리 잡고
있다helliphellip이 비판적 판단능력이 없이는 행위자 혹은 해결자는 보는 사람으로부터
풀려나 종내는 지각되지조차 못하게 될 것이다rdquo82)
사람들은 자신 일에 있어서는 비당파적일 수는 없다 따라서 ldquo자신의 일에 대한
판단에서는 내면의 심판자 혹은 내면의 법정을 가질 수 없다rdquo83) 그러나 다른 사
람의 일을 반추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필히 비당파적이어야 하며 또 비당파적이 될
수 있다 이때 그는 비로소 내면의 심판자를 가지게 된다 즉 양심의 문제에 처하
게 되는 것이다 판단에 있어서 양심이라는 것 즉 양심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남
의 일에서 ldquo증인rdquo 혹은 ldquo비판적 친구rdquo로서 관찰하고 행위하는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이다84)
아렌트의 성찰적 판단모델은 나치 불법국가 경험의 산물이다 통상의 규칙이 파
괴된 상황 통상의 범죄유형에 포섭되지 않는 극히 예외적인 범죄적 상황에서 법
원은 기존의 판단척도를 해석학적 출발로 삼아서는 안 되고 이때에는 질적으로
동의가능한 합의형식을 찾기 위해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으로 돌아가
진정으로 사유 즉 철학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렌트가 판단을 일반화해주는
거점이자 해석학적 출발점으로 삼은 공통감각(상식) 개념은 칸트철학에서 ldquo비사교
적 사교성rdquo 개념의 위상과 비슷하다85) 이 지상에서 인간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다른 것을 원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모여 살아야만 하는 존재다 이 비사회성 요
청과 사회성 요청의 동시성 때문에 인간에게는 제도적인 안착이 더없이 중요하며
법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실존과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만든다 판단의 기
81) Leora Y Bilsky When Actor and Spectator Meet in the Courtroom Hannah Arendt and Eichmann in Jerusalem G N Arad Hg (Bloomington 1996) 137면
82) Hannah Arendt 앞의 책 85면83) Hannah Arendt 앞의 책 76면 84)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657면85) Rosenmuumlller 앞의 책 1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5
초를 보편적 인간경험에 둔다는 점에서 아렌트가 말하는 판단력은 드워킨의 헤라
클레스와 같은 초인적 천재성을 발휘하는 능력과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86) 아
렌트가 상정하는 이상적인 법관은 철학적이지만 철학자는 아니고 정치적이지만 정
치가는 아닌 사람이다
아렌트는 헌법국가의 권위도 상식개념에 기반을 두고 설명한다 그리고 민주적
정당성의 관점에서 입법의 우위를 인정하는 까닭에 성찰적 판단에 입각한 법관의
검증에는 한계가 있다는 태도를 견지한다87)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렌트가 제시한
법관의 성찰적 판단 유형에 대해서는 다양한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우선 이것이
예외 상황에서 적용되는 판단모델로 상정된 것이며 무엇보다도 ldquo규범적 상식rdquo에
대한 단일한 이해기반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법관 개인의 주관적 정치적 신념
이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길을 피할 수 없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성찰적
판단력은 결국 레토릭에 불과한 것인가 아렌트는 그러나 무엇이 ldquo특정 상황에 맞
는 공통감각(situierte Gemeinsinn)rdquo인지에 대한 공동의 인식은 가능하며 또 법관의
lsquo하는rsquo 판단에 들어있는 정치적 함의를 성찰적 판단력으로 검증하는 것도 가능하
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아렌트가 마지막 검증심급으로 원용하는 것이 바로 판
단에서의 양심의 심급이다 그것이 과연 동의할 수 있는 합의형태로서 충분한지를
스스로 검증하는 이 심급에서 판단자는 명령조로 자기에게 전해지는 소리를 듣게
된다 ldquo멈춰 나는 그것은 할 수 없어rdquo88) 판단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 멈추는 것
이 가능한 이 성찰적 심급에서는 칸트와 달리 할 수 없는 이유로써 결과도 고려
된다 lsquo보는 사람rsquo이 자기 안에서 지켜보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상황은 토마스 아퀴
나스의 양심론에 비추어 다음과 같이 묘사될 수도 있겠다 지적 본성을 가진 인간
존재가 보편법칙에 관한 지식을 개별 행위에 적용하기 위해 판단하고 선택할 때
행위자는 갈등 상황- ldquo그렇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rdquo는
상황-에 처하여 멈칫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데 이때 그는 단지 갈등하고
선택하는 역할만 하지 않고 갈등하고 선택하는 이 과정을 ldquo관찰하고 목격하는 증인rdquo
의 역할도 한다는 것89)
86) 드워킨에 의하면 해석적 탐구는 ldquo어떠한 증명도 허용치 않고 어떠한 수렴도 약속치
않는 탐구rdquo이다(드워킨 정의론 203면)87) Rosenmuumlller 앞의 책 30면88) Hannah Arendt Uumlber das Boumlse Eine Vorlesung zu Fragen der Ethik Hrsg v J Kohn
(Muumlnchen 2003) 52면89) 지적 행위자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자신의 내면의 갈등과 선택과정을 바라보는
9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Ⅹ 방법에서 덕목으로
헌법 제103조는 한 면으로는 헌법과 법률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 면으로 해석자에게 여하한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lsquo제약
의 차원rsquo과 lsquo자유의 차원rsquo을 동시에 담고 있다 법관은 자유로울 때에라도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며 법에 구속될 때에라도 전적으로 구속되지는 않는다는 뜻이
기도 하다 이 lsquo자유와 구속의 변증법rsquo에 비추어 지금까지 논한 주제에 대해 몇 가
지 입장을 정리해 보자 첫째 법관에게 있어서 독립은 확정된 원칙이나 그것자체
로서 달성해야 할 최종목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법관의 독립은 완성형이 아니라
끊임없는 진행형의 과제로서 그 직무수행에 대한 신뢰와 병행하여 점진적으로 이
루어지는 것이다 둘째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에 있어서 구속은 법률에 무조건 복종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판결에 대한 윤리 (내 ) 확신과 함께 법률에 복종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법관이 실정법률에 반하는 결정을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법
관은 객관성을 빌미로 법률 뒤에 숨는 익명적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
미하는 것이다 셋째 독립적인 법관의 양심은 lsquo법과 상충한다rsquo기보다는 lsquo법을 실
한다rsquo는 의미를 지닌다 넷째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서 반추하면서 lsquo하는
사람rsquo인 동시에 lsquo보는 사람rsquo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성찰 인 인물상으
로서만 설정될 수 있다
해석적 탐구는 우리의 이해를 넓히기 위해서 필요하지만 이해에서의 우리의 피
할 수 없는 한계를 깨닫기 위해서도 필요했는지 모른다 엥기쉬는 법해석방법론에
대한 저술의 마지막 부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ldquo방법론에 천착하다 보면
애초의 문제였던 법률로부터 훨씬 더 먼 곳으로 이끌려 간다rdquo 지금까지 필자는
법관의 법해석과 관련하여 방법론의 의의와 한계를 논하고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과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에 비추어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이 법해석론
의 불가결한 부분으로 들어가게 되는 이유도 밝혔다 그리고 해석적 차원에서의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는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행위를 목표로 하는
탐구라는 것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필자는 이 모든 논의들을 매개로 방법론이 우리를 더 멀리 덕
목론으로 데려가는 과정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드워킨의
상황에 대한 이 묘사 부분은 이경재 ldquo토마스 아퀴나스의 양심 개념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375면을 참조했다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7
헤라클레스를 잠시 불러올 필요가 있다 해석문제를 누구보다도 더 진지하게 다룬
드워킨은 마지막에 헤라클레스를 내세운다 주어진 사건에서 무엇이 법인지에
대해 도덕적 의식을 가지고 법실무 전체를 원리정합적으로 정당화하라는 요청에
부응하여 자신의 신념에 기초한 결정을 내리는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의 구성적
해석에서 법관의 양심이 기능하는 국면은 어디일까 송민경 판사는 드워킨의 구성
적 해석론에 입각하여 양심을 구체적 법논증과정의 일부로 포함시키면서 이때 양
심이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라는 지침으로 기능한다고 설명한다90)
그런데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는 지침으로 기능하는 것을 양심이라
고 보게 되면 양심의 문제는 논증적 합리성의 차원 즉 논증의 성공으로 종결짓게
된다 그러나 법적 결정의 정당성 문제는 법관의 입장에서는 논증의 성공 문제로
다루어지지만 법관의 성공적인 논증에 따른 판결의 결과로부터 영향을 받는 시민
의 입장에서 보면 성공적인 논증만으로는 해석이 정당화된다고 볼 수는 없다
성공적인 논증은 법적 결정의 정당화에 필수적이기는 하나 충분한 조건은 되지 못
한다 해석이 궁극적으로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사법적 도덕성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 사법적 도덕성은 헤라클레스가 지침으로 삼는 원리적 도덕성의 실현과는 다른
것이다 만약 패소한 시민이 다른 헤라클레스에게 갔더라면 즉 다른 법원리에 기
초한 신념을 토대로 다른 결정을 내린 다른 법관에게 갔다면 그는 승리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왜 헤라클레스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하
는지에 대한 답이 필요한 것이다91) 헤라클레스가 실무에 대한 최상의 정당화를
도모하는 법적 이상주의자라면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법원 문을 두드린 시민도
어느 의미에서 ldquo법이상주의자rdquo92)이다
법해석 작업의 주관의존성이라는 불가피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재판이라는 특수
한 공적 활동이 법관이라는 특수공직자에 의해 운영되고 유지된다는 것은 시민들
-소송에서 패한 시민들을 포함하여-편에서 보면 법을 해석하는 법관에 대한
신뢰가 전제된다는 것이다 법관의 독립적 활동은 법관의 특권 행사가 아니라 사
90) 송민경 앞의 글 38면 20면91) 사법적 덕목과 연관하여 이 부분을 다룬 글로는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5면 이하
92) 법원 문을 두드리는 시민에 대한 이 표현은 심헌섭 ldquo법조윤리의 좌표 거시적 관점에서 본 전문윤리로서의 법조윤리rdquo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편 法律家의 倫理와 責任 박영사
(2003)에 나온다
9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법과정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응당한 몫이 돌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존중하는 바탕에는 일종의 상호성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 그 또한
시민이기도 한 법관이 동료시민들에 대해 가지는 배려와 존중의 원칙이 그것이다
여기서 사법적 덕목에 대해 자세히 논할 수는 없다93) 예의 성실 신중 절제
용기 공정 겸손 의사소통 능력 형평 시민에 대한 배려와 존중 등등 이것들은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바탕을 이루는 양심의 덕목들일
것이다 양심이라는 단어가 그렇듯이 덕목이라는 단어도 오늘날 진부해진 표현
이며 거의 사라져가는 단어다 윤리적 태도로서의 덕목은 관찰하기도 배우기도
어렵다 그러나 올바른 판단과 결정이 법관이라는 개인을 거치지 않고 법령집
자체로부터 반사적으로 튀어나오지 않는 한 이 덕목들을 내면화하고 지향하려는
태도 없이는 lsquo종국적인rsquo 판단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써 필자는 헌법 제103조를 통해 법해석에서의 방법론의 문제가 덕목론이라
는 다음 과제로 이어진다는 점을 밝혔다고 생각한다
투고일 2016 4 6 심사완료일 2016 5 18 게재확정일 2016 5 20
93) 법관의 개별적인 덕목들과 이것들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는 박은정 강태경 김현섭 바람
직한 법관상의 정립과 실천 방안에 관한 연구 법원행정처(2015) 제5장 참조할 것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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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수 ldquo바람직한 법관상-기예와 지혜 사이rdquo lt근대사법 및 한성재판소 설립
이성의 활동rdquo ldquo인격의 자기인식rdquo ldquo본래적인 자기 자신으로 불러 세우는 염려의
소리rdquo ldquo너와 내가 함께 잘못을 감시하고 경계하는 공동의 눈초리rdquo ldquo근원적인 자
기의 요구rdquo 등등22) 이런 다양한 견해들은 양심 개념을 형식적인 측면에서 접근하
는지 아니면 내용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지 양심 판단에서 개인의 주관적 요소를
강조하는지 아니면 보편성 내지 소통가능성을 더 중요시하는지 양심의 권위를 내
부에서 찾는지 아니면 외부의 권위를 사회화 내지 내면화한 결과로 보는지 양심
에 따른 결단을 감정의 작용으로 보는지 아니면 이성도 같이 작용하는 것으로 보
는지 등에 따라 여러 갈래를 이룬다
칸트의 근대 주체철학의 영향을 받은 이래 오늘날 양심논의에서는 대체로 양심
의 개인적 주관적 요소가 강조되는 가운데 양심을 개인에게 도덕적 행위 동기를
유발하고 자기반성을 가능하게 하고 개인의 판단과 자기결정에서 최종심급의 역
할을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대표적으로 칸트는 양심을 각 주체로서의 개인의
ldquo내면에 자리 잡은 자율적 심판관rdquo으로 일컬으면서 행위주체가 자기 안에 내재하
21) 이덕연 앞의 글 361면22) 진교훈 외 19인 양심 고 로부터 에 이르기까지의 양심의 의미 서울대학교출판
문화원(2012)
7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는 도덕법칙에 스스로의 행동을 적용시키는 것이 양심이라고 말한다23) 이때 양심
은 스스로 도덕법칙을 정립할 수 있는 선의지를 가진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지니는 일종의 의무의식으로 여겨지며 자신이 자신을 평가하는 것이 양심이기 때
문에 이 주관적 확신을 평가하는 외부의 기준은 없는 셈이다24) 이렇게 양심을 주
관성의 형식으로 가져갈 때는 주관적으로는 옳은 양심에 따른 확신이라 하더라도
인식주체가 가진 한계 등으로 인해 내용상 오류가 가능하다는 문제를 안게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칸트와 달리 양심문제를 개인의 주관적 도덕의식 이상의 차원에
서 다루고자 하는 철학자들은 간주관성의 차원에서 보편성을 지니는 양심개념을
추구한다 이런 방향에서 파악한 양심 개념에 대해 lsquo객관적rsquo 양심이라는 표현을 쓸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양심과 관련하여 lsquo객관적rsquo이라는 표현은 인식
주체 밖에 뭔가가 존재한다는 인식론적 존재론적 가정을 상정한다는 점에서 문제
가 있다 인식 주체 밖에 객관적인 그 무엇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양심이 아니라
윤리규범일 것이다 법관의 양심을 lsquo객관적rsquo lsquo법조적rsquo 양심으로 표현하는 것도 이런
의미에서 부적절하다25)
그런데 철학전통 안에는 양심을 주관성의 형식으로 끌어들여 절대화하는 시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서양에서 근대 이전의 철학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개인의 주
관적 도덕의식을 넘어서는 차원에서 양심을 논하는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우선 어
원상으로도 con-scientia syn-deresis의 con과 syn에서 알 수 있듯이 양심은 우리
내면의 법정에서도 공공성 내지 공동체성 즉 ldquo함께 안다rdquo라는 요소를 지니고 있
었다 이 어원은 양심의 규제적 기능에는 우리가 올바르게 행했는지 혹은 그릇되
게 행했는지를 지켜보는 ldquo공동의 인식rdquo이 있다는 자각이 포함됨을 암시한다 자기
안에서 lsquo보편적인 자기rsquo를 확신하는 과정을 상호인정과정과 연결시키고자 하는 양
심관은 공동의 윤리로서의 인륜성(Sittlichkeit)의 입장에서만 ldquo진정한 양심rdquo이 가능
하다고 보는 헤겔(G W F Hegel)의 양심론26) 타자윤리학에 근거한 레비나스
23) Immanuel Kant 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 (윤리형이상학 정 백종현 역 아카넷(2005) 134면 이하) 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Philosophische Bibliothek A 175 (2003) 215면 이하
24) 김관영 ldquo칸트에 있어서 양심의 문제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144면25) 예컨대 성낙인 교수는 법관의 양심을 ldquo법관이 적용하는 법 중에서 객관적으로 존재하
는 정신을 가리킨다rdquo고 설명한다 앞의 책 713면 이 객관적 정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26) Hegel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sect137 헤겔의 양심론에 대해서는 최신한
ldquo헤겔 야코비 양심의 변증법rdquo 헤겔연구 제23호(한국헤겔학회 2008) 86면 이하 참조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75
(Emmanuel Levinas)의 양심론27) 그리고 행위주체들의 담론적 소통과 사회적 행위
에 대한 책임에서 출발하는 아펠(Karl Otto Apel)의 양심론28)에도 엿보인다 동양의
양심을 ldquo세상 사람을 향해 움직이는 마음rdquo으로 묘사하면서 양심이 있어서 책임있
는 인식의 기능에 주목한 사상가도 있다30)
서양에서 근대를 전후로 양심의 주관화 경향이 강하게 대두된 데에는 종교분쟁
등의 영향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은 가치상대주의라는 시대정신의 영향 하에
양심은 도덕적 판단과 인격을 근거지우는 현상으로 파악되면서도 내용적 측면보다
는 형식적 측면에서 고찰되고 간주관적 논의가능성이 배제된 채 그 논의의 폭이
좁아져 거의 개인의 자기결정권 영역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우리 헌법 제19조의
양심의 의미도 이런 자기결정에서의 최종심급 역할이라는 맥락에서 읽히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살펴봤듯이 주관화의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기 이전의 사유전통에
서는 양심의 자기결정 능력보다는 스스로에게 도덕적 의문을 품는 능력 ldquo함께
안다rdquo라는 책임성 쪽에 더 비중이 놓여 있었다 이런 사유배경에 비추어 본다면
헌법 제19조의 양심은 근대 주관화의 영향의 산물로 이해할 수 있고 이에 비해
헌법 제103조에서 법관과 관련하여 언급된 양심은 근대 이전의 ldquo함께 안다rdquo의 사
유전통의 흔적을 지닌 개념으로 볼 수 있다
Ⅳ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의 완화 경향
앞에서 살펴봤듯이 역사적으로 법관의 독립이념은 법관은 오로지 법률에만 구속
된다는 것을 전제로 탄생했다 그리고 이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은 법률의 총합으로
27) 레비나스에 대해서는 김연숙 ldquo레비나스의 양심론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제3부 제3장 참조28) Karl Otto Apel From a Transcendental Semiotic Point of View Manchester University
Press (1998) 52면 259면 양심이 지니는 공적 관찰이나 감시기능 부분에 주목한
Apel에 대해서는 백춘현 ldquo아펠의 양심론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344면 이하29) 맹자의 양심론에 대해서는 장승희 ldquo맹자의 양심론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제1부 제1장
참조30) 왕수인은 양심과 양지(良知)라는 표현을 함께 썼다고 한다 ldquo남의 아픔을 느끼기 위해
서는 예민하게 lsquo생각rsquo해야 한다rdquo 여기서는 이혜경 ldquo왕수인의 양심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79면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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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 법질서는 통일적이고 자기충족적인 시스템을 이룬다는 가정에 기초하고 있
었다 그러나 이 가정은 그 자체로 애초 한계를 지닌 것이기도 하지만 법의 생태
적 기반이 변하면서 이 법률구속원칙은 점차 상대화 내지 약화되는 방향으로 나아
가게 되었다 입법자를 기다릴 수 없는 빠른 사회변화 자유법운동 입법양의 폭발
적인 증대 일반조항 도입 등 입법스타일의 변화 복지국가 대두 사회정의의 요구
헌법재판 활성화 등의 흐름은 법관의 법률구속메커니즘이 작동하기 어려운 여건을
만들어 가게 된 것이다 이른바 lsquo법관법rsquo의 대세 흐름이 나타난 것이다 특히 지난
수십 년간 확대된 입법영역은 형법과 같은 규제입법과 달리 사회복지생활보호
건강 증진남녀평등청소년보호장애인보호적극적 평등조처 등처럼 정치적 비전과
목적을 담은 한마디로 정책촉진적 성격을 지닌 법률들이었다 이와 같은 야심찬
입법스타일은 법적용단계에서 법관이 바람직한 제도 및 정책 내용에 대해 고려케
함으로써 목적적 법논증으로 기울게 하고 구체적 이익을 비교형량하는 심사방식
을 확대시키는 등 좁은 의미의 실정법률 해석보다는 법형성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 것이다31) 특히 이 흐름은 20세기말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법실증주의에
제동이 걸리는 분위기와 겹치면서32) 법철학에서도 전통적인 포섭논리나 삼단논법
은 실제로 법관들에게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지적과 함께 법관의 법률구속원
칙에 회의적인 성향의 논의들이 강세를 보이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법발견 과정에
대한 심화된 통찰을 통해 lsquo선이해rsquo의 문제를 재평가하게 만든 철학적 해석학과 문
언의 의미론적 구속력에 회의를 제기케 한 언어이론은 법철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들 이론에 입각하여 이제 법의 흠결 시와 같은 예외적인 상황에서 법관
의 법형성이 불가피하다는 수준의 주장을 넘어 법률텍스트를 통한 구속가능성 자
체를 의문시하는 주장까지 나오게 되었다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의 실현에 대한 기대가 점점 약화되고 그래서 누구의 표현
대로 법률이 해석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해석이 법률을 지배한다고 말할 정도가
31) 사회변화에 따른 법관의 역할 변화에 대해서는 박은정 왜 법의 지배인가 돌베개(2010) 제6장을 참조할 것
32) 울프리드 노이만(Ulfrid Neumann)은 지난 2015년 10월 1일 고려대학교 초청강연에서
ldquo실증주의 이후 시대의 법률과 판결rdquo이라는 주제로 발표하면서 법학적 사고가 ldquo법실
증주의 이후의 시대rdquo로 넘어갔다고 진단하고 그 배경으로 세계화 등의 흐름으로 국제
상거래관습법(lex mercatoria)처럼 입법당국에 의한 제정이 아닌 사회적 실천에 의거한
법제정 사례 법원리의 중요성 대두 인권사상 증대 등을 들고 있다 그러면서 법실증
주의로부터 멀어지는 만큼 법관의 법률구속원칙도 상대적으로 완화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77
되면 다시 제기될 수밖에 없는 물음이 바로 입법기관과 법적용기관 사이의 권력
균형 문제다 이 권력 균형은 특히 법 이라는 개인에 의해 매개된다는 점에서 문
제가 된다 오늘날 ldquo사법국가rdquo ldquo법관공화국rdquo ldquo사법엘리트rdquo ldquo사법의 정치화rdquo 등을
지적하는 소리는 입헌민주주의 기획의 초기단계에서 일찍이 해결했다고 여겼던
문제들이 다시 등장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법관의 법률구속의 전제 및 그 가능성
법원의 중립성 법관의 민주적 정당성 사법관료주의 등의 문제가 그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물음이 떠오른다 해석자의 자유를 제
한하고 법관의 법률구속을 보장할 확고한 법해석방법론은 가능한가 법관의 법률
구속에 관한 기술적 제도적 보장책은 가능한가 필자는 이 물음들에 대체로 회의
적인 전망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물론 법해석방법의 무용론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법률에 구속되는 법관상이 약화되고 앞으로도 점점 더 약화될
것이라는 전망 하에 어느 때보다도 더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될 법관의 독립 문제
를 염두에 두면서 법해석방법론의 문제를 재검토하고자 한다
Ⅴ 법해석방법론의 문제점과 한계
법이 있는 곳에 해석이 있다 법학의 강점도 해석학적 잠재력에 있다 법관의 임
무는 법률을 적용하기 위해 법문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법해석방법론은 법
해석과정에서 법관의 자유에 일정한 제약을 가하고 법관의 법률구속이념을 실현하
기 위해 고안되고 발전된 것이다 해석에서는 무엇이 최선의 해석인지를 둘러싸고
언제나 논쟁과 불일치가 생기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해석작업은 인간의 판단과 행
위의 영향 하에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법관이 따라야 하는 법률 자체에는 이미 법적용자를 법률에 대해 어느 정도 독
립적이게 만드는 여러 표현방식들이 들어 있다 예컨대 lsquo야간rsquo lsquo소음rsquo lsquo위험한 물건rsquo
lsquo적절한 조치rsquo 등 개념의 내포와 외연이 확정적이지 않은 법개념들이 대표적이다
이런 불확정적 개념들은 법명제의 구성요건 단계에만 들어 있는 게 아니라 법률효
과에서도 등장한다 이른바 lsquo규범적 개념rsquo들도 그런 표현방식에 속한다 lsquo음란한rsquo
lsquo건전한rsquo lsquo불명예스러운rsquo 등의 개념들은 기본적으로 지각가능한 대상을 서술하는
개념과 대비하여 의미내용이 가치판단에 근거할 때만 파악된다는 점에서 규범적
이다 이때 가치판단은 반드시 주관적 개인적 평가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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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의 평가도 포함할 것이지만 어쨌든 이 판단과 관련한 어느 정도의 불확정성은
감수해야 한다 법관의 법률 구속 의무를 느슨하게 만드는 이런 개념군에는 재량
도 포함된다 오늘날 재량개념은 ldquo법적으로 구속되는rdquo 재량으로 이해되지만 이때
판단의 여지 안에 들어오는 여러 대안들 가운데서 최종 혹은 최선의 대안을 확정
하는 데 있어서 결정자의 개인적 확신을 허용할 수밖에 없다 일반조항도 표현 그
대로 높은 일반성을 띰으로써 법적용자로 하여금 자기 앞에 놓인 사례를 광범위한
사례집단들에 적응시켜가면서 법률효과를 귀속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33)
위에서 언급한 불확정 법개념이나 규범적 개념 등을 적용하는 데는 가치판단
요소가 수반된다 이런 개념들을 적용할 때 법관은 일정한 범위 안에서 입법자를
대신하여 가치판단 내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것이다 또 법관
은 법의 lsquo흠결rsquo을 보충하거나 법질서 안에서 이따끔 발견되는 lsquo오류rsquo를 수정해야
할 부득이한 상황에도 처하게 된다 이때는 법관은 스스로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찾아 나서야 한다 lsquo법의 일반원칙rsquo lsquo법의 정신rsquo lsquo평균인의 척도rsquo lsquo비례성원칙 lsquo이익
형량rsquo 등은 이때 법관이 의존하는 사유 장치들이며 이것들을 원용하는 데도 가치
판단적 요소가 개입한다 이때 판단자는 무엇이 사실상 효력을 갖고 있는 윤리적
견해인지 확인해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사실로서의 합의가 올바른 법적 결론에
도달하게 하는지에 대해서도 숙고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법적용자는 때로는 평
균인 테스트 같은 객관적인 척도에 의지하지만 또 때로는 개인적 견해를 더 많이
펼칠 수 있는 일정한 판단의 여지를 가지게 된다
이렇게 해석과정에서 불가피한 lsquo판단의 여지rsquo 즉 해석과정에 불가피하게 개입되
는 가치판단 요소 때문에 ldquo해석의 건전성rdquo을 둘러싸고 논란이 생기고 해석의 정당
화와 관련하여 회의가 생긴다 가치판단과 관련된 부분이 불가피하게 주관적 요소
를 끌어들이게 되고 이로 인해 법규범의 효력이 상대적이고 불확실한 영역으로 떨
어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단자는 자신의 결론이 불확실성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자신의 해석에 대한 정당화를 포기할 수 없다 법을
해석한다는 것은 ldquo그 법률을 특정 사안에 적용하는 것을 정당화한다는rdquo34)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확정적인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사례에서도 요구되는
33) 불확정적 개념 규범적 개념 재량 일반조항과 관련한 자세한 설명은 칼 엥기쉬 법학
방법론 안법영윤재왕 옮김 세창출판사(2011) 182면 이하에 잘 정리되어 있으며 필
자도 이 부분을 참조했음을 밝힌다 34) 닐 맥코믹 로버트 서머즈 ldquo해석과 정당화(上)rdquo 박정훈 역 법철학연구 제5권 제2호
(2002) 18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79
개인적인 단은 도덕적 상대주의자들이 말하는 개인적인 취향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해석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올바른 해석기준을 수립하고자 법률가들은 각
기 지금까지 다양한 해석방법에 의존해 왔다 올바른 해석을 위한 확고한 기준을
수립할 수 있다는 것은 찬성하는 혹은 반대하는 해석논거들 사이의 상대적 비중을
결정하는 명확한 규칙을 수립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즉 어느 한 해석
논거가 다른 해석논거에 의해 배제되는 조건이나 선택된 해석을 정당화하는 데
필수적인 한 논거가 다른 논거보다 우월하기 위한 조건 한 논거에 누적을 통한
비중이 부과되는 조건 등을 제시해줄 일관된 정보와 지침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
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여러 해석방법들 사이에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다는 것
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시도는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했다 동일한 유형의 논거일지
라도 각각의 정당화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비중을 갖게 될 뿐더러 언어적 해석
방법 체계적 해석방법 목적적 해석방법 등으로 제시되는 여러 해석방법들이 한
줄로 세우기에는 한마디로 너무 이질적이다35) 물론 이들 해석논거들의 상호작용
을 검토하면서 잠정적인 서열을 제시하는 것은 가능할 수도 있다36) 그러나 이 서
열은 기껏해야 ldquo해석을 위한 노력의 경제성 원리rdquo 정도를 말해 줄 뿐이기 때문에
쉽게 바뀔 수 있다37)
드워킨이 옳게 지적한 대로 기본적으로 가치판단과 관련된 해석방법들은 위계
적일 수 없고 ldquo상호지지적rdquo인 관계에 놓일 뿐이다38) 이 때문에 방법론적 규칙을
세우려는 시도는 언제나 무망해지는 것이다 또한 법해석에 있어서 언어란 단어의
의미를 식별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 행위의 의미를 식별
하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론 풀러(Lon Fuller)가 지적한 대로 ldquo언어
를 통한 의사 전달은 어느 한 사람으로부터 다른 사람에게로 의미가 든 상자를 발송
하는 식rdquo39)은 아닌 것이다
35) 울프리드 노이만 ldquo실증주의 이후 시대의 법률과 판결rdquo 강연문(주 32) 노이만에 따르
면 예컨대 체계적 해석 방법에 따른 논거도 그것이 논리적 일관성 획득의 맥락에서
인지 아니면 가치평가의 일관성 보장이라는 맥락인지에 따라 전혀 다른 비중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36) 대체로 언어적-체계적-역사적-목적론적 해석방법의 순서로 언급되는 데 대해서는 심헌섭
분석과 비 의 법철학 법문사(2001) 217-218면37) 맥코믹과 서머즈는 비교법적 연구결과를 통해 올바른 해석을 위한 지침 수립은 어느
국가의 법체계에서도 지금까지 성공적이지 못함을 밝힌다(앞의 글 210면)38) 로널드 드워킨 정의론 박경신 옮김 민음사(2015) 309면
80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결론적으로 해석방법론으로부터 법관은 불확실성을 떨쳐 낼 수 있는 확실한 정
보제공을 기대하기 어렵다 해석논거를 위한 결정적인 기준을 제공하는 해석방법
에 대해 불안정한 형태로나마 이론적 합의를 찾기 어렵다면 엥기쉬의 지적대로
해석방법론은 공중에 떠있는 상태다40) 법학에서 방법론의 융성은 역설적으로 법
학이 이 부분에 취약하다는 암시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해석자로서의 법관을
최종적으로 인도하는 전략은 무엇일까 다음과 같은 고민을 들어보면 적어도 그것
은 방법론상의 합의에 대한 기대 같은 것은 아닌 것 같다 ldquo우리들은 일정한 결론을
내리고도 그 결론이 가장 적절sdot타당한 것이라고 보증받을 수 없다 그 결론을 낸
시점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들은 자기의 결론이 그러한 불확실성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그것을 자기의 전인격적 책임 아래 끝을 내고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비판과 평가에 맡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rdquo41)
해석방법론이 공중에 떠있는 상태라면 법관을 법률에 구속시키기 위한 방법론
적 보장책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런 가운데 ldquo자기의 전인격적 책임 아래rdquo ldquo사려
깊고 균형잡힌 총체적 관념rdquo ldquo인생 그 자체로부터 지식rdquo 등에 대한 호소를 듣는다
이것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법발견으로 불리든 법인식 혹은 법형성으
로 불리든 법적으로 올바른 결정을 이끌어낸다는 것은 순순히 lsquo앎rsquo의 문제만은 아
니라는 것이다 실천철학의 전통 용어를 빌어서 말한다면 그것은 이론지 이상의
실천지를 요구하는 활동이다 즉 법관의 해석활동은 이론지와 실천지를 결합하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이 주제로 다가가는 한 우회로로서 우선 지적 활동으로서의
법관의 해석활동의 특성에 대해 살펴보자
39) 론 풀러 법의 도덕성 박은정 옮김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2015) 314면 40) ldquo그러나 해석론 전체에 대한 확고한 이론적 토대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서열관계에
관한 모든 이론들은 여전히 공중에 떠 있다rdquo 엥기쉬 앞의 책 137면41) 사법연수원 법조윤리론(2014) 31면 그밖에 Benjamin N Cardozo The Nature of
Judicial Process Yale University Press (1921) ldquo언제 하나의 이익이 다른 이익을 능가
하는지를 묻는다면 hellip 경험과 연구와 성찰로부터 요컨대 인생 그 자체로부터 그 지식
을 얻지 않으면 안된다고 답할 수 있을 뿐이다rdquo(여기서는 법조윤리론에서 재인용) 또한 맥코믹서머즈 ldquo해석과 정당화(下)rdquo 박정훈 역 법철학연구 제6권 제1호(2003) 348면 ldquo해석은 간주관적으로 승인된 모든 법적 가치들에 대하여 사려깊고 균형잡힌
총체적 관념을 획득하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제대로 행해질
수 있다rdquo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1
Ⅵ 법관의 해석활동 실증주의의 대척점
앞에서 언급한 대로 해석에서는 무엇이 최선의 해석인가를 둘러싸고 언제나
논쟁과 불일치가 따른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누군가가 텍스트를 해석한다고
말하는 순간 그는 실증주의의 대척점에 서게 된다 실증주의과학의 의미에서는 논
쟁의 여지가 있는 것은 원칙적으로 과학일 수 없기 때문이다 법실증주의사고에서
해석 문제가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법을 근본규범에 입각
한 자기준거적인 구조로 보는 한스 켈젠(Hans Kelsen)의 순수법학이나 법적용과정
을 규칙에 의해 지도되는 과정으로 보는 하트(H L A Hart)의 분석법학에서 해석과
관련한 어려움은 다루고 있지 않다42)
켈젠은 순수법이론(Reine Rechtslehre)에서 정당한 해석만이 허용된다는 주장
은 허구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면서 해석의 건전성 문제나 정당화 문제를 법이론
안에서 다루기를 거부한다 법을 자기준거적인 것으로 보는 관점은 한마디로 해석
(행위)주체의 입장을 부정하는 것이다 켈젠은 법단계설을 바탕으로 법적용을 상위
규범의 수권에 의해 하위규범이 구체화되는 과정으로 보고 여기에 헌법의 수권을
받아 법률을 제정하는 입법자도 포함시킨다43) 이에 따라 법적용도 입법의 한 형
태로 설명된다 법관에 의한 법형성의 동기는 이를테면 입법부가 유독 다른 법률
이 아닌 이 법률을 통과시키는 동기와 같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켈젠은 판단활동
에서 인지적 요소와 의지적 요소를 엄격하게 구별하면서 법관의 판단활동을 순전
한 의지활동으로 보고 이 법관의 활동에 대해서만 (유권)해석이라는 표현을 사용
하고자 한다 그리고 법학적 해석에 대해서는 법규범의 가능한 의미들을 밝히는
것으로서 법률에 따른 결정의 범위를 제한하는 정도의 의미를 부여한다
법단계설에 따르면 상위규범이 정한 일정한 범위 안에서의 수권에 따라 하위규
범이 작용한다 이때 상위규범의 수권은 모든 세부적인 내용들에 대해서까지 정해
42) 켈젠은 순수법이론(Reine Rechtslehre) 제1판(1934) 제6장에서 해석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부분과 거의 같은 논문 ldquoZur Theorie der Interpretationrdquo이 심헌섭 젠법이론선집 법문사(1990) 97면 이하에 실려 있다 윤재왕 교수는 Reine Rechtslehre 제1판과 제2판
(1960)을 비교하면서 해석방법으로부터 오는 규범적 구속력을 일체 거부하는 켈젠의
입장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윤재왕 ldquo한스 켈젠의 법해석이론rdquo 고려법학 제74호(고려
대학교법학연구원 2014) 525면 이하 하트의 대표적인 저서 법의 개념의 색인 항목에는
lsquo해석rsquo이 빠져있다 43) Hans Kelsen Allgemeine Staatslehre (Berlin 1925) 231면 이하
8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그래서 ldquo상위단계의 법생성으로부터 하위단계의 법생
산으로의 전환은 단지 상위단계가 정해 놓은 범위를 채우는rdquo 활동으로서 이때
ldquo언제나 상위단계에는 없는 내용적 요소가 하위단계에 추가되어야만rdquo 한다44) 이
내용을 채우는 부분과 관련하여 상대적 불확실성이 생기는데 켈젠은 이 문제를
ldquo자유재량rdquo의 문제로 다룬다45) 이는 하트가 규칙의 체계로서의 법체계를 완결된
구조가 아닌 열린 구조로 봄으로써 상대적 불확실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법관의
재량사항으로 보는 것과 같다 하트의 경우 중심부와 주변부라는 극히 단순화된
이분법을 끌어들여 이 불확실성 문제를 처리하고자 했다면 켈젠의 경우는 인식작
용과 의지작용의 이분법을 끌어들임으로써 이 문제를 처리하고자 한 것이다
판결을 법관의 의지활동으로만 이해하는 입장을 취하게 되면 법관에게 결정에
대한 근거 제시 요청을 할 수 없게 된다 마치 신의 심판에 대해 근거 제시를 요구
할 수 없듯이 말이다 결국 켈젠의 법이론상으로는 해석은 법학의 문제가 아니며
그러므로 분석적 법실증주의와도 무관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46) 이런 이유에서 그
는 정당한 해석만이 허용된다는 주장이나 해석방법만으로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에
이를 수 있다는 주장을 거부하면서 심지어는 상위규범에 제시된 범위를 넘어서는
해석의 효력조차 적극적으로 인정함으로써 어느 의미에서는 해석이론의 존재기반
자체를 무너뜨린다47)
켈젠이나 하트가 법이론에서 해석의 의미를 축소한 이면에는 이분법이라는 과도
한 사유의 단순화가 놓여 있다 그러나 켈젠이 생각하는 것처럼 판단에서 인식적
요소와 의지적 요소의 확고한 경계가 유지되는지는 의문이다 또 중심부와 주변
부에 대한 하트의 주장도 지나친 단순화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어쨌거나
켈젠이 합리적인 해석방법을 추구하는 법이론의 효용가치를 한껏 떨어뜨렸다고
해서 이제 어차피 정답은 없으니 법대에 앉은 법관은 자기 임의로 무엇이든 해도
된다고 켈젠이 주장했을 리는 물론 없을 것이다 법이론의 과도한 정당성 주장을
거부하는 데서 오히려 순수법학의 비판적 잠재력을 찾을 수 있다고 보는 학자들은
여기서 켈젠이 강조한 순수화 즉 탈정치화는 법학에 관한 것이지 법 자체에 관한
44) Kelsen Allgemeine Staatslehre 243면 여기서 번역은 윤재왕 앞의 글 535-536면에서
재인용45) Kelsen 앞의 책 243면 이하46) 켈젠에 있어서 법해석은 이론상으로는 법학보다는 정치학이나 사회학에 속하는 문제
에 더 가깝다고 지적한 견해에 대해서는 론 풀러 앞의 책 312면 47) 이에 대해서는 윤재왕 앞의 글 553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3
주장이 아니었음을 상기시킨다48) 즉 법 자체는 결코 정치와 분리될 수 없다는
점에서 법실무에 대한 학문이론의 무가치성을 주장하는 순수법학은 실무의 법
적용자로 하여금 자신의 활동이 정치적 활동임을 깨닫고 책임을 느끼게 하는 계기
를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윤재왕 교수도 ldquo켈젠 해석이론의 배후rdquo로 들어가 방법
이론으로부터의 어떤 구속력도 거부되는 데서 생기는 공백을 켈젠이 법관 자신의
자기이해와 책임성 문제로 채운다고 지적한다 ldquo법관의 판결은 결코 순수한 것일
수 없으며 그런데도 자신의 판결이 순수한 인식의 소산이라고 강조한다면 이는
정치적 책임의 회피이고 동시에 이데올로기적이라는 혐의에 노출되지 않을 수
없다rdquo49) 이 문구가 켈젠 자신으로부터 나왔다면 아주 좋았을 것이다 자신의 직
무의 중요성과 책임에 대한 실천적 깨달음은 해석의 정당화를 목표로 하는 인식적
노력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켈젠의 순수법이론의 기획은 서로
붙어 있는 양면을 떼어 놓으면서 이것을 다시 붙일 수 있음을 보여주려 한 것일까
Ⅶ 법관의 해석활동 가치판단과 lsquo정답테제rsquo 문제
켈젠처럼 실증주의적 사고에 따르든 아니면 비실증주의적 사고에 따르든 가치
판단 문제에서 해석방법만으로는 하나의 정당한 결정을 도출할 수 없다고 생각한
다면 이는 해석의 차원에서 가치에 대한 이해 시도는 진리 추구와는 무관하다는
주장으로 귀결되는가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해석대상의 의미에 대한
관심과 최선의 이해에 대한 관심은 아무래도 진리 추구라는 목표를 향한다고 봐야
한다 법적 결정은 물론 법관의 권한에 속하지만 그것을 정당화해주는 원천은 법
관이라는 lsquo지위rsquo가 지니는 형식적 권한이 아니라 판결이 정당하다는 근거 제시에
있다 법판단을 정당화해주는 모델은 울프리드 노이만(Ulfrid Neumann)이 지적한
대로 권위를 통한 정당화모델보다는 진리를 통한 정당화모델에 더 가깝다50)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재판활동은 엄연히 사법권이라는 공권력의 작용이라는 점에서
독립적인 법관의 재판활동을 그 ldquo계획적이고 진지한 진리 탐구 활동rdquo적 측면 때문
48) 법학의 탈정치화를 ldquo정치적 허무주의rdquo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데 대해서는 켈젠 ldquo순수법학이란 무엇인가rdquo 젠법이론선집 280-282면
49) 윤재왕 앞의 글 559면50) 울프리드 노이만 ldquo법 진리 권위rdquo 2013 4 6 한국법철학회 강연문 참조
8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에 학문의 자유의 한 표현으로까지 보려는 것은 무리다51)
오늘날 가치상대주의 분위기는 실천적 물음에서 진리 도달가능성에 대한 회의를
과장한다 그러나 진리가 뭐냐는 빌라도의 물음에 비록 확신에 찬 대답을 못한다
하더라도 법에서 진리 내지 정당성 추구의 포기는 파국을 의미한다 국가권력
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도 진리라는 규제이념이 전제되기 때문
이다 독립된 사법부가 심급구조와 집단적 의사결정의 형태로 스스로의 시정 기구
를 가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물론 진리에 대한 주장은 잠정적이고 수정가능하다
lsquo참이냐 거짓이냐rsquo는 오로지 서술적 명제에만 한정하여 검증될 뿐이라는 협소한
학문관을 따른다면 법학은 학문 안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법
학이 그런 협소한 학문관을 받아들여야 할 필연성은 없다 법해석자는 자신의 해
석적 판단이 진리라는 주장을 무한정 내세우지는 못하면서도 진리 추구를 피할
수 없다52) 론 풀러(Lon Fuller)의 지적대로 ldquo법이론이 최고의 법적 권위를 엄격하
게 정의하는 일에 큰 비중을 두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이 점이 모호해지면 필경
전체로서의 법체계가 와해될 수 있다rdquo53)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법을 민주
주의의 언어로 설명하는 오늘날 의회와 행정처럼 다수결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기
관도 아닌 사법의 소수 전문 엘리트의 지배를 권위모델만으로 정당화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법을 준수하는 시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시민들은 자신에게 유죄
판결을 선고한 세속의 법관에게 그 유죄판결의 근거를 알고 싶다고 요구할 수 있
으며 물론 당연히 요구한다
법관은 판결에서 논증을 통해 최상의 근거 제시가 이루어진 결정을 해야 한다54)
51) ldquo일부 사람들 중에는 이러한 법원의 권력기관적 성질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
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helliphellip 가끔 법관의 일을 조용한 방에서 소송서
류를 꼼꼼하게 읽어 파악한 사실에다가 법을 논리적으로 적용하는 단순히 지적(知的)인 작업이라는 시각에서만 말씀하시는 분을 만나면 그 분에게 재판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법대에 앉아 있는 법관이 어떻게 보이는지 물어보고 싶어집니다rdquo 양창수 ldquo바람직한 법관상 - 기예와 지혜 사이rdquo lt근대사법 및 한성재판소 설립 120주년 기념
1895sim2015 소통컨퍼런스 역사에 비춰 본 바람직한 법관상gt 자료집(서울중앙지방법원 2015 5 11) 15면 ldquo계획적이고 진지한 진리 탐구 활동rdquo이라는 표현은 라드브루흐에서
나온다 구스타브 라드브루흐 법철학 최종고 옮김 삼영사(2011) 238면 52) 드워킨 앞의 책 208면 53) 론 풀러 앞의 책 211면 풀러의 문장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ldquo하지만 이 경우도
위로부터의 지시 또한 목적의식에서 비롯되는 지적 활동을 완전히 생략할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rdquo54) 물론 진리 요청과 관련하여 개별 법관의 관점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며 민주국가에서
포기될 수 없는 진리 요청은 법학을 포함한 법체계 전체로 하여금 진리 요청에 어떻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5
이때 정당한 근거 제시가 이루어진 결정과 관련하여 그것이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
이라는 주장을 펼 수 있는가 앞에서 검토한 대로 켈젠의 순수법이론은 그런 주장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이에 비해 드워킨은 법적 판단에 있어서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이 원칙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ldquo정답테제rdquo로 불리는 이 주장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학자들이 지적한 대로 존재사실에 대한 주장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하나의 ldquo규제이념rdquo으로 받아들이는 게 맞는 것 같다 즉 드워킨의 정답테제
는 ldquo유일하게 정당한 결정rdquo이 존재한다는 데 대한 이론적 탐구라기보다는 실무에
서의 법관의 주관적 태도에 부합하는 이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법관은 자신의 판결활동과 관련하여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모든 사건
에서 오직 하나의 결정만이 정당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 정답에 가까이 가기 위
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55)
드워킨의 말대로 가치판단이 참일 때는 그냥 참일 수가 없으며 그것이 참인
이유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즉 충분한 논거가 존재할 때 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라면 이러한 논거지움의 과정은 자명한 공리적
토대나 그런 토대 위에서 확립된 규칙이나 원리적 서열에 따라 명확하게 밝힐 수
없다 이런 불확실한 가운데도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논거지움은 포기될 수
없다 이 끝없는 정당화 부담 때문에 켈젠은 규범의 효력 근거에 관한 논의를 가
치에 관한 논의와 절연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물론 성공하지
못했다56)
가치판단을 해야 하는 부분이 법문화에서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요소로 작용할지
아니면 그 반대로 작용할지는 판단자로서의 법관의 역량과 연관하여 논해야 할 것
이다 필자는 가치판단적 요소가 법문화에서 당연히 긍정적 요소로 작용해야 하며
게 부응하는지 묻게 한다 따라서 사법부 외부에서 행하는 사법비판의 길이 열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대해서는 노이만 앞의 강연문 참조55) 노이만 앞의 강연문56) 규범의 효력을 불명확하고 상대적인 가치가 아닌 규범에 근거짓기 위해 켈젠이 고안
한 근본규범은 사유상으로만 전제된 규범일 뿐이었다 켈젠은 가치판단을 ldquo현실의 행
위가 객관적으로 효력 있는 규범에 맞게 존재해야 하는 대로 존재한다는 판단rdquo이라고
정의함으로써 가치판단이라는 용어 자체를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Reine Rechtslehre 2 Aufl (1960) 16면 이하 또한 켈젠은 규범이 인간의 의지에 의해
제정되는 한 그 규범에 의해 형성된 가치는 어차피 자의적일 뿐이라고 주장한다(18면) 규범과 가치의 관계에 대한 켈젠의 주장에 대해서는 오세혁 ldquo켈젠의 법이론에 있어서
규범과 가치 - 규범과 가치의 상관관계를 중심으로rdquo 법철학연구 제18권 제3호(2015) 97면 이하 참조
8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또한 그렇게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57) 그런 방향에서 이제 해석의 문제를 법
관의 자기이해 문제와 연관시켜 보기로 한다
Ⅷ 해석과 법관의 자기이해
법관은 추상적인 일반규칙을 가지고 공중의 이목을 끄는 개별적인 사건을 처리
하는 사람이다 법관의 의식활동에 의해 일반규칙과 일회적인 사건 사이의 심연이
메워진다 하지만 일반성과 개별성을 결합하는 이 의식과정에 동반하는 고유한 법
학적 방법에 대해서는 앞에서 지적한 대로 확실한 합의는 없다 ldquo리걸 마인드rdquo라
는 말이 풍기는 신비스러운 분위기에는 사법적 결정이 본질적으로 투명한 것이 되기
어렵다는 암시가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다 논리적인 형태만 부여하기로 한다면
한 사건에서 서로 상반된 결론에 이른 두 개의 판결문을 작성하는 것도 불가능
하지 않다58) 방법이 논리에 기초하는 것이라면 이때 논리는 형식논리를 넘어 엥기
쉬가 표현한 대로 ldquo실질에 부합하는rdquo 논리여야 할 것이다 참된 올바른 받아들
일 수 있는 결정에 이르는 실질논리 이 실질에 도달하기까지는 결코 논리적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지적 감행과 어떤 매개가 작용한다
일반규칙을 개별사례에 적용할 때 요구되는 판단자의 능력과 관련하여 가다머
(Hans-Georg Gadamer)는 이런 견해를 밝힌 적이 있다 판단자는 자신이 이미 가
57) 이와는 달리 가치의 ldquo통약불가능성rdquo 때문에 사법은 좋음이나 옳음의 이슈에 대해 실
질적 입장을 취하는 일에 대해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가치의 통약
불가능성에 대해서는 Cass R Sunstein ldquoImcommensurability and Valuation in Lawrdquo Michigan Law Review Vol 92 No 4 (1994) 779면 이하 조홍식 교수는 ldquo가치의 통약
불가능성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이 권리인가의 문제보다 무엇이 공익인가의 문제에서
더 크다rdquo고 지적하면서 기본적으로 가치판단과 관련한 사법통치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사법통치의 정당성과 한계 제2판 박영사(2010) 240면 가치의 통약불가능성에 대한 주장은 가치판단과 관련한 해석기준의 서열화는 불가능
하다는 주장과 같은 노선에 속한다 여기서 통약불가능성 문제를 자세히 다룰 수는
없다 다만 가치의 통약불가능성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통약불가능이 비교불가능을 의미
하지는 않는다는 점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체적인 맥락이 주어지는 경우 무엇이 옳은
지 혹은 그른지에 대해 심사숙고하며 이에 따라 선택하고 그 선택 결과를 받아들인
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정도만 지적하기로 한다 58) 실제로 판사가 판결문을 두 개 써왔다고 주장한 사건에 대한 보도가 있었다 ldquo판결문을
두 개 써왔다rdquo 조선일보 2013 11 21자 기사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7
지고 있어서 적용하기만 하면 된다는 그런 의미의 규범적 실천적 ldquo지식을 소유한
사람rdquo이라기보다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 ldquo지식을 탄생시키는 상황에 직면하는
사람rdquo이라는 것이다59) 일반범주를 개별사례에 적용할 때 요구되는 이 판단력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래서 칸트(Kant)도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ldquo지성은 규칙들
을 통해 배우고 보강할 수 있는 것이지만 판단력은 특수한 재능으로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전혀 아니고 단지 숙련될 수 있을 뿐이다rdquo60)
우리는 올바른 규칙이나 원리를 알고 있지만 막상 이것을 어떤 상황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예컨대 비례성원칙이나 과잉금지원칙에 대한 지식
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은 적정해야 하고 그 수단은 목적달
성을 위해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원칙을 특수한
상황에 lsquo적용rsquo한다고 할 때에 이 원칙이 그 어떤 판단도 배제할 정도로 자족적인
지침 구실을 한다고 느끼기는 어렵다 특정 상황에서 그 수단이 과연 어느 정도일
때가 목적달성에 적정한지는 판단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실천이성의 역
할이다
단의 자리는 이론 경험 양심이 혼재된 실천의 영역이다 판단을 통한 결정이
라는 그 lsquo종국성rsquo으로 인한 실천적 성격은 법학이 다른 어떤 학문분야와도 공유
하지 않는 법학 고유의 특징이다 그래서 법학은 lsquolegal sciencersquo로 불리기보다는
실천지- prudentia-를 함의하는 lsquojurisprudencersquo로 더 자주 불리어 왔을 것이다
해석의 차원에서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도 추상적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
으로는 행위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성과 개별성을 결합하는 해석적
지식은 추상적 이론적 지식들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일반규칙이나 원리
에 근거한 이론적 패턴의 지식과 특정한 상황 내지 맥락을 고려하는 실천적 패턴
의 지식의 이중주를 이룬다 법관이 지니는 통찰력의 특성은 이론과 태도가 함께
간다는 데 있다 그래서 사법적 판단에서는 규칙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 못지않게
사람 즉 법관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사법적 통찰력의 특성은
뭐니뭐니해도 개별 사례를 다룬다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개별적인 것들은 개별적
인 방식으로만 체험되고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들은 무엇
보다도 lsquo지각rsquo과 관계된다61) 즉 그것들은 일반적 체계적 지식의 대상이라기보다
59) Hans-Georg Gadamer Wahrheit und Methode Grundzuumlge einer philosophischen Hermeneutik 3 Aufl J C B MOHR (1972) 300면
60)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 1 백종현 옮김 아카넷(2009) 374면
8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는 우선 지각의 대상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도 사법적 통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쪽은 규칙보다는 오히려 사람 즉 법관 쪽인 것이다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사건에서 법적으로 중요한 사실이 무엇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규칙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어떤 규칙이 중요한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실이 중요한지 알
아야 한다 이 인식과정에서 법관은 불확실한 가운데서 무수한 선택을 감행한다
어떤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 배척하고 어떤 사실은 인정하거나 무게를 부
여하고 신청된 증거조사의 어떤 것은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거부하고helliphellip 사실
에 대한 이 취사선택-자유심증주의-의 결과로 새로운 것이 태어난다 그리고
이것에 의해 법원을 찾아온 사람들의 운명이 갈리는 것이다
법관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필자 생각에
독일의 법철학자 아르투어 카우프만(Arthur Kaufmann)의 해석학적 방법론은 법
관의 자기이해 문제를 해석학적 지평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법관의 해석작업의
본질을 잘 설명해주는 것 같다 가다머 계통의 철학적 해석학(philosophische
Hermeneutik)의 입장을 받아들이면서62) 카우프만은 법해석행위를 통해 포괄적인
의미에서 법관 자신의 인격 중의 어떤 것이 판결에 혼입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
61)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4면 그리고 1심에서
유죄였다가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강력범죄 540건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판단자
의 감지능력 차이가 법판단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힌 김상준 무죄
결과 법 의 사실인정 경인문화사(2013) 62) 텍스트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이해에 관한 연구분야인 해석학(hermeneutics Hermeneutik)
의 어원은 신들의 전령(傳令)인 Hermes라는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설명된다 이때 신의
의도를 인간에게 전하는 과정에서 언어의 제약성 시공간적 간격 전령의 역할 등과 관
련하여 해석의 문제가 생긴다고 본다 ldquoHermeneuticsrdquo Dictionary of Biblical Interpretation Nashville (1999) 497면 독일어의 Auslegung이 해석주체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대상
으로서의 텍스트에 대한 해석을 의미한다면(객관주의) 철학적 해석학에서의 해석
(Interpretation)은 해석주체의 주관성 내지 역사성이 대상에 투사된다는 의미가 강하다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에 따르면 역사적 존재인 인간에게 있어 모든 해석과 이해는 과
거와 현재가 lsquo작용사적으로(wirkungsgeschichtlich)rsquo 중재되는 사건으로서 lsquo선이해rsquo 내지
lsquo선판단rsquo 없이는 불가능하다 가다머는 선입견으로 폄하된 선이해를 재평가하고 이를
통해 근대 이래 lsquo방법rsquo을 통한 진리발견이 주체에 의한 객체의 대상화 내지 도구화를 가져
왔다고 비판하면서 인간경험에 있어서 진리에 이르는 길은 사물의 존재가 스스로 드러
나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해석과 이해는 전승된 존재방식으로서
의 텍스트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며 이는 텍스트 자체가 지닌 역사적 지평과 해석
자의 지평이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만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해석학적 순환 이해의 전제로서의 선이해 작용사 등에 대해서는 Gadamer 앞의 책 II Grundzuumlge einer Theorie der Hermeneutischen Erfahrung 참조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9
로 법관의 결정이 올바른가의 물음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가의 물음과 직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63)
우선 카우프만은 통상적으로 회자되는 독립적인 법관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즉 법 앞에 선 법관이 일체의 정치적 사회적 개인적 영향이나 선입견들로부터 차
단된 채 순수한 객관적 인식에 따라 그 이전에는 자신이 알 수 없었던 사실관계
를 판단하고 그런 다음에 법적 판단을 한다는 식으로 이해하기를 거부한다64)
그런 법관상은 법령집은 일체 해석의 필요가 없이 거의 모든 가능한 법률문제에
대한 대답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상정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법관은 의지가
없는 존재이며 사법권력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여기는 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법에 대한 인식은 단순히 사례를 법률에 포섭시킨다는 의미의 수
동적 행위가 아니고 해석자가 해석대상에 관여하면서 함께 lsquo형성rsquo하는 것이라고
본다 카우프만은 법관의 법형성력에 대한 자신의 견해가 주관주의의 의미로 받아
들여지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는데 왜냐하면 해석자는 텍스트를 지탱하는 모든
전통과 함께 이해의 지평으로 들어간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은 서류의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ldquo아 이런 사건이구나rdquo라고 감을 잡게 되
는데 카우프만에 따르면 이는 법관 자신이 사건 경과를 관찰해서 인지했다거나
언론 등을 통해 사건에 대한 상세한 지식을 얻었다는 뜻이 아니라 유사한 사건들
을 알며 그래서 ldquo선이해(Vorurteil Vorverstaumlndnis)rdquo65)를 가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
해의 전제로서 이런 선이해가 없다면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것이 무엇에 관한 사
건인지 알 수 없고 다른 사례와 비교할 수도 없기 때문에 올바른 판단에 이른다
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66) 이 선이해에 의해 해석은 언제나 해석주체의 자기
이해 즉 자신이 lsquo잠정적rsquo 결과로서 이미 예상했던 것을 논증적으로 근거짓는 활동
이라는 의미에서 ldquo해석학적 순환rdquo 내지 ldquo해석학적 나선구조rdquo 하에 이루어진다
63)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Festschrift fuumlr Karl Peters Mohr Siebeck (1974) 144면 법관의 독립과 양심 주제와 관련한 또 다른
글로는 Kaufmann ldquoGesetz und Rechtrdquo Existenz und Ordnung Festschrift fuumlr Erik Wolf (1962) 357면 이하
64)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4면 65) 해석학적 의미에서의 lsquo선이해rsquo는 일상 언어 관용에서는 lsquo선입견rsquo이나 lsquo편견rsquo 같은 부정
적 함의를 더 많이 지니기 때문에 카우프만은 lsquoVorurteilrsquo 대신에 Vorverstaumlndnis라는 용
어를 쓰기를 권장한다(앞의 글 148면) 카우프만 외에도 이 용어의 선택은 Josef Esser Vorverstaumlndnis und Methodenwahl in der Rechtsfindung 2 Aufl (Frankfurt aM 1972)
66)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7면
90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텍스트를 이해하려는 사람은 말하자면 언제나 초벌 그림을 그리며 특정 의미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텍스트를 읽기 때문에 ldquo텍스트에서 첫 번째 의미가 지시되자
마자 전체의 의미를 lsquo예비투사한다(vorauswirft)rsquordquo67) 그리고 선이해와 관련된 이 예
비투사는-해석학적 lsquo순환rsquo에 의해-원칙적으로 끝없이 검열과정을 거친다는 것
이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도 실제 판단과정에서는 분리
되지 않는다68)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은 시간적으로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단절 관계가 아니라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정제하고 상응하는
관계에 놓인다 즉 사실에 대한 인식 없이 규범적 인식은 불가능하며 또한 규범적
관점 없이 사실만을 통한 사실 확정도 불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법률도 법관의
해석을 만나기 전에는 ldquo잠재적인 가능태로서 주어진 법률rdquo일 뿐 해석학적 순환을
통한 정제 혹은 상응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ldquo진정한 실정법rdquo이 생성된다69) 이렇
게 특정사건을 통해 구체화된 규범(구성요건)과 이 규범을 통해 정해진 사실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법관에게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들과 함께 제3의 요소로서 법관
자신의 선이해 내지 이해 포괄적으로 말하면 그의 인격적 존재가 판단에 혼입
된다
lsquo선이해rsquo는 판단자가 자신의 선이해를 의식하지 못할 때 부정적 요소를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ldquo자신의 판단은 오로지 lsquo있는 그대로다rsquo라고 말하는 즉 lsquo오로지 법
률에만 구속된다rsquo라고 말하는 법관이야말로 실은 종속된 법관이다 왜냐하면 그는
성찰되지 않은 자신의 선이해와 거리를 둘 수 없기 때문이다rdquo70) 즉 법관은 자신
67)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68) 실제 판단과정에서 사실인정과 법률적용이 따로 떨어질 수 없다는 점은 굳이 카우프
만의 이론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실무상으로는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ldquo법률
의 적용과 사실의 인정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법률문제와 결부되어 인정된다 사실의 인정이 진행됨에 따라서 재판관의 머리
속에서는 어떠한 법규를 적용할 것인가 그 법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는 전망이
점차로 서게 되며 당사자 측도 경우에 따라서는 민사인 경우 청구의 취지를 변경할
것인가를 고려하게 되고 형사인 경우 공소사실을 변경하는 경우도 생긴다 요컨대 사실
문제와 법률문제는 실제과정에서 불가분으로 결부되어 있다 helliphellip 양쪽이 불가분으로
재판관의 직관 혹은 재판관의 전인격적인 작용에 의하여 사실의 인정과 법의 적용이
행하여지고 판결 삼단논법은 실제의 심판 과정에서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rdquo(사법
연수원 법조윤리론 35면) 69) ldquo법관의 해석 작업 이전에는 어느 의미에서 진정 법도 진정한 사실도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원자재들(Rohmaterialien)로만 이것들이 존재할 뿐이다rdquo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1
의 선이해를 의식하고 자신을 이데올로기 혐의 앞에 세울 줄 알 때 올바른 판결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ldquo법관이 자신의 선이해와 종속을 의식할수록 그래서 간주
관적 합의에 노력할수록 그는 더 객관적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rdquo71) 그러므로
법관의 주관주의의 위험은 카우프만식으로 말하면 가치판단 같은 성찰적 고려와
관련된 주관적 요소를 방법상의 근거 제시의 맥락에 끌어들이는 법관의 경우보다는
오히려 모든 것이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판결의 주관적
요소를 은폐하는 법관에게서 나타나는 위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학적 순환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법관은 ldquo법률의 입rdquo이 아니라 ldquo인격
으로서 판결을 떠받친다rdquo72) 판결은 법률과 법관의 인격의 혼성물이다 그러므로
법률은 판결을 위한 필요조건이기는 하나 충분조건은 아니라고도 말할 수 있다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순환이론은 법관의 독립과 양심의 문제 차원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법결정의 올바름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
는 정도에 달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자신을 올바르
게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자신의 판단력 경험 능력 인간에 대한 태도 감
수성 명예욕 등등
카우프만의 법해석학적 순환이론이 법관의 독립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이라
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독립은 법관 스스로 관철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론적으로 카우프만의 법해석이론의 의의는 법관이 자신의 선입견을
의식하는 것이야말로 법관의 독립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설득력있게 지적
해주며 그런 방향에서 법관의 법해석 작업을 재평가했다는 데 있다고 말할 수 있
겠다
70)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71) Arthur Kaufmann ldquoDer BGH und die Sitzblockaderdquo NJW (1988) 2581면 이하72) 이 표현은 Karl Peters의 Strafprozess - Ein Lehrbuch (1966) 99면에 나오며 여기서는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9면에서 재
인용했다 이덕연 교수도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에 입각하여 ldquo법관의 법해석작
업은 단순한 lsquo인식작업rsquo이나 lsquo언어분석작업rsquo이 아니라 ldquo구체적인 반성과 자기극복의
노력 속에서 온 인격을 걸고 진행하는 lsquo이해와 실천의 수행작업rsquordquo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앞의 글 352면)
9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Ⅸ 법관은 lsquo하는 사람rsquo인가 lsquo보는 사람rsquo인가
법관의 판단작업을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의 관점에서 주목했던 또 다른
철학자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다 그녀는 ldquo아이히만 재판rdquo을 계기로 판단의
특수한 경우로서의 판단력 문제를 연구했다73) 아렌트는 하드케이스와 연관시켜
법관의 판단력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74) 법관은 우선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을 반추하면서 판단에 임하는데 이때 판단자로서 그는 한 면으
로는 규칙에 따라 판단하라는 lsquo일반적 정의rsquo의 요구에 그리고 동시에 다른 한 면
으로는 정황에 맞게 판단하라는 lsquo개별적 정의rsquo의 요구에 처한다 이러한 상황은
아렌트에 따르면 하드케이스에서 특히 발생한다 이 이중적이고 모순적 요구 상황
을 아렌트는 법관의 판단에 적용되는 특수한 해석학 및 그 조건을 설명하는 출발
점으로 삼는다75) 하드케이스가 아닌 통상적인 사건에서는 이른바 포섭 여부를 판
단하는 것으로도 족하다 일반규칙에의 포섭 여부가 중심이 되는 이 단계에서의
판단력- lsquo규정하는 판단력(bestimmende Urteilskraft)rsquo-은 사실관계에서의 원인
이나 형식적 정의를 따지므로 일방적이고 간주관적 전제 없이도 가능하다 그래서
흔히 법관은 여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법을 해석해야 한다고 말할 때 이는
법적용을 이러한 지배적인 포섭모델에 입각하여 이해한 결과라 할 것이다 그런데
규칙으로부터 오는 어떤 어려움들 때문에 규정하는 판단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즉 포섭이 어렵거나 법흠결 시 또는 가치형량이 요구되는 하드케
이스에서는 법관은 어쩔 수 없이 앞에서 말한 모순문제를 다루어야만 한다 이때
아렌트는 법관이 사유의 확장을 통해 방법상으로 lsquo규정적 판단력rsquo을 스스로 교정
할 수 있는 lsquo성찰적 판단력rsquo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고 이 판단유형의 전환과정을
73) 법적 판단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 삼은 저술은 Hannah Arendt Eichmann in Jerusalem Ein Bericht von der Banalitaumlt des Boumlsen Erw Aufl (Muumlnchen 2001) 그리고 Hannah Arendt Das Urteilen Texte zu Kants Politischer Philosophie Hrsg v R Beiner Uumlbers v U Ludz (Muumlnchen 1998)
74) 아렌트가 염두에 둔 하드케이스는 라드브루흐가 이른바 ldquo법률적 불법rdquo 상태로 규정한
나치의 불법국가 상황으로서 이렇게 극히 예외적인 케이스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하드
케이스에 적용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별적 정의 요구에 부응함
으로써 예컨대 소급효를 금지하는 일반법률에 위배되는 상황과 유사한 갈등상황은 반
드시 극단적 상황에서만 생긴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75)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2 Bde Hrsg v U Ludz amp I Nordmann
따라서 그 척도는 전달가능성이며 거기에 딱 맞는 것은 공통감각(상식)이다rdquo77) 오
늘날 공통감각은 아렌트도 지적했듯이 더 이상 그것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얻고자 노력해야 하는 그 무엇이 되어버린 듯하다 그러나 공통감
각이 무너진 시대를 겪었던 아렌트는 사유의 전환 내지 확대를 위한 진정한 발판
을 다시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에서 구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78)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실천철학의 전통에서는 세계와의 관계 그리고 자기와의 관
계를 공통감각을 척도로 설정해가는 판단자가 lsquo하는 사람rsquo인지 아니면 lsquo보는 사람rsquo
인지 즉 lsquo행위자rsquo인지 아니면 lsquo관찰자rsquo인지를 둘러싸고 의견이 대립되어 왔다 lsquo하
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자가 lsquo정치가rsquo 쪽에 더 가깝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
자는 lsquo철학자rsquo 쪽에 더 가깝다 lsquo하는 사람rsquo은 주로 사회의 일반적 상식 건전한 인
간이해 세론(doxa)을 판단의 척도로 삼는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적 경험은 전체주
의 하에서는 건전한 인간이해도 집단화된 대중감정에 따른 오도된 인간이해 앞에
무너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판단에서 사실로서의 상식이나 합의 또는
법해석공동체 내부의 지배적 제도적 관점이라는 판단 척도만으로는 일반규칙으로
부터 오는 모순을 다루기 어렵다 여기서 판단자는 ldquo확대된 사유방식rdquo을 추구해야
하는데 아렌트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을 lsquo보는 사람rsquo의 판단과 결합시킴으로써 법
관을 위한 사유의 확대를 시도한다79) lsquo하는 사람rsquo이 사실로서의 일반적 상식이나
인간이해 차원에 비추어 판단한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ldquo이
상적 규범적 상식rdquo80)을 추구하고자 한다 판단을 거쳐 법적 효과를 결정하는 법관
76)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을 해석학적 순환이론을 적용하여 분석하면서 칸트의 판단력 비
판에 의거하여 아렌트가 판단력의 특수한 경우로서 법관의 ldquo성찰적 판단력rdquo이라는 새
로운 판단유형을 제시했다고 지적한 연구서로는 Stefanie Rosenmuumlller Der Ort des Rechts Gemeinsinn und richterliches Urteilen nach Hannah Arendt Nomos (2013) 참조
77) Hannah Arendt Das Urteilen 92-93면78) 아렌트가 판단의 차원을 심화시키는 발판으로 삼는 상식은 sensus communis로서
communis opinio와는 다르다는 데 대해서는 Marieke Borren ldquolsquoA Sense of the Worldrsquo Hannah Arendtrsquos Hermeneutic Phenomenology of Common Senserdquo International Journal of Philosophical Studies Vol 21 No 2 (2013) 225-255
79) Hannah Arendt Das Urteilen 76면80) Rosenmuumlller 앞의 책 234면 이하 여기서 아렌트는 상식개념을 이중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에서는 경험적 개념으로 보다 성찰적 판단
단계에서는 규범적 개념으로 사용한다
9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은 관찰자로서 판단하면서 동시에 행위자로서 판단에서 법적 결과를 결정하는
사람이다 관찰자인 동시에 행위자라는 이중적인 역할을 하면서 법관은 자신의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 반추한다81) 이 반추과정에서 법관은 한편으로는 포섭
하는 판단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고려해야 할 관점들을 끌어들이면서
자신의 직책을 마지막까지 수행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통제하면서 자신의 앞서의
(포섭) 판단을 정정해나간다 그래서 법관 자신이 lsquo보는 사람rsquo과 lsquo하는 사람rsquo의 만
남의 장소가 되는 것과도 같다 ldquo이 보는 사람은 모든 하는 사람 안에 자리 잡고
있다helliphellip이 비판적 판단능력이 없이는 행위자 혹은 해결자는 보는 사람으로부터
풀려나 종내는 지각되지조차 못하게 될 것이다rdquo82)
사람들은 자신 일에 있어서는 비당파적일 수는 없다 따라서 ldquo자신의 일에 대한
판단에서는 내면의 심판자 혹은 내면의 법정을 가질 수 없다rdquo83) 그러나 다른 사
람의 일을 반추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필히 비당파적이어야 하며 또 비당파적이 될
수 있다 이때 그는 비로소 내면의 심판자를 가지게 된다 즉 양심의 문제에 처하
게 되는 것이다 판단에 있어서 양심이라는 것 즉 양심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남
의 일에서 ldquo증인rdquo 혹은 ldquo비판적 친구rdquo로서 관찰하고 행위하는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이다84)
아렌트의 성찰적 판단모델은 나치 불법국가 경험의 산물이다 통상의 규칙이 파
괴된 상황 통상의 범죄유형에 포섭되지 않는 극히 예외적인 범죄적 상황에서 법
원은 기존의 판단척도를 해석학적 출발로 삼아서는 안 되고 이때에는 질적으로
동의가능한 합의형식을 찾기 위해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으로 돌아가
진정으로 사유 즉 철학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렌트가 판단을 일반화해주는
거점이자 해석학적 출발점으로 삼은 공통감각(상식) 개념은 칸트철학에서 ldquo비사교
적 사교성rdquo 개념의 위상과 비슷하다85) 이 지상에서 인간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다른 것을 원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모여 살아야만 하는 존재다 이 비사회성 요
청과 사회성 요청의 동시성 때문에 인간에게는 제도적인 안착이 더없이 중요하며
법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실존과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만든다 판단의 기
81) Leora Y Bilsky When Actor and Spectator Meet in the Courtroom Hannah Arendt and Eichmann in Jerusalem G N Arad Hg (Bloomington 1996) 137면
82) Hannah Arendt 앞의 책 85면83) Hannah Arendt 앞의 책 76면 84)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657면85) Rosenmuumlller 앞의 책 1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5
초를 보편적 인간경험에 둔다는 점에서 아렌트가 말하는 판단력은 드워킨의 헤라
클레스와 같은 초인적 천재성을 발휘하는 능력과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86) 아
렌트가 상정하는 이상적인 법관은 철학적이지만 철학자는 아니고 정치적이지만 정
치가는 아닌 사람이다
아렌트는 헌법국가의 권위도 상식개념에 기반을 두고 설명한다 그리고 민주적
정당성의 관점에서 입법의 우위를 인정하는 까닭에 성찰적 판단에 입각한 법관의
검증에는 한계가 있다는 태도를 견지한다87)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렌트가 제시한
법관의 성찰적 판단 유형에 대해서는 다양한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우선 이것이
예외 상황에서 적용되는 판단모델로 상정된 것이며 무엇보다도 ldquo규범적 상식rdquo에
대한 단일한 이해기반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법관 개인의 주관적 정치적 신념
이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길을 피할 수 없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성찰적
판단력은 결국 레토릭에 불과한 것인가 아렌트는 그러나 무엇이 ldquo특정 상황에 맞
는 공통감각(situierte Gemeinsinn)rdquo인지에 대한 공동의 인식은 가능하며 또 법관의
lsquo하는rsquo 판단에 들어있는 정치적 함의를 성찰적 판단력으로 검증하는 것도 가능하
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아렌트가 마지막 검증심급으로 원용하는 것이 바로 판
단에서의 양심의 심급이다 그것이 과연 동의할 수 있는 합의형태로서 충분한지를
스스로 검증하는 이 심급에서 판단자는 명령조로 자기에게 전해지는 소리를 듣게
된다 ldquo멈춰 나는 그것은 할 수 없어rdquo88) 판단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 멈추는 것
이 가능한 이 성찰적 심급에서는 칸트와 달리 할 수 없는 이유로써 결과도 고려
된다 lsquo보는 사람rsquo이 자기 안에서 지켜보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상황은 토마스 아퀴
나스의 양심론에 비추어 다음과 같이 묘사될 수도 있겠다 지적 본성을 가진 인간
존재가 보편법칙에 관한 지식을 개별 행위에 적용하기 위해 판단하고 선택할 때
행위자는 갈등 상황- ldquo그렇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rdquo는
상황-에 처하여 멈칫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데 이때 그는 단지 갈등하고
선택하는 역할만 하지 않고 갈등하고 선택하는 이 과정을 ldquo관찰하고 목격하는 증인rdquo
의 역할도 한다는 것89)
86) 드워킨에 의하면 해석적 탐구는 ldquo어떠한 증명도 허용치 않고 어떠한 수렴도 약속치
않는 탐구rdquo이다(드워킨 정의론 203면)87) Rosenmuumlller 앞의 책 30면88) Hannah Arendt Uumlber das Boumlse Eine Vorlesung zu Fragen der Ethik Hrsg v J Kohn
(Muumlnchen 2003) 52면89) 지적 행위자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자신의 내면의 갈등과 선택과정을 바라보는
9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Ⅹ 방법에서 덕목으로
헌법 제103조는 한 면으로는 헌법과 법률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 면으로 해석자에게 여하한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lsquo제약
의 차원rsquo과 lsquo자유의 차원rsquo을 동시에 담고 있다 법관은 자유로울 때에라도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며 법에 구속될 때에라도 전적으로 구속되지는 않는다는 뜻이
기도 하다 이 lsquo자유와 구속의 변증법rsquo에 비추어 지금까지 논한 주제에 대해 몇 가
지 입장을 정리해 보자 첫째 법관에게 있어서 독립은 확정된 원칙이나 그것자체
로서 달성해야 할 최종목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법관의 독립은 완성형이 아니라
끊임없는 진행형의 과제로서 그 직무수행에 대한 신뢰와 병행하여 점진적으로 이
루어지는 것이다 둘째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에 있어서 구속은 법률에 무조건 복종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판결에 대한 윤리 (내 ) 확신과 함께 법률에 복종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법관이 실정법률에 반하는 결정을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법
관은 객관성을 빌미로 법률 뒤에 숨는 익명적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
미하는 것이다 셋째 독립적인 법관의 양심은 lsquo법과 상충한다rsquo기보다는 lsquo법을 실
한다rsquo는 의미를 지닌다 넷째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서 반추하면서 lsquo하는
사람rsquo인 동시에 lsquo보는 사람rsquo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성찰 인 인물상으
로서만 설정될 수 있다
해석적 탐구는 우리의 이해를 넓히기 위해서 필요하지만 이해에서의 우리의 피
할 수 없는 한계를 깨닫기 위해서도 필요했는지 모른다 엥기쉬는 법해석방법론에
대한 저술의 마지막 부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ldquo방법론에 천착하다 보면
애초의 문제였던 법률로부터 훨씬 더 먼 곳으로 이끌려 간다rdquo 지금까지 필자는
법관의 법해석과 관련하여 방법론의 의의와 한계를 논하고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과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에 비추어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이 법해석론
의 불가결한 부분으로 들어가게 되는 이유도 밝혔다 그리고 해석적 차원에서의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는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행위를 목표로 하는
탐구라는 것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필자는 이 모든 논의들을 매개로 방법론이 우리를 더 멀리 덕
목론으로 데려가는 과정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드워킨의
상황에 대한 이 묘사 부분은 이경재 ldquo토마스 아퀴나스의 양심 개념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375면을 참조했다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7
헤라클레스를 잠시 불러올 필요가 있다 해석문제를 누구보다도 더 진지하게 다룬
드워킨은 마지막에 헤라클레스를 내세운다 주어진 사건에서 무엇이 법인지에
대해 도덕적 의식을 가지고 법실무 전체를 원리정합적으로 정당화하라는 요청에
부응하여 자신의 신념에 기초한 결정을 내리는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의 구성적
해석에서 법관의 양심이 기능하는 국면은 어디일까 송민경 판사는 드워킨의 구성
적 해석론에 입각하여 양심을 구체적 법논증과정의 일부로 포함시키면서 이때 양
심이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라는 지침으로 기능한다고 설명한다90)
그런데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는 지침으로 기능하는 것을 양심이라
고 보게 되면 양심의 문제는 논증적 합리성의 차원 즉 논증의 성공으로 종결짓게
된다 그러나 법적 결정의 정당성 문제는 법관의 입장에서는 논증의 성공 문제로
다루어지지만 법관의 성공적인 논증에 따른 판결의 결과로부터 영향을 받는 시민
의 입장에서 보면 성공적인 논증만으로는 해석이 정당화된다고 볼 수는 없다
성공적인 논증은 법적 결정의 정당화에 필수적이기는 하나 충분한 조건은 되지 못
한다 해석이 궁극적으로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사법적 도덕성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 사법적 도덕성은 헤라클레스가 지침으로 삼는 원리적 도덕성의 실현과는 다른
것이다 만약 패소한 시민이 다른 헤라클레스에게 갔더라면 즉 다른 법원리에 기
초한 신념을 토대로 다른 결정을 내린 다른 법관에게 갔다면 그는 승리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왜 헤라클레스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하
는지에 대한 답이 필요한 것이다91) 헤라클레스가 실무에 대한 최상의 정당화를
도모하는 법적 이상주의자라면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법원 문을 두드린 시민도
어느 의미에서 ldquo법이상주의자rdquo92)이다
법해석 작업의 주관의존성이라는 불가피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재판이라는 특수
한 공적 활동이 법관이라는 특수공직자에 의해 운영되고 유지된다는 것은 시민들
-소송에서 패한 시민들을 포함하여-편에서 보면 법을 해석하는 법관에 대한
신뢰가 전제된다는 것이다 법관의 독립적 활동은 법관의 특권 행사가 아니라 사
90) 송민경 앞의 글 38면 20면91) 사법적 덕목과 연관하여 이 부분을 다룬 글로는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5면 이하
92) 법원 문을 두드리는 시민에 대한 이 표현은 심헌섭 ldquo법조윤리의 좌표 거시적 관점에서 본 전문윤리로서의 법조윤리rdquo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편 法律家의 倫理와 責任 박영사
(2003)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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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정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응당한 몫이 돌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존중하는 바탕에는 일종의 상호성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 그 또한
시민이기도 한 법관이 동료시민들에 대해 가지는 배려와 존중의 원칙이 그것이다
여기서 사법적 덕목에 대해 자세히 논할 수는 없다93) 예의 성실 신중 절제
용기 공정 겸손 의사소통 능력 형평 시민에 대한 배려와 존중 등등 이것들은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바탕을 이루는 양심의 덕목들일
것이다 양심이라는 단어가 그렇듯이 덕목이라는 단어도 오늘날 진부해진 표현
이며 거의 사라져가는 단어다 윤리적 태도로서의 덕목은 관찰하기도 배우기도
어렵다 그러나 올바른 판단과 결정이 법관이라는 개인을 거치지 않고 법령집
자체로부터 반사적으로 튀어나오지 않는 한 이 덕목들을 내면화하고 지향하려는
태도 없이는 lsquo종국적인rsquo 판단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써 필자는 헌법 제103조를 통해 법해석에서의 방법론의 문제가 덕목론이라
는 다음 과제로 이어진다는 점을 밝혔다고 생각한다
투고일 2016 4 6 심사완료일 2016 5 18 게재확정일 2016 5 20
93) 법관의 개별적인 덕목들과 이것들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는 박은정 강태경 김현섭 바람
직한 법관상의 정립과 실천 방안에 관한 연구 법원행정처(2015) 제5장 참조할 것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9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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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섭 ldquo법관의 양심과 독립에 대한 헌법 제103조의 해석rdquo 한국법철학회 월례독회
발표문(2015 4 25)
김황식 연필로 쓴 페이스북 之山通信 나남(2013)
박은정 왜 법의 지배인가 돌베개(2010)
박은정 강태경 김현섭 바람직한 법관상의 정립과 실천 방안에 관한 연구 법원행
정처(2015)
사법연수원 법조윤리론(2014)
성낙인 헌법학 법문사(2014)
송민경 ldquo법관의 양심에 관한 연구rdquo 사법논집 제58집(2014)
심헌섭 ldquo법조윤리의 좌표 거시적 관점에서 본 전문윤리로서의 법조윤리rdquo 서울대
학교 법과대학 편 法律家의 倫理와 責任 박영사(2003)
분석과 비 의 법철학 법문사(2001)
양창수 ldquo바람직한 법관상-기예와 지혜 사이rdquo lt근대사법 및 한성재판소 설립
이성의 활동rdquo ldquo인격의 자기인식rdquo ldquo본래적인 자기 자신으로 불러 세우는 염려의
소리rdquo ldquo너와 내가 함께 잘못을 감시하고 경계하는 공동의 눈초리rdquo ldquo근원적인 자
기의 요구rdquo 등등22) 이런 다양한 견해들은 양심 개념을 형식적인 측면에서 접근하
는지 아니면 내용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지 양심 판단에서 개인의 주관적 요소를
강조하는지 아니면 보편성 내지 소통가능성을 더 중요시하는지 양심의 권위를 내
부에서 찾는지 아니면 외부의 권위를 사회화 내지 내면화한 결과로 보는지 양심
에 따른 결단을 감정의 작용으로 보는지 아니면 이성도 같이 작용하는 것으로 보
는지 등에 따라 여러 갈래를 이룬다
칸트의 근대 주체철학의 영향을 받은 이래 오늘날 양심논의에서는 대체로 양심
의 개인적 주관적 요소가 강조되는 가운데 양심을 개인에게 도덕적 행위 동기를
유발하고 자기반성을 가능하게 하고 개인의 판단과 자기결정에서 최종심급의 역
할을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대표적으로 칸트는 양심을 각 주체로서의 개인의
ldquo내면에 자리 잡은 자율적 심판관rdquo으로 일컬으면서 행위주체가 자기 안에 내재하
21) 이덕연 앞의 글 361면22) 진교훈 외 19인 양심 고 로부터 에 이르기까지의 양심의 의미 서울대학교출판
문화원(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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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도덕법칙에 스스로의 행동을 적용시키는 것이 양심이라고 말한다23) 이때 양심
은 스스로 도덕법칙을 정립할 수 있는 선의지를 가진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지니는 일종의 의무의식으로 여겨지며 자신이 자신을 평가하는 것이 양심이기 때
문에 이 주관적 확신을 평가하는 외부의 기준은 없는 셈이다24) 이렇게 양심을 주
관성의 형식으로 가져갈 때는 주관적으로는 옳은 양심에 따른 확신이라 하더라도
인식주체가 가진 한계 등으로 인해 내용상 오류가 가능하다는 문제를 안게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칸트와 달리 양심문제를 개인의 주관적 도덕의식 이상의 차원에
서 다루고자 하는 철학자들은 간주관성의 차원에서 보편성을 지니는 양심개념을
추구한다 이런 방향에서 파악한 양심 개념에 대해 lsquo객관적rsquo 양심이라는 표현을 쓸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양심과 관련하여 lsquo객관적rsquo이라는 표현은 인식
주체 밖에 뭔가가 존재한다는 인식론적 존재론적 가정을 상정한다는 점에서 문제
가 있다 인식 주체 밖에 객관적인 그 무엇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양심이 아니라
윤리규범일 것이다 법관의 양심을 lsquo객관적rsquo lsquo법조적rsquo 양심으로 표현하는 것도 이런
의미에서 부적절하다25)
그런데 철학전통 안에는 양심을 주관성의 형식으로 끌어들여 절대화하는 시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서양에서 근대 이전의 철학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개인의 주
관적 도덕의식을 넘어서는 차원에서 양심을 논하는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우선 어
원상으로도 con-scientia syn-deresis의 con과 syn에서 알 수 있듯이 양심은 우리
내면의 법정에서도 공공성 내지 공동체성 즉 ldquo함께 안다rdquo라는 요소를 지니고 있
었다 이 어원은 양심의 규제적 기능에는 우리가 올바르게 행했는지 혹은 그릇되
게 행했는지를 지켜보는 ldquo공동의 인식rdquo이 있다는 자각이 포함됨을 암시한다 자기
안에서 lsquo보편적인 자기rsquo를 확신하는 과정을 상호인정과정과 연결시키고자 하는 양
심관은 공동의 윤리로서의 인륜성(Sittlichkeit)의 입장에서만 ldquo진정한 양심rdquo이 가능
하다고 보는 헤겔(G W F Hegel)의 양심론26) 타자윤리학에 근거한 레비나스
23) Immanuel Kant 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 (윤리형이상학 정 백종현 역 아카넷(2005) 134면 이하) 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Philosophische Bibliothek A 175 (2003) 215면 이하
24) 김관영 ldquo칸트에 있어서 양심의 문제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144면25) 예컨대 성낙인 교수는 법관의 양심을 ldquo법관이 적용하는 법 중에서 객관적으로 존재하
는 정신을 가리킨다rdquo고 설명한다 앞의 책 713면 이 객관적 정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26) Hegel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sect137 헤겔의 양심론에 대해서는 최신한
ldquo헤겔 야코비 양심의 변증법rdquo 헤겔연구 제23호(한국헤겔학회 2008) 86면 이하 참조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75
(Emmanuel Levinas)의 양심론27) 그리고 행위주체들의 담론적 소통과 사회적 행위
에 대한 책임에서 출발하는 아펠(Karl Otto Apel)의 양심론28)에도 엿보인다 동양의
양심을 ldquo세상 사람을 향해 움직이는 마음rdquo으로 묘사하면서 양심이 있어서 책임있
는 인식의 기능에 주목한 사상가도 있다30)
서양에서 근대를 전후로 양심의 주관화 경향이 강하게 대두된 데에는 종교분쟁
등의 영향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은 가치상대주의라는 시대정신의 영향 하에
양심은 도덕적 판단과 인격을 근거지우는 현상으로 파악되면서도 내용적 측면보다
는 형식적 측면에서 고찰되고 간주관적 논의가능성이 배제된 채 그 논의의 폭이
좁아져 거의 개인의 자기결정권 영역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우리 헌법 제19조의
양심의 의미도 이런 자기결정에서의 최종심급 역할이라는 맥락에서 읽히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살펴봤듯이 주관화의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기 이전의 사유전통에
서는 양심의 자기결정 능력보다는 스스로에게 도덕적 의문을 품는 능력 ldquo함께
안다rdquo라는 책임성 쪽에 더 비중이 놓여 있었다 이런 사유배경에 비추어 본다면
헌법 제19조의 양심은 근대 주관화의 영향의 산물로 이해할 수 있고 이에 비해
헌법 제103조에서 법관과 관련하여 언급된 양심은 근대 이전의 ldquo함께 안다rdquo의 사
유전통의 흔적을 지닌 개념으로 볼 수 있다
Ⅳ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의 완화 경향
앞에서 살펴봤듯이 역사적으로 법관의 독립이념은 법관은 오로지 법률에만 구속
된다는 것을 전제로 탄생했다 그리고 이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은 법률의 총합으로
27) 레비나스에 대해서는 김연숙 ldquo레비나스의 양심론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제3부 제3장 참조28) Karl Otto Apel From a Transcendental Semiotic Point of View Manchester University
Press (1998) 52면 259면 양심이 지니는 공적 관찰이나 감시기능 부분에 주목한
Apel에 대해서는 백춘현 ldquo아펠의 양심론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344면 이하29) 맹자의 양심론에 대해서는 장승희 ldquo맹자의 양심론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제1부 제1장
참조30) 왕수인은 양심과 양지(良知)라는 표현을 함께 썼다고 한다 ldquo남의 아픔을 느끼기 위해
서는 예민하게 lsquo생각rsquo해야 한다rdquo 여기서는 이혜경 ldquo왕수인의 양심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79면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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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 법질서는 통일적이고 자기충족적인 시스템을 이룬다는 가정에 기초하고 있
었다 그러나 이 가정은 그 자체로 애초 한계를 지닌 것이기도 하지만 법의 생태
적 기반이 변하면서 이 법률구속원칙은 점차 상대화 내지 약화되는 방향으로 나아
가게 되었다 입법자를 기다릴 수 없는 빠른 사회변화 자유법운동 입법양의 폭발
적인 증대 일반조항 도입 등 입법스타일의 변화 복지국가 대두 사회정의의 요구
헌법재판 활성화 등의 흐름은 법관의 법률구속메커니즘이 작동하기 어려운 여건을
만들어 가게 된 것이다 이른바 lsquo법관법rsquo의 대세 흐름이 나타난 것이다 특히 지난
수십 년간 확대된 입법영역은 형법과 같은 규제입법과 달리 사회복지생활보호
건강 증진남녀평등청소년보호장애인보호적극적 평등조처 등처럼 정치적 비전과
목적을 담은 한마디로 정책촉진적 성격을 지닌 법률들이었다 이와 같은 야심찬
입법스타일은 법적용단계에서 법관이 바람직한 제도 및 정책 내용에 대해 고려케
함으로써 목적적 법논증으로 기울게 하고 구체적 이익을 비교형량하는 심사방식
을 확대시키는 등 좁은 의미의 실정법률 해석보다는 법형성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 것이다31) 특히 이 흐름은 20세기말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법실증주의에
제동이 걸리는 분위기와 겹치면서32) 법철학에서도 전통적인 포섭논리나 삼단논법
은 실제로 법관들에게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지적과 함께 법관의 법률구속원
칙에 회의적인 성향의 논의들이 강세를 보이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법발견 과정에
대한 심화된 통찰을 통해 lsquo선이해rsquo의 문제를 재평가하게 만든 철학적 해석학과 문
언의 의미론적 구속력에 회의를 제기케 한 언어이론은 법철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들 이론에 입각하여 이제 법의 흠결 시와 같은 예외적인 상황에서 법관
의 법형성이 불가피하다는 수준의 주장을 넘어 법률텍스트를 통한 구속가능성 자
체를 의문시하는 주장까지 나오게 되었다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의 실현에 대한 기대가 점점 약화되고 그래서 누구의 표현
대로 법률이 해석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해석이 법률을 지배한다고 말할 정도가
31) 사회변화에 따른 법관의 역할 변화에 대해서는 박은정 왜 법의 지배인가 돌베개(2010) 제6장을 참조할 것
32) 울프리드 노이만(Ulfrid Neumann)은 지난 2015년 10월 1일 고려대학교 초청강연에서
ldquo실증주의 이후 시대의 법률과 판결rdquo이라는 주제로 발표하면서 법학적 사고가 ldquo법실
증주의 이후의 시대rdquo로 넘어갔다고 진단하고 그 배경으로 세계화 등의 흐름으로 국제
상거래관습법(lex mercatoria)처럼 입법당국에 의한 제정이 아닌 사회적 실천에 의거한
법제정 사례 법원리의 중요성 대두 인권사상 증대 등을 들고 있다 그러면서 법실증
주의로부터 멀어지는 만큼 법관의 법률구속원칙도 상대적으로 완화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77
되면 다시 제기될 수밖에 없는 물음이 바로 입법기관과 법적용기관 사이의 권력
균형 문제다 이 권력 균형은 특히 법 이라는 개인에 의해 매개된다는 점에서 문
제가 된다 오늘날 ldquo사법국가rdquo ldquo법관공화국rdquo ldquo사법엘리트rdquo ldquo사법의 정치화rdquo 등을
지적하는 소리는 입헌민주주의 기획의 초기단계에서 일찍이 해결했다고 여겼던
문제들이 다시 등장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법관의 법률구속의 전제 및 그 가능성
법원의 중립성 법관의 민주적 정당성 사법관료주의 등의 문제가 그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물음이 떠오른다 해석자의 자유를 제
한하고 법관의 법률구속을 보장할 확고한 법해석방법론은 가능한가 법관의 법률
구속에 관한 기술적 제도적 보장책은 가능한가 필자는 이 물음들에 대체로 회의
적인 전망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물론 법해석방법의 무용론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법률에 구속되는 법관상이 약화되고 앞으로도 점점 더 약화될
것이라는 전망 하에 어느 때보다도 더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될 법관의 독립 문제
를 염두에 두면서 법해석방법론의 문제를 재검토하고자 한다
Ⅴ 법해석방법론의 문제점과 한계
법이 있는 곳에 해석이 있다 법학의 강점도 해석학적 잠재력에 있다 법관의 임
무는 법률을 적용하기 위해 법문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법해석방법론은 법
해석과정에서 법관의 자유에 일정한 제약을 가하고 법관의 법률구속이념을 실현하
기 위해 고안되고 발전된 것이다 해석에서는 무엇이 최선의 해석인지를 둘러싸고
언제나 논쟁과 불일치가 생기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해석작업은 인간의 판단과 행
위의 영향 하에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법관이 따라야 하는 법률 자체에는 이미 법적용자를 법률에 대해 어느 정도 독
립적이게 만드는 여러 표현방식들이 들어 있다 예컨대 lsquo야간rsquo lsquo소음rsquo lsquo위험한 물건rsquo
lsquo적절한 조치rsquo 등 개념의 내포와 외연이 확정적이지 않은 법개념들이 대표적이다
이런 불확정적 개념들은 법명제의 구성요건 단계에만 들어 있는 게 아니라 법률효
과에서도 등장한다 이른바 lsquo규범적 개념rsquo들도 그런 표현방식에 속한다 lsquo음란한rsquo
lsquo건전한rsquo lsquo불명예스러운rsquo 등의 개념들은 기본적으로 지각가능한 대상을 서술하는
개념과 대비하여 의미내용이 가치판단에 근거할 때만 파악된다는 점에서 규범적
이다 이때 가치판단은 반드시 주관적 개인적 평가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른 사람
7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들의 평가도 포함할 것이지만 어쨌든 이 판단과 관련한 어느 정도의 불확정성은
감수해야 한다 법관의 법률 구속 의무를 느슨하게 만드는 이런 개념군에는 재량
도 포함된다 오늘날 재량개념은 ldquo법적으로 구속되는rdquo 재량으로 이해되지만 이때
판단의 여지 안에 들어오는 여러 대안들 가운데서 최종 혹은 최선의 대안을 확정
하는 데 있어서 결정자의 개인적 확신을 허용할 수밖에 없다 일반조항도 표현 그
대로 높은 일반성을 띰으로써 법적용자로 하여금 자기 앞에 놓인 사례를 광범위한
사례집단들에 적응시켜가면서 법률효과를 귀속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33)
위에서 언급한 불확정 법개념이나 규범적 개념 등을 적용하는 데는 가치판단
요소가 수반된다 이런 개념들을 적용할 때 법관은 일정한 범위 안에서 입법자를
대신하여 가치판단 내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것이다 또 법관
은 법의 lsquo흠결rsquo을 보충하거나 법질서 안에서 이따끔 발견되는 lsquo오류rsquo를 수정해야
할 부득이한 상황에도 처하게 된다 이때는 법관은 스스로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찾아 나서야 한다 lsquo법의 일반원칙rsquo lsquo법의 정신rsquo lsquo평균인의 척도rsquo lsquo비례성원칙 lsquo이익
형량rsquo 등은 이때 법관이 의존하는 사유 장치들이며 이것들을 원용하는 데도 가치
판단적 요소가 개입한다 이때 판단자는 무엇이 사실상 효력을 갖고 있는 윤리적
견해인지 확인해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사실로서의 합의가 올바른 법적 결론에
도달하게 하는지에 대해서도 숙고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법적용자는 때로는 평
균인 테스트 같은 객관적인 척도에 의지하지만 또 때로는 개인적 견해를 더 많이
펼칠 수 있는 일정한 판단의 여지를 가지게 된다
이렇게 해석과정에서 불가피한 lsquo판단의 여지rsquo 즉 해석과정에 불가피하게 개입되
는 가치판단 요소 때문에 ldquo해석의 건전성rdquo을 둘러싸고 논란이 생기고 해석의 정당
화와 관련하여 회의가 생긴다 가치판단과 관련된 부분이 불가피하게 주관적 요소
를 끌어들이게 되고 이로 인해 법규범의 효력이 상대적이고 불확실한 영역으로 떨
어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단자는 자신의 결론이 불확실성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자신의 해석에 대한 정당화를 포기할 수 없다 법을
해석한다는 것은 ldquo그 법률을 특정 사안에 적용하는 것을 정당화한다는rdquo34)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확정적인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사례에서도 요구되는
33) 불확정적 개념 규범적 개념 재량 일반조항과 관련한 자세한 설명은 칼 엥기쉬 법학
방법론 안법영윤재왕 옮김 세창출판사(2011) 182면 이하에 잘 정리되어 있으며 필
자도 이 부분을 참조했음을 밝힌다 34) 닐 맥코믹 로버트 서머즈 ldquo해석과 정당화(上)rdquo 박정훈 역 법철학연구 제5권 제2호
(2002) 18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79
개인적인 단은 도덕적 상대주의자들이 말하는 개인적인 취향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해석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올바른 해석기준을 수립하고자 법률가들은 각
기 지금까지 다양한 해석방법에 의존해 왔다 올바른 해석을 위한 확고한 기준을
수립할 수 있다는 것은 찬성하는 혹은 반대하는 해석논거들 사이의 상대적 비중을
결정하는 명확한 규칙을 수립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즉 어느 한 해석
논거가 다른 해석논거에 의해 배제되는 조건이나 선택된 해석을 정당화하는 데
필수적인 한 논거가 다른 논거보다 우월하기 위한 조건 한 논거에 누적을 통한
비중이 부과되는 조건 등을 제시해줄 일관된 정보와 지침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
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여러 해석방법들 사이에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다는 것
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시도는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했다 동일한 유형의 논거일지
라도 각각의 정당화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비중을 갖게 될 뿐더러 언어적 해석
방법 체계적 해석방법 목적적 해석방법 등으로 제시되는 여러 해석방법들이 한
줄로 세우기에는 한마디로 너무 이질적이다35) 물론 이들 해석논거들의 상호작용
을 검토하면서 잠정적인 서열을 제시하는 것은 가능할 수도 있다36) 그러나 이 서
열은 기껏해야 ldquo해석을 위한 노력의 경제성 원리rdquo 정도를 말해 줄 뿐이기 때문에
쉽게 바뀔 수 있다37)
드워킨이 옳게 지적한 대로 기본적으로 가치판단과 관련된 해석방법들은 위계
적일 수 없고 ldquo상호지지적rdquo인 관계에 놓일 뿐이다38) 이 때문에 방법론적 규칙을
세우려는 시도는 언제나 무망해지는 것이다 또한 법해석에 있어서 언어란 단어의
의미를 식별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 행위의 의미를 식별
하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론 풀러(Lon Fuller)가 지적한 대로 ldquo언어
를 통한 의사 전달은 어느 한 사람으로부터 다른 사람에게로 의미가 든 상자를 발송
하는 식rdquo39)은 아닌 것이다
35) 울프리드 노이만 ldquo실증주의 이후 시대의 법률과 판결rdquo 강연문(주 32) 노이만에 따르
면 예컨대 체계적 해석 방법에 따른 논거도 그것이 논리적 일관성 획득의 맥락에서
인지 아니면 가치평가의 일관성 보장이라는 맥락인지에 따라 전혀 다른 비중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36) 대체로 언어적-체계적-역사적-목적론적 해석방법의 순서로 언급되는 데 대해서는 심헌섭
분석과 비 의 법철학 법문사(2001) 217-218면37) 맥코믹과 서머즈는 비교법적 연구결과를 통해 올바른 해석을 위한 지침 수립은 어느
국가의 법체계에서도 지금까지 성공적이지 못함을 밝힌다(앞의 글 210면)38) 로널드 드워킨 정의론 박경신 옮김 민음사(2015) 30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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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해석방법론으로부터 법관은 불확실성을 떨쳐 낼 수 있는 확실한 정
보제공을 기대하기 어렵다 해석논거를 위한 결정적인 기준을 제공하는 해석방법
에 대해 불안정한 형태로나마 이론적 합의를 찾기 어렵다면 엥기쉬의 지적대로
해석방법론은 공중에 떠있는 상태다40) 법학에서 방법론의 융성은 역설적으로 법
학이 이 부분에 취약하다는 암시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해석자로서의 법관을
최종적으로 인도하는 전략은 무엇일까 다음과 같은 고민을 들어보면 적어도 그것
은 방법론상의 합의에 대한 기대 같은 것은 아닌 것 같다 ldquo우리들은 일정한 결론을
내리고도 그 결론이 가장 적절sdot타당한 것이라고 보증받을 수 없다 그 결론을 낸
시점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들은 자기의 결론이 그러한 불확실성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그것을 자기의 전인격적 책임 아래 끝을 내고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비판과 평가에 맡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rdquo41)
해석방법론이 공중에 떠있는 상태라면 법관을 법률에 구속시키기 위한 방법론
적 보장책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런 가운데 ldquo자기의 전인격적 책임 아래rdquo ldquo사려
깊고 균형잡힌 총체적 관념rdquo ldquo인생 그 자체로부터 지식rdquo 등에 대한 호소를 듣는다
이것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법발견으로 불리든 법인식 혹은 법형성으
로 불리든 법적으로 올바른 결정을 이끌어낸다는 것은 순순히 lsquo앎rsquo의 문제만은 아
니라는 것이다 실천철학의 전통 용어를 빌어서 말한다면 그것은 이론지 이상의
실천지를 요구하는 활동이다 즉 법관의 해석활동은 이론지와 실천지를 결합하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이 주제로 다가가는 한 우회로로서 우선 지적 활동으로서의
법관의 해석활동의 특성에 대해 살펴보자
39) 론 풀러 법의 도덕성 박은정 옮김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2015) 314면 40) ldquo그러나 해석론 전체에 대한 확고한 이론적 토대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서열관계에
관한 모든 이론들은 여전히 공중에 떠 있다rdquo 엥기쉬 앞의 책 137면41) 사법연수원 법조윤리론(2014) 31면 그밖에 Benjamin N Cardozo The Nature of
Judicial Process Yale University Press (1921) ldquo언제 하나의 이익이 다른 이익을 능가
하는지를 묻는다면 hellip 경험과 연구와 성찰로부터 요컨대 인생 그 자체로부터 그 지식
을 얻지 않으면 안된다고 답할 수 있을 뿐이다rdquo(여기서는 법조윤리론에서 재인용) 또한 맥코믹서머즈 ldquo해석과 정당화(下)rdquo 박정훈 역 법철학연구 제6권 제1호(2003) 348면 ldquo해석은 간주관적으로 승인된 모든 법적 가치들에 대하여 사려깊고 균형잡힌
총체적 관념을 획득하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제대로 행해질
수 있다rdquo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1
Ⅵ 법관의 해석활동 실증주의의 대척점
앞에서 언급한 대로 해석에서는 무엇이 최선의 해석인가를 둘러싸고 언제나
논쟁과 불일치가 따른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누군가가 텍스트를 해석한다고
말하는 순간 그는 실증주의의 대척점에 서게 된다 실증주의과학의 의미에서는 논
쟁의 여지가 있는 것은 원칙적으로 과학일 수 없기 때문이다 법실증주의사고에서
해석 문제가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법을 근본규범에 입각
한 자기준거적인 구조로 보는 한스 켈젠(Hans Kelsen)의 순수법학이나 법적용과정
을 규칙에 의해 지도되는 과정으로 보는 하트(H L A Hart)의 분석법학에서 해석과
관련한 어려움은 다루고 있지 않다42)
켈젠은 순수법이론(Reine Rechtslehre)에서 정당한 해석만이 허용된다는 주장
은 허구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면서 해석의 건전성 문제나 정당화 문제를 법이론
안에서 다루기를 거부한다 법을 자기준거적인 것으로 보는 관점은 한마디로 해석
(행위)주체의 입장을 부정하는 것이다 켈젠은 법단계설을 바탕으로 법적용을 상위
규범의 수권에 의해 하위규범이 구체화되는 과정으로 보고 여기에 헌법의 수권을
받아 법률을 제정하는 입법자도 포함시킨다43) 이에 따라 법적용도 입법의 한 형
태로 설명된다 법관에 의한 법형성의 동기는 이를테면 입법부가 유독 다른 법률
이 아닌 이 법률을 통과시키는 동기와 같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켈젠은 판단활동
에서 인지적 요소와 의지적 요소를 엄격하게 구별하면서 법관의 판단활동을 순전
한 의지활동으로 보고 이 법관의 활동에 대해서만 (유권)해석이라는 표현을 사용
하고자 한다 그리고 법학적 해석에 대해서는 법규범의 가능한 의미들을 밝히는
것으로서 법률에 따른 결정의 범위를 제한하는 정도의 의미를 부여한다
법단계설에 따르면 상위규범이 정한 일정한 범위 안에서의 수권에 따라 하위규
범이 작용한다 이때 상위규범의 수권은 모든 세부적인 내용들에 대해서까지 정해
42) 켈젠은 순수법이론(Reine Rechtslehre) 제1판(1934) 제6장에서 해석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부분과 거의 같은 논문 ldquoZur Theorie der Interpretationrdquo이 심헌섭 젠법이론선집 법문사(1990) 97면 이하에 실려 있다 윤재왕 교수는 Reine Rechtslehre 제1판과 제2판
(1960)을 비교하면서 해석방법으로부터 오는 규범적 구속력을 일체 거부하는 켈젠의
입장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윤재왕 ldquo한스 켈젠의 법해석이론rdquo 고려법학 제74호(고려
대학교법학연구원 2014) 525면 이하 하트의 대표적인 저서 법의 개념의 색인 항목에는
lsquo해석rsquo이 빠져있다 43) Hans Kelsen Allgemeine Staatslehre (Berlin 1925) 231면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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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그래서 ldquo상위단계의 법생성으로부터 하위단계의 법생
산으로의 전환은 단지 상위단계가 정해 놓은 범위를 채우는rdquo 활동으로서 이때
ldquo언제나 상위단계에는 없는 내용적 요소가 하위단계에 추가되어야만rdquo 한다44) 이
내용을 채우는 부분과 관련하여 상대적 불확실성이 생기는데 켈젠은 이 문제를
ldquo자유재량rdquo의 문제로 다룬다45) 이는 하트가 규칙의 체계로서의 법체계를 완결된
구조가 아닌 열린 구조로 봄으로써 상대적 불확실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법관의
재량사항으로 보는 것과 같다 하트의 경우 중심부와 주변부라는 극히 단순화된
이분법을 끌어들여 이 불확실성 문제를 처리하고자 했다면 켈젠의 경우는 인식작
용과 의지작용의 이분법을 끌어들임으로써 이 문제를 처리하고자 한 것이다
판결을 법관의 의지활동으로만 이해하는 입장을 취하게 되면 법관에게 결정에
대한 근거 제시 요청을 할 수 없게 된다 마치 신의 심판에 대해 근거 제시를 요구
할 수 없듯이 말이다 결국 켈젠의 법이론상으로는 해석은 법학의 문제가 아니며
그러므로 분석적 법실증주의와도 무관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46) 이런 이유에서 그
는 정당한 해석만이 허용된다는 주장이나 해석방법만으로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에
이를 수 있다는 주장을 거부하면서 심지어는 상위규범에 제시된 범위를 넘어서는
해석의 효력조차 적극적으로 인정함으로써 어느 의미에서는 해석이론의 존재기반
자체를 무너뜨린다47)
켈젠이나 하트가 법이론에서 해석의 의미를 축소한 이면에는 이분법이라는 과도
한 사유의 단순화가 놓여 있다 그러나 켈젠이 생각하는 것처럼 판단에서 인식적
요소와 의지적 요소의 확고한 경계가 유지되는지는 의문이다 또 중심부와 주변
부에 대한 하트의 주장도 지나친 단순화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어쨌거나
켈젠이 합리적인 해석방법을 추구하는 법이론의 효용가치를 한껏 떨어뜨렸다고
해서 이제 어차피 정답은 없으니 법대에 앉은 법관은 자기 임의로 무엇이든 해도
된다고 켈젠이 주장했을 리는 물론 없을 것이다 법이론의 과도한 정당성 주장을
거부하는 데서 오히려 순수법학의 비판적 잠재력을 찾을 수 있다고 보는 학자들은
여기서 켈젠이 강조한 순수화 즉 탈정치화는 법학에 관한 것이지 법 자체에 관한
44) Kelsen Allgemeine Staatslehre 243면 여기서 번역은 윤재왕 앞의 글 535-536면에서
재인용45) Kelsen 앞의 책 243면 이하46) 켈젠에 있어서 법해석은 이론상으로는 법학보다는 정치학이나 사회학에 속하는 문제
에 더 가깝다고 지적한 견해에 대해서는 론 풀러 앞의 책 312면 47) 이에 대해서는 윤재왕 앞의 글 553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3
주장이 아니었음을 상기시킨다48) 즉 법 자체는 결코 정치와 분리될 수 없다는
점에서 법실무에 대한 학문이론의 무가치성을 주장하는 순수법학은 실무의 법
적용자로 하여금 자신의 활동이 정치적 활동임을 깨닫고 책임을 느끼게 하는 계기
를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윤재왕 교수도 ldquo켈젠 해석이론의 배후rdquo로 들어가 방법
이론으로부터의 어떤 구속력도 거부되는 데서 생기는 공백을 켈젠이 법관 자신의
자기이해와 책임성 문제로 채운다고 지적한다 ldquo법관의 판결은 결코 순수한 것일
수 없으며 그런데도 자신의 판결이 순수한 인식의 소산이라고 강조한다면 이는
정치적 책임의 회피이고 동시에 이데올로기적이라는 혐의에 노출되지 않을 수
없다rdquo49) 이 문구가 켈젠 자신으로부터 나왔다면 아주 좋았을 것이다 자신의 직
무의 중요성과 책임에 대한 실천적 깨달음은 해석의 정당화를 목표로 하는 인식적
노력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켈젠의 순수법이론의 기획은 서로
붙어 있는 양면을 떼어 놓으면서 이것을 다시 붙일 수 있음을 보여주려 한 것일까
Ⅶ 법관의 해석활동 가치판단과 lsquo정답테제rsquo 문제
켈젠처럼 실증주의적 사고에 따르든 아니면 비실증주의적 사고에 따르든 가치
판단 문제에서 해석방법만으로는 하나의 정당한 결정을 도출할 수 없다고 생각한
다면 이는 해석의 차원에서 가치에 대한 이해 시도는 진리 추구와는 무관하다는
주장으로 귀결되는가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해석대상의 의미에 대한
관심과 최선의 이해에 대한 관심은 아무래도 진리 추구라는 목표를 향한다고 봐야
한다 법적 결정은 물론 법관의 권한에 속하지만 그것을 정당화해주는 원천은 법
관이라는 lsquo지위rsquo가 지니는 형식적 권한이 아니라 판결이 정당하다는 근거 제시에
있다 법판단을 정당화해주는 모델은 울프리드 노이만(Ulfrid Neumann)이 지적한
대로 권위를 통한 정당화모델보다는 진리를 통한 정당화모델에 더 가깝다50)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재판활동은 엄연히 사법권이라는 공권력의 작용이라는 점에서
독립적인 법관의 재판활동을 그 ldquo계획적이고 진지한 진리 탐구 활동rdquo적 측면 때문
48) 법학의 탈정치화를 ldquo정치적 허무주의rdquo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데 대해서는 켈젠 ldquo순수법학이란 무엇인가rdquo 젠법이론선집 280-282면
49) 윤재왕 앞의 글 559면50) 울프리드 노이만 ldquo법 진리 권위rdquo 2013 4 6 한국법철학회 강연문 참조
8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에 학문의 자유의 한 표현으로까지 보려는 것은 무리다51)
오늘날 가치상대주의 분위기는 실천적 물음에서 진리 도달가능성에 대한 회의를
과장한다 그러나 진리가 뭐냐는 빌라도의 물음에 비록 확신에 찬 대답을 못한다
하더라도 법에서 진리 내지 정당성 추구의 포기는 파국을 의미한다 국가권력
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도 진리라는 규제이념이 전제되기 때문
이다 독립된 사법부가 심급구조와 집단적 의사결정의 형태로 스스로의 시정 기구
를 가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물론 진리에 대한 주장은 잠정적이고 수정가능하다
lsquo참이냐 거짓이냐rsquo는 오로지 서술적 명제에만 한정하여 검증될 뿐이라는 협소한
학문관을 따른다면 법학은 학문 안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법
학이 그런 협소한 학문관을 받아들여야 할 필연성은 없다 법해석자는 자신의 해
석적 판단이 진리라는 주장을 무한정 내세우지는 못하면서도 진리 추구를 피할
수 없다52) 론 풀러(Lon Fuller)의 지적대로 ldquo법이론이 최고의 법적 권위를 엄격하
게 정의하는 일에 큰 비중을 두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이 점이 모호해지면 필경
전체로서의 법체계가 와해될 수 있다rdquo53)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법을 민주
주의의 언어로 설명하는 오늘날 의회와 행정처럼 다수결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기
관도 아닌 사법의 소수 전문 엘리트의 지배를 권위모델만으로 정당화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법을 준수하는 시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시민들은 자신에게 유죄
판결을 선고한 세속의 법관에게 그 유죄판결의 근거를 알고 싶다고 요구할 수 있
으며 물론 당연히 요구한다
법관은 판결에서 논증을 통해 최상의 근거 제시가 이루어진 결정을 해야 한다54)
51) ldquo일부 사람들 중에는 이러한 법원의 권력기관적 성질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
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helliphellip 가끔 법관의 일을 조용한 방에서 소송서
류를 꼼꼼하게 읽어 파악한 사실에다가 법을 논리적으로 적용하는 단순히 지적(知的)인 작업이라는 시각에서만 말씀하시는 분을 만나면 그 분에게 재판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법대에 앉아 있는 법관이 어떻게 보이는지 물어보고 싶어집니다rdquo 양창수 ldquo바람직한 법관상 - 기예와 지혜 사이rdquo lt근대사법 및 한성재판소 설립 120주년 기념
1895sim2015 소통컨퍼런스 역사에 비춰 본 바람직한 법관상gt 자료집(서울중앙지방법원 2015 5 11) 15면 ldquo계획적이고 진지한 진리 탐구 활동rdquo이라는 표현은 라드브루흐에서
나온다 구스타브 라드브루흐 법철학 최종고 옮김 삼영사(2011) 238면 52) 드워킨 앞의 책 208면 53) 론 풀러 앞의 책 211면 풀러의 문장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ldquo하지만 이 경우도
위로부터의 지시 또한 목적의식에서 비롯되는 지적 활동을 완전히 생략할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rdquo54) 물론 진리 요청과 관련하여 개별 법관의 관점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며 민주국가에서
포기될 수 없는 진리 요청은 법학을 포함한 법체계 전체로 하여금 진리 요청에 어떻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5
이때 정당한 근거 제시가 이루어진 결정과 관련하여 그것이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
이라는 주장을 펼 수 있는가 앞에서 검토한 대로 켈젠의 순수법이론은 그런 주장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이에 비해 드워킨은 법적 판단에 있어서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이 원칙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ldquo정답테제rdquo로 불리는 이 주장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학자들이 지적한 대로 존재사실에 대한 주장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하나의 ldquo규제이념rdquo으로 받아들이는 게 맞는 것 같다 즉 드워킨의 정답테제
는 ldquo유일하게 정당한 결정rdquo이 존재한다는 데 대한 이론적 탐구라기보다는 실무에
서의 법관의 주관적 태도에 부합하는 이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법관은 자신의 판결활동과 관련하여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모든 사건
에서 오직 하나의 결정만이 정당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 정답에 가까이 가기 위
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55)
드워킨의 말대로 가치판단이 참일 때는 그냥 참일 수가 없으며 그것이 참인
이유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즉 충분한 논거가 존재할 때 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라면 이러한 논거지움의 과정은 자명한 공리적
토대나 그런 토대 위에서 확립된 규칙이나 원리적 서열에 따라 명확하게 밝힐 수
없다 이런 불확실한 가운데도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논거지움은 포기될 수
없다 이 끝없는 정당화 부담 때문에 켈젠은 규범의 효력 근거에 관한 논의를 가
치에 관한 논의와 절연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물론 성공하지
못했다56)
가치판단을 해야 하는 부분이 법문화에서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요소로 작용할지
아니면 그 반대로 작용할지는 판단자로서의 법관의 역량과 연관하여 논해야 할 것
이다 필자는 가치판단적 요소가 법문화에서 당연히 긍정적 요소로 작용해야 하며
게 부응하는지 묻게 한다 따라서 사법부 외부에서 행하는 사법비판의 길이 열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대해서는 노이만 앞의 강연문 참조55) 노이만 앞의 강연문56) 규범의 효력을 불명확하고 상대적인 가치가 아닌 규범에 근거짓기 위해 켈젠이 고안
한 근본규범은 사유상으로만 전제된 규범일 뿐이었다 켈젠은 가치판단을 ldquo현실의 행
위가 객관적으로 효력 있는 규범에 맞게 존재해야 하는 대로 존재한다는 판단rdquo이라고
정의함으로써 가치판단이라는 용어 자체를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Reine Rechtslehre 2 Aufl (1960) 16면 이하 또한 켈젠은 규범이 인간의 의지에 의해
제정되는 한 그 규범에 의해 형성된 가치는 어차피 자의적일 뿐이라고 주장한다(18면) 규범과 가치의 관계에 대한 켈젠의 주장에 대해서는 오세혁 ldquo켈젠의 법이론에 있어서
규범과 가치 - 규범과 가치의 상관관계를 중심으로rdquo 법철학연구 제18권 제3호(2015) 97면 이하 참조
8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또한 그렇게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57) 그런 방향에서 이제 해석의 문제를 법
관의 자기이해 문제와 연관시켜 보기로 한다
Ⅷ 해석과 법관의 자기이해
법관은 추상적인 일반규칙을 가지고 공중의 이목을 끄는 개별적인 사건을 처리
하는 사람이다 법관의 의식활동에 의해 일반규칙과 일회적인 사건 사이의 심연이
메워진다 하지만 일반성과 개별성을 결합하는 이 의식과정에 동반하는 고유한 법
학적 방법에 대해서는 앞에서 지적한 대로 확실한 합의는 없다 ldquo리걸 마인드rdquo라
는 말이 풍기는 신비스러운 분위기에는 사법적 결정이 본질적으로 투명한 것이 되기
어렵다는 암시가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다 논리적인 형태만 부여하기로 한다면
한 사건에서 서로 상반된 결론에 이른 두 개의 판결문을 작성하는 것도 불가능
하지 않다58) 방법이 논리에 기초하는 것이라면 이때 논리는 형식논리를 넘어 엥기
쉬가 표현한 대로 ldquo실질에 부합하는rdquo 논리여야 할 것이다 참된 올바른 받아들
일 수 있는 결정에 이르는 실질논리 이 실질에 도달하기까지는 결코 논리적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지적 감행과 어떤 매개가 작용한다
일반규칙을 개별사례에 적용할 때 요구되는 판단자의 능력과 관련하여 가다머
(Hans-Georg Gadamer)는 이런 견해를 밝힌 적이 있다 판단자는 자신이 이미 가
57) 이와는 달리 가치의 ldquo통약불가능성rdquo 때문에 사법은 좋음이나 옳음의 이슈에 대해 실
질적 입장을 취하는 일에 대해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가치의 통약
불가능성에 대해서는 Cass R Sunstein ldquoImcommensurability and Valuation in Lawrdquo Michigan Law Review Vol 92 No 4 (1994) 779면 이하 조홍식 교수는 ldquo가치의 통약
불가능성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이 권리인가의 문제보다 무엇이 공익인가의 문제에서
더 크다rdquo고 지적하면서 기본적으로 가치판단과 관련한 사법통치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사법통치의 정당성과 한계 제2판 박영사(2010) 240면 가치의 통약불가능성에 대한 주장은 가치판단과 관련한 해석기준의 서열화는 불가능
하다는 주장과 같은 노선에 속한다 여기서 통약불가능성 문제를 자세히 다룰 수는
없다 다만 가치의 통약불가능성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통약불가능이 비교불가능을 의미
하지는 않는다는 점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체적인 맥락이 주어지는 경우 무엇이 옳은
지 혹은 그른지에 대해 심사숙고하며 이에 따라 선택하고 그 선택 결과를 받아들인
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정도만 지적하기로 한다 58) 실제로 판사가 판결문을 두 개 써왔다고 주장한 사건에 대한 보도가 있었다 ldquo판결문을
두 개 써왔다rdquo 조선일보 2013 11 21자 기사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7
지고 있어서 적용하기만 하면 된다는 그런 의미의 규범적 실천적 ldquo지식을 소유한
사람rdquo이라기보다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 ldquo지식을 탄생시키는 상황에 직면하는
사람rdquo이라는 것이다59) 일반범주를 개별사례에 적용할 때 요구되는 이 판단력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래서 칸트(Kant)도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ldquo지성은 규칙들
을 통해 배우고 보강할 수 있는 것이지만 판단력은 특수한 재능으로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전혀 아니고 단지 숙련될 수 있을 뿐이다rdquo60)
우리는 올바른 규칙이나 원리를 알고 있지만 막상 이것을 어떤 상황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예컨대 비례성원칙이나 과잉금지원칙에 대한 지식
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은 적정해야 하고 그 수단은 목적달
성을 위해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원칙을 특수한
상황에 lsquo적용rsquo한다고 할 때에 이 원칙이 그 어떤 판단도 배제할 정도로 자족적인
지침 구실을 한다고 느끼기는 어렵다 특정 상황에서 그 수단이 과연 어느 정도일
때가 목적달성에 적정한지는 판단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실천이성의 역
할이다
단의 자리는 이론 경험 양심이 혼재된 실천의 영역이다 판단을 통한 결정이
라는 그 lsquo종국성rsquo으로 인한 실천적 성격은 법학이 다른 어떤 학문분야와도 공유
하지 않는 법학 고유의 특징이다 그래서 법학은 lsquolegal sciencersquo로 불리기보다는
실천지- prudentia-를 함의하는 lsquojurisprudencersquo로 더 자주 불리어 왔을 것이다
해석의 차원에서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도 추상적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
으로는 행위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성과 개별성을 결합하는 해석적
지식은 추상적 이론적 지식들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일반규칙이나 원리
에 근거한 이론적 패턴의 지식과 특정한 상황 내지 맥락을 고려하는 실천적 패턴
의 지식의 이중주를 이룬다 법관이 지니는 통찰력의 특성은 이론과 태도가 함께
간다는 데 있다 그래서 사법적 판단에서는 규칙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 못지않게
사람 즉 법관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사법적 통찰력의 특성은
뭐니뭐니해도 개별 사례를 다룬다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개별적인 것들은 개별적
인 방식으로만 체험되고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들은 무엇
보다도 lsquo지각rsquo과 관계된다61) 즉 그것들은 일반적 체계적 지식의 대상이라기보다
59) Hans-Georg Gadamer Wahrheit und Methode Grundzuumlge einer philosophischen Hermeneutik 3 Aufl J C B MOHR (1972) 300면
60)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 1 백종현 옮김 아카넷(2009) 37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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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우선 지각의 대상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도 사법적 통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쪽은 규칙보다는 오히려 사람 즉 법관 쪽인 것이다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사건에서 법적으로 중요한 사실이 무엇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규칙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어떤 규칙이 중요한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실이 중요한지 알
아야 한다 이 인식과정에서 법관은 불확실한 가운데서 무수한 선택을 감행한다
어떤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 배척하고 어떤 사실은 인정하거나 무게를 부
여하고 신청된 증거조사의 어떤 것은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거부하고helliphellip 사실
에 대한 이 취사선택-자유심증주의-의 결과로 새로운 것이 태어난다 그리고
이것에 의해 법원을 찾아온 사람들의 운명이 갈리는 것이다
법관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필자 생각에
독일의 법철학자 아르투어 카우프만(Arthur Kaufmann)의 해석학적 방법론은 법
관의 자기이해 문제를 해석학적 지평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법관의 해석작업의
본질을 잘 설명해주는 것 같다 가다머 계통의 철학적 해석학(philosophische
Hermeneutik)의 입장을 받아들이면서62) 카우프만은 법해석행위를 통해 포괄적인
의미에서 법관 자신의 인격 중의 어떤 것이 판결에 혼입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
61)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4면 그리고 1심에서
유죄였다가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강력범죄 540건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판단자
의 감지능력 차이가 법판단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힌 김상준 무죄
결과 법 의 사실인정 경인문화사(2013) 62) 텍스트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이해에 관한 연구분야인 해석학(hermeneutics Hermeneutik)
의 어원은 신들의 전령(傳令)인 Hermes라는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설명된다 이때 신의
의도를 인간에게 전하는 과정에서 언어의 제약성 시공간적 간격 전령의 역할 등과 관
련하여 해석의 문제가 생긴다고 본다 ldquoHermeneuticsrdquo Dictionary of Biblical Interpretation Nashville (1999) 497면 독일어의 Auslegung이 해석주체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대상
으로서의 텍스트에 대한 해석을 의미한다면(객관주의) 철학적 해석학에서의 해석
(Interpretation)은 해석주체의 주관성 내지 역사성이 대상에 투사된다는 의미가 강하다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에 따르면 역사적 존재인 인간에게 있어 모든 해석과 이해는 과
거와 현재가 lsquo작용사적으로(wirkungsgeschichtlich)rsquo 중재되는 사건으로서 lsquo선이해rsquo 내지
lsquo선판단rsquo 없이는 불가능하다 가다머는 선입견으로 폄하된 선이해를 재평가하고 이를
통해 근대 이래 lsquo방법rsquo을 통한 진리발견이 주체에 의한 객체의 대상화 내지 도구화를 가져
왔다고 비판하면서 인간경험에 있어서 진리에 이르는 길은 사물의 존재가 스스로 드러
나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해석과 이해는 전승된 존재방식으로서
의 텍스트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며 이는 텍스트 자체가 지닌 역사적 지평과 해석
자의 지평이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만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해석학적 순환 이해의 전제로서의 선이해 작용사 등에 대해서는 Gadamer 앞의 책 II Grundzuumlge einer Theorie der Hermeneutischen Erfahrung 참조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9
로 법관의 결정이 올바른가의 물음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가의 물음과 직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63)
우선 카우프만은 통상적으로 회자되는 독립적인 법관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즉 법 앞에 선 법관이 일체의 정치적 사회적 개인적 영향이나 선입견들로부터 차
단된 채 순수한 객관적 인식에 따라 그 이전에는 자신이 알 수 없었던 사실관계
를 판단하고 그런 다음에 법적 판단을 한다는 식으로 이해하기를 거부한다64)
그런 법관상은 법령집은 일체 해석의 필요가 없이 거의 모든 가능한 법률문제에
대한 대답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상정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법관은 의지가
없는 존재이며 사법권력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여기는 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법에 대한 인식은 단순히 사례를 법률에 포섭시킨다는 의미의 수
동적 행위가 아니고 해석자가 해석대상에 관여하면서 함께 lsquo형성rsquo하는 것이라고
본다 카우프만은 법관의 법형성력에 대한 자신의 견해가 주관주의의 의미로 받아
들여지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는데 왜냐하면 해석자는 텍스트를 지탱하는 모든
전통과 함께 이해의 지평으로 들어간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은 서류의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ldquo아 이런 사건이구나rdquo라고 감을 잡게 되
는데 카우프만에 따르면 이는 법관 자신이 사건 경과를 관찰해서 인지했다거나
언론 등을 통해 사건에 대한 상세한 지식을 얻었다는 뜻이 아니라 유사한 사건들
을 알며 그래서 ldquo선이해(Vorurteil Vorverstaumlndnis)rdquo65)를 가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
해의 전제로서 이런 선이해가 없다면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것이 무엇에 관한 사
건인지 알 수 없고 다른 사례와 비교할 수도 없기 때문에 올바른 판단에 이른다
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66) 이 선이해에 의해 해석은 언제나 해석주체의 자기
이해 즉 자신이 lsquo잠정적rsquo 결과로서 이미 예상했던 것을 논증적으로 근거짓는 활동
이라는 의미에서 ldquo해석학적 순환rdquo 내지 ldquo해석학적 나선구조rdquo 하에 이루어진다
63)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Festschrift fuumlr Karl Peters Mohr Siebeck (1974) 144면 법관의 독립과 양심 주제와 관련한 또 다른
글로는 Kaufmann ldquoGesetz und Rechtrdquo Existenz und Ordnung Festschrift fuumlr Erik Wolf (1962) 357면 이하
64)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4면 65) 해석학적 의미에서의 lsquo선이해rsquo는 일상 언어 관용에서는 lsquo선입견rsquo이나 lsquo편견rsquo 같은 부정
적 함의를 더 많이 지니기 때문에 카우프만은 lsquoVorurteilrsquo 대신에 Vorverstaumlndnis라는 용
어를 쓰기를 권장한다(앞의 글 148면) 카우프만 외에도 이 용어의 선택은 Josef Esser Vorverstaumlndnis und Methodenwahl in der Rechtsfindung 2 Aufl (Frankfurt aM 1972)
66)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7면
90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텍스트를 이해하려는 사람은 말하자면 언제나 초벌 그림을 그리며 특정 의미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텍스트를 읽기 때문에 ldquo텍스트에서 첫 번째 의미가 지시되자
마자 전체의 의미를 lsquo예비투사한다(vorauswirft)rsquordquo67) 그리고 선이해와 관련된 이 예
비투사는-해석학적 lsquo순환rsquo에 의해-원칙적으로 끝없이 검열과정을 거친다는 것
이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도 실제 판단과정에서는 분리
되지 않는다68)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은 시간적으로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단절 관계가 아니라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정제하고 상응하는
관계에 놓인다 즉 사실에 대한 인식 없이 규범적 인식은 불가능하며 또한 규범적
관점 없이 사실만을 통한 사실 확정도 불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법률도 법관의
해석을 만나기 전에는 ldquo잠재적인 가능태로서 주어진 법률rdquo일 뿐 해석학적 순환을
통한 정제 혹은 상응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ldquo진정한 실정법rdquo이 생성된다69) 이렇
게 특정사건을 통해 구체화된 규범(구성요건)과 이 규범을 통해 정해진 사실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법관에게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들과 함께 제3의 요소로서 법관
자신의 선이해 내지 이해 포괄적으로 말하면 그의 인격적 존재가 판단에 혼입
된다
lsquo선이해rsquo는 판단자가 자신의 선이해를 의식하지 못할 때 부정적 요소를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ldquo자신의 판단은 오로지 lsquo있는 그대로다rsquo라고 말하는 즉 lsquo오로지 법
률에만 구속된다rsquo라고 말하는 법관이야말로 실은 종속된 법관이다 왜냐하면 그는
성찰되지 않은 자신의 선이해와 거리를 둘 수 없기 때문이다rdquo70) 즉 법관은 자신
67)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68) 실제 판단과정에서 사실인정과 법률적용이 따로 떨어질 수 없다는 점은 굳이 카우프
만의 이론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실무상으로는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ldquo법률
의 적용과 사실의 인정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법률문제와 결부되어 인정된다 사실의 인정이 진행됨에 따라서 재판관의 머리
속에서는 어떠한 법규를 적용할 것인가 그 법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는 전망이
점차로 서게 되며 당사자 측도 경우에 따라서는 민사인 경우 청구의 취지를 변경할
것인가를 고려하게 되고 형사인 경우 공소사실을 변경하는 경우도 생긴다 요컨대 사실
문제와 법률문제는 실제과정에서 불가분으로 결부되어 있다 helliphellip 양쪽이 불가분으로
재판관의 직관 혹은 재판관의 전인격적인 작용에 의하여 사실의 인정과 법의 적용이
행하여지고 판결 삼단논법은 실제의 심판 과정에서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rdquo(사법
연수원 법조윤리론 35면) 69) ldquo법관의 해석 작업 이전에는 어느 의미에서 진정 법도 진정한 사실도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원자재들(Rohmaterialien)로만 이것들이 존재할 뿐이다rdquo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1
의 선이해를 의식하고 자신을 이데올로기 혐의 앞에 세울 줄 알 때 올바른 판결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ldquo법관이 자신의 선이해와 종속을 의식할수록 그래서 간주
관적 합의에 노력할수록 그는 더 객관적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rdquo71) 그러므로
법관의 주관주의의 위험은 카우프만식으로 말하면 가치판단 같은 성찰적 고려와
관련된 주관적 요소를 방법상의 근거 제시의 맥락에 끌어들이는 법관의 경우보다는
오히려 모든 것이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판결의 주관적
요소를 은폐하는 법관에게서 나타나는 위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학적 순환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법관은 ldquo법률의 입rdquo이 아니라 ldquo인격
으로서 판결을 떠받친다rdquo72) 판결은 법률과 법관의 인격의 혼성물이다 그러므로
법률은 판결을 위한 필요조건이기는 하나 충분조건은 아니라고도 말할 수 있다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순환이론은 법관의 독립과 양심의 문제 차원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법결정의 올바름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
는 정도에 달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자신을 올바르
게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자신의 판단력 경험 능력 인간에 대한 태도 감
수성 명예욕 등등
카우프만의 법해석학적 순환이론이 법관의 독립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이라
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독립은 법관 스스로 관철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론적으로 카우프만의 법해석이론의 의의는 법관이 자신의 선입견을
의식하는 것이야말로 법관의 독립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설득력있게 지적
해주며 그런 방향에서 법관의 법해석 작업을 재평가했다는 데 있다고 말할 수 있
겠다
70)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71) Arthur Kaufmann ldquoDer BGH und die Sitzblockaderdquo NJW (1988) 2581면 이하72) 이 표현은 Karl Peters의 Strafprozess - Ein Lehrbuch (1966) 99면에 나오며 여기서는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9면에서 재
인용했다 이덕연 교수도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에 입각하여 ldquo법관의 법해석작
업은 단순한 lsquo인식작업rsquo이나 lsquo언어분석작업rsquo이 아니라 ldquo구체적인 반성과 자기극복의
노력 속에서 온 인격을 걸고 진행하는 lsquo이해와 실천의 수행작업rsquordquo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앞의 글 352면)
9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Ⅸ 법관은 lsquo하는 사람rsquo인가 lsquo보는 사람rsquo인가
법관의 판단작업을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의 관점에서 주목했던 또 다른
철학자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다 그녀는 ldquo아이히만 재판rdquo을 계기로 판단의
특수한 경우로서의 판단력 문제를 연구했다73) 아렌트는 하드케이스와 연관시켜
법관의 판단력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74) 법관은 우선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을 반추하면서 판단에 임하는데 이때 판단자로서 그는 한 면으
로는 규칙에 따라 판단하라는 lsquo일반적 정의rsquo의 요구에 그리고 동시에 다른 한 면
으로는 정황에 맞게 판단하라는 lsquo개별적 정의rsquo의 요구에 처한다 이러한 상황은
아렌트에 따르면 하드케이스에서 특히 발생한다 이 이중적이고 모순적 요구 상황
을 아렌트는 법관의 판단에 적용되는 특수한 해석학 및 그 조건을 설명하는 출발
점으로 삼는다75) 하드케이스가 아닌 통상적인 사건에서는 이른바 포섭 여부를 판
단하는 것으로도 족하다 일반규칙에의 포섭 여부가 중심이 되는 이 단계에서의
판단력- lsquo규정하는 판단력(bestimmende Urteilskraft)rsquo-은 사실관계에서의 원인
이나 형식적 정의를 따지므로 일방적이고 간주관적 전제 없이도 가능하다 그래서
흔히 법관은 여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법을 해석해야 한다고 말할 때 이는
법적용을 이러한 지배적인 포섭모델에 입각하여 이해한 결과라 할 것이다 그런데
규칙으로부터 오는 어떤 어려움들 때문에 규정하는 판단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즉 포섭이 어렵거나 법흠결 시 또는 가치형량이 요구되는 하드케
이스에서는 법관은 어쩔 수 없이 앞에서 말한 모순문제를 다루어야만 한다 이때
아렌트는 법관이 사유의 확장을 통해 방법상으로 lsquo규정적 판단력rsquo을 스스로 교정
할 수 있는 lsquo성찰적 판단력rsquo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고 이 판단유형의 전환과정을
73) 법적 판단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 삼은 저술은 Hannah Arendt Eichmann in Jerusalem Ein Bericht von der Banalitaumlt des Boumlsen Erw Aufl (Muumlnchen 2001) 그리고 Hannah Arendt Das Urteilen Texte zu Kants Politischer Philosophie Hrsg v R Beiner Uumlbers v U Ludz (Muumlnchen 1998)
74) 아렌트가 염두에 둔 하드케이스는 라드브루흐가 이른바 ldquo법률적 불법rdquo 상태로 규정한
나치의 불법국가 상황으로서 이렇게 극히 예외적인 케이스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하드
케이스에 적용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별적 정의 요구에 부응함
으로써 예컨대 소급효를 금지하는 일반법률에 위배되는 상황과 유사한 갈등상황은 반
드시 극단적 상황에서만 생긴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75)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2 Bde Hrsg v U Ludz amp I Nordmann
따라서 그 척도는 전달가능성이며 거기에 딱 맞는 것은 공통감각(상식)이다rdquo77) 오
늘날 공통감각은 아렌트도 지적했듯이 더 이상 그것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얻고자 노력해야 하는 그 무엇이 되어버린 듯하다 그러나 공통감
각이 무너진 시대를 겪었던 아렌트는 사유의 전환 내지 확대를 위한 진정한 발판
을 다시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에서 구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78)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실천철학의 전통에서는 세계와의 관계 그리고 자기와의 관
계를 공통감각을 척도로 설정해가는 판단자가 lsquo하는 사람rsquo인지 아니면 lsquo보는 사람rsquo
인지 즉 lsquo행위자rsquo인지 아니면 lsquo관찰자rsquo인지를 둘러싸고 의견이 대립되어 왔다 lsquo하
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자가 lsquo정치가rsquo 쪽에 더 가깝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
자는 lsquo철학자rsquo 쪽에 더 가깝다 lsquo하는 사람rsquo은 주로 사회의 일반적 상식 건전한 인
간이해 세론(doxa)을 판단의 척도로 삼는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적 경험은 전체주
의 하에서는 건전한 인간이해도 집단화된 대중감정에 따른 오도된 인간이해 앞에
무너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판단에서 사실로서의 상식이나 합의 또는
법해석공동체 내부의 지배적 제도적 관점이라는 판단 척도만으로는 일반규칙으로
부터 오는 모순을 다루기 어렵다 여기서 판단자는 ldquo확대된 사유방식rdquo을 추구해야
하는데 아렌트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을 lsquo보는 사람rsquo의 판단과 결합시킴으로써 법
관을 위한 사유의 확대를 시도한다79) lsquo하는 사람rsquo이 사실로서의 일반적 상식이나
인간이해 차원에 비추어 판단한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ldquo이
상적 규범적 상식rdquo80)을 추구하고자 한다 판단을 거쳐 법적 효과를 결정하는 법관
76)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을 해석학적 순환이론을 적용하여 분석하면서 칸트의 판단력 비
판에 의거하여 아렌트가 판단력의 특수한 경우로서 법관의 ldquo성찰적 판단력rdquo이라는 새
로운 판단유형을 제시했다고 지적한 연구서로는 Stefanie Rosenmuumlller Der Ort des Rechts Gemeinsinn und richterliches Urteilen nach Hannah Arendt Nomos (2013) 참조
77) Hannah Arendt Das Urteilen 92-93면78) 아렌트가 판단의 차원을 심화시키는 발판으로 삼는 상식은 sensus communis로서
communis opinio와는 다르다는 데 대해서는 Marieke Borren ldquolsquoA Sense of the Worldrsquo Hannah Arendtrsquos Hermeneutic Phenomenology of Common Senserdquo International Journal of Philosophical Studies Vol 21 No 2 (2013) 225-255
79) Hannah Arendt Das Urteilen 76면80) Rosenmuumlller 앞의 책 234면 이하 여기서 아렌트는 상식개념을 이중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에서는 경험적 개념으로 보다 성찰적 판단
단계에서는 규범적 개념으로 사용한다
9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은 관찰자로서 판단하면서 동시에 행위자로서 판단에서 법적 결과를 결정하는
사람이다 관찰자인 동시에 행위자라는 이중적인 역할을 하면서 법관은 자신의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 반추한다81) 이 반추과정에서 법관은 한편으로는 포섭
하는 판단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고려해야 할 관점들을 끌어들이면서
자신의 직책을 마지막까지 수행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통제하면서 자신의 앞서의
(포섭) 판단을 정정해나간다 그래서 법관 자신이 lsquo보는 사람rsquo과 lsquo하는 사람rsquo의 만
남의 장소가 되는 것과도 같다 ldquo이 보는 사람은 모든 하는 사람 안에 자리 잡고
있다helliphellip이 비판적 판단능력이 없이는 행위자 혹은 해결자는 보는 사람으로부터
풀려나 종내는 지각되지조차 못하게 될 것이다rdquo82)
사람들은 자신 일에 있어서는 비당파적일 수는 없다 따라서 ldquo자신의 일에 대한
판단에서는 내면의 심판자 혹은 내면의 법정을 가질 수 없다rdquo83) 그러나 다른 사
람의 일을 반추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필히 비당파적이어야 하며 또 비당파적이 될
수 있다 이때 그는 비로소 내면의 심판자를 가지게 된다 즉 양심의 문제에 처하
게 되는 것이다 판단에 있어서 양심이라는 것 즉 양심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남
의 일에서 ldquo증인rdquo 혹은 ldquo비판적 친구rdquo로서 관찰하고 행위하는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이다84)
아렌트의 성찰적 판단모델은 나치 불법국가 경험의 산물이다 통상의 규칙이 파
괴된 상황 통상의 범죄유형에 포섭되지 않는 극히 예외적인 범죄적 상황에서 법
원은 기존의 판단척도를 해석학적 출발로 삼아서는 안 되고 이때에는 질적으로
동의가능한 합의형식을 찾기 위해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으로 돌아가
진정으로 사유 즉 철학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렌트가 판단을 일반화해주는
거점이자 해석학적 출발점으로 삼은 공통감각(상식) 개념은 칸트철학에서 ldquo비사교
적 사교성rdquo 개념의 위상과 비슷하다85) 이 지상에서 인간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다른 것을 원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모여 살아야만 하는 존재다 이 비사회성 요
청과 사회성 요청의 동시성 때문에 인간에게는 제도적인 안착이 더없이 중요하며
법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실존과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만든다 판단의 기
81) Leora Y Bilsky When Actor and Spectator Meet in the Courtroom Hannah Arendt and Eichmann in Jerusalem G N Arad Hg (Bloomington 1996) 137면
82) Hannah Arendt 앞의 책 85면83) Hannah Arendt 앞의 책 76면 84)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657면85) Rosenmuumlller 앞의 책 1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5
초를 보편적 인간경험에 둔다는 점에서 아렌트가 말하는 판단력은 드워킨의 헤라
클레스와 같은 초인적 천재성을 발휘하는 능력과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86) 아
렌트가 상정하는 이상적인 법관은 철학적이지만 철학자는 아니고 정치적이지만 정
치가는 아닌 사람이다
아렌트는 헌법국가의 권위도 상식개념에 기반을 두고 설명한다 그리고 민주적
정당성의 관점에서 입법의 우위를 인정하는 까닭에 성찰적 판단에 입각한 법관의
검증에는 한계가 있다는 태도를 견지한다87)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렌트가 제시한
법관의 성찰적 판단 유형에 대해서는 다양한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우선 이것이
예외 상황에서 적용되는 판단모델로 상정된 것이며 무엇보다도 ldquo규범적 상식rdquo에
대한 단일한 이해기반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법관 개인의 주관적 정치적 신념
이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길을 피할 수 없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성찰적
판단력은 결국 레토릭에 불과한 것인가 아렌트는 그러나 무엇이 ldquo특정 상황에 맞
는 공통감각(situierte Gemeinsinn)rdquo인지에 대한 공동의 인식은 가능하며 또 법관의
lsquo하는rsquo 판단에 들어있는 정치적 함의를 성찰적 판단력으로 검증하는 것도 가능하
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아렌트가 마지막 검증심급으로 원용하는 것이 바로 판
단에서의 양심의 심급이다 그것이 과연 동의할 수 있는 합의형태로서 충분한지를
스스로 검증하는 이 심급에서 판단자는 명령조로 자기에게 전해지는 소리를 듣게
된다 ldquo멈춰 나는 그것은 할 수 없어rdquo88) 판단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 멈추는 것
이 가능한 이 성찰적 심급에서는 칸트와 달리 할 수 없는 이유로써 결과도 고려
된다 lsquo보는 사람rsquo이 자기 안에서 지켜보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상황은 토마스 아퀴
나스의 양심론에 비추어 다음과 같이 묘사될 수도 있겠다 지적 본성을 가진 인간
존재가 보편법칙에 관한 지식을 개별 행위에 적용하기 위해 판단하고 선택할 때
행위자는 갈등 상황- ldquo그렇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rdquo는
상황-에 처하여 멈칫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데 이때 그는 단지 갈등하고
선택하는 역할만 하지 않고 갈등하고 선택하는 이 과정을 ldquo관찰하고 목격하는 증인rdquo
의 역할도 한다는 것89)
86) 드워킨에 의하면 해석적 탐구는 ldquo어떠한 증명도 허용치 않고 어떠한 수렴도 약속치
않는 탐구rdquo이다(드워킨 정의론 203면)87) Rosenmuumlller 앞의 책 30면88) Hannah Arendt Uumlber das Boumlse Eine Vorlesung zu Fragen der Ethik Hrsg v J Kohn
(Muumlnchen 2003) 52면89) 지적 행위자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자신의 내면의 갈등과 선택과정을 바라보는
9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Ⅹ 방법에서 덕목으로
헌법 제103조는 한 면으로는 헌법과 법률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 면으로 해석자에게 여하한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lsquo제약
의 차원rsquo과 lsquo자유의 차원rsquo을 동시에 담고 있다 법관은 자유로울 때에라도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며 법에 구속될 때에라도 전적으로 구속되지는 않는다는 뜻이
기도 하다 이 lsquo자유와 구속의 변증법rsquo에 비추어 지금까지 논한 주제에 대해 몇 가
지 입장을 정리해 보자 첫째 법관에게 있어서 독립은 확정된 원칙이나 그것자체
로서 달성해야 할 최종목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법관의 독립은 완성형이 아니라
끊임없는 진행형의 과제로서 그 직무수행에 대한 신뢰와 병행하여 점진적으로 이
루어지는 것이다 둘째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에 있어서 구속은 법률에 무조건 복종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판결에 대한 윤리 (내 ) 확신과 함께 법률에 복종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법관이 실정법률에 반하는 결정을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법
관은 객관성을 빌미로 법률 뒤에 숨는 익명적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
미하는 것이다 셋째 독립적인 법관의 양심은 lsquo법과 상충한다rsquo기보다는 lsquo법을 실
한다rsquo는 의미를 지닌다 넷째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서 반추하면서 lsquo하는
사람rsquo인 동시에 lsquo보는 사람rsquo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성찰 인 인물상으
로서만 설정될 수 있다
해석적 탐구는 우리의 이해를 넓히기 위해서 필요하지만 이해에서의 우리의 피
할 수 없는 한계를 깨닫기 위해서도 필요했는지 모른다 엥기쉬는 법해석방법론에
대한 저술의 마지막 부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ldquo방법론에 천착하다 보면
애초의 문제였던 법률로부터 훨씬 더 먼 곳으로 이끌려 간다rdquo 지금까지 필자는
법관의 법해석과 관련하여 방법론의 의의와 한계를 논하고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과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에 비추어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이 법해석론
의 불가결한 부분으로 들어가게 되는 이유도 밝혔다 그리고 해석적 차원에서의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는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행위를 목표로 하는
탐구라는 것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필자는 이 모든 논의들을 매개로 방법론이 우리를 더 멀리 덕
목론으로 데려가는 과정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드워킨의
상황에 대한 이 묘사 부분은 이경재 ldquo토마스 아퀴나스의 양심 개념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375면을 참조했다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7
헤라클레스를 잠시 불러올 필요가 있다 해석문제를 누구보다도 더 진지하게 다룬
드워킨은 마지막에 헤라클레스를 내세운다 주어진 사건에서 무엇이 법인지에
대해 도덕적 의식을 가지고 법실무 전체를 원리정합적으로 정당화하라는 요청에
부응하여 자신의 신념에 기초한 결정을 내리는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의 구성적
해석에서 법관의 양심이 기능하는 국면은 어디일까 송민경 판사는 드워킨의 구성
적 해석론에 입각하여 양심을 구체적 법논증과정의 일부로 포함시키면서 이때 양
심이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라는 지침으로 기능한다고 설명한다90)
그런데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는 지침으로 기능하는 것을 양심이라
고 보게 되면 양심의 문제는 논증적 합리성의 차원 즉 논증의 성공으로 종결짓게
된다 그러나 법적 결정의 정당성 문제는 법관의 입장에서는 논증의 성공 문제로
다루어지지만 법관의 성공적인 논증에 따른 판결의 결과로부터 영향을 받는 시민
의 입장에서 보면 성공적인 논증만으로는 해석이 정당화된다고 볼 수는 없다
성공적인 논증은 법적 결정의 정당화에 필수적이기는 하나 충분한 조건은 되지 못
한다 해석이 궁극적으로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사법적 도덕성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 사법적 도덕성은 헤라클레스가 지침으로 삼는 원리적 도덕성의 실현과는 다른
것이다 만약 패소한 시민이 다른 헤라클레스에게 갔더라면 즉 다른 법원리에 기
초한 신념을 토대로 다른 결정을 내린 다른 법관에게 갔다면 그는 승리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왜 헤라클레스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하
는지에 대한 답이 필요한 것이다91) 헤라클레스가 실무에 대한 최상의 정당화를
도모하는 법적 이상주의자라면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법원 문을 두드린 시민도
어느 의미에서 ldquo법이상주의자rdquo92)이다
법해석 작업의 주관의존성이라는 불가피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재판이라는 특수
한 공적 활동이 법관이라는 특수공직자에 의해 운영되고 유지된다는 것은 시민들
-소송에서 패한 시민들을 포함하여-편에서 보면 법을 해석하는 법관에 대한
신뢰가 전제된다는 것이다 법관의 독립적 활동은 법관의 특권 행사가 아니라 사
90) 송민경 앞의 글 38면 20면91) 사법적 덕목과 연관하여 이 부분을 다룬 글로는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5면 이하
92) 법원 문을 두드리는 시민에 대한 이 표현은 심헌섭 ldquo법조윤리의 좌표 거시적 관점에서 본 전문윤리로서의 법조윤리rdquo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편 法律家의 倫理와 責任 박영사
(2003)에 나온다
9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법과정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응당한 몫이 돌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존중하는 바탕에는 일종의 상호성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 그 또한
시민이기도 한 법관이 동료시민들에 대해 가지는 배려와 존중의 원칙이 그것이다
여기서 사법적 덕목에 대해 자세히 논할 수는 없다93) 예의 성실 신중 절제
용기 공정 겸손 의사소통 능력 형평 시민에 대한 배려와 존중 등등 이것들은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바탕을 이루는 양심의 덕목들일
것이다 양심이라는 단어가 그렇듯이 덕목이라는 단어도 오늘날 진부해진 표현
이며 거의 사라져가는 단어다 윤리적 태도로서의 덕목은 관찰하기도 배우기도
어렵다 그러나 올바른 판단과 결정이 법관이라는 개인을 거치지 않고 법령집
자체로부터 반사적으로 튀어나오지 않는 한 이 덕목들을 내면화하고 지향하려는
태도 없이는 lsquo종국적인rsquo 판단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써 필자는 헌법 제103조를 통해 법해석에서의 방법론의 문제가 덕목론이라
는 다음 과제로 이어진다는 점을 밝혔다고 생각한다
투고일 2016 4 6 심사완료일 2016 5 18 게재확정일 2016 5 20
93) 법관의 개별적인 덕목들과 이것들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는 박은정 강태경 김현섭 바람
직한 법관상의 정립과 실천 방안에 관한 연구 법원행정처(2015) 제5장 참조할 것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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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과 비 의 법철학 법문사(2001)
양창수 ldquo바람직한 법관상-기예와 지혜 사이rdquo lt근대사법 및 한성재판소 설립
이성의 활동rdquo ldquo인격의 자기인식rdquo ldquo본래적인 자기 자신으로 불러 세우는 염려의
소리rdquo ldquo너와 내가 함께 잘못을 감시하고 경계하는 공동의 눈초리rdquo ldquo근원적인 자
기의 요구rdquo 등등22) 이런 다양한 견해들은 양심 개념을 형식적인 측면에서 접근하
는지 아니면 내용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지 양심 판단에서 개인의 주관적 요소를
강조하는지 아니면 보편성 내지 소통가능성을 더 중요시하는지 양심의 권위를 내
부에서 찾는지 아니면 외부의 권위를 사회화 내지 내면화한 결과로 보는지 양심
에 따른 결단을 감정의 작용으로 보는지 아니면 이성도 같이 작용하는 것으로 보
는지 등에 따라 여러 갈래를 이룬다
칸트의 근대 주체철학의 영향을 받은 이래 오늘날 양심논의에서는 대체로 양심
의 개인적 주관적 요소가 강조되는 가운데 양심을 개인에게 도덕적 행위 동기를
유발하고 자기반성을 가능하게 하고 개인의 판단과 자기결정에서 최종심급의 역
할을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대표적으로 칸트는 양심을 각 주체로서의 개인의
ldquo내면에 자리 잡은 자율적 심판관rdquo으로 일컬으면서 행위주체가 자기 안에 내재하
21) 이덕연 앞의 글 361면22) 진교훈 외 19인 양심 고 로부터 에 이르기까지의 양심의 의미 서울대학교출판
문화원(2012)
7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는 도덕법칙에 스스로의 행동을 적용시키는 것이 양심이라고 말한다23) 이때 양심
은 스스로 도덕법칙을 정립할 수 있는 선의지를 가진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지니는 일종의 의무의식으로 여겨지며 자신이 자신을 평가하는 것이 양심이기 때
문에 이 주관적 확신을 평가하는 외부의 기준은 없는 셈이다24) 이렇게 양심을 주
관성의 형식으로 가져갈 때는 주관적으로는 옳은 양심에 따른 확신이라 하더라도
인식주체가 가진 한계 등으로 인해 내용상 오류가 가능하다는 문제를 안게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칸트와 달리 양심문제를 개인의 주관적 도덕의식 이상의 차원에
서 다루고자 하는 철학자들은 간주관성의 차원에서 보편성을 지니는 양심개념을
추구한다 이런 방향에서 파악한 양심 개념에 대해 lsquo객관적rsquo 양심이라는 표현을 쓸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양심과 관련하여 lsquo객관적rsquo이라는 표현은 인식
주체 밖에 뭔가가 존재한다는 인식론적 존재론적 가정을 상정한다는 점에서 문제
가 있다 인식 주체 밖에 객관적인 그 무엇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양심이 아니라
윤리규범일 것이다 법관의 양심을 lsquo객관적rsquo lsquo법조적rsquo 양심으로 표현하는 것도 이런
의미에서 부적절하다25)
그런데 철학전통 안에는 양심을 주관성의 형식으로 끌어들여 절대화하는 시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서양에서 근대 이전의 철학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개인의 주
관적 도덕의식을 넘어서는 차원에서 양심을 논하는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우선 어
원상으로도 con-scientia syn-deresis의 con과 syn에서 알 수 있듯이 양심은 우리
내면의 법정에서도 공공성 내지 공동체성 즉 ldquo함께 안다rdquo라는 요소를 지니고 있
었다 이 어원은 양심의 규제적 기능에는 우리가 올바르게 행했는지 혹은 그릇되
게 행했는지를 지켜보는 ldquo공동의 인식rdquo이 있다는 자각이 포함됨을 암시한다 자기
안에서 lsquo보편적인 자기rsquo를 확신하는 과정을 상호인정과정과 연결시키고자 하는 양
심관은 공동의 윤리로서의 인륜성(Sittlichkeit)의 입장에서만 ldquo진정한 양심rdquo이 가능
하다고 보는 헤겔(G W F Hegel)의 양심론26) 타자윤리학에 근거한 레비나스
23) Immanuel Kant 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 (윤리형이상학 정 백종현 역 아카넷(2005) 134면 이하) 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Philosophische Bibliothek A 175 (2003) 215면 이하
24) 김관영 ldquo칸트에 있어서 양심의 문제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144면25) 예컨대 성낙인 교수는 법관의 양심을 ldquo법관이 적용하는 법 중에서 객관적으로 존재하
는 정신을 가리킨다rdquo고 설명한다 앞의 책 713면 이 객관적 정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26) Hegel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sect137 헤겔의 양심론에 대해서는 최신한
ldquo헤겔 야코비 양심의 변증법rdquo 헤겔연구 제23호(한국헤겔학회 2008) 86면 이하 참조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75
(Emmanuel Levinas)의 양심론27) 그리고 행위주체들의 담론적 소통과 사회적 행위
에 대한 책임에서 출발하는 아펠(Karl Otto Apel)의 양심론28)에도 엿보인다 동양의
양심을 ldquo세상 사람을 향해 움직이는 마음rdquo으로 묘사하면서 양심이 있어서 책임있
는 인식의 기능에 주목한 사상가도 있다30)
서양에서 근대를 전후로 양심의 주관화 경향이 강하게 대두된 데에는 종교분쟁
등의 영향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은 가치상대주의라는 시대정신의 영향 하에
양심은 도덕적 판단과 인격을 근거지우는 현상으로 파악되면서도 내용적 측면보다
는 형식적 측면에서 고찰되고 간주관적 논의가능성이 배제된 채 그 논의의 폭이
좁아져 거의 개인의 자기결정권 영역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우리 헌법 제19조의
양심의 의미도 이런 자기결정에서의 최종심급 역할이라는 맥락에서 읽히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살펴봤듯이 주관화의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기 이전의 사유전통에
서는 양심의 자기결정 능력보다는 스스로에게 도덕적 의문을 품는 능력 ldquo함께
안다rdquo라는 책임성 쪽에 더 비중이 놓여 있었다 이런 사유배경에 비추어 본다면
헌법 제19조의 양심은 근대 주관화의 영향의 산물로 이해할 수 있고 이에 비해
헌법 제103조에서 법관과 관련하여 언급된 양심은 근대 이전의 ldquo함께 안다rdquo의 사
유전통의 흔적을 지닌 개념으로 볼 수 있다
Ⅳ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의 완화 경향
앞에서 살펴봤듯이 역사적으로 법관의 독립이념은 법관은 오로지 법률에만 구속
된다는 것을 전제로 탄생했다 그리고 이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은 법률의 총합으로
27) 레비나스에 대해서는 김연숙 ldquo레비나스의 양심론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제3부 제3장 참조28) Karl Otto Apel From a Transcendental Semiotic Point of View Manchester University
Press (1998) 52면 259면 양심이 지니는 공적 관찰이나 감시기능 부분에 주목한
Apel에 대해서는 백춘현 ldquo아펠의 양심론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344면 이하29) 맹자의 양심론에 대해서는 장승희 ldquo맹자의 양심론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제1부 제1장
참조30) 왕수인은 양심과 양지(良知)라는 표현을 함께 썼다고 한다 ldquo남의 아픔을 느끼기 위해
서는 예민하게 lsquo생각rsquo해야 한다rdquo 여기서는 이혜경 ldquo왕수인의 양심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79면에서 재인용
7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서의 법질서는 통일적이고 자기충족적인 시스템을 이룬다는 가정에 기초하고 있
었다 그러나 이 가정은 그 자체로 애초 한계를 지닌 것이기도 하지만 법의 생태
적 기반이 변하면서 이 법률구속원칙은 점차 상대화 내지 약화되는 방향으로 나아
가게 되었다 입법자를 기다릴 수 없는 빠른 사회변화 자유법운동 입법양의 폭발
적인 증대 일반조항 도입 등 입법스타일의 변화 복지국가 대두 사회정의의 요구
헌법재판 활성화 등의 흐름은 법관의 법률구속메커니즘이 작동하기 어려운 여건을
만들어 가게 된 것이다 이른바 lsquo법관법rsquo의 대세 흐름이 나타난 것이다 특히 지난
수십 년간 확대된 입법영역은 형법과 같은 규제입법과 달리 사회복지생활보호
건강 증진남녀평등청소년보호장애인보호적극적 평등조처 등처럼 정치적 비전과
목적을 담은 한마디로 정책촉진적 성격을 지닌 법률들이었다 이와 같은 야심찬
입법스타일은 법적용단계에서 법관이 바람직한 제도 및 정책 내용에 대해 고려케
함으로써 목적적 법논증으로 기울게 하고 구체적 이익을 비교형량하는 심사방식
을 확대시키는 등 좁은 의미의 실정법률 해석보다는 법형성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 것이다31) 특히 이 흐름은 20세기말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법실증주의에
제동이 걸리는 분위기와 겹치면서32) 법철학에서도 전통적인 포섭논리나 삼단논법
은 실제로 법관들에게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지적과 함께 법관의 법률구속원
칙에 회의적인 성향의 논의들이 강세를 보이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법발견 과정에
대한 심화된 통찰을 통해 lsquo선이해rsquo의 문제를 재평가하게 만든 철학적 해석학과 문
언의 의미론적 구속력에 회의를 제기케 한 언어이론은 법철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들 이론에 입각하여 이제 법의 흠결 시와 같은 예외적인 상황에서 법관
의 법형성이 불가피하다는 수준의 주장을 넘어 법률텍스트를 통한 구속가능성 자
체를 의문시하는 주장까지 나오게 되었다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의 실현에 대한 기대가 점점 약화되고 그래서 누구의 표현
대로 법률이 해석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해석이 법률을 지배한다고 말할 정도가
31) 사회변화에 따른 법관의 역할 변화에 대해서는 박은정 왜 법의 지배인가 돌베개(2010) 제6장을 참조할 것
32) 울프리드 노이만(Ulfrid Neumann)은 지난 2015년 10월 1일 고려대학교 초청강연에서
ldquo실증주의 이후 시대의 법률과 판결rdquo이라는 주제로 발표하면서 법학적 사고가 ldquo법실
증주의 이후의 시대rdquo로 넘어갔다고 진단하고 그 배경으로 세계화 등의 흐름으로 국제
상거래관습법(lex mercatoria)처럼 입법당국에 의한 제정이 아닌 사회적 실천에 의거한
법제정 사례 법원리의 중요성 대두 인권사상 증대 등을 들고 있다 그러면서 법실증
주의로부터 멀어지는 만큼 법관의 법률구속원칙도 상대적으로 완화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77
되면 다시 제기될 수밖에 없는 물음이 바로 입법기관과 법적용기관 사이의 권력
균형 문제다 이 권력 균형은 특히 법 이라는 개인에 의해 매개된다는 점에서 문
제가 된다 오늘날 ldquo사법국가rdquo ldquo법관공화국rdquo ldquo사법엘리트rdquo ldquo사법의 정치화rdquo 등을
지적하는 소리는 입헌민주주의 기획의 초기단계에서 일찍이 해결했다고 여겼던
문제들이 다시 등장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법관의 법률구속의 전제 및 그 가능성
법원의 중립성 법관의 민주적 정당성 사법관료주의 등의 문제가 그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물음이 떠오른다 해석자의 자유를 제
한하고 법관의 법률구속을 보장할 확고한 법해석방법론은 가능한가 법관의 법률
구속에 관한 기술적 제도적 보장책은 가능한가 필자는 이 물음들에 대체로 회의
적인 전망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물론 법해석방법의 무용론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법률에 구속되는 법관상이 약화되고 앞으로도 점점 더 약화될
것이라는 전망 하에 어느 때보다도 더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될 법관의 독립 문제
를 염두에 두면서 법해석방법론의 문제를 재검토하고자 한다
Ⅴ 법해석방법론의 문제점과 한계
법이 있는 곳에 해석이 있다 법학의 강점도 해석학적 잠재력에 있다 법관의 임
무는 법률을 적용하기 위해 법문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법해석방법론은 법
해석과정에서 법관의 자유에 일정한 제약을 가하고 법관의 법률구속이념을 실현하
기 위해 고안되고 발전된 것이다 해석에서는 무엇이 최선의 해석인지를 둘러싸고
언제나 논쟁과 불일치가 생기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해석작업은 인간의 판단과 행
위의 영향 하에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법관이 따라야 하는 법률 자체에는 이미 법적용자를 법률에 대해 어느 정도 독
립적이게 만드는 여러 표현방식들이 들어 있다 예컨대 lsquo야간rsquo lsquo소음rsquo lsquo위험한 물건rsquo
lsquo적절한 조치rsquo 등 개념의 내포와 외연이 확정적이지 않은 법개념들이 대표적이다
이런 불확정적 개념들은 법명제의 구성요건 단계에만 들어 있는 게 아니라 법률효
과에서도 등장한다 이른바 lsquo규범적 개념rsquo들도 그런 표현방식에 속한다 lsquo음란한rsquo
lsquo건전한rsquo lsquo불명예스러운rsquo 등의 개념들은 기본적으로 지각가능한 대상을 서술하는
개념과 대비하여 의미내용이 가치판단에 근거할 때만 파악된다는 점에서 규범적
이다 이때 가치판단은 반드시 주관적 개인적 평가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른 사람
7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들의 평가도 포함할 것이지만 어쨌든 이 판단과 관련한 어느 정도의 불확정성은
감수해야 한다 법관의 법률 구속 의무를 느슨하게 만드는 이런 개념군에는 재량
도 포함된다 오늘날 재량개념은 ldquo법적으로 구속되는rdquo 재량으로 이해되지만 이때
판단의 여지 안에 들어오는 여러 대안들 가운데서 최종 혹은 최선의 대안을 확정
하는 데 있어서 결정자의 개인적 확신을 허용할 수밖에 없다 일반조항도 표현 그
대로 높은 일반성을 띰으로써 법적용자로 하여금 자기 앞에 놓인 사례를 광범위한
사례집단들에 적응시켜가면서 법률효과를 귀속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33)
위에서 언급한 불확정 법개념이나 규범적 개념 등을 적용하는 데는 가치판단
요소가 수반된다 이런 개념들을 적용할 때 법관은 일정한 범위 안에서 입법자를
대신하여 가치판단 내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것이다 또 법관
은 법의 lsquo흠결rsquo을 보충하거나 법질서 안에서 이따끔 발견되는 lsquo오류rsquo를 수정해야
할 부득이한 상황에도 처하게 된다 이때는 법관은 스스로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찾아 나서야 한다 lsquo법의 일반원칙rsquo lsquo법의 정신rsquo lsquo평균인의 척도rsquo lsquo비례성원칙 lsquo이익
형량rsquo 등은 이때 법관이 의존하는 사유 장치들이며 이것들을 원용하는 데도 가치
판단적 요소가 개입한다 이때 판단자는 무엇이 사실상 효력을 갖고 있는 윤리적
견해인지 확인해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사실로서의 합의가 올바른 법적 결론에
도달하게 하는지에 대해서도 숙고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법적용자는 때로는 평
균인 테스트 같은 객관적인 척도에 의지하지만 또 때로는 개인적 견해를 더 많이
펼칠 수 있는 일정한 판단의 여지를 가지게 된다
이렇게 해석과정에서 불가피한 lsquo판단의 여지rsquo 즉 해석과정에 불가피하게 개입되
는 가치판단 요소 때문에 ldquo해석의 건전성rdquo을 둘러싸고 논란이 생기고 해석의 정당
화와 관련하여 회의가 생긴다 가치판단과 관련된 부분이 불가피하게 주관적 요소
를 끌어들이게 되고 이로 인해 법규범의 효력이 상대적이고 불확실한 영역으로 떨
어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단자는 자신의 결론이 불확실성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자신의 해석에 대한 정당화를 포기할 수 없다 법을
해석한다는 것은 ldquo그 법률을 특정 사안에 적용하는 것을 정당화한다는rdquo34)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확정적인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사례에서도 요구되는
33) 불확정적 개념 규범적 개념 재량 일반조항과 관련한 자세한 설명은 칼 엥기쉬 법학
방법론 안법영윤재왕 옮김 세창출판사(2011) 182면 이하에 잘 정리되어 있으며 필
자도 이 부분을 참조했음을 밝힌다 34) 닐 맥코믹 로버트 서머즈 ldquo해석과 정당화(上)rdquo 박정훈 역 법철학연구 제5권 제2호
(2002) 18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79
개인적인 단은 도덕적 상대주의자들이 말하는 개인적인 취향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해석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올바른 해석기준을 수립하고자 법률가들은 각
기 지금까지 다양한 해석방법에 의존해 왔다 올바른 해석을 위한 확고한 기준을
수립할 수 있다는 것은 찬성하는 혹은 반대하는 해석논거들 사이의 상대적 비중을
결정하는 명확한 규칙을 수립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즉 어느 한 해석
논거가 다른 해석논거에 의해 배제되는 조건이나 선택된 해석을 정당화하는 데
필수적인 한 논거가 다른 논거보다 우월하기 위한 조건 한 논거에 누적을 통한
비중이 부과되는 조건 등을 제시해줄 일관된 정보와 지침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
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여러 해석방법들 사이에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다는 것
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시도는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했다 동일한 유형의 논거일지
라도 각각의 정당화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비중을 갖게 될 뿐더러 언어적 해석
방법 체계적 해석방법 목적적 해석방법 등으로 제시되는 여러 해석방법들이 한
줄로 세우기에는 한마디로 너무 이질적이다35) 물론 이들 해석논거들의 상호작용
을 검토하면서 잠정적인 서열을 제시하는 것은 가능할 수도 있다36) 그러나 이 서
열은 기껏해야 ldquo해석을 위한 노력의 경제성 원리rdquo 정도를 말해 줄 뿐이기 때문에
쉽게 바뀔 수 있다37)
드워킨이 옳게 지적한 대로 기본적으로 가치판단과 관련된 해석방법들은 위계
적일 수 없고 ldquo상호지지적rdquo인 관계에 놓일 뿐이다38) 이 때문에 방법론적 규칙을
세우려는 시도는 언제나 무망해지는 것이다 또한 법해석에 있어서 언어란 단어의
의미를 식별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 행위의 의미를 식별
하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론 풀러(Lon Fuller)가 지적한 대로 ldquo언어
를 통한 의사 전달은 어느 한 사람으로부터 다른 사람에게로 의미가 든 상자를 발송
하는 식rdquo39)은 아닌 것이다
35) 울프리드 노이만 ldquo실증주의 이후 시대의 법률과 판결rdquo 강연문(주 32) 노이만에 따르
면 예컨대 체계적 해석 방법에 따른 논거도 그것이 논리적 일관성 획득의 맥락에서
인지 아니면 가치평가의 일관성 보장이라는 맥락인지에 따라 전혀 다른 비중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36) 대체로 언어적-체계적-역사적-목적론적 해석방법의 순서로 언급되는 데 대해서는 심헌섭
분석과 비 의 법철학 법문사(2001) 217-218면37) 맥코믹과 서머즈는 비교법적 연구결과를 통해 올바른 해석을 위한 지침 수립은 어느
국가의 법체계에서도 지금까지 성공적이지 못함을 밝힌다(앞의 글 210면)38) 로널드 드워킨 정의론 박경신 옮김 민음사(2015) 309면
80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결론적으로 해석방법론으로부터 법관은 불확실성을 떨쳐 낼 수 있는 확실한 정
보제공을 기대하기 어렵다 해석논거를 위한 결정적인 기준을 제공하는 해석방법
에 대해 불안정한 형태로나마 이론적 합의를 찾기 어렵다면 엥기쉬의 지적대로
해석방법론은 공중에 떠있는 상태다40) 법학에서 방법론의 융성은 역설적으로 법
학이 이 부분에 취약하다는 암시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해석자로서의 법관을
최종적으로 인도하는 전략은 무엇일까 다음과 같은 고민을 들어보면 적어도 그것
은 방법론상의 합의에 대한 기대 같은 것은 아닌 것 같다 ldquo우리들은 일정한 결론을
내리고도 그 결론이 가장 적절sdot타당한 것이라고 보증받을 수 없다 그 결론을 낸
시점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들은 자기의 결론이 그러한 불확실성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그것을 자기의 전인격적 책임 아래 끝을 내고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비판과 평가에 맡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rdquo41)
해석방법론이 공중에 떠있는 상태라면 법관을 법률에 구속시키기 위한 방법론
적 보장책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런 가운데 ldquo자기의 전인격적 책임 아래rdquo ldquo사려
깊고 균형잡힌 총체적 관념rdquo ldquo인생 그 자체로부터 지식rdquo 등에 대한 호소를 듣는다
이것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법발견으로 불리든 법인식 혹은 법형성으
로 불리든 법적으로 올바른 결정을 이끌어낸다는 것은 순순히 lsquo앎rsquo의 문제만은 아
니라는 것이다 실천철학의 전통 용어를 빌어서 말한다면 그것은 이론지 이상의
실천지를 요구하는 활동이다 즉 법관의 해석활동은 이론지와 실천지를 결합하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이 주제로 다가가는 한 우회로로서 우선 지적 활동으로서의
법관의 해석활동의 특성에 대해 살펴보자
39) 론 풀러 법의 도덕성 박은정 옮김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2015) 314면 40) ldquo그러나 해석론 전체에 대한 확고한 이론적 토대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서열관계에
관한 모든 이론들은 여전히 공중에 떠 있다rdquo 엥기쉬 앞의 책 137면41) 사법연수원 법조윤리론(2014) 31면 그밖에 Benjamin N Cardozo The Nature of
Judicial Process Yale University Press (1921) ldquo언제 하나의 이익이 다른 이익을 능가
하는지를 묻는다면 hellip 경험과 연구와 성찰로부터 요컨대 인생 그 자체로부터 그 지식
을 얻지 않으면 안된다고 답할 수 있을 뿐이다rdquo(여기서는 법조윤리론에서 재인용) 또한 맥코믹서머즈 ldquo해석과 정당화(下)rdquo 박정훈 역 법철학연구 제6권 제1호(2003) 348면 ldquo해석은 간주관적으로 승인된 모든 법적 가치들에 대하여 사려깊고 균형잡힌
총체적 관념을 획득하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제대로 행해질
수 있다rdquo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1
Ⅵ 법관의 해석활동 실증주의의 대척점
앞에서 언급한 대로 해석에서는 무엇이 최선의 해석인가를 둘러싸고 언제나
논쟁과 불일치가 따른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누군가가 텍스트를 해석한다고
말하는 순간 그는 실증주의의 대척점에 서게 된다 실증주의과학의 의미에서는 논
쟁의 여지가 있는 것은 원칙적으로 과학일 수 없기 때문이다 법실증주의사고에서
해석 문제가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법을 근본규범에 입각
한 자기준거적인 구조로 보는 한스 켈젠(Hans Kelsen)의 순수법학이나 법적용과정
을 규칙에 의해 지도되는 과정으로 보는 하트(H L A Hart)의 분석법학에서 해석과
관련한 어려움은 다루고 있지 않다42)
켈젠은 순수법이론(Reine Rechtslehre)에서 정당한 해석만이 허용된다는 주장
은 허구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면서 해석의 건전성 문제나 정당화 문제를 법이론
안에서 다루기를 거부한다 법을 자기준거적인 것으로 보는 관점은 한마디로 해석
(행위)주체의 입장을 부정하는 것이다 켈젠은 법단계설을 바탕으로 법적용을 상위
규범의 수권에 의해 하위규범이 구체화되는 과정으로 보고 여기에 헌법의 수권을
받아 법률을 제정하는 입법자도 포함시킨다43) 이에 따라 법적용도 입법의 한 형
태로 설명된다 법관에 의한 법형성의 동기는 이를테면 입법부가 유독 다른 법률
이 아닌 이 법률을 통과시키는 동기와 같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켈젠은 판단활동
에서 인지적 요소와 의지적 요소를 엄격하게 구별하면서 법관의 판단활동을 순전
한 의지활동으로 보고 이 법관의 활동에 대해서만 (유권)해석이라는 표현을 사용
하고자 한다 그리고 법학적 해석에 대해서는 법규범의 가능한 의미들을 밝히는
것으로서 법률에 따른 결정의 범위를 제한하는 정도의 의미를 부여한다
법단계설에 따르면 상위규범이 정한 일정한 범위 안에서의 수권에 따라 하위규
범이 작용한다 이때 상위규범의 수권은 모든 세부적인 내용들에 대해서까지 정해
42) 켈젠은 순수법이론(Reine Rechtslehre) 제1판(1934) 제6장에서 해석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부분과 거의 같은 논문 ldquoZur Theorie der Interpretationrdquo이 심헌섭 젠법이론선집 법문사(1990) 97면 이하에 실려 있다 윤재왕 교수는 Reine Rechtslehre 제1판과 제2판
(1960)을 비교하면서 해석방법으로부터 오는 규범적 구속력을 일체 거부하는 켈젠의
입장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윤재왕 ldquo한스 켈젠의 법해석이론rdquo 고려법학 제74호(고려
대학교법학연구원 2014) 525면 이하 하트의 대표적인 저서 법의 개념의 색인 항목에는
lsquo해석rsquo이 빠져있다 43) Hans Kelsen Allgemeine Staatslehre (Berlin 1925) 231면 이하
8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그래서 ldquo상위단계의 법생성으로부터 하위단계의 법생
산으로의 전환은 단지 상위단계가 정해 놓은 범위를 채우는rdquo 활동으로서 이때
ldquo언제나 상위단계에는 없는 내용적 요소가 하위단계에 추가되어야만rdquo 한다44) 이
내용을 채우는 부분과 관련하여 상대적 불확실성이 생기는데 켈젠은 이 문제를
ldquo자유재량rdquo의 문제로 다룬다45) 이는 하트가 규칙의 체계로서의 법체계를 완결된
구조가 아닌 열린 구조로 봄으로써 상대적 불확실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법관의
재량사항으로 보는 것과 같다 하트의 경우 중심부와 주변부라는 극히 단순화된
이분법을 끌어들여 이 불확실성 문제를 처리하고자 했다면 켈젠의 경우는 인식작
용과 의지작용의 이분법을 끌어들임으로써 이 문제를 처리하고자 한 것이다
판결을 법관의 의지활동으로만 이해하는 입장을 취하게 되면 법관에게 결정에
대한 근거 제시 요청을 할 수 없게 된다 마치 신의 심판에 대해 근거 제시를 요구
할 수 없듯이 말이다 결국 켈젠의 법이론상으로는 해석은 법학의 문제가 아니며
그러므로 분석적 법실증주의와도 무관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46) 이런 이유에서 그
는 정당한 해석만이 허용된다는 주장이나 해석방법만으로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에
이를 수 있다는 주장을 거부하면서 심지어는 상위규범에 제시된 범위를 넘어서는
해석의 효력조차 적극적으로 인정함으로써 어느 의미에서는 해석이론의 존재기반
자체를 무너뜨린다47)
켈젠이나 하트가 법이론에서 해석의 의미를 축소한 이면에는 이분법이라는 과도
한 사유의 단순화가 놓여 있다 그러나 켈젠이 생각하는 것처럼 판단에서 인식적
요소와 의지적 요소의 확고한 경계가 유지되는지는 의문이다 또 중심부와 주변
부에 대한 하트의 주장도 지나친 단순화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어쨌거나
켈젠이 합리적인 해석방법을 추구하는 법이론의 효용가치를 한껏 떨어뜨렸다고
해서 이제 어차피 정답은 없으니 법대에 앉은 법관은 자기 임의로 무엇이든 해도
된다고 켈젠이 주장했을 리는 물론 없을 것이다 법이론의 과도한 정당성 주장을
거부하는 데서 오히려 순수법학의 비판적 잠재력을 찾을 수 있다고 보는 학자들은
여기서 켈젠이 강조한 순수화 즉 탈정치화는 법학에 관한 것이지 법 자체에 관한
44) Kelsen Allgemeine Staatslehre 243면 여기서 번역은 윤재왕 앞의 글 535-536면에서
재인용45) Kelsen 앞의 책 243면 이하46) 켈젠에 있어서 법해석은 이론상으로는 법학보다는 정치학이나 사회학에 속하는 문제
에 더 가깝다고 지적한 견해에 대해서는 론 풀러 앞의 책 312면 47) 이에 대해서는 윤재왕 앞의 글 553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3
주장이 아니었음을 상기시킨다48) 즉 법 자체는 결코 정치와 분리될 수 없다는
점에서 법실무에 대한 학문이론의 무가치성을 주장하는 순수법학은 실무의 법
적용자로 하여금 자신의 활동이 정치적 활동임을 깨닫고 책임을 느끼게 하는 계기
를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윤재왕 교수도 ldquo켈젠 해석이론의 배후rdquo로 들어가 방법
이론으로부터의 어떤 구속력도 거부되는 데서 생기는 공백을 켈젠이 법관 자신의
자기이해와 책임성 문제로 채운다고 지적한다 ldquo법관의 판결은 결코 순수한 것일
수 없으며 그런데도 자신의 판결이 순수한 인식의 소산이라고 강조한다면 이는
정치적 책임의 회피이고 동시에 이데올로기적이라는 혐의에 노출되지 않을 수
없다rdquo49) 이 문구가 켈젠 자신으로부터 나왔다면 아주 좋았을 것이다 자신의 직
무의 중요성과 책임에 대한 실천적 깨달음은 해석의 정당화를 목표로 하는 인식적
노력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켈젠의 순수법이론의 기획은 서로
붙어 있는 양면을 떼어 놓으면서 이것을 다시 붙일 수 있음을 보여주려 한 것일까
Ⅶ 법관의 해석활동 가치판단과 lsquo정답테제rsquo 문제
켈젠처럼 실증주의적 사고에 따르든 아니면 비실증주의적 사고에 따르든 가치
판단 문제에서 해석방법만으로는 하나의 정당한 결정을 도출할 수 없다고 생각한
다면 이는 해석의 차원에서 가치에 대한 이해 시도는 진리 추구와는 무관하다는
주장으로 귀결되는가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해석대상의 의미에 대한
관심과 최선의 이해에 대한 관심은 아무래도 진리 추구라는 목표를 향한다고 봐야
한다 법적 결정은 물론 법관의 권한에 속하지만 그것을 정당화해주는 원천은 법
관이라는 lsquo지위rsquo가 지니는 형식적 권한이 아니라 판결이 정당하다는 근거 제시에
있다 법판단을 정당화해주는 모델은 울프리드 노이만(Ulfrid Neumann)이 지적한
대로 권위를 통한 정당화모델보다는 진리를 통한 정당화모델에 더 가깝다50)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재판활동은 엄연히 사법권이라는 공권력의 작용이라는 점에서
독립적인 법관의 재판활동을 그 ldquo계획적이고 진지한 진리 탐구 활동rdquo적 측면 때문
48) 법학의 탈정치화를 ldquo정치적 허무주의rdquo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데 대해서는 켈젠 ldquo순수법학이란 무엇인가rdquo 젠법이론선집 280-282면
49) 윤재왕 앞의 글 559면50) 울프리드 노이만 ldquo법 진리 권위rdquo 2013 4 6 한국법철학회 강연문 참조
8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에 학문의 자유의 한 표현으로까지 보려는 것은 무리다51)
오늘날 가치상대주의 분위기는 실천적 물음에서 진리 도달가능성에 대한 회의를
과장한다 그러나 진리가 뭐냐는 빌라도의 물음에 비록 확신에 찬 대답을 못한다
하더라도 법에서 진리 내지 정당성 추구의 포기는 파국을 의미한다 국가권력
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도 진리라는 규제이념이 전제되기 때문
이다 독립된 사법부가 심급구조와 집단적 의사결정의 형태로 스스로의 시정 기구
를 가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물론 진리에 대한 주장은 잠정적이고 수정가능하다
