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방송 2012.01 020 언론현장 무대 개그의 시작은 ‘개그콘서트’에서 비롯됐다. 이 프로그램은 그간 개그의 양대 산맥으로 내려오던 ‘유머일번지’류의 콩트 코미디와 ‘일요 일 일요일 밤에’류의 버라이어티쇼가 갖는 ‘안전함’의 틀을 깼다. ‘안전 함’이란 두 가지 측면을 말한다. 경쟁이 없다는 것과 일방향성 프로그 램이라는 것. 무대 개그는 개그맨들의 무한 경쟁을 알리는 신호탄인 동시에 관객 과 개그맨이 호흡하는 개그의 쌍방향 시대를 알리는 예고였다. 개그는 더 이상 스튜디오에서 안전하게 짜인 형태로 존재할 수 없게 됐다. 개 그맨들은 편집되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아이디어를 짜내야 했고 무대 에 올려진 뒤 관객에게 외면받으면 여지없이 통편집되는 ‘정글’을 경험 하게 됐다. 물론 개그맨들에게는 힘겨운 현실이었지만, 프로그램에는 엄청난 자양분이 됐다. ‘개그콘서트’는 끊임없이 다양한 캐릭터와 유행 어와 인기 코너, 그리고 화제를 만들어 냈다. 경쟁은 경쟁을 불러왔다. 개그맨의 경쟁이 ‘개그콘서트’라는 무대에 서 벌어졌다면, 이후의 경쟁은 각 방송사에 의해 벌어졌다. ‘웃찾사’, ‘개 그야’ 같은 무대 개그가 방송사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경쟁을 벌이기 시 작한 것이다. 개그의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하는 듯했다. 하지만 중요한 정덕현 문화평론가 쉼 없이 변신 ‘진화하는 웃음’이 생존 비결 KBS 장수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경쟁력 언론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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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 없이 변신 ‘진화하는 웃음’이 생존 비결download.kpf.or.kr/MediaPds/TGBTMGLVZUCFECA.pdf · 2012-12-11 · 냈다. 이 자학 개그들은 그러나 단순한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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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문 과 방 송 2 0 1 2 . 0 10 2 0
언 론 현 장
무대 개그의 시작은 ‘개그콘서트’에서 비롯됐다. 이 프로그램은 그간
개그의 양대 산맥으로 내려오던 ‘유머일번지’류의 콩트 코미디와 ‘일요
일 일요일 밤에’류의 버라이어티쇼가 갖는 ‘안전함’의 틀을 깼다. ‘안전
함’이란 두 가지 측면을 말한다. 경쟁이 없다는 것과 일방향성 프로그
램이라는 것.
무대 개그는 개그맨들의 무한 경쟁을 알리는 신호탄인 동시에 관객
과 개그맨이 호흡하는 개그의 쌍방향 시대를 알리는 예고였다. 개그는
더 이상 스튜디오에서 안전하게 짜인 형태로 존재할 수 없게 됐다. 개
그맨들은 편집되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아이디어를 짜내야 했고 무대
에 올려진 뒤 관객에게 외면받으면 여지없이 통편집되는 ‘정글’을 경험
하게 됐다. 물론 개그맨들에게는 힘겨운 현실이었지만, 프로그램에는
엄청난 자양분이 됐다. ‘개그콘서트’는 끊임없이 다양한 캐릭터와 유행
어와 인기 코너, 그리고 화제를 만들어 냈다.
경쟁은 경쟁을 불러왔다. 개그맨의 경쟁이 ‘개그콘서트’라는 무대에
서 벌어졌다면, 이후의 경쟁은 각 방송사에 의해 벌어졌다. ‘웃찾사’, ‘개
그야’ 같은 무대 개그가 방송사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경쟁을 벌이기 시
작한 것이다. 개그의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하는 듯했다. 하지만 중요한
정덕현
쉼 없이 변신‘진화하는 웃음’이 생존 비결
KBS 장수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경쟁력
언 론 현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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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 그렇게 급조된 형태의 무대 개그가 개그 코너들
을 만들어 낼 수는 있었어도 ‘개그콘서트’처럼 탄탄
한 시스템을 갖추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선배들이 끌
어 주고 후배들이 받쳐 주는 ‘개그콘서트’ 특유의 시
스템은 경쟁 속에서도 상생하는 힘을 발휘했다. 반면
타 방송사의 무대 개그들은 한층 더 심해진 경쟁 속
에서 차츰 시스템의 한계를 드러내며 사라져 갔다.
