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아이함께키우기 ,더불어사는세상만들기 2013 년여름호 통권 109호 공동육아 졸업생 이야기, 그 두 번째 스스로선택해서사는삶 , 공동육아에서배우다 공동육아 , 기억의공동체 밀양 할머니의눈물 , 대안은없는가 싹이자라고열매가자라고아이가자란다 ‘ 우리 ’ 라는담장을넘어서더큰‘ 우리 ’ 와 마주하기 나의 나눔이 가난한 아이들의 삶을 ‘ 진짜로 ’ 바꿔 냅니다 ! 공동육아 저소득 기금은 세상을 따스하게 만드는 사람들의 선택입니다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481-2 태복빌딩 201호 | 02-323-0520 | gongdong@gongdong.or.kr | www.gongdong.or.kr 후원금을 내면 기부금 영수증을 드립니다. 후원금은 연말정산 때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공동육아 저소득 기금은 우리 사회의 소외받는 어린이, 북한과 아시아의 가난한 어린이를 돕는 데 씁니다. 공동육아 저소득 기금 후원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할 수 있어요. CMS 자동이체로 할 수 있습니다. 계좌이체로 할 수 있습니다. 정기 기부와 일시 기부가 있습니다. 국민은행 031-01-0421-564 (사)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사)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네이버 해피로그로 할 수 있습니다. 공동육아졸업생이야기그두번째년여름호2 0 1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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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함께 키우기, 더불어 사는 세상 만들기
년 여름 호통권 109호
공동육아 졸업생 이야기, 그 두 번째스스로 선택해서 사는 삶, 공동육아에서 배우다 공동육아, 기억의 공동체 밀양 할머니의 눈물, 대안은 없는가
싹이 자라고 열매가 자라고 아이가 자란다 ‘우리’라는 담장을 넘어서 더 큰 ‘우리’와 마주하기
씨앗을 뿌리거나 모종을 심는 시간은 아이들의 가장 진지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시간이다. 또 아이들이 가장 조심스럽고 정성을 들이는 시간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할 일을 나누고, 협동하면서 공동체성을 길러 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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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토마토야, 오이한테 뭘 그리 잘못했니? 지지대 세우기
조심조심, 다칠라 조심조심. 아이들의
작은 손이 떨림과 긴장 속에서 느리지
만 야무지게 움직인다. 행여 상처가 나
거나 줄기가 끊어지는 참사라도 일어날
까 숨죽이며 일을 한다.
그날, 아침마다 밭을 찾던 아이들은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토마토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던 것이다. 옆
밭의 오이 때문이었다. 오이 넝쿨이 자
라서 이웃한 토마토의 큰 줄기를 감아
버린 것이다. 진작 지지대를 세워 줬어
야 하는 것을, 시기를 조금 놓쳤더니 이
런 일이 벌어졌다.
월에 오이, 고추, 가지, 토마토 따위 모종을 심으면 월 초나 중순 즈음에
지지대를 세워야 한다. 작물이 비바람이나 열매 무게 때문에 쓰러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또 오이나 호박 같은 덩굴식물은 덩굴이 다른 작물에 피해를
주지 않고 잘 자라도록 하기 위해서다.
고민 끝에 아이들은 토마토를 감은 오이 넝쿨을 조심조심 풀어서 지지대 쪽
으로 옮겨 주기로 했다. 오이 넝쿨도, 토마토 줄기도 다치지 않게 조심조심 풀
어서 지지대로 옮겨 주면서 아이들은 제때 지지대를 세워 주고 줄을 매 주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배웠을 테다. 다시 제자리에서 곧게 자라는 토마토를
토마토가 쓰러지지 않게 지지대를 세워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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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며 아이들은 말했다.
“토마토야, 너 오이한테 뭘 그리 잘못했길래 멱살을 잡혔니?”
06 입 둘레가 새까매지도록 천연 간식 밀과 보리
입 둘레가 새까매진 아이들이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다. 또 한 켠에서는 턱이
아프도록 열심히 무언가를 씹고 있다. 입 둘레가 까만 아이들은 밀과 보리를
구워 먹은 것이고, 무언가 열심히 씹는 아이들은 밀 껌을 만들어 씹는 것이다.
지난겨울 월에 심어 놓은 밀과 보리는 월에 작은 싹이 나기 시작해 월
동안 푸르게 자라다 월에 누렇게 익었다. 누렇게 익은 밀과 보리는 아이들의
인기 만점 간식이 되었다.
아이들은 밀과 보리 이삭을 꼬치처럼 따서 아주 약한 불에 구웠다. 이때 자
칫하면 줄기 부분이 타서 끊어져 불 속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적당한 거리와 시
간을 유지해야 한다. 알맞게 구운 밀과 보리를 손바닥 사이에 넣고 입으로 바
람을 불면서 비비면 껍데기는 날아가고 잘 익은 알만 남는다. 한 알씩 먹으면
맛이 안 나기에 아이들은 손바닥에 든 알을 한 입에 다 털어 넣는다. 이때 손에
묻었던 검은 재가 입 둘레에 잔뜩 묻기도 한다.
또 아이들은 밀 껌을 만들어 씹기도 했는데 분쯤 밀을 입 속에 넣고 씹으
면 푸석하던 밀이 말랑말랑한 껌처럼 된다. 어떻게 아이들이 이런 것을 알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우리가 농사지은 것들로 심심하지 않게 주전부리를 만들
어 먹는 아이들이 그저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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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딸기 한 알, 누가 따 먹었어? 딸기와 사탕수수 지키기
월 말,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당번인 아이가 텃밭으로 달려 나갔다. 아이는
쉬는 시간을 텃밭에서 다 보냈다. 다시 수업 종이 울리면 둘레를 살펴본 뒤 마
음을 놓으며 교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 쉬는 시간에는 다른 당번 아이가
마찬가지로 같은 행동을 했다. 당번 아이의 뒤로 보이는 것은 나무젓가락 네
개로 만든 작은 울타리 안에 자라고 있는 딸기 한 알. 아이들이 분밖에 되
지 않는 쉬는 시간을 땡볕 아래서 그렇게 흘려보내는 것은 이 한 알, 텃밭에서
맨 처음 열린 딸기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텃밭 수업은 학기마다 교사가 전체 계획을 세운다. 또 아이들과 함께 언제
쯤에 어떤 작물을 심을지, 어느 때 어떤 활동을 할지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하
지만 농사라는 것이 날씨나 다른 변수에 따라 계획이 바뀌기도 하듯이 이 수
업도 계획한 것과는 다르게 진행되기도 한다.
딸기와 사탕수수도 처음부터 계획한 작물은 아니었다. 우연히 딸기 모종과
사탕수수 씨앗을 얻었고, 계획에는 없었지만 아이들 모두 좋아해서 밭에 심
고 가꾸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겨났다. 바로 서리. 사탕수수를 잘라 입 안에
넣고 우물우물 씹으면 단물이 나오는데 아이들에게는 너무나도 큰 유혹이었
다. 여기저기 사탕수수를 베어 간 흔적이 보이자 사탕수수와 함께 딸기까지
걱정된 아이들이 서둘러 당번을 정하고 보초를 서기 시작했다. 먹고 싶은 유
혹 속에 눈치만 보는 아이들과 온 힘을 다해 지키려는 아이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생겨났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도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많
은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무것도 모르는 학년 아이가 이 딸기 한 알을 따
서 한 입에 먹어 버린 웃지 못할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학년 아이가 저지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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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아이들이 사탕수수까지 모두 함께 나눠 먹
기로 결정하면서 작전을 방불케 하던 서리 사건도 금세 막을 내렸다.
08 내 오줌을 내가 먹는다고? 퇴비 만들기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당황스런 표정을 지으며 아이들은 서로 마주 보다가, 다
시 교사를 쳐다보다가 몇 번이나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내 오줌을 모아 오라고?”
“내 오줌을 내가 먹는다고?”
아이들로 하여금 당황스런 표정을 짓게 하고, 소리를 지르게 만들었던 것은
바로 ‘오줌.’ 그 더럽고 냄새 나는 것을 갑자기 병에 모아서 가져와야 하고, 게다
가 그 오줌을 자신들이 먹게 된다고 생각하니 불평과 불만, 의문과 의심이 터
져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이들이 오줌을 모아서 가져와야 했던 이
유는 퇴비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또 그 오줌을 아이들이 먹는다는 말은 아이
들이 먹을 작물이 자신들의 오줌으로 만든 퇴비에서 영양분을 공급받는다는
것을 뜻했다.
씨를 뿌리고, 싹이 나고, 열매를 맺고, 먹을거리를 만들어 우리 배를 채우는
것에서 그만 끊어지는 순환 고리를 아이들의 오줌으로 만든 퇴비로 다시 이어
가려는 의도로 시작한 수업이었다. 주로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는 바쁜 시기
가 지나간 월 중에 퇴비를 만들기 시작한다. 밭을 일구고, 씨를 뿌리고, 작물
을 가꾸고, 수확하여 밥상에 올리는 이 수업 과정에 순환과 퇴비라는 주제가
처음 더해졌을 때 아이들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난감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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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만큼 모아 와야 해?”
“그런데 어디에 모아?”
얼마만큼, 어떻게, 언제, 누가 모아 와야 하는지, 질문과 의견도 쏟아졌다.
더구나 여자아이들은 아주 거세게 반발했다.
“남자애들은 편할 텐데 여자애들은 힘들단 말이야.”
“그래도 남녀가 공평하게 모아 와야지.”
뜻하지 않게 남녀로 패가 갈려 치열한 공방과 함께 회의까지 했다. 회의 끝
에 먼저 남자아이들만 모아 오기로 결정했다.
다 모은 오줌을 학교로 가져오는 것도 문제였다. 차 안에서 새기도 했고, 손
과 신발 같은 데 묻기도 했다. 또 교실에 둘 수 없어 페트병에 담아 텃밭에 모아
둔 오줌을 저학년 아이들이 호기심으로 열어 보기도 했다.
쉽지는 않았지만 기어코 아이들은 오줌을 모아 와서 그해 농사에 이롭게 썼
다. 해가 거듭하면서 한약찌꺼기, 말똥 그리고 생태 뒷간까지 다양한 재료와
방식으로 퇴비 만들기 수업이 발전할 수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의료 생협을
찾아가 한약찌꺼기를 얻어 올 수 있었고, 학교 근처에 있는
승마장도 찾아가 말똥을 수레에 실어 가져오기도 했다.
“다 쓴 찌꺼기고 똥인데도 신기하게 냄새가 안 나.”
“그냥 버려지는 것들을 다시 쓴
다는 게 신기해.”
처음 퇴비 수업을 할 때와
는 사뭇 다른 반응을 보이며
아이들은 이 수업에 참여했
다. 학교 텃밭 옆 작은 공간에 퇴
비장도 만들어 그동안 얻어 온
한약찌꺼기와 말똥을 모아 오줌을 페트병에 모아
퇴비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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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기도 했다. 사실 이러한 과정으로 단순히 순환이라는 주제만 배울 수 있었
던 것은 아니다. 가끔 아이들은 우리 학교 밭과 학교 둘레에 있는 밭을 비교하
곤 했는데, 농약과 화학비료를 쳐서 크고, 열매도 많이 달린 작물을 부러워하
기도 했다. 때문에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친환경 농사를 지으며 작물
도 잘 자라게 하는 이 퇴비 만들기 수업은 매우 이로웠다.
09 같이 전해 주면 되잖아! 농산 물 나누기
월 초, 아이들의 손에 한가득 잎채소
가 들려 있었다.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
는 할머니의 얼굴에는 기특함과 대견
함, 고마움이 가득했다. 정성 들여 기르
고 기른 잎채소를 거둬들여 아이들과
함께 찾아간 곳은 이웃 고물상. 텃밭에
필요한 물을 얻어 쓰기도 했던 고물상
에서 우리가 기르고 거둬들인 농산물
을 함께 나누는 뜻있는 시간이었다.
“누가 전해 줄까?”
“내가 줄래.”
“싫어. 나도 줄 거야.”
“그럼 같이 전해 주면 되잖아.”
고물상으로 가기 전, 서로 수확물을 손수 전하고 싶은 마음에 손을 치켜드
아이들은 놀이라도 하듯 고구마를 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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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아이들이 대견하기도 했다. 아이들
은 고물상뿐 아니라 학교 옆 공장과 주
유소에도 농산물을 나누어 주며 나눔
의 기쁨과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아이들에게 가장 즐거운 시
간은 정성 들여 가꿔 온 작물을 거둬들
이고, 먹는 시간이지 않을까. , 월에
는 잘 자란 잎채소를 뜯어 쌈을 싸 먹거
나 겉절이를 만들어 먹기도 하고, 고추
와 오이를 따서 쌈장에 찍어 먹기도 한
다. 월과 월에는 땅속 감자와 고구
마를 캔다. 아이들은 마치 보물찾기라
도 하듯 곳곳을 샅샅이 뒤진다. “이게
제일 크다.” “이건 너무 작아.” “이건 하트 모양이야.” “아, 부러졌다.” 마치 놀
이를 하듯 감자와 고구마를 캐기도 한다. 월에 빨갛게 잘 익은 토마토를 따
서는 아껴 먹으려고 주머니에 넣어 두었다가 터지는 경우도 생기고, 몰래 다른
사람 텃밭에서 토마토를 따 먹다가 회의가 소집되기도 한다. 월, 속이 꽉 찬
배추를 거둬들여 두 팔에 하나씩 끼고는 기념사진을 찍기도 하고, 입 주변이
빨개지도록 생김치를 주워 먹어 가며 김장을 하기도 한다. 가끔 수확물이 시
원치 않을 때도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그 자체만으로도 신나는 시간이다.