lsquo참이냐 거짓이냐rsquo는 오로지 서술적 명제에만 한정하여 검증될 뿐이라는 협소한
학문관을 따른다면 법학은 학문 안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법
학이 그런 협소한 학문관을 받아들여야 할 필연성은 없다 법해석자는 자신의 해
석적 판단이 진리라는 주장을 무한정 내세우지는 못하면서도 진리 추구를 피할
수 없다52) 론 풀러(Lon Fuller)의 지적대로 ldquo법이론이 최고의 법적 권위를 엄격하
게 정의하는 일에 큰 비중을 두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이 점이 모호해지면 필경
전체로서의 법체계가 와해될 수 있다rdquo53)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법을 민주
주의의 언어로 설명하는 오늘날 의회와 행정처럼 다수결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기
관도 아닌 사법의 소수 전문 엘리트의 지배를 권위모델만으로 정당화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법을 준수하는 시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시민들은 자신에게 유죄
판결을 선고한 세속의 법관에게 그 유죄판결의 근거를 알고 싶다고 요구할 수 있
으며 물론 당연히 요구한다
법관은 판결에서 논증을 통해 최상의 근거 제시가 이루어진 결정을 해야 한다54)
51) ldquo일부 사람들 중에는 이러한 법원의 권력기관적 성질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
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helliphellip 가끔 법관의 일을 조용한 방에서 소송서
류를 꼼꼼하게 읽어 파악한 사실에다가 법을 논리적으로 적용하는 단순히 지적(知的)인 작업이라는 시각에서만 말씀하시는 분을 만나면 그 분에게 재판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법대에 앉아 있는 법관이 어떻게 보이는지 물어보고 싶어집니다rdquo 양창수 ldquo바람직한 법관상 - 기예와 지혜 사이rdquo lt근대사법 및 한성재판소 설립 120주년 기념
1895sim2015 소통컨퍼런스 역사에 비춰 본 바람직한 법관상gt 자료집(서울중앙지방법원 2015 5 11) 15면 ldquo계획적이고 진지한 진리 탐구 활동rdquo이라는 표현은 라드브루흐에서
나온다 구스타브 라드브루흐 법철학 최종고 옮김 삼영사(2011) 238면 52) 드워킨 앞의 책 208면 53) 론 풀러 앞의 책 211면 풀러의 문장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ldquo하지만 이 경우도
위로부터의 지시 또한 목적의식에서 비롯되는 지적 활동을 완전히 생략할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rdquo54) 물론 진리 요청과 관련하여 개별 법관의 관점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며 민주국가에서
포기될 수 없는 진리 요청은 법학을 포함한 법체계 전체로 하여금 진리 요청에 어떻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5
이때 정당한 근거 제시가 이루어진 결정과 관련하여 그것이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
이라는 주장을 펼 수 있는가 앞에서 검토한 대로 켈젠의 순수법이론은 그런 주장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이에 비해 드워킨은 법적 판단에 있어서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이 원칙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ldquo정답테제rdquo로 불리는 이 주장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학자들이 지적한 대로 존재사실에 대한 주장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하나의 ldquo규제이념rdquo으로 받아들이는 게 맞는 것 같다 즉 드워킨의 정답테제
는 ldquo유일하게 정당한 결정rdquo이 존재한다는 데 대한 이론적 탐구라기보다는 실무에
서의 법관의 주관적 태도에 부합하는 이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법관은 자신의 판결활동과 관련하여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모든 사건
에서 오직 하나의 결정만이 정당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 정답에 가까이 가기 위
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55)
드워킨의 말대로 가치판단이 참일 때는 그냥 참일 수가 없으며 그것이 참인
이유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즉 충분한 논거가 존재할 때 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라면 이러한 논거지움의 과정은 자명한 공리적
토대나 그런 토대 위에서 확립된 규칙이나 원리적 서열에 따라 명확하게 밝힐 수
없다 이런 불확실한 가운데도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논거지움은 포기될 수
없다 이 끝없는 정당화 부담 때문에 켈젠은 규범의 효력 근거에 관한 논의를 가
치에 관한 논의와 절연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물론 성공하지
못했다56)
가치판단을 해야 하는 부분이 법문화에서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요소로 작용할지
아니면 그 반대로 작용할지는 판단자로서의 법관의 역량과 연관하여 논해야 할 것
이다 필자는 가치판단적 요소가 법문화에서 당연히 긍정적 요소로 작용해야 하며
게 부응하는지 묻게 한다 따라서 사법부 외부에서 행하는 사법비판의 길이 열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대해서는 노이만 앞의 강연문 참조55) 노이만 앞의 강연문56) 규범의 효력을 불명확하고 상대적인 가치가 아닌 규범에 근거짓기 위해 켈젠이 고안
한 근본규범은 사유상으로만 전제된 규범일 뿐이었다 켈젠은 가치판단을 ldquo현실의 행
위가 객관적으로 효력 있는 규범에 맞게 존재해야 하는 대로 존재한다는 판단rdquo이라고
정의함으로써 가치판단이라는 용어 자체를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Reine Rechtslehre 2 Aufl (1960) 16면 이하 또한 켈젠은 규범이 인간의 의지에 의해
제정되는 한 그 규범에 의해 형성된 가치는 어차피 자의적일 뿐이라고 주장한다(18면) 규범과 가치의 관계에 대한 켈젠의 주장에 대해서는 오세혁 ldquo켈젠의 법이론에 있어서
규범과 가치 - 규범과 가치의 상관관계를 중심으로rdquo 법철학연구 제18권 제3호(2015) 97면 이하 참조
8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또한 그렇게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57) 그런 방향에서 이제 해석의 문제를 법
관의 자기이해 문제와 연관시켜 보기로 한다
Ⅷ 해석과 법관의 자기이해
법관은 추상적인 일반규칙을 가지고 공중의 이목을 끄는 개별적인 사건을 처리
하는 사람이다 법관의 의식활동에 의해 일반규칙과 일회적인 사건 사이의 심연이
메워진다 하지만 일반성과 개별성을 결합하는 이 의식과정에 동반하는 고유한 법
학적 방법에 대해서는 앞에서 지적한 대로 확실한 합의는 없다 ldquo리걸 마인드rdquo라
는 말이 풍기는 신비스러운 분위기에는 사법적 결정이 본질적으로 투명한 것이 되기
어렵다는 암시가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다 논리적인 형태만 부여하기로 한다면
한 사건에서 서로 상반된 결론에 이른 두 개의 판결문을 작성하는 것도 불가능
하지 않다58) 방법이 논리에 기초하는 것이라면 이때 논리는 형식논리를 넘어 엥기
쉬가 표현한 대로 ldquo실질에 부합하는rdquo 논리여야 할 것이다 참된 올바른 받아들
일 수 있는 결정에 이르는 실질논리 이 실질에 도달하기까지는 결코 논리적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지적 감행과 어떤 매개가 작용한다
일반규칙을 개별사례에 적용할 때 요구되는 판단자의 능력과 관련하여 가다머
(Hans-Georg Gadamer)는 이런 견해를 밝힌 적이 있다 판단자는 자신이 이미 가
57) 이와는 달리 가치의 ldquo통약불가능성rdquo 때문에 사법은 좋음이나 옳음의 이슈에 대해 실
질적 입장을 취하는 일에 대해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가치의 통약
불가능성에 대해서는 Cass R Sunstein ldquoImcommensurability and Valuation in Lawrdquo Michigan Law Review Vol 92 No 4 (1994) 779면 이하 조홍식 교수는 ldquo가치의 통약
불가능성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이 권리인가의 문제보다 무엇이 공익인가의 문제에서
더 크다rdquo고 지적하면서 기본적으로 가치판단과 관련한 사법통치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사법통치의 정당성과 한계 제2판 박영사(2010) 240면 가치의 통약불가능성에 대한 주장은 가치판단과 관련한 해석기준의 서열화는 불가능
하다는 주장과 같은 노선에 속한다 여기서 통약불가능성 문제를 자세히 다룰 수는
없다 다만 가치의 통약불가능성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통약불가능이 비교불가능을 의미
하지는 않는다는 점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체적인 맥락이 주어지는 경우 무엇이 옳은
지 혹은 그른지에 대해 심사숙고하며 이에 따라 선택하고 그 선택 결과를 받아들인
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정도만 지적하기로 한다 58) 실제로 판사가 판결문을 두 개 써왔다고 주장한 사건에 대한 보도가 있었다 ldquo판결문을
두 개 써왔다rdquo 조선일보 2013 11 21자 기사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7
지고 있어서 적용하기만 하면 된다는 그런 의미의 규범적 실천적 ldquo지식을 소유한
사람rdquo이라기보다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 ldquo지식을 탄생시키는 상황에 직면하는
사람rdquo이라는 것이다59) 일반범주를 개별사례에 적용할 때 요구되는 이 판단력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래서 칸트(Kant)도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ldquo지성은 규칙들
을 통해 배우고 보강할 수 있는 것이지만 판단력은 특수한 재능으로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전혀 아니고 단지 숙련될 수 있을 뿐이다rdquo60)
우리는 올바른 규칙이나 원리를 알고 있지만 막상 이것을 어떤 상황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예컨대 비례성원칙이나 과잉금지원칙에 대한 지식
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은 적정해야 하고 그 수단은 목적달
성을 위해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원칙을 특수한
상황에 lsquo적용rsquo한다고 할 때에 이 원칙이 그 어떤 판단도 배제할 정도로 자족적인
지침 구실을 한다고 느끼기는 어렵다 특정 상황에서 그 수단이 과연 어느 정도일
때가 목적달성에 적정한지는 판단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실천이성의 역
할이다
단의 자리는 이론 경험 양심이 혼재된 실천의 영역이다 판단을 통한 결정이
라는 그 lsquo종국성rsquo으로 인한 실천적 성격은 법학이 다른 어떤 학문분야와도 공유
하지 않는 법학 고유의 특징이다 그래서 법학은 lsquolegal sciencersquo로 불리기보다는
실천지- prudentia-를 함의하는 lsquojurisprudencersquo로 더 자주 불리어 왔을 것이다
해석의 차원에서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도 추상적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
으로는 행위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성과 개별성을 결합하는 해석적
지식은 추상적 이론적 지식들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일반규칙이나 원리
에 근거한 이론적 패턴의 지식과 특정한 상황 내지 맥락을 고려하는 실천적 패턴
의 지식의 이중주를 이룬다 법관이 지니는 통찰력의 특성은 이론과 태도가 함께
간다는 데 있다 그래서 사법적 판단에서는 규칙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 못지않게
사람 즉 법관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사법적 통찰력의 특성은
뭐니뭐니해도 개별 사례를 다룬다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개별적인 것들은 개별적
인 방식으로만 체험되고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들은 무엇
보다도 lsquo지각rsquo과 관계된다61) 즉 그것들은 일반적 체계적 지식의 대상이라기보다
59) Hans-Georg Gadamer Wahrheit und Methode Grundzuumlge einer philosophischen Hermeneutik 3 Aufl J C B MOHR (1972) 300면
60)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 1 백종현 옮김 아카넷(2009) 374면
8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는 우선 지각의 대상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도 사법적 통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쪽은 규칙보다는 오히려 사람 즉 법관 쪽인 것이다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사건에서 법적으로 중요한 사실이 무엇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규칙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어떤 규칙이 중요한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실이 중요한지 알
아야 한다 이 인식과정에서 법관은 불확실한 가운데서 무수한 선택을 감행한다
어떤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 배척하고 어떤 사실은 인정하거나 무게를 부
여하고 신청된 증거조사의 어떤 것은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거부하고helliphellip 사실
에 대한 이 취사선택-자유심증주의-의 결과로 새로운 것이 태어난다 그리고
이것에 의해 법원을 찾아온 사람들의 운명이 갈리는 것이다
법관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필자 생각에
독일의 법철학자 아르투어 카우프만(Arthur Kaufmann)의 해석학적 방법론은 법
관의 자기이해 문제를 해석학적 지평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법관의 해석작업의
본질을 잘 설명해주는 것 같다 가다머 계통의 철학적 해석학(philosophische
Hermeneutik)의 입장을 받아들이면서62) 카우프만은 법해석행위를 통해 포괄적인
의미에서 법관 자신의 인격 중의 어떤 것이 판결에 혼입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
61)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4면 그리고 1심에서
유죄였다가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강력범죄 540건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판단자
의 감지능력 차이가 법판단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힌 김상준 무죄
결과 법 의 사실인정 경인문화사(2013) 62) 텍스트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이해에 관한 연구분야인 해석학(hermeneutics Hermeneutik)
의 어원은 신들의 전령(傳令)인 Hermes라는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설명된다 이때 신의
의도를 인간에게 전하는 과정에서 언어의 제약성 시공간적 간격 전령의 역할 등과 관
련하여 해석의 문제가 생긴다고 본다 ldquoHermeneuticsrdquo Dictionary of Biblical Interpretation Nashville (1999) 497면 독일어의 Auslegung이 해석주체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대상
으로서의 텍스트에 대한 해석을 의미한다면(객관주의) 철학적 해석학에서의 해석
(Interpretation)은 해석주체의 주관성 내지 역사성이 대상에 투사된다는 의미가 강하다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에 따르면 역사적 존재인 인간에게 있어 모든 해석과 이해는 과
거와 현재가 lsquo작용사적으로(wirkungsgeschichtlich)rsquo 중재되는 사건으로서 lsquo선이해rsquo 내지
lsquo선판단rsquo 없이는 불가능하다 가다머는 선입견으로 폄하된 선이해를 재평가하고 이를
통해 근대 이래 lsquo방법rsquo을 통한 진리발견이 주체에 의한 객체의 대상화 내지 도구화를 가져
왔다고 비판하면서 인간경험에 있어서 진리에 이르는 길은 사물의 존재가 스스로 드러
나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해석과 이해는 전승된 존재방식으로서
의 텍스트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며 이는 텍스트 자체가 지닌 역사적 지평과 해석
자의 지평이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만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해석학적 순환 이해의 전제로서의 선이해 작용사 등에 대해서는 Gadamer 앞의 책 II Grundzuumlge einer Theorie der Hermeneutischen Erfahrung 참조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9
로 법관의 결정이 올바른가의 물음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가의 물음과 직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63)
우선 카우프만은 통상적으로 회자되는 독립적인 법관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즉 법 앞에 선 법관이 일체의 정치적 사회적 개인적 영향이나 선입견들로부터 차
단된 채 순수한 객관적 인식에 따라 그 이전에는 자신이 알 수 없었던 사실관계
를 판단하고 그런 다음에 법적 판단을 한다는 식으로 이해하기를 거부한다64)
그런 법관상은 법령집은 일체 해석의 필요가 없이 거의 모든 가능한 법률문제에
대한 대답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상정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법관은 의지가
없는 존재이며 사법권력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여기는 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법에 대한 인식은 단순히 사례를 법률에 포섭시킨다는 의미의 수
동적 행위가 아니고 해석자가 해석대상에 관여하면서 함께 lsquo형성rsquo하는 것이라고
본다 카우프만은 법관의 법형성력에 대한 자신의 견해가 주관주의의 의미로 받아
들여지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는데 왜냐하면 해석자는 텍스트를 지탱하는 모든
전통과 함께 이해의 지평으로 들어간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은 서류의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ldquo아 이런 사건이구나rdquo라고 감을 잡게 되
는데 카우프만에 따르면 이는 법관 자신이 사건 경과를 관찰해서 인지했다거나
언론 등을 통해 사건에 대한 상세한 지식을 얻었다는 뜻이 아니라 유사한 사건들
을 알며 그래서 ldquo선이해(Vorurteil Vorverstaumlndnis)rdquo65)를 가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
해의 전제로서 이런 선이해가 없다면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것이 무엇에 관한 사
건인지 알 수 없고 다른 사례와 비교할 수도 없기 때문에 올바른 판단에 이른다
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66) 이 선이해에 의해 해석은 언제나 해석주체의 자기
이해 즉 자신이 lsquo잠정적rsquo 결과로서 이미 예상했던 것을 논증적으로 근거짓는 활동
이라는 의미에서 ldquo해석학적 순환rdquo 내지 ldquo해석학적 나선구조rdquo 하에 이루어진다
63)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Festschrift fuumlr Karl Peters Mohr Siebeck (1974) 144면 법관의 독립과 양심 주제와 관련한 또 다른
글로는 Kaufmann ldquoGesetz und Rechtrdquo Existenz und Ordnung Festschrift fuumlr Erik Wolf (1962) 357면 이하
64)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4면 65) 해석학적 의미에서의 lsquo선이해rsquo는 일상 언어 관용에서는 lsquo선입견rsquo이나 lsquo편견rsquo 같은 부정
적 함의를 더 많이 지니기 때문에 카우프만은 lsquoVorurteilrsquo 대신에 Vorverstaumlndnis라는 용
어를 쓰기를 권장한다(앞의 글 148면) 카우프만 외에도 이 용어의 선택은 Josef Esser Vorverstaumlndnis und Methodenwahl in der Rechtsfindung 2 Aufl (Frankfurt aM 1972)
66)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7면
90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텍스트를 이해하려는 사람은 말하자면 언제나 초벌 그림을 그리며 특정 의미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텍스트를 읽기 때문에 ldquo텍스트에서 첫 번째 의미가 지시되자
마자 전체의 의미를 lsquo예비투사한다(vorauswirft)rsquordquo67) 그리고 선이해와 관련된 이 예
비투사는-해석학적 lsquo순환rsquo에 의해-원칙적으로 끝없이 검열과정을 거친다는 것
이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도 실제 판단과정에서는 분리
되지 않는다68)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은 시간적으로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단절 관계가 아니라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정제하고 상응하는
관계에 놓인다 즉 사실에 대한 인식 없이 규범적 인식은 불가능하며 또한 규범적
관점 없이 사실만을 통한 사실 확정도 불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법률도 법관의
해석을 만나기 전에는 ldquo잠재적인 가능태로서 주어진 법률rdquo일 뿐 해석학적 순환을
통한 정제 혹은 상응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ldquo진정한 실정법rdquo이 생성된다69) 이렇
게 특정사건을 통해 구체화된 규범(구성요건)과 이 규범을 통해 정해진 사실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법관에게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들과 함께 제3의 요소로서 법관
자신의 선이해 내지 이해 포괄적으로 말하면 그의 인격적 존재가 판단에 혼입
된다
lsquo선이해rsquo는 판단자가 자신의 선이해를 의식하지 못할 때 부정적 요소를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ldquo자신의 판단은 오로지 lsquo있는 그대로다rsquo라고 말하는 즉 lsquo오로지 법
률에만 구속된다rsquo라고 말하는 법관이야말로 실은 종속된 법관이다 왜냐하면 그는
성찰되지 않은 자신의 선이해와 거리를 둘 수 없기 때문이다rdquo70) 즉 법관은 자신
67)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68) 실제 판단과정에서 사실인정과 법률적용이 따로 떨어질 수 없다는 점은 굳이 카우프
만의 이론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실무상으로는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ldquo법률
의 적용과 사실의 인정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법률문제와 결부되어 인정된다 사실의 인정이 진행됨에 따라서 재판관의 머리
속에서는 어떠한 법규를 적용할 것인가 그 법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는 전망이
점차로 서게 되며 당사자 측도 경우에 따라서는 민사인 경우 청구의 취지를 변경할
것인가를 고려하게 되고 형사인 경우 공소사실을 변경하는 경우도 생긴다 요컨대 사실
문제와 법률문제는 실제과정에서 불가분으로 결부되어 있다 helliphellip 양쪽이 불가분으로
재판관의 직관 혹은 재판관의 전인격적인 작용에 의하여 사실의 인정과 법의 적용이
행하여지고 판결 삼단논법은 실제의 심판 과정에서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rdquo(사법
연수원 법조윤리론 35면) 69) ldquo법관의 해석 작업 이전에는 어느 의미에서 진정 법도 진정한 사실도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원자재들(Rohmaterialien)로만 이것들이 존재할 뿐이다rdquo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1
의 선이해를 의식하고 자신을 이데올로기 혐의 앞에 세울 줄 알 때 올바른 판결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ldquo법관이 자신의 선이해와 종속을 의식할수록 그래서 간주
관적 합의에 노력할수록 그는 더 객관적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rdquo71) 그러므로
법관의 주관주의의 위험은 카우프만식으로 말하면 가치판단 같은 성찰적 고려와
관련된 주관적 요소를 방법상의 근거 제시의 맥락에 끌어들이는 법관의 경우보다는
오히려 모든 것이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판결의 주관적
요소를 은폐하는 법관에게서 나타나는 위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학적 순환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법관은 ldquo법률의 입rdquo이 아니라 ldquo인격
으로서 판결을 떠받친다rdquo72) 판결은 법률과 법관의 인격의 혼성물이다 그러므로
법률은 판결을 위한 필요조건이기는 하나 충분조건은 아니라고도 말할 수 있다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순환이론은 법관의 독립과 양심의 문제 차원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법결정의 올바름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
는 정도에 달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자신을 올바르
게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자신의 판단력 경험 능력 인간에 대한 태도 감
수성 명예욕 등등
카우프만의 법해석학적 순환이론이 법관의 독립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이라
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독립은 법관 스스로 관철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론적으로 카우프만의 법해석이론의 의의는 법관이 자신의 선입견을
의식하는 것이야말로 법관의 독립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설득력있게 지적
해주며 그런 방향에서 법관의 법해석 작업을 재평가했다는 데 있다고 말할 수 있
겠다
70)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71) Arthur Kaufmann ldquoDer BGH und die Sitzblockaderdquo NJW (1988) 2581면 이하72) 이 표현은 Karl Peters의 Strafprozess - Ein Lehrbuch (1966) 99면에 나오며 여기서는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9면에서 재
인용했다 이덕연 교수도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에 입각하여 ldquo법관의 법해석작
업은 단순한 lsquo인식작업rsquo이나 lsquo언어분석작업rsquo이 아니라 ldquo구체적인 반성과 자기극복의
노력 속에서 온 인격을 걸고 진행하는 lsquo이해와 실천의 수행작업rsquordquo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앞의 글 352면)
9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Ⅸ 법관은 lsquo하는 사람rsquo인가 lsquo보는 사람rsquo인가
법관의 판단작업을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의 관점에서 주목했던 또 다른
철학자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다 그녀는 ldquo아이히만 재판rdquo을 계기로 판단의
특수한 경우로서의 판단력 문제를 연구했다73) 아렌트는 하드케이스와 연관시켜
법관의 판단력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74) 법관은 우선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을 반추하면서 판단에 임하는데 이때 판단자로서 그는 한 면으
로는 규칙에 따라 판단하라는 lsquo일반적 정의rsquo의 요구에 그리고 동시에 다른 한 면
으로는 정황에 맞게 판단하라는 lsquo개별적 정의rsquo의 요구에 처한다 이러한 상황은
아렌트에 따르면 하드케이스에서 특히 발생한다 이 이중적이고 모순적 요구 상황
을 아렌트는 법관의 판단에 적용되는 특수한 해석학 및 그 조건을 설명하는 출발
점으로 삼는다75) 하드케이스가 아닌 통상적인 사건에서는 이른바 포섭 여부를 판
단하는 것으로도 족하다 일반규칙에의 포섭 여부가 중심이 되는 이 단계에서의
판단력- lsquo규정하는 판단력(bestimmende Urteilskraft)rsquo-은 사실관계에서의 원인
이나 형식적 정의를 따지므로 일방적이고 간주관적 전제 없이도 가능하다 그래서
흔히 법관은 여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법을 해석해야 한다고 말할 때 이는
법적용을 이러한 지배적인 포섭모델에 입각하여 이해한 결과라 할 것이다 그런데
규칙으로부터 오는 어떤 어려움들 때문에 규정하는 판단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즉 포섭이 어렵거나 법흠결 시 또는 가치형량이 요구되는 하드케
이스에서는 법관은 어쩔 수 없이 앞에서 말한 모순문제를 다루어야만 한다 이때
아렌트는 법관이 사유의 확장을 통해 방법상으로 lsquo규정적 판단력rsquo을 스스로 교정
할 수 있는 lsquo성찰적 판단력rsquo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고 이 판단유형의 전환과정을
73) 법적 판단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 삼은 저술은 Hannah Arendt Eichmann in Jerusalem Ein Bericht von der Banalitaumlt des Boumlsen Erw Aufl (Muumlnchen 2001) 그리고 Hannah Arendt Das Urteilen Texte zu Kants Politischer Philosophie Hrsg v R Beiner Uumlbers v U Ludz (Muumlnchen 1998)
74) 아렌트가 염두에 둔 하드케이스는 라드브루흐가 이른바 ldquo법률적 불법rdquo 상태로 규정한
나치의 불법국가 상황으로서 이렇게 극히 예외적인 케이스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하드
케이스에 적용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별적 정의 요구에 부응함
으로써 예컨대 소급효를 금지하는 일반법률에 위배되는 상황과 유사한 갈등상황은 반
드시 극단적 상황에서만 생긴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75)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2 Bde Hrsg v U Ludz amp I Nordmann
따라서 그 척도는 전달가능성이며 거기에 딱 맞는 것은 공통감각(상식)이다rdquo77) 오
늘날 공통감각은 아렌트도 지적했듯이 더 이상 그것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얻고자 노력해야 하는 그 무엇이 되어버린 듯하다 그러나 공통감
각이 무너진 시대를 겪었던 아렌트는 사유의 전환 내지 확대를 위한 진정한 발판
을 다시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에서 구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78)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실천철학의 전통에서는 세계와의 관계 그리고 자기와의 관
계를 공통감각을 척도로 설정해가는 판단자가 lsquo하는 사람rsquo인지 아니면 lsquo보는 사람rsquo
인지 즉 lsquo행위자rsquo인지 아니면 lsquo관찰자rsquo인지를 둘러싸고 의견이 대립되어 왔다 lsquo하
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자가 lsquo정치가rsquo 쪽에 더 가깝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
자는 lsquo철학자rsquo 쪽에 더 가깝다 lsquo하는 사람rsquo은 주로 사회의 일반적 상식 건전한 인
간이해 세론(doxa)을 판단의 척도로 삼는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적 경험은 전체주
의 하에서는 건전한 인간이해도 집단화된 대중감정에 따른 오도된 인간이해 앞에
무너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판단에서 사실로서의 상식이나 합의 또는
법해석공동체 내부의 지배적 제도적 관점이라는 판단 척도만으로는 일반규칙으로
부터 오는 모순을 다루기 어렵다 여기서 판단자는 ldquo확대된 사유방식rdquo을 추구해야
하는데 아렌트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을 lsquo보는 사람rsquo의 판단과 결합시킴으로써 법
관을 위한 사유의 확대를 시도한다79) lsquo하는 사람rsquo이 사실로서의 일반적 상식이나
인간이해 차원에 비추어 판단한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ldquo이
상적 규범적 상식rdquo80)을 추구하고자 한다 판단을 거쳐 법적 효과를 결정하는 법관
76)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을 해석학적 순환이론을 적용하여 분석하면서 칸트의 판단력 비
판에 의거하여 아렌트가 판단력의 특수한 경우로서 법관의 ldquo성찰적 판단력rdquo이라는 새
로운 판단유형을 제시했다고 지적한 연구서로는 Stefanie Rosenmuumlller Der Ort des Rechts Gemeinsinn und richterliches Urteilen nach Hannah Arendt Nomos (2013) 참조
77) Hannah Arendt Das Urteilen 92-93면78) 아렌트가 판단의 차원을 심화시키는 발판으로 삼는 상식은 sensus communis로서
communis opinio와는 다르다는 데 대해서는 Marieke Borren ldquolsquoA Sense of the Worldrsquo Hannah Arendtrsquos Hermeneutic Phenomenology of Common Senserdquo International Journal of Philosophical Studies Vol 21 No 2 (2013) 225-255
79) Hannah Arendt Das Urteilen 76면80) Rosenmuumlller 앞의 책 234면 이하 여기서 아렌트는 상식개념을 이중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에서는 경험적 개념으로 보다 성찰적 판단
단계에서는 규범적 개념으로 사용한다
9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은 관찰자로서 판단하면서 동시에 행위자로서 판단에서 법적 결과를 결정하는
사람이다 관찰자인 동시에 행위자라는 이중적인 역할을 하면서 법관은 자신의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 반추한다81) 이 반추과정에서 법관은 한편으로는 포섭
하는 판단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고려해야 할 관점들을 끌어들이면서
자신의 직책을 마지막까지 수행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통제하면서 자신의 앞서의
(포섭) 판단을 정정해나간다 그래서 법관 자신이 lsquo보는 사람rsquo과 lsquo하는 사람rsquo의 만
남의 장소가 되는 것과도 같다 ldquo이 보는 사람은 모든 하는 사람 안에 자리 잡고
있다helliphellip이 비판적 판단능력이 없이는 행위자 혹은 해결자는 보는 사람으로부터
풀려나 종내는 지각되지조차 못하게 될 것이다rdquo82)
사람들은 자신 일에 있어서는 비당파적일 수는 없다 따라서 ldquo자신의 일에 대한
판단에서는 내면의 심판자 혹은 내면의 법정을 가질 수 없다rdquo83) 그러나 다른 사
람의 일을 반추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필히 비당파적이어야 하며 또 비당파적이 될
수 있다 이때 그는 비로소 내면의 심판자를 가지게 된다 즉 양심의 문제에 처하
게 되는 것이다 판단에 있어서 양심이라는 것 즉 양심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남
의 일에서 ldquo증인rdquo 혹은 ldquo비판적 친구rdquo로서 관찰하고 행위하는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이다84)
아렌트의 성찰적 판단모델은 나치 불법국가 경험의 산물이다 통상의 규칙이 파
괴된 상황 통상의 범죄유형에 포섭되지 않는 극히 예외적인 범죄적 상황에서 법
원은 기존의 판단척도를 해석학적 출발로 삼아서는 안 되고 이때에는 질적으로
동의가능한 합의형식을 찾기 위해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으로 돌아가
진정으로 사유 즉 철학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렌트가 판단을 일반화해주는
거점이자 해석학적 출발점으로 삼은 공통감각(상식) 개념은 칸트철학에서 ldquo비사교
적 사교성rdquo 개념의 위상과 비슷하다85) 이 지상에서 인간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다른 것을 원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모여 살아야만 하는 존재다 이 비사회성 요
청과 사회성 요청의 동시성 때문에 인간에게는 제도적인 안착이 더없이 중요하며
법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실존과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만든다 판단의 기
81) Leora Y Bilsky When Actor and Spectator Meet in the Courtroom Hannah Arendt and Eichmann in Jerusalem G N Arad Hg (Bloomington 1996) 137면
82) Hannah Arendt 앞의 책 85면83) Hannah Arendt 앞의 책 76면 84)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657면85) Rosenmuumlller 앞의 책 1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5
초를 보편적 인간경험에 둔다는 점에서 아렌트가 말하는 판단력은 드워킨의 헤라
클레스와 같은 초인적 천재성을 발휘하는 능력과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86) 아
렌트가 상정하는 이상적인 법관은 철학적이지만 철학자는 아니고 정치적이지만 정
치가는 아닌 사람이다
아렌트는 헌법국가의 권위도 상식개념에 기반을 두고 설명한다 그리고 민주적
정당성의 관점에서 입법의 우위를 인정하는 까닭에 성찰적 판단에 입각한 법관의
검증에는 한계가 있다는 태도를 견지한다87)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렌트가 제시한
법관의 성찰적 판단 유형에 대해서는 다양한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우선 이것이
예외 상황에서 적용되는 판단모델로 상정된 것이며 무엇보다도 ldquo규범적 상식rdquo에
대한 단일한 이해기반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법관 개인의 주관적 정치적 신념
이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길을 피할 수 없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성찰적
판단력은 결국 레토릭에 불과한 것인가 아렌트는 그러나 무엇이 ldquo특정 상황에 맞
는 공통감각(situierte Gemeinsinn)rdquo인지에 대한 공동의 인식은 가능하며 또 법관의
lsquo하는rsquo 판단에 들어있는 정치적 함의를 성찰적 판단력으로 검증하는 것도 가능하
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아렌트가 마지막 검증심급으로 원용하는 것이 바로 판
단에서의 양심의 심급이다 그것이 과연 동의할 수 있는 합의형태로서 충분한지를
스스로 검증하는 이 심급에서 판단자는 명령조로 자기에게 전해지는 소리를 듣게
된다 ldquo멈춰 나는 그것은 할 수 없어rdquo88) 판단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 멈추는 것
이 가능한 이 성찰적 심급에서는 칸트와 달리 할 수 없는 이유로써 결과도 고려
된다 lsquo보는 사람rsquo이 자기 안에서 지켜보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상황은 토마스 아퀴
나스의 양심론에 비추어 다음과 같이 묘사될 수도 있겠다 지적 본성을 가진 인간
존재가 보편법칙에 관한 지식을 개별 행위에 적용하기 위해 판단하고 선택할 때
행위자는 갈등 상황- ldquo그렇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rdquo는
상황-에 처하여 멈칫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데 이때 그는 단지 갈등하고
선택하는 역할만 하지 않고 갈등하고 선택하는 이 과정을 ldquo관찰하고 목격하는 증인rdquo
의 역할도 한다는 것89)
86) 드워킨에 의하면 해석적 탐구는 ldquo어떠한 증명도 허용치 않고 어떠한 수렴도 약속치
않는 탐구rdquo이다(드워킨 정의론 203면)87) Rosenmuumlller 앞의 책 30면88) Hannah Arendt Uumlber das Boumlse Eine Vorlesung zu Fragen der Ethik Hrsg v J Kohn
(Muumlnchen 2003) 52면89) 지적 행위자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자신의 내면의 갈등과 선택과정을 바라보는
9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Ⅹ 방법에서 덕목으로
헌법 제103조는 한 면으로는 헌법과 법률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 면으로 해석자에게 여하한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lsquo제약
의 차원rsquo과 lsquo자유의 차원rsquo을 동시에 담고 있다 법관은 자유로울 때에라도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며 법에 구속될 때에라도 전적으로 구속되지는 않는다는 뜻이
기도 하다 이 lsquo자유와 구속의 변증법rsquo에 비추어 지금까지 논한 주제에 대해 몇 가
지 입장을 정리해 보자 첫째 법관에게 있어서 독립은 확정된 원칙이나 그것자체
로서 달성해야 할 최종목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법관의 독립은 완성형이 아니라
끊임없는 진행형의 과제로서 그 직무수행에 대한 신뢰와 병행하여 점진적으로 이
루어지는 것이다 둘째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에 있어서 구속은 법률에 무조건 복종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판결에 대한 윤리 (내 ) 확신과 함께 법률에 복종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법관이 실정법률에 반하는 결정을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법
관은 객관성을 빌미로 법률 뒤에 숨는 익명적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
미하는 것이다 셋째 독립적인 법관의 양심은 lsquo법과 상충한다rsquo기보다는 lsquo법을 실
한다rsquo는 의미를 지닌다 넷째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서 반추하면서 lsquo하는
사람rsquo인 동시에 lsquo보는 사람rsquo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성찰 인 인물상으
로서만 설정될 수 있다
해석적 탐구는 우리의 이해를 넓히기 위해서 필요하지만 이해에서의 우리의 피
할 수 없는 한계를 깨닫기 위해서도 필요했는지 모른다 엥기쉬는 법해석방법론에
대한 저술의 마지막 부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ldquo방법론에 천착하다 보면
애초의 문제였던 법률로부터 훨씬 더 먼 곳으로 이끌려 간다rdquo 지금까지 필자는
법관의 법해석과 관련하여 방법론의 의의와 한계를 논하고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과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에 비추어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이 법해석론
의 불가결한 부분으로 들어가게 되는 이유도 밝혔다 그리고 해석적 차원에서의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는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행위를 목표로 하는
탐구라는 것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필자는 이 모든 논의들을 매개로 방법론이 우리를 더 멀리 덕
목론으로 데려가는 과정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드워킨의
상황에 대한 이 묘사 부분은 이경재 ldquo토마스 아퀴나스의 양심 개념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375면을 참조했다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7
헤라클레스를 잠시 불러올 필요가 있다 해석문제를 누구보다도 더 진지하게 다룬
드워킨은 마지막에 헤라클레스를 내세운다 주어진 사건에서 무엇이 법인지에
대해 도덕적 의식을 가지고 법실무 전체를 원리정합적으로 정당화하라는 요청에
부응하여 자신의 신념에 기초한 결정을 내리는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의 구성적
해석에서 법관의 양심이 기능하는 국면은 어디일까 송민경 판사는 드워킨의 구성
적 해석론에 입각하여 양심을 구체적 법논증과정의 일부로 포함시키면서 이때 양
심이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라는 지침으로 기능한다고 설명한다90)
그런데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는 지침으로 기능하는 것을 양심이라
고 보게 되면 양심의 문제는 논증적 합리성의 차원 즉 논증의 성공으로 종결짓게
된다 그러나 법적 결정의 정당성 문제는 법관의 입장에서는 논증의 성공 문제로
다루어지지만 법관의 성공적인 논증에 따른 판결의 결과로부터 영향을 받는 시민
의 입장에서 보면 성공적인 논증만으로는 해석이 정당화된다고 볼 수는 없다
성공적인 논증은 법적 결정의 정당화에 필수적이기는 하나 충분한 조건은 되지 못
한다 해석이 궁극적으로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사법적 도덕성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 사법적 도덕성은 헤라클레스가 지침으로 삼는 원리적 도덕성의 실현과는 다른
것이다 만약 패소한 시민이 다른 헤라클레스에게 갔더라면 즉 다른 법원리에 기
초한 신념을 토대로 다른 결정을 내린 다른 법관에게 갔다면 그는 승리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왜 헤라클레스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하
는지에 대한 답이 필요한 것이다91) 헤라클레스가 실무에 대한 최상의 정당화를
도모하는 법적 이상주의자라면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법원 문을 두드린 시민도
어느 의미에서 ldquo법이상주의자rdquo92)이다
법해석 작업의 주관의존성이라는 불가피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재판이라는 특수
한 공적 활동이 법관이라는 특수공직자에 의해 운영되고 유지된다는 것은 시민들
-소송에서 패한 시민들을 포함하여-편에서 보면 법을 해석하는 법관에 대한
신뢰가 전제된다는 것이다 법관의 독립적 활동은 법관의 특권 행사가 아니라 사
90) 송민경 앞의 글 38면 20면91) 사법적 덕목과 연관하여 이 부분을 다룬 글로는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5면 이하
92) 법원 문을 두드리는 시민에 대한 이 표현은 심헌섭 ldquo법조윤리의 좌표 거시적 관점에서 본 전문윤리로서의 법조윤리rdquo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편 法律家의 倫理와 責任 박영사
(2003)에 나온다
9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법과정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응당한 몫이 돌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존중하는 바탕에는 일종의 상호성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 그 또한
시민이기도 한 법관이 동료시민들에 대해 가지는 배려와 존중의 원칙이 그것이다
여기서 사법적 덕목에 대해 자세히 논할 수는 없다93) 예의 성실 신중 절제
용기 공정 겸손 의사소통 능력 형평 시민에 대한 배려와 존중 등등 이것들은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바탕을 이루는 양심의 덕목들일
것이다 양심이라는 단어가 그렇듯이 덕목이라는 단어도 오늘날 진부해진 표현
이며 거의 사라져가는 단어다 윤리적 태도로서의 덕목은 관찰하기도 배우기도
어렵다 그러나 올바른 판단과 결정이 법관이라는 개인을 거치지 않고 법령집
자체로부터 반사적으로 튀어나오지 않는 한 이 덕목들을 내면화하고 지향하려는
태도 없이는 lsquo종국적인rsquo 판단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써 필자는 헌법 제103조를 통해 법해석에서의 방법론의 문제가 덕목론이라
는 다음 과제로 이어진다는 점을 밝혔다고 생각한다
투고일 2016 4 6 심사완료일 2016 5 18 게재확정일 2016 5 20
93) 법관의 개별적인 덕목들과 이것들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는 박은정 강태경 김현섭 바람
직한 법관상의 정립과 실천 방안에 관한 연구 법원행정처(2015) 제5장 참조할 것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9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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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수 헌법학신론 박영사(2013)
김현섭 ldquo법관의 양심과 독립에 대한 헌법 제103조의 해석rdquo 한국법철학회 월례독회
발표문(2015 4 25)
김황식 연필로 쓴 페이스북 之山通信 나남(2013)
박은정 왜 법의 지배인가 돌베개(2010)
박은정 강태경 김현섭 바람직한 법관상의 정립과 실천 방안에 관한 연구 법원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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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연수원 법조윤리론(2014)
성낙인 헌법학 법문사(2014)
송민경 ldquo법관의 양심에 관한 연구rdquo 사법논집 제58집(2014)
심헌섭 ldquo법조윤리의 좌표 거시적 관점에서 본 전문윤리로서의 법조윤리rdquo 서울대
학교 법과대학 편 法律家의 倫理와 責任 박영사(2003)
분석과 비 의 법철학 법문사(2001)
양창수 ldquo바람직한 법관상-기예와 지혜 사이rdquo lt근대사법 및 한성재판소 설립
이성의 활동rdquo ldquo인격의 자기인식rdquo ldquo본래적인 자기 자신으로 불러 세우는 염려의
소리rdquo ldquo너와 내가 함께 잘못을 감시하고 경계하는 공동의 눈초리rdquo ldquo근원적인 자
기의 요구rdquo 등등22) 이런 다양한 견해들은 양심 개념을 형식적인 측면에서 접근하
는지 아니면 내용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지 양심 판단에서 개인의 주관적 요소를
강조하는지 아니면 보편성 내지 소통가능성을 더 중요시하는지 양심의 권위를 내
부에서 찾는지 아니면 외부의 권위를 사회화 내지 내면화한 결과로 보는지 양심
에 따른 결단을 감정의 작용으로 보는지 아니면 이성도 같이 작용하는 것으로 보
는지 등에 따라 여러 갈래를 이룬다
칸트의 근대 주체철학의 영향을 받은 이래 오늘날 양심논의에서는 대체로 양심
의 개인적 주관적 요소가 강조되는 가운데 양심을 개인에게 도덕적 행위 동기를
유발하고 자기반성을 가능하게 하고 개인의 판단과 자기결정에서 최종심급의 역
할을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대표적으로 칸트는 양심을 각 주체로서의 개인의
ldquo내면에 자리 잡은 자율적 심판관rdquo으로 일컬으면서 행위주체가 자기 안에 내재하
21) 이덕연 앞의 글 361면22) 진교훈 외 19인 양심 고 로부터 에 이르기까지의 양심의 의미 서울대학교출판
문화원(2012)
7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는 도덕법칙에 스스로의 행동을 적용시키는 것이 양심이라고 말한다23) 이때 양심
은 스스로 도덕법칙을 정립할 수 있는 선의지를 가진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지니는 일종의 의무의식으로 여겨지며 자신이 자신을 평가하는 것이 양심이기 때
문에 이 주관적 확신을 평가하는 외부의 기준은 없는 셈이다24) 이렇게 양심을 주
관성의 형식으로 가져갈 때는 주관적으로는 옳은 양심에 따른 확신이라 하더라도
인식주체가 가진 한계 등으로 인해 내용상 오류가 가능하다는 문제를 안게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칸트와 달리 양심문제를 개인의 주관적 도덕의식 이상의 차원에
서 다루고자 하는 철학자들은 간주관성의 차원에서 보편성을 지니는 양심개념을
추구한다 이런 방향에서 파악한 양심 개념에 대해 lsquo객관적rsquo 양심이라는 표현을 쓸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양심과 관련하여 lsquo객관적rsquo이라는 표현은 인식
주체 밖에 뭔가가 존재한다는 인식론적 존재론적 가정을 상정한다는 점에서 문제
가 있다 인식 주체 밖에 객관적인 그 무엇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양심이 아니라
윤리규범일 것이다 법관의 양심을 lsquo객관적rsquo lsquo법조적rsquo 양심으로 표현하는 것도 이런
의미에서 부적절하다25)
그런데 철학전통 안에는 양심을 주관성의 형식으로 끌어들여 절대화하는 시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서양에서 근대 이전의 철학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개인의 주
관적 도덕의식을 넘어서는 차원에서 양심을 논하는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우선 어
원상으로도 con-scientia syn-deresis의 con과 syn에서 알 수 있듯이 양심은 우리
내면의 법정에서도 공공성 내지 공동체성 즉 ldquo함께 안다rdquo라는 요소를 지니고 있
었다 이 어원은 양심의 규제적 기능에는 우리가 올바르게 행했는지 혹은 그릇되
게 행했는지를 지켜보는 ldquo공동의 인식rdquo이 있다는 자각이 포함됨을 암시한다 자기
안에서 lsquo보편적인 자기rsquo를 확신하는 과정을 상호인정과정과 연결시키고자 하는 양
심관은 공동의 윤리로서의 인륜성(Sittlichkeit)의 입장에서만 ldquo진정한 양심rdquo이 가능
하다고 보는 헤겔(G W F Hegel)의 양심론26) 타자윤리학에 근거한 레비나스
23) Immanuel Kant 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 (윤리형이상학 정 백종현 역 아카넷(2005) 134면 이하) 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Philosophische Bibliothek A 175 (2003) 215면 이하
24) 김관영 ldquo칸트에 있어서 양심의 문제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144면25) 예컨대 성낙인 교수는 법관의 양심을 ldquo법관이 적용하는 법 중에서 객관적으로 존재하
는 정신을 가리킨다rdquo고 설명한다 앞의 책 713면 이 객관적 정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26) Hegel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sect137 헤겔의 양심론에 대해서는 최신한
ldquo헤겔 야코비 양심의 변증법rdquo 헤겔연구 제23호(한국헤겔학회 2008) 86면 이하 참조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75
(Emmanuel Levinas)의 양심론27) 그리고 행위주체들의 담론적 소통과 사회적 행위
에 대한 책임에서 출발하는 아펠(Karl Otto Apel)의 양심론28)에도 엿보인다 동양의
양심을 ldquo세상 사람을 향해 움직이는 마음rdquo으로 묘사하면서 양심이 있어서 책임있
는 인식의 기능에 주목한 사상가도 있다30)
서양에서 근대를 전후로 양심의 주관화 경향이 강하게 대두된 데에는 종교분쟁
등의 영향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은 가치상대주의라는 시대정신의 영향 하에
양심은 도덕적 판단과 인격을 근거지우는 현상으로 파악되면서도 내용적 측면보다
는 형식적 측면에서 고찰되고 간주관적 논의가능성이 배제된 채 그 논의의 폭이
좁아져 거의 개인의 자기결정권 영역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우리 헌법 제19조의
양심의 의미도 이런 자기결정에서의 최종심급 역할이라는 맥락에서 읽히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살펴봤듯이 주관화의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기 이전의 사유전통에
서는 양심의 자기결정 능력보다는 스스로에게 도덕적 의문을 품는 능력 ldquo함께
안다rdquo라는 책임성 쪽에 더 비중이 놓여 있었다 이런 사유배경에 비추어 본다면
헌법 제19조의 양심은 근대 주관화의 영향의 산물로 이해할 수 있고 이에 비해
헌법 제103조에서 법관과 관련하여 언급된 양심은 근대 이전의 ldquo함께 안다rdquo의 사
유전통의 흔적을 지닌 개념으로 볼 수 있다
Ⅳ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의 완화 경향
앞에서 살펴봤듯이 역사적으로 법관의 독립이념은 법관은 오로지 법률에만 구속
된다는 것을 전제로 탄생했다 그리고 이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은 법률의 총합으로
27) 레비나스에 대해서는 김연숙 ldquo레비나스의 양심론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제3부 제3장 참조28) Karl Otto Apel From a Transcendental Semiotic Point of View Manchester University
Press (1998) 52면 259면 양심이 지니는 공적 관찰이나 감시기능 부분에 주목한
Apel에 대해서는 백춘현 ldquo아펠의 양심론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344면 이하29) 맹자의 양심론에 대해서는 장승희 ldquo맹자의 양심론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제1부 제1장
참조30) 왕수인은 양심과 양지(良知)라는 표현을 함께 썼다고 한다 ldquo남의 아픔을 느끼기 위해
서는 예민하게 lsquo생각rsquo해야 한다rdquo 여기서는 이혜경 ldquo왕수인의 양심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79면에서 재인용
7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서의 법질서는 통일적이고 자기충족적인 시스템을 이룬다는 가정에 기초하고 있
었다 그러나 이 가정은 그 자체로 애초 한계를 지닌 것이기도 하지만 법의 생태
적 기반이 변하면서 이 법률구속원칙은 점차 상대화 내지 약화되는 방향으로 나아
가게 되었다 입법자를 기다릴 수 없는 빠른 사회변화 자유법운동 입법양의 폭발
적인 증대 일반조항 도입 등 입법스타일의 변화 복지국가 대두 사회정의의 요구
헌법재판 활성화 등의 흐름은 법관의 법률구속메커니즘이 작동하기 어려운 여건을
만들어 가게 된 것이다 이른바 lsquo법관법rsquo의 대세 흐름이 나타난 것이다 특히 지난
수십 년간 확대된 입법영역은 형법과 같은 규제입법과 달리 사회복지생활보호
건강 증진남녀평등청소년보호장애인보호적극적 평등조처 등처럼 정치적 비전과
목적을 담은 한마디로 정책촉진적 성격을 지닌 법률들이었다 이와 같은 야심찬
입법스타일은 법적용단계에서 법관이 바람직한 제도 및 정책 내용에 대해 고려케
함으로써 목적적 법논증으로 기울게 하고 구체적 이익을 비교형량하는 심사방식
을 확대시키는 등 좁은 의미의 실정법률 해석보다는 법형성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 것이다31) 특히 이 흐름은 20세기말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법실증주의에
제동이 걸리는 분위기와 겹치면서32) 법철학에서도 전통적인 포섭논리나 삼단논법
은 실제로 법관들에게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지적과 함께 법관의 법률구속원
칙에 회의적인 성향의 논의들이 강세를 보이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법발견 과정에
대한 심화된 통찰을 통해 lsquo선이해rsquo의 문제를 재평가하게 만든 철학적 해석학과 문
언의 의미론적 구속력에 회의를 제기케 한 언어이론은 법철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들 이론에 입각하여 이제 법의 흠결 시와 같은 예외적인 상황에서 법관
의 법형성이 불가피하다는 수준의 주장을 넘어 법률텍스트를 통한 구속가능성 자
체를 의문시하는 주장까지 나오게 되었다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의 실현에 대한 기대가 점점 약화되고 그래서 누구의 표현
대로 법률이 해석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해석이 법률을 지배한다고 말할 정도가
31) 사회변화에 따른 법관의 역할 변화에 대해서는 박은정 왜 법의 지배인가 돌베개(2010) 제6장을 참조할 것
32) 울프리드 노이만(Ulfrid Neumann)은 지난 2015년 10월 1일 고려대학교 초청강연에서
ldquo실증주의 이후 시대의 법률과 판결rdquo이라는 주제로 발표하면서 법학적 사고가 ldquo법실
증주의 이후의 시대rdquo로 넘어갔다고 진단하고 그 배경으로 세계화 등의 흐름으로 국제
상거래관습법(lex mercatoria)처럼 입법당국에 의한 제정이 아닌 사회적 실천에 의거한
법제정 사례 법원리의 중요성 대두 인권사상 증대 등을 들고 있다 그러면서 법실증
주의로부터 멀어지는 만큼 법관의 법률구속원칙도 상대적으로 완화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77
되면 다시 제기될 수밖에 없는 물음이 바로 입법기관과 법적용기관 사이의 권력
균형 문제다 이 권력 균형은 특히 법 이라는 개인에 의해 매개된다는 점에서 문
제가 된다 오늘날 ldquo사법국가rdquo ldquo법관공화국rdquo ldquo사법엘리트rdquo ldquo사법의 정치화rdquo 등을
지적하는 소리는 입헌민주주의 기획의 초기단계에서 일찍이 해결했다고 여겼던
문제들이 다시 등장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법관의 법률구속의 전제 및 그 가능성
법원의 중립성 법관의 민주적 정당성 사법관료주의 등의 문제가 그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물음이 떠오른다 해석자의 자유를 제
한하고 법관의 법률구속을 보장할 확고한 법해석방법론은 가능한가 법관의 법률
구속에 관한 기술적 제도적 보장책은 가능한가 필자는 이 물음들에 대체로 회의
적인 전망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물론 법해석방법의 무용론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법률에 구속되는 법관상이 약화되고 앞으로도 점점 더 약화될
것이라는 전망 하에 어느 때보다도 더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될 법관의 독립 문제
를 염두에 두면서 법해석방법론의 문제를 재검토하고자 한다
Ⅴ 법해석방법론의 문제점과 한계
법이 있는 곳에 해석이 있다 법학의 강점도 해석학적 잠재력에 있다 법관의 임
무는 법률을 적용하기 위해 법문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법해석방법론은 법
해석과정에서 법관의 자유에 일정한 제약을 가하고 법관의 법률구속이념을 실현하
기 위해 고안되고 발전된 것이다 해석에서는 무엇이 최선의 해석인지를 둘러싸고
언제나 논쟁과 불일치가 생기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해석작업은 인간의 판단과 행
위의 영향 하에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법관이 따라야 하는 법률 자체에는 이미 법적용자를 법률에 대해 어느 정도 독
립적이게 만드는 여러 표현방식들이 들어 있다 예컨대 lsquo야간rsquo lsquo소음rsquo lsquo위험한 물건rsquo
lsquo적절한 조치rsquo 등 개념의 내포와 외연이 확정적이지 않은 법개념들이 대표적이다
이런 불확정적 개념들은 법명제의 구성요건 단계에만 들어 있는 게 아니라 법률효
과에서도 등장한다 이른바 lsquo규범적 개념rsquo들도 그런 표현방식에 속한다 lsquo음란한rsquo
lsquo건전한rsquo lsquo불명예스러운rsquo 등의 개념들은 기본적으로 지각가능한 대상을 서술하는
개념과 대비하여 의미내용이 가치판단에 근거할 때만 파악된다는 점에서 규범적
이다 이때 가치판단은 반드시 주관적 개인적 평가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른 사람
7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들의 평가도 포함할 것이지만 어쨌든 이 판단과 관련한 어느 정도의 불확정성은
감수해야 한다 법관의 법률 구속 의무를 느슨하게 만드는 이런 개념군에는 재량
도 포함된다 오늘날 재량개념은 ldquo법적으로 구속되는rdquo 재량으로 이해되지만 이때
판단의 여지 안에 들어오는 여러 대안들 가운데서 최종 혹은 최선의 대안을 확정
하는 데 있어서 결정자의 개인적 확신을 허용할 수밖에 없다 일반조항도 표현 그
대로 높은 일반성을 띰으로써 법적용자로 하여금 자기 앞에 놓인 사례를 광범위한
사례집단들에 적응시켜가면서 법률효과를 귀속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33)
위에서 언급한 불확정 법개념이나 규범적 개념 등을 적용하는 데는 가치판단
요소가 수반된다 이런 개념들을 적용할 때 법관은 일정한 범위 안에서 입법자를
대신하여 가치판단 내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것이다 또 법관
은 법의 lsquo흠결rsquo을 보충하거나 법질서 안에서 이따끔 발견되는 lsquo오류rsquo를 수정해야
할 부득이한 상황에도 처하게 된다 이때는 법관은 스스로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찾아 나서야 한다 lsquo법의 일반원칙rsquo lsquo법의 정신rsquo lsquo평균인의 척도rsquo lsquo비례성원칙 lsquo이익
형량rsquo 등은 이때 법관이 의존하는 사유 장치들이며 이것들을 원용하는 데도 가치
판단적 요소가 개입한다 이때 판단자는 무엇이 사실상 효력을 갖고 있는 윤리적
견해인지 확인해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사실로서의 합의가 올바른 법적 결론에
도달하게 하는지에 대해서도 숙고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법적용자는 때로는 평
균인 테스트 같은 객관적인 척도에 의지하지만 또 때로는 개인적 견해를 더 많이
펼칠 수 있는 일정한 판단의 여지를 가지게 된다
이렇게 해석과정에서 불가피한 lsquo판단의 여지rsquo 즉 해석과정에 불가피하게 개입되
는 가치판단 요소 때문에 ldquo해석의 건전성rdquo을 둘러싸고 논란이 생기고 해석의 정당
화와 관련하여 회의가 생긴다 가치판단과 관련된 부분이 불가피하게 주관적 요소
를 끌어들이게 되고 이로 인해 법규범의 효력이 상대적이고 불확실한 영역으로 떨
어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단자는 자신의 결론이 불확실성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자신의 해석에 대한 정당화를 포기할 수 없다 법을
해석한다는 것은 ldquo그 법률을 특정 사안에 적용하는 것을 정당화한다는rdquo34)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확정적인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사례에서도 요구되는
33) 불확정적 개념 규범적 개념 재량 일반조항과 관련한 자세한 설명은 칼 엥기쉬 법학
방법론 안법영윤재왕 옮김 세창출판사(2011) 182면 이하에 잘 정리되어 있으며 필
자도 이 부분을 참조했음을 밝힌다 34) 닐 맥코믹 로버트 서머즈 ldquo해석과 정당화(上)rdquo 박정훈 역 법철학연구 제5권 제2호
(2002) 18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79
개인적인 단은 도덕적 상대주의자들이 말하는 개인적인 취향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해석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올바른 해석기준을 수립하고자 법률가들은 각
기 지금까지 다양한 해석방법에 의존해 왔다 올바른 해석을 위한 확고한 기준을
수립할 수 있다는 것은 찬성하는 혹은 반대하는 해석논거들 사이의 상대적 비중을
결정하는 명확한 규칙을 수립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즉 어느 한 해석
논거가 다른 해석논거에 의해 배제되는 조건이나 선택된 해석을 정당화하는 데
필수적인 한 논거가 다른 논거보다 우월하기 위한 조건 한 논거에 누적을 통한
비중이 부과되는 조건 등을 제시해줄 일관된 정보와 지침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
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여러 해석방법들 사이에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다는 것
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시도는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했다 동일한 유형의 논거일지
라도 각각의 정당화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비중을 갖게 될 뿐더러 언어적 해석
방법 체계적 해석방법 목적적 해석방법 등으로 제시되는 여러 해석방법들이 한
줄로 세우기에는 한마디로 너무 이질적이다35) 물론 이들 해석논거들의 상호작용
을 검토하면서 잠정적인 서열을 제시하는 것은 가능할 수도 있다36) 그러나 이 서
열은 기껏해야 ldquo해석을 위한 노력의 경제성 원리rdquo 정도를 말해 줄 뿐이기 때문에
쉽게 바뀔 수 있다37)
드워킨이 옳게 지적한 대로 기본적으로 가치판단과 관련된 해석방법들은 위계
적일 수 없고 ldquo상호지지적rdquo인 관계에 놓일 뿐이다38) 이 때문에 방법론적 규칙을
세우려는 시도는 언제나 무망해지는 것이다 또한 법해석에 있어서 언어란 단어의
의미를 식별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 행위의 의미를 식별
하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론 풀러(Lon Fuller)가 지적한 대로 ldquo언어
를 통한 의사 전달은 어느 한 사람으로부터 다른 사람에게로 의미가 든 상자를 발송
하는 식rdquo39)은 아닌 것이다
35) 울프리드 노이만 ldquo실증주의 이후 시대의 법률과 판결rdquo 강연문(주 32) 노이만에 따르
면 예컨대 체계적 해석 방법에 따른 논거도 그것이 논리적 일관성 획득의 맥락에서
인지 아니면 가치평가의 일관성 보장이라는 맥락인지에 따라 전혀 다른 비중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36) 대체로 언어적-체계적-역사적-목적론적 해석방법의 순서로 언급되는 데 대해서는 심헌섭
분석과 비 의 법철학 법문사(2001) 217-218면37) 맥코믹과 서머즈는 비교법적 연구결과를 통해 올바른 해석을 위한 지침 수립은 어느
국가의 법체계에서도 지금까지 성공적이지 못함을 밝힌다(앞의 글 210면)38) 로널드 드워킨 정의론 박경신 옮김 민음사(2015) 309면
80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결론적으로 해석방법론으로부터 법관은 불확실성을 떨쳐 낼 수 있는 확실한 정
보제공을 기대하기 어렵다 해석논거를 위한 결정적인 기준을 제공하는 해석방법
에 대해 불안정한 형태로나마 이론적 합의를 찾기 어렵다면 엥기쉬의 지적대로
해석방법론은 공중에 떠있는 상태다40) 법학에서 방법론의 융성은 역설적으로 법
학이 이 부분에 취약하다는 암시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해석자로서의 법관을
최종적으로 인도하는 전략은 무엇일까 다음과 같은 고민을 들어보면 적어도 그것
은 방법론상의 합의에 대한 기대 같은 것은 아닌 것 같다 ldquo우리들은 일정한 결론을
내리고도 그 결론이 가장 적절sdot타당한 것이라고 보증받을 수 없다 그 결론을 낸
시점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들은 자기의 결론이 그러한 불확실성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그것을 자기의 전인격적 책임 아래 끝을 내고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비판과 평가에 맡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rdquo41)
해석방법론이 공중에 떠있는 상태라면 법관을 법률에 구속시키기 위한 방법론
적 보장책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런 가운데 ldquo자기의 전인격적 책임 아래rdquo ldquo사려
깊고 균형잡힌 총체적 관념rdquo ldquo인생 그 자체로부터 지식rdquo 등에 대한 호소를 듣는다
이것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법발견으로 불리든 법인식 혹은 법형성으
로 불리든 법적으로 올바른 결정을 이끌어낸다는 것은 순순히 lsquo앎rsquo의 문제만은 아
니라는 것이다 실천철학의 전통 용어를 빌어서 말한다면 그것은 이론지 이상의
실천지를 요구하는 활동이다 즉 법관의 해석활동은 이론지와 실천지를 결합하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이 주제로 다가가는 한 우회로로서 우선 지적 활동으로서의
법관의 해석활동의 특성에 대해 살펴보자
39) 론 풀러 법의 도덕성 박은정 옮김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2015) 314면 40) ldquo그러나 해석론 전체에 대한 확고한 이론적 토대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서열관계에
관한 모든 이론들은 여전히 공중에 떠 있다rdquo 엥기쉬 앞의 책 137면41) 사법연수원 법조윤리론(2014) 31면 그밖에 Benjamin N Cardozo The Nature of
Judicial Process Yale University Press (1921) ldquo언제 하나의 이익이 다른 이익을 능가
하는지를 묻는다면 hellip 경험과 연구와 성찰로부터 요컨대 인생 그 자체로부터 그 지식
을 얻지 않으면 안된다고 답할 수 있을 뿐이다rdquo(여기서는 법조윤리론에서 재인용) 또한 맥코믹서머즈 ldquo해석과 정당화(下)rdquo 박정훈 역 법철학연구 제6권 제1호(2003) 348면 ldquo해석은 간주관적으로 승인된 모든 법적 가치들에 대하여 사려깊고 균형잡힌
총체적 관념을 획득하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제대로 행해질
수 있다rdquo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1
Ⅵ 법관의 해석활동 실증주의의 대척점
앞에서 언급한 대로 해석에서는 무엇이 최선의 해석인가를 둘러싸고 언제나
논쟁과 불일치가 따른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누군가가 텍스트를 해석한다고
말하는 순간 그는 실증주의의 대척점에 서게 된다 실증주의과학의 의미에서는 논
쟁의 여지가 있는 것은 원칙적으로 과학일 수 없기 때문이다 법실증주의사고에서
해석 문제가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법을 근본규범에 입각
한 자기준거적인 구조로 보는 한스 켈젠(Hans Kelsen)의 순수법학이나 법적용과정
을 규칙에 의해 지도되는 과정으로 보는 하트(H L A Hart)의 분석법학에서 해석과
관련한 어려움은 다루고 있지 않다42)
켈젠은 순수법이론(Reine Rechtslehre)에서 정당한 해석만이 허용된다는 주장
은 허구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면서 해석의 건전성 문제나 정당화 문제를 법이론
안에서 다루기를 거부한다 법을 자기준거적인 것으로 보는 관점은 한마디로 해석
(행위)주체의 입장을 부정하는 것이다 켈젠은 법단계설을 바탕으로 법적용을 상위
규범의 수권에 의해 하위규범이 구체화되는 과정으로 보고 여기에 헌법의 수권을
받아 법률을 제정하는 입법자도 포함시킨다43) 이에 따라 법적용도 입법의 한 형
태로 설명된다 법관에 의한 법형성의 동기는 이를테면 입법부가 유독 다른 법률
이 아닌 이 법률을 통과시키는 동기와 같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켈젠은 판단활동
에서 인지적 요소와 의지적 요소를 엄격하게 구별하면서 법관의 판단활동을 순전
한 의지활동으로 보고 이 법관의 활동에 대해서만 (유권)해석이라는 표현을 사용
하고자 한다 그리고 법학적 해석에 대해서는 법규범의 가능한 의미들을 밝히는
것으로서 법률에 따른 결정의 범위를 제한하는 정도의 의미를 부여한다
법단계설에 따르면 상위규범이 정한 일정한 범위 안에서의 수권에 따라 하위규
범이 작용한다 이때 상위규범의 수권은 모든 세부적인 내용들에 대해서까지 정해
42) 켈젠은 순수법이론(Reine Rechtslehre) 제1판(1934) 제6장에서 해석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부분과 거의 같은 논문 ldquoZur Theorie der Interpretationrdquo이 심헌섭 젠법이론선집 법문사(1990) 97면 이하에 실려 있다 윤재왕 교수는 Reine Rechtslehre 제1판과 제2판
(1960)을 비교하면서 해석방법으로부터 오는 규범적 구속력을 일체 거부하는 켈젠의
입장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윤재왕 ldquo한스 켈젠의 법해석이론rdquo 고려법학 제74호(고려
대학교법학연구원 2014) 525면 이하 하트의 대표적인 저서 법의 개념의 색인 항목에는
lsquo해석rsquo이 빠져있다 43) Hans Kelsen Allgemeine Staatslehre (Berlin 1925) 231면 이하
8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그래서 ldquo상위단계의 법생성으로부터 하위단계의 법생
산으로의 전환은 단지 상위단계가 정해 놓은 범위를 채우는rdquo 활동으로서 이때
ldquo언제나 상위단계에는 없는 내용적 요소가 하위단계에 추가되어야만rdquo 한다44) 이
내용을 채우는 부분과 관련하여 상대적 불확실성이 생기는데 켈젠은 이 문제를
ldquo자유재량rdquo의 문제로 다룬다45) 이는 하트가 규칙의 체계로서의 법체계를 완결된
구조가 아닌 열린 구조로 봄으로써 상대적 불확실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법관의
재량사항으로 보는 것과 같다 하트의 경우 중심부와 주변부라는 극히 단순화된
이분법을 끌어들여 이 불확실성 문제를 처리하고자 했다면 켈젠의 경우는 인식작
용과 의지작용의 이분법을 끌어들임으로써 이 문제를 처리하고자 한 것이다
판결을 법관의 의지활동으로만 이해하는 입장을 취하게 되면 법관에게 결정에
대한 근거 제시 요청을 할 수 없게 된다 마치 신의 심판에 대해 근거 제시를 요구
할 수 없듯이 말이다 결국 켈젠의 법이론상으로는 해석은 법학의 문제가 아니며
그러므로 분석적 법실증주의와도 무관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46) 이런 이유에서 그
는 정당한 해석만이 허용된다는 주장이나 해석방법만으로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에
이를 수 있다는 주장을 거부하면서 심지어는 상위규범에 제시된 범위를 넘어서는
해석의 효력조차 적극적으로 인정함으로써 어느 의미에서는 해석이론의 존재기반
자체를 무너뜨린다47)
켈젠이나 하트가 법이론에서 해석의 의미를 축소한 이면에는 이분법이라는 과도
한 사유의 단순화가 놓여 있다 그러나 켈젠이 생각하는 것처럼 판단에서 인식적
요소와 의지적 요소의 확고한 경계가 유지되는지는 의문이다 또 중심부와 주변
부에 대한 하트의 주장도 지나친 단순화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어쨌거나
켈젠이 합리적인 해석방법을 추구하는 법이론의 효용가치를 한껏 떨어뜨렸다고
해서 이제 어차피 정답은 없으니 법대에 앉은 법관은 자기 임의로 무엇이든 해도
된다고 켈젠이 주장했을 리는 물론 없을 것이다 법이론의 과도한 정당성 주장을
거부하는 데서 오히려 순수법학의 비판적 잠재력을 찾을 수 있다고 보는 학자들은
여기서 켈젠이 강조한 순수화 즉 탈정치화는 법학에 관한 것이지 법 자체에 관한
44) Kelsen Allgemeine Staatslehre 243면 여기서 번역은 윤재왕 앞의 글 535-536면에서
재인용45) Kelsen 앞의 책 243면 이하46) 켈젠에 있어서 법해석은 이론상으로는 법학보다는 정치학이나 사회학에 속하는 문제
에 더 가깝다고 지적한 견해에 대해서는 론 풀러 앞의 책 312면 47) 이에 대해서는 윤재왕 앞의 글 553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3
주장이 아니었음을 상기시킨다48) 즉 법 자체는 결코 정치와 분리될 수 없다는
점에서 법실무에 대한 학문이론의 무가치성을 주장하는 순수법학은 실무의 법
적용자로 하여금 자신의 활동이 정치적 활동임을 깨닫고 책임을 느끼게 하는 계기
를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윤재왕 교수도 ldquo켈젠 해석이론의 배후rdquo로 들어가 방법
이론으로부터의 어떤 구속력도 거부되는 데서 생기는 공백을 켈젠이 법관 자신의
자기이해와 책임성 문제로 채운다고 지적한다 ldquo법관의 판결은 결코 순수한 것일
수 없으며 그런데도 자신의 판결이 순수한 인식의 소산이라고 강조한다면 이는
정치적 책임의 회피이고 동시에 이데올로기적이라는 혐의에 노출되지 않을 수
없다rdquo49) 이 문구가 켈젠 자신으로부터 나왔다면 아주 좋았을 것이다 자신의 직
무의 중요성과 책임에 대한 실천적 깨달음은 해석의 정당화를 목표로 하는 인식적
노력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켈젠의 순수법이론의 기획은 서로
붙어 있는 양면을 떼어 놓으면서 이것을 다시 붙일 수 있음을 보여주려 한 것일까
Ⅶ 법관의 해석활동 가치판단과 lsquo정답테제rsquo 문제
켈젠처럼 실증주의적 사고에 따르든 아니면 비실증주의적 사고에 따르든 가치
판단 문제에서 해석방법만으로는 하나의 정당한 결정을 도출할 수 없다고 생각한
다면 이는 해석의 차원에서 가치에 대한 이해 시도는 진리 추구와는 무관하다는
주장으로 귀결되는가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해석대상의 의미에 대한
관심과 최선의 이해에 대한 관심은 아무래도 진리 추구라는 목표를 향한다고 봐야
한다 법적 결정은 물론 법관의 권한에 속하지만 그것을 정당화해주는 원천은 법
관이라는 lsquo지위rsquo가 지니는 형식적 권한이 아니라 판결이 정당하다는 근거 제시에
있다 법판단을 정당화해주는 모델은 울프리드 노이만(Ulfrid Neumann)이 지적한
대로 권위를 통한 정당화모델보다는 진리를 통한 정당화모델에 더 가깝다50)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재판활동은 엄연히 사법권이라는 공권력의 작용이라는 점에서
독립적인 법관의 재판활동을 그 ldquo계획적이고 진지한 진리 탐구 활동rdquo적 측면 때문
48) 법학의 탈정치화를 ldquo정치적 허무주의rdquo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데 대해서는 켈젠 ldquo순수법학이란 무엇인가rdquo 젠법이론선집 280-282면
49) 윤재왕 앞의 글 559면50) 울프리드 노이만 ldquo법 진리 권위rdquo 2013 4 6 한국법철학회 강연문 참조
8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에 학문의 자유의 한 표현으로까지 보려는 것은 무리다51)
오늘날 가치상대주의 분위기는 실천적 물음에서 진리 도달가능성에 대한 회의를
과장한다 그러나 진리가 뭐냐는 빌라도의 물음에 비록 확신에 찬 대답을 못한다
하더라도 법에서 진리 내지 정당성 추구의 포기는 파국을 의미한다 국가권력
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도 진리라는 규제이념이 전제되기 때문
이다 독립된 사법부가 심급구조와 집단적 의사결정의 형태로 스스로의 시정 기구
를 가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물론 진리에 대한 주장은 잠정적이고 수정가능하다
lsquo참이냐 거짓이냐rsquo는 오로지 서술적 명제에만 한정하여 검증될 뿐이라는 협소한
학문관을 따른다면 법학은 학문 안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법
학이 그런 협소한 학문관을 받아들여야 할 필연성은 없다 법해석자는 자신의 해
석적 판단이 진리라는 주장을 무한정 내세우지는 못하면서도 진리 추구를 피할
수 없다52) 론 풀러(Lon Fuller)의 지적대로 ldquo법이론이 최고의 법적 권위를 엄격하
게 정의하는 일에 큰 비중을 두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이 점이 모호해지면 필경
전체로서의 법체계가 와해될 수 있다rdquo53)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법을 민주
주의의 언어로 설명하는 오늘날 의회와 행정처럼 다수결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기
관도 아닌 사법의 소수 전문 엘리트의 지배를 권위모델만으로 정당화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법을 준수하는 시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시민들은 자신에게 유죄
판결을 선고한 세속의 법관에게 그 유죄판결의 근거를 알고 싶다고 요구할 수 있
으며 물론 당연히 요구한다
법관은 판결에서 논증을 통해 최상의 근거 제시가 이루어진 결정을 해야 한다54)
51) ldquo일부 사람들 중에는 이러한 법원의 권력기관적 성질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
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helliphellip 가끔 법관의 일을 조용한 방에서 소송서
류를 꼼꼼하게 읽어 파악한 사실에다가 법을 논리적으로 적용하는 단순히 지적(知的)인 작업이라는 시각에서만 말씀하시는 분을 만나면 그 분에게 재판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법대에 앉아 있는 법관이 어떻게 보이는지 물어보고 싶어집니다rdquo 양창수 ldquo바람직한 법관상 - 기예와 지혜 사이rdquo lt근대사법 및 한성재판소 설립 120주년 기념
1895sim2015 소통컨퍼런스 역사에 비춰 본 바람직한 법관상gt 자료집(서울중앙지방법원 2015 5 11) 15면 ldquo계획적이고 진지한 진리 탐구 활동rdquo이라는 표현은 라드브루흐에서
나온다 구스타브 라드브루흐 법철학 최종고 옮김 삼영사(2011) 238면 52) 드워킨 앞의 책 208면 53) 론 풀러 앞의 책 211면 풀러의 문장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ldquo하지만 이 경우도
위로부터의 지시 또한 목적의식에서 비롯되는 지적 활동을 완전히 생략할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rdquo54) 물론 진리 요청과 관련하여 개별 법관의 관점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며 민주국가에서
포기될 수 없는 진리 요청은 법학을 포함한 법체계 전체로 하여금 진리 요청에 어떻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5
이때 정당한 근거 제시가 이루어진 결정과 관련하여 그것이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
이라는 주장을 펼 수 있는가 앞에서 검토한 대로 켈젠의 순수법이론은 그런 주장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이에 비해 드워킨은 법적 판단에 있어서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이 원칙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ldquo정답테제rdquo로 불리는 이 주장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학자들이 지적한 대로 존재사실에 대한 주장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하나의 ldquo규제이념rdquo으로 받아들이는 게 맞는 것 같다 즉 드워킨의 정답테제
는 ldquo유일하게 정당한 결정rdquo이 존재한다는 데 대한 이론적 탐구라기보다는 실무에
서의 법관의 주관적 태도에 부합하는 이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법관은 자신의 판결활동과 관련하여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모든 사건
에서 오직 하나의 결정만이 정당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 정답에 가까이 가기 위
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55)
드워킨의 말대로 가치판단이 참일 때는 그냥 참일 수가 없으며 그것이 참인
이유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즉 충분한 논거가 존재할 때 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라면 이러한 논거지움의 과정은 자명한 공리적
토대나 그런 토대 위에서 확립된 규칙이나 원리적 서열에 따라 명확하게 밝힐 수
없다 이런 불확실한 가운데도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논거지움은 포기될 수
없다 이 끝없는 정당화 부담 때문에 켈젠은 규범의 효력 근거에 관한 논의를 가
치에 관한 논의와 절연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물론 성공하지
못했다56)
가치판단을 해야 하는 부분이 법문화에서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요소로 작용할지
아니면 그 반대로 작용할지는 판단자로서의 법관의 역량과 연관하여 논해야 할 것
이다 필자는 가치판단적 요소가 법문화에서 당연히 긍정적 요소로 작용해야 하며
게 부응하는지 묻게 한다 따라서 사법부 외부에서 행하는 사법비판의 길이 열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대해서는 노이만 앞의 강연문 참조55) 노이만 앞의 강연문56) 규범의 효력을 불명확하고 상대적인 가치가 아닌 규범에 근거짓기 위해 켈젠이 고안
한 근본규범은 사유상으로만 전제된 규범일 뿐이었다 켈젠은 가치판단을 ldquo현실의 행
위가 객관적으로 효력 있는 규범에 맞게 존재해야 하는 대로 존재한다는 판단rdquo이라고
정의함으로써 가치판단이라는 용어 자체를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Reine Rechtslehre 2 Aufl (1960) 16면 이하 또한 켈젠은 규범이 인간의 의지에 의해
제정되는 한 그 규범에 의해 형성된 가치는 어차피 자의적일 뿐이라고 주장한다(18면) 규범과 가치의 관계에 대한 켈젠의 주장에 대해서는 오세혁 ldquo켈젠의 법이론에 있어서
규범과 가치 - 규범과 가치의 상관관계를 중심으로rdquo 법철학연구 제18권 제3호(2015) 97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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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렇게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57) 그런 방향에서 이제 해석의 문제를 법
관의 자기이해 문제와 연관시켜 보기로 한다
Ⅷ 해석과 법관의 자기이해
법관은 추상적인 일반규칙을 가지고 공중의 이목을 끄는 개별적인 사건을 처리
하는 사람이다 법관의 의식활동에 의해 일반규칙과 일회적인 사건 사이의 심연이
메워진다 하지만 일반성과 개별성을 결합하는 이 의식과정에 동반하는 고유한 법
학적 방법에 대해서는 앞에서 지적한 대로 확실한 합의는 없다 ldquo리걸 마인드rdquo라
는 말이 풍기는 신비스러운 분위기에는 사법적 결정이 본질적으로 투명한 것이 되기
어렵다는 암시가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다 논리적인 형태만 부여하기로 한다면
한 사건에서 서로 상반된 결론에 이른 두 개의 판결문을 작성하는 것도 불가능
하지 않다58) 방법이 논리에 기초하는 것이라면 이때 논리는 형식논리를 넘어 엥기
쉬가 표현한 대로 ldquo실질에 부합하는rdquo 논리여야 할 것이다 참된 올바른 받아들
일 수 있는 결정에 이르는 실질논리 이 실질에 도달하기까지는 결코 논리적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지적 감행과 어떤 매개가 작용한다
일반규칙을 개별사례에 적용할 때 요구되는 판단자의 능력과 관련하여 가다머
(Hans-Georg Gadamer)는 이런 견해를 밝힌 적이 있다 판단자는 자신이 이미 가
57) 이와는 달리 가치의 ldquo통약불가능성rdquo 때문에 사법은 좋음이나 옳음의 이슈에 대해 실
질적 입장을 취하는 일에 대해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가치의 통약
불가능성에 대해서는 Cass R Sunstein ldquoImcommensurability and Valuation in Lawrdquo Michigan Law Review Vol 92 No 4 (1994) 779면 이하 조홍식 교수는 ldquo가치의 통약
불가능성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이 권리인가의 문제보다 무엇이 공익인가의 문제에서
더 크다rdquo고 지적하면서 기본적으로 가치판단과 관련한 사법통치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사법통치의 정당성과 한계 제2판 박영사(2010) 240면 가치의 통약불가능성에 대한 주장은 가치판단과 관련한 해석기준의 서열화는 불가능
하다는 주장과 같은 노선에 속한다 여기서 통약불가능성 문제를 자세히 다룰 수는
없다 다만 가치의 통약불가능성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통약불가능이 비교불가능을 의미
하지는 않는다는 점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체적인 맥락이 주어지는 경우 무엇이 옳은
지 혹은 그른지에 대해 심사숙고하며 이에 따라 선택하고 그 선택 결과를 받아들인
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정도만 지적하기로 한다 58) 실제로 판사가 판결문을 두 개 써왔다고 주장한 사건에 대한 보도가 있었다 ldquo판결문을
두 개 써왔다rdquo 조선일보 2013 11 21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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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고 있어서 적용하기만 하면 된다는 그런 의미의 규범적 실천적 ldquo지식을 소유한
사람rdquo이라기보다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 ldquo지식을 탄생시키는 상황에 직면하는
사람rdquo이라는 것이다59) 일반범주를 개별사례에 적용할 때 요구되는 이 판단력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래서 칸트(Kant)도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ldquo지성은 규칙들
을 통해 배우고 보강할 수 있는 것이지만 판단력은 특수한 재능으로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전혀 아니고 단지 숙련될 수 있을 뿐이다rdquo60)
우리는 올바른 규칙이나 원리를 알고 있지만 막상 이것을 어떤 상황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예컨대 비례성원칙이나 과잉금지원칙에 대한 지식
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은 적정해야 하고 그 수단은 목적달
성을 위해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원칙을 특수한
상황에 lsquo적용rsquo한다고 할 때에 이 원칙이 그 어떤 판단도 배제할 정도로 자족적인
지침 구실을 한다고 느끼기는 어렵다 특정 상황에서 그 수단이 과연 어느 정도일
때가 목적달성에 적정한지는 판단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실천이성의 역
할이다
단의 자리는 이론 경험 양심이 혼재된 실천의 영역이다 판단을 통한 결정이
라는 그 lsquo종국성rsquo으로 인한 실천적 성격은 법학이 다른 어떤 학문분야와도 공유
하지 않는 법학 고유의 특징이다 그래서 법학은 lsquolegal sciencersquo로 불리기보다는
실천지- prudentia-를 함의하는 lsquojurisprudencersquo로 더 자주 불리어 왔을 것이다
해석의 차원에서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도 추상적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
으로는 행위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성과 개별성을 결합하는 해석적
지식은 추상적 이론적 지식들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일반규칙이나 원리
에 근거한 이론적 패턴의 지식과 특정한 상황 내지 맥락을 고려하는 실천적 패턴
의 지식의 이중주를 이룬다 법관이 지니는 통찰력의 특성은 이론과 태도가 함께
간다는 데 있다 그래서 사법적 판단에서는 규칙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 못지않게
사람 즉 법관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사법적 통찰력의 특성은
뭐니뭐니해도 개별 사례를 다룬다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개별적인 것들은 개별적
인 방식으로만 체험되고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들은 무엇
보다도 lsquo지각rsquo과 관계된다61) 즉 그것들은 일반적 체계적 지식의 대상이라기보다
59) Hans-Georg Gadamer Wahrheit und Methode Grundzuumlge einer philosophischen Hermeneutik 3 Aufl J C B MOHR (1972) 300면
60)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 1 백종현 옮김 아카넷(2009) 37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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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우선 지각의 대상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도 사법적 통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쪽은 규칙보다는 오히려 사람 즉 법관 쪽인 것이다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사건에서 법적으로 중요한 사실이 무엇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규칙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어떤 규칙이 중요한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실이 중요한지 알
아야 한다 이 인식과정에서 법관은 불확실한 가운데서 무수한 선택을 감행한다
어떤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 배척하고 어떤 사실은 인정하거나 무게를 부
여하고 신청된 증거조사의 어떤 것은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거부하고helliphellip 사실
에 대한 이 취사선택-자유심증주의-의 결과로 새로운 것이 태어난다 그리고
이것에 의해 법원을 찾아온 사람들의 운명이 갈리는 것이다
법관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필자 생각에
독일의 법철학자 아르투어 카우프만(Arthur Kaufmann)의 해석학적 방법론은 법
관의 자기이해 문제를 해석학적 지평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법관의 해석작업의
본질을 잘 설명해주는 것 같다 가다머 계통의 철학적 해석학(philosophische
Hermeneutik)의 입장을 받아들이면서62) 카우프만은 법해석행위를 통해 포괄적인
의미에서 법관 자신의 인격 중의 어떤 것이 판결에 혼입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
61)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4면 그리고 1심에서
유죄였다가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강력범죄 540건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판단자
의 감지능력 차이가 법판단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힌 김상준 무죄
결과 법 의 사실인정 경인문화사(2013) 62) 텍스트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이해에 관한 연구분야인 해석학(hermeneutics Hermeneutik)
의 어원은 신들의 전령(傳令)인 Hermes라는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설명된다 이때 신의
의도를 인간에게 전하는 과정에서 언어의 제약성 시공간적 간격 전령의 역할 등과 관
련하여 해석의 문제가 생긴다고 본다 ldquoHermeneuticsrdquo Dictionary of Biblical Interpretation Nashville (1999) 497면 독일어의 Auslegung이 해석주체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대상
으로서의 텍스트에 대한 해석을 의미한다면(객관주의) 철학적 해석학에서의 해석
(Interpretation)은 해석주체의 주관성 내지 역사성이 대상에 투사된다는 의미가 강하다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에 따르면 역사적 존재인 인간에게 있어 모든 해석과 이해는 과
거와 현재가 lsquo작용사적으로(wirkungsgeschichtlich)rsquo 중재되는 사건으로서 lsquo선이해rsquo 내지
lsquo선판단rsquo 없이는 불가능하다 가다머는 선입견으로 폄하된 선이해를 재평가하고 이를
통해 근대 이래 lsquo방법rsquo을 통한 진리발견이 주체에 의한 객체의 대상화 내지 도구화를 가져
왔다고 비판하면서 인간경험에 있어서 진리에 이르는 길은 사물의 존재가 스스로 드러
나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해석과 이해는 전승된 존재방식으로서
의 텍스트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며 이는 텍스트 자체가 지닌 역사적 지평과 해석
자의 지평이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만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해석학적 순환 이해의 전제로서의 선이해 작용사 등에 대해서는 Gadamer 앞의 책 II Grundzuumlge einer Theorie der Hermeneutischen Erfahrung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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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법관의 결정이 올바른가의 물음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가의 물음과 직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63)
우선 카우프만은 통상적으로 회자되는 독립적인 법관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즉 법 앞에 선 법관이 일체의 정치적 사회적 개인적 영향이나 선입견들로부터 차
단된 채 순수한 객관적 인식에 따라 그 이전에는 자신이 알 수 없었던 사실관계
를 판단하고 그런 다음에 법적 판단을 한다는 식으로 이해하기를 거부한다64)
그런 법관상은 법령집은 일체 해석의 필요가 없이 거의 모든 가능한 법률문제에
대한 대답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상정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법관은 의지가
없는 존재이며 사법권력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여기는 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법에 대한 인식은 단순히 사례를 법률에 포섭시킨다는 의미의 수
동적 행위가 아니고 해석자가 해석대상에 관여하면서 함께 lsquo형성rsquo하는 것이라고
본다 카우프만은 법관의 법형성력에 대한 자신의 견해가 주관주의의 의미로 받아
들여지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는데 왜냐하면 해석자는 텍스트를 지탱하는 모든
전통과 함께 이해의 지평으로 들어간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은 서류의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ldquo아 이런 사건이구나rdquo라고 감을 잡게 되
는데 카우프만에 따르면 이는 법관 자신이 사건 경과를 관찰해서 인지했다거나
언론 등을 통해 사건에 대한 상세한 지식을 얻었다는 뜻이 아니라 유사한 사건들
을 알며 그래서 ldquo선이해(Vorurteil Vorverstaumlndnis)rdquo65)를 가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
해의 전제로서 이런 선이해가 없다면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것이 무엇에 관한 사
건인지 알 수 없고 다른 사례와 비교할 수도 없기 때문에 올바른 판단에 이른다
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66) 이 선이해에 의해 해석은 언제나 해석주체의 자기
이해 즉 자신이 lsquo잠정적rsquo 결과로서 이미 예상했던 것을 논증적으로 근거짓는 활동
이라는 의미에서 ldquo해석학적 순환rdquo 내지 ldquo해석학적 나선구조rdquo 하에 이루어진다
63)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Festschrift fuumlr Karl Peters Mohr Siebeck (1974) 144면 법관의 독립과 양심 주제와 관련한 또 다른
글로는 Kaufmann ldquoGesetz und Rechtrdquo Existenz und Ordnung Festschrift fuumlr Erik Wolf (1962) 357면 이하
64)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4면 65) 해석학적 의미에서의 lsquo선이해rsquo는 일상 언어 관용에서는 lsquo선입견rsquo이나 lsquo편견rsquo 같은 부정
적 함의를 더 많이 지니기 때문에 카우프만은 lsquoVorurteilrsquo 대신에 Vorverstaumlndnis라는 용
어를 쓰기를 권장한다(앞의 글 148면) 카우프만 외에도 이 용어의 선택은 Josef Esser Vorverstaumlndnis und Methodenwahl in der Rechtsfindung 2 Aufl (Frankfurt aM 1972)
66)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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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를 이해하려는 사람은 말하자면 언제나 초벌 그림을 그리며 특정 의미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텍스트를 읽기 때문에 ldquo텍스트에서 첫 번째 의미가 지시되자
마자 전체의 의미를 lsquo예비투사한다(vorauswirft)rsquordquo67) 그리고 선이해와 관련된 이 예
비투사는-해석학적 lsquo순환rsquo에 의해-원칙적으로 끝없이 검열과정을 거친다는 것
이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도 실제 판단과정에서는 분리
되지 않는다68)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은 시간적으로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단절 관계가 아니라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정제하고 상응하는
관계에 놓인다 즉 사실에 대한 인식 없이 규범적 인식은 불가능하며 또한 규범적
관점 없이 사실만을 통한 사실 확정도 불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법률도 법관의
해석을 만나기 전에는 ldquo잠재적인 가능태로서 주어진 법률rdquo일 뿐 해석학적 순환을
통한 정제 혹은 상응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ldquo진정한 실정법rdquo이 생성된다69) 이렇
게 특정사건을 통해 구체화된 규범(구성요건)과 이 규범을 통해 정해진 사실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법관에게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들과 함께 제3의 요소로서 법관
자신의 선이해 내지 이해 포괄적으로 말하면 그의 인격적 존재가 판단에 혼입
된다
lsquo선이해rsquo는 판단자가 자신의 선이해를 의식하지 못할 때 부정적 요소를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ldquo자신의 판단은 오로지 lsquo있는 그대로다rsquo라고 말하는 즉 lsquo오로지 법
률에만 구속된다rsquo라고 말하는 법관이야말로 실은 종속된 법관이다 왜냐하면 그는
성찰되지 않은 자신의 선이해와 거리를 둘 수 없기 때문이다rdquo70) 즉 법관은 자신
67)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68) 실제 판단과정에서 사실인정과 법률적용이 따로 떨어질 수 없다는 점은 굳이 카우프
만의 이론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실무상으로는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ldquo법률
의 적용과 사실의 인정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법률문제와 결부되어 인정된다 사실의 인정이 진행됨에 따라서 재판관의 머리
속에서는 어떠한 법규를 적용할 것인가 그 법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는 전망이
점차로 서게 되며 당사자 측도 경우에 따라서는 민사인 경우 청구의 취지를 변경할
것인가를 고려하게 되고 형사인 경우 공소사실을 변경하는 경우도 생긴다 요컨대 사실
문제와 법률문제는 실제과정에서 불가분으로 결부되어 있다 helliphellip 양쪽이 불가분으로
재판관의 직관 혹은 재판관의 전인격적인 작용에 의하여 사실의 인정과 법의 적용이
행하여지고 판결 삼단논법은 실제의 심판 과정에서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rdquo(사법
연수원 법조윤리론 35면) 69) ldquo법관의 해석 작업 이전에는 어느 의미에서 진정 법도 진정한 사실도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원자재들(Rohmaterialien)로만 이것들이 존재할 뿐이다rdquo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1
의 선이해를 의식하고 자신을 이데올로기 혐의 앞에 세울 줄 알 때 올바른 판결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ldquo법관이 자신의 선이해와 종속을 의식할수록 그래서 간주
관적 합의에 노력할수록 그는 더 객관적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rdquo71) 그러므로
법관의 주관주의의 위험은 카우프만식으로 말하면 가치판단 같은 성찰적 고려와
관련된 주관적 요소를 방법상의 근거 제시의 맥락에 끌어들이는 법관의 경우보다는
오히려 모든 것이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판결의 주관적
요소를 은폐하는 법관에게서 나타나는 위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학적 순환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법관은 ldquo법률의 입rdquo이 아니라 ldquo인격
으로서 판결을 떠받친다rdquo72) 판결은 법률과 법관의 인격의 혼성물이다 그러므로
법률은 판결을 위한 필요조건이기는 하나 충분조건은 아니라고도 말할 수 있다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순환이론은 법관의 독립과 양심의 문제 차원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법결정의 올바름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
는 정도에 달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자신을 올바르
게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자신의 판단력 경험 능력 인간에 대한 태도 감
수성 명예욕 등등
카우프만의 법해석학적 순환이론이 법관의 독립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이라
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독립은 법관 스스로 관철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론적으로 카우프만의 법해석이론의 의의는 법관이 자신의 선입견을
의식하는 것이야말로 법관의 독립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설득력있게 지적
해주며 그런 방향에서 법관의 법해석 작업을 재평가했다는 데 있다고 말할 수 있
겠다
70)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71) Arthur Kaufmann ldquoDer BGH und die Sitzblockaderdquo NJW (1988) 2581면 이하72) 이 표현은 Karl Peters의 Strafprozess - Ein Lehrbuch (1966) 99면에 나오며 여기서는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9면에서 재
인용했다 이덕연 교수도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에 입각하여 ldquo법관의 법해석작
업은 단순한 lsquo인식작업rsquo이나 lsquo언어분석작업rsquo이 아니라 ldquo구체적인 반성과 자기극복의
노력 속에서 온 인격을 걸고 진행하는 lsquo이해와 실천의 수행작업rsquordquo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앞의 글 35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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Ⅸ 법관은 lsquo하는 사람rsquo인가 lsquo보는 사람rsquo인가
법관의 판단작업을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의 관점에서 주목했던 또 다른
철학자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다 그녀는 ldquo아이히만 재판rdquo을 계기로 판단의
특수한 경우로서의 판단력 문제를 연구했다73) 아렌트는 하드케이스와 연관시켜
법관의 판단력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74) 법관은 우선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을 반추하면서 판단에 임하는데 이때 판단자로서 그는 한 면으
로는 규칙에 따라 판단하라는 lsquo일반적 정의rsquo의 요구에 그리고 동시에 다른 한 면
으로는 정황에 맞게 판단하라는 lsquo개별적 정의rsquo의 요구에 처한다 이러한 상황은
아렌트에 따르면 하드케이스에서 특히 발생한다 이 이중적이고 모순적 요구 상황
을 아렌트는 법관의 판단에 적용되는 특수한 해석학 및 그 조건을 설명하는 출발
점으로 삼는다75) 하드케이스가 아닌 통상적인 사건에서는 이른바 포섭 여부를 판
단하는 것으로도 족하다 일반규칙에의 포섭 여부가 중심이 되는 이 단계에서의
판단력- lsquo규정하는 판단력(bestimmende Urteilskraft)rsquo-은 사실관계에서의 원인
이나 형식적 정의를 따지므로 일방적이고 간주관적 전제 없이도 가능하다 그래서
흔히 법관은 여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법을 해석해야 한다고 말할 때 이는
법적용을 이러한 지배적인 포섭모델에 입각하여 이해한 결과라 할 것이다 그런데
규칙으로부터 오는 어떤 어려움들 때문에 규정하는 판단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즉 포섭이 어렵거나 법흠결 시 또는 가치형량이 요구되는 하드케
이스에서는 법관은 어쩔 수 없이 앞에서 말한 모순문제를 다루어야만 한다 이때
아렌트는 법관이 사유의 확장을 통해 방법상으로 lsquo규정적 판단력rsquo을 스스로 교정
할 수 있는 lsquo성찰적 판단력rsquo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고 이 판단유형의 전환과정을
73) 법적 판단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 삼은 저술은 Hannah Arendt Eichmann in Jerusalem Ein Bericht von der Banalitaumlt des Boumlsen Erw Aufl (Muumlnchen 2001) 그리고 Hannah Arendt Das Urteilen Texte zu Kants Politischer Philosophie Hrsg v R Beiner Uumlbers v U Ludz (Muumlnchen 1998)
74) 아렌트가 염두에 둔 하드케이스는 라드브루흐가 이른바 ldquo법률적 불법rdquo 상태로 규정한
나치의 불법국가 상황으로서 이렇게 극히 예외적인 케이스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하드
케이스에 적용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별적 정의 요구에 부응함
으로써 예컨대 소급효를 금지하는 일반법률에 위배되는 상황과 유사한 갈등상황은 반
드시 극단적 상황에서만 생긴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75)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2 Bde Hrsg v U Ludz amp I Nordmann
따라서 그 척도는 전달가능성이며 거기에 딱 맞는 것은 공통감각(상식)이다rdquo77) 오
늘날 공통감각은 아렌트도 지적했듯이 더 이상 그것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얻고자 노력해야 하는 그 무엇이 되어버린 듯하다 그러나 공통감
각이 무너진 시대를 겪었던 아렌트는 사유의 전환 내지 확대를 위한 진정한 발판
을 다시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에서 구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78)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실천철학의 전통에서는 세계와의 관계 그리고 자기와의 관
계를 공통감각을 척도로 설정해가는 판단자가 lsquo하는 사람rsquo인지 아니면 lsquo보는 사람rsquo
인지 즉 lsquo행위자rsquo인지 아니면 lsquo관찰자rsquo인지를 둘러싸고 의견이 대립되어 왔다 lsquo하
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자가 lsquo정치가rsquo 쪽에 더 가깝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
자는 lsquo철학자rsquo 쪽에 더 가깝다 lsquo하는 사람rsquo은 주로 사회의 일반적 상식 건전한 인
간이해 세론(doxa)을 판단의 척도로 삼는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적 경험은 전체주
의 하에서는 건전한 인간이해도 집단화된 대중감정에 따른 오도된 인간이해 앞에
무너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판단에서 사실로서의 상식이나 합의 또는
법해석공동체 내부의 지배적 제도적 관점이라는 판단 척도만으로는 일반규칙으로
부터 오는 모순을 다루기 어렵다 여기서 판단자는 ldquo확대된 사유방식rdquo을 추구해야
하는데 아렌트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을 lsquo보는 사람rsquo의 판단과 결합시킴으로써 법
관을 위한 사유의 확대를 시도한다79) lsquo하는 사람rsquo이 사실로서의 일반적 상식이나
인간이해 차원에 비추어 판단한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ldquo이
상적 규범적 상식rdquo80)을 추구하고자 한다 판단을 거쳐 법적 효과를 결정하는 법관
76)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을 해석학적 순환이론을 적용하여 분석하면서 칸트의 판단력 비
판에 의거하여 아렌트가 판단력의 특수한 경우로서 법관의 ldquo성찰적 판단력rdquo이라는 새
로운 판단유형을 제시했다고 지적한 연구서로는 Stefanie Rosenmuumlller Der Ort des Rechts Gemeinsinn und richterliches Urteilen nach Hannah Arendt Nomos (2013) 참조
77) Hannah Arendt Das Urteilen 92-93면78) 아렌트가 판단의 차원을 심화시키는 발판으로 삼는 상식은 sensus communis로서
communis opinio와는 다르다는 데 대해서는 Marieke Borren ldquolsquoA Sense of the Worldrsquo Hannah Arendtrsquos Hermeneutic Phenomenology of Common Senserdquo International Journal of Philosophical Studies Vol 21 No 2 (2013) 225-255
79) Hannah Arendt Das Urteilen 76면80) Rosenmuumlller 앞의 책 234면 이하 여기서 아렌트는 상식개념을 이중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에서는 경험적 개념으로 보다 성찰적 판단
단계에서는 규범적 개념으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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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관찰자로서 판단하면서 동시에 행위자로서 판단에서 법적 결과를 결정하는
사람이다 관찰자인 동시에 행위자라는 이중적인 역할을 하면서 법관은 자신의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 반추한다81) 이 반추과정에서 법관은 한편으로는 포섭
하는 판단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고려해야 할 관점들을 끌어들이면서
자신의 직책을 마지막까지 수행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통제하면서 자신의 앞서의
(포섭) 판단을 정정해나간다 그래서 법관 자신이 lsquo보는 사람rsquo과 lsquo하는 사람rsquo의 만
남의 장소가 되는 것과도 같다 ldquo이 보는 사람은 모든 하는 사람 안에 자리 잡고
있다helliphellip이 비판적 판단능력이 없이는 행위자 혹은 해결자는 보는 사람으로부터
풀려나 종내는 지각되지조차 못하게 될 것이다rdquo82)
사람들은 자신 일에 있어서는 비당파적일 수는 없다 따라서 ldquo자신의 일에 대한
판단에서는 내면의 심판자 혹은 내면의 법정을 가질 수 없다rdquo83) 그러나 다른 사
람의 일을 반추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필히 비당파적이어야 하며 또 비당파적이 될
수 있다 이때 그는 비로소 내면의 심판자를 가지게 된다 즉 양심의 문제에 처하
게 되는 것이다 판단에 있어서 양심이라는 것 즉 양심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남
의 일에서 ldquo증인rdquo 혹은 ldquo비판적 친구rdquo로서 관찰하고 행위하는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이다84)
아렌트의 성찰적 판단모델은 나치 불법국가 경험의 산물이다 통상의 규칙이 파
괴된 상황 통상의 범죄유형에 포섭되지 않는 극히 예외적인 범죄적 상황에서 법
원은 기존의 판단척도를 해석학적 출발로 삼아서는 안 되고 이때에는 질적으로
동의가능한 합의형식을 찾기 위해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으로 돌아가
진정으로 사유 즉 철학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렌트가 판단을 일반화해주는
거점이자 해석학적 출발점으로 삼은 공통감각(상식) 개념은 칸트철학에서 ldquo비사교
적 사교성rdquo 개념의 위상과 비슷하다85) 이 지상에서 인간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다른 것을 원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모여 살아야만 하는 존재다 이 비사회성 요
청과 사회성 요청의 동시성 때문에 인간에게는 제도적인 안착이 더없이 중요하며
법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실존과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만든다 판단의 기
81) Leora Y Bilsky When Actor and Spectator Meet in the Courtroom Hannah Arendt and Eichmann in Jerusalem G N Arad Hg (Bloomington 1996) 137면
82) Hannah Arendt 앞의 책 85면83) Hannah Arendt 앞의 책 76면 84)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657면85) Rosenmuumlller 앞의 책 1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5
초를 보편적 인간경험에 둔다는 점에서 아렌트가 말하는 판단력은 드워킨의 헤라
클레스와 같은 초인적 천재성을 발휘하는 능력과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86) 아
렌트가 상정하는 이상적인 법관은 철학적이지만 철학자는 아니고 정치적이지만 정
치가는 아닌 사람이다
아렌트는 헌법국가의 권위도 상식개념에 기반을 두고 설명한다 그리고 민주적
정당성의 관점에서 입법의 우위를 인정하는 까닭에 성찰적 판단에 입각한 법관의
검증에는 한계가 있다는 태도를 견지한다87)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렌트가 제시한
법관의 성찰적 판단 유형에 대해서는 다양한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우선 이것이
예외 상황에서 적용되는 판단모델로 상정된 것이며 무엇보다도 ldquo규범적 상식rdquo에
대한 단일한 이해기반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법관 개인의 주관적 정치적 신념
이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길을 피할 수 없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성찰적
판단력은 결국 레토릭에 불과한 것인가 아렌트는 그러나 무엇이 ldquo특정 상황에 맞
는 공통감각(situierte Gemeinsinn)rdquo인지에 대한 공동의 인식은 가능하며 또 법관의
lsquo하는rsquo 판단에 들어있는 정치적 함의를 성찰적 판단력으로 검증하는 것도 가능하
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아렌트가 마지막 검증심급으로 원용하는 것이 바로 판
단에서의 양심의 심급이다 그것이 과연 동의할 수 있는 합의형태로서 충분한지를
스스로 검증하는 이 심급에서 판단자는 명령조로 자기에게 전해지는 소리를 듣게
된다 ldquo멈춰 나는 그것은 할 수 없어rdquo88) 판단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 멈추는 것
이 가능한 이 성찰적 심급에서는 칸트와 달리 할 수 없는 이유로써 결과도 고려
된다 lsquo보는 사람rsquo이 자기 안에서 지켜보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상황은 토마스 아퀴
나스의 양심론에 비추어 다음과 같이 묘사될 수도 있겠다 지적 본성을 가진 인간
존재가 보편법칙에 관한 지식을 개별 행위에 적용하기 위해 판단하고 선택할 때
행위자는 갈등 상황- ldquo그렇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rdquo는
상황-에 처하여 멈칫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데 이때 그는 단지 갈등하고
선택하는 역할만 하지 않고 갈등하고 선택하는 이 과정을 ldquo관찰하고 목격하는 증인rdquo
의 역할도 한다는 것89)
86) 드워킨에 의하면 해석적 탐구는 ldquo어떠한 증명도 허용치 않고 어떠한 수렴도 약속치
않는 탐구rdquo이다(드워킨 정의론 203면)87) Rosenmuumlller 앞의 책 30면88) Hannah Arendt Uumlber das Boumlse Eine Vorlesung zu Fragen der Ethik Hrsg v J Kohn
(Muumlnchen 2003) 52면89) 지적 행위자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자신의 내면의 갈등과 선택과정을 바라보는
9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Ⅹ 방법에서 덕목으로
헌법 제103조는 한 면으로는 헌법과 법률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 면으로 해석자에게 여하한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lsquo제약
의 차원rsquo과 lsquo자유의 차원rsquo을 동시에 담고 있다 법관은 자유로울 때에라도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며 법에 구속될 때에라도 전적으로 구속되지는 않는다는 뜻이
기도 하다 이 lsquo자유와 구속의 변증법rsquo에 비추어 지금까지 논한 주제에 대해 몇 가
지 입장을 정리해 보자 첫째 법관에게 있어서 독립은 확정된 원칙이나 그것자체
로서 달성해야 할 최종목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법관의 독립은 완성형이 아니라
끊임없는 진행형의 과제로서 그 직무수행에 대한 신뢰와 병행하여 점진적으로 이
루어지는 것이다 둘째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에 있어서 구속은 법률에 무조건 복종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판결에 대한 윤리 (내 ) 확신과 함께 법률에 복종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법관이 실정법률에 반하는 결정을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법
관은 객관성을 빌미로 법률 뒤에 숨는 익명적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
미하는 것이다 셋째 독립적인 법관의 양심은 lsquo법과 상충한다rsquo기보다는 lsquo법을 실
한다rsquo는 의미를 지닌다 넷째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서 반추하면서 lsquo하는
사람rsquo인 동시에 lsquo보는 사람rsquo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성찰 인 인물상으
로서만 설정될 수 있다
해석적 탐구는 우리의 이해를 넓히기 위해서 필요하지만 이해에서의 우리의 피
할 수 없는 한계를 깨닫기 위해서도 필요했는지 모른다 엥기쉬는 법해석방법론에
대한 저술의 마지막 부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ldquo방법론에 천착하다 보면
애초의 문제였던 법률로부터 훨씬 더 먼 곳으로 이끌려 간다rdquo 지금까지 필자는
법관의 법해석과 관련하여 방법론의 의의와 한계를 논하고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과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에 비추어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이 법해석론
의 불가결한 부분으로 들어가게 되는 이유도 밝혔다 그리고 해석적 차원에서의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는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행위를 목표로 하는
탐구라는 것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필자는 이 모든 논의들을 매개로 방법론이 우리를 더 멀리 덕
목론으로 데려가는 과정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드워킨의
상황에 대한 이 묘사 부분은 이경재 ldquo토마스 아퀴나스의 양심 개념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375면을 참조했다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7
헤라클레스를 잠시 불러올 필요가 있다 해석문제를 누구보다도 더 진지하게 다룬
드워킨은 마지막에 헤라클레스를 내세운다 주어진 사건에서 무엇이 법인지에
대해 도덕적 의식을 가지고 법실무 전체를 원리정합적으로 정당화하라는 요청에
부응하여 자신의 신념에 기초한 결정을 내리는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의 구성적
해석에서 법관의 양심이 기능하는 국면은 어디일까 송민경 판사는 드워킨의 구성
적 해석론에 입각하여 양심을 구체적 법논증과정의 일부로 포함시키면서 이때 양
심이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라는 지침으로 기능한다고 설명한다90)
그런데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는 지침으로 기능하는 것을 양심이라
고 보게 되면 양심의 문제는 논증적 합리성의 차원 즉 논증의 성공으로 종결짓게
된다 그러나 법적 결정의 정당성 문제는 법관의 입장에서는 논증의 성공 문제로
다루어지지만 법관의 성공적인 논증에 따른 판결의 결과로부터 영향을 받는 시민
의 입장에서 보면 성공적인 논증만으로는 해석이 정당화된다고 볼 수는 없다
성공적인 논증은 법적 결정의 정당화에 필수적이기는 하나 충분한 조건은 되지 못
한다 해석이 궁극적으로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사법적 도덕성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 사법적 도덕성은 헤라클레스가 지침으로 삼는 원리적 도덕성의 실현과는 다른
것이다 만약 패소한 시민이 다른 헤라클레스에게 갔더라면 즉 다른 법원리에 기
초한 신념을 토대로 다른 결정을 내린 다른 법관에게 갔다면 그는 승리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왜 헤라클레스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하
는지에 대한 답이 필요한 것이다91) 헤라클레스가 실무에 대한 최상의 정당화를
도모하는 법적 이상주의자라면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법원 문을 두드린 시민도
어느 의미에서 ldquo법이상주의자rdquo92)이다
법해석 작업의 주관의존성이라는 불가피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재판이라는 특수
한 공적 활동이 법관이라는 특수공직자에 의해 운영되고 유지된다는 것은 시민들
-소송에서 패한 시민들을 포함하여-편에서 보면 법을 해석하는 법관에 대한
신뢰가 전제된다는 것이다 법관의 독립적 활동은 법관의 특권 행사가 아니라 사
90) 송민경 앞의 글 38면 20면91) 사법적 덕목과 연관하여 이 부분을 다룬 글로는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5면 이하
92) 법원 문을 두드리는 시민에 대한 이 표현은 심헌섭 ldquo법조윤리의 좌표 거시적 관점에서 본 전문윤리로서의 법조윤리rdquo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편 法律家의 倫理와 責任 박영사
(2003)에 나온다
9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법과정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응당한 몫이 돌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존중하는 바탕에는 일종의 상호성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 그 또한
시민이기도 한 법관이 동료시민들에 대해 가지는 배려와 존중의 원칙이 그것이다
여기서 사법적 덕목에 대해 자세히 논할 수는 없다93) 예의 성실 신중 절제
용기 공정 겸손 의사소통 능력 형평 시민에 대한 배려와 존중 등등 이것들은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바탕을 이루는 양심의 덕목들일
것이다 양심이라는 단어가 그렇듯이 덕목이라는 단어도 오늘날 진부해진 표현
이며 거의 사라져가는 단어다 윤리적 태도로서의 덕목은 관찰하기도 배우기도
어렵다 그러나 올바른 판단과 결정이 법관이라는 개인을 거치지 않고 법령집
자체로부터 반사적으로 튀어나오지 않는 한 이 덕목들을 내면화하고 지향하려는
태도 없이는 lsquo종국적인rsquo 판단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써 필자는 헌법 제103조를 통해 법해석에서의 방법론의 문제가 덕목론이라
는 다음 과제로 이어진다는 점을 밝혔다고 생각한다
투고일 2016 4 6 심사완료일 2016 5 18 게재확정일 2016 5 20
93) 법관의 개별적인 덕목들과 이것들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는 박은정 강태경 김현섭 바람
직한 법관상의 정립과 실천 방안에 관한 연구 법원행정처(2015) 제5장 참조할 것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9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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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황식 연필로 쓴 페이스북 之山通信 나남(2013)
박은정 왜 법의 지배인가 돌베개(2010)
박은정 강태경 김현섭 바람직한 법관상의 정립과 실천 방안에 관한 연구 법원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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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경 ldquo법관의 양심에 관한 연구rdquo 사법논집 제58집(2014)
심헌섭 ldquo법조윤리의 좌표 거시적 관점에서 본 전문윤리로서의 법조윤리rdquo 서울대
학교 법과대학 편 法律家의 倫理와 責任 박영사(2003)
분석과 비 의 법철학 법문사(2001)
양창수 ldquo바람직한 법관상-기예와 지혜 사이rdquo lt근대사법 및 한성재판소 설립
이성의 활동rdquo ldquo인격의 자기인식rdquo ldquo본래적인 자기 자신으로 불러 세우는 염려의
소리rdquo ldquo너와 내가 함께 잘못을 감시하고 경계하는 공동의 눈초리rdquo ldquo근원적인 자
기의 요구rdquo 등등22) 이런 다양한 견해들은 양심 개념을 형식적인 측면에서 접근하
는지 아니면 내용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지 양심 판단에서 개인의 주관적 요소를
강조하는지 아니면 보편성 내지 소통가능성을 더 중요시하는지 양심의 권위를 내
부에서 찾는지 아니면 외부의 권위를 사회화 내지 내면화한 결과로 보는지 양심
에 따른 결단을 감정의 작용으로 보는지 아니면 이성도 같이 작용하는 것으로 보
는지 등에 따라 여러 갈래를 이룬다
칸트의 근대 주체철학의 영향을 받은 이래 오늘날 양심논의에서는 대체로 양심
의 개인적 주관적 요소가 강조되는 가운데 양심을 개인에게 도덕적 행위 동기를
유발하고 자기반성을 가능하게 하고 개인의 판단과 자기결정에서 최종심급의 역
할을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대표적으로 칸트는 양심을 각 주체로서의 개인의
ldquo내면에 자리 잡은 자율적 심판관rdquo으로 일컬으면서 행위주체가 자기 안에 내재하
21) 이덕연 앞의 글 361면22) 진교훈 외 19인 양심 고 로부터 에 이르기까지의 양심의 의미 서울대학교출판
문화원(2012)
7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는 도덕법칙에 스스로의 행동을 적용시키는 것이 양심이라고 말한다23) 이때 양심
은 스스로 도덕법칙을 정립할 수 있는 선의지를 가진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지니는 일종의 의무의식으로 여겨지며 자신이 자신을 평가하는 것이 양심이기 때
문에 이 주관적 확신을 평가하는 외부의 기준은 없는 셈이다24) 이렇게 양심을 주
관성의 형식으로 가져갈 때는 주관적으로는 옳은 양심에 따른 확신이라 하더라도
인식주체가 가진 한계 등으로 인해 내용상 오류가 가능하다는 문제를 안게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칸트와 달리 양심문제를 개인의 주관적 도덕의식 이상의 차원에
서 다루고자 하는 철학자들은 간주관성의 차원에서 보편성을 지니는 양심개념을
추구한다 이런 방향에서 파악한 양심 개념에 대해 lsquo객관적rsquo 양심이라는 표현을 쓸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양심과 관련하여 lsquo객관적rsquo이라는 표현은 인식
주체 밖에 뭔가가 존재한다는 인식론적 존재론적 가정을 상정한다는 점에서 문제
가 있다 인식 주체 밖에 객관적인 그 무엇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양심이 아니라
윤리규범일 것이다 법관의 양심을 lsquo객관적rsquo lsquo법조적rsquo 양심으로 표현하는 것도 이런
의미에서 부적절하다25)
그런데 철학전통 안에는 양심을 주관성의 형식으로 끌어들여 절대화하는 시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서양에서 근대 이전의 철학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개인의 주
관적 도덕의식을 넘어서는 차원에서 양심을 논하는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우선 어
원상으로도 con-scientia syn-deresis의 con과 syn에서 알 수 있듯이 양심은 우리
내면의 법정에서도 공공성 내지 공동체성 즉 ldquo함께 안다rdquo라는 요소를 지니고 있
었다 이 어원은 양심의 규제적 기능에는 우리가 올바르게 행했는지 혹은 그릇되
게 행했는지를 지켜보는 ldquo공동의 인식rdquo이 있다는 자각이 포함됨을 암시한다 자기
안에서 lsquo보편적인 자기rsquo를 확신하는 과정을 상호인정과정과 연결시키고자 하는 양
심관은 공동의 윤리로서의 인륜성(Sittlichkeit)의 입장에서만 ldquo진정한 양심rdquo이 가능
하다고 보는 헤겔(G W F Hegel)의 양심론26) 타자윤리학에 근거한 레비나스
23) Immanuel Kant 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 (윤리형이상학 정 백종현 역 아카넷(2005) 134면 이하) 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Philosophische Bibliothek A 175 (2003) 215면 이하
24) 김관영 ldquo칸트에 있어서 양심의 문제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144면25) 예컨대 성낙인 교수는 법관의 양심을 ldquo법관이 적용하는 법 중에서 객관적으로 존재하
는 정신을 가리킨다rdquo고 설명한다 앞의 책 713면 이 객관적 정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26) Hegel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sect137 헤겔의 양심론에 대해서는 최신한
ldquo헤겔 야코비 양심의 변증법rdquo 헤겔연구 제23호(한국헤겔학회 2008) 86면 이하 참조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75
(Emmanuel Levinas)의 양심론27) 그리고 행위주체들의 담론적 소통과 사회적 행위
에 대한 책임에서 출발하는 아펠(Karl Otto Apel)의 양심론28)에도 엿보인다 동양의
양심을 ldquo세상 사람을 향해 움직이는 마음rdquo으로 묘사하면서 양심이 있어서 책임있
는 인식의 기능에 주목한 사상가도 있다30)
서양에서 근대를 전후로 양심의 주관화 경향이 강하게 대두된 데에는 종교분쟁
등의 영향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은 가치상대주의라는 시대정신의 영향 하에
양심은 도덕적 판단과 인격을 근거지우는 현상으로 파악되면서도 내용적 측면보다
는 형식적 측면에서 고찰되고 간주관적 논의가능성이 배제된 채 그 논의의 폭이
좁아져 거의 개인의 자기결정권 영역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우리 헌법 제19조의
양심의 의미도 이런 자기결정에서의 최종심급 역할이라는 맥락에서 읽히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살펴봤듯이 주관화의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기 이전의 사유전통에
서는 양심의 자기결정 능력보다는 스스로에게 도덕적 의문을 품는 능력 ldquo함께
안다rdquo라는 책임성 쪽에 더 비중이 놓여 있었다 이런 사유배경에 비추어 본다면
헌법 제19조의 양심은 근대 주관화의 영향의 산물로 이해할 수 있고 이에 비해
헌법 제103조에서 법관과 관련하여 언급된 양심은 근대 이전의 ldquo함께 안다rdquo의 사
유전통의 흔적을 지닌 개념으로 볼 수 있다
Ⅳ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의 완화 경향
앞에서 살펴봤듯이 역사적으로 법관의 독립이념은 법관은 오로지 법률에만 구속
된다는 것을 전제로 탄생했다 그리고 이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은 법률의 총합으로
27) 레비나스에 대해서는 김연숙 ldquo레비나스의 양심론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제3부 제3장 참조28) Karl Otto Apel From a Transcendental Semiotic Point of View Manchester University
Press (1998) 52면 259면 양심이 지니는 공적 관찰이나 감시기능 부분에 주목한
Apel에 대해서는 백춘현 ldquo아펠의 양심론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344면 이하29) 맹자의 양심론에 대해서는 장승희 ldquo맹자의 양심론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제1부 제1장
참조30) 왕수인은 양심과 양지(良知)라는 표현을 함께 썼다고 한다 ldquo남의 아픔을 느끼기 위해
서는 예민하게 lsquo생각rsquo해야 한다rdquo 여기서는 이혜경 ldquo왕수인의 양심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79면에서 재인용
7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서의 법질서는 통일적이고 자기충족적인 시스템을 이룬다는 가정에 기초하고 있
었다 그러나 이 가정은 그 자체로 애초 한계를 지닌 것이기도 하지만 법의 생태
적 기반이 변하면서 이 법률구속원칙은 점차 상대화 내지 약화되는 방향으로 나아
가게 되었다 입법자를 기다릴 수 없는 빠른 사회변화 자유법운동 입법양의 폭발
적인 증대 일반조항 도입 등 입법스타일의 변화 복지국가 대두 사회정의의 요구
헌법재판 활성화 등의 흐름은 법관의 법률구속메커니즘이 작동하기 어려운 여건을
만들어 가게 된 것이다 이른바 lsquo법관법rsquo의 대세 흐름이 나타난 것이다 특히 지난
수십 년간 확대된 입법영역은 형법과 같은 규제입법과 달리 사회복지생활보호
건강 증진남녀평등청소년보호장애인보호적극적 평등조처 등처럼 정치적 비전과
목적을 담은 한마디로 정책촉진적 성격을 지닌 법률들이었다 이와 같은 야심찬
입법스타일은 법적용단계에서 법관이 바람직한 제도 및 정책 내용에 대해 고려케
함으로써 목적적 법논증으로 기울게 하고 구체적 이익을 비교형량하는 심사방식
을 확대시키는 등 좁은 의미의 실정법률 해석보다는 법형성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 것이다31) 특히 이 흐름은 20세기말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법실증주의에
제동이 걸리는 분위기와 겹치면서32) 법철학에서도 전통적인 포섭논리나 삼단논법
은 실제로 법관들에게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지적과 함께 법관의 법률구속원
칙에 회의적인 성향의 논의들이 강세를 보이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법발견 과정에
대한 심화된 통찰을 통해 lsquo선이해rsquo의 문제를 재평가하게 만든 철학적 해석학과 문
언의 의미론적 구속력에 회의를 제기케 한 언어이론은 법철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들 이론에 입각하여 이제 법의 흠결 시와 같은 예외적인 상황에서 법관
의 법형성이 불가피하다는 수준의 주장을 넘어 법률텍스트를 통한 구속가능성 자
체를 의문시하는 주장까지 나오게 되었다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의 실현에 대한 기대가 점점 약화되고 그래서 누구의 표현
대로 법률이 해석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해석이 법률을 지배한다고 말할 정도가
31) 사회변화에 따른 법관의 역할 변화에 대해서는 박은정 왜 법의 지배인가 돌베개(2010) 제6장을 참조할 것
32) 울프리드 노이만(Ulfrid Neumann)은 지난 2015년 10월 1일 고려대학교 초청강연에서
ldquo실증주의 이후 시대의 법률과 판결rdquo이라는 주제로 발표하면서 법학적 사고가 ldquo법실
증주의 이후의 시대rdquo로 넘어갔다고 진단하고 그 배경으로 세계화 등의 흐름으로 국제
상거래관습법(lex mercatoria)처럼 입법당국에 의한 제정이 아닌 사회적 실천에 의거한
법제정 사례 법원리의 중요성 대두 인권사상 증대 등을 들고 있다 그러면서 법실증
주의로부터 멀어지는 만큼 법관의 법률구속원칙도 상대적으로 완화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77
되면 다시 제기될 수밖에 없는 물음이 바로 입법기관과 법적용기관 사이의 권력
균형 문제다 이 권력 균형은 특히 법 이라는 개인에 의해 매개된다는 점에서 문
제가 된다 오늘날 ldquo사법국가rdquo ldquo법관공화국rdquo ldquo사법엘리트rdquo ldquo사법의 정치화rdquo 등을
지적하는 소리는 입헌민주주의 기획의 초기단계에서 일찍이 해결했다고 여겼던
문제들이 다시 등장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법관의 법률구속의 전제 및 그 가능성
법원의 중립성 법관의 민주적 정당성 사법관료주의 등의 문제가 그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물음이 떠오른다 해석자의 자유를 제
한하고 법관의 법률구속을 보장할 확고한 법해석방법론은 가능한가 법관의 법률
구속에 관한 기술적 제도적 보장책은 가능한가 필자는 이 물음들에 대체로 회의
적인 전망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물론 법해석방법의 무용론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법률에 구속되는 법관상이 약화되고 앞으로도 점점 더 약화될
것이라는 전망 하에 어느 때보다도 더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될 법관의 독립 문제
를 염두에 두면서 법해석방법론의 문제를 재검토하고자 한다
Ⅴ 법해석방법론의 문제점과 한계
법이 있는 곳에 해석이 있다 법학의 강점도 해석학적 잠재력에 있다 법관의 임
무는 법률을 적용하기 위해 법문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법해석방법론은 법
해석과정에서 법관의 자유에 일정한 제약을 가하고 법관의 법률구속이념을 실현하
기 위해 고안되고 발전된 것이다 해석에서는 무엇이 최선의 해석인지를 둘러싸고
언제나 논쟁과 불일치가 생기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해석작업은 인간의 판단과 행
위의 영향 하에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법관이 따라야 하는 법률 자체에는 이미 법적용자를 법률에 대해 어느 정도 독
립적이게 만드는 여러 표현방식들이 들어 있다 예컨대 lsquo야간rsquo lsquo소음rsquo lsquo위험한 물건rsquo
lsquo적절한 조치rsquo 등 개념의 내포와 외연이 확정적이지 않은 법개념들이 대표적이다
이런 불확정적 개념들은 법명제의 구성요건 단계에만 들어 있는 게 아니라 법률효
과에서도 등장한다 이른바 lsquo규범적 개념rsquo들도 그런 표현방식에 속한다 lsquo음란한rsquo
lsquo건전한rsquo lsquo불명예스러운rsquo 등의 개념들은 기본적으로 지각가능한 대상을 서술하는
개념과 대비하여 의미내용이 가치판단에 근거할 때만 파악된다는 점에서 규범적
이다 이때 가치판단은 반드시 주관적 개인적 평가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른 사람
7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들의 평가도 포함할 것이지만 어쨌든 이 판단과 관련한 어느 정도의 불확정성은
감수해야 한다 법관의 법률 구속 의무를 느슨하게 만드는 이런 개념군에는 재량
도 포함된다 오늘날 재량개념은 ldquo법적으로 구속되는rdquo 재량으로 이해되지만 이때
판단의 여지 안에 들어오는 여러 대안들 가운데서 최종 혹은 최선의 대안을 확정
하는 데 있어서 결정자의 개인적 확신을 허용할 수밖에 없다 일반조항도 표현 그
대로 높은 일반성을 띰으로써 법적용자로 하여금 자기 앞에 놓인 사례를 광범위한
사례집단들에 적응시켜가면서 법률효과를 귀속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33)
위에서 언급한 불확정 법개념이나 규범적 개념 등을 적용하는 데는 가치판단
요소가 수반된다 이런 개념들을 적용할 때 법관은 일정한 범위 안에서 입법자를
대신하여 가치판단 내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것이다 또 법관
은 법의 lsquo흠결rsquo을 보충하거나 법질서 안에서 이따끔 발견되는 lsquo오류rsquo를 수정해야
할 부득이한 상황에도 처하게 된다 이때는 법관은 스스로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찾아 나서야 한다 lsquo법의 일반원칙rsquo lsquo법의 정신rsquo lsquo평균인의 척도rsquo lsquo비례성원칙 lsquo이익
형량rsquo 등은 이때 법관이 의존하는 사유 장치들이며 이것들을 원용하는 데도 가치
판단적 요소가 개입한다 이때 판단자는 무엇이 사실상 효력을 갖고 있는 윤리적
견해인지 확인해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사실로서의 합의가 올바른 법적 결론에
도달하게 하는지에 대해서도 숙고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법적용자는 때로는 평
균인 테스트 같은 객관적인 척도에 의지하지만 또 때로는 개인적 견해를 더 많이
펼칠 수 있는 일정한 판단의 여지를 가지게 된다
이렇게 해석과정에서 불가피한 lsquo판단의 여지rsquo 즉 해석과정에 불가피하게 개입되
는 가치판단 요소 때문에 ldquo해석의 건전성rdquo을 둘러싸고 논란이 생기고 해석의 정당
화와 관련하여 회의가 생긴다 가치판단과 관련된 부분이 불가피하게 주관적 요소
를 끌어들이게 되고 이로 인해 법규범의 효력이 상대적이고 불확실한 영역으로 떨
어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단자는 자신의 결론이 불확실성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자신의 해석에 대한 정당화를 포기할 수 없다 법을
해석한다는 것은 ldquo그 법률을 특정 사안에 적용하는 것을 정당화한다는rdquo34)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확정적인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사례에서도 요구되는
33) 불확정적 개념 규범적 개념 재량 일반조항과 관련한 자세한 설명은 칼 엥기쉬 법학
방법론 안법영윤재왕 옮김 세창출판사(2011) 182면 이하에 잘 정리되어 있으며 필
자도 이 부분을 참조했음을 밝힌다 34) 닐 맥코믹 로버트 서머즈 ldquo해석과 정당화(上)rdquo 박정훈 역 법철학연구 제5권 제2호
(2002) 18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79
개인적인 단은 도덕적 상대주의자들이 말하는 개인적인 취향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해석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올바른 해석기준을 수립하고자 법률가들은 각
기 지금까지 다양한 해석방법에 의존해 왔다 올바른 해석을 위한 확고한 기준을
수립할 수 있다는 것은 찬성하는 혹은 반대하는 해석논거들 사이의 상대적 비중을
결정하는 명확한 규칙을 수립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즉 어느 한 해석
논거가 다른 해석논거에 의해 배제되는 조건이나 선택된 해석을 정당화하는 데
필수적인 한 논거가 다른 논거보다 우월하기 위한 조건 한 논거에 누적을 통한
비중이 부과되는 조건 등을 제시해줄 일관된 정보와 지침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
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여러 해석방법들 사이에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다는 것
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시도는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했다 동일한 유형의 논거일지
라도 각각의 정당화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비중을 갖게 될 뿐더러 언어적 해석
방법 체계적 해석방법 목적적 해석방법 등으로 제시되는 여러 해석방법들이 한
줄로 세우기에는 한마디로 너무 이질적이다35) 물론 이들 해석논거들의 상호작용
을 검토하면서 잠정적인 서열을 제시하는 것은 가능할 수도 있다36) 그러나 이 서
열은 기껏해야 ldquo해석을 위한 노력의 경제성 원리rdquo 정도를 말해 줄 뿐이기 때문에
쉽게 바뀔 수 있다37)
드워킨이 옳게 지적한 대로 기본적으로 가치판단과 관련된 해석방법들은 위계
적일 수 없고 ldquo상호지지적rdquo인 관계에 놓일 뿐이다38) 이 때문에 방법론적 규칙을
세우려는 시도는 언제나 무망해지는 것이다 또한 법해석에 있어서 언어란 단어의
의미를 식별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 행위의 의미를 식별
하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론 풀러(Lon Fuller)가 지적한 대로 ldquo언어
를 통한 의사 전달은 어느 한 사람으로부터 다른 사람에게로 의미가 든 상자를 발송
하는 식rdquo39)은 아닌 것이다
35) 울프리드 노이만 ldquo실증주의 이후 시대의 법률과 판결rdquo 강연문(주 32) 노이만에 따르
면 예컨대 체계적 해석 방법에 따른 논거도 그것이 논리적 일관성 획득의 맥락에서
인지 아니면 가치평가의 일관성 보장이라는 맥락인지에 따라 전혀 다른 비중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36) 대체로 언어적-체계적-역사적-목적론적 해석방법의 순서로 언급되는 데 대해서는 심헌섭
분석과 비 의 법철학 법문사(2001) 217-218면37) 맥코믹과 서머즈는 비교법적 연구결과를 통해 올바른 해석을 위한 지침 수립은 어느
국가의 법체계에서도 지금까지 성공적이지 못함을 밝힌다(앞의 글 210면)38) 로널드 드워킨 정의론 박경신 옮김 민음사(2015) 309면
80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결론적으로 해석방법론으로부터 법관은 불확실성을 떨쳐 낼 수 있는 확실한 정
보제공을 기대하기 어렵다 해석논거를 위한 결정적인 기준을 제공하는 해석방법
에 대해 불안정한 형태로나마 이론적 합의를 찾기 어렵다면 엥기쉬의 지적대로
해석방법론은 공중에 떠있는 상태다40) 법학에서 방법론의 융성은 역설적으로 법
학이 이 부분에 취약하다는 암시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해석자로서의 법관을
최종적으로 인도하는 전략은 무엇일까 다음과 같은 고민을 들어보면 적어도 그것
은 방법론상의 합의에 대한 기대 같은 것은 아닌 것 같다 ldquo우리들은 일정한 결론을
내리고도 그 결론이 가장 적절sdot타당한 것이라고 보증받을 수 없다 그 결론을 낸
시점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들은 자기의 결론이 그러한 불확실성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그것을 자기의 전인격적 책임 아래 끝을 내고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비판과 평가에 맡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rdquo41)
해석방법론이 공중에 떠있는 상태라면 법관을 법률에 구속시키기 위한 방법론
적 보장책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런 가운데 ldquo자기의 전인격적 책임 아래rdquo ldquo사려
깊고 균형잡힌 총체적 관념rdquo ldquo인생 그 자체로부터 지식rdquo 등에 대한 호소를 듣는다
이것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법발견으로 불리든 법인식 혹은 법형성으
로 불리든 법적으로 올바른 결정을 이끌어낸다는 것은 순순히 lsquo앎rsquo의 문제만은 아
니라는 것이다 실천철학의 전통 용어를 빌어서 말한다면 그것은 이론지 이상의
실천지를 요구하는 활동이다 즉 법관의 해석활동은 이론지와 실천지를 결합하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이 주제로 다가가는 한 우회로로서 우선 지적 활동으로서의
법관의 해석활동의 특성에 대해 살펴보자
39) 론 풀러 법의 도덕성 박은정 옮김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2015) 314면 40) ldquo그러나 해석론 전체에 대한 확고한 이론적 토대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서열관계에
관한 모든 이론들은 여전히 공중에 떠 있다rdquo 엥기쉬 앞의 책 137면41) 사법연수원 법조윤리론(2014) 31면 그밖에 Benjamin N Cardozo The Nature of
Judicial Process Yale University Press (1921) ldquo언제 하나의 이익이 다른 이익을 능가
하는지를 묻는다면 hellip 경험과 연구와 성찰로부터 요컨대 인생 그 자체로부터 그 지식
을 얻지 않으면 안된다고 답할 수 있을 뿐이다rdquo(여기서는 법조윤리론에서 재인용) 또한 맥코믹서머즈 ldquo해석과 정당화(下)rdquo 박정훈 역 법철학연구 제6권 제1호(2003) 348면 ldquo해석은 간주관적으로 승인된 모든 법적 가치들에 대하여 사려깊고 균형잡힌
총체적 관념을 획득하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제대로 행해질
수 있다rdquo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1
Ⅵ 법관의 해석활동 실증주의의 대척점
앞에서 언급한 대로 해석에서는 무엇이 최선의 해석인가를 둘러싸고 언제나
논쟁과 불일치가 따른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누군가가 텍스트를 해석한다고
말하는 순간 그는 실증주의의 대척점에 서게 된다 실증주의과학의 의미에서는 논
쟁의 여지가 있는 것은 원칙적으로 과학일 수 없기 때문이다 법실증주의사고에서
해석 문제가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법을 근본규범에 입각
한 자기준거적인 구조로 보는 한스 켈젠(Hans Kelsen)의 순수법학이나 법적용과정
을 규칙에 의해 지도되는 과정으로 보는 하트(H L A Hart)의 분석법학에서 해석과
관련한 어려움은 다루고 있지 않다42)
켈젠은 순수법이론(Reine Rechtslehre)에서 정당한 해석만이 허용된다는 주장
은 허구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면서 해석의 건전성 문제나 정당화 문제를 법이론
안에서 다루기를 거부한다 법을 자기준거적인 것으로 보는 관점은 한마디로 해석
(행위)주체의 입장을 부정하는 것이다 켈젠은 법단계설을 바탕으로 법적용을 상위
규범의 수권에 의해 하위규범이 구체화되는 과정으로 보고 여기에 헌법의 수권을
받아 법률을 제정하는 입법자도 포함시킨다43) 이에 따라 법적용도 입법의 한 형
태로 설명된다 법관에 의한 법형성의 동기는 이를테면 입법부가 유독 다른 법률
이 아닌 이 법률을 통과시키는 동기와 같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켈젠은 판단활동
에서 인지적 요소와 의지적 요소를 엄격하게 구별하면서 법관의 판단활동을 순전
한 의지활동으로 보고 이 법관의 활동에 대해서만 (유권)해석이라는 표현을 사용
하고자 한다 그리고 법학적 해석에 대해서는 법규범의 가능한 의미들을 밝히는
것으로서 법률에 따른 결정의 범위를 제한하는 정도의 의미를 부여한다
법단계설에 따르면 상위규범이 정한 일정한 범위 안에서의 수권에 따라 하위규
범이 작용한다 이때 상위규범의 수권은 모든 세부적인 내용들에 대해서까지 정해
42) 켈젠은 순수법이론(Reine Rechtslehre) 제1판(1934) 제6장에서 해석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부분과 거의 같은 논문 ldquoZur Theorie der Interpretationrdquo이 심헌섭 젠법이론선집 법문사(1990) 97면 이하에 실려 있다 윤재왕 교수는 Reine Rechtslehre 제1판과 제2판
(1960)을 비교하면서 해석방법으로부터 오는 규범적 구속력을 일체 거부하는 켈젠의
입장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윤재왕 ldquo한스 켈젠의 법해석이론rdquo 고려법학 제74호(고려
대학교법학연구원 2014) 525면 이하 하트의 대표적인 저서 법의 개념의 색인 항목에는
lsquo해석rsquo이 빠져있다 43) Hans Kelsen Allgemeine Staatslehre (Berlin 1925) 231면 이하
8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그래서 ldquo상위단계의 법생성으로부터 하위단계의 법생
산으로의 전환은 단지 상위단계가 정해 놓은 범위를 채우는rdquo 활동으로서 이때
ldquo언제나 상위단계에는 없는 내용적 요소가 하위단계에 추가되어야만rdquo 한다44) 이
내용을 채우는 부분과 관련하여 상대적 불확실성이 생기는데 켈젠은 이 문제를
ldquo자유재량rdquo의 문제로 다룬다45) 이는 하트가 규칙의 체계로서의 법체계를 완결된
구조가 아닌 열린 구조로 봄으로써 상대적 불확실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법관의
재량사항으로 보는 것과 같다 하트의 경우 중심부와 주변부라는 극히 단순화된
이분법을 끌어들여 이 불확실성 문제를 처리하고자 했다면 켈젠의 경우는 인식작
용과 의지작용의 이분법을 끌어들임으로써 이 문제를 처리하고자 한 것이다
판결을 법관의 의지활동으로만 이해하는 입장을 취하게 되면 법관에게 결정에
대한 근거 제시 요청을 할 수 없게 된다 마치 신의 심판에 대해 근거 제시를 요구
할 수 없듯이 말이다 결국 켈젠의 법이론상으로는 해석은 법학의 문제가 아니며
그러므로 분석적 법실증주의와도 무관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46) 이런 이유에서 그
는 정당한 해석만이 허용된다는 주장이나 해석방법만으로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에
이를 수 있다는 주장을 거부하면서 심지어는 상위규범에 제시된 범위를 넘어서는
해석의 효력조차 적극적으로 인정함으로써 어느 의미에서는 해석이론의 존재기반
자체를 무너뜨린다47)
켈젠이나 하트가 법이론에서 해석의 의미를 축소한 이면에는 이분법이라는 과도
한 사유의 단순화가 놓여 있다 그러나 켈젠이 생각하는 것처럼 판단에서 인식적
요소와 의지적 요소의 확고한 경계가 유지되는지는 의문이다 또 중심부와 주변
부에 대한 하트의 주장도 지나친 단순화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어쨌거나
켈젠이 합리적인 해석방법을 추구하는 법이론의 효용가치를 한껏 떨어뜨렸다고
해서 이제 어차피 정답은 없으니 법대에 앉은 법관은 자기 임의로 무엇이든 해도
된다고 켈젠이 주장했을 리는 물론 없을 것이다 법이론의 과도한 정당성 주장을
거부하는 데서 오히려 순수법학의 비판적 잠재력을 찾을 수 있다고 보는 학자들은
여기서 켈젠이 강조한 순수화 즉 탈정치화는 법학에 관한 것이지 법 자체에 관한
44) Kelsen Allgemeine Staatslehre 243면 여기서 번역은 윤재왕 앞의 글 535-536면에서
재인용45) Kelsen 앞의 책 243면 이하46) 켈젠에 있어서 법해석은 이론상으로는 법학보다는 정치학이나 사회학에 속하는 문제
에 더 가깝다고 지적한 견해에 대해서는 론 풀러 앞의 책 312면 47) 이에 대해서는 윤재왕 앞의 글 553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3
주장이 아니었음을 상기시킨다48) 즉 법 자체는 결코 정치와 분리될 수 없다는
점에서 법실무에 대한 학문이론의 무가치성을 주장하는 순수법학은 실무의 법
적용자로 하여금 자신의 활동이 정치적 활동임을 깨닫고 책임을 느끼게 하는 계기
를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윤재왕 교수도 ldquo켈젠 해석이론의 배후rdquo로 들어가 방법
이론으로부터의 어떤 구속력도 거부되는 데서 생기는 공백을 켈젠이 법관 자신의
자기이해와 책임성 문제로 채운다고 지적한다 ldquo법관의 판결은 결코 순수한 것일
수 없으며 그런데도 자신의 판결이 순수한 인식의 소산이라고 강조한다면 이는
정치적 책임의 회피이고 동시에 이데올로기적이라는 혐의에 노출되지 않을 수
없다rdquo49) 이 문구가 켈젠 자신으로부터 나왔다면 아주 좋았을 것이다 자신의 직
무의 중요성과 책임에 대한 실천적 깨달음은 해석의 정당화를 목표로 하는 인식적
노력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켈젠의 순수법이론의 기획은 서로
붙어 있는 양면을 떼어 놓으면서 이것을 다시 붙일 수 있음을 보여주려 한 것일까
Ⅶ 법관의 해석활동 가치판단과 lsquo정답테제rsquo 문제
켈젠처럼 실증주의적 사고에 따르든 아니면 비실증주의적 사고에 따르든 가치
판단 문제에서 해석방법만으로는 하나의 정당한 결정을 도출할 수 없다고 생각한
다면 이는 해석의 차원에서 가치에 대한 이해 시도는 진리 추구와는 무관하다는
주장으로 귀결되는가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해석대상의 의미에 대한
관심과 최선의 이해에 대한 관심은 아무래도 진리 추구라는 목표를 향한다고 봐야
한다 법적 결정은 물론 법관의 권한에 속하지만 그것을 정당화해주는 원천은 법
관이라는 lsquo지위rsquo가 지니는 형식적 권한이 아니라 판결이 정당하다는 근거 제시에
있다 법판단을 정당화해주는 모델은 울프리드 노이만(Ulfrid Neumann)이 지적한
대로 권위를 통한 정당화모델보다는 진리를 통한 정당화모델에 더 가깝다50)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재판활동은 엄연히 사법권이라는 공권력의 작용이라는 점에서
독립적인 법관의 재판활동을 그 ldquo계획적이고 진지한 진리 탐구 활동rdquo적 측면 때문
48) 법학의 탈정치화를 ldquo정치적 허무주의rdquo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데 대해서는 켈젠 ldquo순수법학이란 무엇인가rdquo 젠법이론선집 280-282면
49) 윤재왕 앞의 글 559면50) 울프리드 노이만 ldquo법 진리 권위rdquo 2013 4 6 한국법철학회 강연문 참조
8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에 학문의 자유의 한 표현으로까지 보려는 것은 무리다51)
오늘날 가치상대주의 분위기는 실천적 물음에서 진리 도달가능성에 대한 회의를
과장한다 그러나 진리가 뭐냐는 빌라도의 물음에 비록 확신에 찬 대답을 못한다
하더라도 법에서 진리 내지 정당성 추구의 포기는 파국을 의미한다 국가권력
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도 진리라는 규제이념이 전제되기 때문
이다 독립된 사법부가 심급구조와 집단적 의사결정의 형태로 스스로의 시정 기구
를 가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물론 진리에 대한 주장은 잠정적이고 수정가능하다
lsquo참이냐 거짓이냐rsquo는 오로지 서술적 명제에만 한정하여 검증될 뿐이라는 협소한
학문관을 따른다면 법학은 학문 안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법
학이 그런 협소한 학문관을 받아들여야 할 필연성은 없다 법해석자는 자신의 해
석적 판단이 진리라는 주장을 무한정 내세우지는 못하면서도 진리 추구를 피할
수 없다52) 론 풀러(Lon Fuller)의 지적대로 ldquo법이론이 최고의 법적 권위를 엄격하
게 정의하는 일에 큰 비중을 두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이 점이 모호해지면 필경
전체로서의 법체계가 와해될 수 있다rdquo53)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법을 민주
주의의 언어로 설명하는 오늘날 의회와 행정처럼 다수결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기
관도 아닌 사법의 소수 전문 엘리트의 지배를 권위모델만으로 정당화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법을 준수하는 시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시민들은 자신에게 유죄
판결을 선고한 세속의 법관에게 그 유죄판결의 근거를 알고 싶다고 요구할 수 있
으며 물론 당연히 요구한다
법관은 판결에서 논증을 통해 최상의 근거 제시가 이루어진 결정을 해야 한다54)
51) ldquo일부 사람들 중에는 이러한 법원의 권력기관적 성질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
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helliphellip 가끔 법관의 일을 조용한 방에서 소송서
류를 꼼꼼하게 읽어 파악한 사실에다가 법을 논리적으로 적용하는 단순히 지적(知的)인 작업이라는 시각에서만 말씀하시는 분을 만나면 그 분에게 재판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법대에 앉아 있는 법관이 어떻게 보이는지 물어보고 싶어집니다rdquo 양창수 ldquo바람직한 법관상 - 기예와 지혜 사이rdquo lt근대사법 및 한성재판소 설립 120주년 기념
1895sim2015 소통컨퍼런스 역사에 비춰 본 바람직한 법관상gt 자료집(서울중앙지방법원 2015 5 11) 15면 ldquo계획적이고 진지한 진리 탐구 활동rdquo이라는 표현은 라드브루흐에서
나온다 구스타브 라드브루흐 법철학 최종고 옮김 삼영사(2011) 238면 52) 드워킨 앞의 책 208면 53) 론 풀러 앞의 책 211면 풀러의 문장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ldquo하지만 이 경우도
위로부터의 지시 또한 목적의식에서 비롯되는 지적 활동을 완전히 생략할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rdquo54) 물론 진리 요청과 관련하여 개별 법관의 관점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며 민주국가에서
포기될 수 없는 진리 요청은 법학을 포함한 법체계 전체로 하여금 진리 요청에 어떻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5
이때 정당한 근거 제시가 이루어진 결정과 관련하여 그것이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
이라는 주장을 펼 수 있는가 앞에서 검토한 대로 켈젠의 순수법이론은 그런 주장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이에 비해 드워킨은 법적 판단에 있어서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이 원칙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ldquo정답테제rdquo로 불리는 이 주장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학자들이 지적한 대로 존재사실에 대한 주장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하나의 ldquo규제이념rdquo으로 받아들이는 게 맞는 것 같다 즉 드워킨의 정답테제
는 ldquo유일하게 정당한 결정rdquo이 존재한다는 데 대한 이론적 탐구라기보다는 실무에
서의 법관의 주관적 태도에 부합하는 이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법관은 자신의 판결활동과 관련하여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모든 사건
에서 오직 하나의 결정만이 정당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 정답에 가까이 가기 위
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55)
드워킨의 말대로 가치판단이 참일 때는 그냥 참일 수가 없으며 그것이 참인
이유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즉 충분한 논거가 존재할 때 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라면 이러한 논거지움의 과정은 자명한 공리적
토대나 그런 토대 위에서 확립된 규칙이나 원리적 서열에 따라 명확하게 밝힐 수
없다 이런 불확실한 가운데도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논거지움은 포기될 수
없다 이 끝없는 정당화 부담 때문에 켈젠은 규범의 효력 근거에 관한 논의를 가
치에 관한 논의와 절연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물론 성공하지
못했다56)
가치판단을 해야 하는 부분이 법문화에서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요소로 작용할지
아니면 그 반대로 작용할지는 판단자로서의 법관의 역량과 연관하여 논해야 할 것
이다 필자는 가치판단적 요소가 법문화에서 당연히 긍정적 요소로 작용해야 하며
게 부응하는지 묻게 한다 따라서 사법부 외부에서 행하는 사법비판의 길이 열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대해서는 노이만 앞의 강연문 참조55) 노이만 앞의 강연문56) 규범의 효력을 불명확하고 상대적인 가치가 아닌 규범에 근거짓기 위해 켈젠이 고안
한 근본규범은 사유상으로만 전제된 규범일 뿐이었다 켈젠은 가치판단을 ldquo현실의 행
위가 객관적으로 효력 있는 규범에 맞게 존재해야 하는 대로 존재한다는 판단rdquo이라고
정의함으로써 가치판단이라는 용어 자체를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Reine Rechtslehre 2 Aufl (1960) 16면 이하 또한 켈젠은 규범이 인간의 의지에 의해
제정되는 한 그 규범에 의해 형성된 가치는 어차피 자의적일 뿐이라고 주장한다(18면) 규범과 가치의 관계에 대한 켈젠의 주장에 대해서는 오세혁 ldquo켈젠의 법이론에 있어서
규범과 가치 - 규범과 가치의 상관관계를 중심으로rdquo 법철학연구 제18권 제3호(2015) 97면 이하 참조
8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또한 그렇게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57) 그런 방향에서 이제 해석의 문제를 법
관의 자기이해 문제와 연관시켜 보기로 한다
Ⅷ 해석과 법관의 자기이해
법관은 추상적인 일반규칙을 가지고 공중의 이목을 끄는 개별적인 사건을 처리
하는 사람이다 법관의 의식활동에 의해 일반규칙과 일회적인 사건 사이의 심연이
메워진다 하지만 일반성과 개별성을 결합하는 이 의식과정에 동반하는 고유한 법
학적 방법에 대해서는 앞에서 지적한 대로 확실한 합의는 없다 ldquo리걸 마인드rdquo라
는 말이 풍기는 신비스러운 분위기에는 사법적 결정이 본질적으로 투명한 것이 되기
어렵다는 암시가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다 논리적인 형태만 부여하기로 한다면
한 사건에서 서로 상반된 결론에 이른 두 개의 판결문을 작성하는 것도 불가능
하지 않다58) 방법이 논리에 기초하는 것이라면 이때 논리는 형식논리를 넘어 엥기
쉬가 표현한 대로 ldquo실질에 부합하는rdquo 논리여야 할 것이다 참된 올바른 받아들
일 수 있는 결정에 이르는 실질논리 이 실질에 도달하기까지는 결코 논리적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지적 감행과 어떤 매개가 작용한다
일반규칙을 개별사례에 적용할 때 요구되는 판단자의 능력과 관련하여 가다머
(Hans-Georg Gadamer)는 이런 견해를 밝힌 적이 있다 판단자는 자신이 이미 가
57) 이와는 달리 가치의 ldquo통약불가능성rdquo 때문에 사법은 좋음이나 옳음의 이슈에 대해 실
질적 입장을 취하는 일에 대해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가치의 통약
불가능성에 대해서는 Cass R Sunstein ldquoImcommensurability and Valuation in Lawrdquo Michigan Law Review Vol 92 No 4 (1994) 779면 이하 조홍식 교수는 ldquo가치의 통약
불가능성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이 권리인가의 문제보다 무엇이 공익인가의 문제에서
더 크다rdquo고 지적하면서 기본적으로 가치판단과 관련한 사법통치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사법통치의 정당성과 한계 제2판 박영사(2010) 240면 가치의 통약불가능성에 대한 주장은 가치판단과 관련한 해석기준의 서열화는 불가능
하다는 주장과 같은 노선에 속한다 여기서 통약불가능성 문제를 자세히 다룰 수는
없다 다만 가치의 통약불가능성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통약불가능이 비교불가능을 의미
하지는 않는다는 점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체적인 맥락이 주어지는 경우 무엇이 옳은
지 혹은 그른지에 대해 심사숙고하며 이에 따라 선택하고 그 선택 결과를 받아들인
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정도만 지적하기로 한다 58) 실제로 판사가 판결문을 두 개 써왔다고 주장한 사건에 대한 보도가 있었다 ldquo판결문을
두 개 써왔다rdquo 조선일보 2013 11 21자 기사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7
지고 있어서 적용하기만 하면 된다는 그런 의미의 규범적 실천적 ldquo지식을 소유한
사람rdquo이라기보다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 ldquo지식을 탄생시키는 상황에 직면하는
사람rdquo이라는 것이다59) 일반범주를 개별사례에 적용할 때 요구되는 이 판단력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래서 칸트(Kant)도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ldquo지성은 규칙들
을 통해 배우고 보강할 수 있는 것이지만 판단력은 특수한 재능으로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전혀 아니고 단지 숙련될 수 있을 뿐이다rdquo60)
우리는 올바른 규칙이나 원리를 알고 있지만 막상 이것을 어떤 상황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예컨대 비례성원칙이나 과잉금지원칙에 대한 지식
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은 적정해야 하고 그 수단은 목적달
성을 위해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원칙을 특수한
상황에 lsquo적용rsquo한다고 할 때에 이 원칙이 그 어떤 판단도 배제할 정도로 자족적인
지침 구실을 한다고 느끼기는 어렵다 특정 상황에서 그 수단이 과연 어느 정도일
때가 목적달성에 적정한지는 판단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실천이성의 역
할이다
단의 자리는 이론 경험 양심이 혼재된 실천의 영역이다 판단을 통한 결정이
라는 그 lsquo종국성rsquo으로 인한 실천적 성격은 법학이 다른 어떤 학문분야와도 공유
하지 않는 법학 고유의 특징이다 그래서 법학은 lsquolegal sciencersquo로 불리기보다는
실천지- prudentia-를 함의하는 lsquojurisprudencersquo로 더 자주 불리어 왔을 것이다
해석의 차원에서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도 추상적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
으로는 행위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성과 개별성을 결합하는 해석적
지식은 추상적 이론적 지식들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일반규칙이나 원리
에 근거한 이론적 패턴의 지식과 특정한 상황 내지 맥락을 고려하는 실천적 패턴
의 지식의 이중주를 이룬다 법관이 지니는 통찰력의 특성은 이론과 태도가 함께
간다는 데 있다 그래서 사법적 판단에서는 규칙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 못지않게
사람 즉 법관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사법적 통찰력의 특성은
뭐니뭐니해도 개별 사례를 다룬다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개별적인 것들은 개별적
인 방식으로만 체험되고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들은 무엇
보다도 lsquo지각rsquo과 관계된다61) 즉 그것들은 일반적 체계적 지식의 대상이라기보다
59) Hans-Georg Gadamer Wahrheit und Methode Grundzuumlge einer philosophischen Hermeneutik 3 Aufl J C B MOHR (1972) 300면
60)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 1 백종현 옮김 아카넷(2009) 374면
8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는 우선 지각의 대상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도 사법적 통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쪽은 규칙보다는 오히려 사람 즉 법관 쪽인 것이다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사건에서 법적으로 중요한 사실이 무엇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규칙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어떤 규칙이 중요한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실이 중요한지 알
아야 한다 이 인식과정에서 법관은 불확실한 가운데서 무수한 선택을 감행한다
어떤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 배척하고 어떤 사실은 인정하거나 무게를 부
여하고 신청된 증거조사의 어떤 것은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거부하고helliphellip 사실
에 대한 이 취사선택-자유심증주의-의 결과로 새로운 것이 태어난다 그리고
이것에 의해 법원을 찾아온 사람들의 운명이 갈리는 것이다
법관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필자 생각에
독일의 법철학자 아르투어 카우프만(Arthur Kaufmann)의 해석학적 방법론은 법
관의 자기이해 문제를 해석학적 지평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법관의 해석작업의
본질을 잘 설명해주는 것 같다 가다머 계통의 철학적 해석학(philosophische
Hermeneutik)의 입장을 받아들이면서62) 카우프만은 법해석행위를 통해 포괄적인
의미에서 법관 자신의 인격 중의 어떤 것이 판결에 혼입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
61)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4면 그리고 1심에서
유죄였다가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강력범죄 540건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판단자
의 감지능력 차이가 법판단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힌 김상준 무죄
결과 법 의 사실인정 경인문화사(2013) 62) 텍스트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이해에 관한 연구분야인 해석학(hermeneutics Hermeneutik)
의 어원은 신들의 전령(傳令)인 Hermes라는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설명된다 이때 신의
의도를 인간에게 전하는 과정에서 언어의 제약성 시공간적 간격 전령의 역할 등과 관
련하여 해석의 문제가 생긴다고 본다 ldquoHermeneuticsrdquo Dictionary of Biblical Interpretation Nashville (1999) 497면 독일어의 Auslegung이 해석주체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대상
으로서의 텍스트에 대한 해석을 의미한다면(객관주의) 철학적 해석학에서의 해석
(Interpretation)은 해석주체의 주관성 내지 역사성이 대상에 투사된다는 의미가 강하다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에 따르면 역사적 존재인 인간에게 있어 모든 해석과 이해는 과
거와 현재가 lsquo작용사적으로(wirkungsgeschichtlich)rsquo 중재되는 사건으로서 lsquo선이해rsquo 내지
lsquo선판단rsquo 없이는 불가능하다 가다머는 선입견으로 폄하된 선이해를 재평가하고 이를
통해 근대 이래 lsquo방법rsquo을 통한 진리발견이 주체에 의한 객체의 대상화 내지 도구화를 가져
왔다고 비판하면서 인간경험에 있어서 진리에 이르는 길은 사물의 존재가 스스로 드러
나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해석과 이해는 전승된 존재방식으로서
의 텍스트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며 이는 텍스트 자체가 지닌 역사적 지평과 해석
자의 지평이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만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해석학적 순환 이해의 전제로서의 선이해 작용사 등에 대해서는 Gadamer 앞의 책 II Grundzuumlge einer Theorie der Hermeneutischen Erfahrung 참조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9
로 법관의 결정이 올바른가의 물음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가의 물음과 직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63)
우선 카우프만은 통상적으로 회자되는 독립적인 법관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즉 법 앞에 선 법관이 일체의 정치적 사회적 개인적 영향이나 선입견들로부터 차
단된 채 순수한 객관적 인식에 따라 그 이전에는 자신이 알 수 없었던 사실관계
를 판단하고 그런 다음에 법적 판단을 한다는 식으로 이해하기를 거부한다64)
그런 법관상은 법령집은 일체 해석의 필요가 없이 거의 모든 가능한 법률문제에
대한 대답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상정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법관은 의지가
없는 존재이며 사법권력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여기는 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법에 대한 인식은 단순히 사례를 법률에 포섭시킨다는 의미의 수
동적 행위가 아니고 해석자가 해석대상에 관여하면서 함께 lsquo형성rsquo하는 것이라고
본다 카우프만은 법관의 법형성력에 대한 자신의 견해가 주관주의의 의미로 받아
들여지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는데 왜냐하면 해석자는 텍스트를 지탱하는 모든
전통과 함께 이해의 지평으로 들어간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은 서류의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ldquo아 이런 사건이구나rdquo라고 감을 잡게 되
는데 카우프만에 따르면 이는 법관 자신이 사건 경과를 관찰해서 인지했다거나
언론 등을 통해 사건에 대한 상세한 지식을 얻었다는 뜻이 아니라 유사한 사건들
을 알며 그래서 ldquo선이해(Vorurteil Vorverstaumlndnis)rdquo65)를 가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
해의 전제로서 이런 선이해가 없다면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것이 무엇에 관한 사
건인지 알 수 없고 다른 사례와 비교할 수도 없기 때문에 올바른 판단에 이른다
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66) 이 선이해에 의해 해석은 언제나 해석주체의 자기
이해 즉 자신이 lsquo잠정적rsquo 결과로서 이미 예상했던 것을 논증적으로 근거짓는 활동
이라는 의미에서 ldquo해석학적 순환rdquo 내지 ldquo해석학적 나선구조rdquo 하에 이루어진다
63)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Festschrift fuumlr Karl Peters Mohr Siebeck (1974) 144면 법관의 독립과 양심 주제와 관련한 또 다른
글로는 Kaufmann ldquoGesetz und Rechtrdquo Existenz und Ordnung Festschrift fuumlr Erik Wolf (1962) 357면 이하
64)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4면 65) 해석학적 의미에서의 lsquo선이해rsquo는 일상 언어 관용에서는 lsquo선입견rsquo이나 lsquo편견rsquo 같은 부정
적 함의를 더 많이 지니기 때문에 카우프만은 lsquoVorurteilrsquo 대신에 Vorverstaumlndnis라는 용
어를 쓰기를 권장한다(앞의 글 148면) 카우프만 외에도 이 용어의 선택은 Josef Esser Vorverstaumlndnis und Methodenwahl in der Rechtsfindung 2 Aufl (Frankfurt aM 1972)
66)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7면
90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텍스트를 이해하려는 사람은 말하자면 언제나 초벌 그림을 그리며 특정 의미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텍스트를 읽기 때문에 ldquo텍스트에서 첫 번째 의미가 지시되자
마자 전체의 의미를 lsquo예비투사한다(vorauswirft)rsquordquo67) 그리고 선이해와 관련된 이 예
비투사는-해석학적 lsquo순환rsquo에 의해-원칙적으로 끝없이 검열과정을 거친다는 것
이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도 실제 판단과정에서는 분리
되지 않는다68)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은 시간적으로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단절 관계가 아니라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정제하고 상응하는
관계에 놓인다 즉 사실에 대한 인식 없이 규범적 인식은 불가능하며 또한 규범적
관점 없이 사실만을 통한 사실 확정도 불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법률도 법관의
해석을 만나기 전에는 ldquo잠재적인 가능태로서 주어진 법률rdquo일 뿐 해석학적 순환을
통한 정제 혹은 상응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ldquo진정한 실정법rdquo이 생성된다69) 이렇
게 특정사건을 통해 구체화된 규범(구성요건)과 이 규범을 통해 정해진 사실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법관에게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들과 함께 제3의 요소로서 법관
자신의 선이해 내지 이해 포괄적으로 말하면 그의 인격적 존재가 판단에 혼입
된다
lsquo선이해rsquo는 판단자가 자신의 선이해를 의식하지 못할 때 부정적 요소를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ldquo자신의 판단은 오로지 lsquo있는 그대로다rsquo라고 말하는 즉 lsquo오로지 법
률에만 구속된다rsquo라고 말하는 법관이야말로 실은 종속된 법관이다 왜냐하면 그는
성찰되지 않은 자신의 선이해와 거리를 둘 수 없기 때문이다rdquo70) 즉 법관은 자신
67)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68) 실제 판단과정에서 사실인정과 법률적용이 따로 떨어질 수 없다는 점은 굳이 카우프
만의 이론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실무상으로는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ldquo법률
의 적용과 사실의 인정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법률문제와 결부되어 인정된다 사실의 인정이 진행됨에 따라서 재판관의 머리
속에서는 어떠한 법규를 적용할 것인가 그 법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는 전망이
점차로 서게 되며 당사자 측도 경우에 따라서는 민사인 경우 청구의 취지를 변경할
것인가를 고려하게 되고 형사인 경우 공소사실을 변경하는 경우도 생긴다 요컨대 사실
문제와 법률문제는 실제과정에서 불가분으로 결부되어 있다 helliphellip 양쪽이 불가분으로
재판관의 직관 혹은 재판관의 전인격적인 작용에 의하여 사실의 인정과 법의 적용이
행하여지고 판결 삼단논법은 실제의 심판 과정에서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rdquo(사법
연수원 법조윤리론 35면) 69) ldquo법관의 해석 작업 이전에는 어느 의미에서 진정 법도 진정한 사실도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원자재들(Rohmaterialien)로만 이것들이 존재할 뿐이다rdquo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1
의 선이해를 의식하고 자신을 이데올로기 혐의 앞에 세울 줄 알 때 올바른 판결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ldquo법관이 자신의 선이해와 종속을 의식할수록 그래서 간주
관적 합의에 노력할수록 그는 더 객관적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rdquo71) 그러므로
법관의 주관주의의 위험은 카우프만식으로 말하면 가치판단 같은 성찰적 고려와
관련된 주관적 요소를 방법상의 근거 제시의 맥락에 끌어들이는 법관의 경우보다는
오히려 모든 것이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판결의 주관적
요소를 은폐하는 법관에게서 나타나는 위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학적 순환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법관은 ldquo법률의 입rdquo이 아니라 ldquo인격
으로서 판결을 떠받친다rdquo72) 판결은 법률과 법관의 인격의 혼성물이다 그러므로
법률은 판결을 위한 필요조건이기는 하나 충분조건은 아니라고도 말할 수 있다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순환이론은 법관의 독립과 양심의 문제 차원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법결정의 올바름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
는 정도에 달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자신을 올바르
게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자신의 판단력 경험 능력 인간에 대한 태도 감
수성 명예욕 등등
카우프만의 법해석학적 순환이론이 법관의 독립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이라
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독립은 법관 스스로 관철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론적으로 카우프만의 법해석이론의 의의는 법관이 자신의 선입견을
의식하는 것이야말로 법관의 독립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설득력있게 지적
해주며 그런 방향에서 법관의 법해석 작업을 재평가했다는 데 있다고 말할 수 있
겠다
70)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71) Arthur Kaufmann ldquoDer BGH und die Sitzblockaderdquo NJW (1988) 2581면 이하72) 이 표현은 Karl Peters의 Strafprozess - Ein Lehrbuch (1966) 99면에 나오며 여기서는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9면에서 재
인용했다 이덕연 교수도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에 입각하여 ldquo법관의 법해석작
업은 단순한 lsquo인식작업rsquo이나 lsquo언어분석작업rsquo이 아니라 ldquo구체적인 반성과 자기극복의
노력 속에서 온 인격을 걸고 진행하는 lsquo이해와 실천의 수행작업rsquordquo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앞의 글 352면)
9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Ⅸ 법관은 lsquo하는 사람rsquo인가 lsquo보는 사람rsquo인가
법관의 판단작업을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의 관점에서 주목했던 또 다른
철학자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다 그녀는 ldquo아이히만 재판rdquo을 계기로 판단의
특수한 경우로서의 판단력 문제를 연구했다73) 아렌트는 하드케이스와 연관시켜
법관의 판단력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74) 법관은 우선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을 반추하면서 판단에 임하는데 이때 판단자로서 그는 한 면으
로는 규칙에 따라 판단하라는 lsquo일반적 정의rsquo의 요구에 그리고 동시에 다른 한 면
으로는 정황에 맞게 판단하라는 lsquo개별적 정의rsquo의 요구에 처한다 이러한 상황은
아렌트에 따르면 하드케이스에서 특히 발생한다 이 이중적이고 모순적 요구 상황
을 아렌트는 법관의 판단에 적용되는 특수한 해석학 및 그 조건을 설명하는 출발
점으로 삼는다75) 하드케이스가 아닌 통상적인 사건에서는 이른바 포섭 여부를 판
단하는 것으로도 족하다 일반규칙에의 포섭 여부가 중심이 되는 이 단계에서의
판단력- lsquo규정하는 판단력(bestimmende Urteilskraft)rsquo-은 사실관계에서의 원인
이나 형식적 정의를 따지므로 일방적이고 간주관적 전제 없이도 가능하다 그래서
흔히 법관은 여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법을 해석해야 한다고 말할 때 이는
법적용을 이러한 지배적인 포섭모델에 입각하여 이해한 결과라 할 것이다 그런데
규칙으로부터 오는 어떤 어려움들 때문에 규정하는 판단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즉 포섭이 어렵거나 법흠결 시 또는 가치형량이 요구되는 하드케
이스에서는 법관은 어쩔 수 없이 앞에서 말한 모순문제를 다루어야만 한다 이때
아렌트는 법관이 사유의 확장을 통해 방법상으로 lsquo규정적 판단력rsquo을 스스로 교정
할 수 있는 lsquo성찰적 판단력rsquo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고 이 판단유형의 전환과정을
73) 법적 판단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 삼은 저술은 Hannah Arendt Eichmann in Jerusalem Ein Bericht von der Banalitaumlt des Boumlsen Erw Aufl (Muumlnchen 2001) 그리고 Hannah Arendt Das Urteilen Texte zu Kants Politischer Philosophie Hrsg v R Beiner Uumlbers v U Ludz (Muumlnchen 1998)
74) 아렌트가 염두에 둔 하드케이스는 라드브루흐가 이른바 ldquo법률적 불법rdquo 상태로 규정한
나치의 불법국가 상황으로서 이렇게 극히 예외적인 케이스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하드
케이스에 적용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별적 정의 요구에 부응함
으로써 예컨대 소급효를 금지하는 일반법률에 위배되는 상황과 유사한 갈등상황은 반
드시 극단적 상황에서만 생긴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75)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2 Bde Hrsg v U Ludz amp I Nordmann
따라서 그 척도는 전달가능성이며 거기에 딱 맞는 것은 공통감각(상식)이다rdquo77) 오
늘날 공통감각은 아렌트도 지적했듯이 더 이상 그것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얻고자 노력해야 하는 그 무엇이 되어버린 듯하다 그러나 공통감
각이 무너진 시대를 겪었던 아렌트는 사유의 전환 내지 확대를 위한 진정한 발판
을 다시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에서 구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78)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실천철학의 전통에서는 세계와의 관계 그리고 자기와의 관
계를 공통감각을 척도로 설정해가는 판단자가 lsquo하는 사람rsquo인지 아니면 lsquo보는 사람rsquo
인지 즉 lsquo행위자rsquo인지 아니면 lsquo관찰자rsquo인지를 둘러싸고 의견이 대립되어 왔다 lsquo하
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자가 lsquo정치가rsquo 쪽에 더 가깝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
자는 lsquo철학자rsquo 쪽에 더 가깝다 lsquo하는 사람rsquo은 주로 사회의 일반적 상식 건전한 인
간이해 세론(doxa)을 판단의 척도로 삼는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적 경험은 전체주
의 하에서는 건전한 인간이해도 집단화된 대중감정에 따른 오도된 인간이해 앞에
무너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판단에서 사실로서의 상식이나 합의 또는
법해석공동체 내부의 지배적 제도적 관점이라는 판단 척도만으로는 일반규칙으로
부터 오는 모순을 다루기 어렵다 여기서 판단자는 ldquo확대된 사유방식rdquo을 추구해야
하는데 아렌트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을 lsquo보는 사람rsquo의 판단과 결합시킴으로써 법
관을 위한 사유의 확대를 시도한다79) lsquo하는 사람rsquo이 사실로서의 일반적 상식이나
인간이해 차원에 비추어 판단한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ldquo이
상적 규범적 상식rdquo80)을 추구하고자 한다 판단을 거쳐 법적 효과를 결정하는 법관
76)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을 해석학적 순환이론을 적용하여 분석하면서 칸트의 판단력 비
판에 의거하여 아렌트가 판단력의 특수한 경우로서 법관의 ldquo성찰적 판단력rdquo이라는 새
로운 판단유형을 제시했다고 지적한 연구서로는 Stefanie Rosenmuumlller Der Ort des Rechts Gemeinsinn und richterliches Urteilen nach Hannah Arendt Nomos (2013) 참조
77) Hannah Arendt Das Urteilen 92-93면78) 아렌트가 판단의 차원을 심화시키는 발판으로 삼는 상식은 sensus communis로서
communis opinio와는 다르다는 데 대해서는 Marieke Borren ldquolsquoA Sense of the Worldrsquo Hannah Arendtrsquos Hermeneutic Phenomenology of Common Senserdquo International Journal of Philosophical Studies Vol 21 No 2 (2013) 225-255
79) Hannah Arendt Das Urteilen 76면80) Rosenmuumlller 앞의 책 234면 이하 여기서 아렌트는 상식개념을 이중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에서는 경험적 개념으로 보다 성찰적 판단
단계에서는 규범적 개념으로 사용한다
9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은 관찰자로서 판단하면서 동시에 행위자로서 판단에서 법적 결과를 결정하는
사람이다 관찰자인 동시에 행위자라는 이중적인 역할을 하면서 법관은 자신의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 반추한다81) 이 반추과정에서 법관은 한편으로는 포섭
하는 판단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고려해야 할 관점들을 끌어들이면서
자신의 직책을 마지막까지 수행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통제하면서 자신의 앞서의
(포섭) 판단을 정정해나간다 그래서 법관 자신이 lsquo보는 사람rsquo과 lsquo하는 사람rsquo의 만
남의 장소가 되는 것과도 같다 ldquo이 보는 사람은 모든 하는 사람 안에 자리 잡고
있다helliphellip이 비판적 판단능력이 없이는 행위자 혹은 해결자는 보는 사람으로부터
풀려나 종내는 지각되지조차 못하게 될 것이다rdquo82)
사람들은 자신 일에 있어서는 비당파적일 수는 없다 따라서 ldquo자신의 일에 대한
판단에서는 내면의 심판자 혹은 내면의 법정을 가질 수 없다rdquo83) 그러나 다른 사
람의 일을 반추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필히 비당파적이어야 하며 또 비당파적이 될
수 있다 이때 그는 비로소 내면의 심판자를 가지게 된다 즉 양심의 문제에 처하
게 되는 것이다 판단에 있어서 양심이라는 것 즉 양심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남
의 일에서 ldquo증인rdquo 혹은 ldquo비판적 친구rdquo로서 관찰하고 행위하는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이다84)
아렌트의 성찰적 판단모델은 나치 불법국가 경험의 산물이다 통상의 규칙이 파
괴된 상황 통상의 범죄유형에 포섭되지 않는 극히 예외적인 범죄적 상황에서 법
원은 기존의 판단척도를 해석학적 출발로 삼아서는 안 되고 이때에는 질적으로
동의가능한 합의형식을 찾기 위해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으로 돌아가
진정으로 사유 즉 철학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렌트가 판단을 일반화해주는
거점이자 해석학적 출발점으로 삼은 공통감각(상식) 개념은 칸트철학에서 ldquo비사교
적 사교성rdquo 개념의 위상과 비슷하다85) 이 지상에서 인간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다른 것을 원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모여 살아야만 하는 존재다 이 비사회성 요
청과 사회성 요청의 동시성 때문에 인간에게는 제도적인 안착이 더없이 중요하며
법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실존과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만든다 판단의 기
81) Leora Y Bilsky When Actor and Spectator Meet in the Courtroom Hannah Arendt and Eichmann in Jerusalem G N Arad Hg (Bloomington 1996) 137면
82) Hannah Arendt 앞의 책 85면83) Hannah Arendt 앞의 책 76면 84)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657면85) Rosenmuumlller 앞의 책 1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5
초를 보편적 인간경험에 둔다는 점에서 아렌트가 말하는 판단력은 드워킨의 헤라
클레스와 같은 초인적 천재성을 발휘하는 능력과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86) 아
렌트가 상정하는 이상적인 법관은 철학적이지만 철학자는 아니고 정치적이지만 정
치가는 아닌 사람이다
아렌트는 헌법국가의 권위도 상식개념에 기반을 두고 설명한다 그리고 민주적
정당성의 관점에서 입법의 우위를 인정하는 까닭에 성찰적 판단에 입각한 법관의
검증에는 한계가 있다는 태도를 견지한다87)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렌트가 제시한
법관의 성찰적 판단 유형에 대해서는 다양한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우선 이것이
예외 상황에서 적용되는 판단모델로 상정된 것이며 무엇보다도 ldquo규범적 상식rdquo에
대한 단일한 이해기반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법관 개인의 주관적 정치적 신념
이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길을 피할 수 없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성찰적
판단력은 결국 레토릭에 불과한 것인가 아렌트는 그러나 무엇이 ldquo특정 상황에 맞
는 공통감각(situierte Gemeinsinn)rdquo인지에 대한 공동의 인식은 가능하며 또 법관의
lsquo하는rsquo 판단에 들어있는 정치적 함의를 성찰적 판단력으로 검증하는 것도 가능하
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아렌트가 마지막 검증심급으로 원용하는 것이 바로 판
단에서의 양심의 심급이다 그것이 과연 동의할 수 있는 합의형태로서 충분한지를
스스로 검증하는 이 심급에서 판단자는 명령조로 자기에게 전해지는 소리를 듣게
된다 ldquo멈춰 나는 그것은 할 수 없어rdquo88) 판단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 멈추는 것
이 가능한 이 성찰적 심급에서는 칸트와 달리 할 수 없는 이유로써 결과도 고려
된다 lsquo보는 사람rsquo이 자기 안에서 지켜보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상황은 토마스 아퀴
나스의 양심론에 비추어 다음과 같이 묘사될 수도 있겠다 지적 본성을 가진 인간
존재가 보편법칙에 관한 지식을 개별 행위에 적용하기 위해 판단하고 선택할 때
행위자는 갈등 상황- ldquo그렇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rdquo는
상황-에 처하여 멈칫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데 이때 그는 단지 갈등하고
선택하는 역할만 하지 않고 갈등하고 선택하는 이 과정을 ldquo관찰하고 목격하는 증인rdquo
의 역할도 한다는 것89)
86) 드워킨에 의하면 해석적 탐구는 ldquo어떠한 증명도 허용치 않고 어떠한 수렴도 약속치
않는 탐구rdquo이다(드워킨 정의론 203면)87) Rosenmuumlller 앞의 책 30면88) Hannah Arendt Uumlber das Boumlse Eine Vorlesung zu Fragen der Ethik Hrsg v J Kohn
(Muumlnchen 2003) 52면89) 지적 행위자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자신의 내면의 갈등과 선택과정을 바라보는
9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Ⅹ 방법에서 덕목으로
헌법 제103조는 한 면으로는 헌법과 법률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 면으로 해석자에게 여하한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lsquo제약
의 차원rsquo과 lsquo자유의 차원rsquo을 동시에 담고 있다 법관은 자유로울 때에라도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며 법에 구속될 때에라도 전적으로 구속되지는 않는다는 뜻이
기도 하다 이 lsquo자유와 구속의 변증법rsquo에 비추어 지금까지 논한 주제에 대해 몇 가
지 입장을 정리해 보자 첫째 법관에게 있어서 독립은 확정된 원칙이나 그것자체
로서 달성해야 할 최종목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법관의 독립은 완성형이 아니라
끊임없는 진행형의 과제로서 그 직무수행에 대한 신뢰와 병행하여 점진적으로 이
루어지는 것이다 둘째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에 있어서 구속은 법률에 무조건 복종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판결에 대한 윤리 (내 ) 확신과 함께 법률에 복종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법관이 실정법률에 반하는 결정을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법
관은 객관성을 빌미로 법률 뒤에 숨는 익명적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
미하는 것이다 셋째 독립적인 법관의 양심은 lsquo법과 상충한다rsquo기보다는 lsquo법을 실
한다rsquo는 의미를 지닌다 넷째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서 반추하면서 lsquo하는
사람rsquo인 동시에 lsquo보는 사람rsquo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성찰 인 인물상으
로서만 설정될 수 있다
해석적 탐구는 우리의 이해를 넓히기 위해서 필요하지만 이해에서의 우리의 피
할 수 없는 한계를 깨닫기 위해서도 필요했는지 모른다 엥기쉬는 법해석방법론에
대한 저술의 마지막 부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ldquo방법론에 천착하다 보면
애초의 문제였던 법률로부터 훨씬 더 먼 곳으로 이끌려 간다rdquo 지금까지 필자는
법관의 법해석과 관련하여 방법론의 의의와 한계를 논하고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과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에 비추어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이 법해석론
의 불가결한 부분으로 들어가게 되는 이유도 밝혔다 그리고 해석적 차원에서의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는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행위를 목표로 하는