현실과 조우하며 대중의 욕구 찾아내
물론 치열한 경쟁이 만들어 낸 결과지만 ‘개그콘서
트’류의 짧은 개그들이 갑자기 주목을 얻은 데는 시
대적인 이유도 있다. 첫 번째는 시대가 요청하는 서
사 구조의 변화다. 사실 리모컨이 생겨난 이래 ‘발
단-전개-위기-절정-결말’ 혹은 ‘서론-본론-결론’ 형
태로 이어지는 서사 구조는 끊임없이 공격받아 왔
다. 이제 시청자들은 발단에서부터 뜸을 들이는 것
을 기다리지 못한다. 시작이 지루하면 프로그램은
시청자의 손가락에 의해 여지없이 잘려 나간다. 그러
니 전통적인 서사 구조에서 ‘발단-전개’나 서론은 점
점 축약되고 있다. 그것은 이제 드라마건 방송 프로
그램이건 김수현 작가 식으로 표현하면 “베토벤의
‘운명’처럼 처음부터 짜자자잔 하고” 시작한다. 사실
너무나 서사 구조에 익숙해져 버린 시청자들 입장
에서 보면 서론은 너무 뻔한 것이다. 우리는 작가가
굳이 설명하지 않고 ‘척’ 하고 보여 주면 ‘착’ 하고 알
아듣는 시대에 살고 있다.
바로 이 지점이 잘 맞아떨어지는 프로그램이 바
로 ‘개그콘서트’류의 무대 개그다. 많은 개그맨들을
무대에 올려놓고 짧은 시간을 주고는 웃기지 못하
면 가차 없이 잘라 버리는 이 쿨한 시스템에서 서론
은 설 자리가 없다. 1차로 피디가 가위질을 하고, 그
렇게 살아남는다 해도 2차로 시청자들이 리모컨으
로 가위질을 하는 상황에서 개그는 좀 더 콤팩트하
고 군더더기 없는 형태로 살아남을 수밖에 없다. ‘개
그콘서트’는 이 대중들이 선호하는 서사 구조가 달
라지는 시점에 징후처럼 등장한 짧은 개그를 뽑아
내는 시스템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논리적이고 순차적인 서사에 대한 거부(?)는
상당 부분 디지털 문화와 연관돼 있다. 아날로그 문
화가 가진 ‘처음부터 중간 과정을 다 봐야 끝을 볼
수 있는’ 서사의 특성은 디지털 문화로 오면서 ‘아
무 곳에서나 중간 중간 끼어들어 볼 수 있는’ 하이퍼
텍스트적인 속성으로 바뀐다. 이것은 성향이 기술을
낳은 것이 아니라 기술이 성향을 낳은 것이다. 그리
고 이것은 개그 프로그램에 적용돼 ‘개그콘서트’처럼
분절적인 구조의 개그 프로그램을 만들어 냈다.
물론 이런 시대적인 요청에 맞는 형식의 변화만으
로 ‘개그콘서트’가 장수할 수 있었던 건 아니다. 그
것만큼 중요한 것이 그 형식을 어떤 방식으로 채워
왔는가, 즉 내용의 문제다. ‘개그콘서트’가 ‘개그야’
나 ‘웃찾사’에 비해 더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던 건
무대 개그는 개그맨들의 무한 경쟁을 알리는 신호탄인 동시에 관객과 개그맨이 호흡하는 개그의 쌍방향 시대를
알리는 예고였다. 개그맨들은 편집되지 않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내야 했고 무대에 올려진 뒤 관객에게 외면받으면
통편집되는 ‘정글’을 경험했다. 덕분에 ‘개그콘서트’는 끊임없이 다양한 캐릭터와 유행어, 화제를 만들어 냈다.