“내가 먹어 본 토마토 중에 제일 맛있어.”
“고추는 이렇게 한 번도 안 먹어 봤는데 먹어 보니깐 맛있네.”
“김치는 매운데 자꾸 먹게 돼.”
어디서 돈 주고도 사 먹을 수 없는 맛을 느낄 수 있는 그 시간은 아이들에게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다.
이웃 고물상 할머니가 농산물을 나눠받고
대견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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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살펴보고, 만져 보고, 고랑을 따라 걷는 아이들 작 물과 함께 자라는 아이들
텃밭은 자라는 곳이다. 씨앗이 자라고, 싹이 자라고, 열매가 자라고 그리고 아
이들이 자라는 곳이다. 어릴 때부터 쌀 한 톨, 채소 한 잎, 열매 하나하나로 만
들어지는 밥상의 소중함을 배울 수 있는 곳이고, 한 사람이 삽질을 하면 다른
한 사람은 호미질을 하며 협동을 배울 수 있는 곳이다. 땀 한 방울과 힘을 들
여 노동의 성취감과 보람을 배울 수 있는 곳이고, 우리 몸에서 나온 오줌과 똥
으로 퇴비를 만들면서 우리도 자연의 일부임을 배우는 곳이다. 그리고 작물과
아이들이 편안하고 자유롭게 관계를 맺어 가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한 곳이
바로 텃밭이고, 그러한 것들을 담아내는 수업이 텃밭 가꾸기 수업이다.
산어린이학교에서 이제 텃밭 가꾸기 수업은 수업이라기보다는 일상생활이
된 듯하다. 학교 안 텃밭과 학교 밖 산어린이쑥쑥농장*에서 전교생이 모두
농사를 지으며 이 수업이 가져다주는 의미와 가치를 모두 함께 누리고 있다.
곳곳에서 작물들이 자라고 있고, 틈틈이 아이들이 자유롭게 작물들을 가꾸
고 있다. 그러면서 아이들도 자라고 있다.
가끔 수업 아닌 시간에도 텃밭에서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을 보게 된다. 쉬
는 시간, 점심시간, 방과 후 시간같이 자유롭게 지낼 수 있는 시간을 텃밭에서
보내는 아이들이 있다. 그런 아이들은 가끔씩 스스로 밭일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그냥 밭에 ‘있는’ 것이다. 곳곳에서 자라는 작물을 살펴보기도 하고,
익어 가는 열매를 만져 보기도 하면서 고랑을 따라 천천히 걷기도 한다. 반드
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그렇게 텃밭 안에서 편안하게 보고 만지고 걷는 아이
* 산어린이학교에서는 학교 앞에 버려져 있던 땅을 2012년부터 시에서 빌려 ‘산어린이쑥쑥농장’을 만들었다. 학교 텃밭보
다 몇 배나 더 큰 밭이 생겨 학생, 학부모, 교사 모두 조그마한 텃밭을 한 곳씩 분양받아 함께 농사 지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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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까지도 편안하게 만든다. 그리고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텃밭 속의 작물과 아이. 어쩌면 이 수업을 하면서 가장 큰
성과는 그러한 장면을 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가 시켜서
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해서 텃밭으로 가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꼭 무언가를 하지 않더라도 편안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
이것이 이 수업을 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보람이다. 이것이 바로 산어린이학교
에서 하는 텃밭 가꾸기 수업인 것 같다.
이 수업을 하면서 밥상의 소중함을 배울 수 있었고, 노동의 가치와 기쁨을
느낄 수 있었으며, 분업과 협업으로 공동체성을 기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이
제는 이 수업 속에서 ‘관계’ 라는 요소를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다. 인간과 인간
의 관계 속에서는 갈등도 생기고, 상처도 주고받지만 인간과 작물, 더구나 아
이들과 작물은 어떠한 갈등도, 어떠한 상처도 없이 자유롭고 편안하게 관계를
맺을 수 있었고, 그 관계 속에서 아이들은 편안하게 자랄 수 있었다.
가끔 수업 아닌 시간에도 텃밭에서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을 보게 된다. 아이들은 작물을 살펴보기도 하고, 익어 가는 열매를 만져 보기도 하면서 고랑을 따라 천천히 걷기도 한다. 반드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그렇게 텃밭 안에서 편안하게 보고 만지고 걷는 아이들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까지도 편안하게 만든다.
옛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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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희 달요대기. 어린이도서연구회와 글쓰기교육연구회에서 일하며 배웠다. 어린이와 옛날이야기에 관심이 많으며,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아이들의 감성을 키우는 문학 교육으로 옛날이야기만 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시골에서 텃밭
을 가꾸며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모시 짜는 여자, 소쿠리 짜는 남자
재주 있는 여자
<재주 있는 여자>는 재주 있는 한 여성이 자기 재주에 걸맞은 재주를 지닌 남
성을 찾는 이야기입니다.
옛날에 하루아침에 모시 세 필을 짜는 처녀가 있었어요. 처녀는 자기는 이
런 재주가 있으니 자기한테 걸맞은 재주를 지닌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해요. 남
성들이 이 여성한테 장가들기는 쉽지 않아 보이지요? 아니, 웬만한 남성은 이
여성 눈에 차지 않겠지요. 재주 있는 남자는 나타나지 않고, 아버지는 딸을 시
집보내려고 마을에 방을 붙입니다. 남자들이 찾아오지만, 처녀는 콧방귀도
안 뀝니다. 이 여성의 결혼담은 과연 어떻게 펼쳐질까요.
087모시
짜는
여자, 소
쿠리
짜는
남자
옛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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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재주 있는 여자>를 봤을 때는 옛날이야기에 이런 이야기가 다 있
구나 싶어, 참 놀라웠어요. 여성이 자기한테 어울리는 배우자를 찾기까지 오
랜 세월 끄덕 않고 자존감을 지켜 나가는 이야기가 어떻게 남성 지배 사회에
서 나왔지, 싶었거든요. 물론 이런 뜻이 담긴 옛날이야기는 많지만, 여자 스스
로 ‘나만큼 재주 있는 남자하고 결혼할 거야’ 하고 드러내놓고 말하는 이야기
는 그리 흔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놀랍고도 이상했어요. 그러다 그런 시대니
까 이런 이야기가 나왔겠지, 싶었어요. 이야기는 언제나 희망, 바람을 이야기
하니까, 결핍된 것을 채우려 만들어지니까 당연히 여성이 억압된 사회에서 나
올 수밖에 없는 이야기지, 싶었지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그건 아니다 싶었어요. 옛날이야기가 꼭 남성 중심
사회에서 나온 것은 아니잖아요? 옛날이야기의 배경 하면 우리는 인류의 역
사 가운데 어느 시기를 떠올릴까요? 옛날이야기 그림책을 보면 우리나라 옛
날이야기는 대부분 그 시대 배경이 조선 시대로 나와요. 그렇다면 정말 우리
나라 옛날이야기는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그때 나온 이야기일까요? 그건 단
연코 아니지요. 어린이 그림책 작가의 얕은 상상력에 이럴 때는 가끔 분노가
치밀어 올라요. 아이들의 상상력을 이렇게 철저하게
막아 버릴 수 있나, 누가 먼저 시
작했는지 모르지만 한 사람이 그
렇게 시작했다고 대부분 아무
생각 없이 우리나라 옛날이
야기의 시대 배경을 무조
건 조선 시대로 만들어
버리나 싶어 화가 나거
든요. 모르지만, 이야
기가 만들어진 시기는
옛이야기
088 까마득한 인류의 기원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겠어요? 그렇다면 옛날이
야기에는 그 오랜 인류의 경험이 녹아 있을 거예요.
인류의 오랜 역사 가운데 모계사회가 차지하는 비중이 더 크고, 현대는 남
성 중심 사회지만 실제 우리 일상은 여성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나요? 대부분
인간관계를 잘 맺지 못하고 자기중심으로 살아서 이야기를 나눌 줄 모르는 남
성들보다 인간관계를 잘 풀어 가고 이야기를 나눌 줄 여성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는 건 당연하다 싶어요. 생활이 어려울 때도 그 어려움을 이겨 내기 위
해 팔다리 다 걷어붙이고 이 일 저 일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이들은 대부분 여
성들, 아줌마들이잖아요. 남성들은 권위 의식과 허세 때문에 물불 가리지 않
고 달려들지 못하지요. 권위와 허세 때문에 이것저것 다 가리는 남성들은 사
실 참 약하고 어리석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들은 그 때문에 사람도 잘
만나지 못하고, 이야기를 나눌 줄도 모르는 거잖아요. 그러니 우리 일상은 용
감한 여성,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여성 중심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
이 들어요(제가 너무 남성을 비하하고 있나요?). 당연히 현실에서는 이런 여성들한
테 어울리는 남성이 흔치 않을 테니 여성이 자존감을 지키며 당당하게 자기
짝을 찾아가는 <재주 있는 여자> 이야기는 그리 놀랄 만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일상이 그대로 드러난 당연한 이야기다 싶었어요.
그런데 또 이런 생각도 했답니다.
<재주 있는 여자> 이야기는 임석재가 채록한 열두
권짜리 옛날이야기 책(《한국구전설화》)에 딱 두 편만 나오
거든요. 아직 다 보지는 못했지만, 《한국구비문학대계》
나 다른 책에서도 거의 볼 수 없어요. 그렇게 보면 이 이
야기는 기원이 그리 오래 된 이야기는 아니다 싶어요.
당연히 여러 지역으로 퍼져 나갈 시간이 모자랐
겠지요. 세 번 되풀이구조가 살아 있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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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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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
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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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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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치밀하게 짜여 있는 걸 봐도 그렇다 싶고요. 처음 제가 이 이야기를 본 건 연
변 조선족 사회에서 출간한 옛날이야기 책에서였어요. 짜임새가 치밀하고, 당
당한 여성의 모습이 대놓고 잘 나타나 있어서 현대 사회주의 국가에서 일부러
만든 이야기인가, 의심도 했어요. 헌데 임석재 채록 본에 나온 걸 보고 그건 아
니다 싶었지요. 어찌 되었든 이 이야기는 그렇게 기원이 오래 된 이야기는 아닐
거라는 데로 제 마음이 기울어졌어요.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남성 중심 사회
에서 만들어진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싶었지요. 일상이 그대로 드러나는 이야
기라기보다는 바람에 가까운 이야기겠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사실 일상과 바람을 어떻게 딱 나누어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일상에서 바람이 나오고, 바람은 다
시 일상이 되고 그런 거잖아요. <재주 있는 여자>
이야기의 배경이 어느 시대건 사람이 자기 짝을 찾
아가는 길은 예나 지금이나 참 험난하다 싶어
요. 더군다나 자기와 걸맞은 재주를 지닌 짝을
찾아가는 길이라니!
아버지가 방까지 붙였지만 장가들겠다는 남자가 없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
느라 몇 년 세월이 그냥 흘러갑니다. 그동안 이런저런 남성을 만나 보았지만
마음에 딱 차는 사람이 없었어요. 하루아침에 기와집 한 채를 짓는 재주가 있
다고 하는 남자한테 마음이 가기도 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문고리를 거꾸로
달아 놓은 걸 보고는 진정한 재주가 아니라고 퇴짜를 놓습니다. 하루아침에
벼룩 서 말을 잡아 코에 코뚜레를 꿰어 말뚝에 줄줄이 매달아 놓는 재주가 있
옛이야기
090 다는 남자한테도 솔깃하지만, 결국에는 그 서 말 벼룩 가운데 딱 한 마리를 코
가 아닌 모가지를 꿰어 말뚝에 매달아 놓은 걸 보고는 이도 진정한 재주가 아
니라며 차 버립니다. 얼마나 대단한 재주를 가졌다고 이렇게 사람을 무시하는
지, 콧대가 얼마나 높은지 참 혀를 내두를 만합니다.
이제 온 마을에 소문이 나고, 온 나라에 소문이 나서 이 처자한테 명함조차
내미는 남자도 없습니다. 웬만한 재주가 있다손 치더라도 퇴짜 맞을 게 뻔한
데 재주도 없는 주제에 명함을 들여 볼 만한 용기가 나겠어요? 남자들이 보기
보다는 용기도 없고 겁도 많잖아요. 그보다 소문만 듣고는 ‘그런 콧대 높은 건
방진 여자한테 뭣하러 장가들어!’ 하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남자들이 더 많지
않았을까요. 결혼하면 남자들이 가장 잘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똑똑한 여자
하고 사는 게 아니야’라잖아요. 남자들은 자기 권위가 상할까 봐, 자기 소유물
로 만들지 못할까 봐, 사사건건 자기한테 훈수를 둘까 봐 재주 있는 이
처자한테 청혼할 생각을 아예 안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서 말은 이렇게 폼 나게 하겠지요. “난 그렇게 콧대 높은
여자 싫어! 사람이 좀 겸손해야지!”