탐구라는 것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필자는 이 모든 논의들을 매개로 방법론이 우리를 더 멀리 덕
목론으로 데려가는 과정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드워킨의
상황에 대한 이 묘사 부분은 이경재 ldquo토마스 아퀴나스의 양심 개념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375면을 참조했다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7
헤라클레스를 잠시 불러올 필요가 있다 해석문제를 누구보다도 더 진지하게 다룬
드워킨은 마지막에 헤라클레스를 내세운다 주어진 사건에서 무엇이 법인지에
대해 도덕적 의식을 가지고 법실무 전체를 원리정합적으로 정당화하라는 요청에
부응하여 자신의 신념에 기초한 결정을 내리는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의 구성적
해석에서 법관의 양심이 기능하는 국면은 어디일까 송민경 판사는 드워킨의 구성
적 해석론에 입각하여 양심을 구체적 법논증과정의 일부로 포함시키면서 이때 양
심이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라는 지침으로 기능한다고 설명한다90)
그런데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는 지침으로 기능하는 것을 양심이라
고 보게 되면 양심의 문제는 논증적 합리성의 차원 즉 논증의 성공으로 종결짓게
된다 그러나 법적 결정의 정당성 문제는 법관의 입장에서는 논증의 성공 문제로
다루어지지만 법관의 성공적인 논증에 따른 판결의 결과로부터 영향을 받는 시민
의 입장에서 보면 성공적인 논증만으로는 해석이 정당화된다고 볼 수는 없다
성공적인 논증은 법적 결정의 정당화에 필수적이기는 하나 충분한 조건은 되지 못
한다 해석이 궁극적으로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사법적 도덕성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 사법적 도덕성은 헤라클레스가 지침으로 삼는 원리적 도덕성의 실현과는 다른
것이다 만약 패소한 시민이 다른 헤라클레스에게 갔더라면 즉 다른 법원리에 기
초한 신념을 토대로 다른 결정을 내린 다른 법관에게 갔다면 그는 승리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왜 헤라클레스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하
는지에 대한 답이 필요한 것이다91) 헤라클레스가 실무에 대한 최상의 정당화를
도모하는 법적 이상주의자라면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법원 문을 두드린 시민도
어느 의미에서 ldquo법이상주의자rdquo92)이다
법해석 작업의 주관의존성이라는 불가피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재판이라는 특수
한 공적 활동이 법관이라는 특수공직자에 의해 운영되고 유지된다는 것은 시민들
-소송에서 패한 시민들을 포함하여-편에서 보면 법을 해석하는 법관에 대한
신뢰가 전제된다는 것이다 법관의 독립적 활동은 법관의 특권 행사가 아니라 사
90) 송민경 앞의 글 38면 20면91) 사법적 덕목과 연관하여 이 부분을 다룬 글로는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5면 이하
92) 법원 문을 두드리는 시민에 대한 이 표현은 심헌섭 ldquo법조윤리의 좌표 거시적 관점에서 본 전문윤리로서의 법조윤리rdquo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편 法律家의 倫理와 責任 박영사
(2003)에 나온다
9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법과정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응당한 몫이 돌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존중하는 바탕에는 일종의 상호성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 그 또한
시민이기도 한 법관이 동료시민들에 대해 가지는 배려와 존중의 원칙이 그것이다
여기서 사법적 덕목에 대해 자세히 논할 수는 없다93) 예의 성실 신중 절제
용기 공정 겸손 의사소통 능력 형평 시민에 대한 배려와 존중 등등 이것들은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바탕을 이루는 양심의 덕목들일
것이다 양심이라는 단어가 그렇듯이 덕목이라는 단어도 오늘날 진부해진 표현
이며 거의 사라져가는 단어다 윤리적 태도로서의 덕목은 관찰하기도 배우기도
어렵다 그러나 올바른 판단과 결정이 법관이라는 개인을 거치지 않고 법령집
자체로부터 반사적으로 튀어나오지 않는 한 이 덕목들을 내면화하고 지향하려는
태도 없이는 lsquo종국적인rsquo 판단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써 필자는 헌법 제103조를 통해 법해석에서의 방법론의 문제가 덕목론이라
는 다음 과제로 이어진다는 점을 밝혔다고 생각한다
투고일 2016 4 6 심사완료일 2016 5 18 게재확정일 2016 5 20
93) 법관의 개별적인 덕목들과 이것들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는 박은정 강태경 김현섭 바람
직한 법관상의 정립과 실천 방안에 관한 연구 법원행정처(2015) 제5장 참조할 것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9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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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수 헌법학신론 박영사(2013)
김현섭 ldquo법관의 양심과 독립에 대한 헌법 제103조의 해석rdquo 한국법철학회 월례독회
발표문(2015 4 25)
김황식 연필로 쓴 페이스북 之山通信 나남(2013)
박은정 왜 법의 지배인가 돌베개(2010)
박은정 강태경 김현섭 바람직한 법관상의 정립과 실천 방안에 관한 연구 법원행
정처(2015)
사법연수원 법조윤리론(2014)
성낙인 헌법학 법문사(2014)
송민경 ldquo법관의 양심에 관한 연구rdquo 사법논집 제58집(2014)
심헌섭 ldquo법조윤리의 좌표 거시적 관점에서 본 전문윤리로서의 법조윤리rdquo 서울대
학교 법과대학 편 法律家의 倫理와 責任 박영사(2003)
분석과 비 의 법철학 법문사(2001)
양창수 ldquo바람직한 법관상-기예와 지혜 사이rdquo lt근대사법 및 한성재판소 설립
이성의 활동rdquo ldquo인격의 자기인식rdquo ldquo본래적인 자기 자신으로 불러 세우는 염려의
소리rdquo ldquo너와 내가 함께 잘못을 감시하고 경계하는 공동의 눈초리rdquo ldquo근원적인 자
기의 요구rdquo 등등22) 이런 다양한 견해들은 양심 개념을 형식적인 측면에서 접근하
는지 아니면 내용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지 양심 판단에서 개인의 주관적 요소를
강조하는지 아니면 보편성 내지 소통가능성을 더 중요시하는지 양심의 권위를 내
부에서 찾는지 아니면 외부의 권위를 사회화 내지 내면화한 결과로 보는지 양심
에 따른 결단을 감정의 작용으로 보는지 아니면 이성도 같이 작용하는 것으로 보
는지 등에 따라 여러 갈래를 이룬다
칸트의 근대 주체철학의 영향을 받은 이래 오늘날 양심논의에서는 대체로 양심
의 개인적 주관적 요소가 강조되는 가운데 양심을 개인에게 도덕적 행위 동기를
유발하고 자기반성을 가능하게 하고 개인의 판단과 자기결정에서 최종심급의 역
할을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대표적으로 칸트는 양심을 각 주체로서의 개인의
ldquo내면에 자리 잡은 자율적 심판관rdquo으로 일컬으면서 행위주체가 자기 안에 내재하
21) 이덕연 앞의 글 361면22) 진교훈 외 19인 양심 고 로부터 에 이르기까지의 양심의 의미 서울대학교출판
문화원(2012)
7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는 도덕법칙에 스스로의 행동을 적용시키는 것이 양심이라고 말한다23) 이때 양심
은 스스로 도덕법칙을 정립할 수 있는 선의지를 가진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지니는 일종의 의무의식으로 여겨지며 자신이 자신을 평가하는 것이 양심이기 때
문에 이 주관적 확신을 평가하는 외부의 기준은 없는 셈이다24) 이렇게 양심을 주
관성의 형식으로 가져갈 때는 주관적으로는 옳은 양심에 따른 확신이라 하더라도
인식주체가 가진 한계 등으로 인해 내용상 오류가 가능하다는 문제를 안게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칸트와 달리 양심문제를 개인의 주관적 도덕의식 이상의 차원에
서 다루고자 하는 철학자들은 간주관성의 차원에서 보편성을 지니는 양심개념을
추구한다 이런 방향에서 파악한 양심 개념에 대해 lsquo객관적rsquo 양심이라는 표현을 쓸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양심과 관련하여 lsquo객관적rsquo이라는 표현은 인식
주체 밖에 뭔가가 존재한다는 인식론적 존재론적 가정을 상정한다는 점에서 문제
가 있다 인식 주체 밖에 객관적인 그 무엇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양심이 아니라
윤리규범일 것이다 법관의 양심을 lsquo객관적rsquo lsquo법조적rsquo 양심으로 표현하는 것도 이런
의미에서 부적절하다25)
그런데 철학전통 안에는 양심을 주관성의 형식으로 끌어들여 절대화하는 시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서양에서 근대 이전의 철학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개인의 주
관적 도덕의식을 넘어서는 차원에서 양심을 논하는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우선 어
원상으로도 con-scientia syn-deresis의 con과 syn에서 알 수 있듯이 양심은 우리
내면의 법정에서도 공공성 내지 공동체성 즉 ldquo함께 안다rdquo라는 요소를 지니고 있
었다 이 어원은 양심의 규제적 기능에는 우리가 올바르게 행했는지 혹은 그릇되
게 행했는지를 지켜보는 ldquo공동의 인식rdquo이 있다는 자각이 포함됨을 암시한다 자기
안에서 lsquo보편적인 자기rsquo를 확신하는 과정을 상호인정과정과 연결시키고자 하는 양
심관은 공동의 윤리로서의 인륜성(Sittlichkeit)의 입장에서만 ldquo진정한 양심rdquo이 가능
하다고 보는 헤겔(G W F Hegel)의 양심론26) 타자윤리학에 근거한 레비나스
23) Immanuel Kant 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 (윤리형이상학 정 백종현 역 아카넷(2005) 134면 이하) 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Philosophische Bibliothek A 175 (2003) 215면 이하
24) 김관영 ldquo칸트에 있어서 양심의 문제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144면25) 예컨대 성낙인 교수는 법관의 양심을 ldquo법관이 적용하는 법 중에서 객관적으로 존재하
는 정신을 가리킨다rdquo고 설명한다 앞의 책 713면 이 객관적 정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26) Hegel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sect137 헤겔의 양심론에 대해서는 최신한
ldquo헤겔 야코비 양심의 변증법rdquo 헤겔연구 제23호(한국헤겔학회 2008) 86면 이하 참조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75
(Emmanuel Levinas)의 양심론27) 그리고 행위주체들의 담론적 소통과 사회적 행위
에 대한 책임에서 출발하는 아펠(Karl Otto Apel)의 양심론28)에도 엿보인다 동양의
양심을 ldquo세상 사람을 향해 움직이는 마음rdquo으로 묘사하면서 양심이 있어서 책임있
는 인식의 기능에 주목한 사상가도 있다30)
서양에서 근대를 전후로 양심의 주관화 경향이 강하게 대두된 데에는 종교분쟁
등의 영향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은 가치상대주의라는 시대정신의 영향 하에
양심은 도덕적 판단과 인격을 근거지우는 현상으로 파악되면서도 내용적 측면보다
는 형식적 측면에서 고찰되고 간주관적 논의가능성이 배제된 채 그 논의의 폭이
좁아져 거의 개인의 자기결정권 영역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우리 헌법 제19조의
양심의 의미도 이런 자기결정에서의 최종심급 역할이라는 맥락에서 읽히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살펴봤듯이 주관화의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기 이전의 사유전통에
서는 양심의 자기결정 능력보다는 스스로에게 도덕적 의문을 품는 능력 ldquo함께
안다rdquo라는 책임성 쪽에 더 비중이 놓여 있었다 이런 사유배경에 비추어 본다면
헌법 제19조의 양심은 근대 주관화의 영향의 산물로 이해할 수 있고 이에 비해
헌법 제103조에서 법관과 관련하여 언급된 양심은 근대 이전의 ldquo함께 안다rdquo의 사
유전통의 흔적을 지닌 개념으로 볼 수 있다
Ⅳ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의 완화 경향
앞에서 살펴봤듯이 역사적으로 법관의 독립이념은 법관은 오로지 법률에만 구속
된다는 것을 전제로 탄생했다 그리고 이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은 법률의 총합으로
27) 레비나스에 대해서는 김연숙 ldquo레비나스의 양심론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제3부 제3장 참조28) Karl Otto Apel From a Transcendental Semiotic Point of View Manchester University
Press (1998) 52면 259면 양심이 지니는 공적 관찰이나 감시기능 부분에 주목한
Apel에 대해서는 백춘현 ldquo아펠의 양심론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344면 이하29) 맹자의 양심론에 대해서는 장승희 ldquo맹자의 양심론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제1부 제1장
참조30) 왕수인은 양심과 양지(良知)라는 표현을 함께 썼다고 한다 ldquo남의 아픔을 느끼기 위해
서는 예민하게 lsquo생각rsquo해야 한다rdquo 여기서는 이혜경 ldquo왕수인의 양심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79면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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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 법질서는 통일적이고 자기충족적인 시스템을 이룬다는 가정에 기초하고 있
었다 그러나 이 가정은 그 자체로 애초 한계를 지닌 것이기도 하지만 법의 생태
적 기반이 변하면서 이 법률구속원칙은 점차 상대화 내지 약화되는 방향으로 나아
가게 되었다 입법자를 기다릴 수 없는 빠른 사회변화 자유법운동 입법양의 폭발
적인 증대 일반조항 도입 등 입법스타일의 변화 복지국가 대두 사회정의의 요구
헌법재판 활성화 등의 흐름은 법관의 법률구속메커니즘이 작동하기 어려운 여건을
만들어 가게 된 것이다 이른바 lsquo법관법rsquo의 대세 흐름이 나타난 것이다 특히 지난
수십 년간 확대된 입법영역은 형법과 같은 규제입법과 달리 사회복지생활보호
건강 증진남녀평등청소년보호장애인보호적극적 평등조처 등처럼 정치적 비전과
목적을 담은 한마디로 정책촉진적 성격을 지닌 법률들이었다 이와 같은 야심찬
입법스타일은 법적용단계에서 법관이 바람직한 제도 및 정책 내용에 대해 고려케
함으로써 목적적 법논증으로 기울게 하고 구체적 이익을 비교형량하는 심사방식
을 확대시키는 등 좁은 의미의 실정법률 해석보다는 법형성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 것이다31) 특히 이 흐름은 20세기말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법실증주의에
제동이 걸리는 분위기와 겹치면서32) 법철학에서도 전통적인 포섭논리나 삼단논법
은 실제로 법관들에게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지적과 함께 법관의 법률구속원
칙에 회의적인 성향의 논의들이 강세를 보이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법발견 과정에
대한 심화된 통찰을 통해 lsquo선이해rsquo의 문제를 재평가하게 만든 철학적 해석학과 문
언의 의미론적 구속력에 회의를 제기케 한 언어이론은 법철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들 이론에 입각하여 이제 법의 흠결 시와 같은 예외적인 상황에서 법관
의 법형성이 불가피하다는 수준의 주장을 넘어 법률텍스트를 통한 구속가능성 자
체를 의문시하는 주장까지 나오게 되었다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의 실현에 대한 기대가 점점 약화되고 그래서 누구의 표현
대로 법률이 해석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해석이 법률을 지배한다고 말할 정도가
31) 사회변화에 따른 법관의 역할 변화에 대해서는 박은정 왜 법의 지배인가 돌베개(2010) 제6장을 참조할 것
32) 울프리드 노이만(Ulfrid Neumann)은 지난 2015년 10월 1일 고려대학교 초청강연에서
ldquo실증주의 이후 시대의 법률과 판결rdquo이라는 주제로 발표하면서 법학적 사고가 ldquo법실
증주의 이후의 시대rdquo로 넘어갔다고 진단하고 그 배경으로 세계화 등의 흐름으로 국제
상거래관습법(lex mercatoria)처럼 입법당국에 의한 제정이 아닌 사회적 실천에 의거한
법제정 사례 법원리의 중요성 대두 인권사상 증대 등을 들고 있다 그러면서 법실증
주의로부터 멀어지는 만큼 법관의 법률구속원칙도 상대적으로 완화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77
되면 다시 제기될 수밖에 없는 물음이 바로 입법기관과 법적용기관 사이의 권력
균형 문제다 이 권력 균형은 특히 법 이라는 개인에 의해 매개된다는 점에서 문
제가 된다 오늘날 ldquo사법국가rdquo ldquo법관공화국rdquo ldquo사법엘리트rdquo ldquo사법의 정치화rdquo 등을
지적하는 소리는 입헌민주주의 기획의 초기단계에서 일찍이 해결했다고 여겼던
문제들이 다시 등장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법관의 법률구속의 전제 및 그 가능성
법원의 중립성 법관의 민주적 정당성 사법관료주의 등의 문제가 그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물음이 떠오른다 해석자의 자유를 제
한하고 법관의 법률구속을 보장할 확고한 법해석방법론은 가능한가 법관의 법률
구속에 관한 기술적 제도적 보장책은 가능한가 필자는 이 물음들에 대체로 회의
적인 전망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물론 법해석방법의 무용론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법률에 구속되는 법관상이 약화되고 앞으로도 점점 더 약화될
것이라는 전망 하에 어느 때보다도 더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될 법관의 독립 문제
를 염두에 두면서 법해석방법론의 문제를 재검토하고자 한다
Ⅴ 법해석방법론의 문제점과 한계
법이 있는 곳에 해석이 있다 법학의 강점도 해석학적 잠재력에 있다 법관의 임
무는 법률을 적용하기 위해 법문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법해석방법론은 법
해석과정에서 법관의 자유에 일정한 제약을 가하고 법관의 법률구속이념을 실현하
기 위해 고안되고 발전된 것이다 해석에서는 무엇이 최선의 해석인지를 둘러싸고
언제나 논쟁과 불일치가 생기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해석작업은 인간의 판단과 행
위의 영향 하에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법관이 따라야 하는 법률 자체에는 이미 법적용자를 법률에 대해 어느 정도 독
립적이게 만드는 여러 표현방식들이 들어 있다 예컨대 lsquo야간rsquo lsquo소음rsquo lsquo위험한 물건rsquo
lsquo적절한 조치rsquo 등 개념의 내포와 외연이 확정적이지 않은 법개념들이 대표적이다
이런 불확정적 개념들은 법명제의 구성요건 단계에만 들어 있는 게 아니라 법률효
과에서도 등장한다 이른바 lsquo규범적 개념rsquo들도 그런 표현방식에 속한다 lsquo음란한rsquo
lsquo건전한rsquo lsquo불명예스러운rsquo 등의 개념들은 기본적으로 지각가능한 대상을 서술하는
개념과 대비하여 의미내용이 가치판단에 근거할 때만 파악된다는 점에서 규범적
이다 이때 가치판단은 반드시 주관적 개인적 평가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른 사람
7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들의 평가도 포함할 것이지만 어쨌든 이 판단과 관련한 어느 정도의 불확정성은
감수해야 한다 법관의 법률 구속 의무를 느슨하게 만드는 이런 개념군에는 재량
도 포함된다 오늘날 재량개념은 ldquo법적으로 구속되는rdquo 재량으로 이해되지만 이때
판단의 여지 안에 들어오는 여러 대안들 가운데서 최종 혹은 최선의 대안을 확정
하는 데 있어서 결정자의 개인적 확신을 허용할 수밖에 없다 일반조항도 표현 그
대로 높은 일반성을 띰으로써 법적용자로 하여금 자기 앞에 놓인 사례를 광범위한
사례집단들에 적응시켜가면서 법률효과를 귀속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33)
위에서 언급한 불확정 법개념이나 규범적 개념 등을 적용하는 데는 가치판단
요소가 수반된다 이런 개념들을 적용할 때 법관은 일정한 범위 안에서 입법자를
대신하여 가치판단 내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것이다 또 법관
은 법의 lsquo흠결rsquo을 보충하거나 법질서 안에서 이따끔 발견되는 lsquo오류rsquo를 수정해야
할 부득이한 상황에도 처하게 된다 이때는 법관은 스스로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찾아 나서야 한다 lsquo법의 일반원칙rsquo lsquo법의 정신rsquo lsquo평균인의 척도rsquo lsquo비례성원칙 lsquo이익
형량rsquo 등은 이때 법관이 의존하는 사유 장치들이며 이것들을 원용하는 데도 가치
판단적 요소가 개입한다 이때 판단자는 무엇이 사실상 효력을 갖고 있는 윤리적
견해인지 확인해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사실로서의 합의가 올바른 법적 결론에
도달하게 하는지에 대해서도 숙고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법적용자는 때로는 평
균인 테스트 같은 객관적인 척도에 의지하지만 또 때로는 개인적 견해를 더 많이
펼칠 수 있는 일정한 판단의 여지를 가지게 된다
이렇게 해석과정에서 불가피한 lsquo판단의 여지rsquo 즉 해석과정에 불가피하게 개입되
는 가치판단 요소 때문에 ldquo해석의 건전성rdquo을 둘러싸고 논란이 생기고 해석의 정당
화와 관련하여 회의가 생긴다 가치판단과 관련된 부분이 불가피하게 주관적 요소
를 끌어들이게 되고 이로 인해 법규범의 효력이 상대적이고 불확실한 영역으로 떨
어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단자는 자신의 결론이 불확실성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자신의 해석에 대한 정당화를 포기할 수 없다 법을
해석한다는 것은 ldquo그 법률을 특정 사안에 적용하는 것을 정당화한다는rdquo34)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확정적인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사례에서도 요구되는
33) 불확정적 개념 규범적 개념 재량 일반조항과 관련한 자세한 설명은 칼 엥기쉬 법학
방법론 안법영윤재왕 옮김 세창출판사(2011) 182면 이하에 잘 정리되어 있으며 필
자도 이 부분을 참조했음을 밝힌다 34) 닐 맥코믹 로버트 서머즈 ldquo해석과 정당화(上)rdquo 박정훈 역 법철학연구 제5권 제2호
(2002) 18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79
개인적인 단은 도덕적 상대주의자들이 말하는 개인적인 취향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해석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올바른 해석기준을 수립하고자 법률가들은 각
기 지금까지 다양한 해석방법에 의존해 왔다 올바른 해석을 위한 확고한 기준을
수립할 수 있다는 것은 찬성하는 혹은 반대하는 해석논거들 사이의 상대적 비중을
결정하는 명확한 규칙을 수립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즉 어느 한 해석
논거가 다른 해석논거에 의해 배제되는 조건이나 선택된 해석을 정당화하는 데
필수적인 한 논거가 다른 논거보다 우월하기 위한 조건 한 논거에 누적을 통한
비중이 부과되는 조건 등을 제시해줄 일관된 정보와 지침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
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여러 해석방법들 사이에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다는 것
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시도는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했다 동일한 유형의 논거일지
라도 각각의 정당화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비중을 갖게 될 뿐더러 언어적 해석
방법 체계적 해석방법 목적적 해석방법 등으로 제시되는 여러 해석방법들이 한
줄로 세우기에는 한마디로 너무 이질적이다35) 물론 이들 해석논거들의 상호작용
을 검토하면서 잠정적인 서열을 제시하는 것은 가능할 수도 있다36) 그러나 이 서
열은 기껏해야 ldquo해석을 위한 노력의 경제성 원리rdquo 정도를 말해 줄 뿐이기 때문에
쉽게 바뀔 수 있다37)
드워킨이 옳게 지적한 대로 기본적으로 가치판단과 관련된 해석방법들은 위계
적일 수 없고 ldquo상호지지적rdquo인 관계에 놓일 뿐이다38) 이 때문에 방법론적 규칙을
세우려는 시도는 언제나 무망해지는 것이다 또한 법해석에 있어서 언어란 단어의
의미를 식별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 행위의 의미를 식별
하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론 풀러(Lon Fuller)가 지적한 대로 ldquo언어
를 통한 의사 전달은 어느 한 사람으로부터 다른 사람에게로 의미가 든 상자를 발송
하는 식rdquo39)은 아닌 것이다
35) 울프리드 노이만 ldquo실증주의 이후 시대의 법률과 판결rdquo 강연문(주 32) 노이만에 따르
면 예컨대 체계적 해석 방법에 따른 논거도 그것이 논리적 일관성 획득의 맥락에서
인지 아니면 가치평가의 일관성 보장이라는 맥락인지에 따라 전혀 다른 비중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36) 대체로 언어적-체계적-역사적-목적론적 해석방법의 순서로 언급되는 데 대해서는 심헌섭
분석과 비 의 법철학 법문사(2001) 217-218면37) 맥코믹과 서머즈는 비교법적 연구결과를 통해 올바른 해석을 위한 지침 수립은 어느
국가의 법체계에서도 지금까지 성공적이지 못함을 밝힌다(앞의 글 210면)38) 로널드 드워킨 정의론 박경신 옮김 민음사(2015) 309면
80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결론적으로 해석방법론으로부터 법관은 불확실성을 떨쳐 낼 수 있는 확실한 정
보제공을 기대하기 어렵다 해석논거를 위한 결정적인 기준을 제공하는 해석방법
에 대해 불안정한 형태로나마 이론적 합의를 찾기 어렵다면 엥기쉬의 지적대로
해석방법론은 공중에 떠있는 상태다40) 법학에서 방법론의 융성은 역설적으로 법
학이 이 부분에 취약하다는 암시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해석자로서의 법관을
최종적으로 인도하는 전략은 무엇일까 다음과 같은 고민을 들어보면 적어도 그것
은 방법론상의 합의에 대한 기대 같은 것은 아닌 것 같다 ldquo우리들은 일정한 결론을
내리고도 그 결론이 가장 적절sdot타당한 것이라고 보증받을 수 없다 그 결론을 낸
시점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들은 자기의 결론이 그러한 불확실성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그것을 자기의 전인격적 책임 아래 끝을 내고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비판과 평가에 맡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rdquo41)
해석방법론이 공중에 떠있는 상태라면 법관을 법률에 구속시키기 위한 방법론
적 보장책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런 가운데 ldquo자기의 전인격적 책임 아래rdquo ldquo사려
깊고 균형잡힌 총체적 관념rdquo ldquo인생 그 자체로부터 지식rdquo 등에 대한 호소를 듣는다
이것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법발견으로 불리든 법인식 혹은 법형성으
로 불리든 법적으로 올바른 결정을 이끌어낸다는 것은 순순히 lsquo앎rsquo의 문제만은 아
니라는 것이다 실천철학의 전통 용어를 빌어서 말한다면 그것은 이론지 이상의
실천지를 요구하는 활동이다 즉 법관의 해석활동은 이론지와 실천지를 결합하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이 주제로 다가가는 한 우회로로서 우선 지적 활동으로서의
법관의 해석활동의 특성에 대해 살펴보자
39) 론 풀러 법의 도덕성 박은정 옮김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2015) 314면 40) ldquo그러나 해석론 전체에 대한 확고한 이론적 토대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서열관계에
관한 모든 이론들은 여전히 공중에 떠 있다rdquo 엥기쉬 앞의 책 137면41) 사법연수원 법조윤리론(2014) 31면 그밖에 Benjamin N Cardozo The Nature of
Judicial Process Yale University Press (1921) ldquo언제 하나의 이익이 다른 이익을 능가
하는지를 묻는다면 hellip 경험과 연구와 성찰로부터 요컨대 인생 그 자체로부터 그 지식
을 얻지 않으면 안된다고 답할 수 있을 뿐이다rdquo(여기서는 법조윤리론에서 재인용) 또한 맥코믹서머즈 ldquo해석과 정당화(下)rdquo 박정훈 역 법철학연구 제6권 제1호(2003) 348면 ldquo해석은 간주관적으로 승인된 모든 법적 가치들에 대하여 사려깊고 균형잡힌
총체적 관념을 획득하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제대로 행해질
수 있다rdquo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1
Ⅵ 법관의 해석활동 실증주의의 대척점
앞에서 언급한 대로 해석에서는 무엇이 최선의 해석인가를 둘러싸고 언제나
논쟁과 불일치가 따른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누군가가 텍스트를 해석한다고
말하는 순간 그는 실증주의의 대척점에 서게 된다 실증주의과학의 의미에서는 논
쟁의 여지가 있는 것은 원칙적으로 과학일 수 없기 때문이다 법실증주의사고에서
해석 문제가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법을 근본규범에 입각
한 자기준거적인 구조로 보는 한스 켈젠(Hans Kelsen)의 순수법학이나 법적용과정
을 규칙에 의해 지도되는 과정으로 보는 하트(H L A Hart)의 분석법학에서 해석과
관련한 어려움은 다루고 있지 않다42)
켈젠은 순수법이론(Reine Rechtslehre)에서 정당한 해석만이 허용된다는 주장
은 허구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면서 해석의 건전성 문제나 정당화 문제를 법이론
안에서 다루기를 거부한다 법을 자기준거적인 것으로 보는 관점은 한마디로 해석
(행위)주체의 입장을 부정하는 것이다 켈젠은 법단계설을 바탕으로 법적용을 상위
규범의 수권에 의해 하위규범이 구체화되는 과정으로 보고 여기에 헌법의 수권을
받아 법률을 제정하는 입법자도 포함시킨다43) 이에 따라 법적용도 입법의 한 형
태로 설명된다 법관에 의한 법형성의 동기는 이를테면 입법부가 유독 다른 법률
이 아닌 이 법률을 통과시키는 동기와 같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켈젠은 판단활동
에서 인지적 요소와 의지적 요소를 엄격하게 구별하면서 법관의 판단활동을 순전
한 의지활동으로 보고 이 법관의 활동에 대해서만 (유권)해석이라는 표현을 사용
하고자 한다 그리고 법학적 해석에 대해서는 법규범의 가능한 의미들을 밝히는
것으로서 법률에 따른 결정의 범위를 제한하는 정도의 의미를 부여한다
법단계설에 따르면 상위규범이 정한 일정한 범위 안에서의 수권에 따라 하위규
범이 작용한다 이때 상위규범의 수권은 모든 세부적인 내용들에 대해서까지 정해
42) 켈젠은 순수법이론(Reine Rechtslehre) 제1판(1934) 제6장에서 해석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부분과 거의 같은 논문 ldquoZur Theorie der Interpretationrdquo이 심헌섭 젠법이론선집 법문사(1990) 97면 이하에 실려 있다 윤재왕 교수는 Reine Rechtslehre 제1판과 제2판
(1960)을 비교하면서 해석방법으로부터 오는 규범적 구속력을 일체 거부하는 켈젠의
입장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윤재왕 ldquo한스 켈젠의 법해석이론rdquo 고려법학 제74호(고려
대학교법학연구원 2014) 525면 이하 하트의 대표적인 저서 법의 개념의 색인 항목에는
lsquo해석rsquo이 빠져있다 43) Hans Kelsen Allgemeine Staatslehre (Berlin 1925) 231면 이하
8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그래서 ldquo상위단계의 법생성으로부터 하위단계의 법생
산으로의 전환은 단지 상위단계가 정해 놓은 범위를 채우는rdquo 활동으로서 이때
ldquo언제나 상위단계에는 없는 내용적 요소가 하위단계에 추가되어야만rdquo 한다44) 이
내용을 채우는 부분과 관련하여 상대적 불확실성이 생기는데 켈젠은 이 문제를
ldquo자유재량rdquo의 문제로 다룬다45) 이는 하트가 규칙의 체계로서의 법체계를 완결된
구조가 아닌 열린 구조로 봄으로써 상대적 불확실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법관의
재량사항으로 보는 것과 같다 하트의 경우 중심부와 주변부라는 극히 단순화된
이분법을 끌어들여 이 불확실성 문제를 처리하고자 했다면 켈젠의 경우는 인식작
용과 의지작용의 이분법을 끌어들임으로써 이 문제를 처리하고자 한 것이다
판결을 법관의 의지활동으로만 이해하는 입장을 취하게 되면 법관에게 결정에
대한 근거 제시 요청을 할 수 없게 된다 마치 신의 심판에 대해 근거 제시를 요구
할 수 없듯이 말이다 결국 켈젠의 법이론상으로는 해석은 법학의 문제가 아니며
그러므로 분석적 법실증주의와도 무관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46) 이런 이유에서 그
는 정당한 해석만이 허용된다는 주장이나 해석방법만으로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에
이를 수 있다는 주장을 거부하면서 심지어는 상위규범에 제시된 범위를 넘어서는
해석의 효력조차 적극적으로 인정함으로써 어느 의미에서는 해석이론의 존재기반
자체를 무너뜨린다47)
켈젠이나 하트가 법이론에서 해석의 의미를 축소한 이면에는 이분법이라는 과도
한 사유의 단순화가 놓여 있다 그러나 켈젠이 생각하는 것처럼 판단에서 인식적
요소와 의지적 요소의 확고한 경계가 유지되는지는 의문이다 또 중심부와 주변
부에 대한 하트의 주장도 지나친 단순화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어쨌거나
켈젠이 합리적인 해석방법을 추구하는 법이론의 효용가치를 한껏 떨어뜨렸다고
해서 이제 어차피 정답은 없으니 법대에 앉은 법관은 자기 임의로 무엇이든 해도
된다고 켈젠이 주장했을 리는 물론 없을 것이다 법이론의 과도한 정당성 주장을
거부하는 데서 오히려 순수법학의 비판적 잠재력을 찾을 수 있다고 보는 학자들은
여기서 켈젠이 강조한 순수화 즉 탈정치화는 법학에 관한 것이지 법 자체에 관한
44) Kelsen Allgemeine Staatslehre 243면 여기서 번역은 윤재왕 앞의 글 535-536면에서
재인용45) Kelsen 앞의 책 243면 이하46) 켈젠에 있어서 법해석은 이론상으로는 법학보다는 정치학이나 사회학에 속하는 문제
에 더 가깝다고 지적한 견해에 대해서는 론 풀러 앞의 책 312면 47) 이에 대해서는 윤재왕 앞의 글 553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3
주장이 아니었음을 상기시킨다48) 즉 법 자체는 결코 정치와 분리될 수 없다는
점에서 법실무에 대한 학문이론의 무가치성을 주장하는 순수법학은 실무의 법
적용자로 하여금 자신의 활동이 정치적 활동임을 깨닫고 책임을 느끼게 하는 계기
를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윤재왕 교수도 ldquo켈젠 해석이론의 배후rdquo로 들어가 방법
이론으로부터의 어떤 구속력도 거부되는 데서 생기는 공백을 켈젠이 법관 자신의
자기이해와 책임성 문제로 채운다고 지적한다 ldquo법관의 판결은 결코 순수한 것일
수 없으며 그런데도 자신의 판결이 순수한 인식의 소산이라고 강조한다면 이는
정치적 책임의 회피이고 동시에 이데올로기적이라는 혐의에 노출되지 않을 수
없다rdquo49) 이 문구가 켈젠 자신으로부터 나왔다면 아주 좋았을 것이다 자신의 직
무의 중요성과 책임에 대한 실천적 깨달음은 해석의 정당화를 목표로 하는 인식적
노력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켈젠의 순수법이론의 기획은 서로
붙어 있는 양면을 떼어 놓으면서 이것을 다시 붙일 수 있음을 보여주려 한 것일까
Ⅶ 법관의 해석활동 가치판단과 lsquo정답테제rsquo 문제
켈젠처럼 실증주의적 사고에 따르든 아니면 비실증주의적 사고에 따르든 가치
판단 문제에서 해석방법만으로는 하나의 정당한 결정을 도출할 수 없다고 생각한
다면 이는 해석의 차원에서 가치에 대한 이해 시도는 진리 추구와는 무관하다는
주장으로 귀결되는가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해석대상의 의미에 대한
관심과 최선의 이해에 대한 관심은 아무래도 진리 추구라는 목표를 향한다고 봐야
한다 법적 결정은 물론 법관의 권한에 속하지만 그것을 정당화해주는 원천은 법
관이라는 lsquo지위rsquo가 지니는 형식적 권한이 아니라 판결이 정당하다는 근거 제시에
있다 법판단을 정당화해주는 모델은 울프리드 노이만(Ulfrid Neumann)이 지적한
대로 권위를 통한 정당화모델보다는 진리를 통한 정당화모델에 더 가깝다50)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재판활동은 엄연히 사법권이라는 공권력의 작용이라는 점에서
독립적인 법관의 재판활동을 그 ldquo계획적이고 진지한 진리 탐구 활동rdquo적 측면 때문
48) 법학의 탈정치화를 ldquo정치적 허무주의rdquo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데 대해서는 켈젠 ldquo순수법학이란 무엇인가rdquo 젠법이론선집 280-282면
49) 윤재왕 앞의 글 559면50) 울프리드 노이만 ldquo법 진리 권위rdquo 2013 4 6 한국법철학회 강연문 참조
8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에 학문의 자유의 한 표현으로까지 보려는 것은 무리다51)
오늘날 가치상대주의 분위기는 실천적 물음에서 진리 도달가능성에 대한 회의를
과장한다 그러나 진리가 뭐냐는 빌라도의 물음에 비록 확신에 찬 대답을 못한다
하더라도 법에서 진리 내지 정당성 추구의 포기는 파국을 의미한다 국가권력
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도 진리라는 규제이념이 전제되기 때문
이다 독립된 사법부가 심급구조와 집단적 의사결정의 형태로 스스로의 시정 기구
를 가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물론 진리에 대한 주장은 잠정적이고 수정가능하다
lsquo참이냐 거짓이냐rsquo는 오로지 서술적 명제에만 한정하여 검증될 뿐이라는 협소한
학문관을 따른다면 법학은 학문 안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법
학이 그런 협소한 학문관을 받아들여야 할 필연성은 없다 법해석자는 자신의 해
석적 판단이 진리라는 주장을 무한정 내세우지는 못하면서도 진리 추구를 피할
수 없다52) 론 풀러(Lon Fuller)의 지적대로 ldquo법이론이 최고의 법적 권위를 엄격하
게 정의하는 일에 큰 비중을 두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이 점이 모호해지면 필경
전체로서의 법체계가 와해될 수 있다rdquo53)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법을 민주
주의의 언어로 설명하는 오늘날 의회와 행정처럼 다수결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기
관도 아닌 사법의 소수 전문 엘리트의 지배를 권위모델만으로 정당화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법을 준수하는 시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시민들은 자신에게 유죄
판결을 선고한 세속의 법관에게 그 유죄판결의 근거를 알고 싶다고 요구할 수 있
으며 물론 당연히 요구한다
법관은 판결에서 논증을 통해 최상의 근거 제시가 이루어진 결정을 해야 한다54)
51) ldquo일부 사람들 중에는 이러한 법원의 권력기관적 성질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
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helliphellip 가끔 법관의 일을 조용한 방에서 소송서
류를 꼼꼼하게 읽어 파악한 사실에다가 법을 논리적으로 적용하는 단순히 지적(知的)인 작업이라는 시각에서만 말씀하시는 분을 만나면 그 분에게 재판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법대에 앉아 있는 법관이 어떻게 보이는지 물어보고 싶어집니다rdquo 양창수 ldquo바람직한 법관상 - 기예와 지혜 사이rdquo lt근대사법 및 한성재판소 설립 120주년 기념
1895sim2015 소통컨퍼런스 역사에 비춰 본 바람직한 법관상gt 자료집(서울중앙지방법원 2015 5 11) 15면 ldquo계획적이고 진지한 진리 탐구 활동rdquo이라는 표현은 라드브루흐에서
나온다 구스타브 라드브루흐 법철학 최종고 옮김 삼영사(2011) 238면 52) 드워킨 앞의 책 208면 53) 론 풀러 앞의 책 211면 풀러의 문장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ldquo하지만 이 경우도
위로부터의 지시 또한 목적의식에서 비롯되는 지적 활동을 완전히 생략할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rdquo54) 물론 진리 요청과 관련하여 개별 법관의 관점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며 민주국가에서
포기될 수 없는 진리 요청은 법학을 포함한 법체계 전체로 하여금 진리 요청에 어떻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5
이때 정당한 근거 제시가 이루어진 결정과 관련하여 그것이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
이라는 주장을 펼 수 있는가 앞에서 검토한 대로 켈젠의 순수법이론은 그런 주장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이에 비해 드워킨은 법적 판단에 있어서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이 원칙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ldquo정답테제rdquo로 불리는 이 주장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학자들이 지적한 대로 존재사실에 대한 주장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하나의 ldquo규제이념rdquo으로 받아들이는 게 맞는 것 같다 즉 드워킨의 정답테제
는 ldquo유일하게 정당한 결정rdquo이 존재한다는 데 대한 이론적 탐구라기보다는 실무에
서의 법관의 주관적 태도에 부합하는 이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법관은 자신의 판결활동과 관련하여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모든 사건
에서 오직 하나의 결정만이 정당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 정답에 가까이 가기 위
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55)
드워킨의 말대로 가치판단이 참일 때는 그냥 참일 수가 없으며 그것이 참인
이유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즉 충분한 논거가 존재할 때 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라면 이러한 논거지움의 과정은 자명한 공리적
토대나 그런 토대 위에서 확립된 규칙이나 원리적 서열에 따라 명확하게 밝힐 수
없다 이런 불확실한 가운데도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논거지움은 포기될 수
없다 이 끝없는 정당화 부담 때문에 켈젠은 규범의 효력 근거에 관한 논의를 가
치에 관한 논의와 절연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물론 성공하지
못했다56)
가치판단을 해야 하는 부분이 법문화에서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요소로 작용할지
아니면 그 반대로 작용할지는 판단자로서의 법관의 역량과 연관하여 논해야 할 것
이다 필자는 가치판단적 요소가 법문화에서 당연히 긍정적 요소로 작용해야 하며
게 부응하는지 묻게 한다 따라서 사법부 외부에서 행하는 사법비판의 길이 열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대해서는 노이만 앞의 강연문 참조55) 노이만 앞의 강연문56) 규범의 효력을 불명확하고 상대적인 가치가 아닌 규범에 근거짓기 위해 켈젠이 고안
한 근본규범은 사유상으로만 전제된 규범일 뿐이었다 켈젠은 가치판단을 ldquo현실의 행
위가 객관적으로 효력 있는 규범에 맞게 존재해야 하는 대로 존재한다는 판단rdquo이라고
정의함으로써 가치판단이라는 용어 자체를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Reine Rechtslehre 2 Aufl (1960) 16면 이하 또한 켈젠은 규범이 인간의 의지에 의해
제정되는 한 그 규범에 의해 형성된 가치는 어차피 자의적일 뿐이라고 주장한다(18면) 규범과 가치의 관계에 대한 켈젠의 주장에 대해서는 오세혁 ldquo켈젠의 법이론에 있어서
규범과 가치 - 규범과 가치의 상관관계를 중심으로rdquo 법철학연구 제18권 제3호(2015) 97면 이하 참조
8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또한 그렇게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57) 그런 방향에서 이제 해석의 문제를 법
관의 자기이해 문제와 연관시켜 보기로 한다
Ⅷ 해석과 법관의 자기이해
법관은 추상적인 일반규칙을 가지고 공중의 이목을 끄는 개별적인 사건을 처리
하는 사람이다 법관의 의식활동에 의해 일반규칙과 일회적인 사건 사이의 심연이
메워진다 하지만 일반성과 개별성을 결합하는 이 의식과정에 동반하는 고유한 법
학적 방법에 대해서는 앞에서 지적한 대로 확실한 합의는 없다 ldquo리걸 마인드rdquo라
는 말이 풍기는 신비스러운 분위기에는 사법적 결정이 본질적으로 투명한 것이 되기
어렵다는 암시가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다 논리적인 형태만 부여하기로 한다면
한 사건에서 서로 상반된 결론에 이른 두 개의 판결문을 작성하는 것도 불가능
하지 않다58) 방법이 논리에 기초하는 것이라면 이때 논리는 형식논리를 넘어 엥기
쉬가 표현한 대로 ldquo실질에 부합하는rdquo 논리여야 할 것이다 참된 올바른 받아들
일 수 있는 결정에 이르는 실질논리 이 실질에 도달하기까지는 결코 논리적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지적 감행과 어떤 매개가 작용한다
일반규칙을 개별사례에 적용할 때 요구되는 판단자의 능력과 관련하여 가다머
(Hans-Georg Gadamer)는 이런 견해를 밝힌 적이 있다 판단자는 자신이 이미 가
57) 이와는 달리 가치의 ldquo통약불가능성rdquo 때문에 사법은 좋음이나 옳음의 이슈에 대해 실
질적 입장을 취하는 일에 대해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가치의 통약
불가능성에 대해서는 Cass R Sunstein ldquoImcommensurability and Valuation in Lawrdquo Michigan Law Review Vol 92 No 4 (1994) 779면 이하 조홍식 교수는 ldquo가치의 통약
불가능성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이 권리인가의 문제보다 무엇이 공익인가의 문제에서
더 크다rdquo고 지적하면서 기본적으로 가치판단과 관련한 사법통치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사법통치의 정당성과 한계 제2판 박영사(2010) 240면 가치의 통약불가능성에 대한 주장은 가치판단과 관련한 해석기준의 서열화는 불가능
하다는 주장과 같은 노선에 속한다 여기서 통약불가능성 문제를 자세히 다룰 수는
없다 다만 가치의 통약불가능성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통약불가능이 비교불가능을 의미
하지는 않는다는 점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체적인 맥락이 주어지는 경우 무엇이 옳은
지 혹은 그른지에 대해 심사숙고하며 이에 따라 선택하고 그 선택 결과를 받아들인
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정도만 지적하기로 한다 58) 실제로 판사가 판결문을 두 개 써왔다고 주장한 사건에 대한 보도가 있었다 ldquo판결문을
두 개 써왔다rdquo 조선일보 2013 11 21자 기사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7
지고 있어서 적용하기만 하면 된다는 그런 의미의 규범적 실천적 ldquo지식을 소유한
사람rdquo이라기보다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 ldquo지식을 탄생시키는 상황에 직면하는
사람rdquo이라는 것이다59) 일반범주를 개별사례에 적용할 때 요구되는 이 판단력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래서 칸트(Kant)도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ldquo지성은 규칙들
을 통해 배우고 보강할 수 있는 것이지만 판단력은 특수한 재능으로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전혀 아니고 단지 숙련될 수 있을 뿐이다rdquo60)
우리는 올바른 규칙이나 원리를 알고 있지만 막상 이것을 어떤 상황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예컨대 비례성원칙이나 과잉금지원칙에 대한 지식
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은 적정해야 하고 그 수단은 목적달
성을 위해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원칙을 특수한
상황에 lsquo적용rsquo한다고 할 때에 이 원칙이 그 어떤 판단도 배제할 정도로 자족적인
지침 구실을 한다고 느끼기는 어렵다 특정 상황에서 그 수단이 과연 어느 정도일
때가 목적달성에 적정한지는 판단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실천이성의 역
할이다
단의 자리는 이론 경험 양심이 혼재된 실천의 영역이다 판단을 통한 결정이
라는 그 lsquo종국성rsquo으로 인한 실천적 성격은 법학이 다른 어떤 학문분야와도 공유
하지 않는 법학 고유의 특징이다 그래서 법학은 lsquolegal sciencersquo로 불리기보다는
실천지- prudentia-를 함의하는 lsquojurisprudencersquo로 더 자주 불리어 왔을 것이다
해석의 차원에서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도 추상적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
으로는 행위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성과 개별성을 결합하는 해석적
지식은 추상적 이론적 지식들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일반규칙이나 원리
에 근거한 이론적 패턴의 지식과 특정한 상황 내지 맥락을 고려하는 실천적 패턴
의 지식의 이중주를 이룬다 법관이 지니는 통찰력의 특성은 이론과 태도가 함께
간다는 데 있다 그래서 사법적 판단에서는 규칙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 못지않게
사람 즉 법관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사법적 통찰력의 특성은
뭐니뭐니해도 개별 사례를 다룬다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개별적인 것들은 개별적
인 방식으로만 체험되고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들은 무엇
보다도 lsquo지각rsquo과 관계된다61) 즉 그것들은 일반적 체계적 지식의 대상이라기보다
59) Hans-Georg Gadamer Wahrheit und Methode Grundzuumlge einer philosophischen Hermeneutik 3 Aufl J C B MOHR (1972) 300면
60)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 1 백종현 옮김 아카넷(2009) 37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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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우선 지각의 대상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도 사법적 통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쪽은 규칙보다는 오히려 사람 즉 법관 쪽인 것이다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사건에서 법적으로 중요한 사실이 무엇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규칙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어떤 규칙이 중요한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실이 중요한지 알
아야 한다 이 인식과정에서 법관은 불확실한 가운데서 무수한 선택을 감행한다
어떤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 배척하고 어떤 사실은 인정하거나 무게를 부
여하고 신청된 증거조사의 어떤 것은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거부하고helliphellip 사실
에 대한 이 취사선택-자유심증주의-의 결과로 새로운 것이 태어난다 그리고
이것에 의해 법원을 찾아온 사람들의 운명이 갈리는 것이다
법관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필자 생각에
독일의 법철학자 아르투어 카우프만(Arthur Kaufmann)의 해석학적 방법론은 법
관의 자기이해 문제를 해석학적 지평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법관의 해석작업의
본질을 잘 설명해주는 것 같다 가다머 계통의 철학적 해석학(philosophische
Hermeneutik)의 입장을 받아들이면서62) 카우프만은 법해석행위를 통해 포괄적인
의미에서 법관 자신의 인격 중의 어떤 것이 판결에 혼입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
61)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4면 그리고 1심에서
유죄였다가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강력범죄 540건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판단자
의 감지능력 차이가 법판단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힌 김상준 무죄
결과 법 의 사실인정 경인문화사(2013) 62) 텍스트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이해에 관한 연구분야인 해석학(hermeneutics Hermeneutik)
의 어원은 신들의 전령(傳令)인 Hermes라는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설명된다 이때 신의
의도를 인간에게 전하는 과정에서 언어의 제약성 시공간적 간격 전령의 역할 등과 관
련하여 해석의 문제가 생긴다고 본다 ldquoHermeneuticsrdquo Dictionary of Biblical Interpretation Nashville (1999) 497면 독일어의 Auslegung이 해석주체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대상
으로서의 텍스트에 대한 해석을 의미한다면(객관주의) 철학적 해석학에서의 해석
(Interpretation)은 해석주체의 주관성 내지 역사성이 대상에 투사된다는 의미가 강하다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에 따르면 역사적 존재인 인간에게 있어 모든 해석과 이해는 과
거와 현재가 lsquo작용사적으로(wirkungsgeschichtlich)rsquo 중재되는 사건으로서 lsquo선이해rsquo 내지
lsquo선판단rsquo 없이는 불가능하다 가다머는 선입견으로 폄하된 선이해를 재평가하고 이를
통해 근대 이래 lsquo방법rsquo을 통한 진리발견이 주체에 의한 객체의 대상화 내지 도구화를 가져
왔다고 비판하면서 인간경험에 있어서 진리에 이르는 길은 사물의 존재가 스스로 드러
나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해석과 이해는 전승된 존재방식으로서
의 텍스트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며 이는 텍스트 자체가 지닌 역사적 지평과 해석
자의 지평이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만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해석학적 순환 이해의 전제로서의 선이해 작용사 등에 대해서는 Gadamer 앞의 책 II Grundzuumlge einer Theorie der Hermeneutischen Erfahrung 참조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9
로 법관의 결정이 올바른가의 물음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가의 물음과 직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63)
우선 카우프만은 통상적으로 회자되는 독립적인 법관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즉 법 앞에 선 법관이 일체의 정치적 사회적 개인적 영향이나 선입견들로부터 차
단된 채 순수한 객관적 인식에 따라 그 이전에는 자신이 알 수 없었던 사실관계
를 판단하고 그런 다음에 법적 판단을 한다는 식으로 이해하기를 거부한다64)
그런 법관상은 법령집은 일체 해석의 필요가 없이 거의 모든 가능한 법률문제에
대한 대답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상정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법관은 의지가
없는 존재이며 사법권력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여기는 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법에 대한 인식은 단순히 사례를 법률에 포섭시킨다는 의미의 수
동적 행위가 아니고 해석자가 해석대상에 관여하면서 함께 lsquo형성rsquo하는 것이라고
본다 카우프만은 법관의 법형성력에 대한 자신의 견해가 주관주의의 의미로 받아
들여지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는데 왜냐하면 해석자는 텍스트를 지탱하는 모든
전통과 함께 이해의 지평으로 들어간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은 서류의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ldquo아 이런 사건이구나rdquo라고 감을 잡게 되
는데 카우프만에 따르면 이는 법관 자신이 사건 경과를 관찰해서 인지했다거나
언론 등을 통해 사건에 대한 상세한 지식을 얻었다는 뜻이 아니라 유사한 사건들
을 알며 그래서 ldquo선이해(Vorurteil Vorverstaumlndnis)rdquo65)를 가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
해의 전제로서 이런 선이해가 없다면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것이 무엇에 관한 사
건인지 알 수 없고 다른 사례와 비교할 수도 없기 때문에 올바른 판단에 이른다
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66) 이 선이해에 의해 해석은 언제나 해석주체의 자기
이해 즉 자신이 lsquo잠정적rsquo 결과로서 이미 예상했던 것을 논증적으로 근거짓는 활동
이라는 의미에서 ldquo해석학적 순환rdquo 내지 ldquo해석학적 나선구조rdquo 하에 이루어진다
63)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Festschrift fuumlr Karl Peters Mohr Siebeck (1974) 144면 법관의 독립과 양심 주제와 관련한 또 다른
글로는 Kaufmann ldquoGesetz und Rechtrdquo Existenz und Ordnung Festschrift fuumlr Erik Wolf (1962) 357면 이하
64)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4면 65) 해석학적 의미에서의 lsquo선이해rsquo는 일상 언어 관용에서는 lsquo선입견rsquo이나 lsquo편견rsquo 같은 부정
적 함의를 더 많이 지니기 때문에 카우프만은 lsquoVorurteilrsquo 대신에 Vorverstaumlndnis라는 용
어를 쓰기를 권장한다(앞의 글 148면) 카우프만 외에도 이 용어의 선택은 Josef Esser Vorverstaumlndnis und Methodenwahl in der Rechtsfindung 2 Aufl (Frankfurt aM 1972)
66)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7면
90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텍스트를 이해하려는 사람은 말하자면 언제나 초벌 그림을 그리며 특정 의미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텍스트를 읽기 때문에 ldquo텍스트에서 첫 번째 의미가 지시되자
마자 전체의 의미를 lsquo예비투사한다(vorauswirft)rsquordquo67) 그리고 선이해와 관련된 이 예
비투사는-해석학적 lsquo순환rsquo에 의해-원칙적으로 끝없이 검열과정을 거친다는 것
이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도 실제 판단과정에서는 분리
되지 않는다68)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은 시간적으로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단절 관계가 아니라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정제하고 상응하는
관계에 놓인다 즉 사실에 대한 인식 없이 규범적 인식은 불가능하며 또한 규범적
관점 없이 사실만을 통한 사실 확정도 불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법률도 법관의
해석을 만나기 전에는 ldquo잠재적인 가능태로서 주어진 법률rdquo일 뿐 해석학적 순환을
통한 정제 혹은 상응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ldquo진정한 실정법rdquo이 생성된다69) 이렇
게 특정사건을 통해 구체화된 규범(구성요건)과 이 규범을 통해 정해진 사실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법관에게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들과 함께 제3의 요소로서 법관
자신의 선이해 내지 이해 포괄적으로 말하면 그의 인격적 존재가 판단에 혼입
된다
lsquo선이해rsquo는 판단자가 자신의 선이해를 의식하지 못할 때 부정적 요소를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ldquo자신의 판단은 오로지 lsquo있는 그대로다rsquo라고 말하는 즉 lsquo오로지 법
률에만 구속된다rsquo라고 말하는 법관이야말로 실은 종속된 법관이다 왜냐하면 그는
성찰되지 않은 자신의 선이해와 거리를 둘 수 없기 때문이다rdquo70) 즉 법관은 자신
67)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68) 실제 판단과정에서 사실인정과 법률적용이 따로 떨어질 수 없다는 점은 굳이 카우프
만의 이론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실무상으로는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ldquo법률
의 적용과 사실의 인정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법률문제와 결부되어 인정된다 사실의 인정이 진행됨에 따라서 재판관의 머리
속에서는 어떠한 법규를 적용할 것인가 그 법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는 전망이
점차로 서게 되며 당사자 측도 경우에 따라서는 민사인 경우 청구의 취지를 변경할
것인가를 고려하게 되고 형사인 경우 공소사실을 변경하는 경우도 생긴다 요컨대 사실
문제와 법률문제는 실제과정에서 불가분으로 결부되어 있다 helliphellip 양쪽이 불가분으로
재판관의 직관 혹은 재판관의 전인격적인 작용에 의하여 사실의 인정과 법의 적용이
행하여지고 판결 삼단논법은 실제의 심판 과정에서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rdquo(사법
연수원 법조윤리론 35면) 69) ldquo법관의 해석 작업 이전에는 어느 의미에서 진정 법도 진정한 사실도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원자재들(Rohmaterialien)로만 이것들이 존재할 뿐이다rdquo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1
의 선이해를 의식하고 자신을 이데올로기 혐의 앞에 세울 줄 알 때 올바른 판결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ldquo법관이 자신의 선이해와 종속을 의식할수록 그래서 간주
관적 합의에 노력할수록 그는 더 객관적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rdquo71) 그러므로
법관의 주관주의의 위험은 카우프만식으로 말하면 가치판단 같은 성찰적 고려와
관련된 주관적 요소를 방법상의 근거 제시의 맥락에 끌어들이는 법관의 경우보다는
오히려 모든 것이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판결의 주관적
요소를 은폐하는 법관에게서 나타나는 위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학적 순환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법관은 ldquo법률의 입rdquo이 아니라 ldquo인격
으로서 판결을 떠받친다rdquo72) 판결은 법률과 법관의 인격의 혼성물이다 그러므로
법률은 판결을 위한 필요조건이기는 하나 충분조건은 아니라고도 말할 수 있다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순환이론은 법관의 독립과 양심의 문제 차원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법결정의 올바름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
는 정도에 달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자신을 올바르
게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자신의 판단력 경험 능력 인간에 대한 태도 감
수성 명예욕 등등
카우프만의 법해석학적 순환이론이 법관의 독립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이라
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독립은 법관 스스로 관철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론적으로 카우프만의 법해석이론의 의의는 법관이 자신의 선입견을
의식하는 것이야말로 법관의 독립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설득력있게 지적
해주며 그런 방향에서 법관의 법해석 작업을 재평가했다는 데 있다고 말할 수 있
겠다
70)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71) Arthur Kaufmann ldquoDer BGH und die Sitzblockaderdquo NJW (1988) 2581면 이하72) 이 표현은 Karl Peters의 Strafprozess - Ein Lehrbuch (1966) 99면에 나오며 여기서는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9면에서 재
인용했다 이덕연 교수도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에 입각하여 ldquo법관의 법해석작
업은 단순한 lsquo인식작업rsquo이나 lsquo언어분석작업rsquo이 아니라 ldquo구체적인 반성과 자기극복의
노력 속에서 온 인격을 걸고 진행하는 lsquo이해와 실천의 수행작업rsquordquo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앞의 글 352면)
9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Ⅸ 법관은 lsquo하는 사람rsquo인가 lsquo보는 사람rsquo인가
법관의 판단작업을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의 관점에서 주목했던 또 다른
철학자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다 그녀는 ldquo아이히만 재판rdquo을 계기로 판단의
특수한 경우로서의 판단력 문제를 연구했다73) 아렌트는 하드케이스와 연관시켜
법관의 판단력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74) 법관은 우선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을 반추하면서 판단에 임하는데 이때 판단자로서 그는 한 면으
로는 규칙에 따라 판단하라는 lsquo일반적 정의rsquo의 요구에 그리고 동시에 다른 한 면
으로는 정황에 맞게 판단하라는 lsquo개별적 정의rsquo의 요구에 처한다 이러한 상황은
아렌트에 따르면 하드케이스에서 특히 발생한다 이 이중적이고 모순적 요구 상황
을 아렌트는 법관의 판단에 적용되는 특수한 해석학 및 그 조건을 설명하는 출발
점으로 삼는다75) 하드케이스가 아닌 통상적인 사건에서는 이른바 포섭 여부를 판
단하는 것으로도 족하다 일반규칙에의 포섭 여부가 중심이 되는 이 단계에서의
판단력- lsquo규정하는 판단력(bestimmende Urteilskraft)rsquo-은 사실관계에서의 원인
이나 형식적 정의를 따지므로 일방적이고 간주관적 전제 없이도 가능하다 그래서
흔히 법관은 여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법을 해석해야 한다고 말할 때 이는
법적용을 이러한 지배적인 포섭모델에 입각하여 이해한 결과라 할 것이다 그런데
규칙으로부터 오는 어떤 어려움들 때문에 규정하는 판단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즉 포섭이 어렵거나 법흠결 시 또는 가치형량이 요구되는 하드케
이스에서는 법관은 어쩔 수 없이 앞에서 말한 모순문제를 다루어야만 한다 이때
아렌트는 법관이 사유의 확장을 통해 방법상으로 lsquo규정적 판단력rsquo을 스스로 교정
할 수 있는 lsquo성찰적 판단력rsquo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고 이 판단유형의 전환과정을
73) 법적 판단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 삼은 저술은 Hannah Arendt Eichmann in Jerusalem Ein Bericht von der Banalitaumlt des Boumlsen Erw Aufl (Muumlnchen 2001) 그리고 Hannah Arendt Das Urteilen Texte zu Kants Politischer Philosophie Hrsg v R Beiner Uumlbers v U Ludz (Muumlnchen 1998)
74) 아렌트가 염두에 둔 하드케이스는 라드브루흐가 이른바 ldquo법률적 불법rdquo 상태로 규정한
나치의 불법국가 상황으로서 이렇게 극히 예외적인 케이스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하드
케이스에 적용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별적 정의 요구에 부응함
으로써 예컨대 소급효를 금지하는 일반법률에 위배되는 상황과 유사한 갈등상황은 반
드시 극단적 상황에서만 생긴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75)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2 Bde Hrsg v U Ludz amp I Nordmann
따라서 그 척도는 전달가능성이며 거기에 딱 맞는 것은 공통감각(상식)이다rdquo77) 오
늘날 공통감각은 아렌트도 지적했듯이 더 이상 그것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얻고자 노력해야 하는 그 무엇이 되어버린 듯하다 그러나 공통감
각이 무너진 시대를 겪었던 아렌트는 사유의 전환 내지 확대를 위한 진정한 발판
을 다시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에서 구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78)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실천철학의 전통에서는 세계와의 관계 그리고 자기와의 관
계를 공통감각을 척도로 설정해가는 판단자가 lsquo하는 사람rsquo인지 아니면 lsquo보는 사람rsquo
인지 즉 lsquo행위자rsquo인지 아니면 lsquo관찰자rsquo인지를 둘러싸고 의견이 대립되어 왔다 lsquo하
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자가 lsquo정치가rsquo 쪽에 더 가깝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
자는 lsquo철학자rsquo 쪽에 더 가깝다 lsquo하는 사람rsquo은 주로 사회의 일반적 상식 건전한 인
간이해 세론(doxa)을 판단의 척도로 삼는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적 경험은 전체주
의 하에서는 건전한 인간이해도 집단화된 대중감정에 따른 오도된 인간이해 앞에
무너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판단에서 사실로서의 상식이나 합의 또는
법해석공동체 내부의 지배적 제도적 관점이라는 판단 척도만으로는 일반규칙으로
부터 오는 모순을 다루기 어렵다 여기서 판단자는 ldquo확대된 사유방식rdquo을 추구해야
하는데 아렌트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을 lsquo보는 사람rsquo의 판단과 결합시킴으로써 법
관을 위한 사유의 확대를 시도한다79) lsquo하는 사람rsquo이 사실로서의 일반적 상식이나
인간이해 차원에 비추어 판단한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ldquo이
상적 규범적 상식rdquo80)을 추구하고자 한다 판단을 거쳐 법적 효과를 결정하는 법관
76)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을 해석학적 순환이론을 적용하여 분석하면서 칸트의 판단력 비
판에 의거하여 아렌트가 판단력의 특수한 경우로서 법관의 ldquo성찰적 판단력rdquo이라는 새
로운 판단유형을 제시했다고 지적한 연구서로는 Stefanie Rosenmuumlller Der Ort des Rechts Gemeinsinn und richterliches Urteilen nach Hannah Arendt Nomos (2013) 참조
77) Hannah Arendt Das Urteilen 92-93면78) 아렌트가 판단의 차원을 심화시키는 발판으로 삼는 상식은 sensus communis로서
communis opinio와는 다르다는 데 대해서는 Marieke Borren ldquolsquoA Sense of the Worldrsquo Hannah Arendtrsquos Hermeneutic Phenomenology of Common Senserdquo International Journal of Philosophical Studies Vol 21 No 2 (2013) 225-255
79) Hannah Arendt Das Urteilen 76면80) Rosenmuumlller 앞의 책 234면 이하 여기서 아렌트는 상식개념을 이중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에서는 경험적 개념으로 보다 성찰적 판단
단계에서는 규범적 개념으로 사용한다
9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은 관찰자로서 판단하면서 동시에 행위자로서 판단에서 법적 결과를 결정하는
사람이다 관찰자인 동시에 행위자라는 이중적인 역할을 하면서 법관은 자신의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 반추한다81) 이 반추과정에서 법관은 한편으로는 포섭
하는 판단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고려해야 할 관점들을 끌어들이면서
자신의 직책을 마지막까지 수행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통제하면서 자신의 앞서의
(포섭) 판단을 정정해나간다 그래서 법관 자신이 lsquo보는 사람rsquo과 lsquo하는 사람rsquo의 만
남의 장소가 되는 것과도 같다 ldquo이 보는 사람은 모든 하는 사람 안에 자리 잡고
있다helliphellip이 비판적 판단능력이 없이는 행위자 혹은 해결자는 보는 사람으로부터
풀려나 종내는 지각되지조차 못하게 될 것이다rdquo82)
사람들은 자신 일에 있어서는 비당파적일 수는 없다 따라서 ldquo자신의 일에 대한
판단에서는 내면의 심판자 혹은 내면의 법정을 가질 수 없다rdquo83) 그러나 다른 사
람의 일을 반추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필히 비당파적이어야 하며 또 비당파적이 될
수 있다 이때 그는 비로소 내면의 심판자를 가지게 된다 즉 양심의 문제에 처하
게 되는 것이다 판단에 있어서 양심이라는 것 즉 양심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남
의 일에서 ldquo증인rdquo 혹은 ldquo비판적 친구rdquo로서 관찰하고 행위하는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이다84)
아렌트의 성찰적 판단모델은 나치 불법국가 경험의 산물이다 통상의 규칙이 파
괴된 상황 통상의 범죄유형에 포섭되지 않는 극히 예외적인 범죄적 상황에서 법
원은 기존의 판단척도를 해석학적 출발로 삼아서는 안 되고 이때에는 질적으로
동의가능한 합의형식을 찾기 위해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으로 돌아가
진정으로 사유 즉 철학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렌트가 판단을 일반화해주는
거점이자 해석학적 출발점으로 삼은 공통감각(상식) 개념은 칸트철학에서 ldquo비사교
적 사교성rdquo 개념의 위상과 비슷하다85) 이 지상에서 인간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다른 것을 원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모여 살아야만 하는 존재다 이 비사회성 요
청과 사회성 요청의 동시성 때문에 인간에게는 제도적인 안착이 더없이 중요하며
법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실존과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만든다 판단의 기
81) Leora Y Bilsky When Actor and Spectator Meet in the Courtroom Hannah Arendt and Eichmann in Jerusalem G N Arad Hg (Bloomington 1996) 137면
82) Hannah Arendt 앞의 책 85면83) Hannah Arendt 앞의 책 76면 84)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657면85) Rosenmuumlller 앞의 책 1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5
초를 보편적 인간경험에 둔다는 점에서 아렌트가 말하는 판단력은 드워킨의 헤라
클레스와 같은 초인적 천재성을 발휘하는 능력과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86) 아
렌트가 상정하는 이상적인 법관은 철학적이지만 철학자는 아니고 정치적이지만 정
치가는 아닌 사람이다
아렌트는 헌법국가의 권위도 상식개념에 기반을 두고 설명한다 그리고 민주적
정당성의 관점에서 입법의 우위를 인정하는 까닭에 성찰적 판단에 입각한 법관의
검증에는 한계가 있다는 태도를 견지한다87)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렌트가 제시한
법관의 성찰적 판단 유형에 대해서는 다양한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우선 이것이
예외 상황에서 적용되는 판단모델로 상정된 것이며 무엇보다도 ldquo규범적 상식rdquo에
대한 단일한 이해기반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법관 개인의 주관적 정치적 신념
이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길을 피할 수 없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성찰적
판단력은 결국 레토릭에 불과한 것인가 아렌트는 그러나 무엇이 ldquo특정 상황에 맞
는 공통감각(situierte Gemeinsinn)rdquo인지에 대한 공동의 인식은 가능하며 또 법관의
lsquo하는rsquo 판단에 들어있는 정치적 함의를 성찰적 판단력으로 검증하는 것도 가능하
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아렌트가 마지막 검증심급으로 원용하는 것이 바로 판
단에서의 양심의 심급이다 그것이 과연 동의할 수 있는 합의형태로서 충분한지를
스스로 검증하는 이 심급에서 판단자는 명령조로 자기에게 전해지는 소리를 듣게
된다 ldquo멈춰 나는 그것은 할 수 없어rdquo88) 판단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 멈추는 것
이 가능한 이 성찰적 심급에서는 칸트와 달리 할 수 없는 이유로써 결과도 고려
된다 lsquo보는 사람rsquo이 자기 안에서 지켜보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상황은 토마스 아퀴
나스의 양심론에 비추어 다음과 같이 묘사될 수도 있겠다 지적 본성을 가진 인간
존재가 보편법칙에 관한 지식을 개별 행위에 적용하기 위해 판단하고 선택할 때
행위자는 갈등 상황- ldquo그렇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rdquo는
상황-에 처하여 멈칫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데 이때 그는 단지 갈등하고
선택하는 역할만 하지 않고 갈등하고 선택하는 이 과정을 ldquo관찰하고 목격하는 증인rdquo
의 역할도 한다는 것89)
86) 드워킨에 의하면 해석적 탐구는 ldquo어떠한 증명도 허용치 않고 어떠한 수렴도 약속치
않는 탐구rdquo이다(드워킨 정의론 203면)87) Rosenmuumlller 앞의 책 30면88) Hannah Arendt Uumlber das Boumlse Eine Vorlesung zu Fragen der Ethik Hrsg v J Kohn
(Muumlnchen 2003) 52면89) 지적 행위자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자신의 내면의 갈등과 선택과정을 바라보는
9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Ⅹ 방법에서 덕목으로
헌법 제103조는 한 면으로는 헌법과 법률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 면으로 해석자에게 여하한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lsquo제약
의 차원rsquo과 lsquo자유의 차원rsquo을 동시에 담고 있다 법관은 자유로울 때에라도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며 법에 구속될 때에라도 전적으로 구속되지는 않는다는 뜻이
기도 하다 이 lsquo자유와 구속의 변증법rsquo에 비추어 지금까지 논한 주제에 대해 몇 가
지 입장을 정리해 보자 첫째 법관에게 있어서 독립은 확정된 원칙이나 그것자체
로서 달성해야 할 최종목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법관의 독립은 완성형이 아니라
끊임없는 진행형의 과제로서 그 직무수행에 대한 신뢰와 병행하여 점진적으로 이
루어지는 것이다 둘째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에 있어서 구속은 법률에 무조건 복종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판결에 대한 윤리 (내 ) 확신과 함께 법률에 복종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법관이 실정법률에 반하는 결정을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법
관은 객관성을 빌미로 법률 뒤에 숨는 익명적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
미하는 것이다 셋째 독립적인 법관의 양심은 lsquo법과 상충한다rsquo기보다는 lsquo법을 실
한다rsquo는 의미를 지닌다 넷째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서 반추하면서 lsquo하는
사람rsquo인 동시에 lsquo보는 사람rsquo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성찰 인 인물상으
로서만 설정될 수 있다
해석적 탐구는 우리의 이해를 넓히기 위해서 필요하지만 이해에서의 우리의 피
할 수 없는 한계를 깨닫기 위해서도 필요했는지 모른다 엥기쉬는 법해석방법론에
대한 저술의 마지막 부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ldquo방법론에 천착하다 보면
애초의 문제였던 법률로부터 훨씬 더 먼 곳으로 이끌려 간다rdquo 지금까지 필자는
법관의 법해석과 관련하여 방법론의 의의와 한계를 논하고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과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에 비추어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이 법해석론
의 불가결한 부분으로 들어가게 되는 이유도 밝혔다 그리고 해석적 차원에서의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는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행위를 목표로 하는
탐구라는 것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필자는 이 모든 논의들을 매개로 방법론이 우리를 더 멀리 덕
목론으로 데려가는 과정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드워킨의
상황에 대한 이 묘사 부분은 이경재 ldquo토마스 아퀴나스의 양심 개념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375면을 참조했다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7
헤라클레스를 잠시 불러올 필요가 있다 해석문제를 누구보다도 더 진지하게 다룬
드워킨은 마지막에 헤라클레스를 내세운다 주어진 사건에서 무엇이 법인지에
대해 도덕적 의식을 가지고 법실무 전체를 원리정합적으로 정당화하라는 요청에
부응하여 자신의 신념에 기초한 결정을 내리는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의 구성적
해석에서 법관의 양심이 기능하는 국면은 어디일까 송민경 판사는 드워킨의 구성
적 해석론에 입각하여 양심을 구체적 법논증과정의 일부로 포함시키면서 이때 양
심이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라는 지침으로 기능한다고 설명한다90)
그런데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는 지침으로 기능하는 것을 양심이라
고 보게 되면 양심의 문제는 논증적 합리성의 차원 즉 논증의 성공으로 종결짓게
된다 그러나 법적 결정의 정당성 문제는 법관의 입장에서는 논증의 성공 문제로
다루어지지만 법관의 성공적인 논증에 따른 판결의 결과로부터 영향을 받는 시민
의 입장에서 보면 성공적인 논증만으로는 해석이 정당화된다고 볼 수는 없다
성공적인 논증은 법적 결정의 정당화에 필수적이기는 하나 충분한 조건은 되지 못
한다 해석이 궁극적으로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사법적 도덕성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 사법적 도덕성은 헤라클레스가 지침으로 삼는 원리적 도덕성의 실현과는 다른
것이다 만약 패소한 시민이 다른 헤라클레스에게 갔더라면 즉 다른 법원리에 기
초한 신념을 토대로 다른 결정을 내린 다른 법관에게 갔다면 그는 승리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왜 헤라클레스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하
는지에 대한 답이 필요한 것이다91) 헤라클레스가 실무에 대한 최상의 정당화를
도모하는 법적 이상주의자라면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법원 문을 두드린 시민도
어느 의미에서 ldquo법이상주의자rdquo92)이다
법해석 작업의 주관의존성이라는 불가피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재판이라는 특수
한 공적 활동이 법관이라는 특수공직자에 의해 운영되고 유지된다는 것은 시민들
-소송에서 패한 시민들을 포함하여-편에서 보면 법을 해석하는 법관에 대한
신뢰가 전제된다는 것이다 법관의 독립적 활동은 법관의 특권 행사가 아니라 사
90) 송민경 앞의 글 38면 20면91) 사법적 덕목과 연관하여 이 부분을 다룬 글로는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5면 이하
92) 법원 문을 두드리는 시민에 대한 이 표현은 심헌섭 ldquo법조윤리의 좌표 거시적 관점에서 본 전문윤리로서의 법조윤리rdquo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편 法律家의 倫理와 責任 박영사
(2003)에 나온다
9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법과정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응당한 몫이 돌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존중하는 바탕에는 일종의 상호성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 그 또한
시민이기도 한 법관이 동료시민들에 대해 가지는 배려와 존중의 원칙이 그것이다
여기서 사법적 덕목에 대해 자세히 논할 수는 없다93) 예의 성실 신중 절제
용기 공정 겸손 의사소통 능력 형평 시민에 대한 배려와 존중 등등 이것들은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바탕을 이루는 양심의 덕목들일
것이다 양심이라는 단어가 그렇듯이 덕목이라는 단어도 오늘날 진부해진 표현
이며 거의 사라져가는 단어다 윤리적 태도로서의 덕목은 관찰하기도 배우기도
어렵다 그러나 올바른 판단과 결정이 법관이라는 개인을 거치지 않고 법령집
자체로부터 반사적으로 튀어나오지 않는 한 이 덕목들을 내면화하고 지향하려는
태도 없이는 lsquo종국적인rsquo 판단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써 필자는 헌법 제103조를 통해 법해석에서의 방법론의 문제가 덕목론이라
는 다음 과제로 이어진다는 점을 밝혔다고 생각한다
투고일 2016 4 6 심사완료일 2016 5 18 게재확정일 2016 5 20
93) 법관의 개별적인 덕목들과 이것들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는 박은정 강태경 김현섭 바람
직한 법관상의 정립과 실천 방안에 관한 연구 법원행정처(2015) 제5장 참조할 것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9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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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수 헌법학신론 박영사(2013)
김현섭 ldquo법관의 양심과 독립에 대한 헌법 제103조의 해석rdquo 한국법철학회 월례독회
발표문(2015 4 25)
김황식 연필로 쓴 페이스북 之山通信 나남(2013)
박은정 왜 법의 지배인가 돌베개(2010)
박은정 강태경 김현섭 바람직한 법관상의 정립과 실천 방안에 관한 연구 법원행
정처(2015)
사법연수원 법조윤리론(2014)
성낙인 헌법학 법문사(2014)
송민경 ldquo법관의 양심에 관한 연구rdquo 사법논집 제58집(2014)
심헌섭 ldquo법조윤리의 좌표 거시적 관점에서 본 전문윤리로서의 법조윤리rdquo 서울대
학교 법과대학 편 法律家의 倫理와 責任 박영사(2003)
분석과 비 의 법철학 법문사(2001)
양창수 ldquo바람직한 법관상-기예와 지혜 사이rdquo lt근대사법 및 한성재판소 설립
이성의 활동rdquo ldquo인격의 자기인식rdquo ldquo본래적인 자기 자신으로 불러 세우는 염려의
소리rdquo ldquo너와 내가 함께 잘못을 감시하고 경계하는 공동의 눈초리rdquo ldquo근원적인 자
기의 요구rdquo 등등22) 이런 다양한 견해들은 양심 개념을 형식적인 측면에서 접근하
는지 아니면 내용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지 양심 판단에서 개인의 주관적 요소를
강조하는지 아니면 보편성 내지 소통가능성을 더 중요시하는지 양심의 권위를 내
부에서 찾는지 아니면 외부의 권위를 사회화 내지 내면화한 결과로 보는지 양심
에 따른 결단을 감정의 작용으로 보는지 아니면 이성도 같이 작용하는 것으로 보
는지 등에 따라 여러 갈래를 이룬다
칸트의 근대 주체철학의 영향을 받은 이래 오늘날 양심논의에서는 대체로 양심
의 개인적 주관적 요소가 강조되는 가운데 양심을 개인에게 도덕적 행위 동기를
유발하고 자기반성을 가능하게 하고 개인의 판단과 자기결정에서 최종심급의 역
할을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대표적으로 칸트는 양심을 각 주체로서의 개인의
ldquo내면에 자리 잡은 자율적 심판관rdquo으로 일컬으면서 행위주체가 자기 안에 내재하
21) 이덕연 앞의 글 361면22) 진교훈 외 19인 양심 고 로부터 에 이르기까지의 양심의 의미 서울대학교출판
문화원(2012)
7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는 도덕법칙에 스스로의 행동을 적용시키는 것이 양심이라고 말한다23) 이때 양심
은 스스로 도덕법칙을 정립할 수 있는 선의지를 가진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지니는 일종의 의무의식으로 여겨지며 자신이 자신을 평가하는 것이 양심이기 때
문에 이 주관적 확신을 평가하는 외부의 기준은 없는 셈이다24) 이렇게 양심을 주
관성의 형식으로 가져갈 때는 주관적으로는 옳은 양심에 따른 확신이라 하더라도
인식주체가 가진 한계 등으로 인해 내용상 오류가 가능하다는 문제를 안게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칸트와 달리 양심문제를 개인의 주관적 도덕의식 이상의 차원에
서 다루고자 하는 철학자들은 간주관성의 차원에서 보편성을 지니는 양심개념을
추구한다 이런 방향에서 파악한 양심 개념에 대해 lsquo객관적rsquo 양심이라는 표현을 쓸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양심과 관련하여 lsquo객관적rsquo이라는 표현은 인식
주체 밖에 뭔가가 존재한다는 인식론적 존재론적 가정을 상정한다는 점에서 문제
가 있다 인식 주체 밖에 객관적인 그 무엇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양심이 아니라
윤리규범일 것이다 법관의 양심을 lsquo객관적rsquo lsquo법조적rsquo 양심으로 표현하는 것도 이런
의미에서 부적절하다25)
그런데 철학전통 안에는 양심을 주관성의 형식으로 끌어들여 절대화하는 시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서양에서 근대 이전의 철학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개인의 주
관적 도덕의식을 넘어서는 차원에서 양심을 논하는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우선 어
원상으로도 con-scientia syn-deresis의 con과 syn에서 알 수 있듯이 양심은 우리
내면의 법정에서도 공공성 내지 공동체성 즉 ldquo함께 안다rdquo라는 요소를 지니고 있
었다 이 어원은 양심의 규제적 기능에는 우리가 올바르게 행했는지 혹은 그릇되
게 행했는지를 지켜보는 ldquo공동의 인식rdquo이 있다는 자각이 포함됨을 암시한다 자기
안에서 lsquo보편적인 자기rsquo를 확신하는 과정을 상호인정과정과 연결시키고자 하는 양
심관은 공동의 윤리로서의 인륜성(Sittlichkeit)의 입장에서만 ldquo진정한 양심rdquo이 가능
하다고 보는 헤겔(G W F Hegel)의 양심론26) 타자윤리학에 근거한 레비나스
23) Immanuel Kant 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 (윤리형이상학 정 백종현 역 아카넷(2005) 134면 이하) 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Philosophische Bibliothek A 175 (2003) 215면 이하
24) 김관영 ldquo칸트에 있어서 양심의 문제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144면25) 예컨대 성낙인 교수는 법관의 양심을 ldquo법관이 적용하는 법 중에서 객관적으로 존재하
는 정신을 가리킨다rdquo고 설명한다 앞의 책 713면 이 객관적 정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26) Hegel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sect137 헤겔의 양심론에 대해서는 최신한
ldquo헤겔 야코비 양심의 변증법rdquo 헤겔연구 제23호(한국헤겔학회 2008) 86면 이하 참조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75
(Emmanuel Levinas)의 양심론27) 그리고 행위주체들의 담론적 소통과 사회적 행위
에 대한 책임에서 출발하는 아펠(Karl Otto Apel)의 양심론28)에도 엿보인다 동양의
양심을 ldquo세상 사람을 향해 움직이는 마음rdquo으로 묘사하면서 양심이 있어서 책임있
는 인식의 기능에 주목한 사상가도 있다30)
서양에서 근대를 전후로 양심의 주관화 경향이 강하게 대두된 데에는 종교분쟁
등의 영향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은 가치상대주의라는 시대정신의 영향 하에
양심은 도덕적 판단과 인격을 근거지우는 현상으로 파악되면서도 내용적 측면보다
는 형식적 측면에서 고찰되고 간주관적 논의가능성이 배제된 채 그 논의의 폭이
좁아져 거의 개인의 자기결정권 영역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우리 헌법 제19조의
양심의 의미도 이런 자기결정에서의 최종심급 역할이라는 맥락에서 읽히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살펴봤듯이 주관화의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기 이전의 사유전통에
서는 양심의 자기결정 능력보다는 스스로에게 도덕적 의문을 품는 능력 ldquo함께
안다rdquo라는 책임성 쪽에 더 비중이 놓여 있었다 이런 사유배경에 비추어 본다면
헌법 제19조의 양심은 근대 주관화의 영향의 산물로 이해할 수 있고 이에 비해
헌법 제103조에서 법관과 관련하여 언급된 양심은 근대 이전의 ldquo함께 안다rdquo의 사
유전통의 흔적을 지닌 개념으로 볼 수 있다
Ⅳ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의 완화 경향
앞에서 살펴봤듯이 역사적으로 법관의 독립이념은 법관은 오로지 법률에만 구속
된다는 것을 전제로 탄생했다 그리고 이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은 법률의 총합으로
27) 레비나스에 대해서는 김연숙 ldquo레비나스의 양심론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제3부 제3장 참조28) Karl Otto Apel From a Transcendental Semiotic Point of View Manchester University
Press (1998) 52면 259면 양심이 지니는 공적 관찰이나 감시기능 부분에 주목한
Apel에 대해서는 백춘현 ldquo아펠의 양심론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344면 이하29) 맹자의 양심론에 대해서는 장승희 ldquo맹자의 양심론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제1부 제1장
참조30) 왕수인은 양심과 양지(良知)라는 표현을 함께 썼다고 한다 ldquo남의 아픔을 느끼기 위해
서는 예민하게 lsquo생각rsquo해야 한다rdquo 여기서는 이혜경 ldquo왕수인의 양심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79면에서 재인용
7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서의 법질서는 통일적이고 자기충족적인 시스템을 이룬다는 가정에 기초하고 있
었다 그러나 이 가정은 그 자체로 애초 한계를 지닌 것이기도 하지만 법의 생태
적 기반이 변하면서 이 법률구속원칙은 점차 상대화 내지 약화되는 방향으로 나아
가게 되었다 입법자를 기다릴 수 없는 빠른 사회변화 자유법운동 입법양의 폭발
적인 증대 일반조항 도입 등 입법스타일의 변화 복지국가 대두 사회정의의 요구
헌법재판 활성화 등의 흐름은 법관의 법률구속메커니즘이 작동하기 어려운 여건을
만들어 가게 된 것이다 이른바 lsquo법관법rsquo의 대세 흐름이 나타난 것이다 특히 지난
수십 년간 확대된 입법영역은 형법과 같은 규제입법과 달리 사회복지생활보호
건강 증진남녀평등청소년보호장애인보호적극적 평등조처 등처럼 정치적 비전과
목적을 담은 한마디로 정책촉진적 성격을 지닌 법률들이었다 이와 같은 야심찬
입법스타일은 법적용단계에서 법관이 바람직한 제도 및 정책 내용에 대해 고려케
함으로써 목적적 법논증으로 기울게 하고 구체적 이익을 비교형량하는 심사방식
을 확대시키는 등 좁은 의미의 실정법률 해석보다는 법형성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 것이다31) 특히 이 흐름은 20세기말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법실증주의에
제동이 걸리는 분위기와 겹치면서32) 법철학에서도 전통적인 포섭논리나 삼단논법
은 실제로 법관들에게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지적과 함께 법관의 법률구속원
칙에 회의적인 성향의 논의들이 강세를 보이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법발견 과정에
대한 심화된 통찰을 통해 lsquo선이해rsquo의 문제를 재평가하게 만든 철학적 해석학과 문
언의 의미론적 구속력에 회의를 제기케 한 언어이론은 법철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들 이론에 입각하여 이제 법의 흠결 시와 같은 예외적인 상황에서 법관
의 법형성이 불가피하다는 수준의 주장을 넘어 법률텍스트를 통한 구속가능성 자
체를 의문시하는 주장까지 나오게 되었다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의 실현에 대한 기대가 점점 약화되고 그래서 누구의 표현
대로 법률이 해석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해석이 법률을 지배한다고 말할 정도가
31) 사회변화에 따른 법관의 역할 변화에 대해서는 박은정 왜 법의 지배인가 돌베개(2010) 제6장을 참조할 것
32) 울프리드 노이만(Ulfrid Neumann)은 지난 2015년 10월 1일 고려대학교 초청강연에서
ldquo실증주의 이후 시대의 법률과 판결rdquo이라는 주제로 발표하면서 법학적 사고가 ldquo법실
증주의 이후의 시대rdquo로 넘어갔다고 진단하고 그 배경으로 세계화 등의 흐름으로 국제
상거래관습법(lex mercatoria)처럼 입법당국에 의한 제정이 아닌 사회적 실천에 의거한
법제정 사례 법원리의 중요성 대두 인권사상 증대 등을 들고 있다 그러면서 법실증
주의로부터 멀어지는 만큼 법관의 법률구속원칙도 상대적으로 완화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77
되면 다시 제기될 수밖에 없는 물음이 바로 입법기관과 법적용기관 사이의 권력
균형 문제다 이 권력 균형은 특히 법 이라는 개인에 의해 매개된다는 점에서 문
제가 된다 오늘날 ldquo사법국가rdquo ldquo법관공화국rdquo ldquo사법엘리트rdquo ldquo사법의 정치화rdquo 등을
지적하는 소리는 입헌민주주의 기획의 초기단계에서 일찍이 해결했다고 여겼던
문제들이 다시 등장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법관의 법률구속의 전제 및 그 가능성
법원의 중립성 법관의 민주적 정당성 사법관료주의 등의 문제가 그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물음이 떠오른다 해석자의 자유를 제
한하고 법관의 법률구속을 보장할 확고한 법해석방법론은 가능한가 법관의 법률
구속에 관한 기술적 제도적 보장책은 가능한가 필자는 이 물음들에 대체로 회의
적인 전망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물론 법해석방법의 무용론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법률에 구속되는 법관상이 약화되고 앞으로도 점점 더 약화될
것이라는 전망 하에 어느 때보다도 더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될 법관의 독립 문제
를 염두에 두면서 법해석방법론의 문제를 재검토하고자 한다
Ⅴ 법해석방법론의 문제점과 한계
법이 있는 곳에 해석이 있다 법학의 강점도 해석학적 잠재력에 있다 법관의 임
무는 법률을 적용하기 위해 법문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법해석방법론은 법
해석과정에서 법관의 자유에 일정한 제약을 가하고 법관의 법률구속이념을 실현하
기 위해 고안되고 발전된 것이다 해석에서는 무엇이 최선의 해석인지를 둘러싸고
언제나 논쟁과 불일치가 생기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해석작업은 인간의 판단과 행
위의 영향 하에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법관이 따라야 하는 법률 자체에는 이미 법적용자를 법률에 대해 어느 정도 독
립적이게 만드는 여러 표현방식들이 들어 있다 예컨대 lsquo야간rsquo lsquo소음rsquo lsquo위험한 물건rsquo
lsquo적절한 조치rsquo 등 개념의 내포와 외연이 확정적이지 않은 법개념들이 대표적이다
이런 불확정적 개념들은 법명제의 구성요건 단계에만 들어 있는 게 아니라 법률효
과에서도 등장한다 이른바 lsquo규범적 개념rsquo들도 그런 표현방식에 속한다 lsquo음란한rsquo
lsquo건전한rsquo lsquo불명예스러운rsquo 등의 개념들은 기본적으로 지각가능한 대상을 서술하는
개념과 대비하여 의미내용이 가치판단에 근거할 때만 파악된다는 점에서 규범적
이다 이때 가치판단은 반드시 주관적 개인적 평가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른 사람
7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들의 평가도 포함할 것이지만 어쨌든 이 판단과 관련한 어느 정도의 불확정성은
감수해야 한다 법관의 법률 구속 의무를 느슨하게 만드는 이런 개념군에는 재량
도 포함된다 오늘날 재량개념은 ldquo법적으로 구속되는rdquo 재량으로 이해되지만 이때
판단의 여지 안에 들어오는 여러 대안들 가운데서 최종 혹은 최선의 대안을 확정
하는 데 있어서 결정자의 개인적 확신을 허용할 수밖에 없다 일반조항도 표현 그
대로 높은 일반성을 띰으로써 법적용자로 하여금 자기 앞에 놓인 사례를 광범위한
사례집단들에 적응시켜가면서 법률효과를 귀속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33)
위에서 언급한 불확정 법개념이나 규범적 개념 등을 적용하는 데는 가치판단
요소가 수반된다 이런 개념들을 적용할 때 법관은 일정한 범위 안에서 입법자를
대신하여 가치판단 내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것이다 또 법관
은 법의 lsquo흠결rsquo을 보충하거나 법질서 안에서 이따끔 발견되는 lsquo오류rsquo를 수정해야
할 부득이한 상황에도 처하게 된다 이때는 법관은 스스로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찾아 나서야 한다 lsquo법의 일반원칙rsquo lsquo법의 정신rsquo lsquo평균인의 척도rsquo lsquo비례성원칙 lsquo이익
형량rsquo 등은 이때 법관이 의존하는 사유 장치들이며 이것들을 원용하는 데도 가치
판단적 요소가 개입한다 이때 판단자는 무엇이 사실상 효력을 갖고 있는 윤리적
견해인지 확인해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사실로서의 합의가 올바른 법적 결론에
도달하게 하는지에 대해서도 숙고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법적용자는 때로는 평
균인 테스트 같은 객관적인 척도에 의지하지만 또 때로는 개인적 견해를 더 많이
펼칠 수 있는 일정한 판단의 여지를 가지게 된다
이렇게 해석과정에서 불가피한 lsquo판단의 여지rsquo 즉 해석과정에 불가피하게 개입되
는 가치판단 요소 때문에 ldquo해석의 건전성rdquo을 둘러싸고 논란이 생기고 해석의 정당
화와 관련하여 회의가 생긴다 가치판단과 관련된 부분이 불가피하게 주관적 요소
를 끌어들이게 되고 이로 인해 법규범의 효력이 상대적이고 불확실한 영역으로 떨
어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단자는 자신의 결론이 불확실성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자신의 해석에 대한 정당화를 포기할 수 없다 법을
해석한다는 것은 ldquo그 법률을 특정 사안에 적용하는 것을 정당화한다는rdquo34)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확정적인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사례에서도 요구되는
33) 불확정적 개념 규범적 개념 재량 일반조항과 관련한 자세한 설명은 칼 엥기쉬 법학
방법론 안법영윤재왕 옮김 세창출판사(2011) 182면 이하에 잘 정리되어 있으며 필
자도 이 부분을 참조했음을 밝힌다 34) 닐 맥코믹 로버트 서머즈 ldquo해석과 정당화(上)rdquo 박정훈 역 법철학연구 제5권 제2호
(2002) 18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79
개인적인 단은 도덕적 상대주의자들이 말하는 개인적인 취향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해석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올바른 해석기준을 수립하고자 법률가들은 각
기 지금까지 다양한 해석방법에 의존해 왔다 올바른 해석을 위한 확고한 기준을
수립할 수 있다는 것은 찬성하는 혹은 반대하는 해석논거들 사이의 상대적 비중을
결정하는 명확한 규칙을 수립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즉 어느 한 해석
논거가 다른 해석논거에 의해 배제되는 조건이나 선택된 해석을 정당화하는 데
필수적인 한 논거가 다른 논거보다 우월하기 위한 조건 한 논거에 누적을 통한
비중이 부과되는 조건 등을 제시해줄 일관된 정보와 지침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
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여러 해석방법들 사이에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다는 것
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시도는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했다 동일한 유형의 논거일지
라도 각각의 정당화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비중을 갖게 될 뿐더러 언어적 해석
방법 체계적 해석방법 목적적 해석방법 등으로 제시되는 여러 해석방법들이 한
줄로 세우기에는 한마디로 너무 이질적이다35) 물론 이들 해석논거들의 상호작용
을 검토하면서 잠정적인 서열을 제시하는 것은 가능할 수도 있다36) 그러나 이 서
열은 기껏해야 ldquo해석을 위한 노력의 경제성 원리rdquo 정도를 말해 줄 뿐이기 때문에
쉽게 바뀔 수 있다37)
드워킨이 옳게 지적한 대로 기본적으로 가치판단과 관련된 해석방법들은 위계
적일 수 없고 ldquo상호지지적rdquo인 관계에 놓일 뿐이다38) 이 때문에 방법론적 규칙을
세우려는 시도는 언제나 무망해지는 것이다 또한 법해석에 있어서 언어란 단어의
의미를 식별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 행위의 의미를 식별
하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론 풀러(Lon Fuller)가 지적한 대로 ldquo언어
를 통한 의사 전달은 어느 한 사람으로부터 다른 사람에게로 의미가 든 상자를 발송
하는 식rdquo39)은 아닌 것이다
35) 울프리드 노이만 ldquo실증주의 이후 시대의 법률과 판결rdquo 강연문(주 32) 노이만에 따르
면 예컨대 체계적 해석 방법에 따른 논거도 그것이 논리적 일관성 획득의 맥락에서
인지 아니면 가치평가의 일관성 보장이라는 맥락인지에 따라 전혀 다른 비중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36) 대체로 언어적-체계적-역사적-목적론적 해석방법의 순서로 언급되는 데 대해서는 심헌섭
분석과 비 의 법철학 법문사(2001) 217-218면37) 맥코믹과 서머즈는 비교법적 연구결과를 통해 올바른 해석을 위한 지침 수립은 어느
국가의 법체계에서도 지금까지 성공적이지 못함을 밝힌다(앞의 글 210면)38) 로널드 드워킨 정의론 박경신 옮김 민음사(2015) 309면
80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결론적으로 해석방법론으로부터 법관은 불확실성을 떨쳐 낼 수 있는 확실한 정
보제공을 기대하기 어렵다 해석논거를 위한 결정적인 기준을 제공하는 해석방법
에 대해 불안정한 형태로나마 이론적 합의를 찾기 어렵다면 엥기쉬의 지적대로
해석방법론은 공중에 떠있는 상태다40) 법학에서 방법론의 융성은 역설적으로 법
학이 이 부분에 취약하다는 암시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해석자로서의 법관을
최종적으로 인도하는 전략은 무엇일까 다음과 같은 고민을 들어보면 적어도 그것
은 방법론상의 합의에 대한 기대 같은 것은 아닌 것 같다 ldquo우리들은 일정한 결론을
내리고도 그 결론이 가장 적절sdot타당한 것이라고 보증받을 수 없다 그 결론을 낸
시점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들은 자기의 결론이 그러한 불확실성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그것을 자기의 전인격적 책임 아래 끝을 내고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비판과 평가에 맡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rdquo41)
해석방법론이 공중에 떠있는 상태라면 법관을 법률에 구속시키기 위한 방법론
적 보장책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런 가운데 ldquo자기의 전인격적 책임 아래rdquo ldquo사려
깊고 균형잡힌 총체적 관념rdquo ldquo인생 그 자체로부터 지식rdquo 등에 대한 호소를 듣는다
이것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법발견으로 불리든 법인식 혹은 법형성으
로 불리든 법적으로 올바른 결정을 이끌어낸다는 것은 순순히 lsquo앎rsquo의 문제만은 아
니라는 것이다 실천철학의 전통 용어를 빌어서 말한다면 그것은 이론지 이상의
실천지를 요구하는 활동이다 즉 법관의 해석활동은 이론지와 실천지를 결합하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이 주제로 다가가는 한 우회로로서 우선 지적 활동으로서의
법관의 해석활동의 특성에 대해 살펴보자
39) 론 풀러 법의 도덕성 박은정 옮김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2015) 314면 40) ldquo그러나 해석론 전체에 대한 확고한 이론적 토대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서열관계에
관한 모든 이론들은 여전히 공중에 떠 있다rdquo 엥기쉬 앞의 책 137면41) 사법연수원 법조윤리론(2014) 31면 그밖에 Benjamin N Cardozo The Nature of
Judicial Process Yale University Press (1921) ldquo언제 하나의 이익이 다른 이익을 능가
하는지를 묻는다면 hellip 경험과 연구와 성찰로부터 요컨대 인생 그 자체로부터 그 지식
을 얻지 않으면 안된다고 답할 수 있을 뿐이다rdquo(여기서는 법조윤리론에서 재인용) 또한 맥코믹서머즈 ldquo해석과 정당화(下)rdquo 박정훈 역 법철학연구 제6권 제1호(2003) 348면 ldquo해석은 간주관적으로 승인된 모든 법적 가치들에 대하여 사려깊고 균형잡힌
총체적 관념을 획득하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제대로 행해질
수 있다rdquo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1
Ⅵ 법관의 해석활동 실증주의의 대척점
앞에서 언급한 대로 해석에서는 무엇이 최선의 해석인가를 둘러싸고 언제나
논쟁과 불일치가 따른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누군가가 텍스트를 해석한다고
말하는 순간 그는 실증주의의 대척점에 서게 된다 실증주의과학의 의미에서는 논
쟁의 여지가 있는 것은 원칙적으로 과학일 수 없기 때문이다 법실증주의사고에서
해석 문제가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법을 근본규범에 입각
한 자기준거적인 구조로 보는 한스 켈젠(Hans Kelsen)의 순수법학이나 법적용과정
을 규칙에 의해 지도되는 과정으로 보는 하트(H L A Hart)의 분석법학에서 해석과
관련한 어려움은 다루고 있지 않다42)
켈젠은 순수법이론(Reine Rechtslehre)에서 정당한 해석만이 허용된다는 주장
은 허구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면서 해석의 건전성 문제나 정당화 문제를 법이론
안에서 다루기를 거부한다 법을 자기준거적인 것으로 보는 관점은 한마디로 해석
(행위)주체의 입장을 부정하는 것이다 켈젠은 법단계설을 바탕으로 법적용을 상위
규범의 수권에 의해 하위규범이 구체화되는 과정으로 보고 여기에 헌법의 수권을
받아 법률을 제정하는 입법자도 포함시킨다43) 이에 따라 법적용도 입법의 한 형
태로 설명된다 법관에 의한 법형성의 동기는 이를테면 입법부가 유독 다른 법률
이 아닌 이 법률을 통과시키는 동기와 같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켈젠은 판단활동
에서 인지적 요소와 의지적 요소를 엄격하게 구별하면서 법관의 판단활동을 순전
한 의지활동으로 보고 이 법관의 활동에 대해서만 (유권)해석이라는 표현을 사용
하고자 한다 그리고 법학적 해석에 대해서는 법규범의 가능한 의미들을 밝히는
것으로서 법률에 따른 결정의 범위를 제한하는 정도의 의미를 부여한다
법단계설에 따르면 상위규범이 정한 일정한 범위 안에서의 수권에 따라 하위규
범이 작용한다 이때 상위규범의 수권은 모든 세부적인 내용들에 대해서까지 정해
42) 켈젠은 순수법이론(Reine Rechtslehre) 제1판(1934) 제6장에서 해석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부분과 거의 같은 논문 ldquoZur Theorie der Interpretationrdquo이 심헌섭 젠법이론선집 법문사(1990) 97면 이하에 실려 있다 윤재왕 교수는 Reine Rechtslehre 제1판과 제2판
(1960)을 비교하면서 해석방법으로부터 오는 규범적 구속력을 일체 거부하는 켈젠의
입장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윤재왕 ldquo한스 켈젠의 법해석이론rdquo 고려법학 제74호(고려
대학교법학연구원 2014) 525면 이하 하트의 대표적인 저서 법의 개념의 색인 항목에는
lsquo해석rsquo이 빠져있다 43) Hans Kelsen Allgemeine Staatslehre (Berlin 1925) 231면 이하
8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그래서 ldquo상위단계의 법생성으로부터 하위단계의 법생
산으로의 전환은 단지 상위단계가 정해 놓은 범위를 채우는rdquo 활동으로서 이때
ldquo언제나 상위단계에는 없는 내용적 요소가 하위단계에 추가되어야만rdquo 한다44) 이
내용을 채우는 부분과 관련하여 상대적 불확실성이 생기는데 켈젠은 이 문제를
ldquo자유재량rdquo의 문제로 다룬다45) 이는 하트가 규칙의 체계로서의 법체계를 완결된
구조가 아닌 열린 구조로 봄으로써 상대적 불확실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법관의
재량사항으로 보는 것과 같다 하트의 경우 중심부와 주변부라는 극히 단순화된
이분법을 끌어들여 이 불확실성 문제를 처리하고자 했다면 켈젠의 경우는 인식작
용과 의지작용의 이분법을 끌어들임으로써 이 문제를 처리하고자 한 것이다
판결을 법관의 의지활동으로만 이해하는 입장을 취하게 되면 법관에게 결정에
대한 근거 제시 요청을 할 수 없게 된다 마치 신의 심판에 대해 근거 제시를 요구
할 수 없듯이 말이다 결국 켈젠의 법이론상으로는 해석은 법학의 문제가 아니며
그러므로 분석적 법실증주의와도 무관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46) 이런 이유에서 그
는 정당한 해석만이 허용된다는 주장이나 해석방법만으로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에
이를 수 있다는 주장을 거부하면서 심지어는 상위규범에 제시된 범위를 넘어서는
해석의 효력조차 적극적으로 인정함으로써 어느 의미에서는 해석이론의 존재기반
자체를 무너뜨린다47)
켈젠이나 하트가 법이론에서 해석의 의미를 축소한 이면에는 이분법이라는 과도
한 사유의 단순화가 놓여 있다 그러나 켈젠이 생각하는 것처럼 판단에서 인식적
요소와 의지적 요소의 확고한 경계가 유지되는지는 의문이다 또 중심부와 주변
부에 대한 하트의 주장도 지나친 단순화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어쨌거나
켈젠이 합리적인 해석방법을 추구하는 법이론의 효용가치를 한껏 떨어뜨렸다고
해서 이제 어차피 정답은 없으니 법대에 앉은 법관은 자기 임의로 무엇이든 해도
된다고 켈젠이 주장했을 리는 물론 없을 것이다 법이론의 과도한 정당성 주장을
거부하는 데서 오히려 순수법학의 비판적 잠재력을 찾을 수 있다고 보는 학자들은
여기서 켈젠이 강조한 순수화 즉 탈정치화는 법학에 관한 것이지 법 자체에 관한
44) Kelsen Allgemeine Staatslehre 243면 여기서 번역은 윤재왕 앞의 글 535-536면에서
재인용45) Kelsen 앞의 책 243면 이하46) 켈젠에 있어서 법해석은 이론상으로는 법학보다는 정치학이나 사회학에 속하는 문제
에 더 가깝다고 지적한 견해에 대해서는 론 풀러 앞의 책 312면 47) 이에 대해서는 윤재왕 앞의 글 553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3
주장이 아니었음을 상기시킨다48) 즉 법 자체는 결코 정치와 분리될 수 없다는
점에서 법실무에 대한 학문이론의 무가치성을 주장하는 순수법학은 실무의 법
적용자로 하여금 자신의 활동이 정치적 활동임을 깨닫고 책임을 느끼게 하는 계기
를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윤재왕 교수도 ldquo켈젠 해석이론의 배후rdquo로 들어가 방법
이론으로부터의 어떤 구속력도 거부되는 데서 생기는 공백을 켈젠이 법관 자신의
자기이해와 책임성 문제로 채운다고 지적한다 ldquo법관의 판결은 결코 순수한 것일
수 없으며 그런데도 자신의 판결이 순수한 인식의 소산이라고 강조한다면 이는
정치적 책임의 회피이고 동시에 이데올로기적이라는 혐의에 노출되지 않을 수
없다rdquo49) 이 문구가 켈젠 자신으로부터 나왔다면 아주 좋았을 것이다 자신의 직
무의 중요성과 책임에 대한 실천적 깨달음은 해석의 정당화를 목표로 하는 인식적
노력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켈젠의 순수법이론의 기획은 서로
붙어 있는 양면을 떼어 놓으면서 이것을 다시 붙일 수 있음을 보여주려 한 것일까
Ⅶ 법관의 해석활동 가치판단과 lsquo정답테제rsquo 문제
켈젠처럼 실증주의적 사고에 따르든 아니면 비실증주의적 사고에 따르든 가치
판단 문제에서 해석방법만으로는 하나의 정당한 결정을 도출할 수 없다고 생각한
다면 이는 해석의 차원에서 가치에 대한 이해 시도는 진리 추구와는 무관하다는
주장으로 귀결되는가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해석대상의 의미에 대한
관심과 최선의 이해에 대한 관심은 아무래도 진리 추구라는 목표를 향한다고 봐야
한다 법적 결정은 물론 법관의 권한에 속하지만 그것을 정당화해주는 원천은 법
관이라는 lsquo지위rsquo가 지니는 형식적 권한이 아니라 판결이 정당하다는 근거 제시에
있다 법판단을 정당화해주는 모델은 울프리드 노이만(Ulfrid Neumann)이 지적한
대로 권위를 통한 정당화모델보다는 진리를 통한 정당화모델에 더 가깝다50)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재판활동은 엄연히 사법권이라는 공권력의 작용이라는 점에서
독립적인 법관의 재판활동을 그 ldquo계획적이고 진지한 진리 탐구 활동rdquo적 측면 때문
48) 법학의 탈정치화를 ldquo정치적 허무주의rdquo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데 대해서는 켈젠 ldquo순수법학이란 무엇인가rdquo 젠법이론선집 280-282면
49) 윤재왕 앞의 글 559면50) 울프리드 노이만 ldquo법 진리 권위rdquo 2013 4 6 한국법철학회 강연문 참조
8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에 학문의 자유의 한 표현으로까지 보려는 것은 무리다51)
오늘날 가치상대주의 분위기는 실천적 물음에서 진리 도달가능성에 대한 회의를
과장한다 그러나 진리가 뭐냐는 빌라도의 물음에 비록 확신에 찬 대답을 못한다
하더라도 법에서 진리 내지 정당성 추구의 포기는 파국을 의미한다 국가권력
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도 진리라는 규제이념이 전제되기 때문
이다 독립된 사법부가 심급구조와 집단적 의사결정의 형태로 스스로의 시정 기구
를 가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물론 진리에 대한 주장은 잠정적이고 수정가능하다
lsquo참이냐 거짓이냐rsquo는 오로지 서술적 명제에만 한정하여 검증될 뿐이라는 협소한
학문관을 따른다면 법학은 학문 안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법
학이 그런 협소한 학문관을 받아들여야 할 필연성은 없다 법해석자는 자신의 해
석적 판단이 진리라는 주장을 무한정 내세우지는 못하면서도 진리 추구를 피할
수 없다52) 론 풀러(Lon Fuller)의 지적대로 ldquo법이론이 최고의 법적 권위를 엄격하
게 정의하는 일에 큰 비중을 두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이 점이 모호해지면 필경
전체로서의 법체계가 와해될 수 있다rdquo53)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법을 민주
주의의 언어로 설명하는 오늘날 의회와 행정처럼 다수결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기
관도 아닌 사법의 소수 전문 엘리트의 지배를 권위모델만으로 정당화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법을 준수하는 시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시민들은 자신에게 유죄
판결을 선고한 세속의 법관에게 그 유죄판결의 근거를 알고 싶다고 요구할 수 있
으며 물론 당연히 요구한다
법관은 판결에서 논증을 통해 최상의 근거 제시가 이루어진 결정을 해야 한다54)
51) ldquo일부 사람들 중에는 이러한 법원의 권력기관적 성질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
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helliphellip 가끔 법관의 일을 조용한 방에서 소송서
류를 꼼꼼하게 읽어 파악한 사실에다가 법을 논리적으로 적용하는 단순히 지적(知的)인 작업이라는 시각에서만 말씀하시는 분을 만나면 그 분에게 재판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법대에 앉아 있는 법관이 어떻게 보이는지 물어보고 싶어집니다rdquo 양창수 ldquo바람직한 법관상 - 기예와 지혜 사이rdquo lt근대사법 및 한성재판소 설립 120주년 기념
1895sim2015 소통컨퍼런스 역사에 비춰 본 바람직한 법관상gt 자료집(서울중앙지방법원 2015 5 11) 15면 ldquo계획적이고 진지한 진리 탐구 활동rdquo이라는 표현은 라드브루흐에서
나온다 구스타브 라드브루흐 법철학 최종고 옮김 삼영사(2011) 238면 52) 드워킨 앞의 책 208면 53) 론 풀러 앞의 책 211면 풀러의 문장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ldquo하지만 이 경우도
위로부터의 지시 또한 목적의식에서 비롯되는 지적 활동을 완전히 생략할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rdquo54) 물론 진리 요청과 관련하여 개별 법관의 관점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며 민주국가에서
포기될 수 없는 진리 요청은 법학을 포함한 법체계 전체로 하여금 진리 요청에 어떻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5
이때 정당한 근거 제시가 이루어진 결정과 관련하여 그것이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
이라는 주장을 펼 수 있는가 앞에서 검토한 대로 켈젠의 순수법이론은 그런 주장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이에 비해 드워킨은 법적 판단에 있어서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이 원칙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ldquo정답테제rdquo로 불리는 이 주장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학자들이 지적한 대로 존재사실에 대한 주장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하나의 ldquo규제이념rdquo으로 받아들이는 게 맞는 것 같다 즉 드워킨의 정답테제
는 ldquo유일하게 정당한 결정rdquo이 존재한다는 데 대한 이론적 탐구라기보다는 실무에
서의 법관의 주관적 태도에 부합하는 이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법관은 자신의 판결활동과 관련하여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모든 사건
에서 오직 하나의 결정만이 정당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 정답에 가까이 가기 위
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55)
드워킨의 말대로 가치판단이 참일 때는 그냥 참일 수가 없으며 그것이 참인
이유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즉 충분한 논거가 존재할 때 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라면 이러한 논거지움의 과정은 자명한 공리적
토대나 그런 토대 위에서 확립된 규칙이나 원리적 서열에 따라 명확하게 밝힐 수
없다 이런 불확실한 가운데도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논거지움은 포기될 수
없다 이 끝없는 정당화 부담 때문에 켈젠은 규범의 효력 근거에 관한 논의를 가
치에 관한 논의와 절연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물론 성공하지
못했다56)
가치판단을 해야 하는 부분이 법문화에서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요소로 작용할지
아니면 그 반대로 작용할지는 판단자로서의 법관의 역량과 연관하여 논해야 할 것
이다 필자는 가치판단적 요소가 법문화에서 당연히 긍정적 요소로 작용해야 하며
게 부응하는지 묻게 한다 따라서 사법부 외부에서 행하는 사법비판의 길이 열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대해서는 노이만 앞의 강연문 참조55) 노이만 앞의 강연문56) 규범의 효력을 불명확하고 상대적인 가치가 아닌 규범에 근거짓기 위해 켈젠이 고안
한 근본규범은 사유상으로만 전제된 규범일 뿐이었다 켈젠은 가치판단을 ldquo현실의 행
위가 객관적으로 효력 있는 규범에 맞게 존재해야 하는 대로 존재한다는 판단rdquo이라고
정의함으로써 가치판단이라는 용어 자체를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Reine Rechtslehre 2 Aufl (1960) 16면 이하 또한 켈젠은 규범이 인간의 의지에 의해
제정되는 한 그 규범에 의해 형성된 가치는 어차피 자의적일 뿐이라고 주장한다(18면) 규범과 가치의 관계에 대한 켈젠의 주장에 대해서는 오세혁 ldquo켈젠의 법이론에 있어서
규범과 가치 - 규범과 가치의 상관관계를 중심으로rdquo 법철학연구 제18권 제3호(2015) 97면 이하 참조
8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또한 그렇게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57) 그런 방향에서 이제 해석의 문제를 법
관의 자기이해 문제와 연관시켜 보기로 한다
Ⅷ 해석과 법관의 자기이해
법관은 추상적인 일반규칙을 가지고 공중의 이목을 끄는 개별적인 사건을 처리
하는 사람이다 법관의 의식활동에 의해 일반규칙과 일회적인 사건 사이의 심연이
메워진다 하지만 일반성과 개별성을 결합하는 이 의식과정에 동반하는 고유한 법
학적 방법에 대해서는 앞에서 지적한 대로 확실한 합의는 없다 ldquo리걸 마인드rdquo라
는 말이 풍기는 신비스러운 분위기에는 사법적 결정이 본질적으로 투명한 것이 되기
어렵다는 암시가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다 논리적인 형태만 부여하기로 한다면
한 사건에서 서로 상반된 결론에 이른 두 개의 판결문을 작성하는 것도 불가능
하지 않다58) 방법이 논리에 기초하는 것이라면 이때 논리는 형식논리를 넘어 엥기
쉬가 표현한 대로 ldquo실질에 부합하는rdquo 논리여야 할 것이다 참된 올바른 받아들
일 수 있는 결정에 이르는 실질논리 이 실질에 도달하기까지는 결코 논리적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지적 감행과 어떤 매개가 작용한다
일반규칙을 개별사례에 적용할 때 요구되는 판단자의 능력과 관련하여 가다머
(Hans-Georg Gadamer)는 이런 견해를 밝힌 적이 있다 판단자는 자신이 이미 가
57) 이와는 달리 가치의 ldquo통약불가능성rdquo 때문에 사법은 좋음이나 옳음의 이슈에 대해 실
질적 입장을 취하는 일에 대해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가치의 통약
불가능성에 대해서는 Cass R Sunstein ldquoImcommensurability and Valuation in Lawrdquo Michigan Law Review Vol 92 No 4 (1994) 779면 이하 조홍식 교수는 ldquo가치의 통약
불가능성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이 권리인가의 문제보다 무엇이 공익인가의 문제에서
더 크다rdquo고 지적하면서 기본적으로 가치판단과 관련한 사법통치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사법통치의 정당성과 한계 제2판 박영사(2010) 240면 가치의 통약불가능성에 대한 주장은 가치판단과 관련한 해석기준의 서열화는 불가능
하다는 주장과 같은 노선에 속한다 여기서 통약불가능성 문제를 자세히 다룰 수는
없다 다만 가치의 통약불가능성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통약불가능이 비교불가능을 의미
하지는 않는다는 점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체적인 맥락이 주어지는 경우 무엇이 옳은
지 혹은 그른지에 대해 심사숙고하며 이에 따라 선택하고 그 선택 결과를 받아들인
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정도만 지적하기로 한다 58) 실제로 판사가 판결문을 두 개 써왔다고 주장한 사건에 대한 보도가 있었다 ldquo판결문을
두 개 써왔다rdquo 조선일보 2013 11 21자 기사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7
지고 있어서 적용하기만 하면 된다는 그런 의미의 규범적 실천적 ldquo지식을 소유한
사람rdquo이라기보다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 ldquo지식을 탄생시키는 상황에 직면하는
사람rdquo이라는 것이다59) 일반범주를 개별사례에 적용할 때 요구되는 이 판단력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래서 칸트(Kant)도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ldquo지성은 규칙들
을 통해 배우고 보강할 수 있는 것이지만 판단력은 특수한 재능으로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전혀 아니고 단지 숙련될 수 있을 뿐이다rdquo60)
우리는 올바른 규칙이나 원리를 알고 있지만 막상 이것을 어떤 상황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예컨대 비례성원칙이나 과잉금지원칙에 대한 지식
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은 적정해야 하고 그 수단은 목적달
성을 위해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원칙을 특수한
상황에 lsquo적용rsquo한다고 할 때에 이 원칙이 그 어떤 판단도 배제할 정도로 자족적인
지침 구실을 한다고 느끼기는 어렵다 특정 상황에서 그 수단이 과연 어느 정도일
때가 목적달성에 적정한지는 판단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실천이성의 역
할이다
단의 자리는 이론 경험 양심이 혼재된 실천의 영역이다 판단을 통한 결정이
라는 그 lsquo종국성rsquo으로 인한 실천적 성격은 법학이 다른 어떤 학문분야와도 공유
하지 않는 법학 고유의 특징이다 그래서 법학은 lsquolegal sciencersquo로 불리기보다는
실천지- prudentia-를 함의하는 lsquojurisprudencersquo로 더 자주 불리어 왔을 것이다
해석의 차원에서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도 추상적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
으로는 행위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성과 개별성을 결합하는 해석적
지식은 추상적 이론적 지식들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일반규칙이나 원리
에 근거한 이론적 패턴의 지식과 특정한 상황 내지 맥락을 고려하는 실천적 패턴
의 지식의 이중주를 이룬다 법관이 지니는 통찰력의 특성은 이론과 태도가 함께
간다는 데 있다 그래서 사법적 판단에서는 규칙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 못지않게
사람 즉 법관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사법적 통찰력의 특성은
뭐니뭐니해도 개별 사례를 다룬다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개별적인 것들은 개별적
인 방식으로만 체험되고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들은 무엇
보다도 lsquo지각rsquo과 관계된다61) 즉 그것들은 일반적 체계적 지식의 대상이라기보다
59) Hans-Georg Gadamer Wahrheit und Methode Grundzuumlge einer philosophischen Hermeneutik 3 Aufl J C B MOHR (1972) 300면
60)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 1 백종현 옮김 아카넷(2009) 37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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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우선 지각의 대상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도 사법적 통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쪽은 규칙보다는 오히려 사람 즉 법관 쪽인 것이다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사건에서 법적으로 중요한 사실이 무엇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규칙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어떤 규칙이 중요한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실이 중요한지 알
아야 한다 이 인식과정에서 법관은 불확실한 가운데서 무수한 선택을 감행한다
어떤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 배척하고 어떤 사실은 인정하거나 무게를 부
여하고 신청된 증거조사의 어떤 것은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거부하고helliphellip 사실
에 대한 이 취사선택-자유심증주의-의 결과로 새로운 것이 태어난다 그리고
이것에 의해 법원을 찾아온 사람들의 운명이 갈리는 것이다
법관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필자 생각에
독일의 법철학자 아르투어 카우프만(Arthur Kaufmann)의 해석학적 방법론은 법
관의 자기이해 문제를 해석학적 지평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법관의 해석작업의
본질을 잘 설명해주는 것 같다 가다머 계통의 철학적 해석학(philosophische
Hermeneutik)의 입장을 받아들이면서62) 카우프만은 법해석행위를 통해 포괄적인
의미에서 법관 자신의 인격 중의 어떤 것이 판결에 혼입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
61)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4면 그리고 1심에서
유죄였다가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강력범죄 540건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판단자
의 감지능력 차이가 법판단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힌 김상준 무죄
결과 법 의 사실인정 경인문화사(2013) 62) 텍스트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이해에 관한 연구분야인 해석학(hermeneutics Hermeneutik)
의 어원은 신들의 전령(傳令)인 Hermes라는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설명된다 이때 신의
의도를 인간에게 전하는 과정에서 언어의 제약성 시공간적 간격 전령의 역할 등과 관
련하여 해석의 문제가 생긴다고 본다 ldquoHermeneuticsrdquo Dictionary of Biblical Interpretation Nashville (1999) 497면 독일어의 Auslegung이 해석주체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대상
으로서의 텍스트에 대한 해석을 의미한다면(객관주의) 철학적 해석학에서의 해석
(Interpretation)은 해석주체의 주관성 내지 역사성이 대상에 투사된다는 의미가 강하다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에 따르면 역사적 존재인 인간에게 있어 모든 해석과 이해는 과
거와 현재가 lsquo작용사적으로(wirkungsgeschichtlich)rsquo 중재되는 사건으로서 lsquo선이해rsquo 내지
lsquo선판단rsquo 없이는 불가능하다 가다머는 선입견으로 폄하된 선이해를 재평가하고 이를
통해 근대 이래 lsquo방법rsquo을 통한 진리발견이 주체에 의한 객체의 대상화 내지 도구화를 가져
왔다고 비판하면서 인간경험에 있어서 진리에 이르는 길은 사물의 존재가 스스로 드러
나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해석과 이해는 전승된 존재방식으로서
의 텍스트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며 이는 텍스트 자체가 지닌 역사적 지평과 해석
자의 지평이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만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해석학적 순환 이해의 전제로서의 선이해 작용사 등에 대해서는 Gadamer 앞의 책 II Grundzuumlge einer Theorie der Hermeneutischen Erfahrung 참조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9
로 법관의 결정이 올바른가의 물음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가의 물음과 직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63)
우선 카우프만은 통상적으로 회자되는 독립적인 법관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즉 법 앞에 선 법관이 일체의 정치적 사회적 개인적 영향이나 선입견들로부터 차
단된 채 순수한 객관적 인식에 따라 그 이전에는 자신이 알 수 없었던 사실관계
를 판단하고 그런 다음에 법적 판단을 한다는 식으로 이해하기를 거부한다64)
그런 법관상은 법령집은 일체 해석의 필요가 없이 거의 모든 가능한 법률문제에
대한 대답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상정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법관은 의지가
없는 존재이며 사법권력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여기는 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법에 대한 인식은 단순히 사례를 법률에 포섭시킨다는 의미의 수
동적 행위가 아니고 해석자가 해석대상에 관여하면서 함께 lsquo형성rsquo하는 것이라고
본다 카우프만은 법관의 법형성력에 대한 자신의 견해가 주관주의의 의미로 받아
들여지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는데 왜냐하면 해석자는 텍스트를 지탱하는 모든
전통과 함께 이해의 지평으로 들어간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은 서류의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ldquo아 이런 사건이구나rdquo라고 감을 잡게 되
는데 카우프만에 따르면 이는 법관 자신이 사건 경과를 관찰해서 인지했다거나
언론 등을 통해 사건에 대한 상세한 지식을 얻었다는 뜻이 아니라 유사한 사건들
을 알며 그래서 ldquo선이해(Vorurteil Vorverstaumlndnis)rdquo65)를 가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
해의 전제로서 이런 선이해가 없다면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것이 무엇에 관한 사
건인지 알 수 없고 다른 사례와 비교할 수도 없기 때문에 올바른 판단에 이른다
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66) 이 선이해에 의해 해석은 언제나 해석주체의 자기
이해 즉 자신이 lsquo잠정적rsquo 결과로서 이미 예상했던 것을 논증적으로 근거짓는 활동
이라는 의미에서 ldquo해석학적 순환rdquo 내지 ldquo해석학적 나선구조rdquo 하에 이루어진다
63)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Festschrift fuumlr Karl Peters Mohr Siebeck (1974) 144면 법관의 독립과 양심 주제와 관련한 또 다른
글로는 Kaufmann ldquoGesetz und Rechtrdquo Existenz und Ordnung Festschrift fuumlr Erik Wolf (1962) 357면 이하
64)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4면 65) 해석학적 의미에서의 lsquo선이해rsquo는 일상 언어 관용에서는 lsquo선입견rsquo이나 lsquo편견rsquo 같은 부정
적 함의를 더 많이 지니기 때문에 카우프만은 lsquoVorurteilrsquo 대신에 Vorverstaumlndnis라는 용
어를 쓰기를 권장한다(앞의 글 148면) 카우프만 외에도 이 용어의 선택은 Josef Esser Vorverstaumlndnis und Methodenwahl in der Rechtsfindung 2 Aufl (Frankfurt aM 1972)
66)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7면
90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텍스트를 이해하려는 사람은 말하자면 언제나 초벌 그림을 그리며 특정 의미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텍스트를 읽기 때문에 ldquo텍스트에서 첫 번째 의미가 지시되자
마자 전체의 의미를 lsquo예비투사한다(vorauswirft)rsquordquo67) 그리고 선이해와 관련된 이 예
비투사는-해석학적 lsquo순환rsquo에 의해-원칙적으로 끝없이 검열과정을 거친다는 것
이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도 실제 판단과정에서는 분리
되지 않는다68)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은 시간적으로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단절 관계가 아니라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정제하고 상응하는
관계에 놓인다 즉 사실에 대한 인식 없이 규범적 인식은 불가능하며 또한 규범적
관점 없이 사실만을 통한 사실 확정도 불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법률도 법관의
해석을 만나기 전에는 ldquo잠재적인 가능태로서 주어진 법률rdquo일 뿐 해석학적 순환을
통한 정제 혹은 상응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ldquo진정한 실정법rdquo이 생성된다69) 이렇
게 특정사건을 통해 구체화된 규범(구성요건)과 이 규범을 통해 정해진 사실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법관에게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들과 함께 제3의 요소로서 법관
자신의 선이해 내지 이해 포괄적으로 말하면 그의 인격적 존재가 판단에 혼입
된다
lsquo선이해rsquo는 판단자가 자신의 선이해를 의식하지 못할 때 부정적 요소를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ldquo자신의 판단은 오로지 lsquo있는 그대로다rsquo라고 말하는 즉 lsquo오로지 법
률에만 구속된다rsquo라고 말하는 법관이야말로 실은 종속된 법관이다 왜냐하면 그는
성찰되지 않은 자신의 선이해와 거리를 둘 수 없기 때문이다rdquo70) 즉 법관은 자신
67)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68) 실제 판단과정에서 사실인정과 법률적용이 따로 떨어질 수 없다는 점은 굳이 카우프
만의 이론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실무상으로는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ldquo법률
의 적용과 사실의 인정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법률문제와 결부되어 인정된다 사실의 인정이 진행됨에 따라서 재판관의 머리
속에서는 어떠한 법규를 적용할 것인가 그 법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는 전망이
점차로 서게 되며 당사자 측도 경우에 따라서는 민사인 경우 청구의 취지를 변경할
것인가를 고려하게 되고 형사인 경우 공소사실을 변경하는 경우도 생긴다 요컨대 사실
문제와 법률문제는 실제과정에서 불가분으로 결부되어 있다 helliphellip 양쪽이 불가분으로
재판관의 직관 혹은 재판관의 전인격적인 작용에 의하여 사실의 인정과 법의 적용이
행하여지고 판결 삼단논법은 실제의 심판 과정에서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rdquo(사법
연수원 법조윤리론 35면) 69) ldquo법관의 해석 작업 이전에는 어느 의미에서 진정 법도 진정한 사실도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원자재들(Rohmaterialien)로만 이것들이 존재할 뿐이다rdquo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1
의 선이해를 의식하고 자신을 이데올로기 혐의 앞에 세울 줄 알 때 올바른 판결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ldquo법관이 자신의 선이해와 종속을 의식할수록 그래서 간주
관적 합의에 노력할수록 그는 더 객관적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rdquo71) 그러므로
법관의 주관주의의 위험은 카우프만식으로 말하면 가치판단 같은 성찰적 고려와
관련된 주관적 요소를 방법상의 근거 제시의 맥락에 끌어들이는 법관의 경우보다는
오히려 모든 것이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판결의 주관적
요소를 은폐하는 법관에게서 나타나는 위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학적 순환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법관은 ldquo법률의 입rdquo이 아니라 ldquo인격
으로서 판결을 떠받친다rdquo72) 판결은 법률과 법관의 인격의 혼성물이다 그러므로
법률은 판결을 위한 필요조건이기는 하나 충분조건은 아니라고도 말할 수 있다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순환이론은 법관의 독립과 양심의 문제 차원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법결정의 올바름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
는 정도에 달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자신을 올바르
게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자신의 판단력 경험 능력 인간에 대한 태도 감
수성 명예욕 등등
카우프만의 법해석학적 순환이론이 법관의 독립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이라
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독립은 법관 스스로 관철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론적으로 카우프만의 법해석이론의 의의는 법관이 자신의 선입견을
의식하는 것이야말로 법관의 독립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설득력있게 지적
해주며 그런 방향에서 법관의 법해석 작업을 재평가했다는 데 있다고 말할 수 있
겠다
70)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71) Arthur Kaufmann ldquoDer BGH und die Sitzblockaderdquo NJW (1988) 2581면 이하72) 이 표현은 Karl Peters의 Strafprozess - Ein Lehrbuch (1966) 99면에 나오며 여기서는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9면에서 재
인용했다 이덕연 교수도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에 입각하여 ldquo법관의 법해석작
업은 단순한 lsquo인식작업rsquo이나 lsquo언어분석작업rsquo이 아니라 ldquo구체적인 반성과 자기극복의
노력 속에서 온 인격을 걸고 진행하는 lsquo이해와 실천의 수행작업rsquordquo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앞의 글 352면)
9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Ⅸ 법관은 lsquo하는 사람rsquo인가 lsquo보는 사람rsquo인가
법관의 판단작업을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의 관점에서 주목했던 또 다른
철학자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다 그녀는 ldquo아이히만 재판rdquo을 계기로 판단의
특수한 경우로서의 판단력 문제를 연구했다73) 아렌트는 하드케이스와 연관시켜
법관의 판단력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74) 법관은 우선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을 반추하면서 판단에 임하는데 이때 판단자로서 그는 한 면으
로는 규칙에 따라 판단하라는 lsquo일반적 정의rsquo의 요구에 그리고 동시에 다른 한 면
으로는 정황에 맞게 판단하라는 lsquo개별적 정의rsquo의 요구에 처한다 이러한 상황은
아렌트에 따르면 하드케이스에서 특히 발생한다 이 이중적이고 모순적 요구 상황
을 아렌트는 법관의 판단에 적용되는 특수한 해석학 및 그 조건을 설명하는 출발
점으로 삼는다75) 하드케이스가 아닌 통상적인 사건에서는 이른바 포섭 여부를 판
단하는 것으로도 족하다 일반규칙에의 포섭 여부가 중심이 되는 이 단계에서의
판단력- lsquo규정하는 판단력(bestimmende Urteilskraft)rsquo-은 사실관계에서의 원인
이나 형식적 정의를 따지므로 일방적이고 간주관적 전제 없이도 가능하다 그래서
흔히 법관은 여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법을 해석해야 한다고 말할 때 이는
법적용을 이러한 지배적인 포섭모델에 입각하여 이해한 결과라 할 것이다 그런데
규칙으로부터 오는 어떤 어려움들 때문에 규정하는 판단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즉 포섭이 어렵거나 법흠결 시 또는 가치형량이 요구되는 하드케
이스에서는 법관은 어쩔 수 없이 앞에서 말한 모순문제를 다루어야만 한다 이때
아렌트는 법관이 사유의 확장을 통해 방법상으로 lsquo규정적 판단력rsquo을 스스로 교정
할 수 있는 lsquo성찰적 판단력rsquo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고 이 판단유형의 전환과정을
73) 법적 판단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 삼은 저술은 Hannah Arendt Eichmann in Jerusalem Ein Bericht von der Banalitaumlt des Boumlsen Erw Aufl (Muumlnchen 2001) 그리고 Hannah Arendt Das Urteilen Texte zu Kants Politischer Philosophie Hrsg v R Beiner Uumlbers v U Ludz (Muumlnchen 1998)
74) 아렌트가 염두에 둔 하드케이스는 라드브루흐가 이른바 ldquo법률적 불법rdquo 상태로 규정한
나치의 불법국가 상황으로서 이렇게 극히 예외적인 케이스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하드
케이스에 적용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별적 정의 요구에 부응함
으로써 예컨대 소급효를 금지하는 일반법률에 위배되는 상황과 유사한 갈등상황은 반
드시 극단적 상황에서만 생긴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75)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2 Bde Hrsg v U Ludz amp I Nordmann
따라서 그 척도는 전달가능성이며 거기에 딱 맞는 것은 공통감각(상식)이다rdquo77) 오
늘날 공통감각은 아렌트도 지적했듯이 더 이상 그것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얻고자 노력해야 하는 그 무엇이 되어버린 듯하다 그러나 공통감
각이 무너진 시대를 겪었던 아렌트는 사유의 전환 내지 확대를 위한 진정한 발판
을 다시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에서 구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78)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실천철학의 전통에서는 세계와의 관계 그리고 자기와의 관
계를 공통감각을 척도로 설정해가는 판단자가 lsquo하는 사람rsquo인지 아니면 lsquo보는 사람rsquo
인지 즉 lsquo행위자rsquo인지 아니면 lsquo관찰자rsquo인지를 둘러싸고 의견이 대립되어 왔다 lsquo하
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자가 lsquo정치가rsquo 쪽에 더 가깝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
자는 lsquo철학자rsquo 쪽에 더 가깝다 lsquo하는 사람rsquo은 주로 사회의 일반적 상식 건전한 인
간이해 세론(doxa)을 판단의 척도로 삼는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적 경험은 전체주
의 하에서는 건전한 인간이해도 집단화된 대중감정에 따른 오도된 인간이해 앞에
무너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판단에서 사실로서의 상식이나 합의 또는
법해석공동체 내부의 지배적 제도적 관점이라는 판단 척도만으로는 일반규칙으로
부터 오는 모순을 다루기 어렵다 여기서 판단자는 ldquo확대된 사유방식rdquo을 추구해야
하는데 아렌트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을 lsquo보는 사람rsquo의 판단과 결합시킴으로써 법
관을 위한 사유의 확대를 시도한다79) lsquo하는 사람rsquo이 사실로서의 일반적 상식이나
인간이해 차원에 비추어 판단한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ldquo이
상적 규범적 상식rdquo80)을 추구하고자 한다 판단을 거쳐 법적 효과를 결정하는 법관
76)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을 해석학적 순환이론을 적용하여 분석하면서 칸트의 판단력 비
판에 의거하여 아렌트가 판단력의 특수한 경우로서 법관의 ldquo성찰적 판단력rdquo이라는 새
로운 판단유형을 제시했다고 지적한 연구서로는 Stefanie Rosenmuumlller Der Ort des Rechts Gemeinsinn und richterliches Urteilen nach Hannah Arendt Nomos (2013) 참조
77) Hannah Arendt Das Urteilen 92-93면78) 아렌트가 판단의 차원을 심화시키는 발판으로 삼는 상식은 sensus communis로서
communis opinio와는 다르다는 데 대해서는 Marieke Borren ldquolsquoA Sense of the Worldrsquo Hannah Arendtrsquos Hermeneutic Phenomenology of Common Senserdquo International Journal of Philosophical Studies Vol 21 No 2 (2013) 225-255
79) Hannah Arendt Das Urteilen 76면80) Rosenmuumlller 앞의 책 234면 이하 여기서 아렌트는 상식개념을 이중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에서는 경험적 개념으로 보다 성찰적 판단
단계에서는 규범적 개념으로 사용한다
9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은 관찰자로서 판단하면서 동시에 행위자로서 판단에서 법적 결과를 결정하는
사람이다 관찰자인 동시에 행위자라는 이중적인 역할을 하면서 법관은 자신의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 반추한다81) 이 반추과정에서 법관은 한편으로는 포섭
하는 판단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고려해야 할 관점들을 끌어들이면서
자신의 직책을 마지막까지 수행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통제하면서 자신의 앞서의
(포섭) 판단을 정정해나간다 그래서 법관 자신이 lsquo보는 사람rsquo과 lsquo하는 사람rsquo의 만
남의 장소가 되는 것과도 같다 ldquo이 보는 사람은 모든 하는 사람 안에 자리 잡고
있다helliphellip이 비판적 판단능력이 없이는 행위자 혹은 해결자는 보는 사람으로부터
풀려나 종내는 지각되지조차 못하게 될 것이다rdquo82)
사람들은 자신 일에 있어서는 비당파적일 수는 없다 따라서 ldquo자신의 일에 대한
판단에서는 내면의 심판자 혹은 내면의 법정을 가질 수 없다rdquo83) 그러나 다른 사
람의 일을 반추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필히 비당파적이어야 하며 또 비당파적이 될
수 있다 이때 그는 비로소 내면의 심판자를 가지게 된다 즉 양심의 문제에 처하
게 되는 것이다 판단에 있어서 양심이라는 것 즉 양심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남
의 일에서 ldquo증인rdquo 혹은 ldquo비판적 친구rdquo로서 관찰하고 행위하는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이다84)
아렌트의 성찰적 판단모델은 나치 불법국가 경험의 산물이다 통상의 규칙이 파
괴된 상황 통상의 범죄유형에 포섭되지 않는 극히 예외적인 범죄적 상황에서 법
원은 기존의 판단척도를 해석학적 출발로 삼아서는 안 되고 이때에는 질적으로
동의가능한 합의형식을 찾기 위해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으로 돌아가
진정으로 사유 즉 철학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렌트가 판단을 일반화해주는
거점이자 해석학적 출발점으로 삼은 공통감각(상식) 개념은 칸트철학에서 ldquo비사교
적 사교성rdquo 개념의 위상과 비슷하다85) 이 지상에서 인간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다른 것을 원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모여 살아야만 하는 존재다 이 비사회성 요
청과 사회성 요청의 동시성 때문에 인간에게는 제도적인 안착이 더없이 중요하며
법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실존과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만든다 판단의 기
81) Leora Y Bilsky When Actor and Spectator Meet in the Courtroom Hannah Arendt and Eichmann in Jerusalem G N Arad Hg (Bloomington 1996) 137면
82) Hannah Arendt 앞의 책 85면83) Hannah Arendt 앞의 책 76면 84)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657면85) Rosenmuumlller 앞의 책 1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5
초를 보편적 인간경험에 둔다는 점에서 아렌트가 말하는 판단력은 드워킨의 헤라
클레스와 같은 초인적 천재성을 발휘하는 능력과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86) 아
렌트가 상정하는 이상적인 법관은 철학적이지만 철학자는 아니고 정치적이지만 정
치가는 아닌 사람이다
아렌트는 헌법국가의 권위도 상식개념에 기반을 두고 설명한다 그리고 민주적
정당성의 관점에서 입법의 우위를 인정하는 까닭에 성찰적 판단에 입각한 법관의
검증에는 한계가 있다는 태도를 견지한다87)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렌트가 제시한
법관의 성찰적 판단 유형에 대해서는 다양한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우선 이것이
예외 상황에서 적용되는 판단모델로 상정된 것이며 무엇보다도 ldquo규범적 상식rdquo에
대한 단일한 이해기반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법관 개인의 주관적 정치적 신념
이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길을 피할 수 없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성찰적
판단력은 결국 레토릭에 불과한 것인가 아렌트는 그러나 무엇이 ldquo특정 상황에 맞
는 공통감각(situierte Gemeinsinn)rdquo인지에 대한 공동의 인식은 가능하며 또 법관의
lsquo하는rsquo 판단에 들어있는 정치적 함의를 성찰적 판단력으로 검증하는 것도 가능하
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아렌트가 마지막 검증심급으로 원용하는 것이 바로 판
단에서의 양심의 심급이다 그것이 과연 동의할 수 있는 합의형태로서 충분한지를
스스로 검증하는 이 심급에서 판단자는 명령조로 자기에게 전해지는 소리를 듣게
된다 ldquo멈춰 나는 그것은 할 수 없어rdquo88) 판단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 멈추는 것
이 가능한 이 성찰적 심급에서는 칸트와 달리 할 수 없는 이유로써 결과도 고려
된다 lsquo보는 사람rsquo이 자기 안에서 지켜보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상황은 토마스 아퀴
나스의 양심론에 비추어 다음과 같이 묘사될 수도 있겠다 지적 본성을 가진 인간
존재가 보편법칙에 관한 지식을 개별 행위에 적용하기 위해 판단하고 선택할 때
행위자는 갈등 상황- ldquo그렇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rdquo는
상황-에 처하여 멈칫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데 이때 그는 단지 갈등하고
선택하는 역할만 하지 않고 갈등하고 선택하는 이 과정을 ldquo관찰하고 목격하는 증인rdquo
의 역할도 한다는 것89)
86) 드워킨에 의하면 해석적 탐구는 ldquo어떠한 증명도 허용치 않고 어떠한 수렴도 약속치
않는 탐구rdquo이다(드워킨 정의론 203면)87) Rosenmuumlller 앞의 책 30면88) Hannah Arendt Uumlber das Boumlse Eine Vorlesung zu Fragen der Ethik Hrsg v J Kohn
(Muumlnchen 2003) 52면89) 지적 행위자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자신의 내면의 갈등과 선택과정을 바라보는
9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Ⅹ 방법에서 덕목으로
헌법 제103조는 한 면으로는 헌법과 법률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 면으로 해석자에게 여하한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lsquo제약
의 차원rsquo과 lsquo자유의 차원rsquo을 동시에 담고 있다 법관은 자유로울 때에라도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며 법에 구속될 때에라도 전적으로 구속되지는 않는다는 뜻이
기도 하다 이 lsquo자유와 구속의 변증법rsquo에 비추어 지금까지 논한 주제에 대해 몇 가
지 입장을 정리해 보자 첫째 법관에게 있어서 독립은 확정된 원칙이나 그것자체
로서 달성해야 할 최종목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법관의 독립은 완성형이 아니라
끊임없는 진행형의 과제로서 그 직무수행에 대한 신뢰와 병행하여 점진적으로 이
루어지는 것이다 둘째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에 있어서 구속은 법률에 무조건 복종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판결에 대한 윤리 (내 ) 확신과 함께 법률에 복종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법관이 실정법률에 반하는 결정을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법
관은 객관성을 빌미로 법률 뒤에 숨는 익명적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
미하는 것이다 셋째 독립적인 법관의 양심은 lsquo법과 상충한다rsquo기보다는 lsquo법을 실
한다rsquo는 의미를 지닌다 넷째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서 반추하면서 lsquo하는
사람rsquo인 동시에 lsquo보는 사람rsquo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성찰 인 인물상으
로서만 설정될 수 있다
해석적 탐구는 우리의 이해를 넓히기 위해서 필요하지만 이해에서의 우리의 피
할 수 없는 한계를 깨닫기 위해서도 필요했는지 모른다 엥기쉬는 법해석방법론에
대한 저술의 마지막 부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ldquo방법론에 천착하다 보면
애초의 문제였던 법률로부터 훨씬 더 먼 곳으로 이끌려 간다rdquo 지금까지 필자는
법관의 법해석과 관련하여 방법론의 의의와 한계를 논하고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과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에 비추어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이 법해석론
의 불가결한 부분으로 들어가게 되는 이유도 밝혔다 그리고 해석적 차원에서의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는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행위를 목표로 하는
탐구라는 것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필자는 이 모든 논의들을 매개로 방법론이 우리를 더 멀리 덕
목론으로 데려가는 과정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드워킨의
상황에 대한 이 묘사 부분은 이경재 ldquo토마스 아퀴나스의 양심 개념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375면을 참조했다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7
헤라클레스를 잠시 불러올 필요가 있다 해석문제를 누구보다도 더 진지하게 다룬
드워킨은 마지막에 헤라클레스를 내세운다 주어진 사건에서 무엇이 법인지에
대해 도덕적 의식을 가지고 법실무 전체를 원리정합적으로 정당화하라는 요청에
부응하여 자신의 신념에 기초한 결정을 내리는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의 구성적
해석에서 법관의 양심이 기능하는 국면은 어디일까 송민경 판사는 드워킨의 구성
적 해석론에 입각하여 양심을 구체적 법논증과정의 일부로 포함시키면서 이때 양
심이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라는 지침으로 기능한다고 설명한다90)
그런데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는 지침으로 기능하는 것을 양심이라
고 보게 되면 양심의 문제는 논증적 합리성의 차원 즉 논증의 성공으로 종결짓게
된다 그러나 법적 결정의 정당성 문제는 법관의 입장에서는 논증의 성공 문제로
다루어지지만 법관의 성공적인 논증에 따른 판결의 결과로부터 영향을 받는 시민
의 입장에서 보면 성공적인 논증만으로는 해석이 정당화된다고 볼 수는 없다
성공적인 논증은 법적 결정의 정당화에 필수적이기는 하나 충분한 조건은 되지 못
한다 해석이 궁극적으로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사법적 도덕성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 사법적 도덕성은 헤라클레스가 지침으로 삼는 원리적 도덕성의 실현과는 다른
것이다 만약 패소한 시민이 다른 헤라클레스에게 갔더라면 즉 다른 법원리에 기
초한 신념을 토대로 다른 결정을 내린 다른 법관에게 갔다면 그는 승리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왜 헤라클레스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하
는지에 대한 답이 필요한 것이다91) 헤라클레스가 실무에 대한 최상의 정당화를
도모하는 법적 이상주의자라면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법원 문을 두드린 시민도
어느 의미에서 ldquo법이상주의자rdquo92)이다
법해석 작업의 주관의존성이라는 불가피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재판이라는 특수
한 공적 활동이 법관이라는 특수공직자에 의해 운영되고 유지된다는 것은 시민들
-소송에서 패한 시민들을 포함하여-편에서 보면 법을 해석하는 법관에 대한
신뢰가 전제된다는 것이다 법관의 독립적 활동은 법관의 특권 행사가 아니라 사
90) 송민경 앞의 글 38면 20면91) 사법적 덕목과 연관하여 이 부분을 다룬 글로는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5면 이하
92) 법원 문을 두드리는 시민에 대한 이 표현은 심헌섭 ldquo법조윤리의 좌표 거시적 관점에서 본 전문윤리로서의 법조윤리rdquo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편 法律家의 倫理와 責任 박영사
(2003)에 나온다
9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법과정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응당한 몫이 돌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존중하는 바탕에는 일종의 상호성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 그 또한
시민이기도 한 법관이 동료시민들에 대해 가지는 배려와 존중의 원칙이 그것이다
여기서 사법적 덕목에 대해 자세히 논할 수는 없다93) 예의 성실 신중 절제
용기 공정 겸손 의사소통 능력 형평 시민에 대한 배려와 존중 등등 이것들은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바탕을 이루는 양심의 덕목들일
것이다 양심이라는 단어가 그렇듯이 덕목이라는 단어도 오늘날 진부해진 표현
이며 거의 사라져가는 단어다 윤리적 태도로서의 덕목은 관찰하기도 배우기도
어렵다 그러나 올바른 판단과 결정이 법관이라는 개인을 거치지 않고 법령집
자체로부터 반사적으로 튀어나오지 않는 한 이 덕목들을 내면화하고 지향하려는
태도 없이는 lsquo종국적인rsquo 판단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써 필자는 헌법 제103조를 통해 법해석에서의 방법론의 문제가 덕목론이라
는 다음 과제로 이어진다는 점을 밝혔다고 생각한다
투고일 2016 4 6 심사완료일 2016 5 18 게재확정일 2016 5 20
93) 법관의 개별적인 덕목들과 이것들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는 박은정 강태경 김현섭 바람
직한 법관상의 정립과 실천 방안에 관한 연구 법원행정처(2015) 제5장 참조할 것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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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ltAbstractgt
Independence and Conscience of the Judges Based on
Interpretive Method for Article 103 of the Korean Constitution
Pak Un Jong
94)
In this paper I aim to discuss the problem of independence and conscience
of the judges as outlined in Article 103 of the Korean Constitution in the
context of the interpretive methodology
First of all this paper will look at the background in which the independence
of the judges has been institutionalized and also the problems regarding usual
explanation for conscience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And I will try to
reveal the characteristics and difficulties of the interpretive actions of the judges
especially in connection to the issue of value judgment This would require
pointing out the problems and limitations of the interpretive methodology and at
the same time defining the nature of tension embedded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namely the tension between the obligations of the judges to abide
the law versus the subjective internal demeanor of the judges This tension-
ridden condition reenacted by the demand to follow lsquogeneral justicersquo versus
lsquoindividual justicersquo appears inevitably in the process of judicial interpretation I
will examine the theories that capture this kind of tension that accompany the
interpretation process and aim to feel out the possibilities of resolving this
tension At the end I come to the conclusion that these theories can explain but
cannot resolve this tension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If so the problem
which arises from the limitations of the interpretative methodologies from the
perspective that a judgersquos final decision greatly impacts citizens becomes a
problem of judicial ethics In order to ultimately justify the interpretation of the
judges the demands of judicial ethics must be satisfied Keeping this demand in
Professor College of Law School of Law Seoul National University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103
mind I point out that the significance of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is in
its role of bridging legal methodology to virtue ethics
Keywords independence of the judges conscience of the judges interpretive
method of law value judgment judicial virt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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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도덕법칙에 스스로의 행동을 적용시키는 것이 양심이라고 말한다23) 이때 양심
은 스스로 도덕법칙을 정립할 수 있는 선의지를 가진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지니는 일종의 의무의식으로 여겨지며 자신이 자신을 평가하는 것이 양심이기 때
문에 이 주관적 확신을 평가하는 외부의 기준은 없는 셈이다24) 이렇게 양심을 주
관성의 형식으로 가져갈 때는 주관적으로는 옳은 양심에 따른 확신이라 하더라도
인식주체가 가진 한계 등으로 인해 내용상 오류가 가능하다는 문제를 안게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칸트와 달리 양심문제를 개인의 주관적 도덕의식 이상의 차원에
서 다루고자 하는 철학자들은 간주관성의 차원에서 보편성을 지니는 양심개념을
추구한다 이런 방향에서 파악한 양심 개념에 대해 lsquo객관적rsquo 양심이라는 표현을 쓸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양심과 관련하여 lsquo객관적rsquo이라는 표현은 인식
주체 밖에 뭔가가 존재한다는 인식론적 존재론적 가정을 상정한다는 점에서 문제
가 있다 인식 주체 밖에 객관적인 그 무엇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양심이 아니라
윤리규범일 것이다 법관의 양심을 lsquo객관적rsquo lsquo법조적rsquo 양심으로 표현하는 것도 이런
의미에서 부적절하다25)
그런데 철학전통 안에는 양심을 주관성의 형식으로 끌어들여 절대화하는 시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서양에서 근대 이전의 철학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개인의 주
관적 도덕의식을 넘어서는 차원에서 양심을 논하는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우선 어
원상으로도 con-scientia syn-deresis의 con과 syn에서 알 수 있듯이 양심은 우리
내면의 법정에서도 공공성 내지 공동체성 즉 ldquo함께 안다rdquo라는 요소를 지니고 있
었다 이 어원은 양심의 규제적 기능에는 우리가 올바르게 행했는지 혹은 그릇되
게 행했는지를 지켜보는 ldquo공동의 인식rdquo이 있다는 자각이 포함됨을 암시한다 자기
안에서 lsquo보편적인 자기rsquo를 확신하는 과정을 상호인정과정과 연결시키고자 하는 양
심관은 공동의 윤리로서의 인륜성(Sittlichkeit)의 입장에서만 ldquo진정한 양심rdquo이 가능
하다고 보는 헤겔(G W F Hegel)의 양심론26) 타자윤리학에 근거한 레비나스
23) Immanuel Kant 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 (윤리형이상학 정 백종현 역 아카넷(2005) 134면 이하) 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Philosophische Bibliothek A 175 (2003) 215면 이하
24) 김관영 ldquo칸트에 있어서 양심의 문제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144면25) 예컨대 성낙인 교수는 법관의 양심을 ldquo법관이 적용하는 법 중에서 객관적으로 존재하
는 정신을 가리킨다rdquo고 설명한다 앞의 책 713면 이 객관적 정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26) Hegel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sect137 헤겔의 양심론에 대해서는 최신한
ldquo헤겔 야코비 양심의 변증법rdquo 헤겔연구 제23호(한국헤겔학회 2008) 86면 이하 참조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75
(Emmanuel Levinas)의 양심론27) 그리고 행위주체들의 담론적 소통과 사회적 행위
에 대한 책임에서 출발하는 아펠(Karl Otto Apel)의 양심론28)에도 엿보인다 동양의
양심을 ldquo세상 사람을 향해 움직이는 마음rdquo으로 묘사하면서 양심이 있어서 책임있
는 인식의 기능에 주목한 사상가도 있다30)
서양에서 근대를 전후로 양심의 주관화 경향이 강하게 대두된 데에는 종교분쟁
등의 영향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은 가치상대주의라는 시대정신의 영향 하에
양심은 도덕적 판단과 인격을 근거지우는 현상으로 파악되면서도 내용적 측면보다
는 형식적 측면에서 고찰되고 간주관적 논의가능성이 배제된 채 그 논의의 폭이
좁아져 거의 개인의 자기결정권 영역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우리 헌법 제19조의
양심의 의미도 이런 자기결정에서의 최종심급 역할이라는 맥락에서 읽히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살펴봤듯이 주관화의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기 이전의 사유전통에
서는 양심의 자기결정 능력보다는 스스로에게 도덕적 의문을 품는 능력 ldquo함께
안다rdquo라는 책임성 쪽에 더 비중이 놓여 있었다 이런 사유배경에 비추어 본다면
헌법 제19조의 양심은 근대 주관화의 영향의 산물로 이해할 수 있고 이에 비해
헌법 제103조에서 법관과 관련하여 언급된 양심은 근대 이전의 ldquo함께 안다rdquo의 사
유전통의 흔적을 지닌 개념으로 볼 수 있다
Ⅳ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의 완화 경향
앞에서 살펴봤듯이 역사적으로 법관의 독립이념은 법관은 오로지 법률에만 구속
된다는 것을 전제로 탄생했다 그리고 이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은 법률의 총합으로
27) 레비나스에 대해서는 김연숙 ldquo레비나스의 양심론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제3부 제3장 참조28) Karl Otto Apel From a Transcendental Semiotic Point of View Manchester University
Press (1998) 52면 259면 양심이 지니는 공적 관찰이나 감시기능 부분에 주목한
Apel에 대해서는 백춘현 ldquo아펠의 양심론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344면 이하29) 맹자의 양심론에 대해서는 장승희 ldquo맹자의 양심론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제1부 제1장
참조30) 왕수인은 양심과 양지(良知)라는 표현을 함께 썼다고 한다 ldquo남의 아픔을 느끼기 위해
서는 예민하게 lsquo생각rsquo해야 한다rdquo 여기서는 이혜경 ldquo왕수인의 양심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79면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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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 법질서는 통일적이고 자기충족적인 시스템을 이룬다는 가정에 기초하고 있
었다 그러나 이 가정은 그 자체로 애초 한계를 지닌 것이기도 하지만 법의 생태
적 기반이 변하면서 이 법률구속원칙은 점차 상대화 내지 약화되는 방향으로 나아
가게 되었다 입법자를 기다릴 수 없는 빠른 사회변화 자유법운동 입법양의 폭발
적인 증대 일반조항 도입 등 입법스타일의 변화 복지국가 대두 사회정의의 요구
헌법재판 활성화 등의 흐름은 법관의 법률구속메커니즘이 작동하기 어려운 여건을
만들어 가게 된 것이다 이른바 lsquo법관법rsquo의 대세 흐름이 나타난 것이다 특히 지난
수십 년간 확대된 입법영역은 형법과 같은 규제입법과 달리 사회복지생활보호
건강 증진남녀평등청소년보호장애인보호적극적 평등조처 등처럼 정치적 비전과
목적을 담은 한마디로 정책촉진적 성격을 지닌 법률들이었다 이와 같은 야심찬
입법스타일은 법적용단계에서 법관이 바람직한 제도 및 정책 내용에 대해 고려케
함으로써 목적적 법논증으로 기울게 하고 구체적 이익을 비교형량하는 심사방식
을 확대시키는 등 좁은 의미의 실정법률 해석보다는 법형성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 것이다31) 특히 이 흐름은 20세기말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법실증주의에
제동이 걸리는 분위기와 겹치면서32) 법철학에서도 전통적인 포섭논리나 삼단논법
은 실제로 법관들에게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지적과 함께 법관의 법률구속원
칙에 회의적인 성향의 논의들이 강세를 보이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법발견 과정에
대한 심화된 통찰을 통해 lsquo선이해rsquo의 문제를 재평가하게 만든 철학적 해석학과 문
언의 의미론적 구속력에 회의를 제기케 한 언어이론은 법철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들 이론에 입각하여 이제 법의 흠결 시와 같은 예외적인 상황에서 법관
의 법형성이 불가피하다는 수준의 주장을 넘어 법률텍스트를 통한 구속가능성 자
체를 의문시하는 주장까지 나오게 되었다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의 실현에 대한 기대가 점점 약화되고 그래서 누구의 표현
대로 법률이 해석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해석이 법률을 지배한다고 말할 정도가
31) 사회변화에 따른 법관의 역할 변화에 대해서는 박은정 왜 법의 지배인가 돌베개(2010) 제6장을 참조할 것
32) 울프리드 노이만(Ulfrid Neumann)은 지난 2015년 10월 1일 고려대학교 초청강연에서
ldquo실증주의 이후 시대의 법률과 판결rdquo이라는 주제로 발표하면서 법학적 사고가 ldquo법실
증주의 이후의 시대rdquo로 넘어갔다고 진단하고 그 배경으로 세계화 등의 흐름으로 국제
상거래관습법(lex mercatoria)처럼 입법당국에 의한 제정이 아닌 사회적 실천에 의거한
법제정 사례 법원리의 중요성 대두 인권사상 증대 등을 들고 있다 그러면서 법실증
주의로부터 멀어지는 만큼 법관의 법률구속원칙도 상대적으로 완화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77
되면 다시 제기될 수밖에 없는 물음이 바로 입법기관과 법적용기관 사이의 권력
균형 문제다 이 권력 균형은 특히 법 이라는 개인에 의해 매개된다는 점에서 문
제가 된다 오늘날 ldquo사법국가rdquo ldquo법관공화국rdquo ldquo사법엘리트rdquo ldquo사법의 정치화rdquo 등을
지적하는 소리는 입헌민주주의 기획의 초기단계에서 일찍이 해결했다고 여겼던
문제들이 다시 등장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법관의 법률구속의 전제 및 그 가능성
법원의 중립성 법관의 민주적 정당성 사법관료주의 등의 문제가 그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물음이 떠오른다 해석자의 자유를 제
한하고 법관의 법률구속을 보장할 확고한 법해석방법론은 가능한가 법관의 법률
구속에 관한 기술적 제도적 보장책은 가능한가 필자는 이 물음들에 대체로 회의
적인 전망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물론 법해석방법의 무용론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법률에 구속되는 법관상이 약화되고 앞으로도 점점 더 약화될
것이라는 전망 하에 어느 때보다도 더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될 법관의 독립 문제
를 염두에 두면서 법해석방법론의 문제를 재검토하고자 한다
Ⅴ 법해석방법론의 문제점과 한계
법이 있는 곳에 해석이 있다 법학의 강점도 해석학적 잠재력에 있다 법관의 임
무는 법률을 적용하기 위해 법문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법해석방법론은 법
해석과정에서 법관의 자유에 일정한 제약을 가하고 법관의 법률구속이념을 실현하
기 위해 고안되고 발전된 것이다 해석에서는 무엇이 최선의 해석인지를 둘러싸고
언제나 논쟁과 불일치가 생기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해석작업은 인간의 판단과 행
위의 영향 하에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법관이 따라야 하는 법률 자체에는 이미 법적용자를 법률에 대해 어느 정도 독
립적이게 만드는 여러 표현방식들이 들어 있다 예컨대 lsquo야간rsquo lsquo소음rsquo lsquo위험한 물건rsquo
lsquo적절한 조치rsquo 등 개념의 내포와 외연이 확정적이지 않은 법개념들이 대표적이다
이런 불확정적 개념들은 법명제의 구성요건 단계에만 들어 있는 게 아니라 법률효
과에서도 등장한다 이른바 lsquo규범적 개념rsquo들도 그런 표현방식에 속한다 lsquo음란한rsquo
lsquo건전한rsquo lsquo불명예스러운rsquo 등의 개념들은 기본적으로 지각가능한 대상을 서술하는
개념과 대비하여 의미내용이 가치판단에 근거할 때만 파악된다는 점에서 규범적
이다 이때 가치판단은 반드시 주관적 개인적 평가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른 사람
7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들의 평가도 포함할 것이지만 어쨌든 이 판단과 관련한 어느 정도의 불확정성은
감수해야 한다 법관의 법률 구속 의무를 느슨하게 만드는 이런 개념군에는 재량
도 포함된다 오늘날 재량개념은 ldquo법적으로 구속되는rdquo 재량으로 이해되지만 이때
판단의 여지 안에 들어오는 여러 대안들 가운데서 최종 혹은 최선의 대안을 확정
하는 데 있어서 결정자의 개인적 확신을 허용할 수밖에 없다 일반조항도 표현 그
대로 높은 일반성을 띰으로써 법적용자로 하여금 자기 앞에 놓인 사례를 광범위한
사례집단들에 적응시켜가면서 법률효과를 귀속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33)
위에서 언급한 불확정 법개념이나 규범적 개념 등을 적용하는 데는 가치판단
요소가 수반된다 이런 개념들을 적용할 때 법관은 일정한 범위 안에서 입법자를
대신하여 가치판단 내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것이다 또 법관
은 법의 lsquo흠결rsquo을 보충하거나 법질서 안에서 이따끔 발견되는 lsquo오류rsquo를 수정해야
할 부득이한 상황에도 처하게 된다 이때는 법관은 스스로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찾아 나서야 한다 lsquo법의 일반원칙rsquo lsquo법의 정신rsquo lsquo평균인의 척도rsquo lsquo비례성원칙 lsquo이익
형량rsquo 등은 이때 법관이 의존하는 사유 장치들이며 이것들을 원용하는 데도 가치
판단적 요소가 개입한다 이때 판단자는 무엇이 사실상 효력을 갖고 있는 윤리적
견해인지 확인해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사실로서의 합의가 올바른 법적 결론에
도달하게 하는지에 대해서도 숙고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법적용자는 때로는 평
균인 테스트 같은 객관적인 척도에 의지하지만 또 때로는 개인적 견해를 더 많이
펼칠 수 있는 일정한 판단의 여지를 가지게 된다
이렇게 해석과정에서 불가피한 lsquo판단의 여지rsquo 즉 해석과정에 불가피하게 개입되
는 가치판단 요소 때문에 ldquo해석의 건전성rdquo을 둘러싸고 논란이 생기고 해석의 정당
화와 관련하여 회의가 생긴다 가치판단과 관련된 부분이 불가피하게 주관적 요소
를 끌어들이게 되고 이로 인해 법규범의 효력이 상대적이고 불확실한 영역으로 떨
어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단자는 자신의 결론이 불확실성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자신의 해석에 대한 정당화를 포기할 수 없다 법을
해석한다는 것은 ldquo그 법률을 특정 사안에 적용하는 것을 정당화한다는rdquo34)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확정적인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사례에서도 요구되는
33) 불확정적 개념 규범적 개념 재량 일반조항과 관련한 자세한 설명은 칼 엥기쉬 법학
방법론 안법영윤재왕 옮김 세창출판사(2011) 182면 이하에 잘 정리되어 있으며 필
자도 이 부분을 참조했음을 밝힌다 34) 닐 맥코믹 로버트 서머즈 ldquo해석과 정당화(上)rdquo 박정훈 역 법철학연구 제5권 제2호
(2002) 18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79
개인적인 단은 도덕적 상대주의자들이 말하는 개인적인 취향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해석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올바른 해석기준을 수립하고자 법률가들은 각
기 지금까지 다양한 해석방법에 의존해 왔다 올바른 해석을 위한 확고한 기준을
수립할 수 있다는 것은 찬성하는 혹은 반대하는 해석논거들 사이의 상대적 비중을
결정하는 명확한 규칙을 수립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즉 어느 한 해석
논거가 다른 해석논거에 의해 배제되는 조건이나 선택된 해석을 정당화하는 데
필수적인 한 논거가 다른 논거보다 우월하기 위한 조건 한 논거에 누적을 통한
비중이 부과되는 조건 등을 제시해줄 일관된 정보와 지침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
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여러 해석방법들 사이에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다는 것
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시도는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했다 동일한 유형의 논거일지
라도 각각의 정당화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비중을 갖게 될 뿐더러 언어적 해석
방법 체계적 해석방법 목적적 해석방법 등으로 제시되는 여러 해석방법들이 한
줄로 세우기에는 한마디로 너무 이질적이다35) 물론 이들 해석논거들의 상호작용
을 검토하면서 잠정적인 서열을 제시하는 것은 가능할 수도 있다36) 그러나 이 서
열은 기껏해야 ldquo해석을 위한 노력의 경제성 원리rdquo 정도를 말해 줄 뿐이기 때문에
쉽게 바뀔 수 있다37)
드워킨이 옳게 지적한 대로 기본적으로 가치판단과 관련된 해석방법들은 위계
적일 수 없고 ldquo상호지지적rdquo인 관계에 놓일 뿐이다38) 이 때문에 방법론적 규칙을
세우려는 시도는 언제나 무망해지는 것이다 또한 법해석에 있어서 언어란 단어의
의미를 식별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 행위의 의미를 식별
하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론 풀러(Lon Fuller)가 지적한 대로 ldquo언어
를 통한 의사 전달은 어느 한 사람으로부터 다른 사람에게로 의미가 든 상자를 발송
하는 식rdquo39)은 아닌 것이다
35) 울프리드 노이만 ldquo실증주의 이후 시대의 법률과 판결rdquo 강연문(주 32) 노이만에 따르
면 예컨대 체계적 해석 방법에 따른 논거도 그것이 논리적 일관성 획득의 맥락에서
인지 아니면 가치평가의 일관성 보장이라는 맥락인지에 따라 전혀 다른 비중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36) 대체로 언어적-체계적-역사적-목적론적 해석방법의 순서로 언급되는 데 대해서는 심헌섭
분석과 비 의 법철학 법문사(2001) 217-218면37) 맥코믹과 서머즈는 비교법적 연구결과를 통해 올바른 해석을 위한 지침 수립은 어느
국가의 법체계에서도 지금까지 성공적이지 못함을 밝힌다(앞의 글 210면)38) 로널드 드워킨 정의론 박경신 옮김 민음사(2015) 30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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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해석방법론으로부터 법관은 불확실성을 떨쳐 낼 수 있는 확실한 정
보제공을 기대하기 어렵다 해석논거를 위한 결정적인 기준을 제공하는 해석방법
에 대해 불안정한 형태로나마 이론적 합의를 찾기 어렵다면 엥기쉬의 지적대로
해석방법론은 공중에 떠있는 상태다40) 법학에서 방법론의 융성은 역설적으로 법
학이 이 부분에 취약하다는 암시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해석자로서의 법관을
최종적으로 인도하는 전략은 무엇일까 다음과 같은 고민을 들어보면 적어도 그것
은 방법론상의 합의에 대한 기대 같은 것은 아닌 것 같다 ldquo우리들은 일정한 결론을
내리고도 그 결론이 가장 적절sdot타당한 것이라고 보증받을 수 없다 그 결론을 낸
시점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들은 자기의 결론이 그러한 불확실성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그것을 자기의 전인격적 책임 아래 끝을 내고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비판과 평가에 맡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rdquo41)
해석방법론이 공중에 떠있는 상태라면 법관을 법률에 구속시키기 위한 방법론
적 보장책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런 가운데 ldquo자기의 전인격적 책임 아래rdquo ldquo사려
깊고 균형잡힌 총체적 관념rdquo ldquo인생 그 자체로부터 지식rdquo 등에 대한 호소를 듣는다
이것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법발견으로 불리든 법인식 혹은 법형성으
로 불리든 법적으로 올바른 결정을 이끌어낸다는 것은 순순히 lsquo앎rsquo의 문제만은 아
니라는 것이다 실천철학의 전통 용어를 빌어서 말한다면 그것은 이론지 이상의
실천지를 요구하는 활동이다 즉 법관의 해석활동은 이론지와 실천지를 결합하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이 주제로 다가가는 한 우회로로서 우선 지적 활동으로서의
법관의 해석활동의 특성에 대해 살펴보자
39) 론 풀러 법의 도덕성 박은정 옮김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2015) 314면 40) ldquo그러나 해석론 전체에 대한 확고한 이론적 토대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서열관계에
관한 모든 이론들은 여전히 공중에 떠 있다rdquo 엥기쉬 앞의 책 137면41) 사법연수원 법조윤리론(2014) 31면 그밖에 Benjamin N Cardozo The Nature of
Judicial Process Yale University Press (1921) ldquo언제 하나의 이익이 다른 이익을 능가
하는지를 묻는다면 hellip 경험과 연구와 성찰로부터 요컨대 인생 그 자체로부터 그 지식
을 얻지 않으면 안된다고 답할 수 있을 뿐이다rdquo(여기서는 법조윤리론에서 재인용) 또한 맥코믹서머즈 ldquo해석과 정당화(下)rdquo 박정훈 역 법철학연구 제6권 제1호(2003) 348면 ldquo해석은 간주관적으로 승인된 모든 법적 가치들에 대하여 사려깊고 균형잡힌
총체적 관념을 획득하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제대로 행해질
수 있다rdquo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1
Ⅵ 법관의 해석활동 실증주의의 대척점
앞에서 언급한 대로 해석에서는 무엇이 최선의 해석인가를 둘러싸고 언제나
논쟁과 불일치가 따른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누군가가 텍스트를 해석한다고
말하는 순간 그는 실증주의의 대척점에 서게 된다 실증주의과학의 의미에서는 논
쟁의 여지가 있는 것은 원칙적으로 과학일 수 없기 때문이다 법실증주의사고에서
해석 문제가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법을 근본규범에 입각
한 자기준거적인 구조로 보는 한스 켈젠(Hans Kelsen)의 순수법학이나 법적용과정
을 규칙에 의해 지도되는 과정으로 보는 하트(H L A Hart)의 분석법학에서 해석과
관련한 어려움은 다루고 있지 않다42)
켈젠은 순수법이론(Reine Rechtslehre)에서 정당한 해석만이 허용된다는 주장
은 허구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면서 해석의 건전성 문제나 정당화 문제를 법이론
안에서 다루기를 거부한다 법을 자기준거적인 것으로 보는 관점은 한마디로 해석
(행위)주체의 입장을 부정하는 것이다 켈젠은 법단계설을 바탕으로 법적용을 상위
규범의 수권에 의해 하위규범이 구체화되는 과정으로 보고 여기에 헌법의 수권을
받아 법률을 제정하는 입법자도 포함시킨다43) 이에 따라 법적용도 입법의 한 형
태로 설명된다 법관에 의한 법형성의 동기는 이를테면 입법부가 유독 다른 법률
이 아닌 이 법률을 통과시키는 동기와 같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켈젠은 판단활동
에서 인지적 요소와 의지적 요소를 엄격하게 구별하면서 법관의 판단활동을 순전
한 의지활동으로 보고 이 법관의 활동에 대해서만 (유권)해석이라는 표현을 사용
하고자 한다 그리고 법학적 해석에 대해서는 법규범의 가능한 의미들을 밝히는
것으로서 법률에 따른 결정의 범위를 제한하는 정도의 의미를 부여한다
법단계설에 따르면 상위규범이 정한 일정한 범위 안에서의 수권에 따라 하위규
범이 작용한다 이때 상위규범의 수권은 모든 세부적인 내용들에 대해서까지 정해
42) 켈젠은 순수법이론(Reine Rechtslehre) 제1판(1934) 제6장에서 해석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부분과 거의 같은 논문 ldquoZur Theorie der Interpretationrdquo이 심헌섭 젠법이론선집 법문사(1990) 97면 이하에 실려 있다 윤재왕 교수는 Reine Rechtslehre 제1판과 제2판
(1960)을 비교하면서 해석방법으로부터 오는 규범적 구속력을 일체 거부하는 켈젠의
입장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윤재왕 ldquo한스 켈젠의 법해석이론rdquo 고려법학 제74호(고려
대학교법학연구원 2014) 525면 이하 하트의 대표적인 저서 법의 개념의 색인 항목에는
lsquo해석rsquo이 빠져있다 43) Hans Kelsen Allgemeine Staatslehre (Berlin 1925) 231면 이하
8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그래서 ldquo상위단계의 법생성으로부터 하위단계의 법생
산으로의 전환은 단지 상위단계가 정해 놓은 범위를 채우는rdquo 활동으로서 이때
ldquo언제나 상위단계에는 없는 내용적 요소가 하위단계에 추가되어야만rdquo 한다44) 이
내용을 채우는 부분과 관련하여 상대적 불확실성이 생기는데 켈젠은 이 문제를
ldquo자유재량rdquo의 문제로 다룬다45) 이는 하트가 규칙의 체계로서의 법체계를 완결된
구조가 아닌 열린 구조로 봄으로써 상대적 불확실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법관의
재량사항으로 보는 것과 같다 하트의 경우 중심부와 주변부라는 극히 단순화된
이분법을 끌어들여 이 불확실성 문제를 처리하고자 했다면 켈젠의 경우는 인식작
용과 의지작용의 이분법을 끌어들임으로써 이 문제를 처리하고자 한 것이다
판결을 법관의 의지활동으로만 이해하는 입장을 취하게 되면 법관에게 결정에
대한 근거 제시 요청을 할 수 없게 된다 마치 신의 심판에 대해 근거 제시를 요구
할 수 없듯이 말이다 결국 켈젠의 법이론상으로는 해석은 법학의 문제가 아니며
그러므로 분석적 법실증주의와도 무관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46) 이런 이유에서 그
는 정당한 해석만이 허용된다는 주장이나 해석방법만으로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에
이를 수 있다는 주장을 거부하면서 심지어는 상위규범에 제시된 범위를 넘어서는
해석의 효력조차 적극적으로 인정함으로써 어느 의미에서는 해석이론의 존재기반
자체를 무너뜨린다47)
켈젠이나 하트가 법이론에서 해석의 의미를 축소한 이면에는 이분법이라는 과도
한 사유의 단순화가 놓여 있다 그러나 켈젠이 생각하는 것처럼 판단에서 인식적
요소와 의지적 요소의 확고한 경계가 유지되는지는 의문이다 또 중심부와 주변
부에 대한 하트의 주장도 지나친 단순화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어쨌거나
켈젠이 합리적인 해석방법을 추구하는 법이론의 효용가치를 한껏 떨어뜨렸다고
해서 이제 어차피 정답은 없으니 법대에 앉은 법관은 자기 임의로 무엇이든 해도
된다고 켈젠이 주장했을 리는 물론 없을 것이다 법이론의 과도한 정당성 주장을
거부하는 데서 오히려 순수법학의 비판적 잠재력을 찾을 수 있다고 보는 학자들은
여기서 켈젠이 강조한 순수화 즉 탈정치화는 법학에 관한 것이지 법 자체에 관한
44) Kelsen Allgemeine Staatslehre 243면 여기서 번역은 윤재왕 앞의 글 535-536면에서
재인용45) Kelsen 앞의 책 243면 이하46) 켈젠에 있어서 법해석은 이론상으로는 법학보다는 정치학이나 사회학에 속하는 문제
에 더 가깝다고 지적한 견해에 대해서는 론 풀러 앞의 책 312면 47) 이에 대해서는 윤재왕 앞의 글 553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3
주장이 아니었음을 상기시킨다48) 즉 법 자체는 결코 정치와 분리될 수 없다는
점에서 법실무에 대한 학문이론의 무가치성을 주장하는 순수법학은 실무의 법
적용자로 하여금 자신의 활동이 정치적 활동임을 깨닫고 책임을 느끼게 하는 계기
를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윤재왕 교수도 ldquo켈젠 해석이론의 배후rdquo로 들어가 방법
이론으로부터의 어떤 구속력도 거부되는 데서 생기는 공백을 켈젠이 법관 자신의
자기이해와 책임성 문제로 채운다고 지적한다 ldquo법관의 판결은 결코 순수한 것일
수 없으며 그런데도 자신의 판결이 순수한 인식의 소산이라고 강조한다면 이는
정치적 책임의 회피이고 동시에 이데올로기적이라는 혐의에 노출되지 않을 수
없다rdquo49) 이 문구가 켈젠 자신으로부터 나왔다면 아주 좋았을 것이다 자신의 직
무의 중요성과 책임에 대한 실천적 깨달음은 해석의 정당화를 목표로 하는 인식적
노력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켈젠의 순수법이론의 기획은 서로
붙어 있는 양면을 떼어 놓으면서 이것을 다시 붙일 수 있음을 보여주려 한 것일까
Ⅶ 법관의 해석활동 가치판단과 lsquo정답테제rsquo 문제
켈젠처럼 실증주의적 사고에 따르든 아니면 비실증주의적 사고에 따르든 가치
판단 문제에서 해석방법만으로는 하나의 정당한 결정을 도출할 수 없다고 생각한
다면 이는 해석의 차원에서 가치에 대한 이해 시도는 진리 추구와는 무관하다는
주장으로 귀결되는가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해석대상의 의미에 대한
관심과 최선의 이해에 대한 관심은 아무래도 진리 추구라는 목표를 향한다고 봐야
한다 법적 결정은 물론 법관의 권한에 속하지만 그것을 정당화해주는 원천은 법
관이라는 lsquo지위rsquo가 지니는 형식적 권한이 아니라 판결이 정당하다는 근거 제시에
있다 법판단을 정당화해주는 모델은 울프리드 노이만(Ulfrid Neumann)이 지적한
대로 권위를 통한 정당화모델보다는 진리를 통한 정당화모델에 더 가깝다50)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재판활동은 엄연히 사법권이라는 공권력의 작용이라는 점에서
독립적인 법관의 재판활동을 그 ldquo계획적이고 진지한 진리 탐구 활동rdquo적 측면 때문
48) 법학의 탈정치화를 ldquo정치적 허무주의rdquo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데 대해서는 켈젠 ldquo순수법학이란 무엇인가rdquo 젠법이론선집 280-282면
49) 윤재왕 앞의 글 559면50) 울프리드 노이만 ldquo법 진리 권위rdquo 2013 4 6 한국법철학회 강연문 참조
8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에 학문의 자유의 한 표현으로까지 보려는 것은 무리다51)
오늘날 가치상대주의 분위기는 실천적 물음에서 진리 도달가능성에 대한 회의를
과장한다 그러나 진리가 뭐냐는 빌라도의 물음에 비록 확신에 찬 대답을 못한다
하더라도 법에서 진리 내지 정당성 추구의 포기는 파국을 의미한다 국가권력
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도 진리라는 규제이념이 전제되기 때문
이다 독립된 사법부가 심급구조와 집단적 의사결정의 형태로 스스로의 시정 기구
를 가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물론 진리에 대한 주장은 잠정적이고 수정가능하다
lsquo참이냐 거짓이냐rsquo는 오로지 서술적 명제에만 한정하여 검증될 뿐이라는 협소한
학문관을 따른다면 법학은 학문 안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법
학이 그런 협소한 학문관을 받아들여야 할 필연성은 없다 법해석자는 자신의 해
석적 판단이 진리라는 주장을 무한정 내세우지는 못하면서도 진리 추구를 피할
수 없다52) 론 풀러(Lon Fuller)의 지적대로 ldquo법이론이 최고의 법적 권위를 엄격하
게 정의하는 일에 큰 비중을 두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이 점이 모호해지면 필경
전체로서의 법체계가 와해될 수 있다rdquo53)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법을 민주
주의의 언어로 설명하는 오늘날 의회와 행정처럼 다수결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기
관도 아닌 사법의 소수 전문 엘리트의 지배를 권위모델만으로 정당화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법을 준수하는 시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시민들은 자신에게 유죄
판결을 선고한 세속의 법관에게 그 유죄판결의 근거를 알고 싶다고 요구할 수 있
으며 물론 당연히 요구한다
법관은 판결에서 논증을 통해 최상의 근거 제시가 이루어진 결정을 해야 한다54)
51) ldquo일부 사람들 중에는 이러한 법원의 권력기관적 성질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
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helliphellip 가끔 법관의 일을 조용한 방에서 소송서
류를 꼼꼼하게 읽어 파악한 사실에다가 법을 논리적으로 적용하는 단순히 지적(知的)인 작업이라는 시각에서만 말씀하시는 분을 만나면 그 분에게 재판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법대에 앉아 있는 법관이 어떻게 보이는지 물어보고 싶어집니다rdquo 양창수 ldquo바람직한 법관상 - 기예와 지혜 사이rdquo lt근대사법 및 한성재판소 설립 120주년 기념
1895sim2015 소통컨퍼런스 역사에 비춰 본 바람직한 법관상gt 자료집(서울중앙지방법원 2015 5 11) 15면 ldquo계획적이고 진지한 진리 탐구 활동rdquo이라는 표현은 라드브루흐에서
나온다 구스타브 라드브루흐 법철학 최종고 옮김 삼영사(2011) 238면 52) 드워킨 앞의 책 208면 53) 론 풀러 앞의 책 211면 풀러의 문장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ldquo하지만 이 경우도
위로부터의 지시 또한 목적의식에서 비롯되는 지적 활동을 완전히 생략할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rdquo54) 물론 진리 요청과 관련하여 개별 법관의 관점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며 민주국가에서
포기될 수 없는 진리 요청은 법학을 포함한 법체계 전체로 하여금 진리 요청에 어떻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5
이때 정당한 근거 제시가 이루어진 결정과 관련하여 그것이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
이라는 주장을 펼 수 있는가 앞에서 검토한 대로 켈젠의 순수법이론은 그런 주장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이에 비해 드워킨은 법적 판단에 있어서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이 원칙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ldquo정답테제rdquo로 불리는 이 주장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학자들이 지적한 대로 존재사실에 대한 주장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하나의 ldquo규제이념rdquo으로 받아들이는 게 맞는 것 같다 즉 드워킨의 정답테제
는 ldquo유일하게 정당한 결정rdquo이 존재한다는 데 대한 이론적 탐구라기보다는 실무에
서의 법관의 주관적 태도에 부합하는 이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법관은 자신의 판결활동과 관련하여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모든 사건
에서 오직 하나의 결정만이 정당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 정답에 가까이 가기 위
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55)
드워킨의 말대로 가치판단이 참일 때는 그냥 참일 수가 없으며 그것이 참인
이유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즉 충분한 논거가 존재할 때 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라면 이러한 논거지움의 과정은 자명한 공리적
토대나 그런 토대 위에서 확립된 규칙이나 원리적 서열에 따라 명확하게 밝힐 수
없다 이런 불확실한 가운데도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논거지움은 포기될 수
없다 이 끝없는 정당화 부담 때문에 켈젠은 규범의 효력 근거에 관한 논의를 가
치에 관한 논의와 절연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물론 성공하지
못했다56)
가치판단을 해야 하는 부분이 법문화에서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요소로 작용할지
아니면 그 반대로 작용할지는 판단자로서의 법관의 역량과 연관하여 논해야 할 것
이다 필자는 가치판단적 요소가 법문화에서 당연히 긍정적 요소로 작용해야 하며
게 부응하는지 묻게 한다 따라서 사법부 외부에서 행하는 사법비판의 길이 열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대해서는 노이만 앞의 강연문 참조55) 노이만 앞의 강연문56) 규범의 효력을 불명확하고 상대적인 가치가 아닌 규범에 근거짓기 위해 켈젠이 고안
한 근본규범은 사유상으로만 전제된 규범일 뿐이었다 켈젠은 가치판단을 ldquo현실의 행
위가 객관적으로 효력 있는 규범에 맞게 존재해야 하는 대로 존재한다는 판단rdquo이라고
정의함으로써 가치판단이라는 용어 자체를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Reine Rechtslehre 2 Aufl (1960) 16면 이하 또한 켈젠은 규범이 인간의 의지에 의해
제정되는 한 그 규범에 의해 형성된 가치는 어차피 자의적일 뿐이라고 주장한다(18면) 규범과 가치의 관계에 대한 켈젠의 주장에 대해서는 오세혁 ldquo켈젠의 법이론에 있어서
규범과 가치 - 규범과 가치의 상관관계를 중심으로rdquo 법철학연구 제18권 제3호(2015) 97면 이하 참조
8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또한 그렇게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57) 그런 방향에서 이제 해석의 문제를 법
관의 자기이해 문제와 연관시켜 보기로 한다
Ⅷ 해석과 법관의 자기이해
법관은 추상적인 일반규칙을 가지고 공중의 이목을 끄는 개별적인 사건을 처리
하는 사람이다 법관의 의식활동에 의해 일반규칙과 일회적인 사건 사이의 심연이
메워진다 하지만 일반성과 개별성을 결합하는 이 의식과정에 동반하는 고유한 법
학적 방법에 대해서는 앞에서 지적한 대로 확실한 합의는 없다 ldquo리걸 마인드rdquo라
는 말이 풍기는 신비스러운 분위기에는 사법적 결정이 본질적으로 투명한 것이 되기
어렵다는 암시가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다 논리적인 형태만 부여하기로 한다면
한 사건에서 서로 상반된 결론에 이른 두 개의 판결문을 작성하는 것도 불가능
하지 않다58) 방법이 논리에 기초하는 것이라면 이때 논리는 형식논리를 넘어 엥기
쉬가 표현한 대로 ldquo실질에 부합하는rdquo 논리여야 할 것이다 참된 올바른 받아들
일 수 있는 결정에 이르는 실질논리 이 실질에 도달하기까지는 결코 논리적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지적 감행과 어떤 매개가 작용한다
일반규칙을 개별사례에 적용할 때 요구되는 판단자의 능력과 관련하여 가다머
(Hans-Georg Gadamer)는 이런 견해를 밝힌 적이 있다 판단자는 자신이 이미 가
57) 이와는 달리 가치의 ldquo통약불가능성rdquo 때문에 사법은 좋음이나 옳음의 이슈에 대해 실
질적 입장을 취하는 일에 대해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가치의 통약
불가능성에 대해서는 Cass R Sunstein ldquoImcommensurability and Valuation in Lawrdquo Michigan Law Review Vol 92 No 4 (1994) 779면 이하 조홍식 교수는 ldquo가치의 통약
불가능성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이 권리인가의 문제보다 무엇이 공익인가의 문제에서
더 크다rdquo고 지적하면서 기본적으로 가치판단과 관련한 사법통치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사법통치의 정당성과 한계 제2판 박영사(2010) 240면 가치의 통약불가능성에 대한 주장은 가치판단과 관련한 해석기준의 서열화는 불가능
하다는 주장과 같은 노선에 속한다 여기서 통약불가능성 문제를 자세히 다룰 수는
없다 다만 가치의 통약불가능성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통약불가능이 비교불가능을 의미
하지는 않는다는 점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체적인 맥락이 주어지는 경우 무엇이 옳은
지 혹은 그른지에 대해 심사숙고하며 이에 따라 선택하고 그 선택 결과를 받아들인
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정도만 지적하기로 한다 58) 실제로 판사가 판결문을 두 개 써왔다고 주장한 사건에 대한 보도가 있었다 ldquo판결문을
두 개 써왔다rdquo 조선일보 2013 11 21자 기사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7
지고 있어서 적용하기만 하면 된다는 그런 의미의 규범적 실천적 ldquo지식을 소유한
사람rdquo이라기보다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 ldquo지식을 탄생시키는 상황에 직면하는
사람rdquo이라는 것이다59) 일반범주를 개별사례에 적용할 때 요구되는 이 판단력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래서 칸트(Kant)도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ldquo지성은 규칙들
을 통해 배우고 보강할 수 있는 것이지만 판단력은 특수한 재능으로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전혀 아니고 단지 숙련될 수 있을 뿐이다rdquo60)
우리는 올바른 규칙이나 원리를 알고 있지만 막상 이것을 어떤 상황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예컨대 비례성원칙이나 과잉금지원칙에 대한 지식
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은 적정해야 하고 그 수단은 목적달
성을 위해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원칙을 특수한
상황에 lsquo적용rsquo한다고 할 때에 이 원칙이 그 어떤 판단도 배제할 정도로 자족적인
지침 구실을 한다고 느끼기는 어렵다 특정 상황에서 그 수단이 과연 어느 정도일
때가 목적달성에 적정한지는 판단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실천이성의 역
할이다
단의 자리는 이론 경험 양심이 혼재된 실천의 영역이다 판단을 통한 결정이
라는 그 lsquo종국성rsquo으로 인한 실천적 성격은 법학이 다른 어떤 학문분야와도 공유
하지 않는 법학 고유의 특징이다 그래서 법학은 lsquolegal sciencersquo로 불리기보다는
실천지- prudentia-를 함의하는 lsquojurisprudencersquo로 더 자주 불리어 왔을 것이다
해석의 차원에서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도 추상적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
으로는 행위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성과 개별성을 결합하는 해석적
지식은 추상적 이론적 지식들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일반규칙이나 원리
에 근거한 이론적 패턴의 지식과 특정한 상황 내지 맥락을 고려하는 실천적 패턴
의 지식의 이중주를 이룬다 법관이 지니는 통찰력의 특성은 이론과 태도가 함께
간다는 데 있다 그래서 사법적 판단에서는 규칙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 못지않게
사람 즉 법관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사법적 통찰력의 특성은
뭐니뭐니해도 개별 사례를 다룬다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개별적인 것들은 개별적
인 방식으로만 체험되고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들은 무엇
보다도 lsquo지각rsquo과 관계된다61) 즉 그것들은 일반적 체계적 지식의 대상이라기보다
59) Hans-Georg Gadamer Wahrheit und Methode Grundzuumlge einer philosophischen Hermeneutik 3 Aufl J C B MOHR (1972) 300면
60)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 1 백종현 옮김 아카넷(2009) 374면
8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는 우선 지각의 대상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도 사법적 통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쪽은 규칙보다는 오히려 사람 즉 법관 쪽인 것이다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사건에서 법적으로 중요한 사실이 무엇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규칙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어떤 규칙이 중요한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실이 중요한지 알
아야 한다 이 인식과정에서 법관은 불확실한 가운데서 무수한 선택을 감행한다
어떤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 배척하고 어떤 사실은 인정하거나 무게를 부
여하고 신청된 증거조사의 어떤 것은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거부하고helliphellip 사실
에 대한 이 취사선택-자유심증주의-의 결과로 새로운 것이 태어난다 그리고
이것에 의해 법원을 찾아온 사람들의 운명이 갈리는 것이다
법관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필자 생각에
독일의 법철학자 아르투어 카우프만(Arthur Kaufmann)의 해석학적 방법론은 법
관의 자기이해 문제를 해석학적 지평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법관의 해석작업의
본질을 잘 설명해주는 것 같다 가다머 계통의 철학적 해석학(philosophische
Hermeneutik)의 입장을 받아들이면서62) 카우프만은 법해석행위를 통해 포괄적인
의미에서 법관 자신의 인격 중의 어떤 것이 판결에 혼입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
61)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4면 그리고 1심에서
유죄였다가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강력범죄 540건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판단자
의 감지능력 차이가 법판단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힌 김상준 무죄
결과 법 의 사실인정 경인문화사(2013) 62) 텍스트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이해에 관한 연구분야인 해석학(hermeneutics Hermeneutik)
의 어원은 신들의 전령(傳令)인 Hermes라는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설명된다 이때 신의
의도를 인간에게 전하는 과정에서 언어의 제약성 시공간적 간격 전령의 역할 등과 관
련하여 해석의 문제가 생긴다고 본다 ldquoHermeneuticsrdquo Dictionary of Biblical Interpretation Nashville (1999) 497면 독일어의 Auslegung이 해석주체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대상
으로서의 텍스트에 대한 해석을 의미한다면(객관주의) 철학적 해석학에서의 해석
(Interpretation)은 해석주체의 주관성 내지 역사성이 대상에 투사된다는 의미가 강하다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에 따르면 역사적 존재인 인간에게 있어 모든 해석과 이해는 과
거와 현재가 lsquo작용사적으로(wirkungsgeschichtlich)rsquo 중재되는 사건으로서 lsquo선이해rsquo 내지
lsquo선판단rsquo 없이는 불가능하다 가다머는 선입견으로 폄하된 선이해를 재평가하고 이를
통해 근대 이래 lsquo방법rsquo을 통한 진리발견이 주체에 의한 객체의 대상화 내지 도구화를 가져
왔다고 비판하면서 인간경험에 있어서 진리에 이르는 길은 사물의 존재가 스스로 드러
나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해석과 이해는 전승된 존재방식으로서
의 텍스트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며 이는 텍스트 자체가 지닌 역사적 지평과 해석
자의 지평이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만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해석학적 순환 이해의 전제로서의 선이해 작용사 등에 대해서는 Gadamer 앞의 책 II Grundzuumlge einer Theorie der Hermeneutischen Erfahrung 참조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9
로 법관의 결정이 올바른가의 물음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가의 물음과 직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63)
우선 카우프만은 통상적으로 회자되는 독립적인 법관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즉 법 앞에 선 법관이 일체의 정치적 사회적 개인적 영향이나 선입견들로부터 차
단된 채 순수한 객관적 인식에 따라 그 이전에는 자신이 알 수 없었던 사실관계
를 판단하고 그런 다음에 법적 판단을 한다는 식으로 이해하기를 거부한다64)
그런 법관상은 법령집은 일체 해석의 필요가 없이 거의 모든 가능한 법률문제에
대한 대답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상정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법관은 의지가
없는 존재이며 사법권력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여기는 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법에 대한 인식은 단순히 사례를 법률에 포섭시킨다는 의미의 수
동적 행위가 아니고 해석자가 해석대상에 관여하면서 함께 lsquo형성rsquo하는 것이라고
본다 카우프만은 법관의 법형성력에 대한 자신의 견해가 주관주의의 의미로 받아
들여지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는데 왜냐하면 해석자는 텍스트를 지탱하는 모든
전통과 함께 이해의 지평으로 들어간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은 서류의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ldquo아 이런 사건이구나rdquo라고 감을 잡게 되
는데 카우프만에 따르면 이는 법관 자신이 사건 경과를 관찰해서 인지했다거나
언론 등을 통해 사건에 대한 상세한 지식을 얻었다는 뜻이 아니라 유사한 사건들
을 알며 그래서 ldquo선이해(Vorurteil Vorverstaumlndnis)rdquo65)를 가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
해의 전제로서 이런 선이해가 없다면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것이 무엇에 관한 사
건인지 알 수 없고 다른 사례와 비교할 수도 없기 때문에 올바른 판단에 이른다
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66) 이 선이해에 의해 해석은 언제나 해석주체의 자기
이해 즉 자신이 lsquo잠정적rsquo 결과로서 이미 예상했던 것을 논증적으로 근거짓는 활동
이라는 의미에서 ldquo해석학적 순환rdquo 내지 ldquo해석학적 나선구조rdquo 하에 이루어진다
63)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Festschrift fuumlr Karl Peters Mohr Siebeck (1974) 144면 법관의 독립과 양심 주제와 관련한 또 다른
글로는 Kaufmann ldquoGesetz und Rechtrdquo Existenz und Ordnung Festschrift fuumlr Erik Wolf (1962) 357면 이하
64)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4면 65) 해석학적 의미에서의 lsquo선이해rsquo는 일상 언어 관용에서는 lsquo선입견rsquo이나 lsquo편견rsquo 같은 부정
적 함의를 더 많이 지니기 때문에 카우프만은 lsquoVorurteilrsquo 대신에 Vorverstaumlndnis라는 용
어를 쓰기를 권장한다(앞의 글 148면) 카우프만 외에도 이 용어의 선택은 Josef Esser Vorverstaumlndnis und Methodenwahl in der Rechtsfindung 2 Aufl (Frankfurt aM 1972)
66)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7면
90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텍스트를 이해하려는 사람은 말하자면 언제나 초벌 그림을 그리며 특정 의미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텍스트를 읽기 때문에 ldquo텍스트에서 첫 번째 의미가 지시되자
마자 전체의 의미를 lsquo예비투사한다(vorauswirft)rsquordquo67) 그리고 선이해와 관련된 이 예
비투사는-해석학적 lsquo순환rsquo에 의해-원칙적으로 끝없이 검열과정을 거친다는 것
이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도 실제 판단과정에서는 분리
되지 않는다68)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은 시간적으로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단절 관계가 아니라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정제하고 상응하는
관계에 놓인다 즉 사실에 대한 인식 없이 규범적 인식은 불가능하며 또한 규범적
관점 없이 사실만을 통한 사실 확정도 불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법률도 법관의
해석을 만나기 전에는 ldquo잠재적인 가능태로서 주어진 법률rdquo일 뿐 해석학적 순환을
통한 정제 혹은 상응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ldquo진정한 실정법rdquo이 생성된다69) 이렇
게 특정사건을 통해 구체화된 규범(구성요건)과 이 규범을 통해 정해진 사실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법관에게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들과 함께 제3의 요소로서 법관
자신의 선이해 내지 이해 포괄적으로 말하면 그의 인격적 존재가 판단에 혼입
된다
lsquo선이해rsquo는 판단자가 자신의 선이해를 의식하지 못할 때 부정적 요소를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ldquo자신의 판단은 오로지 lsquo있는 그대로다rsquo라고 말하는 즉 lsquo오로지 법
률에만 구속된다rsquo라고 말하는 법관이야말로 실은 종속된 법관이다 왜냐하면 그는
성찰되지 않은 자신의 선이해와 거리를 둘 수 없기 때문이다rdquo70) 즉 법관은 자신
67)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68) 실제 판단과정에서 사실인정과 법률적용이 따로 떨어질 수 없다는 점은 굳이 카우프
만의 이론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실무상으로는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ldquo법률
의 적용과 사실의 인정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법률문제와 결부되어 인정된다 사실의 인정이 진행됨에 따라서 재판관의 머리
속에서는 어떠한 법규를 적용할 것인가 그 법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는 전망이
점차로 서게 되며 당사자 측도 경우에 따라서는 민사인 경우 청구의 취지를 변경할
것인가를 고려하게 되고 형사인 경우 공소사실을 변경하는 경우도 생긴다 요컨대 사실
문제와 법률문제는 실제과정에서 불가분으로 결부되어 있다 helliphellip 양쪽이 불가분으로
재판관의 직관 혹은 재판관의 전인격적인 작용에 의하여 사실의 인정과 법의 적용이
행하여지고 판결 삼단논법은 실제의 심판 과정에서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rdquo(사법
연수원 법조윤리론 35면) 69) ldquo법관의 해석 작업 이전에는 어느 의미에서 진정 법도 진정한 사실도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원자재들(Rohmaterialien)로만 이것들이 존재할 뿐이다rdquo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1
의 선이해를 의식하고 자신을 이데올로기 혐의 앞에 세울 줄 알 때 올바른 판결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ldquo법관이 자신의 선이해와 종속을 의식할수록 그래서 간주
관적 합의에 노력할수록 그는 더 객관적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rdquo71) 그러므로
법관의 주관주의의 위험은 카우프만식으로 말하면 가치판단 같은 성찰적 고려와
관련된 주관적 요소를 방법상의 근거 제시의 맥락에 끌어들이는 법관의 경우보다는
오히려 모든 것이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판결의 주관적
요소를 은폐하는 법관에게서 나타나는 위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학적 순환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법관은 ldquo법률의 입rdquo이 아니라 ldquo인격
으로서 판결을 떠받친다rdquo72) 판결은 법률과 법관의 인격의 혼성물이다 그러므로
법률은 판결을 위한 필요조건이기는 하나 충분조건은 아니라고도 말할 수 있다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순환이론은 법관의 독립과 양심의 문제 차원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법결정의 올바름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
는 정도에 달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자신을 올바르
게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자신의 판단력 경험 능력 인간에 대한 태도 감
수성 명예욕 등등
카우프만의 법해석학적 순환이론이 법관의 독립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이라
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독립은 법관 스스로 관철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론적으로 카우프만의 법해석이론의 의의는 법관이 자신의 선입견을
의식하는 것이야말로 법관의 독립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설득력있게 지적
해주며 그런 방향에서 법관의 법해석 작업을 재평가했다는 데 있다고 말할 수 있
겠다
70)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71) Arthur Kaufmann ldquoDer BGH und die Sitzblockaderdquo NJW (1988) 2581면 이하72) 이 표현은 Karl Peters의 Strafprozess - Ein Lehrbuch (1966) 99면에 나오며 여기서는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9면에서 재
인용했다 이덕연 교수도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에 입각하여 ldquo법관의 법해석작
업은 단순한 lsquo인식작업rsquo이나 lsquo언어분석작업rsquo이 아니라 ldquo구체적인 반성과 자기극복의
노력 속에서 온 인격을 걸고 진행하는 lsquo이해와 실천의 수행작업rsquordquo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앞의 글 352면)
9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Ⅸ 법관은 lsquo하는 사람rsquo인가 lsquo보는 사람rsquo인가
법관의 판단작업을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의 관점에서 주목했던 또 다른
철학자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다 그녀는 ldquo아이히만 재판rdquo을 계기로 판단의
특수한 경우로서의 판단력 문제를 연구했다73) 아렌트는 하드케이스와 연관시켜
법관의 판단력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74) 법관은 우선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을 반추하면서 판단에 임하는데 이때 판단자로서 그는 한 면으
로는 규칙에 따라 판단하라는 lsquo일반적 정의rsquo의 요구에 그리고 동시에 다른 한 면
으로는 정황에 맞게 판단하라는 lsquo개별적 정의rsquo의 요구에 처한다 이러한 상황은
아렌트에 따르면 하드케이스에서 특히 발생한다 이 이중적이고 모순적 요구 상황
을 아렌트는 법관의 판단에 적용되는 특수한 해석학 및 그 조건을 설명하는 출발
점으로 삼는다75) 하드케이스가 아닌 통상적인 사건에서는 이른바 포섭 여부를 판
단하는 것으로도 족하다 일반규칙에의 포섭 여부가 중심이 되는 이 단계에서의
판단력- lsquo규정하는 판단력(bestimmende Urteilskraft)rsquo-은 사실관계에서의 원인
이나 형식적 정의를 따지므로 일방적이고 간주관적 전제 없이도 가능하다 그래서
흔히 법관은 여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법을 해석해야 한다고 말할 때 이는
법적용을 이러한 지배적인 포섭모델에 입각하여 이해한 결과라 할 것이다 그런데
규칙으로부터 오는 어떤 어려움들 때문에 규정하는 판단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즉 포섭이 어렵거나 법흠결 시 또는 가치형량이 요구되는 하드케
이스에서는 법관은 어쩔 수 없이 앞에서 말한 모순문제를 다루어야만 한다 이때
아렌트는 법관이 사유의 확장을 통해 방법상으로 lsquo규정적 판단력rsquo을 스스로 교정
할 수 있는 lsquo성찰적 판단력rsquo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고 이 판단유형의 전환과정을
73) 법적 판단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 삼은 저술은 Hannah Arendt Eichmann in Jerusalem Ein Bericht von der Banalitaumlt des Boumlsen Erw Aufl (Muumlnchen 2001) 그리고 Hannah Arendt Das Urteilen Texte zu Kants Politischer Philosophie Hrsg v R Beiner Uumlbers v U Ludz (Muumlnchen 1998)
74) 아렌트가 염두에 둔 하드케이스는 라드브루흐가 이른바 ldquo법률적 불법rdquo 상태로 규정한
나치의 불법국가 상황으로서 이렇게 극히 예외적인 케이스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하드
케이스에 적용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별적 정의 요구에 부응함
으로써 예컨대 소급효를 금지하는 일반법률에 위배되는 상황과 유사한 갈등상황은 반
드시 극단적 상황에서만 생긴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75)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2 Bde Hrsg v U Ludz amp I Nordmann
따라서 그 척도는 전달가능성이며 거기에 딱 맞는 것은 공통감각(상식)이다rdquo77) 오
늘날 공통감각은 아렌트도 지적했듯이 더 이상 그것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얻고자 노력해야 하는 그 무엇이 되어버린 듯하다 그러나 공통감
각이 무너진 시대를 겪었던 아렌트는 사유의 전환 내지 확대를 위한 진정한 발판
을 다시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에서 구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78)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실천철학의 전통에서는 세계와의 관계 그리고 자기와의 관
계를 공통감각을 척도로 설정해가는 판단자가 lsquo하는 사람rsquo인지 아니면 lsquo보는 사람rsquo
인지 즉 lsquo행위자rsquo인지 아니면 lsquo관찰자rsquo인지를 둘러싸고 의견이 대립되어 왔다 lsquo하
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자가 lsquo정치가rsquo 쪽에 더 가깝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
자는 lsquo철학자rsquo 쪽에 더 가깝다 lsquo하는 사람rsquo은 주로 사회의 일반적 상식 건전한 인
간이해 세론(doxa)을 판단의 척도로 삼는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적 경험은 전체주
의 하에서는 건전한 인간이해도 집단화된 대중감정에 따른 오도된 인간이해 앞에
무너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판단에서 사실로서의 상식이나 합의 또는
법해석공동체 내부의 지배적 제도적 관점이라는 판단 척도만으로는 일반규칙으로
부터 오는 모순을 다루기 어렵다 여기서 판단자는 ldquo확대된 사유방식rdquo을 추구해야
하는데 아렌트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을 lsquo보는 사람rsquo의 판단과 결합시킴으로써 법
관을 위한 사유의 확대를 시도한다79) lsquo하는 사람rsquo이 사실로서의 일반적 상식이나
인간이해 차원에 비추어 판단한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ldquo이
상적 규범적 상식rdquo80)을 추구하고자 한다 판단을 거쳐 법적 효과를 결정하는 법관
76)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을 해석학적 순환이론을 적용하여 분석하면서 칸트의 판단력 비
판에 의거하여 아렌트가 판단력의 특수한 경우로서 법관의 ldquo성찰적 판단력rdquo이라는 새
로운 판단유형을 제시했다고 지적한 연구서로는 Stefanie Rosenmuumlller Der Ort des Rechts Gemeinsinn und richterliches Urteilen nach Hannah Arendt Nomos (2013) 참조
77) Hannah Arendt Das Urteilen 92-93면78) 아렌트가 판단의 차원을 심화시키는 발판으로 삼는 상식은 sensus communis로서
communis opinio와는 다르다는 데 대해서는 Marieke Borren ldquolsquoA Sense of the Worldrsquo Hannah Arendtrsquos Hermeneutic Phenomenology of Common Senserdquo International Journal of Philosophical Studies Vol 21 No 2 (2013) 225-255
79) Hannah Arendt Das Urteilen 76면80) Rosenmuumlller 앞의 책 234면 이하 여기서 아렌트는 상식개념을 이중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에서는 경험적 개념으로 보다 성찰적 판단
단계에서는 규범적 개념으로 사용한다
9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은 관찰자로서 판단하면서 동시에 행위자로서 판단에서 법적 결과를 결정하는
사람이다 관찰자인 동시에 행위자라는 이중적인 역할을 하면서 법관은 자신의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 반추한다81) 이 반추과정에서 법관은 한편으로는 포섭
하는 판단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고려해야 할 관점들을 끌어들이면서
자신의 직책을 마지막까지 수행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통제하면서 자신의 앞서의
(포섭) 판단을 정정해나간다 그래서 법관 자신이 lsquo보는 사람rsquo과 lsquo하는 사람rsquo의 만
남의 장소가 되는 것과도 같다 ldquo이 보는 사람은 모든 하는 사람 안에 자리 잡고
있다helliphellip이 비판적 판단능력이 없이는 행위자 혹은 해결자는 보는 사람으로부터
풀려나 종내는 지각되지조차 못하게 될 것이다rdquo82)
사람들은 자신 일에 있어서는 비당파적일 수는 없다 따라서 ldquo자신의 일에 대한
판단에서는 내면의 심판자 혹은 내면의 법정을 가질 수 없다rdquo83) 그러나 다른 사
람의 일을 반추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필히 비당파적이어야 하며 또 비당파적이 될
수 있다 이때 그는 비로소 내면의 심판자를 가지게 된다 즉 양심의 문제에 처하
게 되는 것이다 판단에 있어서 양심이라는 것 즉 양심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남
의 일에서 ldquo증인rdquo 혹은 ldquo비판적 친구rdquo로서 관찰하고 행위하는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이다84)
아렌트의 성찰적 판단모델은 나치 불법국가 경험의 산물이다 통상의 규칙이 파
괴된 상황 통상의 범죄유형에 포섭되지 않는 극히 예외적인 범죄적 상황에서 법
원은 기존의 판단척도를 해석학적 출발로 삼아서는 안 되고 이때에는 질적으로
동의가능한 합의형식을 찾기 위해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으로 돌아가
진정으로 사유 즉 철학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렌트가 판단을 일반화해주는
거점이자 해석학적 출발점으로 삼은 공통감각(상식) 개념은 칸트철학에서 ldquo비사교
적 사교성rdquo 개념의 위상과 비슷하다85) 이 지상에서 인간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다른 것을 원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모여 살아야만 하는 존재다 이 비사회성 요
청과 사회성 요청의 동시성 때문에 인간에게는 제도적인 안착이 더없이 중요하며
법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실존과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만든다 판단의 기
81) Leora Y Bilsky When Actor and Spectator Meet in the Courtroom Hannah Arendt and Eichmann in Jerusalem G N Arad Hg (Bloomington 1996) 137면
82) Hannah Arendt 앞의 책 85면83) Hannah Arendt 앞의 책 76면 84)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657면85) Rosenmuumlller 앞의 책 1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5
초를 보편적 인간경험에 둔다는 점에서 아렌트가 말하는 판단력은 드워킨의 헤라
클레스와 같은 초인적 천재성을 발휘하는 능력과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86) 아
렌트가 상정하는 이상적인 법관은 철학적이지만 철학자는 아니고 정치적이지만 정
치가는 아닌 사람이다
아렌트는 헌법국가의 권위도 상식개념에 기반을 두고 설명한다 그리고 민주적
정당성의 관점에서 입법의 우위를 인정하는 까닭에 성찰적 판단에 입각한 법관의
검증에는 한계가 있다는 태도를 견지한다87)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렌트가 제시한
법관의 성찰적 판단 유형에 대해서는 다양한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우선 이것이
예외 상황에서 적용되는 판단모델로 상정된 것이며 무엇보다도 ldquo규범적 상식rdquo에
대한 단일한 이해기반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법관 개인의 주관적 정치적 신념
이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길을 피할 수 없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성찰적
판단력은 결국 레토릭에 불과한 것인가 아렌트는 그러나 무엇이 ldquo특정 상황에 맞
는 공통감각(situierte Gemeinsinn)rdquo인지에 대한 공동의 인식은 가능하며 또 법관의
lsquo하는rsquo 판단에 들어있는 정치적 함의를 성찰적 판단력으로 검증하는 것도 가능하
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아렌트가 마지막 검증심급으로 원용하는 것이 바로 판
단에서의 양심의 심급이다 그것이 과연 동의할 수 있는 합의형태로서 충분한지를
스스로 검증하는 이 심급에서 판단자는 명령조로 자기에게 전해지는 소리를 듣게
된다 ldquo멈춰 나는 그것은 할 수 없어rdquo88) 판단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 멈추는 것
이 가능한 이 성찰적 심급에서는 칸트와 달리 할 수 없는 이유로써 결과도 고려
된다 lsquo보는 사람rsquo이 자기 안에서 지켜보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상황은 토마스 아퀴
나스의 양심론에 비추어 다음과 같이 묘사될 수도 있겠다 지적 본성을 가진 인간
존재가 보편법칙에 관한 지식을 개별 행위에 적용하기 위해 판단하고 선택할 때
행위자는 갈등 상황- ldquo그렇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rdquo는
상황-에 처하여 멈칫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데 이때 그는 단지 갈등하고
선택하는 역할만 하지 않고 갈등하고 선택하는 이 과정을 ldquo관찰하고 목격하는 증인rdquo
의 역할도 한다는 것89)
86) 드워킨에 의하면 해석적 탐구는 ldquo어떠한 증명도 허용치 않고 어떠한 수렴도 약속치
않는 탐구rdquo이다(드워킨 정의론 203면)87) Rosenmuumlller 앞의 책 30면88) Hannah Arendt Uumlber das Boumlse Eine Vorlesung zu Fragen der Ethik Hrsg v J Kohn
(Muumlnchen 2003) 52면89) 지적 행위자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자신의 내면의 갈등과 선택과정을 바라보는
9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Ⅹ 방법에서 덕목으로
헌법 제103조는 한 면으로는 헌법과 법률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 면으로 해석자에게 여하한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lsquo제약
의 차원rsquo과 lsquo자유의 차원rsquo을 동시에 담고 있다 법관은 자유로울 때에라도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며 법에 구속될 때에라도 전적으로 구속되지는 않는다는 뜻이
기도 하다 이 lsquo자유와 구속의 변증법rsquo에 비추어 지금까지 논한 주제에 대해 몇 가
지 입장을 정리해 보자 첫째 법관에게 있어서 독립은 확정된 원칙이나 그것자체
로서 달성해야 할 최종목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법관의 독립은 완성형이 아니라
끊임없는 진행형의 과제로서 그 직무수행에 대한 신뢰와 병행하여 점진적으로 이
루어지는 것이다 둘째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에 있어서 구속은 법률에 무조건 복종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판결에 대한 윤리 (내 ) 확신과 함께 법률에 복종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법관이 실정법률에 반하는 결정을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법
관은 객관성을 빌미로 법률 뒤에 숨는 익명적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
미하는 것이다 셋째 독립적인 법관의 양심은 lsquo법과 상충한다rsquo기보다는 lsquo법을 실
한다rsquo는 의미를 지닌다 넷째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서 반추하면서 lsquo하는
사람rsquo인 동시에 lsquo보는 사람rsquo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성찰 인 인물상으
로서만 설정될 수 있다
해석적 탐구는 우리의 이해를 넓히기 위해서 필요하지만 이해에서의 우리의 피
할 수 없는 한계를 깨닫기 위해서도 필요했는지 모른다 엥기쉬는 법해석방법론에
대한 저술의 마지막 부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ldquo방법론에 천착하다 보면
애초의 문제였던 법률로부터 훨씬 더 먼 곳으로 이끌려 간다rdquo 지금까지 필자는
법관의 법해석과 관련하여 방법론의 의의와 한계를 논하고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과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에 비추어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이 법해석론
의 불가결한 부분으로 들어가게 되는 이유도 밝혔다 그리고 해석적 차원에서의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는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행위를 목표로 하는
탐구라는 것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필자는 이 모든 논의들을 매개로 방법론이 우리를 더 멀리 덕
목론으로 데려가는 과정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드워킨의
상황에 대한 이 묘사 부분은 이경재 ldquo토마스 아퀴나스의 양심 개념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375면을 참조했다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7
헤라클레스를 잠시 불러올 필요가 있다 해석문제를 누구보다도 더 진지하게 다룬
드워킨은 마지막에 헤라클레스를 내세운다 주어진 사건에서 무엇이 법인지에
대해 도덕적 의식을 가지고 법실무 전체를 원리정합적으로 정당화하라는 요청에
부응하여 자신의 신념에 기초한 결정을 내리는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의 구성적
해석에서 법관의 양심이 기능하는 국면은 어디일까 송민경 판사는 드워킨의 구성
적 해석론에 입각하여 양심을 구체적 법논증과정의 일부로 포함시키면서 이때 양
심이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라는 지침으로 기능한다고 설명한다90)
그런데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는 지침으로 기능하는 것을 양심이라
고 보게 되면 양심의 문제는 논증적 합리성의 차원 즉 논증의 성공으로 종결짓게
된다 그러나 법적 결정의 정당성 문제는 법관의 입장에서는 논증의 성공 문제로
다루어지지만 법관의 성공적인 논증에 따른 판결의 결과로부터 영향을 받는 시민
의 입장에서 보면 성공적인 논증만으로는 해석이 정당화된다고 볼 수는 없다
성공적인 논증은 법적 결정의 정당화에 필수적이기는 하나 충분한 조건은 되지 못
한다 해석이 궁극적으로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사법적 도덕성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 사법적 도덕성은 헤라클레스가 지침으로 삼는 원리적 도덕성의 실현과는 다른
것이다 만약 패소한 시민이 다른 헤라클레스에게 갔더라면 즉 다른 법원리에 기
초한 신념을 토대로 다른 결정을 내린 다른 법관에게 갔다면 그는 승리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왜 헤라클레스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하
는지에 대한 답이 필요한 것이다91) 헤라클레스가 실무에 대한 최상의 정당화를
도모하는 법적 이상주의자라면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법원 문을 두드린 시민도
어느 의미에서 ldquo법이상주의자rdquo92)이다
법해석 작업의 주관의존성이라는 불가피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재판이라는 특수
한 공적 활동이 법관이라는 특수공직자에 의해 운영되고 유지된다는 것은 시민들
-소송에서 패한 시민들을 포함하여-편에서 보면 법을 해석하는 법관에 대한
신뢰가 전제된다는 것이다 법관의 독립적 활동은 법관의 특권 행사가 아니라 사
90) 송민경 앞의 글 38면 20면91) 사법적 덕목과 연관하여 이 부분을 다룬 글로는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5면 이하
92) 법원 문을 두드리는 시민에 대한 이 표현은 심헌섭 ldquo법조윤리의 좌표 거시적 관점에서 본 전문윤리로서의 법조윤리rdquo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편 法律家의 倫理와 責任 박영사
(2003)에 나온다
9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법과정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응당한 몫이 돌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존중하는 바탕에는 일종의 상호성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 그 또한
시민이기도 한 법관이 동료시민들에 대해 가지는 배려와 존중의 원칙이 그것이다
여기서 사법적 덕목에 대해 자세히 논할 수는 없다93) 예의 성실 신중 절제
용기 공정 겸손 의사소통 능력 형평 시민에 대한 배려와 존중 등등 이것들은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바탕을 이루는 양심의 덕목들일
것이다 양심이라는 단어가 그렇듯이 덕목이라는 단어도 오늘날 진부해진 표현
이며 거의 사라져가는 단어다 윤리적 태도로서의 덕목은 관찰하기도 배우기도
어렵다 그러나 올바른 판단과 결정이 법관이라는 개인을 거치지 않고 법령집
자체로부터 반사적으로 튀어나오지 않는 한 이 덕목들을 내면화하고 지향하려는
태도 없이는 lsquo종국적인rsquo 판단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써 필자는 헌법 제103조를 통해 법해석에서의 방법론의 문제가 덕목론이라
는 다음 과제로 이어진다는 점을 밝혔다고 생각한다
투고일 2016 4 6 심사완료일 2016 5 18 게재확정일 2016 5 20
93) 법관의 개별적인 덕목들과 이것들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는 박은정 강태경 김현섭 바람
직한 법관상의 정립과 실천 방안에 관한 연구 법원행정처(2015) 제5장 참조할 것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9
참고문헌
권영성 헌법학원론 법문사(2010)
김철수 헌법학신론 박영사(2013)
김현섭 ldquo법관의 양심과 독립에 대한 헌법 제103조의 해석rdquo 한국법철학회 월례독회
발표문(2015 4 25)
김황식 연필로 쓴 페이스북 之山通信 나남(2013)
박은정 왜 법의 지배인가 돌베개(2010)
박은정 강태경 김현섭 바람직한 법관상의 정립과 실천 방안에 관한 연구 법원행
정처(2015)
사법연수원 법조윤리론(2014)
성낙인 헌법학 법문사(2014)
송민경 ldquo법관의 양심에 관한 연구rdquo 사법논집 제58집(2014)
심헌섭 ldquo법조윤리의 좌표 거시적 관점에서 본 전문윤리로서의 법조윤리rdquo 서울대
학교 법과대학 편 法律家의 倫理와 責任 박영사(2003)
분석과 비 의 법철학 법문사(2001)
양창수 ldquo바람직한 법관상-기예와 지혜 사이rdquo lt근대사법 및 한성재판소 설립
양심을 ldquo세상 사람을 향해 움직이는 마음rdquo으로 묘사하면서 양심이 있어서 책임있
는 인식의 기능에 주목한 사상가도 있다30)
서양에서 근대를 전후로 양심의 주관화 경향이 강하게 대두된 데에는 종교분쟁
등의 영향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은 가치상대주의라는 시대정신의 영향 하에
양심은 도덕적 판단과 인격을 근거지우는 현상으로 파악되면서도 내용적 측면보다
는 형식적 측면에서 고찰되고 간주관적 논의가능성이 배제된 채 그 논의의 폭이
좁아져 거의 개인의 자기결정권 영역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우리 헌법 제19조의
양심의 의미도 이런 자기결정에서의 최종심급 역할이라는 맥락에서 읽히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살펴봤듯이 주관화의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기 이전의 사유전통에
서는 양심의 자기결정 능력보다는 스스로에게 도덕적 의문을 품는 능력 ldquo함께
안다rdquo라는 책임성 쪽에 더 비중이 놓여 있었다 이런 사유배경에 비추어 본다면
헌법 제19조의 양심은 근대 주관화의 영향의 산물로 이해할 수 있고 이에 비해
헌법 제103조에서 법관과 관련하여 언급된 양심은 근대 이전의 ldquo함께 안다rdquo의 사
유전통의 흔적을 지닌 개념으로 볼 수 있다
Ⅳ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의 완화 경향
앞에서 살펴봤듯이 역사적으로 법관의 독립이념은 법관은 오로지 법률에만 구속
된다는 것을 전제로 탄생했다 그리고 이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은 법률의 총합으로
27) 레비나스에 대해서는 김연숙 ldquo레비나스의 양심론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제3부 제3장 참조28) Karl Otto Apel From a Transcendental Semiotic Point of View Manchester University
Press (1998) 52면 259면 양심이 지니는 공적 관찰이나 감시기능 부분에 주목한
Apel에 대해서는 백춘현 ldquo아펠의 양심론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344면 이하29) 맹자의 양심론에 대해서는 장승희 ldquo맹자의 양심론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제1부 제1장
참조30) 왕수인은 양심과 양지(良知)라는 표현을 함께 썼다고 한다 ldquo남의 아픔을 느끼기 위해
서는 예민하게 lsquo생각rsquo해야 한다rdquo 여기서는 이혜경 ldquo왕수인의 양심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79면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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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 법질서는 통일적이고 자기충족적인 시스템을 이룬다는 가정에 기초하고 있
었다 그러나 이 가정은 그 자체로 애초 한계를 지닌 것이기도 하지만 법의 생태
적 기반이 변하면서 이 법률구속원칙은 점차 상대화 내지 약화되는 방향으로 나아
가게 되었다 입법자를 기다릴 수 없는 빠른 사회변화 자유법운동 입법양의 폭발
적인 증대 일반조항 도입 등 입법스타일의 변화 복지국가 대두 사회정의의 요구
헌법재판 활성화 등의 흐름은 법관의 법률구속메커니즘이 작동하기 어려운 여건을
만들어 가게 된 것이다 이른바 lsquo법관법rsquo의 대세 흐름이 나타난 것이다 특히 지난
수십 년간 확대된 입법영역은 형법과 같은 규제입법과 달리 사회복지생활보호
건강 증진남녀평등청소년보호장애인보호적극적 평등조처 등처럼 정치적 비전과
목적을 담은 한마디로 정책촉진적 성격을 지닌 법률들이었다 이와 같은 야심찬
입법스타일은 법적용단계에서 법관이 바람직한 제도 및 정책 내용에 대해 고려케
함으로써 목적적 법논증으로 기울게 하고 구체적 이익을 비교형량하는 심사방식
을 확대시키는 등 좁은 의미의 실정법률 해석보다는 법형성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 것이다31) 특히 이 흐름은 20세기말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법실증주의에
제동이 걸리는 분위기와 겹치면서32) 법철학에서도 전통적인 포섭논리나 삼단논법
은 실제로 법관들에게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지적과 함께 법관의 법률구속원
칙에 회의적인 성향의 논의들이 강세를 보이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법발견 과정에
대한 심화된 통찰을 통해 lsquo선이해rsquo의 문제를 재평가하게 만든 철학적 해석학과 문
언의 의미론적 구속력에 회의를 제기케 한 언어이론은 법철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들 이론에 입각하여 이제 법의 흠결 시와 같은 예외적인 상황에서 법관
의 법형성이 불가피하다는 수준의 주장을 넘어 법률텍스트를 통한 구속가능성 자
체를 의문시하는 주장까지 나오게 되었다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의 실현에 대한 기대가 점점 약화되고 그래서 누구의 표현
대로 법률이 해석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해석이 법률을 지배한다고 말할 정도가
31) 사회변화에 따른 법관의 역할 변화에 대해서는 박은정 왜 법의 지배인가 돌베개(2010) 제6장을 참조할 것
32) 울프리드 노이만(Ulfrid Neumann)은 지난 2015년 10월 1일 고려대학교 초청강연에서
ldquo실증주의 이후 시대의 법률과 판결rdquo이라는 주제로 발표하면서 법학적 사고가 ldquo법실
증주의 이후의 시대rdquo로 넘어갔다고 진단하고 그 배경으로 세계화 등의 흐름으로 국제
상거래관습법(lex mercatoria)처럼 입법당국에 의한 제정이 아닌 사회적 실천에 의거한
법제정 사례 법원리의 중요성 대두 인권사상 증대 등을 들고 있다 그러면서 법실증
주의로부터 멀어지는 만큼 법관의 법률구속원칙도 상대적으로 완화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77
되면 다시 제기될 수밖에 없는 물음이 바로 입법기관과 법적용기관 사이의 권력
균형 문제다 이 권력 균형은 특히 법 이라는 개인에 의해 매개된다는 점에서 문
제가 된다 오늘날 ldquo사법국가rdquo ldquo법관공화국rdquo ldquo사법엘리트rdquo ldquo사법의 정치화rdquo 등을
지적하는 소리는 입헌민주주의 기획의 초기단계에서 일찍이 해결했다고 여겼던
문제들이 다시 등장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법관의 법률구속의 전제 및 그 가능성
법원의 중립성 법관의 민주적 정당성 사법관료주의 등의 문제가 그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물음이 떠오른다 해석자의 자유를 제
한하고 법관의 법률구속을 보장할 확고한 법해석방법론은 가능한가 법관의 법률
구속에 관한 기술적 제도적 보장책은 가능한가 필자는 이 물음들에 대체로 회의
적인 전망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물론 법해석방법의 무용론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법률에 구속되는 법관상이 약화되고 앞으로도 점점 더 약화될
것이라는 전망 하에 어느 때보다도 더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될 법관의 독립 문제
를 염두에 두면서 법해석방법론의 문제를 재검토하고자 한다
Ⅴ 법해석방법론의 문제점과 한계
법이 있는 곳에 해석이 있다 법학의 강점도 해석학적 잠재력에 있다 법관의 임
무는 법률을 적용하기 위해 법문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법해석방법론은 법
해석과정에서 법관의 자유에 일정한 제약을 가하고 법관의 법률구속이념을 실현하
기 위해 고안되고 발전된 것이다 해석에서는 무엇이 최선의 해석인지를 둘러싸고
언제나 논쟁과 불일치가 생기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해석작업은 인간의 판단과 행
위의 영향 하에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법관이 따라야 하는 법률 자체에는 이미 법적용자를 법률에 대해 어느 정도 독
립적이게 만드는 여러 표현방식들이 들어 있다 예컨대 lsquo야간rsquo lsquo소음rsquo lsquo위험한 물건rsquo
lsquo적절한 조치rsquo 등 개념의 내포와 외연이 확정적이지 않은 법개념들이 대표적이다
이런 불확정적 개념들은 법명제의 구성요건 단계에만 들어 있는 게 아니라 법률효
과에서도 등장한다 이른바 lsquo규범적 개념rsquo들도 그런 표현방식에 속한다 lsquo음란한rsquo
lsquo건전한rsquo lsquo불명예스러운rsquo 등의 개념들은 기본적으로 지각가능한 대상을 서술하는
개념과 대비하여 의미내용이 가치판단에 근거할 때만 파악된다는 점에서 규범적
이다 이때 가치판단은 반드시 주관적 개인적 평가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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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의 평가도 포함할 것이지만 어쨌든 이 판단과 관련한 어느 정도의 불확정성은
감수해야 한다 법관의 법률 구속 의무를 느슨하게 만드는 이런 개념군에는 재량
도 포함된다 오늘날 재량개념은 ldquo법적으로 구속되는rdquo 재량으로 이해되지만 이때
판단의 여지 안에 들어오는 여러 대안들 가운데서 최종 혹은 최선의 대안을 확정
하는 데 있어서 결정자의 개인적 확신을 허용할 수밖에 없다 일반조항도 표현 그
대로 높은 일반성을 띰으로써 법적용자로 하여금 자기 앞에 놓인 사례를 광범위한
사례집단들에 적응시켜가면서 법률효과를 귀속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33)
위에서 언급한 불확정 법개념이나 규범적 개념 등을 적용하는 데는 가치판단
요소가 수반된다 이런 개념들을 적용할 때 법관은 일정한 범위 안에서 입법자를
대신하여 가치판단 내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것이다 또 법관
은 법의 lsquo흠결rsquo을 보충하거나 법질서 안에서 이따끔 발견되는 lsquo오류rsquo를 수정해야
할 부득이한 상황에도 처하게 된다 이때는 법관은 스스로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찾아 나서야 한다 lsquo법의 일반원칙rsquo lsquo법의 정신rsquo lsquo평균인의 척도rsquo lsquo비례성원칙 lsquo이익
형량rsquo 등은 이때 법관이 의존하는 사유 장치들이며 이것들을 원용하는 데도 가치
판단적 요소가 개입한다 이때 판단자는 무엇이 사실상 효력을 갖고 있는 윤리적
견해인지 확인해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사실로서의 합의가 올바른 법적 결론에
도달하게 하는지에 대해서도 숙고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법적용자는 때로는 평
균인 테스트 같은 객관적인 척도에 의지하지만 또 때로는 개인적 견해를 더 많이
펼칠 수 있는 일정한 판단의 여지를 가지게 된다
이렇게 해석과정에서 불가피한 lsquo판단의 여지rsquo 즉 해석과정에 불가피하게 개입되
는 가치판단 요소 때문에 ldquo해석의 건전성rdquo을 둘러싸고 논란이 생기고 해석의 정당
화와 관련하여 회의가 생긴다 가치판단과 관련된 부분이 불가피하게 주관적 요소
를 끌어들이게 되고 이로 인해 법규범의 효력이 상대적이고 불확실한 영역으로 떨
어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단자는 자신의 결론이 불확실성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자신의 해석에 대한 정당화를 포기할 수 없다 법을
해석한다는 것은 ldquo그 법률을 특정 사안에 적용하는 것을 정당화한다는rdquo34)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확정적인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사례에서도 요구되는
33) 불확정적 개념 규범적 개념 재량 일반조항과 관련한 자세한 설명은 칼 엥기쉬 법학
방법론 안법영윤재왕 옮김 세창출판사(2011) 182면 이하에 잘 정리되어 있으며 필
자도 이 부분을 참조했음을 밝힌다 34) 닐 맥코믹 로버트 서머즈 ldquo해석과 정당화(上)rdquo 박정훈 역 법철학연구 제5권 제2호
(2002) 18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79
개인적인 단은 도덕적 상대주의자들이 말하는 개인적인 취향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해석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올바른 해석기준을 수립하고자 법률가들은 각
기 지금까지 다양한 해석방법에 의존해 왔다 올바른 해석을 위한 확고한 기준을
수립할 수 있다는 것은 찬성하는 혹은 반대하는 해석논거들 사이의 상대적 비중을
결정하는 명확한 규칙을 수립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즉 어느 한 해석
논거가 다른 해석논거에 의해 배제되는 조건이나 선택된 해석을 정당화하는 데
필수적인 한 논거가 다른 논거보다 우월하기 위한 조건 한 논거에 누적을 통한
비중이 부과되는 조건 등을 제시해줄 일관된 정보와 지침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
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여러 해석방법들 사이에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다는 것
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시도는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했다 동일한 유형의 논거일지
라도 각각의 정당화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비중을 갖게 될 뿐더러 언어적 해석
방법 체계적 해석방법 목적적 해석방법 등으로 제시되는 여러 해석방법들이 한
줄로 세우기에는 한마디로 너무 이질적이다35) 물론 이들 해석논거들의 상호작용
을 검토하면서 잠정적인 서열을 제시하는 것은 가능할 수도 있다36) 그러나 이 서
열은 기껏해야 ldquo해석을 위한 노력의 경제성 원리rdquo 정도를 말해 줄 뿐이기 때문에
쉽게 바뀔 수 있다37)
드워킨이 옳게 지적한 대로 기본적으로 가치판단과 관련된 해석방법들은 위계
적일 수 없고 ldquo상호지지적rdquo인 관계에 놓일 뿐이다38) 이 때문에 방법론적 규칙을
세우려는 시도는 언제나 무망해지는 것이다 또한 법해석에 있어서 언어란 단어의
의미를 식별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 행위의 의미를 식별
하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론 풀러(Lon Fuller)가 지적한 대로 ldquo언어
를 통한 의사 전달은 어느 한 사람으로부터 다른 사람에게로 의미가 든 상자를 발송
하는 식rdquo39)은 아닌 것이다
35) 울프리드 노이만 ldquo실증주의 이후 시대의 법률과 판결rdquo 강연문(주 32) 노이만에 따르
면 예컨대 체계적 해석 방법에 따른 논거도 그것이 논리적 일관성 획득의 맥락에서
인지 아니면 가치평가의 일관성 보장이라는 맥락인지에 따라 전혀 다른 비중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36) 대체로 언어적-체계적-역사적-목적론적 해석방법의 순서로 언급되는 데 대해서는 심헌섭
분석과 비 의 법철학 법문사(2001) 217-218면37) 맥코믹과 서머즈는 비교법적 연구결과를 통해 올바른 해석을 위한 지침 수립은 어느
국가의 법체계에서도 지금까지 성공적이지 못함을 밝힌다(앞의 글 210면)38) 로널드 드워킨 정의론 박경신 옮김 민음사(2015) 309면
80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결론적으로 해석방법론으로부터 법관은 불확실성을 떨쳐 낼 수 있는 확실한 정
보제공을 기대하기 어렵다 해석논거를 위한 결정적인 기준을 제공하는 해석방법
에 대해 불안정한 형태로나마 이론적 합의를 찾기 어렵다면 엥기쉬의 지적대로
해석방법론은 공중에 떠있는 상태다40) 법학에서 방법론의 융성은 역설적으로 법
학이 이 부분에 취약하다는 암시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해석자로서의 법관을
최종적으로 인도하는 전략은 무엇일까 다음과 같은 고민을 들어보면 적어도 그것
은 방법론상의 합의에 대한 기대 같은 것은 아닌 것 같다 ldquo우리들은 일정한 결론을
내리고도 그 결론이 가장 적절sdot타당한 것이라고 보증받을 수 없다 그 결론을 낸
시점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들은 자기의 결론이 그러한 불확실성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그것을 자기의 전인격적 책임 아래 끝을 내고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비판과 평가에 맡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rdquo41)
해석방법론이 공중에 떠있는 상태라면 법관을 법률에 구속시키기 위한 방법론
적 보장책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런 가운데 ldquo자기의 전인격적 책임 아래rdquo ldquo사려
깊고 균형잡힌 총체적 관념rdquo ldquo인생 그 자체로부터 지식rdquo 등에 대한 호소를 듣는다
이것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법발견으로 불리든 법인식 혹은 법형성으
로 불리든 법적으로 올바른 결정을 이끌어낸다는 것은 순순히 lsquo앎rsquo의 문제만은 아
니라는 것이다 실천철학의 전통 용어를 빌어서 말한다면 그것은 이론지 이상의
실천지를 요구하는 활동이다 즉 법관의 해석활동은 이론지와 실천지를 결합하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이 주제로 다가가는 한 우회로로서 우선 지적 활동으로서의
법관의 해석활동의 특성에 대해 살펴보자
39) 론 풀러 법의 도덕성 박은정 옮김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2015) 314면 40) ldquo그러나 해석론 전체에 대한 확고한 이론적 토대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서열관계에
관한 모든 이론들은 여전히 공중에 떠 있다rdquo 엥기쉬 앞의 책 137면41) 사법연수원 법조윤리론(2014) 31면 그밖에 Benjamin N Cardozo The Nature of
Judicial Process Yale University Press (1921) ldquo언제 하나의 이익이 다른 이익을 능가
하는지를 묻는다면 hellip 경험과 연구와 성찰로부터 요컨대 인생 그 자체로부터 그 지식
을 얻지 않으면 안된다고 답할 수 있을 뿐이다rdquo(여기서는 법조윤리론에서 재인용) 또한 맥코믹서머즈 ldquo해석과 정당화(下)rdquo 박정훈 역 법철학연구 제6권 제1호(2003) 348면 ldquo해석은 간주관적으로 승인된 모든 법적 가치들에 대하여 사려깊고 균형잡힌
총체적 관념을 획득하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제대로 행해질
수 있다rdquo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1
Ⅵ 법관의 해석활동 실증주의의 대척점
앞에서 언급한 대로 해석에서는 무엇이 최선의 해석인가를 둘러싸고 언제나
논쟁과 불일치가 따른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누군가가 텍스트를 해석한다고
말하는 순간 그는 실증주의의 대척점에 서게 된다 실증주의과학의 의미에서는 논
쟁의 여지가 있는 것은 원칙적으로 과학일 수 없기 때문이다 법실증주의사고에서
해석 문제가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법을 근본규범에 입각
한 자기준거적인 구조로 보는 한스 켈젠(Hans Kelsen)의 순수법학이나 법적용과정
을 규칙에 의해 지도되는 과정으로 보는 하트(H L A Hart)의 분석법학에서 해석과
관련한 어려움은 다루고 있지 않다42)
켈젠은 순수법이론(Reine Rechtslehre)에서 정당한 해석만이 허용된다는 주장
은 허구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면서 해석의 건전성 문제나 정당화 문제를 법이론
안에서 다루기를 거부한다 법을 자기준거적인 것으로 보는 관점은 한마디로 해석
(행위)주체의 입장을 부정하는 것이다 켈젠은 법단계설을 바탕으로 법적용을 상위
규범의 수권에 의해 하위규범이 구체화되는 과정으로 보고 여기에 헌법의 수권을
받아 법률을 제정하는 입법자도 포함시킨다43) 이에 따라 법적용도 입법의 한 형
태로 설명된다 법관에 의한 법형성의 동기는 이를테면 입법부가 유독 다른 법률
이 아닌 이 법률을 통과시키는 동기와 같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켈젠은 판단활동
에서 인지적 요소와 의지적 요소를 엄격하게 구별하면서 법관의 판단활동을 순전
한 의지활동으로 보고 이 법관의 활동에 대해서만 (유권)해석이라는 표현을 사용
하고자 한다 그리고 법학적 해석에 대해서는 법규범의 가능한 의미들을 밝히는
것으로서 법률에 따른 결정의 범위를 제한하는 정도의 의미를 부여한다
법단계설에 따르면 상위규범이 정한 일정한 범위 안에서의 수권에 따라 하위규
범이 작용한다 이때 상위규범의 수권은 모든 세부적인 내용들에 대해서까지 정해
42) 켈젠은 순수법이론(Reine Rechtslehre) 제1판(1934) 제6장에서 해석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부분과 거의 같은 논문 ldquoZur Theorie der Interpretationrdquo이 심헌섭 젠법이론선집 법문사(1990) 97면 이하에 실려 있다 윤재왕 교수는 Reine Rechtslehre 제1판과 제2판
(1960)을 비교하면서 해석방법으로부터 오는 규범적 구속력을 일체 거부하는 켈젠의
입장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윤재왕 ldquo한스 켈젠의 법해석이론rdquo 고려법학 제74호(고려
대학교법학연구원 2014) 525면 이하 하트의 대표적인 저서 법의 개념의 색인 항목에는
lsquo해석rsquo이 빠져있다 43) Hans Kelsen Allgemeine Staatslehre (Berlin 1925) 231면 이하
8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그래서 ldquo상위단계의 법생성으로부터 하위단계의 법생
산으로의 전환은 단지 상위단계가 정해 놓은 범위를 채우는rdquo 활동으로서 이때
ldquo언제나 상위단계에는 없는 내용적 요소가 하위단계에 추가되어야만rdquo 한다44) 이
내용을 채우는 부분과 관련하여 상대적 불확실성이 생기는데 켈젠은 이 문제를
ldquo자유재량rdquo의 문제로 다룬다45) 이는 하트가 규칙의 체계로서의 법체계를 완결된
구조가 아닌 열린 구조로 봄으로써 상대적 불확실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법관의
재량사항으로 보는 것과 같다 하트의 경우 중심부와 주변부라는 극히 단순화된
이분법을 끌어들여 이 불확실성 문제를 처리하고자 했다면 켈젠의 경우는 인식작
용과 의지작용의 이분법을 끌어들임으로써 이 문제를 처리하고자 한 것이다
판결을 법관의 의지활동으로만 이해하는 입장을 취하게 되면 법관에게 결정에
대한 근거 제시 요청을 할 수 없게 된다 마치 신의 심판에 대해 근거 제시를 요구
할 수 없듯이 말이다 결국 켈젠의 법이론상으로는 해석은 법학의 문제가 아니며
그러므로 분석적 법실증주의와도 무관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46) 이런 이유에서 그
는 정당한 해석만이 허용된다는 주장이나 해석방법만으로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에
이를 수 있다는 주장을 거부하면서 심지어는 상위규범에 제시된 범위를 넘어서는
해석의 효력조차 적극적으로 인정함으로써 어느 의미에서는 해석이론의 존재기반
자체를 무너뜨린다47)
켈젠이나 하트가 법이론에서 해석의 의미를 축소한 이면에는 이분법이라는 과도
한 사유의 단순화가 놓여 있다 그러나 켈젠이 생각하는 것처럼 판단에서 인식적
요소와 의지적 요소의 확고한 경계가 유지되는지는 의문이다 또 중심부와 주변
부에 대한 하트의 주장도 지나친 단순화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어쨌거나
켈젠이 합리적인 해석방법을 추구하는 법이론의 효용가치를 한껏 떨어뜨렸다고
해서 이제 어차피 정답은 없으니 법대에 앉은 법관은 자기 임의로 무엇이든 해도
된다고 켈젠이 주장했을 리는 물론 없을 것이다 법이론의 과도한 정당성 주장을
거부하는 데서 오히려 순수법학의 비판적 잠재력을 찾을 수 있다고 보는 학자들은
여기서 켈젠이 강조한 순수화 즉 탈정치화는 법학에 관한 것이지 법 자체에 관한
44) Kelsen Allgemeine Staatslehre 243면 여기서 번역은 윤재왕 앞의 글 535-536면에서
재인용45) Kelsen 앞의 책 243면 이하46) 켈젠에 있어서 법해석은 이론상으로는 법학보다는 정치학이나 사회학에 속하는 문제
에 더 가깝다고 지적한 견해에 대해서는 론 풀러 앞의 책 312면 47) 이에 대해서는 윤재왕 앞의 글 553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3
주장이 아니었음을 상기시킨다48) 즉 법 자체는 결코 정치와 분리될 수 없다는
점에서 법실무에 대한 학문이론의 무가치성을 주장하는 순수법학은 실무의 법
적용자로 하여금 자신의 활동이 정치적 활동임을 깨닫고 책임을 느끼게 하는 계기
를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윤재왕 교수도 ldquo켈젠 해석이론의 배후rdquo로 들어가 방법
이론으로부터의 어떤 구속력도 거부되는 데서 생기는 공백을 켈젠이 법관 자신의
자기이해와 책임성 문제로 채운다고 지적한다 ldquo법관의 판결은 결코 순수한 것일
수 없으며 그런데도 자신의 판결이 순수한 인식의 소산이라고 강조한다면 이는
정치적 책임의 회피이고 동시에 이데올로기적이라는 혐의에 노출되지 않을 수
없다rdquo49) 이 문구가 켈젠 자신으로부터 나왔다면 아주 좋았을 것이다 자신의 직
무의 중요성과 책임에 대한 실천적 깨달음은 해석의 정당화를 목표로 하는 인식적
노력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켈젠의 순수법이론의 기획은 서로
붙어 있는 양면을 떼어 놓으면서 이것을 다시 붙일 수 있음을 보여주려 한 것일까
Ⅶ 법관의 해석활동 가치판단과 lsquo정답테제rsquo 문제
켈젠처럼 실증주의적 사고에 따르든 아니면 비실증주의적 사고에 따르든 가치
판단 문제에서 해석방법만으로는 하나의 정당한 결정을 도출할 수 없다고 생각한
다면 이는 해석의 차원에서 가치에 대한 이해 시도는 진리 추구와는 무관하다는
주장으로 귀결되는가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해석대상의 의미에 대한
관심과 최선의 이해에 대한 관심은 아무래도 진리 추구라는 목표를 향한다고 봐야
한다 법적 결정은 물론 법관의 권한에 속하지만 그것을 정당화해주는 원천은 법
관이라는 lsquo지위rsquo가 지니는 형식적 권한이 아니라 판결이 정당하다는 근거 제시에
있다 법판단을 정당화해주는 모델은 울프리드 노이만(Ulfrid Neumann)이 지적한
대로 권위를 통한 정당화모델보다는 진리를 통한 정당화모델에 더 가깝다50)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재판활동은 엄연히 사법권이라는 공권력의 작용이라는 점에서
독립적인 법관의 재판활동을 그 ldquo계획적이고 진지한 진리 탐구 활동rdquo적 측면 때문
48) 법학의 탈정치화를 ldquo정치적 허무주의rdquo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데 대해서는 켈젠 ldquo순수법학이란 무엇인가rdquo 젠법이론선집 280-282면
49) 윤재왕 앞의 글 559면50) 울프리드 노이만 ldquo법 진리 권위rdquo 2013 4 6 한국법철학회 강연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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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학문의 자유의 한 표현으로까지 보려는 것은 무리다51)
오늘날 가치상대주의 분위기는 실천적 물음에서 진리 도달가능성에 대한 회의를
과장한다 그러나 진리가 뭐냐는 빌라도의 물음에 비록 확신에 찬 대답을 못한다
하더라도 법에서 진리 내지 정당성 추구의 포기는 파국을 의미한다 국가권력
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도 진리라는 규제이념이 전제되기 때문
이다 독립된 사법부가 심급구조와 집단적 의사결정의 형태로 스스로의 시정 기구
를 가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물론 진리에 대한 주장은 잠정적이고 수정가능하다
lsquo참이냐 거짓이냐rsquo는 오로지 서술적 명제에만 한정하여 검증될 뿐이라는 협소한
학문관을 따른다면 법학은 학문 안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법
학이 그런 협소한 학문관을 받아들여야 할 필연성은 없다 법해석자는 자신의 해
석적 판단이 진리라는 주장을 무한정 내세우지는 못하면서도 진리 추구를 피할
수 없다52) 론 풀러(Lon Fuller)의 지적대로 ldquo법이론이 최고의 법적 권위를 엄격하
게 정의하는 일에 큰 비중을 두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이 점이 모호해지면 필경
전체로서의 법체계가 와해될 수 있다rdquo53)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법을 민주
주의의 언어로 설명하는 오늘날 의회와 행정처럼 다수결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기
관도 아닌 사법의 소수 전문 엘리트의 지배를 권위모델만으로 정당화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법을 준수하는 시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시민들은 자신에게 유죄
판결을 선고한 세속의 법관에게 그 유죄판결의 근거를 알고 싶다고 요구할 수 있
으며 물론 당연히 요구한다
법관은 판결에서 논증을 통해 최상의 근거 제시가 이루어진 결정을 해야 한다54)
51) ldquo일부 사람들 중에는 이러한 법원의 권력기관적 성질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
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helliphellip 가끔 법관의 일을 조용한 방에서 소송서
류를 꼼꼼하게 읽어 파악한 사실에다가 법을 논리적으로 적용하는 단순히 지적(知的)인 작업이라는 시각에서만 말씀하시는 분을 만나면 그 분에게 재판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법대에 앉아 있는 법관이 어떻게 보이는지 물어보고 싶어집니다rdquo 양창수 ldquo바람직한 법관상 - 기예와 지혜 사이rdquo lt근대사법 및 한성재판소 설립 120주년 기념
1895sim2015 소통컨퍼런스 역사에 비춰 본 바람직한 법관상gt 자료집(서울중앙지방법원 2015 5 11) 15면 ldquo계획적이고 진지한 진리 탐구 활동rdquo이라는 표현은 라드브루흐에서
나온다 구스타브 라드브루흐 법철학 최종고 옮김 삼영사(2011) 238면 52) 드워킨 앞의 책 208면 53) 론 풀러 앞의 책 211면 풀러의 문장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ldquo하지만 이 경우도
위로부터의 지시 또한 목적의식에서 비롯되는 지적 활동을 완전히 생략할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rdquo54) 물론 진리 요청과 관련하여 개별 법관의 관점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며 민주국가에서
포기될 수 없는 진리 요청은 법학을 포함한 법체계 전체로 하여금 진리 요청에 어떻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5
이때 정당한 근거 제시가 이루어진 결정과 관련하여 그것이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
이라는 주장을 펼 수 있는가 앞에서 검토한 대로 켈젠의 순수법이론은 그런 주장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이에 비해 드워킨은 법적 판단에 있어서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이 원칙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ldquo정답테제rdquo로 불리는 이 주장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학자들이 지적한 대로 존재사실에 대한 주장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하나의 ldquo규제이념rdquo으로 받아들이는 게 맞는 것 같다 즉 드워킨의 정답테제
는 ldquo유일하게 정당한 결정rdquo이 존재한다는 데 대한 이론적 탐구라기보다는 실무에
서의 법관의 주관적 태도에 부합하는 이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법관은 자신의 판결활동과 관련하여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모든 사건
에서 오직 하나의 결정만이 정당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 정답에 가까이 가기 위
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55)
드워킨의 말대로 가치판단이 참일 때는 그냥 참일 수가 없으며 그것이 참인
이유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즉 충분한 논거가 존재할 때 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라면 이러한 논거지움의 과정은 자명한 공리적
토대나 그런 토대 위에서 확립된 규칙이나 원리적 서열에 따라 명확하게 밝힐 수
없다 이런 불확실한 가운데도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논거지움은 포기될 수
없다 이 끝없는 정당화 부담 때문에 켈젠은 규범의 효력 근거에 관한 논의를 가
치에 관한 논의와 절연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물론 성공하지
못했다56)
가치판단을 해야 하는 부분이 법문화에서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요소로 작용할지
아니면 그 반대로 작용할지는 판단자로서의 법관의 역량과 연관하여 논해야 할 것
이다 필자는 가치판단적 요소가 법문화에서 당연히 긍정적 요소로 작용해야 하며
게 부응하는지 묻게 한다 따라서 사법부 외부에서 행하는 사법비판의 길이 열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대해서는 노이만 앞의 강연문 참조55) 노이만 앞의 강연문56) 규범의 효력을 불명확하고 상대적인 가치가 아닌 규범에 근거짓기 위해 켈젠이 고안
한 근본규범은 사유상으로만 전제된 규범일 뿐이었다 켈젠은 가치판단을 ldquo현실의 행
위가 객관적으로 효력 있는 규범에 맞게 존재해야 하는 대로 존재한다는 판단rdquo이라고
정의함으로써 가치판단이라는 용어 자체를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Reine Rechtslehre 2 Aufl (1960) 16면 이하 또한 켈젠은 규범이 인간의 의지에 의해
제정되는 한 그 규범에 의해 형성된 가치는 어차피 자의적일 뿐이라고 주장한다(18면) 규범과 가치의 관계에 대한 켈젠의 주장에 대해서는 오세혁 ldquo켈젠의 법이론에 있어서
규범과 가치 - 규범과 가치의 상관관계를 중심으로rdquo 법철학연구 제18권 제3호(2015) 97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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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렇게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57) 그런 방향에서 이제 해석의 문제를 법
관의 자기이해 문제와 연관시켜 보기로 한다
Ⅷ 해석과 법관의 자기이해
법관은 추상적인 일반규칙을 가지고 공중의 이목을 끄는 개별적인 사건을 처리
하는 사람이다 법관의 의식활동에 의해 일반규칙과 일회적인 사건 사이의 심연이
메워진다 하지만 일반성과 개별성을 결합하는 이 의식과정에 동반하는 고유한 법
학적 방법에 대해서는 앞에서 지적한 대로 확실한 합의는 없다 ldquo리걸 마인드rdquo라
는 말이 풍기는 신비스러운 분위기에는 사법적 결정이 본질적으로 투명한 것이 되기
어렵다는 암시가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다 논리적인 형태만 부여하기로 한다면
한 사건에서 서로 상반된 결론에 이른 두 개의 판결문을 작성하는 것도 불가능
하지 않다58) 방법이 논리에 기초하는 것이라면 이때 논리는 형식논리를 넘어 엥기
쉬가 표현한 대로 ldquo실질에 부합하는rdquo 논리여야 할 것이다 참된 올바른 받아들
일 수 있는 결정에 이르는 실질논리 이 실질에 도달하기까지는 결코 논리적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지적 감행과 어떤 매개가 작용한다
일반규칙을 개별사례에 적용할 때 요구되는 판단자의 능력과 관련하여 가다머
(Hans-Georg Gadamer)는 이런 견해를 밝힌 적이 있다 판단자는 자신이 이미 가
57) 이와는 달리 가치의 ldquo통약불가능성rdquo 때문에 사법은 좋음이나 옳음의 이슈에 대해 실
질적 입장을 취하는 일에 대해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가치의 통약
불가능성에 대해서는 Cass R Sunstein ldquoImcommensurability and Valuation in Lawrdquo Michigan Law Review Vol 92 No 4 (1994) 779면 이하 조홍식 교수는 ldquo가치의 통약
불가능성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이 권리인가의 문제보다 무엇이 공익인가의 문제에서
더 크다rdquo고 지적하면서 기본적으로 가치판단과 관련한 사법통치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사법통치의 정당성과 한계 제2판 박영사(2010) 240면 가치의 통약불가능성에 대한 주장은 가치판단과 관련한 해석기준의 서열화는 불가능
하다는 주장과 같은 노선에 속한다 여기서 통약불가능성 문제를 자세히 다룰 수는
없다 다만 가치의 통약불가능성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통약불가능이 비교불가능을 의미
하지는 않는다는 점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체적인 맥락이 주어지는 경우 무엇이 옳은
지 혹은 그른지에 대해 심사숙고하며 이에 따라 선택하고 그 선택 결과를 받아들인
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정도만 지적하기로 한다 58) 실제로 판사가 판결문을 두 개 써왔다고 주장한 사건에 대한 보도가 있었다 ldquo판결문을
두 개 써왔다rdquo 조선일보 2013 11 21자 기사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7
지고 있어서 적용하기만 하면 된다는 그런 의미의 규범적 실천적 ldquo지식을 소유한
사람rdquo이라기보다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 ldquo지식을 탄생시키는 상황에 직면하는
사람rdquo이라는 것이다59) 일반범주를 개별사례에 적용할 때 요구되는 이 판단력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래서 칸트(Kant)도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ldquo지성은 규칙들
을 통해 배우고 보강할 수 있는 것이지만 판단력은 특수한 재능으로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전혀 아니고 단지 숙련될 수 있을 뿐이다rdquo60)
우리는 올바른 규칙이나 원리를 알고 있지만 막상 이것을 어떤 상황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예컨대 비례성원칙이나 과잉금지원칙에 대한 지식
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은 적정해야 하고 그 수단은 목적달
성을 위해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원칙을 특수한
상황에 lsquo적용rsquo한다고 할 때에 이 원칙이 그 어떤 판단도 배제할 정도로 자족적인
지침 구실을 한다고 느끼기는 어렵다 특정 상황에서 그 수단이 과연 어느 정도일
때가 목적달성에 적정한지는 판단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실천이성의 역
할이다
단의 자리는 이론 경험 양심이 혼재된 실천의 영역이다 판단을 통한 결정이
라는 그 lsquo종국성rsquo으로 인한 실천적 성격은 법학이 다른 어떤 학문분야와도 공유
하지 않는 법학 고유의 특징이다 그래서 법학은 lsquolegal sciencersquo로 불리기보다는
실천지- prudentia-를 함의하는 lsquojurisprudencersquo로 더 자주 불리어 왔을 것이다
해석의 차원에서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도 추상적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
으로는 행위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성과 개별성을 결합하는 해석적
지식은 추상적 이론적 지식들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일반규칙이나 원리
에 근거한 이론적 패턴의 지식과 특정한 상황 내지 맥락을 고려하는 실천적 패턴
의 지식의 이중주를 이룬다 법관이 지니는 통찰력의 특성은 이론과 태도가 함께
간다는 데 있다 그래서 사법적 판단에서는 규칙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 못지않게
사람 즉 법관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사법적 통찰력의 특성은
뭐니뭐니해도 개별 사례를 다룬다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개별적인 것들은 개별적
인 방식으로만 체험되고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들은 무엇
보다도 lsquo지각rsquo과 관계된다61) 즉 그것들은 일반적 체계적 지식의 대상이라기보다
59) Hans-Georg Gadamer Wahrheit und Methode Grundzuumlge einer philosophischen Hermeneutik 3 Aufl J C B MOHR (1972) 300면
60)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 1 백종현 옮김 아카넷(2009) 374면
8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는 우선 지각의 대상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도 사법적 통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쪽은 규칙보다는 오히려 사람 즉 법관 쪽인 것이다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사건에서 법적으로 중요한 사실이 무엇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규칙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어떤 규칙이 중요한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실이 중요한지 알
아야 한다 이 인식과정에서 법관은 불확실한 가운데서 무수한 선택을 감행한다
어떤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 배척하고 어떤 사실은 인정하거나 무게를 부
여하고 신청된 증거조사의 어떤 것은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거부하고helliphellip 사실
에 대한 이 취사선택-자유심증주의-의 결과로 새로운 것이 태어난다 그리고
이것에 의해 법원을 찾아온 사람들의 운명이 갈리는 것이다
법관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필자 생각에
독일의 법철학자 아르투어 카우프만(Arthur Kaufmann)의 해석학적 방법론은 법
관의 자기이해 문제를 해석학적 지평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법관의 해석작업의
본질을 잘 설명해주는 것 같다 가다머 계통의 철학적 해석학(philosophische
Hermeneutik)의 입장을 받아들이면서62) 카우프만은 법해석행위를 통해 포괄적인
의미에서 법관 자신의 인격 중의 어떤 것이 판결에 혼입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
61)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4면 그리고 1심에서
유죄였다가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강력범죄 540건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판단자
의 감지능력 차이가 법판단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힌 김상준 무죄
결과 법 의 사실인정 경인문화사(2013) 62) 텍스트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이해에 관한 연구분야인 해석학(hermeneutics Hermeneutik)
의 어원은 신들의 전령(傳令)인 Hermes라는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설명된다 이때 신의
의도를 인간에게 전하는 과정에서 언어의 제약성 시공간적 간격 전령의 역할 등과 관
련하여 해석의 문제가 생긴다고 본다 ldquoHermeneuticsrdquo Dictionary of Biblical Interpretation Nashville (1999) 497면 독일어의 Auslegung이 해석주체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대상
으로서의 텍스트에 대한 해석을 의미한다면(객관주의) 철학적 해석학에서의 해석
(Interpretation)은 해석주체의 주관성 내지 역사성이 대상에 투사된다는 의미가 강하다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에 따르면 역사적 존재인 인간에게 있어 모든 해석과 이해는 과
거와 현재가 lsquo작용사적으로(wirkungsgeschichtlich)rsquo 중재되는 사건으로서 lsquo선이해rsquo 내지
lsquo선판단rsquo 없이는 불가능하다 가다머는 선입견으로 폄하된 선이해를 재평가하고 이를
통해 근대 이래 lsquo방법rsquo을 통한 진리발견이 주체에 의한 객체의 대상화 내지 도구화를 가져
왔다고 비판하면서 인간경험에 있어서 진리에 이르는 길은 사물의 존재가 스스로 드러
나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해석과 이해는 전승된 존재방식으로서
의 텍스트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며 이는 텍스트 자체가 지닌 역사적 지평과 해석
자의 지평이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만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해석학적 순환 이해의 전제로서의 선이해 작용사 등에 대해서는 Gadamer 앞의 책 II Grundzuumlge einer Theorie der Hermeneutischen Erfahrung 참조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9
로 법관의 결정이 올바른가의 물음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가의 물음과 직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63)
우선 카우프만은 통상적으로 회자되는 독립적인 법관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즉 법 앞에 선 법관이 일체의 정치적 사회적 개인적 영향이나 선입견들로부터 차
단된 채 순수한 객관적 인식에 따라 그 이전에는 자신이 알 수 없었던 사실관계
를 판단하고 그런 다음에 법적 판단을 한다는 식으로 이해하기를 거부한다64)
그런 법관상은 법령집은 일체 해석의 필요가 없이 거의 모든 가능한 법률문제에
대한 대답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상정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법관은 의지가
없는 존재이며 사법권력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여기는 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법에 대한 인식은 단순히 사례를 법률에 포섭시킨다는 의미의 수
동적 행위가 아니고 해석자가 해석대상에 관여하면서 함께 lsquo형성rsquo하는 것이라고
본다 카우프만은 법관의 법형성력에 대한 자신의 견해가 주관주의의 의미로 받아
들여지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는데 왜냐하면 해석자는 텍스트를 지탱하는 모든
전통과 함께 이해의 지평으로 들어간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은 서류의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ldquo아 이런 사건이구나rdquo라고 감을 잡게 되
는데 카우프만에 따르면 이는 법관 자신이 사건 경과를 관찰해서 인지했다거나
언론 등을 통해 사건에 대한 상세한 지식을 얻었다는 뜻이 아니라 유사한 사건들
을 알며 그래서 ldquo선이해(Vorurteil Vorverstaumlndnis)rdquo65)를 가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
해의 전제로서 이런 선이해가 없다면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것이 무엇에 관한 사
건인지 알 수 없고 다른 사례와 비교할 수도 없기 때문에 올바른 판단에 이른다
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66) 이 선이해에 의해 해석은 언제나 해석주체의 자기
이해 즉 자신이 lsquo잠정적rsquo 결과로서 이미 예상했던 것을 논증적으로 근거짓는 활동
이라는 의미에서 ldquo해석학적 순환rdquo 내지 ldquo해석학적 나선구조rdquo 하에 이루어진다
63)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Festschrift fuumlr Karl Peters Mohr Siebeck (1974) 144면 법관의 독립과 양심 주제와 관련한 또 다른
글로는 Kaufmann ldquoGesetz und Rechtrdquo Existenz und Ordnung Festschrift fuumlr Erik Wolf (1962) 357면 이하
64)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4면 65) 해석학적 의미에서의 lsquo선이해rsquo는 일상 언어 관용에서는 lsquo선입견rsquo이나 lsquo편견rsquo 같은 부정
적 함의를 더 많이 지니기 때문에 카우프만은 lsquoVorurteilrsquo 대신에 Vorverstaumlndnis라는 용
어를 쓰기를 권장한다(앞의 글 148면) 카우프만 외에도 이 용어의 선택은 Josef Esser Vorverstaumlndnis und Methodenwahl in der Rechtsfindung 2 Aufl (Frankfurt aM 1972)
66)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7면
90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텍스트를 이해하려는 사람은 말하자면 언제나 초벌 그림을 그리며 특정 의미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텍스트를 읽기 때문에 ldquo텍스트에서 첫 번째 의미가 지시되자
마자 전체의 의미를 lsquo예비투사한다(vorauswirft)rsquordquo67) 그리고 선이해와 관련된 이 예
비투사는-해석학적 lsquo순환rsquo에 의해-원칙적으로 끝없이 검열과정을 거친다는 것
이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도 실제 판단과정에서는 분리
되지 않는다68)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은 시간적으로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단절 관계가 아니라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정제하고 상응하는
관계에 놓인다 즉 사실에 대한 인식 없이 규범적 인식은 불가능하며 또한 규범적
관점 없이 사실만을 통한 사실 확정도 불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법률도 법관의
해석을 만나기 전에는 ldquo잠재적인 가능태로서 주어진 법률rdquo일 뿐 해석학적 순환을
통한 정제 혹은 상응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ldquo진정한 실정법rdquo이 생성된다69) 이렇
게 특정사건을 통해 구체화된 규범(구성요건)과 이 규범을 통해 정해진 사실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법관에게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들과 함께 제3의 요소로서 법관
자신의 선이해 내지 이해 포괄적으로 말하면 그의 인격적 존재가 판단에 혼입
된다
lsquo선이해rsquo는 판단자가 자신의 선이해를 의식하지 못할 때 부정적 요소를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ldquo자신의 판단은 오로지 lsquo있는 그대로다rsquo라고 말하는 즉 lsquo오로지 법
률에만 구속된다rsquo라고 말하는 법관이야말로 실은 종속된 법관이다 왜냐하면 그는
성찰되지 않은 자신의 선이해와 거리를 둘 수 없기 때문이다rdquo70) 즉 법관은 자신
67)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68) 실제 판단과정에서 사실인정과 법률적용이 따로 떨어질 수 없다는 점은 굳이 카우프
만의 이론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실무상으로는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ldquo법률
의 적용과 사실의 인정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법률문제와 결부되어 인정된다 사실의 인정이 진행됨에 따라서 재판관의 머리
속에서는 어떠한 법규를 적용할 것인가 그 법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는 전망이
점차로 서게 되며 당사자 측도 경우에 따라서는 민사인 경우 청구의 취지를 변경할
것인가를 고려하게 되고 형사인 경우 공소사실을 변경하는 경우도 생긴다 요컨대 사실
문제와 법률문제는 실제과정에서 불가분으로 결부되어 있다 helliphellip 양쪽이 불가분으로
재판관의 직관 혹은 재판관의 전인격적인 작용에 의하여 사실의 인정과 법의 적용이
행하여지고 판결 삼단논법은 실제의 심판 과정에서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rdquo(사법
연수원 법조윤리론 35면) 69) ldquo법관의 해석 작업 이전에는 어느 의미에서 진정 법도 진정한 사실도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원자재들(Rohmaterialien)로만 이것들이 존재할 뿐이다rdquo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1
의 선이해를 의식하고 자신을 이데올로기 혐의 앞에 세울 줄 알 때 올바른 판결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ldquo법관이 자신의 선이해와 종속을 의식할수록 그래서 간주
관적 합의에 노력할수록 그는 더 객관적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rdquo71) 그러므로
법관의 주관주의의 위험은 카우프만식으로 말하면 가치판단 같은 성찰적 고려와
관련된 주관적 요소를 방법상의 근거 제시의 맥락에 끌어들이는 법관의 경우보다는
오히려 모든 것이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판결의 주관적
요소를 은폐하는 법관에게서 나타나는 위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학적 순환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법관은 ldquo법률의 입rdquo이 아니라 ldquo인격
으로서 판결을 떠받친다rdquo72) 판결은 법률과 법관의 인격의 혼성물이다 그러므로
법률은 판결을 위한 필요조건이기는 하나 충분조건은 아니라고도 말할 수 있다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순환이론은 법관의 독립과 양심의 문제 차원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법결정의 올바름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
는 정도에 달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자신을 올바르
게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자신의 판단력 경험 능력 인간에 대한 태도 감
수성 명예욕 등등
카우프만의 법해석학적 순환이론이 법관의 독립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이라
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독립은 법관 스스로 관철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론적으로 카우프만의 법해석이론의 의의는 법관이 자신의 선입견을
의식하는 것이야말로 법관의 독립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설득력있게 지적
해주며 그런 방향에서 법관의 법해석 작업을 재평가했다는 데 있다고 말할 수 있
겠다
70)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71) Arthur Kaufmann ldquoDer BGH und die Sitzblockaderdquo NJW (1988) 2581면 이하72) 이 표현은 Karl Peters의 Strafprozess - Ein Lehrbuch (1966) 99면에 나오며 여기서는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9면에서 재
인용했다 이덕연 교수도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에 입각하여 ldquo법관의 법해석작
업은 단순한 lsquo인식작업rsquo이나 lsquo언어분석작업rsquo이 아니라 ldquo구체적인 반성과 자기극복의
노력 속에서 온 인격을 걸고 진행하는 lsquo이해와 실천의 수행작업rsquordquo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앞의 글 352면)
9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Ⅸ 법관은 lsquo하는 사람rsquo인가 lsquo보는 사람rsquo인가
법관의 판단작업을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의 관점에서 주목했던 또 다른
철학자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다 그녀는 ldquo아이히만 재판rdquo을 계기로 판단의
특수한 경우로서의 판단력 문제를 연구했다73) 아렌트는 하드케이스와 연관시켜
법관의 판단력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74) 법관은 우선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을 반추하면서 판단에 임하는데 이때 판단자로서 그는 한 면으
로는 규칙에 따라 판단하라는 lsquo일반적 정의rsquo의 요구에 그리고 동시에 다른 한 면
으로는 정황에 맞게 판단하라는 lsquo개별적 정의rsquo의 요구에 처한다 이러한 상황은
아렌트에 따르면 하드케이스에서 특히 발생한다 이 이중적이고 모순적 요구 상황
을 아렌트는 법관의 판단에 적용되는 특수한 해석학 및 그 조건을 설명하는 출발
점으로 삼는다75) 하드케이스가 아닌 통상적인 사건에서는 이른바 포섭 여부를 판
단하는 것으로도 족하다 일반규칙에의 포섭 여부가 중심이 되는 이 단계에서의
판단력- lsquo규정하는 판단력(bestimmende Urteilskraft)rsquo-은 사실관계에서의 원인
이나 형식적 정의를 따지므로 일방적이고 간주관적 전제 없이도 가능하다 그래서
흔히 법관은 여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법을 해석해야 한다고 말할 때 이는
법적용을 이러한 지배적인 포섭모델에 입각하여 이해한 결과라 할 것이다 그런데
규칙으로부터 오는 어떤 어려움들 때문에 규정하는 판단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즉 포섭이 어렵거나 법흠결 시 또는 가치형량이 요구되는 하드케
이스에서는 법관은 어쩔 수 없이 앞에서 말한 모순문제를 다루어야만 한다 이때
아렌트는 법관이 사유의 확장을 통해 방법상으로 lsquo규정적 판단력rsquo을 스스로 교정
할 수 있는 lsquo성찰적 판단력rsquo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고 이 판단유형의 전환과정을
73) 법적 판단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 삼은 저술은 Hannah Arendt Eichmann in Jerusalem Ein Bericht von der Banalitaumlt des Boumlsen Erw Aufl (Muumlnchen 2001) 그리고 Hannah Arendt Das Urteilen Texte zu Kants Politischer Philosophie Hrsg v R Beiner Uumlbers v U Ludz (Muumlnchen 1998)
74) 아렌트가 염두에 둔 하드케이스는 라드브루흐가 이른바 ldquo법률적 불법rdquo 상태로 규정한
나치의 불법국가 상황으로서 이렇게 극히 예외적인 케이스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하드
케이스에 적용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별적 정의 요구에 부응함
으로써 예컨대 소급효를 금지하는 일반법률에 위배되는 상황과 유사한 갈등상황은 반
드시 극단적 상황에서만 생긴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75)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2 Bde Hrsg v U Ludz amp I Nordmann
따라서 그 척도는 전달가능성이며 거기에 딱 맞는 것은 공통감각(상식)이다rdquo77) 오
늘날 공통감각은 아렌트도 지적했듯이 더 이상 그것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얻고자 노력해야 하는 그 무엇이 되어버린 듯하다 그러나 공통감
각이 무너진 시대를 겪었던 아렌트는 사유의 전환 내지 확대를 위한 진정한 발판
을 다시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에서 구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78)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실천철학의 전통에서는 세계와의 관계 그리고 자기와의 관
계를 공통감각을 척도로 설정해가는 판단자가 lsquo하는 사람rsquo인지 아니면 lsquo보는 사람rsquo
인지 즉 lsquo행위자rsquo인지 아니면 lsquo관찰자rsquo인지를 둘러싸고 의견이 대립되어 왔다 lsquo하
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자가 lsquo정치가rsquo 쪽에 더 가깝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
자는 lsquo철학자rsquo 쪽에 더 가깝다 lsquo하는 사람rsquo은 주로 사회의 일반적 상식 건전한 인
간이해 세론(doxa)을 판단의 척도로 삼는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적 경험은 전체주
의 하에서는 건전한 인간이해도 집단화된 대중감정에 따른 오도된 인간이해 앞에
무너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판단에서 사실로서의 상식이나 합의 또는
법해석공동체 내부의 지배적 제도적 관점이라는 판단 척도만으로는 일반규칙으로
부터 오는 모순을 다루기 어렵다 여기서 판단자는 ldquo확대된 사유방식rdquo을 추구해야
하는데 아렌트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을 lsquo보는 사람rsquo의 판단과 결합시킴으로써 법
관을 위한 사유의 확대를 시도한다79) lsquo하는 사람rsquo이 사실로서의 일반적 상식이나
인간이해 차원에 비추어 판단한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ldquo이
상적 규범적 상식rdquo80)을 추구하고자 한다 판단을 거쳐 법적 효과를 결정하는 법관
76)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을 해석학적 순환이론을 적용하여 분석하면서 칸트의 판단력 비
판에 의거하여 아렌트가 판단력의 특수한 경우로서 법관의 ldquo성찰적 판단력rdquo이라는 새
로운 판단유형을 제시했다고 지적한 연구서로는 Stefanie Rosenmuumlller Der Ort des Rechts Gemeinsinn und richterliches Urteilen nach Hannah Arendt Nomos (2013) 참조
77) Hannah Arendt Das Urteilen 92-93면78) 아렌트가 판단의 차원을 심화시키는 발판으로 삼는 상식은 sensus communis로서
communis opinio와는 다르다는 데 대해서는 Marieke Borren ldquolsquoA Sense of the Worldrsquo Hannah Arendtrsquos Hermeneutic Phenomenology of Common Senserdquo International Journal of Philosophical Studies Vol 21 No 2 (2013) 225-255
79) Hannah Arendt Das Urteilen 76면80) Rosenmuumlller 앞의 책 234면 이하 여기서 아렌트는 상식개념을 이중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에서는 경험적 개념으로 보다 성찰적 판단
단계에서는 규범적 개념으로 사용한다
9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은 관찰자로서 판단하면서 동시에 행위자로서 판단에서 법적 결과를 결정하는
사람이다 관찰자인 동시에 행위자라는 이중적인 역할을 하면서 법관은 자신의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 반추한다81) 이 반추과정에서 법관은 한편으로는 포섭
하는 판단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고려해야 할 관점들을 끌어들이면서
자신의 직책을 마지막까지 수행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통제하면서 자신의 앞서의
(포섭) 판단을 정정해나간다 그래서 법관 자신이 lsquo보는 사람rsquo과 lsquo하는 사람rsquo의 만
남의 장소가 되는 것과도 같다 ldquo이 보는 사람은 모든 하는 사람 안에 자리 잡고
있다helliphellip이 비판적 판단능력이 없이는 행위자 혹은 해결자는 보는 사람으로부터
풀려나 종내는 지각되지조차 못하게 될 것이다rdquo82)
사람들은 자신 일에 있어서는 비당파적일 수는 없다 따라서 ldquo자신의 일에 대한
판단에서는 내면의 심판자 혹은 내면의 법정을 가질 수 없다rdquo83) 그러나 다른 사
람의 일을 반추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필히 비당파적이어야 하며 또 비당파적이 될
수 있다 이때 그는 비로소 내면의 심판자를 가지게 된다 즉 양심의 문제에 처하
게 되는 것이다 판단에 있어서 양심이라는 것 즉 양심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남
의 일에서 ldquo증인rdquo 혹은 ldquo비판적 친구rdquo로서 관찰하고 행위하는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이다84)
아렌트의 성찰적 판단모델은 나치 불법국가 경험의 산물이다 통상의 규칙이 파
괴된 상황 통상의 범죄유형에 포섭되지 않는 극히 예외적인 범죄적 상황에서 법
원은 기존의 판단척도를 해석학적 출발로 삼아서는 안 되고 이때에는 질적으로
동의가능한 합의형식을 찾기 위해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으로 돌아가
진정으로 사유 즉 철학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렌트가 판단을 일반화해주는
거점이자 해석학적 출발점으로 삼은 공통감각(상식) 개념은 칸트철학에서 ldquo비사교
적 사교성rdquo 개념의 위상과 비슷하다85) 이 지상에서 인간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다른 것을 원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모여 살아야만 하는 존재다 이 비사회성 요
청과 사회성 요청의 동시성 때문에 인간에게는 제도적인 안착이 더없이 중요하며
법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실존과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만든다 판단의 기
81) Leora Y Bilsky When Actor and Spectator Meet in the Courtroom Hannah Arendt and Eichmann in Jerusalem G N Arad Hg (Bloomington 1996) 137면
82) Hannah Arendt 앞의 책 85면83) Hannah Arendt 앞의 책 76면 84)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657면85) Rosenmuumlller 앞의 책 1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5
초를 보편적 인간경험에 둔다는 점에서 아렌트가 말하는 판단력은 드워킨의 헤라
클레스와 같은 초인적 천재성을 발휘하는 능력과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86) 아
렌트가 상정하는 이상적인 법관은 철학적이지만 철학자는 아니고 정치적이지만 정
치가는 아닌 사람이다
아렌트는 헌법국가의 권위도 상식개념에 기반을 두고 설명한다 그리고 민주적
정당성의 관점에서 입법의 우위를 인정하는 까닭에 성찰적 판단에 입각한 법관의
검증에는 한계가 있다는 태도를 견지한다87)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렌트가 제시한
법관의 성찰적 판단 유형에 대해서는 다양한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우선 이것이
예외 상황에서 적용되는 판단모델로 상정된 것이며 무엇보다도 ldquo규범적 상식rdquo에
대한 단일한 이해기반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법관 개인의 주관적 정치적 신념
이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길을 피할 수 없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성찰적
판단력은 결국 레토릭에 불과한 것인가 아렌트는 그러나 무엇이 ldquo특정 상황에 맞
는 공통감각(situierte Gemeinsinn)rdquo인지에 대한 공동의 인식은 가능하며 또 법관의
lsquo하는rsquo 판단에 들어있는 정치적 함의를 성찰적 판단력으로 검증하는 것도 가능하
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아렌트가 마지막 검증심급으로 원용하는 것이 바로 판
단에서의 양심의 심급이다 그것이 과연 동의할 수 있는 합의형태로서 충분한지를
스스로 검증하는 이 심급에서 판단자는 명령조로 자기에게 전해지는 소리를 듣게
된다 ldquo멈춰 나는 그것은 할 수 없어rdquo88) 판단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 멈추는 것
이 가능한 이 성찰적 심급에서는 칸트와 달리 할 수 없는 이유로써 결과도 고려
된다 lsquo보는 사람rsquo이 자기 안에서 지켜보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상황은 토마스 아퀴
나스의 양심론에 비추어 다음과 같이 묘사될 수도 있겠다 지적 본성을 가진 인간
존재가 보편법칙에 관한 지식을 개별 행위에 적용하기 위해 판단하고 선택할 때
행위자는 갈등 상황- ldquo그렇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rdquo는
상황-에 처하여 멈칫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데 이때 그는 단지 갈등하고
선택하는 역할만 하지 않고 갈등하고 선택하는 이 과정을 ldquo관찰하고 목격하는 증인rdquo
의 역할도 한다는 것89)
86) 드워킨에 의하면 해석적 탐구는 ldquo어떠한 증명도 허용치 않고 어떠한 수렴도 약속치
않는 탐구rdquo이다(드워킨 정의론 203면)87) Rosenmuumlller 앞의 책 30면88) Hannah Arendt Uumlber das Boumlse Eine Vorlesung zu Fragen der Ethik Hrsg v J Kohn
(Muumlnchen 2003) 52면89) 지적 행위자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자신의 내면의 갈등과 선택과정을 바라보는
9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Ⅹ 방법에서 덕목으로
헌법 제103조는 한 면으로는 헌법과 법률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 면으로 해석자에게 여하한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lsquo제약
의 차원rsquo과 lsquo자유의 차원rsquo을 동시에 담고 있다 법관은 자유로울 때에라도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며 법에 구속될 때에라도 전적으로 구속되지는 않는다는 뜻이
기도 하다 이 lsquo자유와 구속의 변증법rsquo에 비추어 지금까지 논한 주제에 대해 몇 가
지 입장을 정리해 보자 첫째 법관에게 있어서 독립은 확정된 원칙이나 그것자체
로서 달성해야 할 최종목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법관의 독립은 완성형이 아니라
끊임없는 진행형의 과제로서 그 직무수행에 대한 신뢰와 병행하여 점진적으로 이
루어지는 것이다 둘째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에 있어서 구속은 법률에 무조건 복종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판결에 대한 윤리 (내 ) 확신과 함께 법률에 복종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법관이 실정법률에 반하는 결정을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법
관은 객관성을 빌미로 법률 뒤에 숨는 익명적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
미하는 것이다 셋째 독립적인 법관의 양심은 lsquo법과 상충한다rsquo기보다는 lsquo법을 실
한다rsquo는 의미를 지닌다 넷째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서 반추하면서 lsquo하는
사람rsquo인 동시에 lsquo보는 사람rsquo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성찰 인 인물상으
로서만 설정될 수 있다
해석적 탐구는 우리의 이해를 넓히기 위해서 필요하지만 이해에서의 우리의 피
할 수 없는 한계를 깨닫기 위해서도 필요했는지 모른다 엥기쉬는 법해석방법론에
대한 저술의 마지막 부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ldquo방법론에 천착하다 보면
애초의 문제였던 법률로부터 훨씬 더 먼 곳으로 이끌려 간다rdquo 지금까지 필자는
법관의 법해석과 관련하여 방법론의 의의와 한계를 논하고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과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에 비추어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이 법해석론
의 불가결한 부분으로 들어가게 되는 이유도 밝혔다 그리고 해석적 차원에서의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는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행위를 목표로 하는
탐구라는 것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필자는 이 모든 논의들을 매개로 방법론이 우리를 더 멀리 덕
목론으로 데려가는 과정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드워킨의
상황에 대한 이 묘사 부분은 이경재 ldquo토마스 아퀴나스의 양심 개념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375면을 참조했다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7
헤라클레스를 잠시 불러올 필요가 있다 해석문제를 누구보다도 더 진지하게 다룬
드워킨은 마지막에 헤라클레스를 내세운다 주어진 사건에서 무엇이 법인지에
대해 도덕적 의식을 가지고 법실무 전체를 원리정합적으로 정당화하라는 요청에
부응하여 자신의 신념에 기초한 결정을 내리는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의 구성적
해석에서 법관의 양심이 기능하는 국면은 어디일까 송민경 판사는 드워킨의 구성
적 해석론에 입각하여 양심을 구체적 법논증과정의 일부로 포함시키면서 이때 양
심이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라는 지침으로 기능한다고 설명한다90)
그런데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는 지침으로 기능하는 것을 양심이라
고 보게 되면 양심의 문제는 논증적 합리성의 차원 즉 논증의 성공으로 종결짓게
된다 그러나 법적 결정의 정당성 문제는 법관의 입장에서는 논증의 성공 문제로
다루어지지만 법관의 성공적인 논증에 따른 판결의 결과로부터 영향을 받는 시민
의 입장에서 보면 성공적인 논증만으로는 해석이 정당화된다고 볼 수는 없다
성공적인 논증은 법적 결정의 정당화에 필수적이기는 하나 충분한 조건은 되지 못
한다 해석이 궁극적으로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사법적 도덕성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 사법적 도덕성은 헤라클레스가 지침으로 삼는 원리적 도덕성의 실현과는 다른
것이다 만약 패소한 시민이 다른 헤라클레스에게 갔더라면 즉 다른 법원리에 기
초한 신념을 토대로 다른 결정을 내린 다른 법관에게 갔다면 그는 승리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왜 헤라클레스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하
는지에 대한 답이 필요한 것이다91) 헤라클레스가 실무에 대한 최상의 정당화를
도모하는 법적 이상주의자라면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법원 문을 두드린 시민도
어느 의미에서 ldquo법이상주의자rdquo92)이다
법해석 작업의 주관의존성이라는 불가피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재판이라는 특수
한 공적 활동이 법관이라는 특수공직자에 의해 운영되고 유지된다는 것은 시민들
-소송에서 패한 시민들을 포함하여-편에서 보면 법을 해석하는 법관에 대한
신뢰가 전제된다는 것이다 법관의 독립적 활동은 법관의 특권 행사가 아니라 사
90) 송민경 앞의 글 38면 20면91) 사법적 덕목과 연관하여 이 부분을 다룬 글로는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5면 이하
92) 법원 문을 두드리는 시민에 대한 이 표현은 심헌섭 ldquo법조윤리의 좌표 거시적 관점에서 본 전문윤리로서의 법조윤리rdquo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편 法律家의 倫理와 責任 박영사
(2003)에 나온다
9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법과정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응당한 몫이 돌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존중하는 바탕에는 일종의 상호성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 그 또한
시민이기도 한 법관이 동료시민들에 대해 가지는 배려와 존중의 원칙이 그것이다
여기서 사법적 덕목에 대해 자세히 논할 수는 없다93) 예의 성실 신중 절제
용기 공정 겸손 의사소통 능력 형평 시민에 대한 배려와 존중 등등 이것들은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바탕을 이루는 양심의 덕목들일
것이다 양심이라는 단어가 그렇듯이 덕목이라는 단어도 오늘날 진부해진 표현
이며 거의 사라져가는 단어다 윤리적 태도로서의 덕목은 관찰하기도 배우기도
어렵다 그러나 올바른 판단과 결정이 법관이라는 개인을 거치지 않고 법령집
자체로부터 반사적으로 튀어나오지 않는 한 이 덕목들을 내면화하고 지향하려는
태도 없이는 lsquo종국적인rsquo 판단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써 필자는 헌법 제103조를 통해 법해석에서의 방법론의 문제가 덕목론이라
는 다음 과제로 이어진다는 점을 밝혔다고 생각한다
투고일 2016 4 6 심사완료일 2016 5 18 게재확정일 2016 5 20
93) 법관의 개별적인 덕목들과 이것들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는 박은정 강태경 김현섭 바람
직한 법관상의 정립과 실천 방안에 관한 연구 법원행정처(2015) 제5장 참조할 것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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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ependence and Conscience of the Judges Based on
Interpretive Method for Article 103 of the Korean Constitution
Pak Un Jong
94)
In this paper I aim to discuss the problem of independence and conscience
of the judges as outlined in Article 103 of the Korean Constitution in the
context of the interpretive methodology
First of all this paper will look at the background in which the independence
of the judges has been institutionalized and also the problems regarding usual
explanation for conscience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And I will try to
reveal the characteristics and difficulties of the interpretive actions of the judges
especially in connection to the issue of value judgment This would require
pointing out the problems and limitations of the interpretive methodology and at
the same time defining the nature of tension embedded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namely the tension between the obligations of the judges to abide
the law versus the subjective internal demeanor of the judges This tension-
ridden condition reenacted by the demand to follow lsquogeneral justicersquo versus
lsquoindividual justicersquo appears inevitably in the process of judicial interpretation I
will examine the theories that capture this kind of tension that accompany the
interpretation process and aim to feel out the possibilities of resolving this
tension At the end I come to the conclusion that these theories can explain but
cannot resolve this tension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If so the problem
which arises from the limitations of the interpretative methodologies from the
perspective that a judgersquos final decision greatly impacts citizens becomes a
problem of judicial ethics In order to ultimately justify the interpretation of the
judges the demands of judicial ethics must be satisfied Keeping this demand in
Professor College of Law School of Law Seoul National University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103
mind I point out that the significance of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is in
its role of bridging legal methodology to virtue ethics
Keywords independence of the judges conscience of the judges interpretive
method of law value judgment judicial virt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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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 법질서는 통일적이고 자기충족적인 시스템을 이룬다는 가정에 기초하고 있
었다 그러나 이 가정은 그 자체로 애초 한계를 지닌 것이기도 하지만 법의 생태
적 기반이 변하면서 이 법률구속원칙은 점차 상대화 내지 약화되는 방향으로 나아
가게 되었다 입법자를 기다릴 수 없는 빠른 사회변화 자유법운동 입법양의 폭발
적인 증대 일반조항 도입 등 입법스타일의 변화 복지국가 대두 사회정의의 요구
헌법재판 활성화 등의 흐름은 법관의 법률구속메커니즘이 작동하기 어려운 여건을
만들어 가게 된 것이다 이른바 lsquo법관법rsquo의 대세 흐름이 나타난 것이다 특히 지난
수십 년간 확대된 입법영역은 형법과 같은 규제입법과 달리 사회복지생활보호
건강 증진남녀평등청소년보호장애인보호적극적 평등조처 등처럼 정치적 비전과
목적을 담은 한마디로 정책촉진적 성격을 지닌 법률들이었다 이와 같은 야심찬
입법스타일은 법적용단계에서 법관이 바람직한 제도 및 정책 내용에 대해 고려케
함으로써 목적적 법논증으로 기울게 하고 구체적 이익을 비교형량하는 심사방식
을 확대시키는 등 좁은 의미의 실정법률 해석보다는 법형성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 것이다31) 특히 이 흐름은 20세기말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법실증주의에
제동이 걸리는 분위기와 겹치면서32) 법철학에서도 전통적인 포섭논리나 삼단논법
은 실제로 법관들에게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지적과 함께 법관의 법률구속원
칙에 회의적인 성향의 논의들이 강세를 보이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법발견 과정에
대한 심화된 통찰을 통해 lsquo선이해rsquo의 문제를 재평가하게 만든 철학적 해석학과 문
언의 의미론적 구속력에 회의를 제기케 한 언어이론은 법철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들 이론에 입각하여 이제 법의 흠결 시와 같은 예외적인 상황에서 법관
의 법형성이 불가피하다는 수준의 주장을 넘어 법률텍스트를 통한 구속가능성 자
체를 의문시하는 주장까지 나오게 되었다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의 실현에 대한 기대가 점점 약화되고 그래서 누구의 표현
대로 법률이 해석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해석이 법률을 지배한다고 말할 정도가
31) 사회변화에 따른 법관의 역할 변화에 대해서는 박은정 왜 법의 지배인가 돌베개(2010) 제6장을 참조할 것
32) 울프리드 노이만(Ulfrid Neumann)은 지난 2015년 10월 1일 고려대학교 초청강연에서
ldquo실증주의 이후 시대의 법률과 판결rdquo이라는 주제로 발표하면서 법학적 사고가 ldquo법실
증주의 이후의 시대rdquo로 넘어갔다고 진단하고 그 배경으로 세계화 등의 흐름으로 국제
상거래관습법(lex mercatoria)처럼 입법당국에 의한 제정이 아닌 사회적 실천에 의거한
법제정 사례 법원리의 중요성 대두 인권사상 증대 등을 들고 있다 그러면서 법실증
주의로부터 멀어지는 만큼 법관의 법률구속원칙도 상대적으로 완화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77
되면 다시 제기될 수밖에 없는 물음이 바로 입법기관과 법적용기관 사이의 권력
균형 문제다 이 권력 균형은 특히 법 이라는 개인에 의해 매개된다는 점에서 문
제가 된다 오늘날 ldquo사법국가rdquo ldquo법관공화국rdquo ldquo사법엘리트rdquo ldquo사법의 정치화rdquo 등을
지적하는 소리는 입헌민주주의 기획의 초기단계에서 일찍이 해결했다고 여겼던
문제들이 다시 등장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법관의 법률구속의 전제 및 그 가능성
법원의 중립성 법관의 민주적 정당성 사법관료주의 등의 문제가 그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물음이 떠오른다 해석자의 자유를 제
한하고 법관의 법률구속을 보장할 확고한 법해석방법론은 가능한가 법관의 법률
구속에 관한 기술적 제도적 보장책은 가능한가 필자는 이 물음들에 대체로 회의
적인 전망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물론 법해석방법의 무용론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법률에 구속되는 법관상이 약화되고 앞으로도 점점 더 약화될
것이라는 전망 하에 어느 때보다도 더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될 법관의 독립 문제
를 염두에 두면서 법해석방법론의 문제를 재검토하고자 한다
Ⅴ 법해석방법론의 문제점과 한계
법이 있는 곳에 해석이 있다 법학의 강점도 해석학적 잠재력에 있다 법관의 임
무는 법률을 적용하기 위해 법문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법해석방법론은 법
해석과정에서 법관의 자유에 일정한 제약을 가하고 법관의 법률구속이념을 실현하
기 위해 고안되고 발전된 것이다 해석에서는 무엇이 최선의 해석인지를 둘러싸고
언제나 논쟁과 불일치가 생기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해석작업은 인간의 판단과 행
위의 영향 하에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법관이 따라야 하는 법률 자체에는 이미 법적용자를 법률에 대해 어느 정도 독
립적이게 만드는 여러 표현방식들이 들어 있다 예컨대 lsquo야간rsquo lsquo소음rsquo lsquo위험한 물건rsquo
lsquo적절한 조치rsquo 등 개념의 내포와 외연이 확정적이지 않은 법개념들이 대표적이다
이런 불확정적 개념들은 법명제의 구성요건 단계에만 들어 있는 게 아니라 법률효
과에서도 등장한다 이른바 lsquo규범적 개념rsquo들도 그런 표현방식에 속한다 lsquo음란한rsquo
lsquo건전한rsquo lsquo불명예스러운rsquo 등의 개념들은 기본적으로 지각가능한 대상을 서술하는
개념과 대비하여 의미내용이 가치판단에 근거할 때만 파악된다는 점에서 규범적
이다 이때 가치판단은 반드시 주관적 개인적 평가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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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의 평가도 포함할 것이지만 어쨌든 이 판단과 관련한 어느 정도의 불확정성은
감수해야 한다 법관의 법률 구속 의무를 느슨하게 만드는 이런 개념군에는 재량
도 포함된다 오늘날 재량개념은 ldquo법적으로 구속되는rdquo 재량으로 이해되지만 이때
판단의 여지 안에 들어오는 여러 대안들 가운데서 최종 혹은 최선의 대안을 확정
하는 데 있어서 결정자의 개인적 확신을 허용할 수밖에 없다 일반조항도 표현 그
대로 높은 일반성을 띰으로써 법적용자로 하여금 자기 앞에 놓인 사례를 광범위한
사례집단들에 적응시켜가면서 법률효과를 귀속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33)
위에서 언급한 불확정 법개념이나 규범적 개념 등을 적용하는 데는 가치판단
요소가 수반된다 이런 개념들을 적용할 때 법관은 일정한 범위 안에서 입법자를
대신하여 가치판단 내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것이다 또 법관
은 법의 lsquo흠결rsquo을 보충하거나 법질서 안에서 이따끔 발견되는 lsquo오류rsquo를 수정해야
할 부득이한 상황에도 처하게 된다 이때는 법관은 스스로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찾아 나서야 한다 lsquo법의 일반원칙rsquo lsquo법의 정신rsquo lsquo평균인의 척도rsquo lsquo비례성원칙 lsquo이익
형량rsquo 등은 이때 법관이 의존하는 사유 장치들이며 이것들을 원용하는 데도 가치
판단적 요소가 개입한다 이때 판단자는 무엇이 사실상 효력을 갖고 있는 윤리적
견해인지 확인해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사실로서의 합의가 올바른 법적 결론에
도달하게 하는지에 대해서도 숙고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법적용자는 때로는 평
균인 테스트 같은 객관적인 척도에 의지하지만 또 때로는 개인적 견해를 더 많이
펼칠 수 있는 일정한 판단의 여지를 가지게 된다
이렇게 해석과정에서 불가피한 lsquo판단의 여지rsquo 즉 해석과정에 불가피하게 개입되
는 가치판단 요소 때문에 ldquo해석의 건전성rdquo을 둘러싸고 논란이 생기고 해석의 정당
화와 관련하여 회의가 생긴다 가치판단과 관련된 부분이 불가피하게 주관적 요소
를 끌어들이게 되고 이로 인해 법규범의 효력이 상대적이고 불확실한 영역으로 떨
어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단자는 자신의 결론이 불확실성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자신의 해석에 대한 정당화를 포기할 수 없다 법을
해석한다는 것은 ldquo그 법률을 특정 사안에 적용하는 것을 정당화한다는rdquo34)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확정적인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사례에서도 요구되는
33) 불확정적 개념 규범적 개념 재량 일반조항과 관련한 자세한 설명은 칼 엥기쉬 법학
방법론 안법영윤재왕 옮김 세창출판사(2011) 182면 이하에 잘 정리되어 있으며 필
자도 이 부분을 참조했음을 밝힌다 34) 닐 맥코믹 로버트 서머즈 ldquo해석과 정당화(上)rdquo 박정훈 역 법철학연구 제5권 제2호
(2002) 18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79
개인적인 단은 도덕적 상대주의자들이 말하는 개인적인 취향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해석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올바른 해석기준을 수립하고자 법률가들은 각
기 지금까지 다양한 해석방법에 의존해 왔다 올바른 해석을 위한 확고한 기준을
수립할 수 있다는 것은 찬성하는 혹은 반대하는 해석논거들 사이의 상대적 비중을
결정하는 명확한 규칙을 수립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즉 어느 한 해석
논거가 다른 해석논거에 의해 배제되는 조건이나 선택된 해석을 정당화하는 데
필수적인 한 논거가 다른 논거보다 우월하기 위한 조건 한 논거에 누적을 통한
비중이 부과되는 조건 등을 제시해줄 일관된 정보와 지침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
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여러 해석방법들 사이에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다는 것
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시도는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했다 동일한 유형의 논거일지
라도 각각의 정당화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비중을 갖게 될 뿐더러 언어적 해석
방법 체계적 해석방법 목적적 해석방법 등으로 제시되는 여러 해석방법들이 한
줄로 세우기에는 한마디로 너무 이질적이다35) 물론 이들 해석논거들의 상호작용
을 검토하면서 잠정적인 서열을 제시하는 것은 가능할 수도 있다36) 그러나 이 서
열은 기껏해야 ldquo해석을 위한 노력의 경제성 원리rdquo 정도를 말해 줄 뿐이기 때문에
쉽게 바뀔 수 있다37)
드워킨이 옳게 지적한 대로 기본적으로 가치판단과 관련된 해석방법들은 위계
적일 수 없고 ldquo상호지지적rdquo인 관계에 놓일 뿐이다38) 이 때문에 방법론적 규칙을
세우려는 시도는 언제나 무망해지는 것이다 또한 법해석에 있어서 언어란 단어의
의미를 식별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 행위의 의미를 식별
하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론 풀러(Lon Fuller)가 지적한 대로 ldquo언어
를 통한 의사 전달은 어느 한 사람으로부터 다른 사람에게로 의미가 든 상자를 발송
하는 식rdquo39)은 아닌 것이다
35) 울프리드 노이만 ldquo실증주의 이후 시대의 법률과 판결rdquo 강연문(주 32) 노이만에 따르
면 예컨대 체계적 해석 방법에 따른 논거도 그것이 논리적 일관성 획득의 맥락에서
인지 아니면 가치평가의 일관성 보장이라는 맥락인지에 따라 전혀 다른 비중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36) 대체로 언어적-체계적-역사적-목적론적 해석방법의 순서로 언급되는 데 대해서는 심헌섭
분석과 비 의 법철학 법문사(2001) 217-218면37) 맥코믹과 서머즈는 비교법적 연구결과를 통해 올바른 해석을 위한 지침 수립은 어느
국가의 법체계에서도 지금까지 성공적이지 못함을 밝힌다(앞의 글 210면)38) 로널드 드워킨 정의론 박경신 옮김 민음사(2015) 30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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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해석방법론으로부터 법관은 불확실성을 떨쳐 낼 수 있는 확실한 정
보제공을 기대하기 어렵다 해석논거를 위한 결정적인 기준을 제공하는 해석방법
에 대해 불안정한 형태로나마 이론적 합의를 찾기 어렵다면 엥기쉬의 지적대로
해석방법론은 공중에 떠있는 상태다40) 법학에서 방법론의 융성은 역설적으로 법
학이 이 부분에 취약하다는 암시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해석자로서의 법관을
최종적으로 인도하는 전략은 무엇일까 다음과 같은 고민을 들어보면 적어도 그것
은 방법론상의 합의에 대한 기대 같은 것은 아닌 것 같다 ldquo우리들은 일정한 결론을
내리고도 그 결론이 가장 적절sdot타당한 것이라고 보증받을 수 없다 그 결론을 낸
시점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들은 자기의 결론이 그러한 불확실성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그것을 자기의 전인격적 책임 아래 끝을 내고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비판과 평가에 맡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rdquo41)
해석방법론이 공중에 떠있는 상태라면 법관을 법률에 구속시키기 위한 방법론
적 보장책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런 가운데 ldquo자기의 전인격적 책임 아래rdquo ldquo사려
깊고 균형잡힌 총체적 관념rdquo ldquo인생 그 자체로부터 지식rdquo 등에 대한 호소를 듣는다
이것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법발견으로 불리든 법인식 혹은 법형성으
로 불리든 법적으로 올바른 결정을 이끌어낸다는 것은 순순히 lsquo앎rsquo의 문제만은 아
니라는 것이다 실천철학의 전통 용어를 빌어서 말한다면 그것은 이론지 이상의
실천지를 요구하는 활동이다 즉 법관의 해석활동은 이론지와 실천지를 결합하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이 주제로 다가가는 한 우회로로서 우선 지적 활동으로서의
법관의 해석활동의 특성에 대해 살펴보자
39) 론 풀러 법의 도덕성 박은정 옮김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2015) 314면 40) ldquo그러나 해석론 전체에 대한 확고한 이론적 토대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서열관계에
관한 모든 이론들은 여전히 공중에 떠 있다rdquo 엥기쉬 앞의 책 137면41) 사법연수원 법조윤리론(2014) 31면 그밖에 Benjamin N Cardozo The Nature of
Judicial Process Yale University Press (1921) ldquo언제 하나의 이익이 다른 이익을 능가
하는지를 묻는다면 hellip 경험과 연구와 성찰로부터 요컨대 인생 그 자체로부터 그 지식
을 얻지 않으면 안된다고 답할 수 있을 뿐이다rdquo(여기서는 법조윤리론에서 재인용) 또한 맥코믹서머즈 ldquo해석과 정당화(下)rdquo 박정훈 역 법철학연구 제6권 제1호(2003) 348면 ldquo해석은 간주관적으로 승인된 모든 법적 가치들에 대하여 사려깊고 균형잡힌
총체적 관념을 획득하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제대로 행해질
수 있다rdquo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1
Ⅵ 법관의 해석활동 실증주의의 대척점
앞에서 언급한 대로 해석에서는 무엇이 최선의 해석인가를 둘러싸고 언제나
논쟁과 불일치가 따른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누군가가 텍스트를 해석한다고
말하는 순간 그는 실증주의의 대척점에 서게 된다 실증주의과학의 의미에서는 논
쟁의 여지가 있는 것은 원칙적으로 과학일 수 없기 때문이다 법실증주의사고에서
해석 문제가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법을 근본규범에 입각
한 자기준거적인 구조로 보는 한스 켈젠(Hans Kelsen)의 순수법학이나 법적용과정
을 규칙에 의해 지도되는 과정으로 보는 하트(H L A Hart)의 분석법학에서 해석과
관련한 어려움은 다루고 있지 않다42)
켈젠은 순수법이론(Reine Rechtslehre)에서 정당한 해석만이 허용된다는 주장
은 허구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면서 해석의 건전성 문제나 정당화 문제를 법이론
안에서 다루기를 거부한다 법을 자기준거적인 것으로 보는 관점은 한마디로 해석
(행위)주체의 입장을 부정하는 것이다 켈젠은 법단계설을 바탕으로 법적용을 상위
규범의 수권에 의해 하위규범이 구체화되는 과정으로 보고 여기에 헌법의 수권을
받아 법률을 제정하는 입법자도 포함시킨다43) 이에 따라 법적용도 입법의 한 형
태로 설명된다 법관에 의한 법형성의 동기는 이를테면 입법부가 유독 다른 법률
이 아닌 이 법률을 통과시키는 동기와 같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켈젠은 판단활동
에서 인지적 요소와 의지적 요소를 엄격하게 구별하면서 법관의 판단활동을 순전
한 의지활동으로 보고 이 법관의 활동에 대해서만 (유권)해석이라는 표현을 사용
하고자 한다 그리고 법학적 해석에 대해서는 법규범의 가능한 의미들을 밝히는
것으로서 법률에 따른 결정의 범위를 제한하는 정도의 의미를 부여한다
법단계설에 따르면 상위규범이 정한 일정한 범위 안에서의 수권에 따라 하위규
범이 작용한다 이때 상위규범의 수권은 모든 세부적인 내용들에 대해서까지 정해
42) 켈젠은 순수법이론(Reine Rechtslehre) 제1판(1934) 제6장에서 해석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부분과 거의 같은 논문 ldquoZur Theorie der Interpretationrdquo이 심헌섭 젠법이론선집 법문사(1990) 97면 이하에 실려 있다 윤재왕 교수는 Reine Rechtslehre 제1판과 제2판
(1960)을 비교하면서 해석방법으로부터 오는 규범적 구속력을 일체 거부하는 켈젠의
입장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윤재왕 ldquo한스 켈젠의 법해석이론rdquo 고려법학 제74호(고려
대학교법학연구원 2014) 525면 이하 하트의 대표적인 저서 법의 개념의 색인 항목에는
lsquo해석rsquo이 빠져있다 43) Hans Kelsen Allgemeine Staatslehre (Berlin 1925) 231면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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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그래서 ldquo상위단계의 법생성으로부터 하위단계의 법생
산으로의 전환은 단지 상위단계가 정해 놓은 범위를 채우는rdquo 활동으로서 이때
ldquo언제나 상위단계에는 없는 내용적 요소가 하위단계에 추가되어야만rdquo 한다44) 이
내용을 채우는 부분과 관련하여 상대적 불확실성이 생기는데 켈젠은 이 문제를
ldquo자유재량rdquo의 문제로 다룬다45) 이는 하트가 규칙의 체계로서의 법체계를 완결된
구조가 아닌 열린 구조로 봄으로써 상대적 불확실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법관의
재량사항으로 보는 것과 같다 하트의 경우 중심부와 주변부라는 극히 단순화된
이분법을 끌어들여 이 불확실성 문제를 처리하고자 했다면 켈젠의 경우는 인식작
용과 의지작용의 이분법을 끌어들임으로써 이 문제를 처리하고자 한 것이다
판결을 법관의 의지활동으로만 이해하는 입장을 취하게 되면 법관에게 결정에
대한 근거 제시 요청을 할 수 없게 된다 마치 신의 심판에 대해 근거 제시를 요구
할 수 없듯이 말이다 결국 켈젠의 법이론상으로는 해석은 법학의 문제가 아니며
그러므로 분석적 법실증주의와도 무관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46) 이런 이유에서 그
는 정당한 해석만이 허용된다는 주장이나 해석방법만으로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에
이를 수 있다는 주장을 거부하면서 심지어는 상위규범에 제시된 범위를 넘어서는
해석의 효력조차 적극적으로 인정함으로써 어느 의미에서는 해석이론의 존재기반
자체를 무너뜨린다47)
켈젠이나 하트가 법이론에서 해석의 의미를 축소한 이면에는 이분법이라는 과도
한 사유의 단순화가 놓여 있다 그러나 켈젠이 생각하는 것처럼 판단에서 인식적
요소와 의지적 요소의 확고한 경계가 유지되는지는 의문이다 또 중심부와 주변
부에 대한 하트의 주장도 지나친 단순화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어쨌거나
켈젠이 합리적인 해석방법을 추구하는 법이론의 효용가치를 한껏 떨어뜨렸다고
해서 이제 어차피 정답은 없으니 법대에 앉은 법관은 자기 임의로 무엇이든 해도
된다고 켈젠이 주장했을 리는 물론 없을 것이다 법이론의 과도한 정당성 주장을
거부하는 데서 오히려 순수법학의 비판적 잠재력을 찾을 수 있다고 보는 학자들은
여기서 켈젠이 강조한 순수화 즉 탈정치화는 법학에 관한 것이지 법 자체에 관한
44) Kelsen Allgemeine Staatslehre 243면 여기서 번역은 윤재왕 앞의 글 535-536면에서
재인용45) Kelsen 앞의 책 243면 이하46) 켈젠에 있어서 법해석은 이론상으로는 법학보다는 정치학이나 사회학에 속하는 문제
에 더 가깝다고 지적한 견해에 대해서는 론 풀러 앞의 책 312면 47) 이에 대해서는 윤재왕 앞의 글 553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3
주장이 아니었음을 상기시킨다48) 즉 법 자체는 결코 정치와 분리될 수 없다는
점에서 법실무에 대한 학문이론의 무가치성을 주장하는 순수법학은 실무의 법
적용자로 하여금 자신의 활동이 정치적 활동임을 깨닫고 책임을 느끼게 하는 계기
를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윤재왕 교수도 ldquo켈젠 해석이론의 배후rdquo로 들어가 방법
이론으로부터의 어떤 구속력도 거부되는 데서 생기는 공백을 켈젠이 법관 자신의
자기이해와 책임성 문제로 채운다고 지적한다 ldquo법관의 판결은 결코 순수한 것일
수 없으며 그런데도 자신의 판결이 순수한 인식의 소산이라고 강조한다면 이는
정치적 책임의 회피이고 동시에 이데올로기적이라는 혐의에 노출되지 않을 수
없다rdquo49) 이 문구가 켈젠 자신으로부터 나왔다면 아주 좋았을 것이다 자신의 직
무의 중요성과 책임에 대한 실천적 깨달음은 해석의 정당화를 목표로 하는 인식적
노력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켈젠의 순수법이론의 기획은 서로
붙어 있는 양면을 떼어 놓으면서 이것을 다시 붙일 수 있음을 보여주려 한 것일까
Ⅶ 법관의 해석활동 가치판단과 lsquo정답테제rsquo 문제
켈젠처럼 실증주의적 사고에 따르든 아니면 비실증주의적 사고에 따르든 가치
판단 문제에서 해석방법만으로는 하나의 정당한 결정을 도출할 수 없다고 생각한
다면 이는 해석의 차원에서 가치에 대한 이해 시도는 진리 추구와는 무관하다는
주장으로 귀결되는가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해석대상의 의미에 대한
관심과 최선의 이해에 대한 관심은 아무래도 진리 추구라는 목표를 향한다고 봐야
한다 법적 결정은 물론 법관의 권한에 속하지만 그것을 정당화해주는 원천은 법
관이라는 lsquo지위rsquo가 지니는 형식적 권한이 아니라 판결이 정당하다는 근거 제시에
있다 법판단을 정당화해주는 모델은 울프리드 노이만(Ulfrid Neumann)이 지적한
대로 권위를 통한 정당화모델보다는 진리를 통한 정당화모델에 더 가깝다50)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재판활동은 엄연히 사법권이라는 공권력의 작용이라는 점에서
독립적인 법관의 재판활동을 그 ldquo계획적이고 진지한 진리 탐구 활동rdquo적 측면 때문
48) 법학의 탈정치화를 ldquo정치적 허무주의rdquo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데 대해서는 켈젠 ldquo순수법학이란 무엇인가rdquo 젠법이론선집 280-282면
49) 윤재왕 앞의 글 559면50) 울프리드 노이만 ldquo법 진리 권위rdquo 2013 4 6 한국법철학회 강연문 참조
8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에 학문의 자유의 한 표현으로까지 보려는 것은 무리다51)
오늘날 가치상대주의 분위기는 실천적 물음에서 진리 도달가능성에 대한 회의를
과장한다 그러나 진리가 뭐냐는 빌라도의 물음에 비록 확신에 찬 대답을 못한다
하더라도 법에서 진리 내지 정당성 추구의 포기는 파국을 의미한다 국가권력
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도 진리라는 규제이념이 전제되기 때문
이다 독립된 사법부가 심급구조와 집단적 의사결정의 형태로 스스로의 시정 기구
를 가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물론 진리에 대한 주장은 잠정적이고 수정가능하다
lsquo참이냐 거짓이냐rsquo는 오로지 서술적 명제에만 한정하여 검증될 뿐이라는 협소한
학문관을 따른다면 법학은 학문 안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법
학이 그런 협소한 학문관을 받아들여야 할 필연성은 없다 법해석자는 자신의 해
석적 판단이 진리라는 주장을 무한정 내세우지는 못하면서도 진리 추구를 피할
수 없다52) 론 풀러(Lon Fuller)의 지적대로 ldquo법이론이 최고의 법적 권위를 엄격하
게 정의하는 일에 큰 비중을 두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이 점이 모호해지면 필경
전체로서의 법체계가 와해될 수 있다rdquo53)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법을 민주
주의의 언어로 설명하는 오늘날 의회와 행정처럼 다수결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기
관도 아닌 사법의 소수 전문 엘리트의 지배를 권위모델만으로 정당화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법을 준수하는 시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시민들은 자신에게 유죄
판결을 선고한 세속의 법관에게 그 유죄판결의 근거를 알고 싶다고 요구할 수 있
으며 물론 당연히 요구한다
법관은 판결에서 논증을 통해 최상의 근거 제시가 이루어진 결정을 해야 한다54)
51) ldquo일부 사람들 중에는 이러한 법원의 권력기관적 성질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
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helliphellip 가끔 법관의 일을 조용한 방에서 소송서
류를 꼼꼼하게 읽어 파악한 사실에다가 법을 논리적으로 적용하는 단순히 지적(知的)인 작업이라는 시각에서만 말씀하시는 분을 만나면 그 분에게 재판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법대에 앉아 있는 법관이 어떻게 보이는지 물어보고 싶어집니다rdquo 양창수 ldquo바람직한 법관상 - 기예와 지혜 사이rdquo lt근대사법 및 한성재판소 설립 120주년 기념
1895sim2015 소통컨퍼런스 역사에 비춰 본 바람직한 법관상gt 자료집(서울중앙지방법원 2015 5 11) 15면 ldquo계획적이고 진지한 진리 탐구 활동rdquo이라는 표현은 라드브루흐에서
나온다 구스타브 라드브루흐 법철학 최종고 옮김 삼영사(2011) 238면 52) 드워킨 앞의 책 208면 53) 론 풀러 앞의 책 211면 풀러의 문장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ldquo하지만 이 경우도
위로부터의 지시 또한 목적의식에서 비롯되는 지적 활동을 완전히 생략할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rdquo54) 물론 진리 요청과 관련하여 개별 법관의 관점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며 민주국가에서
포기될 수 없는 진리 요청은 법학을 포함한 법체계 전체로 하여금 진리 요청에 어떻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5
이때 정당한 근거 제시가 이루어진 결정과 관련하여 그것이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
이라는 주장을 펼 수 있는가 앞에서 검토한 대로 켈젠의 순수법이론은 그런 주장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이에 비해 드워킨은 법적 판단에 있어서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이 원칙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ldquo정답테제rdquo로 불리는 이 주장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학자들이 지적한 대로 존재사실에 대한 주장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하나의 ldquo규제이념rdquo으로 받아들이는 게 맞는 것 같다 즉 드워킨의 정답테제
는 ldquo유일하게 정당한 결정rdquo이 존재한다는 데 대한 이론적 탐구라기보다는 실무에
서의 법관의 주관적 태도에 부합하는 이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법관은 자신의 판결활동과 관련하여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모든 사건
에서 오직 하나의 결정만이 정당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 정답에 가까이 가기 위
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55)
드워킨의 말대로 가치판단이 참일 때는 그냥 참일 수가 없으며 그것이 참인
이유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즉 충분한 논거가 존재할 때 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라면 이러한 논거지움의 과정은 자명한 공리적
토대나 그런 토대 위에서 확립된 규칙이나 원리적 서열에 따라 명확하게 밝힐 수
없다 이런 불확실한 가운데도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논거지움은 포기될 수
없다 이 끝없는 정당화 부담 때문에 켈젠은 규범의 효력 근거에 관한 논의를 가
치에 관한 논의와 절연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물론 성공하지
못했다56)
가치판단을 해야 하는 부분이 법문화에서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요소로 작용할지
아니면 그 반대로 작용할지는 판단자로서의 법관의 역량과 연관하여 논해야 할 것
이다 필자는 가치판단적 요소가 법문화에서 당연히 긍정적 요소로 작용해야 하며
게 부응하는지 묻게 한다 따라서 사법부 외부에서 행하는 사법비판의 길이 열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대해서는 노이만 앞의 강연문 참조55) 노이만 앞의 강연문56) 규범의 효력을 불명확하고 상대적인 가치가 아닌 규범에 근거짓기 위해 켈젠이 고안
한 근본규범은 사유상으로만 전제된 규범일 뿐이었다 켈젠은 가치판단을 ldquo현실의 행
위가 객관적으로 효력 있는 규범에 맞게 존재해야 하는 대로 존재한다는 판단rdquo이라고
정의함으로써 가치판단이라는 용어 자체를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Reine Rechtslehre 2 Aufl (1960) 16면 이하 또한 켈젠은 규범이 인간의 의지에 의해
제정되는 한 그 규범에 의해 형성된 가치는 어차피 자의적일 뿐이라고 주장한다(18면) 규범과 가치의 관계에 대한 켈젠의 주장에 대해서는 오세혁 ldquo켈젠의 법이론에 있어서
규범과 가치 - 규범과 가치의 상관관계를 중심으로rdquo 법철학연구 제18권 제3호(2015) 97면 이하 참조
8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또한 그렇게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57) 그런 방향에서 이제 해석의 문제를 법
관의 자기이해 문제와 연관시켜 보기로 한다
Ⅷ 해석과 법관의 자기이해
법관은 추상적인 일반규칙을 가지고 공중의 이목을 끄는 개별적인 사건을 처리
하는 사람이다 법관의 의식활동에 의해 일반규칙과 일회적인 사건 사이의 심연이
메워진다 하지만 일반성과 개별성을 결합하는 이 의식과정에 동반하는 고유한 법
학적 방법에 대해서는 앞에서 지적한 대로 확실한 합의는 없다 ldquo리걸 마인드rdquo라
는 말이 풍기는 신비스러운 분위기에는 사법적 결정이 본질적으로 투명한 것이 되기
어렵다는 암시가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다 논리적인 형태만 부여하기로 한다면
한 사건에서 서로 상반된 결론에 이른 두 개의 판결문을 작성하는 것도 불가능
하지 않다58) 방법이 논리에 기초하는 것이라면 이때 논리는 형식논리를 넘어 엥기
쉬가 표현한 대로 ldquo실질에 부합하는rdquo 논리여야 할 것이다 참된 올바른 받아들
일 수 있는 결정에 이르는 실질논리 이 실질에 도달하기까지는 결코 논리적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지적 감행과 어떤 매개가 작용한다
일반규칙을 개별사례에 적용할 때 요구되는 판단자의 능력과 관련하여 가다머
(Hans-Georg Gadamer)는 이런 견해를 밝힌 적이 있다 판단자는 자신이 이미 가
57) 이와는 달리 가치의 ldquo통약불가능성rdquo 때문에 사법은 좋음이나 옳음의 이슈에 대해 실
질적 입장을 취하는 일에 대해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가치의 통약
불가능성에 대해서는 Cass R Sunstein ldquoImcommensurability and Valuation in Lawrdquo Michigan Law Review Vol 92 No 4 (1994) 779면 이하 조홍식 교수는 ldquo가치의 통약
불가능성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이 권리인가의 문제보다 무엇이 공익인가의 문제에서
더 크다rdquo고 지적하면서 기본적으로 가치판단과 관련한 사법통치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사법통치의 정당성과 한계 제2판 박영사(2010) 240면 가치의 통약불가능성에 대한 주장은 가치판단과 관련한 해석기준의 서열화는 불가능
하다는 주장과 같은 노선에 속한다 여기서 통약불가능성 문제를 자세히 다룰 수는
없다 다만 가치의 통약불가능성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통약불가능이 비교불가능을 의미
하지는 않는다는 점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체적인 맥락이 주어지는 경우 무엇이 옳은
지 혹은 그른지에 대해 심사숙고하며 이에 따라 선택하고 그 선택 결과를 받아들인
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정도만 지적하기로 한다 58) 실제로 판사가 판결문을 두 개 써왔다고 주장한 사건에 대한 보도가 있었다 ldquo판결문을
두 개 써왔다rdquo 조선일보 2013 11 21자 기사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7
지고 있어서 적용하기만 하면 된다는 그런 의미의 규범적 실천적 ldquo지식을 소유한
사람rdquo이라기보다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 ldquo지식을 탄생시키는 상황에 직면하는
사람rdquo이라는 것이다59) 일반범주를 개별사례에 적용할 때 요구되는 이 판단력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래서 칸트(Kant)도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ldquo지성은 규칙들
을 통해 배우고 보강할 수 있는 것이지만 판단력은 특수한 재능으로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전혀 아니고 단지 숙련될 수 있을 뿐이다rdquo60)
우리는 올바른 규칙이나 원리를 알고 있지만 막상 이것을 어떤 상황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예컨대 비례성원칙이나 과잉금지원칙에 대한 지식
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은 적정해야 하고 그 수단은 목적달
성을 위해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원칙을 특수한
상황에 lsquo적용rsquo한다고 할 때에 이 원칙이 그 어떤 판단도 배제할 정도로 자족적인
지침 구실을 한다고 느끼기는 어렵다 특정 상황에서 그 수단이 과연 어느 정도일
때가 목적달성에 적정한지는 판단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실천이성의 역
할이다
단의 자리는 이론 경험 양심이 혼재된 실천의 영역이다 판단을 통한 결정이
라는 그 lsquo종국성rsquo으로 인한 실천적 성격은 법학이 다른 어떤 학문분야와도 공유
하지 않는 법학 고유의 특징이다 그래서 법학은 lsquolegal sciencersquo로 불리기보다는
실천지- prudentia-를 함의하는 lsquojurisprudencersquo로 더 자주 불리어 왔을 것이다
해석의 차원에서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도 추상적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
으로는 행위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성과 개별성을 결합하는 해석적
지식은 추상적 이론적 지식들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일반규칙이나 원리
에 근거한 이론적 패턴의 지식과 특정한 상황 내지 맥락을 고려하는 실천적 패턴
의 지식의 이중주를 이룬다 법관이 지니는 통찰력의 특성은 이론과 태도가 함께
간다는 데 있다 그래서 사법적 판단에서는 규칙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 못지않게
사람 즉 법관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사법적 통찰력의 특성은
뭐니뭐니해도 개별 사례를 다룬다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개별적인 것들은 개별적
인 방식으로만 체험되고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들은 무엇
보다도 lsquo지각rsquo과 관계된다61) 즉 그것들은 일반적 체계적 지식의 대상이라기보다
59) Hans-Georg Gadamer Wahrheit und Methode Grundzuumlge einer philosophischen Hermeneutik 3 Aufl J C B MOHR (1972) 300면
60)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 1 백종현 옮김 아카넷(2009) 37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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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우선 지각의 대상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도 사법적 통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쪽은 규칙보다는 오히려 사람 즉 법관 쪽인 것이다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사건에서 법적으로 중요한 사실이 무엇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규칙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어떤 규칙이 중요한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실이 중요한지 알
아야 한다 이 인식과정에서 법관은 불확실한 가운데서 무수한 선택을 감행한다
어떤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 배척하고 어떤 사실은 인정하거나 무게를 부
여하고 신청된 증거조사의 어떤 것은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거부하고helliphellip 사실
에 대한 이 취사선택-자유심증주의-의 결과로 새로운 것이 태어난다 그리고
이것에 의해 법원을 찾아온 사람들의 운명이 갈리는 것이다
법관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필자 생각에
독일의 법철학자 아르투어 카우프만(Arthur Kaufmann)의 해석학적 방법론은 법
관의 자기이해 문제를 해석학적 지평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법관의 해석작업의
본질을 잘 설명해주는 것 같다 가다머 계통의 철학적 해석학(philosophische
Hermeneutik)의 입장을 받아들이면서62) 카우프만은 법해석행위를 통해 포괄적인
의미에서 법관 자신의 인격 중의 어떤 것이 판결에 혼입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
61)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4면 그리고 1심에서
유죄였다가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강력범죄 540건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판단자
의 감지능력 차이가 법판단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힌 김상준 무죄
결과 법 의 사실인정 경인문화사(2013) 62) 텍스트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이해에 관한 연구분야인 해석학(hermeneutics Hermeneutik)
의 어원은 신들의 전령(傳令)인 Hermes라는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설명된다 이때 신의
의도를 인간에게 전하는 과정에서 언어의 제약성 시공간적 간격 전령의 역할 등과 관
련하여 해석의 문제가 생긴다고 본다 ldquoHermeneuticsrdquo Dictionary of Biblical Interpretation Nashville (1999) 497면 독일어의 Auslegung이 해석주체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대상
으로서의 텍스트에 대한 해석을 의미한다면(객관주의) 철학적 해석학에서의 해석
(Interpretation)은 해석주체의 주관성 내지 역사성이 대상에 투사된다는 의미가 강하다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에 따르면 역사적 존재인 인간에게 있어 모든 해석과 이해는 과
거와 현재가 lsquo작용사적으로(wirkungsgeschichtlich)rsquo 중재되는 사건으로서 lsquo선이해rsquo 내지
lsquo선판단rsquo 없이는 불가능하다 가다머는 선입견으로 폄하된 선이해를 재평가하고 이를
통해 근대 이래 lsquo방법rsquo을 통한 진리발견이 주체에 의한 객체의 대상화 내지 도구화를 가져
왔다고 비판하면서 인간경험에 있어서 진리에 이르는 길은 사물의 존재가 스스로 드러
나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해석과 이해는 전승된 존재방식으로서
의 텍스트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며 이는 텍스트 자체가 지닌 역사적 지평과 해석
자의 지평이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만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해석학적 순환 이해의 전제로서의 선이해 작용사 등에 대해서는 Gadamer 앞의 책 II Grundzuumlge einer Theorie der Hermeneutischen Erfahrung 참조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9
로 법관의 결정이 올바른가의 물음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가의 물음과 직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63)
우선 카우프만은 통상적으로 회자되는 독립적인 법관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즉 법 앞에 선 법관이 일체의 정치적 사회적 개인적 영향이나 선입견들로부터 차
단된 채 순수한 객관적 인식에 따라 그 이전에는 자신이 알 수 없었던 사실관계
를 판단하고 그런 다음에 법적 판단을 한다는 식으로 이해하기를 거부한다64)
그런 법관상은 법령집은 일체 해석의 필요가 없이 거의 모든 가능한 법률문제에
대한 대답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상정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법관은 의지가
없는 존재이며 사법권력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여기는 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법에 대한 인식은 단순히 사례를 법률에 포섭시킨다는 의미의 수
동적 행위가 아니고 해석자가 해석대상에 관여하면서 함께 lsquo형성rsquo하는 것이라고
본다 카우프만은 법관의 법형성력에 대한 자신의 견해가 주관주의의 의미로 받아
들여지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는데 왜냐하면 해석자는 텍스트를 지탱하는 모든
전통과 함께 이해의 지평으로 들어간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은 서류의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ldquo아 이런 사건이구나rdquo라고 감을 잡게 되
는데 카우프만에 따르면 이는 법관 자신이 사건 경과를 관찰해서 인지했다거나
언론 등을 통해 사건에 대한 상세한 지식을 얻었다는 뜻이 아니라 유사한 사건들
을 알며 그래서 ldquo선이해(Vorurteil Vorverstaumlndnis)rdquo65)를 가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
해의 전제로서 이런 선이해가 없다면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것이 무엇에 관한 사
건인지 알 수 없고 다른 사례와 비교할 수도 없기 때문에 올바른 판단에 이른다
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66) 이 선이해에 의해 해석은 언제나 해석주체의 자기
이해 즉 자신이 lsquo잠정적rsquo 결과로서 이미 예상했던 것을 논증적으로 근거짓는 활동
이라는 의미에서 ldquo해석학적 순환rdquo 내지 ldquo해석학적 나선구조rdquo 하에 이루어진다
63)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Festschrift fuumlr Karl Peters Mohr Siebeck (1974) 144면 법관의 독립과 양심 주제와 관련한 또 다른
글로는 Kaufmann ldquoGesetz und Rechtrdquo Existenz und Ordnung Festschrift fuumlr Erik Wolf (1962) 357면 이하
64)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4면 65) 해석학적 의미에서의 lsquo선이해rsquo는 일상 언어 관용에서는 lsquo선입견rsquo이나 lsquo편견rsquo 같은 부정
적 함의를 더 많이 지니기 때문에 카우프만은 lsquoVorurteilrsquo 대신에 Vorverstaumlndnis라는 용
어를 쓰기를 권장한다(앞의 글 148면) 카우프만 외에도 이 용어의 선택은 Josef Esser Vorverstaumlndnis und Methodenwahl in der Rechtsfindung 2 Aufl (Frankfurt aM 1972)
66)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7면
90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텍스트를 이해하려는 사람은 말하자면 언제나 초벌 그림을 그리며 특정 의미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텍스트를 읽기 때문에 ldquo텍스트에서 첫 번째 의미가 지시되자
마자 전체의 의미를 lsquo예비투사한다(vorauswirft)rsquordquo67) 그리고 선이해와 관련된 이 예
비투사는-해석학적 lsquo순환rsquo에 의해-원칙적으로 끝없이 검열과정을 거친다는 것
이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도 실제 판단과정에서는 분리
되지 않는다68)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은 시간적으로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단절 관계가 아니라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정제하고 상응하는
관계에 놓인다 즉 사실에 대한 인식 없이 규범적 인식은 불가능하며 또한 규범적
관점 없이 사실만을 통한 사실 확정도 불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법률도 법관의
해석을 만나기 전에는 ldquo잠재적인 가능태로서 주어진 법률rdquo일 뿐 해석학적 순환을
통한 정제 혹은 상응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ldquo진정한 실정법rdquo이 생성된다69) 이렇
게 특정사건을 통해 구체화된 규범(구성요건)과 이 규범을 통해 정해진 사실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법관에게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들과 함께 제3의 요소로서 법관
자신의 선이해 내지 이해 포괄적으로 말하면 그의 인격적 존재가 판단에 혼입
된다
lsquo선이해rsquo는 판단자가 자신의 선이해를 의식하지 못할 때 부정적 요소를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ldquo자신의 판단은 오로지 lsquo있는 그대로다rsquo라고 말하는 즉 lsquo오로지 법
률에만 구속된다rsquo라고 말하는 법관이야말로 실은 종속된 법관이다 왜냐하면 그는
성찰되지 않은 자신의 선이해와 거리를 둘 수 없기 때문이다rdquo70) 즉 법관은 자신
67)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68) 실제 판단과정에서 사실인정과 법률적용이 따로 떨어질 수 없다는 점은 굳이 카우프
만의 이론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실무상으로는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ldquo법률
의 적용과 사실의 인정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법률문제와 결부되어 인정된다 사실의 인정이 진행됨에 따라서 재판관의 머리
속에서는 어떠한 법규를 적용할 것인가 그 법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는 전망이
점차로 서게 되며 당사자 측도 경우에 따라서는 민사인 경우 청구의 취지를 변경할
것인가를 고려하게 되고 형사인 경우 공소사실을 변경하는 경우도 생긴다 요컨대 사실
문제와 법률문제는 실제과정에서 불가분으로 결부되어 있다 helliphellip 양쪽이 불가분으로
재판관의 직관 혹은 재판관의 전인격적인 작용에 의하여 사실의 인정과 법의 적용이
행하여지고 판결 삼단논법은 실제의 심판 과정에서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rdquo(사법
연수원 법조윤리론 35면) 69) ldquo법관의 해석 작업 이전에는 어느 의미에서 진정 법도 진정한 사실도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원자재들(Rohmaterialien)로만 이것들이 존재할 뿐이다rdquo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1
의 선이해를 의식하고 자신을 이데올로기 혐의 앞에 세울 줄 알 때 올바른 판결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ldquo법관이 자신의 선이해와 종속을 의식할수록 그래서 간주
관적 합의에 노력할수록 그는 더 객관적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rdquo71) 그러므로
법관의 주관주의의 위험은 카우프만식으로 말하면 가치판단 같은 성찰적 고려와
관련된 주관적 요소를 방법상의 근거 제시의 맥락에 끌어들이는 법관의 경우보다는
오히려 모든 것이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판결의 주관적
요소를 은폐하는 법관에게서 나타나는 위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학적 순환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법관은 ldquo법률의 입rdquo이 아니라 ldquo인격
으로서 판결을 떠받친다rdquo72) 판결은 법률과 법관의 인격의 혼성물이다 그러므로
법률은 판결을 위한 필요조건이기는 하나 충분조건은 아니라고도 말할 수 있다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순환이론은 법관의 독립과 양심의 문제 차원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법결정의 올바름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
는 정도에 달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자신을 올바르
게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자신의 판단력 경험 능력 인간에 대한 태도 감
수성 명예욕 등등
카우프만의 법해석학적 순환이론이 법관의 독립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이라
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독립은 법관 스스로 관철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론적으로 카우프만의 법해석이론의 의의는 법관이 자신의 선입견을
의식하는 것이야말로 법관의 독립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설득력있게 지적
해주며 그런 방향에서 법관의 법해석 작업을 재평가했다는 데 있다고 말할 수 있
겠다
70)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71) Arthur Kaufmann ldquoDer BGH und die Sitzblockaderdquo NJW (1988) 2581면 이하72) 이 표현은 Karl Peters의 Strafprozess - Ein Lehrbuch (1966) 99면에 나오며 여기서는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9면에서 재
인용했다 이덕연 교수도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에 입각하여 ldquo법관의 법해석작
업은 단순한 lsquo인식작업rsquo이나 lsquo언어분석작업rsquo이 아니라 ldquo구체적인 반성과 자기극복의
노력 속에서 온 인격을 걸고 진행하는 lsquo이해와 실천의 수행작업rsquordquo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앞의 글 352면)
9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Ⅸ 법관은 lsquo하는 사람rsquo인가 lsquo보는 사람rsquo인가
법관의 판단작업을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의 관점에서 주목했던 또 다른
철학자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다 그녀는 ldquo아이히만 재판rdquo을 계기로 판단의
특수한 경우로서의 판단력 문제를 연구했다73) 아렌트는 하드케이스와 연관시켜
법관의 판단력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74) 법관은 우선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을 반추하면서 판단에 임하는데 이때 판단자로서 그는 한 면으
로는 규칙에 따라 판단하라는 lsquo일반적 정의rsquo의 요구에 그리고 동시에 다른 한 면
으로는 정황에 맞게 판단하라는 lsquo개별적 정의rsquo의 요구에 처한다 이러한 상황은
아렌트에 따르면 하드케이스에서 특히 발생한다 이 이중적이고 모순적 요구 상황
을 아렌트는 법관의 판단에 적용되는 특수한 해석학 및 그 조건을 설명하는 출발
점으로 삼는다75) 하드케이스가 아닌 통상적인 사건에서는 이른바 포섭 여부를 판
단하는 것으로도 족하다 일반규칙에의 포섭 여부가 중심이 되는 이 단계에서의
판단력- lsquo규정하는 판단력(bestimmende Urteilskraft)rsquo-은 사실관계에서의 원인
이나 형식적 정의를 따지므로 일방적이고 간주관적 전제 없이도 가능하다 그래서
흔히 법관은 여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법을 해석해야 한다고 말할 때 이는
법적용을 이러한 지배적인 포섭모델에 입각하여 이해한 결과라 할 것이다 그런데
규칙으로부터 오는 어떤 어려움들 때문에 규정하는 판단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즉 포섭이 어렵거나 법흠결 시 또는 가치형량이 요구되는 하드케
이스에서는 법관은 어쩔 수 없이 앞에서 말한 모순문제를 다루어야만 한다 이때
아렌트는 법관이 사유의 확장을 통해 방법상으로 lsquo규정적 판단력rsquo을 스스로 교정
할 수 있는 lsquo성찰적 판단력rsquo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고 이 판단유형의 전환과정을
73) 법적 판단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 삼은 저술은 Hannah Arendt Eichmann in Jerusalem Ein Bericht von der Banalitaumlt des Boumlsen Erw Aufl (Muumlnchen 2001) 그리고 Hannah Arendt Das Urteilen Texte zu Kants Politischer Philosophie Hrsg v R Beiner Uumlbers v U Ludz (Muumlnchen 1998)
74) 아렌트가 염두에 둔 하드케이스는 라드브루흐가 이른바 ldquo법률적 불법rdquo 상태로 규정한
나치의 불법국가 상황으로서 이렇게 극히 예외적인 케이스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하드
케이스에 적용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별적 정의 요구에 부응함
으로써 예컨대 소급효를 금지하는 일반법률에 위배되는 상황과 유사한 갈등상황은 반
드시 극단적 상황에서만 생긴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75)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2 Bde Hrsg v U Ludz amp I Nordmann
따라서 그 척도는 전달가능성이며 거기에 딱 맞는 것은 공통감각(상식)이다rdquo77) 오
늘날 공통감각은 아렌트도 지적했듯이 더 이상 그것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얻고자 노력해야 하는 그 무엇이 되어버린 듯하다 그러나 공통감
각이 무너진 시대를 겪었던 아렌트는 사유의 전환 내지 확대를 위한 진정한 발판
을 다시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에서 구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78)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실천철학의 전통에서는 세계와의 관계 그리고 자기와의 관
계를 공통감각을 척도로 설정해가는 판단자가 lsquo하는 사람rsquo인지 아니면 lsquo보는 사람rsquo
인지 즉 lsquo행위자rsquo인지 아니면 lsquo관찰자rsquo인지를 둘러싸고 의견이 대립되어 왔다 lsquo하
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자가 lsquo정치가rsquo 쪽에 더 가깝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
자는 lsquo철학자rsquo 쪽에 더 가깝다 lsquo하는 사람rsquo은 주로 사회의 일반적 상식 건전한 인
간이해 세론(doxa)을 판단의 척도로 삼는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적 경험은 전체주
의 하에서는 건전한 인간이해도 집단화된 대중감정에 따른 오도된 인간이해 앞에
무너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판단에서 사실로서의 상식이나 합의 또는
법해석공동체 내부의 지배적 제도적 관점이라는 판단 척도만으로는 일반규칙으로
부터 오는 모순을 다루기 어렵다 여기서 판단자는 ldquo확대된 사유방식rdquo을 추구해야
하는데 아렌트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을 lsquo보는 사람rsquo의 판단과 결합시킴으로써 법
관을 위한 사유의 확대를 시도한다79) lsquo하는 사람rsquo이 사실로서의 일반적 상식이나
인간이해 차원에 비추어 판단한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ldquo이
상적 규범적 상식rdquo80)을 추구하고자 한다 판단을 거쳐 법적 효과를 결정하는 법관
76)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을 해석학적 순환이론을 적용하여 분석하면서 칸트의 판단력 비
판에 의거하여 아렌트가 판단력의 특수한 경우로서 법관의 ldquo성찰적 판단력rdquo이라는 새
로운 판단유형을 제시했다고 지적한 연구서로는 Stefanie Rosenmuumlller Der Ort des Rechts Gemeinsinn und richterliches Urteilen nach Hannah Arendt Nomos (2013) 참조
77) Hannah Arendt Das Urteilen 92-93면78) 아렌트가 판단의 차원을 심화시키는 발판으로 삼는 상식은 sensus communis로서
communis opinio와는 다르다는 데 대해서는 Marieke Borren ldquolsquoA Sense of the Worldrsquo Hannah Arendtrsquos Hermeneutic Phenomenology of Common Senserdquo International Journal of Philosophical Studies Vol 21 No 2 (2013) 225-255
79) Hannah Arendt Das Urteilen 76면80) Rosenmuumlller 앞의 책 234면 이하 여기서 아렌트는 상식개념을 이중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에서는 경험적 개념으로 보다 성찰적 판단
단계에서는 규범적 개념으로 사용한다
9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은 관찰자로서 판단하면서 동시에 행위자로서 판단에서 법적 결과를 결정하는
사람이다 관찰자인 동시에 행위자라는 이중적인 역할을 하면서 법관은 자신의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 반추한다81) 이 반추과정에서 법관은 한편으로는 포섭
하는 판단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고려해야 할 관점들을 끌어들이면서
자신의 직책을 마지막까지 수행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통제하면서 자신의 앞서의
(포섭) 판단을 정정해나간다 그래서 법관 자신이 lsquo보는 사람rsquo과 lsquo하는 사람rsquo의 만
남의 장소가 되는 것과도 같다 ldquo이 보는 사람은 모든 하는 사람 안에 자리 잡고
있다helliphellip이 비판적 판단능력이 없이는 행위자 혹은 해결자는 보는 사람으로부터
풀려나 종내는 지각되지조차 못하게 될 것이다rdquo82)
사람들은 자신 일에 있어서는 비당파적일 수는 없다 따라서 ldquo자신의 일에 대한
판단에서는 내면의 심판자 혹은 내면의 법정을 가질 수 없다rdquo83) 그러나 다른 사
람의 일을 반추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필히 비당파적이어야 하며 또 비당파적이 될
수 있다 이때 그는 비로소 내면의 심판자를 가지게 된다 즉 양심의 문제에 처하
게 되는 것이다 판단에 있어서 양심이라는 것 즉 양심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남
의 일에서 ldquo증인rdquo 혹은 ldquo비판적 친구rdquo로서 관찰하고 행위하는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이다84)
아렌트의 성찰적 판단모델은 나치 불법국가 경험의 산물이다 통상의 규칙이 파
괴된 상황 통상의 범죄유형에 포섭되지 않는 극히 예외적인 범죄적 상황에서 법
원은 기존의 판단척도를 해석학적 출발로 삼아서는 안 되고 이때에는 질적으로
동의가능한 합의형식을 찾기 위해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으로 돌아가
진정으로 사유 즉 철학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렌트가 판단을 일반화해주는
거점이자 해석학적 출발점으로 삼은 공통감각(상식) 개념은 칸트철학에서 ldquo비사교
적 사교성rdquo 개념의 위상과 비슷하다85) 이 지상에서 인간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다른 것을 원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모여 살아야만 하는 존재다 이 비사회성 요
청과 사회성 요청의 동시성 때문에 인간에게는 제도적인 안착이 더없이 중요하며
법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실존과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만든다 판단의 기
81) Leora Y Bilsky When Actor and Spectator Meet in the Courtroom Hannah Arendt and Eichmann in Jerusalem G N Arad Hg (Bloomington 1996) 137면
82) Hannah Arendt 앞의 책 85면83) Hannah Arendt 앞의 책 76면 84)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657면85) Rosenmuumlller 앞의 책 1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5
초를 보편적 인간경험에 둔다는 점에서 아렌트가 말하는 판단력은 드워킨의 헤라
클레스와 같은 초인적 천재성을 발휘하는 능력과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86) 아
렌트가 상정하는 이상적인 법관은 철학적이지만 철학자는 아니고 정치적이지만 정
치가는 아닌 사람이다
아렌트는 헌법국가의 권위도 상식개념에 기반을 두고 설명한다 그리고 민주적
정당성의 관점에서 입법의 우위를 인정하는 까닭에 성찰적 판단에 입각한 법관의
검증에는 한계가 있다는 태도를 견지한다87)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렌트가 제시한
법관의 성찰적 판단 유형에 대해서는 다양한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우선 이것이
예외 상황에서 적용되는 판단모델로 상정된 것이며 무엇보다도 ldquo규범적 상식rdquo에
대한 단일한 이해기반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법관 개인의 주관적 정치적 신념
이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길을 피할 수 없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성찰적
판단력은 결국 레토릭에 불과한 것인가 아렌트는 그러나 무엇이 ldquo특정 상황에 맞
는 공통감각(situierte Gemeinsinn)rdquo인지에 대한 공동의 인식은 가능하며 또 법관의
lsquo하는rsquo 판단에 들어있는 정치적 함의를 성찰적 판단력으로 검증하는 것도 가능하
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아렌트가 마지막 검증심급으로 원용하는 것이 바로 판
단에서의 양심의 심급이다 그것이 과연 동의할 수 있는 합의형태로서 충분한지를
스스로 검증하는 이 심급에서 판단자는 명령조로 자기에게 전해지는 소리를 듣게
된다 ldquo멈춰 나는 그것은 할 수 없어rdquo88) 판단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 멈추는 것
이 가능한 이 성찰적 심급에서는 칸트와 달리 할 수 없는 이유로써 결과도 고려
된다 lsquo보는 사람rsquo이 자기 안에서 지켜보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상황은 토마스 아퀴
나스의 양심론에 비추어 다음과 같이 묘사될 수도 있겠다 지적 본성을 가진 인간
존재가 보편법칙에 관한 지식을 개별 행위에 적용하기 위해 판단하고 선택할 때
행위자는 갈등 상황- ldquo그렇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rdquo는
상황-에 처하여 멈칫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데 이때 그는 단지 갈등하고
선택하는 역할만 하지 않고 갈등하고 선택하는 이 과정을 ldquo관찰하고 목격하는 증인rdquo
의 역할도 한다는 것89)
86) 드워킨에 의하면 해석적 탐구는 ldquo어떠한 증명도 허용치 않고 어떠한 수렴도 약속치
않는 탐구rdquo이다(드워킨 정의론 203면)87) Rosenmuumlller 앞의 책 30면88) Hannah Arendt Uumlber das Boumlse Eine Vorlesung zu Fragen der Ethik Hrsg v J Kohn
(Muumlnchen 2003) 52면89) 지적 행위자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자신의 내면의 갈등과 선택과정을 바라보는
9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Ⅹ 방법에서 덕목으로
헌법 제103조는 한 면으로는 헌법과 법률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 면으로 해석자에게 여하한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lsquo제약
의 차원rsquo과 lsquo자유의 차원rsquo을 동시에 담고 있다 법관은 자유로울 때에라도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며 법에 구속될 때에라도 전적으로 구속되지는 않는다는 뜻이
기도 하다 이 lsquo자유와 구속의 변증법rsquo에 비추어 지금까지 논한 주제에 대해 몇 가
지 입장을 정리해 보자 첫째 법관에게 있어서 독립은 확정된 원칙이나 그것자체
로서 달성해야 할 최종목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법관의 독립은 완성형이 아니라
끊임없는 진행형의 과제로서 그 직무수행에 대한 신뢰와 병행하여 점진적으로 이
루어지는 것이다 둘째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에 있어서 구속은 법률에 무조건 복종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판결에 대한 윤리 (내 ) 확신과 함께 법률에 복종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법관이 실정법률에 반하는 결정을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법
관은 객관성을 빌미로 법률 뒤에 숨는 익명적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
미하는 것이다 셋째 독립적인 법관의 양심은 lsquo법과 상충한다rsquo기보다는 lsquo법을 실
한다rsquo는 의미를 지닌다 넷째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서 반추하면서 lsquo하는
사람rsquo인 동시에 lsquo보는 사람rsquo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성찰 인 인물상으
로서만 설정될 수 있다
해석적 탐구는 우리의 이해를 넓히기 위해서 필요하지만 이해에서의 우리의 피
할 수 없는 한계를 깨닫기 위해서도 필요했는지 모른다 엥기쉬는 법해석방법론에
대한 저술의 마지막 부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ldquo방법론에 천착하다 보면
애초의 문제였던 법률로부터 훨씬 더 먼 곳으로 이끌려 간다rdquo 지금까지 필자는
법관의 법해석과 관련하여 방법론의 의의와 한계를 논하고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과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에 비추어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이 법해석론
의 불가결한 부분으로 들어가게 되는 이유도 밝혔다 그리고 해석적 차원에서의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는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행위를 목표로 하는
탐구라는 것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필자는 이 모든 논의들을 매개로 방법론이 우리를 더 멀리 덕
목론으로 데려가는 과정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드워킨의
상황에 대한 이 묘사 부분은 이경재 ldquo토마스 아퀴나스의 양심 개념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375면을 참조했다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7
헤라클레스를 잠시 불러올 필요가 있다 해석문제를 누구보다도 더 진지하게 다룬
드워킨은 마지막에 헤라클레스를 내세운다 주어진 사건에서 무엇이 법인지에
대해 도덕적 의식을 가지고 법실무 전체를 원리정합적으로 정당화하라는 요청에
부응하여 자신의 신념에 기초한 결정을 내리는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의 구성적
해석에서 법관의 양심이 기능하는 국면은 어디일까 송민경 판사는 드워킨의 구성
적 해석론에 입각하여 양심을 구체적 법논증과정의 일부로 포함시키면서 이때 양
심이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라는 지침으로 기능한다고 설명한다90)
그런데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는 지침으로 기능하는 것을 양심이라
고 보게 되면 양심의 문제는 논증적 합리성의 차원 즉 논증의 성공으로 종결짓게
된다 그러나 법적 결정의 정당성 문제는 법관의 입장에서는 논증의 성공 문제로
다루어지지만 법관의 성공적인 논증에 따른 판결의 결과로부터 영향을 받는 시민
의 입장에서 보면 성공적인 논증만으로는 해석이 정당화된다고 볼 수는 없다
성공적인 논증은 법적 결정의 정당화에 필수적이기는 하나 충분한 조건은 되지 못
한다 해석이 궁극적으로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사법적 도덕성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 사법적 도덕성은 헤라클레스가 지침으로 삼는 원리적 도덕성의 실현과는 다른
것이다 만약 패소한 시민이 다른 헤라클레스에게 갔더라면 즉 다른 법원리에 기
초한 신념을 토대로 다른 결정을 내린 다른 법관에게 갔다면 그는 승리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왜 헤라클레스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하
는지에 대한 답이 필요한 것이다91) 헤라클레스가 실무에 대한 최상의 정당화를
도모하는 법적 이상주의자라면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법원 문을 두드린 시민도
어느 의미에서 ldquo법이상주의자rdquo92)이다
법해석 작업의 주관의존성이라는 불가피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재판이라는 특수
한 공적 활동이 법관이라는 특수공직자에 의해 운영되고 유지된다는 것은 시민들
-소송에서 패한 시민들을 포함하여-편에서 보면 법을 해석하는 법관에 대한
신뢰가 전제된다는 것이다 법관의 독립적 활동은 법관의 특권 행사가 아니라 사
90) 송민경 앞의 글 38면 20면91) 사법적 덕목과 연관하여 이 부분을 다룬 글로는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5면 이하
92) 법원 문을 두드리는 시민에 대한 이 표현은 심헌섭 ldquo법조윤리의 좌표 거시적 관점에서 본 전문윤리로서의 법조윤리rdquo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편 法律家의 倫理와 責任 박영사
(2003)에 나온다
9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법과정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응당한 몫이 돌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존중하는 바탕에는 일종의 상호성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 그 또한
시민이기도 한 법관이 동료시민들에 대해 가지는 배려와 존중의 원칙이 그것이다
여기서 사법적 덕목에 대해 자세히 논할 수는 없다93) 예의 성실 신중 절제
용기 공정 겸손 의사소통 능력 형평 시민에 대한 배려와 존중 등등 이것들은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바탕을 이루는 양심의 덕목들일
것이다 양심이라는 단어가 그렇듯이 덕목이라는 단어도 오늘날 진부해진 표현
이며 거의 사라져가는 단어다 윤리적 태도로서의 덕목은 관찰하기도 배우기도
어렵다 그러나 올바른 판단과 결정이 법관이라는 개인을 거치지 않고 법령집
자체로부터 반사적으로 튀어나오지 않는 한 이 덕목들을 내면화하고 지향하려는
태도 없이는 lsquo종국적인rsquo 판단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써 필자는 헌법 제103조를 통해 법해석에서의 방법론의 문제가 덕목론이라
는 다음 과제로 이어진다는 점을 밝혔다고 생각한다
투고일 2016 4 6 심사완료일 2016 5 18 게재확정일 2016 5 20
93) 법관의 개별적인 덕목들과 이것들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는 박은정 강태경 김현섭 바람
직한 법관상의 정립과 실천 방안에 관한 연구 법원행정처(2015) 제5장 참조할 것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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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ltAbstractgt
Independence and Conscience of the Judges Based on
Interpretive Method for Article 103 of the Korean Constitution
Pak Un Jong
94)
In this paper I aim to discuss the problem of independence and conscience
of the judges as outlined in Article 103 of the Korean Constitution in the
context of the interpretive methodology
First of all this paper will look at the background in which the independence
of the judges has been institutionalized and also the problems regarding usual
explanation for conscience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And I will try to
reveal the characteristics and difficulties of the interpretive actions of the judges
especially in connection to the issue of value judgment This would require
pointing out the problems and limitations of the interpretive methodology and at
the same time defining the nature of tension embedded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namely the tension between the obligations of the judges to abide
the law versus the subjective internal demeanor of the judges This tension-
ridden condition reenacted by the demand to follow lsquogeneral justicersquo versus
lsquoindividual justicersquo appears inevitably in the process of judicial interpretation I
will examine the theories that capture this kind of tension that accompany the
interpretation process and aim to feel out the possibilities of resolving this
tension At the end I come to the conclusion that these theories can explain but
cannot resolve this tension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If so the problem
which arises from the limitations of the interpretative methodologies from the
perspective that a judgersquos final decision greatly impacts citizens becomes a
problem of judicial ethics In order to ultimately justify the interpretation of the
judges the demands of judicial ethics must be satisfied Keeping this demand in
Professor College of Law School of Law Seoul National University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103
mind I point out that the significance of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is in
its role of bridging legal methodology to virtue ethics
Keywords independence of the judges conscience of the judges interpretive
method of law value judgment judicial virtue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77
되면 다시 제기될 수밖에 없는 물음이 바로 입법기관과 법적용기관 사이의 권력
균형 문제다 이 권력 균형은 특히 법 이라는 개인에 의해 매개된다는 점에서 문
제가 된다 오늘날 ldquo사법국가rdquo ldquo법관공화국rdquo ldquo사법엘리트rdquo ldquo사법의 정치화rdquo 등을
지적하는 소리는 입헌민주주의 기획의 초기단계에서 일찍이 해결했다고 여겼던
문제들이 다시 등장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법관의 법률구속의 전제 및 그 가능성
법원의 중립성 법관의 민주적 정당성 사법관료주의 등의 문제가 그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물음이 떠오른다 해석자의 자유를 제
한하고 법관의 법률구속을 보장할 확고한 법해석방법론은 가능한가 법관의 법률
구속에 관한 기술적 제도적 보장책은 가능한가 필자는 이 물음들에 대체로 회의
적인 전망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물론 법해석방법의 무용론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법률에 구속되는 법관상이 약화되고 앞으로도 점점 더 약화될
것이라는 전망 하에 어느 때보다도 더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될 법관의 독립 문제
를 염두에 두면서 법해석방법론의 문제를 재검토하고자 한다
Ⅴ 법해석방법론의 문제점과 한계
법이 있는 곳에 해석이 있다 법학의 강점도 해석학적 잠재력에 있다 법관의 임
무는 법률을 적용하기 위해 법문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법해석방법론은 법
해석과정에서 법관의 자유에 일정한 제약을 가하고 법관의 법률구속이념을 실현하
기 위해 고안되고 발전된 것이다 해석에서는 무엇이 최선의 해석인지를 둘러싸고
언제나 논쟁과 불일치가 생기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해석작업은 인간의 판단과 행
위의 영향 하에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법관이 따라야 하는 법률 자체에는 이미 법적용자를 법률에 대해 어느 정도 독
립적이게 만드는 여러 표현방식들이 들어 있다 예컨대 lsquo야간rsquo lsquo소음rsquo lsquo위험한 물건rsquo
lsquo적절한 조치rsquo 등 개념의 내포와 외연이 확정적이지 않은 법개념들이 대표적이다
이런 불확정적 개념들은 법명제의 구성요건 단계에만 들어 있는 게 아니라 법률효
과에서도 등장한다 이른바 lsquo규범적 개념rsquo들도 그런 표현방식에 속한다 lsquo음란한rsquo
lsquo건전한rsquo lsquo불명예스러운rsquo 등의 개념들은 기본적으로 지각가능한 대상을 서술하는
개념과 대비하여 의미내용이 가치판단에 근거할 때만 파악된다는 점에서 규범적
이다 이때 가치판단은 반드시 주관적 개인적 평가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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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의 평가도 포함할 것이지만 어쨌든 이 판단과 관련한 어느 정도의 불확정성은
감수해야 한다 법관의 법률 구속 의무를 느슨하게 만드는 이런 개념군에는 재량
도 포함된다 오늘날 재량개념은 ldquo법적으로 구속되는rdquo 재량으로 이해되지만 이때
판단의 여지 안에 들어오는 여러 대안들 가운데서 최종 혹은 최선의 대안을 확정
하는 데 있어서 결정자의 개인적 확신을 허용할 수밖에 없다 일반조항도 표현 그
대로 높은 일반성을 띰으로써 법적용자로 하여금 자기 앞에 놓인 사례를 광범위한
사례집단들에 적응시켜가면서 법률효과를 귀속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33)
위에서 언급한 불확정 법개념이나 규범적 개념 등을 적용하는 데는 가치판단
요소가 수반된다 이런 개념들을 적용할 때 법관은 일정한 범위 안에서 입법자를
대신하여 가치판단 내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것이다 또 법관
은 법의 lsquo흠결rsquo을 보충하거나 법질서 안에서 이따끔 발견되는 lsquo오류rsquo를 수정해야
할 부득이한 상황에도 처하게 된다 이때는 법관은 스스로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찾아 나서야 한다 lsquo법의 일반원칙rsquo lsquo법의 정신rsquo lsquo평균인의 척도rsquo lsquo비례성원칙 lsquo이익
형량rsquo 등은 이때 법관이 의존하는 사유 장치들이며 이것들을 원용하는 데도 가치
판단적 요소가 개입한다 이때 판단자는 무엇이 사실상 효력을 갖고 있는 윤리적
견해인지 확인해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사실로서의 합의가 올바른 법적 결론에
도달하게 하는지에 대해서도 숙고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법적용자는 때로는 평
균인 테스트 같은 객관적인 척도에 의지하지만 또 때로는 개인적 견해를 더 많이
펼칠 수 있는 일정한 판단의 여지를 가지게 된다
이렇게 해석과정에서 불가피한 lsquo판단의 여지rsquo 즉 해석과정에 불가피하게 개입되
는 가치판단 요소 때문에 ldquo해석의 건전성rdquo을 둘러싸고 논란이 생기고 해석의 정당
화와 관련하여 회의가 생긴다 가치판단과 관련된 부분이 불가피하게 주관적 요소
를 끌어들이게 되고 이로 인해 법규범의 효력이 상대적이고 불확실한 영역으로 떨
어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단자는 자신의 결론이 불확실성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자신의 해석에 대한 정당화를 포기할 수 없다 법을
해석한다는 것은 ldquo그 법률을 특정 사안에 적용하는 것을 정당화한다는rdquo34)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확정적인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사례에서도 요구되는
33) 불확정적 개념 규범적 개념 재량 일반조항과 관련한 자세한 설명은 칼 엥기쉬 법학
방법론 안법영윤재왕 옮김 세창출판사(2011) 182면 이하에 잘 정리되어 있으며 필
자도 이 부분을 참조했음을 밝힌다 34) 닐 맥코믹 로버트 서머즈 ldquo해석과 정당화(上)rdquo 박정훈 역 법철학연구 제5권 제2호