그러나 처녀는 사실 콧대가 높은 것도, 겸손하지 않
은 것도 아닙니다. 다만 자기와 어울리는 재주를 가진
남자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지요. 그게 남다를
뿐이지요. 그 하나만 채우면 더 바
랄 게 없는데요. 그리고 그
재주가 어떤 재주인
지 사람들은 정
말 깊이 생각해
보았을까요? 베 짜는
재주가 무얼 뜻하는지요!
공동육아
통권
109호
현실과 타협하지 못하는 불온한 인간들,
외로운 인간들, 그들이 옛날이야기의 주인공이고, 그들이 세상을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모시
짜는
여자, 소
쿠리
짜는
남자
091옛이야기
처녀는 늙어 갑니다. 이쯤 되면 보통 자
기 뜻을 꺾고 현실과 타협할 만한데,
이 처자는 그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
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내 뜻에 맞
지 않는 사람과 사느니 죽는 게 낫다! 얼마나
절박하고, 얼마나 당당합니까? 얼마나 애틋하고 얼
마나 매력 넘칩니까? 그러나 얼마나 가슴 아픕니까? 이런 당당
한 여성한테 어울리는 남성이 없다니!
현실에 발붙일 수 없는 인물, 재주가 너무 뛰어나거나 너무 모자라서, 가진
게 너무 많거나 너무 없어서, 너무 똑똑하거나 너무 바보라서, 너무 행복하거
나 너무 불행해서 현실과 어울리지 못하는 인물, 이런 인물이 옛날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그래서 이 인물들은 현실의 벽을 뛰어넘어 새로운 세상으로 나
아갑니다. 이들 때문에 세상은 새로 창조되고, 우리 삶은 한 단계 더 높은 곳으
로 나아갑니다. 현실과 타협하지 못하는 불온한 인간들, 외로운 인간들, 그들
이 옛날이야기의 주인공이고, 그들이 세상을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자, 그렇다면 이 처자도 이 세상이 아닌 저 세상에서 자기 짝을 만날 수 있겠
지요. 처녀는 높은 산에 올라가 치마를 뒤집어쓰고 아래로 뛰어내립니다. 온
몸을 던져 천 길 낭떠러지를 지나 그 세상으로 갑니다. 자기한테 어울리는 짝
을 찾아가는 길인데 천 길 낭떠러지를 거쳐 가는 일쯤이야, 당연히 이겨 내야
옛이야기
092 겠지요. 그곳에서 처녀의 짝이 처녀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 사람이 누군
지는 상관없어요. 옛날이야기의 화법대로 처녀한테 딱 맞는 사람, 딱 어울리
는 사람, 딱 그 사람인 사람이 꼭 필요한 순간에 떡 나타날 테니까요.
한 스님이 우연히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처녀를 보고 절에 뛰어 들어가 낫
을 들고 대나무밭으로 달려갑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대나무를 베어 가마솥
에 넣고 찐 다음 소쿠리를 짜서 처녀가 떨어지는 데로 뛰어옵니다. 마침 처녀
몸이 땅에 곤두박질치려던 참이었고, 스님은 딱 그 순간에 소쿠리로 처녀를
받습니다. 퍽 소리에 정신을 차린 처녀는 스님 말을 듣고 이 스님이야말로 자기
가 찾던 재주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처녀는 스님한테 자기하고 같이
살자고 합니다.
처녀는 하루아침에 기와집을 한 채 짓거나, 벼룩 서 말을 잡아 코를 줄줄이
꿸 수 있다고 허세를 떨지만 실제로는 남을 속이기만 하는 허황한 재주를 가
진 사람보다 이렇게 일상에서 꼭 필요할 걸 제때 만들어 쓸 줄 아는 재주를 지
닌 사람이 정말 진국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거지요. 가장 뛰어난 재주는 바로
이런 재주가 아닐까요? 처녀가 가진 재주도 베를 짜는 재주니, 삶에 필요한 것
을 만들 줄 아는 재주잖아요. 그걸 사람들이 몰랐을
뿐이지요. 처녀는 헛된 영화를 바란
게 아니라 생활을 스스로 꾸릴 줄
아는 건강하고 성실한 남자를 찾
았던 것뿐인데, 사람들은 그 진정을
모르고 허세와 속임수로 꾀려 한
거지요. 세상에는 허황한 재주로
사람을 속이고 자기 뱃속을 채우려는
사람은 많지만, 소박하고 건강하게 삶을 꾸려
가는 재주 있는 사람은 그리 많은 것 같지 않습니다.
093모시
짜는
여자, 소
쿠리
짜는
남자
옛이야기
공동육아
통권
109호
세상에는 허황한 재주로 사람을 속이고 자기 뱃속을
채우려는 사람은 많지만, 소박하고 건강하게 삶을 꾸려 가는 재주 있는 사람은 그리 많은 것 같지 않습니다.
처녀가 같이 살자는데 싫어할 중이 있을까요? 둘은 알콩달콩 잘 살았답니
다. 천생연분이네요. 쓸모 있는 재주를 가진 두 사람이 첫눈에 반해 같이 살게
되었으니 천생연분 아니고 무엇입니까.
<재주 있는 여자> 이야기는 굽히지 않고 온몸
을 던져 자기 뜻을 이룬 한 여성의 길고도
애틋한 드라마입니다. 당당함 안에 숨어
있는 외로움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깊
었겠지만, 마침내 그 외로움을 보상받을
수 있을 만큼 뜻을 이루었네요.
옛날에 어떤 처녀가 살았는데, 하루아침에 모시를 세 필이나 짜는 재주가 있었대
요. 처녀는, 자기는 이렇게 하루아침에 모시를 세 필이나 짜는 재주가 있으니까 자
기만큼 재주 있는 사람한테만 시집을 가겠다고 했대요.
처녀 아버지가 듣고 보니 참 맞는 말이거든요. 아버지는 사윗감을 찾아 나섰어
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어디 흔해요? 하루아침에 모시 세 필을 짤 만큼 부지런하고
일 잘하는, 재주 있는 사람이 어디 그리 흔하냐고요?
아버지가 아무리 찾아도 재주 있는 총각은 없고, 시간은 자꾸 흘러갔어요. 이러
옛이야기
094 다가는 딸이 시집도 못 가고 늙어 죽을 것 같아요. 아버지는 생각다 못해 마을에 방
을 붙였어요. 자기 딸이 하루에 모시 세 필을 짜는 재주가 있으니 이만큼 재주 있는
총각을 사위로 삼겠다고요.
그렇지만 방을 붙인다고 없던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나요.
방을 붙인 지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도 아무도 안 찾아와요.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석 달이 지나도 아무도 안 와요.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나고 삼 년이 다 지나가려고 하는데도 누구 하나 장가
들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요.
방을 붙인 지 삼 년이 되기 딱 하루 전날, 드디어 어떤 총각이 찾아왔어요. 자기는
하루아침에 기와집 한 채를 짓는 재주가 있대요. 처녀는 정말 그런 재주가 있는지
봐야 한다면서 기와집을 지어 보라고 했어요. 총각이 그런다고 했지요.
다음 날 새벽에 해가 뜨자마자 총각이 벌떡 일어나더니 산으로 후닥닥 뛰어가서
나무를 베서 톱으로 자르고 자귀로 깎고 대패로 밀고 하더니 아침 먹기 전에 세 칸
기와집을 포로롱 날아갈 듯이 지어 놓는 거예요.
처녀 아버지가 보니 기가 막히거든요. 딸한테 총각이 하루아침에 기와집 한 채를
짓는 재주가 있으니 결혼하라고 했어요. 처녀는 자기가 집을 검사해 보고 결정하겠
대요. 처녀가 이리저리 요리조리 살펴보니 포로롱 날아갈 듯한 세 칸 기와집을 정말
잘 지어 놓았거든요. 이만한 재주가 있는 사람도 드물다 싶어 고개를 끄덕이려는 순
간, 문고리 하나가 거꾸로 달린 게 눈에 떡 들어오잖아요.
처녀는 고개를 가로저었어요. 문고리 하나 제대로 못 다는 이런 사람한테 어떻게
시집을 가냐고요. 처녀 아버지는 총각을 보내 버렸어요.
하루아침에 기와집 한 채 짓는 총각이 퇴짜 맞았다는 소문은 담을 넘고 산을 넘
어 온 나라에 퍼져 나갔어요.
또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사흘이 가도 처녀한테 장가들겠다고 찾아오는 남자
가 없어요.
095모시
짜는
여자, 소
쿠리
짜는
남자
옛이야기
공동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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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호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고 석 달이 가도 아무도 안 찾아오지요.
일 년이 가고 이 년이 가고 삼 년이 다 가려고 하는데 장가들려는 남자는 코배기
도 안 보여요.
삼 년이 되기 딱 하루 전날 드디어 총각 하나가 찾아왔어요. 자기는 하루아침에
벼룩 서 말을 잡아서 코에 코뚜레를 꿰어 말뚝에 줄줄이 매달아 놓는 재주가 있대
요. 처녀는 정말 그런 재주가 있는지 봐야 한다면서 총각한테 벼룩 서 말을 잡아 코
에 코뚜레를 꿰어 말뚝에 줄줄이 매달아 보라고 했어요. 총각이 그런다고 했지요.
다음 날 새벽에 해가 뜨자마자 총각이 벌떡 일어나더니 온 집안을 이리저리 요리
조리 깡충깡충 폴짝폴짝 뛰어다니면서 벼룩 서 말을 잡아 코에 코뚜레를 꿰어 말뚝
에 줄줄이 매달아 놓았어요.
처녀 아버지가 보니 기가 막히거든요. 딸한테 총각이 하루아침에 벼룩 서 말을
잡아 코에 코뚜레를 꿰어 말뚝에 줄줄이 매달아 놓는 재주가 있으니 결혼하라고 했
어요. 처녀는 확실하게 알아봐야 한다면서 자기가 살펴보겠다고 했어요.
처녀가 이리저리 요리조리 살펴보니 정말 벼룩 서 말을 코에 코뚜레를 꿰어 말뚝
에 매달아 놓았거든요. 이만한 재주가 있는 사람도 드물다 싶어 고개를 끄덕이려
는 순간, 끝에서 두 번째 벼룩을 코가 아니라 목에 코뚜레를 꿰어 말뚝에 매달아 놓
은 게 눈에 떡 들어오잖아요. 처녀는 고개를 가로저었어요. 코가 아니라 목에 코뚜
레를 꿰는 사람한테 어떻게 시집을 가겠냐고요. 처녀 아버지도 총각을 보내 버렸어
요. 벼룩 잡는 총각까지 퇴짜 맞았다는 소문은 담을 넘고 산을 넘어 온 나라에 퍼져
남자란 남자는 아무도 찾아오질 않았어요.
처녀는 자꾸 늙어 갔어요.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사흘이 가도 장가들겠다고
찾아오는 남자가 없는 거예요.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고 석 달이 가도 방을 보고 찾아오는 남자가 없어요.
일 년이 가고 이 년이 가고 내일이면 삼 년이 다 되는데 처녀한테 장가들겠다고 하
는 남자는 아무도 없었어요.
옛이야기
096
이 글은 《한국구전설화》 3권 287쪽, 8권 204쪽에 나온 이야기를 바탕으로 다시 썼습니다.
그림은 《재주 있는 처녀》 (김향금 글, 이수진 그림, 시공주니어)에서 나들이해왔습니다.
처녀가 생각해 보니 이 세상에는 자기한테 어울리는 재주 있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아요. 그러니 시집갈 생각은 말아야 하는 거잖아요. 시집도 못 가고 늙어 가느니
차라리 죽어 버리는 게 낫겠다 싶어 집을 나와 높은 산에 올라가서 치마를 뒤집어
쓰고는 눈을 딱 감고 천 길 낭떠러지로 뛰어내렸어요. 그런데 갑자기 퍽 하는 소리가
나는 거예요. 깜짝 놀라서 눈을 떠 보니 웬 스님이 자기를 소쿠리에 받아서 들고 있
어요. 하도 이상하고 요상해서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어요.
스님은 자기가 시주 나갔다가 절에 돌아오는데 벼랑에서 사람이 떨어져서 후닥
닥 절로 뛰어 들어가서 낫을 들고 대나무밭으로 달려가서 대나무를 베다 가마솥에
쪄서 소쿠리를 만들어 가지고 번개처럼 뛰어와 받았다는 거예요.
처녀가 스님 말을 들으니까 딱 이 사람이다 싶거든요. 하루아침에 기와집 한 채
짓는 재주나, 하루아침에 벼룩 서 말을 잡아 코를 꿰뚫어 말뚝에 줄줄이 매달아 놓
는 재주보다 이렇게 소쿠리가 딱 필요한 순간에 소쿠리를 만들어 와서 죽는 사람 살
리는 재주가 진짜 재주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스님한테 자기하고 같이 살자
고 했어요. 자기는 하루아침에 모시를 세 필 짜는데, 거기 어울리는 재주 있는 사람
을 찾아다녔다고요. 그런데 그런 남자가 없어서 죽으려 했다고요.