(2002) 18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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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단은 도덕적 상대주의자들이 말하는 개인적인 취향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해석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올바른 해석기준을 수립하고자 법률가들은 각
기 지금까지 다양한 해석방법에 의존해 왔다 올바른 해석을 위한 확고한 기준을
수립할 수 있다는 것은 찬성하는 혹은 반대하는 해석논거들 사이의 상대적 비중을
결정하는 명확한 규칙을 수립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즉 어느 한 해석
논거가 다른 해석논거에 의해 배제되는 조건이나 선택된 해석을 정당화하는 데
필수적인 한 논거가 다른 논거보다 우월하기 위한 조건 한 논거에 누적을 통한
비중이 부과되는 조건 등을 제시해줄 일관된 정보와 지침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
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여러 해석방법들 사이에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다는 것
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시도는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했다 동일한 유형의 논거일지
라도 각각의 정당화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비중을 갖게 될 뿐더러 언어적 해석
방법 체계적 해석방법 목적적 해석방법 등으로 제시되는 여러 해석방법들이 한
줄로 세우기에는 한마디로 너무 이질적이다35) 물론 이들 해석논거들의 상호작용
을 검토하면서 잠정적인 서열을 제시하는 것은 가능할 수도 있다36) 그러나 이 서
열은 기껏해야 ldquo해석을 위한 노력의 경제성 원리rdquo 정도를 말해 줄 뿐이기 때문에
쉽게 바뀔 수 있다37)
드워킨이 옳게 지적한 대로 기본적으로 가치판단과 관련된 해석방법들은 위계
적일 수 없고 ldquo상호지지적rdquo인 관계에 놓일 뿐이다38) 이 때문에 방법론적 규칙을
세우려는 시도는 언제나 무망해지는 것이다 또한 법해석에 있어서 언어란 단어의
의미를 식별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 행위의 의미를 식별
하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론 풀러(Lon Fuller)가 지적한 대로 ldquo언어
를 통한 의사 전달은 어느 한 사람으로부터 다른 사람에게로 의미가 든 상자를 발송
하는 식rdquo39)은 아닌 것이다
35) 울프리드 노이만 ldquo실증주의 이후 시대의 법률과 판결rdquo 강연문(주 32) 노이만에 따르
면 예컨대 체계적 해석 방법에 따른 논거도 그것이 논리적 일관성 획득의 맥락에서
인지 아니면 가치평가의 일관성 보장이라는 맥락인지에 따라 전혀 다른 비중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36) 대체로 언어적-체계적-역사적-목적론적 해석방법의 순서로 언급되는 데 대해서는 심헌섭
분석과 비 의 법철학 법문사(2001) 217-218면37) 맥코믹과 서머즈는 비교법적 연구결과를 통해 올바른 해석을 위한 지침 수립은 어느
국가의 법체계에서도 지금까지 성공적이지 못함을 밝힌다(앞의 글 210면)38) 로널드 드워킨 정의론 박경신 옮김 민음사(2015) 30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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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해석방법론으로부터 법관은 불확실성을 떨쳐 낼 수 있는 확실한 정
보제공을 기대하기 어렵다 해석논거를 위한 결정적인 기준을 제공하는 해석방법
에 대해 불안정한 형태로나마 이론적 합의를 찾기 어렵다면 엥기쉬의 지적대로
해석방법론은 공중에 떠있는 상태다40) 법학에서 방법론의 융성은 역설적으로 법
학이 이 부분에 취약하다는 암시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해석자로서의 법관을
최종적으로 인도하는 전략은 무엇일까 다음과 같은 고민을 들어보면 적어도 그것
은 방법론상의 합의에 대한 기대 같은 것은 아닌 것 같다 ldquo우리들은 일정한 결론을
내리고도 그 결론이 가장 적절sdot타당한 것이라고 보증받을 수 없다 그 결론을 낸
시점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들은 자기의 결론이 그러한 불확실성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그것을 자기의 전인격적 책임 아래 끝을 내고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비판과 평가에 맡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rdquo41)
해석방법론이 공중에 떠있는 상태라면 법관을 법률에 구속시키기 위한 방법론
적 보장책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런 가운데 ldquo자기의 전인격적 책임 아래rdquo ldquo사려
깊고 균형잡힌 총체적 관념rdquo ldquo인생 그 자체로부터 지식rdquo 등에 대한 호소를 듣는다
이것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법발견으로 불리든 법인식 혹은 법형성으
로 불리든 법적으로 올바른 결정을 이끌어낸다는 것은 순순히 lsquo앎rsquo의 문제만은 아
니라는 것이다 실천철학의 전통 용어를 빌어서 말한다면 그것은 이론지 이상의
실천지를 요구하는 활동이다 즉 법관의 해석활동은 이론지와 실천지를 결합하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이 주제로 다가가는 한 우회로로서 우선 지적 활동으로서의
법관의 해석활동의 특성에 대해 살펴보자
39) 론 풀러 법의 도덕성 박은정 옮김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2015) 314면 40) ldquo그러나 해석론 전체에 대한 확고한 이론적 토대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서열관계에
관한 모든 이론들은 여전히 공중에 떠 있다rdquo 엥기쉬 앞의 책 137면41) 사법연수원 법조윤리론(2014) 31면 그밖에 Benjamin N Cardozo The Nature of
Judicial Process Yale University Press (1921) ldquo언제 하나의 이익이 다른 이익을 능가
하는지를 묻는다면 hellip 경험과 연구와 성찰로부터 요컨대 인생 그 자체로부터 그 지식
을 얻지 않으면 안된다고 답할 수 있을 뿐이다rdquo(여기서는 법조윤리론에서 재인용) 또한 맥코믹서머즈 ldquo해석과 정당화(下)rdquo 박정훈 역 법철학연구 제6권 제1호(2003) 348면 ldquo해석은 간주관적으로 승인된 모든 법적 가치들에 대하여 사려깊고 균형잡힌
총체적 관념을 획득하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제대로 행해질
수 있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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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법관의 해석활동 실증주의의 대척점
앞에서 언급한 대로 해석에서는 무엇이 최선의 해석인가를 둘러싸고 언제나
논쟁과 불일치가 따른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누군가가 텍스트를 해석한다고
말하는 순간 그는 실증주의의 대척점에 서게 된다 실증주의과학의 의미에서는 논
쟁의 여지가 있는 것은 원칙적으로 과학일 수 없기 때문이다 법실증주의사고에서
해석 문제가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법을 근본규범에 입각
한 자기준거적인 구조로 보는 한스 켈젠(Hans Kelsen)의 순수법학이나 법적용과정
을 규칙에 의해 지도되는 과정으로 보는 하트(H L A Hart)의 분석법학에서 해석과
관련한 어려움은 다루고 있지 않다42)
켈젠은 순수법이론(Reine Rechtslehre)에서 정당한 해석만이 허용된다는 주장
은 허구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면서 해석의 건전성 문제나 정당화 문제를 법이론
안에서 다루기를 거부한다 법을 자기준거적인 것으로 보는 관점은 한마디로 해석
(행위)주체의 입장을 부정하는 것이다 켈젠은 법단계설을 바탕으로 법적용을 상위
규범의 수권에 의해 하위규범이 구체화되는 과정으로 보고 여기에 헌법의 수권을
받아 법률을 제정하는 입법자도 포함시킨다43) 이에 따라 법적용도 입법의 한 형
태로 설명된다 법관에 의한 법형성의 동기는 이를테면 입법부가 유독 다른 법률
이 아닌 이 법률을 통과시키는 동기와 같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켈젠은 판단활동
에서 인지적 요소와 의지적 요소를 엄격하게 구별하면서 법관의 판단활동을 순전
한 의지활동으로 보고 이 법관의 활동에 대해서만 (유권)해석이라는 표현을 사용
하고자 한다 그리고 법학적 해석에 대해서는 법규범의 가능한 의미들을 밝히는
것으로서 법률에 따른 결정의 범위를 제한하는 정도의 의미를 부여한다
법단계설에 따르면 상위규범이 정한 일정한 범위 안에서의 수권에 따라 하위규
범이 작용한다 이때 상위규범의 수권은 모든 세부적인 내용들에 대해서까지 정해
42) 켈젠은 순수법이론(Reine Rechtslehre) 제1판(1934) 제6장에서 해석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부분과 거의 같은 논문 ldquoZur Theorie der Interpretationrdquo이 심헌섭 젠법이론선집 법문사(1990) 97면 이하에 실려 있다 윤재왕 교수는 Reine Rechtslehre 제1판과 제2판
(1960)을 비교하면서 해석방법으로부터 오는 규범적 구속력을 일체 거부하는 켈젠의
입장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윤재왕 ldquo한스 켈젠의 법해석이론rdquo 고려법학 제74호(고려
대학교법학연구원 2014) 525면 이하 하트의 대표적인 저서 법의 개념의 색인 항목에는
lsquo해석rsquo이 빠져있다 43) Hans Kelsen Allgemeine Staatslehre (Berlin 1925) 231면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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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그래서 ldquo상위단계의 법생성으로부터 하위단계의 법생
산으로의 전환은 단지 상위단계가 정해 놓은 범위를 채우는rdquo 활동으로서 이때
ldquo언제나 상위단계에는 없는 내용적 요소가 하위단계에 추가되어야만rdquo 한다44) 이
내용을 채우는 부분과 관련하여 상대적 불확실성이 생기는데 켈젠은 이 문제를
ldquo자유재량rdquo의 문제로 다룬다45) 이는 하트가 규칙의 체계로서의 법체계를 완결된
구조가 아닌 열린 구조로 봄으로써 상대적 불확실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법관의
재량사항으로 보는 것과 같다 하트의 경우 중심부와 주변부라는 극히 단순화된
이분법을 끌어들여 이 불확실성 문제를 처리하고자 했다면 켈젠의 경우는 인식작
용과 의지작용의 이분법을 끌어들임으로써 이 문제를 처리하고자 한 것이다
판결을 법관의 의지활동으로만 이해하는 입장을 취하게 되면 법관에게 결정에
대한 근거 제시 요청을 할 수 없게 된다 마치 신의 심판에 대해 근거 제시를 요구
할 수 없듯이 말이다 결국 켈젠의 법이론상으로는 해석은 법학의 문제가 아니며
그러므로 분석적 법실증주의와도 무관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46) 이런 이유에서 그
는 정당한 해석만이 허용된다는 주장이나 해석방법만으로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에
이를 수 있다는 주장을 거부하면서 심지어는 상위규범에 제시된 범위를 넘어서는
해석의 효력조차 적극적으로 인정함으로써 어느 의미에서는 해석이론의 존재기반
자체를 무너뜨린다47)
켈젠이나 하트가 법이론에서 해석의 의미를 축소한 이면에는 이분법이라는 과도
한 사유의 단순화가 놓여 있다 그러나 켈젠이 생각하는 것처럼 판단에서 인식적
요소와 의지적 요소의 확고한 경계가 유지되는지는 의문이다 또 중심부와 주변
부에 대한 하트의 주장도 지나친 단순화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어쨌거나
켈젠이 합리적인 해석방법을 추구하는 법이론의 효용가치를 한껏 떨어뜨렸다고
해서 이제 어차피 정답은 없으니 법대에 앉은 법관은 자기 임의로 무엇이든 해도
된다고 켈젠이 주장했을 리는 물론 없을 것이다 법이론의 과도한 정당성 주장을
거부하는 데서 오히려 순수법학의 비판적 잠재력을 찾을 수 있다고 보는 학자들은
여기서 켈젠이 강조한 순수화 즉 탈정치화는 법학에 관한 것이지 법 자체에 관한
44) Kelsen Allgemeine Staatslehre 243면 여기서 번역은 윤재왕 앞의 글 535-536면에서
재인용45) Kelsen 앞의 책 243면 이하46) 켈젠에 있어서 법해석은 이론상으로는 법학보다는 정치학이나 사회학에 속하는 문제
에 더 가깝다고 지적한 견해에 대해서는 론 풀러 앞의 책 312면 47) 이에 대해서는 윤재왕 앞의 글 553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3
주장이 아니었음을 상기시킨다48) 즉 법 자체는 결코 정치와 분리될 수 없다는
점에서 법실무에 대한 학문이론의 무가치성을 주장하는 순수법학은 실무의 법
적용자로 하여금 자신의 활동이 정치적 활동임을 깨닫고 책임을 느끼게 하는 계기
를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윤재왕 교수도 ldquo켈젠 해석이론의 배후rdquo로 들어가 방법
이론으로부터의 어떤 구속력도 거부되는 데서 생기는 공백을 켈젠이 법관 자신의
자기이해와 책임성 문제로 채운다고 지적한다 ldquo법관의 판결은 결코 순수한 것일
수 없으며 그런데도 자신의 판결이 순수한 인식의 소산이라고 강조한다면 이는
정치적 책임의 회피이고 동시에 이데올로기적이라는 혐의에 노출되지 않을 수
없다rdquo49) 이 문구가 켈젠 자신으로부터 나왔다면 아주 좋았을 것이다 자신의 직
무의 중요성과 책임에 대한 실천적 깨달음은 해석의 정당화를 목표로 하는 인식적
노력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켈젠의 순수법이론의 기획은 서로
붙어 있는 양면을 떼어 놓으면서 이것을 다시 붙일 수 있음을 보여주려 한 것일까
Ⅶ 법관의 해석활동 가치판단과 lsquo정답테제rsquo 문제
켈젠처럼 실증주의적 사고에 따르든 아니면 비실증주의적 사고에 따르든 가치
판단 문제에서 해석방법만으로는 하나의 정당한 결정을 도출할 수 없다고 생각한
다면 이는 해석의 차원에서 가치에 대한 이해 시도는 진리 추구와는 무관하다는
주장으로 귀결되는가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해석대상의 의미에 대한
관심과 최선의 이해에 대한 관심은 아무래도 진리 추구라는 목표를 향한다고 봐야
한다 법적 결정은 물론 법관의 권한에 속하지만 그것을 정당화해주는 원천은 법
관이라는 lsquo지위rsquo가 지니는 형식적 권한이 아니라 판결이 정당하다는 근거 제시에
있다 법판단을 정당화해주는 모델은 울프리드 노이만(Ulfrid Neumann)이 지적한
대로 권위를 통한 정당화모델보다는 진리를 통한 정당화모델에 더 가깝다50)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재판활동은 엄연히 사법권이라는 공권력의 작용이라는 점에서
독립적인 법관의 재판활동을 그 ldquo계획적이고 진지한 진리 탐구 활동rdquo적 측면 때문
48) 법학의 탈정치화를 ldquo정치적 허무주의rdquo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데 대해서는 켈젠 ldquo순수법학이란 무엇인가rdquo 젠법이론선집 280-282면
49) 윤재왕 앞의 글 559면50) 울프리드 노이만 ldquo법 진리 권위rdquo 2013 4 6 한국법철학회 강연문 참조
8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에 학문의 자유의 한 표현으로까지 보려는 것은 무리다51)
오늘날 가치상대주의 분위기는 실천적 물음에서 진리 도달가능성에 대한 회의를
과장한다 그러나 진리가 뭐냐는 빌라도의 물음에 비록 확신에 찬 대답을 못한다
하더라도 법에서 진리 내지 정당성 추구의 포기는 파국을 의미한다 국가권력
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도 진리라는 규제이념이 전제되기 때문
이다 독립된 사법부가 심급구조와 집단적 의사결정의 형태로 스스로의 시정 기구
를 가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물론 진리에 대한 주장은 잠정적이고 수정가능하다
lsquo참이냐 거짓이냐rsquo는 오로지 서술적 명제에만 한정하여 검증될 뿐이라는 협소한
학문관을 따른다면 법학은 학문 안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법
학이 그런 협소한 학문관을 받아들여야 할 필연성은 없다 법해석자는 자신의 해
석적 판단이 진리라는 주장을 무한정 내세우지는 못하면서도 진리 추구를 피할
수 없다52) 론 풀러(Lon Fuller)의 지적대로 ldquo법이론이 최고의 법적 권위를 엄격하
게 정의하는 일에 큰 비중을 두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이 점이 모호해지면 필경
전체로서의 법체계가 와해될 수 있다rdquo53)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법을 민주
주의의 언어로 설명하는 오늘날 의회와 행정처럼 다수결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기
관도 아닌 사법의 소수 전문 엘리트의 지배를 권위모델만으로 정당화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법을 준수하는 시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시민들은 자신에게 유죄
판결을 선고한 세속의 법관에게 그 유죄판결의 근거를 알고 싶다고 요구할 수 있
으며 물론 당연히 요구한다
법관은 판결에서 논증을 통해 최상의 근거 제시가 이루어진 결정을 해야 한다54)
51) ldquo일부 사람들 중에는 이러한 법원의 권력기관적 성질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
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helliphellip 가끔 법관의 일을 조용한 방에서 소송서
류를 꼼꼼하게 읽어 파악한 사실에다가 법을 논리적으로 적용하는 단순히 지적(知的)인 작업이라는 시각에서만 말씀하시는 분을 만나면 그 분에게 재판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법대에 앉아 있는 법관이 어떻게 보이는지 물어보고 싶어집니다rdquo 양창수 ldquo바람직한 법관상 - 기예와 지혜 사이rdquo lt근대사법 및 한성재판소 설립 120주년 기념
1895sim2015 소통컨퍼런스 역사에 비춰 본 바람직한 법관상gt 자료집(서울중앙지방법원 2015 5 11) 15면 ldquo계획적이고 진지한 진리 탐구 활동rdquo이라는 표현은 라드브루흐에서
나온다 구스타브 라드브루흐 법철학 최종고 옮김 삼영사(2011) 238면 52) 드워킨 앞의 책 208면 53) 론 풀러 앞의 책 211면 풀러의 문장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ldquo하지만 이 경우도
위로부터의 지시 또한 목적의식에서 비롯되는 지적 활동을 완전히 생략할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rdquo54) 물론 진리 요청과 관련하여 개별 법관의 관점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며 민주국가에서
포기될 수 없는 진리 요청은 법학을 포함한 법체계 전체로 하여금 진리 요청에 어떻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5
이때 정당한 근거 제시가 이루어진 결정과 관련하여 그것이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
이라는 주장을 펼 수 있는가 앞에서 검토한 대로 켈젠의 순수법이론은 그런 주장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이에 비해 드워킨은 법적 판단에 있어서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이 원칙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ldquo정답테제rdquo로 불리는 이 주장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학자들이 지적한 대로 존재사실에 대한 주장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하나의 ldquo규제이념rdquo으로 받아들이는 게 맞는 것 같다 즉 드워킨의 정답테제
는 ldquo유일하게 정당한 결정rdquo이 존재한다는 데 대한 이론적 탐구라기보다는 실무에
서의 법관의 주관적 태도에 부합하는 이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법관은 자신의 판결활동과 관련하여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모든 사건
에서 오직 하나의 결정만이 정당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 정답에 가까이 가기 위
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55)
드워킨의 말대로 가치판단이 참일 때는 그냥 참일 수가 없으며 그것이 참인
이유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즉 충분한 논거가 존재할 때 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라면 이러한 논거지움의 과정은 자명한 공리적
토대나 그런 토대 위에서 확립된 규칙이나 원리적 서열에 따라 명확하게 밝힐 수
없다 이런 불확실한 가운데도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논거지움은 포기될 수
없다 이 끝없는 정당화 부담 때문에 켈젠은 규범의 효력 근거에 관한 논의를 가
치에 관한 논의와 절연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물론 성공하지
못했다56)
가치판단을 해야 하는 부분이 법문화에서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요소로 작용할지
아니면 그 반대로 작용할지는 판단자로서의 법관의 역량과 연관하여 논해야 할 것
이다 필자는 가치판단적 요소가 법문화에서 당연히 긍정적 요소로 작용해야 하며
게 부응하는지 묻게 한다 따라서 사법부 외부에서 행하는 사법비판의 길이 열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대해서는 노이만 앞의 강연문 참조55) 노이만 앞의 강연문56) 규범의 효력을 불명확하고 상대적인 가치가 아닌 규범에 근거짓기 위해 켈젠이 고안
한 근본규범은 사유상으로만 전제된 규범일 뿐이었다 켈젠은 가치판단을 ldquo현실의 행
위가 객관적으로 효력 있는 규범에 맞게 존재해야 하는 대로 존재한다는 판단rdquo이라고
정의함으로써 가치판단이라는 용어 자체를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Reine Rechtslehre 2 Aufl (1960) 16면 이하 또한 켈젠은 규범이 인간의 의지에 의해
제정되는 한 그 규범에 의해 형성된 가치는 어차피 자의적일 뿐이라고 주장한다(18면) 규범과 가치의 관계에 대한 켈젠의 주장에 대해서는 오세혁 ldquo켈젠의 법이론에 있어서
규범과 가치 - 규범과 가치의 상관관계를 중심으로rdquo 법철학연구 제18권 제3호(2015) 97면 이하 참조
8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또한 그렇게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57) 그런 방향에서 이제 해석의 문제를 법
관의 자기이해 문제와 연관시켜 보기로 한다
Ⅷ 해석과 법관의 자기이해
법관은 추상적인 일반규칙을 가지고 공중의 이목을 끄는 개별적인 사건을 처리
하는 사람이다 법관의 의식활동에 의해 일반규칙과 일회적인 사건 사이의 심연이
메워진다 하지만 일반성과 개별성을 결합하는 이 의식과정에 동반하는 고유한 법
학적 방법에 대해서는 앞에서 지적한 대로 확실한 합의는 없다 ldquo리걸 마인드rdquo라
는 말이 풍기는 신비스러운 분위기에는 사법적 결정이 본질적으로 투명한 것이 되기
어렵다는 암시가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다 논리적인 형태만 부여하기로 한다면
한 사건에서 서로 상반된 결론에 이른 두 개의 판결문을 작성하는 것도 불가능
하지 않다58) 방법이 논리에 기초하는 것이라면 이때 논리는 형식논리를 넘어 엥기
쉬가 표현한 대로 ldquo실질에 부합하는rdquo 논리여야 할 것이다 참된 올바른 받아들
일 수 있는 결정에 이르는 실질논리 이 실질에 도달하기까지는 결코 논리적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지적 감행과 어떤 매개가 작용한다
일반규칙을 개별사례에 적용할 때 요구되는 판단자의 능력과 관련하여 가다머
(Hans-Georg Gadamer)는 이런 견해를 밝힌 적이 있다 판단자는 자신이 이미 가
57) 이와는 달리 가치의 ldquo통약불가능성rdquo 때문에 사법은 좋음이나 옳음의 이슈에 대해 실
질적 입장을 취하는 일에 대해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가치의 통약
불가능성에 대해서는 Cass R Sunstein ldquoImcommensurability and Valuation in Lawrdquo Michigan Law Review Vol 92 No 4 (1994) 779면 이하 조홍식 교수는 ldquo가치의 통약
불가능성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이 권리인가의 문제보다 무엇이 공익인가의 문제에서
더 크다rdquo고 지적하면서 기본적으로 가치판단과 관련한 사법통치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사법통치의 정당성과 한계 제2판 박영사(2010) 240면 가치의 통약불가능성에 대한 주장은 가치판단과 관련한 해석기준의 서열화는 불가능
하다는 주장과 같은 노선에 속한다 여기서 통약불가능성 문제를 자세히 다룰 수는
없다 다만 가치의 통약불가능성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통약불가능이 비교불가능을 의미
하지는 않는다는 점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체적인 맥락이 주어지는 경우 무엇이 옳은
지 혹은 그른지에 대해 심사숙고하며 이에 따라 선택하고 그 선택 결과를 받아들인
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정도만 지적하기로 한다 58) 실제로 판사가 판결문을 두 개 써왔다고 주장한 사건에 대한 보도가 있었다 ldquo판결문을
두 개 써왔다rdquo 조선일보 2013 11 21자 기사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7
지고 있어서 적용하기만 하면 된다는 그런 의미의 규범적 실천적 ldquo지식을 소유한
사람rdquo이라기보다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 ldquo지식을 탄생시키는 상황에 직면하는
사람rdquo이라는 것이다59) 일반범주를 개별사례에 적용할 때 요구되는 이 판단력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래서 칸트(Kant)도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ldquo지성은 규칙들
을 통해 배우고 보강할 수 있는 것이지만 판단력은 특수한 재능으로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전혀 아니고 단지 숙련될 수 있을 뿐이다rdquo60)
우리는 올바른 규칙이나 원리를 알고 있지만 막상 이것을 어떤 상황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예컨대 비례성원칙이나 과잉금지원칙에 대한 지식
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은 적정해야 하고 그 수단은 목적달
성을 위해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원칙을 특수한
상황에 lsquo적용rsquo한다고 할 때에 이 원칙이 그 어떤 판단도 배제할 정도로 자족적인
지침 구실을 한다고 느끼기는 어렵다 특정 상황에서 그 수단이 과연 어느 정도일
때가 목적달성에 적정한지는 판단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실천이성의 역
할이다
단의 자리는 이론 경험 양심이 혼재된 실천의 영역이다 판단을 통한 결정이
라는 그 lsquo종국성rsquo으로 인한 실천적 성격은 법학이 다른 어떤 학문분야와도 공유
하지 않는 법학 고유의 특징이다 그래서 법학은 lsquolegal sciencersquo로 불리기보다는
실천지- prudentia-를 함의하는 lsquojurisprudencersquo로 더 자주 불리어 왔을 것이다
해석의 차원에서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도 추상적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
으로는 행위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성과 개별성을 결합하는 해석적
지식은 추상적 이론적 지식들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일반규칙이나 원리
에 근거한 이론적 패턴의 지식과 특정한 상황 내지 맥락을 고려하는 실천적 패턴
의 지식의 이중주를 이룬다 법관이 지니는 통찰력의 특성은 이론과 태도가 함께
간다는 데 있다 그래서 사법적 판단에서는 규칙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 못지않게
사람 즉 법관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사법적 통찰력의 특성은
뭐니뭐니해도 개별 사례를 다룬다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개별적인 것들은 개별적
인 방식으로만 체험되고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들은 무엇
보다도 lsquo지각rsquo과 관계된다61) 즉 그것들은 일반적 체계적 지식의 대상이라기보다
59) Hans-Georg Gadamer Wahrheit und Methode Grundzuumlge einer philosophischen Hermeneutik 3 Aufl J C B MOHR (1972) 300면
60)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 1 백종현 옮김 아카넷(2009) 374면
8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는 우선 지각의 대상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도 사법적 통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쪽은 규칙보다는 오히려 사람 즉 법관 쪽인 것이다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사건에서 법적으로 중요한 사실이 무엇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규칙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어떤 규칙이 중요한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실이 중요한지 알
아야 한다 이 인식과정에서 법관은 불확실한 가운데서 무수한 선택을 감행한다
어떤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 배척하고 어떤 사실은 인정하거나 무게를 부
여하고 신청된 증거조사의 어떤 것은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거부하고helliphellip 사실
에 대한 이 취사선택-자유심증주의-의 결과로 새로운 것이 태어난다 그리고
이것에 의해 법원을 찾아온 사람들의 운명이 갈리는 것이다
법관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필자 생각에
독일의 법철학자 아르투어 카우프만(Arthur Kaufmann)의 해석학적 방법론은 법
관의 자기이해 문제를 해석학적 지평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법관의 해석작업의
본질을 잘 설명해주는 것 같다 가다머 계통의 철학적 해석학(philosophische
Hermeneutik)의 입장을 받아들이면서62) 카우프만은 법해석행위를 통해 포괄적인
의미에서 법관 자신의 인격 중의 어떤 것이 판결에 혼입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
61)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4면 그리고 1심에서
유죄였다가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강력범죄 540건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판단자
의 감지능력 차이가 법판단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힌 김상준 무죄
결과 법 의 사실인정 경인문화사(2013) 62) 텍스트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이해에 관한 연구분야인 해석학(hermeneutics Hermeneutik)
의 어원은 신들의 전령(傳令)인 Hermes라는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설명된다 이때 신의
의도를 인간에게 전하는 과정에서 언어의 제약성 시공간적 간격 전령의 역할 등과 관
련하여 해석의 문제가 생긴다고 본다 ldquoHermeneuticsrdquo Dictionary of Biblical Interpretation Nashville (1999) 497면 독일어의 Auslegung이 해석주체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대상
으로서의 텍스트에 대한 해석을 의미한다면(객관주의) 철학적 해석학에서의 해석
(Interpretation)은 해석주체의 주관성 내지 역사성이 대상에 투사된다는 의미가 강하다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에 따르면 역사적 존재인 인간에게 있어 모든 해석과 이해는 과
거와 현재가 lsquo작용사적으로(wirkungsgeschichtlich)rsquo 중재되는 사건으로서 lsquo선이해rsquo 내지
lsquo선판단rsquo 없이는 불가능하다 가다머는 선입견으로 폄하된 선이해를 재평가하고 이를
통해 근대 이래 lsquo방법rsquo을 통한 진리발견이 주체에 의한 객체의 대상화 내지 도구화를 가져
왔다고 비판하면서 인간경험에 있어서 진리에 이르는 길은 사물의 존재가 스스로 드러
나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해석과 이해는 전승된 존재방식으로서
의 텍스트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며 이는 텍스트 자체가 지닌 역사적 지평과 해석
자의 지평이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만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해석학적 순환 이해의 전제로서의 선이해 작용사 등에 대해서는 Gadamer 앞의 책 II Grundzuumlge einer Theorie der Hermeneutischen Erfahrung 참조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9
로 법관의 결정이 올바른가의 물음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가의 물음과 직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63)
우선 카우프만은 통상적으로 회자되는 독립적인 법관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즉 법 앞에 선 법관이 일체의 정치적 사회적 개인적 영향이나 선입견들로부터 차
단된 채 순수한 객관적 인식에 따라 그 이전에는 자신이 알 수 없었던 사실관계
를 판단하고 그런 다음에 법적 판단을 한다는 식으로 이해하기를 거부한다64)
그런 법관상은 법령집은 일체 해석의 필요가 없이 거의 모든 가능한 법률문제에
대한 대답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상정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법관은 의지가
없는 존재이며 사법권력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여기는 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법에 대한 인식은 단순히 사례를 법률에 포섭시킨다는 의미의 수
동적 행위가 아니고 해석자가 해석대상에 관여하면서 함께 lsquo형성rsquo하는 것이라고
본다 카우프만은 법관의 법형성력에 대한 자신의 견해가 주관주의의 의미로 받아
들여지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는데 왜냐하면 해석자는 텍스트를 지탱하는 모든
전통과 함께 이해의 지평으로 들어간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은 서류의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ldquo아 이런 사건이구나rdquo라고 감을 잡게 되
는데 카우프만에 따르면 이는 법관 자신이 사건 경과를 관찰해서 인지했다거나
언론 등을 통해 사건에 대한 상세한 지식을 얻었다는 뜻이 아니라 유사한 사건들
을 알며 그래서 ldquo선이해(Vorurteil Vorverstaumlndnis)rdquo65)를 가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
해의 전제로서 이런 선이해가 없다면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것이 무엇에 관한 사
건인지 알 수 없고 다른 사례와 비교할 수도 없기 때문에 올바른 판단에 이른다
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66) 이 선이해에 의해 해석은 언제나 해석주체의 자기
이해 즉 자신이 lsquo잠정적rsquo 결과로서 이미 예상했던 것을 논증적으로 근거짓는 활동
이라는 의미에서 ldquo해석학적 순환rdquo 내지 ldquo해석학적 나선구조rdquo 하에 이루어진다
63)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Festschrift fuumlr Karl Peters Mohr Siebeck (1974) 144면 법관의 독립과 양심 주제와 관련한 또 다른
글로는 Kaufmann ldquoGesetz und Rechtrdquo Existenz und Ordnung Festschrift fuumlr Erik Wolf (1962) 357면 이하
64)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4면 65) 해석학적 의미에서의 lsquo선이해rsquo는 일상 언어 관용에서는 lsquo선입견rsquo이나 lsquo편견rsquo 같은 부정
적 함의를 더 많이 지니기 때문에 카우프만은 lsquoVorurteilrsquo 대신에 Vorverstaumlndnis라는 용
어를 쓰기를 권장한다(앞의 글 148면) 카우프만 외에도 이 용어의 선택은 Josef Esser Vorverstaumlndnis und Methodenwahl in der Rechtsfindung 2 Aufl (Frankfurt aM 1972)
66)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7면
90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텍스트를 이해하려는 사람은 말하자면 언제나 초벌 그림을 그리며 특정 의미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텍스트를 읽기 때문에 ldquo텍스트에서 첫 번째 의미가 지시되자
마자 전체의 의미를 lsquo예비투사한다(vorauswirft)rsquordquo67) 그리고 선이해와 관련된 이 예
비투사는-해석학적 lsquo순환rsquo에 의해-원칙적으로 끝없이 검열과정을 거친다는 것
이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도 실제 판단과정에서는 분리
되지 않는다68)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은 시간적으로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단절 관계가 아니라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정제하고 상응하는
관계에 놓인다 즉 사실에 대한 인식 없이 규범적 인식은 불가능하며 또한 규범적
관점 없이 사실만을 통한 사실 확정도 불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법률도 법관의
해석을 만나기 전에는 ldquo잠재적인 가능태로서 주어진 법률rdquo일 뿐 해석학적 순환을
통한 정제 혹은 상응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ldquo진정한 실정법rdquo이 생성된다69) 이렇
게 특정사건을 통해 구체화된 규범(구성요건)과 이 규범을 통해 정해진 사실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법관에게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들과 함께 제3의 요소로서 법관
자신의 선이해 내지 이해 포괄적으로 말하면 그의 인격적 존재가 판단에 혼입
된다
lsquo선이해rsquo는 판단자가 자신의 선이해를 의식하지 못할 때 부정적 요소를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ldquo자신의 판단은 오로지 lsquo있는 그대로다rsquo라고 말하는 즉 lsquo오로지 법
률에만 구속된다rsquo라고 말하는 법관이야말로 실은 종속된 법관이다 왜냐하면 그는
성찰되지 않은 자신의 선이해와 거리를 둘 수 없기 때문이다rdquo70) 즉 법관은 자신
67)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68) 실제 판단과정에서 사실인정과 법률적용이 따로 떨어질 수 없다는 점은 굳이 카우프
만의 이론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실무상으로는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ldquo법률
의 적용과 사실의 인정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법률문제와 결부되어 인정된다 사실의 인정이 진행됨에 따라서 재판관의 머리
속에서는 어떠한 법규를 적용할 것인가 그 법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는 전망이
점차로 서게 되며 당사자 측도 경우에 따라서는 민사인 경우 청구의 취지를 변경할
것인가를 고려하게 되고 형사인 경우 공소사실을 변경하는 경우도 생긴다 요컨대 사실
문제와 법률문제는 실제과정에서 불가분으로 결부되어 있다 helliphellip 양쪽이 불가분으로
재판관의 직관 혹은 재판관의 전인격적인 작용에 의하여 사실의 인정과 법의 적용이
행하여지고 판결 삼단논법은 실제의 심판 과정에서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rdquo(사법
연수원 법조윤리론 35면) 69) ldquo법관의 해석 작업 이전에는 어느 의미에서 진정 법도 진정한 사실도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원자재들(Rohmaterialien)로만 이것들이 존재할 뿐이다rdquo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1
의 선이해를 의식하고 자신을 이데올로기 혐의 앞에 세울 줄 알 때 올바른 판결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ldquo법관이 자신의 선이해와 종속을 의식할수록 그래서 간주
관적 합의에 노력할수록 그는 더 객관적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rdquo71) 그러므로
법관의 주관주의의 위험은 카우프만식으로 말하면 가치판단 같은 성찰적 고려와
관련된 주관적 요소를 방법상의 근거 제시의 맥락에 끌어들이는 법관의 경우보다는
오히려 모든 것이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판결의 주관적
요소를 은폐하는 법관에게서 나타나는 위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학적 순환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법관은 ldquo법률의 입rdquo이 아니라 ldquo인격
으로서 판결을 떠받친다rdquo72) 판결은 법률과 법관의 인격의 혼성물이다 그러므로
법률은 판결을 위한 필요조건이기는 하나 충분조건은 아니라고도 말할 수 있다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순환이론은 법관의 독립과 양심의 문제 차원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법결정의 올바름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
는 정도에 달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자신을 올바르
게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자신의 판단력 경험 능력 인간에 대한 태도 감
수성 명예욕 등등
카우프만의 법해석학적 순환이론이 법관의 독립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이라
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독립은 법관 스스로 관철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론적으로 카우프만의 법해석이론의 의의는 법관이 자신의 선입견을
의식하는 것이야말로 법관의 독립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설득력있게 지적
해주며 그런 방향에서 법관의 법해석 작업을 재평가했다는 데 있다고 말할 수 있
겠다
70)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71) Arthur Kaufmann ldquoDer BGH und die Sitzblockaderdquo NJW (1988) 2581면 이하72) 이 표현은 Karl Peters의 Strafprozess - Ein Lehrbuch (1966) 99면에 나오며 여기서는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9면에서 재
인용했다 이덕연 교수도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에 입각하여 ldquo법관의 법해석작
업은 단순한 lsquo인식작업rsquo이나 lsquo언어분석작업rsquo이 아니라 ldquo구체적인 반성과 자기극복의
노력 속에서 온 인격을 걸고 진행하는 lsquo이해와 실천의 수행작업rsquordquo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앞의 글 352면)
9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Ⅸ 법관은 lsquo하는 사람rsquo인가 lsquo보는 사람rsquo인가
법관의 판단작업을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의 관점에서 주목했던 또 다른
철학자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다 그녀는 ldquo아이히만 재판rdquo을 계기로 판단의
특수한 경우로서의 판단력 문제를 연구했다73) 아렌트는 하드케이스와 연관시켜
법관의 판단력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74) 법관은 우선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을 반추하면서 판단에 임하는데 이때 판단자로서 그는 한 면으
로는 규칙에 따라 판단하라는 lsquo일반적 정의rsquo의 요구에 그리고 동시에 다른 한 면
으로는 정황에 맞게 판단하라는 lsquo개별적 정의rsquo의 요구에 처한다 이러한 상황은
아렌트에 따르면 하드케이스에서 특히 발생한다 이 이중적이고 모순적 요구 상황
을 아렌트는 법관의 판단에 적용되는 특수한 해석학 및 그 조건을 설명하는 출발
점으로 삼는다75) 하드케이스가 아닌 통상적인 사건에서는 이른바 포섭 여부를 판
단하는 것으로도 족하다 일반규칙에의 포섭 여부가 중심이 되는 이 단계에서의
판단력- lsquo규정하는 판단력(bestimmende Urteilskraft)rsquo-은 사실관계에서의 원인
이나 형식적 정의를 따지므로 일방적이고 간주관적 전제 없이도 가능하다 그래서
흔히 법관은 여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법을 해석해야 한다고 말할 때 이는
법적용을 이러한 지배적인 포섭모델에 입각하여 이해한 결과라 할 것이다 그런데
규칙으로부터 오는 어떤 어려움들 때문에 규정하는 판단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즉 포섭이 어렵거나 법흠결 시 또는 가치형량이 요구되는 하드케
이스에서는 법관은 어쩔 수 없이 앞에서 말한 모순문제를 다루어야만 한다 이때
아렌트는 법관이 사유의 확장을 통해 방법상으로 lsquo규정적 판단력rsquo을 스스로 교정
할 수 있는 lsquo성찰적 판단력rsquo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고 이 판단유형의 전환과정을
73) 법적 판단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 삼은 저술은 Hannah Arendt Eichmann in Jerusalem Ein Bericht von der Banalitaumlt des Boumlsen Erw Aufl (Muumlnchen 2001) 그리고 Hannah Arendt Das Urteilen Texte zu Kants Politischer Philosophie Hrsg v R Beiner Uumlbers v U Ludz (Muumlnchen 1998)
74) 아렌트가 염두에 둔 하드케이스는 라드브루흐가 이른바 ldquo법률적 불법rdquo 상태로 규정한
나치의 불법국가 상황으로서 이렇게 극히 예외적인 케이스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하드
케이스에 적용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별적 정의 요구에 부응함
으로써 예컨대 소급효를 금지하는 일반법률에 위배되는 상황과 유사한 갈등상황은 반
드시 극단적 상황에서만 생긴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75)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2 Bde Hrsg v U Ludz amp I Nordmann
따라서 그 척도는 전달가능성이며 거기에 딱 맞는 것은 공통감각(상식)이다rdquo77) 오
늘날 공통감각은 아렌트도 지적했듯이 더 이상 그것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얻고자 노력해야 하는 그 무엇이 되어버린 듯하다 그러나 공통감
각이 무너진 시대를 겪었던 아렌트는 사유의 전환 내지 확대를 위한 진정한 발판
을 다시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에서 구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78)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실천철학의 전통에서는 세계와의 관계 그리고 자기와의 관
계를 공통감각을 척도로 설정해가는 판단자가 lsquo하는 사람rsquo인지 아니면 lsquo보는 사람rsquo
인지 즉 lsquo행위자rsquo인지 아니면 lsquo관찰자rsquo인지를 둘러싸고 의견이 대립되어 왔다 lsquo하
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자가 lsquo정치가rsquo 쪽에 더 가깝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
자는 lsquo철학자rsquo 쪽에 더 가깝다 lsquo하는 사람rsquo은 주로 사회의 일반적 상식 건전한 인
간이해 세론(doxa)을 판단의 척도로 삼는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적 경험은 전체주
의 하에서는 건전한 인간이해도 집단화된 대중감정에 따른 오도된 인간이해 앞에
무너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판단에서 사실로서의 상식이나 합의 또는
법해석공동체 내부의 지배적 제도적 관점이라는 판단 척도만으로는 일반규칙으로
부터 오는 모순을 다루기 어렵다 여기서 판단자는 ldquo확대된 사유방식rdquo을 추구해야
하는데 아렌트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을 lsquo보는 사람rsquo의 판단과 결합시킴으로써 법
관을 위한 사유의 확대를 시도한다79) lsquo하는 사람rsquo이 사실로서의 일반적 상식이나
인간이해 차원에 비추어 판단한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ldquo이
상적 규범적 상식rdquo80)을 추구하고자 한다 판단을 거쳐 법적 효과를 결정하는 법관
76)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을 해석학적 순환이론을 적용하여 분석하면서 칸트의 판단력 비
판에 의거하여 아렌트가 판단력의 특수한 경우로서 법관의 ldquo성찰적 판단력rdquo이라는 새
로운 판단유형을 제시했다고 지적한 연구서로는 Stefanie Rosenmuumlller Der Ort des Rechts Gemeinsinn und richterliches Urteilen nach Hannah Arendt Nomos (2013) 참조
77) Hannah Arendt Das Urteilen 92-93면78) 아렌트가 판단의 차원을 심화시키는 발판으로 삼는 상식은 sensus communis로서
communis opinio와는 다르다는 데 대해서는 Marieke Borren ldquolsquoA Sense of the Worldrsquo Hannah Arendtrsquos Hermeneutic Phenomenology of Common Senserdquo International Journal of Philosophical Studies Vol 21 No 2 (2013) 225-255
79) Hannah Arendt Das Urteilen 76면80) Rosenmuumlller 앞의 책 234면 이하 여기서 아렌트는 상식개념을 이중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에서는 경험적 개념으로 보다 성찰적 판단
단계에서는 규범적 개념으로 사용한다
9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은 관찰자로서 판단하면서 동시에 행위자로서 판단에서 법적 결과를 결정하는
사람이다 관찰자인 동시에 행위자라는 이중적인 역할을 하면서 법관은 자신의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 반추한다81) 이 반추과정에서 법관은 한편으로는 포섭
하는 판단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고려해야 할 관점들을 끌어들이면서
자신의 직책을 마지막까지 수행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통제하면서 자신의 앞서의
(포섭) 판단을 정정해나간다 그래서 법관 자신이 lsquo보는 사람rsquo과 lsquo하는 사람rsquo의 만
남의 장소가 되는 것과도 같다 ldquo이 보는 사람은 모든 하는 사람 안에 자리 잡고
있다helliphellip이 비판적 판단능력이 없이는 행위자 혹은 해결자는 보는 사람으로부터
풀려나 종내는 지각되지조차 못하게 될 것이다rdquo82)
사람들은 자신 일에 있어서는 비당파적일 수는 없다 따라서 ldquo자신의 일에 대한
판단에서는 내면의 심판자 혹은 내면의 법정을 가질 수 없다rdquo83) 그러나 다른 사
람의 일을 반추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필히 비당파적이어야 하며 또 비당파적이 될
수 있다 이때 그는 비로소 내면의 심판자를 가지게 된다 즉 양심의 문제에 처하
게 되는 것이다 판단에 있어서 양심이라는 것 즉 양심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남
의 일에서 ldquo증인rdquo 혹은 ldquo비판적 친구rdquo로서 관찰하고 행위하는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이다84)
아렌트의 성찰적 판단모델은 나치 불법국가 경험의 산물이다 통상의 규칙이 파
괴된 상황 통상의 범죄유형에 포섭되지 않는 극히 예외적인 범죄적 상황에서 법
원은 기존의 판단척도를 해석학적 출발로 삼아서는 안 되고 이때에는 질적으로
동의가능한 합의형식을 찾기 위해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으로 돌아가
진정으로 사유 즉 철학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렌트가 판단을 일반화해주는
거점이자 해석학적 출발점으로 삼은 공통감각(상식) 개념은 칸트철학에서 ldquo비사교
적 사교성rdquo 개념의 위상과 비슷하다85) 이 지상에서 인간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다른 것을 원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모여 살아야만 하는 존재다 이 비사회성 요
청과 사회성 요청의 동시성 때문에 인간에게는 제도적인 안착이 더없이 중요하며
법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실존과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만든다 판단의 기
81) Leora Y Bilsky When Actor and Spectator Meet in the Courtroom Hannah Arendt and Eichmann in Jerusalem G N Arad Hg (Bloomington 1996) 137면
82) Hannah Arendt 앞의 책 85면83) Hannah Arendt 앞의 책 76면 84)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657면85) Rosenmuumlller 앞의 책 1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5
초를 보편적 인간경험에 둔다는 점에서 아렌트가 말하는 판단력은 드워킨의 헤라
클레스와 같은 초인적 천재성을 발휘하는 능력과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86) 아
렌트가 상정하는 이상적인 법관은 철학적이지만 철학자는 아니고 정치적이지만 정
치가는 아닌 사람이다
아렌트는 헌법국가의 권위도 상식개념에 기반을 두고 설명한다 그리고 민주적
정당성의 관점에서 입법의 우위를 인정하는 까닭에 성찰적 판단에 입각한 법관의
검증에는 한계가 있다는 태도를 견지한다87)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렌트가 제시한
법관의 성찰적 판단 유형에 대해서는 다양한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우선 이것이
예외 상황에서 적용되는 판단모델로 상정된 것이며 무엇보다도 ldquo규범적 상식rdquo에
대한 단일한 이해기반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법관 개인의 주관적 정치적 신념
이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길을 피할 수 없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성찰적
판단력은 결국 레토릭에 불과한 것인가 아렌트는 그러나 무엇이 ldquo특정 상황에 맞
는 공통감각(situierte Gemeinsinn)rdquo인지에 대한 공동의 인식은 가능하며 또 법관의
lsquo하는rsquo 판단에 들어있는 정치적 함의를 성찰적 판단력으로 검증하는 것도 가능하
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아렌트가 마지막 검증심급으로 원용하는 것이 바로 판
단에서의 양심의 심급이다 그것이 과연 동의할 수 있는 합의형태로서 충분한지를
스스로 검증하는 이 심급에서 판단자는 명령조로 자기에게 전해지는 소리를 듣게
된다 ldquo멈춰 나는 그것은 할 수 없어rdquo88) 판단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 멈추는 것
이 가능한 이 성찰적 심급에서는 칸트와 달리 할 수 없는 이유로써 결과도 고려
된다 lsquo보는 사람rsquo이 자기 안에서 지켜보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상황은 토마스 아퀴
나스의 양심론에 비추어 다음과 같이 묘사될 수도 있겠다 지적 본성을 가진 인간
존재가 보편법칙에 관한 지식을 개별 행위에 적용하기 위해 판단하고 선택할 때
행위자는 갈등 상황- ldquo그렇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rdquo는
상황-에 처하여 멈칫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데 이때 그는 단지 갈등하고
선택하는 역할만 하지 않고 갈등하고 선택하는 이 과정을 ldquo관찰하고 목격하는 증인rdquo
의 역할도 한다는 것89)
86) 드워킨에 의하면 해석적 탐구는 ldquo어떠한 증명도 허용치 않고 어떠한 수렴도 약속치
않는 탐구rdquo이다(드워킨 정의론 203면)87) Rosenmuumlller 앞의 책 30면88) Hannah Arendt Uumlber das Boumlse Eine Vorlesung zu Fragen der Ethik Hrsg v J Kohn
(Muumlnchen 2003) 52면89) 지적 행위자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자신의 내면의 갈등과 선택과정을 바라보는
9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Ⅹ 방법에서 덕목으로
헌법 제103조는 한 면으로는 헌법과 법률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 면으로 해석자에게 여하한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lsquo제약
의 차원rsquo과 lsquo자유의 차원rsquo을 동시에 담고 있다 법관은 자유로울 때에라도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며 법에 구속될 때에라도 전적으로 구속되지는 않는다는 뜻이
기도 하다 이 lsquo자유와 구속의 변증법rsquo에 비추어 지금까지 논한 주제에 대해 몇 가
지 입장을 정리해 보자 첫째 법관에게 있어서 독립은 확정된 원칙이나 그것자체
로서 달성해야 할 최종목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법관의 독립은 완성형이 아니라
끊임없는 진행형의 과제로서 그 직무수행에 대한 신뢰와 병행하여 점진적으로 이
루어지는 것이다 둘째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에 있어서 구속은 법률에 무조건 복종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판결에 대한 윤리 (내 ) 확신과 함께 법률에 복종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법관이 실정법률에 반하는 결정을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법
관은 객관성을 빌미로 법률 뒤에 숨는 익명적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
미하는 것이다 셋째 독립적인 법관의 양심은 lsquo법과 상충한다rsquo기보다는 lsquo법을 실
한다rsquo는 의미를 지닌다 넷째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서 반추하면서 lsquo하는
사람rsquo인 동시에 lsquo보는 사람rsquo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성찰 인 인물상으
로서만 설정될 수 있다
해석적 탐구는 우리의 이해를 넓히기 위해서 필요하지만 이해에서의 우리의 피
할 수 없는 한계를 깨닫기 위해서도 필요했는지 모른다 엥기쉬는 법해석방법론에
대한 저술의 마지막 부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ldquo방법론에 천착하다 보면
애초의 문제였던 법률로부터 훨씬 더 먼 곳으로 이끌려 간다rdquo 지금까지 필자는
법관의 법해석과 관련하여 방법론의 의의와 한계를 논하고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과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에 비추어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이 법해석론
의 불가결한 부분으로 들어가게 되는 이유도 밝혔다 그리고 해석적 차원에서의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는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행위를 목표로 하는
탐구라는 것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필자는 이 모든 논의들을 매개로 방법론이 우리를 더 멀리 덕
목론으로 데려가는 과정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드워킨의
상황에 대한 이 묘사 부분은 이경재 ldquo토마스 아퀴나스의 양심 개념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375면을 참조했다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7
헤라클레스를 잠시 불러올 필요가 있다 해석문제를 누구보다도 더 진지하게 다룬
드워킨은 마지막에 헤라클레스를 내세운다 주어진 사건에서 무엇이 법인지에
대해 도덕적 의식을 가지고 법실무 전체를 원리정합적으로 정당화하라는 요청에
부응하여 자신의 신념에 기초한 결정을 내리는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의 구성적
해석에서 법관의 양심이 기능하는 국면은 어디일까 송민경 판사는 드워킨의 구성
적 해석론에 입각하여 양심을 구체적 법논증과정의 일부로 포함시키면서 이때 양
심이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라는 지침으로 기능한다고 설명한다90)
그런데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는 지침으로 기능하는 것을 양심이라
고 보게 되면 양심의 문제는 논증적 합리성의 차원 즉 논증의 성공으로 종결짓게
된다 그러나 법적 결정의 정당성 문제는 법관의 입장에서는 논증의 성공 문제로
다루어지지만 법관의 성공적인 논증에 따른 판결의 결과로부터 영향을 받는 시민
의 입장에서 보면 성공적인 논증만으로는 해석이 정당화된다고 볼 수는 없다
성공적인 논증은 법적 결정의 정당화에 필수적이기는 하나 충분한 조건은 되지 못
한다 해석이 궁극적으로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사법적 도덕성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 사법적 도덕성은 헤라클레스가 지침으로 삼는 원리적 도덕성의 실현과는 다른
것이다 만약 패소한 시민이 다른 헤라클레스에게 갔더라면 즉 다른 법원리에 기
초한 신념을 토대로 다른 결정을 내린 다른 법관에게 갔다면 그는 승리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왜 헤라클레스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하
는지에 대한 답이 필요한 것이다91) 헤라클레스가 실무에 대한 최상의 정당화를
도모하는 법적 이상주의자라면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법원 문을 두드린 시민도
어느 의미에서 ldquo법이상주의자rdquo92)이다
법해석 작업의 주관의존성이라는 불가피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재판이라는 특수
한 공적 활동이 법관이라는 특수공직자에 의해 운영되고 유지된다는 것은 시민들
-소송에서 패한 시민들을 포함하여-편에서 보면 법을 해석하는 법관에 대한
신뢰가 전제된다는 것이다 법관의 독립적 활동은 법관의 특권 행사가 아니라 사
90) 송민경 앞의 글 38면 20면91) 사법적 덕목과 연관하여 이 부분을 다룬 글로는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5면 이하
92) 법원 문을 두드리는 시민에 대한 이 표현은 심헌섭 ldquo법조윤리의 좌표 거시적 관점에서 본 전문윤리로서의 법조윤리rdquo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편 法律家의 倫理와 責任 박영사
(2003)에 나온다
9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법과정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응당한 몫이 돌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존중하는 바탕에는 일종의 상호성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 그 또한
시민이기도 한 법관이 동료시민들에 대해 가지는 배려와 존중의 원칙이 그것이다
여기서 사법적 덕목에 대해 자세히 논할 수는 없다93) 예의 성실 신중 절제
용기 공정 겸손 의사소통 능력 형평 시민에 대한 배려와 존중 등등 이것들은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바탕을 이루는 양심의 덕목들일
것이다 양심이라는 단어가 그렇듯이 덕목이라는 단어도 오늘날 진부해진 표현
이며 거의 사라져가는 단어다 윤리적 태도로서의 덕목은 관찰하기도 배우기도
어렵다 그러나 올바른 판단과 결정이 법관이라는 개인을 거치지 않고 법령집
자체로부터 반사적으로 튀어나오지 않는 한 이 덕목들을 내면화하고 지향하려는
태도 없이는 lsquo종국적인rsquo 판단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써 필자는 헌법 제103조를 통해 법해석에서의 방법론의 문제가 덕목론이라
는 다음 과제로 이어진다는 점을 밝혔다고 생각한다
투고일 2016 4 6 심사완료일 2016 5 18 게재확정일 2016 5 20
93) 법관의 개별적인 덕목들과 이것들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는 박은정 강태경 김현섭 바람
직한 법관상의 정립과 실천 방안에 관한 연구 법원행정처(2015) 제5장 참조할 것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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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ltAbstractgt
Independence and Conscience of the Judges Based on
Interpretive Method for Article 103 of the Korean Constitution
Pak Un Jong
94)
In this paper I aim to discuss the problem of independence and conscience
of the judges as outlined in Article 103 of the Korean Constitution in the
context of the interpretive methodology
First of all this paper will look at the background in which the independence
of the judges has been institutionalized and also the problems regarding usual
explanation for conscience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And I will try to
reveal the characteristics and difficulties of the interpretive actions of the judges
especially in connection to the issue of value judgment This would require
pointing out the problems and limitations of the interpretive methodology and at
the same time defining the nature of tension embedded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namely the tension between the obligations of the judges to abide
the law versus the subjective internal demeanor of the judges This tension-
ridden condition reenacted by the demand to follow lsquogeneral justicersquo versus
lsquoindividual justicersquo appears inevitably in the process of judicial interpretation I
will examine the theories that capture this kind of tension that accompany the
interpretation process and aim to feel out the possibilities of resolving this
tension At the end I come to the conclusion that these theories can explain but
cannot resolve this tension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If so the problem
which arises from the limitations of the interpretative methodologies from the
perspective that a judgersquos final decision greatly impacts citizens becomes a
problem of judicial ethics In order to ultimately justify the interpretation of the
judges the demands of judicial ethics must be satisfied Keeping this demand in
Professor College of Law School of Law Seoul National University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103
mind I point out that the significance of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is in
its role of bridging legal methodology to virtue ethics
Keywords independence of the judges conscience of the judges interpretive
method of law value judgment judicial virtue
7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들의 평가도 포함할 것이지만 어쨌든 이 판단과 관련한 어느 정도의 불확정성은
감수해야 한다 법관의 법률 구속 의무를 느슨하게 만드는 이런 개념군에는 재량
도 포함된다 오늘날 재량개념은 ldquo법적으로 구속되는rdquo 재량으로 이해되지만 이때
판단의 여지 안에 들어오는 여러 대안들 가운데서 최종 혹은 최선의 대안을 확정
하는 데 있어서 결정자의 개인적 확신을 허용할 수밖에 없다 일반조항도 표현 그
대로 높은 일반성을 띰으로써 법적용자로 하여금 자기 앞에 놓인 사례를 광범위한
사례집단들에 적응시켜가면서 법률효과를 귀속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33)
위에서 언급한 불확정 법개념이나 규범적 개념 등을 적용하는 데는 가치판단
요소가 수반된다 이런 개념들을 적용할 때 법관은 일정한 범위 안에서 입법자를
대신하여 가치판단 내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것이다 또 법관
은 법의 lsquo흠결rsquo을 보충하거나 법질서 안에서 이따끔 발견되는 lsquo오류rsquo를 수정해야
할 부득이한 상황에도 처하게 된다 이때는 법관은 스스로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찾아 나서야 한다 lsquo법의 일반원칙rsquo lsquo법의 정신rsquo lsquo평균인의 척도rsquo lsquo비례성원칙 lsquo이익
형량rsquo 등은 이때 법관이 의존하는 사유 장치들이며 이것들을 원용하는 데도 가치
판단적 요소가 개입한다 이때 판단자는 무엇이 사실상 효력을 갖고 있는 윤리적
견해인지 확인해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사실로서의 합의가 올바른 법적 결론에
도달하게 하는지에 대해서도 숙고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법적용자는 때로는 평
균인 테스트 같은 객관적인 척도에 의지하지만 또 때로는 개인적 견해를 더 많이
펼칠 수 있는 일정한 판단의 여지를 가지게 된다
이렇게 해석과정에서 불가피한 lsquo판단의 여지rsquo 즉 해석과정에 불가피하게 개입되
는 가치판단 요소 때문에 ldquo해석의 건전성rdquo을 둘러싸고 논란이 생기고 해석의 정당
화와 관련하여 회의가 생긴다 가치판단과 관련된 부분이 불가피하게 주관적 요소
를 끌어들이게 되고 이로 인해 법규범의 효력이 상대적이고 불확실한 영역으로 떨
어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단자는 자신의 결론이 불확실성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자신의 해석에 대한 정당화를 포기할 수 없다 법을
해석한다는 것은 ldquo그 법률을 특정 사안에 적용하는 것을 정당화한다는rdquo34)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확정적인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사례에서도 요구되는
33) 불확정적 개념 규범적 개념 재량 일반조항과 관련한 자세한 설명은 칼 엥기쉬 법학
방법론 안법영윤재왕 옮김 세창출판사(2011) 182면 이하에 잘 정리되어 있으며 필
자도 이 부분을 참조했음을 밝힌다 34) 닐 맥코믹 로버트 서머즈 ldquo해석과 정당화(上)rdquo 박정훈 역 법철학연구 제5권 제2호
(2002) 18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79
개인적인 단은 도덕적 상대주의자들이 말하는 개인적인 취향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해석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올바른 해석기준을 수립하고자 법률가들은 각
기 지금까지 다양한 해석방법에 의존해 왔다 올바른 해석을 위한 확고한 기준을
수립할 수 있다는 것은 찬성하는 혹은 반대하는 해석논거들 사이의 상대적 비중을
결정하는 명확한 규칙을 수립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즉 어느 한 해석
논거가 다른 해석논거에 의해 배제되는 조건이나 선택된 해석을 정당화하는 데
필수적인 한 논거가 다른 논거보다 우월하기 위한 조건 한 논거에 누적을 통한
비중이 부과되는 조건 등을 제시해줄 일관된 정보와 지침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
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여러 해석방법들 사이에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다는 것
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시도는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했다 동일한 유형의 논거일지
라도 각각의 정당화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비중을 갖게 될 뿐더러 언어적 해석
방법 체계적 해석방법 목적적 해석방법 등으로 제시되는 여러 해석방법들이 한
줄로 세우기에는 한마디로 너무 이질적이다35) 물론 이들 해석논거들의 상호작용
을 검토하면서 잠정적인 서열을 제시하는 것은 가능할 수도 있다36) 그러나 이 서
열은 기껏해야 ldquo해석을 위한 노력의 경제성 원리rdquo 정도를 말해 줄 뿐이기 때문에
쉽게 바뀔 수 있다37)
드워킨이 옳게 지적한 대로 기본적으로 가치판단과 관련된 해석방법들은 위계
적일 수 없고 ldquo상호지지적rdquo인 관계에 놓일 뿐이다38) 이 때문에 방법론적 규칙을
세우려는 시도는 언제나 무망해지는 것이다 또한 법해석에 있어서 언어란 단어의
의미를 식별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 행위의 의미를 식별
하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론 풀러(Lon Fuller)가 지적한 대로 ldquo언어
를 통한 의사 전달은 어느 한 사람으로부터 다른 사람에게로 의미가 든 상자를 발송
하는 식rdquo39)은 아닌 것이다
35) 울프리드 노이만 ldquo실증주의 이후 시대의 법률과 판결rdquo 강연문(주 32) 노이만에 따르
면 예컨대 체계적 해석 방법에 따른 논거도 그것이 논리적 일관성 획득의 맥락에서
인지 아니면 가치평가의 일관성 보장이라는 맥락인지에 따라 전혀 다른 비중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36) 대체로 언어적-체계적-역사적-목적론적 해석방법의 순서로 언급되는 데 대해서는 심헌섭
분석과 비 의 법철학 법문사(2001) 217-218면37) 맥코믹과 서머즈는 비교법적 연구결과를 통해 올바른 해석을 위한 지침 수립은 어느
국가의 법체계에서도 지금까지 성공적이지 못함을 밝힌다(앞의 글 210면)38) 로널드 드워킨 정의론 박경신 옮김 민음사(2015) 309면
80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결론적으로 해석방법론으로부터 법관은 불확실성을 떨쳐 낼 수 있는 확실한 정
보제공을 기대하기 어렵다 해석논거를 위한 결정적인 기준을 제공하는 해석방법
에 대해 불안정한 형태로나마 이론적 합의를 찾기 어렵다면 엥기쉬의 지적대로
해석방법론은 공중에 떠있는 상태다40) 법학에서 방법론의 융성은 역설적으로 법
학이 이 부분에 취약하다는 암시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해석자로서의 법관을
최종적으로 인도하는 전략은 무엇일까 다음과 같은 고민을 들어보면 적어도 그것
은 방법론상의 합의에 대한 기대 같은 것은 아닌 것 같다 ldquo우리들은 일정한 결론을
내리고도 그 결론이 가장 적절sdot타당한 것이라고 보증받을 수 없다 그 결론을 낸
시점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들은 자기의 결론이 그러한 불확실성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그것을 자기의 전인격적 책임 아래 끝을 내고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비판과 평가에 맡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rdquo41)
해석방법론이 공중에 떠있는 상태라면 법관을 법률에 구속시키기 위한 방법론
적 보장책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런 가운데 ldquo자기의 전인격적 책임 아래rdquo ldquo사려
깊고 균형잡힌 총체적 관념rdquo ldquo인생 그 자체로부터 지식rdquo 등에 대한 호소를 듣는다
이것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법발견으로 불리든 법인식 혹은 법형성으
로 불리든 법적으로 올바른 결정을 이끌어낸다는 것은 순순히 lsquo앎rsquo의 문제만은 아
니라는 것이다 실천철학의 전통 용어를 빌어서 말한다면 그것은 이론지 이상의
실천지를 요구하는 활동이다 즉 법관의 해석활동은 이론지와 실천지를 결합하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이 주제로 다가가는 한 우회로로서 우선 지적 활동으로서의
법관의 해석활동의 특성에 대해 살펴보자
39) 론 풀러 법의 도덕성 박은정 옮김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2015) 314면 40) ldquo그러나 해석론 전체에 대한 확고한 이론적 토대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서열관계에
관한 모든 이론들은 여전히 공중에 떠 있다rdquo 엥기쉬 앞의 책 137면41) 사법연수원 법조윤리론(2014) 31면 그밖에 Benjamin N Cardozo The Nature of
Judicial Process Yale University Press (1921) ldquo언제 하나의 이익이 다른 이익을 능가
하는지를 묻는다면 hellip 경험과 연구와 성찰로부터 요컨대 인생 그 자체로부터 그 지식
을 얻지 않으면 안된다고 답할 수 있을 뿐이다rdquo(여기서는 법조윤리론에서 재인용) 또한 맥코믹서머즈 ldquo해석과 정당화(下)rdquo 박정훈 역 법철학연구 제6권 제1호(2003) 348면 ldquo해석은 간주관적으로 승인된 모든 법적 가치들에 대하여 사려깊고 균형잡힌
총체적 관념을 획득하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제대로 행해질
수 있다rdquo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1
Ⅵ 법관의 해석활동 실증주의의 대척점
앞에서 언급한 대로 해석에서는 무엇이 최선의 해석인가를 둘러싸고 언제나
논쟁과 불일치가 따른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누군가가 텍스트를 해석한다고
말하는 순간 그는 실증주의의 대척점에 서게 된다 실증주의과학의 의미에서는 논
쟁의 여지가 있는 것은 원칙적으로 과학일 수 없기 때문이다 법실증주의사고에서
해석 문제가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법을 근본규범에 입각
한 자기준거적인 구조로 보는 한스 켈젠(Hans Kelsen)의 순수법학이나 법적용과정
을 규칙에 의해 지도되는 과정으로 보는 하트(H L A Hart)의 분석법학에서 해석과
관련한 어려움은 다루고 있지 않다42)
켈젠은 순수법이론(Reine Rechtslehre)에서 정당한 해석만이 허용된다는 주장
은 허구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면서 해석의 건전성 문제나 정당화 문제를 법이론
안에서 다루기를 거부한다 법을 자기준거적인 것으로 보는 관점은 한마디로 해석
(행위)주체의 입장을 부정하는 것이다 켈젠은 법단계설을 바탕으로 법적용을 상위
규범의 수권에 의해 하위규범이 구체화되는 과정으로 보고 여기에 헌법의 수권을
받아 법률을 제정하는 입법자도 포함시킨다43) 이에 따라 법적용도 입법의 한 형
태로 설명된다 법관에 의한 법형성의 동기는 이를테면 입법부가 유독 다른 법률
이 아닌 이 법률을 통과시키는 동기와 같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켈젠은 판단활동
에서 인지적 요소와 의지적 요소를 엄격하게 구별하면서 법관의 판단활동을 순전
한 의지활동으로 보고 이 법관의 활동에 대해서만 (유권)해석이라는 표현을 사용
하고자 한다 그리고 법학적 해석에 대해서는 법규범의 가능한 의미들을 밝히는
것으로서 법률에 따른 결정의 범위를 제한하는 정도의 의미를 부여한다
법단계설에 따르면 상위규범이 정한 일정한 범위 안에서의 수권에 따라 하위규
범이 작용한다 이때 상위규범의 수권은 모든 세부적인 내용들에 대해서까지 정해
42) 켈젠은 순수법이론(Reine Rechtslehre) 제1판(1934) 제6장에서 해석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부분과 거의 같은 논문 ldquoZur Theorie der Interpretationrdquo이 심헌섭 젠법이론선집 법문사(1990) 97면 이하에 실려 있다 윤재왕 교수는 Reine Rechtslehre 제1판과 제2판
(1960)을 비교하면서 해석방법으로부터 오는 규범적 구속력을 일체 거부하는 켈젠의
입장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윤재왕 ldquo한스 켈젠의 법해석이론rdquo 고려법학 제74호(고려
대학교법학연구원 2014) 525면 이하 하트의 대표적인 저서 법의 개념의 색인 항목에는
lsquo해석rsquo이 빠져있다 43) Hans Kelsen Allgemeine Staatslehre (Berlin 1925) 231면 이하
8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그래서 ldquo상위단계의 법생성으로부터 하위단계의 법생
산으로의 전환은 단지 상위단계가 정해 놓은 범위를 채우는rdquo 활동으로서 이때
ldquo언제나 상위단계에는 없는 내용적 요소가 하위단계에 추가되어야만rdquo 한다44) 이
내용을 채우는 부분과 관련하여 상대적 불확실성이 생기는데 켈젠은 이 문제를
ldquo자유재량rdquo의 문제로 다룬다45) 이는 하트가 규칙의 체계로서의 법체계를 완결된
구조가 아닌 열린 구조로 봄으로써 상대적 불확실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법관의
재량사항으로 보는 것과 같다 하트의 경우 중심부와 주변부라는 극히 단순화된
이분법을 끌어들여 이 불확실성 문제를 처리하고자 했다면 켈젠의 경우는 인식작
용과 의지작용의 이분법을 끌어들임으로써 이 문제를 처리하고자 한 것이다
판결을 법관의 의지활동으로만 이해하는 입장을 취하게 되면 법관에게 결정에
대한 근거 제시 요청을 할 수 없게 된다 마치 신의 심판에 대해 근거 제시를 요구
할 수 없듯이 말이다 결국 켈젠의 법이론상으로는 해석은 법학의 문제가 아니며
그러므로 분석적 법실증주의와도 무관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46) 이런 이유에서 그
는 정당한 해석만이 허용된다는 주장이나 해석방법만으로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에
이를 수 있다는 주장을 거부하면서 심지어는 상위규범에 제시된 범위를 넘어서는
해석의 효력조차 적극적으로 인정함으로써 어느 의미에서는 해석이론의 존재기반
자체를 무너뜨린다47)
켈젠이나 하트가 법이론에서 해석의 의미를 축소한 이면에는 이분법이라는 과도
한 사유의 단순화가 놓여 있다 그러나 켈젠이 생각하는 것처럼 판단에서 인식적
요소와 의지적 요소의 확고한 경계가 유지되는지는 의문이다 또 중심부와 주변
부에 대한 하트의 주장도 지나친 단순화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어쨌거나
켈젠이 합리적인 해석방법을 추구하는 법이론의 효용가치를 한껏 떨어뜨렸다고
해서 이제 어차피 정답은 없으니 법대에 앉은 법관은 자기 임의로 무엇이든 해도
된다고 켈젠이 주장했을 리는 물론 없을 것이다 법이론의 과도한 정당성 주장을
거부하는 데서 오히려 순수법학의 비판적 잠재력을 찾을 수 있다고 보는 학자들은
여기서 켈젠이 강조한 순수화 즉 탈정치화는 법학에 관한 것이지 법 자체에 관한
44) Kelsen Allgemeine Staatslehre 243면 여기서 번역은 윤재왕 앞의 글 535-536면에서
재인용45) Kelsen 앞의 책 243면 이하46) 켈젠에 있어서 법해석은 이론상으로는 법학보다는 정치학이나 사회학에 속하는 문제
에 더 가깝다고 지적한 견해에 대해서는 론 풀러 앞의 책 312면 47) 이에 대해서는 윤재왕 앞의 글 553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3
주장이 아니었음을 상기시킨다48) 즉 법 자체는 결코 정치와 분리될 수 없다는
점에서 법실무에 대한 학문이론의 무가치성을 주장하는 순수법학은 실무의 법
적용자로 하여금 자신의 활동이 정치적 활동임을 깨닫고 책임을 느끼게 하는 계기
를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윤재왕 교수도 ldquo켈젠 해석이론의 배후rdquo로 들어가 방법
이론으로부터의 어떤 구속력도 거부되는 데서 생기는 공백을 켈젠이 법관 자신의
자기이해와 책임성 문제로 채운다고 지적한다 ldquo법관의 판결은 결코 순수한 것일
수 없으며 그런데도 자신의 판결이 순수한 인식의 소산이라고 강조한다면 이는
정치적 책임의 회피이고 동시에 이데올로기적이라는 혐의에 노출되지 않을 수
없다rdquo49) 이 문구가 켈젠 자신으로부터 나왔다면 아주 좋았을 것이다 자신의 직
무의 중요성과 책임에 대한 실천적 깨달음은 해석의 정당화를 목표로 하는 인식적
노력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켈젠의 순수법이론의 기획은 서로
붙어 있는 양면을 떼어 놓으면서 이것을 다시 붙일 수 있음을 보여주려 한 것일까
Ⅶ 법관의 해석활동 가치판단과 lsquo정답테제rsquo 문제
켈젠처럼 실증주의적 사고에 따르든 아니면 비실증주의적 사고에 따르든 가치
판단 문제에서 해석방법만으로는 하나의 정당한 결정을 도출할 수 없다고 생각한
다면 이는 해석의 차원에서 가치에 대한 이해 시도는 진리 추구와는 무관하다는
주장으로 귀결되는가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해석대상의 의미에 대한
관심과 최선의 이해에 대한 관심은 아무래도 진리 추구라는 목표를 향한다고 봐야
한다 법적 결정은 물론 법관의 권한에 속하지만 그것을 정당화해주는 원천은 법
관이라는 lsquo지위rsquo가 지니는 형식적 권한이 아니라 판결이 정당하다는 근거 제시에
있다 법판단을 정당화해주는 모델은 울프리드 노이만(Ulfrid Neumann)이 지적한
대로 권위를 통한 정당화모델보다는 진리를 통한 정당화모델에 더 가깝다50)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재판활동은 엄연히 사법권이라는 공권력의 작용이라는 점에서
독립적인 법관의 재판활동을 그 ldquo계획적이고 진지한 진리 탐구 활동rdquo적 측면 때문
48) 법학의 탈정치화를 ldquo정치적 허무주의rdquo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데 대해서는 켈젠 ldquo순수법학이란 무엇인가rdquo 젠법이론선집 280-282면
49) 윤재왕 앞의 글 559면50) 울프리드 노이만 ldquo법 진리 권위rdquo 2013 4 6 한국법철학회 강연문 참조
8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에 학문의 자유의 한 표현으로까지 보려는 것은 무리다51)
오늘날 가치상대주의 분위기는 실천적 물음에서 진리 도달가능성에 대한 회의를
과장한다 그러나 진리가 뭐냐는 빌라도의 물음에 비록 확신에 찬 대답을 못한다
하더라도 법에서 진리 내지 정당성 추구의 포기는 파국을 의미한다 국가권력
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도 진리라는 규제이념이 전제되기 때문
이다 독립된 사법부가 심급구조와 집단적 의사결정의 형태로 스스로의 시정 기구
를 가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물론 진리에 대한 주장은 잠정적이고 수정가능하다
lsquo참이냐 거짓이냐rsquo는 오로지 서술적 명제에만 한정하여 검증될 뿐이라는 협소한
학문관을 따른다면 법학은 학문 안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법
학이 그런 협소한 학문관을 받아들여야 할 필연성은 없다 법해석자는 자신의 해
석적 판단이 진리라는 주장을 무한정 내세우지는 못하면서도 진리 추구를 피할
수 없다52) 론 풀러(Lon Fuller)의 지적대로 ldquo법이론이 최고의 법적 권위를 엄격하
게 정의하는 일에 큰 비중을 두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이 점이 모호해지면 필경
전체로서의 법체계가 와해될 수 있다rdquo53)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법을 민주
주의의 언어로 설명하는 오늘날 의회와 행정처럼 다수결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기
관도 아닌 사법의 소수 전문 엘리트의 지배를 권위모델만으로 정당화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법을 준수하는 시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시민들은 자신에게 유죄
판결을 선고한 세속의 법관에게 그 유죄판결의 근거를 알고 싶다고 요구할 수 있
으며 물론 당연히 요구한다
법관은 판결에서 논증을 통해 최상의 근거 제시가 이루어진 결정을 해야 한다54)
51) ldquo일부 사람들 중에는 이러한 법원의 권력기관적 성질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
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helliphellip 가끔 법관의 일을 조용한 방에서 소송서
류를 꼼꼼하게 읽어 파악한 사실에다가 법을 논리적으로 적용하는 단순히 지적(知的)인 작업이라는 시각에서만 말씀하시는 분을 만나면 그 분에게 재판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법대에 앉아 있는 법관이 어떻게 보이는지 물어보고 싶어집니다rdquo 양창수 ldquo바람직한 법관상 - 기예와 지혜 사이rdquo lt근대사법 및 한성재판소 설립 120주년 기념
1895sim2015 소통컨퍼런스 역사에 비춰 본 바람직한 법관상gt 자료집(서울중앙지방법원 2015 5 11) 15면 ldquo계획적이고 진지한 진리 탐구 활동rdquo이라는 표현은 라드브루흐에서
나온다 구스타브 라드브루흐 법철학 최종고 옮김 삼영사(2011) 238면 52) 드워킨 앞의 책 208면 53) 론 풀러 앞의 책 211면 풀러의 문장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ldquo하지만 이 경우도
위로부터의 지시 또한 목적의식에서 비롯되는 지적 활동을 완전히 생략할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rdquo54) 물론 진리 요청과 관련하여 개별 법관의 관점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며 민주국가에서
포기될 수 없는 진리 요청은 법학을 포함한 법체계 전체로 하여금 진리 요청에 어떻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5
이때 정당한 근거 제시가 이루어진 결정과 관련하여 그것이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
이라는 주장을 펼 수 있는가 앞에서 검토한 대로 켈젠의 순수법이론은 그런 주장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이에 비해 드워킨은 법적 판단에 있어서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이 원칙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ldquo정답테제rdquo로 불리는 이 주장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학자들이 지적한 대로 존재사실에 대한 주장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하나의 ldquo규제이념rdquo으로 받아들이는 게 맞는 것 같다 즉 드워킨의 정답테제
는 ldquo유일하게 정당한 결정rdquo이 존재한다는 데 대한 이론적 탐구라기보다는 실무에
서의 법관의 주관적 태도에 부합하는 이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법관은 자신의 판결활동과 관련하여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모든 사건
에서 오직 하나의 결정만이 정당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 정답에 가까이 가기 위
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55)
드워킨의 말대로 가치판단이 참일 때는 그냥 참일 수가 없으며 그것이 참인
이유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즉 충분한 논거가 존재할 때 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라면 이러한 논거지움의 과정은 자명한 공리적
토대나 그런 토대 위에서 확립된 규칙이나 원리적 서열에 따라 명확하게 밝힐 수
없다 이런 불확실한 가운데도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논거지움은 포기될 수
없다 이 끝없는 정당화 부담 때문에 켈젠은 규범의 효력 근거에 관한 논의를 가
치에 관한 논의와 절연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물론 성공하지
못했다56)
가치판단을 해야 하는 부분이 법문화에서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요소로 작용할지
아니면 그 반대로 작용할지는 판단자로서의 법관의 역량과 연관하여 논해야 할 것
이다 필자는 가치판단적 요소가 법문화에서 당연히 긍정적 요소로 작용해야 하며
게 부응하는지 묻게 한다 따라서 사법부 외부에서 행하는 사법비판의 길이 열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대해서는 노이만 앞의 강연문 참조55) 노이만 앞의 강연문56) 규범의 효력을 불명확하고 상대적인 가치가 아닌 규범에 근거짓기 위해 켈젠이 고안
한 근본규범은 사유상으로만 전제된 규범일 뿐이었다 켈젠은 가치판단을 ldquo현실의 행
위가 객관적으로 효력 있는 규범에 맞게 존재해야 하는 대로 존재한다는 판단rdquo이라고
정의함으로써 가치판단이라는 용어 자체를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Reine Rechtslehre 2 Aufl (1960) 16면 이하 또한 켈젠은 규범이 인간의 의지에 의해
제정되는 한 그 규범에 의해 형성된 가치는 어차피 자의적일 뿐이라고 주장한다(18면) 규범과 가치의 관계에 대한 켈젠의 주장에 대해서는 오세혁 ldquo켈젠의 법이론에 있어서
규범과 가치 - 규범과 가치의 상관관계를 중심으로rdquo 법철학연구 제18권 제3호(2015) 97면 이하 참조
8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또한 그렇게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57) 그런 방향에서 이제 해석의 문제를 법
관의 자기이해 문제와 연관시켜 보기로 한다
Ⅷ 해석과 법관의 자기이해
법관은 추상적인 일반규칙을 가지고 공중의 이목을 끄는 개별적인 사건을 처리
하는 사람이다 법관의 의식활동에 의해 일반규칙과 일회적인 사건 사이의 심연이
메워진다 하지만 일반성과 개별성을 결합하는 이 의식과정에 동반하는 고유한 법
학적 방법에 대해서는 앞에서 지적한 대로 확실한 합의는 없다 ldquo리걸 마인드rdquo라
는 말이 풍기는 신비스러운 분위기에는 사법적 결정이 본질적으로 투명한 것이 되기
어렵다는 암시가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다 논리적인 형태만 부여하기로 한다면
한 사건에서 서로 상반된 결론에 이른 두 개의 판결문을 작성하는 것도 불가능
하지 않다58) 방법이 논리에 기초하는 것이라면 이때 논리는 형식논리를 넘어 엥기
쉬가 표현한 대로 ldquo실질에 부합하는rdquo 논리여야 할 것이다 참된 올바른 받아들
일 수 있는 결정에 이르는 실질논리 이 실질에 도달하기까지는 결코 논리적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지적 감행과 어떤 매개가 작용한다
일반규칙을 개별사례에 적용할 때 요구되는 판단자의 능력과 관련하여 가다머
(Hans-Georg Gadamer)는 이런 견해를 밝힌 적이 있다 판단자는 자신이 이미 가
57) 이와는 달리 가치의 ldquo통약불가능성rdquo 때문에 사법은 좋음이나 옳음의 이슈에 대해 실
질적 입장을 취하는 일에 대해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가치의 통약
불가능성에 대해서는 Cass R Sunstein ldquoImcommensurability and Valuation in Lawrdquo Michigan Law Review Vol 92 No 4 (1994) 779면 이하 조홍식 교수는 ldquo가치의 통약
불가능성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이 권리인가의 문제보다 무엇이 공익인가의 문제에서
더 크다rdquo고 지적하면서 기본적으로 가치판단과 관련한 사법통치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사법통치의 정당성과 한계 제2판 박영사(2010) 240면 가치의 통약불가능성에 대한 주장은 가치판단과 관련한 해석기준의 서열화는 불가능
하다는 주장과 같은 노선에 속한다 여기서 통약불가능성 문제를 자세히 다룰 수는
없다 다만 가치의 통약불가능성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통약불가능이 비교불가능을 의미
하지는 않는다는 점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체적인 맥락이 주어지는 경우 무엇이 옳은
지 혹은 그른지에 대해 심사숙고하며 이에 따라 선택하고 그 선택 결과를 받아들인
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정도만 지적하기로 한다 58) 실제로 판사가 판결문을 두 개 써왔다고 주장한 사건에 대한 보도가 있었다 ldquo판결문을
두 개 써왔다rdquo 조선일보 2013 11 21자 기사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7
지고 있어서 적용하기만 하면 된다는 그런 의미의 규범적 실천적 ldquo지식을 소유한
사람rdquo이라기보다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 ldquo지식을 탄생시키는 상황에 직면하는
사람rdquo이라는 것이다59) 일반범주를 개별사례에 적용할 때 요구되는 이 판단력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래서 칸트(Kant)도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ldquo지성은 규칙들
을 통해 배우고 보강할 수 있는 것이지만 판단력은 특수한 재능으로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전혀 아니고 단지 숙련될 수 있을 뿐이다rdquo60)
우리는 올바른 규칙이나 원리를 알고 있지만 막상 이것을 어떤 상황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예컨대 비례성원칙이나 과잉금지원칙에 대한 지식
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은 적정해야 하고 그 수단은 목적달
성을 위해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원칙을 특수한
상황에 lsquo적용rsquo한다고 할 때에 이 원칙이 그 어떤 판단도 배제할 정도로 자족적인
지침 구실을 한다고 느끼기는 어렵다 특정 상황에서 그 수단이 과연 어느 정도일
때가 목적달성에 적정한지는 판단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실천이성의 역
할이다
단의 자리는 이론 경험 양심이 혼재된 실천의 영역이다 판단을 통한 결정이
라는 그 lsquo종국성rsquo으로 인한 실천적 성격은 법학이 다른 어떤 학문분야와도 공유
하지 않는 법학 고유의 특징이다 그래서 법학은 lsquolegal sciencersquo로 불리기보다는
실천지- prudentia-를 함의하는 lsquojurisprudencersquo로 더 자주 불리어 왔을 것이다
해석의 차원에서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도 추상적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
으로는 행위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성과 개별성을 결합하는 해석적
지식은 추상적 이론적 지식들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일반규칙이나 원리
에 근거한 이론적 패턴의 지식과 특정한 상황 내지 맥락을 고려하는 실천적 패턴
의 지식의 이중주를 이룬다 법관이 지니는 통찰력의 특성은 이론과 태도가 함께
간다는 데 있다 그래서 사법적 판단에서는 규칙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 못지않게
사람 즉 법관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사법적 통찰력의 특성은
뭐니뭐니해도 개별 사례를 다룬다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개별적인 것들은 개별적
인 방식으로만 체험되고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들은 무엇
보다도 lsquo지각rsquo과 관계된다61) 즉 그것들은 일반적 체계적 지식의 대상이라기보다
59) Hans-Georg Gadamer Wahrheit und Methode Grundzuumlge einer philosophischen Hermeneutik 3 Aufl J C B MOHR (1972) 300면
60)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 1 백종현 옮김 아카넷(2009) 374면
8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는 우선 지각의 대상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도 사법적 통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쪽은 규칙보다는 오히려 사람 즉 법관 쪽인 것이다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사건에서 법적으로 중요한 사실이 무엇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규칙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어떤 규칙이 중요한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실이 중요한지 알
아야 한다 이 인식과정에서 법관은 불확실한 가운데서 무수한 선택을 감행한다
어떤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 배척하고 어떤 사실은 인정하거나 무게를 부
여하고 신청된 증거조사의 어떤 것은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거부하고helliphellip 사실
에 대한 이 취사선택-자유심증주의-의 결과로 새로운 것이 태어난다 그리고
이것에 의해 법원을 찾아온 사람들의 운명이 갈리는 것이다
법관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필자 생각에
독일의 법철학자 아르투어 카우프만(Arthur Kaufmann)의 해석학적 방법론은 법
관의 자기이해 문제를 해석학적 지평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법관의 해석작업의
본질을 잘 설명해주는 것 같다 가다머 계통의 철학적 해석학(philosophische
Hermeneutik)의 입장을 받아들이면서62) 카우프만은 법해석행위를 통해 포괄적인
의미에서 법관 자신의 인격 중의 어떤 것이 판결에 혼입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
61)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4면 그리고 1심에서
유죄였다가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강력범죄 540건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판단자
의 감지능력 차이가 법판단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힌 김상준 무죄
결과 법 의 사실인정 경인문화사(2013) 62) 텍스트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이해에 관한 연구분야인 해석학(hermeneutics Hermeneutik)
의 어원은 신들의 전령(傳令)인 Hermes라는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설명된다 이때 신의
의도를 인간에게 전하는 과정에서 언어의 제약성 시공간적 간격 전령의 역할 등과 관
련하여 해석의 문제가 생긴다고 본다 ldquoHermeneuticsrdquo Dictionary of Biblical Interpretation Nashville (1999) 497면 독일어의 Auslegung이 해석주체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대상
으로서의 텍스트에 대한 해석을 의미한다면(객관주의) 철학적 해석학에서의 해석
(Interpretation)은 해석주체의 주관성 내지 역사성이 대상에 투사된다는 의미가 강하다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에 따르면 역사적 존재인 인간에게 있어 모든 해석과 이해는 과
거와 현재가 lsquo작용사적으로(wirkungsgeschichtlich)rsquo 중재되는 사건으로서 lsquo선이해rsquo 내지
lsquo선판단rsquo 없이는 불가능하다 가다머는 선입견으로 폄하된 선이해를 재평가하고 이를
통해 근대 이래 lsquo방법rsquo을 통한 진리발견이 주체에 의한 객체의 대상화 내지 도구화를 가져
왔다고 비판하면서 인간경험에 있어서 진리에 이르는 길은 사물의 존재가 스스로 드러
나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해석과 이해는 전승된 존재방식으로서
의 텍스트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며 이는 텍스트 자체가 지닌 역사적 지평과 해석
자의 지평이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만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해석학적 순환 이해의 전제로서의 선이해 작용사 등에 대해서는 Gadamer 앞의 책 II Grundzuumlge einer Theorie der Hermeneutischen Erfahrung 참조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9
로 법관의 결정이 올바른가의 물음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가의 물음과 직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63)
우선 카우프만은 통상적으로 회자되는 독립적인 법관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즉 법 앞에 선 법관이 일체의 정치적 사회적 개인적 영향이나 선입견들로부터 차
단된 채 순수한 객관적 인식에 따라 그 이전에는 자신이 알 수 없었던 사실관계
를 판단하고 그런 다음에 법적 판단을 한다는 식으로 이해하기를 거부한다64)
그런 법관상은 법령집은 일체 해석의 필요가 없이 거의 모든 가능한 법률문제에
대한 대답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상정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법관은 의지가
없는 존재이며 사법권력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여기는 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법에 대한 인식은 단순히 사례를 법률에 포섭시킨다는 의미의 수
동적 행위가 아니고 해석자가 해석대상에 관여하면서 함께 lsquo형성rsquo하는 것이라고
본다 카우프만은 법관의 법형성력에 대한 자신의 견해가 주관주의의 의미로 받아
들여지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는데 왜냐하면 해석자는 텍스트를 지탱하는 모든
전통과 함께 이해의 지평으로 들어간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은 서류의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ldquo아 이런 사건이구나rdquo라고 감을 잡게 되
는데 카우프만에 따르면 이는 법관 자신이 사건 경과를 관찰해서 인지했다거나
언론 등을 통해 사건에 대한 상세한 지식을 얻었다는 뜻이 아니라 유사한 사건들
을 알며 그래서 ldquo선이해(Vorurteil Vorverstaumlndnis)rdquo65)를 가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
해의 전제로서 이런 선이해가 없다면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것이 무엇에 관한 사
건인지 알 수 없고 다른 사례와 비교할 수도 없기 때문에 올바른 판단에 이른다
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66) 이 선이해에 의해 해석은 언제나 해석주체의 자기
이해 즉 자신이 lsquo잠정적rsquo 결과로서 이미 예상했던 것을 논증적으로 근거짓는 활동
이라는 의미에서 ldquo해석학적 순환rdquo 내지 ldquo해석학적 나선구조rdquo 하에 이루어진다
63)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Festschrift fuumlr Karl Peters Mohr Siebeck (1974) 144면 법관의 독립과 양심 주제와 관련한 또 다른
글로는 Kaufmann ldquoGesetz und Rechtrdquo Existenz und Ordnung Festschrift fuumlr Erik Wolf (1962) 357면 이하
64)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4면 65) 해석학적 의미에서의 lsquo선이해rsquo는 일상 언어 관용에서는 lsquo선입견rsquo이나 lsquo편견rsquo 같은 부정
적 함의를 더 많이 지니기 때문에 카우프만은 lsquoVorurteilrsquo 대신에 Vorverstaumlndnis라는 용
어를 쓰기를 권장한다(앞의 글 148면) 카우프만 외에도 이 용어의 선택은 Josef Esser Vorverstaumlndnis und Methodenwahl in der Rechtsfindung 2 Aufl (Frankfurt aM 1972)
66)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7면
90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텍스트를 이해하려는 사람은 말하자면 언제나 초벌 그림을 그리며 특정 의미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텍스트를 읽기 때문에 ldquo텍스트에서 첫 번째 의미가 지시되자
마자 전체의 의미를 lsquo예비투사한다(vorauswirft)rsquordquo67) 그리고 선이해와 관련된 이 예
비투사는-해석학적 lsquo순환rsquo에 의해-원칙적으로 끝없이 검열과정을 거친다는 것
이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도 실제 판단과정에서는 분리
되지 않는다68)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은 시간적으로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단절 관계가 아니라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정제하고 상응하는
관계에 놓인다 즉 사실에 대한 인식 없이 규범적 인식은 불가능하며 또한 규범적
관점 없이 사실만을 통한 사실 확정도 불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법률도 법관의
해석을 만나기 전에는 ldquo잠재적인 가능태로서 주어진 법률rdquo일 뿐 해석학적 순환을
통한 정제 혹은 상응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ldquo진정한 실정법rdquo이 생성된다69) 이렇
게 특정사건을 통해 구체화된 규범(구성요건)과 이 규범을 통해 정해진 사실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법관에게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들과 함께 제3의 요소로서 법관
자신의 선이해 내지 이해 포괄적으로 말하면 그의 인격적 존재가 판단에 혼입
된다
lsquo선이해rsquo는 판단자가 자신의 선이해를 의식하지 못할 때 부정적 요소를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ldquo자신의 판단은 오로지 lsquo있는 그대로다rsquo라고 말하는 즉 lsquo오로지 법
률에만 구속된다rsquo라고 말하는 법관이야말로 실은 종속된 법관이다 왜냐하면 그는
성찰되지 않은 자신의 선이해와 거리를 둘 수 없기 때문이다rdquo70) 즉 법관은 자신
67)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68) 실제 판단과정에서 사실인정과 법률적용이 따로 떨어질 수 없다는 점은 굳이 카우프
만의 이론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실무상으로는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ldquo법률
의 적용과 사실의 인정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법률문제와 결부되어 인정된다 사실의 인정이 진행됨에 따라서 재판관의 머리
속에서는 어떠한 법규를 적용할 것인가 그 법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는 전망이
점차로 서게 되며 당사자 측도 경우에 따라서는 민사인 경우 청구의 취지를 변경할
것인가를 고려하게 되고 형사인 경우 공소사실을 변경하는 경우도 생긴다 요컨대 사실
문제와 법률문제는 실제과정에서 불가분으로 결부되어 있다 helliphellip 양쪽이 불가분으로
재판관의 직관 혹은 재판관의 전인격적인 작용에 의하여 사실의 인정과 법의 적용이
행하여지고 판결 삼단논법은 실제의 심판 과정에서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rdquo(사법
연수원 법조윤리론 35면) 69) ldquo법관의 해석 작업 이전에는 어느 의미에서 진정 법도 진정한 사실도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원자재들(Rohmaterialien)로만 이것들이 존재할 뿐이다rdquo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1
의 선이해를 의식하고 자신을 이데올로기 혐의 앞에 세울 줄 알 때 올바른 판결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ldquo법관이 자신의 선이해와 종속을 의식할수록 그래서 간주
관적 합의에 노력할수록 그는 더 객관적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rdquo71) 그러므로
법관의 주관주의의 위험은 카우프만식으로 말하면 가치판단 같은 성찰적 고려와
관련된 주관적 요소를 방법상의 근거 제시의 맥락에 끌어들이는 법관의 경우보다는
오히려 모든 것이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판결의 주관적
요소를 은폐하는 법관에게서 나타나는 위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학적 순환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법관은 ldquo법률의 입rdquo이 아니라 ldquo인격
으로서 판결을 떠받친다rdquo72) 판결은 법률과 법관의 인격의 혼성물이다 그러므로
법률은 판결을 위한 필요조건이기는 하나 충분조건은 아니라고도 말할 수 있다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순환이론은 법관의 독립과 양심의 문제 차원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법결정의 올바름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
는 정도에 달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자신을 올바르
게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자신의 판단력 경험 능력 인간에 대한 태도 감
수성 명예욕 등등
카우프만의 법해석학적 순환이론이 법관의 독립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이라
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독립은 법관 스스로 관철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론적으로 카우프만의 법해석이론의 의의는 법관이 자신의 선입견을
의식하는 것이야말로 법관의 독립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설득력있게 지적
해주며 그런 방향에서 법관의 법해석 작업을 재평가했다는 데 있다고 말할 수 있
겠다
70)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71) Arthur Kaufmann ldquoDer BGH und die Sitzblockaderdquo NJW (1988) 2581면 이하72) 이 표현은 Karl Peters의 Strafprozess - Ein Lehrbuch (1966) 99면에 나오며 여기서는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9면에서 재
인용했다 이덕연 교수도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에 입각하여 ldquo법관의 법해석작
업은 단순한 lsquo인식작업rsquo이나 lsquo언어분석작업rsquo이 아니라 ldquo구체적인 반성과 자기극복의
노력 속에서 온 인격을 걸고 진행하는 lsquo이해와 실천의 수행작업rsquordquo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앞의 글 35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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Ⅸ 법관은 lsquo하는 사람rsquo인가 lsquo보는 사람rsquo인가
법관의 판단작업을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의 관점에서 주목했던 또 다른
철학자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다 그녀는 ldquo아이히만 재판rdquo을 계기로 판단의
특수한 경우로서의 판단력 문제를 연구했다73) 아렌트는 하드케이스와 연관시켜
법관의 판단력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74) 법관은 우선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을 반추하면서 판단에 임하는데 이때 판단자로서 그는 한 면으
로는 규칙에 따라 판단하라는 lsquo일반적 정의rsquo의 요구에 그리고 동시에 다른 한 면
으로는 정황에 맞게 판단하라는 lsquo개별적 정의rsquo의 요구에 처한다 이러한 상황은
아렌트에 따르면 하드케이스에서 특히 발생한다 이 이중적이고 모순적 요구 상황
을 아렌트는 법관의 판단에 적용되는 특수한 해석학 및 그 조건을 설명하는 출발
점으로 삼는다75) 하드케이스가 아닌 통상적인 사건에서는 이른바 포섭 여부를 판
단하는 것으로도 족하다 일반규칙에의 포섭 여부가 중심이 되는 이 단계에서의
판단력- lsquo규정하는 판단력(bestimmende Urteilskraft)rsquo-은 사실관계에서의 원인
이나 형식적 정의를 따지므로 일방적이고 간주관적 전제 없이도 가능하다 그래서
흔히 법관은 여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법을 해석해야 한다고 말할 때 이는
법적용을 이러한 지배적인 포섭모델에 입각하여 이해한 결과라 할 것이다 그런데
규칙으로부터 오는 어떤 어려움들 때문에 규정하는 판단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즉 포섭이 어렵거나 법흠결 시 또는 가치형량이 요구되는 하드케
이스에서는 법관은 어쩔 수 없이 앞에서 말한 모순문제를 다루어야만 한다 이때
아렌트는 법관이 사유의 확장을 통해 방법상으로 lsquo규정적 판단력rsquo을 스스로 교정
할 수 있는 lsquo성찰적 판단력rsquo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고 이 판단유형의 전환과정을
73) 법적 판단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 삼은 저술은 Hannah Arendt Eichmann in Jerusalem Ein Bericht von der Banalitaumlt des Boumlsen Erw Aufl (Muumlnchen 2001) 그리고 Hannah Arendt Das Urteilen Texte zu Kants Politischer Philosophie Hrsg v R Beiner Uumlbers v U Ludz (Muumlnchen 1998)
74) 아렌트가 염두에 둔 하드케이스는 라드브루흐가 이른바 ldquo법률적 불법rdquo 상태로 규정한
나치의 불법국가 상황으로서 이렇게 극히 예외적인 케이스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하드
케이스에 적용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별적 정의 요구에 부응함
으로써 예컨대 소급효를 금지하는 일반법률에 위배되는 상황과 유사한 갈등상황은 반
드시 극단적 상황에서만 생긴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75)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2 Bde Hrsg v U Ludz amp I Nordmann
따라서 그 척도는 전달가능성이며 거기에 딱 맞는 것은 공통감각(상식)이다rdquo77) 오
늘날 공통감각은 아렌트도 지적했듯이 더 이상 그것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얻고자 노력해야 하는 그 무엇이 되어버린 듯하다 그러나 공통감
각이 무너진 시대를 겪었던 아렌트는 사유의 전환 내지 확대를 위한 진정한 발판
을 다시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에서 구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78)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실천철학의 전통에서는 세계와의 관계 그리고 자기와의 관
계를 공통감각을 척도로 설정해가는 판단자가 lsquo하는 사람rsquo인지 아니면 lsquo보는 사람rsquo
인지 즉 lsquo행위자rsquo인지 아니면 lsquo관찰자rsquo인지를 둘러싸고 의견이 대립되어 왔다 lsquo하
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자가 lsquo정치가rsquo 쪽에 더 가깝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
자는 lsquo철학자rsquo 쪽에 더 가깝다 lsquo하는 사람rsquo은 주로 사회의 일반적 상식 건전한 인
간이해 세론(doxa)을 판단의 척도로 삼는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적 경험은 전체주
의 하에서는 건전한 인간이해도 집단화된 대중감정에 따른 오도된 인간이해 앞에
무너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판단에서 사실로서의 상식이나 합의 또는
법해석공동체 내부의 지배적 제도적 관점이라는 판단 척도만으로는 일반규칙으로
부터 오는 모순을 다루기 어렵다 여기서 판단자는 ldquo확대된 사유방식rdquo을 추구해야
하는데 아렌트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을 lsquo보는 사람rsquo의 판단과 결합시킴으로써 법
관을 위한 사유의 확대를 시도한다79) lsquo하는 사람rsquo이 사실로서의 일반적 상식이나
인간이해 차원에 비추어 판단한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ldquo이
상적 규범적 상식rdquo80)을 추구하고자 한다 판단을 거쳐 법적 효과를 결정하는 법관
76)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을 해석학적 순환이론을 적용하여 분석하면서 칸트의 판단력 비
판에 의거하여 아렌트가 판단력의 특수한 경우로서 법관의 ldquo성찰적 판단력rdquo이라는 새
로운 판단유형을 제시했다고 지적한 연구서로는 Stefanie Rosenmuumlller Der Ort des Rechts Gemeinsinn und richterliches Urteilen nach Hannah Arendt Nomos (2013) 참조
77) Hannah Arendt Das Urteilen 92-93면78) 아렌트가 판단의 차원을 심화시키는 발판으로 삼는 상식은 sensus communis로서
communis opinio와는 다르다는 데 대해서는 Marieke Borren ldquolsquoA Sense of the Worldrsquo Hannah Arendtrsquos Hermeneutic Phenomenology of Common Senserdquo International Journal of Philosophical Studies Vol 21 No 2 (2013) 225-255
79) Hannah Arendt Das Urteilen 76면80) Rosenmuumlller 앞의 책 234면 이하 여기서 아렌트는 상식개념을 이중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에서는 경험적 개념으로 보다 성찰적 판단
단계에서는 규범적 개념으로 사용한다
9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은 관찰자로서 판단하면서 동시에 행위자로서 판단에서 법적 결과를 결정하는
사람이다 관찰자인 동시에 행위자라는 이중적인 역할을 하면서 법관은 자신의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 반추한다81) 이 반추과정에서 법관은 한편으로는 포섭
하는 판단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고려해야 할 관점들을 끌어들이면서
자신의 직책을 마지막까지 수행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통제하면서 자신의 앞서의
(포섭) 판단을 정정해나간다 그래서 법관 자신이 lsquo보는 사람rsquo과 lsquo하는 사람rsquo의 만
남의 장소가 되는 것과도 같다 ldquo이 보는 사람은 모든 하는 사람 안에 자리 잡고
있다helliphellip이 비판적 판단능력이 없이는 행위자 혹은 해결자는 보는 사람으로부터
풀려나 종내는 지각되지조차 못하게 될 것이다rdquo82)
사람들은 자신 일에 있어서는 비당파적일 수는 없다 따라서 ldquo자신의 일에 대한
판단에서는 내면의 심판자 혹은 내면의 법정을 가질 수 없다rdquo83) 그러나 다른 사
람의 일을 반추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필히 비당파적이어야 하며 또 비당파적이 될
수 있다 이때 그는 비로소 내면의 심판자를 가지게 된다 즉 양심의 문제에 처하
게 되는 것이다 판단에 있어서 양심이라는 것 즉 양심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남
의 일에서 ldquo증인rdquo 혹은 ldquo비판적 친구rdquo로서 관찰하고 행위하는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이다84)
아렌트의 성찰적 판단모델은 나치 불법국가 경험의 산물이다 통상의 규칙이 파
괴된 상황 통상의 범죄유형에 포섭되지 않는 극히 예외적인 범죄적 상황에서 법
원은 기존의 판단척도를 해석학적 출발로 삼아서는 안 되고 이때에는 질적으로
동의가능한 합의형식을 찾기 위해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으로 돌아가
진정으로 사유 즉 철학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렌트가 판단을 일반화해주는
거점이자 해석학적 출발점으로 삼은 공통감각(상식) 개념은 칸트철학에서 ldquo비사교
적 사교성rdquo 개념의 위상과 비슷하다85) 이 지상에서 인간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다른 것을 원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모여 살아야만 하는 존재다 이 비사회성 요
청과 사회성 요청의 동시성 때문에 인간에게는 제도적인 안착이 더없이 중요하며
법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실존과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만든다 판단의 기
81) Leora Y Bilsky When Actor and Spectator Meet in the Courtroom Hannah Arendt and Eichmann in Jerusalem G N Arad Hg (Bloomington 1996) 137면
82) Hannah Arendt 앞의 책 85면83) Hannah Arendt 앞의 책 76면 84)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657면85) Rosenmuumlller 앞의 책 1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5
초를 보편적 인간경험에 둔다는 점에서 아렌트가 말하는 판단력은 드워킨의 헤라
클레스와 같은 초인적 천재성을 발휘하는 능력과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86) 아
렌트가 상정하는 이상적인 법관은 철학적이지만 철학자는 아니고 정치적이지만 정
치가는 아닌 사람이다
아렌트는 헌법국가의 권위도 상식개념에 기반을 두고 설명한다 그리고 민주적
정당성의 관점에서 입법의 우위를 인정하는 까닭에 성찰적 판단에 입각한 법관의
검증에는 한계가 있다는 태도를 견지한다87)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렌트가 제시한
법관의 성찰적 판단 유형에 대해서는 다양한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우선 이것이
예외 상황에서 적용되는 판단모델로 상정된 것이며 무엇보다도 ldquo규범적 상식rdquo에
대한 단일한 이해기반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법관 개인의 주관적 정치적 신념
이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길을 피할 수 없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성찰적
판단력은 결국 레토릭에 불과한 것인가 아렌트는 그러나 무엇이 ldquo특정 상황에 맞
는 공통감각(situierte Gemeinsinn)rdquo인지에 대한 공동의 인식은 가능하며 또 법관의
lsquo하는rsquo 판단에 들어있는 정치적 함의를 성찰적 판단력으로 검증하는 것도 가능하
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아렌트가 마지막 검증심급으로 원용하는 것이 바로 판
단에서의 양심의 심급이다 그것이 과연 동의할 수 있는 합의형태로서 충분한지를
스스로 검증하는 이 심급에서 판단자는 명령조로 자기에게 전해지는 소리를 듣게
된다 ldquo멈춰 나는 그것은 할 수 없어rdquo88) 판단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 멈추는 것
이 가능한 이 성찰적 심급에서는 칸트와 달리 할 수 없는 이유로써 결과도 고려
된다 lsquo보는 사람rsquo이 자기 안에서 지켜보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상황은 토마스 아퀴
나스의 양심론에 비추어 다음과 같이 묘사될 수도 있겠다 지적 본성을 가진 인간
존재가 보편법칙에 관한 지식을 개별 행위에 적용하기 위해 판단하고 선택할 때
행위자는 갈등 상황- ldquo그렇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rdquo는
상황-에 처하여 멈칫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데 이때 그는 단지 갈등하고
선택하는 역할만 하지 않고 갈등하고 선택하는 이 과정을 ldquo관찰하고 목격하는 증인rdquo
의 역할도 한다는 것89)
86) 드워킨에 의하면 해석적 탐구는 ldquo어떠한 증명도 허용치 않고 어떠한 수렴도 약속치
않는 탐구rdquo이다(드워킨 정의론 203면)87) Rosenmuumlller 앞의 책 30면88) Hannah Arendt Uumlber das Boumlse Eine Vorlesung zu Fragen der Ethik Hrsg v J Kohn
(Muumlnchen 2003) 52면89) 지적 행위자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자신의 내면의 갈등과 선택과정을 바라보는
9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Ⅹ 방법에서 덕목으로
헌법 제103조는 한 면으로는 헌법과 법률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 면으로 해석자에게 여하한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lsquo제약
의 차원rsquo과 lsquo자유의 차원rsquo을 동시에 담고 있다 법관은 자유로울 때에라도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며 법에 구속될 때에라도 전적으로 구속되지는 않는다는 뜻이
기도 하다 이 lsquo자유와 구속의 변증법rsquo에 비추어 지금까지 논한 주제에 대해 몇 가
지 입장을 정리해 보자 첫째 법관에게 있어서 독립은 확정된 원칙이나 그것자체
로서 달성해야 할 최종목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법관의 독립은 완성형이 아니라
끊임없는 진행형의 과제로서 그 직무수행에 대한 신뢰와 병행하여 점진적으로 이
루어지는 것이다 둘째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에 있어서 구속은 법률에 무조건 복종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판결에 대한 윤리 (내 ) 확신과 함께 법률에 복종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법관이 실정법률에 반하는 결정을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법
관은 객관성을 빌미로 법률 뒤에 숨는 익명적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
미하는 것이다 셋째 독립적인 법관의 양심은 lsquo법과 상충한다rsquo기보다는 lsquo법을 실
한다rsquo는 의미를 지닌다 넷째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서 반추하면서 lsquo하는
사람rsquo인 동시에 lsquo보는 사람rsquo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성찰 인 인물상으
로서만 설정될 수 있다
해석적 탐구는 우리의 이해를 넓히기 위해서 필요하지만 이해에서의 우리의 피
할 수 없는 한계를 깨닫기 위해서도 필요했는지 모른다 엥기쉬는 법해석방법론에
대한 저술의 마지막 부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ldquo방법론에 천착하다 보면
애초의 문제였던 법률로부터 훨씬 더 먼 곳으로 이끌려 간다rdquo 지금까지 필자는
법관의 법해석과 관련하여 방법론의 의의와 한계를 논하고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과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에 비추어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이 법해석론
의 불가결한 부분으로 들어가게 되는 이유도 밝혔다 그리고 해석적 차원에서의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는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행위를 목표로 하는
탐구라는 것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필자는 이 모든 논의들을 매개로 방법론이 우리를 더 멀리 덕
목론으로 데려가는 과정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드워킨의
상황에 대한 이 묘사 부분은 이경재 ldquo토마스 아퀴나스의 양심 개념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375면을 참조했다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7
헤라클레스를 잠시 불러올 필요가 있다 해석문제를 누구보다도 더 진지하게 다룬
드워킨은 마지막에 헤라클레스를 내세운다 주어진 사건에서 무엇이 법인지에
대해 도덕적 의식을 가지고 법실무 전체를 원리정합적으로 정당화하라는 요청에
부응하여 자신의 신념에 기초한 결정을 내리는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의 구성적
해석에서 법관의 양심이 기능하는 국면은 어디일까 송민경 판사는 드워킨의 구성
적 해석론에 입각하여 양심을 구체적 법논증과정의 일부로 포함시키면서 이때 양
심이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라는 지침으로 기능한다고 설명한다90)
그런데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는 지침으로 기능하는 것을 양심이라
고 보게 되면 양심의 문제는 논증적 합리성의 차원 즉 논증의 성공으로 종결짓게
된다 그러나 법적 결정의 정당성 문제는 법관의 입장에서는 논증의 성공 문제로
다루어지지만 법관의 성공적인 논증에 따른 판결의 결과로부터 영향을 받는 시민
의 입장에서 보면 성공적인 논증만으로는 해석이 정당화된다고 볼 수는 없다
성공적인 논증은 법적 결정의 정당화에 필수적이기는 하나 충분한 조건은 되지 못
한다 해석이 궁극적으로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사법적 도덕성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 사법적 도덕성은 헤라클레스가 지침으로 삼는 원리적 도덕성의 실현과는 다른
것이다 만약 패소한 시민이 다른 헤라클레스에게 갔더라면 즉 다른 법원리에 기
초한 신념을 토대로 다른 결정을 내린 다른 법관에게 갔다면 그는 승리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왜 헤라클레스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하
는지에 대한 답이 필요한 것이다91) 헤라클레스가 실무에 대한 최상의 정당화를
도모하는 법적 이상주의자라면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법원 문을 두드린 시민도
어느 의미에서 ldquo법이상주의자rdquo92)이다
법해석 작업의 주관의존성이라는 불가피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재판이라는 특수
한 공적 활동이 법관이라는 특수공직자에 의해 운영되고 유지된다는 것은 시민들
-소송에서 패한 시민들을 포함하여-편에서 보면 법을 해석하는 법관에 대한
신뢰가 전제된다는 것이다 법관의 독립적 활동은 법관의 특권 행사가 아니라 사
90) 송민경 앞의 글 38면 20면91) 사법적 덕목과 연관하여 이 부분을 다룬 글로는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5면 이하
92) 법원 문을 두드리는 시민에 대한 이 표현은 심헌섭 ldquo법조윤리의 좌표 거시적 관점에서 본 전문윤리로서의 법조윤리rdquo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편 法律家의 倫理와 責任 박영사
(2003)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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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정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응당한 몫이 돌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존중하는 바탕에는 일종의 상호성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 그 또한
시민이기도 한 법관이 동료시민들에 대해 가지는 배려와 존중의 원칙이 그것이다
여기서 사법적 덕목에 대해 자세히 논할 수는 없다93) 예의 성실 신중 절제
용기 공정 겸손 의사소통 능력 형평 시민에 대한 배려와 존중 등등 이것들은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바탕을 이루는 양심의 덕목들일
것이다 양심이라는 단어가 그렇듯이 덕목이라는 단어도 오늘날 진부해진 표현
이며 거의 사라져가는 단어다 윤리적 태도로서의 덕목은 관찰하기도 배우기도
어렵다 그러나 올바른 판단과 결정이 법관이라는 개인을 거치지 않고 법령집
자체로부터 반사적으로 튀어나오지 않는 한 이 덕목들을 내면화하고 지향하려는
태도 없이는 lsquo종국적인rsquo 판단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써 필자는 헌법 제103조를 통해 법해석에서의 방법론의 문제가 덕목론이라
는 다음 과제로 이어진다는 점을 밝혔다고 생각한다
투고일 2016 4 6 심사완료일 2016 5 18 게재확정일 2016 5 20
93) 법관의 개별적인 덕목들과 이것들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는 박은정 강태경 김현섭 바람
직한 법관상의 정립과 실천 방안에 관한 연구 법원행정처(2015) 제5장 참조할 것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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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ltAbstractgt
Independence and Conscience of the Judges Based on
Interpretive Method for Article 103 of the Korean Constitution
Pak Un Jong
94)
In this paper I aim to discuss the problem of independence and conscience
of the judges as outlined in Article 103 of the Korean Constitution in the
context of the interpretive methodology
First of all this paper will look at the background in which the independence
of the judges has been institutionalized and also the problems regarding usual
explanation for conscience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And I will try to
reveal the characteristics and difficulties of the interpretive actions of the judges
especially in connection to the issue of value judgment This would require
pointing out the problems and limitations of the interpretive methodology and at
the same time defining the nature of tension embedded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namely the tension between the obligations of the judges to abide
the law versus the subjective internal demeanor of the judges This tension-
ridden condition reenacted by the demand to follow lsquogeneral justicersquo versus
lsquoindividual justicersquo appears inevitably in the process of judicial interpretation I
will examine the theories that capture this kind of tension that accompany the
interpretation process and aim to feel out the possibilities of resolving this
tension At the end I come to the conclusion that these theories can explain but
cannot resolve this tension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If so the problem
which arises from the limitations of the interpretative methodologies from the
perspective that a judgersquos final decision greatly impacts citizens becomes a
problem of judicial ethics In order to ultimately justify the interpretation of the
judges the demands of judicial ethics must be satisfied Keeping this demand in
Professor College of Law School of Law Seoul National University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103
mind I point out that the significance of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is in
its role of bridging legal methodology to virtue ethics
Keywords independence of the judges conscience of the judges interpretive
method of law value judgment judicial virtue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79
개인적인 단은 도덕적 상대주의자들이 말하는 개인적인 취향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해석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올바른 해석기준을 수립하고자 법률가들은 각
기 지금까지 다양한 해석방법에 의존해 왔다 올바른 해석을 위한 확고한 기준을
수립할 수 있다는 것은 찬성하는 혹은 반대하는 해석논거들 사이의 상대적 비중을
결정하는 명확한 규칙을 수립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즉 어느 한 해석
논거가 다른 해석논거에 의해 배제되는 조건이나 선택된 해석을 정당화하는 데
필수적인 한 논거가 다른 논거보다 우월하기 위한 조건 한 논거에 누적을 통한
비중이 부과되는 조건 등을 제시해줄 일관된 정보와 지침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
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여러 해석방법들 사이에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다는 것
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시도는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했다 동일한 유형의 논거일지
라도 각각의 정당화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비중을 갖게 될 뿐더러 언어적 해석
방법 체계적 해석방법 목적적 해석방법 등으로 제시되는 여러 해석방법들이 한
줄로 세우기에는 한마디로 너무 이질적이다35) 물론 이들 해석논거들의 상호작용
을 검토하면서 잠정적인 서열을 제시하는 것은 가능할 수도 있다36) 그러나 이 서
열은 기껏해야 ldquo해석을 위한 노력의 경제성 원리rdquo 정도를 말해 줄 뿐이기 때문에
쉽게 바뀔 수 있다37)
드워킨이 옳게 지적한 대로 기본적으로 가치판단과 관련된 해석방법들은 위계
적일 수 없고 ldquo상호지지적rdquo인 관계에 놓일 뿐이다38) 이 때문에 방법론적 규칙을
세우려는 시도는 언제나 무망해지는 것이다 또한 법해석에 있어서 언어란 단어의
의미를 식별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 행위의 의미를 식별
하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론 풀러(Lon Fuller)가 지적한 대로 ldquo언어
를 통한 의사 전달은 어느 한 사람으로부터 다른 사람에게로 의미가 든 상자를 발송
하는 식rdquo39)은 아닌 것이다
35) 울프리드 노이만 ldquo실증주의 이후 시대의 법률과 판결rdquo 강연문(주 32) 노이만에 따르
면 예컨대 체계적 해석 방법에 따른 논거도 그것이 논리적 일관성 획득의 맥락에서
인지 아니면 가치평가의 일관성 보장이라는 맥락인지에 따라 전혀 다른 비중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36) 대체로 언어적-체계적-역사적-목적론적 해석방법의 순서로 언급되는 데 대해서는 심헌섭
분석과 비 의 법철학 법문사(2001) 217-218면37) 맥코믹과 서머즈는 비교법적 연구결과를 통해 올바른 해석을 위한 지침 수립은 어느
국가의 법체계에서도 지금까지 성공적이지 못함을 밝힌다(앞의 글 210면)38) 로널드 드워킨 정의론 박경신 옮김 민음사(2015) 309면
80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결론적으로 해석방법론으로부터 법관은 불확실성을 떨쳐 낼 수 있는 확실한 정
보제공을 기대하기 어렵다 해석논거를 위한 결정적인 기준을 제공하는 해석방법
에 대해 불안정한 형태로나마 이론적 합의를 찾기 어렵다면 엥기쉬의 지적대로
해석방법론은 공중에 떠있는 상태다40) 법학에서 방법론의 융성은 역설적으로 법
학이 이 부분에 취약하다는 암시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해석자로서의 법관을
최종적으로 인도하는 전략은 무엇일까 다음과 같은 고민을 들어보면 적어도 그것
은 방법론상의 합의에 대한 기대 같은 것은 아닌 것 같다 ldquo우리들은 일정한 결론을
내리고도 그 결론이 가장 적절sdot타당한 것이라고 보증받을 수 없다 그 결론을 낸
시점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들은 자기의 결론이 그러한 불확실성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그것을 자기의 전인격적 책임 아래 끝을 내고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비판과 평가에 맡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rdquo41)
해석방법론이 공중에 떠있는 상태라면 법관을 법률에 구속시키기 위한 방법론
적 보장책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런 가운데 ldquo자기의 전인격적 책임 아래rdquo ldquo사려
깊고 균형잡힌 총체적 관념rdquo ldquo인생 그 자체로부터 지식rdquo 등에 대한 호소를 듣는다
이것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법발견으로 불리든 법인식 혹은 법형성으
로 불리든 법적으로 올바른 결정을 이끌어낸다는 것은 순순히 lsquo앎rsquo의 문제만은 아
니라는 것이다 실천철학의 전통 용어를 빌어서 말한다면 그것은 이론지 이상의
실천지를 요구하는 활동이다 즉 법관의 해석활동은 이론지와 실천지를 결합하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이 주제로 다가가는 한 우회로로서 우선 지적 활동으로서의
법관의 해석활동의 특성에 대해 살펴보자
39) 론 풀러 법의 도덕성 박은정 옮김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2015) 314면 40) ldquo그러나 해석론 전체에 대한 확고한 이론적 토대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서열관계에
관한 모든 이론들은 여전히 공중에 떠 있다rdquo 엥기쉬 앞의 책 137면41) 사법연수원 법조윤리론(2014) 31면 그밖에 Benjamin N Cardozo The Nature of
Judicial Process Yale University Press (1921) ldquo언제 하나의 이익이 다른 이익을 능가
하는지를 묻는다면 hellip 경험과 연구와 성찰로부터 요컨대 인생 그 자체로부터 그 지식
을 얻지 않으면 안된다고 답할 수 있을 뿐이다rdquo(여기서는 법조윤리론에서 재인용) 또한 맥코믹서머즈 ldquo해석과 정당화(下)rdquo 박정훈 역 법철학연구 제6권 제1호(2003) 348면 ldquo해석은 간주관적으로 승인된 모든 법적 가치들에 대하여 사려깊고 균형잡힌
총체적 관념을 획득하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제대로 행해질
수 있다rdquo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1
Ⅵ 법관의 해석활동 실증주의의 대척점
앞에서 언급한 대로 해석에서는 무엇이 최선의 해석인가를 둘러싸고 언제나
논쟁과 불일치가 따른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누군가가 텍스트를 해석한다고
말하는 순간 그는 실증주의의 대척점에 서게 된다 실증주의과학의 의미에서는 논
쟁의 여지가 있는 것은 원칙적으로 과학일 수 없기 때문이다 법실증주의사고에서
해석 문제가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법을 근본규범에 입각
한 자기준거적인 구조로 보는 한스 켈젠(Hans Kelsen)의 순수법학이나 법적용과정
을 규칙에 의해 지도되는 과정으로 보는 하트(H L A Hart)의 분석법학에서 해석과
관련한 어려움은 다루고 있지 않다42)
켈젠은 순수법이론(Reine Rechtslehre)에서 정당한 해석만이 허용된다는 주장
은 허구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면서 해석의 건전성 문제나 정당화 문제를 법이론
안에서 다루기를 거부한다 법을 자기준거적인 것으로 보는 관점은 한마디로 해석
(행위)주체의 입장을 부정하는 것이다 켈젠은 법단계설을 바탕으로 법적용을 상위
규범의 수권에 의해 하위규범이 구체화되는 과정으로 보고 여기에 헌법의 수권을
받아 법률을 제정하는 입법자도 포함시킨다43) 이에 따라 법적용도 입법의 한 형
태로 설명된다 법관에 의한 법형성의 동기는 이를테면 입법부가 유독 다른 법률
이 아닌 이 법률을 통과시키는 동기와 같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켈젠은 판단활동
에서 인지적 요소와 의지적 요소를 엄격하게 구별하면서 법관의 판단활동을 순전
한 의지활동으로 보고 이 법관의 활동에 대해서만 (유권)해석이라는 표현을 사용
하고자 한다 그리고 법학적 해석에 대해서는 법규범의 가능한 의미들을 밝히는
것으로서 법률에 따른 결정의 범위를 제한하는 정도의 의미를 부여한다
법단계설에 따르면 상위규범이 정한 일정한 범위 안에서의 수권에 따라 하위규
범이 작용한다 이때 상위규범의 수권은 모든 세부적인 내용들에 대해서까지 정해
42) 켈젠은 순수법이론(Reine Rechtslehre) 제1판(1934) 제6장에서 해석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부분과 거의 같은 논문 ldquoZur Theorie der Interpretationrdquo이 심헌섭 젠법이론선집 법문사(1990) 97면 이하에 실려 있다 윤재왕 교수는 Reine Rechtslehre 제1판과 제2판
(1960)을 비교하면서 해석방법으로부터 오는 규범적 구속력을 일체 거부하는 켈젠의
입장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윤재왕 ldquo한스 켈젠의 법해석이론rdquo 고려법학 제74호(고려
대학교법학연구원 2014) 525면 이하 하트의 대표적인 저서 법의 개념의 색인 항목에는
lsquo해석rsquo이 빠져있다 43) Hans Kelsen Allgemeine Staatslehre (Berlin 1925) 231면 이하
8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그래서 ldquo상위단계의 법생성으로부터 하위단계의 법생
산으로의 전환은 단지 상위단계가 정해 놓은 범위를 채우는rdquo 활동으로서 이때
ldquo언제나 상위단계에는 없는 내용적 요소가 하위단계에 추가되어야만rdquo 한다44) 이
내용을 채우는 부분과 관련하여 상대적 불확실성이 생기는데 켈젠은 이 문제를
ldquo자유재량rdquo의 문제로 다룬다45) 이는 하트가 규칙의 체계로서의 법체계를 완결된
구조가 아닌 열린 구조로 봄으로써 상대적 불확실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법관의
재량사항으로 보는 것과 같다 하트의 경우 중심부와 주변부라는 극히 단순화된
이분법을 끌어들여 이 불확실성 문제를 처리하고자 했다면 켈젠의 경우는 인식작
용과 의지작용의 이분법을 끌어들임으로써 이 문제를 처리하고자 한 것이다
판결을 법관의 의지활동으로만 이해하는 입장을 취하게 되면 법관에게 결정에
대한 근거 제시 요청을 할 수 없게 된다 마치 신의 심판에 대해 근거 제시를 요구
할 수 없듯이 말이다 결국 켈젠의 법이론상으로는 해석은 법학의 문제가 아니며
그러므로 분석적 법실증주의와도 무관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46) 이런 이유에서 그
는 정당한 해석만이 허용된다는 주장이나 해석방법만으로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에
이를 수 있다는 주장을 거부하면서 심지어는 상위규범에 제시된 범위를 넘어서는
해석의 효력조차 적극적으로 인정함으로써 어느 의미에서는 해석이론의 존재기반
자체를 무너뜨린다47)
켈젠이나 하트가 법이론에서 해석의 의미를 축소한 이면에는 이분법이라는 과도
한 사유의 단순화가 놓여 있다 그러나 켈젠이 생각하는 것처럼 판단에서 인식적
요소와 의지적 요소의 확고한 경계가 유지되는지는 의문이다 또 중심부와 주변
부에 대한 하트의 주장도 지나친 단순화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어쨌거나
켈젠이 합리적인 해석방법을 추구하는 법이론의 효용가치를 한껏 떨어뜨렸다고
해서 이제 어차피 정답은 없으니 법대에 앉은 법관은 자기 임의로 무엇이든 해도
된다고 켈젠이 주장했을 리는 물론 없을 것이다 법이론의 과도한 정당성 주장을
거부하는 데서 오히려 순수법학의 비판적 잠재력을 찾을 수 있다고 보는 학자들은
여기서 켈젠이 강조한 순수화 즉 탈정치화는 법학에 관한 것이지 법 자체에 관한
44) Kelsen Allgemeine Staatslehre 243면 여기서 번역은 윤재왕 앞의 글 535-536면에서
재인용45) Kelsen 앞의 책 243면 이하46) 켈젠에 있어서 법해석은 이론상으로는 법학보다는 정치학이나 사회학에 속하는 문제
에 더 가깝다고 지적한 견해에 대해서는 론 풀러 앞의 책 312면 47) 이에 대해서는 윤재왕 앞의 글 553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3
주장이 아니었음을 상기시킨다48) 즉 법 자체는 결코 정치와 분리될 수 없다는
점에서 법실무에 대한 학문이론의 무가치성을 주장하는 순수법학은 실무의 법
적용자로 하여금 자신의 활동이 정치적 활동임을 깨닫고 책임을 느끼게 하는 계기
를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윤재왕 교수도 ldquo켈젠 해석이론의 배후rdquo로 들어가 방법
이론으로부터의 어떤 구속력도 거부되는 데서 생기는 공백을 켈젠이 법관 자신의
자기이해와 책임성 문제로 채운다고 지적한다 ldquo법관의 판결은 결코 순수한 것일
수 없으며 그런데도 자신의 판결이 순수한 인식의 소산이라고 강조한다면 이는
정치적 책임의 회피이고 동시에 이데올로기적이라는 혐의에 노출되지 않을 수
없다rdquo49) 이 문구가 켈젠 자신으로부터 나왔다면 아주 좋았을 것이다 자신의 직
무의 중요성과 책임에 대한 실천적 깨달음은 해석의 정당화를 목표로 하는 인식적
노력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켈젠의 순수법이론의 기획은 서로
붙어 있는 양면을 떼어 놓으면서 이것을 다시 붙일 수 있음을 보여주려 한 것일까
Ⅶ 법관의 해석활동 가치판단과 lsquo정답테제rsquo 문제
켈젠처럼 실증주의적 사고에 따르든 아니면 비실증주의적 사고에 따르든 가치
판단 문제에서 해석방법만으로는 하나의 정당한 결정을 도출할 수 없다고 생각한
다면 이는 해석의 차원에서 가치에 대한 이해 시도는 진리 추구와는 무관하다는
주장으로 귀결되는가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해석대상의 의미에 대한
관심과 최선의 이해에 대한 관심은 아무래도 진리 추구라는 목표를 향한다고 봐야
한다 법적 결정은 물론 법관의 권한에 속하지만 그것을 정당화해주는 원천은 법
관이라는 lsquo지위rsquo가 지니는 형식적 권한이 아니라 판결이 정당하다는 근거 제시에
있다 법판단을 정당화해주는 모델은 울프리드 노이만(Ulfrid Neumann)이 지적한
대로 권위를 통한 정당화모델보다는 진리를 통한 정당화모델에 더 가깝다50)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재판활동은 엄연히 사법권이라는 공권력의 작용이라는 점에서
독립적인 법관의 재판활동을 그 ldquo계획적이고 진지한 진리 탐구 활동rdquo적 측면 때문
48) 법학의 탈정치화를 ldquo정치적 허무주의rdquo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데 대해서는 켈젠 ldquo순수법학이란 무엇인가rdquo 젠법이론선집 280-282면
49) 윤재왕 앞의 글 559면50) 울프리드 노이만 ldquo법 진리 권위rdquo 2013 4 6 한국법철학회 강연문 참조
8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에 학문의 자유의 한 표현으로까지 보려는 것은 무리다51)
오늘날 가치상대주의 분위기는 실천적 물음에서 진리 도달가능성에 대한 회의를
과장한다 그러나 진리가 뭐냐는 빌라도의 물음에 비록 확신에 찬 대답을 못한다
하더라도 법에서 진리 내지 정당성 추구의 포기는 파국을 의미한다 국가권력
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도 진리라는 규제이념이 전제되기 때문
이다 독립된 사법부가 심급구조와 집단적 의사결정의 형태로 스스로의 시정 기구
를 가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물론 진리에 대한 주장은 잠정적이고 수정가능하다
lsquo참이냐 거짓이냐rsquo는 오로지 서술적 명제에만 한정하여 검증될 뿐이라는 협소한
학문관을 따른다면 법학은 학문 안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법
학이 그런 협소한 학문관을 받아들여야 할 필연성은 없다 법해석자는 자신의 해
석적 판단이 진리라는 주장을 무한정 내세우지는 못하면서도 진리 추구를 피할
수 없다52) 론 풀러(Lon Fuller)의 지적대로 ldquo법이론이 최고의 법적 권위를 엄격하
게 정의하는 일에 큰 비중을 두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이 점이 모호해지면 필경
전체로서의 법체계가 와해될 수 있다rdquo53)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법을 민주
주의의 언어로 설명하는 오늘날 의회와 행정처럼 다수결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기
관도 아닌 사법의 소수 전문 엘리트의 지배를 권위모델만으로 정당화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법을 준수하는 시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시민들은 자신에게 유죄
판결을 선고한 세속의 법관에게 그 유죄판결의 근거를 알고 싶다고 요구할 수 있
으며 물론 당연히 요구한다
법관은 판결에서 논증을 통해 최상의 근거 제시가 이루어진 결정을 해야 한다54)
51) ldquo일부 사람들 중에는 이러한 법원의 권력기관적 성질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
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helliphellip 가끔 법관의 일을 조용한 방에서 소송서
류를 꼼꼼하게 읽어 파악한 사실에다가 법을 논리적으로 적용하는 단순히 지적(知的)인 작업이라는 시각에서만 말씀하시는 분을 만나면 그 분에게 재판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법대에 앉아 있는 법관이 어떻게 보이는지 물어보고 싶어집니다rdquo 양창수 ldquo바람직한 법관상 - 기예와 지혜 사이rdquo lt근대사법 및 한성재판소 설립 120주년 기념
1895sim2015 소통컨퍼런스 역사에 비춰 본 바람직한 법관상gt 자료집(서울중앙지방법원 2015 5 11) 15면 ldquo계획적이고 진지한 진리 탐구 활동rdquo이라는 표현은 라드브루흐에서
나온다 구스타브 라드브루흐 법철학 최종고 옮김 삼영사(2011) 238면 52) 드워킨 앞의 책 208면 53) 론 풀러 앞의 책 211면 풀러의 문장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ldquo하지만 이 경우도
위로부터의 지시 또한 목적의식에서 비롯되는 지적 활동을 완전히 생략할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rdquo54) 물론 진리 요청과 관련하여 개별 법관의 관점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며 민주국가에서
포기될 수 없는 진리 요청은 법학을 포함한 법체계 전체로 하여금 진리 요청에 어떻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5
이때 정당한 근거 제시가 이루어진 결정과 관련하여 그것이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
이라는 주장을 펼 수 있는가 앞에서 검토한 대로 켈젠의 순수법이론은 그런 주장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이에 비해 드워킨은 법적 판단에 있어서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이 원칙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ldquo정답테제rdquo로 불리는 이 주장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학자들이 지적한 대로 존재사실에 대한 주장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하나의 ldquo규제이념rdquo으로 받아들이는 게 맞는 것 같다 즉 드워킨의 정답테제
는 ldquo유일하게 정당한 결정rdquo이 존재한다는 데 대한 이론적 탐구라기보다는 실무에
서의 법관의 주관적 태도에 부합하는 이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법관은 자신의 판결활동과 관련하여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모든 사건
에서 오직 하나의 결정만이 정당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 정답에 가까이 가기 위
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55)
드워킨의 말대로 가치판단이 참일 때는 그냥 참일 수가 없으며 그것이 참인
이유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즉 충분한 논거가 존재할 때 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라면 이러한 논거지움의 과정은 자명한 공리적
토대나 그런 토대 위에서 확립된 규칙이나 원리적 서열에 따라 명확하게 밝힐 수
없다 이런 불확실한 가운데도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논거지움은 포기될 수
없다 이 끝없는 정당화 부담 때문에 켈젠은 규범의 효력 근거에 관한 논의를 가
치에 관한 논의와 절연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물론 성공하지
못했다56)
가치판단을 해야 하는 부분이 법문화에서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요소로 작용할지
아니면 그 반대로 작용할지는 판단자로서의 법관의 역량과 연관하여 논해야 할 것
이다 필자는 가치판단적 요소가 법문화에서 당연히 긍정적 요소로 작용해야 하며
게 부응하는지 묻게 한다 따라서 사법부 외부에서 행하는 사법비판의 길이 열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대해서는 노이만 앞의 강연문 참조55) 노이만 앞의 강연문56) 규범의 효력을 불명확하고 상대적인 가치가 아닌 규범에 근거짓기 위해 켈젠이 고안
한 근본규범은 사유상으로만 전제된 규범일 뿐이었다 켈젠은 가치판단을 ldquo현실의 행
위가 객관적으로 효력 있는 규범에 맞게 존재해야 하는 대로 존재한다는 판단rdquo이라고
정의함으로써 가치판단이라는 용어 자체를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Reine Rechtslehre 2 Aufl (1960) 16면 이하 또한 켈젠은 규범이 인간의 의지에 의해
제정되는 한 그 규범에 의해 형성된 가치는 어차피 자의적일 뿐이라고 주장한다(18면) 규범과 가치의 관계에 대한 켈젠의 주장에 대해서는 오세혁 ldquo켈젠의 법이론에 있어서
규범과 가치 - 규범과 가치의 상관관계를 중심으로rdquo 법철학연구 제18권 제3호(2015) 97면 이하 참조
8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또한 그렇게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57) 그런 방향에서 이제 해석의 문제를 법
관의 자기이해 문제와 연관시켜 보기로 한다
Ⅷ 해석과 법관의 자기이해
법관은 추상적인 일반규칙을 가지고 공중의 이목을 끄는 개별적인 사건을 처리
하는 사람이다 법관의 의식활동에 의해 일반규칙과 일회적인 사건 사이의 심연이
메워진다 하지만 일반성과 개별성을 결합하는 이 의식과정에 동반하는 고유한 법
학적 방법에 대해서는 앞에서 지적한 대로 확실한 합의는 없다 ldquo리걸 마인드rdquo라
는 말이 풍기는 신비스러운 분위기에는 사법적 결정이 본질적으로 투명한 것이 되기
어렵다는 암시가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다 논리적인 형태만 부여하기로 한다면
한 사건에서 서로 상반된 결론에 이른 두 개의 판결문을 작성하는 것도 불가능
하지 않다58) 방법이 논리에 기초하는 것이라면 이때 논리는 형식논리를 넘어 엥기
쉬가 표현한 대로 ldquo실질에 부합하는rdquo 논리여야 할 것이다 참된 올바른 받아들
일 수 있는 결정에 이르는 실질논리 이 실질에 도달하기까지는 결코 논리적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지적 감행과 어떤 매개가 작용한다
일반규칙을 개별사례에 적용할 때 요구되는 판단자의 능력과 관련하여 가다머
(Hans-Georg Gadamer)는 이런 견해를 밝힌 적이 있다 판단자는 자신이 이미 가
57) 이와는 달리 가치의 ldquo통약불가능성rdquo 때문에 사법은 좋음이나 옳음의 이슈에 대해 실
질적 입장을 취하는 일에 대해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가치의 통약
불가능성에 대해서는 Cass R Sunstein ldquoImcommensurability and Valuation in Lawrdquo Michigan Law Review Vol 92 No 4 (1994) 779면 이하 조홍식 교수는 ldquo가치의 통약
불가능성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이 권리인가의 문제보다 무엇이 공익인가의 문제에서
더 크다rdquo고 지적하면서 기본적으로 가치판단과 관련한 사법통치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사법통치의 정당성과 한계 제2판 박영사(2010) 240면 가치의 통약불가능성에 대한 주장은 가치판단과 관련한 해석기준의 서열화는 불가능
하다는 주장과 같은 노선에 속한다 여기서 통약불가능성 문제를 자세히 다룰 수는
없다 다만 가치의 통약불가능성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통약불가능이 비교불가능을 의미
하지는 않는다는 점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체적인 맥락이 주어지는 경우 무엇이 옳은
지 혹은 그른지에 대해 심사숙고하며 이에 따라 선택하고 그 선택 결과를 받아들인
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정도만 지적하기로 한다 58) 실제로 판사가 판결문을 두 개 써왔다고 주장한 사건에 대한 보도가 있었다 ldquo판결문을
두 개 써왔다rdquo 조선일보 2013 11 21자 기사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7
지고 있어서 적용하기만 하면 된다는 그런 의미의 규범적 실천적 ldquo지식을 소유한
사람rdquo이라기보다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 ldquo지식을 탄생시키는 상황에 직면하는
사람rdquo이라는 것이다59) 일반범주를 개별사례에 적용할 때 요구되는 이 판단력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래서 칸트(Kant)도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ldquo지성은 규칙들
을 통해 배우고 보강할 수 있는 것이지만 판단력은 특수한 재능으로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전혀 아니고 단지 숙련될 수 있을 뿐이다rdquo60)
우리는 올바른 규칙이나 원리를 알고 있지만 막상 이것을 어떤 상황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예컨대 비례성원칙이나 과잉금지원칙에 대한 지식
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은 적정해야 하고 그 수단은 목적달
성을 위해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원칙을 특수한
상황에 lsquo적용rsquo한다고 할 때에 이 원칙이 그 어떤 판단도 배제할 정도로 자족적인
지침 구실을 한다고 느끼기는 어렵다 특정 상황에서 그 수단이 과연 어느 정도일
때가 목적달성에 적정한지는 판단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실천이성의 역
할이다
단의 자리는 이론 경험 양심이 혼재된 실천의 영역이다 판단을 통한 결정이
라는 그 lsquo종국성rsquo으로 인한 실천적 성격은 법학이 다른 어떤 학문분야와도 공유
하지 않는 법학 고유의 특징이다 그래서 법학은 lsquolegal sciencersquo로 불리기보다는
실천지- prudentia-를 함의하는 lsquojurisprudencersquo로 더 자주 불리어 왔을 것이다
해석의 차원에서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도 추상적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
으로는 행위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성과 개별성을 결합하는 해석적
지식은 추상적 이론적 지식들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일반규칙이나 원리
에 근거한 이론적 패턴의 지식과 특정한 상황 내지 맥락을 고려하는 실천적 패턴
의 지식의 이중주를 이룬다 법관이 지니는 통찰력의 특성은 이론과 태도가 함께
간다는 데 있다 그래서 사법적 판단에서는 규칙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 못지않게
사람 즉 법관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사법적 통찰력의 특성은
뭐니뭐니해도 개별 사례를 다룬다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개별적인 것들은 개별적
인 방식으로만 체험되고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들은 무엇
보다도 lsquo지각rsquo과 관계된다61) 즉 그것들은 일반적 체계적 지식의 대상이라기보다
59) Hans-Georg Gadamer Wahrheit und Methode Grundzuumlge einer philosophischen Hermeneutik 3 Aufl J C B MOHR (1972) 300면
60)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 1 백종현 옮김 아카넷(2009) 374면
8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는 우선 지각의 대상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도 사법적 통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쪽은 규칙보다는 오히려 사람 즉 법관 쪽인 것이다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사건에서 법적으로 중요한 사실이 무엇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규칙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어떤 규칙이 중요한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실이 중요한지 알
아야 한다 이 인식과정에서 법관은 불확실한 가운데서 무수한 선택을 감행한다
어떤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 배척하고 어떤 사실은 인정하거나 무게를 부
여하고 신청된 증거조사의 어떤 것은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거부하고helliphellip 사실
에 대한 이 취사선택-자유심증주의-의 결과로 새로운 것이 태어난다 그리고
이것에 의해 법원을 찾아온 사람들의 운명이 갈리는 것이다
법관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필자 생각에
독일의 법철학자 아르투어 카우프만(Arthur Kaufmann)의 해석학적 방법론은 법
관의 자기이해 문제를 해석학적 지평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법관의 해석작업의
본질을 잘 설명해주는 것 같다 가다머 계통의 철학적 해석학(philosophische
Hermeneutik)의 입장을 받아들이면서62) 카우프만은 법해석행위를 통해 포괄적인
의미에서 법관 자신의 인격 중의 어떤 것이 판결에 혼입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
61)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4면 그리고 1심에서
유죄였다가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강력범죄 540건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판단자
의 감지능력 차이가 법판단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힌 김상준 무죄
결과 법 의 사실인정 경인문화사(2013) 62) 텍스트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이해에 관한 연구분야인 해석학(hermeneutics Hermeneutik)
의 어원은 신들의 전령(傳令)인 Hermes라는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설명된다 이때 신의
의도를 인간에게 전하는 과정에서 언어의 제약성 시공간적 간격 전령의 역할 등과 관
련하여 해석의 문제가 생긴다고 본다 ldquoHermeneuticsrdquo Dictionary of Biblical Interpretation Nashville (1999) 497면 독일어의 Auslegung이 해석주체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대상
으로서의 텍스트에 대한 해석을 의미한다면(객관주의) 철학적 해석학에서의 해석
(Interpretation)은 해석주체의 주관성 내지 역사성이 대상에 투사된다는 의미가 강하다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에 따르면 역사적 존재인 인간에게 있어 모든 해석과 이해는 과
거와 현재가 lsquo작용사적으로(wirkungsgeschichtlich)rsquo 중재되는 사건으로서 lsquo선이해rsquo 내지
lsquo선판단rsquo 없이는 불가능하다 가다머는 선입견으로 폄하된 선이해를 재평가하고 이를
통해 근대 이래 lsquo방법rsquo을 통한 진리발견이 주체에 의한 객체의 대상화 내지 도구화를 가져
왔다고 비판하면서 인간경험에 있어서 진리에 이르는 길은 사물의 존재가 스스로 드러
나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해석과 이해는 전승된 존재방식으로서
의 텍스트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며 이는 텍스트 자체가 지닌 역사적 지평과 해석
자의 지평이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만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해석학적 순환 이해의 전제로서의 선이해 작용사 등에 대해서는 Gadamer 앞의 책 II Grundzuumlge einer Theorie der Hermeneutischen Erfahrung 참조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9
로 법관의 결정이 올바른가의 물음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가의 물음과 직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63)
우선 카우프만은 통상적으로 회자되는 독립적인 법관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즉 법 앞에 선 법관이 일체의 정치적 사회적 개인적 영향이나 선입견들로부터 차
단된 채 순수한 객관적 인식에 따라 그 이전에는 자신이 알 수 없었던 사실관계
를 판단하고 그런 다음에 법적 판단을 한다는 식으로 이해하기를 거부한다64)
그런 법관상은 법령집은 일체 해석의 필요가 없이 거의 모든 가능한 법률문제에
대한 대답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상정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법관은 의지가
없는 존재이며 사법권력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여기는 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법에 대한 인식은 단순히 사례를 법률에 포섭시킨다는 의미의 수
동적 행위가 아니고 해석자가 해석대상에 관여하면서 함께 lsquo형성rsquo하는 것이라고
본다 카우프만은 법관의 법형성력에 대한 자신의 견해가 주관주의의 의미로 받아
들여지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는데 왜냐하면 해석자는 텍스트를 지탱하는 모든
전통과 함께 이해의 지평으로 들어간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은 서류의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ldquo아 이런 사건이구나rdquo라고 감을 잡게 되
는데 카우프만에 따르면 이는 법관 자신이 사건 경과를 관찰해서 인지했다거나
언론 등을 통해 사건에 대한 상세한 지식을 얻었다는 뜻이 아니라 유사한 사건들
을 알며 그래서 ldquo선이해(Vorurteil Vorverstaumlndnis)rdquo65)를 가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
해의 전제로서 이런 선이해가 없다면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것이 무엇에 관한 사
건인지 알 수 없고 다른 사례와 비교할 수도 없기 때문에 올바른 판단에 이른다
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66) 이 선이해에 의해 해석은 언제나 해석주체의 자기
이해 즉 자신이 lsquo잠정적rsquo 결과로서 이미 예상했던 것을 논증적으로 근거짓는 활동
이라는 의미에서 ldquo해석학적 순환rdquo 내지 ldquo해석학적 나선구조rdquo 하에 이루어진다
63)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Festschrift fuumlr Karl Peters Mohr Siebeck (1974) 144면 법관의 독립과 양심 주제와 관련한 또 다른
글로는 Kaufmann ldquoGesetz und Rechtrdquo Existenz und Ordnung Festschrift fuumlr Erik Wolf (1962) 357면 이하
64)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4면 65) 해석학적 의미에서의 lsquo선이해rsquo는 일상 언어 관용에서는 lsquo선입견rsquo이나 lsquo편견rsquo 같은 부정
적 함의를 더 많이 지니기 때문에 카우프만은 lsquoVorurteilrsquo 대신에 Vorverstaumlndnis라는 용
어를 쓰기를 권장한다(앞의 글 148면) 카우프만 외에도 이 용어의 선택은 Josef Esser Vorverstaumlndnis und Methodenwahl in der Rechtsfindung 2 Aufl (Frankfurt aM 1972)
66)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7면
90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텍스트를 이해하려는 사람은 말하자면 언제나 초벌 그림을 그리며 특정 의미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텍스트를 읽기 때문에 ldquo텍스트에서 첫 번째 의미가 지시되자
마자 전체의 의미를 lsquo예비투사한다(vorauswirft)rsquordquo67) 그리고 선이해와 관련된 이 예
비투사는-해석학적 lsquo순환rsquo에 의해-원칙적으로 끝없이 검열과정을 거친다는 것
이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도 실제 판단과정에서는 분리
되지 않는다68)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은 시간적으로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단절 관계가 아니라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정제하고 상응하는
관계에 놓인다 즉 사실에 대한 인식 없이 규범적 인식은 불가능하며 또한 규범적
관점 없이 사실만을 통한 사실 확정도 불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법률도 법관의
해석을 만나기 전에는 ldquo잠재적인 가능태로서 주어진 법률rdquo일 뿐 해석학적 순환을
통한 정제 혹은 상응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ldquo진정한 실정법rdquo이 생성된다69) 이렇
게 특정사건을 통해 구체화된 규범(구성요건)과 이 규범을 통해 정해진 사실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법관에게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들과 함께 제3의 요소로서 법관
자신의 선이해 내지 이해 포괄적으로 말하면 그의 인격적 존재가 판단에 혼입
된다
lsquo선이해rsquo는 판단자가 자신의 선이해를 의식하지 못할 때 부정적 요소를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ldquo자신의 판단은 오로지 lsquo있는 그대로다rsquo라고 말하는 즉 lsquo오로지 법
률에만 구속된다rsquo라고 말하는 법관이야말로 실은 종속된 법관이다 왜냐하면 그는
성찰되지 않은 자신의 선이해와 거리를 둘 수 없기 때문이다rdquo70) 즉 법관은 자신
67)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68) 실제 판단과정에서 사실인정과 법률적용이 따로 떨어질 수 없다는 점은 굳이 카우프
만의 이론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실무상으로는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ldquo법률
의 적용과 사실의 인정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법률문제와 결부되어 인정된다 사실의 인정이 진행됨에 따라서 재판관의 머리
속에서는 어떠한 법규를 적용할 것인가 그 법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는 전망이
점차로 서게 되며 당사자 측도 경우에 따라서는 민사인 경우 청구의 취지를 변경할
것인가를 고려하게 되고 형사인 경우 공소사실을 변경하는 경우도 생긴다 요컨대 사실
문제와 법률문제는 실제과정에서 불가분으로 결부되어 있다 helliphellip 양쪽이 불가분으로
재판관의 직관 혹은 재판관의 전인격적인 작용에 의하여 사실의 인정과 법의 적용이
행하여지고 판결 삼단논법은 실제의 심판 과정에서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rdquo(사법
연수원 법조윤리론 35면) 69) ldquo법관의 해석 작업 이전에는 어느 의미에서 진정 법도 진정한 사실도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원자재들(Rohmaterialien)로만 이것들이 존재할 뿐이다rdquo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1
의 선이해를 의식하고 자신을 이데올로기 혐의 앞에 세울 줄 알 때 올바른 판결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ldquo법관이 자신의 선이해와 종속을 의식할수록 그래서 간주
관적 합의에 노력할수록 그는 더 객관적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rdquo71) 그러므로
법관의 주관주의의 위험은 카우프만식으로 말하면 가치판단 같은 성찰적 고려와
관련된 주관적 요소를 방법상의 근거 제시의 맥락에 끌어들이는 법관의 경우보다는
오히려 모든 것이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판결의 주관적
요소를 은폐하는 법관에게서 나타나는 위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학적 순환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법관은 ldquo법률의 입rdquo이 아니라 ldquo인격
으로서 판결을 떠받친다rdquo72) 판결은 법률과 법관의 인격의 혼성물이다 그러므로
법률은 판결을 위한 필요조건이기는 하나 충분조건은 아니라고도 말할 수 있다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순환이론은 법관의 독립과 양심의 문제 차원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법결정의 올바름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
는 정도에 달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자신을 올바르
게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자신의 판단력 경험 능력 인간에 대한 태도 감
수성 명예욕 등등
카우프만의 법해석학적 순환이론이 법관의 독립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이라
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독립은 법관 스스로 관철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론적으로 카우프만의 법해석이론의 의의는 법관이 자신의 선입견을
의식하는 것이야말로 법관의 독립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설득력있게 지적
해주며 그런 방향에서 법관의 법해석 작업을 재평가했다는 데 있다고 말할 수 있
겠다
70)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71) Arthur Kaufmann ldquoDer BGH und die Sitzblockaderdquo NJW (1988) 2581면 이하72) 이 표현은 Karl Peters의 Strafprozess - Ein Lehrbuch (1966) 99면에 나오며 여기서는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9면에서 재
인용했다 이덕연 교수도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에 입각하여 ldquo법관의 법해석작
업은 단순한 lsquo인식작업rsquo이나 lsquo언어분석작업rsquo이 아니라 ldquo구체적인 반성과 자기극복의
노력 속에서 온 인격을 걸고 진행하는 lsquo이해와 실천의 수행작업rsquordquo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앞의 글 35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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Ⅸ 법관은 lsquo하는 사람rsquo인가 lsquo보는 사람rsquo인가
법관의 판단작업을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의 관점에서 주목했던 또 다른
철학자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다 그녀는 ldquo아이히만 재판rdquo을 계기로 판단의
특수한 경우로서의 판단력 문제를 연구했다73) 아렌트는 하드케이스와 연관시켜
법관의 판단력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74) 법관은 우선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을 반추하면서 판단에 임하는데 이때 판단자로서 그는 한 면으
로는 규칙에 따라 판단하라는 lsquo일반적 정의rsquo의 요구에 그리고 동시에 다른 한 면
으로는 정황에 맞게 판단하라는 lsquo개별적 정의rsquo의 요구에 처한다 이러한 상황은
아렌트에 따르면 하드케이스에서 특히 발생한다 이 이중적이고 모순적 요구 상황
을 아렌트는 법관의 판단에 적용되는 특수한 해석학 및 그 조건을 설명하는 출발
점으로 삼는다75) 하드케이스가 아닌 통상적인 사건에서는 이른바 포섭 여부를 판
단하는 것으로도 족하다 일반규칙에의 포섭 여부가 중심이 되는 이 단계에서의
판단력- lsquo규정하는 판단력(bestimmende Urteilskraft)rsquo-은 사실관계에서의 원인
이나 형식적 정의를 따지므로 일방적이고 간주관적 전제 없이도 가능하다 그래서
흔히 법관은 여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법을 해석해야 한다고 말할 때 이는
법적용을 이러한 지배적인 포섭모델에 입각하여 이해한 결과라 할 것이다 그런데
규칙으로부터 오는 어떤 어려움들 때문에 규정하는 판단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즉 포섭이 어렵거나 법흠결 시 또는 가치형량이 요구되는 하드케
이스에서는 법관은 어쩔 수 없이 앞에서 말한 모순문제를 다루어야만 한다 이때
아렌트는 법관이 사유의 확장을 통해 방법상으로 lsquo규정적 판단력rsquo을 스스로 교정
할 수 있는 lsquo성찰적 판단력rsquo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고 이 판단유형의 전환과정을
73) 법적 판단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 삼은 저술은 Hannah Arendt Eichmann in Jerusalem Ein Bericht von der Banalitaumlt des Boumlsen Erw Aufl (Muumlnchen 2001) 그리고 Hannah Arendt Das Urteilen Texte zu Kants Politischer Philosophie Hrsg v R Beiner Uumlbers v U Ludz (Muumlnchen 1998)
74) 아렌트가 염두에 둔 하드케이스는 라드브루흐가 이른바 ldquo법률적 불법rdquo 상태로 규정한
나치의 불법국가 상황으로서 이렇게 극히 예외적인 케이스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하드
케이스에 적용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별적 정의 요구에 부응함
으로써 예컨대 소급효를 금지하는 일반법률에 위배되는 상황과 유사한 갈등상황은 반
드시 극단적 상황에서만 생긴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75)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2 Bde Hrsg v U Ludz amp I Nordmann
따라서 그 척도는 전달가능성이며 거기에 딱 맞는 것은 공통감각(상식)이다rdquo77) 오
늘날 공통감각은 아렌트도 지적했듯이 더 이상 그것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얻고자 노력해야 하는 그 무엇이 되어버린 듯하다 그러나 공통감
각이 무너진 시대를 겪었던 아렌트는 사유의 전환 내지 확대를 위한 진정한 발판
을 다시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에서 구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78)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실천철학의 전통에서는 세계와의 관계 그리고 자기와의 관
계를 공통감각을 척도로 설정해가는 판단자가 lsquo하는 사람rsquo인지 아니면 lsquo보는 사람rsquo
인지 즉 lsquo행위자rsquo인지 아니면 lsquo관찰자rsquo인지를 둘러싸고 의견이 대립되어 왔다 lsquo하
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자가 lsquo정치가rsquo 쪽에 더 가깝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
자는 lsquo철학자rsquo 쪽에 더 가깝다 lsquo하는 사람rsquo은 주로 사회의 일반적 상식 건전한 인
간이해 세론(doxa)을 판단의 척도로 삼는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적 경험은 전체주
의 하에서는 건전한 인간이해도 집단화된 대중감정에 따른 오도된 인간이해 앞에
무너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판단에서 사실로서의 상식이나 합의 또는
법해석공동체 내부의 지배적 제도적 관점이라는 판단 척도만으로는 일반규칙으로
부터 오는 모순을 다루기 어렵다 여기서 판단자는 ldquo확대된 사유방식rdquo을 추구해야
하는데 아렌트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을 lsquo보는 사람rsquo의 판단과 결합시킴으로써 법
관을 위한 사유의 확대를 시도한다79) lsquo하는 사람rsquo이 사실로서의 일반적 상식이나
인간이해 차원에 비추어 판단한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ldquo이
상적 규범적 상식rdquo80)을 추구하고자 한다 판단을 거쳐 법적 효과를 결정하는 법관
76)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을 해석학적 순환이론을 적용하여 분석하면서 칸트의 판단력 비
판에 의거하여 아렌트가 판단력의 특수한 경우로서 법관의 ldquo성찰적 판단력rdquo이라는 새
로운 판단유형을 제시했다고 지적한 연구서로는 Stefanie Rosenmuumlller Der Ort des Rechts Gemeinsinn und richterliches Urteilen nach Hannah Arendt Nomos (2013) 참조
77) Hannah Arendt Das Urteilen 92-93면78) 아렌트가 판단의 차원을 심화시키는 발판으로 삼는 상식은 sensus communis로서
communis opinio와는 다르다는 데 대해서는 Marieke Borren ldquolsquoA Sense of the Worldrsquo Hannah Arendtrsquos Hermeneutic Phenomenology of Common Senserdquo International Journal of Philosophical Studies Vol 21 No 2 (2013) 225-255
79) Hannah Arendt Das Urteilen 76면80) Rosenmuumlller 앞의 책 234면 이하 여기서 아렌트는 상식개념을 이중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에서는 경험적 개념으로 보다 성찰적 판단
단계에서는 규범적 개념으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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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관찰자로서 판단하면서 동시에 행위자로서 판단에서 법적 결과를 결정하는
사람이다 관찰자인 동시에 행위자라는 이중적인 역할을 하면서 법관은 자신의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 반추한다81) 이 반추과정에서 법관은 한편으로는 포섭
하는 판단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고려해야 할 관점들을 끌어들이면서
자신의 직책을 마지막까지 수행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통제하면서 자신의 앞서의
(포섭) 판단을 정정해나간다 그래서 법관 자신이 lsquo보는 사람rsquo과 lsquo하는 사람rsquo의 만
남의 장소가 되는 것과도 같다 ldquo이 보는 사람은 모든 하는 사람 안에 자리 잡고
있다helliphellip이 비판적 판단능력이 없이는 행위자 혹은 해결자는 보는 사람으로부터
풀려나 종내는 지각되지조차 못하게 될 것이다rdquo82)
사람들은 자신 일에 있어서는 비당파적일 수는 없다 따라서 ldquo자신의 일에 대한
판단에서는 내면의 심판자 혹은 내면의 법정을 가질 수 없다rdquo83) 그러나 다른 사
람의 일을 반추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필히 비당파적이어야 하며 또 비당파적이 될
수 있다 이때 그는 비로소 내면의 심판자를 가지게 된다 즉 양심의 문제에 처하
게 되는 것이다 판단에 있어서 양심이라는 것 즉 양심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남
의 일에서 ldquo증인rdquo 혹은 ldquo비판적 친구rdquo로서 관찰하고 행위하는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이다84)
아렌트의 성찰적 판단모델은 나치 불법국가 경험의 산물이다 통상의 규칙이 파
괴된 상황 통상의 범죄유형에 포섭되지 않는 극히 예외적인 범죄적 상황에서 법
원은 기존의 판단척도를 해석학적 출발로 삼아서는 안 되고 이때에는 질적으로
동의가능한 합의형식을 찾기 위해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으로 돌아가
진정으로 사유 즉 철학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렌트가 판단을 일반화해주는
거점이자 해석학적 출발점으로 삼은 공통감각(상식) 개념은 칸트철학에서 ldquo비사교
적 사교성rdquo 개념의 위상과 비슷하다85) 이 지상에서 인간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다른 것을 원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모여 살아야만 하는 존재다 이 비사회성 요
청과 사회성 요청의 동시성 때문에 인간에게는 제도적인 안착이 더없이 중요하며
법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실존과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만든다 판단의 기
81) Leora Y Bilsky When Actor and Spectator Meet in the Courtroom Hannah Arendt and Eichmann in Jerusalem G N Arad Hg (Bloomington 1996) 137면
82) Hannah Arendt 앞의 책 85면83) Hannah Arendt 앞의 책 76면 84)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657면85) Rosenmuumlller 앞의 책 1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5
초를 보편적 인간경험에 둔다는 점에서 아렌트가 말하는 판단력은 드워킨의 헤라
클레스와 같은 초인적 천재성을 발휘하는 능력과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86) 아
렌트가 상정하는 이상적인 법관은 철학적이지만 철학자는 아니고 정치적이지만 정
치가는 아닌 사람이다
아렌트는 헌법국가의 권위도 상식개념에 기반을 두고 설명한다 그리고 민주적
정당성의 관점에서 입법의 우위를 인정하는 까닭에 성찰적 판단에 입각한 법관의
검증에는 한계가 있다는 태도를 견지한다87)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렌트가 제시한
법관의 성찰적 판단 유형에 대해서는 다양한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우선 이것이
예외 상황에서 적용되는 판단모델로 상정된 것이며 무엇보다도 ldquo규범적 상식rdquo에
대한 단일한 이해기반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법관 개인의 주관적 정치적 신념
이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길을 피할 수 없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성찰적
판단력은 결국 레토릭에 불과한 것인가 아렌트는 그러나 무엇이 ldquo특정 상황에 맞
는 공통감각(situierte Gemeinsinn)rdquo인지에 대한 공동의 인식은 가능하며 또 법관의
lsquo하는rsquo 판단에 들어있는 정치적 함의를 성찰적 판단력으로 검증하는 것도 가능하
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아렌트가 마지막 검증심급으로 원용하는 것이 바로 판
단에서의 양심의 심급이다 그것이 과연 동의할 수 있는 합의형태로서 충분한지를
스스로 검증하는 이 심급에서 판단자는 명령조로 자기에게 전해지는 소리를 듣게
된다 ldquo멈춰 나는 그것은 할 수 없어rdquo88) 판단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 멈추는 것
이 가능한 이 성찰적 심급에서는 칸트와 달리 할 수 없는 이유로써 결과도 고려
된다 lsquo보는 사람rsquo이 자기 안에서 지켜보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상황은 토마스 아퀴
나스의 양심론에 비추어 다음과 같이 묘사될 수도 있겠다 지적 본성을 가진 인간
존재가 보편법칙에 관한 지식을 개별 행위에 적용하기 위해 판단하고 선택할 때
행위자는 갈등 상황- ldquo그렇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rdquo는
상황-에 처하여 멈칫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데 이때 그는 단지 갈등하고
선택하는 역할만 하지 않고 갈등하고 선택하는 이 과정을 ldquo관찰하고 목격하는 증인rdquo
의 역할도 한다는 것89)
86) 드워킨에 의하면 해석적 탐구는 ldquo어떠한 증명도 허용치 않고 어떠한 수렴도 약속치
않는 탐구rdquo이다(드워킨 정의론 203면)87) Rosenmuumlller 앞의 책 30면88) Hannah Arendt Uumlber das Boumlse Eine Vorlesung zu Fragen der Ethik Hrsg v J Kohn
(Muumlnchen 2003) 52면89) 지적 행위자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자신의 내면의 갈등과 선택과정을 바라보는
9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Ⅹ 방법에서 덕목으로
헌법 제103조는 한 면으로는 헌법과 법률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 면으로 해석자에게 여하한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lsquo제약
의 차원rsquo과 lsquo자유의 차원rsquo을 동시에 담고 있다 법관은 자유로울 때에라도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며 법에 구속될 때에라도 전적으로 구속되지는 않는다는 뜻이
기도 하다 이 lsquo자유와 구속의 변증법rsquo에 비추어 지금까지 논한 주제에 대해 몇 가
지 입장을 정리해 보자 첫째 법관에게 있어서 독립은 확정된 원칙이나 그것자체
로서 달성해야 할 최종목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법관의 독립은 완성형이 아니라
끊임없는 진행형의 과제로서 그 직무수행에 대한 신뢰와 병행하여 점진적으로 이
루어지는 것이다 둘째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에 있어서 구속은 법률에 무조건 복종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판결에 대한 윤리 (내 ) 확신과 함께 법률에 복종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법관이 실정법률에 반하는 결정을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법
관은 객관성을 빌미로 법률 뒤에 숨는 익명적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
미하는 것이다 셋째 독립적인 법관의 양심은 lsquo법과 상충한다rsquo기보다는 lsquo법을 실
한다rsquo는 의미를 지닌다 넷째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서 반추하면서 lsquo하는
사람rsquo인 동시에 lsquo보는 사람rsquo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성찰 인 인물상으
로서만 설정될 수 있다
해석적 탐구는 우리의 이해를 넓히기 위해서 필요하지만 이해에서의 우리의 피
할 수 없는 한계를 깨닫기 위해서도 필요했는지 모른다 엥기쉬는 법해석방법론에
대한 저술의 마지막 부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ldquo방법론에 천착하다 보면
애초의 문제였던 법률로부터 훨씬 더 먼 곳으로 이끌려 간다rdquo 지금까지 필자는
법관의 법해석과 관련하여 방법론의 의의와 한계를 논하고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과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에 비추어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이 법해석론
의 불가결한 부분으로 들어가게 되는 이유도 밝혔다 그리고 해석적 차원에서의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는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행위를 목표로 하는
탐구라는 것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필자는 이 모든 논의들을 매개로 방법론이 우리를 더 멀리 덕
목론으로 데려가는 과정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드워킨의
상황에 대한 이 묘사 부분은 이경재 ldquo토마스 아퀴나스의 양심 개념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375면을 참조했다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7
헤라클레스를 잠시 불러올 필요가 있다 해석문제를 누구보다도 더 진지하게 다룬
드워킨은 마지막에 헤라클레스를 내세운다 주어진 사건에서 무엇이 법인지에
대해 도덕적 의식을 가지고 법실무 전체를 원리정합적으로 정당화하라는 요청에
부응하여 자신의 신념에 기초한 결정을 내리는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의 구성적
해석에서 법관의 양심이 기능하는 국면은 어디일까 송민경 판사는 드워킨의 구성
적 해석론에 입각하여 양심을 구체적 법논증과정의 일부로 포함시키면서 이때 양
심이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라는 지침으로 기능한다고 설명한다90)
그런데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는 지침으로 기능하는 것을 양심이라
고 보게 되면 양심의 문제는 논증적 합리성의 차원 즉 논증의 성공으로 종결짓게
된다 그러나 법적 결정의 정당성 문제는 법관의 입장에서는 논증의 성공 문제로
다루어지지만 법관의 성공적인 논증에 따른 판결의 결과로부터 영향을 받는 시민
의 입장에서 보면 성공적인 논증만으로는 해석이 정당화된다고 볼 수는 없다
성공적인 논증은 법적 결정의 정당화에 필수적이기는 하나 충분한 조건은 되지 못
한다 해석이 궁극적으로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사법적 도덕성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 사법적 도덕성은 헤라클레스가 지침으로 삼는 원리적 도덕성의 실현과는 다른
것이다 만약 패소한 시민이 다른 헤라클레스에게 갔더라면 즉 다른 법원리에 기
초한 신념을 토대로 다른 결정을 내린 다른 법관에게 갔다면 그는 승리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왜 헤라클레스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하
는지에 대한 답이 필요한 것이다91) 헤라클레스가 실무에 대한 최상의 정당화를
도모하는 법적 이상주의자라면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법원 문을 두드린 시민도
어느 의미에서 ldquo법이상주의자rdquo92)이다
법해석 작업의 주관의존성이라는 불가피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재판이라는 특수
한 공적 활동이 법관이라는 특수공직자에 의해 운영되고 유지된다는 것은 시민들
-소송에서 패한 시민들을 포함하여-편에서 보면 법을 해석하는 법관에 대한
신뢰가 전제된다는 것이다 법관의 독립적 활동은 법관의 특권 행사가 아니라 사
90) 송민경 앞의 글 38면 20면91) 사법적 덕목과 연관하여 이 부분을 다룬 글로는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5면 이하
92) 법원 문을 두드리는 시민에 대한 이 표현은 심헌섭 ldquo법조윤리의 좌표 거시적 관점에서 본 전문윤리로서의 법조윤리rdquo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편 法律家의 倫理와 責任 박영사
(2003)에 나온다
9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법과정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응당한 몫이 돌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존중하는 바탕에는 일종의 상호성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 그 또한
시민이기도 한 법관이 동료시민들에 대해 가지는 배려와 존중의 원칙이 그것이다
여기서 사법적 덕목에 대해 자세히 논할 수는 없다93) 예의 성실 신중 절제
용기 공정 겸손 의사소통 능력 형평 시민에 대한 배려와 존중 등등 이것들은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바탕을 이루는 양심의 덕목들일
것이다 양심이라는 단어가 그렇듯이 덕목이라는 단어도 오늘날 진부해진 표현
이며 거의 사라져가는 단어다 윤리적 태도로서의 덕목은 관찰하기도 배우기도
어렵다 그러나 올바른 판단과 결정이 법관이라는 개인을 거치지 않고 법령집
자체로부터 반사적으로 튀어나오지 않는 한 이 덕목들을 내면화하고 지향하려는
태도 없이는 lsquo종국적인rsquo 판단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써 필자는 헌법 제103조를 통해 법해석에서의 방법론의 문제가 덕목론이라
는 다음 과제로 이어진다는 점을 밝혔다고 생각한다
투고일 2016 4 6 심사완료일 2016 5 18 게재확정일 2016 5 20
93) 법관의 개별적인 덕목들과 이것들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는 박은정 강태경 김현섭 바람
직한 법관상의 정립과 실천 방안에 관한 연구 법원행정처(2015) 제5장 참조할 것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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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헌섭 ldquo법조윤리의 좌표 거시적 관점에서 본 전문윤리로서의 법조윤리rdquo 서울대
학교 법과대학 편 法律家의 倫理와 責任 박영사(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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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 맥코믹 로버트 서머즈 ldquo해석과 정당화(上)rdquo 박정훈 역 법철학연구 제5권 제2호
(2002) ldquo해석과 정당화(下)rdquo 박정훈 역 법철학연구 제6권 제1호(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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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Vol 92 No 4 (1994)
10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ltAbstractgt
Independence and Conscience of the Judges Based on
Interpretive Method for Article 103 of the Korean Constitution
Pak Un Jong
94)
In this paper I aim to discuss the problem of independence and conscience
of the judges as outlined in Article 103 of the Korean Constitution in the
context of the interpretive methodology
First of all this paper will look at the background in which the independence
of the judges has been institutionalized and also the problems regarding usual
explanation for conscience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And I will try to
reveal the characteristics and difficulties of the interpretive actions of the judges
especially in connection to the issue of value judgment This would require
pointing out the problems and limitations of the interpretive methodology and at
the same time defining the nature of tension embedded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namely the tension between the obligations of the judges to abide
the law versus the subjective internal demeanor of the judges This tension-
ridden condition reenacted by the demand to follow lsquogeneral justicersquo versus
lsquoindividual justicersquo appears inevitably in the process of judicial interpretation I
will examine the theories that capture this kind of tension that accompany the
interpretation process and aim to feel out the possibilities of resolving this
tension At the end I come to the conclusion that these theories can explain but
cannot resolve this tension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If so the problem
which arises from the limitations of the interpretative methodologies from the
perspective that a judgersquos final decision greatly impacts citizens becomes a
problem of judicial ethics In order to ultimately justify the interpretation of the
judges the demands of judicial ethics must be satisfied Keeping this demand in
Professor College of Law School of Law Seoul National University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103
mind I point out that the significance of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is in
its role of bridging legal methodology to virtue ethics
Keywords independence of the judges conscience of the judges interpretive
method of law value judgment judicial virtue
80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결론적으로 해석방법론으로부터 법관은 불확실성을 떨쳐 낼 수 있는 확실한 정
보제공을 기대하기 어렵다 해석논거를 위한 결정적인 기준을 제공하는 해석방법
에 대해 불안정한 형태로나마 이론적 합의를 찾기 어렵다면 엥기쉬의 지적대로
해석방법론은 공중에 떠있는 상태다40) 법학에서 방법론의 융성은 역설적으로 법
학이 이 부분에 취약하다는 암시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해석자로서의 법관을
최종적으로 인도하는 전략은 무엇일까 다음과 같은 고민을 들어보면 적어도 그것
은 방법론상의 합의에 대한 기대 같은 것은 아닌 것 같다 ldquo우리들은 일정한 결론을
내리고도 그 결론이 가장 적절sdot타당한 것이라고 보증받을 수 없다 그 결론을 낸
시점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들은 자기의 결론이 그러한 불확실성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그것을 자기의 전인격적 책임 아래 끝을 내고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비판과 평가에 맡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rdquo41)
해석방법론이 공중에 떠있는 상태라면 법관을 법률에 구속시키기 위한 방법론
적 보장책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런 가운데 ldquo자기의 전인격적 책임 아래rdquo ldquo사려
깊고 균형잡힌 총체적 관념rdquo ldquo인생 그 자체로부터 지식rdquo 등에 대한 호소를 듣는다
이것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법발견으로 불리든 법인식 혹은 법형성으
로 불리든 법적으로 올바른 결정을 이끌어낸다는 것은 순순히 lsquo앎rsquo의 문제만은 아
니라는 것이다 실천철학의 전통 용어를 빌어서 말한다면 그것은 이론지 이상의
실천지를 요구하는 활동이다 즉 법관의 해석활동은 이론지와 실천지를 결합하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이 주제로 다가가는 한 우회로로서 우선 지적 활동으로서의
법관의 해석활동의 특성에 대해 살펴보자
39) 론 풀러 법의 도덕성 박은정 옮김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2015) 314면 40) ldquo그러나 해석론 전체에 대한 확고한 이론적 토대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서열관계에
관한 모든 이론들은 여전히 공중에 떠 있다rdquo 엥기쉬 앞의 책 137면41) 사법연수원 법조윤리론(2014) 31면 그밖에 Benjamin N Cardozo The Nature of
Judicial Process Yale University Press (1921) ldquo언제 하나의 이익이 다른 이익을 능가
하는지를 묻는다면 hellip 경험과 연구와 성찰로부터 요컨대 인생 그 자체로부터 그 지식
을 얻지 않으면 안된다고 답할 수 있을 뿐이다rdquo(여기서는 법조윤리론에서 재인용) 또한 맥코믹서머즈 ldquo해석과 정당화(下)rdquo 박정훈 역 법철학연구 제6권 제1호(2003) 348면 ldquo해석은 간주관적으로 승인된 모든 법적 가치들에 대하여 사려깊고 균형잡힌
총체적 관념을 획득하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제대로 행해질
수 있다rdquo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1
Ⅵ 법관의 해석활동 실증주의의 대척점
앞에서 언급한 대로 해석에서는 무엇이 최선의 해석인가를 둘러싸고 언제나
논쟁과 불일치가 따른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누군가가 텍스트를 해석한다고
말하는 순간 그는 실증주의의 대척점에 서게 된다 실증주의과학의 의미에서는 논
쟁의 여지가 있는 것은 원칙적으로 과학일 수 없기 때문이다 법실증주의사고에서
해석 문제가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법을 근본규범에 입각
한 자기준거적인 구조로 보는 한스 켈젠(Hans Kelsen)의 순수법학이나 법적용과정
을 규칙에 의해 지도되는 과정으로 보는 하트(H L A Hart)의 분석법학에서 해석과
관련한 어려움은 다루고 있지 않다42)
켈젠은 순수법이론(Reine Rechtslehre)에서 정당한 해석만이 허용된다는 주장
은 허구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면서 해석의 건전성 문제나 정당화 문제를 법이론
안에서 다루기를 거부한다 법을 자기준거적인 것으로 보는 관점은 한마디로 해석
(행위)주체의 입장을 부정하는 것이다 켈젠은 법단계설을 바탕으로 법적용을 상위
규범의 수권에 의해 하위규범이 구체화되는 과정으로 보고 여기에 헌법의 수권을
받아 법률을 제정하는 입법자도 포함시킨다43) 이에 따라 법적용도 입법의 한 형
태로 설명된다 법관에 의한 법형성의 동기는 이를테면 입법부가 유독 다른 법률
이 아닌 이 법률을 통과시키는 동기와 같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켈젠은 판단활동
에서 인지적 요소와 의지적 요소를 엄격하게 구별하면서 법관의 판단활동을 순전
한 의지활동으로 보고 이 법관의 활동에 대해서만 (유권)해석이라는 표현을 사용
하고자 한다 그리고 법학적 해석에 대해서는 법규범의 가능한 의미들을 밝히는
것으로서 법률에 따른 결정의 범위를 제한하는 정도의 의미를 부여한다
법단계설에 따르면 상위규범이 정한 일정한 범위 안에서의 수권에 따라 하위규
범이 작용한다 이때 상위규범의 수권은 모든 세부적인 내용들에 대해서까지 정해
42) 켈젠은 순수법이론(Reine Rechtslehre) 제1판(1934) 제6장에서 해석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부분과 거의 같은 논문 ldquoZur Theorie der Interpretationrdquo이 심헌섭 젠법이론선집 법문사(1990) 97면 이하에 실려 있다 윤재왕 교수는 Reine Rechtslehre 제1판과 제2판
(1960)을 비교하면서 해석방법으로부터 오는 규범적 구속력을 일체 거부하는 켈젠의
입장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윤재왕 ldquo한스 켈젠의 법해석이론rdquo 고려법학 제74호(고려
대학교법학연구원 2014) 525면 이하 하트의 대표적인 저서 법의 개념의 색인 항목에는
lsquo해석rsquo이 빠져있다 43) Hans Kelsen Allgemeine Staatslehre (Berlin 1925) 231면 이하
8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그래서 ldquo상위단계의 법생성으로부터 하위단계의 법생
산으로의 전환은 단지 상위단계가 정해 놓은 범위를 채우는rdquo 활동으로서 이때
ldquo언제나 상위단계에는 없는 내용적 요소가 하위단계에 추가되어야만rdquo 한다44) 이
내용을 채우는 부분과 관련하여 상대적 불확실성이 생기는데 켈젠은 이 문제를
ldquo자유재량rdquo의 문제로 다룬다45) 이는 하트가 규칙의 체계로서의 법체계를 완결된
구조가 아닌 열린 구조로 봄으로써 상대적 불확실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법관의
재량사항으로 보는 것과 같다 하트의 경우 중심부와 주변부라는 극히 단순화된
이분법을 끌어들여 이 불확실성 문제를 처리하고자 했다면 켈젠의 경우는 인식작
용과 의지작용의 이분법을 끌어들임으로써 이 문제를 처리하고자 한 것이다
판결을 법관의 의지활동으로만 이해하는 입장을 취하게 되면 법관에게 결정에
대한 근거 제시 요청을 할 수 없게 된다 마치 신의 심판에 대해 근거 제시를 요구
할 수 없듯이 말이다 결국 켈젠의 법이론상으로는 해석은 법학의 문제가 아니며
그러므로 분석적 법실증주의와도 무관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46) 이런 이유에서 그
는 정당한 해석만이 허용된다는 주장이나 해석방법만으로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에
이를 수 있다는 주장을 거부하면서 심지어는 상위규범에 제시된 범위를 넘어서는
해석의 효력조차 적극적으로 인정함으로써 어느 의미에서는 해석이론의 존재기반
자체를 무너뜨린다47)
켈젠이나 하트가 법이론에서 해석의 의미를 축소한 이면에는 이분법이라는 과도
한 사유의 단순화가 놓여 있다 그러나 켈젠이 생각하는 것처럼 판단에서 인식적
요소와 의지적 요소의 확고한 경계가 유지되는지는 의문이다 또 중심부와 주변
부에 대한 하트의 주장도 지나친 단순화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어쨌거나
켈젠이 합리적인 해석방법을 추구하는 법이론의 효용가치를 한껏 떨어뜨렸다고
해서 이제 어차피 정답은 없으니 법대에 앉은 법관은 자기 임의로 무엇이든 해도
된다고 켈젠이 주장했을 리는 물론 없을 것이다 법이론의 과도한 정당성 주장을
거부하는 데서 오히려 순수법학의 비판적 잠재력을 찾을 수 있다고 보는 학자들은
여기서 켈젠이 강조한 순수화 즉 탈정치화는 법학에 관한 것이지 법 자체에 관한
44) Kelsen Allgemeine Staatslehre 243면 여기서 번역은 윤재왕 앞의 글 535-536면에서
재인용45) Kelsen 앞의 책 243면 이하46) 켈젠에 있어서 법해석은 이론상으로는 법학보다는 정치학이나 사회학에 속하는 문제
에 더 가깝다고 지적한 견해에 대해서는 론 풀러 앞의 책 312면 47) 이에 대해서는 윤재왕 앞의 글 553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3
주장이 아니었음을 상기시킨다48) 즉 법 자체는 결코 정치와 분리될 수 없다는
점에서 법실무에 대한 학문이론의 무가치성을 주장하는 순수법학은 실무의 법
적용자로 하여금 자신의 활동이 정치적 활동임을 깨닫고 책임을 느끼게 하는 계기
를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윤재왕 교수도 ldquo켈젠 해석이론의 배후rdquo로 들어가 방법
이론으로부터의 어떤 구속력도 거부되는 데서 생기는 공백을 켈젠이 법관 자신의
자기이해와 책임성 문제로 채운다고 지적한다 ldquo법관의 판결은 결코 순수한 것일
수 없으며 그런데도 자신의 판결이 순수한 인식의 소산이라고 강조한다면 이는
정치적 책임의 회피이고 동시에 이데올로기적이라는 혐의에 노출되지 않을 수
없다rdquo49) 이 문구가 켈젠 자신으로부터 나왔다면 아주 좋았을 것이다 자신의 직
무의 중요성과 책임에 대한 실천적 깨달음은 해석의 정당화를 목표로 하는 인식적
노력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켈젠의 순수법이론의 기획은 서로
붙어 있는 양면을 떼어 놓으면서 이것을 다시 붙일 수 있음을 보여주려 한 것일까
Ⅶ 법관의 해석활동 가치판단과 lsquo정답테제rsquo 문제
켈젠처럼 실증주의적 사고에 따르든 아니면 비실증주의적 사고에 따르든 가치
판단 문제에서 해석방법만으로는 하나의 정당한 결정을 도출할 수 없다고 생각한
다면 이는 해석의 차원에서 가치에 대한 이해 시도는 진리 추구와는 무관하다는
주장으로 귀결되는가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해석대상의 의미에 대한
관심과 최선의 이해에 대한 관심은 아무래도 진리 추구라는 목표를 향한다고 봐야
한다 법적 결정은 물론 법관의 권한에 속하지만 그것을 정당화해주는 원천은 법
관이라는 lsquo지위rsquo가 지니는 형식적 권한이 아니라 판결이 정당하다는 근거 제시에
있다 법판단을 정당화해주는 모델은 울프리드 노이만(Ulfrid Neumann)이 지적한
대로 권위를 통한 정당화모델보다는 진리를 통한 정당화모델에 더 가깝다50)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재판활동은 엄연히 사법권이라는 공권력의 작용이라는 점에서
독립적인 법관의 재판활동을 그 ldquo계획적이고 진지한 진리 탐구 활동rdquo적 측면 때문
48) 법학의 탈정치화를 ldquo정치적 허무주의rdquo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데 대해서는 켈젠 ldquo순수법학이란 무엇인가rdquo 젠법이론선집 280-282면
49) 윤재왕 앞의 글 559면50) 울프리드 노이만 ldquo법 진리 권위rdquo 2013 4 6 한국법철학회 강연문 참조
8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에 학문의 자유의 한 표현으로까지 보려는 것은 무리다51)
오늘날 가치상대주의 분위기는 실천적 물음에서 진리 도달가능성에 대한 회의를
과장한다 그러나 진리가 뭐냐는 빌라도의 물음에 비록 확신에 찬 대답을 못한다
하더라도 법에서 진리 내지 정당성 추구의 포기는 파국을 의미한다 국가권력
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도 진리라는 규제이념이 전제되기 때문
이다 독립된 사법부가 심급구조와 집단적 의사결정의 형태로 스스로의 시정 기구
를 가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물론 진리에 대한 주장은 잠정적이고 수정가능하다
lsquo참이냐 거짓이냐rsquo는 오로지 서술적 명제에만 한정하여 검증될 뿐이라는 협소한
학문관을 따른다면 법학은 학문 안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법
학이 그런 협소한 학문관을 받아들여야 할 필연성은 없다 법해석자는 자신의 해
석적 판단이 진리라는 주장을 무한정 내세우지는 못하면서도 진리 추구를 피할
수 없다52) 론 풀러(Lon Fuller)의 지적대로 ldquo법이론이 최고의 법적 권위를 엄격하
게 정의하는 일에 큰 비중을 두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이 점이 모호해지면 필경
전체로서의 법체계가 와해될 수 있다rdquo53)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법을 민주
주의의 언어로 설명하는 오늘날 의회와 행정처럼 다수결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기
관도 아닌 사법의 소수 전문 엘리트의 지배를 권위모델만으로 정당화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법을 준수하는 시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시민들은 자신에게 유죄
판결을 선고한 세속의 법관에게 그 유죄판결의 근거를 알고 싶다고 요구할 수 있
으며 물론 당연히 요구한다
법관은 판결에서 논증을 통해 최상의 근거 제시가 이루어진 결정을 해야 한다54)
51) ldquo일부 사람들 중에는 이러한 법원의 권력기관적 성질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
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helliphellip 가끔 법관의 일을 조용한 방에서 소송서
류를 꼼꼼하게 읽어 파악한 사실에다가 법을 논리적으로 적용하는 단순히 지적(知的)인 작업이라는 시각에서만 말씀하시는 분을 만나면 그 분에게 재판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법대에 앉아 있는 법관이 어떻게 보이는지 물어보고 싶어집니다rdquo 양창수 ldquo바람직한 법관상 - 기예와 지혜 사이rdquo lt근대사법 및 한성재판소 설립 120주년 기념
1895sim2015 소통컨퍼런스 역사에 비춰 본 바람직한 법관상gt 자료집(서울중앙지방법원 2015 5 11) 15면 ldquo계획적이고 진지한 진리 탐구 활동rdquo이라는 표현은 라드브루흐에서
나온다 구스타브 라드브루흐 법철학 최종고 옮김 삼영사(2011) 238면 52) 드워킨 앞의 책 208면 53) 론 풀러 앞의 책 211면 풀러의 문장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ldquo하지만 이 경우도
위로부터의 지시 또한 목적의식에서 비롯되는 지적 활동을 완전히 생략할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rdquo54) 물론 진리 요청과 관련하여 개별 법관의 관점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며 민주국가에서
포기될 수 없는 진리 요청은 법학을 포함한 법체계 전체로 하여금 진리 요청에 어떻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5
이때 정당한 근거 제시가 이루어진 결정과 관련하여 그것이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
이라는 주장을 펼 수 있는가 앞에서 검토한 대로 켈젠의 순수법이론은 그런 주장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이에 비해 드워킨은 법적 판단에 있어서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이 원칙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ldquo정답테제rdquo로 불리는 이 주장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학자들이 지적한 대로 존재사실에 대한 주장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하나의 ldquo규제이념rdquo으로 받아들이는 게 맞는 것 같다 즉 드워킨의 정답테제
는 ldquo유일하게 정당한 결정rdquo이 존재한다는 데 대한 이론적 탐구라기보다는 실무에
서의 법관의 주관적 태도에 부합하는 이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법관은 자신의 판결활동과 관련하여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모든 사건
에서 오직 하나의 결정만이 정당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 정답에 가까이 가기 위
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55)
드워킨의 말대로 가치판단이 참일 때는 그냥 참일 수가 없으며 그것이 참인
이유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즉 충분한 논거가 존재할 때 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라면 이러한 논거지움의 과정은 자명한 공리적
토대나 그런 토대 위에서 확립된 규칙이나 원리적 서열에 따라 명확하게 밝힐 수
없다 이런 불확실한 가운데도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논거지움은 포기될 수
없다 이 끝없는 정당화 부담 때문에 켈젠은 규범의 효력 근거에 관한 논의를 가
치에 관한 논의와 절연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물론 성공하지
못했다56)
가치판단을 해야 하는 부분이 법문화에서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요소로 작용할지
아니면 그 반대로 작용할지는 판단자로서의 법관의 역량과 연관하여 논해야 할 것
이다 필자는 가치판단적 요소가 법문화에서 당연히 긍정적 요소로 작용해야 하며
게 부응하는지 묻게 한다 따라서 사법부 외부에서 행하는 사법비판의 길이 열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대해서는 노이만 앞의 강연문 참조55) 노이만 앞의 강연문56) 규범의 효력을 불명확하고 상대적인 가치가 아닌 규범에 근거짓기 위해 켈젠이 고안
한 근본규범은 사유상으로만 전제된 규범일 뿐이었다 켈젠은 가치판단을 ldquo현실의 행
위가 객관적으로 효력 있는 규범에 맞게 존재해야 하는 대로 존재한다는 판단rdquo이라고
정의함으로써 가치판단이라는 용어 자체를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Reine Rechtslehre 2 Aufl (1960) 16면 이하 또한 켈젠은 규범이 인간의 의지에 의해
제정되는 한 그 규범에 의해 형성된 가치는 어차피 자의적일 뿐이라고 주장한다(18면) 규범과 가치의 관계에 대한 켈젠의 주장에 대해서는 오세혁 ldquo켈젠의 법이론에 있어서
규범과 가치 - 규범과 가치의 상관관계를 중심으로rdquo 법철학연구 제18권 제3호(2015) 97면 이하 참조
8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또한 그렇게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57) 그런 방향에서 이제 해석의 문제를 법
관의 자기이해 문제와 연관시켜 보기로 한다
Ⅷ 해석과 법관의 자기이해
법관은 추상적인 일반규칙을 가지고 공중의 이목을 끄는 개별적인 사건을 처리
하는 사람이다 법관의 의식활동에 의해 일반규칙과 일회적인 사건 사이의 심연이
메워진다 하지만 일반성과 개별성을 결합하는 이 의식과정에 동반하는 고유한 법
학적 방법에 대해서는 앞에서 지적한 대로 확실한 합의는 없다 ldquo리걸 마인드rdquo라
는 말이 풍기는 신비스러운 분위기에는 사법적 결정이 본질적으로 투명한 것이 되기
어렵다는 암시가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다 논리적인 형태만 부여하기로 한다면
한 사건에서 서로 상반된 결론에 이른 두 개의 판결문을 작성하는 것도 불가능
하지 않다58) 방법이 논리에 기초하는 것이라면 이때 논리는 형식논리를 넘어 엥기
쉬가 표현한 대로 ldquo실질에 부합하는rdquo 논리여야 할 것이다 참된 올바른 받아들
일 수 있는 결정에 이르는 실질논리 이 실질에 도달하기까지는 결코 논리적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지적 감행과 어떤 매개가 작용한다
일반규칙을 개별사례에 적용할 때 요구되는 판단자의 능력과 관련하여 가다머
(Hans-Georg Gadamer)는 이런 견해를 밝힌 적이 있다 판단자는 자신이 이미 가
57) 이와는 달리 가치의 ldquo통약불가능성rdquo 때문에 사법은 좋음이나 옳음의 이슈에 대해 실
질적 입장을 취하는 일에 대해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가치의 통약
불가능성에 대해서는 Cass R Sunstein ldquoImcommensurability and Valuation in Lawrdquo Michigan Law Review Vol 92 No 4 (1994) 779면 이하 조홍식 교수는 ldquo가치의 통약
불가능성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이 권리인가의 문제보다 무엇이 공익인가의 문제에서
더 크다rdquo고 지적하면서 기본적으로 가치판단과 관련한 사법통치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사법통치의 정당성과 한계 제2판 박영사(2010) 240면 가치의 통약불가능성에 대한 주장은 가치판단과 관련한 해석기준의 서열화는 불가능
하다는 주장과 같은 노선에 속한다 여기서 통약불가능성 문제를 자세히 다룰 수는
없다 다만 가치의 통약불가능성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통약불가능이 비교불가능을 의미
하지는 않는다는 점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체적인 맥락이 주어지는 경우 무엇이 옳은
지 혹은 그른지에 대해 심사숙고하며 이에 따라 선택하고 그 선택 결과를 받아들인
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정도만 지적하기로 한다 58) 실제로 판사가 판결문을 두 개 써왔다고 주장한 사건에 대한 보도가 있었다 ldquo판결문을
두 개 써왔다rdquo 조선일보 2013 11 21자 기사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7
지고 있어서 적용하기만 하면 된다는 그런 의미의 규범적 실천적 ldquo지식을 소유한
사람rdquo이라기보다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 ldquo지식을 탄생시키는 상황에 직면하는
사람rdquo이라는 것이다59) 일반범주를 개별사례에 적용할 때 요구되는 이 판단력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래서 칸트(Kant)도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ldquo지성은 규칙들
을 통해 배우고 보강할 수 있는 것이지만 판단력은 특수한 재능으로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전혀 아니고 단지 숙련될 수 있을 뿐이다rdquo60)
우리는 올바른 규칙이나 원리를 알고 있지만 막상 이것을 어떤 상황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예컨대 비례성원칙이나 과잉금지원칙에 대한 지식
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은 적정해야 하고 그 수단은 목적달
성을 위해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원칙을 특수한
상황에 lsquo적용rsquo한다고 할 때에 이 원칙이 그 어떤 판단도 배제할 정도로 자족적인
지침 구실을 한다고 느끼기는 어렵다 특정 상황에서 그 수단이 과연 어느 정도일
때가 목적달성에 적정한지는 판단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실천이성의 역
할이다
단의 자리는 이론 경험 양심이 혼재된 실천의 영역이다 판단을 통한 결정이
라는 그 lsquo종국성rsquo으로 인한 실천적 성격은 법학이 다른 어떤 학문분야와도 공유
하지 않는 법학 고유의 특징이다 그래서 법학은 lsquolegal sciencersquo로 불리기보다는
실천지- prudentia-를 함의하는 lsquojurisprudencersquo로 더 자주 불리어 왔을 것이다
해석의 차원에서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도 추상적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
으로는 행위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성과 개별성을 결합하는 해석적
지식은 추상적 이론적 지식들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일반규칙이나 원리
에 근거한 이론적 패턴의 지식과 특정한 상황 내지 맥락을 고려하는 실천적 패턴
의 지식의 이중주를 이룬다 법관이 지니는 통찰력의 특성은 이론과 태도가 함께
간다는 데 있다 그래서 사법적 판단에서는 규칙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 못지않게
사람 즉 법관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사법적 통찰력의 특성은
뭐니뭐니해도 개별 사례를 다룬다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개별적인 것들은 개별적
인 방식으로만 체험되고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들은 무엇
보다도 lsquo지각rsquo과 관계된다61) 즉 그것들은 일반적 체계적 지식의 대상이라기보다
59) Hans-Georg Gadamer Wahrheit und Methode Grundzuumlge einer philosophischen Hermeneutik 3 Aufl J C B MOHR (1972) 300면
60)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 1 백종현 옮김 아카넷(2009) 374면
8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는 우선 지각의 대상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도 사법적 통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쪽은 규칙보다는 오히려 사람 즉 법관 쪽인 것이다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사건에서 법적으로 중요한 사실이 무엇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규칙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어떤 규칙이 중요한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실이 중요한지 알
아야 한다 이 인식과정에서 법관은 불확실한 가운데서 무수한 선택을 감행한다
어떤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 배척하고 어떤 사실은 인정하거나 무게를 부
여하고 신청된 증거조사의 어떤 것은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거부하고helliphellip 사실
에 대한 이 취사선택-자유심증주의-의 결과로 새로운 것이 태어난다 그리고
이것에 의해 법원을 찾아온 사람들의 운명이 갈리는 것이다
법관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필자 생각에
독일의 법철학자 아르투어 카우프만(Arthur Kaufmann)의 해석학적 방법론은 법
관의 자기이해 문제를 해석학적 지평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법관의 해석작업의
본질을 잘 설명해주는 것 같다 가다머 계통의 철학적 해석학(philosophische
Hermeneutik)의 입장을 받아들이면서62) 카우프만은 법해석행위를 통해 포괄적인
의미에서 법관 자신의 인격 중의 어떤 것이 판결에 혼입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
61)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4면 그리고 1심에서
유죄였다가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강력범죄 540건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판단자
의 감지능력 차이가 법판단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힌 김상준 무죄
결과 법 의 사실인정 경인문화사(2013) 62) 텍스트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이해에 관한 연구분야인 해석학(hermeneutics Hermeneutik)
의 어원은 신들의 전령(傳令)인 Hermes라는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설명된다 이때 신의
의도를 인간에게 전하는 과정에서 언어의 제약성 시공간적 간격 전령의 역할 등과 관
련하여 해석의 문제가 생긴다고 본다 ldquoHermeneuticsrdquo Dictionary of Biblical Interpretation Nashville (1999) 497면 독일어의 Auslegung이 해석주체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대상
으로서의 텍스트에 대한 해석을 의미한다면(객관주의) 철학적 해석학에서의 해석
(Interpretation)은 해석주체의 주관성 내지 역사성이 대상에 투사된다는 의미가 강하다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에 따르면 역사적 존재인 인간에게 있어 모든 해석과 이해는 과
거와 현재가 lsquo작용사적으로(wirkungsgeschichtlich)rsquo 중재되는 사건으로서 lsquo선이해rsquo 내지
lsquo선판단rsquo 없이는 불가능하다 가다머는 선입견으로 폄하된 선이해를 재평가하고 이를
통해 근대 이래 lsquo방법rsquo을 통한 진리발견이 주체에 의한 객체의 대상화 내지 도구화를 가져
왔다고 비판하면서 인간경험에 있어서 진리에 이르는 길은 사물의 존재가 스스로 드러
나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해석과 이해는 전승된 존재방식으로서
의 텍스트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며 이는 텍스트 자체가 지닌 역사적 지평과 해석
자의 지평이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만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해석학적 순환 이해의 전제로서의 선이해 작용사 등에 대해서는 Gadamer 앞의 책 II Grundzuumlge einer Theorie der Hermeneutischen Erfahrung 참조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9
로 법관의 결정이 올바른가의 물음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가의 물음과 직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63)
우선 카우프만은 통상적으로 회자되는 독립적인 법관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즉 법 앞에 선 법관이 일체의 정치적 사회적 개인적 영향이나 선입견들로부터 차
단된 채 순수한 객관적 인식에 따라 그 이전에는 자신이 알 수 없었던 사실관계
를 판단하고 그런 다음에 법적 판단을 한다는 식으로 이해하기를 거부한다64)
그런 법관상은 법령집은 일체 해석의 필요가 없이 거의 모든 가능한 법률문제에
대한 대답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상정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법관은 의지가
없는 존재이며 사법권력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여기는 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법에 대한 인식은 단순히 사례를 법률에 포섭시킨다는 의미의 수
동적 행위가 아니고 해석자가 해석대상에 관여하면서 함께 lsquo형성rsquo하는 것이라고
본다 카우프만은 법관의 법형성력에 대한 자신의 견해가 주관주의의 의미로 받아
들여지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는데 왜냐하면 해석자는 텍스트를 지탱하는 모든
전통과 함께 이해의 지평으로 들어간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은 서류의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ldquo아 이런 사건이구나rdquo라고 감을 잡게 되
는데 카우프만에 따르면 이는 법관 자신이 사건 경과를 관찰해서 인지했다거나
언론 등을 통해 사건에 대한 상세한 지식을 얻었다는 뜻이 아니라 유사한 사건들
을 알며 그래서 ldquo선이해(Vorurteil Vorverstaumlndnis)rdquo65)를 가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
해의 전제로서 이런 선이해가 없다면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것이 무엇에 관한 사
건인지 알 수 없고 다른 사례와 비교할 수도 없기 때문에 올바른 판단에 이른다
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66) 이 선이해에 의해 해석은 언제나 해석주체의 자기
이해 즉 자신이 lsquo잠정적rsquo 결과로서 이미 예상했던 것을 논증적으로 근거짓는 활동
이라는 의미에서 ldquo해석학적 순환rdquo 내지 ldquo해석학적 나선구조rdquo 하에 이루어진다
63)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Festschrift fuumlr Karl Peters Mohr Siebeck (1974) 144면 법관의 독립과 양심 주제와 관련한 또 다른
글로는 Kaufmann ldquoGesetz und Rechtrdquo Existenz und Ordnung Festschrift fuumlr Erik Wolf (1962) 357면 이하
64)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4면 65) 해석학적 의미에서의 lsquo선이해rsquo는 일상 언어 관용에서는 lsquo선입견rsquo이나 lsquo편견rsquo 같은 부정
적 함의를 더 많이 지니기 때문에 카우프만은 lsquoVorurteilrsquo 대신에 Vorverstaumlndnis라는 용
어를 쓰기를 권장한다(앞의 글 148면) 카우프만 외에도 이 용어의 선택은 Josef Esser Vorverstaumlndnis und Methodenwahl in der Rechtsfindung 2 Aufl (Frankfurt aM 1972)
66)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7면
90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텍스트를 이해하려는 사람은 말하자면 언제나 초벌 그림을 그리며 특정 의미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텍스트를 읽기 때문에 ldquo텍스트에서 첫 번째 의미가 지시되자
마자 전체의 의미를 lsquo예비투사한다(vorauswirft)rsquordquo67) 그리고 선이해와 관련된 이 예
비투사는-해석학적 lsquo순환rsquo에 의해-원칙적으로 끝없이 검열과정을 거친다는 것
이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도 실제 판단과정에서는 분리
되지 않는다68)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은 시간적으로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단절 관계가 아니라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정제하고 상응하는
관계에 놓인다 즉 사실에 대한 인식 없이 규범적 인식은 불가능하며 또한 규범적
관점 없이 사실만을 통한 사실 확정도 불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법률도 법관의
해석을 만나기 전에는 ldquo잠재적인 가능태로서 주어진 법률rdquo일 뿐 해석학적 순환을
통한 정제 혹은 상응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ldquo진정한 실정법rdquo이 생성된다69) 이렇
게 특정사건을 통해 구체화된 규범(구성요건)과 이 규범을 통해 정해진 사실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법관에게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들과 함께 제3의 요소로서 법관
자신의 선이해 내지 이해 포괄적으로 말하면 그의 인격적 존재가 판단에 혼입
된다
lsquo선이해rsquo는 판단자가 자신의 선이해를 의식하지 못할 때 부정적 요소를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ldquo자신의 판단은 오로지 lsquo있는 그대로다rsquo라고 말하는 즉 lsquo오로지 법
률에만 구속된다rsquo라고 말하는 법관이야말로 실은 종속된 법관이다 왜냐하면 그는
성찰되지 않은 자신의 선이해와 거리를 둘 수 없기 때문이다rdquo70) 즉 법관은 자신
67)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68) 실제 판단과정에서 사실인정과 법률적용이 따로 떨어질 수 없다는 점은 굳이 카우프
만의 이론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실무상으로는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ldquo법률
의 적용과 사실의 인정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법률문제와 결부되어 인정된다 사실의 인정이 진행됨에 따라서 재판관의 머리
속에서는 어떠한 법규를 적용할 것인가 그 법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는 전망이
점차로 서게 되며 당사자 측도 경우에 따라서는 민사인 경우 청구의 취지를 변경할
것인가를 고려하게 되고 형사인 경우 공소사실을 변경하는 경우도 생긴다 요컨대 사실
문제와 법률문제는 실제과정에서 불가분으로 결부되어 있다 helliphellip 양쪽이 불가분으로
재판관의 직관 혹은 재판관의 전인격적인 작용에 의하여 사실의 인정과 법의 적용이
행하여지고 판결 삼단논법은 실제의 심판 과정에서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rdquo(사법
연수원 법조윤리론 35면) 69) ldquo법관의 해석 작업 이전에는 어느 의미에서 진정 법도 진정한 사실도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원자재들(Rohmaterialien)로만 이것들이 존재할 뿐이다rdquo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1
의 선이해를 의식하고 자신을 이데올로기 혐의 앞에 세울 줄 알 때 올바른 판결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ldquo법관이 자신의 선이해와 종속을 의식할수록 그래서 간주
관적 합의에 노력할수록 그는 더 객관적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rdquo71) 그러므로
법관의 주관주의의 위험은 카우프만식으로 말하면 가치판단 같은 성찰적 고려와
관련된 주관적 요소를 방법상의 근거 제시의 맥락에 끌어들이는 법관의 경우보다는
오히려 모든 것이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판결의 주관적
요소를 은폐하는 법관에게서 나타나는 위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학적 순환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법관은 ldquo법률의 입rdquo이 아니라 ldquo인격
으로서 판결을 떠받친다rdquo72) 판결은 법률과 법관의 인격의 혼성물이다 그러므로
법률은 판결을 위한 필요조건이기는 하나 충분조건은 아니라고도 말할 수 있다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순환이론은 법관의 독립과 양심의 문제 차원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법결정의 올바름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
는 정도에 달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자신을 올바르
게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자신의 판단력 경험 능력 인간에 대한 태도 감
수성 명예욕 등등
카우프만의 법해석학적 순환이론이 법관의 독립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이라
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독립은 법관 스스로 관철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론적으로 카우프만의 법해석이론의 의의는 법관이 자신의 선입견을
의식하는 것이야말로 법관의 독립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설득력있게 지적
해주며 그런 방향에서 법관의 법해석 작업을 재평가했다는 데 있다고 말할 수 있
겠다
70)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71) Arthur Kaufmann ldquoDer BGH und die Sitzblockaderdquo NJW (1988) 2581면 이하72) 이 표현은 Karl Peters의 Strafprozess - Ein Lehrbuch (1966) 99면에 나오며 여기서는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9면에서 재
인용했다 이덕연 교수도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에 입각하여 ldquo법관의 법해석작
업은 단순한 lsquo인식작업rsquo이나 lsquo언어분석작업rsquo이 아니라 ldquo구체적인 반성과 자기극복의
노력 속에서 온 인격을 걸고 진행하는 lsquo이해와 실천의 수행작업rsquordquo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앞의 글 352면)
9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Ⅸ 법관은 lsquo하는 사람rsquo인가 lsquo보는 사람rsquo인가
법관의 판단작업을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의 관점에서 주목했던 또 다른
철학자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다 그녀는 ldquo아이히만 재판rdquo을 계기로 판단의
특수한 경우로서의 판단력 문제를 연구했다73) 아렌트는 하드케이스와 연관시켜
법관의 판단력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74) 법관은 우선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을 반추하면서 판단에 임하는데 이때 판단자로서 그는 한 면으
로는 규칙에 따라 판단하라는 lsquo일반적 정의rsquo의 요구에 그리고 동시에 다른 한 면
으로는 정황에 맞게 판단하라는 lsquo개별적 정의rsquo의 요구에 처한다 이러한 상황은
아렌트에 따르면 하드케이스에서 특히 발생한다 이 이중적이고 모순적 요구 상황
을 아렌트는 법관의 판단에 적용되는 특수한 해석학 및 그 조건을 설명하는 출발
점으로 삼는다75) 하드케이스가 아닌 통상적인 사건에서는 이른바 포섭 여부를 판
단하는 것으로도 족하다 일반규칙에의 포섭 여부가 중심이 되는 이 단계에서의
판단력- lsquo규정하는 판단력(bestimmende Urteilskraft)rsquo-은 사실관계에서의 원인
이나 형식적 정의를 따지므로 일방적이고 간주관적 전제 없이도 가능하다 그래서
흔히 법관은 여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법을 해석해야 한다고 말할 때 이는
법적용을 이러한 지배적인 포섭모델에 입각하여 이해한 결과라 할 것이다 그런데
규칙으로부터 오는 어떤 어려움들 때문에 규정하는 판단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즉 포섭이 어렵거나 법흠결 시 또는 가치형량이 요구되는 하드케
이스에서는 법관은 어쩔 수 없이 앞에서 말한 모순문제를 다루어야만 한다 이때
아렌트는 법관이 사유의 확장을 통해 방법상으로 lsquo규정적 판단력rsquo을 스스로 교정
할 수 있는 lsquo성찰적 판단력rsquo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고 이 판단유형의 전환과정을
73) 법적 판단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 삼은 저술은 Hannah Arendt Eichmann in Jerusalem Ein Bericht von der Banalitaumlt des Boumlsen Erw Aufl (Muumlnchen 2001) 그리고 Hannah Arendt Das Urteilen Texte zu Kants Politischer Philosophie Hrsg v R Beiner Uumlbers v U Ludz (Muumlnchen 1998)
74) 아렌트가 염두에 둔 하드케이스는 라드브루흐가 이른바 ldquo법률적 불법rdquo 상태로 규정한
나치의 불법국가 상황으로서 이렇게 극히 예외적인 케이스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하드
케이스에 적용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별적 정의 요구에 부응함
으로써 예컨대 소급효를 금지하는 일반법률에 위배되는 상황과 유사한 갈등상황은 반
드시 극단적 상황에서만 생긴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75)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2 Bde Hrsg v U Ludz amp I Nordmann
따라서 그 척도는 전달가능성이며 거기에 딱 맞는 것은 공통감각(상식)이다rdquo77) 오
늘날 공통감각은 아렌트도 지적했듯이 더 이상 그것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얻고자 노력해야 하는 그 무엇이 되어버린 듯하다 그러나 공통감
각이 무너진 시대를 겪었던 아렌트는 사유의 전환 내지 확대를 위한 진정한 발판
을 다시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에서 구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78)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실천철학의 전통에서는 세계와의 관계 그리고 자기와의 관
계를 공통감각을 척도로 설정해가는 판단자가 lsquo하는 사람rsquo인지 아니면 lsquo보는 사람rsquo
인지 즉 lsquo행위자rsquo인지 아니면 lsquo관찰자rsquo인지를 둘러싸고 의견이 대립되어 왔다 lsquo하
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자가 lsquo정치가rsquo 쪽에 더 가깝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
자는 lsquo철학자rsquo 쪽에 더 가깝다 lsquo하는 사람rsquo은 주로 사회의 일반적 상식 건전한 인
간이해 세론(doxa)을 판단의 척도로 삼는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적 경험은 전체주
의 하에서는 건전한 인간이해도 집단화된 대중감정에 따른 오도된 인간이해 앞에
무너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판단에서 사실로서의 상식이나 합의 또는
법해석공동체 내부의 지배적 제도적 관점이라는 판단 척도만으로는 일반규칙으로
부터 오는 모순을 다루기 어렵다 여기서 판단자는 ldquo확대된 사유방식rdquo을 추구해야
하는데 아렌트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을 lsquo보는 사람rsquo의 판단과 결합시킴으로써 법
관을 위한 사유의 확대를 시도한다79) lsquo하는 사람rsquo이 사실로서의 일반적 상식이나
인간이해 차원에 비추어 판단한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ldquo이
상적 규범적 상식rdquo80)을 추구하고자 한다 판단을 거쳐 법적 효과를 결정하는 법관
76)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을 해석학적 순환이론을 적용하여 분석하면서 칸트의 판단력 비
판에 의거하여 아렌트가 판단력의 특수한 경우로서 법관의 ldquo성찰적 판단력rdquo이라는 새
로운 판단유형을 제시했다고 지적한 연구서로는 Stefanie Rosenmuumlller Der Ort des Rechts Gemeinsinn und richterliches Urteilen nach Hannah Arendt Nomos (2013) 참조
77) Hannah Arendt Das Urteilen 92-93면78) 아렌트가 판단의 차원을 심화시키는 발판으로 삼는 상식은 sensus communis로서
communis opinio와는 다르다는 데 대해서는 Marieke Borren ldquolsquoA Sense of the Worldrsquo Hannah Arendtrsquos Hermeneutic Phenomenology of Common Senserdquo International Journal of Philosophical Studies Vol 21 No 2 (2013) 225-255
79) Hannah Arendt Das Urteilen 76면80) Rosenmuumlller 앞의 책 234면 이하 여기서 아렌트는 상식개념을 이중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에서는 경험적 개념으로 보다 성찰적 판단
단계에서는 규범적 개념으로 사용한다
9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은 관찰자로서 판단하면서 동시에 행위자로서 판단에서 법적 결과를 결정하는
사람이다 관찰자인 동시에 행위자라는 이중적인 역할을 하면서 법관은 자신의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 반추한다81) 이 반추과정에서 법관은 한편으로는 포섭
하는 판단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고려해야 할 관점들을 끌어들이면서
자신의 직책을 마지막까지 수행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통제하면서 자신의 앞서의
(포섭) 판단을 정정해나간다 그래서 법관 자신이 lsquo보는 사람rsquo과 lsquo하는 사람rsquo의 만
남의 장소가 되는 것과도 같다 ldquo이 보는 사람은 모든 하는 사람 안에 자리 잡고
있다helliphellip이 비판적 판단능력이 없이는 행위자 혹은 해결자는 보는 사람으로부터
풀려나 종내는 지각되지조차 못하게 될 것이다rdquo82)
사람들은 자신 일에 있어서는 비당파적일 수는 없다 따라서 ldquo자신의 일에 대한
판단에서는 내면의 심판자 혹은 내면의 법정을 가질 수 없다rdquo83) 그러나 다른 사
람의 일을 반추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필히 비당파적이어야 하며 또 비당파적이 될
수 있다 이때 그는 비로소 내면의 심판자를 가지게 된다 즉 양심의 문제에 처하
게 되는 것이다 판단에 있어서 양심이라는 것 즉 양심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남
의 일에서 ldquo증인rdquo 혹은 ldquo비판적 친구rdquo로서 관찰하고 행위하는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이다84)
아렌트의 성찰적 판단모델은 나치 불법국가 경험의 산물이다 통상의 규칙이 파
괴된 상황 통상의 범죄유형에 포섭되지 않는 극히 예외적인 범죄적 상황에서 법
원은 기존의 판단척도를 해석학적 출발로 삼아서는 안 되고 이때에는 질적으로
동의가능한 합의형식을 찾기 위해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으로 돌아가
진정으로 사유 즉 철학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렌트가 판단을 일반화해주는
거점이자 해석학적 출발점으로 삼은 공통감각(상식) 개념은 칸트철학에서 ldquo비사교
적 사교성rdquo 개념의 위상과 비슷하다85) 이 지상에서 인간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다른 것을 원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모여 살아야만 하는 존재다 이 비사회성 요
청과 사회성 요청의 동시성 때문에 인간에게는 제도적인 안착이 더없이 중요하며
법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실존과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만든다 판단의 기
81) Leora Y Bilsky When Actor and Spectator Meet in the Courtroom Hannah Arendt and Eichmann in Jerusalem G N Arad Hg (Bloomington 1996) 137면
82) Hannah Arendt 앞의 책 85면83) Hannah Arendt 앞의 책 76면 84)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657면85) Rosenmuumlller 앞의 책 1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5
초를 보편적 인간경험에 둔다는 점에서 아렌트가 말하는 판단력은 드워킨의 헤라
클레스와 같은 초인적 천재성을 발휘하는 능력과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86) 아
렌트가 상정하는 이상적인 법관은 철학적이지만 철학자는 아니고 정치적이지만 정
치가는 아닌 사람이다
아렌트는 헌법국가의 권위도 상식개념에 기반을 두고 설명한다 그리고 민주적
정당성의 관점에서 입법의 우위를 인정하는 까닭에 성찰적 판단에 입각한 법관의
검증에는 한계가 있다는 태도를 견지한다87)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렌트가 제시한
법관의 성찰적 판단 유형에 대해서는 다양한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우선 이것이
예외 상황에서 적용되는 판단모델로 상정된 것이며 무엇보다도 ldquo규범적 상식rdquo에
대한 단일한 이해기반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법관 개인의 주관적 정치적 신념
이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길을 피할 수 없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성찰적
판단력은 결국 레토릭에 불과한 것인가 아렌트는 그러나 무엇이 ldquo특정 상황에 맞
는 공통감각(situierte Gemeinsinn)rdquo인지에 대한 공동의 인식은 가능하며 또 법관의
lsquo하는rsquo 판단에 들어있는 정치적 함의를 성찰적 판단력으로 검증하는 것도 가능하
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아렌트가 마지막 검증심급으로 원용하는 것이 바로 판
단에서의 양심의 심급이다 그것이 과연 동의할 수 있는 합의형태로서 충분한지를
스스로 검증하는 이 심급에서 판단자는 명령조로 자기에게 전해지는 소리를 듣게
된다 ldquo멈춰 나는 그것은 할 수 없어rdquo88) 판단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 멈추는 것
이 가능한 이 성찰적 심급에서는 칸트와 달리 할 수 없는 이유로써 결과도 고려
된다 lsquo보는 사람rsquo이 자기 안에서 지켜보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상황은 토마스 아퀴
나스의 양심론에 비추어 다음과 같이 묘사될 수도 있겠다 지적 본성을 가진 인간
존재가 보편법칙에 관한 지식을 개별 행위에 적용하기 위해 판단하고 선택할 때
행위자는 갈등 상황- ldquo그렇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rdquo는
상황-에 처하여 멈칫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데 이때 그는 단지 갈등하고
선택하는 역할만 하지 않고 갈등하고 선택하는 이 과정을 ldquo관찰하고 목격하는 증인rdquo
의 역할도 한다는 것89)
86) 드워킨에 의하면 해석적 탐구는 ldquo어떠한 증명도 허용치 않고 어떠한 수렴도 약속치
않는 탐구rdquo이다(드워킨 정의론 203면)87) Rosenmuumlller 앞의 책 30면88) Hannah Arendt Uumlber das Boumlse Eine Vorlesung zu Fragen der Ethik Hrsg v J Kohn
(Muumlnchen 2003) 52면89) 지적 행위자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자신의 내면의 갈등과 선택과정을 바라보는
9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Ⅹ 방법에서 덕목으로
헌법 제103조는 한 면으로는 헌법과 법률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 면으로 해석자에게 여하한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lsquo제약
의 차원rsquo과 lsquo자유의 차원rsquo을 동시에 담고 있다 법관은 자유로울 때에라도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며 법에 구속될 때에라도 전적으로 구속되지는 않는다는 뜻이
기도 하다 이 lsquo자유와 구속의 변증법rsquo에 비추어 지금까지 논한 주제에 대해 몇 가
지 입장을 정리해 보자 첫째 법관에게 있어서 독립은 확정된 원칙이나 그것자체
로서 달성해야 할 최종목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법관의 독립은 완성형이 아니라
끊임없는 진행형의 과제로서 그 직무수행에 대한 신뢰와 병행하여 점진적으로 이
루어지는 것이다 둘째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에 있어서 구속은 법률에 무조건 복종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판결에 대한 윤리 (내 ) 확신과 함께 법률에 복종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법관이 실정법률에 반하는 결정을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법
관은 객관성을 빌미로 법률 뒤에 숨는 익명적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
미하는 것이다 셋째 독립적인 법관의 양심은 lsquo법과 상충한다rsquo기보다는 lsquo법을 실
한다rsquo는 의미를 지닌다 넷째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서 반추하면서 lsquo하는
사람rsquo인 동시에 lsquo보는 사람rsquo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성찰 인 인물상으
로서만 설정될 수 있다
해석적 탐구는 우리의 이해를 넓히기 위해서 필요하지만 이해에서의 우리의 피
할 수 없는 한계를 깨닫기 위해서도 필요했는지 모른다 엥기쉬는 법해석방법론에
대한 저술의 마지막 부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ldquo방법론에 천착하다 보면
애초의 문제였던 법률로부터 훨씬 더 먼 곳으로 이끌려 간다rdquo 지금까지 필자는
법관의 법해석과 관련하여 방법론의 의의와 한계를 논하고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과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에 비추어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이 법해석론
의 불가결한 부분으로 들어가게 되는 이유도 밝혔다 그리고 해석적 차원에서의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는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행위를 목표로 하는
탐구라는 것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필자는 이 모든 논의들을 매개로 방법론이 우리를 더 멀리 덕
목론으로 데려가는 과정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드워킨의
상황에 대한 이 묘사 부분은 이경재 ldquo토마스 아퀴나스의 양심 개념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375면을 참조했다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7
헤라클레스를 잠시 불러올 필요가 있다 해석문제를 누구보다도 더 진지하게 다룬
드워킨은 마지막에 헤라클레스를 내세운다 주어진 사건에서 무엇이 법인지에
대해 도덕적 의식을 가지고 법실무 전체를 원리정합적으로 정당화하라는 요청에
부응하여 자신의 신념에 기초한 결정을 내리는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의 구성적
해석에서 법관의 양심이 기능하는 국면은 어디일까 송민경 판사는 드워킨의 구성
적 해석론에 입각하여 양심을 구체적 법논증과정의 일부로 포함시키면서 이때 양
심이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라는 지침으로 기능한다고 설명한다90)
그런데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는 지침으로 기능하는 것을 양심이라
고 보게 되면 양심의 문제는 논증적 합리성의 차원 즉 논증의 성공으로 종결짓게
된다 그러나 법적 결정의 정당성 문제는 법관의 입장에서는 논증의 성공 문제로
다루어지지만 법관의 성공적인 논증에 따른 판결의 결과로부터 영향을 받는 시민
의 입장에서 보면 성공적인 논증만으로는 해석이 정당화된다고 볼 수는 없다
성공적인 논증은 법적 결정의 정당화에 필수적이기는 하나 충분한 조건은 되지 못
한다 해석이 궁극적으로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사법적 도덕성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 사법적 도덕성은 헤라클레스가 지침으로 삼는 원리적 도덕성의 실현과는 다른
것이다 만약 패소한 시민이 다른 헤라클레스에게 갔더라면 즉 다른 법원리에 기
초한 신념을 토대로 다른 결정을 내린 다른 법관에게 갔다면 그는 승리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왜 헤라클레스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하
는지에 대한 답이 필요한 것이다91) 헤라클레스가 실무에 대한 최상의 정당화를
도모하는 법적 이상주의자라면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법원 문을 두드린 시민도
어느 의미에서 ldquo법이상주의자rdquo92)이다
법해석 작업의 주관의존성이라는 불가피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재판이라는 특수
한 공적 활동이 법관이라는 특수공직자에 의해 운영되고 유지된다는 것은 시민들
-소송에서 패한 시민들을 포함하여-편에서 보면 법을 해석하는 법관에 대한
신뢰가 전제된다는 것이다 법관의 독립적 활동은 법관의 특권 행사가 아니라 사
90) 송민경 앞의 글 38면 20면91) 사법적 덕목과 연관하여 이 부분을 다룬 글로는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5면 이하
92) 법원 문을 두드리는 시민에 대한 이 표현은 심헌섭 ldquo법조윤리의 좌표 거시적 관점에서 본 전문윤리로서의 법조윤리rdquo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편 法律家의 倫理와 責任 박영사
(2003)에 나온다
9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법과정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응당한 몫이 돌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존중하는 바탕에는 일종의 상호성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 그 또한
시민이기도 한 법관이 동료시민들에 대해 가지는 배려와 존중의 원칙이 그것이다
여기서 사법적 덕목에 대해 자세히 논할 수는 없다93) 예의 성실 신중 절제
용기 공정 겸손 의사소통 능력 형평 시민에 대한 배려와 존중 등등 이것들은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바탕을 이루는 양심의 덕목들일
것이다 양심이라는 단어가 그렇듯이 덕목이라는 단어도 오늘날 진부해진 표현
이며 거의 사라져가는 단어다 윤리적 태도로서의 덕목은 관찰하기도 배우기도
어렵다 그러나 올바른 판단과 결정이 법관이라는 개인을 거치지 않고 법령집
자체로부터 반사적으로 튀어나오지 않는 한 이 덕목들을 내면화하고 지향하려는
태도 없이는 lsquo종국적인rsquo 판단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써 필자는 헌법 제103조를 통해 법해석에서의 방법론의 문제가 덕목론이라
는 다음 과제로 이어진다는 점을 밝혔다고 생각한다
투고일 2016 4 6 심사완료일 2016 5 18 게재확정일 2016 5 20
93) 법관의 개별적인 덕목들과 이것들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는 박은정 강태경 김현섭 바람
직한 법관상의 정립과 실천 방안에 관한 연구 법원행정처(2015) 제5장 참조할 것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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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ltAbstractgt
Independence and Conscience of the Judges Based on
Interpretive Method for Article 103 of the Korean Constitution
Pak Un Jong
94)
In this paper I aim to discuss the problem of independence and conscience
of the judges as outlined in Article 103 of the Korean Constitution in the
context of the interpretive methodology
First of all this paper will look at the background in which the independence
of the judges has been institutionalized and also the problems regarding usual
explanation for conscience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And I will try to
reveal the characteristics and difficulties of the interpretive actions of the judges
especially in connection to the issue of value judgment This would require
pointing out the problems and limitations of the interpretive methodology and at
the same time defining the nature of tension embedded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namely the tension between the obligations of the judges to abide
the law versus the subjective internal demeanor of the judges This tension-
ridden condition reenacted by the demand to follow lsquogeneral justicersquo versus
lsquoindividual justicersquo appears inevitably in the process of judicial interpretation I
will examine the theories that capture this kind of tension that accompany the
interpretation process and aim to feel out the possibilities of resolving this
tension At the end I come to the conclusion that these theories can explain but
cannot resolve this tension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If so the problem
which arises from the limitations of the interpretative methodologies from the
perspective that a judgersquos final decision greatly impacts citizens becomes a
problem of judicial ethics In order to ultimately justify the interpretation of the
judges the demands of judicial ethics must be satisfied Keeping this demand in
Professor College of Law School of Law Seoul National University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103
mind I point out that the significance of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is in
its role of bridging legal methodology to virtue ethics
Keywords independence of the judges conscience of the judges interpretive
method of law value judgment judicial virtue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1
Ⅵ 법관의 해석활동 실증주의의 대척점
앞에서 언급한 대로 해석에서는 무엇이 최선의 해석인가를 둘러싸고 언제나
논쟁과 불일치가 따른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누군가가 텍스트를 해석한다고
말하는 순간 그는 실증주의의 대척점에 서게 된다 실증주의과학의 의미에서는 논
쟁의 여지가 있는 것은 원칙적으로 과학일 수 없기 때문이다 법실증주의사고에서
해석 문제가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법을 근본규범에 입각
한 자기준거적인 구조로 보는 한스 켈젠(Hans Kelsen)의 순수법학이나 법적용과정
을 규칙에 의해 지도되는 과정으로 보는 하트(H L A Hart)의 분석법학에서 해석과
관련한 어려움은 다루고 있지 않다42)
켈젠은 순수법이론(Reine Rechtslehre)에서 정당한 해석만이 허용된다는 주장
은 허구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면서 해석의 건전성 문제나 정당화 문제를 법이론
안에서 다루기를 거부한다 법을 자기준거적인 것으로 보는 관점은 한마디로 해석
(행위)주체의 입장을 부정하는 것이다 켈젠은 법단계설을 바탕으로 법적용을 상위
규범의 수권에 의해 하위규범이 구체화되는 과정으로 보고 여기에 헌법의 수권을
받아 법률을 제정하는 입법자도 포함시킨다43) 이에 따라 법적용도 입법의 한 형
태로 설명된다 법관에 의한 법형성의 동기는 이를테면 입법부가 유독 다른 법률
이 아닌 이 법률을 통과시키는 동기와 같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켈젠은 판단활동
에서 인지적 요소와 의지적 요소를 엄격하게 구별하면서 법관의 판단활동을 순전
한 의지활동으로 보고 이 법관의 활동에 대해서만 (유권)해석이라는 표현을 사용
하고자 한다 그리고 법학적 해석에 대해서는 법규범의 가능한 의미들을 밝히는
것으로서 법률에 따른 결정의 범위를 제한하는 정도의 의미를 부여한다
법단계설에 따르면 상위규범이 정한 일정한 범위 안에서의 수권에 따라 하위규
범이 작용한다 이때 상위규범의 수권은 모든 세부적인 내용들에 대해서까지 정해
42) 켈젠은 순수법이론(Reine Rechtslehre) 제1판(1934) 제6장에서 해석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부분과 거의 같은 논문 ldquoZur Theorie der Interpretationrdquo이 심헌섭 젠법이론선집 법문사(1990) 97면 이하에 실려 있다 윤재왕 교수는 Reine Rechtslehre 제1판과 제2판
(1960)을 비교하면서 해석방법으로부터 오는 규범적 구속력을 일체 거부하는 켈젠의
입장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윤재왕 ldquo한스 켈젠의 법해석이론rdquo 고려법학 제74호(고려
대학교법학연구원 2014) 525면 이하 하트의 대표적인 저서 법의 개념의 색인 항목에는
lsquo해석rsquo이 빠져있다 43) Hans Kelsen Allgemeine Staatslehre (Berlin 1925) 231면 이하
8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그래서 ldquo상위단계의 법생성으로부터 하위단계의 법생
산으로의 전환은 단지 상위단계가 정해 놓은 범위를 채우는rdquo 활동으로서 이때
ldquo언제나 상위단계에는 없는 내용적 요소가 하위단계에 추가되어야만rdquo 한다44) 이
내용을 채우는 부분과 관련하여 상대적 불확실성이 생기는데 켈젠은 이 문제를
ldquo자유재량rdquo의 문제로 다룬다45) 이는 하트가 규칙의 체계로서의 법체계를 완결된
구조가 아닌 열린 구조로 봄으로써 상대적 불확실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법관의
재량사항으로 보는 것과 같다 하트의 경우 중심부와 주변부라는 극히 단순화된
이분법을 끌어들여 이 불확실성 문제를 처리하고자 했다면 켈젠의 경우는 인식작
용과 의지작용의 이분법을 끌어들임으로써 이 문제를 처리하고자 한 것이다
판결을 법관의 의지활동으로만 이해하는 입장을 취하게 되면 법관에게 결정에
대한 근거 제시 요청을 할 수 없게 된다 마치 신의 심판에 대해 근거 제시를 요구
할 수 없듯이 말이다 결국 켈젠의 법이론상으로는 해석은 법학의 문제가 아니며
그러므로 분석적 법실증주의와도 무관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46) 이런 이유에서 그
는 정당한 해석만이 허용된다는 주장이나 해석방법만으로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에
이를 수 있다는 주장을 거부하면서 심지어는 상위규범에 제시된 범위를 넘어서는
해석의 효력조차 적극적으로 인정함으로써 어느 의미에서는 해석이론의 존재기반
자체를 무너뜨린다47)
켈젠이나 하트가 법이론에서 해석의 의미를 축소한 이면에는 이분법이라는 과도
한 사유의 단순화가 놓여 있다 그러나 켈젠이 생각하는 것처럼 판단에서 인식적
요소와 의지적 요소의 확고한 경계가 유지되는지는 의문이다 또 중심부와 주변
부에 대한 하트의 주장도 지나친 단순화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어쨌거나
켈젠이 합리적인 해석방법을 추구하는 법이론의 효용가치를 한껏 떨어뜨렸다고
해서 이제 어차피 정답은 없으니 법대에 앉은 법관은 자기 임의로 무엇이든 해도
된다고 켈젠이 주장했을 리는 물론 없을 것이다 법이론의 과도한 정당성 주장을
거부하는 데서 오히려 순수법학의 비판적 잠재력을 찾을 수 있다고 보는 학자들은
여기서 켈젠이 강조한 순수화 즉 탈정치화는 법학에 관한 것이지 법 자체에 관한
44) Kelsen Allgemeine Staatslehre 243면 여기서 번역은 윤재왕 앞의 글 535-536면에서
재인용45) Kelsen 앞의 책 243면 이하46) 켈젠에 있어서 법해석은 이론상으로는 법학보다는 정치학이나 사회학에 속하는 문제
에 더 가깝다고 지적한 견해에 대해서는 론 풀러 앞의 책 312면 47) 이에 대해서는 윤재왕 앞의 글 553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3
주장이 아니었음을 상기시킨다48) 즉 법 자체는 결코 정치와 분리될 수 없다는
점에서 법실무에 대한 학문이론의 무가치성을 주장하는 순수법학은 실무의 법
적용자로 하여금 자신의 활동이 정치적 활동임을 깨닫고 책임을 느끼게 하는 계기
를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윤재왕 교수도 ldquo켈젠 해석이론의 배후rdquo로 들어가 방법
이론으로부터의 어떤 구속력도 거부되는 데서 생기는 공백을 켈젠이 법관 자신의
자기이해와 책임성 문제로 채운다고 지적한다 ldquo법관의 판결은 결코 순수한 것일
수 없으며 그런데도 자신의 판결이 순수한 인식의 소산이라고 강조한다면 이는
정치적 책임의 회피이고 동시에 이데올로기적이라는 혐의에 노출되지 않을 수
없다rdquo49) 이 문구가 켈젠 자신으로부터 나왔다면 아주 좋았을 것이다 자신의 직
무의 중요성과 책임에 대한 실천적 깨달음은 해석의 정당화를 목표로 하는 인식적
노력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켈젠의 순수법이론의 기획은 서로
붙어 있는 양면을 떼어 놓으면서 이것을 다시 붙일 수 있음을 보여주려 한 것일까
Ⅶ 법관의 해석활동 가치판단과 lsquo정답테제rsquo 문제
켈젠처럼 실증주의적 사고에 따르든 아니면 비실증주의적 사고에 따르든 가치
판단 문제에서 해석방법만으로는 하나의 정당한 결정을 도출할 수 없다고 생각한
다면 이는 해석의 차원에서 가치에 대한 이해 시도는 진리 추구와는 무관하다는
주장으로 귀결되는가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해석대상의 의미에 대한
관심과 최선의 이해에 대한 관심은 아무래도 진리 추구라는 목표를 향한다고 봐야
한다 법적 결정은 물론 법관의 권한에 속하지만 그것을 정당화해주는 원천은 법
관이라는 lsquo지위rsquo가 지니는 형식적 권한이 아니라 판결이 정당하다는 근거 제시에
있다 법판단을 정당화해주는 모델은 울프리드 노이만(Ulfrid Neumann)이 지적한
대로 권위를 통한 정당화모델보다는 진리를 통한 정당화모델에 더 가깝다50)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재판활동은 엄연히 사법권이라는 공권력의 작용이라는 점에서
독립적인 법관의 재판활동을 그 ldquo계획적이고 진지한 진리 탐구 활동rdquo적 측면 때문
48) 법학의 탈정치화를 ldquo정치적 허무주의rdquo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데 대해서는 켈젠 ldquo순수법학이란 무엇인가rdquo 젠법이론선집 280-282면
49) 윤재왕 앞의 글 559면50) 울프리드 노이만 ldquo법 진리 권위rdquo 2013 4 6 한국법철학회 강연문 참조
8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에 학문의 자유의 한 표현으로까지 보려는 것은 무리다51)
오늘날 가치상대주의 분위기는 실천적 물음에서 진리 도달가능성에 대한 회의를
과장한다 그러나 진리가 뭐냐는 빌라도의 물음에 비록 확신에 찬 대답을 못한다
하더라도 법에서 진리 내지 정당성 추구의 포기는 파국을 의미한다 국가권력
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도 진리라는 규제이념이 전제되기 때문
이다 독립된 사법부가 심급구조와 집단적 의사결정의 형태로 스스로의 시정 기구
를 가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물론 진리에 대한 주장은 잠정적이고 수정가능하다
lsquo참이냐 거짓이냐rsquo는 오로지 서술적 명제에만 한정하여 검증될 뿐이라는 협소한
학문관을 따른다면 법학은 학문 안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법
학이 그런 협소한 학문관을 받아들여야 할 필연성은 없다 법해석자는 자신의 해
석적 판단이 진리라는 주장을 무한정 내세우지는 못하면서도 진리 추구를 피할
수 없다52) 론 풀러(Lon Fuller)의 지적대로 ldquo법이론이 최고의 법적 권위를 엄격하
게 정의하는 일에 큰 비중을 두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이 점이 모호해지면 필경
전체로서의 법체계가 와해될 수 있다rdquo53)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법을 민주
주의의 언어로 설명하는 오늘날 의회와 행정처럼 다수결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기
관도 아닌 사법의 소수 전문 엘리트의 지배를 권위모델만으로 정당화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법을 준수하는 시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시민들은 자신에게 유죄
판결을 선고한 세속의 법관에게 그 유죄판결의 근거를 알고 싶다고 요구할 수 있
으며 물론 당연히 요구한다
법관은 판결에서 논증을 통해 최상의 근거 제시가 이루어진 결정을 해야 한다54)
51) ldquo일부 사람들 중에는 이러한 법원의 권력기관적 성질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
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helliphellip 가끔 법관의 일을 조용한 방에서 소송서
류를 꼼꼼하게 읽어 파악한 사실에다가 법을 논리적으로 적용하는 단순히 지적(知的)인 작업이라는 시각에서만 말씀하시는 분을 만나면 그 분에게 재판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법대에 앉아 있는 법관이 어떻게 보이는지 물어보고 싶어집니다rdquo 양창수 ldquo바람직한 법관상 - 기예와 지혜 사이rdquo lt근대사법 및 한성재판소 설립 120주년 기념
1895sim2015 소통컨퍼런스 역사에 비춰 본 바람직한 법관상gt 자료집(서울중앙지방법원 2015 5 11) 15면 ldquo계획적이고 진지한 진리 탐구 활동rdquo이라는 표현은 라드브루흐에서
나온다 구스타브 라드브루흐 법철학 최종고 옮김 삼영사(2011) 238면 52) 드워킨 앞의 책 208면 53) 론 풀러 앞의 책 211면 풀러의 문장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ldquo하지만 이 경우도
위로부터의 지시 또한 목적의식에서 비롯되는 지적 활동을 완전히 생략할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rdquo54) 물론 진리 요청과 관련하여 개별 법관의 관점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며 민주국가에서
포기될 수 없는 진리 요청은 법학을 포함한 법체계 전체로 하여금 진리 요청에 어떻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5
이때 정당한 근거 제시가 이루어진 결정과 관련하여 그것이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
이라는 주장을 펼 수 있는가 앞에서 검토한 대로 켈젠의 순수법이론은 그런 주장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이에 비해 드워킨은 법적 판단에 있어서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이 원칙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ldquo정답테제rdquo로 불리는 이 주장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학자들이 지적한 대로 존재사실에 대한 주장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하나의 ldquo규제이념rdquo으로 받아들이는 게 맞는 것 같다 즉 드워킨의 정답테제
는 ldquo유일하게 정당한 결정rdquo이 존재한다는 데 대한 이론적 탐구라기보다는 실무에
서의 법관의 주관적 태도에 부합하는 이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법관은 자신의 판결활동과 관련하여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모든 사건
에서 오직 하나의 결정만이 정당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 정답에 가까이 가기 위
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55)
드워킨의 말대로 가치판단이 참일 때는 그냥 참일 수가 없으며 그것이 참인
이유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즉 충분한 논거가 존재할 때 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라면 이러한 논거지움의 과정은 자명한 공리적
토대나 그런 토대 위에서 확립된 규칙이나 원리적 서열에 따라 명확하게 밝힐 수
없다 이런 불확실한 가운데도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논거지움은 포기될 수
없다 이 끝없는 정당화 부담 때문에 켈젠은 규범의 효력 근거에 관한 논의를 가
치에 관한 논의와 절연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물론 성공하지
못했다56)
가치판단을 해야 하는 부분이 법문화에서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요소로 작용할지
아니면 그 반대로 작용할지는 판단자로서의 법관의 역량과 연관하여 논해야 할 것
이다 필자는 가치판단적 요소가 법문화에서 당연히 긍정적 요소로 작용해야 하며
게 부응하는지 묻게 한다 따라서 사법부 외부에서 행하는 사법비판의 길이 열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대해서는 노이만 앞의 강연문 참조55) 노이만 앞의 강연문56) 규범의 효력을 불명확하고 상대적인 가치가 아닌 규범에 근거짓기 위해 켈젠이 고안
한 근본규범은 사유상으로만 전제된 규범일 뿐이었다 켈젠은 가치판단을 ldquo현실의 행
위가 객관적으로 효력 있는 규범에 맞게 존재해야 하는 대로 존재한다는 판단rdquo이라고
정의함으로써 가치판단이라는 용어 자체를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Reine Rechtslehre 2 Aufl (1960) 16면 이하 또한 켈젠은 규범이 인간의 의지에 의해
제정되는 한 그 규범에 의해 형성된 가치는 어차피 자의적일 뿐이라고 주장한다(18면) 규범과 가치의 관계에 대한 켈젠의 주장에 대해서는 오세혁 ldquo켈젠의 법이론에 있어서
규범과 가치 - 규범과 가치의 상관관계를 중심으로rdquo 법철학연구 제18권 제3호(2015) 97면 이하 참조
8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또한 그렇게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57) 그런 방향에서 이제 해석의 문제를 법
관의 자기이해 문제와 연관시켜 보기로 한다
Ⅷ 해석과 법관의 자기이해
법관은 추상적인 일반규칙을 가지고 공중의 이목을 끄는 개별적인 사건을 처리
하는 사람이다 법관의 의식활동에 의해 일반규칙과 일회적인 사건 사이의 심연이
메워진다 하지만 일반성과 개별성을 결합하는 이 의식과정에 동반하는 고유한 법
학적 방법에 대해서는 앞에서 지적한 대로 확실한 합의는 없다 ldquo리걸 마인드rdquo라
는 말이 풍기는 신비스러운 분위기에는 사법적 결정이 본질적으로 투명한 것이 되기
어렵다는 암시가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다 논리적인 형태만 부여하기로 한다면
한 사건에서 서로 상반된 결론에 이른 두 개의 판결문을 작성하는 것도 불가능
하지 않다58) 방법이 논리에 기초하는 것이라면 이때 논리는 형식논리를 넘어 엥기
쉬가 표현한 대로 ldquo실질에 부합하는rdquo 논리여야 할 것이다 참된 올바른 받아들
일 수 있는 결정에 이르는 실질논리 이 실질에 도달하기까지는 결코 논리적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지적 감행과 어떤 매개가 작용한다
일반규칙을 개별사례에 적용할 때 요구되는 판단자의 능력과 관련하여 가다머
(Hans-Georg Gadamer)는 이런 견해를 밝힌 적이 있다 판단자는 자신이 이미 가
57) 이와는 달리 가치의 ldquo통약불가능성rdquo 때문에 사법은 좋음이나 옳음의 이슈에 대해 실
질적 입장을 취하는 일에 대해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가치의 통약
불가능성에 대해서는 Cass R Sunstein ldquoImcommensurability and Valuation in Lawrdquo Michigan Law Review Vol 92 No 4 (1994) 779면 이하 조홍식 교수는 ldquo가치의 통약
불가능성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이 권리인가의 문제보다 무엇이 공익인가의 문제에서
더 크다rdquo고 지적하면서 기본적으로 가치판단과 관련한 사법통치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사법통치의 정당성과 한계 제2판 박영사(2010) 240면 가치의 통약불가능성에 대한 주장은 가치판단과 관련한 해석기준의 서열화는 불가능
하다는 주장과 같은 노선에 속한다 여기서 통약불가능성 문제를 자세히 다룰 수는
없다 다만 가치의 통약불가능성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통약불가능이 비교불가능을 의미
하지는 않는다는 점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체적인 맥락이 주어지는 경우 무엇이 옳은
지 혹은 그른지에 대해 심사숙고하며 이에 따라 선택하고 그 선택 결과를 받아들인
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정도만 지적하기로 한다 58) 실제로 판사가 판결문을 두 개 써왔다고 주장한 사건에 대한 보도가 있었다 ldquo판결문을
두 개 써왔다rdquo 조선일보 2013 11 21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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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고 있어서 적용하기만 하면 된다는 그런 의미의 규범적 실천적 ldquo지식을 소유한
사람rdquo이라기보다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 ldquo지식을 탄생시키는 상황에 직면하는
사람rdquo이라는 것이다59) 일반범주를 개별사례에 적용할 때 요구되는 이 판단력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래서 칸트(Kant)도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ldquo지성은 규칙들
을 통해 배우고 보강할 수 있는 것이지만 판단력은 특수한 재능으로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전혀 아니고 단지 숙련될 수 있을 뿐이다rdquo60)
우리는 올바른 규칙이나 원리를 알고 있지만 막상 이것을 어떤 상황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예컨대 비례성원칙이나 과잉금지원칙에 대한 지식
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은 적정해야 하고 그 수단은 목적달
성을 위해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원칙을 특수한
상황에 lsquo적용rsquo한다고 할 때에 이 원칙이 그 어떤 판단도 배제할 정도로 자족적인
지침 구실을 한다고 느끼기는 어렵다 특정 상황에서 그 수단이 과연 어느 정도일
때가 목적달성에 적정한지는 판단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실천이성의 역
할이다
단의 자리는 이론 경험 양심이 혼재된 실천의 영역이다 판단을 통한 결정이
라는 그 lsquo종국성rsquo으로 인한 실천적 성격은 법학이 다른 어떤 학문분야와도 공유
하지 않는 법학 고유의 특징이다 그래서 법학은 lsquolegal sciencersquo로 불리기보다는
실천지- prudentia-를 함의하는 lsquojurisprudencersquo로 더 자주 불리어 왔을 것이다
해석의 차원에서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도 추상적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
으로는 행위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성과 개별성을 결합하는 해석적
지식은 추상적 이론적 지식들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일반규칙이나 원리
에 근거한 이론적 패턴의 지식과 특정한 상황 내지 맥락을 고려하는 실천적 패턴
의 지식의 이중주를 이룬다 법관이 지니는 통찰력의 특성은 이론과 태도가 함께
간다는 데 있다 그래서 사법적 판단에서는 규칙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 못지않게
사람 즉 법관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사법적 통찰력의 특성은
뭐니뭐니해도 개별 사례를 다룬다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개별적인 것들은 개별적
인 방식으로만 체험되고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들은 무엇
보다도 lsquo지각rsquo과 관계된다61) 즉 그것들은 일반적 체계적 지식의 대상이라기보다
59) Hans-Georg Gadamer Wahrheit und Methode Grundzuumlge einer philosophischen Hermeneutik 3 Aufl J C B MOHR (1972) 300면
60)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 1 백종현 옮김 아카넷(2009) 37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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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우선 지각의 대상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도 사법적 통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쪽은 규칙보다는 오히려 사람 즉 법관 쪽인 것이다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사건에서 법적으로 중요한 사실이 무엇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규칙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어떤 규칙이 중요한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실이 중요한지 알
아야 한다 이 인식과정에서 법관은 불확실한 가운데서 무수한 선택을 감행한다
어떤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 배척하고 어떤 사실은 인정하거나 무게를 부
여하고 신청된 증거조사의 어떤 것은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거부하고helliphellip 사실
에 대한 이 취사선택-자유심증주의-의 결과로 새로운 것이 태어난다 그리고
이것에 의해 법원을 찾아온 사람들의 운명이 갈리는 것이다
법관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필자 생각에
독일의 법철학자 아르투어 카우프만(Arthur Kaufmann)의 해석학적 방법론은 법
관의 자기이해 문제를 해석학적 지평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법관의 해석작업의
본질을 잘 설명해주는 것 같다 가다머 계통의 철학적 해석학(philosophische
Hermeneutik)의 입장을 받아들이면서62) 카우프만은 법해석행위를 통해 포괄적인
의미에서 법관 자신의 인격 중의 어떤 것이 판결에 혼입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
61)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4면 그리고 1심에서
유죄였다가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강력범죄 540건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판단자
의 감지능력 차이가 법판단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힌 김상준 무죄
결과 법 의 사실인정 경인문화사(2013) 62) 텍스트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이해에 관한 연구분야인 해석학(hermeneutics Hermeneutik)
의 어원은 신들의 전령(傳令)인 Hermes라는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설명된다 이때 신의
의도를 인간에게 전하는 과정에서 언어의 제약성 시공간적 간격 전령의 역할 등과 관
련하여 해석의 문제가 생긴다고 본다 ldquoHermeneuticsrdquo Dictionary of Biblical Interpretation Nashville (1999) 497면 독일어의 Auslegung이 해석주체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대상
으로서의 텍스트에 대한 해석을 의미한다면(객관주의) 철학적 해석학에서의 해석
(Interpretation)은 해석주체의 주관성 내지 역사성이 대상에 투사된다는 의미가 강하다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에 따르면 역사적 존재인 인간에게 있어 모든 해석과 이해는 과
거와 현재가 lsquo작용사적으로(wirkungsgeschichtlich)rsquo 중재되는 사건으로서 lsquo선이해rsquo 내지
lsquo선판단rsquo 없이는 불가능하다 가다머는 선입견으로 폄하된 선이해를 재평가하고 이를
통해 근대 이래 lsquo방법rsquo을 통한 진리발견이 주체에 의한 객체의 대상화 내지 도구화를 가져
왔다고 비판하면서 인간경험에 있어서 진리에 이르는 길은 사물의 존재가 스스로 드러
나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해석과 이해는 전승된 존재방식으로서
의 텍스트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며 이는 텍스트 자체가 지닌 역사적 지평과 해석
자의 지평이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만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해석학적 순환 이해의 전제로서의 선이해 작용사 등에 대해서는 Gadamer 앞의 책 II Grundzuumlge einer Theorie der Hermeneutischen Erfahrung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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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법관의 결정이 올바른가의 물음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가의 물음과 직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63)
우선 카우프만은 통상적으로 회자되는 독립적인 법관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즉 법 앞에 선 법관이 일체의 정치적 사회적 개인적 영향이나 선입견들로부터 차
단된 채 순수한 객관적 인식에 따라 그 이전에는 자신이 알 수 없었던 사실관계
를 판단하고 그런 다음에 법적 판단을 한다는 식으로 이해하기를 거부한다64)
그런 법관상은 법령집은 일체 해석의 필요가 없이 거의 모든 가능한 법률문제에
대한 대답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상정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법관은 의지가
없는 존재이며 사법권력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여기는 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법에 대한 인식은 단순히 사례를 법률에 포섭시킨다는 의미의 수
동적 행위가 아니고 해석자가 해석대상에 관여하면서 함께 lsquo형성rsquo하는 것이라고
본다 카우프만은 법관의 법형성력에 대한 자신의 견해가 주관주의의 의미로 받아
들여지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는데 왜냐하면 해석자는 텍스트를 지탱하는 모든
전통과 함께 이해의 지평으로 들어간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은 서류의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ldquo아 이런 사건이구나rdquo라고 감을 잡게 되
는데 카우프만에 따르면 이는 법관 자신이 사건 경과를 관찰해서 인지했다거나
언론 등을 통해 사건에 대한 상세한 지식을 얻었다는 뜻이 아니라 유사한 사건들
을 알며 그래서 ldquo선이해(Vorurteil Vorverstaumlndnis)rdquo65)를 가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
해의 전제로서 이런 선이해가 없다면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것이 무엇에 관한 사
건인지 알 수 없고 다른 사례와 비교할 수도 없기 때문에 올바른 판단에 이른다
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66) 이 선이해에 의해 해석은 언제나 해석주체의 자기
이해 즉 자신이 lsquo잠정적rsquo 결과로서 이미 예상했던 것을 논증적으로 근거짓는 활동
이라는 의미에서 ldquo해석학적 순환rdquo 내지 ldquo해석학적 나선구조rdquo 하에 이루어진다
63)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Festschrift fuumlr Karl Peters Mohr Siebeck (1974) 144면 법관의 독립과 양심 주제와 관련한 또 다른
글로는 Kaufmann ldquoGesetz und Rechtrdquo Existenz und Ordnung Festschrift fuumlr Erik Wolf (1962) 357면 이하
64)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4면 65) 해석학적 의미에서의 lsquo선이해rsquo는 일상 언어 관용에서는 lsquo선입견rsquo이나 lsquo편견rsquo 같은 부정
적 함의를 더 많이 지니기 때문에 카우프만은 lsquoVorurteilrsquo 대신에 Vorverstaumlndnis라는 용
어를 쓰기를 권장한다(앞의 글 148면) 카우프만 외에도 이 용어의 선택은 Josef Esser Vorverstaumlndnis und Methodenwahl in der Rechtsfindung 2 Aufl (Frankfurt aM 1972)
66)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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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를 이해하려는 사람은 말하자면 언제나 초벌 그림을 그리며 특정 의미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텍스트를 읽기 때문에 ldquo텍스트에서 첫 번째 의미가 지시되자
마자 전체의 의미를 lsquo예비투사한다(vorauswirft)rsquordquo67) 그리고 선이해와 관련된 이 예
비투사는-해석학적 lsquo순환rsquo에 의해-원칙적으로 끝없이 검열과정을 거친다는 것
이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도 실제 판단과정에서는 분리
되지 않는다68)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은 시간적으로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단절 관계가 아니라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정제하고 상응하는
관계에 놓인다 즉 사실에 대한 인식 없이 규범적 인식은 불가능하며 또한 규범적
관점 없이 사실만을 통한 사실 확정도 불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법률도 법관의
해석을 만나기 전에는 ldquo잠재적인 가능태로서 주어진 법률rdquo일 뿐 해석학적 순환을
통한 정제 혹은 상응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ldquo진정한 실정법rdquo이 생성된다69) 이렇
게 특정사건을 통해 구체화된 규범(구성요건)과 이 규범을 통해 정해진 사실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법관에게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들과 함께 제3의 요소로서 법관
자신의 선이해 내지 이해 포괄적으로 말하면 그의 인격적 존재가 판단에 혼입
된다
lsquo선이해rsquo는 판단자가 자신의 선이해를 의식하지 못할 때 부정적 요소를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ldquo자신의 판단은 오로지 lsquo있는 그대로다rsquo라고 말하는 즉 lsquo오로지 법
률에만 구속된다rsquo라고 말하는 법관이야말로 실은 종속된 법관이다 왜냐하면 그는
성찰되지 않은 자신의 선이해와 거리를 둘 수 없기 때문이다rdquo70) 즉 법관은 자신
67)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68) 실제 판단과정에서 사실인정과 법률적용이 따로 떨어질 수 없다는 점은 굳이 카우프
만의 이론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실무상으로는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ldquo법률
의 적용과 사실의 인정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법률문제와 결부되어 인정된다 사실의 인정이 진행됨에 따라서 재판관의 머리
속에서는 어떠한 법규를 적용할 것인가 그 법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는 전망이
점차로 서게 되며 당사자 측도 경우에 따라서는 민사인 경우 청구의 취지를 변경할
것인가를 고려하게 되고 형사인 경우 공소사실을 변경하는 경우도 생긴다 요컨대 사실
문제와 법률문제는 실제과정에서 불가분으로 결부되어 있다 helliphellip 양쪽이 불가분으로
재판관의 직관 혹은 재판관의 전인격적인 작용에 의하여 사실의 인정과 법의 적용이
행하여지고 판결 삼단논법은 실제의 심판 과정에서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rdquo(사법
연수원 법조윤리론 35면) 69) ldquo법관의 해석 작업 이전에는 어느 의미에서 진정 법도 진정한 사실도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원자재들(Rohmaterialien)로만 이것들이 존재할 뿐이다rdquo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1
의 선이해를 의식하고 자신을 이데올로기 혐의 앞에 세울 줄 알 때 올바른 판결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ldquo법관이 자신의 선이해와 종속을 의식할수록 그래서 간주
관적 합의에 노력할수록 그는 더 객관적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rdquo71) 그러므로
법관의 주관주의의 위험은 카우프만식으로 말하면 가치판단 같은 성찰적 고려와
관련된 주관적 요소를 방법상의 근거 제시의 맥락에 끌어들이는 법관의 경우보다는
오히려 모든 것이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판결의 주관적
요소를 은폐하는 법관에게서 나타나는 위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학적 순환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법관은 ldquo법률의 입rdquo이 아니라 ldquo인격
으로서 판결을 떠받친다rdquo72) 판결은 법률과 법관의 인격의 혼성물이다 그러므로
법률은 판결을 위한 필요조건이기는 하나 충분조건은 아니라고도 말할 수 있다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순환이론은 법관의 독립과 양심의 문제 차원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법결정의 올바름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
는 정도에 달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자신을 올바르
게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자신의 판단력 경험 능력 인간에 대한 태도 감
수성 명예욕 등등
카우프만의 법해석학적 순환이론이 법관의 독립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이라
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독립은 법관 스스로 관철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론적으로 카우프만의 법해석이론의 의의는 법관이 자신의 선입견을
의식하는 것이야말로 법관의 독립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설득력있게 지적
해주며 그런 방향에서 법관의 법해석 작업을 재평가했다는 데 있다고 말할 수 있
겠다
70)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71) Arthur Kaufmann ldquoDer BGH und die Sitzblockaderdquo NJW (1988) 2581면 이하72) 이 표현은 Karl Peters의 Strafprozess - Ein Lehrbuch (1966) 99면에 나오며 여기서는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9면에서 재
인용했다 이덕연 교수도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에 입각하여 ldquo법관의 법해석작
업은 단순한 lsquo인식작업rsquo이나 lsquo언어분석작업rsquo이 아니라 ldquo구체적인 반성과 자기극복의
노력 속에서 온 인격을 걸고 진행하는 lsquo이해와 실천의 수행작업rsquordquo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앞의 글 352면)
9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Ⅸ 법관은 lsquo하는 사람rsquo인가 lsquo보는 사람rsquo인가
법관의 판단작업을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의 관점에서 주목했던 또 다른
철학자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다 그녀는 ldquo아이히만 재판rdquo을 계기로 판단의
특수한 경우로서의 판단력 문제를 연구했다73) 아렌트는 하드케이스와 연관시켜
법관의 판단력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74) 법관은 우선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을 반추하면서 판단에 임하는데 이때 판단자로서 그는 한 면으
로는 규칙에 따라 판단하라는 lsquo일반적 정의rsquo의 요구에 그리고 동시에 다른 한 면
으로는 정황에 맞게 판단하라는 lsquo개별적 정의rsquo의 요구에 처한다 이러한 상황은
아렌트에 따르면 하드케이스에서 특히 발생한다 이 이중적이고 모순적 요구 상황
을 아렌트는 법관의 판단에 적용되는 특수한 해석학 및 그 조건을 설명하는 출발
점으로 삼는다75) 하드케이스가 아닌 통상적인 사건에서는 이른바 포섭 여부를 판
단하는 것으로도 족하다 일반규칙에의 포섭 여부가 중심이 되는 이 단계에서의
판단력- lsquo규정하는 판단력(bestimmende Urteilskraft)rsquo-은 사실관계에서의 원인
이나 형식적 정의를 따지므로 일방적이고 간주관적 전제 없이도 가능하다 그래서
흔히 법관은 여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법을 해석해야 한다고 말할 때 이는
법적용을 이러한 지배적인 포섭모델에 입각하여 이해한 결과라 할 것이다 그런데
규칙으로부터 오는 어떤 어려움들 때문에 규정하는 판단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즉 포섭이 어렵거나 법흠결 시 또는 가치형량이 요구되는 하드케
이스에서는 법관은 어쩔 수 없이 앞에서 말한 모순문제를 다루어야만 한다 이때
아렌트는 법관이 사유의 확장을 통해 방법상으로 lsquo규정적 판단력rsquo을 스스로 교정
할 수 있는 lsquo성찰적 판단력rsquo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고 이 판단유형의 전환과정을
73) 법적 판단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 삼은 저술은 Hannah Arendt Eichmann in Jerusalem Ein Bericht von der Banalitaumlt des Boumlsen Erw Aufl (Muumlnchen 2001) 그리고 Hannah Arendt Das Urteilen Texte zu Kants Politischer Philosophie Hrsg v R Beiner Uumlbers v U Ludz (Muumlnchen 1998)
74) 아렌트가 염두에 둔 하드케이스는 라드브루흐가 이른바 ldquo법률적 불법rdquo 상태로 규정한
나치의 불법국가 상황으로서 이렇게 극히 예외적인 케이스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하드
케이스에 적용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별적 정의 요구에 부응함
으로써 예컨대 소급효를 금지하는 일반법률에 위배되는 상황과 유사한 갈등상황은 반
드시 극단적 상황에서만 생긴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75)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2 Bde Hrsg v U Ludz amp I Nordmann
따라서 그 척도는 전달가능성이며 거기에 딱 맞는 것은 공통감각(상식)이다rdquo77) 오
늘날 공통감각은 아렌트도 지적했듯이 더 이상 그것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얻고자 노력해야 하는 그 무엇이 되어버린 듯하다 그러나 공통감
각이 무너진 시대를 겪었던 아렌트는 사유의 전환 내지 확대를 위한 진정한 발판
을 다시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에서 구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78)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실천철학의 전통에서는 세계와의 관계 그리고 자기와의 관
계를 공통감각을 척도로 설정해가는 판단자가 lsquo하는 사람rsquo인지 아니면 lsquo보는 사람rsquo
인지 즉 lsquo행위자rsquo인지 아니면 lsquo관찰자rsquo인지를 둘러싸고 의견이 대립되어 왔다 lsquo하
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자가 lsquo정치가rsquo 쪽에 더 가깝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
자는 lsquo철학자rsquo 쪽에 더 가깝다 lsquo하는 사람rsquo은 주로 사회의 일반적 상식 건전한 인
간이해 세론(doxa)을 판단의 척도로 삼는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적 경험은 전체주
의 하에서는 건전한 인간이해도 집단화된 대중감정에 따른 오도된 인간이해 앞에
무너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판단에서 사실로서의 상식이나 합의 또는
법해석공동체 내부의 지배적 제도적 관점이라는 판단 척도만으로는 일반규칙으로
부터 오는 모순을 다루기 어렵다 여기서 판단자는 ldquo확대된 사유방식rdquo을 추구해야
하는데 아렌트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을 lsquo보는 사람rsquo의 판단과 결합시킴으로써 법
관을 위한 사유의 확대를 시도한다79) lsquo하는 사람rsquo이 사실로서의 일반적 상식이나
인간이해 차원에 비추어 판단한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ldquo이
상적 규범적 상식rdquo80)을 추구하고자 한다 판단을 거쳐 법적 효과를 결정하는 법관
76)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을 해석학적 순환이론을 적용하여 분석하면서 칸트의 판단력 비
판에 의거하여 아렌트가 판단력의 특수한 경우로서 법관의 ldquo성찰적 판단력rdquo이라는 새
로운 판단유형을 제시했다고 지적한 연구서로는 Stefanie Rosenmuumlller Der Ort des Rechts Gemeinsinn und richterliches Urteilen nach Hannah Arendt Nomos (2013) 참조
77) Hannah Arendt Das Urteilen 92-93면78) 아렌트가 판단의 차원을 심화시키는 발판으로 삼는 상식은 sensus communis로서
communis opinio와는 다르다는 데 대해서는 Marieke Borren ldquolsquoA Sense of the Worldrsquo Hannah Arendtrsquos Hermeneutic Phenomenology of Common Senserdquo International Journal of Philosophical Studies Vol 21 No 2 (2013) 225-255
79) Hannah Arendt Das Urteilen 76면80) Rosenmuumlller 앞의 책 234면 이하 여기서 아렌트는 상식개념을 이중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에서는 경험적 개념으로 보다 성찰적 판단
단계에서는 규범적 개념으로 사용한다
9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은 관찰자로서 판단하면서 동시에 행위자로서 판단에서 법적 결과를 결정하는
사람이다 관찰자인 동시에 행위자라는 이중적인 역할을 하면서 법관은 자신의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 반추한다81) 이 반추과정에서 법관은 한편으로는 포섭
하는 판단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고려해야 할 관점들을 끌어들이면서
자신의 직책을 마지막까지 수행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통제하면서 자신의 앞서의
(포섭) 판단을 정정해나간다 그래서 법관 자신이 lsquo보는 사람rsquo과 lsquo하는 사람rsquo의 만
남의 장소가 되는 것과도 같다 ldquo이 보는 사람은 모든 하는 사람 안에 자리 잡고
있다helliphellip이 비판적 판단능력이 없이는 행위자 혹은 해결자는 보는 사람으로부터
풀려나 종내는 지각되지조차 못하게 될 것이다rdquo82)
사람들은 자신 일에 있어서는 비당파적일 수는 없다 따라서 ldquo자신의 일에 대한
판단에서는 내면의 심판자 혹은 내면의 법정을 가질 수 없다rdquo83) 그러나 다른 사
람의 일을 반추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필히 비당파적이어야 하며 또 비당파적이 될
수 있다 이때 그는 비로소 내면의 심판자를 가지게 된다 즉 양심의 문제에 처하
게 되는 것이다 판단에 있어서 양심이라는 것 즉 양심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남
의 일에서 ldquo증인rdquo 혹은 ldquo비판적 친구rdquo로서 관찰하고 행위하는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이다84)
아렌트의 성찰적 판단모델은 나치 불법국가 경험의 산물이다 통상의 규칙이 파
괴된 상황 통상의 범죄유형에 포섭되지 않는 극히 예외적인 범죄적 상황에서 법
원은 기존의 판단척도를 해석학적 출발로 삼아서는 안 되고 이때에는 질적으로
동의가능한 합의형식을 찾기 위해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으로 돌아가
진정으로 사유 즉 철학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렌트가 판단을 일반화해주는
거점이자 해석학적 출발점으로 삼은 공통감각(상식) 개념은 칸트철학에서 ldquo비사교
적 사교성rdquo 개념의 위상과 비슷하다85) 이 지상에서 인간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다른 것을 원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모여 살아야만 하는 존재다 이 비사회성 요
청과 사회성 요청의 동시성 때문에 인간에게는 제도적인 안착이 더없이 중요하며
법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실존과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만든다 판단의 기
81) Leora Y Bilsky When Actor and Spectator Meet in the Courtroom Hannah Arendt and Eichmann in Jerusalem G N Arad Hg (Bloomington 1996) 137면
82) Hannah Arendt 앞의 책 85면83) Hannah Arendt 앞의 책 76면 84)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657면85) Rosenmuumlller 앞의 책 1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5
초를 보편적 인간경험에 둔다는 점에서 아렌트가 말하는 판단력은 드워킨의 헤라
클레스와 같은 초인적 천재성을 발휘하는 능력과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86) 아
렌트가 상정하는 이상적인 법관은 철학적이지만 철학자는 아니고 정치적이지만 정
치가는 아닌 사람이다
아렌트는 헌법국가의 권위도 상식개념에 기반을 두고 설명한다 그리고 민주적
정당성의 관점에서 입법의 우위를 인정하는 까닭에 성찰적 판단에 입각한 법관의
검증에는 한계가 있다는 태도를 견지한다87)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렌트가 제시한
법관의 성찰적 판단 유형에 대해서는 다양한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우선 이것이
예외 상황에서 적용되는 판단모델로 상정된 것이며 무엇보다도 ldquo규범적 상식rdquo에
대한 단일한 이해기반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법관 개인의 주관적 정치적 신념
이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길을 피할 수 없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성찰적
판단력은 결국 레토릭에 불과한 것인가 아렌트는 그러나 무엇이 ldquo특정 상황에 맞
는 공통감각(situierte Gemeinsinn)rdquo인지에 대한 공동의 인식은 가능하며 또 법관의
lsquo하는rsquo 판단에 들어있는 정치적 함의를 성찰적 판단력으로 검증하는 것도 가능하
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아렌트가 마지막 검증심급으로 원용하는 것이 바로 판
단에서의 양심의 심급이다 그것이 과연 동의할 수 있는 합의형태로서 충분한지를
스스로 검증하는 이 심급에서 판단자는 명령조로 자기에게 전해지는 소리를 듣게
된다 ldquo멈춰 나는 그것은 할 수 없어rdquo88) 판단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 멈추는 것
이 가능한 이 성찰적 심급에서는 칸트와 달리 할 수 없는 이유로써 결과도 고려
된다 lsquo보는 사람rsquo이 자기 안에서 지켜보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상황은 토마스 아퀴
나스의 양심론에 비추어 다음과 같이 묘사될 수도 있겠다 지적 본성을 가진 인간
존재가 보편법칙에 관한 지식을 개별 행위에 적용하기 위해 판단하고 선택할 때
행위자는 갈등 상황- ldquo그렇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rdquo는
상황-에 처하여 멈칫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데 이때 그는 단지 갈등하고
선택하는 역할만 하지 않고 갈등하고 선택하는 이 과정을 ldquo관찰하고 목격하는 증인rdquo
의 역할도 한다는 것89)
86) 드워킨에 의하면 해석적 탐구는 ldquo어떠한 증명도 허용치 않고 어떠한 수렴도 약속치
않는 탐구rdquo이다(드워킨 정의론 203면)87) Rosenmuumlller 앞의 책 30면88) Hannah Arendt Uumlber das Boumlse Eine Vorlesung zu Fragen der Ethik Hrsg v J Kohn
(Muumlnchen 2003) 52면89) 지적 행위자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자신의 내면의 갈등과 선택과정을 바라보는
9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Ⅹ 방법에서 덕목으로
헌법 제103조는 한 면으로는 헌법과 법률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 면으로 해석자에게 여하한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lsquo제약
의 차원rsquo과 lsquo자유의 차원rsquo을 동시에 담고 있다 법관은 자유로울 때에라도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며 법에 구속될 때에라도 전적으로 구속되지는 않는다는 뜻이
기도 하다 이 lsquo자유와 구속의 변증법rsquo에 비추어 지금까지 논한 주제에 대해 몇 가
지 입장을 정리해 보자 첫째 법관에게 있어서 독립은 확정된 원칙이나 그것자체
로서 달성해야 할 최종목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법관의 독립은 완성형이 아니라
끊임없는 진행형의 과제로서 그 직무수행에 대한 신뢰와 병행하여 점진적으로 이
루어지는 것이다 둘째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에 있어서 구속은 법률에 무조건 복종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판결에 대한 윤리 (내 ) 확신과 함께 법률에 복종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법관이 실정법률에 반하는 결정을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법
관은 객관성을 빌미로 법률 뒤에 숨는 익명적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
미하는 것이다 셋째 독립적인 법관의 양심은 lsquo법과 상충한다rsquo기보다는 lsquo법을 실
한다rsquo는 의미를 지닌다 넷째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서 반추하면서 lsquo하는
사람rsquo인 동시에 lsquo보는 사람rsquo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성찰 인 인물상으
로서만 설정될 수 있다
해석적 탐구는 우리의 이해를 넓히기 위해서 필요하지만 이해에서의 우리의 피
할 수 없는 한계를 깨닫기 위해서도 필요했는지 모른다 엥기쉬는 법해석방법론에
대한 저술의 마지막 부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ldquo방법론에 천착하다 보면
애초의 문제였던 법률로부터 훨씬 더 먼 곳으로 이끌려 간다rdquo 지금까지 필자는
법관의 법해석과 관련하여 방법론의 의의와 한계를 논하고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과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에 비추어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이 법해석론
의 불가결한 부분으로 들어가게 되는 이유도 밝혔다 그리고 해석적 차원에서의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는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행위를 목표로 하는
탐구라는 것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필자는 이 모든 논의들을 매개로 방법론이 우리를 더 멀리 덕
목론으로 데려가는 과정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드워킨의
상황에 대한 이 묘사 부분은 이경재 ldquo토마스 아퀴나스의 양심 개념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375면을 참조했다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7
헤라클레스를 잠시 불러올 필요가 있다 해석문제를 누구보다도 더 진지하게 다룬
드워킨은 마지막에 헤라클레스를 내세운다 주어진 사건에서 무엇이 법인지에
대해 도덕적 의식을 가지고 법실무 전체를 원리정합적으로 정당화하라는 요청에
부응하여 자신의 신념에 기초한 결정을 내리는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의 구성적
해석에서 법관의 양심이 기능하는 국면은 어디일까 송민경 판사는 드워킨의 구성
적 해석론에 입각하여 양심을 구체적 법논증과정의 일부로 포함시키면서 이때 양
심이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라는 지침으로 기능한다고 설명한다90)
그런데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는 지침으로 기능하는 것을 양심이라
고 보게 되면 양심의 문제는 논증적 합리성의 차원 즉 논증의 성공으로 종결짓게
된다 그러나 법적 결정의 정당성 문제는 법관의 입장에서는 논증의 성공 문제로
다루어지지만 법관의 성공적인 논증에 따른 판결의 결과로부터 영향을 받는 시민
의 입장에서 보면 성공적인 논증만으로는 해석이 정당화된다고 볼 수는 없다
성공적인 논증은 법적 결정의 정당화에 필수적이기는 하나 충분한 조건은 되지 못
한다 해석이 궁극적으로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사법적 도덕성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 사법적 도덕성은 헤라클레스가 지침으로 삼는 원리적 도덕성의 실현과는 다른
것이다 만약 패소한 시민이 다른 헤라클레스에게 갔더라면 즉 다른 법원리에 기
초한 신념을 토대로 다른 결정을 내린 다른 법관에게 갔다면 그는 승리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왜 헤라클레스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하
는지에 대한 답이 필요한 것이다91) 헤라클레스가 실무에 대한 최상의 정당화를
도모하는 법적 이상주의자라면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법원 문을 두드린 시민도
어느 의미에서 ldquo법이상주의자rdquo92)이다
법해석 작업의 주관의존성이라는 불가피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재판이라는 특수
한 공적 활동이 법관이라는 특수공직자에 의해 운영되고 유지된다는 것은 시민들
-소송에서 패한 시민들을 포함하여-편에서 보면 법을 해석하는 법관에 대한
신뢰가 전제된다는 것이다 법관의 독립적 활동은 법관의 특권 행사가 아니라 사
90) 송민경 앞의 글 38면 20면91) 사법적 덕목과 연관하여 이 부분을 다룬 글로는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5면 이하
92) 법원 문을 두드리는 시민에 대한 이 표현은 심헌섭 ldquo법조윤리의 좌표 거시적 관점에서 본 전문윤리로서의 법조윤리rdquo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편 法律家의 倫理와 責任 박영사
(2003)에 나온다
9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법과정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응당한 몫이 돌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존중하는 바탕에는 일종의 상호성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 그 또한
시민이기도 한 법관이 동료시민들에 대해 가지는 배려와 존중의 원칙이 그것이다
여기서 사법적 덕목에 대해 자세히 논할 수는 없다93) 예의 성실 신중 절제
용기 공정 겸손 의사소통 능력 형평 시민에 대한 배려와 존중 등등 이것들은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바탕을 이루는 양심의 덕목들일
것이다 양심이라는 단어가 그렇듯이 덕목이라는 단어도 오늘날 진부해진 표현
이며 거의 사라져가는 단어다 윤리적 태도로서의 덕목은 관찰하기도 배우기도
어렵다 그러나 올바른 판단과 결정이 법관이라는 개인을 거치지 않고 법령집
자체로부터 반사적으로 튀어나오지 않는 한 이 덕목들을 내면화하고 지향하려는
태도 없이는 lsquo종국적인rsquo 판단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써 필자는 헌법 제103조를 통해 법해석에서의 방법론의 문제가 덕목론이라
는 다음 과제로 이어진다는 점을 밝혔다고 생각한다
투고일 2016 4 6 심사완료일 2016 5 18 게재확정일 2016 5 20
93) 법관의 개별적인 덕목들과 이것들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는 박은정 강태경 김현섭 바람
직한 법관상의 정립과 실천 방안에 관한 연구 법원행정처(2015) 제5장 참조할 것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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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ltAbstractgt
Independence and Conscience of the Judges Based on
Interpretive Method for Article 103 of the Korean Constitution
Pak Un Jong
94)
In this paper I aim to discuss the problem of independence and conscience
of the judges as outlined in Article 103 of the Korean Constitution in the
context of the interpretive methodology
First of all this paper will look at the background in which the independence
of the judges has been institutionalized and also the problems regarding usual
explanation for conscience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And I will try to
reveal the characteristics and difficulties of the interpretive actions of the judges
especially in connection to the issue of value judgment This would require
pointing out the problems and limitations of the interpretive methodology and at
the same time defining the nature of tension embedded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namely the tension between the obligations of the judges to abide
the law versus the subjective internal demeanor of the judges This tension-
ridden condition reenacted by the demand to follow lsquogeneral justicersquo versus
lsquoindividual justicersquo appears inevitably in the process of judicial interpretation I
will examine the theories that capture this kind of tension that accompany the
interpretation process and aim to feel out the possibilities of resolving this
tension At the end I come to the conclusion that these theories can explain but
cannot resolve this tension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If so the problem
which arises from the limitations of the interpretative methodologies from the
perspective that a judgersquos final decision greatly impacts citizens becomes a
problem of judicial ethics In order to ultimately justify the interpretation of the
judges the demands of judicial ethics must be satisfied Keeping this demand in
Professor College of Law School of Law Seoul National University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103
mind I point out that the significance of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is in
its role of bridging legal methodology to virtue ethics
Keywords independence of the judges conscience of the judges interpretive
method of law value judgment judicial virtue
8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그래서 ldquo상위단계의 법생성으로부터 하위단계의 법생
산으로의 전환은 단지 상위단계가 정해 놓은 범위를 채우는rdquo 활동으로서 이때
ldquo언제나 상위단계에는 없는 내용적 요소가 하위단계에 추가되어야만rdquo 한다44) 이
내용을 채우는 부분과 관련하여 상대적 불확실성이 생기는데 켈젠은 이 문제를
ldquo자유재량rdquo의 문제로 다룬다45) 이는 하트가 규칙의 체계로서의 법체계를 완결된
구조가 아닌 열린 구조로 봄으로써 상대적 불확실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법관의
재량사항으로 보는 것과 같다 하트의 경우 중심부와 주변부라는 극히 단순화된
이분법을 끌어들여 이 불확실성 문제를 처리하고자 했다면 켈젠의 경우는 인식작
용과 의지작용의 이분법을 끌어들임으로써 이 문제를 처리하고자 한 것이다
판결을 법관의 의지활동으로만 이해하는 입장을 취하게 되면 법관에게 결정에
대한 근거 제시 요청을 할 수 없게 된다 마치 신의 심판에 대해 근거 제시를 요구
할 수 없듯이 말이다 결국 켈젠의 법이론상으로는 해석은 법학의 문제가 아니며
그러므로 분석적 법실증주의와도 무관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46) 이런 이유에서 그
는 정당한 해석만이 허용된다는 주장이나 해석방법만으로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에
이를 수 있다는 주장을 거부하면서 심지어는 상위규범에 제시된 범위를 넘어서는
해석의 효력조차 적극적으로 인정함으로써 어느 의미에서는 해석이론의 존재기반
자체를 무너뜨린다47)
켈젠이나 하트가 법이론에서 해석의 의미를 축소한 이면에는 이분법이라는 과도
한 사유의 단순화가 놓여 있다 그러나 켈젠이 생각하는 것처럼 판단에서 인식적
요소와 의지적 요소의 확고한 경계가 유지되는지는 의문이다 또 중심부와 주변
부에 대한 하트의 주장도 지나친 단순화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어쨌거나
켈젠이 합리적인 해석방법을 추구하는 법이론의 효용가치를 한껏 떨어뜨렸다고
해서 이제 어차피 정답은 없으니 법대에 앉은 법관은 자기 임의로 무엇이든 해도
된다고 켈젠이 주장했을 리는 물론 없을 것이다 법이론의 과도한 정당성 주장을
거부하는 데서 오히려 순수법학의 비판적 잠재력을 찾을 수 있다고 보는 학자들은
여기서 켈젠이 강조한 순수화 즉 탈정치화는 법학에 관한 것이지 법 자체에 관한
44) Kelsen Allgemeine Staatslehre 243면 여기서 번역은 윤재왕 앞의 글 535-536면에서
재인용45) Kelsen 앞의 책 243면 이하46) 켈젠에 있어서 법해석은 이론상으로는 법학보다는 정치학이나 사회학에 속하는 문제
에 더 가깝다고 지적한 견해에 대해서는 론 풀러 앞의 책 312면 47) 이에 대해서는 윤재왕 앞의 글 553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3
주장이 아니었음을 상기시킨다48) 즉 법 자체는 결코 정치와 분리될 수 없다는
점에서 법실무에 대한 학문이론의 무가치성을 주장하는 순수법학은 실무의 법
적용자로 하여금 자신의 활동이 정치적 활동임을 깨닫고 책임을 느끼게 하는 계기
를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윤재왕 교수도 ldquo켈젠 해석이론의 배후rdquo로 들어가 방법
이론으로부터의 어떤 구속력도 거부되는 데서 생기는 공백을 켈젠이 법관 자신의
자기이해와 책임성 문제로 채운다고 지적한다 ldquo법관의 판결은 결코 순수한 것일
수 없으며 그런데도 자신의 판결이 순수한 인식의 소산이라고 강조한다면 이는
정치적 책임의 회피이고 동시에 이데올로기적이라는 혐의에 노출되지 않을 수
없다rdquo49) 이 문구가 켈젠 자신으로부터 나왔다면 아주 좋았을 것이다 자신의 직
무의 중요성과 책임에 대한 실천적 깨달음은 해석의 정당화를 목표로 하는 인식적
노력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켈젠의 순수법이론의 기획은 서로
붙어 있는 양면을 떼어 놓으면서 이것을 다시 붙일 수 있음을 보여주려 한 것일까
Ⅶ 법관의 해석활동 가치판단과 lsquo정답테제rsquo 문제
켈젠처럼 실증주의적 사고에 따르든 아니면 비실증주의적 사고에 따르든 가치
판단 문제에서 해석방법만으로는 하나의 정당한 결정을 도출할 수 없다고 생각한
다면 이는 해석의 차원에서 가치에 대한 이해 시도는 진리 추구와는 무관하다는
주장으로 귀결되는가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해석대상의 의미에 대한
관심과 최선의 이해에 대한 관심은 아무래도 진리 추구라는 목표를 향한다고 봐야
한다 법적 결정은 물론 법관의 권한에 속하지만 그것을 정당화해주는 원천은 법
관이라는 lsquo지위rsquo가 지니는 형식적 권한이 아니라 판결이 정당하다는 근거 제시에
있다 법판단을 정당화해주는 모델은 울프리드 노이만(Ulfrid Neumann)이 지적한
대로 권위를 통한 정당화모델보다는 진리를 통한 정당화모델에 더 가깝다50)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재판활동은 엄연히 사법권이라는 공권력의 작용이라는 점에서
독립적인 법관의 재판활동을 그 ldquo계획적이고 진지한 진리 탐구 활동rdquo적 측면 때문
48) 법학의 탈정치화를 ldquo정치적 허무주의rdquo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데 대해서는 켈젠 ldquo순수법학이란 무엇인가rdquo 젠법이론선집 280-282면
49) 윤재왕 앞의 글 559면50) 울프리드 노이만 ldquo법 진리 권위rdquo 2013 4 6 한국법철학회 강연문 참조
8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에 학문의 자유의 한 표현으로까지 보려는 것은 무리다51)
오늘날 가치상대주의 분위기는 실천적 물음에서 진리 도달가능성에 대한 회의를
과장한다 그러나 진리가 뭐냐는 빌라도의 물음에 비록 확신에 찬 대답을 못한다
하더라도 법에서 진리 내지 정당성 추구의 포기는 파국을 의미한다 국가권력
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도 진리라는 규제이념이 전제되기 때문
이다 독립된 사법부가 심급구조와 집단적 의사결정의 형태로 스스로의 시정 기구
를 가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물론 진리에 대한 주장은 잠정적이고 수정가능하다
lsquo참이냐 거짓이냐rsquo는 오로지 서술적 명제에만 한정하여 검증될 뿐이라는 협소한
학문관을 따른다면 법학은 학문 안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법
학이 그런 협소한 학문관을 받아들여야 할 필연성은 없다 법해석자는 자신의 해
석적 판단이 진리라는 주장을 무한정 내세우지는 못하면서도 진리 추구를 피할
수 없다52) 론 풀러(Lon Fuller)의 지적대로 ldquo법이론이 최고의 법적 권위를 엄격하
게 정의하는 일에 큰 비중을 두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이 점이 모호해지면 필경
전체로서의 법체계가 와해될 수 있다rdquo53)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법을 민주
주의의 언어로 설명하는 오늘날 의회와 행정처럼 다수결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기
관도 아닌 사법의 소수 전문 엘리트의 지배를 권위모델만으로 정당화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법을 준수하는 시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시민들은 자신에게 유죄
판결을 선고한 세속의 법관에게 그 유죄판결의 근거를 알고 싶다고 요구할 수 있
으며 물론 당연히 요구한다
법관은 판결에서 논증을 통해 최상의 근거 제시가 이루어진 결정을 해야 한다54)
51) ldquo일부 사람들 중에는 이러한 법원의 권력기관적 성질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
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helliphellip 가끔 법관의 일을 조용한 방에서 소송서
류를 꼼꼼하게 읽어 파악한 사실에다가 법을 논리적으로 적용하는 단순히 지적(知的)인 작업이라는 시각에서만 말씀하시는 분을 만나면 그 분에게 재판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법대에 앉아 있는 법관이 어떻게 보이는지 물어보고 싶어집니다rdquo 양창수 ldquo바람직한 법관상 - 기예와 지혜 사이rdquo lt근대사법 및 한성재판소 설립 120주년 기념
1895sim2015 소통컨퍼런스 역사에 비춰 본 바람직한 법관상gt 자료집(서울중앙지방법원 2015 5 11) 15면 ldquo계획적이고 진지한 진리 탐구 활동rdquo이라는 표현은 라드브루흐에서
나온다 구스타브 라드브루흐 법철학 최종고 옮김 삼영사(2011) 238면 52) 드워킨 앞의 책 208면 53) 론 풀러 앞의 책 211면 풀러의 문장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ldquo하지만 이 경우도
위로부터의 지시 또한 목적의식에서 비롯되는 지적 활동을 완전히 생략할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rdquo54) 물론 진리 요청과 관련하여 개별 법관의 관점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며 민주국가에서
포기될 수 없는 진리 요청은 법학을 포함한 법체계 전체로 하여금 진리 요청에 어떻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5
이때 정당한 근거 제시가 이루어진 결정과 관련하여 그것이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
이라는 주장을 펼 수 있는가 앞에서 검토한 대로 켈젠의 순수법이론은 그런 주장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이에 비해 드워킨은 법적 판단에 있어서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이 원칙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ldquo정답테제rdquo로 불리는 이 주장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학자들이 지적한 대로 존재사실에 대한 주장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하나의 ldquo규제이념rdquo으로 받아들이는 게 맞는 것 같다 즉 드워킨의 정답테제
는 ldquo유일하게 정당한 결정rdquo이 존재한다는 데 대한 이론적 탐구라기보다는 실무에
서의 법관의 주관적 태도에 부합하는 이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법관은 자신의 판결활동과 관련하여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모든 사건
에서 오직 하나의 결정만이 정당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 정답에 가까이 가기 위
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55)
드워킨의 말대로 가치판단이 참일 때는 그냥 참일 수가 없으며 그것이 참인
이유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즉 충분한 논거가 존재할 때 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라면 이러한 논거지움의 과정은 자명한 공리적
토대나 그런 토대 위에서 확립된 규칙이나 원리적 서열에 따라 명확하게 밝힐 수
없다 이런 불확실한 가운데도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논거지움은 포기될 수
없다 이 끝없는 정당화 부담 때문에 켈젠은 규범의 효력 근거에 관한 논의를 가
치에 관한 논의와 절연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물론 성공하지
못했다56)
가치판단을 해야 하는 부분이 법문화에서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요소로 작용할지
아니면 그 반대로 작용할지는 판단자로서의 법관의 역량과 연관하여 논해야 할 것
이다 필자는 가치판단적 요소가 법문화에서 당연히 긍정적 요소로 작용해야 하며
게 부응하는지 묻게 한다 따라서 사법부 외부에서 행하는 사법비판의 길이 열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대해서는 노이만 앞의 강연문 참조55) 노이만 앞의 강연문56) 규범의 효력을 불명확하고 상대적인 가치가 아닌 규범에 근거짓기 위해 켈젠이 고안
한 근본규범은 사유상으로만 전제된 규범일 뿐이었다 켈젠은 가치판단을 ldquo현실의 행
위가 객관적으로 효력 있는 규범에 맞게 존재해야 하는 대로 존재한다는 판단rdquo이라고
정의함으로써 가치판단이라는 용어 자체를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Reine Rechtslehre 2 Aufl (1960) 16면 이하 또한 켈젠은 규범이 인간의 의지에 의해
제정되는 한 그 규범에 의해 형성된 가치는 어차피 자의적일 뿐이라고 주장한다(18면) 규범과 가치의 관계에 대한 켈젠의 주장에 대해서는 오세혁 ldquo켈젠의 법이론에 있어서
규범과 가치 - 규범과 가치의 상관관계를 중심으로rdquo 법철학연구 제18권 제3호(2015) 97면 이하 참조
8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또한 그렇게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57) 그런 방향에서 이제 해석의 문제를 법
관의 자기이해 문제와 연관시켜 보기로 한다
Ⅷ 해석과 법관의 자기이해
법관은 추상적인 일반규칙을 가지고 공중의 이목을 끄는 개별적인 사건을 처리
하는 사람이다 법관의 의식활동에 의해 일반규칙과 일회적인 사건 사이의 심연이
메워진다 하지만 일반성과 개별성을 결합하는 이 의식과정에 동반하는 고유한 법
학적 방법에 대해서는 앞에서 지적한 대로 확실한 합의는 없다 ldquo리걸 마인드rdquo라
는 말이 풍기는 신비스러운 분위기에는 사법적 결정이 본질적으로 투명한 것이 되기
어렵다는 암시가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다 논리적인 형태만 부여하기로 한다면
한 사건에서 서로 상반된 결론에 이른 두 개의 판결문을 작성하는 것도 불가능
하지 않다58) 방법이 논리에 기초하는 것이라면 이때 논리는 형식논리를 넘어 엥기
쉬가 표현한 대로 ldquo실질에 부합하는rdquo 논리여야 할 것이다 참된 올바른 받아들
일 수 있는 결정에 이르는 실질논리 이 실질에 도달하기까지는 결코 논리적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지적 감행과 어떤 매개가 작용한다
일반규칙을 개별사례에 적용할 때 요구되는 판단자의 능력과 관련하여 가다머
(Hans-Georg Gadamer)는 이런 견해를 밝힌 적이 있다 판단자는 자신이 이미 가
57) 이와는 달리 가치의 ldquo통약불가능성rdquo 때문에 사법은 좋음이나 옳음의 이슈에 대해 실
질적 입장을 취하는 일에 대해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가치의 통약
불가능성에 대해서는 Cass R Sunstein ldquoImcommensurability and Valuation in Lawrdquo Michigan Law Review Vol 92 No 4 (1994) 779면 이하 조홍식 교수는 ldquo가치의 통약
불가능성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이 권리인가의 문제보다 무엇이 공익인가의 문제에서
더 크다rdquo고 지적하면서 기본적으로 가치판단과 관련한 사법통치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사법통치의 정당성과 한계 제2판 박영사(2010) 240면 가치의 통약불가능성에 대한 주장은 가치판단과 관련한 해석기준의 서열화는 불가능
하다는 주장과 같은 노선에 속한다 여기서 통약불가능성 문제를 자세히 다룰 수는
없다 다만 가치의 통약불가능성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통약불가능이 비교불가능을 의미
하지는 않는다는 점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체적인 맥락이 주어지는 경우 무엇이 옳은
지 혹은 그른지에 대해 심사숙고하며 이에 따라 선택하고 그 선택 결과를 받아들인
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정도만 지적하기로 한다 58) 실제로 판사가 판결문을 두 개 써왔다고 주장한 사건에 대한 보도가 있었다 ldquo판결문을
두 개 써왔다rdquo 조선일보 2013 11 21자 기사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7
지고 있어서 적용하기만 하면 된다는 그런 의미의 규범적 실천적 ldquo지식을 소유한
사람rdquo이라기보다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 ldquo지식을 탄생시키는 상황에 직면하는
사람rdquo이라는 것이다59) 일반범주를 개별사례에 적용할 때 요구되는 이 판단력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래서 칸트(Kant)도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ldquo지성은 규칙들
을 통해 배우고 보강할 수 있는 것이지만 판단력은 특수한 재능으로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전혀 아니고 단지 숙련될 수 있을 뿐이다rdquo60)
우리는 올바른 규칙이나 원리를 알고 있지만 막상 이것을 어떤 상황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예컨대 비례성원칙이나 과잉금지원칙에 대한 지식
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은 적정해야 하고 그 수단은 목적달
성을 위해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원칙을 특수한
상황에 lsquo적용rsquo한다고 할 때에 이 원칙이 그 어떤 판단도 배제할 정도로 자족적인
지침 구실을 한다고 느끼기는 어렵다 특정 상황에서 그 수단이 과연 어느 정도일
때가 목적달성에 적정한지는 판단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실천이성의 역
할이다
단의 자리는 이론 경험 양심이 혼재된 실천의 영역이다 판단을 통한 결정이
라는 그 lsquo종국성rsquo으로 인한 실천적 성격은 법학이 다른 어떤 학문분야와도 공유
하지 않는 법학 고유의 특징이다 그래서 법학은 lsquolegal sciencersquo로 불리기보다는
실천지- prudentia-를 함의하는 lsquojurisprudencersquo로 더 자주 불리어 왔을 것이다
해석의 차원에서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도 추상적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
으로는 행위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성과 개별성을 결합하는 해석적
지식은 추상적 이론적 지식들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일반규칙이나 원리
에 근거한 이론적 패턴의 지식과 특정한 상황 내지 맥락을 고려하는 실천적 패턴
의 지식의 이중주를 이룬다 법관이 지니는 통찰력의 특성은 이론과 태도가 함께
간다는 데 있다 그래서 사법적 판단에서는 규칙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 못지않게
사람 즉 법관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사법적 통찰력의 특성은
뭐니뭐니해도 개별 사례를 다룬다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개별적인 것들은 개별적
인 방식으로만 체험되고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들은 무엇
보다도 lsquo지각rsquo과 관계된다61) 즉 그것들은 일반적 체계적 지식의 대상이라기보다
59) Hans-Georg Gadamer Wahrheit und Methode Grundzuumlge einer philosophischen Hermeneutik 3 Aufl J C B MOHR (1972) 300면
60)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 1 백종현 옮김 아카넷(2009) 374면
8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는 우선 지각의 대상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도 사법적 통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쪽은 규칙보다는 오히려 사람 즉 법관 쪽인 것이다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사건에서 법적으로 중요한 사실이 무엇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규칙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어떤 규칙이 중요한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실이 중요한지 알
아야 한다 이 인식과정에서 법관은 불확실한 가운데서 무수한 선택을 감행한다
어떤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 배척하고 어떤 사실은 인정하거나 무게를 부
여하고 신청된 증거조사의 어떤 것은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거부하고helliphellip 사실
에 대한 이 취사선택-자유심증주의-의 결과로 새로운 것이 태어난다 그리고
이것에 의해 법원을 찾아온 사람들의 운명이 갈리는 것이다
법관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필자 생각에
독일의 법철학자 아르투어 카우프만(Arthur Kaufmann)의 해석학적 방법론은 법
관의 자기이해 문제를 해석학적 지평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법관의 해석작업의
본질을 잘 설명해주는 것 같다 가다머 계통의 철학적 해석학(philosophische
Hermeneutik)의 입장을 받아들이면서62) 카우프만은 법해석행위를 통해 포괄적인
의미에서 법관 자신의 인격 중의 어떤 것이 판결에 혼입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
61)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4면 그리고 1심에서
유죄였다가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강력범죄 540건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판단자
의 감지능력 차이가 법판단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힌 김상준 무죄
결과 법 의 사실인정 경인문화사(2013) 62) 텍스트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이해에 관한 연구분야인 해석학(hermeneutics Hermeneutik)
의 어원은 신들의 전령(傳令)인 Hermes라는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설명된다 이때 신의
의도를 인간에게 전하는 과정에서 언어의 제약성 시공간적 간격 전령의 역할 등과 관
련하여 해석의 문제가 생긴다고 본다 ldquoHermeneuticsrdquo Dictionary of Biblical Interpretation Nashville (1999) 497면 독일어의 Auslegung이 해석주체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대상
으로서의 텍스트에 대한 해석을 의미한다면(객관주의) 철학적 해석학에서의 해석
(Interpretation)은 해석주체의 주관성 내지 역사성이 대상에 투사된다는 의미가 강하다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에 따르면 역사적 존재인 인간에게 있어 모든 해석과 이해는 과
거와 현재가 lsquo작용사적으로(wirkungsgeschichtlich)rsquo 중재되는 사건으로서 lsquo선이해rsquo 내지
lsquo선판단rsquo 없이는 불가능하다 가다머는 선입견으로 폄하된 선이해를 재평가하고 이를
통해 근대 이래 lsquo방법rsquo을 통한 진리발견이 주체에 의한 객체의 대상화 내지 도구화를 가져
왔다고 비판하면서 인간경험에 있어서 진리에 이르는 길은 사물의 존재가 스스로 드러
나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해석과 이해는 전승된 존재방식으로서
의 텍스트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며 이는 텍스트 자체가 지닌 역사적 지평과 해석
자의 지평이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만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해석학적 순환 이해의 전제로서의 선이해 작용사 등에 대해서는 Gadamer 앞의 책 II Grundzuumlge einer Theorie der Hermeneutischen Erfahrung 참조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9
로 법관의 결정이 올바른가의 물음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가의 물음과 직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63)
우선 카우프만은 통상적으로 회자되는 독립적인 법관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즉 법 앞에 선 법관이 일체의 정치적 사회적 개인적 영향이나 선입견들로부터 차
단된 채 순수한 객관적 인식에 따라 그 이전에는 자신이 알 수 없었던 사실관계
를 판단하고 그런 다음에 법적 판단을 한다는 식으로 이해하기를 거부한다64)
그런 법관상은 법령집은 일체 해석의 필요가 없이 거의 모든 가능한 법률문제에
대한 대답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상정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법관은 의지가
없는 존재이며 사법권력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여기는 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법에 대한 인식은 단순히 사례를 법률에 포섭시킨다는 의미의 수
동적 행위가 아니고 해석자가 해석대상에 관여하면서 함께 lsquo형성rsquo하는 것이라고
본다 카우프만은 법관의 법형성력에 대한 자신의 견해가 주관주의의 의미로 받아
들여지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는데 왜냐하면 해석자는 텍스트를 지탱하는 모든
전통과 함께 이해의 지평으로 들어간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은 서류의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ldquo아 이런 사건이구나rdquo라고 감을 잡게 되
는데 카우프만에 따르면 이는 법관 자신이 사건 경과를 관찰해서 인지했다거나
언론 등을 통해 사건에 대한 상세한 지식을 얻었다는 뜻이 아니라 유사한 사건들
을 알며 그래서 ldquo선이해(Vorurteil Vorverstaumlndnis)rdquo65)를 가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
해의 전제로서 이런 선이해가 없다면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것이 무엇에 관한 사
건인지 알 수 없고 다른 사례와 비교할 수도 없기 때문에 올바른 판단에 이른다
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66) 이 선이해에 의해 해석은 언제나 해석주체의 자기
이해 즉 자신이 lsquo잠정적rsquo 결과로서 이미 예상했던 것을 논증적으로 근거짓는 활동
이라는 의미에서 ldquo해석학적 순환rdquo 내지 ldquo해석학적 나선구조rdquo 하에 이루어진다
63)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Festschrift fuumlr Karl Peters Mohr Siebeck (1974) 144면 법관의 독립과 양심 주제와 관련한 또 다른
글로는 Kaufmann ldquoGesetz und Rechtrdquo Existenz und Ordnung Festschrift fuumlr Erik Wolf (1962) 357면 이하
64)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4면 65) 해석학적 의미에서의 lsquo선이해rsquo는 일상 언어 관용에서는 lsquo선입견rsquo이나 lsquo편견rsquo 같은 부정
적 함의를 더 많이 지니기 때문에 카우프만은 lsquoVorurteilrsquo 대신에 Vorverstaumlndnis라는 용
어를 쓰기를 권장한다(앞의 글 148면) 카우프만 외에도 이 용어의 선택은 Josef Esser Vorverstaumlndnis und Methodenwahl in der Rechtsfindung 2 Aufl (Frankfurt aM 1972)
66)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7면
90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텍스트를 이해하려는 사람은 말하자면 언제나 초벌 그림을 그리며 특정 의미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텍스트를 읽기 때문에 ldquo텍스트에서 첫 번째 의미가 지시되자
마자 전체의 의미를 lsquo예비투사한다(vorauswirft)rsquordquo67) 그리고 선이해와 관련된 이 예
비투사는-해석학적 lsquo순환rsquo에 의해-원칙적으로 끝없이 검열과정을 거친다는 것
이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도 실제 판단과정에서는 분리
되지 않는다68)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은 시간적으로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단절 관계가 아니라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정제하고 상응하는
관계에 놓인다 즉 사실에 대한 인식 없이 규범적 인식은 불가능하며 또한 규범적
관점 없이 사실만을 통한 사실 확정도 불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법률도 법관의
해석을 만나기 전에는 ldquo잠재적인 가능태로서 주어진 법률rdquo일 뿐 해석학적 순환을
통한 정제 혹은 상응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ldquo진정한 실정법rdquo이 생성된다69) 이렇
게 특정사건을 통해 구체화된 규범(구성요건)과 이 규범을 통해 정해진 사실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법관에게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들과 함께 제3의 요소로서 법관
자신의 선이해 내지 이해 포괄적으로 말하면 그의 인격적 존재가 판단에 혼입
된다
lsquo선이해rsquo는 판단자가 자신의 선이해를 의식하지 못할 때 부정적 요소를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ldquo자신의 판단은 오로지 lsquo있는 그대로다rsquo라고 말하는 즉 lsquo오로지 법
률에만 구속된다rsquo라고 말하는 법관이야말로 실은 종속된 법관이다 왜냐하면 그는
성찰되지 않은 자신의 선이해와 거리를 둘 수 없기 때문이다rdquo70) 즉 법관은 자신
67)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68) 실제 판단과정에서 사실인정과 법률적용이 따로 떨어질 수 없다는 점은 굳이 카우프
만의 이론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실무상으로는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ldquo법률
의 적용과 사실의 인정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법률문제와 결부되어 인정된다 사실의 인정이 진행됨에 따라서 재판관의 머리
속에서는 어떠한 법규를 적용할 것인가 그 법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는 전망이
점차로 서게 되며 당사자 측도 경우에 따라서는 민사인 경우 청구의 취지를 변경할
것인가를 고려하게 되고 형사인 경우 공소사실을 변경하는 경우도 생긴다 요컨대 사실
문제와 법률문제는 실제과정에서 불가분으로 결부되어 있다 helliphellip 양쪽이 불가분으로
재판관의 직관 혹은 재판관의 전인격적인 작용에 의하여 사실의 인정과 법의 적용이
행하여지고 판결 삼단논법은 실제의 심판 과정에서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rdquo(사법
연수원 법조윤리론 35면) 69) ldquo법관의 해석 작업 이전에는 어느 의미에서 진정 법도 진정한 사실도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원자재들(Rohmaterialien)로만 이것들이 존재할 뿐이다rdquo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1
의 선이해를 의식하고 자신을 이데올로기 혐의 앞에 세울 줄 알 때 올바른 판결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ldquo법관이 자신의 선이해와 종속을 의식할수록 그래서 간주
관적 합의에 노력할수록 그는 더 객관적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rdquo71) 그러므로
법관의 주관주의의 위험은 카우프만식으로 말하면 가치판단 같은 성찰적 고려와
관련된 주관적 요소를 방법상의 근거 제시의 맥락에 끌어들이는 법관의 경우보다는
오히려 모든 것이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판결의 주관적
요소를 은폐하는 법관에게서 나타나는 위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학적 순환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법관은 ldquo법률의 입rdquo이 아니라 ldquo인격
으로서 판결을 떠받친다rdquo72) 판결은 법률과 법관의 인격의 혼성물이다 그러므로
법률은 판결을 위한 필요조건이기는 하나 충분조건은 아니라고도 말할 수 있다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순환이론은 법관의 독립과 양심의 문제 차원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법결정의 올바름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
는 정도에 달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자신을 올바르
게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자신의 판단력 경험 능력 인간에 대한 태도 감
수성 명예욕 등등
카우프만의 법해석학적 순환이론이 법관의 독립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이라
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독립은 법관 스스로 관철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론적으로 카우프만의 법해석이론의 의의는 법관이 자신의 선입견을
의식하는 것이야말로 법관의 독립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설득력있게 지적
해주며 그런 방향에서 법관의 법해석 작업을 재평가했다는 데 있다고 말할 수 있
겠다
70)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71) Arthur Kaufmann ldquoDer BGH und die Sitzblockaderdquo NJW (1988) 2581면 이하72) 이 표현은 Karl Peters의 Strafprozess - Ein Lehrbuch (1966) 99면에 나오며 여기서는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9면에서 재
인용했다 이덕연 교수도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에 입각하여 ldquo법관의 법해석작
업은 단순한 lsquo인식작업rsquo이나 lsquo언어분석작업rsquo이 아니라 ldquo구체적인 반성과 자기극복의
노력 속에서 온 인격을 걸고 진행하는 lsquo이해와 실천의 수행작업rsquordquo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앞의 글 352면)
9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Ⅸ 법관은 lsquo하는 사람rsquo인가 lsquo보는 사람rsquo인가
법관의 판단작업을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의 관점에서 주목했던 또 다른
철학자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다 그녀는 ldquo아이히만 재판rdquo을 계기로 판단의
특수한 경우로서의 판단력 문제를 연구했다73) 아렌트는 하드케이스와 연관시켜
법관의 판단력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74) 법관은 우선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을 반추하면서 판단에 임하는데 이때 판단자로서 그는 한 면으
로는 규칙에 따라 판단하라는 lsquo일반적 정의rsquo의 요구에 그리고 동시에 다른 한 면
으로는 정황에 맞게 판단하라는 lsquo개별적 정의rsquo의 요구에 처한다 이러한 상황은
아렌트에 따르면 하드케이스에서 특히 발생한다 이 이중적이고 모순적 요구 상황
을 아렌트는 법관의 판단에 적용되는 특수한 해석학 및 그 조건을 설명하는 출발
점으로 삼는다75) 하드케이스가 아닌 통상적인 사건에서는 이른바 포섭 여부를 판
단하는 것으로도 족하다 일반규칙에의 포섭 여부가 중심이 되는 이 단계에서의
판단력- lsquo규정하는 판단력(bestimmende Urteilskraft)rsquo-은 사실관계에서의 원인
이나 형식적 정의를 따지므로 일방적이고 간주관적 전제 없이도 가능하다 그래서
흔히 법관은 여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법을 해석해야 한다고 말할 때 이는
법적용을 이러한 지배적인 포섭모델에 입각하여 이해한 결과라 할 것이다 그런데
규칙으로부터 오는 어떤 어려움들 때문에 규정하는 판단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즉 포섭이 어렵거나 법흠결 시 또는 가치형량이 요구되는 하드케
이스에서는 법관은 어쩔 수 없이 앞에서 말한 모순문제를 다루어야만 한다 이때
아렌트는 법관이 사유의 확장을 통해 방법상으로 lsquo규정적 판단력rsquo을 스스로 교정
할 수 있는 lsquo성찰적 판단력rsquo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고 이 판단유형의 전환과정을
73) 법적 판단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 삼은 저술은 Hannah Arendt Eichmann in Jerusalem Ein Bericht von der Banalitaumlt des Boumlsen Erw Aufl (Muumlnchen 2001) 그리고 Hannah Arendt Das Urteilen Texte zu Kants Politischer Philosophie Hrsg v R Beiner Uumlbers v U Ludz (Muumlnchen 1998)
74) 아렌트가 염두에 둔 하드케이스는 라드브루흐가 이른바 ldquo법률적 불법rdquo 상태로 규정한
나치의 불법국가 상황으로서 이렇게 극히 예외적인 케이스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하드
케이스에 적용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별적 정의 요구에 부응함
으로써 예컨대 소급효를 금지하는 일반법률에 위배되는 상황과 유사한 갈등상황은 반
드시 극단적 상황에서만 생긴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75)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2 Bde Hrsg v U Ludz amp I Nordmann
따라서 그 척도는 전달가능성이며 거기에 딱 맞는 것은 공통감각(상식)이다rdquo77) 오
늘날 공통감각은 아렌트도 지적했듯이 더 이상 그것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얻고자 노력해야 하는 그 무엇이 되어버린 듯하다 그러나 공통감
각이 무너진 시대를 겪었던 아렌트는 사유의 전환 내지 확대를 위한 진정한 발판
을 다시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에서 구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78)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실천철학의 전통에서는 세계와의 관계 그리고 자기와의 관
계를 공통감각을 척도로 설정해가는 판단자가 lsquo하는 사람rsquo인지 아니면 lsquo보는 사람rsquo
인지 즉 lsquo행위자rsquo인지 아니면 lsquo관찰자rsquo인지를 둘러싸고 의견이 대립되어 왔다 lsquo하
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자가 lsquo정치가rsquo 쪽에 더 가깝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
자는 lsquo철학자rsquo 쪽에 더 가깝다 lsquo하는 사람rsquo은 주로 사회의 일반적 상식 건전한 인
간이해 세론(doxa)을 판단의 척도로 삼는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적 경험은 전체주
의 하에서는 건전한 인간이해도 집단화된 대중감정에 따른 오도된 인간이해 앞에
무너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판단에서 사실로서의 상식이나 합의 또는
법해석공동체 내부의 지배적 제도적 관점이라는 판단 척도만으로는 일반규칙으로
부터 오는 모순을 다루기 어렵다 여기서 판단자는 ldquo확대된 사유방식rdquo을 추구해야
하는데 아렌트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을 lsquo보는 사람rsquo의 판단과 결합시킴으로써 법
관을 위한 사유의 확대를 시도한다79) lsquo하는 사람rsquo이 사실로서의 일반적 상식이나
인간이해 차원에 비추어 판단한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ldquo이
상적 규범적 상식rdquo80)을 추구하고자 한다 판단을 거쳐 법적 효과를 결정하는 법관
76)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을 해석학적 순환이론을 적용하여 분석하면서 칸트의 판단력 비
판에 의거하여 아렌트가 판단력의 특수한 경우로서 법관의 ldquo성찰적 판단력rdquo이라는 새
로운 판단유형을 제시했다고 지적한 연구서로는 Stefanie Rosenmuumlller Der Ort des Rechts Gemeinsinn und richterliches Urteilen nach Hannah Arendt Nomos (2013) 참조
77) Hannah Arendt Das Urteilen 92-93면78) 아렌트가 판단의 차원을 심화시키는 발판으로 삼는 상식은 sensus communis로서
communis opinio와는 다르다는 데 대해서는 Marieke Borren ldquolsquoA Sense of the Worldrsquo Hannah Arendtrsquos Hermeneutic Phenomenology of Common Senserdquo International Journal of Philosophical Studies Vol 21 No 2 (2013) 225-255
79) Hannah Arendt Das Urteilen 76면80) Rosenmuumlller 앞의 책 234면 이하 여기서 아렌트는 상식개념을 이중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에서는 경험적 개념으로 보다 성찰적 판단
단계에서는 규범적 개념으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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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관찰자로서 판단하면서 동시에 행위자로서 판단에서 법적 결과를 결정하는
사람이다 관찰자인 동시에 행위자라는 이중적인 역할을 하면서 법관은 자신의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 반추한다81) 이 반추과정에서 법관은 한편으로는 포섭
하는 판단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고려해야 할 관점들을 끌어들이면서
자신의 직책을 마지막까지 수행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통제하면서 자신의 앞서의
(포섭) 판단을 정정해나간다 그래서 법관 자신이 lsquo보는 사람rsquo과 lsquo하는 사람rsquo의 만
남의 장소가 되는 것과도 같다 ldquo이 보는 사람은 모든 하는 사람 안에 자리 잡고
있다helliphellip이 비판적 판단능력이 없이는 행위자 혹은 해결자는 보는 사람으로부터
풀려나 종내는 지각되지조차 못하게 될 것이다rdquo82)
사람들은 자신 일에 있어서는 비당파적일 수는 없다 따라서 ldquo자신의 일에 대한
판단에서는 내면의 심판자 혹은 내면의 법정을 가질 수 없다rdquo83) 그러나 다른 사
람의 일을 반추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필히 비당파적이어야 하며 또 비당파적이 될
수 있다 이때 그는 비로소 내면의 심판자를 가지게 된다 즉 양심의 문제에 처하
게 되는 것이다 판단에 있어서 양심이라는 것 즉 양심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남
의 일에서 ldquo증인rdquo 혹은 ldquo비판적 친구rdquo로서 관찰하고 행위하는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이다84)
아렌트의 성찰적 판단모델은 나치 불법국가 경험의 산물이다 통상의 규칙이 파
괴된 상황 통상의 범죄유형에 포섭되지 않는 극히 예외적인 범죄적 상황에서 법
원은 기존의 판단척도를 해석학적 출발로 삼아서는 안 되고 이때에는 질적으로
동의가능한 합의형식을 찾기 위해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으로 돌아가
진정으로 사유 즉 철학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렌트가 판단을 일반화해주는
거점이자 해석학적 출발점으로 삼은 공통감각(상식) 개념은 칸트철학에서 ldquo비사교
적 사교성rdquo 개념의 위상과 비슷하다85) 이 지상에서 인간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다른 것을 원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모여 살아야만 하는 존재다 이 비사회성 요
청과 사회성 요청의 동시성 때문에 인간에게는 제도적인 안착이 더없이 중요하며
법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실존과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만든다 판단의 기
81) Leora Y Bilsky When Actor and Spectator Meet in the Courtroom Hannah Arendt and Eichmann in Jerusalem G N Arad Hg (Bloomington 1996) 137면
82) Hannah Arendt 앞의 책 85면83) Hannah Arendt 앞의 책 76면 84)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657면85) Rosenmuumlller 앞의 책 1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5
초를 보편적 인간경험에 둔다는 점에서 아렌트가 말하는 판단력은 드워킨의 헤라
클레스와 같은 초인적 천재성을 발휘하는 능력과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86) 아
렌트가 상정하는 이상적인 법관은 철학적이지만 철학자는 아니고 정치적이지만 정
치가는 아닌 사람이다
아렌트는 헌법국가의 권위도 상식개념에 기반을 두고 설명한다 그리고 민주적
정당성의 관점에서 입법의 우위를 인정하는 까닭에 성찰적 판단에 입각한 법관의
검증에는 한계가 있다는 태도를 견지한다87)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렌트가 제시한
법관의 성찰적 판단 유형에 대해서는 다양한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우선 이것이
예외 상황에서 적용되는 판단모델로 상정된 것이며 무엇보다도 ldquo규범적 상식rdquo에
대한 단일한 이해기반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법관 개인의 주관적 정치적 신념
이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길을 피할 수 없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성찰적
판단력은 결국 레토릭에 불과한 것인가 아렌트는 그러나 무엇이 ldquo특정 상황에 맞
는 공통감각(situierte Gemeinsinn)rdquo인지에 대한 공동의 인식은 가능하며 또 법관의
lsquo하는rsquo 판단에 들어있는 정치적 함의를 성찰적 판단력으로 검증하는 것도 가능하
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아렌트가 마지막 검증심급으로 원용하는 것이 바로 판
단에서의 양심의 심급이다 그것이 과연 동의할 수 있는 합의형태로서 충분한지를
스스로 검증하는 이 심급에서 판단자는 명령조로 자기에게 전해지는 소리를 듣게
된다 ldquo멈춰 나는 그것은 할 수 없어rdquo88) 판단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 멈추는 것
이 가능한 이 성찰적 심급에서는 칸트와 달리 할 수 없는 이유로써 결과도 고려
된다 lsquo보는 사람rsquo이 자기 안에서 지켜보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상황은 토마스 아퀴
나스의 양심론에 비추어 다음과 같이 묘사될 수도 있겠다 지적 본성을 가진 인간
존재가 보편법칙에 관한 지식을 개별 행위에 적용하기 위해 판단하고 선택할 때
행위자는 갈등 상황- ldquo그렇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rdquo는
상황-에 처하여 멈칫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데 이때 그는 단지 갈등하고
선택하는 역할만 하지 않고 갈등하고 선택하는 이 과정을 ldquo관찰하고 목격하는 증인rdquo
의 역할도 한다는 것89)
86) 드워킨에 의하면 해석적 탐구는 ldquo어떠한 증명도 허용치 않고 어떠한 수렴도 약속치
않는 탐구rdquo이다(드워킨 정의론 203면)87) Rosenmuumlller 앞의 책 30면88) Hannah Arendt Uumlber das Boumlse Eine Vorlesung zu Fragen der Ethik Hrsg v J Kohn
(Muumlnchen 2003) 52면89) 지적 행위자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자신의 내면의 갈등과 선택과정을 바라보는
9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Ⅹ 방법에서 덕목으로
헌법 제103조는 한 면으로는 헌법과 법률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 면으로 해석자에게 여하한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lsquo제약
의 차원rsquo과 lsquo자유의 차원rsquo을 동시에 담고 있다 법관은 자유로울 때에라도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며 법에 구속될 때에라도 전적으로 구속되지는 않는다는 뜻이
기도 하다 이 lsquo자유와 구속의 변증법rsquo에 비추어 지금까지 논한 주제에 대해 몇 가
지 입장을 정리해 보자 첫째 법관에게 있어서 독립은 확정된 원칙이나 그것자체
로서 달성해야 할 최종목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법관의 독립은 완성형이 아니라
끊임없는 진행형의 과제로서 그 직무수행에 대한 신뢰와 병행하여 점진적으로 이
루어지는 것이다 둘째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에 있어서 구속은 법률에 무조건 복종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판결에 대한 윤리 (내 ) 확신과 함께 법률에 복종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법관이 실정법률에 반하는 결정을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법
관은 객관성을 빌미로 법률 뒤에 숨는 익명적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
미하는 것이다 셋째 독립적인 법관의 양심은 lsquo법과 상충한다rsquo기보다는 lsquo법을 실
한다rsquo는 의미를 지닌다 넷째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서 반추하면서 lsquo하는
사람rsquo인 동시에 lsquo보는 사람rsquo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성찰 인 인물상으
로서만 설정될 수 있다
해석적 탐구는 우리의 이해를 넓히기 위해서 필요하지만 이해에서의 우리의 피
할 수 없는 한계를 깨닫기 위해서도 필요했는지 모른다 엥기쉬는 법해석방법론에
대한 저술의 마지막 부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ldquo방법론에 천착하다 보면
애초의 문제였던 법률로부터 훨씬 더 먼 곳으로 이끌려 간다rdquo 지금까지 필자는
법관의 법해석과 관련하여 방법론의 의의와 한계를 논하고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과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에 비추어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이 법해석론
의 불가결한 부분으로 들어가게 되는 이유도 밝혔다 그리고 해석적 차원에서의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는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행위를 목표로 하는
탐구라는 것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필자는 이 모든 논의들을 매개로 방법론이 우리를 더 멀리 덕
목론으로 데려가는 과정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드워킨의
상황에 대한 이 묘사 부분은 이경재 ldquo토마스 아퀴나스의 양심 개념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375면을 참조했다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7
헤라클레스를 잠시 불러올 필요가 있다 해석문제를 누구보다도 더 진지하게 다룬
드워킨은 마지막에 헤라클레스를 내세운다 주어진 사건에서 무엇이 법인지에
대해 도덕적 의식을 가지고 법실무 전체를 원리정합적으로 정당화하라는 요청에
부응하여 자신의 신념에 기초한 결정을 내리는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의 구성적
해석에서 법관의 양심이 기능하는 국면은 어디일까 송민경 판사는 드워킨의 구성
적 해석론에 입각하여 양심을 구체적 법논증과정의 일부로 포함시키면서 이때 양
심이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라는 지침으로 기능한다고 설명한다90)
그런데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는 지침으로 기능하는 것을 양심이라
고 보게 되면 양심의 문제는 논증적 합리성의 차원 즉 논증의 성공으로 종결짓게
된다 그러나 법적 결정의 정당성 문제는 법관의 입장에서는 논증의 성공 문제로
다루어지지만 법관의 성공적인 논증에 따른 판결의 결과로부터 영향을 받는 시민
의 입장에서 보면 성공적인 논증만으로는 해석이 정당화된다고 볼 수는 없다
성공적인 논증은 법적 결정의 정당화에 필수적이기는 하나 충분한 조건은 되지 못
한다 해석이 궁극적으로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사법적 도덕성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 사법적 도덕성은 헤라클레스가 지침으로 삼는 원리적 도덕성의 실현과는 다른
것이다 만약 패소한 시민이 다른 헤라클레스에게 갔더라면 즉 다른 법원리에 기
초한 신념을 토대로 다른 결정을 내린 다른 법관에게 갔다면 그는 승리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왜 헤라클레스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하
는지에 대한 답이 필요한 것이다91) 헤라클레스가 실무에 대한 최상의 정당화를
도모하는 법적 이상주의자라면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법원 문을 두드린 시민도
어느 의미에서 ldquo법이상주의자rdquo92)이다
법해석 작업의 주관의존성이라는 불가피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재판이라는 특수
한 공적 활동이 법관이라는 특수공직자에 의해 운영되고 유지된다는 것은 시민들
-소송에서 패한 시민들을 포함하여-편에서 보면 법을 해석하는 법관에 대한
신뢰가 전제된다는 것이다 법관의 독립적 활동은 법관의 특권 행사가 아니라 사
90) 송민경 앞의 글 38면 20면91) 사법적 덕목과 연관하여 이 부분을 다룬 글로는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5면 이하
92) 법원 문을 두드리는 시민에 대한 이 표현은 심헌섭 ldquo법조윤리의 좌표 거시적 관점에서 본 전문윤리로서의 법조윤리rdquo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편 法律家의 倫理와 責任 박영사
(2003)에 나온다
9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법과정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응당한 몫이 돌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존중하는 바탕에는 일종의 상호성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 그 또한
시민이기도 한 법관이 동료시민들에 대해 가지는 배려와 존중의 원칙이 그것이다
여기서 사법적 덕목에 대해 자세히 논할 수는 없다93) 예의 성실 신중 절제
용기 공정 겸손 의사소통 능력 형평 시민에 대한 배려와 존중 등등 이것들은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바탕을 이루는 양심의 덕목들일
것이다 양심이라는 단어가 그렇듯이 덕목이라는 단어도 오늘날 진부해진 표현
이며 거의 사라져가는 단어다 윤리적 태도로서의 덕목은 관찰하기도 배우기도
어렵다 그러나 올바른 판단과 결정이 법관이라는 개인을 거치지 않고 법령집
자체로부터 반사적으로 튀어나오지 않는 한 이 덕목들을 내면화하고 지향하려는
태도 없이는 lsquo종국적인rsquo 판단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써 필자는 헌법 제103조를 통해 법해석에서의 방법론의 문제가 덕목론이라
는 다음 과제로 이어진다는 점을 밝혔다고 생각한다
투고일 2016 4 6 심사완료일 2016 5 18 게재확정일 2016 5 20
93) 법관의 개별적인 덕목들과 이것들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는 박은정 강태경 김현섭 바람
직한 법관상의 정립과 실천 방안에 관한 연구 법원행정처(2015) 제5장 참조할 것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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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법과대학 편 法律家의 倫理와 責任 박영사(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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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ldquo해석과 정당화(下)rdquo 박정훈 역 법철학연구 제6권 제1호(2003)
100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로널드 드워킨 정의론 박경신 옮김 민음사(2015)
론 풀러 법의 도덕성 박은정 옮김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2015)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 1 백종현 옮김 아카넷(2009)
윤리형이상학 정 백종현 역 아카넷(2005)
칼 엥기쉬 법학방법론 안법영윤재왕 옮김 세창출판사(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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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stein Cass R ldquoImcommensurability and Valuation in Lawrdquo Michigan L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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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ltAbstractgt
Independence and Conscience of the Judges Based on
Interpretive Method for Article 103 of the Korean Constitution
Pak Un Jong
94)
In this paper I aim to discuss the problem of independence and conscience
of the judges as outlined in Article 103 of the Korean Constitution in the
context of the interpretive methodology
First of all this paper will look at the background in which the independence
of the judges has been institutionalized and also the problems regarding usual
explanation for conscience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And I will try to
reveal the characteristics and difficulties of the interpretive actions of the judges
especially in connection to the issue of value judgment This would require
pointing out the problems and limitations of the interpretive methodology and at
the same time defining the nature of tension embedded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namely the tension between the obligations of the judges to abide
the law versus the subjective internal demeanor of the judges This tension-
ridden condition reenacted by the demand to follow lsquogeneral justicersquo versus
lsquoindividual justicersquo appears inevitably in the process of judicial interpretation I
will examine the theories that capture this kind of tension that accompany the
interpretation process and aim to feel out the possibilities of resolving this
tension At the end I come to the conclusion that these theories can explain but
cannot resolve this tension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If so the problem
which arises from the limitations of the interpretative methodologies from the
perspective that a judgersquos final decision greatly impacts citizens becomes a
problem of judicial ethics In order to ultimately justify the interpretation of the
judges the demands of judicial ethics must be satisfied Keeping this demand in
Professor College of Law School of Law Seoul National University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103
mind I point out that the significance of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is in
its role of bridging legal methodology to virtue ethics
Keywords independence of the judges conscience of the judges interpretive
method of law value judgment judicial virtue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3
주장이 아니었음을 상기시킨다48) 즉 법 자체는 결코 정치와 분리될 수 없다는
점에서 법실무에 대한 학문이론의 무가치성을 주장하는 순수법학은 실무의 법
적용자로 하여금 자신의 활동이 정치적 활동임을 깨닫고 책임을 느끼게 하는 계기
를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윤재왕 교수도 ldquo켈젠 해석이론의 배후rdquo로 들어가 방법
이론으로부터의 어떤 구속력도 거부되는 데서 생기는 공백을 켈젠이 법관 자신의
자기이해와 책임성 문제로 채운다고 지적한다 ldquo법관의 판결은 결코 순수한 것일
수 없으며 그런데도 자신의 판결이 순수한 인식의 소산이라고 강조한다면 이는
정치적 책임의 회피이고 동시에 이데올로기적이라는 혐의에 노출되지 않을 수
없다rdquo49) 이 문구가 켈젠 자신으로부터 나왔다면 아주 좋았을 것이다 자신의 직
무의 중요성과 책임에 대한 실천적 깨달음은 해석의 정당화를 목표로 하는 인식적
노력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켈젠의 순수법이론의 기획은 서로
붙어 있는 양면을 떼어 놓으면서 이것을 다시 붙일 수 있음을 보여주려 한 것일까
Ⅶ 법관의 해석활동 가치판단과 lsquo정답테제rsquo 문제
켈젠처럼 실증주의적 사고에 따르든 아니면 비실증주의적 사고에 따르든 가치
판단 문제에서 해석방법만으로는 하나의 정당한 결정을 도출할 수 없다고 생각한
다면 이는 해석의 차원에서 가치에 대한 이해 시도는 진리 추구와는 무관하다는
주장으로 귀결되는가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해석대상의 의미에 대한
관심과 최선의 이해에 대한 관심은 아무래도 진리 추구라는 목표를 향한다고 봐야
한다 법적 결정은 물론 법관의 권한에 속하지만 그것을 정당화해주는 원천은 법
관이라는 lsquo지위rsquo가 지니는 형식적 권한이 아니라 판결이 정당하다는 근거 제시에
있다 법판단을 정당화해주는 모델은 울프리드 노이만(Ulfrid Neumann)이 지적한
대로 권위를 통한 정당화모델보다는 진리를 통한 정당화모델에 더 가깝다50)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재판활동은 엄연히 사법권이라는 공권력의 작용이라는 점에서
독립적인 법관의 재판활동을 그 ldquo계획적이고 진지한 진리 탐구 활동rdquo적 측면 때문
48) 법학의 탈정치화를 ldquo정치적 허무주의rdquo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데 대해서는 켈젠 ldquo순수법학이란 무엇인가rdquo 젠법이론선집 280-282면
49) 윤재왕 앞의 글 559면50) 울프리드 노이만 ldquo법 진리 권위rdquo 2013 4 6 한국법철학회 강연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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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학문의 자유의 한 표현으로까지 보려는 것은 무리다51)
오늘날 가치상대주의 분위기는 실천적 물음에서 진리 도달가능성에 대한 회의를
과장한다 그러나 진리가 뭐냐는 빌라도의 물음에 비록 확신에 찬 대답을 못한다
하더라도 법에서 진리 내지 정당성 추구의 포기는 파국을 의미한다 국가권력
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도 진리라는 규제이념이 전제되기 때문
이다 독립된 사법부가 심급구조와 집단적 의사결정의 형태로 스스로의 시정 기구
를 가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물론 진리에 대한 주장은 잠정적이고 수정가능하다
lsquo참이냐 거짓이냐rsquo는 오로지 서술적 명제에만 한정하여 검증될 뿐이라는 협소한
학문관을 따른다면 법학은 학문 안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법
학이 그런 협소한 학문관을 받아들여야 할 필연성은 없다 법해석자는 자신의 해
석적 판단이 진리라는 주장을 무한정 내세우지는 못하면서도 진리 추구를 피할
수 없다52) 론 풀러(Lon Fuller)의 지적대로 ldquo법이론이 최고의 법적 권위를 엄격하
게 정의하는 일에 큰 비중을 두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이 점이 모호해지면 필경
전체로서의 법체계가 와해될 수 있다rdquo53)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법을 민주
주의의 언어로 설명하는 오늘날 의회와 행정처럼 다수결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기
관도 아닌 사법의 소수 전문 엘리트의 지배를 권위모델만으로 정당화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법을 준수하는 시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시민들은 자신에게 유죄
판결을 선고한 세속의 법관에게 그 유죄판결의 근거를 알고 싶다고 요구할 수 있
으며 물론 당연히 요구한다
법관은 판결에서 논증을 통해 최상의 근거 제시가 이루어진 결정을 해야 한다54)
51) ldquo일부 사람들 중에는 이러한 법원의 권력기관적 성질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
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helliphellip 가끔 법관의 일을 조용한 방에서 소송서
류를 꼼꼼하게 읽어 파악한 사실에다가 법을 논리적으로 적용하는 단순히 지적(知的)인 작업이라는 시각에서만 말씀하시는 분을 만나면 그 분에게 재판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법대에 앉아 있는 법관이 어떻게 보이는지 물어보고 싶어집니다rdquo 양창수 ldquo바람직한 법관상 - 기예와 지혜 사이rdquo lt근대사법 및 한성재판소 설립 120주년 기념
1895sim2015 소통컨퍼런스 역사에 비춰 본 바람직한 법관상gt 자료집(서울중앙지방법원 2015 5 11) 15면 ldquo계획적이고 진지한 진리 탐구 활동rdquo이라는 표현은 라드브루흐에서
나온다 구스타브 라드브루흐 법철학 최종고 옮김 삼영사(2011) 238면 52) 드워킨 앞의 책 208면 53) 론 풀러 앞의 책 211면 풀러의 문장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ldquo하지만 이 경우도
위로부터의 지시 또한 목적의식에서 비롯되는 지적 활동을 완전히 생략할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rdquo54) 물론 진리 요청과 관련하여 개별 법관의 관점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며 민주국가에서
포기될 수 없는 진리 요청은 법학을 포함한 법체계 전체로 하여금 진리 요청에 어떻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5
이때 정당한 근거 제시가 이루어진 결정과 관련하여 그것이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
이라는 주장을 펼 수 있는가 앞에서 검토한 대로 켈젠의 순수법이론은 그런 주장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이에 비해 드워킨은 법적 판단에 있어서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이 원칙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ldquo정답테제rdquo로 불리는 이 주장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학자들이 지적한 대로 존재사실에 대한 주장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하나의 ldquo규제이념rdquo으로 받아들이는 게 맞는 것 같다 즉 드워킨의 정답테제
는 ldquo유일하게 정당한 결정rdquo이 존재한다는 데 대한 이론적 탐구라기보다는 실무에
서의 법관의 주관적 태도에 부합하는 이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법관은 자신의 판결활동과 관련하여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모든 사건
에서 오직 하나의 결정만이 정당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 정답에 가까이 가기 위
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55)
드워킨의 말대로 가치판단이 참일 때는 그냥 참일 수가 없으며 그것이 참인
이유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즉 충분한 논거가 존재할 때 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라면 이러한 논거지움의 과정은 자명한 공리적
토대나 그런 토대 위에서 확립된 규칙이나 원리적 서열에 따라 명확하게 밝힐 수
없다 이런 불확실한 가운데도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논거지움은 포기될 수
없다 이 끝없는 정당화 부담 때문에 켈젠은 규범의 효력 근거에 관한 논의를 가
치에 관한 논의와 절연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물론 성공하지
못했다56)
가치판단을 해야 하는 부분이 법문화에서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요소로 작용할지
아니면 그 반대로 작용할지는 판단자로서의 법관의 역량과 연관하여 논해야 할 것
이다 필자는 가치판단적 요소가 법문화에서 당연히 긍정적 요소로 작용해야 하며
게 부응하는지 묻게 한다 따라서 사법부 외부에서 행하는 사법비판의 길이 열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대해서는 노이만 앞의 강연문 참조55) 노이만 앞의 강연문56) 규범의 효력을 불명확하고 상대적인 가치가 아닌 규범에 근거짓기 위해 켈젠이 고안
한 근본규범은 사유상으로만 전제된 규범일 뿐이었다 켈젠은 가치판단을 ldquo현실의 행
위가 객관적으로 효력 있는 규범에 맞게 존재해야 하는 대로 존재한다는 판단rdquo이라고
정의함으로써 가치판단이라는 용어 자체를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Reine Rechtslehre 2 Aufl (1960) 16면 이하 또한 켈젠은 규범이 인간의 의지에 의해
제정되는 한 그 규범에 의해 형성된 가치는 어차피 자의적일 뿐이라고 주장한다(18면) 규범과 가치의 관계에 대한 켈젠의 주장에 대해서는 오세혁 ldquo켈젠의 법이론에 있어서
규범과 가치 - 규범과 가치의 상관관계를 중심으로rdquo 법철학연구 제18권 제3호(2015) 97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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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렇게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57) 그런 방향에서 이제 해석의 문제를 법
관의 자기이해 문제와 연관시켜 보기로 한다
Ⅷ 해석과 법관의 자기이해
법관은 추상적인 일반규칙을 가지고 공중의 이목을 끄는 개별적인 사건을 처리
하는 사람이다 법관의 의식활동에 의해 일반규칙과 일회적인 사건 사이의 심연이
메워진다 하지만 일반성과 개별성을 결합하는 이 의식과정에 동반하는 고유한 법
학적 방법에 대해서는 앞에서 지적한 대로 확실한 합의는 없다 ldquo리걸 마인드rdquo라
는 말이 풍기는 신비스러운 분위기에는 사법적 결정이 본질적으로 투명한 것이 되기
어렵다는 암시가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다 논리적인 형태만 부여하기로 한다면
한 사건에서 서로 상반된 결론에 이른 두 개의 판결문을 작성하는 것도 불가능
하지 않다58) 방법이 논리에 기초하는 것이라면 이때 논리는 형식논리를 넘어 엥기
쉬가 표현한 대로 ldquo실질에 부합하는rdquo 논리여야 할 것이다 참된 올바른 받아들
일 수 있는 결정에 이르는 실질논리 이 실질에 도달하기까지는 결코 논리적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지적 감행과 어떤 매개가 작용한다
일반규칙을 개별사례에 적용할 때 요구되는 판단자의 능력과 관련하여 가다머
(Hans-Georg Gadamer)는 이런 견해를 밝힌 적이 있다 판단자는 자신이 이미 가
57) 이와는 달리 가치의 ldquo통약불가능성rdquo 때문에 사법은 좋음이나 옳음의 이슈에 대해 실
질적 입장을 취하는 일에 대해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가치의 통약
불가능성에 대해서는 Cass R Sunstein ldquoImcommensurability and Valuation in Lawrdquo Michigan Law Review Vol 92 No 4 (1994) 779면 이하 조홍식 교수는 ldquo가치의 통약
불가능성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이 권리인가의 문제보다 무엇이 공익인가의 문제에서
더 크다rdquo고 지적하면서 기본적으로 가치판단과 관련한 사법통치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사법통치의 정당성과 한계 제2판 박영사(2010) 240면 가치의 통약불가능성에 대한 주장은 가치판단과 관련한 해석기준의 서열화는 불가능
하다는 주장과 같은 노선에 속한다 여기서 통약불가능성 문제를 자세히 다룰 수는
없다 다만 가치의 통약불가능성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통약불가능이 비교불가능을 의미
하지는 않는다는 점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체적인 맥락이 주어지는 경우 무엇이 옳은
지 혹은 그른지에 대해 심사숙고하며 이에 따라 선택하고 그 선택 결과를 받아들인
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정도만 지적하기로 한다 58) 실제로 판사가 판결문을 두 개 써왔다고 주장한 사건에 대한 보도가 있었다 ldquo판결문을
두 개 써왔다rdquo 조선일보 2013 11 21자 기사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7
지고 있어서 적용하기만 하면 된다는 그런 의미의 규범적 실천적 ldquo지식을 소유한
사람rdquo이라기보다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 ldquo지식을 탄생시키는 상황에 직면하는
사람rdquo이라는 것이다59) 일반범주를 개별사례에 적용할 때 요구되는 이 판단력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래서 칸트(Kant)도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ldquo지성은 규칙들
을 통해 배우고 보강할 수 있는 것이지만 판단력은 특수한 재능으로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전혀 아니고 단지 숙련될 수 있을 뿐이다rdquo60)
우리는 올바른 규칙이나 원리를 알고 있지만 막상 이것을 어떤 상황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예컨대 비례성원칙이나 과잉금지원칙에 대한 지식
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은 적정해야 하고 그 수단은 목적달
성을 위해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원칙을 특수한
상황에 lsquo적용rsquo한다고 할 때에 이 원칙이 그 어떤 판단도 배제할 정도로 자족적인
지침 구실을 한다고 느끼기는 어렵다 특정 상황에서 그 수단이 과연 어느 정도일
때가 목적달성에 적정한지는 판단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실천이성의 역
할이다
단의 자리는 이론 경험 양심이 혼재된 실천의 영역이다 판단을 통한 결정이
라는 그 lsquo종국성rsquo으로 인한 실천적 성격은 법학이 다른 어떤 학문분야와도 공유
하지 않는 법학 고유의 특징이다 그래서 법학은 lsquolegal sciencersquo로 불리기보다는
실천지- prudentia-를 함의하는 lsquojurisprudencersquo로 더 자주 불리어 왔을 것이다
해석의 차원에서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도 추상적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
으로는 행위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성과 개별성을 결합하는 해석적
지식은 추상적 이론적 지식들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일반규칙이나 원리
에 근거한 이론적 패턴의 지식과 특정한 상황 내지 맥락을 고려하는 실천적 패턴
의 지식의 이중주를 이룬다 법관이 지니는 통찰력의 특성은 이론과 태도가 함께
간다는 데 있다 그래서 사법적 판단에서는 규칙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 못지않게
사람 즉 법관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사법적 통찰력의 특성은
뭐니뭐니해도 개별 사례를 다룬다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개별적인 것들은 개별적
인 방식으로만 체험되고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들은 무엇
보다도 lsquo지각rsquo과 관계된다61) 즉 그것들은 일반적 체계적 지식의 대상이라기보다
59) Hans-Georg Gadamer Wahrheit und Methode Grundzuumlge einer philosophischen Hermeneutik 3 Aufl J C B MOHR (1972) 300면
60)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 1 백종현 옮김 아카넷(2009) 374면
8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는 우선 지각의 대상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도 사법적 통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쪽은 규칙보다는 오히려 사람 즉 법관 쪽인 것이다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사건에서 법적으로 중요한 사실이 무엇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규칙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어떤 규칙이 중요한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실이 중요한지 알
아야 한다 이 인식과정에서 법관은 불확실한 가운데서 무수한 선택을 감행한다
어떤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 배척하고 어떤 사실은 인정하거나 무게를 부
여하고 신청된 증거조사의 어떤 것은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거부하고helliphellip 사실
에 대한 이 취사선택-자유심증주의-의 결과로 새로운 것이 태어난다 그리고
이것에 의해 법원을 찾아온 사람들의 운명이 갈리는 것이다
법관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필자 생각에
독일의 법철학자 아르투어 카우프만(Arthur Kaufmann)의 해석학적 방법론은 법
관의 자기이해 문제를 해석학적 지평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법관의 해석작업의
본질을 잘 설명해주는 것 같다 가다머 계통의 철학적 해석학(philosophische
Hermeneutik)의 입장을 받아들이면서62) 카우프만은 법해석행위를 통해 포괄적인