스님이 처녀가 같이 살자는데 싫다고 하겠어요? 얼른 좋다고 하고는 둘이 혼인해
서 잘 살았대요. 모시 짜는 여자와 소쿠리 만드는 남자가 만났으니 날마다 깨소금
쏟아지듯 모시와 소쿠리가 줄줄이 쏟아지겠네요.
작은
우주
두레박의
097공동육아
통권
109호
등빨간뿔노린재입니다.
세밀화를 그릴 때 살아 있는 곤충은 그리기 어려워 주로 사진을 보고 합니다.
형태를 잡고 색연필로 색을 담을 때 몹시 힘들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지금도 어려운 상황이 닥쳐 올 때면 이 그림을 잠깐 꺼내 보고 힘을 얻습니다.
공동육아 선생님들, 모두 힘내세요!
박재형 두레박. 서울 동글동글어린이집 교사
도전
098
날적이
날적이에는 터전에서, 가정에서 아이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자라는 모습이 보입니다. 아이를 두고 교사와 부모가 이야기를 나누면서
함께 성장해 가는 모습 또한 보입니다. 그야말로 살아 있는 ‘교육 일기’라 할 수 있지요.
공동육아에서 날적이를 만든 뜻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아이의 모습을 제대로 기록하자는 뜻에서 이번 호부터 ‘날적이’ 꼭지를 마련했어요.
많이 관심 기울여 주시고, 함께 보고 싶은 우리 아이의 날적이가 있으면
편집부로 알려 주면 좋겠습니다.
이번 호부터는 재현이의 날적이를 싣습니다. 재현이는 19개월부터 일곱 살까지인
2005년 3월부터 2010년 2월까지 서울 우리어린이집에서 자랐습니다.
다른 관계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일까
궁금해집니다
099다른
관계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일까
궁금해집니다
날적이
공동육아
통권
109호
2005년 3월 29일 불 날에
재현이는 엄마가 가시고 난 뒤 엄지 품에 안겨 터전 이곳
저곳을 살폈다.
“엄마~”
“엄마 일하러 가셨어” 하고 말하니 더욱 “엄마~” 하며
운다. 재현이를 안고 마당으로 나가니 금세 눈물 뚝.
“재현아, 엄마 차가 없네! 엄마 일하고 금방 온다? 아니
일찍 온다고 했어.”
“엄마~~~~~~.”
“잉?”(엄마 외에 나머지 말들은 뭐라고 했는지 잘 못 알아들음)
석주, 석준이와 재현이는 점퍼를 챙겨 입고 마당에서
모래놀이를 했다. 재현이는 모래놀이를 많이 해 보지 않
았는지 선뜻 모래를 만지지 않는다. “재현아, 우리 여기다
밥상을 차려 보자” 하니 그제야 모래밭으로 들어온다. 한
분쯤 놀았을까? 재현이가 “추오, 추오 ” 하며 현관
문 쪽으로 간다. “이제 그만 놀래?!” 물으니 고개를 끄덕
끄덕.
모래놀이를 짧게 하고 나서 터전 안으로 들어와 그림
그리기를 하다가 꽃잎이 주시는 딸기 한 입 배 한
입 맛있게도 먹는다. 재현이 엄마 말씀대로 어린이집
생활을 해서인지 제법 적응하는 모습이 정말 기특하고 예
쁘다.
맛있는 점심밥. 어제 모습과 달리 밥을 잘 먹는다. 밥 먹
다가 움직이는 모습도 없고 .
재현아, 내일은 엄마랑 웃으면서 헤어지자
터전에서
100
날적이
책도 보고 놀다가 시 분쯤 잠을 자러 석주, 석준이
와 눕는데 그제야 엄마 생각이 나나 보다. 큰 목소리도 아
닌 작고 흐느끼는 목소리로 “엄마~” 하며 누워 있다. 엄
지가 자장가 노래를 불러 주니 조금씩 눈이 껌벅~껌벅 금
세 잠이 든다.
분 후, 조금은 터전이 낯설었는지 깊이 자지 못하고
깬다.
“재현아, 내일은 엄마랑 웃으면서 헤어지자.”
안녕하세요
재현이의 첫 번째 날적이를 쓰게 되어 무지무지 기쁘고 설레
기도 합니다. 우리 재현이의 추억을 이 날적이에 많이많이 담
았으면 좋겠고요. 재현이 엄마, 아빠와도 많은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소통의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시 반에 잠드는 걸 보니 오늘 터전에서 재밌게 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개월 들어서면서 시 전후로 잠들
던 습관이 ~ 시로 바뀌었는데, 오늘은 일찍 잠들었
으니 말이지요. 게다가 점심도 많이 잘 먹었다고 하시고.
저녁에도 평소보다 많이 먹고 딸기도 혼자서 개를 먹었
답니다. 역시 공동육아 터전에서는 에너지를 많이 쓰는
듯해요.
아침에 재현이의 불안한 모습을 보고 조금 걱정이 되기
도 했지만 엄지, 별님이 계시고, 재현이도 곧 익숙해지리
재현이가 다른 관계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일지 궁금하고 기대도 됩니다
집에서
101다른
관계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일까
궁금해집니다
날적이
공동육아
통권
109호
라는 믿음에 발걸음이 그리 무겁지는 않았답니다. 역시나
날적이를 보니 제 믿음이 그릇되지는 않은 것 같아요. 며
칠은 엄마랑 헤어질 때 울음을 보일지 모르겠지만 재현이
는 금세 익숙해질 거예요. 그때까지 자~알 달래 주세요.
그나저나 나들이 나갈 때면 석주, 석준, 재현이를 어떻
게 챙기실지 . 다른 건 몰라도 나들이 다니기가 엄지,
별님이 힘드실 거 같아요. 재현이는 아시다시피 바깥놀이
가 익숙하지 않답니다. 백일 이후부터 개월 정도까지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촌 형아랑 같이 키워 주셨고, 개
월부터 지난주까지 영아 전담 어린이집에 다녔는데, 어리
기도 하고 사정이 여의치 않기도 해서 모래놀이라든가 산
에 간다든가 할 기회는 거의 없었거든요. 한 한 달여쯤 전
부터 제가 퇴근하고 집으로 데리고 오면서 가까운 시장이
나 개천가를 다니긴 했지만, 아직 날씨도 덜 풀린 것 같고,
신발 신고 오래 걷기가 익숙하지 않아서 좀 걱정이
되네요.
이틀을 제가 재현이 대하는 모습을 보셨을 텐데요, 엄
지, 별님 보시기에 어떠셨는지 모르겠어요. 다른 아이들
에 비해 어리기 때문에 재현이를 더 챙겼는데 그게 다른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
예를 들어 어제 점심 먹을 때 재현이가 두세 숟가락 남기
고 딴청 피웠잖아요. 그때 제가 책 가져오라고 해서 다 먹
이긴 했는데 순식간에 아이들이 흐트러져서 . 하여
간 터전에서 엄지, 별님이 하시는 방식이 있으실 텐데 제
가 집에서 하는 방식과 다를 수도 있으니까 그런 점은 제
102
날적이
게 꼭 전달해 주시기 바래요. 일관성 있게 대해 주어야 재
현이도 헷갈리지 않을 테니 .
후후 이렇게 날적이를 적으니 좋네요. 재현이의 모
습이 눈에 선해요. 제가 아는 재현이가 다른 사람과의 관
계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일는지 궁금하고 기대도 된답니
다. 여리게 생긴 것 같은데도 성질(?)이 있더라고 하셨죠?
지금까지 막내 노릇만 했는데 터전에서도 막내라 그런 고
집은 쉽게 못 고칠 것 같아요. 그것도 자아 성장 과정의 일
부이니 귀엽게 봐 주셔야 할 것 같구요. 앞으로 기대가 많
습니다. 터전에 대해서, 재현이에 대해서, 엄지와 별님에
대해서 . 잘 부탁드려요~.
추신, 햇님이랑 곰돌이가 너무 이뻐요. 재현이도 자랑
스러워하고 좋아하네요(그림책이라고 생각하는 듯……).
2005년 4월 7일 나무날에
자꾸자꾸 눈물로 이야기하는 재현이 . 조금만 스쳐
지나가도 재현이는 “으앙~” 하며 손가락으로 자신을 밀
거나 조금 스친 아이들을 가리킨다. 도글이들도 석주, 석
준이도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닌데 재현이가 크게 울어 버
리니 당황해하기도 한다. “재현아, 너를 일부러 밀거나 한
게 아니야. 지나가다가 그런 것인데 ” 말해도 눈물바
다다. “그래 석주야, 너가 지나가다 밀어서 재현이가 조금
속상했나 보다 . 석주가 미안해, 해 주자” 하니 석주
재현아, 차근차근 우리 친해지자
터전에서
103다른
관계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일까
궁금해집니다
날적이
공동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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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호
가 재현이 머리를 만지며 “미안해” 한다. 그제야 맘이 풀
리는지 눈물을 그친다. 오늘 하루 재현이 눈물을 받았으
면 유리컵 한 잔쯤? 나왔을 것이다(너무 과장했나?!). 아무
래도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아직도 터전이 낯설어서
그런 거겠지. ‘터전 어른들은 재현이가 천천히 마음을 열
때까지 기다려 줄 테니까 재현아,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
겠다 . 차근차근 우리 친해지자. 엄지가.’
안녕하세요?!
오늘 재현이와 석주가 한바탕? 아니 재현이가 석주를 못마땅
하게 여겼는지 석주가 다가와도 자꾸자꾸 때리네요(아무 행동
도 안 했는데……). 재현이가 경계심을 넘어 석주를 자꾸 때리니
어른들이 재현이에게 “그러지 마…… 안 돼……” 하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석주, 석준, 재현이가 좀 더 편안하게 친해질
그날을 기다리며……. 참, 오늘 재현이는 도글이들과 함께 낮
잠을 잤어요. 그래서인지 어떤 건지 모르겠지만 한두 시간 조
금 못 되게 잠을 잘 잤습니다. 떡 맛있게 먹었습니다.
재현이가 오늘 기분이 별로였던 듯합니다. 집에 도착해서
오랜만에 시장에 같이 갔는데, 걷질 않고 안아 달라고 하
더군요. 힘들 때 그러는데 . 좀 있다가 귤을 사 주어
들고 가게 했더니 그제야 신이 나서 걸어갔어요. 오늘 나
들이를 안 간 것 같던데 그래서인지 집에 들어갈 생각을
안 하고 도망 다니다가 겨우겨우 데리고 들어왔네요. 그런
크는 과정이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집에서
104
날적이
데, 귤 달라고 찡찡 베드테이블을 간식 먹을 때 쓰는
데 저만치 치웠다고 찡찡 장난감을 집어던지고
텔레비전 켜 달라고 찡찡 계속 화를 내더군요.
재현이가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나 봐요. 보통 순한
편인데, 물건을 집어던지고 석주도 때리고 그러는 걸
보면 . 짜증 내는 모습을 보여 좀 걱정스러웠습니다.
엄마가 자기를 떼 놓고, 그것도 익숙하지 않은 곳에 떼 놓
고 가서 화가 난 것 같아요. 더구나 몸 상태도 좋은 편이
아니어서 조금만 닿아도 짜증이 나는 건 아닐까 . 집
에서도 지나가다 의자 모서리에 닿으면 울음소리를 내며
의자를 가리키곤 했거든요. 최대한 들어주고 안아 주고
달래 주었어요.
대개의 아이들이 밖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집에
서 위로받고 싶어 한다고 해요. 특히 공동육
아처럼 어릴 때부터 공동체 생활을 강
조하는 곳에서는 더더욱 스트레스
를 받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
서 등원한 지 얼마 안 되는 아이들
같은 경우 집에서 조금 난폭해지
곤 해서 부모들이 터전 생활을 불
안해하는 경우도 있었대요. 재
현이도 아마 그 과정이 아닐까
싶어요. 석주, 석준이한테
는, 도글이들에게도 미안
하지만 적응하는 과정에
105다른
관계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일까
궁금해집니다
날적이
공동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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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호
서, 크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일시적인 현상이니 조금 더
기다려 주었으면, 바래 봅니다.
재현이가 등원한 지 날수로 일을 지냈는데요, 한 가지
제안 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재현이는 아직 어금니가 없습니다. 아래위 개씩 이빨
이 개예요. 그래서 씹는 걸 잘 못 하지요. 집에서 밥을
먹을 때는 녹두, 찹쌀현미, 백미를 섞어서 약간 질게 해서
먹거든요. 그런데 터전에서 먹는 밥은 재현이가 먹기 힘
든 밥인 것 같아요. 그동안 터전에서 응가를 한 적 있는지
모르겠는데, 집에서 응가를 할 때 보면 먹은 게 그대로 나
와요. 오늘은 심지어 표면이 깨끗하게 보존된 팥 알갱이
들이 보이더라구요. 아무래도 터전에서 먹는 밥은 재현이
의 이빨 상태나 소화 장기에 비해 너무 거친 것 같아요. 현
미나 잡곡밥이 몸에 좋은 것이긴 하지만, 소화 장기가 미
처 성숙하지 못한 영아들에게는 적당하지 않은 것 같습
니다. 나중에 방 모임이 있을 때 다른 분들께도 한번 물어
보고 싶구요, 꽃잎에게도 여쭤 볼까 하다가 먼저 날적이에
적어 봅니다. 엄지가 꽃잎에게 먼저 물어봐 주셨으면 해
요. 부탁드릴게요.
재현이가 이 날적이 노트를 무척 좋아해요. 그저께는
“잠깐만 들고 있어~” “응” 했는데 아무리 달라고 해도
“안 돼!” 하고 껴안고 있더군요. 이 노트를 무엇이라고 생
각하는지 모르겠지만, 후후 아까 터전에서도 “날적
이 꺼내 와” 했을 때도 정확히 자기 것을 가져오는 걸 보면
앞 그림을 잘 외웠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성태숙구로파랑새
나눔터 지역아동
센터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106
학교
이야기
지역
공동체
선생님, 일루 와요! 여기 앉아요!“선생님, 일루 와요! 여기 앉아요!”
여동생 아이가 옆자리를 가리킨다.
“아니에요! 여기 앉아요! 여기!”
오빠도 질세라 얼른 소리를 지른다.
두 남매가 자기 옆자리를 두고 연신 같이 앉자며 손을 흔든
다. 다른 데가 아니라 꼭 여기 앉아야 한다는 뜻으로 의자를
탁탁 치기도 한다. 다른 아이들도 저마다 짝을 짓거나 홀로
버스 안에 자리를 잡는다. 몇몇이 혼자 앉은 모습이 보이지
만, 제 것이라도 되는 양 교사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는 두 아
이 때문인지 다른 아이들은 아무도 교사를 부르지 않는다.
“싫어! 선생님, 여기 앉을 거죠?”
참! 부끄럽게도 나를 두고 실랑이가 벌어진 것이다. 나를
107공동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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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호
학교
이야기
선생님, 일
루 와요!
지역
공동체
차지하는 게 뭐라도 되는 양 서로 기를 쓰고 싸우는 것을 보니 황송해서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다. ‘이렇게 사랑해 주지 않으셔도 되는데……. 그냥 두 분이
사이좋게 앉아 가시면 좋겠는데…….’ 오늘은 두 분이 어째 아무도 짝을 못 찾
고 이리 나를 불러대는지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서도 불타오르는 전의(戰意)를
감지하고 얼른 여동생 옆에 자리를 잡았다.
순간 판세는 곧 가름이 낫다. 의기양양한 얼굴로 금방 혀라도 빼 내밀 듯이
구는 여동생을 안전벨트를 매 준다는 구실로 온몸으로 막다시피 덮쳤다. “아
~ㄴ~안, 저~ㄴ~전, 베~ㄹ~벨, 뜨~으!” 하고 무슨 오뉴월에 늘어진 테이
프에서나 날 법한 소리를 질러 가며 안전벨트를 매고 있으려니, 여기저기서 이
게 웬 떡이냐 하고 눈이 번쩍 뜨인 아이들이 한 번 더 해보라 성화를 지른다. 그
냥 한 번 웃어 주시면 이게 먹히나 안 먹히나 하고 그냥 또 해 봤을 텐데, 모두
가 또 해 보라고 성화를 부리니 괜히 살짝 민망스러웠다. 통로를 돌아다니며
“아~ㄴ~안, 저~ㄴ~전, 베~ㄹ~벨, 뜨~으!” 하고 몇 번을 외치다 혼자 괜
스레 계면쩍어져서 그만둔다. 시킨다고 하려니까 괜히 부끄러운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아이들은 “또 해 봐요! 또!” 하고 성화다. 하지만 이젠 못 한다. 벌
써 부끄러워졌단 말이다.
자리다툼을 알고 다른 기관 선생님 한 분이 오빠 옆에 앉아 일단 버스가 출
발하는 걸 도왔다. 아침밥을 먹고 온 아이는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나마 남매
는 오늘 엄마가 약속 장소까지 데리고 오기도 하였고, 간식으로 과자도 가지
고 왔으니 형편이 나은 셈이다. 그러고 보니 아까 엄마는 두 아이를 나란히 앉
혀 달라고 했다. 오빠 가방에 간식이 다 들어 있으니 둘이 나란히 앉아야 나누
어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어찌 된 셈인지 여동생은 과자 봉지
하나와 음료수 한 병을 들고 따로 앉아서 이 사단이다. 음흉한 오빠 손아귀에
놀아난 것이지만 그때는 정신이 없어서 여동생도, 나도 이 사실을 까맣게 모
르고 있었다.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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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지역
공동체
안 먹으면 나 화낸다요!물론 나도 아침을 못 먹었다. 아이가 제 먹던 과자 하나를 내밀며 먹으란다. 나
도 좋아하는 바삭바삭하고 짭조름한 맛이 나는, 옥수수를 원료로 한 남미 음
식을 본떠 만든 바로 그 과자다. 한자리에 앉아서 한 봉지를 다 해치워도 늘 미
진했던 바로 그 과자다. 그걸 내게 내밀고 있다, 비록 한 조각이지만…….
나는 살짝 흥분했다. 이 아이가 뭔가 먹을 걸 내게 내밀 때 나는 늘 살짝 흥
분된다. 그건 아마도 첫 만남이 너무도 흉흉스러워 차마 이런 날까지를 예상
하지 못한 탓이 크다. 아이 엄마가 셋째를 낳았다고 해서 보러 간 날 늦은 아침
결에 부스스 일어나 날 바라보던 아이의 멀건 눈빛은 결코 쉬이 잊히지 않을
만한 것이었다.
지역 기관의 도움으로 방을 마련하여 친구 부부의 단칸방에 네 식구가 기거
하던 생활을 청산하고, 기초 생활 수급 대상으로 지정이 되어 한시름 놓았다
했을 때 아이 부모가 한 첫 번째 일이 아이를 낳는 것이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모두가 말리고 싶은 출산이었다. 부모가 되는데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
고 정해 놓은 법은 하늘 아래 없는 줄 잘 안다. 하지만 아이를 둘이나 낳아 놓
고 남편과 맘이 안 맞는다고 애를 두고 나간 엄마나, 그런 아이들을 나는 못 돌
본다며 바로 시설에 맡긴 아빠가 어느 틈에 사람이 변했다고 또 아이를 갖겠
다는 것인가 싶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렇게 맡긴 아이들을 우여곡절 끝에 다시 찾아온 지 채 년도 안 되
는 시점이다. 태어나 근 백일 만에 시설에 맡겨진 아이는 제 어미 품을 한 번도
온전히 차지해 보지 못한 채 새 동생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거기에 시설에서
부터 심했다는 야뇨증에 엄마가 기겁을 하는 바람에 아이는 더더욱 곁을 차지
하지 못하고 제 어미 둘레를 맴돌며 눈치를 보고 있던 참이었다.
사는 형편처럼 마음도 어수선한지 아이는 영 마음을 못 잡는 눈치였고, 사
납기도 하고 멍하기도 하고 화가 잔뜩 나기도 하고 겁을 집어먹은 것 같기도 한
109공동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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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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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선생님, 일
루 와요!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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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빛으로 늘 어수선하게 굴었다. 그런 아이를 결국 어린이집에서 못 본다 하
여 우리 파랑새에서 생전 처음으로 미취학 아동을 돌보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
나기도 했다.
처음에는 간간이 있다고 하는 아동학대가 혹시나 또 벌어지지는 않을까 하
여 아이를 좀 더 부모에게서 떼 놓을 요량으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나중에는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이런저런 문제로 더 이상 아이를 돌보는 게 도저히 어렵
겠다고 하여 온전히 파랑새에서 돌보게 된 것이다.
그런 대접이나 받는 아이였던지라 지금껏 관계를 쌓아 오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다. 누구를 믿고 누구를 사랑하는 일 따위는 아이에게 사치스런 말처럼
보였다. 아이는 먹고, 감추고, 눈치를 보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마음 따라 여
기저기 산만하게 뛰어다니기 바빴다. 먹고, 또 먹고, 또 먹으려 들었다. 마치
제 스스로가 제 자신의 어미가 되어 가여운 제 자신을 먹이는 것으로 보일 만
큼 먹으려 들었고, 스스로를 먹이려 들었다. 그런 아이가 이제 이만큼 자라 제
입에 들어갈 것을 굳이 내 입에 넣어 주려고 애 쓰는 모습을 보니 그 건강함과
여유로움에 마음이 아프도록 들뜬다. 이렇게 할 수 있구나 하고 고마워지는
마음이 뜨겁다.
“안 돼! 나 못 먹어. 우리 엄마가 과자 그만 먹으래!”
굳이 과자를 입에 넣어 주려는 아이 옆에서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고개를
흔든다.
“왜요? 그래도 먹어요! 안 먹으면, 나 화낸다요!”
안 먹겠다고 하니 꼭 먹이겠다는 오기가 발동한 것인지 아이도 성화가 났
다. 이 맛있는 걸 두고 왜 저러나 싶은가 보다. 구박받아도 뭐라도 하나 제 입에
넣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이리 선선히 주는데도 먹을 것을 거
절하니 어처구니없는 모양이다. 제 딴에는 큰 선심을 쓰는 것인데 말이다.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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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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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안 먹어!물론 받아먹고 말까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서너 개 받아먹고 으쓱
거리도록 두고 말까 잠시 고민도 했다. 하지만 오늘은 공연히 내가 예민해진
다. 먹는 것 그것 하나에 사족을 못 쓰는 우리 인생이 괜히 서럽다는 생각이 드
는 까닭이다. 물론 아이들은 모두가 조금씩은 다 그럴 것이다. 먹는 것에 유독
탐을 내는 아이들도 있을 수 있고, 오히려 맛있는 것에 무심한 아이가 있다면
그를 눈여겨보는 것이 맞다. 그만큼 먹는 일은 아이들에게 중요한 일이다. 그
러니 그 중요한 일에 공연히 왈가왈부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사랑이나 관심을 못 받은 아이들은 유난스레 먹을 것에 매달리는 경
우가 흔하다. 발달이 정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아이들 역시 포만감 같은
신호를 잘 느끼지 못해서, 그야말로 먹고 토하거나 아니면 탈이 날 정도로 많
이 먹으려 들기도 한다. 먹을 것을 중심으로 무엇이든 챙겨 놓고, 감춰 놓고,
더 달라고 조르고, 왜 나만 안 주느냐고 지레 삐지고 실쭉거리고 토라지는 일
이 부지기수다. “잠깐만”이라든지 “기다려”라는 말은 마치 “없어”나 “넌 안 줄
거야”로 들리는 것만 같다. 이런 아이들이 입에 달고 사는 소리가 “나만!”이
다. 물론 이 모두가 제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이 제일 가슴 아픈 일이다.
물론 아까 말처럼 좀 더 욕심을 내는 아이들이 어찌 없을까마는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먹을 것이나 물건이 넉넉한 줄 알면 절대 보채지 않는다. 마찬가
지로 저한테도 틀림없는 몫이 있으니 기다리면 된다는 믿음이 있으면 기다릴
수 있다. 그러나 세 끼 밥을 어찌 얻어먹어야 하나 늘 눈치를 봐야 하고, 남들
먹는 것이나 남들 자기고 노는 것 하나를 얻어 내려면 기를 써야 하는 처지에
서는 과연 저도 줄까, 안 줄까 하는 문제에 날 선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다. 어
른들 처지에서는 좀 기다리면 어련히 알아서 줄까 싶고, 준비했던 것이 좀 모
자라면 안 그래도 미안한데 옆에서 설레발을 치니 어른들은 더 겸연쩍어 공연
히 성질도 내게 된다. 그러나 그런 복잡한 마음을 알지 못하는 아이들은 제가
111공동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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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호
학교
이야기
선생님, 일
루 와요!
지역
공동체
미워서 그러는가 보다 하고 그때부터 저쪽에서 슬슬 눈치를 보며 혼자 설움을
탄다. 그 꼴을 뻔히 아는 어른들은 또 공연히 이게 뭔가 싶어 버럭 소리까지 질
러 버린다. 다 보기 싫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이들은 곧잘 제 손아귀에 쥔 것만 있으면 이러니저러니 휘두르고
싶어 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도 가끔은 넣어 주는 것을 한입 베어 물고 “고마
워! 정말 잘 먹었어.” 하고 베푼 은혜에 깜박 죽는 시늉도 하기도 한다. 넉살 좋
은 아이들이나, 관계에서 힘이 많은 아이들은 “나 한입만!”이라든지 “잠깐만
해 볼게” 하는 말로 요술같이 다른 아이들 손아귀에 있는 것을 빼앗아 온다.
그러나 아이들 사이에서도 별 볼 일 없는 아이들은 감히 꿈도 못 꾸는 일이다.