의미에서 법관 자신의 인격 중의 어떤 것이 판결에 혼입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
61)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4면 그리고 1심에서
유죄였다가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강력범죄 540건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판단자
의 감지능력 차이가 법판단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힌 김상준 무죄
결과 법 의 사실인정 경인문화사(2013) 62) 텍스트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이해에 관한 연구분야인 해석학(hermeneutics Hermeneutik)
의 어원은 신들의 전령(傳令)인 Hermes라는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설명된다 이때 신의
의도를 인간에게 전하는 과정에서 언어의 제약성 시공간적 간격 전령의 역할 등과 관
련하여 해석의 문제가 생긴다고 본다 ldquoHermeneuticsrdquo Dictionary of Biblical Interpretation Nashville (1999) 497면 독일어의 Auslegung이 해석주체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대상
으로서의 텍스트에 대한 해석을 의미한다면(객관주의) 철학적 해석학에서의 해석
(Interpretation)은 해석주체의 주관성 내지 역사성이 대상에 투사된다는 의미가 강하다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에 따르면 역사적 존재인 인간에게 있어 모든 해석과 이해는 과
거와 현재가 lsquo작용사적으로(wirkungsgeschichtlich)rsquo 중재되는 사건으로서 lsquo선이해rsquo 내지
lsquo선판단rsquo 없이는 불가능하다 가다머는 선입견으로 폄하된 선이해를 재평가하고 이를
통해 근대 이래 lsquo방법rsquo을 통한 진리발견이 주체에 의한 객체의 대상화 내지 도구화를 가져
왔다고 비판하면서 인간경험에 있어서 진리에 이르는 길은 사물의 존재가 스스로 드러
나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해석과 이해는 전승된 존재방식으로서
의 텍스트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며 이는 텍스트 자체가 지닌 역사적 지평과 해석
자의 지평이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만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해석학적 순환 이해의 전제로서의 선이해 작용사 등에 대해서는 Gadamer 앞의 책 II Grundzuumlge einer Theorie der Hermeneutischen Erfahrung 참조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9
로 법관의 결정이 올바른가의 물음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가의 물음과 직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63)
우선 카우프만은 통상적으로 회자되는 독립적인 법관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즉 법 앞에 선 법관이 일체의 정치적 사회적 개인적 영향이나 선입견들로부터 차
단된 채 순수한 객관적 인식에 따라 그 이전에는 자신이 알 수 없었던 사실관계
를 판단하고 그런 다음에 법적 판단을 한다는 식으로 이해하기를 거부한다64)
그런 법관상은 법령집은 일체 해석의 필요가 없이 거의 모든 가능한 법률문제에
대한 대답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상정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법관은 의지가
없는 존재이며 사법권력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여기는 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법에 대한 인식은 단순히 사례를 법률에 포섭시킨다는 의미의 수
동적 행위가 아니고 해석자가 해석대상에 관여하면서 함께 lsquo형성rsquo하는 것이라고
본다 카우프만은 법관의 법형성력에 대한 자신의 견해가 주관주의의 의미로 받아
들여지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는데 왜냐하면 해석자는 텍스트를 지탱하는 모든
전통과 함께 이해의 지평으로 들어간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은 서류의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ldquo아 이런 사건이구나rdquo라고 감을 잡게 되
는데 카우프만에 따르면 이는 법관 자신이 사건 경과를 관찰해서 인지했다거나
언론 등을 통해 사건에 대한 상세한 지식을 얻었다는 뜻이 아니라 유사한 사건들
을 알며 그래서 ldquo선이해(Vorurteil Vorverstaumlndnis)rdquo65)를 가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
해의 전제로서 이런 선이해가 없다면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것이 무엇에 관한 사
건인지 알 수 없고 다른 사례와 비교할 수도 없기 때문에 올바른 판단에 이른다
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66) 이 선이해에 의해 해석은 언제나 해석주체의 자기
이해 즉 자신이 lsquo잠정적rsquo 결과로서 이미 예상했던 것을 논증적으로 근거짓는 활동
이라는 의미에서 ldquo해석학적 순환rdquo 내지 ldquo해석학적 나선구조rdquo 하에 이루어진다
63)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Festschrift fuumlr Karl Peters Mohr Siebeck (1974) 144면 법관의 독립과 양심 주제와 관련한 또 다른
글로는 Kaufmann ldquoGesetz und Rechtrdquo Existenz und Ordnung Festschrift fuumlr Erik Wolf (1962) 357면 이하
64)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4면 65) 해석학적 의미에서의 lsquo선이해rsquo는 일상 언어 관용에서는 lsquo선입견rsquo이나 lsquo편견rsquo 같은 부정
적 함의를 더 많이 지니기 때문에 카우프만은 lsquoVorurteilrsquo 대신에 Vorverstaumlndnis라는 용
어를 쓰기를 권장한다(앞의 글 148면) 카우프만 외에도 이 용어의 선택은 Josef Esser Vorverstaumlndnis und Methodenwahl in der Rechtsfindung 2 Aufl (Frankfurt aM 1972)
66)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7면
90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텍스트를 이해하려는 사람은 말하자면 언제나 초벌 그림을 그리며 특정 의미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텍스트를 읽기 때문에 ldquo텍스트에서 첫 번째 의미가 지시되자
마자 전체의 의미를 lsquo예비투사한다(vorauswirft)rsquordquo67) 그리고 선이해와 관련된 이 예
비투사는-해석학적 lsquo순환rsquo에 의해-원칙적으로 끝없이 검열과정을 거친다는 것
이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도 실제 판단과정에서는 분리
되지 않는다68)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은 시간적으로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단절 관계가 아니라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정제하고 상응하는
관계에 놓인다 즉 사실에 대한 인식 없이 규범적 인식은 불가능하며 또한 규범적
관점 없이 사실만을 통한 사실 확정도 불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법률도 법관의
해석을 만나기 전에는 ldquo잠재적인 가능태로서 주어진 법률rdquo일 뿐 해석학적 순환을
통한 정제 혹은 상응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ldquo진정한 실정법rdquo이 생성된다69) 이렇
게 특정사건을 통해 구체화된 규범(구성요건)과 이 규범을 통해 정해진 사실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법관에게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들과 함께 제3의 요소로서 법관
자신의 선이해 내지 이해 포괄적으로 말하면 그의 인격적 존재가 판단에 혼입
된다
lsquo선이해rsquo는 판단자가 자신의 선이해를 의식하지 못할 때 부정적 요소를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ldquo자신의 판단은 오로지 lsquo있는 그대로다rsquo라고 말하는 즉 lsquo오로지 법
률에만 구속된다rsquo라고 말하는 법관이야말로 실은 종속된 법관이다 왜냐하면 그는
성찰되지 않은 자신의 선이해와 거리를 둘 수 없기 때문이다rdquo70) 즉 법관은 자신
67)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68) 실제 판단과정에서 사실인정과 법률적용이 따로 떨어질 수 없다는 점은 굳이 카우프
만의 이론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실무상으로는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ldquo법률
의 적용과 사실의 인정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법률문제와 결부되어 인정된다 사실의 인정이 진행됨에 따라서 재판관의 머리
속에서는 어떠한 법규를 적용할 것인가 그 법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는 전망이
점차로 서게 되며 당사자 측도 경우에 따라서는 민사인 경우 청구의 취지를 변경할
것인가를 고려하게 되고 형사인 경우 공소사실을 변경하는 경우도 생긴다 요컨대 사실
문제와 법률문제는 실제과정에서 불가분으로 결부되어 있다 helliphellip 양쪽이 불가분으로
재판관의 직관 혹은 재판관의 전인격적인 작용에 의하여 사실의 인정과 법의 적용이
행하여지고 판결 삼단논법은 실제의 심판 과정에서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rdquo(사법
연수원 법조윤리론 35면) 69) ldquo법관의 해석 작업 이전에는 어느 의미에서 진정 법도 진정한 사실도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원자재들(Rohmaterialien)로만 이것들이 존재할 뿐이다rdquo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1
의 선이해를 의식하고 자신을 이데올로기 혐의 앞에 세울 줄 알 때 올바른 판결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ldquo법관이 자신의 선이해와 종속을 의식할수록 그래서 간주
관적 합의에 노력할수록 그는 더 객관적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rdquo71) 그러므로
법관의 주관주의의 위험은 카우프만식으로 말하면 가치판단 같은 성찰적 고려와
관련된 주관적 요소를 방법상의 근거 제시의 맥락에 끌어들이는 법관의 경우보다는
오히려 모든 것이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판결의 주관적
요소를 은폐하는 법관에게서 나타나는 위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학적 순환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법관은 ldquo법률의 입rdquo이 아니라 ldquo인격
으로서 판결을 떠받친다rdquo72) 판결은 법률과 법관의 인격의 혼성물이다 그러므로
법률은 판결을 위한 필요조건이기는 하나 충분조건은 아니라고도 말할 수 있다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순환이론은 법관의 독립과 양심의 문제 차원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법결정의 올바름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
는 정도에 달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자신을 올바르
게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자신의 판단력 경험 능력 인간에 대한 태도 감
수성 명예욕 등등
카우프만의 법해석학적 순환이론이 법관의 독립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이라
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독립은 법관 스스로 관철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론적으로 카우프만의 법해석이론의 의의는 법관이 자신의 선입견을
의식하는 것이야말로 법관의 독립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설득력있게 지적
해주며 그런 방향에서 법관의 법해석 작업을 재평가했다는 데 있다고 말할 수 있
겠다
70)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71) Arthur Kaufmann ldquoDer BGH und die Sitzblockaderdquo NJW (1988) 2581면 이하72) 이 표현은 Karl Peters의 Strafprozess - Ein Lehrbuch (1966) 99면에 나오며 여기서는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9면에서 재
인용했다 이덕연 교수도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에 입각하여 ldquo법관의 법해석작
업은 단순한 lsquo인식작업rsquo이나 lsquo언어분석작업rsquo이 아니라 ldquo구체적인 반성과 자기극복의
노력 속에서 온 인격을 걸고 진행하는 lsquo이해와 실천의 수행작업rsquordquo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앞의 글 352면)
9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Ⅸ 법관은 lsquo하는 사람rsquo인가 lsquo보는 사람rsquo인가
법관의 판단작업을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의 관점에서 주목했던 또 다른
철학자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다 그녀는 ldquo아이히만 재판rdquo을 계기로 판단의
특수한 경우로서의 판단력 문제를 연구했다73) 아렌트는 하드케이스와 연관시켜
법관의 판단력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74) 법관은 우선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을 반추하면서 판단에 임하는데 이때 판단자로서 그는 한 면으
로는 규칙에 따라 판단하라는 lsquo일반적 정의rsquo의 요구에 그리고 동시에 다른 한 면
으로는 정황에 맞게 판단하라는 lsquo개별적 정의rsquo의 요구에 처한다 이러한 상황은
아렌트에 따르면 하드케이스에서 특히 발생한다 이 이중적이고 모순적 요구 상황
을 아렌트는 법관의 판단에 적용되는 특수한 해석학 및 그 조건을 설명하는 출발
점으로 삼는다75) 하드케이스가 아닌 통상적인 사건에서는 이른바 포섭 여부를 판
단하는 것으로도 족하다 일반규칙에의 포섭 여부가 중심이 되는 이 단계에서의
판단력- lsquo규정하는 판단력(bestimmende Urteilskraft)rsquo-은 사실관계에서의 원인
이나 형식적 정의를 따지므로 일방적이고 간주관적 전제 없이도 가능하다 그래서
흔히 법관은 여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법을 해석해야 한다고 말할 때 이는
법적용을 이러한 지배적인 포섭모델에 입각하여 이해한 결과라 할 것이다 그런데
규칙으로부터 오는 어떤 어려움들 때문에 규정하는 판단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즉 포섭이 어렵거나 법흠결 시 또는 가치형량이 요구되는 하드케
이스에서는 법관은 어쩔 수 없이 앞에서 말한 모순문제를 다루어야만 한다 이때
아렌트는 법관이 사유의 확장을 통해 방법상으로 lsquo규정적 판단력rsquo을 스스로 교정
할 수 있는 lsquo성찰적 판단력rsquo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고 이 판단유형의 전환과정을
73) 법적 판단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 삼은 저술은 Hannah Arendt Eichmann in Jerusalem Ein Bericht von der Banalitaumlt des Boumlsen Erw Aufl (Muumlnchen 2001) 그리고 Hannah Arendt Das Urteilen Texte zu Kants Politischer Philosophie Hrsg v R Beiner Uumlbers v U Ludz (Muumlnchen 1998)
74) 아렌트가 염두에 둔 하드케이스는 라드브루흐가 이른바 ldquo법률적 불법rdquo 상태로 규정한
나치의 불법국가 상황으로서 이렇게 극히 예외적인 케이스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하드
케이스에 적용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별적 정의 요구에 부응함
으로써 예컨대 소급효를 금지하는 일반법률에 위배되는 상황과 유사한 갈등상황은 반
드시 극단적 상황에서만 생긴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75)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2 Bde Hrsg v U Ludz amp I Nordmann
따라서 그 척도는 전달가능성이며 거기에 딱 맞는 것은 공통감각(상식)이다rdquo77) 오
늘날 공통감각은 아렌트도 지적했듯이 더 이상 그것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얻고자 노력해야 하는 그 무엇이 되어버린 듯하다 그러나 공통감
각이 무너진 시대를 겪었던 아렌트는 사유의 전환 내지 확대를 위한 진정한 발판
을 다시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에서 구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78)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실천철학의 전통에서는 세계와의 관계 그리고 자기와의 관
계를 공통감각을 척도로 설정해가는 판단자가 lsquo하는 사람rsquo인지 아니면 lsquo보는 사람rsquo
인지 즉 lsquo행위자rsquo인지 아니면 lsquo관찰자rsquo인지를 둘러싸고 의견이 대립되어 왔다 lsquo하
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자가 lsquo정치가rsquo 쪽에 더 가깝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
자는 lsquo철학자rsquo 쪽에 더 가깝다 lsquo하는 사람rsquo은 주로 사회의 일반적 상식 건전한 인
간이해 세론(doxa)을 판단의 척도로 삼는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적 경험은 전체주
의 하에서는 건전한 인간이해도 집단화된 대중감정에 따른 오도된 인간이해 앞에
무너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판단에서 사실로서의 상식이나 합의 또는
법해석공동체 내부의 지배적 제도적 관점이라는 판단 척도만으로는 일반규칙으로
부터 오는 모순을 다루기 어렵다 여기서 판단자는 ldquo확대된 사유방식rdquo을 추구해야
하는데 아렌트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을 lsquo보는 사람rsquo의 판단과 결합시킴으로써 법
관을 위한 사유의 확대를 시도한다79) lsquo하는 사람rsquo이 사실로서의 일반적 상식이나
인간이해 차원에 비추어 판단한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ldquo이
상적 규범적 상식rdquo80)을 추구하고자 한다 판단을 거쳐 법적 효과를 결정하는 법관
76)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을 해석학적 순환이론을 적용하여 분석하면서 칸트의 판단력 비
판에 의거하여 아렌트가 판단력의 특수한 경우로서 법관의 ldquo성찰적 판단력rdquo이라는 새
로운 판단유형을 제시했다고 지적한 연구서로는 Stefanie Rosenmuumlller Der Ort des Rechts Gemeinsinn und richterliches Urteilen nach Hannah Arendt Nomos (2013) 참조
77) Hannah Arendt Das Urteilen 92-93면78) 아렌트가 판단의 차원을 심화시키는 발판으로 삼는 상식은 sensus communis로서
communis opinio와는 다르다는 데 대해서는 Marieke Borren ldquolsquoA Sense of the Worldrsquo Hannah Arendtrsquos Hermeneutic Phenomenology of Common Senserdquo International Journal of Philosophical Studies Vol 21 No 2 (2013) 225-255
79) Hannah Arendt Das Urteilen 76면80) Rosenmuumlller 앞의 책 234면 이하 여기서 아렌트는 상식개념을 이중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에서는 경험적 개념으로 보다 성찰적 판단
단계에서는 규범적 개념으로 사용한다
9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은 관찰자로서 판단하면서 동시에 행위자로서 판단에서 법적 결과를 결정하는
사람이다 관찰자인 동시에 행위자라는 이중적인 역할을 하면서 법관은 자신의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 반추한다81) 이 반추과정에서 법관은 한편으로는 포섭
하는 판단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고려해야 할 관점들을 끌어들이면서
자신의 직책을 마지막까지 수행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통제하면서 자신의 앞서의
(포섭) 판단을 정정해나간다 그래서 법관 자신이 lsquo보는 사람rsquo과 lsquo하는 사람rsquo의 만
남의 장소가 되는 것과도 같다 ldquo이 보는 사람은 모든 하는 사람 안에 자리 잡고
있다helliphellip이 비판적 판단능력이 없이는 행위자 혹은 해결자는 보는 사람으로부터
풀려나 종내는 지각되지조차 못하게 될 것이다rdquo82)
사람들은 자신 일에 있어서는 비당파적일 수는 없다 따라서 ldquo자신의 일에 대한
판단에서는 내면의 심판자 혹은 내면의 법정을 가질 수 없다rdquo83) 그러나 다른 사
람의 일을 반추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필히 비당파적이어야 하며 또 비당파적이 될
수 있다 이때 그는 비로소 내면의 심판자를 가지게 된다 즉 양심의 문제에 처하
게 되는 것이다 판단에 있어서 양심이라는 것 즉 양심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남
의 일에서 ldquo증인rdquo 혹은 ldquo비판적 친구rdquo로서 관찰하고 행위하는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이다84)
아렌트의 성찰적 판단모델은 나치 불법국가 경험의 산물이다 통상의 규칙이 파
괴된 상황 통상의 범죄유형에 포섭되지 않는 극히 예외적인 범죄적 상황에서 법
원은 기존의 판단척도를 해석학적 출발로 삼아서는 안 되고 이때에는 질적으로
동의가능한 합의형식을 찾기 위해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으로 돌아가
진정으로 사유 즉 철학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렌트가 판단을 일반화해주는
거점이자 해석학적 출발점으로 삼은 공통감각(상식) 개념은 칸트철학에서 ldquo비사교
적 사교성rdquo 개념의 위상과 비슷하다85) 이 지상에서 인간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다른 것을 원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모여 살아야만 하는 존재다 이 비사회성 요
청과 사회성 요청의 동시성 때문에 인간에게는 제도적인 안착이 더없이 중요하며
법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실존과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만든다 판단의 기
81) Leora Y Bilsky When Actor and Spectator Meet in the Courtroom Hannah Arendt and Eichmann in Jerusalem G N Arad Hg (Bloomington 1996) 137면
82) Hannah Arendt 앞의 책 85면83) Hannah Arendt 앞의 책 76면 84)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657면85) Rosenmuumlller 앞의 책 1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5
초를 보편적 인간경험에 둔다는 점에서 아렌트가 말하는 판단력은 드워킨의 헤라
클레스와 같은 초인적 천재성을 발휘하는 능력과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86) 아
렌트가 상정하는 이상적인 법관은 철학적이지만 철학자는 아니고 정치적이지만 정
치가는 아닌 사람이다
아렌트는 헌법국가의 권위도 상식개념에 기반을 두고 설명한다 그리고 민주적
정당성의 관점에서 입법의 우위를 인정하는 까닭에 성찰적 판단에 입각한 법관의
검증에는 한계가 있다는 태도를 견지한다87)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렌트가 제시한
법관의 성찰적 판단 유형에 대해서는 다양한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우선 이것이
예외 상황에서 적용되는 판단모델로 상정된 것이며 무엇보다도 ldquo규범적 상식rdquo에
대한 단일한 이해기반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법관 개인의 주관적 정치적 신념
이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길을 피할 수 없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성찰적
판단력은 결국 레토릭에 불과한 것인가 아렌트는 그러나 무엇이 ldquo특정 상황에 맞
는 공통감각(situierte Gemeinsinn)rdquo인지에 대한 공동의 인식은 가능하며 또 법관의
lsquo하는rsquo 판단에 들어있는 정치적 함의를 성찰적 판단력으로 검증하는 것도 가능하
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아렌트가 마지막 검증심급으로 원용하는 것이 바로 판
단에서의 양심의 심급이다 그것이 과연 동의할 수 있는 합의형태로서 충분한지를
스스로 검증하는 이 심급에서 판단자는 명령조로 자기에게 전해지는 소리를 듣게
된다 ldquo멈춰 나는 그것은 할 수 없어rdquo88) 판단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 멈추는 것
이 가능한 이 성찰적 심급에서는 칸트와 달리 할 수 없는 이유로써 결과도 고려
된다 lsquo보는 사람rsquo이 자기 안에서 지켜보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상황은 토마스 아퀴
나스의 양심론에 비추어 다음과 같이 묘사될 수도 있겠다 지적 본성을 가진 인간
존재가 보편법칙에 관한 지식을 개별 행위에 적용하기 위해 판단하고 선택할 때
행위자는 갈등 상황- ldquo그렇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rdquo는
상황-에 처하여 멈칫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데 이때 그는 단지 갈등하고
선택하는 역할만 하지 않고 갈등하고 선택하는 이 과정을 ldquo관찰하고 목격하는 증인rdquo
의 역할도 한다는 것89)
86) 드워킨에 의하면 해석적 탐구는 ldquo어떠한 증명도 허용치 않고 어떠한 수렴도 약속치
않는 탐구rdquo이다(드워킨 정의론 203면)87) Rosenmuumlller 앞의 책 30면88) Hannah Arendt Uumlber das Boumlse Eine Vorlesung zu Fragen der Ethik Hrsg v J Kohn
(Muumlnchen 2003) 52면89) 지적 행위자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자신의 내면의 갈등과 선택과정을 바라보는
9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Ⅹ 방법에서 덕목으로
헌법 제103조는 한 면으로는 헌법과 법률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 면으로 해석자에게 여하한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lsquo제약
의 차원rsquo과 lsquo자유의 차원rsquo을 동시에 담고 있다 법관은 자유로울 때에라도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며 법에 구속될 때에라도 전적으로 구속되지는 않는다는 뜻이
기도 하다 이 lsquo자유와 구속의 변증법rsquo에 비추어 지금까지 논한 주제에 대해 몇 가
지 입장을 정리해 보자 첫째 법관에게 있어서 독립은 확정된 원칙이나 그것자체
로서 달성해야 할 최종목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법관의 독립은 완성형이 아니라
끊임없는 진행형의 과제로서 그 직무수행에 대한 신뢰와 병행하여 점진적으로 이
루어지는 것이다 둘째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에 있어서 구속은 법률에 무조건 복종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판결에 대한 윤리 (내 ) 확신과 함께 법률에 복종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법관이 실정법률에 반하는 결정을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법
관은 객관성을 빌미로 법률 뒤에 숨는 익명적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
미하는 것이다 셋째 독립적인 법관의 양심은 lsquo법과 상충한다rsquo기보다는 lsquo법을 실
한다rsquo는 의미를 지닌다 넷째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서 반추하면서 lsquo하는
사람rsquo인 동시에 lsquo보는 사람rsquo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성찰 인 인물상으
로서만 설정될 수 있다
해석적 탐구는 우리의 이해를 넓히기 위해서 필요하지만 이해에서의 우리의 피
할 수 없는 한계를 깨닫기 위해서도 필요했는지 모른다 엥기쉬는 법해석방법론에
대한 저술의 마지막 부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ldquo방법론에 천착하다 보면
애초의 문제였던 법률로부터 훨씬 더 먼 곳으로 이끌려 간다rdquo 지금까지 필자는
법관의 법해석과 관련하여 방법론의 의의와 한계를 논하고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과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에 비추어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이 법해석론
의 불가결한 부분으로 들어가게 되는 이유도 밝혔다 그리고 해석적 차원에서의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는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행위를 목표로 하는
탐구라는 것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필자는 이 모든 논의들을 매개로 방법론이 우리를 더 멀리 덕
목론으로 데려가는 과정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드워킨의
상황에 대한 이 묘사 부분은 이경재 ldquo토마스 아퀴나스의 양심 개념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375면을 참조했다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7
헤라클레스를 잠시 불러올 필요가 있다 해석문제를 누구보다도 더 진지하게 다룬
드워킨은 마지막에 헤라클레스를 내세운다 주어진 사건에서 무엇이 법인지에
대해 도덕적 의식을 가지고 법실무 전체를 원리정합적으로 정당화하라는 요청에
부응하여 자신의 신념에 기초한 결정을 내리는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의 구성적
해석에서 법관의 양심이 기능하는 국면은 어디일까 송민경 판사는 드워킨의 구성
적 해석론에 입각하여 양심을 구체적 법논증과정의 일부로 포함시키면서 이때 양
심이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라는 지침으로 기능한다고 설명한다90)
그런데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는 지침으로 기능하는 것을 양심이라
고 보게 되면 양심의 문제는 논증적 합리성의 차원 즉 논증의 성공으로 종결짓게
된다 그러나 법적 결정의 정당성 문제는 법관의 입장에서는 논증의 성공 문제로
다루어지지만 법관의 성공적인 논증에 따른 판결의 결과로부터 영향을 받는 시민
의 입장에서 보면 성공적인 논증만으로는 해석이 정당화된다고 볼 수는 없다
성공적인 논증은 법적 결정의 정당화에 필수적이기는 하나 충분한 조건은 되지 못
한다 해석이 궁극적으로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사법적 도덕성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 사법적 도덕성은 헤라클레스가 지침으로 삼는 원리적 도덕성의 실현과는 다른
것이다 만약 패소한 시민이 다른 헤라클레스에게 갔더라면 즉 다른 법원리에 기
초한 신념을 토대로 다른 결정을 내린 다른 법관에게 갔다면 그는 승리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왜 헤라클레스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하
는지에 대한 답이 필요한 것이다91) 헤라클레스가 실무에 대한 최상의 정당화를
도모하는 법적 이상주의자라면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법원 문을 두드린 시민도
어느 의미에서 ldquo법이상주의자rdquo92)이다
법해석 작업의 주관의존성이라는 불가피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재판이라는 특수
한 공적 활동이 법관이라는 특수공직자에 의해 운영되고 유지된다는 것은 시민들
-소송에서 패한 시민들을 포함하여-편에서 보면 법을 해석하는 법관에 대한
신뢰가 전제된다는 것이다 법관의 독립적 활동은 법관의 특권 행사가 아니라 사
90) 송민경 앞의 글 38면 20면91) 사법적 덕목과 연관하여 이 부분을 다룬 글로는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5면 이하
92) 법원 문을 두드리는 시민에 대한 이 표현은 심헌섭 ldquo법조윤리의 좌표 거시적 관점에서 본 전문윤리로서의 법조윤리rdquo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편 法律家의 倫理와 責任 박영사
(2003)에 나온다
9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법과정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응당한 몫이 돌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존중하는 바탕에는 일종의 상호성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 그 또한
시민이기도 한 법관이 동료시민들에 대해 가지는 배려와 존중의 원칙이 그것이다
여기서 사법적 덕목에 대해 자세히 논할 수는 없다93) 예의 성실 신중 절제
용기 공정 겸손 의사소통 능력 형평 시민에 대한 배려와 존중 등등 이것들은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바탕을 이루는 양심의 덕목들일
것이다 양심이라는 단어가 그렇듯이 덕목이라는 단어도 오늘날 진부해진 표현
이며 거의 사라져가는 단어다 윤리적 태도로서의 덕목은 관찰하기도 배우기도
어렵다 그러나 올바른 판단과 결정이 법관이라는 개인을 거치지 않고 법령집
자체로부터 반사적으로 튀어나오지 않는 한 이 덕목들을 내면화하고 지향하려는
태도 없이는 lsquo종국적인rsquo 판단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써 필자는 헌법 제103조를 통해 법해석에서의 방법론의 문제가 덕목론이라
는 다음 과제로 이어진다는 점을 밝혔다고 생각한다
투고일 2016 4 6 심사완료일 2016 5 18 게재확정일 2016 5 20
93) 법관의 개별적인 덕목들과 이것들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는 박은정 강태경 김현섭 바람
직한 법관상의 정립과 실천 방안에 관한 연구 법원행정처(2015) 제5장 참조할 것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9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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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수 헌법학신론 박영사(2013)
김현섭 ldquo법관의 양심과 독립에 대한 헌법 제103조의 해석rdquo 한국법철학회 월례독회
발표문(2015 4 25)
김황식 연필로 쓴 페이스북 之山通信 나남(2013)
박은정 왜 법의 지배인가 돌베개(2010)
박은정 강태경 김현섭 바람직한 법관상의 정립과 실천 방안에 관한 연구 법원행
정처(2015)
사법연수원 법조윤리론(2014)
성낙인 헌법학 법문사(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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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ltAbstractgt
Independence and Conscience of the Judges Based on
Interpretive Method for Article 103 of the Korean Constitution
Pak Un Jong
94)
In this paper I aim to discuss the problem of independence and conscience
of the judges as outlined in Article 103 of the Korean Constitution in the
context of the interpretive methodology
First of all this paper will look at the background in which the independence
of the judges has been institutionalized and also the problems regarding usual
explanation for conscience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And I will try to
reveal the characteristics and difficulties of the interpretive actions of the judges
especially in connection to the issue of value judgment This would require
pointing out the problems and limitations of the interpretive methodology and at
the same time defining the nature of tension embedded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namely the tension between the obligations of the judges to abide
the law versus the subjective internal demeanor of the judges This tension-
ridden condition reenacted by the demand to follow lsquogeneral justicersquo versus
lsquoindividual justicersquo appears inevitably in the process of judicial interpretation I
will examine the theories that capture this kind of tension that accompany the
interpretation process and aim to feel out the possibilities of resolving this
tension At the end I come to the conclusion that these theories can explain but
cannot resolve this tension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If so the problem
which arises from the limitations of the interpretative methodologies from the
perspective that a judgersquos final decision greatly impacts citizens becomes a
problem of judicial ethics In order to ultimately justify the interpretation of the
judges the demands of judicial ethics must be satisfied Keeping this demand in
Professor College of Law School of Law Seoul National University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103
mind I point out that the significance of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is in
its role of bridging legal methodology to virtue ethics
Keywords independence of the judges conscience of the judges interpretive
method of law value judgment judicial virtue
8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에 학문의 자유의 한 표현으로까지 보려는 것은 무리다51)
오늘날 가치상대주의 분위기는 실천적 물음에서 진리 도달가능성에 대한 회의를
과장한다 그러나 진리가 뭐냐는 빌라도의 물음에 비록 확신에 찬 대답을 못한다
하더라도 법에서 진리 내지 정당성 추구의 포기는 파국을 의미한다 국가권력
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도 진리라는 규제이념이 전제되기 때문
이다 독립된 사법부가 심급구조와 집단적 의사결정의 형태로 스스로의 시정 기구
를 가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물론 진리에 대한 주장은 잠정적이고 수정가능하다
lsquo참이냐 거짓이냐rsquo는 오로지 서술적 명제에만 한정하여 검증될 뿐이라는 협소한
학문관을 따른다면 법학은 학문 안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법
학이 그런 협소한 학문관을 받아들여야 할 필연성은 없다 법해석자는 자신의 해
석적 판단이 진리라는 주장을 무한정 내세우지는 못하면서도 진리 추구를 피할
수 없다52) 론 풀러(Lon Fuller)의 지적대로 ldquo법이론이 최고의 법적 권위를 엄격하
게 정의하는 일에 큰 비중을 두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이 점이 모호해지면 필경
전체로서의 법체계가 와해될 수 있다rdquo53)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법을 민주
주의의 언어로 설명하는 오늘날 의회와 행정처럼 다수결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기
관도 아닌 사법의 소수 전문 엘리트의 지배를 권위모델만으로 정당화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법을 준수하는 시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시민들은 자신에게 유죄
판결을 선고한 세속의 법관에게 그 유죄판결의 근거를 알고 싶다고 요구할 수 있
으며 물론 당연히 요구한다
법관은 판결에서 논증을 통해 최상의 근거 제시가 이루어진 결정을 해야 한다54)
51) ldquo일부 사람들 중에는 이러한 법원의 권력기관적 성질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
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helliphellip 가끔 법관의 일을 조용한 방에서 소송서
류를 꼼꼼하게 읽어 파악한 사실에다가 법을 논리적으로 적용하는 단순히 지적(知的)인 작업이라는 시각에서만 말씀하시는 분을 만나면 그 분에게 재판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법대에 앉아 있는 법관이 어떻게 보이는지 물어보고 싶어집니다rdquo 양창수 ldquo바람직한 법관상 - 기예와 지혜 사이rdquo lt근대사법 및 한성재판소 설립 120주년 기념
1895sim2015 소통컨퍼런스 역사에 비춰 본 바람직한 법관상gt 자료집(서울중앙지방법원 2015 5 11) 15면 ldquo계획적이고 진지한 진리 탐구 활동rdquo이라는 표현은 라드브루흐에서
나온다 구스타브 라드브루흐 법철학 최종고 옮김 삼영사(2011) 238면 52) 드워킨 앞의 책 208면 53) 론 풀러 앞의 책 211면 풀러의 문장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ldquo하지만 이 경우도
위로부터의 지시 또한 목적의식에서 비롯되는 지적 활동을 완전히 생략할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rdquo54) 물론 진리 요청과 관련하여 개별 법관의 관점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며 민주국가에서
포기될 수 없는 진리 요청은 법학을 포함한 법체계 전체로 하여금 진리 요청에 어떻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5
이때 정당한 근거 제시가 이루어진 결정과 관련하여 그것이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
이라는 주장을 펼 수 있는가 앞에서 검토한 대로 켈젠의 순수법이론은 그런 주장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이에 비해 드워킨은 법적 판단에 있어서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이 원칙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ldquo정답테제rdquo로 불리는 이 주장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학자들이 지적한 대로 존재사실에 대한 주장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하나의 ldquo규제이념rdquo으로 받아들이는 게 맞는 것 같다 즉 드워킨의 정답테제
는 ldquo유일하게 정당한 결정rdquo이 존재한다는 데 대한 이론적 탐구라기보다는 실무에
서의 법관의 주관적 태도에 부합하는 이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법관은 자신의 판결활동과 관련하여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모든 사건
에서 오직 하나의 결정만이 정당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 정답에 가까이 가기 위
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55)
드워킨의 말대로 가치판단이 참일 때는 그냥 참일 수가 없으며 그것이 참인
이유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즉 충분한 논거가 존재할 때 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라면 이러한 논거지움의 과정은 자명한 공리적
토대나 그런 토대 위에서 확립된 규칙이나 원리적 서열에 따라 명확하게 밝힐 수
없다 이런 불확실한 가운데도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논거지움은 포기될 수
없다 이 끝없는 정당화 부담 때문에 켈젠은 규범의 효력 근거에 관한 논의를 가
치에 관한 논의와 절연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물론 성공하지
못했다56)
가치판단을 해야 하는 부분이 법문화에서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요소로 작용할지
아니면 그 반대로 작용할지는 판단자로서의 법관의 역량과 연관하여 논해야 할 것
이다 필자는 가치판단적 요소가 법문화에서 당연히 긍정적 요소로 작용해야 하며
게 부응하는지 묻게 한다 따라서 사법부 외부에서 행하는 사법비판의 길이 열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대해서는 노이만 앞의 강연문 참조55) 노이만 앞의 강연문56) 규범의 효력을 불명확하고 상대적인 가치가 아닌 규범에 근거짓기 위해 켈젠이 고안
한 근본규범은 사유상으로만 전제된 규범일 뿐이었다 켈젠은 가치판단을 ldquo현실의 행
위가 객관적으로 효력 있는 규범에 맞게 존재해야 하는 대로 존재한다는 판단rdquo이라고
정의함으로써 가치판단이라는 용어 자체를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Reine Rechtslehre 2 Aufl (1960) 16면 이하 또한 켈젠은 규범이 인간의 의지에 의해
제정되는 한 그 규범에 의해 형성된 가치는 어차피 자의적일 뿐이라고 주장한다(18면) 규범과 가치의 관계에 대한 켈젠의 주장에 대해서는 오세혁 ldquo켈젠의 법이론에 있어서
규범과 가치 - 규범과 가치의 상관관계를 중심으로rdquo 법철학연구 제18권 제3호(2015) 97면 이하 참조
8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또한 그렇게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57) 그런 방향에서 이제 해석의 문제를 법
관의 자기이해 문제와 연관시켜 보기로 한다
Ⅷ 해석과 법관의 자기이해
법관은 추상적인 일반규칙을 가지고 공중의 이목을 끄는 개별적인 사건을 처리
하는 사람이다 법관의 의식활동에 의해 일반규칙과 일회적인 사건 사이의 심연이
메워진다 하지만 일반성과 개별성을 결합하는 이 의식과정에 동반하는 고유한 법
학적 방법에 대해서는 앞에서 지적한 대로 확실한 합의는 없다 ldquo리걸 마인드rdquo라
는 말이 풍기는 신비스러운 분위기에는 사법적 결정이 본질적으로 투명한 것이 되기
어렵다는 암시가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다 논리적인 형태만 부여하기로 한다면
한 사건에서 서로 상반된 결론에 이른 두 개의 판결문을 작성하는 것도 불가능
하지 않다58) 방법이 논리에 기초하는 것이라면 이때 논리는 형식논리를 넘어 엥기
쉬가 표현한 대로 ldquo실질에 부합하는rdquo 논리여야 할 것이다 참된 올바른 받아들
일 수 있는 결정에 이르는 실질논리 이 실질에 도달하기까지는 결코 논리적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지적 감행과 어떤 매개가 작용한다
일반규칙을 개별사례에 적용할 때 요구되는 판단자의 능력과 관련하여 가다머
(Hans-Georg Gadamer)는 이런 견해를 밝힌 적이 있다 판단자는 자신이 이미 가
57) 이와는 달리 가치의 ldquo통약불가능성rdquo 때문에 사법은 좋음이나 옳음의 이슈에 대해 실
질적 입장을 취하는 일에 대해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가치의 통약
불가능성에 대해서는 Cass R Sunstein ldquoImcommensurability and Valuation in Lawrdquo Michigan Law Review Vol 92 No 4 (1994) 779면 이하 조홍식 교수는 ldquo가치의 통약
불가능성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이 권리인가의 문제보다 무엇이 공익인가의 문제에서
더 크다rdquo고 지적하면서 기본적으로 가치판단과 관련한 사법통치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사법통치의 정당성과 한계 제2판 박영사(2010) 240면 가치의 통약불가능성에 대한 주장은 가치판단과 관련한 해석기준의 서열화는 불가능
하다는 주장과 같은 노선에 속한다 여기서 통약불가능성 문제를 자세히 다룰 수는
없다 다만 가치의 통약불가능성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통약불가능이 비교불가능을 의미
하지는 않는다는 점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체적인 맥락이 주어지는 경우 무엇이 옳은
지 혹은 그른지에 대해 심사숙고하며 이에 따라 선택하고 그 선택 결과를 받아들인
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정도만 지적하기로 한다 58) 실제로 판사가 판결문을 두 개 써왔다고 주장한 사건에 대한 보도가 있었다 ldquo판결문을
두 개 써왔다rdquo 조선일보 2013 11 21자 기사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7
지고 있어서 적용하기만 하면 된다는 그런 의미의 규범적 실천적 ldquo지식을 소유한
사람rdquo이라기보다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 ldquo지식을 탄생시키는 상황에 직면하는
사람rdquo이라는 것이다59) 일반범주를 개별사례에 적용할 때 요구되는 이 판단력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래서 칸트(Kant)도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ldquo지성은 규칙들
을 통해 배우고 보강할 수 있는 것이지만 판단력은 특수한 재능으로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전혀 아니고 단지 숙련될 수 있을 뿐이다rdquo60)
우리는 올바른 규칙이나 원리를 알고 있지만 막상 이것을 어떤 상황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예컨대 비례성원칙이나 과잉금지원칙에 대한 지식
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은 적정해야 하고 그 수단은 목적달
성을 위해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원칙을 특수한
상황에 lsquo적용rsquo한다고 할 때에 이 원칙이 그 어떤 판단도 배제할 정도로 자족적인
지침 구실을 한다고 느끼기는 어렵다 특정 상황에서 그 수단이 과연 어느 정도일
때가 목적달성에 적정한지는 판단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실천이성의 역
할이다
단의 자리는 이론 경험 양심이 혼재된 실천의 영역이다 판단을 통한 결정이
라는 그 lsquo종국성rsquo으로 인한 실천적 성격은 법학이 다른 어떤 학문분야와도 공유
하지 않는 법학 고유의 특징이다 그래서 법학은 lsquolegal sciencersquo로 불리기보다는
실천지- prudentia-를 함의하는 lsquojurisprudencersquo로 더 자주 불리어 왔을 것이다
해석의 차원에서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도 추상적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
으로는 행위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성과 개별성을 결합하는 해석적
지식은 추상적 이론적 지식들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일반규칙이나 원리
에 근거한 이론적 패턴의 지식과 특정한 상황 내지 맥락을 고려하는 실천적 패턴
의 지식의 이중주를 이룬다 법관이 지니는 통찰력의 특성은 이론과 태도가 함께
간다는 데 있다 그래서 사법적 판단에서는 규칙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 못지않게
사람 즉 법관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사법적 통찰력의 특성은
뭐니뭐니해도 개별 사례를 다룬다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개별적인 것들은 개별적
인 방식으로만 체험되고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들은 무엇
보다도 lsquo지각rsquo과 관계된다61) 즉 그것들은 일반적 체계적 지식의 대상이라기보다
59) Hans-Georg Gadamer Wahrheit und Methode Grundzuumlge einer philosophischen Hermeneutik 3 Aufl J C B MOHR (1972) 300면
60)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 1 백종현 옮김 아카넷(2009) 374면
8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는 우선 지각의 대상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도 사법적 통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쪽은 규칙보다는 오히려 사람 즉 법관 쪽인 것이다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사건에서 법적으로 중요한 사실이 무엇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규칙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어떤 규칙이 중요한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실이 중요한지 알
아야 한다 이 인식과정에서 법관은 불확실한 가운데서 무수한 선택을 감행한다
어떤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 배척하고 어떤 사실은 인정하거나 무게를 부
여하고 신청된 증거조사의 어떤 것은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거부하고helliphellip 사실
에 대한 이 취사선택-자유심증주의-의 결과로 새로운 것이 태어난다 그리고
이것에 의해 법원을 찾아온 사람들의 운명이 갈리는 것이다
법관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필자 생각에
독일의 법철학자 아르투어 카우프만(Arthur Kaufmann)의 해석학적 방법론은 법
관의 자기이해 문제를 해석학적 지평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법관의 해석작업의
본질을 잘 설명해주는 것 같다 가다머 계통의 철학적 해석학(philosophische
Hermeneutik)의 입장을 받아들이면서62) 카우프만은 법해석행위를 통해 포괄적인
의미에서 법관 자신의 인격 중의 어떤 것이 판결에 혼입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
61)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4면 그리고 1심에서
유죄였다가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강력범죄 540건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판단자
의 감지능력 차이가 법판단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힌 김상준 무죄
결과 법 의 사실인정 경인문화사(2013) 62) 텍스트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이해에 관한 연구분야인 해석학(hermeneutics Hermeneutik)
의 어원은 신들의 전령(傳令)인 Hermes라는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설명된다 이때 신의
의도를 인간에게 전하는 과정에서 언어의 제약성 시공간적 간격 전령의 역할 등과 관
련하여 해석의 문제가 생긴다고 본다 ldquoHermeneuticsrdquo Dictionary of Biblical Interpretation Nashville (1999) 497면 독일어의 Auslegung이 해석주체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대상
으로서의 텍스트에 대한 해석을 의미한다면(객관주의) 철학적 해석학에서의 해석
(Interpretation)은 해석주체의 주관성 내지 역사성이 대상에 투사된다는 의미가 강하다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에 따르면 역사적 존재인 인간에게 있어 모든 해석과 이해는 과
거와 현재가 lsquo작용사적으로(wirkungsgeschichtlich)rsquo 중재되는 사건으로서 lsquo선이해rsquo 내지
lsquo선판단rsquo 없이는 불가능하다 가다머는 선입견으로 폄하된 선이해를 재평가하고 이를
통해 근대 이래 lsquo방법rsquo을 통한 진리발견이 주체에 의한 객체의 대상화 내지 도구화를 가져
왔다고 비판하면서 인간경험에 있어서 진리에 이르는 길은 사물의 존재가 스스로 드러
나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해석과 이해는 전승된 존재방식으로서
의 텍스트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며 이는 텍스트 자체가 지닌 역사적 지평과 해석
자의 지평이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만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해석학적 순환 이해의 전제로서의 선이해 작용사 등에 대해서는 Gadamer 앞의 책 II Grundzuumlge einer Theorie der Hermeneutischen Erfahrung 참조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9
로 법관의 결정이 올바른가의 물음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가의 물음과 직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63)
우선 카우프만은 통상적으로 회자되는 독립적인 법관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즉 법 앞에 선 법관이 일체의 정치적 사회적 개인적 영향이나 선입견들로부터 차
단된 채 순수한 객관적 인식에 따라 그 이전에는 자신이 알 수 없었던 사실관계
를 판단하고 그런 다음에 법적 판단을 한다는 식으로 이해하기를 거부한다64)
그런 법관상은 법령집은 일체 해석의 필요가 없이 거의 모든 가능한 법률문제에
대한 대답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상정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법관은 의지가
없는 존재이며 사법권력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여기는 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법에 대한 인식은 단순히 사례를 법률에 포섭시킨다는 의미의 수
동적 행위가 아니고 해석자가 해석대상에 관여하면서 함께 lsquo형성rsquo하는 것이라고
본다 카우프만은 법관의 법형성력에 대한 자신의 견해가 주관주의의 의미로 받아
들여지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는데 왜냐하면 해석자는 텍스트를 지탱하는 모든
전통과 함께 이해의 지평으로 들어간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은 서류의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ldquo아 이런 사건이구나rdquo라고 감을 잡게 되
는데 카우프만에 따르면 이는 법관 자신이 사건 경과를 관찰해서 인지했다거나
언론 등을 통해 사건에 대한 상세한 지식을 얻었다는 뜻이 아니라 유사한 사건들
을 알며 그래서 ldquo선이해(Vorurteil Vorverstaumlndnis)rdquo65)를 가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
해의 전제로서 이런 선이해가 없다면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것이 무엇에 관한 사
건인지 알 수 없고 다른 사례와 비교할 수도 없기 때문에 올바른 판단에 이른다
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66) 이 선이해에 의해 해석은 언제나 해석주체의 자기
이해 즉 자신이 lsquo잠정적rsquo 결과로서 이미 예상했던 것을 논증적으로 근거짓는 활동
이라는 의미에서 ldquo해석학적 순환rdquo 내지 ldquo해석학적 나선구조rdquo 하에 이루어진다
63)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Festschrift fuumlr Karl Peters Mohr Siebeck (1974) 144면 법관의 독립과 양심 주제와 관련한 또 다른
글로는 Kaufmann ldquoGesetz und Rechtrdquo Existenz und Ordnung Festschrift fuumlr Erik Wolf (1962) 357면 이하
64)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4면 65) 해석학적 의미에서의 lsquo선이해rsquo는 일상 언어 관용에서는 lsquo선입견rsquo이나 lsquo편견rsquo 같은 부정
적 함의를 더 많이 지니기 때문에 카우프만은 lsquoVorurteilrsquo 대신에 Vorverstaumlndnis라는 용
어를 쓰기를 권장한다(앞의 글 148면) 카우프만 외에도 이 용어의 선택은 Josef Esser Vorverstaumlndnis und Methodenwahl in der Rechtsfindung 2 Aufl (Frankfurt aM 1972)
66)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7면
90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텍스트를 이해하려는 사람은 말하자면 언제나 초벌 그림을 그리며 특정 의미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텍스트를 읽기 때문에 ldquo텍스트에서 첫 번째 의미가 지시되자
마자 전체의 의미를 lsquo예비투사한다(vorauswirft)rsquordquo67) 그리고 선이해와 관련된 이 예
비투사는-해석학적 lsquo순환rsquo에 의해-원칙적으로 끝없이 검열과정을 거친다는 것
이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도 실제 판단과정에서는 분리
되지 않는다68)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은 시간적으로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단절 관계가 아니라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정제하고 상응하는
관계에 놓인다 즉 사실에 대한 인식 없이 규범적 인식은 불가능하며 또한 규범적
관점 없이 사실만을 통한 사실 확정도 불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법률도 법관의
해석을 만나기 전에는 ldquo잠재적인 가능태로서 주어진 법률rdquo일 뿐 해석학적 순환을
통한 정제 혹은 상응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ldquo진정한 실정법rdquo이 생성된다69) 이렇
게 특정사건을 통해 구체화된 규범(구성요건)과 이 규범을 통해 정해진 사실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법관에게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들과 함께 제3의 요소로서 법관
자신의 선이해 내지 이해 포괄적으로 말하면 그의 인격적 존재가 판단에 혼입
된다
lsquo선이해rsquo는 판단자가 자신의 선이해를 의식하지 못할 때 부정적 요소를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ldquo자신의 판단은 오로지 lsquo있는 그대로다rsquo라고 말하는 즉 lsquo오로지 법
률에만 구속된다rsquo라고 말하는 법관이야말로 실은 종속된 법관이다 왜냐하면 그는
성찰되지 않은 자신의 선이해와 거리를 둘 수 없기 때문이다rdquo70) 즉 법관은 자신
67)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68) 실제 판단과정에서 사실인정과 법률적용이 따로 떨어질 수 없다는 점은 굳이 카우프
만의 이론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실무상으로는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ldquo법률
의 적용과 사실의 인정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법률문제와 결부되어 인정된다 사실의 인정이 진행됨에 따라서 재판관의 머리
속에서는 어떠한 법규를 적용할 것인가 그 법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는 전망이
점차로 서게 되며 당사자 측도 경우에 따라서는 민사인 경우 청구의 취지를 변경할
것인가를 고려하게 되고 형사인 경우 공소사실을 변경하는 경우도 생긴다 요컨대 사실
문제와 법률문제는 실제과정에서 불가분으로 결부되어 있다 helliphellip 양쪽이 불가분으로
재판관의 직관 혹은 재판관의 전인격적인 작용에 의하여 사실의 인정과 법의 적용이
행하여지고 판결 삼단논법은 실제의 심판 과정에서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rdquo(사법
연수원 법조윤리론 35면) 69) ldquo법관의 해석 작업 이전에는 어느 의미에서 진정 법도 진정한 사실도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원자재들(Rohmaterialien)로만 이것들이 존재할 뿐이다rdquo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1
의 선이해를 의식하고 자신을 이데올로기 혐의 앞에 세울 줄 알 때 올바른 판결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ldquo법관이 자신의 선이해와 종속을 의식할수록 그래서 간주
관적 합의에 노력할수록 그는 더 객관적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rdquo71) 그러므로
법관의 주관주의의 위험은 카우프만식으로 말하면 가치판단 같은 성찰적 고려와
관련된 주관적 요소를 방법상의 근거 제시의 맥락에 끌어들이는 법관의 경우보다는
오히려 모든 것이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판결의 주관적
요소를 은폐하는 법관에게서 나타나는 위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학적 순환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법관은 ldquo법률의 입rdquo이 아니라 ldquo인격
으로서 판결을 떠받친다rdquo72) 판결은 법률과 법관의 인격의 혼성물이다 그러므로
법률은 판결을 위한 필요조건이기는 하나 충분조건은 아니라고도 말할 수 있다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순환이론은 법관의 독립과 양심의 문제 차원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법결정의 올바름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
는 정도에 달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자신을 올바르
게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자신의 판단력 경험 능력 인간에 대한 태도 감
수성 명예욕 등등
카우프만의 법해석학적 순환이론이 법관의 독립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이라
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독립은 법관 스스로 관철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론적으로 카우프만의 법해석이론의 의의는 법관이 자신의 선입견을
의식하는 것이야말로 법관의 독립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설득력있게 지적
해주며 그런 방향에서 법관의 법해석 작업을 재평가했다는 데 있다고 말할 수 있
겠다
70)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71) Arthur Kaufmann ldquoDer BGH und die Sitzblockaderdquo NJW (1988) 2581면 이하72) 이 표현은 Karl Peters의 Strafprozess - Ein Lehrbuch (1966) 99면에 나오며 여기서는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9면에서 재
인용했다 이덕연 교수도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에 입각하여 ldquo법관의 법해석작
업은 단순한 lsquo인식작업rsquo이나 lsquo언어분석작업rsquo이 아니라 ldquo구체적인 반성과 자기극복의
노력 속에서 온 인격을 걸고 진행하는 lsquo이해와 실천의 수행작업rsquordquo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앞의 글 352면)
9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Ⅸ 법관은 lsquo하는 사람rsquo인가 lsquo보는 사람rsquo인가
법관의 판단작업을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의 관점에서 주목했던 또 다른
철학자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다 그녀는 ldquo아이히만 재판rdquo을 계기로 판단의
특수한 경우로서의 판단력 문제를 연구했다73) 아렌트는 하드케이스와 연관시켜
법관의 판단력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74) 법관은 우선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을 반추하면서 판단에 임하는데 이때 판단자로서 그는 한 면으
로는 규칙에 따라 판단하라는 lsquo일반적 정의rsquo의 요구에 그리고 동시에 다른 한 면
으로는 정황에 맞게 판단하라는 lsquo개별적 정의rsquo의 요구에 처한다 이러한 상황은
아렌트에 따르면 하드케이스에서 특히 발생한다 이 이중적이고 모순적 요구 상황
을 아렌트는 법관의 판단에 적용되는 특수한 해석학 및 그 조건을 설명하는 출발
점으로 삼는다75) 하드케이스가 아닌 통상적인 사건에서는 이른바 포섭 여부를 판
단하는 것으로도 족하다 일반규칙에의 포섭 여부가 중심이 되는 이 단계에서의
판단력- lsquo규정하는 판단력(bestimmende Urteilskraft)rsquo-은 사실관계에서의 원인
이나 형식적 정의를 따지므로 일방적이고 간주관적 전제 없이도 가능하다 그래서
흔히 법관은 여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법을 해석해야 한다고 말할 때 이는
법적용을 이러한 지배적인 포섭모델에 입각하여 이해한 결과라 할 것이다 그런데
규칙으로부터 오는 어떤 어려움들 때문에 규정하는 판단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즉 포섭이 어렵거나 법흠결 시 또는 가치형량이 요구되는 하드케
이스에서는 법관은 어쩔 수 없이 앞에서 말한 모순문제를 다루어야만 한다 이때
아렌트는 법관이 사유의 확장을 통해 방법상으로 lsquo규정적 판단력rsquo을 스스로 교정
할 수 있는 lsquo성찰적 판단력rsquo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고 이 판단유형의 전환과정을
73) 법적 판단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 삼은 저술은 Hannah Arendt Eichmann in Jerusalem Ein Bericht von der Banalitaumlt des Boumlsen Erw Aufl (Muumlnchen 2001) 그리고 Hannah Arendt Das Urteilen Texte zu Kants Politischer Philosophie Hrsg v R Beiner Uumlbers v U Ludz (Muumlnchen 1998)
74) 아렌트가 염두에 둔 하드케이스는 라드브루흐가 이른바 ldquo법률적 불법rdquo 상태로 규정한
나치의 불법국가 상황으로서 이렇게 극히 예외적인 케이스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하드
케이스에 적용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별적 정의 요구에 부응함
으로써 예컨대 소급효를 금지하는 일반법률에 위배되는 상황과 유사한 갈등상황은 반
드시 극단적 상황에서만 생긴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75)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2 Bde Hrsg v U Ludz amp I Nordmann
따라서 그 척도는 전달가능성이며 거기에 딱 맞는 것은 공통감각(상식)이다rdquo77) 오
늘날 공통감각은 아렌트도 지적했듯이 더 이상 그것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얻고자 노력해야 하는 그 무엇이 되어버린 듯하다 그러나 공통감
각이 무너진 시대를 겪었던 아렌트는 사유의 전환 내지 확대를 위한 진정한 발판
을 다시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에서 구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78)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실천철학의 전통에서는 세계와의 관계 그리고 자기와의 관
계를 공통감각을 척도로 설정해가는 판단자가 lsquo하는 사람rsquo인지 아니면 lsquo보는 사람rsquo
인지 즉 lsquo행위자rsquo인지 아니면 lsquo관찰자rsquo인지를 둘러싸고 의견이 대립되어 왔다 lsquo하
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자가 lsquo정치가rsquo 쪽에 더 가깝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
자는 lsquo철학자rsquo 쪽에 더 가깝다 lsquo하는 사람rsquo은 주로 사회의 일반적 상식 건전한 인
간이해 세론(doxa)을 판단의 척도로 삼는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적 경험은 전체주
의 하에서는 건전한 인간이해도 집단화된 대중감정에 따른 오도된 인간이해 앞에
무너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판단에서 사실로서의 상식이나 합의 또는
법해석공동체 내부의 지배적 제도적 관점이라는 판단 척도만으로는 일반규칙으로
부터 오는 모순을 다루기 어렵다 여기서 판단자는 ldquo확대된 사유방식rdquo을 추구해야
하는데 아렌트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을 lsquo보는 사람rsquo의 판단과 결합시킴으로써 법
관을 위한 사유의 확대를 시도한다79) lsquo하는 사람rsquo이 사실로서의 일반적 상식이나
인간이해 차원에 비추어 판단한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ldquo이
상적 규범적 상식rdquo80)을 추구하고자 한다 판단을 거쳐 법적 효과를 결정하는 법관
76)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을 해석학적 순환이론을 적용하여 분석하면서 칸트의 판단력 비
판에 의거하여 아렌트가 판단력의 특수한 경우로서 법관의 ldquo성찰적 판단력rdquo이라는 새
로운 판단유형을 제시했다고 지적한 연구서로는 Stefanie Rosenmuumlller Der Ort des Rechts Gemeinsinn und richterliches Urteilen nach Hannah Arendt Nomos (2013) 참조
77) Hannah Arendt Das Urteilen 92-93면78) 아렌트가 판단의 차원을 심화시키는 발판으로 삼는 상식은 sensus communis로서
communis opinio와는 다르다는 데 대해서는 Marieke Borren ldquolsquoA Sense of the Worldrsquo Hannah Arendtrsquos Hermeneutic Phenomenology of Common Senserdquo International Journal of Philosophical Studies Vol 21 No 2 (2013) 225-255
79) Hannah Arendt Das Urteilen 76면80) Rosenmuumlller 앞의 책 234면 이하 여기서 아렌트는 상식개념을 이중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에서는 경험적 개념으로 보다 성찰적 판단
단계에서는 규범적 개념으로 사용한다
9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은 관찰자로서 판단하면서 동시에 행위자로서 판단에서 법적 결과를 결정하는
사람이다 관찰자인 동시에 행위자라는 이중적인 역할을 하면서 법관은 자신의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 반추한다81) 이 반추과정에서 법관은 한편으로는 포섭
하는 판단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고려해야 할 관점들을 끌어들이면서
자신의 직책을 마지막까지 수행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통제하면서 자신의 앞서의
(포섭) 판단을 정정해나간다 그래서 법관 자신이 lsquo보는 사람rsquo과 lsquo하는 사람rsquo의 만
남의 장소가 되는 것과도 같다 ldquo이 보는 사람은 모든 하는 사람 안에 자리 잡고
있다helliphellip이 비판적 판단능력이 없이는 행위자 혹은 해결자는 보는 사람으로부터
풀려나 종내는 지각되지조차 못하게 될 것이다rdquo82)
사람들은 자신 일에 있어서는 비당파적일 수는 없다 따라서 ldquo자신의 일에 대한
판단에서는 내면의 심판자 혹은 내면의 법정을 가질 수 없다rdquo83) 그러나 다른 사
람의 일을 반추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필히 비당파적이어야 하며 또 비당파적이 될
수 있다 이때 그는 비로소 내면의 심판자를 가지게 된다 즉 양심의 문제에 처하
게 되는 것이다 판단에 있어서 양심이라는 것 즉 양심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남
의 일에서 ldquo증인rdquo 혹은 ldquo비판적 친구rdquo로서 관찰하고 행위하는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이다84)
아렌트의 성찰적 판단모델은 나치 불법국가 경험의 산물이다 통상의 규칙이 파
괴된 상황 통상의 범죄유형에 포섭되지 않는 극히 예외적인 범죄적 상황에서 법
원은 기존의 판단척도를 해석학적 출발로 삼아서는 안 되고 이때에는 질적으로
동의가능한 합의형식을 찾기 위해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으로 돌아가
진정으로 사유 즉 철학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렌트가 판단을 일반화해주는
거점이자 해석학적 출발점으로 삼은 공통감각(상식) 개념은 칸트철학에서 ldquo비사교
적 사교성rdquo 개념의 위상과 비슷하다85) 이 지상에서 인간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다른 것을 원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모여 살아야만 하는 존재다 이 비사회성 요
청과 사회성 요청의 동시성 때문에 인간에게는 제도적인 안착이 더없이 중요하며
법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실존과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만든다 판단의 기
81) Leora Y Bilsky When Actor and Spectator Meet in the Courtroom Hannah Arendt and Eichmann in Jerusalem G N Arad Hg (Bloomington 1996) 137면
82) Hannah Arendt 앞의 책 85면83) Hannah Arendt 앞의 책 76면 84)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657면85) Rosenmuumlller 앞의 책 1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5
초를 보편적 인간경험에 둔다는 점에서 아렌트가 말하는 판단력은 드워킨의 헤라
클레스와 같은 초인적 천재성을 발휘하는 능력과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86) 아
렌트가 상정하는 이상적인 법관은 철학적이지만 철학자는 아니고 정치적이지만 정
치가는 아닌 사람이다
아렌트는 헌법국가의 권위도 상식개념에 기반을 두고 설명한다 그리고 민주적
정당성의 관점에서 입법의 우위를 인정하는 까닭에 성찰적 판단에 입각한 법관의
검증에는 한계가 있다는 태도를 견지한다87)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렌트가 제시한
법관의 성찰적 판단 유형에 대해서는 다양한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우선 이것이
예외 상황에서 적용되는 판단모델로 상정된 것이며 무엇보다도 ldquo규범적 상식rdquo에
대한 단일한 이해기반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법관 개인의 주관적 정치적 신념
이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길을 피할 수 없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성찰적
판단력은 결국 레토릭에 불과한 것인가 아렌트는 그러나 무엇이 ldquo특정 상황에 맞
는 공통감각(situierte Gemeinsinn)rdquo인지에 대한 공동의 인식은 가능하며 또 법관의
lsquo하는rsquo 판단에 들어있는 정치적 함의를 성찰적 판단력으로 검증하는 것도 가능하
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아렌트가 마지막 검증심급으로 원용하는 것이 바로 판
단에서의 양심의 심급이다 그것이 과연 동의할 수 있는 합의형태로서 충분한지를
스스로 검증하는 이 심급에서 판단자는 명령조로 자기에게 전해지는 소리를 듣게
된다 ldquo멈춰 나는 그것은 할 수 없어rdquo88) 판단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 멈추는 것
이 가능한 이 성찰적 심급에서는 칸트와 달리 할 수 없는 이유로써 결과도 고려
된다 lsquo보는 사람rsquo이 자기 안에서 지켜보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상황은 토마스 아퀴
나스의 양심론에 비추어 다음과 같이 묘사될 수도 있겠다 지적 본성을 가진 인간
존재가 보편법칙에 관한 지식을 개별 행위에 적용하기 위해 판단하고 선택할 때
행위자는 갈등 상황- ldquo그렇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rdquo는
상황-에 처하여 멈칫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데 이때 그는 단지 갈등하고
선택하는 역할만 하지 않고 갈등하고 선택하는 이 과정을 ldquo관찰하고 목격하는 증인rdquo
의 역할도 한다는 것89)
86) 드워킨에 의하면 해석적 탐구는 ldquo어떠한 증명도 허용치 않고 어떠한 수렴도 약속치
않는 탐구rdquo이다(드워킨 정의론 203면)87) Rosenmuumlller 앞의 책 30면88) Hannah Arendt Uumlber das Boumlse Eine Vorlesung zu Fragen der Ethik Hrsg v J Kohn
(Muumlnchen 2003) 52면89) 지적 행위자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자신의 내면의 갈등과 선택과정을 바라보는
9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Ⅹ 방법에서 덕목으로
헌법 제103조는 한 면으로는 헌법과 법률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 면으로 해석자에게 여하한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lsquo제약
의 차원rsquo과 lsquo자유의 차원rsquo을 동시에 담고 있다 법관은 자유로울 때에라도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며 법에 구속될 때에라도 전적으로 구속되지는 않는다는 뜻이
기도 하다 이 lsquo자유와 구속의 변증법rsquo에 비추어 지금까지 논한 주제에 대해 몇 가
지 입장을 정리해 보자 첫째 법관에게 있어서 독립은 확정된 원칙이나 그것자체
로서 달성해야 할 최종목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법관의 독립은 완성형이 아니라
끊임없는 진행형의 과제로서 그 직무수행에 대한 신뢰와 병행하여 점진적으로 이
루어지는 것이다 둘째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에 있어서 구속은 법률에 무조건 복종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판결에 대한 윤리 (내 ) 확신과 함께 법률에 복종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법관이 실정법률에 반하는 결정을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법
관은 객관성을 빌미로 법률 뒤에 숨는 익명적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
미하는 것이다 셋째 독립적인 법관의 양심은 lsquo법과 상충한다rsquo기보다는 lsquo법을 실
한다rsquo는 의미를 지닌다 넷째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서 반추하면서 lsquo하는
사람rsquo인 동시에 lsquo보는 사람rsquo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성찰 인 인물상으
로서만 설정될 수 있다
해석적 탐구는 우리의 이해를 넓히기 위해서 필요하지만 이해에서의 우리의 피
할 수 없는 한계를 깨닫기 위해서도 필요했는지 모른다 엥기쉬는 법해석방법론에
대한 저술의 마지막 부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ldquo방법론에 천착하다 보면
애초의 문제였던 법률로부터 훨씬 더 먼 곳으로 이끌려 간다rdquo 지금까지 필자는
법관의 법해석과 관련하여 방법론의 의의와 한계를 논하고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과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에 비추어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이 법해석론
의 불가결한 부분으로 들어가게 되는 이유도 밝혔다 그리고 해석적 차원에서의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는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행위를 목표로 하는
탐구라는 것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필자는 이 모든 논의들을 매개로 방법론이 우리를 더 멀리 덕
목론으로 데려가는 과정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드워킨의
상황에 대한 이 묘사 부분은 이경재 ldquo토마스 아퀴나스의 양심 개념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375면을 참조했다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7
헤라클레스를 잠시 불러올 필요가 있다 해석문제를 누구보다도 더 진지하게 다룬
드워킨은 마지막에 헤라클레스를 내세운다 주어진 사건에서 무엇이 법인지에
대해 도덕적 의식을 가지고 법실무 전체를 원리정합적으로 정당화하라는 요청에
부응하여 자신의 신념에 기초한 결정을 내리는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의 구성적
해석에서 법관의 양심이 기능하는 국면은 어디일까 송민경 판사는 드워킨의 구성
적 해석론에 입각하여 양심을 구체적 법논증과정의 일부로 포함시키면서 이때 양
심이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라는 지침으로 기능한다고 설명한다90)
그런데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는 지침으로 기능하는 것을 양심이라
고 보게 되면 양심의 문제는 논증적 합리성의 차원 즉 논증의 성공으로 종결짓게
된다 그러나 법적 결정의 정당성 문제는 법관의 입장에서는 논증의 성공 문제로
다루어지지만 법관의 성공적인 논증에 따른 판결의 결과로부터 영향을 받는 시민
의 입장에서 보면 성공적인 논증만으로는 해석이 정당화된다고 볼 수는 없다
성공적인 논증은 법적 결정의 정당화에 필수적이기는 하나 충분한 조건은 되지 못
한다 해석이 궁극적으로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사법적 도덕성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 사법적 도덕성은 헤라클레스가 지침으로 삼는 원리적 도덕성의 실현과는 다른
것이다 만약 패소한 시민이 다른 헤라클레스에게 갔더라면 즉 다른 법원리에 기
초한 신념을 토대로 다른 결정을 내린 다른 법관에게 갔다면 그는 승리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왜 헤라클레스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하
는지에 대한 답이 필요한 것이다91) 헤라클레스가 실무에 대한 최상의 정당화를
도모하는 법적 이상주의자라면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법원 문을 두드린 시민도
어느 의미에서 ldquo법이상주의자rdquo92)이다
법해석 작업의 주관의존성이라는 불가피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재판이라는 특수
한 공적 활동이 법관이라는 특수공직자에 의해 운영되고 유지된다는 것은 시민들
-소송에서 패한 시민들을 포함하여-편에서 보면 법을 해석하는 법관에 대한
신뢰가 전제된다는 것이다 법관의 독립적 활동은 법관의 특권 행사가 아니라 사
90) 송민경 앞의 글 38면 20면91) 사법적 덕목과 연관하여 이 부분을 다룬 글로는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5면 이하
92) 법원 문을 두드리는 시민에 대한 이 표현은 심헌섭 ldquo법조윤리의 좌표 거시적 관점에서 본 전문윤리로서의 법조윤리rdquo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편 法律家의 倫理와 責任 박영사
(2003)에 나온다
9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법과정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응당한 몫이 돌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존중하는 바탕에는 일종의 상호성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 그 또한
시민이기도 한 법관이 동료시민들에 대해 가지는 배려와 존중의 원칙이 그것이다
여기서 사법적 덕목에 대해 자세히 논할 수는 없다93) 예의 성실 신중 절제
용기 공정 겸손 의사소통 능력 형평 시민에 대한 배려와 존중 등등 이것들은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바탕을 이루는 양심의 덕목들일
것이다 양심이라는 단어가 그렇듯이 덕목이라는 단어도 오늘날 진부해진 표현
이며 거의 사라져가는 단어다 윤리적 태도로서의 덕목은 관찰하기도 배우기도
어렵다 그러나 올바른 판단과 결정이 법관이라는 개인을 거치지 않고 법령집
자체로부터 반사적으로 튀어나오지 않는 한 이 덕목들을 내면화하고 지향하려는
태도 없이는 lsquo종국적인rsquo 판단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써 필자는 헌법 제103조를 통해 법해석에서의 방법론의 문제가 덕목론이라
는 다음 과제로 이어진다는 점을 밝혔다고 생각한다
투고일 2016 4 6 심사완료일 2016 5 18 게재확정일 2016 5 20
93) 법관의 개별적인 덕목들과 이것들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는 박은정 강태경 김현섭 바람
직한 법관상의 정립과 실천 방안에 관한 연구 법원행정처(2015) 제5장 참조할 것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9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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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수 헌법학신론 박영사(2013)
김현섭 ldquo법관의 양심과 독립에 대한 헌법 제103조의 해석rdquo 한국법철학회 월례독회
발표문(2015 4 25)
김황식 연필로 쓴 페이스북 之山通信 나남(2013)
박은정 왜 법의 지배인가 돌베개(2010)
박은정 강태경 김현섭 바람직한 법관상의 정립과 실천 방안에 관한 연구 법원행
정처(2015)
사법연수원 법조윤리론(2014)
성낙인 헌법학 법문사(2014)
송민경 ldquo법관의 양심에 관한 연구rdquo 사법논집 제58집(2014)
심헌섭 ldquo법조윤리의 좌표 거시적 관점에서 본 전문윤리로서의 법조윤리rdquo 서울대
학교 법과대학 편 法律家의 倫理와 責任 박영사(2003)
분석과 비 의 법철학 법문사(2001)
양창수 ldquo바람직한 법관상-기예와 지혜 사이rdquo lt근대사법 및 한성재판소 설립
닐 맥코믹 로버트 서머즈 ldquo해석과 정당화(上)rdquo 박정훈 역 법철학연구 제5권 제2호
(2002) ldquo해석과 정당화(下)rdquo 박정훈 역 법철학연구 제6권 제1호(2003)
100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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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ltAbstractgt
Independence and Conscience of the Judges Based on
Interpretive Method for Article 103 of the Korean Constitution
Pak Un Jong
94)
In this paper I aim to discuss the problem of independence and conscience
of the judges as outlined in Article 103 of the Korean Constitution in the
context of the interpretive methodology
First of all this paper will look at the background in which the independence
of the judges has been institutionalized and also the problems regarding usual
explanation for conscience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And I will try to
reveal the characteristics and difficulties of the interpretive actions of the judges
especially in connection to the issue of value judgment This would require
pointing out the problems and limitations of the interpretive methodology and at
the same time defining the nature of tension embedded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namely the tension between the obligations of the judges to abide
the law versus the subjective internal demeanor of the judges This tension-
ridden condition reenacted by the demand to follow lsquogeneral justicersquo versus
lsquoindividual justicersquo appears inevitably in the process of judicial interpretation I
will examine the theories that capture this kind of tension that accompany the
interpretation process and aim to feel out the possibilities of resolving this
tension At the end I come to the conclusion that these theories can explain but
cannot resolve this tension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If so the problem
which arises from the limitations of the interpretative methodologies from the
perspective that a judgersquos final decision greatly impacts citizens becomes a
problem of judicial ethics In order to ultimately justify the interpretation of the
judges the demands of judicial ethics must be satisfied Keeping this demand in
Professor College of Law School of Law Seoul National University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103
mind I point out that the significance of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is in
its role of bridging legal methodology to virtue ethics
Keywords independence of the judges conscience of the judges interpretive
method of law value judgment judicial virtue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5
이때 정당한 근거 제시가 이루어진 결정과 관련하여 그것이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
이라는 주장을 펼 수 있는가 앞에서 검토한 대로 켈젠의 순수법이론은 그런 주장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이에 비해 드워킨은 법적 판단에 있어서 유일하게
정당한 결정이 원칙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ldquo정답테제rdquo로 불리는 이 주장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학자들이 지적한 대로 존재사실에 대한 주장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하나의 ldquo규제이념rdquo으로 받아들이는 게 맞는 것 같다 즉 드워킨의 정답테제
는 ldquo유일하게 정당한 결정rdquo이 존재한다는 데 대한 이론적 탐구라기보다는 실무에
서의 법관의 주관적 태도에 부합하는 이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법관은 자신의 판결활동과 관련하여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모든 사건
에서 오직 하나의 결정만이 정당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 정답에 가까이 가기 위
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55)
드워킨의 말대로 가치판단이 참일 때는 그냥 참일 수가 없으며 그것이 참인
이유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즉 충분한 논거가 존재할 때 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라면 이러한 논거지움의 과정은 자명한 공리적
토대나 그런 토대 위에서 확립된 규칙이나 원리적 서열에 따라 명확하게 밝힐 수
없다 이런 불확실한 가운데도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논거지움은 포기될 수
없다 이 끝없는 정당화 부담 때문에 켈젠은 규범의 효력 근거에 관한 논의를 가
치에 관한 논의와 절연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물론 성공하지
못했다56)
가치판단을 해야 하는 부분이 법문화에서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요소로 작용할지
아니면 그 반대로 작용할지는 판단자로서의 법관의 역량과 연관하여 논해야 할 것
이다 필자는 가치판단적 요소가 법문화에서 당연히 긍정적 요소로 작용해야 하며
게 부응하는지 묻게 한다 따라서 사법부 외부에서 행하는 사법비판의 길이 열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대해서는 노이만 앞의 강연문 참조55) 노이만 앞의 강연문56) 규범의 효력을 불명확하고 상대적인 가치가 아닌 규범에 근거짓기 위해 켈젠이 고안
한 근본규범은 사유상으로만 전제된 규범일 뿐이었다 켈젠은 가치판단을 ldquo현실의 행
위가 객관적으로 효력 있는 규범에 맞게 존재해야 하는 대로 존재한다는 판단rdquo이라고
정의함으로써 가치판단이라는 용어 자체를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Reine Rechtslehre 2 Aufl (1960) 16면 이하 또한 켈젠은 규범이 인간의 의지에 의해
제정되는 한 그 규범에 의해 형성된 가치는 어차피 자의적일 뿐이라고 주장한다(18면) 규범과 가치의 관계에 대한 켈젠의 주장에 대해서는 오세혁 ldquo켈젠의 법이론에 있어서
규범과 가치 - 규범과 가치의 상관관계를 중심으로rdquo 법철학연구 제18권 제3호(2015) 97면 이하 참조
8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또한 그렇게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57) 그런 방향에서 이제 해석의 문제를 법
관의 자기이해 문제와 연관시켜 보기로 한다
Ⅷ 해석과 법관의 자기이해
법관은 추상적인 일반규칙을 가지고 공중의 이목을 끄는 개별적인 사건을 처리
하는 사람이다 법관의 의식활동에 의해 일반규칙과 일회적인 사건 사이의 심연이
메워진다 하지만 일반성과 개별성을 결합하는 이 의식과정에 동반하는 고유한 법
학적 방법에 대해서는 앞에서 지적한 대로 확실한 합의는 없다 ldquo리걸 마인드rdquo라
는 말이 풍기는 신비스러운 분위기에는 사법적 결정이 본질적으로 투명한 것이 되기
어렵다는 암시가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다 논리적인 형태만 부여하기로 한다면
한 사건에서 서로 상반된 결론에 이른 두 개의 판결문을 작성하는 것도 불가능
하지 않다58) 방법이 논리에 기초하는 것이라면 이때 논리는 형식논리를 넘어 엥기
쉬가 표현한 대로 ldquo실질에 부합하는rdquo 논리여야 할 것이다 참된 올바른 받아들
일 수 있는 결정에 이르는 실질논리 이 실질에 도달하기까지는 결코 논리적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지적 감행과 어떤 매개가 작용한다
일반규칙을 개별사례에 적용할 때 요구되는 판단자의 능력과 관련하여 가다머
(Hans-Georg Gadamer)는 이런 견해를 밝힌 적이 있다 판단자는 자신이 이미 가
57) 이와는 달리 가치의 ldquo통약불가능성rdquo 때문에 사법은 좋음이나 옳음의 이슈에 대해 실
질적 입장을 취하는 일에 대해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가치의 통약
불가능성에 대해서는 Cass R Sunstein ldquoImcommensurability and Valuation in Lawrdquo Michigan Law Review Vol 92 No 4 (1994) 779면 이하 조홍식 교수는 ldquo가치의 통약
불가능성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이 권리인가의 문제보다 무엇이 공익인가의 문제에서
더 크다rdquo고 지적하면서 기본적으로 가치판단과 관련한 사법통치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사법통치의 정당성과 한계 제2판 박영사(2010) 240면 가치의 통약불가능성에 대한 주장은 가치판단과 관련한 해석기준의 서열화는 불가능
하다는 주장과 같은 노선에 속한다 여기서 통약불가능성 문제를 자세히 다룰 수는
없다 다만 가치의 통약불가능성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통약불가능이 비교불가능을 의미
하지는 않는다는 점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체적인 맥락이 주어지는 경우 무엇이 옳은
지 혹은 그른지에 대해 심사숙고하며 이에 따라 선택하고 그 선택 결과를 받아들인
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정도만 지적하기로 한다 58) 실제로 판사가 판결문을 두 개 써왔다고 주장한 사건에 대한 보도가 있었다 ldquo판결문을
두 개 써왔다rdquo 조선일보 2013 11 21자 기사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7
지고 있어서 적용하기만 하면 된다는 그런 의미의 규범적 실천적 ldquo지식을 소유한
사람rdquo이라기보다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 ldquo지식을 탄생시키는 상황에 직면하는
사람rdquo이라는 것이다59) 일반범주를 개별사례에 적용할 때 요구되는 이 판단력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래서 칸트(Kant)도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ldquo지성은 규칙들
을 통해 배우고 보강할 수 있는 것이지만 판단력은 특수한 재능으로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전혀 아니고 단지 숙련될 수 있을 뿐이다rdquo60)
우리는 올바른 규칙이나 원리를 알고 있지만 막상 이것을 어떤 상황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예컨대 비례성원칙이나 과잉금지원칙에 대한 지식
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은 적정해야 하고 그 수단은 목적달
성을 위해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원칙을 특수한
상황에 lsquo적용rsquo한다고 할 때에 이 원칙이 그 어떤 판단도 배제할 정도로 자족적인
지침 구실을 한다고 느끼기는 어렵다 특정 상황에서 그 수단이 과연 어느 정도일
때가 목적달성에 적정한지는 판단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실천이성의 역
할이다
단의 자리는 이론 경험 양심이 혼재된 실천의 영역이다 판단을 통한 결정이
라는 그 lsquo종국성rsquo으로 인한 실천적 성격은 법학이 다른 어떤 학문분야와도 공유
하지 않는 법학 고유의 특징이다 그래서 법학은 lsquolegal sciencersquo로 불리기보다는
실천지- prudentia-를 함의하는 lsquojurisprudencersquo로 더 자주 불리어 왔을 것이다
해석의 차원에서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도 추상적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
으로는 행위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성과 개별성을 결합하는 해석적
지식은 추상적 이론적 지식들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일반규칙이나 원리
에 근거한 이론적 패턴의 지식과 특정한 상황 내지 맥락을 고려하는 실천적 패턴
의 지식의 이중주를 이룬다 법관이 지니는 통찰력의 특성은 이론과 태도가 함께
간다는 데 있다 그래서 사법적 판단에서는 규칙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 못지않게
사람 즉 법관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사법적 통찰력의 특성은
뭐니뭐니해도 개별 사례를 다룬다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개별적인 것들은 개별적
인 방식으로만 체험되고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들은 무엇
보다도 lsquo지각rsquo과 관계된다61) 즉 그것들은 일반적 체계적 지식의 대상이라기보다
59) Hans-Georg Gadamer Wahrheit und Methode Grundzuumlge einer philosophischen Hermeneutik 3 Aufl J C B MOHR (1972) 300면
60)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 1 백종현 옮김 아카넷(2009) 374면
8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는 우선 지각의 대상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도 사법적 통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쪽은 규칙보다는 오히려 사람 즉 법관 쪽인 것이다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사건에서 법적으로 중요한 사실이 무엇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규칙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어떤 규칙이 중요한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실이 중요한지 알
아야 한다 이 인식과정에서 법관은 불확실한 가운데서 무수한 선택을 감행한다
어떤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 배척하고 어떤 사실은 인정하거나 무게를 부
여하고 신청된 증거조사의 어떤 것은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거부하고helliphellip 사실
에 대한 이 취사선택-자유심증주의-의 결과로 새로운 것이 태어난다 그리고
이것에 의해 법원을 찾아온 사람들의 운명이 갈리는 것이다
법관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필자 생각에
독일의 법철학자 아르투어 카우프만(Arthur Kaufmann)의 해석학적 방법론은 법
관의 자기이해 문제를 해석학적 지평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법관의 해석작업의
본질을 잘 설명해주는 것 같다 가다머 계통의 철학적 해석학(philosophische
Hermeneutik)의 입장을 받아들이면서62) 카우프만은 법해석행위를 통해 포괄적인
의미에서 법관 자신의 인격 중의 어떤 것이 판결에 혼입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
61)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4면 그리고 1심에서
유죄였다가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강력범죄 540건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판단자
의 감지능력 차이가 법판단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힌 김상준 무죄
결과 법 의 사실인정 경인문화사(2013) 62) 텍스트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이해에 관한 연구분야인 해석학(hermeneutics Hermeneutik)
의 어원은 신들의 전령(傳令)인 Hermes라는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설명된다 이때 신의
의도를 인간에게 전하는 과정에서 언어의 제약성 시공간적 간격 전령의 역할 등과 관
련하여 해석의 문제가 생긴다고 본다 ldquoHermeneuticsrdquo Dictionary of Biblical Interpretation Nashville (1999) 497면 독일어의 Auslegung이 해석주체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대상
으로서의 텍스트에 대한 해석을 의미한다면(객관주의) 철학적 해석학에서의 해석
(Interpretation)은 해석주체의 주관성 내지 역사성이 대상에 투사된다는 의미가 강하다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에 따르면 역사적 존재인 인간에게 있어 모든 해석과 이해는 과
거와 현재가 lsquo작용사적으로(wirkungsgeschichtlich)rsquo 중재되는 사건으로서 lsquo선이해rsquo 내지
lsquo선판단rsquo 없이는 불가능하다 가다머는 선입견으로 폄하된 선이해를 재평가하고 이를
통해 근대 이래 lsquo방법rsquo을 통한 진리발견이 주체에 의한 객체의 대상화 내지 도구화를 가져
왔다고 비판하면서 인간경험에 있어서 진리에 이르는 길은 사물의 존재가 스스로 드러
나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해석과 이해는 전승된 존재방식으로서
의 텍스트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며 이는 텍스트 자체가 지닌 역사적 지평과 해석
자의 지평이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만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해석학적 순환 이해의 전제로서의 선이해 작용사 등에 대해서는 Gadamer 앞의 책 II Grundzuumlge einer Theorie der Hermeneutischen Erfahrung 참조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9
로 법관의 결정이 올바른가의 물음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가의 물음과 직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63)
우선 카우프만은 통상적으로 회자되는 독립적인 법관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즉 법 앞에 선 법관이 일체의 정치적 사회적 개인적 영향이나 선입견들로부터 차
단된 채 순수한 객관적 인식에 따라 그 이전에는 자신이 알 수 없었던 사실관계
를 판단하고 그런 다음에 법적 판단을 한다는 식으로 이해하기를 거부한다64)
그런 법관상은 법령집은 일체 해석의 필요가 없이 거의 모든 가능한 법률문제에
대한 대답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상정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법관은 의지가
없는 존재이며 사법권력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여기는 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법에 대한 인식은 단순히 사례를 법률에 포섭시킨다는 의미의 수
동적 행위가 아니고 해석자가 해석대상에 관여하면서 함께 lsquo형성rsquo하는 것이라고
본다 카우프만은 법관의 법형성력에 대한 자신의 견해가 주관주의의 의미로 받아
들여지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는데 왜냐하면 해석자는 텍스트를 지탱하는 모든
전통과 함께 이해의 지평으로 들어간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은 서류의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ldquo아 이런 사건이구나rdquo라고 감을 잡게 되
는데 카우프만에 따르면 이는 법관 자신이 사건 경과를 관찰해서 인지했다거나
언론 등을 통해 사건에 대한 상세한 지식을 얻었다는 뜻이 아니라 유사한 사건들
을 알며 그래서 ldquo선이해(Vorurteil Vorverstaumlndnis)rdquo65)를 가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
해의 전제로서 이런 선이해가 없다면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것이 무엇에 관한 사
건인지 알 수 없고 다른 사례와 비교할 수도 없기 때문에 올바른 판단에 이른다
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66) 이 선이해에 의해 해석은 언제나 해석주체의 자기
이해 즉 자신이 lsquo잠정적rsquo 결과로서 이미 예상했던 것을 논증적으로 근거짓는 활동
이라는 의미에서 ldquo해석학적 순환rdquo 내지 ldquo해석학적 나선구조rdquo 하에 이루어진다
63)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Festschrift fuumlr Karl Peters Mohr Siebeck (1974) 144면 법관의 독립과 양심 주제와 관련한 또 다른
글로는 Kaufmann ldquoGesetz und Rechtrdquo Existenz und Ordnung Festschrift fuumlr Erik Wolf (1962) 357면 이하
64)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4면 65) 해석학적 의미에서의 lsquo선이해rsquo는 일상 언어 관용에서는 lsquo선입견rsquo이나 lsquo편견rsquo 같은 부정
적 함의를 더 많이 지니기 때문에 카우프만은 lsquoVorurteilrsquo 대신에 Vorverstaumlndnis라는 용
어를 쓰기를 권장한다(앞의 글 148면) 카우프만 외에도 이 용어의 선택은 Josef Esser Vorverstaumlndnis und Methodenwahl in der Rechtsfindung 2 Aufl (Frankfurt aM 1972)
66)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7면
90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텍스트를 이해하려는 사람은 말하자면 언제나 초벌 그림을 그리며 특정 의미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텍스트를 읽기 때문에 ldquo텍스트에서 첫 번째 의미가 지시되자
마자 전체의 의미를 lsquo예비투사한다(vorauswirft)rsquordquo67) 그리고 선이해와 관련된 이 예
비투사는-해석학적 lsquo순환rsquo에 의해-원칙적으로 끝없이 검열과정을 거친다는 것
이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도 실제 판단과정에서는 분리
되지 않는다68)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은 시간적으로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단절 관계가 아니라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정제하고 상응하는
관계에 놓인다 즉 사실에 대한 인식 없이 규범적 인식은 불가능하며 또한 규범적
관점 없이 사실만을 통한 사실 확정도 불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법률도 법관의
해석을 만나기 전에는 ldquo잠재적인 가능태로서 주어진 법률rdquo일 뿐 해석학적 순환을
통한 정제 혹은 상응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ldquo진정한 실정법rdquo이 생성된다69) 이렇
게 특정사건을 통해 구체화된 규범(구성요건)과 이 규범을 통해 정해진 사실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법관에게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들과 함께 제3의 요소로서 법관
자신의 선이해 내지 이해 포괄적으로 말하면 그의 인격적 존재가 판단에 혼입
된다
lsquo선이해rsquo는 판단자가 자신의 선이해를 의식하지 못할 때 부정적 요소를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ldquo자신의 판단은 오로지 lsquo있는 그대로다rsquo라고 말하는 즉 lsquo오로지 법
률에만 구속된다rsquo라고 말하는 법관이야말로 실은 종속된 법관이다 왜냐하면 그는
성찰되지 않은 자신의 선이해와 거리를 둘 수 없기 때문이다rdquo70) 즉 법관은 자신
67)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68) 실제 판단과정에서 사실인정과 법률적용이 따로 떨어질 수 없다는 점은 굳이 카우프
만의 이론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실무상으로는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ldquo법률
의 적용과 사실의 인정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법률문제와 결부되어 인정된다 사실의 인정이 진행됨에 따라서 재판관의 머리
속에서는 어떠한 법규를 적용할 것인가 그 법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는 전망이
점차로 서게 되며 당사자 측도 경우에 따라서는 민사인 경우 청구의 취지를 변경할
것인가를 고려하게 되고 형사인 경우 공소사실을 변경하는 경우도 생긴다 요컨대 사실
문제와 법률문제는 실제과정에서 불가분으로 결부되어 있다 helliphellip 양쪽이 불가분으로
재판관의 직관 혹은 재판관의 전인격적인 작용에 의하여 사실의 인정과 법의 적용이
행하여지고 판결 삼단논법은 실제의 심판 과정에서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rdquo(사법
연수원 법조윤리론 35면) 69) ldquo법관의 해석 작업 이전에는 어느 의미에서 진정 법도 진정한 사실도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원자재들(Rohmaterialien)로만 이것들이 존재할 뿐이다rdquo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1
의 선이해를 의식하고 자신을 이데올로기 혐의 앞에 세울 줄 알 때 올바른 판결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ldquo법관이 자신의 선이해와 종속을 의식할수록 그래서 간주
관적 합의에 노력할수록 그는 더 객관적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rdquo71) 그러므로
법관의 주관주의의 위험은 카우프만식으로 말하면 가치판단 같은 성찰적 고려와
관련된 주관적 요소를 방법상의 근거 제시의 맥락에 끌어들이는 법관의 경우보다는
오히려 모든 것이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판결의 주관적
요소를 은폐하는 법관에게서 나타나는 위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학적 순환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법관은 ldquo법률의 입rdquo이 아니라 ldquo인격
으로서 판결을 떠받친다rdquo72) 판결은 법률과 법관의 인격의 혼성물이다 그러므로
법률은 판결을 위한 필요조건이기는 하나 충분조건은 아니라고도 말할 수 있다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순환이론은 법관의 독립과 양심의 문제 차원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법결정의 올바름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
는 정도에 달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자신을 올바르
게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자신의 판단력 경험 능력 인간에 대한 태도 감
수성 명예욕 등등
카우프만의 법해석학적 순환이론이 법관의 독립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이라
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독립은 법관 스스로 관철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론적으로 카우프만의 법해석이론의 의의는 법관이 자신의 선입견을
의식하는 것이야말로 법관의 독립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설득력있게 지적
해주며 그런 방향에서 법관의 법해석 작업을 재평가했다는 데 있다고 말할 수 있
겠다
70)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71) Arthur Kaufmann ldquoDer BGH und die Sitzblockaderdquo NJW (1988) 2581면 이하72) 이 표현은 Karl Peters의 Strafprozess - Ein Lehrbuch (1966) 99면에 나오며 여기서는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9면에서 재
인용했다 이덕연 교수도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에 입각하여 ldquo법관의 법해석작
업은 단순한 lsquo인식작업rsquo이나 lsquo언어분석작업rsquo이 아니라 ldquo구체적인 반성과 자기극복의
노력 속에서 온 인격을 걸고 진행하는 lsquo이해와 실천의 수행작업rsquordquo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앞의 글 352면)
9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Ⅸ 법관은 lsquo하는 사람rsquo인가 lsquo보는 사람rsquo인가
법관의 판단작업을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의 관점에서 주목했던 또 다른
철학자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다 그녀는 ldquo아이히만 재판rdquo을 계기로 판단의
특수한 경우로서의 판단력 문제를 연구했다73) 아렌트는 하드케이스와 연관시켜
법관의 판단력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74) 법관은 우선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을 반추하면서 판단에 임하는데 이때 판단자로서 그는 한 면으
로는 규칙에 따라 판단하라는 lsquo일반적 정의rsquo의 요구에 그리고 동시에 다른 한 면
으로는 정황에 맞게 판단하라는 lsquo개별적 정의rsquo의 요구에 처한다 이러한 상황은
아렌트에 따르면 하드케이스에서 특히 발생한다 이 이중적이고 모순적 요구 상황
을 아렌트는 법관의 판단에 적용되는 특수한 해석학 및 그 조건을 설명하는 출발
점으로 삼는다75) 하드케이스가 아닌 통상적인 사건에서는 이른바 포섭 여부를 판
단하는 것으로도 족하다 일반규칙에의 포섭 여부가 중심이 되는 이 단계에서의
판단력- lsquo규정하는 판단력(bestimmende Urteilskraft)rsquo-은 사실관계에서의 원인
이나 형식적 정의를 따지므로 일방적이고 간주관적 전제 없이도 가능하다 그래서
흔히 법관은 여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법을 해석해야 한다고 말할 때 이는
법적용을 이러한 지배적인 포섭모델에 입각하여 이해한 결과라 할 것이다 그런데
규칙으로부터 오는 어떤 어려움들 때문에 규정하는 판단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즉 포섭이 어렵거나 법흠결 시 또는 가치형량이 요구되는 하드케
이스에서는 법관은 어쩔 수 없이 앞에서 말한 모순문제를 다루어야만 한다 이때
아렌트는 법관이 사유의 확장을 통해 방법상으로 lsquo규정적 판단력rsquo을 스스로 교정
할 수 있는 lsquo성찰적 판단력rsquo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고 이 판단유형의 전환과정을
73) 법적 판단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 삼은 저술은 Hannah Arendt Eichmann in Jerusalem Ein Bericht von der Banalitaumlt des Boumlsen Erw Aufl (Muumlnchen 2001) 그리고 Hannah Arendt Das Urteilen Texte zu Kants Politischer Philosophie Hrsg v R Beiner Uumlbers v U Ludz (Muumlnchen 1998)
74) 아렌트가 염두에 둔 하드케이스는 라드브루흐가 이른바 ldquo법률적 불법rdquo 상태로 규정한
나치의 불법국가 상황으로서 이렇게 극히 예외적인 케이스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하드
케이스에 적용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별적 정의 요구에 부응함
으로써 예컨대 소급효를 금지하는 일반법률에 위배되는 상황과 유사한 갈등상황은 반
드시 극단적 상황에서만 생긴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75)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2 Bde Hrsg v U Ludz amp I Nordmann
따라서 그 척도는 전달가능성이며 거기에 딱 맞는 것은 공통감각(상식)이다rdquo77) 오
늘날 공통감각은 아렌트도 지적했듯이 더 이상 그것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얻고자 노력해야 하는 그 무엇이 되어버린 듯하다 그러나 공통감
각이 무너진 시대를 겪었던 아렌트는 사유의 전환 내지 확대를 위한 진정한 발판
을 다시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에서 구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78)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실천철학의 전통에서는 세계와의 관계 그리고 자기와의 관
계를 공통감각을 척도로 설정해가는 판단자가 lsquo하는 사람rsquo인지 아니면 lsquo보는 사람rsquo
인지 즉 lsquo행위자rsquo인지 아니면 lsquo관찰자rsquo인지를 둘러싸고 의견이 대립되어 왔다 lsquo하
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자가 lsquo정치가rsquo 쪽에 더 가깝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
자는 lsquo철학자rsquo 쪽에 더 가깝다 lsquo하는 사람rsquo은 주로 사회의 일반적 상식 건전한 인
간이해 세론(doxa)을 판단의 척도로 삼는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적 경험은 전체주
의 하에서는 건전한 인간이해도 집단화된 대중감정에 따른 오도된 인간이해 앞에
무너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판단에서 사실로서의 상식이나 합의 또는
법해석공동체 내부의 지배적 제도적 관점이라는 판단 척도만으로는 일반규칙으로
부터 오는 모순을 다루기 어렵다 여기서 판단자는 ldquo확대된 사유방식rdquo을 추구해야
하는데 아렌트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을 lsquo보는 사람rsquo의 판단과 결합시킴으로써 법
관을 위한 사유의 확대를 시도한다79) lsquo하는 사람rsquo이 사실로서의 일반적 상식이나
인간이해 차원에 비추어 판단한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ldquo이
상적 규범적 상식rdquo80)을 추구하고자 한다 판단을 거쳐 법적 효과를 결정하는 법관
76)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을 해석학적 순환이론을 적용하여 분석하면서 칸트의 판단력 비
판에 의거하여 아렌트가 판단력의 특수한 경우로서 법관의 ldquo성찰적 판단력rdquo이라는 새
로운 판단유형을 제시했다고 지적한 연구서로는 Stefanie Rosenmuumlller Der Ort des Rechts Gemeinsinn und richterliches Urteilen nach Hannah Arendt Nomos (2013) 참조
77) Hannah Arendt Das Urteilen 92-93면78) 아렌트가 판단의 차원을 심화시키는 발판으로 삼는 상식은 sensus communis로서
communis opinio와는 다르다는 데 대해서는 Marieke Borren ldquolsquoA Sense of the Worldrsquo Hannah Arendtrsquos Hermeneutic Phenomenology of Common Senserdquo International Journal of Philosophical Studies Vol 21 No 2 (2013) 225-255
79) Hannah Arendt Das Urteilen 76면80) Rosenmuumlller 앞의 책 234면 이하 여기서 아렌트는 상식개념을 이중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에서는 경험적 개념으로 보다 성찰적 판단
단계에서는 규범적 개념으로 사용한다
9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은 관찰자로서 판단하면서 동시에 행위자로서 판단에서 법적 결과를 결정하는
사람이다 관찰자인 동시에 행위자라는 이중적인 역할을 하면서 법관은 자신의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 반추한다81) 이 반추과정에서 법관은 한편으로는 포섭
하는 판단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고려해야 할 관점들을 끌어들이면서
자신의 직책을 마지막까지 수행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통제하면서 자신의 앞서의
(포섭) 판단을 정정해나간다 그래서 법관 자신이 lsquo보는 사람rsquo과 lsquo하는 사람rsquo의 만
남의 장소가 되는 것과도 같다 ldquo이 보는 사람은 모든 하는 사람 안에 자리 잡고
있다helliphellip이 비판적 판단능력이 없이는 행위자 혹은 해결자는 보는 사람으로부터
풀려나 종내는 지각되지조차 못하게 될 것이다rdquo82)
사람들은 자신 일에 있어서는 비당파적일 수는 없다 따라서 ldquo자신의 일에 대한
판단에서는 내면의 심판자 혹은 내면의 법정을 가질 수 없다rdquo83) 그러나 다른 사
람의 일을 반추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필히 비당파적이어야 하며 또 비당파적이 될
수 있다 이때 그는 비로소 내면의 심판자를 가지게 된다 즉 양심의 문제에 처하
게 되는 것이다 판단에 있어서 양심이라는 것 즉 양심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남
의 일에서 ldquo증인rdquo 혹은 ldquo비판적 친구rdquo로서 관찰하고 행위하는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이다84)
아렌트의 성찰적 판단모델은 나치 불법국가 경험의 산물이다 통상의 규칙이 파
괴된 상황 통상의 범죄유형에 포섭되지 않는 극히 예외적인 범죄적 상황에서 법
원은 기존의 판단척도를 해석학적 출발로 삼아서는 안 되고 이때에는 질적으로
동의가능한 합의형식을 찾기 위해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으로 돌아가
진정으로 사유 즉 철학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렌트가 판단을 일반화해주는
거점이자 해석학적 출발점으로 삼은 공통감각(상식) 개념은 칸트철학에서 ldquo비사교
적 사교성rdquo 개념의 위상과 비슷하다85) 이 지상에서 인간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다른 것을 원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모여 살아야만 하는 존재다 이 비사회성 요
청과 사회성 요청의 동시성 때문에 인간에게는 제도적인 안착이 더없이 중요하며
법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실존과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만든다 판단의 기
81) Leora Y Bilsky When Actor and Spectator Meet in the Courtroom Hannah Arendt and Eichmann in Jerusalem G N Arad Hg (Bloomington 1996) 137면
82) Hannah Arendt 앞의 책 85면83) Hannah Arendt 앞의 책 76면 84)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657면85) Rosenmuumlller 앞의 책 1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5
초를 보편적 인간경험에 둔다는 점에서 아렌트가 말하는 판단력은 드워킨의 헤라
클레스와 같은 초인적 천재성을 발휘하는 능력과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86) 아
렌트가 상정하는 이상적인 법관은 철학적이지만 철학자는 아니고 정치적이지만 정
치가는 아닌 사람이다
아렌트는 헌법국가의 권위도 상식개념에 기반을 두고 설명한다 그리고 민주적
정당성의 관점에서 입법의 우위를 인정하는 까닭에 성찰적 판단에 입각한 법관의
검증에는 한계가 있다는 태도를 견지한다87)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렌트가 제시한
법관의 성찰적 판단 유형에 대해서는 다양한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우선 이것이
예외 상황에서 적용되는 판단모델로 상정된 것이며 무엇보다도 ldquo규범적 상식rdquo에
대한 단일한 이해기반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법관 개인의 주관적 정치적 신념
이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길을 피할 수 없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성찰적
판단력은 결국 레토릭에 불과한 것인가 아렌트는 그러나 무엇이 ldquo특정 상황에 맞
는 공통감각(situierte Gemeinsinn)rdquo인지에 대한 공동의 인식은 가능하며 또 법관의
lsquo하는rsquo 판단에 들어있는 정치적 함의를 성찰적 판단력으로 검증하는 것도 가능하
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아렌트가 마지막 검증심급으로 원용하는 것이 바로 판
단에서의 양심의 심급이다 그것이 과연 동의할 수 있는 합의형태로서 충분한지를
스스로 검증하는 이 심급에서 판단자는 명령조로 자기에게 전해지는 소리를 듣게
된다 ldquo멈춰 나는 그것은 할 수 없어rdquo88) 판단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 멈추는 것
이 가능한 이 성찰적 심급에서는 칸트와 달리 할 수 없는 이유로써 결과도 고려
된다 lsquo보는 사람rsquo이 자기 안에서 지켜보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상황은 토마스 아퀴
나스의 양심론에 비추어 다음과 같이 묘사될 수도 있겠다 지적 본성을 가진 인간
존재가 보편법칙에 관한 지식을 개별 행위에 적용하기 위해 판단하고 선택할 때
행위자는 갈등 상황- ldquo그렇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rdquo는
상황-에 처하여 멈칫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데 이때 그는 단지 갈등하고
선택하는 역할만 하지 않고 갈등하고 선택하는 이 과정을 ldquo관찰하고 목격하는 증인rdquo
의 역할도 한다는 것89)
86) 드워킨에 의하면 해석적 탐구는 ldquo어떠한 증명도 허용치 않고 어떠한 수렴도 약속치
않는 탐구rdquo이다(드워킨 정의론 203면)87) Rosenmuumlller 앞의 책 30면88) Hannah Arendt Uumlber das Boumlse Eine Vorlesung zu Fragen der Ethik Hrsg v J Kohn
(Muumlnchen 2003) 52면89) 지적 행위자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자신의 내면의 갈등과 선택과정을 바라보는
9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Ⅹ 방법에서 덕목으로
헌법 제103조는 한 면으로는 헌법과 법률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 면으로 해석자에게 여하한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lsquo제약
의 차원rsquo과 lsquo자유의 차원rsquo을 동시에 담고 있다 법관은 자유로울 때에라도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며 법에 구속될 때에라도 전적으로 구속되지는 않는다는 뜻이
기도 하다 이 lsquo자유와 구속의 변증법rsquo에 비추어 지금까지 논한 주제에 대해 몇 가
지 입장을 정리해 보자 첫째 법관에게 있어서 독립은 확정된 원칙이나 그것자체
로서 달성해야 할 최종목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법관의 독립은 완성형이 아니라
끊임없는 진행형의 과제로서 그 직무수행에 대한 신뢰와 병행하여 점진적으로 이
루어지는 것이다 둘째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에 있어서 구속은 법률에 무조건 복종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판결에 대한 윤리 (내 ) 확신과 함께 법률에 복종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법관이 실정법률에 반하는 결정을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법
관은 객관성을 빌미로 법률 뒤에 숨는 익명적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
미하는 것이다 셋째 독립적인 법관의 양심은 lsquo법과 상충한다rsquo기보다는 lsquo법을 실
한다rsquo는 의미를 지닌다 넷째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서 반추하면서 lsquo하는
사람rsquo인 동시에 lsquo보는 사람rsquo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성찰 인 인물상으
로서만 설정될 수 있다
해석적 탐구는 우리의 이해를 넓히기 위해서 필요하지만 이해에서의 우리의 피
할 수 없는 한계를 깨닫기 위해서도 필요했는지 모른다 엥기쉬는 법해석방법론에
대한 저술의 마지막 부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ldquo방법론에 천착하다 보면
애초의 문제였던 법률로부터 훨씬 더 먼 곳으로 이끌려 간다rdquo 지금까지 필자는
법관의 법해석과 관련하여 방법론의 의의와 한계를 논하고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과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에 비추어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이 법해석론
의 불가결한 부분으로 들어가게 되는 이유도 밝혔다 그리고 해석적 차원에서의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는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행위를 목표로 하는
탐구라는 것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필자는 이 모든 논의들을 매개로 방법론이 우리를 더 멀리 덕
목론으로 데려가는 과정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드워킨의
상황에 대한 이 묘사 부분은 이경재 ldquo토마스 아퀴나스의 양심 개념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375면을 참조했다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7
헤라클레스를 잠시 불러올 필요가 있다 해석문제를 누구보다도 더 진지하게 다룬
드워킨은 마지막에 헤라클레스를 내세운다 주어진 사건에서 무엇이 법인지에
대해 도덕적 의식을 가지고 법실무 전체를 원리정합적으로 정당화하라는 요청에
부응하여 자신의 신념에 기초한 결정을 내리는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의 구성적
해석에서 법관의 양심이 기능하는 국면은 어디일까 송민경 판사는 드워킨의 구성
적 해석론에 입각하여 양심을 구체적 법논증과정의 일부로 포함시키면서 이때 양
심이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라는 지침으로 기능한다고 설명한다90)
그런데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는 지침으로 기능하는 것을 양심이라
고 보게 되면 양심의 문제는 논증적 합리성의 차원 즉 논증의 성공으로 종결짓게
된다 그러나 법적 결정의 정당성 문제는 법관의 입장에서는 논증의 성공 문제로
다루어지지만 법관의 성공적인 논증에 따른 판결의 결과로부터 영향을 받는 시민
의 입장에서 보면 성공적인 논증만으로는 해석이 정당화된다고 볼 수는 없다
성공적인 논증은 법적 결정의 정당화에 필수적이기는 하나 충분한 조건은 되지 못
한다 해석이 궁극적으로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사법적 도덕성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 사법적 도덕성은 헤라클레스가 지침으로 삼는 원리적 도덕성의 실현과는 다른
것이다 만약 패소한 시민이 다른 헤라클레스에게 갔더라면 즉 다른 법원리에 기
초한 신념을 토대로 다른 결정을 내린 다른 법관에게 갔다면 그는 승리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왜 헤라클레스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하
는지에 대한 답이 필요한 것이다91) 헤라클레스가 실무에 대한 최상의 정당화를
도모하는 법적 이상주의자라면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법원 문을 두드린 시민도
어느 의미에서 ldquo법이상주의자rdquo92)이다
법해석 작업의 주관의존성이라는 불가피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재판이라는 특수
한 공적 활동이 법관이라는 특수공직자에 의해 운영되고 유지된다는 것은 시민들
-소송에서 패한 시민들을 포함하여-편에서 보면 법을 해석하는 법관에 대한
신뢰가 전제된다는 것이다 법관의 독립적 활동은 법관의 특권 행사가 아니라 사
90) 송민경 앞의 글 38면 20면91) 사법적 덕목과 연관하여 이 부분을 다룬 글로는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5면 이하
92) 법원 문을 두드리는 시민에 대한 이 표현은 심헌섭 ldquo법조윤리의 좌표 거시적 관점에서 본 전문윤리로서의 법조윤리rdquo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편 法律家의 倫理와 責任 박영사
(2003)에 나온다
9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법과정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응당한 몫이 돌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존중하는 바탕에는 일종의 상호성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 그 또한
시민이기도 한 법관이 동료시민들에 대해 가지는 배려와 존중의 원칙이 그것이다
여기서 사법적 덕목에 대해 자세히 논할 수는 없다93) 예의 성실 신중 절제
용기 공정 겸손 의사소통 능력 형평 시민에 대한 배려와 존중 등등 이것들은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바탕을 이루는 양심의 덕목들일
것이다 양심이라는 단어가 그렇듯이 덕목이라는 단어도 오늘날 진부해진 표현
이며 거의 사라져가는 단어다 윤리적 태도로서의 덕목은 관찰하기도 배우기도
어렵다 그러나 올바른 판단과 결정이 법관이라는 개인을 거치지 않고 법령집
자체로부터 반사적으로 튀어나오지 않는 한 이 덕목들을 내면화하고 지향하려는
태도 없이는 lsquo종국적인rsquo 판단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써 필자는 헌법 제103조를 통해 법해석에서의 방법론의 문제가 덕목론이라
는 다음 과제로 이어진다는 점을 밝혔다고 생각한다
투고일 2016 4 6 심사완료일 2016 5 18 게재확정일 2016 5 20
93) 법관의 개별적인 덕목들과 이것들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는 박은정 강태경 김현섭 바람
직한 법관상의 정립과 실천 방안에 관한 연구 법원행정처(2015) 제5장 참조할 것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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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ltAbstractgt
Independence and Conscience of the Judges Based on
Interpretive Method for Article 103 of the Korean Constitution
Pak Un Jong
94)
In this paper I aim to discuss the problem of independence and conscience
of the judges as outlined in Article 103 of the Korean Constitution in the
context of the interpretive methodology
First of all this paper will look at the background in which the independence
of the judges has been institutionalized and also the problems regarding usual
explanation for conscience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And I will try to
reveal the characteristics and difficulties of the interpretive actions of the judges
especially in connection to the issue of value judgment This would require
pointing out the problems and limitations of the interpretive methodology and at
the same time defining the nature of tension embedded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namely the tension between the obligations of the judges to abide
the law versus the subjective internal demeanor of the judges This tension-
ridden condition reenacted by the demand to follow lsquogeneral justicersquo versus
lsquoindividual justicersquo appears inevitably in the process of judicial interpretation I
will examine the theories that capture this kind of tension that accompany the
interpretation process and aim to feel out the possibilities of resolving this
tension At the end I come to the conclusion that these theories can explain but
cannot resolve this tension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If so the problem
which arises from the limitations of the interpretative methodologies from the
perspective that a judgersquos final decision greatly impacts citizens becomes a
problem of judicial ethics In order to ultimately justify the interpretation of the
judges the demands of judicial ethics must be satisfied Keeping this demand in
Professor College of Law School of Law Seoul National University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103
mind I point out that the significance of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is in
its role of bridging legal methodology to virtue ethics
Keywords independence of the judges conscience of the judges interpretive
method of law value judgment judicial virtue
8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또한 그렇게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57) 그런 방향에서 이제 해석의 문제를 법
관의 자기이해 문제와 연관시켜 보기로 한다
Ⅷ 해석과 법관의 자기이해
법관은 추상적인 일반규칙을 가지고 공중의 이목을 끄는 개별적인 사건을 처리
하는 사람이다 법관의 의식활동에 의해 일반규칙과 일회적인 사건 사이의 심연이
메워진다 하지만 일반성과 개별성을 결합하는 이 의식과정에 동반하는 고유한 법
학적 방법에 대해서는 앞에서 지적한 대로 확실한 합의는 없다 ldquo리걸 마인드rdquo라
는 말이 풍기는 신비스러운 분위기에는 사법적 결정이 본질적으로 투명한 것이 되기
어렵다는 암시가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다 논리적인 형태만 부여하기로 한다면
한 사건에서 서로 상반된 결론에 이른 두 개의 판결문을 작성하는 것도 불가능
하지 않다58) 방법이 논리에 기초하는 것이라면 이때 논리는 형식논리를 넘어 엥기
쉬가 표현한 대로 ldquo실질에 부합하는rdquo 논리여야 할 것이다 참된 올바른 받아들
일 수 있는 결정에 이르는 실질논리 이 실질에 도달하기까지는 결코 논리적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지적 감행과 어떤 매개가 작용한다
일반규칙을 개별사례에 적용할 때 요구되는 판단자의 능력과 관련하여 가다머
(Hans-Georg Gadamer)는 이런 견해를 밝힌 적이 있다 판단자는 자신이 이미 가
57) 이와는 달리 가치의 ldquo통약불가능성rdquo 때문에 사법은 좋음이나 옳음의 이슈에 대해 실
질적 입장을 취하는 일에 대해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가치의 통약
불가능성에 대해서는 Cass R Sunstein ldquoImcommensurability and Valuation in Lawrdquo Michigan Law Review Vol 92 No 4 (1994) 779면 이하 조홍식 교수는 ldquo가치의 통약
불가능성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이 권리인가의 문제보다 무엇이 공익인가의 문제에서
더 크다rdquo고 지적하면서 기본적으로 가치판단과 관련한 사법통치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사법통치의 정당성과 한계 제2판 박영사(2010) 240면 가치의 통약불가능성에 대한 주장은 가치판단과 관련한 해석기준의 서열화는 불가능
하다는 주장과 같은 노선에 속한다 여기서 통약불가능성 문제를 자세히 다룰 수는
없다 다만 가치의 통약불가능성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통약불가능이 비교불가능을 의미
하지는 않는다는 점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체적인 맥락이 주어지는 경우 무엇이 옳은
지 혹은 그른지에 대해 심사숙고하며 이에 따라 선택하고 그 선택 결과를 받아들인
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정도만 지적하기로 한다 58) 실제로 판사가 판결문을 두 개 써왔다고 주장한 사건에 대한 보도가 있었다 ldquo판결문을
두 개 써왔다rdquo 조선일보 2013 11 21자 기사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7
지고 있어서 적용하기만 하면 된다는 그런 의미의 규범적 실천적 ldquo지식을 소유한
사람rdquo이라기보다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 ldquo지식을 탄생시키는 상황에 직면하는
사람rdquo이라는 것이다59) 일반범주를 개별사례에 적용할 때 요구되는 이 판단력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래서 칸트(Kant)도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ldquo지성은 규칙들
을 통해 배우고 보강할 수 있는 것이지만 판단력은 특수한 재능으로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전혀 아니고 단지 숙련될 수 있을 뿐이다rdquo60)
우리는 올바른 규칙이나 원리를 알고 있지만 막상 이것을 어떤 상황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예컨대 비례성원칙이나 과잉금지원칙에 대한 지식
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은 적정해야 하고 그 수단은 목적달
성을 위해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원칙을 특수한
상황에 lsquo적용rsquo한다고 할 때에 이 원칙이 그 어떤 판단도 배제할 정도로 자족적인
지침 구실을 한다고 느끼기는 어렵다 특정 상황에서 그 수단이 과연 어느 정도일
때가 목적달성에 적정한지는 판단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실천이성의 역
할이다
단의 자리는 이론 경험 양심이 혼재된 실천의 영역이다 판단을 통한 결정이
라는 그 lsquo종국성rsquo으로 인한 실천적 성격은 법학이 다른 어떤 학문분야와도 공유
하지 않는 법학 고유의 특징이다 그래서 법학은 lsquolegal sciencersquo로 불리기보다는
실천지- prudentia-를 함의하는 lsquojurisprudencersquo로 더 자주 불리어 왔을 것이다
해석의 차원에서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도 추상적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
으로는 행위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성과 개별성을 결합하는 해석적
지식은 추상적 이론적 지식들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일반규칙이나 원리
에 근거한 이론적 패턴의 지식과 특정한 상황 내지 맥락을 고려하는 실천적 패턴
의 지식의 이중주를 이룬다 법관이 지니는 통찰력의 특성은 이론과 태도가 함께
간다는 데 있다 그래서 사법적 판단에서는 규칙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 못지않게
사람 즉 법관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사법적 통찰력의 특성은
뭐니뭐니해도 개별 사례를 다룬다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개별적인 것들은 개별적
인 방식으로만 체험되고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들은 무엇
보다도 lsquo지각rsquo과 관계된다61) 즉 그것들은 일반적 체계적 지식의 대상이라기보다
59) Hans-Georg Gadamer Wahrheit und Methode Grundzuumlge einer philosophischen Hermeneutik 3 Aufl J C B MOHR (1972) 300면
60)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 1 백종현 옮김 아카넷(2009) 37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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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우선 지각의 대상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도 사법적 통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쪽은 규칙보다는 오히려 사람 즉 법관 쪽인 것이다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사건에서 법적으로 중요한 사실이 무엇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규칙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어떤 규칙이 중요한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실이 중요한지 알
아야 한다 이 인식과정에서 법관은 불확실한 가운데서 무수한 선택을 감행한다
어떤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 배척하고 어떤 사실은 인정하거나 무게를 부
여하고 신청된 증거조사의 어떤 것은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거부하고helliphellip 사실
에 대한 이 취사선택-자유심증주의-의 결과로 새로운 것이 태어난다 그리고
이것에 의해 법원을 찾아온 사람들의 운명이 갈리는 것이다
법관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필자 생각에
독일의 법철학자 아르투어 카우프만(Arthur Kaufmann)의 해석학적 방법론은 법
관의 자기이해 문제를 해석학적 지평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법관의 해석작업의
본질을 잘 설명해주는 것 같다 가다머 계통의 철학적 해석학(philosophische
Hermeneutik)의 입장을 받아들이면서62) 카우프만은 법해석행위를 통해 포괄적인
의미에서 법관 자신의 인격 중의 어떤 것이 판결에 혼입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
61)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4면 그리고 1심에서
유죄였다가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강력범죄 540건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판단자
의 감지능력 차이가 법판단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힌 김상준 무죄
결과 법 의 사실인정 경인문화사(2013) 62) 텍스트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이해에 관한 연구분야인 해석학(hermeneutics Hermeneutik)
의 어원은 신들의 전령(傳令)인 Hermes라는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설명된다 이때 신의
의도를 인간에게 전하는 과정에서 언어의 제약성 시공간적 간격 전령의 역할 등과 관
련하여 해석의 문제가 생긴다고 본다 ldquoHermeneuticsrdquo Dictionary of Biblical Interpretation Nashville (1999) 497면 독일어의 Auslegung이 해석주체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대상
으로서의 텍스트에 대한 해석을 의미한다면(객관주의) 철학적 해석학에서의 해석
(Interpretation)은 해석주체의 주관성 내지 역사성이 대상에 투사된다는 의미가 강하다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에 따르면 역사적 존재인 인간에게 있어 모든 해석과 이해는 과
거와 현재가 lsquo작용사적으로(wirkungsgeschichtlich)rsquo 중재되는 사건으로서 lsquo선이해rsquo 내지
lsquo선판단rsquo 없이는 불가능하다 가다머는 선입견으로 폄하된 선이해를 재평가하고 이를
통해 근대 이래 lsquo방법rsquo을 통한 진리발견이 주체에 의한 객체의 대상화 내지 도구화를 가져
왔다고 비판하면서 인간경험에 있어서 진리에 이르는 길은 사물의 존재가 스스로 드러
나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해석과 이해는 전승된 존재방식으로서
의 텍스트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며 이는 텍스트 자체가 지닌 역사적 지평과 해석
자의 지평이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만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해석학적 순환 이해의 전제로서의 선이해 작용사 등에 대해서는 Gadamer 앞의 책 II Grundzuumlge einer Theorie der Hermeneutischen Erfahrung 참조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9
로 법관의 결정이 올바른가의 물음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가의 물음과 직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63)
우선 카우프만은 통상적으로 회자되는 독립적인 법관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즉 법 앞에 선 법관이 일체의 정치적 사회적 개인적 영향이나 선입견들로부터 차
단된 채 순수한 객관적 인식에 따라 그 이전에는 자신이 알 수 없었던 사실관계
를 판단하고 그런 다음에 법적 판단을 한다는 식으로 이해하기를 거부한다64)
그런 법관상은 법령집은 일체 해석의 필요가 없이 거의 모든 가능한 법률문제에
대한 대답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상정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법관은 의지가
없는 존재이며 사법권력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여기는 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법에 대한 인식은 단순히 사례를 법률에 포섭시킨다는 의미의 수
동적 행위가 아니고 해석자가 해석대상에 관여하면서 함께 lsquo형성rsquo하는 것이라고
본다 카우프만은 법관의 법형성력에 대한 자신의 견해가 주관주의의 의미로 받아
들여지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는데 왜냐하면 해석자는 텍스트를 지탱하는 모든
전통과 함께 이해의 지평으로 들어간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은 서류의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ldquo아 이런 사건이구나rdquo라고 감을 잡게 되
는데 카우프만에 따르면 이는 법관 자신이 사건 경과를 관찰해서 인지했다거나
언론 등을 통해 사건에 대한 상세한 지식을 얻었다는 뜻이 아니라 유사한 사건들
을 알며 그래서 ldquo선이해(Vorurteil Vorverstaumlndnis)rdquo65)를 가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
해의 전제로서 이런 선이해가 없다면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것이 무엇에 관한 사
건인지 알 수 없고 다른 사례와 비교할 수도 없기 때문에 올바른 판단에 이른다
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66) 이 선이해에 의해 해석은 언제나 해석주체의 자기
이해 즉 자신이 lsquo잠정적rsquo 결과로서 이미 예상했던 것을 논증적으로 근거짓는 활동
이라는 의미에서 ldquo해석학적 순환rdquo 내지 ldquo해석학적 나선구조rdquo 하에 이루어진다
63)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Festschrift fuumlr Karl Peters Mohr Siebeck (1974) 144면 법관의 독립과 양심 주제와 관련한 또 다른
글로는 Kaufmann ldquoGesetz und Rechtrdquo Existenz und Ordnung Festschrift fuumlr Erik Wolf (1962) 357면 이하
64)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4면 65) 해석학적 의미에서의 lsquo선이해rsquo는 일상 언어 관용에서는 lsquo선입견rsquo이나 lsquo편견rsquo 같은 부정
적 함의를 더 많이 지니기 때문에 카우프만은 lsquoVorurteilrsquo 대신에 Vorverstaumlndnis라는 용
어를 쓰기를 권장한다(앞의 글 148면) 카우프만 외에도 이 용어의 선택은 Josef Esser Vorverstaumlndnis und Methodenwahl in der Rechtsfindung 2 Aufl (Frankfurt aM 1972)
66)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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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를 이해하려는 사람은 말하자면 언제나 초벌 그림을 그리며 특정 의미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텍스트를 읽기 때문에 ldquo텍스트에서 첫 번째 의미가 지시되자
마자 전체의 의미를 lsquo예비투사한다(vorauswirft)rsquordquo67) 그리고 선이해와 관련된 이 예
비투사는-해석학적 lsquo순환rsquo에 의해-원칙적으로 끝없이 검열과정을 거친다는 것
이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도 실제 판단과정에서는 분리
되지 않는다68)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은 시간적으로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단절 관계가 아니라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정제하고 상응하는
관계에 놓인다 즉 사실에 대한 인식 없이 규범적 인식은 불가능하며 또한 규범적
관점 없이 사실만을 통한 사실 확정도 불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법률도 법관의
해석을 만나기 전에는 ldquo잠재적인 가능태로서 주어진 법률rdquo일 뿐 해석학적 순환을
통한 정제 혹은 상응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ldquo진정한 실정법rdquo이 생성된다69) 이렇
게 특정사건을 통해 구체화된 규범(구성요건)과 이 규범을 통해 정해진 사실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법관에게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들과 함께 제3의 요소로서 법관
자신의 선이해 내지 이해 포괄적으로 말하면 그의 인격적 존재가 판단에 혼입
된다
lsquo선이해rsquo는 판단자가 자신의 선이해를 의식하지 못할 때 부정적 요소를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ldquo자신의 판단은 오로지 lsquo있는 그대로다rsquo라고 말하는 즉 lsquo오로지 법
률에만 구속된다rsquo라고 말하는 법관이야말로 실은 종속된 법관이다 왜냐하면 그는
성찰되지 않은 자신의 선이해와 거리를 둘 수 없기 때문이다rdquo70) 즉 법관은 자신
67)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68) 실제 판단과정에서 사실인정과 법률적용이 따로 떨어질 수 없다는 점은 굳이 카우프
만의 이론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실무상으로는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ldquo법률
의 적용과 사실의 인정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법률문제와 결부되어 인정된다 사실의 인정이 진행됨에 따라서 재판관의 머리
속에서는 어떠한 법규를 적용할 것인가 그 법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는 전망이
점차로 서게 되며 당사자 측도 경우에 따라서는 민사인 경우 청구의 취지를 변경할
것인가를 고려하게 되고 형사인 경우 공소사실을 변경하는 경우도 생긴다 요컨대 사실
문제와 법률문제는 실제과정에서 불가분으로 결부되어 있다 helliphellip 양쪽이 불가분으로
재판관의 직관 혹은 재판관의 전인격적인 작용에 의하여 사실의 인정과 법의 적용이
행하여지고 판결 삼단논법은 실제의 심판 과정에서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rdquo(사법
연수원 법조윤리론 35면) 69) ldquo법관의 해석 작업 이전에는 어느 의미에서 진정 법도 진정한 사실도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원자재들(Rohmaterialien)로만 이것들이 존재할 뿐이다rdquo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1
의 선이해를 의식하고 자신을 이데올로기 혐의 앞에 세울 줄 알 때 올바른 판결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ldquo법관이 자신의 선이해와 종속을 의식할수록 그래서 간주
관적 합의에 노력할수록 그는 더 객관적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rdquo71) 그러므로
법관의 주관주의의 위험은 카우프만식으로 말하면 가치판단 같은 성찰적 고려와
관련된 주관적 요소를 방법상의 근거 제시의 맥락에 끌어들이는 법관의 경우보다는
오히려 모든 것이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판결의 주관적
요소를 은폐하는 법관에게서 나타나는 위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학적 순환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법관은 ldquo법률의 입rdquo이 아니라 ldquo인격
으로서 판결을 떠받친다rdquo72) 판결은 법률과 법관의 인격의 혼성물이다 그러므로
법률은 판결을 위한 필요조건이기는 하나 충분조건은 아니라고도 말할 수 있다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순환이론은 법관의 독립과 양심의 문제 차원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법결정의 올바름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
는 정도에 달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자신을 올바르
게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자신의 판단력 경험 능력 인간에 대한 태도 감
수성 명예욕 등등
카우프만의 법해석학적 순환이론이 법관의 독립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이라
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독립은 법관 스스로 관철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론적으로 카우프만의 법해석이론의 의의는 법관이 자신의 선입견을
의식하는 것이야말로 법관의 독립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설득력있게 지적
해주며 그런 방향에서 법관의 법해석 작업을 재평가했다는 데 있다고 말할 수 있
겠다
70)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71) Arthur Kaufmann ldquoDer BGH und die Sitzblockaderdquo NJW (1988) 2581면 이하72) 이 표현은 Karl Peters의 Strafprozess - Ein Lehrbuch (1966) 99면에 나오며 여기서는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9면에서 재
인용했다 이덕연 교수도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에 입각하여 ldquo법관의 법해석작
업은 단순한 lsquo인식작업rsquo이나 lsquo언어분석작업rsquo이 아니라 ldquo구체적인 반성과 자기극복의
노력 속에서 온 인격을 걸고 진행하는 lsquo이해와 실천의 수행작업rsquordquo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앞의 글 35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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Ⅸ 법관은 lsquo하는 사람rsquo인가 lsquo보는 사람rsquo인가
법관의 판단작업을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의 관점에서 주목했던 또 다른
철학자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다 그녀는 ldquo아이히만 재판rdquo을 계기로 판단의
특수한 경우로서의 판단력 문제를 연구했다73) 아렌트는 하드케이스와 연관시켜
법관의 판단력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74) 법관은 우선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을 반추하면서 판단에 임하는데 이때 판단자로서 그는 한 면으
로는 규칙에 따라 판단하라는 lsquo일반적 정의rsquo의 요구에 그리고 동시에 다른 한 면
으로는 정황에 맞게 판단하라는 lsquo개별적 정의rsquo의 요구에 처한다 이러한 상황은
아렌트에 따르면 하드케이스에서 특히 발생한다 이 이중적이고 모순적 요구 상황
을 아렌트는 법관의 판단에 적용되는 특수한 해석학 및 그 조건을 설명하는 출발
점으로 삼는다75) 하드케이스가 아닌 통상적인 사건에서는 이른바 포섭 여부를 판
단하는 것으로도 족하다 일반규칙에의 포섭 여부가 중심이 되는 이 단계에서의
판단력- lsquo규정하는 판단력(bestimmende Urteilskraft)rsquo-은 사실관계에서의 원인
이나 형식적 정의를 따지므로 일방적이고 간주관적 전제 없이도 가능하다 그래서
흔히 법관은 여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법을 해석해야 한다고 말할 때 이는
법적용을 이러한 지배적인 포섭모델에 입각하여 이해한 결과라 할 것이다 그런데
규칙으로부터 오는 어떤 어려움들 때문에 규정하는 판단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즉 포섭이 어렵거나 법흠결 시 또는 가치형량이 요구되는 하드케
이스에서는 법관은 어쩔 수 없이 앞에서 말한 모순문제를 다루어야만 한다 이때
아렌트는 법관이 사유의 확장을 통해 방법상으로 lsquo규정적 판단력rsquo을 스스로 교정
할 수 있는 lsquo성찰적 판단력rsquo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고 이 판단유형의 전환과정을
73) 법적 판단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 삼은 저술은 Hannah Arendt Eichmann in Jerusalem Ein Bericht von der Banalitaumlt des Boumlsen Erw Aufl (Muumlnchen 2001) 그리고 Hannah Arendt Das Urteilen Texte zu Kants Politischer Philosophie Hrsg v R Beiner Uumlbers v U Ludz (Muumlnchen 1998)
74) 아렌트가 염두에 둔 하드케이스는 라드브루흐가 이른바 ldquo법률적 불법rdquo 상태로 규정한
나치의 불법국가 상황으로서 이렇게 극히 예외적인 케이스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하드
케이스에 적용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별적 정의 요구에 부응함
으로써 예컨대 소급효를 금지하는 일반법률에 위배되는 상황과 유사한 갈등상황은 반
드시 극단적 상황에서만 생긴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75)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2 Bde Hrsg v U Ludz amp I Nordmann
따라서 그 척도는 전달가능성이며 거기에 딱 맞는 것은 공통감각(상식)이다rdquo77) 오
늘날 공통감각은 아렌트도 지적했듯이 더 이상 그것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얻고자 노력해야 하는 그 무엇이 되어버린 듯하다 그러나 공통감
각이 무너진 시대를 겪었던 아렌트는 사유의 전환 내지 확대를 위한 진정한 발판
을 다시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에서 구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78)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실천철학의 전통에서는 세계와의 관계 그리고 자기와의 관
계를 공통감각을 척도로 설정해가는 판단자가 lsquo하는 사람rsquo인지 아니면 lsquo보는 사람rsquo
인지 즉 lsquo행위자rsquo인지 아니면 lsquo관찰자rsquo인지를 둘러싸고 의견이 대립되어 왔다 lsquo하
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자가 lsquo정치가rsquo 쪽에 더 가깝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
자는 lsquo철학자rsquo 쪽에 더 가깝다 lsquo하는 사람rsquo은 주로 사회의 일반적 상식 건전한 인
간이해 세론(doxa)을 판단의 척도로 삼는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적 경험은 전체주
의 하에서는 건전한 인간이해도 집단화된 대중감정에 따른 오도된 인간이해 앞에
무너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판단에서 사실로서의 상식이나 합의 또는
법해석공동체 내부의 지배적 제도적 관점이라는 판단 척도만으로는 일반규칙으로
부터 오는 모순을 다루기 어렵다 여기서 판단자는 ldquo확대된 사유방식rdquo을 추구해야
하는데 아렌트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을 lsquo보는 사람rsquo의 판단과 결합시킴으로써 법
관을 위한 사유의 확대를 시도한다79) lsquo하는 사람rsquo이 사실로서의 일반적 상식이나
인간이해 차원에 비추어 판단한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ldquo이
상적 규범적 상식rdquo80)을 추구하고자 한다 판단을 거쳐 법적 효과를 결정하는 법관
76)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을 해석학적 순환이론을 적용하여 분석하면서 칸트의 판단력 비
판에 의거하여 아렌트가 판단력의 특수한 경우로서 법관의 ldquo성찰적 판단력rdquo이라는 새
로운 판단유형을 제시했다고 지적한 연구서로는 Stefanie Rosenmuumlller Der Ort des Rechts Gemeinsinn und richterliches Urteilen nach Hannah Arendt Nomos (2013) 참조
77) Hannah Arendt Das Urteilen 92-93면78) 아렌트가 판단의 차원을 심화시키는 발판으로 삼는 상식은 sensus communis로서
communis opinio와는 다르다는 데 대해서는 Marieke Borren ldquolsquoA Sense of the Worldrsquo Hannah Arendtrsquos Hermeneutic Phenomenology of Common Senserdquo International Journal of Philosophical Studies Vol 21 No 2 (2013) 225-255
79) Hannah Arendt Das Urteilen 76면80) Rosenmuumlller 앞의 책 234면 이하 여기서 아렌트는 상식개념을 이중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에서는 경험적 개념으로 보다 성찰적 판단
단계에서는 규범적 개념으로 사용한다
9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은 관찰자로서 판단하면서 동시에 행위자로서 판단에서 법적 결과를 결정하는
사람이다 관찰자인 동시에 행위자라는 이중적인 역할을 하면서 법관은 자신의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 반추한다81) 이 반추과정에서 법관은 한편으로는 포섭
하는 판단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고려해야 할 관점들을 끌어들이면서
자신의 직책을 마지막까지 수행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통제하면서 자신의 앞서의
(포섭) 판단을 정정해나간다 그래서 법관 자신이 lsquo보는 사람rsquo과 lsquo하는 사람rsquo의 만
남의 장소가 되는 것과도 같다 ldquo이 보는 사람은 모든 하는 사람 안에 자리 잡고
있다helliphellip이 비판적 판단능력이 없이는 행위자 혹은 해결자는 보는 사람으로부터
풀려나 종내는 지각되지조차 못하게 될 것이다rdquo82)
사람들은 자신 일에 있어서는 비당파적일 수는 없다 따라서 ldquo자신의 일에 대한
판단에서는 내면의 심판자 혹은 내면의 법정을 가질 수 없다rdquo83) 그러나 다른 사
람의 일을 반추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필히 비당파적이어야 하며 또 비당파적이 될
수 있다 이때 그는 비로소 내면의 심판자를 가지게 된다 즉 양심의 문제에 처하
게 되는 것이다 판단에 있어서 양심이라는 것 즉 양심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남
의 일에서 ldquo증인rdquo 혹은 ldquo비판적 친구rdquo로서 관찰하고 행위하는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이다84)
아렌트의 성찰적 판단모델은 나치 불법국가 경험의 산물이다 통상의 규칙이 파
괴된 상황 통상의 범죄유형에 포섭되지 않는 극히 예외적인 범죄적 상황에서 법
원은 기존의 판단척도를 해석학적 출발로 삼아서는 안 되고 이때에는 질적으로
동의가능한 합의형식을 찾기 위해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으로 돌아가
진정으로 사유 즉 철학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렌트가 판단을 일반화해주는
거점이자 해석학적 출발점으로 삼은 공통감각(상식) 개념은 칸트철학에서 ldquo비사교
적 사교성rdquo 개념의 위상과 비슷하다85) 이 지상에서 인간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다른 것을 원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모여 살아야만 하는 존재다 이 비사회성 요
청과 사회성 요청의 동시성 때문에 인간에게는 제도적인 안착이 더없이 중요하며
법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실존과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만든다 판단의 기
81) Leora Y Bilsky When Actor and Spectator Meet in the Courtroom Hannah Arendt and Eichmann in Jerusalem G N Arad Hg (Bloomington 1996) 137면
82) Hannah Arendt 앞의 책 85면83) Hannah Arendt 앞의 책 76면 84)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657면85) Rosenmuumlller 앞의 책 1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5
초를 보편적 인간경험에 둔다는 점에서 아렌트가 말하는 판단력은 드워킨의 헤라
클레스와 같은 초인적 천재성을 발휘하는 능력과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86) 아
렌트가 상정하는 이상적인 법관은 철학적이지만 철학자는 아니고 정치적이지만 정
치가는 아닌 사람이다
아렌트는 헌법국가의 권위도 상식개념에 기반을 두고 설명한다 그리고 민주적
정당성의 관점에서 입법의 우위를 인정하는 까닭에 성찰적 판단에 입각한 법관의
검증에는 한계가 있다는 태도를 견지한다87)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렌트가 제시한
법관의 성찰적 판단 유형에 대해서는 다양한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우선 이것이
예외 상황에서 적용되는 판단모델로 상정된 것이며 무엇보다도 ldquo규범적 상식rdquo에
대한 단일한 이해기반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법관 개인의 주관적 정치적 신념
이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길을 피할 수 없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성찰적
판단력은 결국 레토릭에 불과한 것인가 아렌트는 그러나 무엇이 ldquo특정 상황에 맞
는 공통감각(situierte Gemeinsinn)rdquo인지에 대한 공동의 인식은 가능하며 또 법관의
lsquo하는rsquo 판단에 들어있는 정치적 함의를 성찰적 판단력으로 검증하는 것도 가능하
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아렌트가 마지막 검증심급으로 원용하는 것이 바로 판
단에서의 양심의 심급이다 그것이 과연 동의할 수 있는 합의형태로서 충분한지를
스스로 검증하는 이 심급에서 판단자는 명령조로 자기에게 전해지는 소리를 듣게
된다 ldquo멈춰 나는 그것은 할 수 없어rdquo88) 판단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 멈추는 것
이 가능한 이 성찰적 심급에서는 칸트와 달리 할 수 없는 이유로써 결과도 고려
된다 lsquo보는 사람rsquo이 자기 안에서 지켜보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상황은 토마스 아퀴
나스의 양심론에 비추어 다음과 같이 묘사될 수도 있겠다 지적 본성을 가진 인간
존재가 보편법칙에 관한 지식을 개별 행위에 적용하기 위해 판단하고 선택할 때
행위자는 갈등 상황- ldquo그렇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rdquo는
상황-에 처하여 멈칫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데 이때 그는 단지 갈등하고
선택하는 역할만 하지 않고 갈등하고 선택하는 이 과정을 ldquo관찰하고 목격하는 증인rdquo
의 역할도 한다는 것89)
86) 드워킨에 의하면 해석적 탐구는 ldquo어떠한 증명도 허용치 않고 어떠한 수렴도 약속치
않는 탐구rdquo이다(드워킨 정의론 203면)87) Rosenmuumlller 앞의 책 30면88) Hannah Arendt Uumlber das Boumlse Eine Vorlesung zu Fragen der Ethik Hrsg v J Kohn
(Muumlnchen 2003) 52면89) 지적 행위자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자신의 내면의 갈등과 선택과정을 바라보는
9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Ⅹ 방법에서 덕목으로
헌법 제103조는 한 면으로는 헌법과 법률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 면으로 해석자에게 여하한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lsquo제약
의 차원rsquo과 lsquo자유의 차원rsquo을 동시에 담고 있다 법관은 자유로울 때에라도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며 법에 구속될 때에라도 전적으로 구속되지는 않는다는 뜻이
기도 하다 이 lsquo자유와 구속의 변증법rsquo에 비추어 지금까지 논한 주제에 대해 몇 가
지 입장을 정리해 보자 첫째 법관에게 있어서 독립은 확정된 원칙이나 그것자체
로서 달성해야 할 최종목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법관의 독립은 완성형이 아니라
끊임없는 진행형의 과제로서 그 직무수행에 대한 신뢰와 병행하여 점진적으로 이
루어지는 것이다 둘째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에 있어서 구속은 법률에 무조건 복종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판결에 대한 윤리 (내 ) 확신과 함께 법률에 복종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법관이 실정법률에 반하는 결정을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법
관은 객관성을 빌미로 법률 뒤에 숨는 익명적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
미하는 것이다 셋째 독립적인 법관의 양심은 lsquo법과 상충한다rsquo기보다는 lsquo법을 실
한다rsquo는 의미를 지닌다 넷째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서 반추하면서 lsquo하는
사람rsquo인 동시에 lsquo보는 사람rsquo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성찰 인 인물상으
로서만 설정될 수 있다
해석적 탐구는 우리의 이해를 넓히기 위해서 필요하지만 이해에서의 우리의 피
할 수 없는 한계를 깨닫기 위해서도 필요했는지 모른다 엥기쉬는 법해석방법론에
대한 저술의 마지막 부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ldquo방법론에 천착하다 보면
애초의 문제였던 법률로부터 훨씬 더 먼 곳으로 이끌려 간다rdquo 지금까지 필자는
법관의 법해석과 관련하여 방법론의 의의와 한계를 논하고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과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에 비추어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이 법해석론
의 불가결한 부분으로 들어가게 되는 이유도 밝혔다 그리고 해석적 차원에서의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는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행위를 목표로 하는
탐구라는 것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필자는 이 모든 논의들을 매개로 방법론이 우리를 더 멀리 덕
목론으로 데려가는 과정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드워킨의
상황에 대한 이 묘사 부분은 이경재 ldquo토마스 아퀴나스의 양심 개념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375면을 참조했다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7
헤라클레스를 잠시 불러올 필요가 있다 해석문제를 누구보다도 더 진지하게 다룬
드워킨은 마지막에 헤라클레스를 내세운다 주어진 사건에서 무엇이 법인지에
대해 도덕적 의식을 가지고 법실무 전체를 원리정합적으로 정당화하라는 요청에
부응하여 자신의 신념에 기초한 결정을 내리는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의 구성적
해석에서 법관의 양심이 기능하는 국면은 어디일까 송민경 판사는 드워킨의 구성
적 해석론에 입각하여 양심을 구체적 법논증과정의 일부로 포함시키면서 이때 양
심이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라는 지침으로 기능한다고 설명한다90)
그런데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는 지침으로 기능하는 것을 양심이라
고 보게 되면 양심의 문제는 논증적 합리성의 차원 즉 논증의 성공으로 종결짓게
된다 그러나 법적 결정의 정당성 문제는 법관의 입장에서는 논증의 성공 문제로
다루어지지만 법관의 성공적인 논증에 따른 판결의 결과로부터 영향을 받는 시민
의 입장에서 보면 성공적인 논증만으로는 해석이 정당화된다고 볼 수는 없다
성공적인 논증은 법적 결정의 정당화에 필수적이기는 하나 충분한 조건은 되지 못
한다 해석이 궁극적으로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사법적 도덕성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 사법적 도덕성은 헤라클레스가 지침으로 삼는 원리적 도덕성의 실현과는 다른
것이다 만약 패소한 시민이 다른 헤라클레스에게 갔더라면 즉 다른 법원리에 기
초한 신념을 토대로 다른 결정을 내린 다른 법관에게 갔다면 그는 승리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왜 헤라클레스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하
는지에 대한 답이 필요한 것이다91) 헤라클레스가 실무에 대한 최상의 정당화를
도모하는 법적 이상주의자라면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법원 문을 두드린 시민도
어느 의미에서 ldquo법이상주의자rdquo92)이다
법해석 작업의 주관의존성이라는 불가피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재판이라는 특수
한 공적 활동이 법관이라는 특수공직자에 의해 운영되고 유지된다는 것은 시민들
-소송에서 패한 시민들을 포함하여-편에서 보면 법을 해석하는 법관에 대한
신뢰가 전제된다는 것이다 법관의 독립적 활동은 법관의 특권 행사가 아니라 사
90) 송민경 앞의 글 38면 20면91) 사법적 덕목과 연관하여 이 부분을 다룬 글로는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5면 이하
92) 법원 문을 두드리는 시민에 대한 이 표현은 심헌섭 ldquo법조윤리의 좌표 거시적 관점에서 본 전문윤리로서의 법조윤리rdquo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편 法律家의 倫理와 責任 박영사
(2003)에 나온다
9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법과정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응당한 몫이 돌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존중하는 바탕에는 일종의 상호성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 그 또한
시민이기도 한 법관이 동료시민들에 대해 가지는 배려와 존중의 원칙이 그것이다
여기서 사법적 덕목에 대해 자세히 논할 수는 없다93) 예의 성실 신중 절제
용기 공정 겸손 의사소통 능력 형평 시민에 대한 배려와 존중 등등 이것들은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바탕을 이루는 양심의 덕목들일
것이다 양심이라는 단어가 그렇듯이 덕목이라는 단어도 오늘날 진부해진 표현
이며 거의 사라져가는 단어다 윤리적 태도로서의 덕목은 관찰하기도 배우기도
어렵다 그러나 올바른 판단과 결정이 법관이라는 개인을 거치지 않고 법령집
자체로부터 반사적으로 튀어나오지 않는 한 이 덕목들을 내면화하고 지향하려는
태도 없이는 lsquo종국적인rsquo 판단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써 필자는 헌법 제103조를 통해 법해석에서의 방법론의 문제가 덕목론이라
는 다음 과제로 이어진다는 점을 밝혔다고 생각한다
투고일 2016 4 6 심사완료일 2016 5 18 게재확정일 2016 5 20
93) 법관의 개별적인 덕목들과 이것들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는 박은정 강태경 김현섭 바람
직한 법관상의 정립과 실천 방안에 관한 연구 법원행정처(2015) 제5장 참조할 것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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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ltAbstractgt
Independence and Conscience of the Judges Based on
Interpretive Method for Article 103 of the Korean Constitution
Pak Un Jong
94)
In this paper I aim to discuss the problem of independence and conscience
of the judges as outlined in Article 103 of the Korean Constitution in the
context of the interpretive methodology
First of all this paper will look at the background in which the independence
of the judges has been institutionalized and also the problems regarding usual
explanation for conscience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And I will try to
reveal the characteristics and difficulties of the interpretive actions of the judges
especially in connection to the issue of value judgment This would require
pointing out the problems and limitations of the interpretive methodology and at
the same time defining the nature of tension embedded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namely the tension between the obligations of the judges to abide
the law versus the subjective internal demeanor of the judges This tension-
ridden condition reenacted by the demand to follow lsquogeneral justicersquo versus
lsquoindividual justicersquo appears inevitably in the process of judicial interpretation I
will examine the theories that capture this kind of tension that accompany the
interpretation process and aim to feel out the possibilities of resolving this
tension At the end I come to the conclusion that these theories can explain but
cannot resolve this tension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If so the problem
which arises from the limitations of the interpretative methodologies from the
perspective that a judgersquos final decision greatly impacts citizens becomes a
problem of judicial ethics In order to ultimately justify the interpretation of the
judges the demands of judicial ethics must be satisfied Keeping this demand in
Professor College of Law School of Law Seoul National University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103
mind I point out that the significance of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is in
its role of bridging legal methodology to virtue ethics
Keywords independence of the judges conscience of the judges interpretive
method of law value judgment judicial virtue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7
지고 있어서 적용하기만 하면 된다는 그런 의미의 규범적 실천적 ldquo지식을 소유한
사람rdquo이라기보다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 ldquo지식을 탄생시키는 상황에 직면하는
사람rdquo이라는 것이다59) 일반범주를 개별사례에 적용할 때 요구되는 이 판단력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래서 칸트(Kant)도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ldquo지성은 규칙들
을 통해 배우고 보강할 수 있는 것이지만 판단력은 특수한 재능으로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전혀 아니고 단지 숙련될 수 있을 뿐이다rdquo60)
우리는 올바른 규칙이나 원리를 알고 있지만 막상 이것을 어떤 상황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예컨대 비례성원칙이나 과잉금지원칙에 대한 지식
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은 적정해야 하고 그 수단은 목적달
성을 위해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원칙을 특수한
상황에 lsquo적용rsquo한다고 할 때에 이 원칙이 그 어떤 판단도 배제할 정도로 자족적인
지침 구실을 한다고 느끼기는 어렵다 특정 상황에서 그 수단이 과연 어느 정도일
때가 목적달성에 적정한지는 판단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실천이성의 역
할이다
단의 자리는 이론 경험 양심이 혼재된 실천의 영역이다 판단을 통한 결정이
라는 그 lsquo종국성rsquo으로 인한 실천적 성격은 법학이 다른 어떤 학문분야와도 공유
하지 않는 법학 고유의 특징이다 그래서 법학은 lsquolegal sciencersquo로 불리기보다는
실천지- prudentia-를 함의하는 lsquojurisprudencersquo로 더 자주 불리어 왔을 것이다
해석의 차원에서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도 추상적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
으로는 행위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성과 개별성을 결합하는 해석적
지식은 추상적 이론적 지식들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일반규칙이나 원리
에 근거한 이론적 패턴의 지식과 특정한 상황 내지 맥락을 고려하는 실천적 패턴
의 지식의 이중주를 이룬다 법관이 지니는 통찰력의 특성은 이론과 태도가 함께
간다는 데 있다 그래서 사법적 판단에서는 규칙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 못지않게
사람 즉 법관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사법적 통찰력의 특성은
뭐니뭐니해도 개별 사례를 다룬다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개별적인 것들은 개별적
인 방식으로만 체험되고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들은 무엇
보다도 lsquo지각rsquo과 관계된다61) 즉 그것들은 일반적 체계적 지식의 대상이라기보다
59) Hans-Georg Gadamer Wahrheit und Methode Grundzuumlge einer philosophischen Hermeneutik 3 Aufl J C B MOHR (1972) 300면
60)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 1 백종현 옮김 아카넷(2009) 374면
8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는 우선 지각의 대상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도 사법적 통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쪽은 규칙보다는 오히려 사람 즉 법관 쪽인 것이다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사건에서 법적으로 중요한 사실이 무엇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규칙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어떤 규칙이 중요한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실이 중요한지 알
아야 한다 이 인식과정에서 법관은 불확실한 가운데서 무수한 선택을 감행한다
어떤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 배척하고 어떤 사실은 인정하거나 무게를 부
여하고 신청된 증거조사의 어떤 것은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거부하고helliphellip 사실
에 대한 이 취사선택-자유심증주의-의 결과로 새로운 것이 태어난다 그리고
이것에 의해 법원을 찾아온 사람들의 운명이 갈리는 것이다
법관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필자 생각에
독일의 법철학자 아르투어 카우프만(Arthur Kaufmann)의 해석학적 방법론은 법
관의 자기이해 문제를 해석학적 지평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법관의 해석작업의
본질을 잘 설명해주는 것 같다 가다머 계통의 철학적 해석학(philosophische
Hermeneutik)의 입장을 받아들이면서62) 카우프만은 법해석행위를 통해 포괄적인
의미에서 법관 자신의 인격 중의 어떤 것이 판결에 혼입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
61)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4면 그리고 1심에서
유죄였다가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강력범죄 540건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판단자
의 감지능력 차이가 법판단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힌 김상준 무죄
결과 법 의 사실인정 경인문화사(2013) 62) 텍스트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이해에 관한 연구분야인 해석학(hermeneutics Hermeneutik)
의 어원은 신들의 전령(傳令)인 Hermes라는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설명된다 이때 신의
의도를 인간에게 전하는 과정에서 언어의 제약성 시공간적 간격 전령의 역할 등과 관
련하여 해석의 문제가 생긴다고 본다 ldquoHermeneuticsrdquo Dictionary of Biblical Interpretation Nashville (1999) 497면 독일어의 Auslegung이 해석주체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대상
으로서의 텍스트에 대한 해석을 의미한다면(객관주의) 철학적 해석학에서의 해석
(Interpretation)은 해석주체의 주관성 내지 역사성이 대상에 투사된다는 의미가 강하다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에 따르면 역사적 존재인 인간에게 있어 모든 해석과 이해는 과
거와 현재가 lsquo작용사적으로(wirkungsgeschichtlich)rsquo 중재되는 사건으로서 lsquo선이해rsquo 내지
lsquo선판단rsquo 없이는 불가능하다 가다머는 선입견으로 폄하된 선이해를 재평가하고 이를
통해 근대 이래 lsquo방법rsquo을 통한 진리발견이 주체에 의한 객체의 대상화 내지 도구화를 가져
왔다고 비판하면서 인간경험에 있어서 진리에 이르는 길은 사물의 존재가 스스로 드러
나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해석과 이해는 전승된 존재방식으로서
의 텍스트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며 이는 텍스트 자체가 지닌 역사적 지평과 해석
자의 지평이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만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해석학적 순환 이해의 전제로서의 선이해 작용사 등에 대해서는 Gadamer 앞의 책 II Grundzuumlge einer Theorie der Hermeneutischen Erfahrung 참조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9
로 법관의 결정이 올바른가의 물음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가의 물음과 직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63)
우선 카우프만은 통상적으로 회자되는 독립적인 법관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즉 법 앞에 선 법관이 일체의 정치적 사회적 개인적 영향이나 선입견들로부터 차
단된 채 순수한 객관적 인식에 따라 그 이전에는 자신이 알 수 없었던 사실관계
를 판단하고 그런 다음에 법적 판단을 한다는 식으로 이해하기를 거부한다64)
그런 법관상은 법령집은 일체 해석의 필요가 없이 거의 모든 가능한 법률문제에
대한 대답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상정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법관은 의지가
없는 존재이며 사법권력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여기는 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법에 대한 인식은 단순히 사례를 법률에 포섭시킨다는 의미의 수
동적 행위가 아니고 해석자가 해석대상에 관여하면서 함께 lsquo형성rsquo하는 것이라고
본다 카우프만은 법관의 법형성력에 대한 자신의 견해가 주관주의의 의미로 받아
들여지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는데 왜냐하면 해석자는 텍스트를 지탱하는 모든
전통과 함께 이해의 지평으로 들어간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은 서류의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ldquo아 이런 사건이구나rdquo라고 감을 잡게 되
는데 카우프만에 따르면 이는 법관 자신이 사건 경과를 관찰해서 인지했다거나
언론 등을 통해 사건에 대한 상세한 지식을 얻었다는 뜻이 아니라 유사한 사건들
을 알며 그래서 ldquo선이해(Vorurteil Vorverstaumlndnis)rdquo65)를 가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
해의 전제로서 이런 선이해가 없다면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것이 무엇에 관한 사
건인지 알 수 없고 다른 사례와 비교할 수도 없기 때문에 올바른 판단에 이른다
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66) 이 선이해에 의해 해석은 언제나 해석주체의 자기
이해 즉 자신이 lsquo잠정적rsquo 결과로서 이미 예상했던 것을 논증적으로 근거짓는 활동
이라는 의미에서 ldquo해석학적 순환rdquo 내지 ldquo해석학적 나선구조rdquo 하에 이루어진다
63)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Festschrift fuumlr Karl Peters Mohr Siebeck (1974) 144면 법관의 독립과 양심 주제와 관련한 또 다른
글로는 Kaufmann ldquoGesetz und Rechtrdquo Existenz und Ordnung Festschrift fuumlr Erik Wolf (1962) 357면 이하
64)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4면 65) 해석학적 의미에서의 lsquo선이해rsquo는 일상 언어 관용에서는 lsquo선입견rsquo이나 lsquo편견rsquo 같은 부정
적 함의를 더 많이 지니기 때문에 카우프만은 lsquoVorurteilrsquo 대신에 Vorverstaumlndnis라는 용
어를 쓰기를 권장한다(앞의 글 148면) 카우프만 외에도 이 용어의 선택은 Josef Esser Vorverstaumlndnis und Methodenwahl in der Rechtsfindung 2 Aufl (Frankfurt aM 1972)
66)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7면
90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텍스트를 이해하려는 사람은 말하자면 언제나 초벌 그림을 그리며 특정 의미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텍스트를 읽기 때문에 ldquo텍스트에서 첫 번째 의미가 지시되자
마자 전체의 의미를 lsquo예비투사한다(vorauswirft)rsquordquo67) 그리고 선이해와 관련된 이 예
비투사는-해석학적 lsquo순환rsquo에 의해-원칙적으로 끝없이 검열과정을 거친다는 것
이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도 실제 판단과정에서는 분리
되지 않는다68)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은 시간적으로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단절 관계가 아니라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정제하고 상응하는
관계에 놓인다 즉 사실에 대한 인식 없이 규범적 인식은 불가능하며 또한 규범적
관점 없이 사실만을 통한 사실 확정도 불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법률도 법관의
해석을 만나기 전에는 ldquo잠재적인 가능태로서 주어진 법률rdquo일 뿐 해석학적 순환을
통한 정제 혹은 상응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ldquo진정한 실정법rdquo이 생성된다69) 이렇
게 특정사건을 통해 구체화된 규범(구성요건)과 이 규범을 통해 정해진 사실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법관에게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들과 함께 제3의 요소로서 법관
자신의 선이해 내지 이해 포괄적으로 말하면 그의 인격적 존재가 판단에 혼입
된다
lsquo선이해rsquo는 판단자가 자신의 선이해를 의식하지 못할 때 부정적 요소를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ldquo자신의 판단은 오로지 lsquo있는 그대로다rsquo라고 말하는 즉 lsquo오로지 법
률에만 구속된다rsquo라고 말하는 법관이야말로 실은 종속된 법관이다 왜냐하면 그는
성찰되지 않은 자신의 선이해와 거리를 둘 수 없기 때문이다rdquo70) 즉 법관은 자신
67)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68) 실제 판단과정에서 사실인정과 법률적용이 따로 떨어질 수 없다는 점은 굳이 카우프
만의 이론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실무상으로는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ldquo법률
의 적용과 사실의 인정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법률문제와 결부되어 인정된다 사실의 인정이 진행됨에 따라서 재판관의 머리
속에서는 어떠한 법규를 적용할 것인가 그 법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는 전망이
점차로 서게 되며 당사자 측도 경우에 따라서는 민사인 경우 청구의 취지를 변경할
것인가를 고려하게 되고 형사인 경우 공소사실을 변경하는 경우도 생긴다 요컨대 사실
문제와 법률문제는 실제과정에서 불가분으로 결부되어 있다 helliphellip 양쪽이 불가분으로
재판관의 직관 혹은 재판관의 전인격적인 작용에 의하여 사실의 인정과 법의 적용이
행하여지고 판결 삼단논법은 실제의 심판 과정에서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rdquo(사법
연수원 법조윤리론 35면) 69) ldquo법관의 해석 작업 이전에는 어느 의미에서 진정 법도 진정한 사실도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원자재들(Rohmaterialien)로만 이것들이 존재할 뿐이다rdquo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1
의 선이해를 의식하고 자신을 이데올로기 혐의 앞에 세울 줄 알 때 올바른 판결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ldquo법관이 자신의 선이해와 종속을 의식할수록 그래서 간주