그러니 늘 먹어야 하는 아이들은 허덕거리는 일이 더 많다. 겨우 교사들한테
나 와서 행패도 부리고 투정도 부린다. 이 아이들은 지금 나와 함께 자라는 아
이들이다.
그런 아이를 위해 나는 결사적으로 참는다. 아침밥도 못 먹어 주린 배를 안
고 눈앞에 춤추는 과자를 피해 도리질한다. 오랜만에 제 몫의 과자와 음료수
가 안겨 준 아이의 여유로움이 조금이라도 더해졌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너도 참을 수 있어!그러나 거기에 한 조각도 받아먹지 않으려 실랑이를 벌인 까닭이 따로 또 있었
다. 이 세상을 잘 살아가려면 필요한 순간에 도리질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과자 하나를 두고 그런 뜻을 담는 것이 너무 과한 줄을 모
르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걸 더 잘 깨달아야 하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도 잘 안다. 그래서 도리질하면서 마음속으로는 ‘이것 봐라. 선생님이 무슨
말 하는 줄 알겠니?’ 하는 말 대신 ‘그래, 참아라! 참아! 너도 참을 수 있어!’
하며 응원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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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이야기
지역
공동체
어찌 내미는 과자뿐이겠는가? 아이가 내미는 많은 것들이 참아야 하는 것
들이다. 아이가 내미는 불안과 불신, 미움과 원망, 오해와 억측…… 참아야
하는 것들은 많고 많다. 게다가 어찌 나만 참겠는가? 아이는 세월과 세상을
참고 있다. 그런 순간들을 넘어 오늘 우리는 작은 과자 조각을 나누고 있다. 참
는 것을 넘어 나누는 사이로, 나누는 것을 넘어 함께 살아가는 사이로 가는 길
에 함께하고 있다. 길은 울퉁불퉁하지만 우리는 그래도 용기를 내어 길에 오
른다. “선생님, 일루 와요!” 하고 저기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공동육아 저소득 기금에 후원해 주세요!저소득 기금은 우리 사회의 소외받는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공동육아의 지역 공동체 학교와 교사 교육, 공동 캠프,
교육 활동 들을 지원하는 데 씁니다. 계좌이체와 네이버 해피로그
후원(happylog.naver.com/gongdong)으로 함께 하실 수 있습니다.
문의 | 02-323-0520 (사)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113공동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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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호
이야기
‘우리’라
는 담장을
넘어서
더 큰
‘우리’와
마주하기
마을
공동체
즐거운어린이집은 년
광진구에서 문을 열었습니다.
년에 이어 년에도
서울시 마을 공동체 사업 가운데
공동육아 활성화 사업에
선정되었어요. 현재 조합원은
가구이며, 어린이집에 나오는
아이들은 명입니다.
즐거운어린이집의 공동육아 활성화 방안
‘우리’라는 담장을 넘어서 더 큰 ‘우리’와 마주하기
이야기
마을
공동체
정혜령 다람쥐. 서울 광진 즐거운어린이집과 마법방과후에서 두 딸을 5년째 함께 키우고 있습니다. 대안 교육과 대안
의 삶을 늘 고민하고 있으나 천성이 게으른 탓에 모순된 삶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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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마을
공동체
새로운 꿈
마을을 살맛나는 곳으로
벌써 우리 큰아이가 초등학교 학년이 되었습니다. 년 전 큰아이가 광진 지
역의 즐거운어린이집을 졸업할 무렵 정말 많은 고민을 했어요. 더 나은 교육
환경을 찾아주기 위해 참 부지런히 여러 학교 정보를 모으며, 쉽게 결정내리지
못해 여기저기 한참 동안 기웃거렸지요. 하지만 오랜 방황 끝에 내린 결론은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초등학교에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결정을 하게 된
이유는 꽤나 간단했어요. 이렇게 학교를 찾아 떠돌아다니기 시작하면 아이가
상급 학교로 올라갈 때마다 이 고민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그런 생
활은 상상만 해도 좀 힘들었어요. 그렇게 우리 식구는 동네를 떠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 결심을 하고 돌이켜보니 지난 시간 동안 늘 마음 한 켠에서는 아이들
이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나면 이곳을 떠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린이집을 우리 삶을 이루는 근거가 되라는 의미에서 터
전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우리 식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삶
115공동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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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호
이야기
‘우리’라
는 담장을
넘어서
더 큰
‘우리’와
마주하기
마을
공동체
까지 공유할 수 있는 삶의 터전은 아니었던 것이지요. 언제든지 필요하면 떠날
수 있는 곳은 삶의 터전이 될 수 없으니까요. 그렇게 나의 부끄러운 속마음을
직면하고 나서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더디겠지만 그리고 그것이 정
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마을을 아이들과 함께 살맛
나는 삶의 터전으로 가꿔 보자는 꿈. 그 꿈이 당장 내 아이를 위한 일은 아니
어도 상관없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뜻만 있었을 뿐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암담한 상황 속에서 시간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작은아이가 다니는 즐거운어린이집과 큰아이의 마법방과후 조
합에 차례로 힘든 일들이 생겼고 그 문제들이 풀리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
이 들어갔어요. 두 조합에서 몇 달씩 시차를 두고 갈등이 불거지는 상황에서
새로운 무엇인가를 꾀하기에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았어요. 그러던 지난
해 가을, 서울시 마을 공동체 사업 가운데 돌봄 사업이 있다는 공지를 보았고,
어쩌면 이것을 계기로 즐거운어린이집이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즐거운어린이집의 전체 회의에서 전체 조합원들과 이 사실을 공유하고, 몇
몇 조합원들이 모여 제안서를 작성했지요. 다행히 선정되었습니다. 사업은 새
로운 일을 많이 벌이지 않고 기본에 충실하게 하기로 했습니다. 이제껏 공동
육아라는 울타리 안에서 아이들과 함께한 놀이며 행사를 지역의 아이들과 함
께 나눌 수 있는 사업을 기획하기로요.
전체 회의를 거쳐서 결정한 사안이지만 막상 선정이 되고 나서 사업을 시작
하려니 이것저것 어려움들이 불거졌습니다. 솔직히 마을 사업 내용을 조합원
들과 충분한 논의를 거쳐 합의한 게 아니라서 조합원들은 서로 다른 꿈을 꾸
고 있었고, 조합 안에서 이 사업을 위해 누가 어떤 일을 맡을지 정해지지 않아
서 누가 책임지고 일을 진행시켜야 하는지도 혼란스러웠습니다. 이런저런 사
업을 하겠다고 제안서를 내서 지원금을 받았는데 과연 그 많은 일들을 즐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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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마을
공동체
조합이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만 하고 있는 상황에서 또 시간만 흘렀습
니다. 돌이켜 보니 지난해 석 달은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마을 사업도 하기
위해 조합의 질서를 잡아 간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 시간을 거쳐 년
부터 사업이 진행되었습니다.
긴급돌봄사업
몽골 식구와 한 식구 되기
가장 먼저 어린이집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사업으로 긴급돌봄사업(저소득층이나
위기 가정의 자녀를 보호하기 위해 일정한 기간 동안 돌보는 일)을 제안했습니다. 출자금
이며 기부금이며 입학금 따위로 경제 부담이 큰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운영이
라는 현실 문제로 문턱 낮추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공동육아 활성화 방
안 사업으로 문턱을 낮추는 일부터 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당장 긴급 돌봄 대상자 선정
에서부터 난관에 부딪치더라고요. 많은 대상자를 선정하여 정해진 짧은 기간
동안에만 돌봐 줄 것인지, 아니면 수는 적지만 안정감 있게 오랜 기간 보육을
할 대상자를 선정할 것인지 조합원의 의견을 조정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즐거
운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의 생활과도 관련이 있으므로 논의가 필요했습니
다. 결국 몇몇 아이들을 선정하여 안정감 있게 보육하기로 결론이 났습니다.
또 처음에는 저소득층 자녀나 결혼 이주 여성 가족의 자녀를 대상으로 하
고자 계획했는데 서울시 담당자 의견은 달랐습니다. 이중 지원이 되는 대상자
를 선정하는 것은 안 된다고 했습니다. 다시 서울시와 논의해서 법적으로 어떤
보호도 받을 수 없는 외국인 노동자 자녀를 선정하기로 했지요. 그런데 막상
이렇게 결정하고 나서 대상자를 찾아보려니 어디서 찾아야 할지 막막했습니
117공동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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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라
는 담장을
넘어서
더 큰
‘우리’와
마주하기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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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러던 중 대표교사 열매가 즐거운어린이집에서 가까운 광장동에 재한몽
골학교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부모 모두 몽골인인 가정의 여자아이를 새 식구로 맞이하게 되었어요.
아이를 새 식구로 맞았지만, 부모의 상황이 법적으로 불안하고 또 아직까
지는 조합원으로서 참여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기 때문에 함께 어울리기에
는 좀 더 시간이 지나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교육 아마를 하면서 아이들이
지내는 모습을 보니 선입견을 가지고 이런저런 판단을 하고 가늠을 하는 것은
어른들이지 아이들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어요. 아이
들끼리 허물없이 어찌나 잘 지내는지, 문득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
런저런 이유로 아이들의 세상을 나누고 갈라놓는 것은 어른들의 이기심이라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조합에 남은 숙제는 아이들에게 교훈을 얻어 그
식구와 조합원들이 어떻게 함께 어울릴 것인지 방법을 찾는 일인 듯합니다. 물
론 이 일도 시간이 많이 필요한 듯합니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대보름 행사와 단오제
다음은 오랜 기간 우리끼리만 해 왔던 대보름 행사며 단오제를 열린 공간에서
주최하여 마을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마을 잔치로 바꿨습니다. 이것은 이
미 지난해부터 중심에 두고 노력해 온 일이기도 합니다. 더구나 이번 단오제,
‘아차산, 단오로 통하다’는 광진 지역 공동육아 조합인 산들어린이집, 즐거운
어린이집, 마법방과후 세 곳과 아차산교육공동체 ‘누구나 꽃’을 중심으로 광
진 지역의 여러 단체들이 힘을 모아 치렀습니다.
광진지역풍물패연합 모임의 길놀이를 시작으로 놀이마당, 참여 마당, 먹을
118
이야기
마을
공동체
거리 마당 그리고 공연으로 나누어 단오 행사를 했습니다. 놀이마당에서는
굴렁쇠 굴리기부터 고무줄놀이까지 전래 놀이 열두 가지를 경험해 볼 수 있도
록 했고, 참여 마당에서는 단오부채와 장명루 만들기, 수건에 문양 찍기를 할
수 있는 부스 일곱 개를 준비하여 아이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도록 했어
요. 단오부채와 장명루, 재활용품을 이용한 보조 가방 만들기는 아차산토요
숲놀이터, 돌봄과 나눔의 공동체 희년의 집과 광진지역자활센터에서 도움을
주었습니다. 먹을거리 마당에서는 쑥개떡과 익모초를 준비하여 더운 날 행사
에 참여한 아이들과 어른들의 출출함을 달래 주었습니다. 꿈터의 택견 공연과
겨루기 시연, 산들어린이집 아빠들의 사자춤 공연은 아이들의 눈길을 사로잡
았습니다. 또 참여 마당과 놀이마당에 다섯 번 이상 참여한 아이들에게는 작
은 기념품을 나눠 주었습니다. 개 남짓 준비한 기념품은 예상보다 일찍 동
이 났습니다.
운영하는 데 아쉬운 점이 더 많았지만 그래도 지난해에 이어 마을 사람과
함께하는 단오제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부족한 대로 의미를 찾을 수 있었습니
다. 홍보 기간이 아주 짧았다는 점, 행사를 주최하는 공동육아 조합 쪽과 행
택견 공연과 겨루기
시연 모습
119공동육아
통권
109호
이야기
‘우리’라
는 담장을
넘어서
더 큰
‘우리’와
마주하기
마을
공동체
사에 수동으로 참여하는 쪽이 나뉘어 있었다는 점, 공동육아 조합 세 곳의 인
원이 전체 참여 인원 가운데 많은 수를 차지하다 보니 개인으로 참여한 주민
들이 소외감을 느낄 수 있었겠다는 점, 주민과 함께 어우러지고 즐길 수 있는
행사가 부족했다는 점 들이 아쉬움으로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은
더욱 세심하게 준비하면 해를 거듭할수록 자연스레 해결될 수 있을 테지요.
아쉬운 점이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광진 지역의 공동육아 조합인 산들어린
이집, 즐거운어린이집, 마법방과후 세 곳과 교육공동체 누구나 꽃이 모두 어
려운 내부 사정을 미뤄 두고 단오제 행사를 함께 준비하고 치러 낸 것은 나름
커다란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을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 이상으로 조
합의 이해를 넘어서서 든든하게 연대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꿈터방과후, 광진지역자활센터, 희년의 집, 토요숲놀이터, 광진지역연합
풍물패 같은 지역의 다른 모임과 교류할 수 있었던 것도 작지 않은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오제 행사에 참여한 마을 사람들이 늘어난 것도 기분 좋은 성
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참여자들의 평도 나름 좋았습니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내년의 단오제는 올해와는 또 다른 모습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또 다른, 더 나은 단오제를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이 곧 희망
이지 않을까 합니다.
어린이집을 열고
생태 장난감 미술관 운영
즐거운어린이집은 보육이 없는 토요일에 생태 장난감 미술관을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생태 장난감 미술관이란 어린이집의 마당을 마을 아이들에게 개방
하여 공동육아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에게는 익숙한 생태 장난감을 아빠들과
120
이야기
마을
공동체
함께 만들어 보고, 다양한 전래 놀이도 즐겨 보고, 모래 놀이터에서 마음껏
놀아 보도록 하는 것이지요. 놀이터에서 미끄럼틀과 그네를 타고 노는 것도
재미있겠지만, 어설픈 놀잇감을 부모와 함께 만들어 노는 재미도 있다는 것을
마을 아이들이 경험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생태 장난감 미술관 운영을 위해 엄마들은 모여 헝겊인형 동물을 만들었
고, 아빠들은 주말에 나와 어린이집을 군데군데 손보았습니다. 이제 문 여는
날만 다시 잡으면 된답니다. 원래는 월 어린이날 즈음해서 열려고 했는데, 즐
거운어린이집 평가 재인증을 준비하는 기간과 겹쳐 조금 미뤘습니다. 지금 실
행하고 있는 단계가 아니라 소개를 많이 못 하는 게 안타깝네요. 생태 장난감
미술관을 실제로 운영하기 시작하면 다시 한 번 소개하고 싶습니다.
다시 꿈 하나
모두가 우리 아이로
이번 공동육아 활성화 방안 사업을 진행하면서 깨달은 평범한 진리는 머릿속
에 있는 구상이, 글로 계획한 사업이 현실화되는 과정은 무척 어렵다는 것입
니다. 하지만 즐거운어린이집은 마을 공동체 사업을 계기로 조합의 벽에 갇힌
‘우리’라는 담장을 뛰어넘어 더 큰 의미의 “우리” 아이들을 품고자 합니다. 마
을 골목길을 누비며 뛰노는 우리 아이들, 어린이집을 떠나 학교에 들어가면 함
께 어울리게 될 우리 아이들, 즐거운어린이집 맞은 편 어린이집에 다니는 우리
아이들……. 조합보다 더 큰 마을이라는 울타리를 치고 이 모든 아이들을 우
리라는 이름으로 품을 수 있도록 힘을 기울이고자 합니다. 물론 조합에서 어
린이집을 운영하면서 새로운 실험을 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더군요. 하
지만 우리라는 이름으로 조합 밖의 아이들을 반가이 맞이하면 거꾸로 공동육
121공동육아
통권
109호
이야기
‘우리’라
는 담장을
넘어서
더 큰
‘우리’와
마주하기
마을
공동체
아 담장 안에서 성장한 아이들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갔을 때 그 아이들 또
한 세상에서 따뜻하게 맞아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대안이라는 이름으로 조합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너무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내 아이, 조합의 우리 아이들이 행복해지려면 조
합의 울타리를 박차고 뛰어넘어 진정한 의미의 우리 아이들이 행복해져야 합
니다. 이런 뜻에서 어린이집 담장 허물기와 담장 넘어서기로 어린이집 밖, 마을
과 소통할 수 있는 외연을 확장하는 것은 아이들에게나 조합원 모두에게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행히도 이런 움직임이 단지 즐거운어린이집뿐만 아니라 아차산 둘레 곳
곳에서 소박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조금은 경쟁을 덜 하는 사회에서 현재
를 즐기며 행복해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이 마을에서 오랫동안 볼 수 있기를
희망하는 마음으로, 이 소박한 도전이 앞으로도 더 많이 이루어지기를 바래
봅니다.
내 아이, 조합의 우리 아이들이 행복해지려면 조합의 울타리를 박차고 뛰어넘어 진정한 의미의 우리 아이들이 행복해져야 합니다.
122
쓰는
세상
시로
봉선화 새싹 봉선화 새싹은
내 키가 자라는 거처럼
쑥쑥 자란다.
봉선화하고
내 키 자라는 거하고
속도가 비슷하니
바꿔도 될 거 같다.
하지만 봉선화 새싹은
많아도
내 몸은 한 개다.
그래서 바꾸고 싶어도
못 바꾼다.
김민영부산 화명초 3학년
비가 오니까
피곤하다
하늘도 피곤해서 울고
나도 피곤해서 울고 싶다.
“우르르 쾅쾅쾅쾅!”
천둥 번개가 치는 게
“피곤하다!”
지도 짜증내는 것 같다.
배윤영부산 화명초 3학년
비가 오니까 피곤하다
2011년 부산 징검다리놓는아이들방과후에서 3학년 아이들이 쓴 시입니다.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 보세요
부산 징검다리놓는아이들방과후
123시로
쓰는
세상
공동육아
통권
109호
일본 대지진 일본에 대지진이 일어났다.
뉴스를 보고 놀래서
“우리나라에 오면 안 될 텐데.”
중얼중얼하였다.
죽은 사람들은
갑작스럽게 도망도 못 가고 죽어서
불쌍하기도 하니까
하늘에 가더라도
정말로 좋은 데 가면 좋겠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죽지 말고
살아 있고, 힘을 내야겠다.
지진이 끝나면
다시 행복하면 좋겠다.
성치원부산 화명초 3학년
고추 잘못하면
죽겠다.
매워서.
최정우부산 금성초 3학년
그림
| 배윤영
(부산
화명초
)
124
김혜정콩중이, 과천 열리는어린이집
졸업 조합원
따뜻한 가슴을 느끼며
명랑한 할머니의
독서
일기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을
읽고
《
》
선배 엄마의 육아 반성 이야기
공동육아 박혜란 이사장이 쓴 《다시 아이를 키운
다면》을 읽었습니다. 취업 주부 년, 전업주부
년, 파트타임 주부 년, 명랑 할머니 년 경력의
여성학자이기도 한 글쓴이의 책에는 ‘박혜란 할머
니가 젊은 부모들에게 주는 맘 편한 육아 이야기’
라는 부제가 달려 있어요. 너도나도 아이 키우기가
너무너무 어렵다는데, 육아 이야기가 어떻게 편하
게만 읽힐까 좀 궁금해집니다. 궁금해서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니 뜻밖에도 재미있게 술술 읽힙니다.
누구보다 아이들을 참 잘 키운 선배 엄마로 기억
되는 분, 그런데 정작 당신은 손자 셋, 손녀 셋을 둔
할머니가 되고 나서 손주들의 티 없는 얼굴을 보며
자식 키우는 즐거움을 더 누리지 못한 아쉬움을 떨
125명랑한
할머니의
따뜻한
가슴을
느끼며
독서
일기
공동육아
통권
109호
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고민하는 젊은 엄
마들에게 주는 선배 엄마의 육아 반성 이야기쯤으로 읽어 달라고 말합니다.
저마다 또는 함께 성장을 노래하라
그러나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에는 한숨 섞인 후회나 탄식의 내용이 들어 있
지 않아요. 아이를 키울 때 시행착오한 것들이 시도 때도 없이 떠올라 당신을
부끄럽게 한다고 하지만 그러한 반성은 오히려 실수라고 여겨지는 일들조차
한층 풍부한 삶으로 변환시키는 부드러운 힘으로 작용합니다. 그 과정의 육
아에 대한 성찰은, 저처럼 공동육아를 거쳐 중등 아이를 둔 엄마뿐 아니라 육
아의 지혜에 목말라 있는 젊은 엄마들에게도 꼭 필요한 이야기입니다. “좋은
엄마의 조건이란, 어떻게 아이를 키울 것인가는 결국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와 동떨어진 문제가 아니다. 내 인생관이 곧 자녀의 인생관이요, 내 교
육관일 수밖에 없다. 남들이 어떻게 아이를 키우고 있는가는 참고 사항일 뿐
그것에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고 합니다.
“좋은 엄마의 조건이란, 어떻게 아이를 키울 것인가는 결국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와 동떨어진 문제가 아니다. 내 인생관이 곧 자녀의 인생관이요, 내 교육관일 수밖에 없다.”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박혜란 글 | 나무를심는사람들
일기
독서
126 이야기는 “자녀에게 올인 하지 마라”는 내용으로 이어집니다. “아이는 아이
의 눈으로 세상을 볼 줄 아는 존재고, 어렸을 때 당당한 아이는 엄마가 훼방만
놓지 않는다면 커서도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게 살 수 있다”고 말이지요. “인품
도 좋은 데다 당당하기까지 하다면 그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고도 합니다. 아이 키우는 가장 큰 소득은 이렇게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나
도 덩달아 커 가는 것이랍니다. 그러기에 우리 부모들은 자신이 진정 바라는
삶이 무엇이지 아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아요.
아이를 키우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의 그 중요한 요구에 적절하게 대응하고,
또 내일을 준비하는 과정을 가질 수 있다는 것, 그 시기의 중요성이 거기에 있
음을 일깨워 줍니다.
“아이는 손님처럼, 그저 우리 집에 있는 동안 아무 탈 없이 건강하고 즐겁게
지내다가 때가 되면 홀연히 떠나기를 바랄 뿐이다. 주인과 손님 사이에 끝까지
서로 좋은 감정, 친밀감 같은 것을 갖고 지낸다면 더 바랄 게 없다”는 이야기도
귀 기울여 듣고 음미해야 할 이야기입니다. 평소에 두 아들에게 말로만 친밀감
을 표현했는데 앞으로는 손이라도 한 번 더 잡고 더 자주 껴안고 거실에 모여
서 함께 잠도 자야겠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일상의 접촉과 그 느낌이 얼마
나 중요하고 실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지 알게 되었거든요.
본능적으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운 접촉과 소통, 그러면서 저마다 또는 함
께 성장을 노래하는 것, 상상해 보니 훈훈해집니다. 마냥 좋을 수만은 없는 부
모와 자식의 관계, 그러나 끈기를 갖고 그 관계 속에서 꾸준히 노력하며 즐길
줄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태도임에는 틀림이 없을 듯합니다. 아이를 키우
고 함께 지내는 일이 때로 힘들고 고통스러울지라도 그 지점에만 머무르지 않
는다는 것, 그 과정을 통과하는 것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삶의 기쁨이기도 하
다는 말이겠지요.
127명랑한
할머니의
따뜻한
가슴을
느끼며
독서
일기
공동육아
통권
109호
모성도 연습이며 노력한 만큼 커진다
성장한다는 건 뭘까 생각해 봤어요. 공동육아에서 배운 소중한 가치이기도
하지요. “내 아이를 사랑하고 남의 아이도 사랑하는 것이다. 나아가 생명 있
는 모든 것에까지 사랑의 영역을 넓혀 가는 것이 진정한 모성이다”는 이야기는
더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성 싶어요. “모성은 전쟁을 미워하고 평화를 사랑
하며 그 마음이 더욱 넓어지고 깊어질 때 세상은 한결 살기 좋아질 거라고 확
신한다”는 대목에서는 가슴이 울컥해졌어요. 모성도 연습이며 노력한 만큼
커진다는 이야기는 정말이지 의미심장합니다.
모성이란, 공동육아에서는 부모가 함께 육아에 참여하는 것이지요. 특히
“아빠가 육아에 참여하는 것은 기쁨이기에 의무가 아니라 권리”라는 것을 알
려 줍니다. 배려 깊은 사랑을 베풀면서 스스로의 삶과 아이들의 삶을 동시에
풍성하게 하고, 그러한 돌봄을 공유하면서 엄마와 아빠가 서로 힘을 합쳐 가
는 것이 우리가 꾸준히 연습해야 할 모성이라고 이 책은 이야기합니다. 아이
들은 그러한 부모들을 보고 배워서 그들의 아이들에게 또 전해 주겠지요. “남
자건 여자건 남성성과 여성성을 조화시키는 것”이 참 좋다는 점도 이야기해 주
시네요. “남자아이건 여자아이건 강함과 부드러움을 함께 갖춘 인간으로 키
워야 한다는 말은 강해야 할 땐 강하고 부드러워야할 땐 부드러울 줄 아이로
키우는 것”을 뜻하는데요, 그건 어른들도 일상생활에서 주욱 소중하게 가꾸
고 지켜 가야 하는 태도겠지요. 그러한 서로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마음 깊이
서로 존중해 줄 때, 다양성이 어우러져 더 큰 아름다움을 지금 바로 여기 우리
삶에서 순간마다 완성시킬 것입니다. 비로소 우리 속에 이어져 흐르고 있는
따뜻한 품성을 확인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회복의 희망
을 느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멋지다, 젊은 엄마”라고 힘을 주
고, 책으로 이렇게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어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으
면서 이렇게 나 자신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일기
독서
128 부모에게 들려주는 가슴의 목소리
젊은 엄마들에게 그리고 저처럼 청소년을 둔 부모들에게 필요한 지침 그보다
더한 의미로 다가오는 박혜란 님 가슴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들어 봅니다.
좋은 엄마란 이런 엄마다.
첫째, 아이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고 고맙게 생각한다.
둘째, 아이를 끝까지 믿어 준다.
셋째,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넷째, 아이의 생각을 존중한다.
다섯째, 아이를 자주 껴안아 준다.