관적 합의에 노력할수록 그는 더 객관적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rdquo71) 그러므로
법관의 주관주의의 위험은 카우프만식으로 말하면 가치판단 같은 성찰적 고려와
관련된 주관적 요소를 방법상의 근거 제시의 맥락에 끌어들이는 법관의 경우보다는
오히려 모든 것이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판결의 주관적
요소를 은폐하는 법관에게서 나타나는 위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학적 순환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법관은 ldquo법률의 입rdquo이 아니라 ldquo인격
으로서 판결을 떠받친다rdquo72) 판결은 법률과 법관의 인격의 혼성물이다 그러므로
법률은 판결을 위한 필요조건이기는 하나 충분조건은 아니라고도 말할 수 있다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순환이론은 법관의 독립과 양심의 문제 차원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법결정의 올바름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
는 정도에 달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자신을 올바르
게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자신의 판단력 경험 능력 인간에 대한 태도 감
수성 명예욕 등등
카우프만의 법해석학적 순환이론이 법관의 독립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이라
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독립은 법관 스스로 관철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론적으로 카우프만의 법해석이론의 의의는 법관이 자신의 선입견을
의식하는 것이야말로 법관의 독립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설득력있게 지적
해주며 그런 방향에서 법관의 법해석 작업을 재평가했다는 데 있다고 말할 수 있
겠다
70)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71) Arthur Kaufmann ldquoDer BGH und die Sitzblockaderdquo NJW (1988) 2581면 이하72) 이 표현은 Karl Peters의 Strafprozess - Ein Lehrbuch (1966) 99면에 나오며 여기서는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9면에서 재
인용했다 이덕연 교수도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에 입각하여 ldquo법관의 법해석작
업은 단순한 lsquo인식작업rsquo이나 lsquo언어분석작업rsquo이 아니라 ldquo구체적인 반성과 자기극복의
노력 속에서 온 인격을 걸고 진행하는 lsquo이해와 실천의 수행작업rsquordquo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앞의 글 35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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Ⅸ 법관은 lsquo하는 사람rsquo인가 lsquo보는 사람rsquo인가
법관의 판단작업을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의 관점에서 주목했던 또 다른
철학자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다 그녀는 ldquo아이히만 재판rdquo을 계기로 판단의
특수한 경우로서의 판단력 문제를 연구했다73) 아렌트는 하드케이스와 연관시켜
법관의 판단력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74) 법관은 우선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을 반추하면서 판단에 임하는데 이때 판단자로서 그는 한 면으
로는 규칙에 따라 판단하라는 lsquo일반적 정의rsquo의 요구에 그리고 동시에 다른 한 면
으로는 정황에 맞게 판단하라는 lsquo개별적 정의rsquo의 요구에 처한다 이러한 상황은
아렌트에 따르면 하드케이스에서 특히 발생한다 이 이중적이고 모순적 요구 상황
을 아렌트는 법관의 판단에 적용되는 특수한 해석학 및 그 조건을 설명하는 출발
점으로 삼는다75) 하드케이스가 아닌 통상적인 사건에서는 이른바 포섭 여부를 판
단하는 것으로도 족하다 일반규칙에의 포섭 여부가 중심이 되는 이 단계에서의
판단력- lsquo규정하는 판단력(bestimmende Urteilskraft)rsquo-은 사실관계에서의 원인
이나 형식적 정의를 따지므로 일방적이고 간주관적 전제 없이도 가능하다 그래서
흔히 법관은 여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법을 해석해야 한다고 말할 때 이는
법적용을 이러한 지배적인 포섭모델에 입각하여 이해한 결과라 할 것이다 그런데
규칙으로부터 오는 어떤 어려움들 때문에 규정하는 판단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즉 포섭이 어렵거나 법흠결 시 또는 가치형량이 요구되는 하드케
이스에서는 법관은 어쩔 수 없이 앞에서 말한 모순문제를 다루어야만 한다 이때
아렌트는 법관이 사유의 확장을 통해 방법상으로 lsquo규정적 판단력rsquo을 스스로 교정
할 수 있는 lsquo성찰적 판단력rsquo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고 이 판단유형의 전환과정을
73) 법적 판단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 삼은 저술은 Hannah Arendt Eichmann in Jerusalem Ein Bericht von der Banalitaumlt des Boumlsen Erw Aufl (Muumlnchen 2001) 그리고 Hannah Arendt Das Urteilen Texte zu Kants Politischer Philosophie Hrsg v R Beiner Uumlbers v U Ludz (Muumlnchen 1998)
74) 아렌트가 염두에 둔 하드케이스는 라드브루흐가 이른바 ldquo법률적 불법rdquo 상태로 규정한
나치의 불법국가 상황으로서 이렇게 극히 예외적인 케이스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하드
케이스에 적용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별적 정의 요구에 부응함
으로써 예컨대 소급효를 금지하는 일반법률에 위배되는 상황과 유사한 갈등상황은 반
드시 극단적 상황에서만 생긴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75)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2 Bde Hrsg v U Ludz amp I Nordmann
따라서 그 척도는 전달가능성이며 거기에 딱 맞는 것은 공통감각(상식)이다rdquo77) 오
늘날 공통감각은 아렌트도 지적했듯이 더 이상 그것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얻고자 노력해야 하는 그 무엇이 되어버린 듯하다 그러나 공통감
각이 무너진 시대를 겪었던 아렌트는 사유의 전환 내지 확대를 위한 진정한 발판
을 다시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에서 구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78)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실천철학의 전통에서는 세계와의 관계 그리고 자기와의 관
계를 공통감각을 척도로 설정해가는 판단자가 lsquo하는 사람rsquo인지 아니면 lsquo보는 사람rsquo
인지 즉 lsquo행위자rsquo인지 아니면 lsquo관찰자rsquo인지를 둘러싸고 의견이 대립되어 왔다 lsquo하
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자가 lsquo정치가rsquo 쪽에 더 가깝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
자는 lsquo철학자rsquo 쪽에 더 가깝다 lsquo하는 사람rsquo은 주로 사회의 일반적 상식 건전한 인
간이해 세론(doxa)을 판단의 척도로 삼는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적 경험은 전체주
의 하에서는 건전한 인간이해도 집단화된 대중감정에 따른 오도된 인간이해 앞에
무너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판단에서 사실로서의 상식이나 합의 또는
법해석공동체 내부의 지배적 제도적 관점이라는 판단 척도만으로는 일반규칙으로
부터 오는 모순을 다루기 어렵다 여기서 판단자는 ldquo확대된 사유방식rdquo을 추구해야
하는데 아렌트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을 lsquo보는 사람rsquo의 판단과 결합시킴으로써 법
관을 위한 사유의 확대를 시도한다79) lsquo하는 사람rsquo이 사실로서의 일반적 상식이나
인간이해 차원에 비추어 판단한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ldquo이
상적 규범적 상식rdquo80)을 추구하고자 한다 판단을 거쳐 법적 효과를 결정하는 법관
76)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을 해석학적 순환이론을 적용하여 분석하면서 칸트의 판단력 비
판에 의거하여 아렌트가 판단력의 특수한 경우로서 법관의 ldquo성찰적 판단력rdquo이라는 새
로운 판단유형을 제시했다고 지적한 연구서로는 Stefanie Rosenmuumlller Der Ort des Rechts Gemeinsinn und richterliches Urteilen nach Hannah Arendt Nomos (2013) 참조
77) Hannah Arendt Das Urteilen 92-93면78) 아렌트가 판단의 차원을 심화시키는 발판으로 삼는 상식은 sensus communis로서
communis opinio와는 다르다는 데 대해서는 Marieke Borren ldquolsquoA Sense of the Worldrsquo Hannah Arendtrsquos Hermeneutic Phenomenology of Common Senserdquo International Journal of Philosophical Studies Vol 21 No 2 (2013) 225-255
79) Hannah Arendt Das Urteilen 76면80) Rosenmuumlller 앞의 책 234면 이하 여기서 아렌트는 상식개념을 이중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에서는 경험적 개념으로 보다 성찰적 판단
단계에서는 규범적 개념으로 사용한다
9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은 관찰자로서 판단하면서 동시에 행위자로서 판단에서 법적 결과를 결정하는
사람이다 관찰자인 동시에 행위자라는 이중적인 역할을 하면서 법관은 자신의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 반추한다81) 이 반추과정에서 법관은 한편으로는 포섭
하는 판단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고려해야 할 관점들을 끌어들이면서
자신의 직책을 마지막까지 수행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통제하면서 자신의 앞서의
(포섭) 판단을 정정해나간다 그래서 법관 자신이 lsquo보는 사람rsquo과 lsquo하는 사람rsquo의 만
남의 장소가 되는 것과도 같다 ldquo이 보는 사람은 모든 하는 사람 안에 자리 잡고
있다helliphellip이 비판적 판단능력이 없이는 행위자 혹은 해결자는 보는 사람으로부터
풀려나 종내는 지각되지조차 못하게 될 것이다rdquo82)
사람들은 자신 일에 있어서는 비당파적일 수는 없다 따라서 ldquo자신의 일에 대한
판단에서는 내면의 심판자 혹은 내면의 법정을 가질 수 없다rdquo83) 그러나 다른 사
람의 일을 반추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필히 비당파적이어야 하며 또 비당파적이 될
수 있다 이때 그는 비로소 내면의 심판자를 가지게 된다 즉 양심의 문제에 처하
게 되는 것이다 판단에 있어서 양심이라는 것 즉 양심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남
의 일에서 ldquo증인rdquo 혹은 ldquo비판적 친구rdquo로서 관찰하고 행위하는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이다84)
아렌트의 성찰적 판단모델은 나치 불법국가 경험의 산물이다 통상의 규칙이 파
괴된 상황 통상의 범죄유형에 포섭되지 않는 극히 예외적인 범죄적 상황에서 법
원은 기존의 판단척도를 해석학적 출발로 삼아서는 안 되고 이때에는 질적으로
동의가능한 합의형식을 찾기 위해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으로 돌아가
진정으로 사유 즉 철학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렌트가 판단을 일반화해주는
거점이자 해석학적 출발점으로 삼은 공통감각(상식) 개념은 칸트철학에서 ldquo비사교
적 사교성rdquo 개념의 위상과 비슷하다85) 이 지상에서 인간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다른 것을 원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모여 살아야만 하는 존재다 이 비사회성 요
청과 사회성 요청의 동시성 때문에 인간에게는 제도적인 안착이 더없이 중요하며
법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실존과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만든다 판단의 기
81) Leora Y Bilsky When Actor and Spectator Meet in the Courtroom Hannah Arendt and Eichmann in Jerusalem G N Arad Hg (Bloomington 1996) 137면
82) Hannah Arendt 앞의 책 85면83) Hannah Arendt 앞의 책 76면 84)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657면85) Rosenmuumlller 앞의 책 1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5
초를 보편적 인간경험에 둔다는 점에서 아렌트가 말하는 판단력은 드워킨의 헤라
클레스와 같은 초인적 천재성을 발휘하는 능력과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86) 아
렌트가 상정하는 이상적인 법관은 철학적이지만 철학자는 아니고 정치적이지만 정
치가는 아닌 사람이다
아렌트는 헌법국가의 권위도 상식개념에 기반을 두고 설명한다 그리고 민주적
정당성의 관점에서 입법의 우위를 인정하는 까닭에 성찰적 판단에 입각한 법관의
검증에는 한계가 있다는 태도를 견지한다87)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렌트가 제시한
법관의 성찰적 판단 유형에 대해서는 다양한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우선 이것이
예외 상황에서 적용되는 판단모델로 상정된 것이며 무엇보다도 ldquo규범적 상식rdquo에
대한 단일한 이해기반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법관 개인의 주관적 정치적 신념
이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길을 피할 수 없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성찰적
판단력은 결국 레토릭에 불과한 것인가 아렌트는 그러나 무엇이 ldquo특정 상황에 맞
는 공통감각(situierte Gemeinsinn)rdquo인지에 대한 공동의 인식은 가능하며 또 법관의
lsquo하는rsquo 판단에 들어있는 정치적 함의를 성찰적 판단력으로 검증하는 것도 가능하
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아렌트가 마지막 검증심급으로 원용하는 것이 바로 판
단에서의 양심의 심급이다 그것이 과연 동의할 수 있는 합의형태로서 충분한지를
스스로 검증하는 이 심급에서 판단자는 명령조로 자기에게 전해지는 소리를 듣게
된다 ldquo멈춰 나는 그것은 할 수 없어rdquo88) 판단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 멈추는 것
이 가능한 이 성찰적 심급에서는 칸트와 달리 할 수 없는 이유로써 결과도 고려
된다 lsquo보는 사람rsquo이 자기 안에서 지켜보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상황은 토마스 아퀴
나스의 양심론에 비추어 다음과 같이 묘사될 수도 있겠다 지적 본성을 가진 인간
존재가 보편법칙에 관한 지식을 개별 행위에 적용하기 위해 판단하고 선택할 때
행위자는 갈등 상황- ldquo그렇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rdquo는
상황-에 처하여 멈칫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데 이때 그는 단지 갈등하고
선택하는 역할만 하지 않고 갈등하고 선택하는 이 과정을 ldquo관찰하고 목격하는 증인rdquo
의 역할도 한다는 것89)
86) 드워킨에 의하면 해석적 탐구는 ldquo어떠한 증명도 허용치 않고 어떠한 수렴도 약속치
않는 탐구rdquo이다(드워킨 정의론 203면)87) Rosenmuumlller 앞의 책 30면88) Hannah Arendt Uumlber das Boumlse Eine Vorlesung zu Fragen der Ethik Hrsg v J Kohn
(Muumlnchen 2003) 52면89) 지적 행위자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자신의 내면의 갈등과 선택과정을 바라보는
9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Ⅹ 방법에서 덕목으로
헌법 제103조는 한 면으로는 헌법과 법률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 면으로 해석자에게 여하한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lsquo제약
의 차원rsquo과 lsquo자유의 차원rsquo을 동시에 담고 있다 법관은 자유로울 때에라도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며 법에 구속될 때에라도 전적으로 구속되지는 않는다는 뜻이
기도 하다 이 lsquo자유와 구속의 변증법rsquo에 비추어 지금까지 논한 주제에 대해 몇 가
지 입장을 정리해 보자 첫째 법관에게 있어서 독립은 확정된 원칙이나 그것자체
로서 달성해야 할 최종목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법관의 독립은 완성형이 아니라
끊임없는 진행형의 과제로서 그 직무수행에 대한 신뢰와 병행하여 점진적으로 이
루어지는 것이다 둘째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에 있어서 구속은 법률에 무조건 복종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판결에 대한 윤리 (내 ) 확신과 함께 법률에 복종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법관이 실정법률에 반하는 결정을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법
관은 객관성을 빌미로 법률 뒤에 숨는 익명적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
미하는 것이다 셋째 독립적인 법관의 양심은 lsquo법과 상충한다rsquo기보다는 lsquo법을 실
한다rsquo는 의미를 지닌다 넷째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서 반추하면서 lsquo하는
사람rsquo인 동시에 lsquo보는 사람rsquo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성찰 인 인물상으
로서만 설정될 수 있다
해석적 탐구는 우리의 이해를 넓히기 위해서 필요하지만 이해에서의 우리의 피
할 수 없는 한계를 깨닫기 위해서도 필요했는지 모른다 엥기쉬는 법해석방법론에
대한 저술의 마지막 부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ldquo방법론에 천착하다 보면
애초의 문제였던 법률로부터 훨씬 더 먼 곳으로 이끌려 간다rdquo 지금까지 필자는
법관의 법해석과 관련하여 방법론의 의의와 한계를 논하고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과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에 비추어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이 법해석론
의 불가결한 부분으로 들어가게 되는 이유도 밝혔다 그리고 해석적 차원에서의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는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행위를 목표로 하는
탐구라는 것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필자는 이 모든 논의들을 매개로 방법론이 우리를 더 멀리 덕
목론으로 데려가는 과정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드워킨의
상황에 대한 이 묘사 부분은 이경재 ldquo토마스 아퀴나스의 양심 개념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375면을 참조했다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7
헤라클레스를 잠시 불러올 필요가 있다 해석문제를 누구보다도 더 진지하게 다룬
드워킨은 마지막에 헤라클레스를 내세운다 주어진 사건에서 무엇이 법인지에
대해 도덕적 의식을 가지고 법실무 전체를 원리정합적으로 정당화하라는 요청에
부응하여 자신의 신념에 기초한 결정을 내리는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의 구성적
해석에서 법관의 양심이 기능하는 국면은 어디일까 송민경 판사는 드워킨의 구성
적 해석론에 입각하여 양심을 구체적 법논증과정의 일부로 포함시키면서 이때 양
심이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라는 지침으로 기능한다고 설명한다90)
그런데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는 지침으로 기능하는 것을 양심이라
고 보게 되면 양심의 문제는 논증적 합리성의 차원 즉 논증의 성공으로 종결짓게
된다 그러나 법적 결정의 정당성 문제는 법관의 입장에서는 논증의 성공 문제로
다루어지지만 법관의 성공적인 논증에 따른 판결의 결과로부터 영향을 받는 시민
의 입장에서 보면 성공적인 논증만으로는 해석이 정당화된다고 볼 수는 없다
성공적인 논증은 법적 결정의 정당화에 필수적이기는 하나 충분한 조건은 되지 못
한다 해석이 궁극적으로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사법적 도덕성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 사법적 도덕성은 헤라클레스가 지침으로 삼는 원리적 도덕성의 실현과는 다른
것이다 만약 패소한 시민이 다른 헤라클레스에게 갔더라면 즉 다른 법원리에 기
초한 신념을 토대로 다른 결정을 내린 다른 법관에게 갔다면 그는 승리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왜 헤라클레스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하
는지에 대한 답이 필요한 것이다91) 헤라클레스가 실무에 대한 최상의 정당화를
도모하는 법적 이상주의자라면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법원 문을 두드린 시민도
어느 의미에서 ldquo법이상주의자rdquo92)이다
법해석 작업의 주관의존성이라는 불가피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재판이라는 특수
한 공적 활동이 법관이라는 특수공직자에 의해 운영되고 유지된다는 것은 시민들
-소송에서 패한 시민들을 포함하여-편에서 보면 법을 해석하는 법관에 대한
신뢰가 전제된다는 것이다 법관의 독립적 활동은 법관의 특권 행사가 아니라 사
90) 송민경 앞의 글 38면 20면91) 사법적 덕목과 연관하여 이 부분을 다룬 글로는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5면 이하
92) 법원 문을 두드리는 시민에 대한 이 표현은 심헌섭 ldquo법조윤리의 좌표 거시적 관점에서 본 전문윤리로서의 법조윤리rdquo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편 法律家의 倫理와 責任 박영사
(2003)에 나온다
9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법과정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응당한 몫이 돌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존중하는 바탕에는 일종의 상호성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 그 또한
시민이기도 한 법관이 동료시민들에 대해 가지는 배려와 존중의 원칙이 그것이다
여기서 사법적 덕목에 대해 자세히 논할 수는 없다93) 예의 성실 신중 절제
용기 공정 겸손 의사소통 능력 형평 시민에 대한 배려와 존중 등등 이것들은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바탕을 이루는 양심의 덕목들일
것이다 양심이라는 단어가 그렇듯이 덕목이라는 단어도 오늘날 진부해진 표현
이며 거의 사라져가는 단어다 윤리적 태도로서의 덕목은 관찰하기도 배우기도
어렵다 그러나 올바른 판단과 결정이 법관이라는 개인을 거치지 않고 법령집
자체로부터 반사적으로 튀어나오지 않는 한 이 덕목들을 내면화하고 지향하려는
태도 없이는 lsquo종국적인rsquo 판단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써 필자는 헌법 제103조를 통해 법해석에서의 방법론의 문제가 덕목론이라
는 다음 과제로 이어진다는 점을 밝혔다고 생각한다
투고일 2016 4 6 심사완료일 2016 5 18 게재확정일 2016 5 20
93) 법관의 개별적인 덕목들과 이것들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는 박은정 강태경 김현섭 바람
직한 법관상의 정립과 실천 방안에 관한 연구 법원행정처(2015) 제5장 참조할 것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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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ltAbstractgt
Independence and Conscience of the Judges Based on
Interpretive Method for Article 103 of the Korean Constitution
Pak Un Jong
94)
In this paper I aim to discuss the problem of independence and conscience
of the judges as outlined in Article 103 of the Korean Constitution in the
context of the interpretive methodology
First of all this paper will look at the background in which the independence
of the judges has been institutionalized and also the problems regarding usual
explanation for conscience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And I will try to
reveal the characteristics and difficulties of the interpretive actions of the judges
especially in connection to the issue of value judgment This would require
pointing out the problems and limitations of the interpretive methodology and at
the same time defining the nature of tension embedded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namely the tension between the obligations of the judges to abide
the law versus the subjective internal demeanor of the judges This tension-
ridden condition reenacted by the demand to follow lsquogeneral justicersquo versus
lsquoindividual justicersquo appears inevitably in the process of judicial interpretation I
will examine the theories that capture this kind of tension that accompany the
interpretation process and aim to feel out the possibilities of resolving this
tension At the end I come to the conclusion that these theories can explain but
cannot resolve this tension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If so the problem
which arises from the limitations of the interpretative methodologies from the
perspective that a judgersquos final decision greatly impacts citizens becomes a
problem of judicial ethics In order to ultimately justify the interpretation of the
judges the demands of judicial ethics must be satisfied Keeping this demand in
Professor College of Law School of Law Seoul National University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103
mind I point out that the significance of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is in
its role of bridging legal methodology to virtue ethics
Keywords independence of the judges conscience of the judges interpretive
method of law value judgment judicial virtue
8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는 우선 지각의 대상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도 사법적 통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쪽은 규칙보다는 오히려 사람 즉 법관 쪽인 것이다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사건에서 법적으로 중요한 사실이 무엇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규칙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어떤 규칙이 중요한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실이 중요한지 알
아야 한다 이 인식과정에서 법관은 불확실한 가운데서 무수한 선택을 감행한다
어떤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 배척하고 어떤 사실은 인정하거나 무게를 부
여하고 신청된 증거조사의 어떤 것은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거부하고helliphellip 사실
에 대한 이 취사선택-자유심증주의-의 결과로 새로운 것이 태어난다 그리고
이것에 의해 법원을 찾아온 사람들의 운명이 갈리는 것이다
법관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필자 생각에
독일의 법철학자 아르투어 카우프만(Arthur Kaufmann)의 해석학적 방법론은 법
관의 자기이해 문제를 해석학적 지평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법관의 해석작업의
본질을 잘 설명해주는 것 같다 가다머 계통의 철학적 해석학(philosophische
Hermeneutik)의 입장을 받아들이면서62) 카우프만은 법해석행위를 통해 포괄적인
의미에서 법관 자신의 인격 중의 어떤 것이 판결에 혼입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
61)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4면 그리고 1심에서
유죄였다가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강력범죄 540건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판단자
의 감지능력 차이가 법판단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힌 김상준 무죄
결과 법 의 사실인정 경인문화사(2013) 62) 텍스트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이해에 관한 연구분야인 해석학(hermeneutics Hermeneutik)
의 어원은 신들의 전령(傳令)인 Hermes라는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설명된다 이때 신의
의도를 인간에게 전하는 과정에서 언어의 제약성 시공간적 간격 전령의 역할 등과 관
련하여 해석의 문제가 생긴다고 본다 ldquoHermeneuticsrdquo Dictionary of Biblical Interpretation Nashville (1999) 497면 독일어의 Auslegung이 해석주체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대상
으로서의 텍스트에 대한 해석을 의미한다면(객관주의) 철학적 해석학에서의 해석
(Interpretation)은 해석주체의 주관성 내지 역사성이 대상에 투사된다는 의미가 강하다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에 따르면 역사적 존재인 인간에게 있어 모든 해석과 이해는 과
거와 현재가 lsquo작용사적으로(wirkungsgeschichtlich)rsquo 중재되는 사건으로서 lsquo선이해rsquo 내지
lsquo선판단rsquo 없이는 불가능하다 가다머는 선입견으로 폄하된 선이해를 재평가하고 이를
통해 근대 이래 lsquo방법rsquo을 통한 진리발견이 주체에 의한 객체의 대상화 내지 도구화를 가져
왔다고 비판하면서 인간경험에 있어서 진리에 이르는 길은 사물의 존재가 스스로 드러
나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해석과 이해는 전승된 존재방식으로서
의 텍스트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며 이는 텍스트 자체가 지닌 역사적 지평과 해석
자의 지평이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만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해석학적 순환 이해의 전제로서의 선이해 작용사 등에 대해서는 Gadamer 앞의 책 II Grundzuumlge einer Theorie der Hermeneutischen Erfahrung 참조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9
로 법관의 결정이 올바른가의 물음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가의 물음과 직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63)
우선 카우프만은 통상적으로 회자되는 독립적인 법관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즉 법 앞에 선 법관이 일체의 정치적 사회적 개인적 영향이나 선입견들로부터 차
단된 채 순수한 객관적 인식에 따라 그 이전에는 자신이 알 수 없었던 사실관계
를 판단하고 그런 다음에 법적 판단을 한다는 식으로 이해하기를 거부한다64)
그런 법관상은 법령집은 일체 해석의 필요가 없이 거의 모든 가능한 법률문제에
대한 대답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상정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법관은 의지가
없는 존재이며 사법권력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여기는 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법에 대한 인식은 단순히 사례를 법률에 포섭시킨다는 의미의 수
동적 행위가 아니고 해석자가 해석대상에 관여하면서 함께 lsquo형성rsquo하는 것이라고
본다 카우프만은 법관의 법형성력에 대한 자신의 견해가 주관주의의 의미로 받아
들여지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는데 왜냐하면 해석자는 텍스트를 지탱하는 모든
전통과 함께 이해의 지평으로 들어간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은 서류의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ldquo아 이런 사건이구나rdquo라고 감을 잡게 되
는데 카우프만에 따르면 이는 법관 자신이 사건 경과를 관찰해서 인지했다거나
언론 등을 통해 사건에 대한 상세한 지식을 얻었다는 뜻이 아니라 유사한 사건들
을 알며 그래서 ldquo선이해(Vorurteil Vorverstaumlndnis)rdquo65)를 가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
해의 전제로서 이런 선이해가 없다면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것이 무엇에 관한 사
건인지 알 수 없고 다른 사례와 비교할 수도 없기 때문에 올바른 판단에 이른다
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66) 이 선이해에 의해 해석은 언제나 해석주체의 자기
이해 즉 자신이 lsquo잠정적rsquo 결과로서 이미 예상했던 것을 논증적으로 근거짓는 활동
이라는 의미에서 ldquo해석학적 순환rdquo 내지 ldquo해석학적 나선구조rdquo 하에 이루어진다
63)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Festschrift fuumlr Karl Peters Mohr Siebeck (1974) 144면 법관의 독립과 양심 주제와 관련한 또 다른
글로는 Kaufmann ldquoGesetz und Rechtrdquo Existenz und Ordnung Festschrift fuumlr Erik Wolf (1962) 357면 이하
64)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4면 65) 해석학적 의미에서의 lsquo선이해rsquo는 일상 언어 관용에서는 lsquo선입견rsquo이나 lsquo편견rsquo 같은 부정
적 함의를 더 많이 지니기 때문에 카우프만은 lsquoVorurteilrsquo 대신에 Vorverstaumlndnis라는 용
어를 쓰기를 권장한다(앞의 글 148면) 카우프만 외에도 이 용어의 선택은 Josef Esser Vorverstaumlndnis und Methodenwahl in der Rechtsfindung 2 Aufl (Frankfurt aM 1972)
66)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7면
90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텍스트를 이해하려는 사람은 말하자면 언제나 초벌 그림을 그리며 특정 의미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텍스트를 읽기 때문에 ldquo텍스트에서 첫 번째 의미가 지시되자
마자 전체의 의미를 lsquo예비투사한다(vorauswirft)rsquordquo67) 그리고 선이해와 관련된 이 예
비투사는-해석학적 lsquo순환rsquo에 의해-원칙적으로 끝없이 검열과정을 거친다는 것
이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도 실제 판단과정에서는 분리
되지 않는다68)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은 시간적으로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단절 관계가 아니라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정제하고 상응하는
관계에 놓인다 즉 사실에 대한 인식 없이 규범적 인식은 불가능하며 또한 규범적
관점 없이 사실만을 통한 사실 확정도 불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법률도 법관의
해석을 만나기 전에는 ldquo잠재적인 가능태로서 주어진 법률rdquo일 뿐 해석학적 순환을
통한 정제 혹은 상응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ldquo진정한 실정법rdquo이 생성된다69) 이렇
게 특정사건을 통해 구체화된 규범(구성요건)과 이 규범을 통해 정해진 사실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법관에게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들과 함께 제3의 요소로서 법관
자신의 선이해 내지 이해 포괄적으로 말하면 그의 인격적 존재가 판단에 혼입
된다
lsquo선이해rsquo는 판단자가 자신의 선이해를 의식하지 못할 때 부정적 요소를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ldquo자신의 판단은 오로지 lsquo있는 그대로다rsquo라고 말하는 즉 lsquo오로지 법
률에만 구속된다rsquo라고 말하는 법관이야말로 실은 종속된 법관이다 왜냐하면 그는
성찰되지 않은 자신의 선이해와 거리를 둘 수 없기 때문이다rdquo70) 즉 법관은 자신
67)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68) 실제 판단과정에서 사실인정과 법률적용이 따로 떨어질 수 없다는 점은 굳이 카우프
만의 이론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실무상으로는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ldquo법률
의 적용과 사실의 인정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법률문제와 결부되어 인정된다 사실의 인정이 진행됨에 따라서 재판관의 머리
속에서는 어떠한 법규를 적용할 것인가 그 법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는 전망이
점차로 서게 되며 당사자 측도 경우에 따라서는 민사인 경우 청구의 취지를 변경할
것인가를 고려하게 되고 형사인 경우 공소사실을 변경하는 경우도 생긴다 요컨대 사실
문제와 법률문제는 실제과정에서 불가분으로 결부되어 있다 helliphellip 양쪽이 불가분으로
재판관의 직관 혹은 재판관의 전인격적인 작용에 의하여 사실의 인정과 법의 적용이
행하여지고 판결 삼단논법은 실제의 심판 과정에서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rdquo(사법
연수원 법조윤리론 35면) 69) ldquo법관의 해석 작업 이전에는 어느 의미에서 진정 법도 진정한 사실도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원자재들(Rohmaterialien)로만 이것들이 존재할 뿐이다rdquo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1
의 선이해를 의식하고 자신을 이데올로기 혐의 앞에 세울 줄 알 때 올바른 판결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ldquo법관이 자신의 선이해와 종속을 의식할수록 그래서 간주
관적 합의에 노력할수록 그는 더 객관적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rdquo71) 그러므로
법관의 주관주의의 위험은 카우프만식으로 말하면 가치판단 같은 성찰적 고려와
관련된 주관적 요소를 방법상의 근거 제시의 맥락에 끌어들이는 법관의 경우보다는
오히려 모든 것이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판결의 주관적
요소를 은폐하는 법관에게서 나타나는 위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학적 순환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법관은 ldquo법률의 입rdquo이 아니라 ldquo인격
으로서 판결을 떠받친다rdquo72) 판결은 법률과 법관의 인격의 혼성물이다 그러므로
법률은 판결을 위한 필요조건이기는 하나 충분조건은 아니라고도 말할 수 있다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순환이론은 법관의 독립과 양심의 문제 차원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법결정의 올바름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
는 정도에 달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자신을 올바르
게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자신의 판단력 경험 능력 인간에 대한 태도 감
수성 명예욕 등등
카우프만의 법해석학적 순환이론이 법관의 독립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이라
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독립은 법관 스스로 관철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론적으로 카우프만의 법해석이론의 의의는 법관이 자신의 선입견을
의식하는 것이야말로 법관의 독립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설득력있게 지적
해주며 그런 방향에서 법관의 법해석 작업을 재평가했다는 데 있다고 말할 수 있
겠다
70)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71) Arthur Kaufmann ldquoDer BGH und die Sitzblockaderdquo NJW (1988) 2581면 이하72) 이 표현은 Karl Peters의 Strafprozess - Ein Lehrbuch (1966) 99면에 나오며 여기서는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9면에서 재
인용했다 이덕연 교수도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에 입각하여 ldquo법관의 법해석작
업은 단순한 lsquo인식작업rsquo이나 lsquo언어분석작업rsquo이 아니라 ldquo구체적인 반성과 자기극복의
노력 속에서 온 인격을 걸고 진행하는 lsquo이해와 실천의 수행작업rsquordquo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앞의 글 352면)
9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Ⅸ 법관은 lsquo하는 사람rsquo인가 lsquo보는 사람rsquo인가
법관의 판단작업을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의 관점에서 주목했던 또 다른
철학자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다 그녀는 ldquo아이히만 재판rdquo을 계기로 판단의
특수한 경우로서의 판단력 문제를 연구했다73) 아렌트는 하드케이스와 연관시켜
법관의 판단력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74) 법관은 우선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을 반추하면서 판단에 임하는데 이때 판단자로서 그는 한 면으
로는 규칙에 따라 판단하라는 lsquo일반적 정의rsquo의 요구에 그리고 동시에 다른 한 면
으로는 정황에 맞게 판단하라는 lsquo개별적 정의rsquo의 요구에 처한다 이러한 상황은
아렌트에 따르면 하드케이스에서 특히 발생한다 이 이중적이고 모순적 요구 상황
을 아렌트는 법관의 판단에 적용되는 특수한 해석학 및 그 조건을 설명하는 출발
점으로 삼는다75) 하드케이스가 아닌 통상적인 사건에서는 이른바 포섭 여부를 판
단하는 것으로도 족하다 일반규칙에의 포섭 여부가 중심이 되는 이 단계에서의
판단력- lsquo규정하는 판단력(bestimmende Urteilskraft)rsquo-은 사실관계에서의 원인
이나 형식적 정의를 따지므로 일방적이고 간주관적 전제 없이도 가능하다 그래서
흔히 법관은 여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법을 해석해야 한다고 말할 때 이는
법적용을 이러한 지배적인 포섭모델에 입각하여 이해한 결과라 할 것이다 그런데
규칙으로부터 오는 어떤 어려움들 때문에 규정하는 판단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즉 포섭이 어렵거나 법흠결 시 또는 가치형량이 요구되는 하드케
이스에서는 법관은 어쩔 수 없이 앞에서 말한 모순문제를 다루어야만 한다 이때
아렌트는 법관이 사유의 확장을 통해 방법상으로 lsquo규정적 판단력rsquo을 스스로 교정
할 수 있는 lsquo성찰적 판단력rsquo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고 이 판단유형의 전환과정을
73) 법적 판단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 삼은 저술은 Hannah Arendt Eichmann in Jerusalem Ein Bericht von der Banalitaumlt des Boumlsen Erw Aufl (Muumlnchen 2001) 그리고 Hannah Arendt Das Urteilen Texte zu Kants Politischer Philosophie Hrsg v R Beiner Uumlbers v U Ludz (Muumlnchen 1998)
74) 아렌트가 염두에 둔 하드케이스는 라드브루흐가 이른바 ldquo법률적 불법rdquo 상태로 규정한
나치의 불법국가 상황으로서 이렇게 극히 예외적인 케이스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하드
케이스에 적용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별적 정의 요구에 부응함
으로써 예컨대 소급효를 금지하는 일반법률에 위배되는 상황과 유사한 갈등상황은 반
드시 극단적 상황에서만 생긴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75)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2 Bde Hrsg v U Ludz amp I Nordmann
따라서 그 척도는 전달가능성이며 거기에 딱 맞는 것은 공통감각(상식)이다rdquo77) 오
늘날 공통감각은 아렌트도 지적했듯이 더 이상 그것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얻고자 노력해야 하는 그 무엇이 되어버린 듯하다 그러나 공통감
각이 무너진 시대를 겪었던 아렌트는 사유의 전환 내지 확대를 위한 진정한 발판
을 다시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에서 구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78)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실천철학의 전통에서는 세계와의 관계 그리고 자기와의 관
계를 공통감각을 척도로 설정해가는 판단자가 lsquo하는 사람rsquo인지 아니면 lsquo보는 사람rsquo
인지 즉 lsquo행위자rsquo인지 아니면 lsquo관찰자rsquo인지를 둘러싸고 의견이 대립되어 왔다 lsquo하
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자가 lsquo정치가rsquo 쪽에 더 가깝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
자는 lsquo철학자rsquo 쪽에 더 가깝다 lsquo하는 사람rsquo은 주로 사회의 일반적 상식 건전한 인
간이해 세론(doxa)을 판단의 척도로 삼는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적 경험은 전체주
의 하에서는 건전한 인간이해도 집단화된 대중감정에 따른 오도된 인간이해 앞에
무너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판단에서 사실로서의 상식이나 합의 또는
법해석공동체 내부의 지배적 제도적 관점이라는 판단 척도만으로는 일반규칙으로
부터 오는 모순을 다루기 어렵다 여기서 판단자는 ldquo확대된 사유방식rdquo을 추구해야
하는데 아렌트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을 lsquo보는 사람rsquo의 판단과 결합시킴으로써 법
관을 위한 사유의 확대를 시도한다79) lsquo하는 사람rsquo이 사실로서의 일반적 상식이나
인간이해 차원에 비추어 판단한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ldquo이
상적 규범적 상식rdquo80)을 추구하고자 한다 판단을 거쳐 법적 효과를 결정하는 법관
76)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을 해석학적 순환이론을 적용하여 분석하면서 칸트의 판단력 비
판에 의거하여 아렌트가 판단력의 특수한 경우로서 법관의 ldquo성찰적 판단력rdquo이라는 새
로운 판단유형을 제시했다고 지적한 연구서로는 Stefanie Rosenmuumlller Der Ort des Rechts Gemeinsinn und richterliches Urteilen nach Hannah Arendt Nomos (2013) 참조
77) Hannah Arendt Das Urteilen 92-93면78) 아렌트가 판단의 차원을 심화시키는 발판으로 삼는 상식은 sensus communis로서
communis opinio와는 다르다는 데 대해서는 Marieke Borren ldquolsquoA Sense of the Worldrsquo Hannah Arendtrsquos Hermeneutic Phenomenology of Common Senserdquo International Journal of Philosophical Studies Vol 21 No 2 (2013) 225-255
79) Hannah Arendt Das Urteilen 76면80) Rosenmuumlller 앞의 책 234면 이하 여기서 아렌트는 상식개념을 이중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에서는 경험적 개념으로 보다 성찰적 판단
단계에서는 규범적 개념으로 사용한다
9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은 관찰자로서 판단하면서 동시에 행위자로서 판단에서 법적 결과를 결정하는
사람이다 관찰자인 동시에 행위자라는 이중적인 역할을 하면서 법관은 자신의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 반추한다81) 이 반추과정에서 법관은 한편으로는 포섭
하는 판단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고려해야 할 관점들을 끌어들이면서
자신의 직책을 마지막까지 수행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통제하면서 자신의 앞서의
(포섭) 판단을 정정해나간다 그래서 법관 자신이 lsquo보는 사람rsquo과 lsquo하는 사람rsquo의 만
남의 장소가 되는 것과도 같다 ldquo이 보는 사람은 모든 하는 사람 안에 자리 잡고
있다helliphellip이 비판적 판단능력이 없이는 행위자 혹은 해결자는 보는 사람으로부터
풀려나 종내는 지각되지조차 못하게 될 것이다rdquo82)
사람들은 자신 일에 있어서는 비당파적일 수는 없다 따라서 ldquo자신의 일에 대한
판단에서는 내면의 심판자 혹은 내면의 법정을 가질 수 없다rdquo83) 그러나 다른 사
람의 일을 반추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필히 비당파적이어야 하며 또 비당파적이 될
수 있다 이때 그는 비로소 내면의 심판자를 가지게 된다 즉 양심의 문제에 처하
게 되는 것이다 판단에 있어서 양심이라는 것 즉 양심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남
의 일에서 ldquo증인rdquo 혹은 ldquo비판적 친구rdquo로서 관찰하고 행위하는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이다84)
아렌트의 성찰적 판단모델은 나치 불법국가 경험의 산물이다 통상의 규칙이 파
괴된 상황 통상의 범죄유형에 포섭되지 않는 극히 예외적인 범죄적 상황에서 법
원은 기존의 판단척도를 해석학적 출발로 삼아서는 안 되고 이때에는 질적으로
동의가능한 합의형식을 찾기 위해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으로 돌아가
진정으로 사유 즉 철학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렌트가 판단을 일반화해주는
거점이자 해석학적 출발점으로 삼은 공통감각(상식) 개념은 칸트철학에서 ldquo비사교
적 사교성rdquo 개념의 위상과 비슷하다85) 이 지상에서 인간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다른 것을 원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모여 살아야만 하는 존재다 이 비사회성 요
청과 사회성 요청의 동시성 때문에 인간에게는 제도적인 안착이 더없이 중요하며
법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실존과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만든다 판단의 기
81) Leora Y Bilsky When Actor and Spectator Meet in the Courtroom Hannah Arendt and Eichmann in Jerusalem G N Arad Hg (Bloomington 1996) 137면
82) Hannah Arendt 앞의 책 85면83) Hannah Arendt 앞의 책 76면 84)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657면85) Rosenmuumlller 앞의 책 1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5
초를 보편적 인간경험에 둔다는 점에서 아렌트가 말하는 판단력은 드워킨의 헤라
클레스와 같은 초인적 천재성을 발휘하는 능력과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86) 아
렌트가 상정하는 이상적인 법관은 철학적이지만 철학자는 아니고 정치적이지만 정
치가는 아닌 사람이다
아렌트는 헌법국가의 권위도 상식개념에 기반을 두고 설명한다 그리고 민주적
정당성의 관점에서 입법의 우위를 인정하는 까닭에 성찰적 판단에 입각한 법관의
검증에는 한계가 있다는 태도를 견지한다87)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렌트가 제시한
법관의 성찰적 판단 유형에 대해서는 다양한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우선 이것이
예외 상황에서 적용되는 판단모델로 상정된 것이며 무엇보다도 ldquo규범적 상식rdquo에
대한 단일한 이해기반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법관 개인의 주관적 정치적 신념
이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길을 피할 수 없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성찰적
판단력은 결국 레토릭에 불과한 것인가 아렌트는 그러나 무엇이 ldquo특정 상황에 맞
는 공통감각(situierte Gemeinsinn)rdquo인지에 대한 공동의 인식은 가능하며 또 법관의
lsquo하는rsquo 판단에 들어있는 정치적 함의를 성찰적 판단력으로 검증하는 것도 가능하
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아렌트가 마지막 검증심급으로 원용하는 것이 바로 판
단에서의 양심의 심급이다 그것이 과연 동의할 수 있는 합의형태로서 충분한지를
스스로 검증하는 이 심급에서 판단자는 명령조로 자기에게 전해지는 소리를 듣게
된다 ldquo멈춰 나는 그것은 할 수 없어rdquo88) 판단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 멈추는 것
이 가능한 이 성찰적 심급에서는 칸트와 달리 할 수 없는 이유로써 결과도 고려
된다 lsquo보는 사람rsquo이 자기 안에서 지켜보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상황은 토마스 아퀴
나스의 양심론에 비추어 다음과 같이 묘사될 수도 있겠다 지적 본성을 가진 인간
존재가 보편법칙에 관한 지식을 개별 행위에 적용하기 위해 판단하고 선택할 때
행위자는 갈등 상황- ldquo그렇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rdquo는
상황-에 처하여 멈칫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데 이때 그는 단지 갈등하고
선택하는 역할만 하지 않고 갈등하고 선택하는 이 과정을 ldquo관찰하고 목격하는 증인rdquo
의 역할도 한다는 것89)
86) 드워킨에 의하면 해석적 탐구는 ldquo어떠한 증명도 허용치 않고 어떠한 수렴도 약속치
않는 탐구rdquo이다(드워킨 정의론 203면)87) Rosenmuumlller 앞의 책 30면88) Hannah Arendt Uumlber das Boumlse Eine Vorlesung zu Fragen der Ethik Hrsg v J Kohn
(Muumlnchen 2003) 52면89) 지적 행위자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자신의 내면의 갈등과 선택과정을 바라보는
9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Ⅹ 방법에서 덕목으로
헌법 제103조는 한 면으로는 헌법과 법률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 면으로 해석자에게 여하한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lsquo제약
의 차원rsquo과 lsquo자유의 차원rsquo을 동시에 담고 있다 법관은 자유로울 때에라도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며 법에 구속될 때에라도 전적으로 구속되지는 않는다는 뜻이
기도 하다 이 lsquo자유와 구속의 변증법rsquo에 비추어 지금까지 논한 주제에 대해 몇 가
지 입장을 정리해 보자 첫째 법관에게 있어서 독립은 확정된 원칙이나 그것자체
로서 달성해야 할 최종목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법관의 독립은 완성형이 아니라
끊임없는 진행형의 과제로서 그 직무수행에 대한 신뢰와 병행하여 점진적으로 이
루어지는 것이다 둘째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에 있어서 구속은 법률에 무조건 복종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판결에 대한 윤리 (내 ) 확신과 함께 법률에 복종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법관이 실정법률에 반하는 결정을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법
관은 객관성을 빌미로 법률 뒤에 숨는 익명적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
미하는 것이다 셋째 독립적인 법관의 양심은 lsquo법과 상충한다rsquo기보다는 lsquo법을 실
한다rsquo는 의미를 지닌다 넷째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서 반추하면서 lsquo하는
사람rsquo인 동시에 lsquo보는 사람rsquo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성찰 인 인물상으
로서만 설정될 수 있다
해석적 탐구는 우리의 이해를 넓히기 위해서 필요하지만 이해에서의 우리의 피
할 수 없는 한계를 깨닫기 위해서도 필요했는지 모른다 엥기쉬는 법해석방법론에
대한 저술의 마지막 부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ldquo방법론에 천착하다 보면
애초의 문제였던 법률로부터 훨씬 더 먼 곳으로 이끌려 간다rdquo 지금까지 필자는
법관의 법해석과 관련하여 방법론의 의의와 한계를 논하고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과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에 비추어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이 법해석론
의 불가결한 부분으로 들어가게 되는 이유도 밝혔다 그리고 해석적 차원에서의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는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행위를 목표로 하는
탐구라는 것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필자는 이 모든 논의들을 매개로 방법론이 우리를 더 멀리 덕
목론으로 데려가는 과정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드워킨의
상황에 대한 이 묘사 부분은 이경재 ldquo토마스 아퀴나스의 양심 개념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375면을 참조했다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7
헤라클레스를 잠시 불러올 필요가 있다 해석문제를 누구보다도 더 진지하게 다룬
드워킨은 마지막에 헤라클레스를 내세운다 주어진 사건에서 무엇이 법인지에
대해 도덕적 의식을 가지고 법실무 전체를 원리정합적으로 정당화하라는 요청에
부응하여 자신의 신념에 기초한 결정을 내리는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의 구성적
해석에서 법관의 양심이 기능하는 국면은 어디일까 송민경 판사는 드워킨의 구성
적 해석론에 입각하여 양심을 구체적 법논증과정의 일부로 포함시키면서 이때 양
심이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라는 지침으로 기능한다고 설명한다90)
그런데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는 지침으로 기능하는 것을 양심이라
고 보게 되면 양심의 문제는 논증적 합리성의 차원 즉 논증의 성공으로 종결짓게
된다 그러나 법적 결정의 정당성 문제는 법관의 입장에서는 논증의 성공 문제로
다루어지지만 법관의 성공적인 논증에 따른 판결의 결과로부터 영향을 받는 시민
의 입장에서 보면 성공적인 논증만으로는 해석이 정당화된다고 볼 수는 없다
성공적인 논증은 법적 결정의 정당화에 필수적이기는 하나 충분한 조건은 되지 못
한다 해석이 궁극적으로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사법적 도덕성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 사법적 도덕성은 헤라클레스가 지침으로 삼는 원리적 도덕성의 실현과는 다른
것이다 만약 패소한 시민이 다른 헤라클레스에게 갔더라면 즉 다른 법원리에 기
초한 신념을 토대로 다른 결정을 내린 다른 법관에게 갔다면 그는 승리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왜 헤라클레스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하
는지에 대한 답이 필요한 것이다91) 헤라클레스가 실무에 대한 최상의 정당화를
도모하는 법적 이상주의자라면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법원 문을 두드린 시민도
어느 의미에서 ldquo법이상주의자rdquo92)이다
법해석 작업의 주관의존성이라는 불가피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재판이라는 특수
한 공적 활동이 법관이라는 특수공직자에 의해 운영되고 유지된다는 것은 시민들
-소송에서 패한 시민들을 포함하여-편에서 보면 법을 해석하는 법관에 대한
신뢰가 전제된다는 것이다 법관의 독립적 활동은 법관의 특권 행사가 아니라 사
90) 송민경 앞의 글 38면 20면91) 사법적 덕목과 연관하여 이 부분을 다룬 글로는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5면 이하
92) 법원 문을 두드리는 시민에 대한 이 표현은 심헌섭 ldquo법조윤리의 좌표 거시적 관점에서 본 전문윤리로서의 법조윤리rdquo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편 法律家의 倫理와 責任 박영사
(2003)에 나온다
9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법과정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응당한 몫이 돌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존중하는 바탕에는 일종의 상호성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 그 또한
시민이기도 한 법관이 동료시민들에 대해 가지는 배려와 존중의 원칙이 그것이다
여기서 사법적 덕목에 대해 자세히 논할 수는 없다93) 예의 성실 신중 절제
용기 공정 겸손 의사소통 능력 형평 시민에 대한 배려와 존중 등등 이것들은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바탕을 이루는 양심의 덕목들일
것이다 양심이라는 단어가 그렇듯이 덕목이라는 단어도 오늘날 진부해진 표현
이며 거의 사라져가는 단어다 윤리적 태도로서의 덕목은 관찰하기도 배우기도
어렵다 그러나 올바른 판단과 결정이 법관이라는 개인을 거치지 않고 법령집
자체로부터 반사적으로 튀어나오지 않는 한 이 덕목들을 내면화하고 지향하려는
태도 없이는 lsquo종국적인rsquo 판단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써 필자는 헌법 제103조를 통해 법해석에서의 방법론의 문제가 덕목론이라
는 다음 과제로 이어진다는 점을 밝혔다고 생각한다
투고일 2016 4 6 심사완료일 2016 5 18 게재확정일 2016 5 20
93) 법관의 개별적인 덕목들과 이것들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는 박은정 강태경 김현섭 바람
직한 법관상의 정립과 실천 방안에 관한 연구 법원행정처(2015) 제5장 참조할 것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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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ltAbstractgt
Independence and Conscience of the Judges Based on
Interpretive Method for Article 103 of the Korean Constitution
Pak Un Jong
94)
In this paper I aim to discuss the problem of independence and conscience
of the judges as outlined in Article 103 of the Korean Constitution in the
context of the interpretive methodology
First of all this paper will look at the background in which the independence
of the judges has been institutionalized and also the problems regarding usual
explanation for conscience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And I will try to
reveal the characteristics and difficulties of the interpretive actions of the judges
especially in connection to the issue of value judgment This would require
pointing out the problems and limitations of the interpretive methodology and at
the same time defining the nature of tension embedded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namely the tension between the obligations of the judges to abide
the law versus the subjective internal demeanor of the judges This tension-
ridden condition reenacted by the demand to follow lsquogeneral justicersquo versus
lsquoindividual justicersquo appears inevitably in the process of judicial interpretation I
will examine the theories that capture this kind of tension that accompany the
interpretation process and aim to feel out the possibilities of resolving this
tension At the end I come to the conclusion that these theories can explain but
cannot resolve this tension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If so the problem
which arises from the limitations of the interpretative methodologies from the
perspective that a judgersquos final decision greatly impacts citizens becomes a
problem of judicial ethics In order to ultimately justify the interpretation of the
judges the demands of judicial ethics must be satisfied Keeping this demand in
Professor College of Law School of Law Seoul National University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103
mind I point out that the significance of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is in
its role of bridging legal methodology to virtue ethics
Keywords independence of the judges conscience of the judges interpretive
method of law value judgment judicial virtue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89
로 법관의 결정이 올바른가의 물음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가의 물음과 직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63)
우선 카우프만은 통상적으로 회자되는 독립적인 법관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즉 법 앞에 선 법관이 일체의 정치적 사회적 개인적 영향이나 선입견들로부터 차
단된 채 순수한 객관적 인식에 따라 그 이전에는 자신이 알 수 없었던 사실관계
를 판단하고 그런 다음에 법적 판단을 한다는 식으로 이해하기를 거부한다64)
그런 법관상은 법령집은 일체 해석의 필요가 없이 거의 모든 가능한 법률문제에
대한 대답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상정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법관은 의지가
없는 존재이며 사법권력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여기는 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법에 대한 인식은 단순히 사례를 법률에 포섭시킨다는 의미의 수
동적 행위가 아니고 해석자가 해석대상에 관여하면서 함께 lsquo형성rsquo하는 것이라고
본다 카우프만은 법관의 법형성력에 대한 자신의 견해가 주관주의의 의미로 받아
들여지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는데 왜냐하면 해석자는 텍스트를 지탱하는 모든
전통과 함께 이해의 지평으로 들어간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은 서류의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ldquo아 이런 사건이구나rdquo라고 감을 잡게 되
는데 카우프만에 따르면 이는 법관 자신이 사건 경과를 관찰해서 인지했다거나
언론 등을 통해 사건에 대한 상세한 지식을 얻었다는 뜻이 아니라 유사한 사건들
을 알며 그래서 ldquo선이해(Vorurteil Vorverstaumlndnis)rdquo65)를 가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
해의 전제로서 이런 선이해가 없다면 법관은 자기 앞에 놓인 것이 무엇에 관한 사
건인지 알 수 없고 다른 사례와 비교할 수도 없기 때문에 올바른 판단에 이른다
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66) 이 선이해에 의해 해석은 언제나 해석주체의 자기
이해 즉 자신이 lsquo잠정적rsquo 결과로서 이미 예상했던 것을 논증적으로 근거짓는 활동
이라는 의미에서 ldquo해석학적 순환rdquo 내지 ldquo해석학적 나선구조rdquo 하에 이루어진다
63)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Festschrift fuumlr Karl Peters Mohr Siebeck (1974) 144면 법관의 독립과 양심 주제와 관련한 또 다른
글로는 Kaufmann ldquoGesetz und Rechtrdquo Existenz und Ordnung Festschrift fuumlr Erik Wolf (1962) 357면 이하
64)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4면 65) 해석학적 의미에서의 lsquo선이해rsquo는 일상 언어 관용에서는 lsquo선입견rsquo이나 lsquo편견rsquo 같은 부정
적 함의를 더 많이 지니기 때문에 카우프만은 lsquoVorurteilrsquo 대신에 Vorverstaumlndnis라는 용
어를 쓰기를 권장한다(앞의 글 148면) 카우프만 외에도 이 용어의 선택은 Josef Esser Vorverstaumlndnis und Methodenwahl in der Rechtsfindung 2 Aufl (Frankfurt aM 1972)
66)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7면
90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텍스트를 이해하려는 사람은 말하자면 언제나 초벌 그림을 그리며 특정 의미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텍스트를 읽기 때문에 ldquo텍스트에서 첫 번째 의미가 지시되자
마자 전체의 의미를 lsquo예비투사한다(vorauswirft)rsquordquo67) 그리고 선이해와 관련된 이 예
비투사는-해석학적 lsquo순환rsquo에 의해-원칙적으로 끝없이 검열과정을 거친다는 것
이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도 실제 판단과정에서는 분리
되지 않는다68)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은 시간적으로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단절 관계가 아니라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정제하고 상응하는
관계에 놓인다 즉 사실에 대한 인식 없이 규범적 인식은 불가능하며 또한 규범적
관점 없이 사실만을 통한 사실 확정도 불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법률도 법관의
해석을 만나기 전에는 ldquo잠재적인 가능태로서 주어진 법률rdquo일 뿐 해석학적 순환을
통한 정제 혹은 상응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ldquo진정한 실정법rdquo이 생성된다69) 이렇
게 특정사건을 통해 구체화된 규범(구성요건)과 이 규범을 통해 정해진 사실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법관에게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들과 함께 제3의 요소로서 법관
자신의 선이해 내지 이해 포괄적으로 말하면 그의 인격적 존재가 판단에 혼입
된다
lsquo선이해rsquo는 판단자가 자신의 선이해를 의식하지 못할 때 부정적 요소를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ldquo자신의 판단은 오로지 lsquo있는 그대로다rsquo라고 말하는 즉 lsquo오로지 법
률에만 구속된다rsquo라고 말하는 법관이야말로 실은 종속된 법관이다 왜냐하면 그는
성찰되지 않은 자신의 선이해와 거리를 둘 수 없기 때문이다rdquo70) 즉 법관은 자신
67)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68) 실제 판단과정에서 사실인정과 법률적용이 따로 떨어질 수 없다는 점은 굳이 카우프
만의 이론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실무상으로는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ldquo법률
의 적용과 사실의 인정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법률문제와 결부되어 인정된다 사실의 인정이 진행됨에 따라서 재판관의 머리
속에서는 어떠한 법규를 적용할 것인가 그 법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는 전망이
점차로 서게 되며 당사자 측도 경우에 따라서는 민사인 경우 청구의 취지를 변경할
것인가를 고려하게 되고 형사인 경우 공소사실을 변경하는 경우도 생긴다 요컨대 사실
문제와 법률문제는 실제과정에서 불가분으로 결부되어 있다 helliphellip 양쪽이 불가분으로
재판관의 직관 혹은 재판관의 전인격적인 작용에 의하여 사실의 인정과 법의 적용이
행하여지고 판결 삼단논법은 실제의 심판 과정에서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rdquo(사법
연수원 법조윤리론 35면) 69) ldquo법관의 해석 작업 이전에는 어느 의미에서 진정 법도 진정한 사실도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원자재들(Rohmaterialien)로만 이것들이 존재할 뿐이다rdquo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1
의 선이해를 의식하고 자신을 이데올로기 혐의 앞에 세울 줄 알 때 올바른 판결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ldquo법관이 자신의 선이해와 종속을 의식할수록 그래서 간주
관적 합의에 노력할수록 그는 더 객관적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rdquo71) 그러므로
법관의 주관주의의 위험은 카우프만식으로 말하면 가치판단 같은 성찰적 고려와
관련된 주관적 요소를 방법상의 근거 제시의 맥락에 끌어들이는 법관의 경우보다는
오히려 모든 것이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판결의 주관적
요소를 은폐하는 법관에게서 나타나는 위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학적 순환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법관은 ldquo법률의 입rdquo이 아니라 ldquo인격
으로서 판결을 떠받친다rdquo72) 판결은 법률과 법관의 인격의 혼성물이다 그러므로
법률은 판결을 위한 필요조건이기는 하나 충분조건은 아니라고도 말할 수 있다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순환이론은 법관의 독립과 양심의 문제 차원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법결정의 올바름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
는 정도에 달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자신을 올바르
게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자신의 판단력 경험 능력 인간에 대한 태도 감
수성 명예욕 등등
카우프만의 법해석학적 순환이론이 법관의 독립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이라
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독립은 법관 스스로 관철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론적으로 카우프만의 법해석이론의 의의는 법관이 자신의 선입견을
의식하는 것이야말로 법관의 독립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설득력있게 지적
해주며 그런 방향에서 법관의 법해석 작업을 재평가했다는 데 있다고 말할 수 있
겠다
70)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71) Arthur Kaufmann ldquoDer BGH und die Sitzblockaderdquo NJW (1988) 2581면 이하72) 이 표현은 Karl Peters의 Strafprozess - Ein Lehrbuch (1966) 99면에 나오며 여기서는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9면에서 재
인용했다 이덕연 교수도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에 입각하여 ldquo법관의 법해석작
업은 단순한 lsquo인식작업rsquo이나 lsquo언어분석작업rsquo이 아니라 ldquo구체적인 반성과 자기극복의
노력 속에서 온 인격을 걸고 진행하는 lsquo이해와 실천의 수행작업rsquordquo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앞의 글 352면)
9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Ⅸ 법관은 lsquo하는 사람rsquo인가 lsquo보는 사람rsquo인가
법관의 판단작업을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의 관점에서 주목했던 또 다른
철학자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다 그녀는 ldquo아이히만 재판rdquo을 계기로 판단의
특수한 경우로서의 판단력 문제를 연구했다73) 아렌트는 하드케이스와 연관시켜
법관의 판단력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74) 법관은 우선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을 반추하면서 판단에 임하는데 이때 판단자로서 그는 한 면으
로는 규칙에 따라 판단하라는 lsquo일반적 정의rsquo의 요구에 그리고 동시에 다른 한 면
으로는 정황에 맞게 판단하라는 lsquo개별적 정의rsquo의 요구에 처한다 이러한 상황은
아렌트에 따르면 하드케이스에서 특히 발생한다 이 이중적이고 모순적 요구 상황
을 아렌트는 법관의 판단에 적용되는 특수한 해석학 및 그 조건을 설명하는 출발
점으로 삼는다75) 하드케이스가 아닌 통상적인 사건에서는 이른바 포섭 여부를 판
단하는 것으로도 족하다 일반규칙에의 포섭 여부가 중심이 되는 이 단계에서의
판단력- lsquo규정하는 판단력(bestimmende Urteilskraft)rsquo-은 사실관계에서의 원인
이나 형식적 정의를 따지므로 일방적이고 간주관적 전제 없이도 가능하다 그래서
흔히 법관은 여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법을 해석해야 한다고 말할 때 이는
법적용을 이러한 지배적인 포섭모델에 입각하여 이해한 결과라 할 것이다 그런데
규칙으로부터 오는 어떤 어려움들 때문에 규정하는 판단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즉 포섭이 어렵거나 법흠결 시 또는 가치형량이 요구되는 하드케
이스에서는 법관은 어쩔 수 없이 앞에서 말한 모순문제를 다루어야만 한다 이때
아렌트는 법관이 사유의 확장을 통해 방법상으로 lsquo규정적 판단력rsquo을 스스로 교정
할 수 있는 lsquo성찰적 판단력rsquo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고 이 판단유형의 전환과정을
73) 법적 판단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 삼은 저술은 Hannah Arendt Eichmann in Jerusalem Ein Bericht von der Banalitaumlt des Boumlsen Erw Aufl (Muumlnchen 2001) 그리고 Hannah Arendt Das Urteilen Texte zu Kants Politischer Philosophie Hrsg v R Beiner Uumlbers v U Ludz (Muumlnchen 1998)
74) 아렌트가 염두에 둔 하드케이스는 라드브루흐가 이른바 ldquo법률적 불법rdquo 상태로 규정한
나치의 불법국가 상황으로서 이렇게 극히 예외적인 케이스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하드
케이스에 적용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별적 정의 요구에 부응함
으로써 예컨대 소급효를 금지하는 일반법률에 위배되는 상황과 유사한 갈등상황은 반
드시 극단적 상황에서만 생긴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75)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2 Bde Hrsg v U Ludz amp I Nordmann
따라서 그 척도는 전달가능성이며 거기에 딱 맞는 것은 공통감각(상식)이다rdquo77) 오
늘날 공통감각은 아렌트도 지적했듯이 더 이상 그것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얻고자 노력해야 하는 그 무엇이 되어버린 듯하다 그러나 공통감
각이 무너진 시대를 겪었던 아렌트는 사유의 전환 내지 확대를 위한 진정한 발판
을 다시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에서 구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78)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실천철학의 전통에서는 세계와의 관계 그리고 자기와의 관
계를 공통감각을 척도로 설정해가는 판단자가 lsquo하는 사람rsquo인지 아니면 lsquo보는 사람rsquo
인지 즉 lsquo행위자rsquo인지 아니면 lsquo관찰자rsquo인지를 둘러싸고 의견이 대립되어 왔다 lsquo하
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자가 lsquo정치가rsquo 쪽에 더 가깝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
자는 lsquo철학자rsquo 쪽에 더 가깝다 lsquo하는 사람rsquo은 주로 사회의 일반적 상식 건전한 인
간이해 세론(doxa)을 판단의 척도로 삼는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적 경험은 전체주
의 하에서는 건전한 인간이해도 집단화된 대중감정에 따른 오도된 인간이해 앞에
무너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판단에서 사실로서의 상식이나 합의 또는
법해석공동체 내부의 지배적 제도적 관점이라는 판단 척도만으로는 일반규칙으로
부터 오는 모순을 다루기 어렵다 여기서 판단자는 ldquo확대된 사유방식rdquo을 추구해야
하는데 아렌트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을 lsquo보는 사람rsquo의 판단과 결합시킴으로써 법
관을 위한 사유의 확대를 시도한다79) lsquo하는 사람rsquo이 사실로서의 일반적 상식이나
인간이해 차원에 비추어 판단한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ldquo이
상적 규범적 상식rdquo80)을 추구하고자 한다 판단을 거쳐 법적 효과를 결정하는 법관
76)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을 해석학적 순환이론을 적용하여 분석하면서 칸트의 판단력 비
판에 의거하여 아렌트가 판단력의 특수한 경우로서 법관의 ldquo성찰적 판단력rdquo이라는 새
로운 판단유형을 제시했다고 지적한 연구서로는 Stefanie Rosenmuumlller Der Ort des Rechts Gemeinsinn und richterliches Urteilen nach Hannah Arendt Nomos (2013) 참조
77) Hannah Arendt Das Urteilen 92-93면78) 아렌트가 판단의 차원을 심화시키는 발판으로 삼는 상식은 sensus communis로서
communis opinio와는 다르다는 데 대해서는 Marieke Borren ldquolsquoA Sense of the Worldrsquo Hannah Arendtrsquos Hermeneutic Phenomenology of Common Senserdquo International Journal of Philosophical Studies Vol 21 No 2 (2013) 225-255
79) Hannah Arendt Das Urteilen 76면80) Rosenmuumlller 앞의 책 234면 이하 여기서 아렌트는 상식개념을 이중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에서는 경험적 개념으로 보다 성찰적 판단
단계에서는 규범적 개념으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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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관찰자로서 판단하면서 동시에 행위자로서 판단에서 법적 결과를 결정하는
사람이다 관찰자인 동시에 행위자라는 이중적인 역할을 하면서 법관은 자신의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 반추한다81) 이 반추과정에서 법관은 한편으로는 포섭
하는 판단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고려해야 할 관점들을 끌어들이면서
자신의 직책을 마지막까지 수행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통제하면서 자신의 앞서의
(포섭) 판단을 정정해나간다 그래서 법관 자신이 lsquo보는 사람rsquo과 lsquo하는 사람rsquo의 만
남의 장소가 되는 것과도 같다 ldquo이 보는 사람은 모든 하는 사람 안에 자리 잡고
있다helliphellip이 비판적 판단능력이 없이는 행위자 혹은 해결자는 보는 사람으로부터
풀려나 종내는 지각되지조차 못하게 될 것이다rdquo82)
사람들은 자신 일에 있어서는 비당파적일 수는 없다 따라서 ldquo자신의 일에 대한
판단에서는 내면의 심판자 혹은 내면의 법정을 가질 수 없다rdquo83) 그러나 다른 사
람의 일을 반추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필히 비당파적이어야 하며 또 비당파적이 될
수 있다 이때 그는 비로소 내면의 심판자를 가지게 된다 즉 양심의 문제에 처하
게 되는 것이다 판단에 있어서 양심이라는 것 즉 양심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남
의 일에서 ldquo증인rdquo 혹은 ldquo비판적 친구rdquo로서 관찰하고 행위하는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이다84)
아렌트의 성찰적 판단모델은 나치 불법국가 경험의 산물이다 통상의 규칙이 파
괴된 상황 통상의 범죄유형에 포섭되지 않는 극히 예외적인 범죄적 상황에서 법
원은 기존의 판단척도를 해석학적 출발로 삼아서는 안 되고 이때에는 질적으로
동의가능한 합의형식을 찾기 위해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으로 돌아가
진정으로 사유 즉 철학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렌트가 판단을 일반화해주는
거점이자 해석학적 출발점으로 삼은 공통감각(상식) 개념은 칸트철학에서 ldquo비사교
적 사교성rdquo 개념의 위상과 비슷하다85) 이 지상에서 인간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다른 것을 원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모여 살아야만 하는 존재다 이 비사회성 요
청과 사회성 요청의 동시성 때문에 인간에게는 제도적인 안착이 더없이 중요하며
법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실존과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만든다 판단의 기
81) Leora Y Bilsky When Actor and Spectator Meet in the Courtroom Hannah Arendt and Eichmann in Jerusalem G N Arad Hg (Bloomington 1996) 137면
82) Hannah Arendt 앞의 책 85면83) Hannah Arendt 앞의 책 76면 84)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657면85) Rosenmuumlller 앞의 책 1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5
초를 보편적 인간경험에 둔다는 점에서 아렌트가 말하는 판단력은 드워킨의 헤라
클레스와 같은 초인적 천재성을 발휘하는 능력과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86) 아
렌트가 상정하는 이상적인 법관은 철학적이지만 철학자는 아니고 정치적이지만 정
치가는 아닌 사람이다
아렌트는 헌법국가의 권위도 상식개념에 기반을 두고 설명한다 그리고 민주적
정당성의 관점에서 입법의 우위를 인정하는 까닭에 성찰적 판단에 입각한 법관의
검증에는 한계가 있다는 태도를 견지한다87)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렌트가 제시한
법관의 성찰적 판단 유형에 대해서는 다양한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우선 이것이
예외 상황에서 적용되는 판단모델로 상정된 것이며 무엇보다도 ldquo규범적 상식rdquo에
대한 단일한 이해기반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법관 개인의 주관적 정치적 신념
이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길을 피할 수 없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성찰적
판단력은 결국 레토릭에 불과한 것인가 아렌트는 그러나 무엇이 ldquo특정 상황에 맞
는 공통감각(situierte Gemeinsinn)rdquo인지에 대한 공동의 인식은 가능하며 또 법관의
lsquo하는rsquo 판단에 들어있는 정치적 함의를 성찰적 판단력으로 검증하는 것도 가능하
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아렌트가 마지막 검증심급으로 원용하는 것이 바로 판
단에서의 양심의 심급이다 그것이 과연 동의할 수 있는 합의형태로서 충분한지를
스스로 검증하는 이 심급에서 판단자는 명령조로 자기에게 전해지는 소리를 듣게
된다 ldquo멈춰 나는 그것은 할 수 없어rdquo88) 판단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 멈추는 것
이 가능한 이 성찰적 심급에서는 칸트와 달리 할 수 없는 이유로써 결과도 고려
된다 lsquo보는 사람rsquo이 자기 안에서 지켜보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상황은 토마스 아퀴
나스의 양심론에 비추어 다음과 같이 묘사될 수도 있겠다 지적 본성을 가진 인간
존재가 보편법칙에 관한 지식을 개별 행위에 적용하기 위해 판단하고 선택할 때
행위자는 갈등 상황- ldquo그렇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rdquo는
상황-에 처하여 멈칫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데 이때 그는 단지 갈등하고
선택하는 역할만 하지 않고 갈등하고 선택하는 이 과정을 ldquo관찰하고 목격하는 증인rdquo
의 역할도 한다는 것89)
86) 드워킨에 의하면 해석적 탐구는 ldquo어떠한 증명도 허용치 않고 어떠한 수렴도 약속치
않는 탐구rdquo이다(드워킨 정의론 203면)87) Rosenmuumlller 앞의 책 30면88) Hannah Arendt Uumlber das Boumlse Eine Vorlesung zu Fragen der Ethik Hrsg v J Kohn
(Muumlnchen 2003) 52면89) 지적 행위자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자신의 내면의 갈등과 선택과정을 바라보는
9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Ⅹ 방법에서 덕목으로
헌법 제103조는 한 면으로는 헌법과 법률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 면으로 해석자에게 여하한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lsquo제약
의 차원rsquo과 lsquo자유의 차원rsquo을 동시에 담고 있다 법관은 자유로울 때에라도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며 법에 구속될 때에라도 전적으로 구속되지는 않는다는 뜻이
기도 하다 이 lsquo자유와 구속의 변증법rsquo에 비추어 지금까지 논한 주제에 대해 몇 가
지 입장을 정리해 보자 첫째 법관에게 있어서 독립은 확정된 원칙이나 그것자체
로서 달성해야 할 최종목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법관의 독립은 완성형이 아니라
끊임없는 진행형의 과제로서 그 직무수행에 대한 신뢰와 병행하여 점진적으로 이
루어지는 것이다 둘째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에 있어서 구속은 법률에 무조건 복종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판결에 대한 윤리 (내 ) 확신과 함께 법률에 복종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법관이 실정법률에 반하는 결정을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법
관은 객관성을 빌미로 법률 뒤에 숨는 익명적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
미하는 것이다 셋째 독립적인 법관의 양심은 lsquo법과 상충한다rsquo기보다는 lsquo법을 실
한다rsquo는 의미를 지닌다 넷째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서 반추하면서 lsquo하는
사람rsquo인 동시에 lsquo보는 사람rsquo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성찰 인 인물상으
로서만 설정될 수 있다
해석적 탐구는 우리의 이해를 넓히기 위해서 필요하지만 이해에서의 우리의 피
할 수 없는 한계를 깨닫기 위해서도 필요했는지 모른다 엥기쉬는 법해석방법론에
대한 저술의 마지막 부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ldquo방법론에 천착하다 보면
애초의 문제였던 법률로부터 훨씬 더 먼 곳으로 이끌려 간다rdquo 지금까지 필자는
법관의 법해석과 관련하여 방법론의 의의와 한계를 논하고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과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에 비추어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이 법해석론
의 불가결한 부분으로 들어가게 되는 이유도 밝혔다 그리고 해석적 차원에서의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는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행위를 목표로 하는
탐구라는 것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필자는 이 모든 논의들을 매개로 방법론이 우리를 더 멀리 덕
목론으로 데려가는 과정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드워킨의
상황에 대한 이 묘사 부분은 이경재 ldquo토마스 아퀴나스의 양심 개념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375면을 참조했다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7
헤라클레스를 잠시 불러올 필요가 있다 해석문제를 누구보다도 더 진지하게 다룬
드워킨은 마지막에 헤라클레스를 내세운다 주어진 사건에서 무엇이 법인지에
대해 도덕적 의식을 가지고 법실무 전체를 원리정합적으로 정당화하라는 요청에
부응하여 자신의 신념에 기초한 결정을 내리는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의 구성적
해석에서 법관의 양심이 기능하는 국면은 어디일까 송민경 판사는 드워킨의 구성
적 해석론에 입각하여 양심을 구체적 법논증과정의 일부로 포함시키면서 이때 양
심이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라는 지침으로 기능한다고 설명한다90)
그런데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는 지침으로 기능하는 것을 양심이라
고 보게 되면 양심의 문제는 논증적 합리성의 차원 즉 논증의 성공으로 종결짓게
된다 그러나 법적 결정의 정당성 문제는 법관의 입장에서는 논증의 성공 문제로
다루어지지만 법관의 성공적인 논증에 따른 판결의 결과로부터 영향을 받는 시민
의 입장에서 보면 성공적인 논증만으로는 해석이 정당화된다고 볼 수는 없다
성공적인 논증은 법적 결정의 정당화에 필수적이기는 하나 충분한 조건은 되지 못
한다 해석이 궁극적으로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사법적 도덕성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 사법적 도덕성은 헤라클레스가 지침으로 삼는 원리적 도덕성의 실현과는 다른
것이다 만약 패소한 시민이 다른 헤라클레스에게 갔더라면 즉 다른 법원리에 기
초한 신념을 토대로 다른 결정을 내린 다른 법관에게 갔다면 그는 승리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왜 헤라클레스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하
는지에 대한 답이 필요한 것이다91) 헤라클레스가 실무에 대한 최상의 정당화를
도모하는 법적 이상주의자라면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법원 문을 두드린 시민도
어느 의미에서 ldquo법이상주의자rdquo92)이다
법해석 작업의 주관의존성이라는 불가피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재판이라는 특수
한 공적 활동이 법관이라는 특수공직자에 의해 운영되고 유지된다는 것은 시민들
-소송에서 패한 시민들을 포함하여-편에서 보면 법을 해석하는 법관에 대한
신뢰가 전제된다는 것이다 법관의 독립적 활동은 법관의 특권 행사가 아니라 사
90) 송민경 앞의 글 38면 20면91) 사법적 덕목과 연관하여 이 부분을 다룬 글로는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5면 이하
92) 법원 문을 두드리는 시민에 대한 이 표현은 심헌섭 ldquo법조윤리의 좌표 거시적 관점에서 본 전문윤리로서의 법조윤리rdquo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편 法律家의 倫理와 責任 박영사
(2003)에 나온다
9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법과정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응당한 몫이 돌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존중하는 바탕에는 일종의 상호성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 그 또한
시민이기도 한 법관이 동료시민들에 대해 가지는 배려와 존중의 원칙이 그것이다
여기서 사법적 덕목에 대해 자세히 논할 수는 없다93) 예의 성실 신중 절제
용기 공정 겸손 의사소통 능력 형평 시민에 대한 배려와 존중 등등 이것들은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바탕을 이루는 양심의 덕목들일
것이다 양심이라는 단어가 그렇듯이 덕목이라는 단어도 오늘날 진부해진 표현
이며 거의 사라져가는 단어다 윤리적 태도로서의 덕목은 관찰하기도 배우기도
어렵다 그러나 올바른 판단과 결정이 법관이라는 개인을 거치지 않고 법령집
자체로부터 반사적으로 튀어나오지 않는 한 이 덕목들을 내면화하고 지향하려는
태도 없이는 lsquo종국적인rsquo 판단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써 필자는 헌법 제103조를 통해 법해석에서의 방법론의 문제가 덕목론이라
는 다음 과제로 이어진다는 점을 밝혔다고 생각한다
투고일 2016 4 6 심사완료일 2016 5 18 게재확정일 2016 5 20
93) 법관의 개별적인 덕목들과 이것들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는 박은정 강태경 김현섭 바람
직한 법관상의 정립과 실천 방안에 관한 연구 법원행정처(2015) 제5장 참조할 것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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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수 ldquo바람직한 법관상-기예와 지혜 사이rdquo lt근대사법 및 한성재판소 설립
닐 맥코믹 로버트 서머즈 ldquo해석과 정당화(上)rdquo 박정훈 역 법철학연구 제5권 제2호
(2002) ldquo해석과 정당화(下)rdquo 박정훈 역 법철학연구 제6권 제1호(2003)
100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로널드 드워킨 정의론 박경신 옮김 민음사(2015)
론 풀러 법의 도덕성 박은정 옮김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2015)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 1 백종현 옮김 아카넷(2009)
윤리형이상학 정 백종현 역 아카넷(2005)
칼 엥기쉬 법학방법론 안법영윤재왕 옮김 세창출판사(2011)
Apel Karl Otto From a Transcendental Semiotic Point of View Manche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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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ltAbstractgt
Independence and Conscience of the Judges Based on
Interpretive Method for Article 103 of the Korean Constitution
Pak Un Jong
94)
In this paper I aim to discuss the problem of independence and conscience
of the judges as outlined in Article 103 of the Korean Constitution in the
context of the interpretive methodology
First of all this paper will look at the background in which the independence
of the judges has been institutionalized and also the problems regarding usual
explanation for conscience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And I will try to
reveal the characteristics and difficulties of the interpretive actions of the judges
especially in connection to the issue of value judgment This would require
pointing out the problems and limitations of the interpretive methodology and at
the same time defining the nature of tension embedded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namely the tension between the obligations of the judges to abide
the law versus the subjective internal demeanor of the judges This tension-
ridden condition reenacted by the demand to follow lsquogeneral justicersquo versus
lsquoindividual justicersquo appears inevitably in the process of judicial interpretation I
will examine the theories that capture this kind of tension that accompany the
interpretation process and aim to feel out the possibilities of resolving this
tension At the end I come to the conclusion that these theories can explain but
cannot resolve this tension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If so the problem
which arises from the limitations of the interpretative methodologies from the
perspective that a judgersquos final decision greatly impacts citizens becomes a
problem of judicial ethics In order to ultimately justify the interpretation of the
judges the demands of judicial ethics must be satisfied Keeping this demand in
Professor College of Law School of Law Seoul National University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103
mind I point out that the significance of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is in
its role of bridging legal methodology to virtue ethics
Keywords independence of the judges conscience of the judges interpretive
method of law value judgment judicial virtue
90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텍스트를 이해하려는 사람은 말하자면 언제나 초벌 그림을 그리며 특정 의미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텍스트를 읽기 때문에 ldquo텍스트에서 첫 번째 의미가 지시되자
마자 전체의 의미를 lsquo예비투사한다(vorauswirft)rsquordquo67) 그리고 선이해와 관련된 이 예
비투사는-해석학적 lsquo순환rsquo에 의해-원칙적으로 끝없이 검열과정을 거친다는 것
이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도 실제 판단과정에서는 분리
되지 않는다68) 사실의 인정과 법률의 적용은 시간적으로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단절 관계가 아니라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정제하고 상응하는
관계에 놓인다 즉 사실에 대한 인식 없이 규범적 인식은 불가능하며 또한 규범적
관점 없이 사실만을 통한 사실 확정도 불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법률도 법관의
해석을 만나기 전에는 ldquo잠재적인 가능태로서 주어진 법률rdquo일 뿐 해석학적 순환을
통한 정제 혹은 상응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ldquo진정한 실정법rdquo이 생성된다69) 이렇
게 특정사건을 통해 구체화된 규범(구성요건)과 이 규범을 통해 정해진 사실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법관에게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들과 함께 제3의 요소로서 법관
자신의 선이해 내지 이해 포괄적으로 말하면 그의 인격적 존재가 판단에 혼입
된다
lsquo선이해rsquo는 판단자가 자신의 선이해를 의식하지 못할 때 부정적 요소를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ldquo자신의 판단은 오로지 lsquo있는 그대로다rsquo라고 말하는 즉 lsquo오로지 법
률에만 구속된다rsquo라고 말하는 법관이야말로 실은 종속된 법관이다 왜냐하면 그는
성찰되지 않은 자신의 선이해와 거리를 둘 수 없기 때문이다rdquo70) 즉 법관은 자신
67)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68) 실제 판단과정에서 사실인정과 법률적용이 따로 떨어질 수 없다는 점은 굳이 카우프
만의 이론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실무상으로는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ldquo법률
의 적용과 사실의 인정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법률문제와 결부되어 인정된다 사실의 인정이 진행됨에 따라서 재판관의 머리
속에서는 어떠한 법규를 적용할 것인가 그 법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는 전망이
점차로 서게 되며 당사자 측도 경우에 따라서는 민사인 경우 청구의 취지를 변경할
것인가를 고려하게 되고 형사인 경우 공소사실을 변경하는 경우도 생긴다 요컨대 사실
문제와 법률문제는 실제과정에서 불가분으로 결부되어 있다 helliphellip 양쪽이 불가분으로
재판관의 직관 혹은 재판관의 전인격적인 작용에 의하여 사실의 인정과 법의 적용이
행하여지고 판결 삼단논법은 실제의 심판 과정에서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rdquo(사법
연수원 법조윤리론 35면) 69) ldquo법관의 해석 작업 이전에는 어느 의미에서 진정 법도 진정한 사실도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원자재들(Rohmaterialien)로만 이것들이 존재할 뿐이다rdquo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1
의 선이해를 의식하고 자신을 이데올로기 혐의 앞에 세울 줄 알 때 올바른 판결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ldquo법관이 자신의 선이해와 종속을 의식할수록 그래서 간주
관적 합의에 노력할수록 그는 더 객관적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rdquo71) 그러므로
법관의 주관주의의 위험은 카우프만식으로 말하면 가치판단 같은 성찰적 고려와
관련된 주관적 요소를 방법상의 근거 제시의 맥락에 끌어들이는 법관의 경우보다는
오히려 모든 것이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판결의 주관적
요소를 은폐하는 법관에게서 나타나는 위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학적 순환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법관은 ldquo법률의 입rdquo이 아니라 ldquo인격
으로서 판결을 떠받친다rdquo72) 판결은 법률과 법관의 인격의 혼성물이다 그러므로
법률은 판결을 위한 필요조건이기는 하나 충분조건은 아니라고도 말할 수 있다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순환이론은 법관의 독립과 양심의 문제 차원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법결정의 올바름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
는 정도에 달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자신을 올바르
게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자신의 판단력 경험 능력 인간에 대한 태도 감
수성 명예욕 등등
카우프만의 법해석학적 순환이론이 법관의 독립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이라
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독립은 법관 스스로 관철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론적으로 카우프만의 법해석이론의 의의는 법관이 자신의 선입견을
의식하는 것이야말로 법관의 독립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설득력있게 지적
해주며 그런 방향에서 법관의 법해석 작업을 재평가했다는 데 있다고 말할 수 있
겠다
70)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71) Arthur Kaufmann ldquoDer BGH und die Sitzblockaderdquo NJW (1988) 2581면 이하72) 이 표현은 Karl Peters의 Strafprozess - Ein Lehrbuch (1966) 99면에 나오며 여기서는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9면에서 재
인용했다 이덕연 교수도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에 입각하여 ldquo법관의 법해석작
업은 단순한 lsquo인식작업rsquo이나 lsquo언어분석작업rsquo이 아니라 ldquo구체적인 반성과 자기극복의
노력 속에서 온 인격을 걸고 진행하는 lsquo이해와 실천의 수행작업rsquordquo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앞의 글 352면)
9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Ⅸ 법관은 lsquo하는 사람rsquo인가 lsquo보는 사람rsquo인가
법관의 판단작업을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의 관점에서 주목했던 또 다른
철학자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다 그녀는 ldquo아이히만 재판rdquo을 계기로 판단의
특수한 경우로서의 판단력 문제를 연구했다73) 아렌트는 하드케이스와 연관시켜
법관의 판단력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74) 법관은 우선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을 반추하면서 판단에 임하는데 이때 판단자로서 그는 한 면으
로는 규칙에 따라 판단하라는 lsquo일반적 정의rsquo의 요구에 그리고 동시에 다른 한 면
으로는 정황에 맞게 판단하라는 lsquo개별적 정의rsquo의 요구에 처한다 이러한 상황은
아렌트에 따르면 하드케이스에서 특히 발생한다 이 이중적이고 모순적 요구 상황
을 아렌트는 법관의 판단에 적용되는 특수한 해석학 및 그 조건을 설명하는 출발
점으로 삼는다75) 하드케이스가 아닌 통상적인 사건에서는 이른바 포섭 여부를 판
단하는 것으로도 족하다 일반규칙에의 포섭 여부가 중심이 되는 이 단계에서의
판단력- lsquo규정하는 판단력(bestimmende Urteilskraft)rsquo-은 사실관계에서의 원인
이나 형식적 정의를 따지므로 일방적이고 간주관적 전제 없이도 가능하다 그래서
흔히 법관은 여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법을 해석해야 한다고 말할 때 이는
법적용을 이러한 지배적인 포섭모델에 입각하여 이해한 결과라 할 것이다 그런데
규칙으로부터 오는 어떤 어려움들 때문에 규정하는 판단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즉 포섭이 어렵거나 법흠결 시 또는 가치형량이 요구되는 하드케
이스에서는 법관은 어쩔 수 없이 앞에서 말한 모순문제를 다루어야만 한다 이때
아렌트는 법관이 사유의 확장을 통해 방법상으로 lsquo규정적 판단력rsquo을 스스로 교정
할 수 있는 lsquo성찰적 판단력rsquo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고 이 판단유형의 전환과정을
73) 법적 판단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 삼은 저술은 Hannah Arendt Eichmann in Jerusalem Ein Bericht von der Banalitaumlt des Boumlsen Erw Aufl (Muumlnchen 2001) 그리고 Hannah Arendt Das Urteilen Texte zu Kants Politischer Philosophie Hrsg v R Beiner Uumlbers v U Ludz (Muumlnchen 1998)
74) 아렌트가 염두에 둔 하드케이스는 라드브루흐가 이른바 ldquo법률적 불법rdquo 상태로 규정한
나치의 불법국가 상황으로서 이렇게 극히 예외적인 케이스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하드
케이스에 적용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별적 정의 요구에 부응함
으로써 예컨대 소급효를 금지하는 일반법률에 위배되는 상황과 유사한 갈등상황은 반
드시 극단적 상황에서만 생긴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75)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2 Bde Hrsg v U Ludz amp I Nordmann
따라서 그 척도는 전달가능성이며 거기에 딱 맞는 것은 공통감각(상식)이다rdquo77) 오
늘날 공통감각은 아렌트도 지적했듯이 더 이상 그것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얻고자 노력해야 하는 그 무엇이 되어버린 듯하다 그러나 공통감
각이 무너진 시대를 겪었던 아렌트는 사유의 전환 내지 확대를 위한 진정한 발판
을 다시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에서 구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78)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실천철학의 전통에서는 세계와의 관계 그리고 자기와의 관
계를 공통감각을 척도로 설정해가는 판단자가 lsquo하는 사람rsquo인지 아니면 lsquo보는 사람rsquo
인지 즉 lsquo행위자rsquo인지 아니면 lsquo관찰자rsquo인지를 둘러싸고 의견이 대립되어 왔다 lsquo하
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자가 lsquo정치가rsquo 쪽에 더 가깝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
자는 lsquo철학자rsquo 쪽에 더 가깝다 lsquo하는 사람rsquo은 주로 사회의 일반적 상식 건전한 인
간이해 세론(doxa)을 판단의 척도로 삼는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적 경험은 전체주
의 하에서는 건전한 인간이해도 집단화된 대중감정에 따른 오도된 인간이해 앞에
무너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판단에서 사실로서의 상식이나 합의 또는
법해석공동체 내부의 지배적 제도적 관점이라는 판단 척도만으로는 일반규칙으로
부터 오는 모순을 다루기 어렵다 여기서 판단자는 ldquo확대된 사유방식rdquo을 추구해야
하는데 아렌트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을 lsquo보는 사람rsquo의 판단과 결합시킴으로써 법
관을 위한 사유의 확대를 시도한다79) lsquo하는 사람rsquo이 사실로서의 일반적 상식이나
인간이해 차원에 비추어 판단한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ldquo이
상적 규범적 상식rdquo80)을 추구하고자 한다 판단을 거쳐 법적 효과를 결정하는 법관
76)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을 해석학적 순환이론을 적용하여 분석하면서 칸트의 판단력 비
판에 의거하여 아렌트가 판단력의 특수한 경우로서 법관의 ldquo성찰적 판단력rdquo이라는 새
로운 판단유형을 제시했다고 지적한 연구서로는 Stefanie Rosenmuumlller Der Ort des Rechts Gemeinsinn und richterliches Urteilen nach Hannah Arendt Nomos (2013) 참조
77) Hannah Arendt Das Urteilen 92-93면78) 아렌트가 판단의 차원을 심화시키는 발판으로 삼는 상식은 sensus communis로서
communis opinio와는 다르다는 데 대해서는 Marieke Borren ldquolsquoA Sense of the Worldrsquo Hannah Arendtrsquos Hermeneutic Phenomenology of Common Senserdquo International Journal of Philosophical Studies Vol 21 No 2 (2013) 225-255
79) Hannah Arendt Das Urteilen 76면80) Rosenmuumlller 앞의 책 234면 이하 여기서 아렌트는 상식개념을 이중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에서는 경험적 개념으로 보다 성찰적 판단
단계에서는 규범적 개념으로 사용한다
9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은 관찰자로서 판단하면서 동시에 행위자로서 판단에서 법적 결과를 결정하는
사람이다 관찰자인 동시에 행위자라는 이중적인 역할을 하면서 법관은 자신의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 반추한다81) 이 반추과정에서 법관은 한편으로는 포섭
하는 판단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고려해야 할 관점들을 끌어들이면서
자신의 직책을 마지막까지 수행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통제하면서 자신의 앞서의
(포섭) 판단을 정정해나간다 그래서 법관 자신이 lsquo보는 사람rsquo과 lsquo하는 사람rsquo의 만
남의 장소가 되는 것과도 같다 ldquo이 보는 사람은 모든 하는 사람 안에 자리 잡고
있다helliphellip이 비판적 판단능력이 없이는 행위자 혹은 해결자는 보는 사람으로부터
풀려나 종내는 지각되지조차 못하게 될 것이다rdquo82)
사람들은 자신 일에 있어서는 비당파적일 수는 없다 따라서 ldquo자신의 일에 대한
판단에서는 내면의 심판자 혹은 내면의 법정을 가질 수 없다rdquo83) 그러나 다른 사
람의 일을 반추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필히 비당파적이어야 하며 또 비당파적이 될
수 있다 이때 그는 비로소 내면의 심판자를 가지게 된다 즉 양심의 문제에 처하
게 되는 것이다 판단에 있어서 양심이라는 것 즉 양심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남
의 일에서 ldquo증인rdquo 혹은 ldquo비판적 친구rdquo로서 관찰하고 행위하는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이다84)
아렌트의 성찰적 판단모델은 나치 불법국가 경험의 산물이다 통상의 규칙이 파
괴된 상황 통상의 범죄유형에 포섭되지 않는 극히 예외적인 범죄적 상황에서 법
원은 기존의 판단척도를 해석학적 출발로 삼아서는 안 되고 이때에는 질적으로
동의가능한 합의형식을 찾기 위해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으로 돌아가
진정으로 사유 즉 철학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렌트가 판단을 일반화해주는
거점이자 해석학적 출발점으로 삼은 공통감각(상식) 개념은 칸트철학에서 ldquo비사교
적 사교성rdquo 개념의 위상과 비슷하다85) 이 지상에서 인간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다른 것을 원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모여 살아야만 하는 존재다 이 비사회성 요
청과 사회성 요청의 동시성 때문에 인간에게는 제도적인 안착이 더없이 중요하며
법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실존과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만든다 판단의 기
81) Leora Y Bilsky When Actor and Spectator Meet in the Courtroom Hannah Arendt and Eichmann in Jerusalem G N Arad Hg (Bloomington 1996) 137면
82) Hannah Arendt 앞의 책 85면83) Hannah Arendt 앞의 책 76면 84)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657면85) Rosenmuumlller 앞의 책 1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5
초를 보편적 인간경험에 둔다는 점에서 아렌트가 말하는 판단력은 드워킨의 헤라
클레스와 같은 초인적 천재성을 발휘하는 능력과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86) 아
렌트가 상정하는 이상적인 법관은 철학적이지만 철학자는 아니고 정치적이지만 정
치가는 아닌 사람이다
아렌트는 헌법국가의 권위도 상식개념에 기반을 두고 설명한다 그리고 민주적
정당성의 관점에서 입법의 우위를 인정하는 까닭에 성찰적 판단에 입각한 법관의
검증에는 한계가 있다는 태도를 견지한다87)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렌트가 제시한
법관의 성찰적 판단 유형에 대해서는 다양한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우선 이것이
예외 상황에서 적용되는 판단모델로 상정된 것이며 무엇보다도 ldquo규범적 상식rdquo에
대한 단일한 이해기반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법관 개인의 주관적 정치적 신념
이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길을 피할 수 없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성찰적
판단력은 결국 레토릭에 불과한 것인가 아렌트는 그러나 무엇이 ldquo특정 상황에 맞
는 공통감각(situierte Gemeinsinn)rdquo인지에 대한 공동의 인식은 가능하며 또 법관의
lsquo하는rsquo 판단에 들어있는 정치적 함의를 성찰적 판단력으로 검증하는 것도 가능하
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아렌트가 마지막 검증심급으로 원용하는 것이 바로 판
단에서의 양심의 심급이다 그것이 과연 동의할 수 있는 합의형태로서 충분한지를
스스로 검증하는 이 심급에서 판단자는 명령조로 자기에게 전해지는 소리를 듣게
된다 ldquo멈춰 나는 그것은 할 수 없어rdquo88) 판단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 멈추는 것
이 가능한 이 성찰적 심급에서는 칸트와 달리 할 수 없는 이유로써 결과도 고려
된다 lsquo보는 사람rsquo이 자기 안에서 지켜보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상황은 토마스 아퀴
나스의 양심론에 비추어 다음과 같이 묘사될 수도 있겠다 지적 본성을 가진 인간
존재가 보편법칙에 관한 지식을 개별 행위에 적용하기 위해 판단하고 선택할 때
행위자는 갈등 상황- ldquo그렇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rdquo는
상황-에 처하여 멈칫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데 이때 그는 단지 갈등하고
선택하는 역할만 하지 않고 갈등하고 선택하는 이 과정을 ldquo관찰하고 목격하는 증인rdquo
의 역할도 한다는 것89)
86) 드워킨에 의하면 해석적 탐구는 ldquo어떠한 증명도 허용치 않고 어떠한 수렴도 약속치
않는 탐구rdquo이다(드워킨 정의론 203면)87) Rosenmuumlller 앞의 책 30면88) Hannah Arendt Uumlber das Boumlse Eine Vorlesung zu Fragen der Ethik Hrsg v J Kohn
(Muumlnchen 2003) 52면89) 지적 행위자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자신의 내면의 갈등과 선택과정을 바라보는
9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Ⅹ 방법에서 덕목으로
헌법 제103조는 한 면으로는 헌법과 법률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 면으로 해석자에게 여하한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lsquo제약
의 차원rsquo과 lsquo자유의 차원rsquo을 동시에 담고 있다 법관은 자유로울 때에라도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며 법에 구속될 때에라도 전적으로 구속되지는 않는다는 뜻이
기도 하다 이 lsquo자유와 구속의 변증법rsquo에 비추어 지금까지 논한 주제에 대해 몇 가
지 입장을 정리해 보자 첫째 법관에게 있어서 독립은 확정된 원칙이나 그것자체
로서 달성해야 할 최종목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법관의 독립은 완성형이 아니라
끊임없는 진행형의 과제로서 그 직무수행에 대한 신뢰와 병행하여 점진적으로 이
루어지는 것이다 둘째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에 있어서 구속은 법률에 무조건 복종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판결에 대한 윤리 (내 ) 확신과 함께 법률에 복종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법관이 실정법률에 반하는 결정을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법
관은 객관성을 빌미로 법률 뒤에 숨는 익명적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
미하는 것이다 셋째 독립적인 법관의 양심은 lsquo법과 상충한다rsquo기보다는 lsquo법을 실
한다rsquo는 의미를 지닌다 넷째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서 반추하면서 lsquo하는
사람rsquo인 동시에 lsquo보는 사람rsquo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성찰 인 인물상으
로서만 설정될 수 있다
해석적 탐구는 우리의 이해를 넓히기 위해서 필요하지만 이해에서의 우리의 피
할 수 없는 한계를 깨닫기 위해서도 필요했는지 모른다 엥기쉬는 법해석방법론에
대한 저술의 마지막 부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ldquo방법론에 천착하다 보면
애초의 문제였던 법률로부터 훨씬 더 먼 곳으로 이끌려 간다rdquo 지금까지 필자는
법관의 법해석과 관련하여 방법론의 의의와 한계를 논하고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과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에 비추어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이 법해석론
의 불가결한 부분으로 들어가게 되는 이유도 밝혔다 그리고 해석적 차원에서의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는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행위를 목표로 하는
탐구라는 것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필자는 이 모든 논의들을 매개로 방법론이 우리를 더 멀리 덕
목론으로 데려가는 과정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드워킨의
상황에 대한 이 묘사 부분은 이경재 ldquo토마스 아퀴나스의 양심 개념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375면을 참조했다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7
헤라클레스를 잠시 불러올 필요가 있다 해석문제를 누구보다도 더 진지하게 다룬
드워킨은 마지막에 헤라클레스를 내세운다 주어진 사건에서 무엇이 법인지에
대해 도덕적 의식을 가지고 법실무 전체를 원리정합적으로 정당화하라는 요청에
부응하여 자신의 신념에 기초한 결정을 내리는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의 구성적
해석에서 법관의 양심이 기능하는 국면은 어디일까 송민경 판사는 드워킨의 구성
적 해석론에 입각하여 양심을 구체적 법논증과정의 일부로 포함시키면서 이때 양
심이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라는 지침으로 기능한다고 설명한다90)
그런데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는 지침으로 기능하는 것을 양심이라
고 보게 되면 양심의 문제는 논증적 합리성의 차원 즉 논증의 성공으로 종결짓게
된다 그러나 법적 결정의 정당성 문제는 법관의 입장에서는 논증의 성공 문제로
다루어지지만 법관의 성공적인 논증에 따른 판결의 결과로부터 영향을 받는 시민
의 입장에서 보면 성공적인 논증만으로는 해석이 정당화된다고 볼 수는 없다
성공적인 논증은 법적 결정의 정당화에 필수적이기는 하나 충분한 조건은 되지 못
한다 해석이 궁극적으로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사법적 도덕성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 사법적 도덕성은 헤라클레스가 지침으로 삼는 원리적 도덕성의 실현과는 다른
것이다 만약 패소한 시민이 다른 헤라클레스에게 갔더라면 즉 다른 법원리에 기
초한 신념을 토대로 다른 결정을 내린 다른 법관에게 갔다면 그는 승리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왜 헤라클레스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하
는지에 대한 답이 필요한 것이다91) 헤라클레스가 실무에 대한 최상의 정당화를
도모하는 법적 이상주의자라면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법원 문을 두드린 시민도
어느 의미에서 ldquo법이상주의자rdquo92)이다
법해석 작업의 주관의존성이라는 불가피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재판이라는 특수
한 공적 활동이 법관이라는 특수공직자에 의해 운영되고 유지된다는 것은 시민들
-소송에서 패한 시민들을 포함하여-편에서 보면 법을 해석하는 법관에 대한
신뢰가 전제된다는 것이다 법관의 독립적 활동은 법관의 특권 행사가 아니라 사
90) 송민경 앞의 글 38면 20면91) 사법적 덕목과 연관하여 이 부분을 다룬 글로는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5면 이하
92) 법원 문을 두드리는 시민에 대한 이 표현은 심헌섭 ldquo법조윤리의 좌표 거시적 관점에서 본 전문윤리로서의 법조윤리rdquo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편 法律家의 倫理와 責任 박영사
(2003)에 나온다
9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법과정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응당한 몫이 돌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존중하는 바탕에는 일종의 상호성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 그 또한
시민이기도 한 법관이 동료시민들에 대해 가지는 배려와 존중의 원칙이 그것이다
여기서 사법적 덕목에 대해 자세히 논할 수는 없다93) 예의 성실 신중 절제
용기 공정 겸손 의사소통 능력 형평 시민에 대한 배려와 존중 등등 이것들은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바탕을 이루는 양심의 덕목들일
것이다 양심이라는 단어가 그렇듯이 덕목이라는 단어도 오늘날 진부해진 표현
이며 거의 사라져가는 단어다 윤리적 태도로서의 덕목은 관찰하기도 배우기도
어렵다 그러나 올바른 판단과 결정이 법관이라는 개인을 거치지 않고 법령집
자체로부터 반사적으로 튀어나오지 않는 한 이 덕목들을 내면화하고 지향하려는
태도 없이는 lsquo종국적인rsquo 판단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써 필자는 헌법 제103조를 통해 법해석에서의 방법론의 문제가 덕목론이라
는 다음 과제로 이어진다는 점을 밝혔다고 생각한다
투고일 2016 4 6 심사완료일 2016 5 18 게재확정일 2016 5 20
93) 법관의 개별적인 덕목들과 이것들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는 박은정 강태경 김현섭 바람
직한 법관상의 정립과 실천 방안에 관한 연구 법원행정처(2015) 제5장 참조할 것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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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ltAbstractgt
Independence and Conscience of the Judges Based on
Interpretive Method for Article 103 of the Korean Constitution
Pak Un Jong
94)
In this paper I aim to discuss the problem of independence and conscience
of the judges as outlined in Article 103 of the Korean Constitution in the
context of the interpretive methodology
First of all this paper will look at the background in which the independence
of the judges has been institutionalized and also the problems regarding usual
explanation for conscience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And I will try to
reveal the characteristics and difficulties of the interpretive actions of the judges
especially in connection to the issue of value judgment This would require
pointing out the problems and limitations of the interpretive methodology and at
the same time defining the nature of tension embedded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namely the tension between the obligations of the judges to abide
the law versus the subjective internal demeanor of the judges This tension-
ridden condition reenacted by the demand to follow lsquogeneral justicersquo versus
lsquoindividual justicersquo appears inevitably in the process of judicial interpretation I
will examine the theories that capture this kind of tension that accompany the
interpretation process and aim to feel out the possibilities of resolving this
tension At the end I come to the conclusion that these theories can explain but
cannot resolve this tension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If so the problem
which arises from the limitations of the interpretative methodologies from the
perspective that a judgersquos final decision greatly impacts citizens becomes a
problem of judicial ethics In order to ultimately justify the interpretation of the
judges the demands of judicial ethics must be satisfied Keeping this demand in
Professor College of Law School of Law Seoul National University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103
mind I point out that the significance of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is in
its role of bridging legal methodology to virtue ethics
Keywords independence of the judges conscience of the judges interpretive
method of law value judgment judicial virtue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1
의 선이해를 의식하고 자신을 이데올로기 혐의 앞에 세울 줄 알 때 올바른 판결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ldquo법관이 자신의 선이해와 종속을 의식할수록 그래서 간주
관적 합의에 노력할수록 그는 더 객관적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rdquo71) 그러므로
법관의 주관주의의 위험은 카우프만식으로 말하면 가치판단 같은 성찰적 고려와
관련된 주관적 요소를 방법상의 근거 제시의 맥락에 끌어들이는 법관의 경우보다는
오히려 모든 것이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판결의 주관적
요소를 은폐하는 법관에게서 나타나는 위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학적 순환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법관은 ldquo법률의 입rdquo이 아니라 ldquo인격
으로서 판결을 떠받친다rdquo72) 판결은 법률과 법관의 인격의 혼성물이다 그러므로
법률은 판결을 위한 필요조건이기는 하나 충분조건은 아니라고도 말할 수 있다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순환이론은 법관의 독립과 양심의 문제 차원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법결정의 올바름은 결국 법관이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
는 정도에 달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자신을 올바르
게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자신의 판단력 경험 능력 인간에 대한 태도 감
수성 명예욕 등등
카우프만의 법해석학적 순환이론이 법관의 독립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이라
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독립은 법관 스스로 관철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론적으로 카우프만의 법해석이론의 의의는 법관이 자신의 선입견을
의식하는 것이야말로 법관의 독립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설득력있게 지적
해주며 그런 방향에서 법관의 법해석 작업을 재평가했다는 데 있다고 말할 수 있
겠다
70) Arthur Kaufmann 앞의 글 148면71) Arthur Kaufmann ldquoDer BGH und die Sitzblockaderdquo NJW (1988) 2581면 이하72) 이 표현은 Karl Peters의 Strafprozess - Ein Lehrbuch (1966) 99면에 나오며 여기서는
Arthur Kaufmann ldquoRichterpersoumlnlichkeit und richterliche Unabhaumlngigkeitrdquo 149면에서 재
인용했다 이덕연 교수도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에 입각하여 ldquo법관의 법해석작
업은 단순한 lsquo인식작업rsquo이나 lsquo언어분석작업rsquo이 아니라 ldquo구체적인 반성과 자기극복의
노력 속에서 온 인격을 걸고 진행하는 lsquo이해와 실천의 수행작업rsquordquo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앞의 글 352면)
9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Ⅸ 법관은 lsquo하는 사람rsquo인가 lsquo보는 사람rsquo인가
법관의 판단작업을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의 관점에서 주목했던 또 다른
철학자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다 그녀는 ldquo아이히만 재판rdquo을 계기로 판단의
특수한 경우로서의 판단력 문제를 연구했다73) 아렌트는 하드케이스와 연관시켜
법관의 판단력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74) 법관은 우선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을 반추하면서 판단에 임하는데 이때 판단자로서 그는 한 면으
로는 규칙에 따라 판단하라는 lsquo일반적 정의rsquo의 요구에 그리고 동시에 다른 한 면
으로는 정황에 맞게 판단하라는 lsquo개별적 정의rsquo의 요구에 처한다 이러한 상황은
아렌트에 따르면 하드케이스에서 특히 발생한다 이 이중적이고 모순적 요구 상황
을 아렌트는 법관의 판단에 적용되는 특수한 해석학 및 그 조건을 설명하는 출발
점으로 삼는다75) 하드케이스가 아닌 통상적인 사건에서는 이른바 포섭 여부를 판
단하는 것으로도 족하다 일반규칙에의 포섭 여부가 중심이 되는 이 단계에서의
판단력- lsquo규정하는 판단력(bestimmende Urteilskraft)rsquo-은 사실관계에서의 원인
이나 형식적 정의를 따지므로 일방적이고 간주관적 전제 없이도 가능하다 그래서
흔히 법관은 여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법을 해석해야 한다고 말할 때 이는
법적용을 이러한 지배적인 포섭모델에 입각하여 이해한 결과라 할 것이다 그런데
규칙으로부터 오는 어떤 어려움들 때문에 규정하는 판단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즉 포섭이 어렵거나 법흠결 시 또는 가치형량이 요구되는 하드케
이스에서는 법관은 어쩔 수 없이 앞에서 말한 모순문제를 다루어야만 한다 이때
아렌트는 법관이 사유의 확장을 통해 방법상으로 lsquo규정적 판단력rsquo을 스스로 교정
할 수 있는 lsquo성찰적 판단력rsquo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고 이 판단유형의 전환과정을
73) 법적 판단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 삼은 저술은 Hannah Arendt Eichmann in Jerusalem Ein Bericht von der Banalitaumlt des Boumlsen Erw Aufl (Muumlnchen 2001) 그리고 Hannah Arendt Das Urteilen Texte zu Kants Politischer Philosophie Hrsg v R Beiner Uumlbers v U Ludz (Muumlnchen 1998)
74) 아렌트가 염두에 둔 하드케이스는 라드브루흐가 이른바 ldquo법률적 불법rdquo 상태로 규정한
나치의 불법국가 상황으로서 이렇게 극히 예외적인 케이스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하드
케이스에 적용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별적 정의 요구에 부응함
으로써 예컨대 소급효를 금지하는 일반법률에 위배되는 상황과 유사한 갈등상황은 반
드시 극단적 상황에서만 생긴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75)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2 Bde Hrsg v U Ludz amp I Nordmann
따라서 그 척도는 전달가능성이며 거기에 딱 맞는 것은 공통감각(상식)이다rdquo77) 오
늘날 공통감각은 아렌트도 지적했듯이 더 이상 그것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얻고자 노력해야 하는 그 무엇이 되어버린 듯하다 그러나 공통감
각이 무너진 시대를 겪었던 아렌트는 사유의 전환 내지 확대를 위한 진정한 발판
을 다시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에서 구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78)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실천철학의 전통에서는 세계와의 관계 그리고 자기와의 관
계를 공통감각을 척도로 설정해가는 판단자가 lsquo하는 사람rsquo인지 아니면 lsquo보는 사람rsquo
인지 즉 lsquo행위자rsquo인지 아니면 lsquo관찰자rsquo인지를 둘러싸고 의견이 대립되어 왔다 lsquo하
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자가 lsquo정치가rsquo 쪽에 더 가깝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
자는 lsquo철학자rsquo 쪽에 더 가깝다 lsquo하는 사람rsquo은 주로 사회의 일반적 상식 건전한 인
간이해 세론(doxa)을 판단의 척도로 삼는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적 경험은 전체주
의 하에서는 건전한 인간이해도 집단화된 대중감정에 따른 오도된 인간이해 앞에
무너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판단에서 사실로서의 상식이나 합의 또는
법해석공동체 내부의 지배적 제도적 관점이라는 판단 척도만으로는 일반규칙으로
부터 오는 모순을 다루기 어렵다 여기서 판단자는 ldquo확대된 사유방식rdquo을 추구해야
하는데 아렌트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을 lsquo보는 사람rsquo의 판단과 결합시킴으로써 법
관을 위한 사유의 확대를 시도한다79) lsquo하는 사람rsquo이 사실로서의 일반적 상식이나
인간이해 차원에 비추어 판단한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ldquo이
상적 규범적 상식rdquo80)을 추구하고자 한다 판단을 거쳐 법적 효과를 결정하는 법관
76)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을 해석학적 순환이론을 적용하여 분석하면서 칸트의 판단력 비
판에 의거하여 아렌트가 판단력의 특수한 경우로서 법관의 ldquo성찰적 판단력rdquo이라는 새
로운 판단유형을 제시했다고 지적한 연구서로는 Stefanie Rosenmuumlller Der Ort des Rechts Gemeinsinn und richterliches Urteilen nach Hannah Arendt Nomos (2013) 참조
77) Hannah Arendt Das Urteilen 92-93면78) 아렌트가 판단의 차원을 심화시키는 발판으로 삼는 상식은 sensus communis로서
communis opinio와는 다르다는 데 대해서는 Marieke Borren ldquolsquoA Sense of the Worldrsquo Hannah Arendtrsquos Hermeneutic Phenomenology of Common Senserdquo International Journal of Philosophical Studies Vol 21 No 2 (2013) 225-255
79) Hannah Arendt Das Urteilen 76면80) Rosenmuumlller 앞의 책 234면 이하 여기서 아렌트는 상식개념을 이중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에서는 경험적 개념으로 보다 성찰적 판단
단계에서는 규범적 개념으로 사용한다
9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은 관찰자로서 판단하면서 동시에 행위자로서 판단에서 법적 결과를 결정하는
사람이다 관찰자인 동시에 행위자라는 이중적인 역할을 하면서 법관은 자신의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 반추한다81) 이 반추과정에서 법관은 한편으로는 포섭
하는 판단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고려해야 할 관점들을 끌어들이면서
자신의 직책을 마지막까지 수행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통제하면서 자신의 앞서의
(포섭) 판단을 정정해나간다 그래서 법관 자신이 lsquo보는 사람rsquo과 lsquo하는 사람rsquo의 만
남의 장소가 되는 것과도 같다 ldquo이 보는 사람은 모든 하는 사람 안에 자리 잡고
있다helliphellip이 비판적 판단능력이 없이는 행위자 혹은 해결자는 보는 사람으로부터
풀려나 종내는 지각되지조차 못하게 될 것이다rdquo82)
사람들은 자신 일에 있어서는 비당파적일 수는 없다 따라서 ldquo자신의 일에 대한
판단에서는 내면의 심판자 혹은 내면의 법정을 가질 수 없다rdquo83) 그러나 다른 사
람의 일을 반추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필히 비당파적이어야 하며 또 비당파적이 될
수 있다 이때 그는 비로소 내면의 심판자를 가지게 된다 즉 양심의 문제에 처하
게 되는 것이다 판단에 있어서 양심이라는 것 즉 양심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남
의 일에서 ldquo증인rdquo 혹은 ldquo비판적 친구rdquo로서 관찰하고 행위하는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이다84)
아렌트의 성찰적 판단모델은 나치 불법국가 경험의 산물이다 통상의 규칙이 파
괴된 상황 통상의 범죄유형에 포섭되지 않는 극히 예외적인 범죄적 상황에서 법
원은 기존의 판단척도를 해석학적 출발로 삼아서는 안 되고 이때에는 질적으로
동의가능한 합의형식을 찾기 위해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으로 돌아가
진정으로 사유 즉 철학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렌트가 판단을 일반화해주는
거점이자 해석학적 출발점으로 삼은 공통감각(상식) 개념은 칸트철학에서 ldquo비사교
적 사교성rdquo 개념의 위상과 비슷하다85) 이 지상에서 인간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다른 것을 원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모여 살아야만 하는 존재다 이 비사회성 요
청과 사회성 요청의 동시성 때문에 인간에게는 제도적인 안착이 더없이 중요하며
법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실존과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만든다 판단의 기
81) Leora Y Bilsky When Actor and Spectator Meet in the Courtroom Hannah Arendt and Eichmann in Jerusalem G N Arad Hg (Bloomington 1996) 137면
82) Hannah Arendt 앞의 책 85면83) Hannah Arendt 앞의 책 76면 84)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657면85) Rosenmuumlller 앞의 책 1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5
초를 보편적 인간경험에 둔다는 점에서 아렌트가 말하는 판단력은 드워킨의 헤라
클레스와 같은 초인적 천재성을 발휘하는 능력과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86) 아
렌트가 상정하는 이상적인 법관은 철학적이지만 철학자는 아니고 정치적이지만 정
치가는 아닌 사람이다
아렌트는 헌법국가의 권위도 상식개념에 기반을 두고 설명한다 그리고 민주적
정당성의 관점에서 입법의 우위를 인정하는 까닭에 성찰적 판단에 입각한 법관의
검증에는 한계가 있다는 태도를 견지한다87)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렌트가 제시한
법관의 성찰적 판단 유형에 대해서는 다양한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우선 이것이
예외 상황에서 적용되는 판단모델로 상정된 것이며 무엇보다도 ldquo규범적 상식rdquo에
대한 단일한 이해기반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법관 개인의 주관적 정치적 신념
이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길을 피할 수 없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성찰적
판단력은 결국 레토릭에 불과한 것인가 아렌트는 그러나 무엇이 ldquo특정 상황에 맞
는 공통감각(situierte Gemeinsinn)rdquo인지에 대한 공동의 인식은 가능하며 또 법관의
lsquo하는rsquo 판단에 들어있는 정치적 함의를 성찰적 판단력으로 검증하는 것도 가능하
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아렌트가 마지막 검증심급으로 원용하는 것이 바로 판
단에서의 양심의 심급이다 그것이 과연 동의할 수 있는 합의형태로서 충분한지를
스스로 검증하는 이 심급에서 판단자는 명령조로 자기에게 전해지는 소리를 듣게
된다 ldquo멈춰 나는 그것은 할 수 없어rdquo88) 판단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 멈추는 것
이 가능한 이 성찰적 심급에서는 칸트와 달리 할 수 없는 이유로써 결과도 고려
된다 lsquo보는 사람rsquo이 자기 안에서 지켜보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상황은 토마스 아퀴
나스의 양심론에 비추어 다음과 같이 묘사될 수도 있겠다 지적 본성을 가진 인간
존재가 보편법칙에 관한 지식을 개별 행위에 적용하기 위해 판단하고 선택할 때
행위자는 갈등 상황- ldquo그렇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rdquo는
상황-에 처하여 멈칫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데 이때 그는 단지 갈등하고
선택하는 역할만 하지 않고 갈등하고 선택하는 이 과정을 ldquo관찰하고 목격하는 증인rdquo
의 역할도 한다는 것89)
86) 드워킨에 의하면 해석적 탐구는 ldquo어떠한 증명도 허용치 않고 어떠한 수렴도 약속치
않는 탐구rdquo이다(드워킨 정의론 203면)87) Rosenmuumlller 앞의 책 30면88) Hannah Arendt Uumlber das Boumlse Eine Vorlesung zu Fragen der Ethik Hrsg v J Kohn
(Muumlnchen 2003) 52면89) 지적 행위자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자신의 내면의 갈등과 선택과정을 바라보는
9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Ⅹ 방법에서 덕목으로
헌법 제103조는 한 면으로는 헌법과 법률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 면으로 해석자에게 여하한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lsquo제약
의 차원rsquo과 lsquo자유의 차원rsquo을 동시에 담고 있다 법관은 자유로울 때에라도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며 법에 구속될 때에라도 전적으로 구속되지는 않는다는 뜻이
기도 하다 이 lsquo자유와 구속의 변증법rsquo에 비추어 지금까지 논한 주제에 대해 몇 가
지 입장을 정리해 보자 첫째 법관에게 있어서 독립은 확정된 원칙이나 그것자체
로서 달성해야 할 최종목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법관의 독립은 완성형이 아니라
끊임없는 진행형의 과제로서 그 직무수행에 대한 신뢰와 병행하여 점진적으로 이
루어지는 것이다 둘째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에 있어서 구속은 법률에 무조건 복종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판결에 대한 윤리 (내 ) 확신과 함께 법률에 복종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법관이 실정법률에 반하는 결정을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법
관은 객관성을 빌미로 법률 뒤에 숨는 익명적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
미하는 것이다 셋째 독립적인 법관의 양심은 lsquo법과 상충한다rsquo기보다는 lsquo법을 실
한다rsquo는 의미를 지닌다 넷째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서 반추하면서 lsquo하는
사람rsquo인 동시에 lsquo보는 사람rsquo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성찰 인 인물상으
로서만 설정될 수 있다
해석적 탐구는 우리의 이해를 넓히기 위해서 필요하지만 이해에서의 우리의 피
할 수 없는 한계를 깨닫기 위해서도 필요했는지 모른다 엥기쉬는 법해석방법론에
대한 저술의 마지막 부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ldquo방법론에 천착하다 보면
애초의 문제였던 법률로부터 훨씬 더 먼 곳으로 이끌려 간다rdquo 지금까지 필자는
법관의 법해석과 관련하여 방법론의 의의와 한계를 논하고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과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에 비추어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이 법해석론
의 불가결한 부분으로 들어가게 되는 이유도 밝혔다 그리고 해석적 차원에서의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는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행위를 목표로 하는
탐구라는 것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필자는 이 모든 논의들을 매개로 방법론이 우리를 더 멀리 덕
목론으로 데려가는 과정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드워킨의
상황에 대한 이 묘사 부분은 이경재 ldquo토마스 아퀴나스의 양심 개념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375면을 참조했다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7
헤라클레스를 잠시 불러올 필요가 있다 해석문제를 누구보다도 더 진지하게 다룬
드워킨은 마지막에 헤라클레스를 내세운다 주어진 사건에서 무엇이 법인지에
대해 도덕적 의식을 가지고 법실무 전체를 원리정합적으로 정당화하라는 요청에
부응하여 자신의 신념에 기초한 결정을 내리는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의 구성적
해석에서 법관의 양심이 기능하는 국면은 어디일까 송민경 판사는 드워킨의 구성
적 해석론에 입각하여 양심을 구체적 법논증과정의 일부로 포함시키면서 이때 양
심이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라는 지침으로 기능한다고 설명한다90)
그런데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는 지침으로 기능하는 것을 양심이라
고 보게 되면 양심의 문제는 논증적 합리성의 차원 즉 논증의 성공으로 종결짓게
된다 그러나 법적 결정의 정당성 문제는 법관의 입장에서는 논증의 성공 문제로
다루어지지만 법관의 성공적인 논증에 따른 판결의 결과로부터 영향을 받는 시민
의 입장에서 보면 성공적인 논증만으로는 해석이 정당화된다고 볼 수는 없다
성공적인 논증은 법적 결정의 정당화에 필수적이기는 하나 충분한 조건은 되지 못
한다 해석이 궁극적으로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사법적 도덕성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 사법적 도덕성은 헤라클레스가 지침으로 삼는 원리적 도덕성의 실현과는 다른
것이다 만약 패소한 시민이 다른 헤라클레스에게 갔더라면 즉 다른 법원리에 기
초한 신념을 토대로 다른 결정을 내린 다른 법관에게 갔다면 그는 승리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왜 헤라클레스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하
는지에 대한 답이 필요한 것이다91) 헤라클레스가 실무에 대한 최상의 정당화를
도모하는 법적 이상주의자라면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법원 문을 두드린 시민도
어느 의미에서 ldquo법이상주의자rdquo92)이다
법해석 작업의 주관의존성이라는 불가피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재판이라는 특수
한 공적 활동이 법관이라는 특수공직자에 의해 운영되고 유지된다는 것은 시민들
-소송에서 패한 시민들을 포함하여-편에서 보면 법을 해석하는 법관에 대한
신뢰가 전제된다는 것이다 법관의 독립적 활동은 법관의 특권 행사가 아니라 사
90) 송민경 앞의 글 38면 20면91) 사법적 덕목과 연관하여 이 부분을 다룬 글로는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5면 이하
92) 법원 문을 두드리는 시민에 대한 이 표현은 심헌섭 ldquo법조윤리의 좌표 거시적 관점에서 본 전문윤리로서의 법조윤리rdquo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편 法律家의 倫理와 責任 박영사
(2003)에 나온다
9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법과정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응당한 몫이 돌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존중하는 바탕에는 일종의 상호성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 그 또한
시민이기도 한 법관이 동료시민들에 대해 가지는 배려와 존중의 원칙이 그것이다
여기서 사법적 덕목에 대해 자세히 논할 수는 없다93) 예의 성실 신중 절제
용기 공정 겸손 의사소통 능력 형평 시민에 대한 배려와 존중 등등 이것들은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바탕을 이루는 양심의 덕목들일
것이다 양심이라는 단어가 그렇듯이 덕목이라는 단어도 오늘날 진부해진 표현
이며 거의 사라져가는 단어다 윤리적 태도로서의 덕목은 관찰하기도 배우기도
어렵다 그러나 올바른 판단과 결정이 법관이라는 개인을 거치지 않고 법령집
자체로부터 반사적으로 튀어나오지 않는 한 이 덕목들을 내면화하고 지향하려는
태도 없이는 lsquo종국적인rsquo 판단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써 필자는 헌법 제103조를 통해 법해석에서의 방법론의 문제가 덕목론이라
는 다음 과제로 이어진다는 점을 밝혔다고 생각한다
투고일 2016 4 6 심사완료일 2016 5 18 게재확정일 2016 5 20
93) 법관의 개별적인 덕목들과 이것들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는 박은정 강태경 김현섭 바람
직한 법관상의 정립과 실천 방안에 관한 연구 법원행정처(2015) 제5장 참조할 것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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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ltAbstractgt
Independence and Conscience of the Judges Based on
Interpretive Method for Article 103 of the Korean Constitution
Pak Un Jong
94)
In this paper I aim to discuss the problem of independence and conscience
of the judges as outlined in Article 103 of the Korean Constitution in the
context of the interpretive methodology
First of all this paper will look at the background in which the independence
of the judges has been institutionalized and also the problems regarding usual
explanation for conscience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And I will try to
reveal the characteristics and difficulties of the interpretive actions of the judges
especially in connection to the issue of value judgment This would require
pointing out the problems and limitations of the interpretive methodology and at
the same time defining the nature of tension embedded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namely the tension between the obligations of the judges to abide
the law versus the subjective internal demeanor of the judges This tension-
ridden condition reenacted by the demand to follow lsquogeneral justicersquo versus
lsquoindividual justicersquo appears inevitably in the process of judicial interpretation I
will examine the theories that capture this kind of tension that accompany the
interpretation process and aim to feel out the possibilities of resolving this
tension At the end I come to the conclusion that these theories can explain but
cannot resolve this tension in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If so the problem
which arises from the limitations of the interpretative methodologies from the
perspective that a judgersquos final decision greatly impacts citizens becomes a
problem of judicial ethics In order to ultimately justify the interpretation of the
judges the demands of judicial ethics must be satisfied Keeping this demand in
Professor College of Law School of Law Seoul National University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103
mind I point out that the significance of Article 103 of the Constitution is in
its role of bridging legal methodology to virtue ethics
Keywords independence of the judges conscience of the judges interpretive
method of law value judgment judicial virtue
92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Ⅸ 법관은 lsquo하는 사람rsquo인가 lsquo보는 사람rsquo인가
법관의 판단작업을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의 관점에서 주목했던 또 다른
철학자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다 그녀는 ldquo아이히만 재판rdquo을 계기로 판단의
특수한 경우로서의 판단력 문제를 연구했다73) 아렌트는 하드케이스와 연관시켜
법관의 판단력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74) 법관은 우선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을 반추하면서 판단에 임하는데 이때 판단자로서 그는 한 면으
로는 규칙에 따라 판단하라는 lsquo일반적 정의rsquo의 요구에 그리고 동시에 다른 한 면
으로는 정황에 맞게 판단하라는 lsquo개별적 정의rsquo의 요구에 처한다 이러한 상황은
아렌트에 따르면 하드케이스에서 특히 발생한다 이 이중적이고 모순적 요구 상황
을 아렌트는 법관의 판단에 적용되는 특수한 해석학 및 그 조건을 설명하는 출발
점으로 삼는다75) 하드케이스가 아닌 통상적인 사건에서는 이른바 포섭 여부를 판
단하는 것으로도 족하다 일반규칙에의 포섭 여부가 중심이 되는 이 단계에서의
판단력- lsquo규정하는 판단력(bestimmende Urteilskraft)rsquo-은 사실관계에서의 원인
이나 형식적 정의를 따지므로 일방적이고 간주관적 전제 없이도 가능하다 그래서
흔히 법관은 여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법을 해석해야 한다고 말할 때 이는
법적용을 이러한 지배적인 포섭모델에 입각하여 이해한 결과라 할 것이다 그런데
규칙으로부터 오는 어떤 어려움들 때문에 규정하는 판단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즉 포섭이 어렵거나 법흠결 시 또는 가치형량이 요구되는 하드케
이스에서는 법관은 어쩔 수 없이 앞에서 말한 모순문제를 다루어야만 한다 이때
아렌트는 법관이 사유의 확장을 통해 방법상으로 lsquo규정적 판단력rsquo을 스스로 교정
할 수 있는 lsquo성찰적 판단력rsquo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고 이 판단유형의 전환과정을
73) 법적 판단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 삼은 저술은 Hannah Arendt Eichmann in Jerusalem Ein Bericht von der Banalitaumlt des Boumlsen Erw Aufl (Muumlnchen 2001) 그리고 Hannah Arendt Das Urteilen Texte zu Kants Politischer Philosophie Hrsg v R Beiner Uumlbers v U Ludz (Muumlnchen 1998)
74) 아렌트가 염두에 둔 하드케이스는 라드브루흐가 이른바 ldquo법률적 불법rdquo 상태로 규정한
나치의 불법국가 상황으로서 이렇게 극히 예외적인 케이스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하드
케이스에 적용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별적 정의 요구에 부응함
으로써 예컨대 소급효를 금지하는 일반법률에 위배되는 상황과 유사한 갈등상황은 반
드시 극단적 상황에서만 생긴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75)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2 Bde Hrsg v U Ludz amp I Nordmann
따라서 그 척도는 전달가능성이며 거기에 딱 맞는 것은 공통감각(상식)이다rdquo77) 오
늘날 공통감각은 아렌트도 지적했듯이 더 이상 그것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얻고자 노력해야 하는 그 무엇이 되어버린 듯하다 그러나 공통감
각이 무너진 시대를 겪었던 아렌트는 사유의 전환 내지 확대를 위한 진정한 발판
을 다시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에서 구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78)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실천철학의 전통에서는 세계와의 관계 그리고 자기와의 관
계를 공통감각을 척도로 설정해가는 판단자가 lsquo하는 사람rsquo인지 아니면 lsquo보는 사람rsquo
인지 즉 lsquo행위자rsquo인지 아니면 lsquo관찰자rsquo인지를 둘러싸고 의견이 대립되어 왔다 lsquo하
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자가 lsquo정치가rsquo 쪽에 더 가깝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
자는 lsquo철학자rsquo 쪽에 더 가깝다 lsquo하는 사람rsquo은 주로 사회의 일반적 상식 건전한 인
간이해 세론(doxa)을 판단의 척도로 삼는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적 경험은 전체주
의 하에서는 건전한 인간이해도 집단화된 대중감정에 따른 오도된 인간이해 앞에
무너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판단에서 사실로서의 상식이나 합의 또는
법해석공동체 내부의 지배적 제도적 관점이라는 판단 척도만으로는 일반규칙으로
부터 오는 모순을 다루기 어렵다 여기서 판단자는 ldquo확대된 사유방식rdquo을 추구해야
하는데 아렌트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을 lsquo보는 사람rsquo의 판단과 결합시킴으로써 법
관을 위한 사유의 확대를 시도한다79) lsquo하는 사람rsquo이 사실로서의 일반적 상식이나
인간이해 차원에 비추어 판단한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ldquo이
상적 규범적 상식rdquo80)을 추구하고자 한다 판단을 거쳐 법적 효과를 결정하는 법관
76)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을 해석학적 순환이론을 적용하여 분석하면서 칸트의 판단력 비
판에 의거하여 아렌트가 판단력의 특수한 경우로서 법관의 ldquo성찰적 판단력rdquo이라는 새
로운 판단유형을 제시했다고 지적한 연구서로는 Stefanie Rosenmuumlller Der Ort des Rechts Gemeinsinn und richterliches Urteilen nach Hannah Arendt Nomos (2013) 참조
77) Hannah Arendt Das Urteilen 92-93면78) 아렌트가 판단의 차원을 심화시키는 발판으로 삼는 상식은 sensus communis로서
communis opinio와는 다르다는 데 대해서는 Marieke Borren ldquolsquoA Sense of the Worldrsquo Hannah Arendtrsquos Hermeneutic Phenomenology of Common Senserdquo International Journal of Philosophical Studies Vol 21 No 2 (2013) 225-255
79) Hannah Arendt Das Urteilen 76면80) Rosenmuumlller 앞의 책 234면 이하 여기서 아렌트는 상식개념을 이중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에서는 경험적 개념으로 보다 성찰적 판단
단계에서는 규범적 개념으로 사용한다
9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은 관찰자로서 판단하면서 동시에 행위자로서 판단에서 법적 결과를 결정하는
사람이다 관찰자인 동시에 행위자라는 이중적인 역할을 하면서 법관은 자신의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 반추한다81) 이 반추과정에서 법관은 한편으로는 포섭
하는 판단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고려해야 할 관점들을 끌어들이면서
자신의 직책을 마지막까지 수행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통제하면서 자신의 앞서의
(포섭) 판단을 정정해나간다 그래서 법관 자신이 lsquo보는 사람rsquo과 lsquo하는 사람rsquo의 만
남의 장소가 되는 것과도 같다 ldquo이 보는 사람은 모든 하는 사람 안에 자리 잡고
있다helliphellip이 비판적 판단능력이 없이는 행위자 혹은 해결자는 보는 사람으로부터
풀려나 종내는 지각되지조차 못하게 될 것이다rdquo82)
사람들은 자신 일에 있어서는 비당파적일 수는 없다 따라서 ldquo자신의 일에 대한
판단에서는 내면의 심판자 혹은 내면의 법정을 가질 수 없다rdquo83) 그러나 다른 사
람의 일을 반추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필히 비당파적이어야 하며 또 비당파적이 될
수 있다 이때 그는 비로소 내면의 심판자를 가지게 된다 즉 양심의 문제에 처하
게 되는 것이다 판단에 있어서 양심이라는 것 즉 양심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남
의 일에서 ldquo증인rdquo 혹은 ldquo비판적 친구rdquo로서 관찰하고 행위하는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이다84)
아렌트의 성찰적 판단모델은 나치 불법국가 경험의 산물이다 통상의 규칙이 파
괴된 상황 통상의 범죄유형에 포섭되지 않는 극히 예외적인 범죄적 상황에서 법
원은 기존의 판단척도를 해석학적 출발로 삼아서는 안 되고 이때에는 질적으로
동의가능한 합의형식을 찾기 위해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으로 돌아가
진정으로 사유 즉 철학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렌트가 판단을 일반화해주는
거점이자 해석학적 출발점으로 삼은 공통감각(상식) 개념은 칸트철학에서 ldquo비사교
적 사교성rdquo 개념의 위상과 비슷하다85) 이 지상에서 인간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다른 것을 원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모여 살아야만 하는 존재다 이 비사회성 요
청과 사회성 요청의 동시성 때문에 인간에게는 제도적인 안착이 더없이 중요하며
법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실존과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만든다 판단의 기
81) Leora Y Bilsky When Actor and Spectator Meet in the Courtroom Hannah Arendt and Eichmann in Jerusalem G N Arad Hg (Bloomington 1996) 137면
82) Hannah Arendt 앞의 책 85면83) Hannah Arendt 앞의 책 76면 84)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657면85) Rosenmuumlller 앞의 책 1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5
초를 보편적 인간경험에 둔다는 점에서 아렌트가 말하는 판단력은 드워킨의 헤라
클레스와 같은 초인적 천재성을 발휘하는 능력과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86) 아
렌트가 상정하는 이상적인 법관은 철학적이지만 철학자는 아니고 정치적이지만 정
치가는 아닌 사람이다
아렌트는 헌법국가의 권위도 상식개념에 기반을 두고 설명한다 그리고 민주적
정당성의 관점에서 입법의 우위를 인정하는 까닭에 성찰적 판단에 입각한 법관의
검증에는 한계가 있다는 태도를 견지한다87)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렌트가 제시한
법관의 성찰적 판단 유형에 대해서는 다양한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우선 이것이
예외 상황에서 적용되는 판단모델로 상정된 것이며 무엇보다도 ldquo규범적 상식rdquo에
대한 단일한 이해기반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법관 개인의 주관적 정치적 신념
이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길을 피할 수 없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성찰적
판단력은 결국 레토릭에 불과한 것인가 아렌트는 그러나 무엇이 ldquo특정 상황에 맞
는 공통감각(situierte Gemeinsinn)rdquo인지에 대한 공동의 인식은 가능하며 또 법관의
lsquo하는rsquo 판단에 들어있는 정치적 함의를 성찰적 판단력으로 검증하는 것도 가능하
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아렌트가 마지막 검증심급으로 원용하는 것이 바로 판
단에서의 양심의 심급이다 그것이 과연 동의할 수 있는 합의형태로서 충분한지를
스스로 검증하는 이 심급에서 판단자는 명령조로 자기에게 전해지는 소리를 듣게
된다 ldquo멈춰 나는 그것은 할 수 없어rdquo88) 판단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 멈추는 것
이 가능한 이 성찰적 심급에서는 칸트와 달리 할 수 없는 이유로써 결과도 고려
된다 lsquo보는 사람rsquo이 자기 안에서 지켜보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상황은 토마스 아퀴
나스의 양심론에 비추어 다음과 같이 묘사될 수도 있겠다 지적 본성을 가진 인간
존재가 보편법칙에 관한 지식을 개별 행위에 적용하기 위해 판단하고 선택할 때
행위자는 갈등 상황- ldquo그렇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rdquo는
상황-에 처하여 멈칫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데 이때 그는 단지 갈등하고
선택하는 역할만 하지 않고 갈등하고 선택하는 이 과정을 ldquo관찰하고 목격하는 증인rdquo
의 역할도 한다는 것89)
86) 드워킨에 의하면 해석적 탐구는 ldquo어떠한 증명도 허용치 않고 어떠한 수렴도 약속치
않는 탐구rdquo이다(드워킨 정의론 203면)87) Rosenmuumlller 앞의 책 30면88) Hannah Arendt Uumlber das Boumlse Eine Vorlesung zu Fragen der Ethik Hrsg v J Kohn
(Muumlnchen 2003) 52면89) 지적 행위자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자신의 내면의 갈등과 선택과정을 바라보는
9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Ⅹ 방법에서 덕목으로
헌법 제103조는 한 면으로는 헌법과 법률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 면으로 해석자에게 여하한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lsquo제약
의 차원rsquo과 lsquo자유의 차원rsquo을 동시에 담고 있다 법관은 자유로울 때에라도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며 법에 구속될 때에라도 전적으로 구속되지는 않는다는 뜻이
기도 하다 이 lsquo자유와 구속의 변증법rsquo에 비추어 지금까지 논한 주제에 대해 몇 가
지 입장을 정리해 보자 첫째 법관에게 있어서 독립은 확정된 원칙이나 그것자체
로서 달성해야 할 최종목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법관의 독립은 완성형이 아니라
끊임없는 진행형의 과제로서 그 직무수행에 대한 신뢰와 병행하여 점진적으로 이
루어지는 것이다 둘째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에 있어서 구속은 법률에 무조건 복종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판결에 대한 윤리 (내 ) 확신과 함께 법률에 복종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법관이 실정법률에 반하는 결정을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법
관은 객관성을 빌미로 법률 뒤에 숨는 익명적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
미하는 것이다 셋째 독립적인 법관의 양심은 lsquo법과 상충한다rsquo기보다는 lsquo법을 실
한다rsquo는 의미를 지닌다 넷째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서 반추하면서 lsquo하는
사람rsquo인 동시에 lsquo보는 사람rsquo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성찰 인 인물상으
로서만 설정될 수 있다
해석적 탐구는 우리의 이해를 넓히기 위해서 필요하지만 이해에서의 우리의 피
할 수 없는 한계를 깨닫기 위해서도 필요했는지 모른다 엥기쉬는 법해석방법론에
대한 저술의 마지막 부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ldquo방법론에 천착하다 보면
애초의 문제였던 법률로부터 훨씬 더 먼 곳으로 이끌려 간다rdquo 지금까지 필자는
법관의 법해석과 관련하여 방법론의 의의와 한계를 논하고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과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에 비추어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이 법해석론
의 불가결한 부분으로 들어가게 되는 이유도 밝혔다 그리고 해석적 차원에서의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는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행위를 목표로 하는
탐구라는 것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필자는 이 모든 논의들을 매개로 방법론이 우리를 더 멀리 덕
목론으로 데려가는 과정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드워킨의
상황에 대한 이 묘사 부분은 이경재 ldquo토마스 아퀴나스의 양심 개념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375면을 참조했다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7
헤라클레스를 잠시 불러올 필요가 있다 해석문제를 누구보다도 더 진지하게 다룬
드워킨은 마지막에 헤라클레스를 내세운다 주어진 사건에서 무엇이 법인지에
대해 도덕적 의식을 가지고 법실무 전체를 원리정합적으로 정당화하라는 요청에
부응하여 자신의 신념에 기초한 결정을 내리는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의 구성적
해석에서 법관의 양심이 기능하는 국면은 어디일까 송민경 판사는 드워킨의 구성
적 해석론에 입각하여 양심을 구체적 법논증과정의 일부로 포함시키면서 이때 양
심이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라는 지침으로 기능한다고 설명한다90)
그런데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는 지침으로 기능하는 것을 양심이라
고 보게 되면 양심의 문제는 논증적 합리성의 차원 즉 논증의 성공으로 종결짓게
된다 그러나 법적 결정의 정당성 문제는 법관의 입장에서는 논증의 성공 문제로
다루어지지만 법관의 성공적인 논증에 따른 판결의 결과로부터 영향을 받는 시민
의 입장에서 보면 성공적인 논증만으로는 해석이 정당화된다고 볼 수는 없다
성공적인 논증은 법적 결정의 정당화에 필수적이기는 하나 충분한 조건은 되지 못
한다 해석이 궁극적으로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사법적 도덕성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 사법적 도덕성은 헤라클레스가 지침으로 삼는 원리적 도덕성의 실현과는 다른
것이다 만약 패소한 시민이 다른 헤라클레스에게 갔더라면 즉 다른 법원리에 기
초한 신념을 토대로 다른 결정을 내린 다른 법관에게 갔다면 그는 승리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왜 헤라클레스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하
는지에 대한 답이 필요한 것이다91) 헤라클레스가 실무에 대한 최상의 정당화를
도모하는 법적 이상주의자라면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법원 문을 두드린 시민도
어느 의미에서 ldquo법이상주의자rdquo92)이다
법해석 작업의 주관의존성이라는 불가피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재판이라는 특수
한 공적 활동이 법관이라는 특수공직자에 의해 운영되고 유지된다는 것은 시민들
-소송에서 패한 시민들을 포함하여-편에서 보면 법을 해석하는 법관에 대한
신뢰가 전제된다는 것이다 법관의 독립적 활동은 법관의 특권 행사가 아니라 사
90) 송민경 앞의 글 38면 20면91) 사법적 덕목과 연관하여 이 부분을 다룬 글로는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5면 이하
92) 법원 문을 두드리는 시민에 대한 이 표현은 심헌섭 ldquo법조윤리의 좌표 거시적 관점에서 본 전문윤리로서의 법조윤리rdquo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편 法律家의 倫理와 責任 박영사
(2003)에 나온다
9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법과정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응당한 몫이 돌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존중하는 바탕에는 일종의 상호성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 그 또한
시민이기도 한 법관이 동료시민들에 대해 가지는 배려와 존중의 원칙이 그것이다
여기서 사법적 덕목에 대해 자세히 논할 수는 없다93) 예의 성실 신중 절제
용기 공정 겸손 의사소통 능력 형평 시민에 대한 배려와 존중 등등 이것들은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바탕을 이루는 양심의 덕목들일
것이다 양심이라는 단어가 그렇듯이 덕목이라는 단어도 오늘날 진부해진 표현
이며 거의 사라져가는 단어다 윤리적 태도로서의 덕목은 관찰하기도 배우기도
어렵다 그러나 올바른 판단과 결정이 법관이라는 개인을 거치지 않고 법령집
자체로부터 반사적으로 튀어나오지 않는 한 이 덕목들을 내면화하고 지향하려는
태도 없이는 lsquo종국적인rsquo 판단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써 필자는 헌법 제103조를 통해 법해석에서의 방법론의 문제가 덕목론이라
는 다음 과제로 이어진다는 점을 밝혔다고 생각한다
투고일 2016 4 6 심사완료일 2016 5 18 게재확정일 2016 5 20
93) 법관의 개별적인 덕목들과 이것들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는 박은정 강태경 김현섭 바람
직한 법관상의 정립과 실천 방안에 관한 연구 법원행정처(2015) 제5장 참조할 것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9
참고문헌
권영성 헌법학원론 법문사(2010)
김철수 헌법학신론 박영사(2013)
김현섭 ldquo법관의 양심과 독립에 대한 헌법 제103조의 해석rdquo 한국법철학회 월례독회
발표문(2015 4 25)
김황식 연필로 쓴 페이스북 之山通信 나남(2013)
박은정 왜 법의 지배인가 돌베개(2010)
박은정 강태경 김현섭 바람직한 법관상의 정립과 실천 방안에 관한 연구 법원행
정처(2015)
사법연수원 법조윤리론(2014)
성낙인 헌법학 법문사(2014)
송민경 ldquo법관의 양심에 관한 연구rdquo 사법논집 제58집(2014)
심헌섭 ldquo법조윤리의 좌표 거시적 관점에서 본 전문윤리로서의 법조윤리rdquo 서울대
학교 법과대학 편 法律家의 倫理와 責任 박영사(2003)
분석과 비 의 법철학 법문사(2001)
양창수 ldquo바람직한 법관상-기예와 지혜 사이rdquo lt근대사법 및 한성재판소 설립
따라서 그 척도는 전달가능성이며 거기에 딱 맞는 것은 공통감각(상식)이다rdquo77) 오
늘날 공통감각은 아렌트도 지적했듯이 더 이상 그것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얻고자 노력해야 하는 그 무엇이 되어버린 듯하다 그러나 공통감
각이 무너진 시대를 겪었던 아렌트는 사유의 전환 내지 확대를 위한 진정한 발판
을 다시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에서 구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78)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실천철학의 전통에서는 세계와의 관계 그리고 자기와의 관
계를 공통감각을 척도로 설정해가는 판단자가 lsquo하는 사람rsquo인지 아니면 lsquo보는 사람rsquo
인지 즉 lsquo행위자rsquo인지 아니면 lsquo관찰자rsquo인지를 둘러싸고 의견이 대립되어 왔다 lsquo하
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자가 lsquo정치가rsquo 쪽에 더 가깝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으로서의 판단
자는 lsquo철학자rsquo 쪽에 더 가깝다 lsquo하는 사람rsquo은 주로 사회의 일반적 상식 건전한 인
간이해 세론(doxa)을 판단의 척도로 삼는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적 경험은 전체주
의 하에서는 건전한 인간이해도 집단화된 대중감정에 따른 오도된 인간이해 앞에
무너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판단에서 사실로서의 상식이나 합의 또는
법해석공동체 내부의 지배적 제도적 관점이라는 판단 척도만으로는 일반규칙으로
부터 오는 모순을 다루기 어렵다 여기서 판단자는 ldquo확대된 사유방식rdquo을 추구해야
하는데 아렌트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을 lsquo보는 사람rsquo의 판단과 결합시킴으로써 법
관을 위한 사유의 확대를 시도한다79) lsquo하는 사람rsquo이 사실로서의 일반적 상식이나
인간이해 차원에 비추어 판단한다면 lsquo보는 사람rsquo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ldquo이
상적 규범적 상식rdquo80)을 추구하고자 한다 판단을 거쳐 법적 효과를 결정하는 법관
76)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을 해석학적 순환이론을 적용하여 분석하면서 칸트의 판단력 비
판에 의거하여 아렌트가 판단력의 특수한 경우로서 법관의 ldquo성찰적 판단력rdquo이라는 새
로운 판단유형을 제시했다고 지적한 연구서로는 Stefanie Rosenmuumlller Der Ort des Rechts Gemeinsinn und richterliches Urteilen nach Hannah Arendt Nomos (2013) 참조
77) Hannah Arendt Das Urteilen 92-93면78) 아렌트가 판단의 차원을 심화시키는 발판으로 삼는 상식은 sensus communis로서
communis opinio와는 다르다는 데 대해서는 Marieke Borren ldquolsquoA Sense of the Worldrsquo Hannah Arendtrsquos Hermeneutic Phenomenology of Common Senserdquo International Journal of Philosophical Studies Vol 21 No 2 (2013) 225-255
79) Hannah Arendt Das Urteilen 76면80) Rosenmuumlller 앞의 책 234면 이하 여기서 아렌트는 상식개념을 이중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에서는 경험적 개념으로 보다 성찰적 판단
단계에서는 규범적 개념으로 사용한다
94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은 관찰자로서 판단하면서 동시에 행위자로서 판단에서 법적 결과를 결정하는
사람이다 관찰자인 동시에 행위자라는 이중적인 역할을 하면서 법관은 자신의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 반추한다81) 이 반추과정에서 법관은 한편으로는 포섭
하는 판단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고려해야 할 관점들을 끌어들이면서
자신의 직책을 마지막까지 수행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통제하면서 자신의 앞서의
(포섭) 판단을 정정해나간다 그래서 법관 자신이 lsquo보는 사람rsquo과 lsquo하는 사람rsquo의 만
남의 장소가 되는 것과도 같다 ldquo이 보는 사람은 모든 하는 사람 안에 자리 잡고
있다helliphellip이 비판적 판단능력이 없이는 행위자 혹은 해결자는 보는 사람으로부터
풀려나 종내는 지각되지조차 못하게 될 것이다rdquo82)
사람들은 자신 일에 있어서는 비당파적일 수는 없다 따라서 ldquo자신의 일에 대한
판단에서는 내면의 심판자 혹은 내면의 법정을 가질 수 없다rdquo83) 그러나 다른 사
람의 일을 반추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필히 비당파적이어야 하며 또 비당파적이 될
수 있다 이때 그는 비로소 내면의 심판자를 가지게 된다 즉 양심의 문제에 처하
게 되는 것이다 판단에 있어서 양심이라는 것 즉 양심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남
의 일에서 ldquo증인rdquo 혹은 ldquo비판적 친구rdquo로서 관찰하고 행위하는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이다84)
아렌트의 성찰적 판단모델은 나치 불법국가 경험의 산물이다 통상의 규칙이 파
괴된 상황 통상의 범죄유형에 포섭되지 않는 극히 예외적인 범죄적 상황에서 법
원은 기존의 판단척도를 해석학적 출발로 삼아서는 안 되고 이때에는 질적으로
동의가능한 합의형식을 찾기 위해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경험으로 돌아가
진정으로 사유 즉 철학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렌트가 판단을 일반화해주는
거점이자 해석학적 출발점으로 삼은 공통감각(상식) 개념은 칸트철학에서 ldquo비사교
적 사교성rdquo 개념의 위상과 비슷하다85) 이 지상에서 인간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다른 것을 원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모여 살아야만 하는 존재다 이 비사회성 요
청과 사회성 요청의 동시성 때문에 인간에게는 제도적인 안착이 더없이 중요하며
법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실존과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만든다 판단의 기
81) Leora Y Bilsky When Actor and Spectator Meet in the Courtroom Hannah Arendt and Eichmann in Jerusalem G N Arad Hg (Bloomington 1996) 137면
82) Hannah Arendt 앞의 책 85면83) Hannah Arendt 앞의 책 76면 84) Hannah Arendt Denktagebuch 1950 bis 1973 657면85) Rosenmuumlller 앞의 책 18면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5
초를 보편적 인간경험에 둔다는 점에서 아렌트가 말하는 판단력은 드워킨의 헤라
클레스와 같은 초인적 천재성을 발휘하는 능력과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86) 아
렌트가 상정하는 이상적인 법관은 철학적이지만 철학자는 아니고 정치적이지만 정
치가는 아닌 사람이다
아렌트는 헌법국가의 권위도 상식개념에 기반을 두고 설명한다 그리고 민주적
정당성의 관점에서 입법의 우위를 인정하는 까닭에 성찰적 판단에 입각한 법관의
검증에는 한계가 있다는 태도를 견지한다87)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렌트가 제시한
법관의 성찰적 판단 유형에 대해서는 다양한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우선 이것이
예외 상황에서 적용되는 판단모델로 상정된 것이며 무엇보다도 ldquo규범적 상식rdquo에
대한 단일한 이해기반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법관 개인의 주관적 정치적 신념
이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길을 피할 수 없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성찰적
판단력은 결국 레토릭에 불과한 것인가 아렌트는 그러나 무엇이 ldquo특정 상황에 맞
는 공통감각(situierte Gemeinsinn)rdquo인지에 대한 공동의 인식은 가능하며 또 법관의
lsquo하는rsquo 판단에 들어있는 정치적 함의를 성찰적 판단력으로 검증하는 것도 가능하
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아렌트가 마지막 검증심급으로 원용하는 것이 바로 판
단에서의 양심의 심급이다 그것이 과연 동의할 수 있는 합의형태로서 충분한지를
스스로 검증하는 이 심급에서 판단자는 명령조로 자기에게 전해지는 소리를 듣게
된다 ldquo멈춰 나는 그것은 할 수 없어rdquo88) 판단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 멈추는 것
이 가능한 이 성찰적 심급에서는 칸트와 달리 할 수 없는 이유로써 결과도 고려
된다 lsquo보는 사람rsquo이 자기 안에서 지켜보는 lsquo하는 사람rsquo의 판단상황은 토마스 아퀴
나스의 양심론에 비추어 다음과 같이 묘사될 수도 있겠다 지적 본성을 가진 인간
존재가 보편법칙에 관한 지식을 개별 행위에 적용하기 위해 판단하고 선택할 때
행위자는 갈등 상황- ldquo그렇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rdquo는
상황-에 처하여 멈칫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데 이때 그는 단지 갈등하고
선택하는 역할만 하지 않고 갈등하고 선택하는 이 과정을 ldquo관찰하고 목격하는 증인rdquo
의 역할도 한다는 것89)
86) 드워킨에 의하면 해석적 탐구는 ldquo어떠한 증명도 허용치 않고 어떠한 수렴도 약속치
않는 탐구rdquo이다(드워킨 정의론 203면)87) Rosenmuumlller 앞의 책 30면88) Hannah Arendt Uumlber das Boumlse Eine Vorlesung zu Fragen der Ethik Hrsg v J Kohn
(Muumlnchen 2003) 52면89) 지적 행위자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자신의 내면의 갈등과 선택과정을 바라보는
96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Ⅹ 방법에서 덕목으로
헌법 제103조는 한 면으로는 헌법과 법률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 면으로 해석자에게 여하한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lsquo제약
의 차원rsquo과 lsquo자유의 차원rsquo을 동시에 담고 있다 법관은 자유로울 때에라도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며 법에 구속될 때에라도 전적으로 구속되지는 않는다는 뜻이
기도 하다 이 lsquo자유와 구속의 변증법rsquo에 비추어 지금까지 논한 주제에 대해 몇 가
지 입장을 정리해 보자 첫째 법관에게 있어서 독립은 확정된 원칙이나 그것자체
로서 달성해야 할 최종목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법관의 독립은 완성형이 아니라
끊임없는 진행형의 과제로서 그 직무수행에 대한 신뢰와 병행하여 점진적으로 이
루어지는 것이다 둘째 법관의 법률구속원칙에 있어서 구속은 법률에 무조건 복종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판결에 대한 윤리 (내 ) 확신과 함께 법률에 복종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법관이 실정법률에 반하는 결정을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법
관은 객관성을 빌미로 법률 뒤에 숨는 익명적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
미하는 것이다 셋째 독립적인 법관의 양심은 lsquo법과 상충한다rsquo기보다는 lsquo법을 실
한다rsquo는 의미를 지닌다 넷째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서 반추하면서 lsquo하는
사람rsquo인 동시에 lsquo보는 사람rsquo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성찰 인 인물상으
로서만 설정될 수 있다
해석적 탐구는 우리의 이해를 넓히기 위해서 필요하지만 이해에서의 우리의 피
할 수 없는 한계를 깨닫기 위해서도 필요했는지 모른다 엥기쉬는 법해석방법론에
대한 저술의 마지막 부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ldquo방법론에 천착하다 보면
애초의 문제였던 법률로부터 훨씬 더 먼 곳으로 이끌려 간다rdquo 지금까지 필자는
법관의 법해석과 관련하여 방법론의 의의와 한계를 논하고 카우프만의 해석학적
방법론과 아렌트의 판단력이론에 비추어 법관의 자기이해와 자기성찰이 법해석론
의 불가결한 부분으로 들어가게 되는 이유도 밝혔다 그리고 해석적 차원에서의
가치에 대한 법관의 숙고는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행위를 목표로 하는
탐구라는 것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필자는 이 모든 논의들을 매개로 방법론이 우리를 더 멀리 덕
목론으로 데려가는 과정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드워킨의
상황에 대한 이 묘사 부분은 이경재 ldquo토마스 아퀴나스의 양심 개념rdquo 진교훈 외 앞의 책 375면을 참조했다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7
헤라클레스를 잠시 불러올 필요가 있다 해석문제를 누구보다도 더 진지하게 다룬
드워킨은 마지막에 헤라클레스를 내세운다 주어진 사건에서 무엇이 법인지에
대해 도덕적 의식을 가지고 법실무 전체를 원리정합적으로 정당화하라는 요청에
부응하여 자신의 신념에 기초한 결정을 내리는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의 구성적
해석에서 법관의 양심이 기능하는 국면은 어디일까 송민경 판사는 드워킨의 구성
적 해석론에 입각하여 양심을 구체적 법논증과정의 일부로 포함시키면서 이때 양
심이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라는 지침으로 기능한다고 설명한다90)
그런데 법을 일관된 법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는 지침으로 기능하는 것을 양심이라
고 보게 되면 양심의 문제는 논증적 합리성의 차원 즉 논증의 성공으로 종결짓게
된다 그러나 법적 결정의 정당성 문제는 법관의 입장에서는 논증의 성공 문제로
다루어지지만 법관의 성공적인 논증에 따른 판결의 결과로부터 영향을 받는 시민
의 입장에서 보면 성공적인 논증만으로는 해석이 정당화된다고 볼 수는 없다
성공적인 논증은 법적 결정의 정당화에 필수적이기는 하나 충분한 조건은 되지 못
한다 해석이 궁극적으로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사법적 도덕성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 사법적 도덕성은 헤라클레스가 지침으로 삼는 원리적 도덕성의 실현과는 다른
것이다 만약 패소한 시민이 다른 헤라클레스에게 갔더라면 즉 다른 법원리에 기
초한 신념을 토대로 다른 결정을 내린 다른 법관에게 갔다면 그는 승리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왜 헤라클레스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하
는지에 대한 답이 필요한 것이다91) 헤라클레스가 실무에 대한 최상의 정당화를
도모하는 법적 이상주의자라면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법원 문을 두드린 시민도
어느 의미에서 ldquo법이상주의자rdquo92)이다
법해석 작업의 주관의존성이라는 불가피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재판이라는 특수
한 공적 활동이 법관이라는 특수공직자에 의해 운영되고 유지된다는 것은 시민들
-소송에서 패한 시민들을 포함하여-편에서 보면 법을 해석하는 법관에 대한
신뢰가 전제된다는 것이다 법관의 독립적 활동은 법관의 특권 행사가 아니라 사
90) 송민경 앞의 글 38면 20면91) 사법적 덕목과 연관하여 이 부분을 다룬 글로는 Iris van Domselaar ldquoMoral Quality in
Adjudication On Judicial Virtues and Civic Friendshiprdquo Netherlands Journal of Legal Philosophy 2015 (44) 1 25면 이하
92) 법원 문을 두드리는 시민에 대한 이 표현은 심헌섭 ldquo법조윤리의 좌표 거시적 관점에서 본 전문윤리로서의 법조윤리rdquo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편 法律家의 倫理와 責任 박영사
(2003)에 나온다
98 서울대학교 法學 제57권 제2호 (2016 6)
법과정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응당한 몫이 돌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존중하는 바탕에는 일종의 상호성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 그 또한
시민이기도 한 법관이 동료시민들에 대해 가지는 배려와 존중의 원칙이 그것이다
여기서 사법적 덕목에 대해 자세히 논할 수는 없다93) 예의 성실 신중 절제
용기 공정 겸손 의사소통 능력 형평 시민에 대한 배려와 존중 등등 이것들은
재판의 결과를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바탕을 이루는 양심의 덕목들일
것이다 양심이라는 단어가 그렇듯이 덕목이라는 단어도 오늘날 진부해진 표현
이며 거의 사라져가는 단어다 윤리적 태도로서의 덕목은 관찰하기도 배우기도
어렵다 그러나 올바른 판단과 결정이 법관이라는 개인을 거치지 않고 법령집
자체로부터 반사적으로 튀어나오지 않는 한 이 덕목들을 내면화하고 지향하려는
태도 없이는 lsquo종국적인rsquo 판단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써 필자는 헌법 제103조를 통해 법해석에서의 방법론의 문제가 덕목론이라
는 다음 과제로 이어진다는 점을 밝혔다고 생각한다
투고일 2016 4 6 심사완료일 2016 5 18 게재확정일 2016 5 20
93) 법관의 개별적인 덕목들과 이것들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는 박은정 강태경 김현섭 바람
직한 법관상의 정립과 실천 방안에 관한 연구 법원행정처(2015) 제5장 참조할 것
법해석방법에서 본 헌법 제103조 법관의 독립과 양심 朴恩正 99
참고문헌
권영성 헌법학원론 법문사(2010)
김철수 헌법학신론 박영사(2013)
김현섭 ldquo법관의 양심과 독립에 대한 헌법 제103조의 해석rdquo 한국법철학회 월례독회
발표문(2015 4 25)
김황식 연필로 쓴 페이스북 之山通信 나남(2013)
박은정 왜 법의 지배인가 돌베개(2010)
박은정 강태경 김현섭 바람직한 법관상의 정립과 실천 방안에 관한 연구 법원행
정처(2015)
사법연수원 법조윤리론(2014)
성낙인 헌법학 법문사(2014)
송민경 ldquo법관의 양심에 관한 연구rdquo 사법논집 제58집(2014)
심헌섭 ldquo법조윤리의 좌표 거시적 관점에서 본 전문윤리로서의 법조윤리rdquo 서울대
학교 법과대학 편 法律家의 倫理와 責任 박영사(2003)
분석과 비 의 법철학 법문사(2001)
양창수 ldquo바람직한 법관상-기예와 지혜 사이rdquo lt근대사법 및 한성재판소 설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