여섯째, 아이와 노는 것을 즐긴다.
일곱째, 아이에게 공동체의 룰을 가르친다.
여덟째, 아이에게 짜증을 내지 않는다.
아홉째, 아이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특히 공부하라는.
다시 아이를 키워도 변하지 않을 것들
첫째, 아이만의 장점을 찾아서 칭찬하고 키워 줘라.
둘째, 강하고 부드러운 아이로 키우자.
셋째, 아이를 끝까지 믿어 줘라.
넷째, 아이들은 갈등하지 않는다, 다만 부모가 갈등할 뿐이다.
다섯째, 머리나 말이 아닌, 몸으로 사랑하라.
129핵
발전소! 지
금 멈추어야
합니다
탈핵
이야기
공동육아
통권
109호
핵 발전소! 지금 멈추어야 합니다
2030년을 탈핵 원년으로!
이야기
탈핵
130
이야기
탈핵
제작: 박흥렬 화백, 탈핵에너지교수모임 | 배포: 핵 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 http://www.nonukes.kr문의: 사무국 02-735-7000 | 후원 계좌: 우리은행 1005-401-168646 환경운동연합
131핵
발전소! 지
금 멈추어야
합니다
탈핵
이야기
공동육아
통권
109호
132
읽는
책
함께
김미자똘배어린이
문학회에서 권정생
글을 읽으며 삶을
가꾸고 있습니다.
그동안 똘배 동무들
과 함께 쓴 글을
모아 《내 삶에 들어
온 권정생》(단비)을
냈습니다. 서울
고척동에 그림책
카페를 열어 동네
엄마들과 ‘그림책
꽃밭’이라는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그림책을 읽고 다시
글 쓰고 나누는
시간이 참 좋습니다.
나는 일본 영화 ‘카모메 식당’을 좋아한다. 영화의 배경인 핀
란드의 부엌과 실내장식, 영화 속 여자 인물들이 입고 나오는
간결하고 세련된 북유럽 무늬가 들어간 옷 구경하는 재미가
크다. 영화를 주로 끌어가는 세 여자들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고
민을 과감하게 실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에서 핀란드로 건너와 식당을 차려 놓고 손님을 기다
리는 주인 여자가 있다. 그녀는 갈매기라고 하는 식당에서 옛
날 아버지가 운동회 때 해 주시던 크고 맛있는 주먹밥을 만
들어 판다. 여기에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본 나라 핀란드로 무
조건 건너온 또 다른 일본 여자가 있다. 그리고 오랜 시간 부
모님 병간호를 하다가 그분들이 돌아가시자 그냥 지구본을
돌려 손가락이 닿은 핀란드로 날아온 세 번째 여자가 있다.
숲이라서 할 수 있는 것들
133숲이라서
할 수
있는
것들
함께
읽는
책공동육아
통권
109호
이들 셋은 자세하게 말은 하지 않지만 지난 세월 똑같이 아
픔이 있었고 지금 많이 외롭다. 다행히 이 세 여자들 안에 자
유로움과 따뜻함을 회복하고 싶은 열정이 있다. 과거에 너무
힘들었고 바빴고 어떤 제도나 습관에 쫓겨 살았기 때문에 멀
리 떠나와 머물고 있는 핀란드에서는 그런 모든 것들에서 자
유롭고 싶다.
‘그런데 왜 하필 핀란드일까?’를 궁금해하던 이들 세 주인
공은 질문 끝에서 ‘핀란드의 숲’을 만난다. 숲이 있는 나라 핀
란드 전체에서 흐르는 여유로운 기운! 숲의 기운은 삶에 지
쳐 잠깐 들른 이방인들을 머물게 하고 살고 싶게 만들었다.
수많은 어린이 그림책이 숲을 배경으로 한다. 문학에서 ‘끝
없는 숲’과 ‘끝없는 이야기’는 때로는 같은 뜻으로 쓰인다. 마
리 홀 예츠가 그리고 쓴 그림책 《숲 속에서》는 제목이 곧 배
134
읽는
책
함께
경이다. 신비한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을 법한 커다란 나무들
로 빽빽한 숲 속에 고깔모자를 쓴 작은 아이가 서 있다. 아이
는 한 손에 나팔을 들고 있다. 이 아이가 나팔을 불면 세상은
마법이 시작될 것이다. 아이는 나팔을 불려고 숲 속에서 행
진을 시작한다.
숲 속의 왕자 사자는 평화롭게 잠을 자고 있다. 제발 누가
와서 나팔을 불어 주길 기다렸다는 듯이 사자는 나팔 소리를
듣고 반갑게 일어난다. 사자는 “머리 빗고 왕관 쓰고” 아이를
따른다. 아기 코끼리들은 “털옷 입고, 신발 신고” 아이를 따
른다. 그리고 그 뒤를 곰과 캥거루 식구가 따른다. 커다란 숲
속 나라에서 마치 유치원 가는 아이들처럼 커다란 동물들이
예쁘게 단장하고 차례로 대열에 선다.
숲 속 동물의 나라에서도 늙은 황새는 혼자다. 늙고 외로
운 황새가 과연 이 행렬을 따라갈 수 있을까? 황새는 기운을
내어 대열을 따라가기로 결심한다. 늙은 황새는 살아 있는 동
135숲이라서
할 수
있는
것들
함께
읽는
책공동육아
통권
109호
안은 움직이고 싶고, 숲 속 살아 있는 생명들과 함께 어울려
행복하고 싶은가 보다. 아무 말 없이 일어나 행렬을 따른다.
그리고 원숭이 두 마리. 나무에서 놀던 원숭이들은 바로 어
린이를 닮았다. 원숭이는 줄을 지어 숲 속을 산책하는 동물
들을 보자마자 곧바로 이름을 만들어 외친다.
“행진이야 행진! 우리는 행진을 좋아해!”
작은 원숭이들은 나무에 난 구멍에서 나들이옷을 꺼내 차
려입었습니다.
다음은 토끼다. 차례대로 하면 토끼는 원숭이 뒤에 서야 한
다. 하지만 그림책에서 차례나 규칙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건 생명이다. 작은 토끼 혼자 커다란 맹수들 뒤에 걸어가서
136
읽는
책
함께
는 도무지 행진의 즐거움을 맛볼 수가 없다. 나팔을 들고 언
제든지 상황을 만들기도 하고, 깨 버릴 수도 있는 아이 옆에
토끼가 서는 게 맞다. 아이는 아이대로 작은 토끼의 보호자
가 되어 뿌듯한 책임감을 맛본다.
이번에 《숲 속에서》를 다시 보니 이 그림책이야말로 ‘그림책
의 정석’이라는 생각이 든다. 크고 힘센 사자에서부터 작은
토끼까지, 늙은 황새와 엄마 배 속에 있는 아기 캥거루까지
같은 공간에서 저마다 소리를 내며 논다. 맛있는 음식, 행진,
수건돌리기, 남대문놀이, 숨바꼭질……. 날마다 해도 지치
지 않을 재미난 놀이들이 이 그림책에 모두 나온다.
이런 것들을 숲이라서 할 수 있는 걸까? 숲 대신 도로에 꽉
차 있는 자동차 숲을 보며 쉬지 않고 학원을 오가며 살아야
하는 우리 아이들은 무슨 놀이를 좋아할까? 기차놀이, 수건
137숲이라서
할 수
있는
것들
함께
읽는
책공동육아
통권
109호
숲 속에서마리 홀 예츠 글·그림 | 박철주 옮김 | 시공주니어
돌리기, 남대문놀이, 동동 동대문놀이…… 이런 놀이를 지
금 아이들은 알기나 할까? 어린 시절 이런 놀이를 모두 다 해
보고 어른이 되어야 할 텐데, 그림책 속 늙은 황새처럼 혼자
늙어 외롭다가도 벌떡 일어나 아이들 행진 속에 들어갈 수 있
는 힘은 바로 어린 시절 행복하게 놀았던 기억과 추억이 주는
힘일 텐데 말이다.
138
이야기
그림책
이 그림책을 처음 만났던 순간을 기억합니다.
고삐 풀린 송아지가 주렁주렁 매달린 오이밭을
밟고 지나가는 장면에서 몸이 움찔했던 기억,
화면 가득 속이 꽉 찬 배추들이 긴 밭이랑에
가지런히 자라고 있는 것을 보며 우리 그림책이
우리 정서를 담아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실감했습니다. 얼마 전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이 그림책 주인공처럼 시골 마을에 살며
심심해하는 남자아이를 보았습니다.
온 동네를 통틀어 아이라고는 하나, 아이는
도시에서 태어나자마자 시골 할아버지네로
보내져 동네 할머니들의 사랑을 받으며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습니다. 여름이 되니
그동안 같이 놀아 주던 동네 할머니들 일손이
바빠집니다. 3학년 아이 입에서 “심심해 심심해”가 떨어지질 않습니다. 또래 친구들이 없어
아쉽기는 하지만 아무런 눈치와 차별 없이
자연 속에서 심심하고 깨끗하게 지내는
그 아이가 오히려 다행으로 보였습니다.
김미자감자꽃. 똘배
어린이문학회에서
어린이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139그림책
이야기
숲이 나오는 그림책을 찾으러 책방에
갔다가 이 책을 보았습니다. 이 그림책을
한 장 한 장 넘겨 보다가 그만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다시 처음부터 찬찬히
보았습니다.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을
이렇게 바라보게 해 주는 그림책이 있다니,
참 대견합니다. 그림책 속에서 철조망
밖에 있는 인간은 철조망 안에 있는
동물들에게 상식에 찬 말을 던집니다.
“너는 팔이 길고 힘이 세서 나뭇가지를
타고 여기저기 잘도 다닌다더라?”긴팔원숭이가 대답합니다.
“그래, 팔 힘이 세서 난 이렇게 창살에
매달리곤 해. 하루 종일.”훌륭한 그림, 간결하고 힘 있는 글,
반복의 즐거움이 이 그림책 안에 모두
담겨 있습니다. 그러면서 오래오래 생각하게
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습니다.
6년 전 나는 중학교 1학년, 초등 6학년인
두 아이들이랑 한 달 동안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여행한 일이 있습니다.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우리와 너무나 다른 삶의
모습, 자연환경을 보았던 놀라움이 아주
오래 남아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시내
곳곳에서 원숭이, 소, 사슴을 흔하게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조금 변두리 고속도로에서는
코끼리 식구, 사슴, 영양, 얼룩말 떼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달리는 자동차에 치여 죽어 있는 처참한
동물 시체도 많이 보입니다. 이 책 속에
나오는 아프리카 시장은 온통 아름다운
색들로 가득 차 있네요. 아프리카 사람들의
밝은 웃음과 그들이 좋아하는 갖가지 원색
옷들은 그저 보기만 해도 기분 좋습니다.
결코 우리보다 물질 면에서 풍요롭다고 할 수
없는 그들이 어째서 우리보다 풍성하게 웃고
한결 여유로운지 새삼 이 그림책을 보며
생각해 봅니다.
140
놀래놀래
2010 놀래 자료집 중에서
풀을 꺾어 머리하고가지 꺾어 비녀 꽂고 앞산에 핀 빨간 꽃아 뒷산에 핀 노란 꽃아 빨간 꽃은 치마 짓고 노란 꽃은 저고리 짓고 게딱지로 솥을 걸어
찔레 꺾어 밥을 하고 솔잎으로 국수 말아풀각시를 절 시키네 풀각시를 절 시키면 망건을 쓴 새신랑이 꼭지꼭지 흔들면서 따개비로 술 마시네
작은 나뭇가지와 풀이 있으면 만들 수 있는 풀각시 인형
질기고 이파리가 긴 풀을 가지런히 모아 나뭇가지 끝 쪽에 묶은 뒤
나뭇가지 끝에서 풀끼리만 다시 실로 묶어요. 풀잎을 아래쪽으로 뒤집어
머리 윗부분 할 만큼을 남기고 그 아래를 실로 묶어 풀각시의 머리를 만듭니다.
아래로 늘어진 풀잎은 땋거나 묶어서 예쁘게 꾸밉니다. 나뭇가지 중간에도
풀을 가지런히 모아 묶어 치마나 바지를 만들고, 머리 아래 나뭇가지가
보이는 부분에는 얼굴을 그려 넣어요. 풀각시 노래를 부르며 이렇게
하다 보면 어느덧 멋진 풀각시 인형이 우리 앞에 나타나 인사를 한답니다.
141놀래놀래
공동육아
통권
109호
해 좋은 날, 신나게 놀기를 바라는 노래 !
하늘을 쳐다보며 부르는 노래 !
해가 나지 않아 해가 그리운 날에 부르는 노래입니다.
느리게 부르면 해를 꼬드기어 어서어서 나오라는 느낌이 들어요.
반대로 빠르게 부르면 해가 나오지 않아 속상한 아이들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뜨거운 여름, 물통에 물을 받아 놓고
물놀이를 하다 보면 추울 때가 있어요. 하늘을 쳐다보면
구름이 해를 가리고 있어요. 그럼 아이들과 천천히 “해~야, 해~야……” 노래하면서 해를 열심히 불러 봅니다. 어느새 해가 빼꼼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